6월 26일, 주저주저하며 이 공간에 창을 내었다.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곳에다가 내 한 단면을 깎아나가고 싶었다. 난 사람이나 다이아몬드나, 잘 연마되어

온갖 각도에서 내리쬐이는 빛에 조응하는 절단면이 많을수록 반짝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오프라인의 연장이 아닌, 온라인으로부터 뻗어나가는 관계를 쌓고도 싶었다. 싸이월드같은 다른 공간에서의

글쓰기, 혹은 사진올리기라는 게 조금씩 고인 물 같다고 느끼는 시점이기도 했다.

어쩌면 일상에서 블로그라는 단어가 자꾸 걸리적거려서였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파워블로거라며 티비에

나왔고, 또 다른 누군가는 블로그의 글 하나로 주목을 받았다. 마이크를 쥐는 건, 내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건 생각보다 '민주적'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우선 싸이 미니홈피의 글들부터 조금씩 옮겼다. 그러면서 여행이야기 쪽으로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이미

여행을 다녀온 곳, 그곳에서의 사진, 일기, 그리고 기억들은 충분히 쟁여놓았던 터였다. 급작스럽게 결정된

여름휴가, 출장, 짧은 체류 등 바쁘게 돌아간 하반기는 나름 쉼없이 포스팅을 하게 한 원동력이었고, 계절에

관계없이 이전 여행들을 정리하는 데만 반년쯤은 걸리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더욱 많은 곳을 돌아보고, 그곳과

나 자신이 어떤 화학작용을 거쳐 어떤 감정과 사고를 배출할지 더욱 많은 이야기들을 쌓아나가고 싶다.


최근 느끼는 건, 크리스마스 혹은 연말이라 그런지 '여행 이야기'만으로 많은 이들의 발길을 모으기란 힘들구나.

많은 사람이 오지 않아도, 그야말로 나 스스로 기억을 정리하고 추억하는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존재가치와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소쿨한 곳으로 가꾸겠다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조금은 여행 이외의 일상적인 내 모습을

드러낼 필요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애초 이곳에는 엄격히 여행과 관련된 이야기만 올리겠다고 제한했던 건

돌이켜보건대 그다지 별다른 이유는 없는 단순한 고집이었던 것 같다. 조금은 더 전면적으로 '나'를 드러낼 수 있는

블로그를 가꾸어보겠다는 게 2009년을 맞는 다짐이랄까.


p.s. 친구 하나가 들어오자마자 블로그 이름이 너무 어렵다고 타박을 했던 게 계속 맘에 걸린다. 가뜩이나 필명도

쉽지 않다고 구박듣는 판이다. 칸트의 책 한구절을 빌린 저 제목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황량한 세계에서 경험할

수 있는 0.1%의 유토피아적 가능성이라도 놓치지 말자는 나름의 각오인 건데...'적'이 두번이나 있어 별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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