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게 만드는 CG효과라거나, 구름갖고 장난치거나 뜬금없이 환타지틱한 화면이 중간중간 끼어들어간 것.

그리고, 마냥 냉막한 듯이 보이던 금자씨가 아파트 계단에서 화들짝 놀라는 장면, 끝내 자기가 살포시 엎어주었던

두부 모양의 케이크를 만들고 딸에게 돌아가는 장면..복수가 진행되어 정점에 달한 상황에서도 최민식은

야릇하게 끙끙거리는가 하면, 금자씨와 딸 사이의 대화는 정말 실감나게 '더빙'이 되고.

영화가 뱉어내는 스토리에 그저 함몰되려 했다면 순간순간 무기력해짐을 느끼게 되고 만다.


복수 삼부작 시리즈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생각하더라도, 금자씨 이 영화는 글쎄..복수에 어울릴법하지 않은..

다시 말해 온몸으로 '복수'에만 몰입할 수는 없는 인간들의 불철저한 감정과, 복수를 위한 불성실한 자세..그런 걸
 
보여주는 것 같다. 아무리 이를 갈고 13년 반동안 계획을 세워나왔대도, 복수란 순식간에 해치워지는 작업도 아닐

뿐더러, 인간의 감정이란 순식간에 평온모드-복수모드-평온모드로 구획지어 구분되는 게 아니란 말이다. 그래서

금자씨는 착해보이지 않으려 하고 감정을 죽인 듯 목소리를 깔고 눈빛을 예리하게 떠보지만..목사의 예기치 못한

등장에 화들짝, 놀라며 억지로 쓰고 있던 가면을 순간 노출시키고 만다.


딸을 찾으러 간 호주에서도 마찬가지, 금자씨의 행동은 장중하고 피비린내나는 복수의 우울함과 비장함을

계속해서 가볍게 만들고 점점 금자씨 스스로 복수에 대해 몰입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건 아닐까. 그래서

결국 아주 크리에이티브한 그런...복수 전략의 생중계..그리고 집단적 복수의 이벤트까지도 끌어내며 최민식에

대한 복수심의 총량을 키워내려 한거고. 그치만 무언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순수한 '복수심'에 기대어 자신의

나약해져가는 복수심을 다시 불붙이려 했던 금자씨의 기도는...그들의 혼란스럽고도 현실적인, 그리고

속물적이랄 수도 있는 감정의 비빔속에서 허망해져 버리고 만다. 그래서 그녀는 마치 조커처럼, 입을 쫙째고

웃는듯 우는듯..그렇게 총을 버린다. 13년여의 수감생활을 통해 얻어냈던 그 총을 버리는 순간 복수는 끝나지만.


역시, 그녀가 유괴했던 그 아이는 금자씨에게 웃어주지 않는다. 그나마 함께 백선생을 처단했던 가족들은

뜬금없이라도 '천사가 지나간다'며 상상속에서 자신의 복수심과 그로 인한 모종의 후련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금자씨는 아무도 없다. 그저 속죄의 의미로 잘라냈던 손가락의 깁스가 그녀의 과거 행위와 현재의 감정을

이어주는 하나의 가시화된 상징일 뿐, 조만간 그것은 시간에 쓸려갈 부질없는 이미지.


그래서, '화이트' 두부 케이크를 얼굴에 마구 부비며라도, 하얘져서 다시 딸과 행복해졌으면 한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복수를 마쳐서 행복해져도 된다? 아님 복수를 한 게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그렇다고 무작정

용서해라.라 이야기할 생각은 감독도 없는 듯한게..관객을 끊임없이 흔들고 낯설게 하며, 봐라봐 나지금 복수에

살짝 질렸거든? 살짝 이쯤서 갸우뚱해보는 건 어때?라고 의도하는 것 같아서.


13년간은 삶의 희망이자 의지였을지도 모르지만, 막상 그걸 직접 실현하는 중에 시간이 흐르고, 감정이 흐르다

보니 '복수'에 애초 부여했던 순수함이 퇴락하고, 몰입했던 감정이 시들어버렸다.

그다음에는 마치 의무와도 같은 방어전으로, 복수심에 떠밀린 채 스스로 갈피를 못잡게 된 듯한. 하긴 순수한

감정으로 쭉 복수 하나만을 그리는 캐릭터는 영화속에서나 그럴듯 하다.


올드보이에서 느끼던 비장미와 그 파괴적인 아름다움이 금자씨에서 안 느껴지는 이유, 대신 올드보이에서 안

느껴지던 다차원적인 인간의 감정과 흔들림..좀더 인간적이고 불순하며 잡종틱한 혼란스러움이 금자씨에서

부각된 이유. 내가 보기에는.

지난주는 내내 딩굴거렸다. 논문쓰고 났더니 지쳤는지, 아님 내처 꾸역꾸역 달려왔던 것에 질렸는지, 이제

헝클어질대로 헝클어져서 다리조차 안 움직여지는 거였는지.


수욜엔 학교서 김기덕의 빈집을 보고, 목욜엔 논문섭째고 김기덕 강연회가서 질문하고 사인받고, 금욜엔 모처럼

술마시고, 토욜엔 친한 누나 결혼식, 일욜엔 집에서 내내 잠.


김기덕의 영화는, 현실을 보여주기 위한 깡통따개같은 거다.

잔혹해 보일 수도 있는 영상들과, 적나라할 수도 있는 정형적일 수도 있는 남여의 역할, 그리고 하나같이

우울하고 어둡고 아픈. 이게 당연한 거라 여기며 살아왔던 것들을 낯설게 하고 난 정상의 감수성과 예민함을 갖고

있다 생각했던 것들에 문득 이질감으로 경악을 느끼게 하는. 그래서 그의 영화는 내겐 아름답다.

말이 닿지 못하는 차원에서 두명의 인간이 만나고 이해하고, 한장한장 그림과도 같은 상징과 의미들로 가득찬

화면들을 통해 의식의 흐름을 전하고. 가슴이 아프면서도 이거 진짜다 싶은...


김기덕은, 강연회 처음에 인사를 생략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칠판으로 가더니 휙휙 글자로 '반갑습니다'라며

인사말을 날려썼다. 다소 파격이었지만, 신선했다. 그이기에 더욱 납득할 수 있었다. '소통'을 끈질기게

이야기하는 감독이라 여겼기에, 그에다 대고 카메라폰을 찍어대는 건 왠지 아니다 싶어서 말았지만 칠판만은

한장 남겼다. 머, 결국 사인까지 받고 말았으니 그다지 수평적이고 인간적인 '소통'과는 좀더 거리가 멀어진거

같기도 하지만.ㅋ


심각하게 무기력하다. 오늘 아침에 좀 나아지나 했더니 아니다.

수욜쯤 여행이나 다녀와야겠다. 어딘가 있을 빈집..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제 산 김광석 인생이야기 씨디.

사실 광석이형 노래는 전부 엠피쓰리로만 있었어서 그가 라이브 공연서 청중에게 조곤조곤 들려주던 이야기는

여즉 못 들어봤댔다.


그는..환갑 때 번개불에 맞은 듯한 느낌으로 사랑을 시작해보고 싶다고 했고, 로망스의 'ㄹ'만 들어도 가슴이

뛴다고 했다. 마흔 살에는 몸에 체인좀 감고 할리데이비슨을 사서, 세계여행을 가고 싶다고도 했다. 여행이란 거

...살아가는 거랑 똑같다면서.


남들이 이상하게 볼만한 나이에도, 버스칸에 앉아 문득 들리는 노래소리에 눈물이 고이기도 하고-그리곤

다시 부른 노래가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라고 했다-노래 녹음을 하면서도 문득 목이 메여와 결국 술을

마신 채 녹음을 진행하기도 하고. 청중에게 말을 건넬 때, 그는 호흡의 묘미를 알고 있었다.

적절한 타이밍의 적절한 크기를 가진 쉼표, 감정의 교통을 위한 강약 중강약의 밀고 당김.

그래서 그의 ㄹ은 더더욱 로맨틱했다.


라이브 공연 실황을 담은, 그가 스스로 세상을 등지고 하염없이 흘러가는 시계추를 스스로 멈춰버리기 고작

반년 전쯤의 그의 음성..그는 환갑을 이야기하고, 꿈을 이야기하고. 살짝 지친듯한 그러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노래하고 있었다.


이미 죽어버린 사람이 죽음을 이야기하고, 꿈을 이야기하고. 광석이형이 자꾸 말을 걸어와서..4시에야 씨디피

배터리가 나가고 그제야 잠들수 있었다. 끼적대며 낙서도 하고, 일기도 쓰고..


김광석...광석이형. 그가 왜 죽었는지,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었던 밤이었다.

난 이해한 듯 싶다..고 생각했다.



그대들의 결혼이 나쁜 결합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대들은 너무 빨리 결합된다. 그 때문에 결혼의 파탄이

뒤따르는 것이다. 그러나 결혼의 왜곡과 결혼 속에 깃든 기만보다는 차라리 결혼의 파탄이 더 낫다. 어떤 여자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결혼을 파괴했어요. 그러나 그보다 먼저 결혼이 나를 파괴했어요!"


잘못 결합된 부부는 최악의 복수심으로 가득 찬 자가 된다는 것을 나는 발견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더 이상

혼자서는 살아가지 못한단 사실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보복을 한다. 그러므로 나는 정직한 자들이 서로에게

이렇게 말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있다. 우리는 계속해서 서로 사랑하도록 노력하자! 아니면 우리의 약속을 실수로

돌릴 수는 없기 때문에." "우리가 훌륭한 결혼에 적합한지 어떤지 알 수 있도록 우리에게 일정한 기간과 짧은

결혼생활을 허락해다오! 항상 둘이 함께 지낸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나는 모든 정직한 자들에게 그렇게 권한다...앞을 향해서뿐만 아니라 위를 향해 그대들 자신을 고양시키는 데

결혼이란 정원이 그대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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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을 이따위로 해놓는 ㅆㅂㄻ에게 화있으라. 니체가 제공한 주례사의 모델#1. 여태 이만큼 좋은 주례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절반은, 결혼으로 사랑이 결실맺었다며 구라쳤고, 나머지 절반은 '에~'가 무한반복되는 심심한 애국조회를 하는

기분이었다. 어쨌거나, "주례사는 준비되었다. 결혼하자, 여자야!"ㅎㅎ

과사에서 독촉 문자가 오는 통에 어제 학교에 갔었다. 과사에 가서 졸업장을 받고, 향후 진로가 어떻게 되는지

묻는 지루하게 긴 설문 조사를 받은 후에야 사회대를 벗어날 수 있었다.


가방에 넣은 졸업장이 나를 툭툭 쳐대면서 학교에서 멀어지자고 떼쓰는 듯했지만, 할 일이 조금 남아 있었다.


어떻게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지 친구녀석하고 얘기 좀 해보려 했고, 게다가 본부에 가서 영문, 국문으로

성적증명서랑 졸업증명서도 떼어 두고 싶었다. 혹시 어디에 급히 쓰일지 모르니까. 워낙에 먼 학교라 언제

또 올지 모르니까.


학교에 몇 년째 다녔는데도 어제서야 겨우 또 하나 알게 된 게 있다. 학관 식당에서-아마 다른 곳에서도?-

2500원짜리 밥먹는데 카드로 결제가 가능하단 사실. 날 번번이 헷갈리게 하는 셔틀줄은 여전히 익숙하지 못한

채였고, '서울대입구'라는 역의 이름이 주는 묘한 기분은 여전히 무뎌지지 않은 채였다. 끝내 익숙해지지 못한 채

졸업하는구나. 심지어 집에 갈 때는 지하철을 거꾸로 타기까지.


집에 와서 밤이 되서야 실감이 났다. 더이상 대학생이 아니란 사실, 대학생활(이라 불리는 것들)이 공식적으로

쫑났단 사실, 그리고 이제 정말 어디에도 적을 두고 있지 않다는 사실. 어쩌면 졸업식날 무리를 해서라도 가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잠깐 했다. 이런저런 감정을 나누지도 못한 채 혼자 뒷북치고 있는 상황도 별로

맘에 안 들었고, 누군가에게든 새삼스레 수고했다는, 혹은 잘했다는 말을 듣고 싶어하고 있는-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까지야 바라지 않더라도-내 속내가 살짝 집요해지려 꿈틀댄 것도 별로 맘에 안 들었기 때문.


자축하며 술잔을 기울이다 보니 감정이 확 들끓어오를 거 같아서 억지로 잠을 청하길 잘 했다 싶다.


오늘은, 괜찮다. '노다메 칸타빌레'도 무지 몰입하며 전부 봐버렸고, 우에노 쥬리-혹은 그녀가 연기했던

노다메짱-이 좋아져버렸고, 왼발의 근육통이 괜찮아져서 다시 뛰기 시작했으며, 이제부터는 영어 에세이를

써야 한다...는 건 별로 안 좋지만 어쨌거나.


2007년 8월. 혹은 9월 11일. 졸업. 축.졸.업.

스포츠센터에 다니고 있다. 더이상 고수부지나 집근처 공원같은 공간을 달리는 것이 아니라, 무한도전, 혹은

J-Channel같은 프로그램을 달린다. 촛농처럼 땀이 흐르고 난 조금씩 안쪽에서부터 녹아내린다.(고 상상한다.)

한시간반쯤 뛰면 머리가 멍해지는데, 그러고 나서야 쇳덩이 좀 들고 기구 좀 사용해 준다. 다른 부위는 모두

구속한 채 특정 부위만을 해방시키는 기구에 몸을 묶은 채 느슨해진 근육들에 긴장을 불어넣다 보면 어느새

두시간이 훌쩍 넘어있다. 꼬챙이에 꼽힌 채 커다란 칼로 살살살 벗겨내지는 케밥용 고기처럼 그렇게 내

껍데기에서는 지방이 벗겨지고, 안쪽에서부턴 왜소하게 박혀있던 근육들이 둔중한 부피감을 과시하며 차츰

밀려나와 안팎으로 꿈틀대는 중이다.(라고 상상한다.) 무리하고 있다. 왼쪽발목이 삐그덕대기 시작해서, 낼부터는
뛰지 말고 걸어야 하지 않을까..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충분히 걷고 있다. 강남구청역 바로 옆에 있는 영어 학원에 가려면 한시간반씩 걸리며 두번이나

환승해야 하는데다가, 층을 오르내리며 수업을 들어야 한다. 매일 9시부터 3시까지 있는 수업 역시 녹록치만은

않아서 오전중에 벌써 개풀처럼 지쳐버린다. 어쨌건 덕분에 끈떨어진 졸업생치곤 아주아주 근면성실하게 살고

있는 것같은 포만감은 들지만, 사실은 이게 다다. 헛배만 불렀다.



정몽구는 동아일보 인턴할 때 공판을 지켜봤었고, (인터뷰라기엔 살짝 머한) 짧막한 대화도 살풋 나눴었다. 그에

대한 항소심 판결을 보면서, 얼마나 유리처럼 취약한 세계관에 기대어 우리가 살고 있는지..한심스럽고도

가련했다. '저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우리나라 경제를 위험에 빠뜨리는 도박을 하기 꺼려졌다'는 대목. 재판관은

법의 정신에 따라 판결만 하면 된다지만, 법조목에만 능한 그가 가진 경제적, 사회적 소양은 기껏해야 신문에서

줏어본 '상식'이다. 마치 외교과 교수들이 '국익'을 논하면서, 그저 경제학원론 수준의 경제적 이론-규모의 경제,

자유무역의 이익-을 전제한 채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것과 같다. 전부다 기능인들 뿐이다. 그저 '상식적'인

이야기를 빌려온 채 자신이 가진 조그마한 양념을 뿌려 판.단.한다.

혐오스러운 기능인들. 최소한 자신이 기능인에 불과함을 인정하고 자기 분야가 아닌 것에 대한 자신의 의견이

나이브한 것에 지나지 않음을 인정해야 하는 거다. 물론 그가 판결을 내리려면, 국제정치 문제에 대한 판단을

하려면, 이러한 식의 거친 '상식의 개입'은 불가피하기도 하다.



사실은, 모든 종류의 세상살아가는 스토리-텔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혹자는 최근의 소설이 전부다 일인칭의

자기분석적 서술이라며 비판하기도 했다지만, 자신의 감정조차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판에 구태여 타인의

시각을 전지적으로 개재시킬 필요도, 능력도 없다는 포스트모던한 자각에서 비롯한 걸 거라고 생각한다. 상황을

해석하고 감정을 헤아리는데 있어서의 기능인. 자신의 감정에 투영시켜 상대를 보고, 자신과 같은 상대의 감정을

기대하는. 내가 갖는 느낌은 기껏해야 내 신체를 벗어나지 못한다.



아, 그나마 운전을 할 때라거나 검도를 할 때. 내 존재가 차의 보디를 따라 연장/확장되는 느낌이 들면서, 바퀴가

돌을 밟으면 내 다리에 밟힌 것처럼, 엔진이 쿨럭이면 내 심장이 잠시 버거운 것처럼 감각한다. 검을 따라 내 팔이
늘어난 것 같은 감각 역시. 그치만 이것들은 도구화된 무생물일 뿐이다...



촛농처럼 땀을 흘리면서 징징대는 게 아닐까 생각하다가도 무한도전보며 웃다가 자빠질 뻔 하기도 하는 녀석이

무슨 감정을 품고 살고 있는지조차 스스로 알기 힘든 판이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세상, 그리고 사람들은 그저

상식대로, 혹은 내가 바라는 '상식'대로 굴러간다고 믿는 게..편하다. 자기편의적인 효용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해만 안 주면야, 내 편한대로 '상식'을 초혼하는 것도 괜찮을 법하다.



후희(post-play), 혹은 금단 현상(withdrawal syndrome).

감정이 달리는데 있어서 전희(fore-play)라는 게 갖는 비중만큼이나 후희라는 것도 중요하다면..오케이.

여전히 남은 온기와 따뜻함의 여운을 쓰디쓰게 되씹는게 충실한 후희.

#1.

사무실에서 일하던 중 문득 그녀의 전화를 받고 끊을 때, 그녀는 말한다. "공부 잘해~". 집에서 회사일을 말할 때

나도 문득 말한다. "학교에서~".

아직도 어색한 정장차림과, 좀체 익숙해지지 않는 출근길, 그리고 여전히 번거롭기만 한 아침마다의 의례.

넥타이와 셔츠의 매치. 대학생이자 인턴인 남자아이 하나와 대졸 회사원이자 외부적으론 대리인 남자아이 하나
 
사이에는 서로가 서로를 부러워하는 그런 묘한 분위기가 이따금씩 피어올랐다 사라진다.


#2.

적나라한 금전적 성과로 환산되지 않는 업무의 특성때문인지 이곳 사람들은 확실히 스트레스가 적고, 덜

늙어보인다. 들어오기 전도 그렇지만 들어오고 나서도 줄기차게 들었던 말, 이곳 사람들은 다들 너무 좋다고.

첨에는 정말 여긴 사람들의 인성을 많이 보고 뽑나보다, 할 정도로(글탐 내가 뽑힌 게 100% 시스템 에러겠지만)

사람들이 하나하나, 다들 좋아 보였다. 물론 지금도 좋아 보인다.


다만 그러한 '사람 좋아보임' 이면에는, 굳이 다른 사람에게 까칠해 보이기 싫고 뒤로 싫은 말 듣기 싫다는

암묵적인 계산이 깔려있는 것처럼 보인다. 서로 깊게 개입되지 않고,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허허 웃고 치우는

거다. 그럴수록 뒤로만 말이 무성해지지 않을까. 선배들이 최소 3개월은 나죽었다 생각하고 이미지관리 잘 하고

앞으로도 이미지로 '쇼부'칠 거라는 충고를 던지는 건 괜한 게 아니다. 굳이 부딪히지 않고, 마침 크게 부딪혀야

할 일도 없고 뚜렷이 숫자로 된 성과로 계측되는 집단도 아니니, 좋은 소리 듣고 좋게좋게 가는 게 제일 중요해

지는 거 같다. 아님 술자리에서, 어디에서든 질겅질겅 씹히면서도 정작 본인은 모르기 십상이지 싶다.


누구였더라, 사석에서 남의 뒷담화만 안 해도 제대로 회사생활하는 거라는 말씀은 갈수록 묵직하게 느껴진다.


#3.

내가 외국계 기업을 가고 싶어했던 건, 그곳에는 뭐랄까, 문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술을 먹어야

빨리 친해진다거나 매일같이 이어지는 술자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거 말고.

여기도 많이 먹는 편은 아니며, 술을 좋아하는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아 보이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으레 술을

깔아놓고 몇차씩 옮기며 마시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을 못찾고 있는 것 같다.


단적으로 합격자 발표 후 가족들을 불러 식사를 함께 하는 IBM의 '가족적'인 마인드는, 사실 한국 기업들에선

찾아보기 힘들 거다. 적어도 협회에선 확실히 그런 거 같고. 그래서 한국 대기업식의 빡빡한 조직문화도 아닌

것이, (다소 이상화된) 외국계기업식의 개인화된, 동시에 다른 방식으로 묶여있는 조직문화도 아닌 것이

어정쩡하게 조직과 개인을 모두 풀어버린 지금의 그림이 아닌가 싶다. 그닥 뚜렷한 묶임이 없고 각자 적당히

친한 척하며 살짝살짝 그림자만 스칠 뿐인 피.상.적.이기 쉬운 관계. 그렇게 두루두루 친하고 둥글둥글 모나지

않은 사람을 높이 평가하는 곳이 아닐까. 하고 다소 기우 중이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어떻게, 어떤 관계를 누구와

만들어나가야 하는 걸까 생각 중이다.

왜 주경복을 지지하는가
[진중권 칼럼] '미친 교육'에 대한 '촛불'의 심판 보여주자
등록일자 : 2008년 07 월 26 일 (토) 15 : 28  
 

  한여름이라 그런가? 납량특집이 유행이다. YTN 낙하산 인사, KBS 사장 퇴진 압력, MBC에 대한 공격. 촛불민심을 만들어낸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대한 온갖 규제들. 노골적으로 정권의 충견으로 나선 경찰과 검찰은 촛불을 물어뜯는 데에 여념이 없다. 임기 초에 지지율 20% 초반이면 사실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정권. 무덤에 누워 반성해야 할 이 좀비가 다수의석이라는 형식적 권력에 기대어 도처에서 산 사람들을 공격하며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좀비의 이 주제넘음은 물론 다음 총선과 대선까지는 앞으로 4~5년이나 남았다는 여유에서 나온다. 한 마디로 '너희들이 아무리 끓어봤자 4~5년 동안은 합법적으로 우리를 몰아낼 방법이 없다'는 자신감이다. 그래선지 최근 촛불에 대한 정권의 전방위적 압력은 실로 극한을 향해 치닫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 강압적 통치가 그들을 구원해줄 것 같지는 않다. 시대착오적 억압은 시민들 마음속에 고스란히 스트레스로 쌓여, 또 다른 분출의 순간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듣자 하니 싱가포르에서 또 다시 외교적 해프닝을 연출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뺨 맞고, 중국에게 침 맞고, 일본에게 뒤통수 맞다가 이제는 북한에게마저 절절매는 신세가 된 무능한 정권. 이 '글로벌 호구'가 제 국민을 향해서만은 왜 이리 기세등등하게 서슬이 퍼런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황당한 상황에 긍정적 측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반 년 간 이명박 정권은 '선거 잘못 하면 나라가 어떤 꼴이 되고, 시민이 어떤 신세가 되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계몽적 역할을 충실히 해오지 않았던가.
  

▲ ⓒ프레시안

  밥 좀 먹자, 잠 좀 자자
 
  선거 다시 하려면 4~5년을 기다려야 하는 촛불시민들에게, 이번 서울시 교육감 선거는 놓쳐서는 안 될 기회로 여겨지는 모양이다. 돌이켜보건대 촛불과 교육의 문제는 사실 애초부터 서로 맞붙어 있었다. 처음 거리로 나온 촛불소녀들의 피켓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밥 좀 먹자. 잠 좀 자자." 여기서 '밥 좀 먹자'는 구호는 미국산 쇠고기 급식에 대한 두려움을, 그리고 '잠 좀 자자'는 구호는 이명박 정권의 교육정책 앞에서 중고생들의 신체가 느낀 위협을 표현한 것일 게다.
 
  "학생들이 공부하다 과로해서 죽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한나라당 소속으로 서울시의회에서 교육문화위원장을 하는 분은 얼마 전 이 가공할 망언으로 MB식 교육철학의 정수를 보여준 바 있다. "저소득층이 늘어나면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 강남에 임대아파트 짓지 말라고 서울시에 공문을 보낸 서울시교육청의 행각은 MB식 교육철학의 또 다른 기둥이다. 이게 과연 제 정신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얘기인가? 이러니 '미친 교육'이란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촛불은 처음부터 이 병든 교육에 대한 거부이기도 했다.
 
  투표권도 없는 내가 주경복 후보 지지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은, 주 후보야말로 이 촛불의 정신을 대변하는 후보라고 믿기 때문이다. 투표율이 낮은 선거에서는 늘 조직력과 동원력을 갖춘 보수층이 쉽게 승리해 왔고, 이번 선거 역시 유감스럽게도 투표율이 그리 높을 것 같지는 않다. 이렇게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촛불후보가 기어이 승리를 한다면, 그것은 '촛불 민심이 이명박 정권의 미친 교육을 심판했다'는 확실한 사인이 될 것이다. 나는 그것이 정권으로부터 공격당하고 모욕당하는 촛불을 지키는 길이라 믿는다.
 
  과거의 경쟁력
 
  하지만 주경복 후보를 지지하는 데에는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 그것은 한국 교육의 경쟁력을 위해서다. MB의 교육철학을 공유하는 이들은 저마다 입으로 교육의 '경쟁력'을 외친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경쟁력은 미래형이 아니라 과거형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그들의 게을러서 굳어버린 돌머리는 경쟁력마저도 70년대식으로 이해를 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우리는 70년대가 아니라 21세기에 살고 있다. 필요한 것은 미련하게 애들 잠 안 재우는 경쟁, 부모들이 벌이는 소모적인 소득수준의 경쟁이 아니다. 미래형 경쟁은 창의성과 상상력의 경쟁이다.
 
  경쟁력을 떠든다고 경쟁력이 생긴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기억하는가? 대통령 이명박씨는 "국내에 나의 경쟁자는 없다"며, 자기 상대는 미국의 부시, 러시아의 푸틴이라고 얘기했다. 그렇게 말하던 그의 국제경쟁력은 어느 수준이던가. 한 마디로 글로벌 호구가 아니던가. 하루에 네 시간 밖에 안 잔다고 자랑하는 게 MB 정권에서 생각하는 경쟁력이다. 생산력의 발전이 노동력의 단순투입만으로 이루어지던 70년대 초의 마인드. 그런 구식 경쟁력으로 세계로 나갔다가는 외교에 이어 경제에서도 글로벌 호구가 될 뿐이다.
 
  미래의 경쟁력
 
  후진국의 산업화는 대개 선진국에서 기계를 들여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러다가 조금 발전하면 기계를 스스로 만들기 시작한다. 그때 쯤 선진국은 기계를 디자인만 하고 있을 게다. 개도국이 기계의 설계에 뛰어들 때쯤이면, 선진국은 원천기술의 개발을 인도나 중국과 같은 개도국에 떠넘긴 채 기술 경영만 할 것이다. 한 마디로 창의성 없는 기술은 급속하게 단순한 기능으로 전락해가고 있다. 진정한 의미의 교육 경쟁력이란 바로 이런 시대 흐름에 부합하는 창의적 인력을 양성하는 데에서 나오는 것이다.
 
  MB노믹스의 한계는 곧 MB식 교육의 한계다. MB와 철학을 공유하는 후보들은 저마다 '경쟁력'을 떠든다. 하지만 그 '경쟁력'의 실체가 무엇인지 뜯어보면, 산업화 초기 단계의 마인드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문제 푸는 능력'과 '문제 해결 능력'은 다르다. 문제 푸는 능력은 결국 알고리즘에 익숙해지는 문제다. (사교육의 본질은 바로 그 알고리즘을 상품으로 제공해주는 데에 있다.) 반면, 문제 해결 능력은 그것과는 차원이 달라, 무엇보다 학생 스스로 자료를 검색하여 솔루션을 모색하는 주체성을 요구한다.
 
  나아가 문제 해결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게 문제 제기 능력이다. 이미 던져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쉬운 일이다. 진정으로 어려운 것은 아직 제기 된 적이 없는 새로운 문제를 던지는 것. 이는 최고의 창의성을 요구한다. 이미 세계 경제는 이런 종류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MB주의자들이 떠드는 경쟁력이 어디 이런 것을 말하던가? 하루에 네 시간 밖에 안 자는 대통령. 이게 저들이 생각하는 교육의 모범이자 이상이다. 하루에 네 시간 밖에 안 자는 것은 부지런한 게 아니라, 그냥 미련한 것이다.
 
  경쟁과 협력
 
  주경복 후보는 공약으로 핀란드식 교육을 얘기한다. 세계 최고의 교육경쟁력을 자랑한다는 핀란드. 이 나라의 운영원리는 거의 모든 면에서 MB이념과는 대극을 이룬다. 노무현 정권마저 '좌파'라 부르는 가재미들의 눈에 핀란드와 같은 북구 사회는 아마 극좌 공산주의 사회처럼 보일 것이다. 핀란드의 고교내신은 달랑 '잘 함', '중간', '못함'의 세 등급으로 이루어졌다고 들었다. 소수점 아랫자리까지 따져가며 학생들 줄 세우는 것으로도 모자라 아예 중고등학교까지 성적 별로 서열화하는 게 교육경쟁력의 요체라 믿는 이들은 아마 이게 이해가 안 될 것이다.
 
  가장 사회주의적인 나라가 동시에 가장 높은 자본주의적 경쟁력을 갖추었다. 이 사실이 미래를 헤칠 머리가 없어 과거에 집착하는 굳은 머리로는 도저히 납득이 안 될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상상력의 한계다. 자본주의적 생산도 어차피 사회적 생산, 그것도 거대한 사회적 협업의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한 사회의 경쟁력은 바로 이 협업이 얼마나 효율적이며 창의적으로 이루어지는지에 달려 있다. 교육의 이념도 바로 이 명백한 사실의 인정에서 출발해야 한다. 친구를 밟아야 내가 생존하는 소모적 경쟁은 반(反)사회적인 것이다.
 
  '한 사람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 미학에서도 이미 100년 전에 포기한 낭만주의적 천재론이 한국에서는 경제학의 행세를 한다. 대통령이 CEO를 하고, 전 국민이 그의 수족이 되어 움직이면 경제가 성장한다는 전근대적 미신이 한국에서는 버젓이 경영학의 행세를 한다. 한 사회의 경쟁력은 자신을 천재 혹은 엘리트라 믿는 과대망상증 환자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게 아니라, 경제 주체 하나 하나의 능력, 그것들의 효율적 결합, 그 결합이 만들어내는 전체적 창발 효과에 달려 있다. 교육의 이념은 이 상식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내 안의 MB
 
  마지막으로 남을 탓하기 전에 우리가 반성해야 할 게 있다. MB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것은 사실 우리들 내면의 명박스러움이었다는 점이다. '경제만 성장시켜 준다면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다'는 게 지난 대선의 표심이 아니었던가. 교육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MB식 교육정책을 낳은 것 역시 우리들 내면의 명박스러움이었다. 요란하게 사교육을 탓하는 학부모들에게 솔직하게 물어 보자.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되든 내 아이만 잘 가르치면 된다.' 아니, '다른 아이들이 못할수록 내 아이에게는 유리하다.' 솔직히 당신들 스스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다른 아이야 어떻게 되든 내 아이의 점수만 높이면 된다.' 이것이 사교육을 성행하게 만드는 우리 내면의 명박스러움이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얼마나 효율적일까? 애들은 애들대로 고생하고, 부모는 부모대로 허리가 휘고, 교육은 교육대로 망가질 뿐. 진정으로 공교육을 살리고 싶다면, 우리 내면의 명박스러움부터 척결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 우리가 함께 잘 가르쳐서, 나중에 그 결실을 함께 나누자.' 이것이 바로 우리가 되찾아야 할 공교육의 이념이다. 정의로운 것이야말로 효율적인 것이다.
 
  내가 주경복 후보를 지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와 관련이 있다. 나는 그의 당선이 한국의 교육현실을 일거에 바꾸어 놓을 거라 믿지는 않는다. 다만 그의 당선이 이런 사회적 인식의 전환을 위한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믿을 뿐이다. 진정한 승리는 그저 특정 후보를 교육감으로 당선시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결국 괴물 정권과 괴물 정책을 출산한 우리 내면의 괴물을 반성하고 척결하는 것.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선거는 우리 내면의 명박스러움을 태워 없애는 또 하나의 촛불집회, 즉 정신적 성숙과 정화의 의식이 되어야 한다.

진중권/중앙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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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과 인간 자아와의 관계

신이 인간의 내부에 존재하는지, 외부에 존재하는지에 대한 오랜 성찰에 대해, 비교신화학자인 저자는 구석기

인류의 모권중심적 세계관, 혹은 이를 보다 온전히 이어받은 동양신화의 세계관과 주로 레반트(중근동)에서

유래한 서양신화의 부권중심적세계관이 부딪히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신이 인간의 외부에 있다는 입장은

신의 역사하심(곧 신화)을 역사, 과학으로 해석하여 자기완결적인 계시로 완성시키고자 골몰한 나머지, 일종의

훈고학적인 강박이나 단일진리를 향한 광기를 불러내기 십상이란 점이 부각되었다.


실제로 수 가지의 원전이 수 세기에 걸쳐 편집된 'Sacred Book'의 오리지널리티 혹은 마술성에 대한 주장이,

각 종파들간의 '이단' 투쟁이나 그를 빙자한 정치투쟁에 원용되었다. 그에 더해서 경전상의 지역과 스토리를

역사에 덧씌우려는 노력으로 인한 '역사강역'의 침탈, 그로 인한 끊임없는 지역분쟁은 여전하다. 특히 '신의

은총'이라는 보이지 않는 공급독점의 상품이 여전히 개별 종교시장, 특히나 서구 기독교 계통에서 먹히는 이유도,

내 안의 신을 부정하고, 외부의 엄격하고도 질투심많은 심판자만을 바라보는 그들의 신화적 기원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2. 전복된 상징과 이미지들.

그렇지만 부권중심의 신화가 모권중심의 신화를 전복하는 과정에서 변형해 차용한 과거의 상징, 이미지들은

여전히 그 내부에 이미 그와 반대되는 맥락과 이미지를 담고 있다. 그리스 신화 내의 많은 사례들-메두사에 대한

여러 변주된 이미지들-을 제치고라도, 무엇보다 선악과와 뱀을 둘러싼 이미지가 그렇다는 지적이다.

인류에 최초의 죄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이후 삶의 고역을 설명하는 키워드가 되고 만 선악과, 그리고 그 죄를

범하도록 유도한 뱀의 사악성과 여성의 미욱함이라는 소재는, 기실 기독교신화 이전에 전혀 내용의 방향을

달리하던 것들을 새로이 짜깁기하고 정렬시킨 에 불과하다. 애초 삶에 대한 긍정과 지혜의 획득을 의미하던

사과와 지혜의 나무는 차마 오르지 못할 금기의 대상으로 바뀌고 세상을 주재한는 뱀과 여자(여신)는 남성인간과
 
신의 관계에 대한 방해자로 변화했다. 그렇지만 짓눌린 과거의 이미지와 스토리는, 어느때고 여차하면 돌진하여

그 위에 지어진 텍스트를 공격한다.



#3. 헬레니즘 - 인간 중심주의..신과의 관계에서.

여호와가 큰뱀 리바이어던에게 승리를 거두며 뽐냈다는 기록이 바로 부권질서가 모권질서를 전복했다는

의기양양한 선언이라고는 하지만, 부권적이라 통칭하는 서양신화 역시 나름의 균열을 갖고 있다. 레반트의 전통

(조로아스터교,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이 신 앞에서 인간적인 판단을 포기하는 것이라면, 유럽의 토착전통인

그리스, 로마 등의 신화에서는 인간적 가치를 지키면서 그에 의거해 신들의 성격을 판단하는 굵은 구분선이

그것이다. 삶에 대한 열정과 긍정에 기초한 헬레니즘의 범신론은 인간의 본성을 '이성'으로 보고 있으며, 이러한

본성에 따라 희노애락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


"포도나무가 포도열매를 맺듯 인간은 선행을 한다"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이야기는 "(하느님이 갚아주실
 
터이니)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기독교 교리와의 관점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스토아학파의 내용은 이후 인간의 본성을 이성에서 신성(부활의 신비)으로 대치한 중세 기독교교리로 변질되어

인간중심적인 본래의 의미를 잃고 말았지만, 르네상스로 되살아나게 되었고 다시 신을 인간의 도구로 돌려놓은

게 아닐까.



p.s. 매달 한차례 점심시간에, 코엑스 모처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직장인 가톨릭 미사에 참석하고 있는 나는,

일종의 의식을 참관하고 그 인위적인 성스러움을 느긋이 즐긴다는 기분이다. 다채롭고 혼란스러운 원전들에서

재구성된, 그치만 나름 고도화된 신화를 바탕으로 하여 그 위에 쌓여 올려진 신비적 제의와 신학적 백업.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 칭한 맑스의 말은 여러모로 맞다. '응급처방약'이란 걸 알고 적당히 쓰일 수 있겠고,

아님 중독되어 버린 나머지 그로 인해 피어오른 망상 속에 평생을 지낼 수도. 어느 쪽이냐면 나는,

(굳이 말한다면)

Q.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성체를 모실 수 있다. ( O )

제사상 음식 지분거리지 말라지만, 배고프면 전부치면서 먹잖아.


신의 가면 3 : 서양 신화 - 8점
조셉 캠벨 지음, 정영목 옮김/까치글방

수족관 속에 들어있는 것 같이, 47층 창밖에는 온통 뿌연 공기만 가득.

창문 왼쪽끄트머리서부터 생선대가리가 설설설 헤엄쳐온다고 해도, 혹은 오른쪽끄트머리서부터 상어나 고래가

입벌리고 덜컥 튀어나와도 별로 안 놀랠 수 있겠다.

이 정도 높이에선 아마도 안개가 아니라 구름이지 싶다. 쉭쉭 달려가는 구름을 찢어놓는 고층빌딩. 은근히

남성적이다..랄까.


갑자기 호주총리가 방한하고, 호주대사관서 만찬행사를 해달라고 졸라대는 데다가 전경련에서 갑자기 자기들이

행사를 맡겠다고 떼쓰는 통에 큰 일이 생겨버렸다. 청와대까지 가서 신분확인을 위한 비표를 제작하게 생겼으니.

MB의 위세를 업고 전경련이 아주..요새 기세등등이라는 평이다. 효성회장 조석래가 이러저러한 비리문제에도

휘말려 있고 그런 것 같은데...사돈이라 은근슬쩍 뭉개고 있는 거 같다.

어쨌든. 이번행사는 내가 첨부터 끝까지 쥐고 하게 되는 최초의 행사라서 8월 11일까지는 정신없게 생겼다. 머,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글줄 써가며 한탄할 여지야 찾으면 나오기 마련이지만.ㅋㅋ


하나더, 8.15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고 대대적으로 60주년 행사를 펼치기로 했단다. 경제4단체가 뭔가 하나씩

맡아서, 전경련은 무슨 마라톤대회던가를 하고, 어디는 음악회를 하고, 협회쪽은 재독 간호사, 광부들을 초청해서

뭔가...행사를 해야 한다는 상황. (의견수렴이나 사전 협의없이) 다짜고짜 건국절로 바꾸겠다고 설레발치는 거나,

2주 남겨놓고 그런행사를 벌인답시고 난리를 치는 거나, 여러모로 짜증스러운 색퀴다.

#1. 환영회

부서에 배치받은지는 어언 한달이 넘어가는데, 외국 출장과 각종 행사로 바빴던 터라 어제야 내 환영회가 있었다.

미루어지다 보니 마냥 내 환영회랄 수만도 없는 게, 대학 같은 과 친구이자 입사 3년 선배인 분께서 우리 부서로

옮겨온 환영회도 더해졌고, 어제 새롭게 합류해 한학기동안 인턴활동을 할 대학생 인턴환영회까지.

여태 팀회식은 한번도 없었지만 익히 예상했던대로 술은 그렇게 먹지 않는 분위기에, 소탈한 팀장님 이하

화기애애한 팀원들의 거리낌없는 대화가 오가는 자리여서 맘에 들었다. 평소 사무실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뭐, 아직 내가 바쁜 시기를 경험치 못한 탓도 있겠지만.



#2. 시간.

그러고 보면, 대학 졸업에 이르기까지는 계속해서 시간표가 학기 단위, 월 단위, 시험 단위, 주 단위로 짜여져

있었다. 딱히 시간을 분절시켜서 쓰고 있다는 감각 없이도, 주어진 커리큘럼을 따라가다 보면 알아서 규칙적인

일정과 시간 관리가 가능해지는 그런 상황에서 이십여년을 살아왔던 거다. 거창하게는 근대적 노동자의 예비..

랄 수도 있겠고, 안정적으로 주어진 스케줄표라 할 수도 있겠지만 여튼지간. 그래서, 정식 출근 후 고작 한 달여

밖에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여전히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어떤 스케줄이 가능할지에 대해 감이 안 잡히는 건

당연할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든다. 중간중간 규칙적으로 꼽혀있는 깃발들..이 안 보이니 내가 뭔가 스스로 시간을

덩어리로 묶어가며 써야 될 거 같은데, 아직 일년 한 바퀴도 돌지 않은 상황에서 감잡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일의

템포-강약강약이랄까 강약중강약이랄까-를 강조하는 팀의 고유한 분위기 탓, 혹은 고유한 스케줄 탓인지도

모르지만 일단은...그런 식의 타협으로 2월 한 달을 정신없이. 아무것도  계획한 거 못하고 보내버린 스스로를

조금은 살갑게 용서.ㅋ



#3.

열두개가 찍힌 커피빈 쿠폰으로 자그마치 6,200원짜리 아이스 블렌디드를 바꿔들고 올라와선 9시 땡치고 일과가

시작되었음에도 쓰던 글은 마저 써야겠다고 이러고 있다.ㅋ

#1. 이미지(Before & After랄까..)

'한국무역협회'와 '이희범회장'을 키워드로 해서 뽑아 보았던 1년반치 기사뭉치, 월간지, 논문들에서

비쳐진 무역협회란 곳은 전경련을 필두로 한 경제4단체 중 하나라곤 해도 조금 달라보였다. 자력으로

무역하며 위협섞인 엄살을 피워대는 대기업들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근근히 수출하며

먹고살기 바쁜 중소무역업체, 중앙에서 소외된 지방업체의 이익을 통틀어 대변하려 하는 무역업체들의

이익단체. 애초 공기업도 아니고 공공기관도 아니고 단지 한국의 '무역업계'만을 위한 민간단체가

정체성이라지만, 다른 것도 아닌 '한국의 무역'이라니 공공적인 측면을 무시할 수 없는 게다.


해병대 등 이런저런 희떠운 연수스케줄 몽땅 합쳐봐야 아직 한달도 안되었다지만 실제로 중소

무역업체를 위한 일도 많이 하는 것 같아 보인다. 高원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정부에 촉구한다거나,

FTA활용방안을 홍보한다거나..SERI가 삼성이란 일개 사기업의 지적 전위부대로서 충실한 역할을

하는데 반해, 협회산하 국제무역 연구원은 그래도 국가 차원의 시각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중소기업에 대한 관심, 분석, 대안 제시의 노력도 진지해 보이고. 물론 그러한 식의 '수출 XX불',

'세계 XX위'같은 유치한 양적과시가 끊임없이 거슬릴 뿐더러 기업인이 한국의 1등국민이라는 암묵적

전제도 썩 와닿지는 않지만. 그리고 아마도 그러한 필연적 결과로 한미FTA를 앞장서 주도했으며

한EU FTA도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도 무척이나 불쾌하지만.(근데 대체 한미 FTA와 한EU FTA에

대처하는 진보진영의 자세가 왜 이렇게 다른지, 반미의식에 편승해 쉽게 감정을 동원할 수 있겠단

꼼수 > 자본에 대한 문제의식?)



#2. 낯익은 위화감

게다가 벌써부터 거슬리는 문제들도 있다. 만약 중소무역업체와 대기업의 이해가 상충하는 무역현안이

있다면, 무역협회는 어떠한 의견을 채택할 건지? 비록 6만5천여 회원사를 모시는 서비스단체..란 게

공식적인 외피라지만, 정몽구회장이 사회환원한다며 만든 재단위원장에 협회장을 위촉시킬 만큼,

삼성역 무역센터 54층짜리 건물과 코엑스의 번듯한 외양이 중소무역업체들을 왠지모르게 위축시킬만큼,

친재벌과 친기업이란 입장 간의 간극은 만만치 않다. 나아가, 무역협회라지만 수출협회라는 치명적
 
약점. 여태 한국은 수입업체들에 대한 정책적 배려에 소홀해 왔는데, 수입에 대한 막연하지만 뿌리깊은

부정적 이미지 때문일 게다. "무역흑자를 갉아먹는..국부를 유출시키는..신토불이를 나몰라라 하는..

사치스러운.." 등등.


그렇지만 수출만큼 수입도 중요하며, 수입의 질적, 양적인 면에서 뒷받침이 필요하단 인식이

보편화된다면 한국 사회나 기업들이 보다 균형있게 발전할 수 있는 동력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무역협회는 '무역흑자가 지고의 선'이라는 중상주의적인 가치관에 기댄 채

수입업체들로부터의 많은 가능성을 사장시켜 왔다고 생각한다. 사실 대부분의 수입은 가공생산을 위한

원자재란 걸 생각하면, 전략적인 측면에서나 원칙적인 측면에서나, 협회가 수입업체들을 외면하는 건

멍청한 짓이다. 사실 이러한 문제점들은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일반적인 '상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제대로 의미를 싣지도 못한 채 뭉뚱그려진 친재벌과 친기업, 친기업과 친시장 간의

엄연한 차이. 수출입의 질적 측면, 실제 수익성 등에는 소홀한 채 그저 수입을 최대한 묶고 수출을

최대한 이끌어서 국부를 쌓겠다는 단순무식한 중상주의적 사고.


친재벌과 친기업, 친기업과 친시장간의 모호한 경계에 모호하게 발붙이고 선 무역협회는 그러한 상식이

얼마나 무디고 편향적인지 첨예하게 보여주는 셈이다. 중소기업 편인지 대기업 편인지, 김용철 변호사가

개XX인지 삼성이 XX끼인지. 이미 면접 때 김용철 변호사에 대한 입장을 물었고 나름의 답까지 제시해

줬었던 무역협회다. 흑자면 장땡이라는 단순무식한 사고방식이 여전히 횡행하고 있으며 심지어

신중상주의로 부활하고 있다는 건, 70년대 건설업체 사장나부랭이가 'CEO'라는 21세기적 단어가 가진

마력을 빌려 대통령에 덜컥 당선한 마당인지라 이상할 것도 없다.



#3. 창조적인 불만, 냉소에서 출발하는 낙관,..Whatever.

과장스러운 환영사와 일장훈시들은, 결국은 "초심을 잃지 말아라" 혹은 "비싼 밥이니 맛있게 먹어라"

정도로 요약된다. 누구나 초심을 운운하며 새로운 공간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말하지만, 사실 12월 31일과

1월 1일의 차이처럼 문제는 자신의 마음인 거다. 내게 있어, 모든 초심의 초심은 '즐거움'이고..즐겁게

일하고 싶다.

일단은..아직 발령도 안 받은 신입직원 나부랭이로서는, 이렇게 내 새로운 보금자리가 될 곳을 갈구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래놓고 부메랑처럼 돌아올 부담감과 깨어있음의 압박을 기대하고 있다.

내년 이맘때쯤 ver2.0에는 무슨 이야기를 하게 될런지.

"교육은 지금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

 서울 시민들이 '미친교육' 고칠 때다"
[인터뷰] 서울 교육수장 8년, 유인종 전 서울시교육감의 격정토로



 
유인종 전 서울시교육감
ⓒ 유성호
 

'잠 좀 자자, 밥 좀 먹자.'

이런 글귀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5월 2일 청계광장 첫 촛불시위를 시작으로 거리로 뛰어나온 중고등학생들이 있었다. 이들의 요구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바꾸라"는 것이었다. 이런 모습을 긍정적인 눈길로 바라보는 한 원로 교육학자가 있다. 바로 1996년부터 2004년까지 8년간 서울시교육감을 지낸 유인종(76) 건국대 석좌교수다.

"'미친교육'. 얼마나 정확한 표현이냐? 촛불을 든 우리 학생들이 핵심을 찌른 것이다. 거리에 직접 나가보기도 하고 인터넷 생중계를 늦게까지 보면서 학생들을 지켜봤다. 잠도 못 자게 하고 밥도 못 먹게 하는 이명박 정부 교육이 바로 미친교육이 아니냐."

촛불시위의 본거지인 서울시청 시민광장 근처에 있는 한 사무실에서 유 교수와 인터뷰를 시작한 시간은 17일 오전 10시 30분. 이날 서울시교육감 후보 6명은 첫 공식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유 교수는 2004년 민선 3기 교육감 임기를 마칠 때까지 8년 동안 서울교육에 큰 족적을 남겼다. 초등학교 일제고사 폐지, 수행평가 도입, 열린교육, 자립형사립고 설립 반대, 학원 선행학습 반대운동…. 그러나 이같은 그의 교육정책을 놓고 평가가 엇갈렸다. 당시 일부 보수신문들은 유 교수에게 '사이비 평등주의자'란 꼬리표를 붙이기도 했다.

처음으로 실시되는 서울시교육감 직선제를 보는 유 교수의 요즘 심경은 어떨까. 현재 그는 어느 후보 진영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지 않다. 이날 그와 인터뷰는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아래는 유인종 교수와의 일문일답.

"'전교조·반전교조 싸움' 일부러 부추기고 있다"


 
유인종 전 서울시교육감
ⓒ 유성호
 

- 오늘이 시민 직선 서울시교육감 선거운동 첫날이다.

"서울시교육감을 8년 한 사람으로서, 경험적으로 말하겠다. 서울시교육감의 위치는 정말 중요하다. 다른 시도교육청들은 교육부 지침보다도 서울시교육청의 정책 결정을 따라하게 된다.
 
또 청와대 같은 곳으로부터 정치적인 압력을 대단히 많이 받는 자리이기도 하다. 학원 그늘에서 자유로운 위치에 있는 것도 중요하다. 확고한 교육철학을 갖고 의연한 자세를 가진 이가 교육감이 되어야 한다."

- 일부 보수신문들이 이번 선거를 전교조와 반 전교조 싸움이라고 보도하고 있는데….

"일부러 그렇게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전교조한테 맡기면 안 된다고 불안감을 부추기면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승계한 이들이 이길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언론이 '전교조 후보'라는 사람은 전교조 경력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에서 활동한 사람이다. 4년 전 서울시교육감 선거 때도 지금과 똑같이 전교조 불안감을 부추겼다."


- 이번 선거의 쟁점이 뭐라고 보고 있나?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승계할 것이냐, 심판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미친교육'을 바로 잡는 것, 이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교육학자 110명이 '교육정책을 이대로 놔두면 안 된다'는 성명을 내기도 하지 않았나. 교육학자들도 이렇게 나설 정도니 학생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지금과 같은 소수 몇 명을 위한 교육정책이 5년 동안 계속되면 70년대 이전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현 정부가 4월에 학교자율화 계획이란 것을 내놨는데, 자율화란 말만 좋지. 0교시, 일제고사 부활, 사설모의고사 같은 것을 보장해 준 것이 아닌가.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학생들 10명 가운데 4명이나 정신질환이 있었다고 한다. 교육의 핵심이 학생 건강과 공공성을 지켜야 하는 것인데 정반대다. 이런 70년대식 시험몰입·입시몰입교육으로 치닫는 게 '미친교육'이다. 요즘 시험 공부 때문에 학생들 책 읽을 시간도 없다. 세계적 추세와도 역행하는 것이고 국가 장래도 암울하게 만드는 것이다."

"서울교육은 4년 동안 완전히 후퇴했다"

- 사교육비 문제도 심각하다는 소리가 들린다.

"현 정부 들어와서 줄 세우기 교육, 입시몰입교육 때문에 사교육이 번창하고 있다.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사교육을 절반으로 만들겠다는 두 가지 공약에 '정확히' 역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통계청 발표를 보니까 사교육비가 작년에 비해 15.7%나 늘어났다. 최대의 증가폭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약속한 것과 정확히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 전직 교육감으로서 최근 서울시교육청 정책에 대해서 쓴 소리를 해왔는데….

"서울교육은 4년 동안 완전히 후퇴했다. 바로 전에 교육감을 한 사람으로서 속상한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일제고사를 부활하면서 시험 몰입이 이루어지고…. 꼭 이명박씨 같다. 초등학생들을 폐쇄적인 운동장에 몰아넣고 소싸움 시키면서 어른들은 즐기는 모습이다. 이것은 어린이 학대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세만 하면 된다는 출세주의를 교육청이 조장해왔다."

- 서울시교육청은 학력신장만큼은 이뤘다고 자평하고 있다.

"중학교에 갓 입학한 내 손자가 올 3월에 시도일제고사 성적표를 창피하다고 가져오지 않았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다른 사람들은 올백을 맞았는데 나는 1개가 틀려서 그렇게 했다'고 하더라. 국어시험 25문제 가운데 하나 틀리면 360등이 되는데, 이것이 무슨 학력신장에 도움이 되는 것이냐? '학력'이란 말도 그렇다. 잠재능력을 중시하는 교육선진국은 학력이란 말을 쓰지도 않는다. 점수 경쟁이 아니라 학생들의 잠재능력을 개발해줘야 한다는 뜻으로 '교육력(education power)'이란 말을 쓰고 있다."

- 특수목적고와 자율형사립고 확대가 이번 선거의 쟁점이다.

"이명박 정부는 교육정책에서도 경쟁과 효율을 내세운다. 이것은 경제학에서 쓰는 말이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으니 2~3% 엘리트 학생들만 따로 가르치는 학교들을 생각한다. 나머지 98%의 학생들은 무시해도 되나? 장애학생들은 또 어떤가. 이런 엘리트 사고방식에 집중하면 학교가 불행해진다. 서울에 기숙형공립학교가 말이 되나. 자율형사립고도 세운다고 하는데 전국이 입시지옥이 될 것이다.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 1등인 핀란드에서 보듯 평준화·보편교육이 오히려 교육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국제중학교 신설은 정말로 넌센스다."

- 그렇다면 왜 4년 전 교육감 선거에서 공정택 현 서울시교육감을 도와줬나?

"이렇게 후퇴시킬 줄을 몰랐다. 내가 공 교육감 논문 지도교수이기도 했고, 그 때는 대안도 없다고 생각해서…."

"촛불을 든 학생들한테서 미래를 봤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 등록한 후보들. 왼쪽부터 김성동 전 경일대학교총장, 이인규 아름다운학교 운동본부 상임대표,박장옥 전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 교장, 이영만 전 경기고등학교 교장, 주경복 건국대학교 교수, 공정택 전 서울시 교육감. (자료사진)
ⓒ 권우성
서울시 교육감

- 촛불시위 현장에도 나가 봤나?

"일부러 촛불을 든 학생 곁에 서서 지켜보기도 했다. '미친교육'. 얼마나 정확한 표현이냐. 촛불 든 우리 학생들이 핵심을 찌른 것이다. 인터넷 생중계를 늦게까지 보기도 했다. 잠도 못 자게 하고 밥도 못 먹게 하는 이명박 정부 교육이 바로 '미친교육'이다. 이기적인 줄로만 알았던 아이들을 통해 우리나라의 밝은 미래를 봤다."

- '미친교육'이란 말이 좀 지나친 표현이란 지적도 있다.

"어른들은 '미친교육'이란 표현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학생들을 미치게 만든 이명박 교육이 그만큼 문제가 큰 것이다.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고, 그 동안 사회적 합의를 본 대입정책, 초중등 정책을 막 뜯어고치고 있으니. 영어몰입교육과 딱 1년 해 보고 고쳐 버린 수능등급제와 같은 대입제도가 그렇지 않은가? 이런 식이라면 아이들 희생은 정말 커질 것이다."

- 마지막으로 서울시교육감 선거 투표권자인 서울시민에게 한마디 해달라.

"이명박 정부의 교육을 그대로 놔두면 큰 불행과 희생이 온다. 그들은 교육 경쟁력을 강조하지만, 지금 우리교육은 사느냐 죽느냐 기로에 서 있다. 새로 당선된 서울시교육감이 이런 잘못된 교육 물길을 바로 잡아야 한다. 서울 시민들이 미친교육을 고치는 데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한다."

2008.07.18 14:49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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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우연찮게 득템한 '온가족이 함께 보는 만화-6.25전쟁 바로 알리기'. 이미 얼마전 유치원을 포함한
각급학교로 무리하게 배포했던 사건, 그리고 그 내용상의 시대착오적 문제점들로 인해 이슈가 되었던 그 책자가
아닌가. 게다가 이 내용에 대해 비판했던 전교조분들한테 찾아가 백색테러까지 가했던 폭력집단의 책자였던
게다. 정갈한 마음으로 일회독하려 몇번이고 마음을 다잡았지만 헛웃음이 나면서도 웬지 화가 나는..그런
부분들이 있었다.

근데 왜 맨마지막장에는 김연아가 활짝 웃고 있는 것일까. 그녀가 광고하는 '아이시스'에 대해서도 불매운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다, 개인적으로.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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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재향군인회..뭐하는 단체인가? 최근 대체복무제가 원점에서 재검토되도록 압박하는 주된 단체이기도
하고 걸핏하면 인공기-요새는 독도문제로 일장기도-를 불태우는 극우세력아닌가. 촛불시위에 대항해서 맞불
집회를 열어 '광우병괴담 좌파세력 응징하자'는가 하면, '대통령님 힘내세요'라며 전교조와 정의구현사제단,
민노당 등을 친북반미좌파..빨간 칠하는데 앞장서는 집단이다.

근데? 750만 향군회원의 뜻을 모아?? 얘네 정체가 뭘까. 위키에는 이렇게 나와있었다.

"1952년 2월 1일 창설된 후, 1963년 7월 19일 법률 제1207호 대한민국재향군인회법에 의해 법적 법인이 된 단체로, “재향군인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군인정신의 앙양과 군사능력을 증진하여 조국의 독립과 자유의 수호에 공헌”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재향군인회법 제 5조에 의해 모든 군 전역자와 공익근무요원, 그리고 군 면제자까지 자동적으로 재향군인회 회원이 되어, 거의 대부분의 대한민국 성인 남자는 재향군인회 회원이 된다.

재향군인회는 민간단체의 성격을 띠고 있으나 정부로부터 기금이나 국고보조의 형태로 매년 400억원대에 해당하는 예산을 지원받고 있다."

문제가 두가지다. 나도 회원이었다. 제길...탈퇴하고 싶은데. 다음에 청원이라도 해야겠다. 또하나, 명색만
민간단체지 사실상 어용단체, 게다가 재향군인회법 제 3조에 의해 재향군인회는 정치활동이 금지되어 있으나,
보수적인 일부 장성 출신들을 주축으로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노무현 탄핵 찬성' 등 말이 많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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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는 왜 우냐...전교조 선생님들이 저렇게 가르친다고? 제발 사실부터 제대로 하자..니넨 지금 김정일 추종에 눈이
벌겋게 충혈된 허수아비 하나 만들어놓고 그거 때리고 있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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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함 얘기해봐라..과연 뭐가 북한이 남쪽에 비밀리에 조직한 인민해방군의 준동으로 벌어진 사건 두가지인데?
당신들은 지금 촛불집회도, 그이전의 국보법폐지투쟁도, 하다못해 노무현탄핵반대조차도 모두 북한의 지령을
받고서 빨갱이 허수아비들이 수행하는 '숙제'로 보이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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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항쟁과 여순사건을 꼽고 있다..미친다. 정부는 이미 지난 2000년 특별법을 만들어 4·3항쟁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법적으로 완료했다. 여순사건 역시, 점차 외부적 지령에 의해서가 아닌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반대한
자체적인 불만이 도화선으로 작용했다는 설이 유력하다고 알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제주도의 양민들을 학살하란
명령에 불복한 상황, 제주도의 4.3항쟁이 복권되었다면 여순사건 역시 복권되는 것이 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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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불길 속에서 찾아낸 단 하나의 희망! 그건 바로...국토통일이랜다.
역사속에 묻힌 북진통일의 구호를 오늘에 되살리는 이들은 대체 누군가.."지난 10년간 반미, 친북이 유행병처럼
번졌" 으며 "안보의 자화상은 나라가 망할 조짐"이라고 인식하는 이들은 재향군인회, 좀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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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에서의 패배와 핵무기 개발시도가 직결되는 순간이다. 최소한 30년 정도의 시간차와 맥락차를 무시하고
무조건 갖다 붙이는 거다. 우리는 공산당이 싫어요, 왜? 걔들은 뱃속까지 시뻘겋고 항상 남쪽을 벗겨먹으려고만
생각하니까. 라는 식. 그런 식으로 북한이 변함없이 믿을 수 없는 상대라고 아이들한테 가르치고 싶었던 거다.
그 자연스런 귀결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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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북한의 무력도발, 그렇지만 "이 와중에도 우리정부는" 평화를 위해 애쓴다. 우리 정부는 진심이고
한결같이 북한과의 '평화통일'을 위해 노력하는데-여전히 무력통일의 가능성을 버리고 있지는 않단 점은
감춰지고 있지만-항상 북한이 문제랜다. 그리고 계속되는 배신과 피해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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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공항 쓰레기통 얘기는 처음 들었다. 내가 아직도 반공교육이 부족했던가..자성하는 부분이다.ㅋ
그나저나, 어렸을 때보았던 똘이장군, 각시탈 등등 온갖 반공물에서는 멧돼지나 여우, 귀신처럼 그려졌던
김일성이 그래도 사람으로 그려진 건, 비록 눈알없는 도끼눈의 심술궂은 악당이라지만...진보라고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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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돌려 하느라 힘들었겠다. 니들은 김대중과 노무현을 까고 싶었던 게다. 북괴에 '무려 수조원'에 가깝도록
퍼줬으니 얼마나 분통이 터졌을까. 금강산 관광가는 사람들도, 니들이 좋아하는 맹박이 말마따나 '한사람한사람
북한을 도와주려고 가는 것'이니 참 한심해 보였겠다. 포용정책의 경제 측면, 안보 측면의 득실을 따지기란
쉽지 않단 거까지는 인정할 테니, 제발 흑백으로 보는 세상에 그레이 스케일을 도입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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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2차 정상회담은 사실, 적지 않은 성과로 이어질 수 있는 단초들을 많이 품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중
서해를 포함한 NLL관련한 부분이나 경제협력의 확대 등은 상당한 가능성이 있었다고 보이지만, 이명박은
들어서자마자 그 모든 것을 뒤엎어버렸다. 오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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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서는 '왜곡된 역사를 주입시키는 불법 만화', '시대착오적' 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통합민주당
대변인은 기자에게 "정부는 대한민국의 미래인 학생들에게 생명안정권도 지켜주지 못하고 있고 재향군인회는
학생들에게 왜곡된 역사를 주입시켜 정신 건강을 해치고 있다." 고 비판했다. 또한 "서울시 교육청은 사교육
시장의 이익만 보장해주는 설익은 정책으로 국민을 지치게 하는 것도 모자라 역사 왜곡에 맞장구를 치는 꼴. 즉각 불법만화책을 전량 폐기하라." 고 촉구했다.
민주노동당은 논평을 통해 "7,80년대 반공영화 똘이장군을 연상케 한다. 재향군인회의 역사의식은 아직까지 과거
냉전시대적인 반공, 멸공에 머물러 있다." 고 비판했다. 또한 민노당은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잘못된 역사의식과
시대착오적인 역사의식을 주입시키고, '똘이장군' 같은 헛된 꿈을 꾼다면 하루 빨리 꿈 깨길 바란다." 며 즉각
전량 회수하고 폐기 처분할 것을 촉구했다. 아울러 민노당은 "서울시 교육청은 정확히 실태를 파악하고 다시는
이와 같은 허무맹랑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철저히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데일리 서프라이즈)

결국 이들이 생각하는 우리나라는, 그림에 나와있는 대기업 브랜드들로 대변된다고 말한다면 억측일까. 거기에
아래와 같은 영웅 맥아더, 은인 미국이라는 관념을 뼛속깊이 못새겨넣어 안달인 집단이라 한다면. 십분 인정한다
해도, 지금 '실용'을 내세운 친미정책이 어떠한 파국을 몰고 오는지 눈을 뜨고도 보이지 않는가. 당신들의
대한민국이, 시대착오적이거나 정신건강을 해친 인간들로 가득차길 바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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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사진자료에 대한 권리는 재향군인회에...있는 건가요? 그렇다고 치지 모.
혼자 밥먹는 건 생각보다 괜찮은 일이다. 이어폰을 귀에서 탈착할 필요도 없으며, 밥먹는 데에 집중하거나 꼬리를

무는 어떤 생각에 집중하거나 간에 장애가 생기지 않는다. 게다가 밥먹고 나서 걍 바로 자리를 뜨고 자판기 커피

한잔 뽑아먹음 한 끼 해결인데, 마음도 편한데다가 아주 자유로운 느낌마저 든다. 학관 지하에 12시 약간 전에만

가주면, 자리도 널럴해서 왠지 주위에 둘러싸인 사람들에게 압박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 왠지 저사람들은 서로가

무진장 친밀한 따뜻한 나라에 사는 거 같고, 난 왠지 어딘가 그림자가 빠져있거나 심장이 빠져있는 나라에 사는

듯한 감정이 유발되곤 하는 거다, 식탁 가득 사람이 빼곡히 들어차 있으면.



그 중에 혼자 밥먹는 사람도, 혹은 같이 먹더라도 별반 안 유쾌한 사람도 기실 그럴 때엔 나랑 같은 감정을 느낄

게다. 어쩌면, 걍 아무나 혼자 먹고 있는 사람 있음 그 앞이나 옆자리에 앉고서 친한 척하며, 혹은 친해지며

밥먹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지 싶다. 통성명부터 시작해서 과, 나이, 등등 '코스'를 밟아가며 미팅을 시작하는

방법도 있을 게고, 걍 무작정 반찬투정부터 시작하며 공감대를 열어가는 방법도 있을 거고.(여기 밥 절라

맛없잖냐? 개밥이야 개밥..)



가끔 걍 주위를 휘 저어보면 저기 어딘가 혼자 밥먹고 있던 처자나 남정네와 눈이 딱 마주치기도 하는데, 백방

그럴 경우 그녀석도 나처럼 무작정 아무나하고 같이 밥먹어 보까 하는 쓸데없는 객기를 발동시켰을 테다. 그나마

오늘은 자리가 워낙 휑~했어서 내 심리적인 안정 공간을 확보한 채 밥을 먹을 수 있었지만, 사람이 많아져

내 옆앞뒤로 내 공간을 침범한 타인..들이 늘어나면 어쩌면, 숨쉬는 공간을 확보하는 방법은 친한 사람과

밥을 먹거나 밥을 먹으며 친해지는 방법 두가지밖에 없는듯하다. 왜 바둑에서, 단수에 몰린 말이 살기 위해

숨통을 트는 방법은 돌을 하나 이어 숨구멍을 넓히는 거처럼.



글타고 내가 '단수에 몰렸다'거나, 혼자 밥먹는게 불유쾌하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이제 밥먹는 상황에서도

인간관계를 유추해버리고 마는 지극히도 편향적인 이 사고의 흐름을 어쩔 수가 없단 탄식.ㅋ 어쨌거나, 밥을 같이

먹는다는 행위는 결국 내 숨통을 넓혀줘, 아님 내가 따뜻한 남쪽나라에 살고 있다는 걸 믿게 해 줘...라는 말과

등치되는 거다. 따뜻한 피가 쿨럭이며 심장을 후비고 있으며, 내 그림자도 언제나처럼 묵묵히 발치에서 날 내려다

보고 있단 걸 확인시켜 주는 행위, 그게 바야흐로 "같이 밥먹자"란 말이 담고 있는 지극한 의미가 아닌지.



혼자 밥먹을꼬얌~ 하는 퇴짜는, 글타면 그러한 외부의 도움없이도 혼자 숨을 충분히 쉴 수 있거나 (산소호흡기던

부레를 갖췄건 간에) 혼자서도 충분히 따뜻한 남쪽나라란 걸 실감할 수 있어서인가...그 이전의 삶 A가

2년 6개월여의 B를 거치면서 A'로 변질된 거 같긴 한데, 아직 난 A와 A'를 비교하며 ....되는 경향보다는, B와

A'를 비교하며 마냥 좋아라 하는 경향이 더 큰거 같다. A와 A'를 비교함 글쎄........?

자정 쯤에는 한미 FTA가 타결될지 알 수 있을 거라는데, 글쎄요, 시한 안에 협상을 타결짓고 세부적인 조항은

이삼일 동안 더 논의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고, 민변이나 국회의원들의 반발도 가세한 반대 시위는 촛불의

장관을 이루기도 했고. 협상 체결 후 일방적인 파기의 가능성은 아마도 한국에서 더 크지 않을까요. 워낙 국내적

합의가 미진한 상태에서, 꾸준히 여론을 무시한 채 달려간 합의라서요.ㅋ

저는 FTA 내용 자체보다도, 협상을 진척시키면서 전혀 국내 정치적 요소를 고려하지 않는 한국의 외교적

마인드랄까..가 더욱 안타까웠습니다.


다른 분들의 의견은..현실주의적으로 보았을 땐 다소 암담한 그림이 나온다, 그리고 지금 조금씩 국제 레짐이

형성되고 있으니 그에 기반하면 한국도 이기는 게임을 할 수 있다..라는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현실적인 기반이 제공하는 객관적 범위 내에서 의지를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하구요, 국제 레짐은

강대국이 이른바 단기적인 이익을 양보하는 수준 정도에 (아직은) 불과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앞으로도

국제관계를 규율하는 레짐이 그 범위를 계속 넓히리라거나 발전해 나갈 거라는 전망도 너무 낙관적이라고

생각하구요.


윈셋 이론이나, 국제레짐 이론에서 말하는 협상이란 건 다소 자연과학의 실험실과 같은 조건을 요구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경제학에서 말하는 'Ceteris Paribus'와 같은 거지요. "다른 조건이 모두 같다면"이라는

전제 조건이요. 여타 국제 정치적 상황이 안정되어 있고 지금의 협상에 아무런(혹은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가정이겠죠. 문제는, 미국같은 강대국은 판 자체를 새롭게 다시 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겁니다.

냉전 해체 후 단극 질서의 안정성을 의심받던 상황에서 돌발적인, 또한 예견되었던 9.11 테러를 빌미로, 미국은

성공적으로 자국이 확보한 가장 큰 자산의 효용을 갱신해냈습니다. 새로운 집단으로부터의 테러 위협에

대항하겠다는 소위 '테러와의 전쟁'을 의제화하고 '악의 축'국가를 상정하면서 잠시 의문시되었던 무력의

중요성을 복권시킨 것 아닐까요. NMD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고, 신속기동군을 축으로 한 해외주둔 미군의

재배치(GPR)도 그렇구요. 세계적 차원의 반미반전 여론이 일고 있고, 미국 내에서도 반발이 거센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이 탈냉전의 세계에 새로운 적을 규정짓는 데에는 성공한 것 같은데요. 상존하는 위험성,

불안정성을 부각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것은, 미국의 헤게모니와 권력자원을 공고히 하는데 공헌했죠.

요는, 국제 레짐이나 협상이론에서 말하는 공정한 체스판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도록 강대국이 보아 넘기리라

생각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새로운 의제를 던지면서 판 자체를 흔들어 자국에 유리한

국제 환경을 조성하는 것, 실제로 모든 국가들의 생존전략 아닌가요.


물론, 장기적인 이익을 위해 단기적인 손해를 감수할 수 있겠죠. 그런데 이 말 자체가 무엇을 의미할까요? 대체로

단기적인 손해는 소프트한 영역의 레짐에서 일어나는 반면, 보다 장기적인, 근본적인 이익은 전지구적 차원의

병력 배치를 관철한다거나, 에너지 자원의 확보,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군사정치적 헤게모니의 유지, 혹은

(헤게모니란 단어가 거슬리신다면) 국력의 현상유지 아닐까요. 이러한 장/단기적 이익을 구분할 때, 대략 하드/

소프트 폴리틱스의
영역과 중첩되는 것 같거든요. 물론 경제적 분야의 경우처럼 그 자체의 장/단기적 이익이

상충하는 경우도 있겠지만요. 그렇다면 여전히 현실주의적 가정이 살아있는 것 아닐지요. 어느분이 예로 드신 게

이라크전에 대한 미국내 역풍이었던 것 같은데, 거기서 문제되는 장/단기적 이익이 뭔지 잘 이해가 안 되네요.^^;;

미국내 역풍은 결국 미국의 헤게모니와 권력자원(소프트&하드)를 허비시킨 것에 대한 전술적 차원의 반발일

뿐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현실주의의 시각을 차용했을 때, '우리'에게 주어진 여지가 상당히 좁고 답답해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 그치만

그건, 마치 우리 나라의 영토적 사이즈가 작기 때문에 강대국이 되기 힘든 본래적 제약이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거든요. 시장규모, (경제활동)인구, 인재발생 가능성, 자원 등 여러 측면에서

출발선이 다른 걸 인정하듯, '우리'에게 주어진 권력 자원이나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희소한 것이 사실이죠. 머..

그런 '비장한' 현실인식 위에서 전략을 짜는 것이 꼭 '패배주의'와 동일시되어야 한단 법은 없는 것 같은데요.

거기에 역사적인 피해의식과 조바심, 그리고 '우리'를 국가 자신으로 사고하는 다소 국가중심적인 사고방식이

열패감을 조장하는 게 아닐까요.


저는 사실 외교과 학생들이 너무 국가중심적인 사고만 하는 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말해봅니다. 흔히 수업시간에

'우리'라는 단어로 지칭되는 건, 단일자로서의 국가, '대한민국'이죠. 국가에 몰입하는 것이야말로 현실주의적

사고의 가장 큰 폐해일지 모른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라고 흔히 지칭되는 측면에서 망각되기 쉬운 건

국내정치적 문제구요. 국제정치와 국내정치간의 경계가 갈수록 모호해지는 상황에서, '우리'라고 묶여서

호칭되는 국가의 이익을 좀 깨어서 봐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전부다 대한민국의 대표인양 말하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국내정치의 동학과 연계해서 그야말로 '비국가 행위자'의 입지를 강화하고 그에 대한 이론적 성과를

내놓는 것. 그것이 현실주의의 암울한 전망을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지요. 한국이라는 공간 내에 하나의

액터만이 아니라, 여러 개의 액터가 존재할 수 있고, 이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국내정치와 국제정치영역을

넘나들며 작용하고 있다는 것.


게다가, 지금 FTA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보여지는 온갖 오류들은, 결국 국가적인 차원의 경쟁력과 수익을

제고하겠다고 채근하는 과정에서 국내 정치적 요소는 도외시하고 활용하거나 고려할 생각도 안 했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외교정책 담당자들이 너무 국가중심적으로만 사고해왔기 때문은 아닐지요.

외교가 국가의 총수익만 키워놓으면 되는 거라고 생각하던 시기는 지났다고 보는데요.


그래서 사실, 윤영관 선생님이 저한테 그 질문을 하셨다면, 제 답은 아마도..당신이 돈많은 사람이면 한국이 더

편하니 눌러 붙어있고, 돈없고 빽없는 사회적 약자라면 어딜가나 똑같으니 남아라..정도일까요.^^ㆀ

(사실 이민가고 싶음 가는 거지 모. 지가 가겠다는데 왜 말리겠어.ㅋ)


from '국제정치경제' 수업 커뮤니티게시판.

윤영관선생님께서 오늘 학생들에게 물으셨던 질문, '미국으로 이민가려는 사람에게 한국의 가능성을 확신시키고

회유할 수 있는 방법은?'에 대해서 선생님은 복합적 상호의존론에 기반한 해답을 제시하신 것 같습니다. 아울러

강대국 위주로 짜인 현실주의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할 경우 종속이론이나 패배주의에 빠지기 쉽다는 우려도

하셨구요.


그렇지만 저는 선생님의 해답이 다소 의지적이거나 당위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현실주의의 기본전제 세가지, 합리적인 단일 행위자로서의 국가, 이슈간의 위계, 무력 사용의 효율성 등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지금의 국제 정치 현실이 많이 바뀌었고, 때문에 다층적인 장기판을 상정한 복합적

상호의존론이 유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커헤인과 나이가 애초부터 명백히 한 바와 같이, 이는

어디까지나 현실주의의 설명력을 보완하고 이론적인 이상형의 다른 극단을 제시하고자 한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를테면, 현실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의 한 극단이 현실주의라면, 정반대의 한 극단이

상호의존론이라는 식으로요. 현실은 그 중간 어딘가쯤에서 케이스에 따라 적절히 해명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경우, 여전히 군사안보 분야에서 북한이라는 변수가 크게 작용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어느 정도 현실주의에 무게중심이 실린 해석을 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이 역시 사안별로, 이슈 영역에 따라 다르긴 할 테고, 분단 상황의 추이에 따라 변화할 여지가 점차 커지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한국의 경제력이나 문화적 역량으로 군사 안보면의 취약점을 단순히 상쇄한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 같다고 보는데요. 이른바 '코리안 디스카운트'의 문제라거나, 미국 등 주변국과의 외교적 교섭

과정에서 북한 문제가 계속 불거지고 있구요. 동북공정이나 독도 문제, FTA 등에 대한 제약조건으로

군사안보적인 고려가 일정부분 작용하고 있다는 건 여전히 한국에 있어선 이슈간의 위계가 있다는 의미가

아닐지요. '최종심급'에서의 판단이랄 수도 있겠구요. 그래서 저는 한국에서는 여전히 군사안보상의 고려를

우선하는 현실주의적인 판단이 보다 적실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대적 약소국의 입장에서 현실주의의 함의가 패배주의적인 종속을 의미한다 할지라도- 저도 그렇게는 생각지

않지만-아직은 현실주의적 시각이 한국의 입장을 일반적으로 보다 잘 설명한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from '국제정치경제' 수업 커뮤니티게시판.

한미 FTA의 의의에 대해, 진행 방식에 대해, 그리고 성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수업시간에 몇번씩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책이 나왔다는 말씀에 꾹꾹 참았었습니다^^

여러 교수님들의 논문이 묶인 책이고, 미처 한미 FTA가 급물살을 타고 타결되기 전인 작년 11월에 탈고한

책이지만, 윤영관교수님이 어떠한 대답을 하셨을지는 대략 감을 잡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미 FTA는 한국이 '개방형 통상국가'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필요한 하나의 과정이란 사실은 아마 대부분 합의를

할 것 같은데요. 다만 책에서 지적되듯 로드맵도 무시하고 국내정치적인 협상도 건너뛰고 조급하고 임의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측면이 낳는 부작용이 너무 크다고 생각합니다. 애초 동시다발적 FTA전략이란 과감한 전략

자체도 우선순위를 정해서 영향이 적은 소규모경제권부터 시작하기로 했던 것이니까요.


더구나 일단 FTA가 타결되고 나니까,마치 루비콘강을 건넌양 "돌이킬 수 없으니 계속 가자, 국제신용도도 그렇고

외국인투자도 그렇고 지금와서 반대해봐야 죽음뿐이다"라는 식으로 몰고 가는 여론이 우려스럽습니다.

한칠레 FTA도 국내 비준까지는 1년반이나 걸렸는데, 그보다 더욱 파장이 큰 한미 FTA는 한국측, 미국측 모두

비준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장애물과 난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실제로 재협상의 가능성도 조금씩

높아지는 것 같구요. 만약 최종적인 비준에 실패했을 때 한국에 미칠 역풍을 한국정부, 언론 등이 스스로 키우는

건 아닐까요. 초점을 맞춰야 할 건 장기적으로 개방형 통상국가가 되기 위한 비전이지, 졸속처리된 한미 FTA

자체의 가부결이 아닌 것 같은데요.

협상이 좌초한다고 해서 한국 경제가 당장 나락으로 구를 것처럼, 혹은 타결된다고 해서 당장 (깃발들고 말달리며
 
태평양을 건너) 미국시장을 호령할 것처럼 겁주고 어르는 것은, 전혀 한국 내부의 이익조정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한미 FTA에 목매달고 있다고 광고해서 스스로의 협상역량을 부식시키는 일 같습니다. 저는 차라리 지금의

한미 FTA를 원점으로 되돌리고 우리의 로드맵에 따라 '개방형 통상국가'를 추구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때엔 다른 한미 FTA를 협상할 수 있겠지요, 한국 내 여론을 수렴하고

피해상황도 좀더 분석된 후에요.


또하나, 흔히 자유무역의 장애물을 말할 때 반대 이익집단이 보다 집중화, 조직화되기 쉬워서 자유무역이

좌초되기 쉽다고 말하는데, 과연 한국에서도 그러한 일반적인 설명이 그대로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정당이나

합법적 채널이 모두 막힌 상황에서, 그야말로 집회, 시위, 폭력행위같은 강압적 채널만이 허용된 한국의 자유무역

피해집단(농민, 중소기업, 노동자 등)은 이미 그 자체로 여론과 정책집단에 대한 영향력을 일정정도 상실하고

시작하는 것 아닐지요. 찬성집단이 정당과 합법적 채널을 장악하고 유려하게 여론몰이를 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반대집단이 찬성집단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판단은 다소 피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책에서

지적된 대로 한칠레FTA 비준을 세차례나 연기시킨 역량이 있긴 했지만, 이미 판세나 여론은 찬성을 대세로 한

상황이었다고 보는데요. 한미 FTA 역시, 일부 반대 이익집단이 강력했다기보다는 교수들이나 사회단체들이

나서는 등 총론 차원에서 우려가 컸기 때문에 사회적 반발이 컸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교수님이 '21세기 한국의 정치경제모델'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한국사회의 권력 분산이 시급하다는

진단에 비추었을 때 협상과정에서 끊임없이 노출되는 파열음들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앞선 채널의 편재에

대한 얘기는, 여전히 권력이 대기업과 자본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세계화와 개방을

이야기하면서 외려 대기업들은 반독점이나 공정 거래에 대한 국내적 규율을 약화시키기를 요구하고 있구요.

세계화의 진척이 도리어 한국의 권력 분포를 집중시킨다는 것은, 어쩌면 지금의 세계화 자체가 그러한 권력의

집중과 비민주화를 유인하고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좀더 나아간 질문으로는, 한국이 IMF라는 위기를 기회삼아 구조 조정과 권력 분산에 성공했다고 보시는지요??



아..전 왜 요새 언론 모냥새 보면서 계속 OECD가입했을 때의 장밋빛 일색이던 그 모냥새가 생각나죠?-.ㅡ^



from '국제정치경제' 수업 커뮤니티게시판.


세계정치 6 - 6점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 엮음/인간사랑

"끝까지 둔해빠진 새끼들..니들끼리 잘해봐라"였던가? 06년 한국을 강타한 괴물의 오프닝에서 나오는 대사다.

아마도 한강에서 투신 자살을 꾀할 정도로 삶의 극한에 몰렸던 그는, 칙칙한 강물 바닥 아래서 그 무언가를

감지한다.



#1st '둔함'-괴물이 존재하던 말던..

강두(송강호)의 가족은, 아무도 그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세상을 마주한다.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마스크를

공구해서 일괄착용하고, 상상된 '바이러스'를 제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의사는 강두 머리에 구멍을 내고,

경찰은 그들을 잡기 위해 애쓰며, 국과수직원은 연무소독에 여념이 없다.(이로써 그들의 임무는 완수된다)

어쩌면 어이없다 싶을 정도로 강두 딸의 생존 가능성이나 괴물의 존재에 무관심한 사람들.

괴물을 잡으려는 노력은 전적으로 송강호들의 몫이다. 괴물에 대한 사람들의 둔감함이 일부 깨어나는 것은,

자신이 그로 인해 피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때다. 환경'운동권'으로 표현된 사람들이랄까..



#2nd '둔함'-영화 '괴물'의 괴물은 누구?

바이러스의 숙주는, 옐로우 뭐라는 그 축늘어진 돌고래같은 '괴물'이었다. 날것으로 인간을 잡아먹고 뼈를

토해내는 다른 괴물은, 변태적인 기형일지언정 생태피라미드의 한 부분에 살짝 걸쳐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반면, 그 돌고래시체같은 노란 '괴물'이 요동하는 순간 사람들은 귀에서 피를 뿜으며 한강변에 쓰러진다. 물론

강두의 가족은 그 '바이러스 vs 사회'라는 틀을 벗어나 있었고, 개인사적인 원한 관계로 '올챙이 괴물 vs 가족'의

구도를 갖고 있었다. 해서 화염병 석유+불화살+쇠파이프 라는 사상 초유의 무기로 괴물을 해치우는 것이

가능했고 의미도 있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정말 두려워하던 바이러스는, 혹은 바이러스와 같이 생체를

갉아먹는 것은 그 노란 '괴물'이 작동하도록 만드는 시스템이었지만 이는 순수한 형태의 폭력을 행사하는

올챙이 괴물에 가리워져버렸다.

괴물과 송강호들이 조우하기 위해 넘어야 했던 온갖 괴물스러운 작태들, 시스템들. 그 극단의 형태가 바로

노란돌고래였을 수도.



#3rd '둔함'-재생시킨 행복조차 둔해빠진.

엔딩 어디메쯤에서 송강호는 매점 창밖의 기척에도 총을 움켜쥐며 괴물을 경계하지만, 정작 바이러스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그럴듯한 발표를 낭독하던 티비는 무심하고 둔한 발가락으로 꺼버린다. 언제고 한강에 사람을 잡아먹는

올챙이같은 것이 나타나는 순간 작동하기 시작하는 '괴물'. 그 아가리는 눈에 보이지 않고 훨씬 세련되어서

'빠이'프를 쑤셔넣기도 불가능할 텐데도, 송강호는 현상수배됐던 자신의 얼굴이 담긴 '삐라'를 액자에 꼽아넣고

이제 다 되었다고 생각하는 걸까. "끝까지 둔해빠진 색퀴".

따스한 불빛은 그의 조그마한 매점 주위만을 밝힐 뿐, 푸지게 쏟아지는 하얀 눈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온통 어둠에

먹혀 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최초의 발견자가 한강에서 보았던 건, 과연 뭐였을까. 그 검은 그림자는 올챙이 괴물의

그것이었을까.



더하기. 반미영화?

정말, 이제 '반미'는 문화적 상품이자 시대의 트렌드가 되어버렸다. 처음부터 '포름알데히드'라는 단어를

반복학습시키는 영화인지라, 강력한 반미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선전됐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송강호와 함께 괴물에 맞섰던 그 미군은? 바베큐 파티를 함께 하던 미군과 한국군은? 구도는 좀더 명료하게

이해되어야 한다. 미국(과 미국에 복종하는 한국 기득권층) vs 미국에 반대하는 한국(혹은 민중)은 아닌 것 같다.

마치 '살인의 추억'에서 미국의 회신이 결정적으로 한국의 수사 향방을 좌우했듯 미국은 하나의 '상수'같은

건지도 모른다. 그냥 우리가 놓인 환경..이란 정도. 송강호에게 재갈을 물린 건 미국, 미군은 아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애초 기획단계에서부터 이영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으며 기대를 꽤나 했었고, 꽤나 오랜 시간 공을 들이는 것을

보면서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흥미진진했었다. 그렇지만 칸영화제에서 '굉장한 호평을 받았다'는 수다스런

언론의 설레발이 확대재생산되고, 마치 한국영화의 새로운 부흥을 알리는 전기가 될지 계속 침체일로를 걸을지

막중한 역사적 의미까지 띈 영화처럼 부각되면서 차츰 우려스럽기 시작했다.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단

사실만으로 이미 맘속으로 몇 수 접어주고 관대한 갈채를 보냈던 분위기 속에서, 생각보다 별로였다..란 조심스런

얘기조차 돌팔매질당하는 분위기가 또다시 재연될까봐 불편했다.(이미 '디-워'를 둘러싼 이해할 수 없는 논란에서

충분히 증명되었던 데다가, '밀양'같은 '어려운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다는 사실 역시 외국영화제로부터 빌려온

아우라에 힘입은 바 크다고 생각한다.)


이미 스스로도 너무 영화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 것은 아닐까, 이러다간 왠만한 영화를 봐도 좀처럼 만족스럽지

않겠다..란 생각도 하고 있던 터였다. 영화를 보기 전에 이 치솟기만 한 기대치를 어떻게든 낮추고 봐야겠다는

경계심이 들었달까. 개봉 나흘만에 100만에 육박한다는 실로 과열된 신드롬 현상-한국에서 흥행했던 많은

영화들의 첫 궤적-을 따르고 있다는 객관적 사실에 대한 약간의 우려와 스스로에 대한 경계, 그 두가지가
 
아마도 이 '놈,놈,놈'을 보는 나의 준비자세였지 싶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무생각없이 즐길 수 있는 오락영화라고 생각하며, 두시간이 훌쩍 넘는 러닝타임이 그다지

길다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볼거리와 긴장감도 팽팽한 영화인 것 같다. 이런 영화를 볼 때 탄탄한 스토리를

기대하거나 배우들의 연기에 주목하는 편이라면 다소 실망했을 수도 있겠지만, 여름방학을 맞이한 본격적인

오락영화 그자체의 본분에는 매우 충실하다. 그렇게 진지하게 뭔가 잡아내서 이야기하기에도 석연치 않은,

그리고 이 영화가 몇백만이 들만한 영화일지에 대해서도 그다지 평가하기도 그런-재밌으면 보는 거지 뭐..

다만 남들이 보니까 따라보는 게 아니기만을 바랄뿐..아니 실은 그랬대도 별말 하고 싶지는 않다-영화.



최근에 씨네21이었던가, 어느 영화잡지에서 본 거 같은데 김지운 감독이 분명 '마카로니 웨스턴'의 광팬이었을

거라고 평했던 적이 있었다. 착한 놈과 나쁜 놈의 대결이 아니라 나쁜 놈과 더 나쁜 놈의 대결.


* 마카로니웨스턴 [macaroni western],

미국 서부극과 같은 개척정신의 요소는 없고, 주로 멕시코를 무대로 총잡이를 등장시켜 잔혹한 장면을 강렬하게 묘사한 것이 특색이다. 1964년 세르지오 레오네가 《황야의 무법자》를 제작한 이래 미국 서부극을 압도할 기세로 선풍을 일으켰다. 한국에도 1966년 《황야의 무법자》(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가 상영된 이래 여러 편이 수입되어 마카로니 웨스턴 붐을 일으켰다. (네이버 백과사전 中)


그에 더해, CGV 골드클래스 경험담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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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연인에서 나온 CGV골드클래스 장면)

영화 시작 한시간전부터 골드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는데, 골드클래스 상영관에 붙어서 바로 라운지가 있다.

주류를 포함해 약간의 음료와 간식류를 팔고 있으며 조그마한 카페 분위기라고 생각하면 될 듯 하다. 영화 시작전

아늑하게 미리 입장해서 편히 앉아 놀거나 쉴 수 있는 장소.

입장을 하게 되면 좌석은 총 30개, 130도까지 꺽이는 편안하고 커다란 가죽의자가 두개씩 붙어서 있고 커플석당

테이블이 하나씩 놓여있다. 한껏 젖혀서 영화를 보다보면 정말 영화관을 전세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더구나

조조를 봐서 그런지 대략 10명도 안되는-그니까 네 커플도 안되는-사람들이 엉성히 앉아있어서 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다. 사실 영화시작전 한시간동안 라운지에서 무료음료와 보드게임 어쩌구..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건

CGV입장에서도 일종의 수익사업이지 관람객의 편의를 기한다는 느낌이 크지 않고, 영화관의 좌석 배치와

안락한 좌석...그게 골드클래스의 가장 큰 메리트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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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놈 정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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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놈 이병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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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마도 한국영화에서 최초로 시도되었을 열차탈취씬. '서부영화' 혹은 '마카로니 웨스턴'이라는 장르
역시 한국에서 최초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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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상한놈 송강호. 자칫 '가오'만 잔뜩 잡고 엉성해지기 쉬웠을 영화를 끝까지 붙잡고 갈 줄 아는 배우.
그는 정말 살아있다는 느낌이 드는 생생한 캐릭터를 연기해냈다고 생각한다.

#1. 갈피를 잃다.

취직하기 전엔 일단 들어가기만 하면 그 다음에 한숨돌리고 다음 길을 찾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하루하루 그저 녹아내리는 느낌이다. '온세상 호랑이가 모두 녹아내려 버터가 되어버릴만큼.' 얼굴에 '장학퀴즈

출전자나 그럴법한 적당한 영리함과 발랄함'을 잔뜩 둘러친채 오전부터 오후까지 내내 대면해야 하는 사람들.

그것도 모자라 한기수 위 선배들이네 두기수 위 선배들이네, 게다가 노조네 어쩌구까지 이어지는 술자리들.

패턴인양, 저녁식사와 술 그리고 노래방과 3차 술집. '사람', '인간'관계가 중요한 고즈넉하고 고루한 협회라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사람'이 아니라 '동기'란 걸로 묶여버려서, 노래방에선 우르르 앞에 몰려나와 방방 뛰며

손에 물집이 잡히도록 템버린을 흔들어대고-혹은 목에 걸고 온몸을 흔들어대고-선배님들 앞에서 재롱잔치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웃는 척, 즐거운 척 하고 있다.(적어도 난 그렇단 거다. 동기들은 어떻다..라고 묶어서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2. 술이 싫다.

술이 싫다. 정확히 말하자면, 술에 기대어 친한 척 환각에 빠지기도 싫고, 술에 기대어 인간적인 척 충고하고받고

그러는 것도 싫다. 바라건대 두 명, 최대한 네 명 이하의 술자리에서만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같아, 상대와

눈맞추며 열심히 얘기를 섞어보고 싶었다. 내 잘못도 있는지 모른다. 조용히 중간에 묻어있으려던 나는 어느새

'주량이 가장 세고' '말도 많고' '술도 좋아하는' 같은 라벨들이 덕지덕지 붙어버려서, 뺑끼조차 쉽지 않아졌다.


요약하자면, 요새 내가 느끼는 건. 선배들과 그런식으로 소모적인 술자리를 갖고 그다지 원치 않는 알콜을

반강제로 섭취하며, 일말의 죄책감을 가지고 한시간반이나 걸려 막차타고 집에 와야 하는 상황에 지쳐간다는

거다. 응. 신체적으로 힘들면 심리적으로 힘들어지는 법이다. 게다가 내가 이제 어디로 가야할지, 내가 걸어갈

길의 막다른 끄트머리쯤에 몰린 건 아닌지 싶은 불안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책임져야 하는 나이에, 책임질 수

있는 자리를 챙겨들었으니, 엉덩이만 비벼 주저앉는다면 마냥 늘어져 잠들지도 모르겠다.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한없이 무거워지는 발을 질질 게을리 끌면서 어느새 몽롱하고 탁해진 눈빛으로 재테크를 말하고, 부동산을

말하고. 그런 게 싫다는 게 아니라, 눈빛이 탁해지고 흐려진다고 스스로 느끼게 되는 상황이 싫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지, 무엇 혹은 어디를 향하고 싶은지, 지금은 그래서 무얼 하고

있는지. 할 말이 없다.



#3. 고양강아지.

어느날 문득 세상 사람들이 개와 고양이 중 하나로 변신한다면, 난 틀림없이 고양이로 변신할 거라고 생각해왔다.

자존심강하고, 자신 고유의 영역을 고집스럽게 지키며, 누군가에 매이는 걸 아주 싫어하는 그런 사람. 내가

중심이 되어야한다는 자존심은 때로 영악한 이기심으로, 때로 소아적인 소심증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모든 걸

다해줄 듯 배려하는 척하는 립서비스의 이면에는 정작 나 자신의 영역과 자존심을 털끝도 다치지 않으려는

완강한 '거부'의 몸짓이 깃들어 있기도 했던 것 같다. 이는 미리 다칠 걸 두려워한다는 그럴듯한 핑계 이외에도,

감정을 판돈삼아 벌이는 '연애게임'에서 누구에게도 약점을 잡히고 싶지 않다는 다분히 실리적인 계산의

결과이기도 했다. 그런 거..게임이었을 때나 가능한 거였다. 상대의 반응을 예민하게 잡아내며 밀고 당기고를

유희처럼 즐기는 것은. 상대의 자존심을 무장해제하고 숨김없이 감정을 표현하도록 하면 이기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얼마나 유치하고 치졸한 생각이었는지.


이제는 그렇다. 그녀의 자존심이 다치지 않게 감싸주고 싶고, 그녀가 표현하기 전에 내가 먼저 표현해주고 싶고.

나 자신이 그녀에게 열려 있는 만큼 그녀가 훌쩍 다가와서 날 읽어주기를. 내 영역이라 할 것들을 풀어헤쳐 함께

공유할 수 있기를. 그리하여 그녀가 나를 확실히 길들여 우리의 소통을 방해하는 세상의 온갖 노이즈를

조금이라도 극복할 수 있기를.


욕심이 큰 걸까, 때론 우리가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완전한 남..이었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너와 내가 우리라는

단어로 미끈하게 묶이기 위해서는, 피라밋이 바위산으로 변해버린 만큼의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터무니없는 낙관이 좋을 때도 있다.


그러고 보면, 요새 나는 그녀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내가 책임져야 할 것들이란 게 손에 와닿지 않는

이러저러한 것들이 아니라, 그녀 한사람이면 차고 또 넘칠지도 모르겠다..라고 생각한다.

12월 26일부터 29일, 군대놀이 3박4일. 자그마치 포항까지 내려가서 받고 왔다.


항상 경이롭다. '피할 수 없는 고통은 즐겨라'라는 마법의 말은, 사람을 좀체 옴짝달싹 못하게 만든 그 공간에선

너무도 강력하다. 당신들은 이곳에 절대 놀러온게 아니며 '불굴의 투지와 필승의 신념으로 세계최고의 무역진흥

서비스기관을 만들라'고 엄포놓는 빨간모자 교관들이 밉살스러워서, '난 절대 놀러왔으며 우리 재미있게 놀자'고

입소 소감을 밝히긴 했는데 사실 잘 놀았다.ㅋ


다만 문제라면, 개싸움도 편든다는 '우리가 남이가'식의 막가파식 동기애를 자랑하는 해병대 교관, Y/N만을

요구하는 발화라는 것이 얼마나 앙상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던 교관들과의 관계, 대체 왜 해야 하는지-알아서

길어올린 '재미'라는 걸 빼고 나면-알 수 없는 제식훈련/유격훈련/해상IBS훈련. 목소리크고 힘세고 지저분하고

우왁스러워야 하는 그 공간의 남자냄새는 생략하더라도.


물론, 일탈적 상황에서 더욱 진하고 끈끈한 동기애가 나올 수야 있겠지. 조심스레 이것저것 재고 체면치레하는

과정을 생략할 테니깐. 글치만 그렇다고 해서 평소로 복귀해서도 그러한 동기애가 굳건히 유지되며 발휘될

거라는 건 뭔가 논리적인 비약이야. 아님 그러한 인간의 감성 자체가 논리적 비약이거나. 어쨌거나, 이로써

12명의 동기와 연수 시작.

일정이 너무 겹친다. 기껏 서류 합격, 내지 필기 합격해봐야 다른 것들이랑 겹치는 바람에 계속해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수능 잘 풀라고 휴지모양의 아이스크림 케잌이 나왔단 기사를 보고는, 저게 수능생한테 더이상

갈 게 아니라 취업준비하는 아해들한테 가야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토할 것 같은 매경. 친기업적인 논조나 시장편향적인 그런 것들, 다 이해한다고 해도..비문이나 오타 보면

토할 거 같다. 이딴 것도 기사라고 쓰고 있다니, 앞뒤도 없고, 흐름도 없고. 쳇.

그걸 보면서 이것저것 스크랩한답시고 오려놓은 게 한뭉테기가 되었는데, 순간순간 짖쳐오는 회의감. 저게 과연

도움이 될라나.


사실은, 이제야 시작이다. 서류에 붙을까 못붙을까 하루내 두근대며 기다리는 곳이 처음으로 등장하셨고,

여태까지 연습삼아 봤던 면접들이 피가 되고 살이 되야 할 타이밍이 다가오는 중.


이 술이 미처 식기 전에, 단칼에 적장의 목을 따고 돌아와 마시리다.


사실 단칼이 안 된단 게 문제지만. 톱질하듯 설렁설렁, 서류, 상식, 논술, 인적성, 면접, 면접, 그리고 면접. 아마도

신체검사까지..? 마이 아파.ㅡㅡㆀ 변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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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면접에 들어가면, 내가 얼마나 단단한가를 물어본다. 왜 하고 싶고, 무엇을 준비해왔으며, 어떻게 되고 싶은지.

그 세 가지가 핵심이다. 대개 나는, 꼭 하고 싶고, 오랫동안 준비했으며, 이곳에 뼈를 묻고 싶노라는 의지를

전하고자 하지만..그날의 컨디션 따라 스스로의 연기에 대한 만족도가 달라진다. 스스로를 속일 수 있는 정도로

자신이 설정한 이미지에 몰입한 날, 혹은 스스로도 우스울 정도로 자신이 세팅한 이미지가 헐거운 날.


#2.

서류에서 50%의 성공율을 그럭저럭 유지하고 있다. 처음에는 금융권은 흥미없어, 삼X은 안 갈 거야, 그랬는데

글쎄..생각보다 (내가 아는) 괜찮은 직장도 적고, (내가 아는) 직장 자체도 적고. 그러는 와중에 엄마는 '국정X'은

대체 왜 싫은 거냐고 은근히 쪼기 시작하셨고, 직장 다니는 친구녀석 둘은 약속이나 한듯이 새벽녘에 퇴근한다며

전화해선 '공기X' 가랜다. 지금은, 닥치고 닥치는 대로.


#3.

그러고 보면, 이리저리 종횡하고 다닌 경력도 문제다. 인력회사 팀장과 동아일보 인턴기자, 컨설팅펌 RA의

미친X 널뛰는 궤적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 주는 인터뷰어는 없었다. 뭐, 내가 선택한 전장이기도 하니 불만은

없다. 덕분에 대개 예측가능한 범위에서 레쥬메의 검토가 이루어지곤 한다. 다만 방어율은 별개 문제란 거.


#4.

기어코 취직해 내신 모든 선후배 동기들..당신들 정말 무지무지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감탄. 그렇게 대단한

분들이었단 걸 이제사 알아챘다는 게 미안할 따름이니.ㅋㅋ 난 갈수록 '초췌'해지고 있다.

새벽에 눈을 뜨니 집앞 놀이터였다. 얼굴을 모랫바닥에 반쯤 파묻고선, 입안에선 알콜내음 물씬한 모래가 잔뜩

씹혔다. 팔다리를 어떻게 휘청이며 일어섰는지 기억이 없다. 하늘색 니트는 군데군데 얼룩진 갈색으로

변해있었고 바지 역시 토사물이 떡처럼 엉겨있었다. 다시는 엉망으로 술 먹지 않겠다는 약속, 깨뜨릴 때마다 뭔가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엄마는 미친놈, 이랬다.


해가 중천을 지나서야 다시 집에서 같은 상황 반복. 뱃속은 돌로 변한 것처럼 딱딱하게 죽어있었고, 숨결엔

알콜이 실려나왔다. 물 한모금에도 바로 변기를 부여잡아야 했고 누가 옆에서 머리를 망치로 내려치고 있어서

약국으로 향했다. 몇 걸음 걷다가 지쳐서 아파트 계단에 앉아 쉬는데 신물이 넘어왔다. 화단에 숨어들어가

숨넘어가듯 구토. 조금만 힘을 더주면 목으로 내장이 넘쳐 나올 것 같아서 참았지만, 이미 노란색 위액이

질펀하게 낙엽을 부식시키고 있었다. 치아는 말랑해지고, 나는 죽을 듯한 상쾌함을 느꼈다.


저녁에야 겨우 라면 하나 먹고 트림이 나왔다. 점심 때 미친놈 미친놈 이러면서 라면을 끓여줬던 엄마는, 그치만

물 400ml에 북어랑 파랑 다시마까지 넣어줬었다. 덕분에 국물이 바싹 쫄아들어 난 기갈스럽게 숟가락으로 냄비

바닥만 긁다말고 변기로 향했었고. 장이 다시 움직이는 게 느껴진다. 지렁이나 플라나리아가 앞으로 향하기 위해

꿈틀대는 그런 연동운동, 내 장에서도 재개됐다.


머리를 쪼개 두 개의 머리를 갖게 된 플라나리아처럼, 감정도 때로 두 개로 쪼개지는 시험에 들기도 하고, 또 때론

두 개 다 끈질기게 살아남기도 한다. 그래서 한 장면에선 두 사랑이 겹치더라도, 다음 장면은 그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 선택하려는 것이어야 한다. 장이야 연동운동을 제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어딘가로 가고

그러지야 않겠지만, 장이 아닌 바에야 거칠거칠한 모랫바닥이라 해도 아무리 오래 걸린다 해도 1mm라도

움직이는 기색이 있어야 할 거 같은데.


보낸 건 난데, 돌아오길 바라는 것도 나다. 악역을 맡고 싶은 사람은 없어서, 그래서 어디도 향하고 있지 않은

당신의 멘트를 뺏어 내가 대신했지만, 나 역시 악역은 싫었다. 정답이었는지 모르겠다.

돌아오는 일은 없을 거라는 약속을 들었어야 했다.

 07-1학기 도예의 기초

인사동 탐방 및 관람기

졸업하기 전에 꼭 듣고 싶었던 ‘도예의 기초’ 수업을 결국 수강하는데 성공한 1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주위 사람들에게 무엇을 만들어 줄까 주문을 받고 있던 때였다. 가족들이 인사동 근처에서 외식을 한 어느 날, 어머니는 내게 인사동을 둘러보며 어떻게 만들지 안목을 좀 틔우라고 조언해 주셨다. 커다란 접시를 세 장 정도 만들어 오라시던 엄마는 당신의 접시가 제대로 만들어질 수 있을까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셨던 것 같다. 내가 예기치 않게 커다란 자기가 만들어져서 대패로 밀어가며 모양을 다듬고 있다는 얘기를 괜히 했구나 싶은 상황이었다. 한 시간여 둘러보며 사진을 찍어 두었는데, 몇몇 특이한 모양의 컵이 눈에 띄었다. 아무 생각없이 쓰던 컵이 이렇게 다양한 손잡이 모양을 가질 수 있구나, 이렇게도 모양을 잡을 수가 있겠구나, 하는 작지만 스스로 기특한 아이디어들을 얻을 수 있었다. 일상적인 쓰임으로부터 사물들을 해방시킬 때 그 본래적인 의미가 드러난다는 마그리트의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다음 작품을 위한 아이디어를 제법 비축해서 수업에 들어가니, 교수님이 불쑥 내주신 숙제, 인사동 탐방 및 관람기 제출. 이미 한 번 다녀왔지만, 사실은 아주 반가웠다. 컵 말고 다른 도예 작품들도 좀더 살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고, 가족들과 함께 다니느라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못했던 탓도 컸다. 이번에는 갤러리 위주로 여유있게 시간을 두고 다녀보고 싶었고, ‘쌈지길’, ‘가나아트스페이스’와 ‘공예갤러리 나눔’ 등 몇 곳을 축으로 해서 도자기가 보이는 가게마다 들어갔다. 사실상 모든 갤러리와 샵들이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눈치껏 뒤돌아서서 가린다거나, 주인이 한눈 파는 틈을 이용하여 사진을 찍어야 했다. 가끔 정말 사진으로 남겨두고 싶은 작품이 보일 때에는 우선 찍고 보자는 심정으로 후다닥 찍고선 제지하는 주인에게 사과하고 도망나오기도 했다. 굳이 사진을 안 찍고 머리에 담아오거나 스케치를 해오면 될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한없이 변형되는 형태와 윤곽선들을 기억하려 애쓰는 것은 무리란 사실을 금방 깨달았다. 게다가 고등학교 2학년 이후 그림을 그리는 따위의 용도로는 전혀 쓰인 적이 없던 내 오른손으로는, 그 미묘한 뉘앙스와 느낌의 차이를 잡아낼 만큼 섬세한 스케치가 불가능했다.



처음에는 비슷비슷해 보이던 주전자, 찻잔, 술잔 같은 것들이 차츰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단순히 색감이나 질감의 차이만이 아니라, 주둥이를 말아올린 느낌이나 형태잡힌 선의 윤곽을 조금은 더 민감하게 분별해 낼 수 있게 된 것 같다. 특히 차주전자의 복잡하고도 미끈한 형태를 보면서 저걸 어떻게 만들어냈을지 경이로움과 동시에 도전의식을 느끼게 되면서, 조금씩 다른 주둥이나 뚜껑의 형태라거나 손잡이의 처리 방식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마침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차주전자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다양한 사이즈의 독특한 주전자들을 구경하면서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도 해보다가 기어코 팜플렛의 도자기 사진을 촬영했다. 아무리 머릿속에 넣어두고 기억하려고 하거나 무딘 손으로 스케치를 해보아도 그 형태를 허물어뜨리지 않고 떠올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갤러리에서 일하시는 분이 ‘도자기 공부하는 사람이 팜플렛 가격을 아끼면 어떡해? 팜플렛을 촬영하는 사람은 또 처음 봤네’라고 구박하셨지만, 정작 도예의 기초 수업을 들을 뿐인 왕초보가 도예 공부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 비쳐졌다는 사실에 마냥 흡족할 뿐이었다.



여섯 시간 가까이 돌아다니며 인사동을 끝에서 끝까지 다니다보니, 흙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빚어낼 수 있는지, 내가 지금 얼마나 많은 것들을 만들고 싶어졌는지 깨닫고 문득 놀라버렸다. 수업에 처음 들어올 때만 해도 그저 머그컵 한 세트와 화분 정도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굽 모양, 손잡이 모양, 주둥이 모양 하나하나에도 무언가 의미와 느낌을 불어넣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불끈했다. 비록 몸은 다소 지치고 피곤했지만 촬영이 금지된 이 곳에서 백여장의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과 무언가 도자기를 보는 안목이 조금은 올라간 것 같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흙을 가지고 놀기만 해도 정신건강에 좋다는 뉴스가 최근에 보도된 적이 있다. 아닌 게 아니라, 도예 수업을 듣는 네 시간동안 꼼짝도 않고 손끝에 정신을 집중하는 작업이 너무나 매력적이라고 느끼고 있던 터였다. 가끔은 전생에 도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라는 택도 없는 망상이 머릴 스쳤지만 주위 사람들의 야무지고도 센스있는 손끝을 보면 꼭 그런 것같지도 않다는 생각도 교차한다. 인사동에서도 그랬지만, 이제는 무엇이든 보면 저걸 흙으로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먼저 생각하게 된다. 술집에서는 술잔과 술병을 보면서, 음식점에서는 그릇과 접시를 보면서 말이다.



인사동의 어느 갤러리에서 한 도예가가 남긴 글귀가 너무 인상적이어서 적어왔다. 비록 이 정도의 쾌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하기는 건방진 초짜지만, 그래도 흙을 만지면서 이런 비슷한 즐거움을 얻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주전자는 참 재미있다.


꼭지를 만들 때는

젖꼭지를 연상하며

뚜껑을 여닫을 때는 살갗이 닿는 느낌으로,

몸통은 둘이 한데 어울어지는 감각이 일게 만들었다.


절정은 注口를 통해 흐르는 물을 느낄 때이다.


이렇게 보고 만지고 느낀 상상까지 확대할 수 있는

주제는 그리 흔치 않다.

"나는 나의 과거를 싫어하고 다른 누구의 과거도 싫어한다. 나는 체념, 인내, 직업적 영웅주의, 의무적으로 느끼는 아름다운 감정을 혐오한다. 나는 또한 장식미술, 민속학, 광고, 발표하는 목소리, 공기 역학, 보이스카우트, 방충제 냄새, 순간의 사건, 술 취한 사람들도 싫어한다."

2월은 진중권의 마그리트 강연회, 그리고 시립미술관에 가서 마그리트를 만나는 것으로 마무리하기로 확정.


이번달에 언어교육원에서 3월개강프로그램 홍보 포스터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두번이나 했었다. 엊그제에

친한 후배랑 같이 경영대서
301동까지 걸어다니며 200장 가까운 포스터를 붙였는데, 그만 내 실수로 포스터

종이에 그녀석 손을 베어버렸다. 어렸을 때부터
워낙 종이에 손을 많이 베어본지라, 베일 때의 화끈함과 살꺼풀이

쫘악 갈라진 그 선명한 비주얼함, 그리고 그 따꼼따꼼한 느낌같은 것들이 그대로 내게 재현되었다.

어찌나 미안하던지. 문제는,
그리고 나서 학교 곳곳에 우리가 붙인 포스터를 보거나, 그러한 빳빳한 종이로 된

포스터 종류를 볼 때마다 내 손에서 그런 감각이 되살아난다는 것.

종이베임공포증..이랄까. paper-scar phobia.(이런 단어가 있으려나 몰겠다)


시간이 갈수록 심해지더니, 오늘은 어떤 종이를 보던 그 느낌이 생생히 살아난다.

순서도 :

종이를 본다 -> 종이가 칼날처럼 내 손을 가르는 걸 상상한다 -> 화끈한 느낌이 손에서 척추를 타고 올라온다 ->

살이 열린다 -> 빨간피가 스물스물 배어나온다 -> 찌릿찌릿하게 아픈 느낌이 이제야 전해진다 -> 호기심에

상처를 잡고 양쪽으로 벌려본다 -> (휴지로 피를 닦고 나면) 안쪽의 하얀 부위가 보이는데 뼈가 보이는 거라고

내맘대로 생각해버린다 -> 겁먹는다 ->약처바르고 일주일동안 밴드감고 다닌다, 너넨 뼈본적 있냐고 자랑한다

-> 이 상처로 인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한다..가까운 이들이 안타까워하며 울부짖는 모습을 그리며 눈시울이

붉어진다..이상의 사고과정 도합 2초 어간.


흠..빨리 치유해야겠다. 이놈의 종이베임공포증. 일부러 종이 모서리에 슬슬슬 손가락을 비비대고 있다.

공포의 대상과 친숙해지는 것이 효과적일 거라는 나름의 처방.ㅋ

#1. 금주.

오늘 새벽 문득 발동된 금주령. 기자질한답시고 그간 쉼없이 술마시며 돌아다닌 게 많이 맘에 안드셨던 게다.

내 8년간의 생활..대학이나 군대나..에서 술 때매 버린 시간이 대체 얼마나 되냐고, 너처럼 술 많이 먹는 녀석

첨봤단 얘기에 불끈 금주 선언. 결국 금주령이 아니라 자체 금주선언인 셈인가..얼굴이 좀 많이 부어버린 걸로

봐서, 함 쉬어가줄 타이밍이긴 하다.



#2. 인턴.

굳이 정리라고 할 건 아직 모르겠다.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기자에 대한 열정이나 동경없이 들어간 탓일까. 훨씬

강하게 하고 싶은 말들 찍찍 해대고, 부사장이랑도 티격태격하고..고시공부하느라 한쪽으로 잔뜩 휘였던 가지를

반대쪽으로 홀딱 급꺾음하는 시늉인지도 모르겠고, 내 속내를 정련하는 과정인지도 모르겠고. 어쨌거나 부질없이

강성좌파 이미지만 바람이 들어가버렸다. 조만간 펑..할지도.


그렇지만 인턴기자질이 끝나고 났더니 또다시 레테르가 휘발되어 버렸다. 뭔가 손에 쥔듯한 안락감이 날아가

버리고, 태엽조차 미처 다 감기지 않은 어정쩡한 장난감처럼, 비실비실대고 있다. 레닌식으로, "What is To Be

Done?"이라는 호기로운 외침은 이제 이물감이 느껴진다. 그 기반이랄 "What Should I Do?"를 되돌이켜 보고

있다.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은, 즐겁지도 않은 되먹임.



#3. 글.

이미지겜을 이토록 집요하게 줄구장창 했던 적이 처음이라 그럴까. 내 이미지란 거, 그보다 말과 글이란 거,

무기력하기도 하지만 치명적이기도 한 거 같다. 말의 주술력. 난 소설쓰기엔 그다지 관심도 없지만 재능도 없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의 감정을 단도리하기에도 버거운데, 뜬금없이 펄떡이는 글을 써대고 싶지는 않았다. 글은..

아무때고 뱉어질 수는 없는거다.



#4. 사람.

다들 어학연수던, 교환학생이던 다녀온 재원, 재자들.ㅋㅋ 날카로움과 둔중함을 고루 갖추고 있는데다가,

풀어내는 말과 글에 자유로이 악센트, 크레센도, 피아니시모 등을 붙여가며 조이고 풀고, 그렇게 흐름을 통제할

줄 아는 사람들. 사람을 끄는 매력이란 게 이런 거구나, 라고 일깨워준 사람이 있었고, 내게 부족한 것들이 이런

거구나..라고 내 머리를 두드려 주기도 했고. 졸지에 친구들이 잔뜩 늘어버렸다. 멋진 사람들.




#5. 지리산.

용케도 지리산을 향한 마음은 살그머니 간직해두고 있었는데, 정말..가야겠단 생각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거기엔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안다. 단지 거기까지 가는 길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궤적에 우겨넣을 사념과 시간이

필요하단 건 알고 있다. 화욜..가면 목욜쯤 올 수 있겠지 싶다.



..납작하고 까만 작은 돌로 수제비를 뜰 때의 느낌. 어디론가 향하지 않으면 가라앉아 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조바심. 수면을 위태롭게 가로지르는 돌 중 하나, 제일 무겁고 뚱뚱한 거 하나는 '마음'이란 건지도 모르겠다.

뭐, 그냥 맥락없는 잡념이다.ㅋㅋ

사람 두명 덮고잘만한 사이즈의 깃발이 펄럭이는 걸 보면, 더구나 피처럼 붉은색의 붓글씨라면 가슴이 뛴다.

깃발을 볼 때마다 난 가슴이 뛰고, 또 내가 얼마나 비이성적인지 되돌아보게 된다. 1학년 때 곽모군과 표모군이랑,

전경이 겹겹 에워싼 학교를 넘보다가 담을 넘어 기어코 가보았던 국보법 문화제. 그 이후로 엔엘 애들 문화제는

참 오랜만이었다. 마임보단 전투문예가 좋았던 나.


연세대의 교정에는 자주와 민족이라는 단어들이 낙엽처럼 뿌려져 있었지만, 사람들은 발로 툭툭 찰 생각도 없어

보였다. 학교에서 아예 외부인사의 출입을 금하고 나선 분위기 탓도, 노무현의 '무능한 진보'라는 이미지 탓도

아니었다. 그냥, 으레 그런 시위 전야의 분위기. 더군다나 35도가 넘는다는 햇볕아래였으니.


문화제를 보면서 대체 한총련이 좌파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가 들었다. 물론 분단국가인 한국의 지형

아래에선, 통일을 말하는 것 자체가 진보성을 일정하게 담보할 수 있겠지만, '통일과 자주'라는 성긴

그물망으로는 빠지는 것들이 너무 많다. 이미 '지배 진영'의 수사로 포섭되어 버린 '민족 자주'라는 이야기의

한계도 있고. 이미 그들의 유인물에는, "미사일 기술을 원천기술로 해서 남북한 양국이 과학강국으로 발전하자"

라거나, "통일이 되면 북한의 값싼 노동력으로 국가발전에 획기적인 전기가 된다"등의 위험한 이야기들이 버젓이

실려있다. 민족의 딸로 성화된 효순, 미선의 여성성,그리고 부끄러운 민족의 치부라서일까, 거기서 배제되기

십상이던 성매매 여성들의 죽음들은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우리 '민족'처럼 순박하고 착하지 않아서 제국주의적인 모습을 보이는 게 아니다. 피해자로

스스로를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를 정화하고 순결한 양 치장하고 싶은거 같다. 우리나라가 "분단의 족쇄를

끊고, 미제의 얼룩을 깨끗이 씻어내면" 평화와 행복으로 가득찬 세계가 도래한다는 건가. '양키'와 '원숭이'와

'뙤놈'이 우리보다 센게 문제라는 건가. 그물망을 보다 섬세하게 짜보려는 노력 따위 보이지도 않았다.

반미투쟁!이라는 꼬리말이 무색하게, 영어단어들이 무딘 혀끝에서 적잖게 튀어나왔다. 문화제에서 사장과

노동자는 오로지 통일을 위해 어깨를 걸었으며, 통일은 무조건 되야한다는 말에서 공감을 요구했다.


결국, 한총련 혹은 민족자주 진영은...멘탈리티로 뭉쳐있을 뿐인 거 같다. 민족에 대한 센티멘탈리즘과

전통사회에의 향수. 미국을 최종 심급의 거악으로 규정짓는 순간 세상사는 단순해진다. 어찌보면 이미 한총련은

비전이 희미해지고 있다. 통일 이후에..그들은 어떤 비판의식을 유지할 수 있을까. 통일이 마치 세상 끝날인

것처럼 절대적으로 봉헌된 마당에. 노무현을 때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아직도 재고 있다. '민족'과 '자주'는

더이상 비주류가 아니다. 센치한 녀석들.


통일을 말하고, 민족을 운운하는 건, '민족정론'을 자처하는 우파 보수 언론들이 해야 할 거 아닌가. 왜 이땅에선

그런 것들이 빨갱이로 몰려 '좌파'로 매도당하지? 좌우가 상대적인 개념이라면, 대체 우리나라에서 그들을

'좌파'라고 칭하는 진영은 어떻게 스스로를 규정짓고 있는 걸까.



#. 왜 동아일보는 노무현을 '좌파정부'라고 까대냐는 내 질문에 선배기자가 했던 말. 원래 좌우는 상대적인 거야.

치사하고 교활한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좌'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과 불신감을 심어놓은 왼손이 한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한다 이거지.

#. 다 쓰고 나서 봤더니, 난 어쩜 '좌'라는 단어에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다. 센치하게.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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