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눈을 뜨니 집앞 놀이터였다. 얼굴을 모랫바닥에 반쯤 파묻고선, 입안에선 알콜내음 물씬한 모래가 잔뜩

씹혔다. 팔다리를 어떻게 휘청이며 일어섰는지 기억이 없다. 하늘색 니트는 군데군데 얼룩진 갈색으로

변해있었고 바지 역시 토사물이 떡처럼 엉겨있었다. 다시는 엉망으로 술 먹지 않겠다는 약속, 깨뜨릴 때마다 뭔가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엄마는 미친놈, 이랬다.


해가 중천을 지나서야 다시 집에서 같은 상황 반복. 뱃속은 돌로 변한 것처럼 딱딱하게 죽어있었고, 숨결엔

알콜이 실려나왔다. 물 한모금에도 바로 변기를 부여잡아야 했고 누가 옆에서 머리를 망치로 내려치고 있어서

약국으로 향했다. 몇 걸음 걷다가 지쳐서 아파트 계단에 앉아 쉬는데 신물이 넘어왔다. 화단에 숨어들어가

숨넘어가듯 구토. 조금만 힘을 더주면 목으로 내장이 넘쳐 나올 것 같아서 참았지만, 이미 노란색 위액이

질펀하게 낙엽을 부식시키고 있었다. 치아는 말랑해지고, 나는 죽을 듯한 상쾌함을 느꼈다.


저녁에야 겨우 라면 하나 먹고 트림이 나왔다. 점심 때 미친놈 미친놈 이러면서 라면을 끓여줬던 엄마는, 그치만

물 400ml에 북어랑 파랑 다시마까지 넣어줬었다. 덕분에 국물이 바싹 쫄아들어 난 기갈스럽게 숟가락으로 냄비

바닥만 긁다말고 변기로 향했었고. 장이 다시 움직이는 게 느껴진다. 지렁이나 플라나리아가 앞으로 향하기 위해

꿈틀대는 그런 연동운동, 내 장에서도 재개됐다.


머리를 쪼개 두 개의 머리를 갖게 된 플라나리아처럼, 감정도 때로 두 개로 쪼개지는 시험에 들기도 하고, 또 때론

두 개 다 끈질기게 살아남기도 한다. 그래서 한 장면에선 두 사랑이 겹치더라도, 다음 장면은 그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 선택하려는 것이어야 한다. 장이야 연동운동을 제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어딘가로 가고

그러지야 않겠지만, 장이 아닌 바에야 거칠거칠한 모랫바닥이라 해도 아무리 오래 걸린다 해도 1mm라도

움직이는 기색이 있어야 할 거 같은데.


보낸 건 난데, 돌아오길 바라는 것도 나다. 악역을 맡고 싶은 사람은 없어서, 그래서 어디도 향하고 있지 않은

당신의 멘트를 뺏어 내가 대신했지만, 나 역시 악역은 싫었다. 정답이었는지 모르겠다.

돌아오는 일은 없을 거라는 약속을 들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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