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한가한 토요일, 늦잠 좀 자고 동생데릴러 드라이브 좀하고 '시월애' 좀 보고 천호동가서 친구들이랑

양주먹었더니 다가버렸다. 그러고 보니 인턴시작하고 매일 술을 먹었다. 거의 모든 점심, 저녁마다 반주삼아

마신다는 술이 몇병씩으로 늘어났으니. 술자리의 즐거움이 조금씩 소실되며 '술자리'가 '일자리'로 변질되는

느낌이 짙다. 이것도 '음주'로부터의 소외 현상인겐가.


법조팀으로 옮긴 후, 대검찰청에 견학을 다녀왔다. 인천 가월도 어린이들과 함께 둘러본 대검 내부에서, 검사와의

대화시간이 있었다. 푸근한 웃음을 지어보이는 여검사는, 아이들에게 "가장 무서운 형벌"이 무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감옥가는 거요, 오리걸음이요, 토끼뜀이요. 어디선가 사형이요, 라고 머리굵은 대답. 검사는 반가워하며

그렇담 사형이 뭘까, 하고 꼬리를 물었다. 선뜻 대답을 하지못하는 아이들. 이제 검사가 곤혹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사형이란 건, 사람을 죽이..도록 시키는 일. 이란 게 그녀의 늦은 대답이었다. '사형'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다.

이토록 단순한 설명을 쉽게 내뱉지 못하는 건, 토끼뜀을 가장 무서워한다는 아이들에게 도무지 설득할 자신이

없어서였으리라. 어쩌면 사형을 합리화하는 지반이란 게 생각보다 약할지도 모른단 기꺼운 생각.


법조팀가서 처음 마주친 사건은, 최근 대법원과 대검찰청 간에 굵은 갈등선을 그은 '김홍수 브로커관련

조부장판사 건'이었다. 마지막 남은 성역이라 칭해질 만한 중진급 판사, 브로커, 고위직 출신 변호사가 얽힌 수뢰

사건인지라 검찰로서도 쉽지 않았던 듯. 대검 3차장검사와의 언론브리핑에서 칼을 품은 말들이 소득없이

날라다니는 것을 보고, 그날 저녁 조부장판사의 '정치적인' 사표가 수리되고 바로 선배기자와 전화인터뷰하는

것을 옆에서 들었다. 음..결론적으로는, 불쑥 터져나온 법원의 치부를 가능한 이뿌게 봉합하는 방법이었던 것

같다. 판검사간의 갈등도 다시 잠복.


에어콘도 시원찮고 천장만 휑뎅그레한 법원건물은 참 위압적이다. 기자 생활 10년까지는 자신이, 자신의

취재원과 동류인 거라고 착각하고 거들먹거린다고 했다. 이러저러한 '높으신 분'들과 함께 밥을 먹다보니, 그

말이 진짜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난민촌같이 부산스럽고 정신없는 기자실로 돌아가면 조금

정신이 들려나..매일같이 정장을 입고 출근한다는 게 무지 힘들다. 원래 여름엔 나시에 쪼리 하나 찍찍 끌고

다니는게 젤인데..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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