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뉴스에 나온 이명박 인터뷰에 깜짝 놀란 구절이 있었다. 대통령이 된 지금 더이상 국내엔 경쟁자가 없으며,
이제 자신의 경쟁자는 해외의 정치지도자들이라는 이야기. 이들과 경쟁해 대한민국을 선진 일류국가로 만드는데
매진하겠다고 밝혔다는 거다.
얼핏 듣기에는 모든 걸 '오해였다'고 발뺌하는 귀에 익은 그의 레퍼토리만큼이나 진부하고 천박한 그냥 그런
거라고 넘길 수 있었을지 모른다. 이미 대한민국의 경쟁상대는 세계라느니, 기술자, 노동자, 학생 등 국민의
경쟁상대는 외국의 기술자, 노동자, 학생 등이라는 식의 공익광고는 이미 셀 수 없이 쏟아졌던 데다가, 모든
분야에서 경쟁을 통한 공공선의 창출이라는 이데올로기가 편리한 '상식'이 되어버린 상황인 터이다. 그렇지만,
뭔가 날 깜짝 놀라게 만들었고, 그게 대체 어떠한 종류의 불편함이었는지 하루 내내 찝찝한 기분을 되씹고
말았다.
교과서에는 아마 정치를 무엇보다 사회적인 합의를 창출해내고 민생의 안정, 국민의 공공선을 위한 절차와
내용이라고 할 게다. 혹 교과서와 현실이 따로 굴러가는 세상이라 해도, 최소한 한국에서 바라는 정치의 '政'자가
'正'으로 표현될 수 있는 도덕성과 정의를 의미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아무리 경제가
우선이네, 실용주의가 우선이네 보수언론이 까불어대도 그에 더한 도덕적 잣대는 이미 지난 몇년간 크게 상승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인사청문회나 인사 검증의 번번한 파열음은 어느새 높아진 국민/언론의 잣대와 지체된
기존 인물군과 '갑'의 인식간 괴리에서 기인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한 두 부분, 사회적 합의를 통해 공공선을 창출하는 것과 사회 정의와 건전한 '상식'을 수호하는 것이 정치의
본령이라 했을 때 일단 이 부분에는 경쟁의 이미지가 들어서기 힘들어 보인다. 더구나 그 자리가 일국을 감당하고
상징하는 대통령이라는 자리임에야. 그건 정치지도자가 외국과 경쟁할 부분이 아니며, '다스리는(治)' 차원의
것이지 경쟁과 평가를 위한 객관적, 계량적 수치가 크게 대두될 수만은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결국은, 경쟁과 서열매기기를 위해서는 숫자놀음이 필요하다. GDP가 얼마로 늘고, 대운하로 인한 고용유발이
몇만명, 경제효과 몇백억, 한미FTA로 시장이 얼마어치나 늘고, 그 모든 걸 귀결시킨 한국의 국제경제력 순위는
몇 단계 상승했다는 등의 지표. 정치라기보다는 경제, 정부라기보다는 기업에 적합한 마인드..
IMF 이후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를 거쳐왔고, 새삼스레 정치의 본령을 말하고 경제적 이슈-성장과
발전제일주의랄까..-에 경도된 정부를 지적하기는 우스운 일일지도 모르지만, 대통령이 직접 자신의 경쟁상대를
언급하며 결의를 다지는 것은 나름 충격이었다. CEO형 대통령을 자처한 MB에겐, 성과와 수치로 이야기하는
기업의 생리가 너무도 자연스러웠는지 모르지만 내겐 아직 정치라는 게, 그리고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갖는 다른
의미가 더욱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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