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주 월요일에 있을 호주총리 만찬 행사 때문에, 오늘로 연이어 사흘째 '외근'을 다니고 있다. 조선호텔에 가서

호주대사관 측과 이야기도 하고, 호주 본국서 온 경호/의전팀과 사전점검도 하고.

오늘은, 비표 검수를 위해 청와대 경호처에 다녀왔다.


국가 수반 정도의 고위 인사가 방문해서 행사를 가질 때, 참석자의 신원조회를 완료했다는 의미로 발부받는

명찰이 비표랜다. 덕분에 150여명에 이르는 참석자의 주민등록번호와 주소, 영문 이름, 직함, 소속까지 전부

정리하고 추가하고 빼고 고치느라 근 일주일 동안 정신없이 바빴었다.


청와대는 생각보다 넓었고, 생각보다 사람이 바글댔다.

서울시티투어 버스가 나른한 표정의 몇몇 외국인을 태우고 이미 자유로이 청와대 경내를 돌고 있었고,

파란지붕의 맹박이 셋방은 몇개의 튼실해보이는 건물들 뒤로 멀찍이 숨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

삼청동에서 지날 적마다 궁금해하던 그 관공서틱한 입구서부터가 실은 청와대 경내였다는 사실에

저윽이 놀라기도 했고.


땡볕이 내려쬐는 삭막한 아스팔트 도로변에는 사복경찰이 기십여 미터마다 촘촘이 박혀 있었다. 방문차량을 위한

주차장은 이미 만차였고, 아무데나 주차도 불가능했었기 때문에 기자차량을 위한 주차장에서야 겨우 차를 댈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경찰, 전경이나 사복경찰이 아닌 민간인은 전부 어디에 숨은건지, 왠지 서울대가 한없이

관악산을 갉아먹으며 만들어진 휑뎅그레하고 맥없는 공대 건물들이 여름방학을 맞은 느낌이랄까.


북악 안내소였던가..로 불볕을 맞으며 걸어가서 방문신청서를 썼다.

방문 목적 : 호주총리 비표 검수, 방문 기관 : 청와대 경호처, 방문자 성명, 주민등록번호, 소속, 직위 : 대리. 운운.

신청서와 신분증을 맡기고 패찰을 받고 가슴에 달곤, 엑스레이 검색대와 메탈 디텍터를 통과해 청와대의

심장부로 들어서다. 슬쩍 다른 신청자들이 맡긴 신분증을 보니 대부분 정부부처 사람들. 다들 나처럼

허드렛일하러 나온 말단직원이겠거니 생각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청와대 경호처는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어둑하고 후텁지근한, 왠지 후질그레하고 눅눅한 건물을 더욱 싫게

만드는 정부의 에너지 시책에 부응한 거겠지만, 그런 느낌에 대실망.


제작해간 명찰에 청와대 경호처 도장을 190여개 찍는 동안 경호원 한분이 비타500도 아니고 자그마치 비타1000을

대접해 주셨다. 며칠전 부시가 왔을 때 진심으로 죽는줄 알았다는, 그런 하소연을 들으면서 난 묵묵히 열심히

도장을 찍고, 같이 갔던 선배는 붙임성있게 말을 섞고. 여기 나오면 사설 경비업체로 많이 스카웃되시죠, 아니오

그렇지도 않아요, 젊은 사람이나 받아주겠지만 어디 젊은 사람들이 거길 가겠어요, 어쨌든 가족보다 일이 항상

우선이라 사람이 할 짓이 못 되요, 협회는 공채인가요 뭐이런..


흘낏흘낏 본 그분의 가슴과 어깨, 그리고 허벅지는 역시나 솔찮이 튼실한 게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지원나온

경호원들과는 풍기는 포스나 냄새가 달랐다. 뭔가 엄청 억세고 딱딱한 걸 천 조각 아래 움켜놓고 있다는 느낌.

조선호텔에서 한국측 경호 실무팀하고 만나 동선을 확인할 때에도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그리고 우린 아마 청와대 경호처 건물엔 발칸포나 탱크같은 대형 화기가 숨겨져 있지 않을까, 이런 얘기를 하면서

몰래 건물 뒤켠 그늘에 숨어 각자 가슴에 차고 있던 패찰을 카메라폰으로 찍느라 잠시 부산스러웠다는.

사실 나는 경호처 건물도 좀 찍고 몇장 사진을 찍어두고 싶었던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선배 앞에서 왠지 그렇게

촐싹대는 건 대범치 못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언젠가 청와대 내부에서 사진찍으면 아예 폰카 내부의 사진을

전부 지워버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서 꾹 참고 있었던 거다.


나오면서 패찰을 돌려줄 때, 휴대폰에 실드는 안붙였었나요? 라고 물었던 걸로 보아, 그리고 그 옆에 유리창닦는

그 칙칙이 세정제가 놓여있던 걸로 보아, 아마 좀더 '중심부'에 가깝게 접근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휴대폰 카메라

렌즈에 스티커를 붙이는 게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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