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이 하 수상하여 호주총리의 공식실무방문에 대한 경호문제가 상당히 빡빡하다.

느닷없는 부시의 방문으로 가뜩이나 정신없어진 청와대 경호팀이지만, 어찌됐건 난 예정대로 금욜쯤에는

청와대로 진격해서 이명박을 해치우고...라기보다는 신원조회절차를 마친 사람들의 비표를 가져와야 한다.


오늘까지는 만찬 참석예정자들의 명단을 완료하고, 호주대사관과 예상참가인원을 검토, 웨스틴조선호텔측과

행사장 세팅에 대해 논의를 마쳐야 했다. 참석희망자들의 주민번호와 주소, 영문이름과 직함까지 포함된

인적사항을 받아야 했는데 호주대사관은 마냥 '높은 사람들'을 초청하고 싶은 게다. 헤드테이블에 앉혀서 지네

총리 체면을 세우고 싶었겠지. 외교부장관, 지경부장관, 국토해양부 장관, 통상교섭본부장, 이회창, 박근혜,

정세균 민주당 대표,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 박진 국회의원 등에 이르기까지..온갖 곳을 다 찔러놓더니

기어이 오늘 터진 거다.


시작은 한나라당 국회의원 1인. 비서라는 사람이 전화가 와서는, 내가 발송한 공문에는 8월 1일이 신청 마감이라

명시되어 있었음에도, 지가 모시는 사람한테 그런게 어딨느냐, 신원조회 절차도 필요없다, 라고 생떼를 쓰는

거다. 그것도 확실히 참석하겠다는 게 아니라 갈지 안갈지 모르지만 단지 한 자리를 마련해 놓으라는 강짜.

거만하고 느릿한 비서의 말투에 짜증이 버럭 나서 꺼져...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안되겠다고 단호히

끊어버렸다. 다소 어이없어 하는 반응이었지만, 나몰라라 하고 뚝 끊었다. 뭐랄까, 한나라당에 잘 보일 일 따위

없다..란 생각과 동시에, 비서가 내 이름 알아봐야 대체 뭘 어쩌겠어..란 얄팍한 산술이 뒤엉켰달까.


뒤이은 또다른 한나라당 국회의원 1인. 신나겠지 한나라당. 맹박이가 그리 망쳐놔도 공정택 너끈히 당선되는

이 지랄맞은 상황이니 더욱. 아까 그사람보다는 최소한의 상식과 예의는 갖춘 비서였다. 하기야 그는 한-아랍

소사이어티 창립총회를 비롯, 우리쪽 행사에 자주 출몰했던 사람이기도 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조금 봐줘서,

지금 당장 참석 여부를 확인해오면 넣어보겠다고 한 발 빼줬다.



이른바 갑-을의 관계, 거기에서 파생하는 기분더러움과 망나니틱한 막무가내식의 행태들은, 어쩌면 그 물고

물리는 위계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폭력성과 '노동하는 인간'의 고됨이 표출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먹고 살기 위해, 죽지 못해 일을 하며 쌓여가는 스트레스와 짜증스러운 순간들, 응어리들은 언제든지

약한 곳을 타격하며 터져나가기 십상이다. 예컨대 나보다 약자의 입장에서 전화를 걸어오거나 아쉬운 소리를 할

법한 상대는 언제고 쉽게, 스트레스 해소나 짜증을 분출을 위한 샌드백이 되버리는...


그 스트레스들을 갑-을 놀이의 부산물이라고 하면서 슈퍼갑이 되고 싶어, 라거나 을의 위치에 처한 본인의 상황을

씁쓸해하지만 사실 그 사슬엔 어디에도 정점이 없는데다가, 누군가의 갑은 항상 누군가의 을인 게다. 결국

문제는, 이렇게 덥고 이렇게 짱나는 세상에 닥치고 일만 꾸역꾸역 해야 한다는 거 아닐까 싶다. 회사원이 된다는

것, 낯설게 보면 한없이 낯설어지고 다소 어이없어지기까지 하는 시츄에이션. 개인적인 견지에서야 도닦는셈

치고 '노동하는 인간'의 고됨, 그리고 그로 인한 날카로움과 짜증을 약자에게 전가하며 해소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삶을 추구할 수 있다지만, 애초 그러한 열악한 상황에 빠뜨린 사회와 근대적 시스템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어야

하고 어떤 식으로던 제고되어야 하지 않을까.


나름 아직까지는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하려고 애쓰고 있다. 호주대사관의 참사관 하나가 어이없이

짜증내며 전화하길래 같이 버럭해주고 나서는, 목소리를 가다듬을 새도 없이 받은 지방중소업체의 전화에

나긋하게 응대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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