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감벤의 호모사케르를 다 봤는데 우울하네..거대한 수용소에 배제된 채 포섭된 벌거벗은 직딩이야."

- 힘내라 쉽지않지 뭐..

"얘는 근대국가서 숨쉬는 생명 자체가 trapped된 거라고 말하는데 어째야 할지는 모르겠단 거 같네.."

- 그게 사실이래도 나가죽을순 없잖냐ㅎ

"짐 이런 책 읽어 모에 쓰나 싶기도 하고ㅋㅋ 뜬금없어 보이기도 하고"

- ㅋ적당히 생각하고 살기도 쉽지 않은데 대단하네

"하도 멍청한데 요새 더 멍청해져서ㅋ 지극히 자족적이고 개인적인 이유랄까."


어제 퇴근하고 오는 길에 드디어 '호모 사케르'를 다 보았다. 저번달 말부터 읽기 시작하면서 주로 출퇴근 길에

짬짬이 읽다가, 휴가 기간 끼고 전철 안에서 자고 하다 보니 근 삼 주넘게 걸린 듯 하다.

뭐랄까, 마지막까지 읽고 나서 잠시 생각을 정리하려다 보니 막막하기도 하고, 아직 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느낌이 치받아서 친한 선배와 문자를 주고 받았다. 고작 한 번, 그것도 띄엄띄엄 끊겨가며 읽었지만 이 책은 뭘

말하고 있는 걸까..그리고 스스로 느끼는 감정이 뭘까 정리되길 바라며.


가장 눈에 띄는 건 배제는 곧 포섭이라는 일견 역설적인 아감벤의 지적이다. 구조로부터 배제됨으로써 곧

그 구조 자체에 포섭된다는 이야기는 그렇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매우 통찰력있는 지적이다.

고국의 정치 현실로부터 떠밀려난 망명자, 혹은 비적떼나 해적과 같은 경계지의 범죄자가 누구보다

그 정치적 상황에 민감하다는 사실, 아감벤이 지적한 대로 나치 하의 독일에서 금별 유대인과 검은별

집시 등이 있어 시민권과 생명을 박탈당함으로써 곧 그 구조 자체에 '배제자'로서 포섭되는 걸 보면 그렇다.

아, '예외'라는 라틴어의 어원상의 의미 자체가 '외부에 포함되다'라는 지적도 의미심장하다.


근대국가와 그 주권자는 누군가를 배제시킴으로써 포섭하고, 포섭함으로써 배제한다. 그러한 끊임없는

경계-지음은 사회의 존속에, 국가가 의도하는 시스템의 존속에 불가결한 요소였다. 자유주의적 정체든

사회주의적 정체든 '인민(people)'이란 단어가 갖는 수많은 균열선의 흔적이 그 강력한 증거 중 하나라고 하며,
 
그 점에서 사회주의나 자유주의의 정치적 상상력이 갖는 한계를 시사한다.


정치라는 것 자체가 희소한 자원인 권력을 불균등하게 나누는 행위라고 한다면, 그러한 경계(그게 계층이던

계급이던 혹은 다른 무언가던간에..) 자체는 유사 이래 지속되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나치와 현실사회주의 국가가 보여주었던, 혹은 푸코가 이미 지적했던 '경찰국가, 혹은 근대 행정의

탄생' 이래 인간의 몸에 대한 정치적 지배가 심화되는 현상이다. 아감벤은 아렌트와 푸코의 문제의식을

이어받으면서도 인간의 생명 자체가 정치화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근대 국가 혹은 주권 권력이 인간의

생명을 직접 관리하고 통제함으로써, "지난 수천년동안 인간은 생명을 지닌 동물이면서 덤으로 정치적 삶을

누릴 능력까지 갖고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 속에 머물러" 있었던 것과는 달리, "근대의 인간은

생명 자체가 정치에 의해 문제시되는 동물"로 바뀌었다.("~"는 푸코, "앎에의 의지" 중)


아감벤이 주목하는 건 나치 하의 수용소가 근거하고 있는 법적, 철학적 기반이다. 흔히 사람들은-그리고 아마

유대계 네트워크의 강력한 활동에 의해 추동된 사람들은-나치 하 유대인들이 겪었던 수용소 생활이라거나

비인간적으로 다뤄졌던 온갖 사례들에 분노하며, 그 '비정상성'과 '비인간성'에 탄식한다. 그렇지만 그에 따르면

나치 하에서 이루어진 수용소, 생체실험 등은 비단 전체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전체주의와

민주주의를 막론하고 생명 자체가 정치의 담보물이 되는 근대국가, 주권권력에 있다는 거다. 사실 이런 식으로

전체주의와 민주주의 간의 유사성을 강조하는 책들은 꽤나 나오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아감벤은 그런

차원에서 한 걸음 더 근본적으로 들어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배제가 곧 포섭이라면, 이른바 푸코-그리고 아감벤-의 '생명정치'는 곧 '죽음의 정치'와 같다.

뇌사, 안락사의 문제에서 보이듯 일부 과학기술의 발달에서 기인한 생과 사의 경계 획정문제자체가 정치화되어

주권국가와 그의 법에 좌지우지되는 생명의 개념, 복지국가의 아이디어에서 보이는 것처럼 인간(국민)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지고 그 생명의 생산성과 건전성을 확보하겠다는 이제는 너무도 익숙해진-그치만 한국에선 여전히

낯설기만 한-오랜 추세, 국적을 벗어던지는 순간 인간으로서 아무런 존재증명이 불가능해지고 마는 불가사의한

난민의 지위, 나치뿐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라는 미국, 영국 등에서도 쉼없이 행해졌던 재소자 및 사형수들을

대상으로 한 생체실험(인간 모르모트). 그리고 아마 근대 이전과 달리 은밀하고 구조적으로 행해지는

사형제도 역시 그러한 생명정치, 곧 죽음의 정치가 만연한 하나의 징후가 아닐까 싶다.


그런 그림이다. 나면서부터 특정국가에 소속되어 생명을 담보잡히고, 그에 따른 정치적 권리와 의무를 부여받는

대신 언제든 내 생명을 쥐고 흔들 수 있는 주권 권력. 만약 그걸 거부한다면 '벌거벗은 생명'이 되어 사회적

생명뿐 아니라 신체적 생명까지 보호 내지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에 빠지는. 그런 상황에서, 나치 혹은 그와

유사한 국가권력이 언제든 '생명(국민)'의 정치적 헌신과 복종을 요구하는 경우 배제된 채 포섭된 유대인, 집시

혹은 타자화된 다른 누구라도 멸절시킬 수 있다는 거다. 그 모든 건 이미 거대한 수용소처럼 짜여진 국가 내에서

이루어지는 일. 생명을 보다 공고히 지배하고 장악하려고 혈안인 주권 권력.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는 뭐 여러가지로 빗대어 볼 수 있겠지만 가장 선명하게 나타났던 건 역시 최근의

쇠고기 사태에서 드러나는 것 아닐까 싶다. 이미 익숙해져버린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라는 문구가 관용구화되었단

사실 자체가 국민 생명의 소유권이 어디로 넘어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미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는 말이 무색치 않을 정도로 심각해진 '비정규'라는 예외의 문제라거나, 황우석 사태로 불거졌던 인간배아의

존엄 문제..등 다양한 영역에서 한국의 주권 권력은 생명을 쥐고 흔들려고 한다.


...그밖에, 내가 느끼는 감정은...그런 거였다. 예컨대 유모차 부대로 촛불시위에 나섰던 사람들이 경찰에 소환되고

조사를 받는 상황에서 이를 찬성하는 사람, 그리고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런 논쟁의 틀을 마치 체스판

위에서 양편의 말을 내려보듯 분석하며 보다 큰, 근본적인 이야기를 던지는 게 아감벤이다. 경찰조사가 옳다고

말하는 사람이 법치를 내세우고, 반대하는 사람이 법의 횡포를 말한다 쳤을 때 아감벤의 이야기는 아마도 국민의

저항권 내지는 근본적으로 법을 지켜야 하는 이유에 대한 성찰쯤 될 수 있단 얘기. 너무 멀다.


대학교 다닐 때와 달라진 거라면 좀더 사고가 현실적이고 땅바닥에 붙어버렸다는 사실이지 싶다. 그때라고 뭐 이런

이야기들이 딱히 구체적인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와닿았겠냐만은, 최소한 그때는 지금만큼 몸이 무겁지는 않았고

마음도 무겁지는 않았다. 책을 보면서는 어떤 부담이나 이질감없이 그 사유체계를 내맘대로 유영할 만한 여유가

있고, 가능성이란 게 있었던 거 같은데..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신할 수 없이

그저 한번 읽었을 뿐인 책에다가 화풀이하듯 손에 잡히는 이야기를 해라, 대안을 내놓아라, 이렇게 딴지를

걸고 있다.

호모 사케르 - 8점
조르조 아감벤 지음, 박진우 옮김/새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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