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기억이 차곡차곡 쟁여지고, 그러한 기억들이 계속해서 누적되면서 '나'를 이루는 걸 거라고
생각했었다. 비록 가끔은 손실되기도 하고, 적당한 모습으로 재구성되기도 하겠지만, 대체로 내가 문득 의식을
감지한 유년의 어느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기억들, 살면서 쌓아온 느낌, 경험, 그런 것들이 무한히 축적될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그러한 내가 가진 기억들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가진 기억들이 '나' 자신을 구성하는 거라면,
그렇게 쌓여가는 경험치를 통해서 조금씩 맘에 드는 모습으로 다듬어갈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수도 없고 쉽지도
않겠지만 '발전'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었다. 이놈들을 끌어안고 나아가면 성숙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런데 아니다. 사람이란 게, 한없이 넓어지고 깊어질 수 있는, 끝없이 무언가를 쟁여넣고 손실을 최소화하며
보관할 수 있는 지퍼달린 크린백이 아니었다. 우연찮게 소거되거나 무의식적으로 재구성되는 기억의 소실만이
아니라, 어느 시점...문득 본격적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기억들, 자신의 살점들,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나 자신이라고 믿고 있던 이미지들, 관념들, 기억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던 경험들, 아니면 관계들..조금씩
밀려나고 후퇴하고 있다고 설핏 느끼고 있던 오래된 살점들이 먼지가 되고 어느 순간 콸콸 소리를 내며 내 몸을
투과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시간이 흘러가고 기억이 더해지고, 더이상 빈 공간을 찾을 수 없으니 이전의
것들을, 지금의 내게서 멀어져버린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거다. 상실해야 한다는 거다.
물론, 그 자리에는 새로운 기억들과 새로운 관계들, 그리고 새로운 감정들이 다시 채워진다. 예전에 알고 있던
나와는 약간 다른 모습, 그리고 약간 다른 체취를 가지고, 자신을 구성하는 새로운 요소들로 '나'를 소개하기
시작한다. 이제 된 건가. 나비가 허물을 벗듯 몸에 안맞고 시간에 지체되었던 기왕의 자신을 변화시켰으니
된건가.
아니. 문제는, 이제 알아버렸단 거다. 사람은 (적어도 나는) 버린단 행위에 절대 익숙치가 않고 버려야 할 거라는
생각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전의 껍데기와 사고들, 나 자신을 구성하던 온갖 층위의 관계와 기억들은 마치
초딩 때의 일기장처럼 어딘가에 계속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단 사실이 깨어져 나갔다. 게다가, 그
당혹스러운 '상실의 의무'에 더하여, 처음 몸을 찢고 기억이 버려질 때 생긴 상처는 아물때쯤 해서 다시금
몇번이고 다시 파열되고 마는 마법같은 행사가 된다는 거다. 이제 평생 계속해서 리싸이클링될 '나'란 존재의
쓰레기 배출구가 되어..일정량 이상의 시간이 모이고 그사이 침잠해버린 이전의 나 자신을 버리고 감정과 관계를
버리고, 더이상 내가 아니게 된다. 상실은 예외가 아니라 일상이 되어버린다. 그걸 알아버렸다.
그렇다면, 목까지 음식을 채워넣은 듯한 불편함 속에서 생각한다.
허무하다. 대체 난 뭐란 말이냐. 비록 지금 이런저런 것들로 '나'를 감지하고, 내살점이라 느끼고, 이게 나다..라고
느끼고 있지만. 어느 순간 고름처럼 시간이 고이고, 시간과 더불어 계속해서 알게 모르게 씻겨나가고 있음을 불쑥
의식하게 된다. 페이지가 정해져 있는 일기장은 연필로 써야 한다.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내고 지우개똥이
수북해지면 다시 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사실 볼펜 따위도 주어지지 않았다. 튼튼한 동아줄이 내려와
죽을 때까지 쥐고 싶은 마음으로 영원한 것, 기댐직한 것을 찾지만, 고작해야 눌러 쓴 연필의 자국이 남을 뿐이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기내 방송에서 문득 '노르웨이의 숲'정도를 듣게 되면 가슴이 아파온다. 그뿐이다.
산다는 게 상실해가는 거란 사실을 몰랐었던 것, 상실이란 게 존재의 의미..소위 '레종 데트르'라는 아이러니를
받아들일 준비도, 의지도 없었다는 것, 그리고 대략 스물에서 서른, 광석이형같으면 서른셋, 기억이 꽉 차오르고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시점이 지난후 그 안쓰러운 감각에 좀처럼 익숙해질 수 없었다는 것. 새롭게 대체되는
자신의 기억, 자신의 살점,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미리 그 상실을 예견한 채 압도당해 버리는 것. 그게 시간을
중간에 끊어버리고 자신의 소모를 막아버리곤 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상실감의 원천인 거 같다. 견딜 수 없어져
버린 게다. 비어져 가고, 잊혀져 간다는 그 느낌을.
사실 그러한 상실감을 껴안고 살아가려면 세가지 정도, 선택지가 있다. 무언가 영원한 존재를 찾아 몸을 의탁하고
정신을 맡기는 것. 신이 되었건 구도가 되었건..인간으로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을 영원성이라는 개념을 빌려오는
것. 아니면 상실감에 익숙해지고 그러려니...무뎌져 버리는 것. 원래 그런 거야, 시간이 약인거야..라는 말이 바로
그런 거다. 살아남기위한 전략으로서의 상실. 상실의 의무에 충실한 삶을 살아라 아버지는 말씀하셨지, 그런거.
그것도 아니라면, 글쎄...피칠갑을 한 영혼으로 꿋꿋이 살아가는 거다. 아프고, 절그럭거리고, 공허하고, 옆구리
어귀에서 콸콸대며 무언가 쏟아져나가버리는 느낌을 선연히 간직한 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막되먹은
깡다구로 살아보는 거다. 적어도...잎새 하나 띄운 물잔 건넬 사람은 만날 수 있을 게다. 내가 잊었어도
날 기억시켜 줄 친구는 있을 게다. 날 나이게 하는 것들..조금은 더 지탱시켜 줄 안정감과 안온함으로 위로삼을 수
있을지 모른다.
비록 일상적인 상실이 주는 피폐함과 무의미함을 이길 수야 없을지언정.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데야..
그랬던 거 같다. '재미없다'는 말을 연발하는 친구녀석이나..뭔가 지쳐 보이는 사람들, 힘들고 우울하고 불안정해
보이는..나 역시. 의식했건 못했건, 환상이나 동화처럼 느껴지는 어릴 적과는 달라진 무언가가 있음을, 감지해
버린 거 같다. 한번 변하면,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거다. 돌이킬 수 없는.
서른 즈음에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작기만한 내 기억속에 무얼 채워 살고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 보낸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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