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톰을 벗어나 소위 '그랜드 투어 코스'를 자전거로 돌아 보기로 했다. 네모반듯한 앙코르 톰의 동쪽에는

'승리의 문'과 '동문'이 있는데 그쪽으로 나가면 '스몰 투어 코스'로 작은 원을 그리며 앙코르왓으로 돌아오게

되고, 북쪽의 '북문'으로 나가면 '그랜드 투어 코스'로 좀더 많이 큰 원을 그리며 한나절 코스가 되는 거다.

사실 한나절 코스니, 반나절 코스니 미리 재단하는 건 좀 웃기는 일이다. 가서 맘에 드는 곳이 있으면 몇시간이

지나가던 앉아서 쉬고, 책도 보고 낮잠도 자고 그럴 수 있는 건데 말이다. 여행을 떠나서 아침에 대략적인

스케줄만 스케치하듯 잡고서는 나머지 디테일은 그때그때 내키는대로 채우는 게 그래서 좋은 거 같다.

북문에도 여지없이 눈똑바로 뜨고 앙코르 톰을, 씨엠립을, 캄보디아를 지키는 '크메르의 미소'. 네모나게 각진

얼굴에 저런 은근한 미소를 물려주지 않았다면 꽤나 무섭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이곳에도 역시 깊고 넓게 파인 해자를 건너기 위한 다리가 있고, 다리 위에는 거대한 뱀의 몸뚱아리를 줄 삼아

잡아당기고 있는 신들이 있다. 감사해요, 덕분에 다리 밑으로 떨어지지도 않겠군요.

쁘레아칸(Preah Khan)으로 가는 길 중간, 느닷없이 마주친 한무리의 아이들. 축축 늘어져있는 가지에 매달려

그네처럼 좌우로 거침없이 흔들기도 하고, 해먹인 양 편히 기대어 쉬기도 하고, 쪼꼬마한 아이들도 나무를 꼭

쥐고서 놀고 있는 게 꼭 열매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요즘에도 가끔 나타나 화제가 되고 하는 '정글 인간', 십수년씩 혼자 정글에서 동물들과 생활했다는 그들이나

정글북에 나오는 모글리같은 아이들이 저렇게 지내던 게 아닐까. 정글 깊숙이 우거진 나무들에 기대어 쉬고,

놀고, 잠들고. 저렇게 많은 아이들을 품어 주고 버텨주는 나무가 듬직하다.

앙코르 왓 내부에는 화장실이 드물다. 몇 킬로미터씩 가야 띄엄띄엄 있는 수준인데, 가끔은 입장객임에도

불구하고 돈을 받는 유료 화장실도 있다. 자전거를 격하게 달린지라 장 활동이 활발해졌는지, 화장실의

위치 추적에 예민해졌던 그 때, 문득 눈앞에 나타났던 '한국-캄보디아 우호의 숲'이라고 읽히는 낯익은 글자.


의전 원칙에 따라 자국 국기를 왼쪽으로, 외국 국기-여기선 태극기-를 오른쪽으로. 자국어인 캄보디아어로

먼저 소개를 했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보질 못하겠고, 한글로는 한국이 먼저 나와 '한국-캄보디아', 그다음

병기된 영어로는 'Cambodia-Korea'로 자국이 먼저 나오고. 나무랄 데 없는 배치다.

우호의 숲 속에 자리잡고 있는 화장실. 타고 다니던 자전거를 세워두고 급한 불부터 끈 후에, 건물을 따라 숲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뭐, 딱히 다를 건 없었고 그냥 여느 앙코르 왓 내부의 정글과 같이 치렁치렁하고 빽빽한

정글, 숲이었다.

화장실 안에서 재미있는 그림이 있어서 한 장. 왼쪽부터 보자면, 흡연 금지다. 아무래도 정글에 목재 건물이니

화재 예방이 중요한 거다. 그담 변기뚜껑에 올라앉아 일보지 말라는 표시, 워낙 많은 불특정다수가 쓰는 공용

변기이다 보니 더러워지기 쉬울 테고 그럼 또 저런 자세를 부득불 취해 더욱 더럽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겠지.

그렇지만 저 자세로는 물이 사방으로 튈 텐데.ㅡㅡ;; 세번째는, 옆에 있는 수도꼭지로 발 닦지 말라는 건지

신발을 닦지 말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날이 워낙 더운데다 여기 오면 아무래도 많이 걷게 되니 발 한번 씻고

나면 피로도 좀 풀리고 좋지 않나? 좀 이해가 안 되는 표지다. 마지막 그림처럼 샤워하지 말라는 거야, 다른

사람에 민폐도 될 수 있고 '선녀'처럼 옷을 분실할 수 있는 위험도 있으니 그렇다지만. 


이 중 하나를 어기고 말았다. 너무 더운데다 이미 옷에 하얗게 소금꽃이 피어나 어쩔 수 없었다는.


비몽사몽, 읽으려고 가져갔던 책은 몇장 읽지도 못하고 세네시간 자다 일어나 숙소에서 내려다본 풍경. 희뿌연
 
아침햇살 아래 보이는 공사판이 답답하다. 정돈이 된다면 그럴듯해지겠지만, 아직 송도는 분장 중이다.

행사는, 비즈니스 미팅은 쉽지 않다. 늘 예기치 않은 상황이 생기기 마련이고, 양측을 만족시키는 미팅을

안배하기란 애초 한계가 있으며, 삼십분의 짧은 미팅시간은 약간의 지각, 약간의 변수 만으로도 충분히 이후

스케줄을 헝클어뜨릴 만큼 위태위태하다.


잘해야 본전일 수 밖에 없는 이런 행사의 운영이란 것, 할 수 있는 부분이란 가용한 부분을 최대한 활용해서

누수를 막고 예측가능한 빵꾸를 때워내는 것. 스물다섯의 운영요원의 건투를 빌며 상담장으로 쓰이는 홀 두개,

등록데스크, 인터넷 까페와 대기장을 빨빨거리고 다녔다.


이틀째 누군가 한 명의 대학생 운영요원으로부터 들은 말, "근데 인턴이신가요?" 뭐. 어리게 봐준거라면 땡쓰,

뺑이치는 게 인턴같아 보인 거라면..흠. 구두가 물에서 막 건져낸 걸레처럼 축축해져 척척 살에 달라붙는 느낌,

이런 행사할 때 한번은 슬쩍 만보기를 차봤던 적이 있는데 이만보가 너끈히 넘었더랬다. 운동 솔찮이 된다.

보도자료에 나갈 사진이 필요하다 하여 찍었던 행사장 전경 중에 실제로 쓰였던 사진. 빈 테이블이 그림에

나오지 않게 하고, 뭔가 열의띈 모습으로 상담하는 모습을 담아내고 싶었는데 사실 맘에 드는 사진이 없었다.


한상, 韓商. 중국의 화상이나 유대인들의 유대상들처럼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해 보려는 시도지만, 아직

갈 길이 먼 것도 사실이다. 비즈니스가 이뤄지려면 국적이나 다른 조건보다 상호간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게

우선이니까. 그런 이해타산을 따지고 서로가 얻을 수 있는 최선의 결과를 윈-윈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준 게다. 내년은 대구.

사람들이 좀 한 풀 꺽이고 난 등록데스크. 운영요원들이 꽤나 능숙하게 해주어서 그래도 운영상 큰 문제는

없이 이틀간의 상담이 지나가고 있었다. 뭐...누군가에게 막말을 듣기도 하고, 누군가의 불끈 쥔 주먹이

금세라도 뻗어나올까봐 쫄기도 했지만, 그 이상으로 고맙다, 만족한다라는 이야기도 들었으니 됐다.

운영요원들. 구두를 신고 온종일 종종거리며 뛰어다니는 게 어찌나 힘든 일인지, 파장 무렵에는 기어이 바닥에

철푸덕 앉아버리고 말았던 높은 굽의 여성 요원들 덕분에 그래도 큰 탈없이 행사가 굴러갔다. 어찌 그렇게

영어도 중국어도 러시아어도 잘하시고 까칠한 사람들에 대응도 잘 해주는지.


짬이 좀 나서 주르르 의자에 앉아 쉬는 그녀들을 보자니 갑자기 면접장 분위기로 바뀌어버렸다. 애초 단정하고

프로페셔널한 분위기를 위해 검정정장과 질끈 묶은 머리를 요청했던 게다.

잔뜩 미어지던 에스컬레이터도 한 숨 돌리는 시간. 행사가 끝나가고 있었다.

창밖으로 기울어지는 해. 이제 몇개 남지않은 미팅을 정리하고 상담실적을 집계하는 일만 남았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본 화장실 표시 중 꽤나 깔끔하고 이뿌다고 생각한 그림. 간략한 선으로 남녀를 표현하고

눈에 잘 띄도록 한다는 목적에 충실한 표지판. 송도컨벤시아에서 제일 맘에 들었던 것.

게다가 이 계단 표시란. 구구하게 계단 표시를 전부 그릴 필요도 없이, 화살표의 구부러짐과 진로만으로

충분히 알아볼 수 있게 한다. 보는 순간, 오..이거 괜찮은데 싶었다.

둘째날 미팅은 오후 세시쯤 완료. 뒷마무리하고, 어느새 급빈티지스러워진 등록데스크를 보며 한바탕 전쟁이

지나간 흔적을 더듬었다. 뭐랄까, 방금까지 부산히 돌아가며 윙윙대던 모기떼들이 갑자기 탁, 하고 멈춰버린

느낌이다. 멍하다. 새삼 느껴지는 발바닥의 통증이 무지근하다.

이제 비어버린 인터넷 까페에 앉아 한 컷. 잔뜩 지쳐버렸지만 그래도 속은 후련하다. 어느 기업대표가 왔는지

안 왔는지, 미팅일정이 어떻게 변경되고 어떻게 취소되었는지 따위 머릿속을 채우던 단기 기억들을 닥닥

긁어모아서 싹 휴지통에 몰아넣고는 '휴지통 비우기'를 해버렸다.


남은 것은 상담실적 집계와 결산, 보고서 작성이라거나 몇몇 한상과 국내기업에 대한 피드백 등이지만, 일단

당장은 좀 쉬기로 한다. 그러고 보면 이틀내내 2층 행사장 밖으로는 한걸음도 안 나섰던 거다.





업, 근래 봤던 영화 중에 꽤나 인상 깊이 남았던 영화다. ([업] Adventure is ubiquitous.)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고집스런 사각턱 할아버지나 통통한 동양계 꼬맹이 말고, 저 커다랗고 길다란 새를 기억하는지?

아마도 영화 속에서 할아버지가 집을 날렸던 곳은 남미 어디메쯤이었던 듯 하지만, 사실 이 새는 아프리카에

살고 있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짠~* (왠지 익숙한 이 단어, 짠~*) 똑같지 않은가, 강인하게 쭉 뻗은 긴 다리, 두껍고 강력해 보이는 부리, 전체적으로

타조와 비슷할 만큼 대형 몸집을 갖고 있으면서도 슬림하게 뻗어있는 허리와 둔부까지. 깃털까지 꼽아놓았다면 아마

더더욱 흡사하지 않았을까 싶다. 알록달록 빛깔이 선명한 깃털들로. 아프리카박물관엔 이런 조각상이 아주 많다.

제주도 컨벤션 센터와 마주보고 있는 아프리카 박물관, '서아프리카 말리공화국에 소재한 젠네 대사원'을 토대로

설계하였다는 박물관의 외관이 실물을 보고 싶다는 욕구를 마구 자극한다. 무려 세계 최대의 진흙건축물이랜다.

마당 한 켠에 분방하게 전시되어 있는 전통 가면들. 왠지 하늘로 손을 쭉쭉 뻗은 나무들조차 아프리카스럽다.

정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거대한 새의 조각상. 딱 보자마자, '업'에서 벌어지는 탐험의 중심에 있던

그 새가 너로구나, 반가웠다. "코뿔새 상"이랜다. 업에 나왔던 그 새의 이름을 이제야 알겠다. "코뿔새"다.

"코뿔새는 아프리카의 신화적 동물로 반투어로는 코몬도(Komondo)라고 불린다. 코몬도는 양성의 동물이며, 크기가 30m가 넘는다고 전해진다. 가뭄에 시달릴 때, 하늘에 비를 내려 주기도 하고 죽은자의 영혼을 사후세계로 인도하는 죽음의 사신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또한 나쁜 기운과 질병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해 주는 수호신 역할을 한다." (아프리카 박물관 홈페이지 참조)

아프리카박물관은 기대 이상으로 볼 거리도 많았다. 애초에는 하루 세차례, 11:30. 14:30, 17:30에 열린다는 아프리카

전통 공연을 위주로 보고 나머지 소장품들은 설렁설렁 보면 보고 말면 말자는 식이었는데, 소장품들도 풍부하고

재미난 것들도 꽤나 많았다. 아, 이런 아프리카 전통의 S라인 조각상을 봤다고 그러는 건 아니다.

S라인이 제대로 안 살아나 각도를 바꿔 다시 한번(이라고 쓰고 실은 여러번, 이라 속으로 생각한다) 찍는 열의를

보이기는 했지만, 정말 이 조각상이 그렇게 인상적이었던 건 아니다. 단지 아프리카에도 이렇게 수준높은 몸매...

아니, 이렇게 수준높은 조각예술이 발달했었나, 이렇게 육감적인 표현이 가능했었나 신기했을 따름.


어쩌면 마치 우리가 고대의 유물을 두고 다산/순산을 기원했다느니 하는 설명을 아프리카 예술에 그대로 대입하는

것도 무리가 있을지 모른다. 그들 나름의 미감과 미적 쾌감이 발전해 왔을 텐데, 그들은 고대인이 아니고 아프리카

역시 21세기의 아프리카 땅이란 측면을 넘 무시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 싶다.

유리창 너머 보존되는 조각상이라 사진이 안 나왔다. 눈으로 보면 무척이나 섬뜩하고 강렬한 조각상인데.

해서 아프리카박물관 홈피에서 업어온 그림 첨부.
콩고의 주술사가, 부족의 룰을 어긴 사람을 선별해서 벌을 줄 때 사용한 조각상이라 한다. 온통 쇠못이 고슴도치처럼

박혀서는, 냉막한 표정으로 날카로운 송곳을 집어들고 있는 게 처키보다 섬뜩하다. 어찌 보면 단순하다. 사람이

사람에게 주었던 상처, 아픔을 눈에 보이게 하는 게, 치유를 위한 첫걸음인지도 모른다. 저 살벌한 못들처럼.

주술사가 해결할 사건 수가 늘어갈수록 쇠못도 하나씩 늘겠지만, 그래도 사람이 살면서 타인에게 박아넣는 못들보단

훨씬 적은 수일 거다. 만약 그게 저 못들처럼 대가리를 삐죽대며 몸에 박힌 게 보인다면. 으..

신기하게도, '용'이란 존재를 불러내는 상상력은 만국 공통인 듯 싶다. 서양의 용, 동양의 용, 그리고 아프리카의 용.

아프리카의 용은 왠지 짧막하고 가분수인 게, 귀엽다. 이 녀석 어쩜 거대용의 아바타일지도.

시간 맞춰 들어선 지하의 공연장. 자그마한 공연장이지만 사람이 꽉 찬 게 더 놀랍다. 아프리카박물관을 강추하는

온갖 블로그나 까페, 구전의 효과란 말인가. 나 역시 그 구전에 기꺼이 합류하기로 맘먹고 블로그 중이지만.

세네갈에서 왔다는 공연팀이 등장했다. 그 중에서도 열정적인 댄스와 노래-랄까 격한 허밍이랄까-를 선보였던

아리따운 검은 아가씨. 반질하고 매끈한 피부가 꼭 새까맣고 단단한 흑단목을 연상케 했다.

북을 치는 아저씨 둘은, 박자를 마음대로 늘였다 줄였다 깨고 잇고, 굉장히 멋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마주친 수준높고 열정적인 공연이라니. 물론 그 와중에도 뽁뽁이 신발신고 뒤에서 뛰어다니는 아가의 부모는

어디갔는지 보이지도 않았고, 조금 더 큰 아이들은 아무런 제재나 부모의 관리없이 통로를 방황하고 있었지만.

꼭 '국립문화원'이니 '예술의 전당'이니, 돈쳐바른 곳에서만 조용히 예의를 지켜야 하는 건 아니란 말이다.

이제 둘러보고 나가는 길, 코뿔소 새의 휘영청 만곡한 부리가 너무 멋지다. 죽음의 사신이지 수호신이라는 신화적

존재, 코뿔소 새. 근데, 머리 위의 갈기털은..누가 파마를 시켜놓은 건가.

아프리카 박물관의 센스는, 화장실 표지에서도 빛을 발했다. 이런 자그마한 것 하나에서도 그 공간의 이미지와

특성을 드러낼 수 있을 만큼의 섬세함이 난 좋다.

기념품점에서 맞닥뜨린 No.5 던가.(일본만화 '원피스'를 보시는 분이라면 누구나 알 듯.ㅋㅋ) 기린기린열매를 먹은

그가 열심히 단련하여 네모반듯한 기린 전사가 되는 눈물없인 볼 수 없는 감동의 대 서사시. 딱 그녀석이 생각났다.

왠지 우울한 표정의 원숭이, 조삼모사에 낚인 건 아닌지 염려스럽다. 호랑이는 왠지 입에다가 타이거마스크를

하고 있는 느낌이고, 또다시 등장한 기린은 아직 완성체가 되기 이전의 모습.

티켓 값이 그다지 싼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주도의  지원으로 10% 할인이 적용된다고 한다. 참고로 아침일찍

갔다가 허탕쳤음을 호소해도 추가 할인은 없다.









앙코르 톰 내부를 비롯, 앙코르왓 유적군 모두에 화장실은 이런 식으로 안내되어 있다. 허름한 안내판만큼 화장실도

허술할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글쎄. 화장실은 꽤나 깔끔한 편이다.

앞에 관리인이 목욕탕 티켓파는 곳처럼 앉아 있고, 여자가 다가오면 왼쪽, 남자가 다가오면 오른쪽을 손짓한다.

앙코르톰 사원이란 사실 가로 3킬로, 세로 3킬로의 거대한 성곽도시라고 할 수 있다. 그 안쪽 중심부에 늘어선

바이욘, 바푸온 등과 같은 사원과 궁전터 등이 실제 앙코르톰이 품고 있는 유적들인 거다. 마치 크메르 왕의

집약된 중앙집권 권력을 반영하듯 하나로 응축된 사원들과 궁전들, 그런 유적들이 뭔가 하나로 눈이 모이는

집약식 볼거리라면, 뗍 쁘라남이나 쁘리아 빨리라이는 슬슬 산책하며 이리저리 휘휘 둘러보기 좋은 그런

분산식 볼거리라고 할 수 있을 거 같다.

뗍 쁘라남, 이라는 이곳은 돌로 잘 포석이 깔아진 이 길이 인상적이었다. 잔뜩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한 줄기

잘 다듬어진 돌길을 걷노라면, 가뜩이나 여행객도 드물어 호젓한 이곳은 고요한 산책로처럼 느껴진다.

물론 그 뒤편으로는 이렇게 야자수를 큰 칼로 썰어 빨대를 꼽아주는 자그마한 행상도 있다. 물이 꽉 들어찬 살풋

덜 익은 코코넛은 칼이 닿자마자 찍, 하고 물을 내뿜고 만다.

대불좌상이 놓여있는 산책로의 끝. 그 오른쪽으로는 스님들이 묵고 있는 요사채..가 있다고 한다. 불상도 최근의

것인지 색깔이 아직 싱싱한 돌멩이다.

실제로 지금 꾸려지고 있는 사원인지 감색 옷을 입은 스님이 앞에 앉은 두 사람 등목을 시켜주고 있다. 시원하게

물을 뿌려준 스님, 그리고 시원하게 사방으로 튀기는 물방울. 아니 근데 오른쪽 사람은 여자였었나...?

사람이 살고 있음이 틀림없는 집. 우리네 시골 집 툇마루와 비슷하면서도 살짝 다른 분위기.

앙코르왓 내부에서 기거하고, 수도하는 사람들이 있는 게다. 이렇게 펌프질을 해야 물이 나오는 수돗가도 있고.

거대하고 묵직하고 '케케묵은' 사원들이 가득해 보이기만 하던 앙코르왓 내부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저 봉곳한 궁둥이와 허리라인이 예술이다. 도무지 저 엉덩이로부터 흘러넘치는 마력같은 매력에 저항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도 함께. 무릎을 굽히고 두 팔을 쭉 펴고 엉덩이를 있는 힘껏 뒤로 빼고 경계에 들어갔다.





옛 서울역사 1층을 휘휘 둘러보고 2층으로 오르는 길. 뭔가 꼬불꼬불한 장식들이 허리춤에 잔뜩 매여진 계단

난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올라섰다.

1과 1/2층에서 돌아본 전시장 풍경. 빨간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서 화살표가 되고 출입금지선도 되어 다소

살풍경해 보이기도 하지만, 저너머에 따뜻해 보이는 연한 주홍불빛과 커다랗게 프린트된 사진작품들이 덕분에

더욱 화사해 보이는 것 같다.

계단을 올라가다가 문득 바라본 천장에 붙은 벽면. 페인트가 온통 쩍쩍 갈라져서는 터져 나갔다. 참 오래되기도

했지만, 사람 손이 안 닿는 건물이란 게 참 금세 황폐해지는구나.

정확히 1과 1/2층 벽면에 있는 그림. 저 움푹 들어간 곳은 뭔가 전시를 해놓거나 화분을 두려고 했던 장소일까.

아님 정확히 저 공간에 꽉 끼어들어갈 만한 수조라도 채워넣던 걸까. 그 밑에 있는 앙상한 필치의 그림이 그려진

타일들은 좀 뜬금없지 싶기도 하고 이뿌지도 않고 그렇다.

화장실. 포스팅을 하면서도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건지 싶기도 하지만, 화장실 표시가 장소마다, 나라마다 얼마나

다를 수 있고 또 재미있을 수 있을 텐데 유감스럽게도 여긴 좀 아닌 듯. 전혀 특징도 없고 주변 배색을 고려치도

않았으며, 전혀 기차역 화장실이라는 느낌을 던지고 있지 않달까. 그 '기차역 화장실'스러움이 뭐냐면 당장 할

말은 없어도, 그래도 뭔가 쌈빡한 게 있을 텐데.

이곳은 어쨌거나 '갑작스러운 수도공사'로 인해 단수가 될 수도 있는 철거 직전의 낡고 닳은 건물인 게다.

그런 건물에서 사진전을 벌이겠다는 아이디어는 참, 처음 이런 전시가 열리고 있다는 기사를 봤을때부터

깜찍발랄한 느낌이 팍팍 들었었다.

화장실 안 창문에서 내다본 바깥세상. 겨울날 같잖게 따스한 햇볕이 나려앉은 1월의 서울역앞 광장. 때와 먼지가

구질구질하게 달라붙은 유리창에 그려지는 창살 그림자가 선명하다.

1과 1/2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중턱에서 바라본 2층 복도. 약간 노리끼리하면서 바랜듯한 색감도 그렇고, 진회색

타일과 달걀색 도료도 그렇고, 분위기가 있다는 표현이 좀 어울리지 않나 싶다. 


부록. 옛 서울역사 1층에 있는 화장실. 서울국제사진페스티벌 매표소와 카페를 겸하고 있는 공간 옆에 붙어있는

이 공사판 날림형 화장실같은 곳은 더이상 벽지나 타일로 말끔했을 분장조차 지워져 버렸다.
남자의 색 파란색, 남자화장실에 그려진 기저귀 찬 쪼꼬만 애기. 올 11월 일본 큐슈에 갔을 때 하카다 역 안의

화장실에서 발견했던 왠지 기분 좋아지는 화장실 표시. 이제 남자가 애기 기저귀 갈아주는 게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정도로는 세상이 변하는 있는 게다.

그림만 봐서는 카이로 쿠푸왕 대피라밋 정도에 있어야 할 것 같은 화장실 표시이지만, 사실은 일본 하카다 역 근처

자그마한 비즈니스급 호텔 로비의 화장실. 대체 왜...?

하카다 근교 다자이후에서 마주친 화장실 표시. 일본색이 풀풀 나는 선남, 선녀의 그림이랄까.

이수영이 뮤직비디오를 찍었다는 큐슈 유센테이코헨의 화장실 표시. 손발을 쫙 펼친 적극적인 남성의 큰대(大)자

모습과는 달리 손발을 곱게 모으고 노란색 끈으로 동여매인 듯한 여성의 모습이 대비된다.

11월 말, 남북간 육상 교류가 심각한 교착상태에 빠지기 직전쯤 다녀온 개성에서 손꼽히는 '고급'음식점에서 만난

화장실 표시. 남한의 고위 공직자들, 정치인들이 숱하게 다녀갈만큼 유명한 곳이지만 조각조각난 '위생실'도

모자라 앞에 빨간 펜으로 '남'이라고 써놓은 게 엉성엉성하다.

화장실 내부를 잠시 볼작시면, 딸랑 하나 있는 '편의시설' 그리고 세면대도 따로 없이 초등학교 때 걸레빨던 곳처럼

대충 만들어놓은 개수대에서 알아서 일보라는 듯. 당연히 핸드 드라이기나 심지어 휴지조차 없었다.

10월, 사우디-카타르-쿠웨이트 출장을 다녀오면서 마주쳤던 남녀 화장실 표시. 턱수염 콧수염이 덥수룩한 아랍의

남자가 반짝반짝 불빛에 반사된 채 왠지 시크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반면, 우연찮게 조명도 어두컴컴하게 받아버린

여성이 검은 히잡을 쓰고 검은 망사로 얼굴에 격자무늬 빗금이 둘러쳐진 건 아랍 지역에서 상대적 열위가 두드러진

여성의 위상을 반영하는 걸까. 그러고 보면 표정도 살짝 입을 앙다문채 새침해 보인다.

사우디였던가, 공동화장실의 남성용 편의시설. 왜 저렇게 길게 쭉 턱을 내뻗고 있는지 얼핏 보면 '큰 것'을 위한

시설로 보일 정도지만, 엄연히 저건 '작은 것'을 위함이다.

카타르의 쇼핑센터에 있던 화장실, 한 켠에는 앉아서 발을 씻을 수 있는 수도꼭지가 늘어서 있다. 무슬림들이 사는

세상에선 당연시되는 것들, 이집트나 카타르를 막론하고 모스크 입구에 꼭 설치되어 있는 발씻는 곳.

쿠웨이트 국제공항 내의 화장실. 살짝 당당한 포즈로 양허리춤에 손을 괸 남자와는 달리, 손발이 경직된 여성의

치마가 뾰족하다. 그러고 보니 두 발 사이의 간격도 다르다. 살짝 쩍벌남의 기운이 느껴지는 남성.

아랍 삼국의 호텔을 돌면서 계속 마주쳤던 룸 내의 화장실. 욕조와 편의시설 사이에 놓인 저 제3의 편의시설은

뭘까, 생각하다가 비데의 일종임을 알고 무지 신기해했었다. 그렇지만 얼마전 송년회삼아 그랜드인터콘티넨탈

호텔 룸에서 일박을 하면서 똑같은 시설물을 마주하곤, 이건 왠지 글로벌 스탠다드인가..하는 깨달음이 번뜩.

8월 파리 여행에서 숙소삼았던 유학생 친구의 집에서 만난 화장실. 세면대와 욕조는 다른 공간에 있고

덩그러니 지저분한 편의시설 하나만 비치되어 있는 조그마한 공간.

퐁피두센터 옆에서 만난 공중화장실. 뭔가 쌔끈한 메탈 튜브가 떠오르는 외관이지만, 정작 필요할 때는 항상

내부에서 모종의 거사가 진행중이었거나 심각한 냄새의 원천이 되고 있어서 차마 발들일 수 없거나 했다.

어느 여름, 가족들과 함께 삼청각 찻집에 갔다가 예기치 않게 마주쳤던 한국식 화장실 표시. 국내에서 내가 본 것

중에 이만큼 세심하고 이뿌게 한국의 미를 살리려고 애쓴 화장실 표시는 없었던 것 같다. 아주 사소하고 하찮을 수

있는 화장실 표시 하나에도 생각보다 많은 걸 담을 수 있지 않을까. 또 나처럼, 누군가는 그 표시 하나에도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찾아내려 애쓰는 사람이 또 있지 않을까 싶다.


카타르에서의 숙소는 라마다 플라자(Ramada Plaza), 사우디 호텔에서 미처 찍지 못하고 놓쳤던, 그래서 무척이나

아쉬웠던 사진부터 후딱 찍었다. 이 곳 역시 화장실 풍경이 사우디랑 똑같앴던 것. 욕조와 좌변기 사이에 놓인

저것의 정체는..뭘까. 나중에 알고 보니 비데란다. 그치만 그렇게 알고 나서도 저걸 어떤 자세로 쓸지, 그리고

대체 어디에 쓰는 건지, 게다가 왜 저렇게 따로 만들어져 있는지..좀체 이해가 쉽지 않다.

카타르에서 만난 비즈니스맨들은, '비즈니스퍼즌'이란 젠더중립적인 단어가 이미 넓게 쓰이고 있는 세상임을

새삼스레 의식시켰다. 이전 사우디에서 만났던 한량 복장의 남성 일색의 상담회장이 아니라 히잡도 안 쓴 이런

당당한 여성기업인이 더러 눈에 띄었던 거다. 물론 이곳에서도 비슷하게 한량스런 전통 복장을 한 턱수염 복실한

아랍 아저씨들이 압도적으로 많기야 했지만, 저 여성이나 다른 여성들도 그저 유럽 어디메쯤의 아줌마 같은

느낌으로 충만해 있는 '비즈니스퍼즌', 혹은 당당한 '여성CEO'.

행사장이 있는 호텔 안을 종종걸음치다 발견한 구두닦는 이를 위한 의자. 저 높은 의자에 올라앉으면 구두닦는

아저씨가 양 발을 번갈아 올려가며 구두를 닦기 시작한다. 우아한 주름이 줄줄 흘러내리는 전통의상을 입은 남자가

올라앉아 왠지 중세시대 하인 복장을 떠올리게 하는 호텔 구두닦이에게 척하니 발을 맡기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사실은 아랍 전통의상을 입은 남성은 모두 맨발에 슬리퍼나 샌들을 신고 있다. 대부분 닥스니

루이비통이니 하는 명품 슬리퍼. 해서..그런 적나라한 그림을 볼 수는 없었다는.

호텔 정문에는 역시 금속 탐지기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었다. 사우디보다는 훨씬 작은 사이즈의 탐지기였다는 점,

그리고 호텔 경비원들의 인상이 훨씬 부드러웠다는 점 이외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는 풍경이었다. 그렇지만 잔뜩

귀찮아하며 이러저런 서류뭉치와 가방, 카메라, 카타르 현지에서 쓰던 핸드폰 등을 여섯번째쯤 탈탈 털어놓고

맨몸뚱이로 금속탐지기를 통과하려던 내게 빙긋 웃어보이며 그냥 가라고 손짓해 줄 만큼의 여유가 있다는 건 역시

엄청나게 큰 차이를 불러일으킨다. 카타르, 우호도 5점 상승↑.

황금빛으로 번쩍거리는 라마다 플라자 호텔의 위용. 그리고 그 앞에 꼬리물고 늘어선 황금색 고급차들의 행렬.

하루종일 예정된 상담회가 중반으로 치달으면서 점점 몸이 뒤틀린 나는, 살짝 자리를 벗어나 바람을 쐬러 나온

참이었다. 밤 두시정도까지 일하다가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는 일정이 반복되면서 구두가 꾸덕꾸덕해져 있었다.

발은 언젠가 목욕탕 열수탕에서 깜빡 잠들어 세네시간동안 푸욱 삶아졌을 때처럼 팅팅 불어있었지만, 살짝

벗은 발로 허공을 휘휘 저어봐도 바람기운이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늘 하나 만들어지지 않는 뜨거운 태양

아래, 조그만 미동조차 없이 굳어버린 듯한 대기.

호텔 한 켠에는 높은 분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북한에 김일성, 김정일의 사진이 걸려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얼마전까지 박정희니 이승만이니 사진을 걸어놨던 것처럼, 그리고 사우디에서 초대왕과 선왕, 현재 국왕의 사진을

삼위일체로 걸어놓는 것처럼. 표정도 얼추 비슷하다. 무척이나 현명해보이고 부드럽다 못해 자비로워보이기까지

하려는 눈매에..그렇지만 왠지 느껴지는 삼엄하고 강단진 기운. 혹자는 카리스마라 할 수도 있겠지만, 글쎄..

'부려짐'보다는 '부림'에 훨씬 익숙한 데서 비롯한 체취같은 거 아닐까. 엄숙하고 진지한 분위기로 충만한 거야

더 말할 것도 없고.

아랍에서 손님을 맞는 전통적인 방식은 저런 곳에서 느긋하게 뒤로 누워앉아서는,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것이라고 한다. 나도 잠시 앉아 봤지만 뭐랄까, 사람을 무척추동물처럼 만드는 자리같았다. 아무리 꼿꼿이 허리를

세우고 앉아 보려해도 영 어색하고 불편해서 스스로 타협하게 만든다. 조금만 뒤로 기대 볼까.

그렇게 조금씩 엉덩이는 앞으로 쭈욱 미끄러져내리기 시작하고, 아예 온몸이 흘러내리겠다 싶은 순간 자연스레

양팔을 걸침으로써 그 효용을 다하는 팔걸이=몸걸이. 무지하게 편해서 한번 눌러앉으면 일어나기가 싫어지는

마력이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호텔 로비에 떡하니 버티고 한번 맛이나 봐라~ 라고 있는 거 같다. 왜 그 난로와 이불과 테이블이

붙어있는 일본의 코타츠..던가, 내가 꿈꾸는 겨울나기 MUST HAVE 아이템인 그것보다는 못할 거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나름 이것도 사람을 마비시킬 만큼의 중독성은 있는 듯 하다.

그 곳에 앉아 바라본 호텔 인테리어. 어쩌면, 내가 좀더 여유롭고, 이게 좀더 폐쇄적이고 사적인 공간에 놓여

있었다면, 아마 하루종일 딩굴댔을 거라 생각했다.

어느덧 이렇게 하루가 지나고, 한숨 돌리러 다시 나온 호텔 창밖 풍경은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태양은 조금씩 이지러지면서 건물 뒤로 숨고 있었고, 한낮엔 내 발을 쌩까던 바람도 어디선가부터 불어오고

있었다. 왠지 순식간에 가버린 하루, 그 느낌만큼이나 순식간에 저물어버리는 태양.

부드러운 살구색 빛살이 풀어져내리는 하늘 아래서 구두는 꾸덕꾸덕하고...

햇님은 번데기처럼 몸을 뒤틀며 쉬러가는데 난 아직도 오늘의 일정이 절반 가까이 남았고...

카타르 도하를 달구던 태양은 이제 불이 나가버렸다.

상담회장을 정리하고 우선 방으로 짐들을 올려두러 가는 길, 금세 나와서 만찬 행사장에 가야 한다.

호텔이야 어느 나라건 은은하다못해 침침한 조명에 다소 응큼한 분위기가 있다지만, 이날따라 침침했던 조명.

화장실 표시도 남다른 사우디아라비아. 터번을 감은 턱수염 아저씨와 머릿수건 히잡을 쓴 망사 속의 아가씨가

각각 남여 화장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왠지 여성은 검은 색이 많이 들어가서 그런지 남성보다 은밀하고 숨겨진 느낌이 든다. 단순히 조명이 직접

때려지지 않아 마침 광택이 조금 덜했던 걸 넘 크게 해석한 걸까.

남성이라면 잠시 당황할지도 모르겠다. 난 첨 화장실에 들어가서 이걸 보는데, 앉아서 쓰란 건지 서서 쓰란 건지

순간 혼란스러운 느낌마저 일었었다. 저 거창한 칸막이도 흔히 보는 소변기 사이의 칸막이라기엔 좀 거시기하다.

비록 생긴 건 좌변기같이 길쭘하게 생겼지만, 어쨌든 이건 남성용 소변기. 서서 쓰는 거다.ㅡㅡ;

아침부터 시작한 상담회인데, 하루 종일 실내에만 있으려니 하도 답답해서 잠시 호텔 밖으로 나섰다. 여전히 호텔

문 앞에서 사람들과 짐들을 스캐닝하고 있는 금속 탐지기. 안그래도 내 손에 쥐어진 카메라를 불안하게 경계하던

보안요원은 내가 미친 척하고 카메라를 들이대자 즉각 반응한다. 찍지 말랜다.


알았다고, 웃음기조차 없는 그 얼굴이 인상쓰면 정말 무섭겠다 싶어 얼른 밖에 나섰더니 어느새 새까만 어둠이

내려앉아 있다. 저 멀리 보이는 건물은 알 파이잘리야(Al Faisaliah) 타워, 사우디 리야드의 가장 높은 건물 중의

하나이자 대표적인 랜드마크라고 한다. 붉고 노란 라이트불빛만 늘어뜨리고 호텔 앞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들.

초점이 안 맞은 채 찍힌 사진이지만, 왠지 이 딱딱하고 적대적인 공간을 조금이나마 부드러운 이미지로 기억시켜

줄 것 같은 사진. 하품이라도 하고 눈에 물기가 잔뜩 어린 채 쳐다보는 세상같다.

다시 상담회장으로 돌아가는 길, 불과 십 분도 안 되는 짧은시간 건물을 나갔다 들어왔지만 예외없이 금속탐지기를

통과해야 했다. 우선 플라스틱 바구니에 카메라와 주머니속 잡동사니들을 빼놓고는 검은색 고무로 된 컨베이어

벨트 위에 얹는다. 그리고 그 바구니가 거의 소형차 마티즈만한 사이즈의 기계를 통과하는 동안 나는 공항에서

흔히 보는 탐지기를 통과해서 스캐너로 사지를 스캔당한다. 통과. 당할 때마다 불쾌하지만, 어쩔 수 없다.


상담회장 바로 옆에 카펫 판매장이 있었다. 호텔 내 기념품점이야 어느 나라에나 있고 이곳에도 이런저런

기념품을 파는 매장이 따로 있었지만 카펫을 파는 곳이 아예 이렇게 따로 있을 줄이야. 잠시 들어가서

한바퀴 돌아보며 카펫의 문양과 촉감을 구경하고 나왔다. 따스하고 보들보들한 느낌이 손끝을 스치는 게

둘둘 감고 있으면 포근할 거 같다.

메리어트 리야드 호텔의 1층 로비. 은근하지만 화려한 조명과 야자수가 휘영청 늘어진 느낌이 그럴 듯 하다.

두바이 공항과 달랐던 점은 저 야자수들이 전부 진짜였다는 점, 그리고 잎사귀에 먼지가 낄 새도 없이 잘 관리되고

있어서 반질반질 윤이 날 정도였다는 점. 역시 호텔은 가오로 먹고 산다.

별 모양으로 늘어뜨려진 조명과 저 멀리 초대 국왕, 선대 국왕, 그리고 현재 국왕의 초상화가 보인다. 흡연이

자유로운 아랍 문화답게 호텔 로비에서던, 복도에서던 흡연은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는다.

내가 들은 기억으론 가운데가 초대 국왕, 왼쪽이 선대 국왕, 그리고 오른쪽이 현재 국왕이라고 했던 거 같다.

가운데 아저씨가 입고 있는 검은색 옷(사실은 왼쪽 오른쪽 아저씨들도 입고 있지만)은 굵은 금색 실로 치장되어

상당히 화려한 느낌을 주는 의례복으로, 왕가의 사람들이 공식적 행사에 참여할 때 입는 복식이라고 한다.

호텔의 섬세한 손길이 느껴지는 엘레베이터 앞 재떨이. 거리낌없이 아침부터 담배를 피워대는 투숙객들 때문에,

두 개층을 오르내리며 겨우 흐트러지지 않은 재떨이 모래무지를 사진으로 남길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알고 보니

수시로 담배꽁초나 쓰레기를 치우고 모래를 일부 걷어내고는 다시 메리어트 호텔 마크를 저렇게 찍어 놓고 있었다.

다음날 새벽, 산책을 겸해 호텔 밖을 또(!) 나섰다. 호텔 바깥의 녹색 공간은 시간맞춰 분사되는 이런 스프링쿨러

시스템에 크게 빚지고 있었다.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몇십분 동안 쉼없이 흩뿌려지는 물들, 중동권에서 물은

기름보다 비싸다던가. 세계 최대의 산유국이자 무진장한 수준의 천연가스를 보유하고 있는 사우디에서 더욱더

실감나는 말이다. 심지어 이들은 천연가스는 아직 개발도 제대로 시작하지 않은 상태인 거다.


보안요원이 따라나오더니 사진 찍지 말랜다. 왜!! 냐고 묻고 싶었지만, 역시 무서운 얼굴에 쫄아버렸다. 나무에

물주는 거 찍겠다는 나도 니들눈에 웃길지 몰라도, 그걸 굳이 막겠다고 나선 니들도 웃기다 참.

우선 알겠다고 하고 몇걸음 내딛다가 다시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한 건 그 뒷켠의 화단. 물기없이 부석부석한 흙에서

비실대고 있는 꽃들이 안쓰럽다. 호스가 이리저리 가로지르며 저런식으로 물을 뿌려주고 있었지만 글쎄..축 쳐진채

잔뜩 목말라보이는 저 꽃의 뿌리까지 촉촉하게 젖어서 꽃잎이 팽팽해지려면 한참 걸리지 싶다.

근데 이 꽃...한국에서도 많이 봤던 거 같은데, 이름도 알았던 거 같은데 영 기억이 안 난다.

꽃에 대고 사진찍는 것도 못마땅했나보다. 여기까지 다시 쫓아나온 보안요원, 오늘은 아침부터 보안요원하고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숨바꼭질하는 것도 아니고. 이번엔 짜증을 낸다. 자꾸 이러면 카메라를 검사해서 사진을 다 지워

버리는 수가 있댄다. 나도 대체 왜, 왜 꽃이나 나무도 못 찍게 하냐고 물었더니 그게 규정이랜다. 호텔, 공공건물을

촬영하는 게 금지되어 있다나. 사실 카메라를 검사하겠다는 으름장에 살짝 쫄아있던 상태였는지라, 고분고분 말을

듣기로 했다. 카메라 안에는 이들 왕의 초상화도 담겨 있는데 행여 걸리면 어찌되겠다 싶어서.


그래도 이대로 들어가긴 따땃한 사우디의 아침햇살이 너무 아쉽다. 호텔 안의 에어컨 바람에 질린 참이었다.

알 파이잘리야 타워 쪽 아침 풍경을 한번 돌아보았더니, 이번에는 타워 위쪽에 있는 구 형태의 조형까지 뚜렷이

보인다. 그리고 발톱처럼 유선형으로 건물을 타고 오르는 곡선의 실루엣도 선명하다.

메리어트 리야드 호텔 옆에 이어지는 정원, 그리고 부속건물들. 이건 대체 무슨 건물인가 싶어서 크게 호텔 주변을

돌아보기로 맘먹었다. 호텔보다 화려하고 얼마 되지 않은 새 건물 같은 게, 뭔가 특별한 용도가 있지 싶었다.

알고 보니 허무하다. 메리어트에 딸린 bodyline Health Club & Spa랜다. 사우디의 부유층들은 운동량이 정말

얼마 안 된다고 한다. 당뇨 등 성인병이 만연해 있고 양고기 등 기름진 음식에 대한 경계심도 없는 데다가, 따로

운동을 해서 건강관리를 해야겠다는 의식도 없는 탓이라고 하는데 여긴 장사가 될런지 모르겠다. 아직 한국같은

'웰빙' 바람이 불어닥치지 않은 무풍지대, 사우디아라비아.

파리에 가면 꼭 먹어보란 얘기를 들었던 크레페. 가장 싼 길거리 음식 중 하나지만, 다양한 속을 넣어서 맛볼 수 있다.

우선 처음에는 설탕, 수크레(sucre)를 듬뿍 넣어 먹어보았다. 낭창낭창한 크레페의 빵 맛이 홍대입구나 그런데서 맛보던 크레페랑은 많이 달랐던 듯. 그담에는 일명 "쪼꼬쨈"이라고 불리는 뉴뗄라를 발라 먹어 보았고, 그 담담에는 바나나랑 뉴뗄라가 들어간 크레페를 먹어보았던 거 같고, 그 담담담, 담담담담에는...

만들어주는 아저씨한테 "보꾸보꾸~!"를 외쳤더니 정말 뉴뗄라가 줄줄줄 흐르도록 발라주셨던 그 인심도 잊을 수 없지만, 밀가루 반죽을 판 위에 둥그막하게 펼치던 아저씨의 능란한 손동작 역시 잊을 수 없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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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파르나스 거리 쯤에서 마주친 크레페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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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테 섬 어딘가에서 마주쳤던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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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피두 센터를 떠나 노틀담 성당으로 걷는 중에 만난 풍경.
해바라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골목을 면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모두 거리쪽을 내다보고 있다. 그 앞에 가만히 서서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왠지 단체관람당하는 기분일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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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리번거리며 골목길을 지나던 내 앞에 갑작스럽게 출현한 자전거 두대, 그리고 세 부녀.
알고 보니 바로 옆 문에서 막 외출한 찰나였지 싶다. 안전모를 챙겨쓴 아이들이 귀여워서 순간적으로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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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어디를 가던 일식과 중식집은 금방 눈에 띈다. 알제리를 식민경영했던 경험을 가진 프랑스에선 무슬림들도 꽤나 산다고 하며, 그 덕인지 케밥이나 꾸스꾸스같은 이슬람 문명쪽 요리도 많이 보았고, 어딜 가나 저렴한 가격으로 사랑받는 베트남 쌀국수 가게도 꽤나 번창하고 있었던 듯 하다.
근데 왜 서울의 쌀국수 가게는 그렇게 비싼 건지, 한국에 들어온 스타벅스나 커피빈만 문제가 아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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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드문드문 놓여 있는 공용 화장실. 노틀담성당이나 유명한 관광지 주변에는 유료 화장실만 보이기도 하지만, 급한 상황에선 요긴하게, 무료로 쓸 수 있는 화장실이다.

생 제르망 거리를 걷던 중이던가, 갑작스런 신호에 부응하여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막상 찾아낸 화장실은 문이 잠긴 채 요란스럽게 냄새를 뿜어내고 있어서 난감했던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대개 상당히 깔끔하고 뒷처리도 무난하게 되어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자동문.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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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를 사용해 저렴하게 자전거를 빌려탈 수 있다는 이야기의 진원지는 이런 자전거 보관소인 것 같다.
시내 곳곳에 이런 보관소가 설치되어 있고, 카드를 대면 자전거를 빌리고 돌려주고 할 수 있는 시스템인 듯 한데 유학중인 친구의 말에 따르자면 사실 관광객이 아닌 파리 시민을 위한 시설이라고 한다. 관광객도 못 빌려 탈 리야 없겠지만 내가 파리에 있는 동안 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대부분 현지의 시민들이었던 것 같다.

자전거 대여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을 뿐 아니라 자전거 전용도로같은 인프라도 철저히 갖춰진 파리, 한국에서도 무작정 에너지 절약이니 자전거 통근이니 구호로만 그치거나 사람들의 자발성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이런 구체적인 제도를 정비했음 좋겠다. 사람이 미어터지는 영등포구청, 신도림, 신림, 서울대입구, 사당, 교대, 강남...을 가쳐 삼성역까지 지하철을 이용해 아침저녁으로 출퇴근하기 넘 힘들단 말이다.

저렇게 보관되는 자전거가 도난당하는 일도 적지 않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시민의 '공익'이라는 가치를 확고히 견지하는 시 당국과 시민정신의 뒷받침이 부럽기만 했다. 자전거도 쌔끈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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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테섬에 들어서는 다리 위에서 드디어 마주친 세느 강.
한강에 비하면 정말 아담한 사이즈의 강이었지만, 아기자기한 풍광과 연한 갈색톤의 질감이 운치있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 강변에 점점이 흩어져있는 연인들이 주위시선 따위 아랑곳않고 벌여대는 애정행각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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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인드글라스의 최고 걸작으로 인정받는다는 생 샤펠 성당과 루이 16세의 왕비였던 마리 앙투아네트가 최후를 준비하던 독방이 있는 감옥소인 콩시에르주리를 품고 있는 옛 건물群.

저렇게 커다랗고 내부를 알 수 없이 꽁꽁 숨겨둔 것만 같은 건물들을 하나하나 헤집으며 내부의 이미지를 채워가고 그곳의 분위기를 맛본다는 건, 마치 생일날 푸짐하게 받은 선물들 포장을 하나씩 뜯어보는 느낌이랄까. 그런 식인 게다. 네 속에는 무엇을 숨기고 있니, 내게 어서 보여주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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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동대문 풍물시장서 밀려나 청계8가에 다시 모인 노점들을 구경가는 길이었다.

주유소 주입구는 호스를 꼽아 주유소 저장탱크에 기름을 쏟아붓는 구멍이다.
화장실은, 신체의 일부를 들이대고 정화조에 똥오줌을 쏟아붓는 구멍인 게다.

일종의 주입구, 화장실의 정체를 노출시키고 만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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