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찬장으로 마련된 곳은 카타르 도하의 외교 클럽(Diplomatic Club), 한국-아랍간의 우호 친선을 증진하자는

행사의 일환으로 벌어지는 기념식 및 만찬은 나름 볼만한 프로그램들로 짜여져 있었다. 한국과 아랍의 기자들이

저마다 무대를 촬영하기 좋은 포스트를 선점하려고 바글바글대는 행사장 안 전경. 디플로머틱 클럽 내부의

아랍스러운 인테리어도 눈을 끌었지만, 무엇보다 내 앞에 앉아 있던 이 아저씨의 저 화려한 머릿수건 매무새가

한동안 눈에 꽉 차들어왔다.

물론 저 카메라들이 이 사람을 향한 건 아니었고,

한국-아랍소사이어티 회장님이라거나, 카타르의 최고 정치지도자의 얼굴과 말들을 찍어내기 위해서였을 거다. 

공연은 카타르의 전통 음악과 함께 시작했다. 단조롭고 묵직한 북소리가 조금씩 욱일승천하더니 어느순간 천지를

두드리는 천둥소리처럼 울려퍼지고, 좌우에 시립한 사람들은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며 명확치 않은 허밍을

읊조리고 있었다. 왠지 사막의 거칠고 황량한 질감이 떠오르는 노랫소리, 그리고 멜로디없이 리듬만 타고 도는

털복숭이 아저씨들의 은근한 움직임.

가운데 빨간 머릿수건 아저씨가 대장인 듯, 북을 저렇게 받쳐들고 치기도 하고,

저렇게 제자리에서 뱅글 돌며 북을 머리위아래로 올렸다 내렸다 하기도 하고.

채를 빙빙 돌리다가 한번씩 박자를 쪼개며 들어가기도 하는 저 빨간 머릿수건 아저씨의 재치있는 손놀림을 보고

있노라니 어딘가 사물놀이랑 통하는 데가 적지 않다 싶었다.

다음은 카타르의 비보이 공연. 카타르에도 비보이가 있다니, 하면서 깜짝 놀라면서 봤는데 생각보다 잘 했다.

아랍 문화, 혹은 유교 문화..이런 식으로 나뉠법한 '꼰대들의 전통 문화'와는 거리가 많이 멀어보이는 패션감각과

발랄하고 유연한 몸놀림을 보면서, 저들이 커서 어른이 되면 카타르도 많이 변하겠구나 싶었다.

네ㅇㅇ나 다ㅇ 등의 검색엔진에서 "카타르 비보이"같은 검색어를 치면 이날의 행사에 대한 스트레이트성 기사와

기자들의 소감문이 몇몇 눈에 띈다. 카타르 비보이들은 상대적으로 간단한 동작을 많이 했다는 평도 어디선가

보았는데, 글쎄..물론 이 담에 나온 한국 비보이 '묘성(妙聲)'의 퍼포먼스가 워낙 대단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닥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카타르 측 공연 시간이 한국 측보다 턱없이 짧아서 전반적으로 한국의 공연이 지배한 듯한 분위기를 준 것은

좀 적절치 않았다는 느낌이었다. 한국이 보여줄 게 많았다거나, 혹은 카타르의 전통 공연이라는 게 아직 그만큼

발굴되고 육성되지 못해서일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살짝 지나가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날 카타르 비보이로 소개된 사람들이 사실은 이집트의 비보이라나 뭐라나, 그런 말도 있었다.

행사 중간에 왠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꼬마 여자아이가 꽃다발을 들고 무대 옆에서 중앙으로 다가가는 걸 보았다.

쟨 또 뭔가, 싶어서 잠시 무대에서 시선을 돌려 지켜보고 있자니, 어른들의 손에 등떼밀린 그 아이는 카타르 왕자와

그 일행들이 있는 쪽으로 가서 쭈뼛쭈뼛 꽃다발을 건네고 낼름 돌아와버렸다.

세 번째로 시작한 사물놀이. 무대가 그렇게 큰 편은 아니었고 행사장 자체도 그렇게 큰 편은 아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꽹과리의 날카로운 쇳소리는 공간을 꽉 채운 채 사방으로 삐쭉대며 날아가 박힌다. 게다가 북의 울림은

카타르의 전통 북보다 깊고 울림이 큰 소리를 내면서 그 까칠한 꽹과리 소리를 부드럽게 위무하고 있다.

카타르 사람들이 무지 신기해하며 사진 찍으려고 난리였다. 내가 카타르 전통 공연을 볼 때 사진 좀 찍어보겠다고

무대 앞섶까지 비집고 들어서려 애썼던 것처럼, 이 사람들도 상고모자와 사물놀이가 신기한 게다.

그치만 또 달리 생각하면, 나 역시 카타르까지 와서 사물놀이를 보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인데다가, 사물놀이를

본 것도 기실 수년이나 지난 일이다. 내가 갖고 있는 '사물놀이'의 이미지는 정선같은 지방 소도시 오일장쯤에서

어정쩡하게 나타났다 뻘쭘하게 사라지는 노친네들의 가장행렬같은 거였거나, 혹은 잠깐 바라보다 '저기 사물놀이

하는구나' 이러고 지나쳐 버리는 그런 초점 나간 사진같은 거였는지도 모른다. 아마 카타르 전통 공연을 봤던

이들 역시 그렇지 않을까. 지겹고 식상하다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막상 제대로 '감상'이란 걸 해본 적이 있는지

되돌아본다면 별로 뚜렷한 이미지도, 기억도 없는 그런 거. '아지랑이'라는 단어를 진부하게 쓰고는 있지만

막상 '아지랑이'란 걸 제대로 본 적은 엄청 옛일이거나, 혹은 제대로 보기나 했었는지 의심스러운 것처럼.

그리고 드디어 한국 비보이들의 공연. 우리나라 비보이들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들 하던데, 이날 왔던 '묘성'이란

비보이들도 아마 그런 정도 경지에 오른 팀이 아닐까 싶었다. 시종 파워풀하면서도 절도있고 섬세한 동작으로

비보잉 댄스 자체를 한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카타르 사람들은 물론, 보고 있던 한국 사람들도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카메라를 가진 사람은 모두 무대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겠다고 이리저리 버르적거렸고, 자리에 점잖게 앉아있던 나이드신 분들도 일어서서 고개를

잔뜩 늘여서 그들을 지켜보았다.

'묘성(妙聲)'이라는 이름답게 이들은 빠르고 비트강한 음악에 맞춘 퍼포먼스만 벌이는 게 아니라, 아리랑 같은

추욱 늘어지는 노래에도 마치 현대무용을 하듯 느릿하면서도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찬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무대에 누워 팔다리를 아무렇게나 던져놓았다가는 어느순간 섬세하게 감싸고 올리면서 재빠르게 솟구친다거나,

쉼없이 스핀하면서 곡조의 완급에 맞춰 속도를 조절하고 몸의 양감을 키우고 줄이는..'Dynamic Korea' 광고에

맞추어 형상화한 역동적이고 강한 느낌의 퍼포먼스는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그 광고 자체에 대한 호오를 떠나서.

마지막으로 한국과 카타르의 공연자들이 모두 무대에 올랐다. 박제화된 감이 없잖은 '전통문화'에 갇힌 한국과

카타르 각각의 무대가 아니라, 그런 전통과 역사를 빌어 지금 이시간 이곳에서 만난 젊은이들이 땀과 눈빛으로

호흡을 맞추는 하나의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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