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에서의 숙소는 라마다 플라자(Ramada Plaza), 사우디 호텔에서 미처 찍지 못하고 놓쳤던, 그래서 무척이나

아쉬웠던 사진부터 후딱 찍었다. 이 곳 역시 화장실 풍경이 사우디랑 똑같앴던 것. 욕조와 좌변기 사이에 놓인

저것의 정체는..뭘까. 나중에 알고 보니 비데란다. 그치만 그렇게 알고 나서도 저걸 어떤 자세로 쓸지, 그리고

대체 어디에 쓰는 건지, 게다가 왜 저렇게 따로 만들어져 있는지..좀체 이해가 쉽지 않다.

카타르에서 만난 비즈니스맨들은, '비즈니스퍼즌'이란 젠더중립적인 단어가 이미 넓게 쓰이고 있는 세상임을

새삼스레 의식시켰다. 이전 사우디에서 만났던 한량 복장의 남성 일색의 상담회장이 아니라 히잡도 안 쓴 이런

당당한 여성기업인이 더러 눈에 띄었던 거다. 물론 이곳에서도 비슷하게 한량스런 전통 복장을 한 턱수염 복실한

아랍 아저씨들이 압도적으로 많기야 했지만, 저 여성이나 다른 여성들도 그저 유럽 어디메쯤의 아줌마 같은

느낌으로 충만해 있는 '비즈니스퍼즌', 혹은 당당한 '여성CEO'.

행사장이 있는 호텔 안을 종종걸음치다 발견한 구두닦는 이를 위한 의자. 저 높은 의자에 올라앉으면 구두닦는

아저씨가 양 발을 번갈아 올려가며 구두를 닦기 시작한다. 우아한 주름이 줄줄 흘러내리는 전통의상을 입은 남자가

올라앉아 왠지 중세시대 하인 복장을 떠올리게 하는 호텔 구두닦이에게 척하니 발을 맡기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사실은 아랍 전통의상을 입은 남성은 모두 맨발에 슬리퍼나 샌들을 신고 있다. 대부분 닥스니

루이비통이니 하는 명품 슬리퍼. 해서..그런 적나라한 그림을 볼 수는 없었다는.

호텔 정문에는 역시 금속 탐지기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었다. 사우디보다는 훨씬 작은 사이즈의 탐지기였다는 점,

그리고 호텔 경비원들의 인상이 훨씬 부드러웠다는 점 이외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는 풍경이었다. 그렇지만 잔뜩

귀찮아하며 이러저런 서류뭉치와 가방, 카메라, 카타르 현지에서 쓰던 핸드폰 등을 여섯번째쯤 탈탈 털어놓고

맨몸뚱이로 금속탐지기를 통과하려던 내게 빙긋 웃어보이며 그냥 가라고 손짓해 줄 만큼의 여유가 있다는 건 역시

엄청나게 큰 차이를 불러일으킨다. 카타르, 우호도 5점 상승↑.

황금빛으로 번쩍거리는 라마다 플라자 호텔의 위용. 그리고 그 앞에 꼬리물고 늘어선 황금색 고급차들의 행렬.

하루종일 예정된 상담회가 중반으로 치달으면서 점점 몸이 뒤틀린 나는, 살짝 자리를 벗어나 바람을 쐬러 나온

참이었다. 밤 두시정도까지 일하다가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는 일정이 반복되면서 구두가 꾸덕꾸덕해져 있었다.

발은 언젠가 목욕탕 열수탕에서 깜빡 잠들어 세네시간동안 푸욱 삶아졌을 때처럼 팅팅 불어있었지만, 살짝

벗은 발로 허공을 휘휘 저어봐도 바람기운이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늘 하나 만들어지지 않는 뜨거운 태양

아래, 조그만 미동조차 없이 굳어버린 듯한 대기.

호텔 한 켠에는 높은 분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북한에 김일성, 김정일의 사진이 걸려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얼마전까지 박정희니 이승만이니 사진을 걸어놨던 것처럼, 그리고 사우디에서 초대왕과 선왕, 현재 국왕의 사진을

삼위일체로 걸어놓는 것처럼. 표정도 얼추 비슷하다. 무척이나 현명해보이고 부드럽다 못해 자비로워보이기까지

하려는 눈매에..그렇지만 왠지 느껴지는 삼엄하고 강단진 기운. 혹자는 카리스마라 할 수도 있겠지만, 글쎄..

'부려짐'보다는 '부림'에 훨씬 익숙한 데서 비롯한 체취같은 거 아닐까. 엄숙하고 진지한 분위기로 충만한 거야

더 말할 것도 없고.

아랍에서 손님을 맞는 전통적인 방식은 저런 곳에서 느긋하게 뒤로 누워앉아서는,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것이라고 한다. 나도 잠시 앉아 봤지만 뭐랄까, 사람을 무척추동물처럼 만드는 자리같았다. 아무리 꼿꼿이 허리를

세우고 앉아 보려해도 영 어색하고 불편해서 스스로 타협하게 만든다. 조금만 뒤로 기대 볼까.

그렇게 조금씩 엉덩이는 앞으로 쭈욱 미끄러져내리기 시작하고, 아예 온몸이 흘러내리겠다 싶은 순간 자연스레

양팔을 걸침으로써 그 효용을 다하는 팔걸이=몸걸이. 무지하게 편해서 한번 눌러앉으면 일어나기가 싫어지는

마력이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호텔 로비에 떡하니 버티고 한번 맛이나 봐라~ 라고 있는 거 같다. 왜 그 난로와 이불과 테이블이

붙어있는 일본의 코타츠..던가, 내가 꿈꾸는 겨울나기 MUST HAVE 아이템인 그것보다는 못할 거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나름 이것도 사람을 마비시킬 만큼의 중독성은 있는 듯 하다.

그 곳에 앉아 바라본 호텔 인테리어. 어쩌면, 내가 좀더 여유롭고, 이게 좀더 폐쇄적이고 사적인 공간에 놓여

있었다면, 아마 하루종일 딩굴댔을 거라 생각했다.

어느덧 이렇게 하루가 지나고, 한숨 돌리러 다시 나온 호텔 창밖 풍경은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태양은 조금씩 이지러지면서 건물 뒤로 숨고 있었고, 한낮엔 내 발을 쌩까던 바람도 어디선가부터 불어오고

있었다. 왠지 순식간에 가버린 하루, 그 느낌만큼이나 순식간에 저물어버리는 태양.

부드러운 살구색 빛살이 풀어져내리는 하늘 아래서 구두는 꾸덕꾸덕하고...

햇님은 번데기처럼 몸을 뒤틀며 쉬러가는데 난 아직도 오늘의 일정이 절반 가까이 남았고...

카타르 도하를 달구던 태양은 이제 불이 나가버렸다.

상담회장을 정리하고 우선 방으로 짐들을 올려두러 가는 길, 금세 나와서 만찬 행사장에 가야 한다.

호텔이야 어느 나라건 은은하다못해 침침한 조명에 다소 응큼한 분위기가 있다지만, 이날따라 침침했던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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