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결모양으로 휘감아 올라가는 건물의 외관, 한국 전통의 역동적인 춤사위와 상모돌리기에서 영감을 얻어

구현한 디자인이라고 한다. 밤에는 LED조명이 물결을 따라 건물을 휘감았다.


엑스포 최초로 기업연합관 형태로 세워진 '한국기업연합관'. 총 12개의 국내 대기업이 공동으로 참여했다.

처음 연합관이 구상될 때는 끼지 않겠다던 기업들이 개막 이후에는 후회하며 담당자들을 질책했다는 후문.

상해에 눈을 선물한다는 구상, 제대로 맞아떨어진 듯 한 그 아이디어를 최대한 이쁘게 비쥬얼화하면 저런

그림이 나오는 거다. (사실 저렇게 이쁜 눈송이가 내리지는 않는다.)

참고. 상해엑스포, 상해 어린이들에게 눈(雪)을 선물하다.

1층에 있는 전시물, 저 프레임을 통해 보면 수만개의 거울조각으로 이루어진 작품이 조금씩 움직이며 눈이

흩날리는 듯한 이미지를 볼 수 있다. 시선이 이동하면 이미지도 조금씩 변화하는 원리인 거 같은데, 저 거울

조각들은 캔이나 폐지 등의 색채를 빌려온 재활용품이라고 한다.

기업연합관 건물을 휘감은 합성수지 막재는 엑스포 기간이 끝난 후 이런 모양의 쇼핑백 등으로 재활용될

계획이라고 한다. 안 그래도 이런 엑스포가 아무리 '친환경/녹색'을 표방해봐야 행사 기간에만 쓰이는

건물과 부속 시설들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폐자재와 쓰레기가 나오는지. 좋은 아이디어다.
 
잘 보이진 않지만, 저렇게 발바닥이 붙은 위치쯤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커다란 액자가 보인다. 5만여개의

거울조각으로 구성된 액자가 서서히 움직이며 기업연합관에 참가한 기업 12개의 로고와 이미지들을

노출하는 거다.

잘 안 보이니 3층으로 직행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다시 뒤를 돌아보기로 했다.

이런 식의 그림, 계속해서 뭉실뭉실대며 그림들이 일렁이고 있었다.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이 있었거나 저 그림이

좀더 '녹색'과 친하다는 것을 어필할 수 있다면 의미가 더욱 실리지 않을까 싶다.

3층 Preshow 공간. 12개 참가기업의 로고가 소개되며 처음 관람객들과 만나는 공간이다.

기업연합관은 총 3층짜리 건물, 동선은 1층에서 3층, 2층 이렇게 짜여져 있다.

그래서 3층 입구에서부터 시작되는 본전시, 직전에는 무한도전 멤버들과 샤이니 등 한국 연예인들이 상해엑스포

기업연합관 개관을 축하하는 영상 메시지가 계속 돌아가고 있다. 마침 홀쭉해진 길이 방정맞게 인사중.

입구는 다소 어두컴컴한 느낌, 아무래도 안에 있는 장치들이 대개 LED 조명인데다 보여주려는 것도 LCD패널에

나타나는 동영상과 기술들인지라.

12개 기업들을 소개하는 영상을 지나치면 각 기업들의 로고를 터치하고 자세한 설명을 팝업해서 읽어볼 수 있는

커다란 스크린을 마주치게 된다.

"녹색성시 녹의생활". 녹색도시 녹색생활 쯤 되려나. 커다란 테이블 위에는 커다란 터치스크린들이 있어서

관람객들이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훑어보고, 그렇게 체험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벽면에 있는 것들도 전부

직접 사진도 찍고 조종해 볼 수 있는 것들, 최대한의 양방향성을 추구했다더니 정말 그렇다.

SF 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요새야 광고에서도 많이 보이는 장면이지만 손으로 이리저리 작은 창들을 꺼내고

키우고 움직이는 게 이만큼이나 가깝게 구현됐다. 꽤나 재미있다는.

셀카를 찍으면 그 사진이 둥둥 떠다니다가 오른쪽 끝의 줄기에 가서 달라붙는다. 아무래도 셀카는 한국적인

뭔가라고 이야기해도 되지 않을까, 우리처럼 셀카찍기를 즐기고 이렇게 전시관에 기본적으로 깔아두는 곳도

없지 싶은데.

그렇게 12개 기업의 대표 제품 및 서비스를 소개하는 내용으로 구성된 벽들을 지나면 이제 3층에서 2층으로

내려가는 슬로프를 마주치게 된다.

세계 최대의 멀티미디어 타워랜다. 세계최대, 세계최고, 이런 식의 수식어를 붙이는 게 촌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LCD 모니터 192개로 만들어낸 타워라니 크긴 크더라. 아, 192개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 이번 상해 엑스포에

참가한 국가수가 192개라는데, 이는 유엔에 등록된 국가수와 같다고 하니 말그대로 전세계가 모두 참여한 셈.

상영시간 6분여의 영상이 펼쳐지는데 꽤나 화려했다. 전면에 커다랗게 기업 로고를 때려박는 무식한 방식이

아니라, 조금은 세련된 방식으로 흘려흘려 보여주는 게 특히 맘에 들었다. 멋진 광고 한편을 본 느낌.

이번 전시 컨셉은 역시나 '녹색시티'. 2층에서 이어지는 5개의 테마관에서 미래도시의 이미지, 재생 에너지 등의

내용을 담아 관객과의 체험을 기다리고 있다.

각 테마관 모두 서포터즈 언냐들이 있어서 어떻게 하는 건지를 알려주고, 직접 시연해 보여주기도 하고.

전시장의 마지막쯤..전시관이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안에는 꽉 차있다는 느낌이다. 한국관이나 북한관, 심지어

중국관이랑 비교해도 왠만한 체험 프로그램이나 재미있을법한 꺼리들은 다 갖추고 있는 듯.

전시장을 빠져나가기 전에는 2012 여수엑스포를 홍보하는 영상이 뜨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보다 더 눈길을

끌었던 건 바로 그 앞에 꾸며져있던 대여섯송이의 꽃, 그리고 그 그림자 이미지.

상해엑스포 한국기업연합관, 엑스포 참가사상 연합관 참가는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번 상해엑스포에

최초로 연합관이 들어선 셈인데, 외국기업연합관은 이곳과 일본산업관 단 두 곳 뿐. 많은 사람들이 돌아보고

그만큼의 성과까지 얻을 수 있다면 오년 후, 밀라노엑스포에서도 우리 기업들의 연합관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동방명주, 동방의 빛나는 구슬이란 뜻의 이 건물은, 처음 봤을 때는 굉장히 촌스럽고 기괴하다고 생각했는데

보다 보니 대충 익숙해져서인지 이젠 살짝 이쁘단 생각까지 든다. 밤10시가 대충 지나가면서 동방명주에는

불이 꺼졌고, 다만 주변 건물의 화려한 조명이 반사되어 은은하게 그 실루엣을 드러낸다.


그리고 저 붉은 선으로 그려진 중국땅덩이. 계속 바뀌는 건물 외벽 조명들 틈에서 용케 잡아냈다.

그리고 계속해서 바뀌는 네온사인. 흔히 '자본주의의 전시장'이라 불리는 게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조명인 걸

생각하면, 이곳 상해가 온통 네온사인으로 도배한 채 심지어는 고가도로 밑바닥에까지 깔았단 사실은 아이러니.

이런 식이다. 상해 시내에 뱅글뱅글 감긴 고가도로들이 온통 시퍼런 네온조명을 따라 달린다.

愛上世博. 상하이 세계박람회, 엑스포를 기념하는 조명이 화려하다. 사실 이 뷰포인트에서 보이는 건물들은

조명 비용때문에 적자를 보는 경우도 왕왕 있다고 한다. 특히 최근 세계 경기가 침체되면서 적잖은 부담이

되어 왔다고.

강 반대편 말고, 이편을 돌아보면 아마도 조계지 시절에 지어졌을 법한 고풍스럽고 장중한 건물들도 역시

마찬가지 화려한 조명을 흩뿌리고 있었다.

커다란 시계탑, 그리고 건물 위의 둥그스름한 돔까지. 저렇게 건물 전체를 돋보이게 하는 조명기술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들었다. 빛이 한곳만 강하게 뿌려지지 않도록 잘 조정해야 하는 데다가, 전반적인 건물의 외관과

조화를 이루도록 불빛의 방향과 세기를 결정해야 한다던가. 멋진 조명이다.




이렇게 높은 고가도로는 본 적이 없다. 대체 왜이리 번쩍번쩍 도로를 하늘높이 들어올렸을까 싶도록, 쭉쭉

뻗어올린 기둥 위에 두툼한 도로가 얹혀 있다.

아무리 상해가 커다란 도시라 해도 이 거대한 대륙에서 땅이 모자를 일은 없을 거 같은데, 은근히 상해에는

고가도로가 많이 보인다. 그리고 예외없이 이렇게 높이높이. 왜일까.

너무 높고 너무 커다래서 황당한 느낌마저 살짝 출렁거리는 상해의 고가도로들. 그것이 던지는 위압감이란 게

천안문이나 자금성 앞에 섰을 때의 그것과 비슷하다.

굉장히 황량해 보이기도 한다. 고가도로를 몸통이라 치면 저 기둥들은 다리인 셈인데, 적당해 보이는

비율을 넘어선 그 자체가 황량하기도 하고. 하늘을 온통 막아선 잿빛 콘크리트 구조물이 차갑고 냉막해

보이기도 하고.
숙소에서 바라본 상해엑스포장쪽의 야경. 포동과 포서지역을 잇는 구름다리가 쉴새없이 변하는 색색깔의 LED

조명을 흩뿌리고 있었다. 건물들의 윤곽을 따라 선명히 그려지는 스카이라인이 살구색으로 물들었다.







개선문 근처의 야경을 보러 나선 길, 깔끔한 파리 지하철, 메트로의 좌석 배치는 마주보고 앉는 예전 기차와

전철의 여유공간을 합쳐 놓은 듯. 게다가 저 커다란 볼록거울은 버스 뒷문위에 달린 그것과 같다.

지하철역에서 올라서자마자 파랑색 에펠탑이 하늘을 받치고 선 게 보인다. 이미 남빛 하늘은 무지근해졌다.

루브르 박물관으로 넘어가는 화려한 다리. 넘어갈 생각은 아니고 개선문으로 갈 생각이다.

파리의 국회의사당이었던가. 하얀 가로등 불빛이 담백한 대리석벽에 부딪혀서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개선문 올라가는 계단. 쉼없이 나선형으로 올라가는 길이라 속도를 내다보면 순간 어찔, 한 순간이 있다. 살짝

내려다보면 무슨 달팽이관을 꾸역꾸역 말아올리는 느낌이기도.

개선문 내부를 장식한 금속제 문양들. 아마도 영광의 월계관을 상징하는 게 아닐까, 월계수잎이 빼곡히 꼽혔다.

그리고 야경, 거대한 ㅁ자 형태의 라 데팡스를 향한 직선대로는 헤드라이트 불빛을 한껏 머금었다.

[파리여행] 새로운 신전, 라 데팡스

그리고 파랑색 거인. 다소 마른 느낌이긴 하지만 그래도 파란 뼈대에선 안정감이 느껴진다. 그리 높지않은

건물들 사이에서 뾰족, 튀어나와 내려다보고 있다.

[파리여행] 기시감이 덕지덕지, 에펠탑과 야경들.

남빛 하늘은 점점더 어두워져선 푸른 빛이 완전히 사그라들었지만, 그러고 나니 파란 거인 에펠탑이 사방으로

파랑 불빛을 쏴대고 있다. 흡사 등대.

그리고 파리 시내. 프랑스정원식으로 네모박스모냥 손질된 가로수들이 열맞춰 늘어선 커다란 울타리가 있고,

어디론가 향하는 자동차들이 유유하다. 다정다감한 불빛이 돋을새김해주는 운치있는 건물들의 윤곽선.

다시금 꼬부랑꼬부랑, 달팽이보다는 오랜 암모나이트 정도의 거칠고 울룩불룩한 껍데기가 떠올랐던 계단.




휴가여서, 하루종일 강남과 종로, 시청쪽을 돌아다녔다. 역시나 올해도 시청 앞에는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가

꼭대기에 별이 아닌 십자가를 매달고 번쩍번쩍, 휘황하고 가로수 역시 온통 손톱만한 불빛들을 휘감은 채

무슨 열매처럼 눈송이 모양 불빛장식들이 주렁주렁하다.

어둠이 짙게 내려 나무의 형체는 쉬이 보이지도 않지만, 나뭇가지 끝까지 세심하게 잘 단도리해놓은 조명

덕분에 한밤에도 나무 한그루가 어떤 형체인지 여실히 보여줄만큼 촘촘하게 해놓아서 더 이뻐 보이는 게

사실이다. 크리스마스 즈음한 연말 분위기를 내는데 빠질 수 없는 장식이기도 하고.


물론 한철만 지나면 전부 거두어질 '반짝 환경미화'이긴 하지만 언제부턴가 시작된 '루미나리에' 행사보다도

오래전부터 자연스레, 연말이면 나뭇잎을 잃고 앙상한 나무들이 불빛을 품는다고 여겼었다.

불과 몇 시간 전, 해가 떨어지기 전의 같은 장소. 삼엄하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나무마다 허리춤에 전기설비

기구를 차고서는 온통 전기줄로 칭칭 동여매어져 있다. 시꺼먼 전선과 허여멀건 알전구가 나무등걸을 타고

가지마다 빼곡히 올라가는데, 무슨 벌레가 기어오르는 것처럼 징그러운 생각마저 든다.

나무마다 굉장한 품을 들였을 게 틀림없다. 한 그루 한 그루에 모두 전기 배선설비를 하고 나무 꼭대기쯤까지

전선을 돌려감아주려면 대체 얼마나 많은 인력과 예산이 소모되었을까. 저렇게 전기줄로 칭칭 감긴 나무는

스트레스가 심각한데다가 조명으로 인해 야간에도 쉬지 못해 생장에도 적잖은 부작용을 끼친다던데, 연말

분위기를 꼭 저런 식으로 내야 하는 건가. 야경만 보고 만다면야 이뿌다고 치울 수도 있을지 몰라도, 벌건 대낮

발가벗겨진 저 나무들의 흉물스런 모습은 참아 줄 수도, 모른 척 하기도 쉽지 않다. 내가 오버하는 걸까.

무려 '전기위험'이다. 지금이 무슨 나무 전봇대를 세웠다던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도 아니고-하다못해 그때도

죽은 나무줄기를 사용했다지만-잘만 살아있는 나무에 저런 식으로 고문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더구나 이

정부는 '녹색'을 기치로 내건 정부 아닌가. 정부나 서울시청이나 간에 말이다. '녹색'을 이야기한다는 사람의

감수성이라면, 이런 거 불편하고 낯설어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정부만 탓할 것도 아니다. 사실 크리스마스 즈음만 되면 거리 곳곳의 나무들이 몸살을 앓는다. 당장 광화문

인근의 까페니 음식점이니 호텔이니 주변 나무들만 봐도 그랬다.

나는 처음에 무슨 가시나무인가 했다. 이건 정말 할 말이 없을 정도로 경악스럽고 경탄스럽게, 징그럽도록

세심하게 꼬마전구를 말아올린 거다. 아마도 밤에는 굉장히 이쁘겠지. 어둠 가운데 나무 한그루가 온전히

제 모습을 다 드러낸 채 둥실 떠올라 있는 것처럼 보일 거다, 그것도 따뜻한 황금색 불빛으로.

그걸 위해 이렇게 뱅뱅뱅, 벌레들이 나무를 점령한 채 위로위로 좀먹어 들어가듯 전구와 전선은 나무

하나를 꼼짝없이 결박하는 거다. 징그럽고 추하다. 그리고 나무에게 미안하다.

작은 나무라고 예외는 아니다. 가게에서 마련한 트리용 나무인데 뭔 상관이냐 항변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이런

식으로 나무를 괴롭히고 백주대낮의 이미지를 흉물스럽게 해야 하는지, 한번 따져보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안 될까 묻고 싶은 거다. '미감'의 문제라 하면, 단지 야경의 아름다움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나무 자체에 미칠

영향과 햇볕 아래 풍경의 아름다움까지도 함께 따져보자고 하고 싶다.

p.s. 집에 오는 길에 역삼역 근처에서 마주한, 최강의 나무 조명들. 건물을 둘러싼 나무들이 온통 황금빛으로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마냥 이쁘다, 하고 넘길 수가 없었다. 이미 저 정도 조명의 밝기와 세기라면 일종의

공해라고 인정될 수조차 있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굳이 연말에 나무들에 이렇게 꼬마전구들을 칭칭 감아놓아야만 이쁜가, 하는 고민은 해본 적이

없었던 거 같다. 다들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한다. 살아있는 생나무에 이렇게 야만적으로 괴롭히는 방법 말고

뭔가 낮에도 이쁘고 밤에도 이쁠 수 있는 그런 방식, 궁하면 통한다고 우선 이런 미친 듯한 조명에 대한 

거부감부터 생긴다면 새로운 방식은 고안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조명을 휘감고 있는 나무들, 여전히 이쁘게만 보이는가. 연말연시의 야경, '환경미화'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최소한 한번쯤 생각하는 단초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일요일 오후, 육천원짜리 전시를 보았으면 사진찍는 솜씨가 조금이라도 나아져야 하지 않겠나 싶은데.

확실히 겨울이었다. 들어갈 땐 흐릴 지언정 사방이 환했는데, 몇시간 지나지 않아 금세 어둠이 짙게 나렸다.
 
어둠 속, 문득문득 도심의 야만스런 불빛과 소음이 정적을 깨뜨리는 가운데 둥실둥실 떠오른 덕수궁 내 중화전.

배병우 작가는 어부였던 아버지를 닮아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하루의 농사를 준비했다고 했다. 그가 찍은 사진

중 태반은 해뜨기 직전, 실내는 묘한 공기에 감싸이고 바깥은 몽환적인 보랏빛이나 초콜렛빛 어둠이 출렁이는

그런 시간에 얻어졌다고 했다. 뭐, 사진이 쉽게 찍히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어쩌면 상당부분 '우연'이란

요소가 짙게 작용하는지도. 일단 빛이라는 것부터가 그러니까 말이다.

뭐 그런 노력에 비견되랴만은, 쉼없이 눌렀던 셔터, 그렇게 남았던 몇개의 흔적 중 그래도 조금은 봐줄만

하다 싶은 사진들. 진눈깨비처럼 펄럭이며 내리는 빗물 탓이기도 했지만, 한동안 덕수궁미술관 입구 처마 안에

우두커니 선 채 셔터만 눌렀다.

미술관에서 몇 걸음 내딛다가 뒤로 돌아 한 방, 날려줬다. 이녀석 깜짝을 놀랬을 거다. 아닌게 아니라, 하얗게
 
질려버렸다. 스크림의 그 유령 마스크가 떠오를만큼.

확실히, 몸이 움직이니 구도가 바뀐다. 부지런해야 하는구나. 그러고 보면 그동안 내가 찍었던 사진은, 무쟈게

실용적이었던 것 같다. 내가 보는 것, 내가 눈여겨본 것, 그런 것들을 기억에 남기기 위한, 일종의 USB였다.

기억의 외장하드. 딱히 미감이나 예술적인 측면을 고려했던 것 같지는 않다는 게 솔직한 고백. 아..사진 좀

잘 찍고 싶다. 카메라도 질렀는데 제길.

조금 걷는데 하얗게 질린 덕수궁미술관 벽면에 얼룩이 졌다. 무슨 백한마리 달마시안도 아니고, 괴기스럽게

부풀고 꺽여든 나뭇잎들의 그림자가 벽면에 대고 간질간질, 간지르듯 간만 보고 있었다.

아까 밝을 때만 해도 카메라 수십대가 쏠렸던 광명문, 지금은 나와 일대일, 독대하는 중이다. 역시 빛이 부족한

건가. 커다란 구리 종색깔같은 처마 위 하늘 색깔이 제일 맘에 드는 구석이다.

돌아나가는 길, 느지막히 아침 겸 점심만 먹고 아무 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참이었다. 배가 고파서 몸은

뭔가 먹을 것이 있으리라 여겨지는 앞으로만 계속 내달리고 싶어하는데, 손이랑 눈이 브레이크를 잡는다.

참..별 것도 아닌 사진 찍겠답시고 계속 멈춰서서 이리저리 배회하는 모습이라니. 배고파 죽는 줄 알았다.

그리고 사실 그렇다. 낮에 이미 사람들이 우르르 훑고 다닌 길에 닳을 대로 닳아버렸을 구도일 게다. 꼭 내

카메라로 내가 다시 찍어서 내가 다시 간직하고 다시 이렇게 블로그에 올려야 할 이유는 뭘까. 뭐, 모르겠지만

일단은 재미있으니까, 정도의 답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데세랄 지른지 아직 한 달도 안 된 터에 이런 회의와

시니컬한 구렁텅이 따위 빠져들 시간이나 여유는 없는 게다.)

알고 보면 꽤나 넓은 덕수궁과 외부를 연결하는 대한문, 혹은 입장료 내/받는 곳. 특정 포인트를 향해 정연하게

벌어진 등불들과 달리 외부 세상의 불빛은 사방을 향한 사방으로부터의 불빛이다. 잊을만하면 툭툭 떨어지는

산만한 물방울들만큼이나 무질서하고 정신없는 세상이다.

안녕 대한문. 그러고 보면 덕수궁은 꽤나 자주 들르는 곳이다. 일년에 두세번은 가는 듯. 창덕궁 후원-흔히

비원이라 불리는 곳이 여기라던가-을 한번 가봐야겠다고 맘은 먹는데, 아직 한번도 못 가봤다. 배병우 작가가

'생산'해낸 작품 중 소나무를 소재로 한 것은 SNM, 비원을 소재로 한 것은 BWN이란 약자로 시작하는 작품

번호를 가졌다던가.



* 이제부터는 오로지 카메라 자랑을 위한 사진들.

사진으로 일단 찍은 후에 한번 하얗게 불살라 버린듯한 느낌.

사진이 뻘겋게 타버렸다. 그러면서도 묘한 깊이가 느껴지는.

제대로 오래된 사진 느낌..혹은 일반적으로 느끼는 오래된 사진의 분위기란 게 이런 거 아닐까. 누렇게 변색된.

찍고 나서는 아궁이불이 들어오는 구들장 같은 데 기름먹은 장판 속에 한 이십년쯤 묵혀둔 듯한 사진. 

비슷하게 구들장에서 타버린 느낌이긴 한데, 조금 다르다. 타고 나서는, 차가운 가을바람에 한 삼년쯤 식혀진.

뭐, 이문세의 '조조영화'던가, 그런 노래가 떠오른 이유는, 아마 저 오른쪽 창구가 영화티켓 예매소, 그리고

입구는 극장 입구스러워서일 게다. (대체 어디가? 라고 물어도 별로 대답할 말은 없다는...)





2층 드농관

'사모트라케의 니케'. 이 천사는 땅위에 막 내려앉은 걸까, 아니면 막 떠나려는 걸까. 헬레니즘 조각 중 손꼽히는 걸작이라는 이 조각상은 명성에 맞게 독보적인 위치를 점유하며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밀로의 비너스 역시 넉넉한 공간을 확보한 채 독보적으로 우뚝 선 채 사람들에 포위당해 있었는데, 마찬가지다.

피사체로서 니케상과 적당한 거리를 격한 채 둥그렇게 포위하고 있는 사람들. 모두 각자의 카메라로 기록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살짝 든 생각..니케의 조각상이나 밀로의 비너스 모두, 그 오랜 명성에서 기인한 후광효과라거나, 혹은 전시 방식에 따른 효과, 그리고 정말 미적으로 작품 자체에서 우러나는 효과를 구분해 볼 수 있을까 하는. 이미 일련의 회로를 따라 미적감각이 유인되고 승인되고, 또 어떠한 감동을 느껴야 할지도 정형화되어 버린 건 아닐까, 하는 삐딱한 딴지를 걸고 싶었다. 과거의 가치를 전승하고 위계를 공고히 하는 박물관의 디스플레이 기법, 혹은 필연적인 보수성.

이런 식으로 해 보면 어떨까. 다른 유물들, 예술품들과 차별화되지 않는 식으로 함께 전시된다거나 하는 식으로,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명작으로서의 명성을 갱신하고 가치를 재평가받을 수 있도록 해 보는 거다. 사람들이 단순히 '걸작'이니까 아름답다라거나 뛰어나다라는 식으로 사고하지 않도록. 스스로 그걸 발견해 내고 다른 점을 느낄 수 있도록.

물론 이 작품이 다른 것들에 비해 달라보였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특별히 섬세하고도 자연스러운 저 옷자락의 율동감이라거나,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은-아름다운 몸을 가진 인간을 고대로 대리석으로 굳혀 버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인체의 비례라거나, 무엇보다 당장이라도 어디로 떠나거나 혹은 막 어디로부터 떠나온 것처럼 느껴지는 그 생생함. 힘있게 쭉쭉 뻗는 날개 역시 상상력의 소산이라기엔 너무도 그럴 듯 하게 리얼한데다가 묘한 느낌을 던진다.

사람들이 지쳐 간다. 사실 루브르의 정수라 할 만한 것은 역시 2층 드농관에 있는 모나리자 등 회화와 3층 리슐리외, 쉴리관에 있는 프랑스 회화들일 텐데, 이들은 무엇을 보며 여기까지 와서 널부러진 걸까. 나 역시도 저기 한 구석에 앉아서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이 점차 뭉글뭉글 부풀고 있었지만 어차피 빈자리도 없다.

제리코가 그린 '메뒤즈호의 뗏목'같은 회화 대작들을 보며 앞으로 조금씩 조금씩 걸어나가다 보니 일종의 '정체 구간'에 들어섰다는 걸 느꼈다. 모나리자가 앞에 있다.

모나리자가 그다지 크지 않은 그림이란 건 알았지만, 저렇게 작은 그림인 줄은 몰랐다. 세로 77cm, 가로 53cm. 온통 모나리자를 위해 열린 공간에 사람들이 그득그득 몰려 있었다. 한걸음씩, 서둘지 않고 내딛으며 모나리자에게 눈싸움을 걸었다.

사람들을 뚫고 맨 앞까지 나아가 한참동안 요모조모 찬찬히 살폈다. 눈, 입술, 얼굴, 손, 좌우 높이가 살짝 다르다는 배경..뭔가 안개가 스멀스멀 신기한 느낌을 자아내는 기법 탓이라곤 하지만, 역시 신비로운 느낌은 어쩔 수 없다. 주위에 웅성웅성대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없다면, 좀더 깊이 그 느낌에 젖어들 수 있을 텐데 아쉽다.

그치만 굳이 내가 파리에서 봤던 것 중 가장 멋졌던 예술작품을 꼽으라면..역시 오랑주리 미술관에 전시중인 모네의 '수련' 연작. ([파리여행] 빛과 바람, 시간에 희롱당하는 수련..오랑주리 미술관.) 모나리자를 그린 레오나르도의 기법도 신묘하긴 하고, 모델이 된 그녀/그의 웃음도 신비롭긴 하지만, 그냥 난 수련이 더 맘에 들었다.

이런 그림도 인상적이었다. 촛불 시위때 등장했던 '유모차 부대'의 어머니들의 이미지도 왠지 오버랩되었고-맥락이 동일하진 않고 역할 역시 다르다지만-, 가운데 여성의 단호하고 결연한 표정이 가슴을 흔들었다.

그런가 하면 이런 평화롭고도 달콤한 풍경..화환을 만들어 자신의 허벅지를 베개삼아 기대 쉬고 있는 아가씨에게 씌워주려는 남자. 여성의 분홍빛 뺨과 발뒤꿈치가 앙증맞다.

레오나르도의 또다른 그림, '두 명의 성녀와 아기 예수'. 프로이트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유년의 기억"이라는 논문에서 이 그림이 그의 성적인 배경이라거나 어릴 적의 기억, 보다 정확히는 어머니에 대한 금기된 욕망을 해소하는 하나의 수단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 논문에서 프로이트는 이 그림에서 발견된 '독수리'의 형체가 레오나르도가 종종 사로잡혔던 '독수리'의 환상이 반영된 것이라 말하며 이런저런 성적 욕망으로 읽어내는데, 저 그림 속 파란 옷자락이 바로 그 형체라 한다.
한참동안 그림 앞에 앉아 대체 어디에 독수리가 있는지 찾고 있을 때, 마침 옆에서도 유럽인 커플도 그 이야기를 하며 새를 찾고 있었다. 그들도 프로이트가 했던 이야기를 기억하고, 그 새를 찾아내려 하고 있었던 게다. 우리는 한동안 대체 새가 어디에 있을지, 머리가 어디고 꼬리가 어딘지 뚫어져라 그림을 바라보았었지만 결국 그들은 포기하고 모나리자에게 가버렸댔다. 난, 내가 찾은 저게 아닐까 싶은데..모르겠다.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어귀에서 바라본 루브르 궁전. 그 중에서도 팔레루아얄 뮤제 드 루브르 메트로 역과 인접한 리슐리외관. 사람드이 이제 조금씩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다들 저녁을 먹으러 가거나, 다른 곳에 가서 파리의 야경을 감상할 생각이겠지. 난 이제 9시쯤까지만 3층 회화를 둘러보면 되니, 한결 여유로워졌다.

멀리 보이는 카루젤 개선문의 연한 핑크빛 대리석이 단정하고 따스한 느낌이다. 그림자가 잔뜩 길어진 저녁무렵.

3층 쉴리관

앗..이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랬다. 이건 어렸을 적부터 우리 집에 있던 도록에 포함되어 있던 그림이었다. 어렸을 적에는 누나 또래라 생각하며 감상했었고, 조금 크고는 비슷한 나이대라 생각했었는데, 여기서 예기치 못하게 다시 만난 그녀는 이제 여동생이겠다 싶다. 하아....예술의 불멸성이란. (여전히 이 작품의 이름과 작가 명은 모르고 있다. 아시는 분은 좀 알려주시길..ㅡㅡ;)

정말 발을 질질 끄는 수준이 되어 가고 있었다. 루브르 박물관을 걷기 시작한 지 거의 8시간여..4층의 회화 중에는 익히 알고 있는 것들도 많았고, 압도적인 느낌을 주는 대작들도 많았지만 카메라를 들이댈 기력이 쇠해가고 있었다. 사실 속으로는 얼른 다 보고 나가서 좀 쉬자, 란 느낌도 없지 않았고, 또 한켠으로는 좀만 더 버티고 여유롭게 보자..언제 또 루브르 오겠냐..란 오기도 있었고.

그 중 이 그림은 지친 발을 좀 오래 쉬게 할 만한 유인이 되었다. '퐁파두르 후작 부인의 초상', 파스텔로 그려진 그림이라 그런지 색채가 부드러우면서 풍요한 느낌이 들고, 또 그러면서도 무지 세밀하고 섬세한 묘사를 해냈다는 점에서 경이롭기까지 했다. 모델인 퐁파두르 후작 부인은 루이 15세의 애첩이었고,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그녀는 당시 사교계의 여왕이었다고 한다. 그랬을 거 같다. 아름다우면서도 지적인 느낌을 잃지 않았고, 정숙해 보이는 듯 하지만 일변해 요부스러움을 과시할 만큼 충분히 유연하고 풍요로워 보이는 표정이다.(딱 내 이상형이다..ㅡㅡㆀ)

3층 리슐리외관에서는 루벤스의 대작들도 감상하며 파트라슈와 네로를 생각했고, 다른 고전파 화가들의 회화를 둘러보았다. 약간의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보았지만 역시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보려면 오르세 미술관을 가야 한다는 말이 맞지 싶었다. 그리고 난 이제 절뚝거리기 시작했다. 신발을 벗고 보니 심각할 정도의 악취와 함께 거대한 물집이 생겨 있었다.

뭐...저렇게 아름다운 루브르 궁전의 야경을 앞에 두고 할 이야기는 아니지 싶다.

이제 박물관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많이 줄었고, 시간도 거의 9시에 육박해 가던 시간에 난 루브르 박물관 10시간 산책 대장정을 마칠 수 있었다. 아직 문이 닫히기 전까지 시간은 좀 남았고, 난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작품들을 다시 한번 찾아가 보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기로 했다. 으레 전시회 같은 곳에 가면 내가 취하는 코스가 그렇기도 하다. 우선 한번 쭈욱 둘러보고, 그다음엔 맘에 들었던 작품 몇 개를 찾아가 다시 한번 감상하는 것.

3층에서 퐁파두르 후작 부인을 다시 만나고, 루벤스의 그림들을 다시 보고, 2층으로 내려오며 니케를 다시 만났다. 조금 사람이 적지 않을까 해서 모나리자를 만나러 갔더니 거긴 암만해도 나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빠질 생각이 없나 보다. 여전히 시끄럽고 웅성웅성 소리가 울려서 잠시 후에 나왔다. 소란스러움을 피해 제리코의 '메뒤즈호의 뗏목', 베로네세의 '가나의 결혼식', '나폴레옹 1세의 제관' 같은 것들을 다시 둘러보던 중, 박물관의 폐문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9시 반 루브르 OUT. 정말 지쳤다. 뜨거운 열기가 가득한 발에서 은은하게 떨림이 느껴질 정도였다.

바람은 소슬한데 루브르의 야경은 왠지 눈물겹도록 따스해서, 왠지 미친듯이 센치해져서 순간 마음의 갈피를 잃었다. 방금까지 내가 있었던 그 공간의 넘치도록 풍요한 감성과 자극들이 원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배가 차면 조금 낫지 않을까 싶어서, 생각없이 노틀담을 향해 걷다가 예술의 다리를 지나게 되었다. 사람들이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며 떠들고 노는 걸 보고 있자니, 왠지 배도 고프고 가슴도 고프다고 생각했었다.

그러고 보니 이건 완전 한국의 가을 날씨였고, 루브르를 나서며 순간 난 '가을'을 탔던 것 같다.





간판들이 조금씩 젖는다
나는 어디론가 가기 위해 걷고 있는 것이 아니다
둥글고 넓은 가로수 잎들은 떨었고
이런 날 동네에서는 한 소년이 죽기도 한다.
저 식물들에게 내가 그러나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언젠가 이곳에 인질극이 있었다
범인은 '휴일'이라는 노래를 틀고 큰 소리로 따라부르며
자신의 목을 긴 유리조각으로 그었다
지금은 한 여자가 그 집에 산다
그 여자는 대단히 고집 센 거위를 기른다

가는 비......는 사람들의 바지를 조금 적실 뿐이다
그렇다면 죽은 사람의 음성은 이제 누구의 것일까
이 상점은 어쩌다 간판을 바꾸었을까
도무지 쓸데없는 것들에 관심이 많다고
우산을 쓴 친구들은 나에게 지적한다

이 거리 끝에는 커다란 전당포가 있다, 주인의 얼굴은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은 시간을 빌리러 뒤뚱뒤뚱 그곳에 간다.
이를테면 빗방울과 장난을 치는 저 거위는
식탁에 오를 나날 따위엔 관심이 없다

나는 안다, 가는 비......는 사람을 선택하지 않으며
누구도 죽음에게 쉽사리 자수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랴, 하나뿐인 입들을 막아버리는
가는 비.......오는 날, 사람들은 모두 젖은 길을 걸어야 한다

- 기형도, '가는 비 온다'

 *                                                  *                                                  *

빗방울이 톡......톡...톡, 톡톡, 번지다가 어느 순간 쏴아하고 쏟아지던 태국의 밤거리.

비가 번져나가면서, 번들거리는 불빛이 온통 사방으로 녹아내렸었다.
며칠 전, 어쩌다 카메라를 들고 출근하게 되었더랬다. 퇴근하고, 가벼운 회식 자리까지 마치고 집까지 오는 길..

회사를 나와 눈에 보이는 풍경들은 하나같이 왜 이리 칙칙하던지.
둥그런 가로등이 보름달처럼 휘영청 낮게 떠있는 이곳은, 코엑스 유리피라밋 주위의 자그마한 휴식공간이랄까.

그렇지만 겨울비에 온통 젖어버린 벤치엔 앉아 쉴 곳이 없다.

유리 피라밋 너머로 보이는 코엑스몰의 식당가. Glass Ceiling과는 다른 Glass Barrier, 추욱 처질 만치 따뜻하고

안온한 실내의 부유한 공기와 찬 비가 탐욕스럽게 훑고 간 바깥의 가난한 공기를 갈라놓고 있는 그것. 그것은

깜깜한 어둠이 내린 가운데서도 반들반들 개기름낀 이마빡처럼, 번뜩이는 섬광을 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며칠 전 지났던 대보름에는 보름달을 찾아 하늘 한번 볼 생각도 못 했고, 땅콩이나 호두 등속이 가득

담긴 그릇을 다리 사이에 끼고 앉아서는 쉼없이 까먹는 호사도 못 누렸으며, 소원을 뭘 빌지 생각조차 해보지도

않았다. 보름달이 떴다면, 이 정도 각도로 고개를 들어 올려다봐야 저 정도 위치에 있지 않았을까.

이러저러한, 즐겁지만 피로한 술자리, 사람들 만나는 자리들을 정거장처럼 지나쳐서는 집 앞에 섰다.

그러고 보니 우리동네 아파트 가로등도 코엑스 지상의 그것처럼 둥그렇다. 둥그렇고 하얗다. 둥그렇고 하얗고

차갑다. 그리고 왠지 불안하다. You must be fallen from the sky...

술을 마신 탓일까, 아님 야심한 밤에 찍은 탓일까, 한 점에 야무지게 모아져야 할 불빛들은 약간씩 흐트러져 번진

것이 마치 술에 취한 그녀의 립스틱 번진 입가나 살짝 풀린 채 젖은 눈동자 같다. 게다가 사물들이 하늘을 향해

기립하길 거부하고 있는 이 5도쯤의 기울기. 창백한 가로등 불빛에 온통 낯설음만 덕지덕지한 공간.

여전히 그닥 네 녀석에게 빌 만한 건 없어, 중얼거리며 아파트 복도를 지나다. 사람의 기척을 알아채고 귀를 쫑끗

세우는 충성스럽고 성가신 강아지 모냥 반짝 불을 밝혀야 할 센서는 나를 알아채지 못한 채 묵비권을 행사중이다.
 
괴괴한 통로, 묘하게 울리는 구둣발소리의 사성부돌림노래.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위치에너지를 축적하곤, 운동에너지를 소모하며 조금 걸어 대문 앞에 서다.

뒤를 돌아보니 왠지 가슴시린 어둠. 얼른 열쇠를 돌려 문을 열곤 재빨리 닫아걸었다.

알 파이잘리야 타워에서 저녁을 먹게 되었다. 사우디를 떠나기 전 최후의 만찬, 비록 며칠 안 있었다지만.

메리어트 리야드 호텔에서 멀리 어슴푸레 윤곽만 보이던 걸 아쉬워하던 그 뾰족한 뿔같은 유선형의 건물이다.

대체 애초에 뭘 형상화하고 싶었던 걸까, 건물에 조금씩 접근하면서도 계속 궁금했다. 단도? 칼날? 창? 아님...

죽순? 뭔가 봉긋 튀어나오고 날카로운 느낌이 강한 사각뿔 형태의 것..뭘까.

건물 상층부에 남보랏빛 조명 아래 잠시 어두운 부분을 지나치면 드문드문 불이 켜진 (그나마 평범해보이는)

층 공간들의 식별이 가능하다. 그 불빛없는 상층부 공간은 금빛 구가 틀어박혀 있는 곳이다. 그러고 보니 이 건물,

정말 뭘 형상화한 걸까. 날렵하게 빠진 유선형으로 다듬어진 사각뿔, 게다가 끝부분 가까이에는 금색 구까지

박혀있다니. 그나저나 건물에 조명시설은 꽤나 잘 되어 있는 것 같다.

타워 옆에는 호텔 건물이 있었다. 렉서스니 크라이슬러니 벤츠니 베엠베(BMW)의 로고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그 앞 주차 공간에서 유독 많이 보이던 차종은 SUV. 암만해도 사막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니 딱 어울리는 곳이긴

할 거 같다. 저 T자형 하얀 불빛이 차곡차곡 쌓인 공간은 아마도 호텔의 라운지 공간이나..그런 거 같았지만,

모시고 다녀야 할 일행분들을 챙겨야 하므로 쫑긋 고개를 든 궁금증은 애써 눌러담았다.

타워에 들어서기 직전 뒤돌아 찍은 호텔의 전경. 아주 독특한 외관을 갖고 있었는데, 뭐랄까, 둥글게 휜 점토판에

네모난 빵꾸를 뽕뽕 격자무늬로 뚫어놓은 듯한 전면의 모습. 이미 어둠이 많이 깊어진 시간이었고, 배가 고팠기

때문에 다시금 궁금증을 즈려 밟아주었다.

리야드의 통치자인 왕자의 명을 받아 1997년 착공했다는 내용의 '머릿돌'이랄까. 알 파이잘리야 타워는 생각보다

오래 된 거구나, 사우디의 저력..아님 금력을 보여주는 거 같다.

타원 안에 들어서니 모형이 로비 한가운데 버티고 서 있다. 이 곳 역시 금속탐지기에 짐을 던지고, 나 자신 역시

스캐너를 통과해야 입장이 가능한 곳이었다. 아..저런 부속건물이 있구나, 하는 것보다는 그저 이 타워 자체가

참 신기하게 생겼단 느낌이다. 상해에 갔을 때도 동그란 구를 위아래로 두개 꼬치 모냥으로 꼽아놓은 건물, 이름이

동방명주탑이던가..그걸 보고 대체 촌스럽고 초현실적인 저게 뭐냐 했었는데, 그것처럼 똑같은 구를 건물 형태에

본격적으로 도입했으면서도 뭔가 세련된 느낌이다. 실용적인지는 차치하고, 건물의 날렵한 외관을 잡아주는 네개

선 안에 고이 모셔져 있는 황금빛 구는 확실히 그럴듯하다 싶다.

로비 한 벽면에 장식되어 있는 낙타, 그리고 사막의 모래구름 풍경 사진. 사실은 이걸 찍는 척 하면서 저 벤치에

앉은 세 사람을 찍고 싶었다. 온통 까만 옷으로 전신을 감싼 채 두손 모으고 다소곳하게 앉아있는 여성, 그리고

마치 신라시대 불상에서 느껴질 법한 우아하고 맵시있게 떨어지는 옷의 주름을 과시하려는 듯 쩍벌남의 자세를

과시하며 완연히 여성을 소외시킨 두 남성. 여성이 살풋 고개를 숙인 채 이야기에 공손히 귀기울이고 있는 듯한

자세가 왠지 이 나라, 사우디아라비아의 분위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 같았다.

위의 사진을 찍고는 잽싸게 초점을 옆으로 이동, 안 그래도 일행분들이 저사람들이 여자 사진찍는 줄 오해하면

큰일난다고(실제로 사진 찍은 건데), 그러다 카메라 뺏긴다며 염려해 주셨다. 천장도 높고 공간도 꽤나 넓은

로비였지만, 그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건 단지 커다란 금속탐지기, 타워 모형, 그리고 드문드문 엉성하게 놓인

저 화분들. 휑뎅그레한 느낌이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10층이던가, 그쯤에 있는 식당으로 올라가면 드디어 밥을 먹을 수 있는 거다.

아무리 배가 고파 손이 떨려도 엘레베이터 문짝이 건물 모습을 담고 있는데야 또 게으를 수는 없지 싶어서.

10층, 통유리로 감싸인 실내의 레스토랑은 부페식, 양고기와 온갖 아랍 전통 음식이 가득했지만 그보다 내 관심은

유리문을 열고 나가면 실외 전망공간으로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후 온통 그쪽으로 쏠려 버렸다.

생각보다 사우디 리야드의 야경도 볼 만하다 싶었다. 그렇게 높은 곳에 오른 건 아니어서 거리나 건물의 불빛들을

위에서 내리꽂듯 본다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이런 식으로 살짝 비스듬한 각도로 편하게 보는 것도 좋았다.

건물들의 실루엣에 중간중간 끊겨나간 거리의 꼬마가로등 불빛들, 앞건물에 가리워진 뒷건물의 옆구리. 그리고

저 멀리 까만 하늘과 까만 땅의 경계를 그어주는 주홍불빛무리들. 그런 것들이 왠지 살짝 감질나면서도 못견디게

사랑스러워지는 순간. 저 불빛 하나하나가 사람의 심장이거나 생명 그 자체인 양 따스한 느낌이다.
큰길을 따라 주욱 늘어선 가게나 기타 자본주의적 공간들의 네온사인이 화려하다. 다국적기업들의 간판도 꽤나

많이 봤고, 베스킨라빈스, 맥도널드, 피자헛 이런 것들도 쉽게 눈에 띄는 곳이라 첨에는 살짝 당황했지만, 여기

사우디는 원래 그런 곳이었던 거다. 다른 아랍권 국가들처럼 반자본주의, 반미적인 투사형 국가가 아니라, 단지

자신들의 왕정의 안위가 가장 큰 관심사일 사우디 아라비아 왕국.


실외로 나서니 한바퀴 돌아볼 수 있게 사면으로 연결이 되어있었다. 한쪽 방향에서 한 장씩, 그렇게 네장을

찍음 되겠다 했지만 그게 또 아니다. 보다 밝고 불빛이 화사한 곳, 보다 어둡고 불빛이 귀한 곳, 고만고만한 높이의

건물들 사이에서 불쑥 뛰쳐올라 하늘을 찌르는 건물-랜드마크라고 부르는-이 있는 방향이 있는가 하면, 그 고만한

높이마저도 현저히 낮아보이는 주택가 지역쪽 방향이 있다는 걸 금세 알아채고 말았다.


확실히 심심하고 단조롭게 배치된 불빛들, 단순히 내 생각일까, 불빛도 한결 흐리멍텅해 보인다.

이게 내가 느낀 사우디의 이미지에는 훨씬 맞아떨어지지 싶다. 그러고보니 이쪽에는 가게 간판 불빛도 잘 눈에

띄지 않는다.

다시 한번 비교해 봐도 뭔가 많이 다른 것 같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라 해도 다양한 풍경과 높이, 그리고 불빛이

공존하듯 이곳 리야드 역시 그런 게다.

사진을 얼추 찍고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실외에 마련된 자리 한 켠에 검은 옷으로 둘둘 감은 여성들만 세네명이

앉아 까르르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거다. 순간 내 머리를 스친 두가지 생각, 실외의 전망을 위한 통로를

찍는 척하면서 찍어야겠다는 생각과 잘못 찍었다가 큰일나겠다라는 생각. 첫번째 생각이 카메라를 눈높이로

끌어올려 전광석화같은 속도로 셔터를 누르도록 시키는데 두번째 생각이 개입해서는 손을 잡아끌어버렸다.

그러니 이 사진은 내 머릿속에서 두가지 생각이 광선검의 뿜어나오는 섬광같은 속도로 충돌하며 빚어진 사고현장.
자리에 돌아와 밖에 여자들만 앉아 있다는 이야기를 하니, 나보다 앞서 그곳을 지나쳤던 일행 한 분은 그 여자들이

자신을 응시하며 말을 걸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신다. 알고 보니 이곳은, 일반인이 출입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장소라 왕족 같은 높은 신분이나 부유한 계층(이 두 집합은 대개 겹치기 마련이지만)의 여성들이 와서 다소간의

자유를 즐기고 가는 공간이랜다. 머릿수건, 히잡을 잠시 벗고 담배를 피거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여성끼리

와서 움직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 다른 남성에게 말을 거는 일도 있는 곳. 그런 자유를 원하는 건 신분고하나

빈부격차를 막론하고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어쨌든 이곳은 거의 유일한 사우디 여성의 해방구라는.

실내 레스토랑 천장에서 별빛처럼 반짝이는 조명들. 창밖 어둠이 깊어질수록 실내도 점점 어두워지면서, 저 멋진

조명은 사실 아무런 조명으로서의 기능은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촛불이라봐야 음식이 어떻게

생겼는지 정도나 알려주고 앞사람 얼굴이 웃고 있는지, 찡그리고 있는지 정도나 알려줄 뿐.


참, 술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는 사우디에선, 살짝 탄산맛이 나는 사과레몬주스를 술 대신 마셨다. 발효가 조금

되었는지 알콜맛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사과와 레몬맛이 섞여서 달콤시큼한 게 맛있는 주스같기도 하고 그랬다.

사우디는 비록 금주령으로 유명하고, 공식적으로 술을 팔지도 사지도 못한다고는 하지만, 또 음성적인 밀수로

들어오는 술의 양이 거의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그 술들은 대개 왕족들이 개인적으로 소비하게 된다는데,

일종의 암시장에서 수급상황에 따라 널뛰기하는 가격만 맞출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도 구할 수야 있다고 한다.

또 하나. 사우디의 밤거리를 달리는 차들을 보면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데, 떠날 때가 다 되어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불빛들이 강렬하게 눈을 찌른다. 마치 빙판위를 달리는 것처럼, 자동차의 불빛들이 아스팔트 노면위에서

잔뜩 궁글려져서는 더욱 번쩍번쩍 시야를 교란하고 있는 거다. 저게 고급 아스팔트라는 설명이었다.

왜 레이싱 도로를 보면 반질반질 윤이 나고 타이어와의 접착력이 높다고 하는데, 바로 그 아스팔트 도로라는 것.

비가 올 일이 일년에 하루 있을까말까 하다는 곳인지라 이런 매끄러운 아스팔트를 써도 거의 무방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대신 어쩌다가 정말 비라도 오면 여기저기서 사고가 터진다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불빛을 저렇게나 반사시키며 미끄러뜨리는 걸 보건대, 운전할 맛은 제대로 나지 않을까 싶었다. 거칠거칠한

표면 위가 아니라 벨벳처럼 부드럽고 매끈한 도로 위를 착 달라붙는 느낌으로 운전한다면..절로 엑셀레이터에

발이 가겠지. 차들이 아스팔트 위가 아니라 검은색 빙판 위에 버티고 선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루브르 궁전의 야경을 보고 싶었다.

저녁을 든든히 먹으니 파리 시내 곳곳에서 솟구쳐 오르는 쌀쌀한 밤바람이 한결 수월하게 느껴졌다. 조금은 더

매끈하고 조금은 더 시원하다는 느낌으로 바람을 등에 지고서는, 불쑥 치받은 생각을 따라 걸었다.

오...유리 피라밋을 밑에서부터 다시 지탱해 세우는 듯한 저 조명의 힘. 그리고 멀찌감치 떨어져서도 궁전의 얼굴이

보인다. 자동차 앞모습을 보며 사람의 찡그린/화난/웃는/사념에 잠긴 모습을 쉽게 떠올리듯 건물의 전면을 보고

사람의 표정을 읽어내자고 한다면, 아마 루브르 궁전의 표정은 왜 영화 스크림에 나왔던 유령마스크 같다는 생각.

혹은 뭉크의 작품 '절규'의 표정을 살짝만 완화시킨다면 루브르 궁전의 표정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가까이 다가가서 볼수록 유서깊은 루브르궁전의 삼층 창문은 속이 퀭하니 들어간 동공처럼 보이고, 일층의 입구는

ㅇ모양으로 모은 입술처럼 보이는 것 같았다. 그 옆에서 광선검 두 자루가 서로 챙캉대며 부딪히는 듯한 느낌의

유리 피라밋 실내 조명.

유리 피라밋 주위를 둘러싼 분수에 물결치는 백색의 불빛너울. 낮에 사람이 미어터질 듯이 많았을 때에는 미처

눈에 띄지 않았던 분수였는데, 역설적이게도 어둠이 공간에 들이차고 나니 분수대의 조용한 반짝임이 멀리서부터

눈에 와 박혔다. 낮에 왔던 루브르 궁전과 유리 피라밋과는 영 다른 느낌.

루브르 궁전에서 튈를리정원 쪽을 아무리 눈여겨 보아도 불빛이 거뭇거뭇하니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생선 비늘같기도 하고 뭔가 기하학적인 무늬가 아름다운 유리 피라밋이 속이 비치도록 투명한 불빛에 힘입어

둥실 떠올라 있는 풍경은 정말 쉽게 눈을 뗄 수 없었더랬다. 더욱이 루브르 궁전의 화려한 노란빛 조명이 백색의

유리 피라밋 조명과 마주 서 있는 풍경이란..
궁전의 앞마당에는 가로등 이외에도 다른 조명이 여럿 설치되어 분위기를 더욱 화사하게 만들고 있었다. 예컨대

위의 사진에서처럼, 마치 불을 켜든 청사초롱을 바닥에 내려놓은 것처럼 네모난 조명틀 속에서 빛나는 백열등 불빛.

사실 유리 피라밋은 단순한 사각뿔 하나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주위에 그보다 작은 몇개의 사각뿔

유리 피라밋이 호위하는 형태처럼 되어 있다. 그리고 그 공간을 분수대와 분수가 메꾸고 있달까.

이미 어둠이 꽤나 짙어진 시간이었음에도, 사진촬영을 온 신혼부부가 언뜻 눈에 띄었다. 응, 이런 곳서

사진을 찍으면 기억에 남을 만한 사진이 나올 듯 했다. 뭐, 장비가 꽤나 전문적으로 갖춰져야 제대로

된 사진이 나올 것 같다는 전제조건이 있지만.

내가 찍었던 사진들은 아무리 조리개를 넓히니 어쩌니 해도 시시각각 깊어지는 어둠의 힘을 못 이기고

하나둘 꺼먹꺼먹하게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저 뒤에 보이는 하얀 웨딩드레스의 시커먼 새신부.

이쯤되면 완벽한 반영이다. Reflection. 뒤집어서 놔도 금방 알아채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하기야

찍고 나서 한동안은 이 사진이 대체 어디가 위일지 감도 안 잡혔었으니깐.

유리 피라밋의 반짝임에 혹해서 한동안 몰입해 있었지만, 사실 루브르 궁전의 화사하고 우아한 윤곽도

그에 못지않다. 바람결을 타고 어디서부턴가 들리는 바이올린 선율까지. 어느 거리의 악사가 고심해서

루브르 궁전의 어느 통로쯤에 서서는 소리의 반향을 맘껏 즐기며 켜고 있는 게다, 몇 번쯤 음정을

틀린다 해도 사방으로 튀어나가고 다시 반사되는 소리의 깊이와 울림에 쉽게 가려지기도 할 테고.

그러고 보면, 인간의 문명이라는 것, 그리고 지금의 순간을 '현대'라고 규정짓고는 그 이전의 시간을

모두 '과거'라 해서 박물관 속 유물로 안치해 놓는 것들은 거개가 시각적인 것들이다. 눈에 보이는 것들.

그 밖의 다른 감각들..청각이라거나 후각이라거나, 그런 것들에 대한 과거의 정보는 대부분 휘발되어

버렸고, 하다못해 불과 한달전에 다녀온 내 여행에서 기억해 왔던 바이올린의 선율, 한줄기 서늘한

바람에 느꼈던 한기, 빵집에서 맡았던 그 고소하고도 기분좋은 냄새..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싶다.

이제부터 바이올리니스트를 찾으러 루브르 궁전의 내외곽을 돌아다니는 짧은 탐색의 기록.

음악 소리는 ㄷ자 모양의 루브르 궁전 건물에 부딪히고 꺽이는 바람을 타고 끊어질 듯 이어지고 있었지만, 막상

어디에서 나는지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았다. 어두컴컴한 구석 여기저기서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이나, 담배를

피우면서 우르르 몰려앉은 프랑스 청소년들, 아니면 나처럼 카메라를 한 손에 쥐고는 등에 가방을 둘러멘 여행자.

그리고, 마치 무도회라도 있는 양 불이 환하게 밝혀진 루브르 궁전.

조명의 질감이 이렇게 달라 보인다. 아마 찍은 시간대가 차이나서 이렇게 조명'빨'이 달라보이는 것 같은데,

이런 식으로 어둠이 내려앉음에 따라 변해가는 루브르 궁전과 유리 피라밋의 분위기를 느껴보는 것은 놓쳐서는

안 될 경험이지 않을까 싶다.

저 안에는 '모나리자'가 있고, '성가족'이 있으며, 밀로의 비너스상이나 니케의 여신상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 작품이 한가득 전시되어 있댄다. 그치만 왠지 한밤에 바라본 루브르 궁전은, 그런 미술관 내지 박물관이라기

보다는 고관대작들이 화려하게 치장하고 무도회라도 벌일 것 같은 곳이었다.

바토무슈란 파리 세느강을 내달리는 여러 유람선 코스 중의 하나를 담당하는 유람선이라고 한다. 메트로 9호선

Alma-Marceau역에서 내려서 Pont de L'Alma 다리아래에 승차장이 있는데, 대략 1시간20여분간 유람선을 타고

세느강을 따라 오르내리고는 원래 위치로 돌아오는 코스. 에펠탑이 굽어보는 선착장에서 그랑/쁘띠팔레를 지나

콩코드광장, 루브르박물관, 시테섬, 노틀담성당, 퐁네프 다리, 오르세미술관, 알렉산더 3세다리 등을 돌아서 다시

에펠탑 쪽으로 돌아오는 게다.


애초 내게 이 유람선을 꼭 타고 돌아오라 했던 여자친구는 특히, 야경을 보고 싶다면 9시쯤에 선착장에 나가라는

조언을 줬었고, 그 말을 명심했던 나는 에펠탑이 이미 파란색으로 물들어버린 저녁 시간에 맞춰 선착장에 도착했다.

철골 하나하나를 모두다 파란 빛깔의 물감통 속에 빠뜨렸다가 다시 조립해낸 것 같이, 에펠탑을 구성하는 뼈대가

파르스름한 빛을 머금고 있다. 노란 별 열두개와 파란 탑의 모양새는 마치 어렸을 적 디즈니 만화에서 봤던 마법사

모자같기도 하고..왜 마법의 힘을 가진 모자를 훔쳐 썼던 마법사의 제자가 물긷는 빗자루 하인을 수없이 만들어

놓고는 온동네를 물바다로 만들어버렸던가..그런 이야기에 나오는 높고 뾰족한 모자 말이다. 

시간간격이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는데, 9시부터 한 십여분, 저렇게 에펠탑은 반짝이기 시작한다. 마치 별들이

쏟아져 내려와 에펠탑에 부딪혀 명멸하는 것처럼. 그 불빛들이 저마다 번갈아가며 수다스럽게 깜빡이는 호흡이란

건 크리스마스 트리에서 흔히 보이는 전구들의 깜빡임보다 두세배는 더 빠르지 싶다.

파리지앵은 저 요란스럽게 빤짝이는 불빛쇼를 '창녀같다'며 싫어한다고 하지만 글쎄..에펠탑에 올랐을 때 전망대

2층에서 봤을 땐 천지사방에서 불빛이 휘황하게 번쩍이는 느낌이 천박하다기보다는 무지 화려하다는 느낌이었다. 

그치만 역시 자주 보니까 질리더라. 나중에는 역시 파랗게 단정한 에펠탑이 훨씬 매력적이라고 동의하게 되었다.

마치 그런 취향의 동조로 파리지앵에 한 걸음 가까워지기라도 할 것처럼.


에펠탑을 지나 선착장에서 배를 타려고 내려갔다. 관광버스가 빼곡히 주차되어 있는 주차장을 보고 사람들이 전부

야경보겠다고 유람선 타러 온 게 아닐까, 잠시 긴장했지만 그렇진 않았다. 물론 유람선이 꽉꽉 찰 만큼 사람들이

많았고, 자리도 제대로 못 잡겠다 싶어 유람선 한 척은 먼저 보내주고 삼십분을 더 기다리긴 했지만.

유람선 출발. 생각보다 빠른 속도를 움직이기 시작했고, 방송으로는 프랑스어,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어..까지

나왔던 듯 하다. 좌석마다 전화기처럼 생긴 기구가 놓여 있어 유람선이 지나는 주변 풍경이나 건물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머..딱히 그런 설명이 없어도 이제 어디에 무슨 건물이 있는지, 저게 무슨 건물인지 보면

딱 알아볼 수 있을만큼은 익숙해졌기 때문에 그냥 아무 도움없이 유유히 배 밖의 풍경을 감상했다.

한강 유람선을 작년에 한번 탔었는데, 계속 이상한 트로트 음악만 시끄럽게 나와서 영 거슬렸던 적이 있다. 그때도

야경을 보겠다고 밤에 탔었지만 생각보다 한강변의 야경은 어둠이 깊었고, 그다지 조명을 아름답게 꾸며놓지도

않았다고 실망했었다.

단순비교는 무리일 테다, 왜냐면 파리의 세느강은 한강의 폭에 비하면 개울 수준이랄까, 유람선 선로로 치면

왕복 이차선정도일 거 같고, 한강은 못해도 왕복 육, 팔차선은 될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왼쪽, 오른쪽의 풍경이

훨씬 손에 잡힐 듯 잘 다가온 탓도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확실히,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건물들이 계속해서

나타났다. 이 사진은 세느강이 고작해야 이차선이지 않을까, 라는 내멋대로의 추측에 근거가 될 만한..교차하는

두 대의 유람선. 어둡지만 않았다면 상대 배에 누가 탔는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가 충분히 식별가능할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바람이 무지하게 차가웠다. 유람선 내에는 아크릴로 천장이 덮인 실내 공간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 배의 가장자리에

기대어 바깥을 구경하다가 추워지면 들어가고,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메꾸고, 그런식으로 로테이션하며 사이좋게

관람했다.

시테섬을 지나 노틀담 성당이 보이는 곳까지 이르렀다. 시시각각 깊어지는 어둠에 사진이 조금 흐릿하게 나왔지만,

불빛을 무수하게 깨뜨려서 퍼뜨리는 세느강의 수면과 어둠속에서도 선연한 노틀담 성당의 멋진 정면 모습은 왠지

가슴 속에 잔잔한 울림을 던져주었다.

몇 개의 다리를 지났고, 그러한 다리마다 지상에선 볼 수 없던 곳에 새겨진 다양한 문양들과 그림들을 품고 있음에

탄복했다. 사실 그저 밋밋하기만 할 거라고 생각지는 않았지만, 단순히 강을 가로질러 이어주는 기능적인 면만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미적인 건축물이자 감상물이라는 마인드가 부러웠다.

갑자기 선내가 소란스러워졌다. 평온하고 경쾌한 '솔'음을 줄곧 유지하며 몇개국어로 가이드 멘트를 해주던 누님이

높은 '도'음쯤으로 음정을 높이고는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며, 금방 나타날 다리를 지날 때 눈을 감고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뤄질 거라고 했다. 글쎄, 무슨 소원을 빌어야 하나. 곰곰 생각하기엔 배가 너무 빨랐고, 다리가

너무 순식간에 나타났다. 이건 뭐 유성이 꼬리를 끌며 떨어지는 걸 보고 소원을 빌라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하고

툴툴거리면서 우선 잽싸게 사진부터 찍었다. 한두장 찍고는 흔들린 사진에 불평할 겨를도 없이 초스피드로 눈을

감고 소원 하나, 둘, 셋..이것 저것 손끝에서 비비적대며 우선순위를 가늠하다가 끝나버렸다.

다른 사람들은 잘들 빌었을까. 다음에 또 이런 경우가 생기면 뭘 빌어야 할지 미리 준비해 둘까..하고 생각한 다음

순간, 세느강 수면에 비춰지는 불빛 쪼가리들의 일렁거림이 시야를 붙잡았다.

주홍빛으로, 하얀빛으로 반짝이며 광택을 흘리는 실크 재질의 천을 갈기갈기 찢어 놓은 느낌이다. 인상주의 화가의

그림처럼 대담하게 그어진 굵고 힘찬 획들이 세느강 위에 온통 흩뿌려져 있다.

멀리 에펠탑이 다시 보이고, 강변의 둥근 가로등불이 세느강에 떨궈져서는 수십배의 빛무리를 만들어냈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살짝 센치해지기도 하고, 지금 내 머리를 흩날리는 바람을 볼 수 있다면 아마 저런 느낌의

파장일 거라고 생각했다.

내게 큰 의미나 울림을 던지지 못하는 수많은 다른 객체와 타인들과 섞여 있던 낮과는 달리, 니가 누군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어둠, 그리고 불빛. 저런 스포트 라이트를 받을만한 건물이 많을수록 야경이 멋져지듯이,

저런 아우라를 지닌 사람이 주위에 많을수록 '삶'이라는 여행이 멋져질 게다.

그새 더욱 농밀해진 어둠 속에서 에펠탑의 파란 빛은 더욱 미묘해졌다. 주위의 검은 빛을 조금 덜어내서 파란 빛에

풀어냈는지, 조금은 어두워진 파란 빛깔이 어둠 속에 둥실 떠있다.

몇 장을 찍어 보아도 좀처럼 딱 이거다 싶은 사진을 못 고르겠었는데, 지금은 또 막상 이건 아니다 싶은 사진도

못 고르겠다. 이제 난 파란빛을 머금지 않은 에펠탑의 야경은 생각지도 못하게 되어버렸다. 매년 다른 빛깔로

탑을 치장한다고 하는데, 일종의 첫인상 효과랄까..아마 다른 색의 에펠탑을 보게 되면 아쉬움과 더불어 왠지

억지스런 꼬투리를 잡는 건 물론이고, 혼자만의 배신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치만 정말이지, 검은 밤에 파란색 에펠탑이 노란별을 두르고 서있는 거 말고, 어떤 그림을 더 상상할 수가 있을지.

빨간색? 보라색? 초록색? 노란색? 음...글쎄. 역시 파란색만한 게 없지 싶다.

티켓은 11유로였던가, 다른 미술관이나 건축물 입장료에 비긴대도 싼 편은 아니다. 그렇지만 꼭 한 번, 특히 밤에

탄다면 파리가 품고 있던 또다른 비경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1. 에펠탑에서 빛나는 저 불빛들, 마치 별들이 내려앉은 것처럼 반짝반짝하는 느낌이어서 꼭 담고 싶었는데

가까워서일까요, 불빛이 번져보이는 이유란 게. 아니면 나름 수동기능을 활용하여 노출을 늘린 탓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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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아이들은 초점이 안 맞은 건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 어릿어릿하게 나타날까요. 점묘화같은 느낌은 맘에

들지만, 이유라도 알아야 담에 또 이렇게 찍을 거 아니겠습니까.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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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너무 어두워서 안 나오는 거였다고 생각하려 해도, 이 사진같이 후면에서 때려지는 조명이 있는데도 사진이

이렇게 오톨도톨하게 보이는 이유는 뭘까요...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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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파란색으로 염색한 듯한 에펠탑의 뼈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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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를 하겠다고 떠났던 군대 후임녀석 하나가, 어딜 가도 이미 왔던 곳만 같다고 투덜투덜거렸던 걸 기억한다.

이미 책과 미디어 등 온갖 매체를 통해 밟아보지도 않은 미지의 땅들의 이미지와 풍광들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상황이란 건 어떻게 생각하면 시청자들-잠재적인 방문객들-에 대한 폭력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출장으로

처음 발딛은 국가의 첫인상과 체류 기간중의 즐겁지 않던 경험이 맞물리면서, 그 나라를 다녀왔다고 할 수도

안 다녀왔다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인데다가 다시 가기에는 왠지 꺼려지는 망쳐버린 첫 경험 같달까.


에펠탑이야말로 그렇듯 영화, 드라마, 책, 그림, 만화, 그리고 지금 내가 끼적이는 이런 블로그가 떠도는 인터넷을

통해 쉼없이 소비되고 있는 상징물이다. 현지에 가보지도 않고도 이미 익숙할 대로 익숙해져서, 눈여겨 본 적없는

옆집 대문에 그려진 문양이나 출근길에 마주치는 회색빛 콘크리트 건물보다 낯익어 버린 것 같다고 표현해도

그다지 과장은 아닐 거다. 나 역시, 그러한 느낌으로 에펠탑을 찾았고, 별다른 기대없이 에펠탑을 바라봤으며,

이렇게 살짝 '숭악한' 마음으로 부유하는 이미지를 늘리고 있다. 다소 양해를 구하자면, 아무리 그런 기시감을

품고 나른한 눈빛으로 올려다본 에펠탑이라 해도 밤에 보면 좋더란 거. 낮에 봐도 뭐...난 나름 좋더란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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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에펠탑을 마주했던 건 샤요 궁전의 발코니 쪽에서였다. 물론 전반적으로 나지막한 건물들이 늘어선 파리

중심가 어디서든 대부분 에펠탑의 일부는 볼 수 있다지만, 에펠탑 자체를 목적으로 가장 가까이 근접했던 경로가

바로 샤요 궁전 발코니였다는 얘기. 에펠탑 전경을 막힘없이 볼 수 있는 곳인데다가, 파리 시내를 다소 서쪽서

중심부쪽으로 바라보는 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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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관광객뿐 아니라 파리지앵들도 많아 보였다. 1유로에 3개씩 판다는 에펠탑 열쇠고리를 파는 상인들도

보였고, 발코니에 다닥다닥 붙어서 자연스런 애정행각을 벌이는 커플도 두드러져 보였고. 그치만 역시 무엇보다

저 앞에 버티고 선 살짝 연한 구릿빛 뼈대를 드러낸 에펠탑이 한걸음한걸음 크게 확대되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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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의 녹지는 샤요궁전 자체의 정원, 그리고 에펠탑 건너편에는 샹드마르스 공원. 첨엔 어디에 뭐가 있는지

감도 잘 안왔었지만, 에펠탑을 기준으로 이쪽과 저쪽, 왼쪽과 오른쪽을 나누어 보면 어디에 뭐가 있는지, 어디서

어디까지 걸어서 얼만큼 걸릴지 가늠할 수 있는 영점을 잡아주기도 한다.

에펠탑의 별 12개. 애초 유럽연합을 구성했던 12개의 국가를 상징한다고 하는데, 왠지 탑 가운데 저렇게 노랑별,

아님 노란 야광별을 붙여놓았단 건 살풋 유치한 느낌도 없지 않다. 꼬맹이들 방 천장에 붙여놓는 그런 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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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코니에서 상당히 거센 바람을 맞으며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해떨어지기 전에 에펠탑에 올라가서는 그 위에서

파리의 야경을 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냉큼 내려와서는 에펠탑으로 서둘러 걷기 시작, 그 와중에도 뒤를

돌아보며 왠지 이집트 룩소에서 보았던 하트셉수트 여왕의 신전하고 외관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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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이 네이버에서 구한 하트셉수트 여왕의 신전 사진. 이집트 여행갔을 때에는 저기서 경비아저씨들 밥도

같이 먹고 잠시 까무룩 잠도 들고 그랬었는데.

그리고 서비스샷이랄까, 샤요궁전 앞의 분수대, 최근 코엑스 앞에 만들어놓은 피아노 분수에서 목욕물 넘치듯

흘러내리는 물과는 좀 다른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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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역시 구글링을 통한 코엑스 앞 피아노분수의 사진. 너무 이뿌게 나온 감이 없지 않다.

이제서부터 에펠탑에 다가서면서 정신없이 찍어제낀 질풍같은 카메라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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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탑의 네다리에서 모두 위로 올라가는 엘레베이터가 운행한다. 1층, 2층, 그리고 꼭대기의 전망대까지 올라갈

수 있는데, 동서남북 어느 다리에서 올라가던 모두 1, 2, 꼭대기 전망대 공간에선 같은 곳에 서게 된다.

엘레베이터는 일반 건물의 그것과 똑같은 원리, 비슷한 형태일 텐데, 다만 오르내릴 때 바깥 풍경이 가감없이

펼쳐짐으로써 약간의 울렁거림을 동반했다. 처음에는 다소 기울어져서 경사를 타고 오른다 싶더니, 어느 순간

위로 수직상승하는 느낌의 엘레베이터. 그것과 똑같이, 에펠탑의 뾰족한 상반신을 향한 완만한 기울기의 하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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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금방 지면 어쩌나 했는데 생각보다 늦게 떨어졌다. 거의 9시가 가까워서야 비로소 어둑어둑해지고, 에펠탑의

최초의 불이 들어왔다. 이미 2층에 올라와 있던 나는 저 위에 보이는 전망대까지 안 올라간 게 별로 아쉽지 않다고,

다행이라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살짝 겁먹을 만큼의 높이.


그런데, 그러고 보니 얜 갑자기 파랗게 물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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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어두워지는 하늘, 점점이 밝혀지는 주홍빛 가로등. 아까 내가 에펠탑을 올려다보던 샤요궁전이 조그맣게

보인다. 요란한 불빛을 뿜고 다니는 반딧불이같은 저건 세느강의 유람선. 

그리고 뒤켠의 괴물처럼 솟아있는 라데팡스 지구의 고층건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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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변에는 고층아파트가 줄지어 서있어서 자기들끼리 조망권이니 일조권이니 싸우고 있지만, 세느강변에는

그런 고층건물은 별로 안 보인다. 덕분에 멀찍이 섰는 건물에서 퍼져나오는 불빛도 흐릿하지만 잔잔하게 감지된다.

너무나 평화로워 보이는 파리. 그것도 이만큼의 거리를 격하고 보니 더욱더 평화로워 보이는 미니어쳐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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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드 마르스 공원과 왼켠의 앵발리드가 보인다. 멀찍이 불끈 솟은 검은색 건물은 몽파르나스..일 거다 아마.

조금씩 어두워질수록, 세련된 조명을 맞은 몇몇 유명한 건물들이 둥실대며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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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무덤이 바로 여기랜다. 앵발리드. 어떤 식으로 조명을 비추는 건지, 마치 건물의 벽면에서 불빛이

스며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꼬맹이때 잠잘 때 방에 켜두던 조그마한 전등 갓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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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느낌으로 가라앉은 건물들 사이를 잔잔한 가로등 불빛이 구획짓고 있다. 점점이 지나가는 붉고 노란

자동차의 행렬마저 무성영화처럼 아스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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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문. 개선문에서 보는 야경이 에펠탑의 야경과 더불어 볼만하다고 하던데, 뜨기 전에 한번 가야겠다고 다짐.

순식간에 어둠이 감싸더니 더이상 카메라를 들이대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깜깜해져버렸다.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해

주위를 둘러보니 많이 한산해졌다. 짠내빠진 바닷바람같이 윙윙 불어대는 바람이 불쑥 차갑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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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탑 전망대 티켓. 7.8유로짜리였는데, 엘레베이터를 탈 때 한 귀퉁이를 이렇게 잘라서 표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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