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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밭을 따라 걷고 있는데 왠 아저씨가 시야에서 얼쩡거리더니 갑자기 허리를 굽혔다.
다시 허리를 편 그의 손에서 빛나는 금반지 하나.

약간은 야단스런 발걸음으로 내게 다가오더니 금반지를 줏었다며 주인 아니냐는 시늉을 한다. 혹은 한번 보라는 시늉을 하기도 한다. 그러고는 자기 손에 안 들어간다며 세째, 네째, 다섯째 손가락에 한번씩 넣어보고는 내게 들려준다.

엉겁결에 받아들고는 본능적으로 관찰한 반지의 안쪽엔 18K 어쩌구 찍힌 자국이 선명하고, 무게감도 이정도면 금반지 맞네 싶다. 순간 이게 왠 반지냐..내가 잊어버린 거라고 할까, 오만생각이 쿠앙, 하고 뻗쳐오른다.

자기한테는 안 맞는다며 선물로 준다더니 성큼성큼 네댓걸음 걸어가버리는 뒷모습이 수상했다. 이럴리가 없는데..분명 돈달라고 매달려야 정상일 텐데..고개 한번 갸웃거릴 타이밍 쯤, 뒤로 돌아서서 나를 보는 그의 심상찮은 눈빛.

배를 쓰다듬으며 배고프다고 하고, 스몰머니~스몰머니를 외치며 내 주머니와 가방을 가리키는 폼이 딱 예상했던 수준의 절반쯤이다. 이집트에선 내 시계와 반지, 목걸이까지 빼가려고 하던 녀석들과 마주쳤던 터라, 기대치가 높았나 보다. 여긴 아무리 그래도 빠리라구 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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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전하게 반지를 땅에 내려놓고는 가던 길을 계속 갔다. 뒤에서 뭐라뭐라 소리치고 어쩌고 했지만, 그 사람 손에 쥐어주려해봐야 안 받을 거고 자꾸 말상대해봐야 분위기만 엄해질 거고. 마치 서로 총을 겨눈 두 사람이 눈치를 보며 가만히 땅바닥에 권총을 내려놓고 살며시 뒷걸음치듯, 그런 뽄새를 머릿속에 그리며 반지를 내려놓았댔다.

조금 따라오는 듯 싶어 살짝 겁도 났지만, 그렇게 흉악한 사람같지는 않았고 또 어찌됐건 내가 걷던 길이 콩코드광장으로 향하는 세느강변이었기에 사람도 없지 않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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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의 비슷한 일을 더 겪으면서, 최초의 준비단계부터 유심히 관찰할 만큼의 여유가 생겼다. 알고 보니, 반지 따위 땅에 굴러다니지도 않았다. 애초 손에 쥐어졌던 반지, 골프 스윙하듯 땅바닥에 한번 스쳐준 거였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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