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남대를 거닐다 나무들 사이로 언뜻 비친 초가지붕, 청남대 제2경이라는 '초가정'이 그곳이다.

김대중 전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마을에서 가져왔다는 전통 생활도구를 구비한 초가집. 이런 곳에서도 고졸한

'인품'이 내는 향기가 언뜻 풍기는 듯 하다.

사실 조선시대 국왕들이 흉년이 들거나 새봄이 되면 몸소 허름한 옷을 입고 농사일을 체험했다느니, 따위의

이야기도 선례라면 선례겠지만, 그렇게 보여주기 식으로 꾸며진 곳은 아닌 거 같아서 엄연히 다른 거 같다.

최소한 김대중의 이런 점이 정략적으로라거나 감정적으로 어필했던 적은 없는 거 같은데다가, 여긴 정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쉬고 '향수'에 젖을 수 있는 공간으로 자그맣게 꾸며진 곳이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냐 하면, 그 앞의 정자 때문이다. 호수와 그 너머 '뭍'의 부드러운 곡선, 그런 푸근하고

평화로운 그림이 그려지는 정자에 앉아서 그는 머리를 식히고, 숨을 돌리지 않았을까. 누구라도 여기에 잠시나마

앉게 되면 뭔가 마음을 턱 하니 내려놓고 착해지지 않을까 싶은 그런 풍경.

몇몇 분들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털썩 그 자리에 앉았다. 아마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도 저렇게 앉아

말없이 한참을 따로, 또 함께 있었지 않을까.





청남대에서 채 못다했던 이야기들, 그 중 하나는 대통령이 쓰던 화장실 이야기다. 아직 못 돌아본 코스도 꽤나

있어서 조만간 한번 다시 가봐야겠다고 다짐중이기도 하다.

이렇게 얼기설기 쪼아올린 봉황이 마당에서 깃을 드리우고 있는 청남대. 대통령의 별장이니, 대통령이 쓰던

보트, 대통령이 쓰던 가구, 대통령이 쓰던 숟가락, 대통령이 쓰던 티비, 당연히 대통령이 쓰던 화장실도 있다.

그런 것들이 있는데도 노무현 전대통령이 충북도청에 소유권을 위임하고 민간에 개방된 후 줄곧 적자에 시달리는

이유 중 하나. (전적으로 내 생각이지만) 저렇게 다섯 명을 합성해 놓는 역사의식과 '입장'의 결여. 저 사진은

그저 재임순서로 다섯명을 늘어세웠을 뿐 아무런 메시지도, 의미도 담지 못한다. 정치적 논란이나 '편향'을

우려해서였겠지만, 그래서 남는 의미는 단 하나. 29만원 있다는 살인마나 벼랑에서 떠밀린 정치적 살인의

희생자나, 그냥 '대통령'으로 마주하게 될 뿐이다. 이넘이나 저넘이나 다 똑같애, 정치인이 다 그렇지, 따위

거침없이 사방에 내질러지는 삿대질을 부를 뿐이다.


그리고, 저렇게 다섯 명이 화목하게 서 있는 모습이 현실에서 가능할 법한 이야기인가. 청남대에서 일부

대통령의 후광을 걷어내야 하지 않을까. (기억을 지워버리자는 게 아니라, 무작정 '대통령'이라고 드리워진

후광을 떼내어 버리잔 이야기다.) 차라리 현실 정치에 대한 감을 조금은 더 익힐 수 있는 배움의 장으로

활용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그리고 또 하나의 적자 이유는, 본관에서의 내부 촬영 금지 아닐까. 청남대 본관에 실내화신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게 여기서 찍었다는 드라마 관련 사진들이다. 드라마는 되는데 왜 일반인은 안 된다는 건지.
 
대통령이 청남대로 쉬러 오면 몸을 뉘어서 쉬었을 그 침대. 대통령의 침대는 왜 사진찍으면 안 되는 건데, 하며

맘대로 슬쩍 셔터를 눌렀다.

대통령의 집무실. 저 스탠드는 왠지 낯익은 게 울집에 있는 내 스탠드와 같은 종류 같다. 저 옷걸이는 왠지 예전

외할아버지댁에 있던 그런 퀴퀴하고 낡은 것과 비슷해 보이고. 아, 그런 건가. 무려 대통령이 쓰는 일상용품이

일반인들의 그것과 같거나 별반 차이가 없으면 '격'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걸까. 와서 보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사진으로 증거를 남기게 하고 싶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짠~ 여기가 대통령의 화장실. 세상에, 비데도 없고, 금칠도 안 된 뽀오얀 도자기색 그대로인 데다가, 작다.

사진이 많이 어둡긴 하지만 다를 게 없구나 참. 슬쩍 고개를 디밀었다가, 이내 빼버렸다. 뭔가 대단한 걸

기대한 것도 아니지만 역시나 별 거 없는 거다. 다만 남는 건 상상의 영역, 저기에 바지 내리고 앉아서

볼일을 보았을 전두환, 노태우를 위시한 전임 대통령들의 모습. 더러는 술 먹고서 변기 붙잡고 토했을지도.

가끔 국무에 시달리거나 혹은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에 시달린 때에는 '피똥 쌌을지도' 모를 일이다.

2층짜리 건물인 청남대 본관에 엘레베이터가 생긴 건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된 후라 한다. 발을 절뚝거리던

그에게 꼭 필요한 거였으리라.

테이블과 의자가 놓인 방, 쇼파와 골드스타 텔레비전이 놓인 방, 그 다른 한쪽에는 한식방도 있었다.

다른 나라들의 옛 왕궁이니 대통령궁이니 이런 데도 사진 촬영은 다 허가하던데, 굳이 사진 촬영을 금지한 건

왜일까. 그들의 생활 소품이 찍히고, 화장실이 찍혀서 그로부터 상상력이 뻗쳐나올 걸 저어한 걸까. 그들의

'품격'과 '위엄'에 손상이 가는 일이라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글쎄. 그들이 무슨 김태히나 송혜규도 아니고

이슬만 먹고 살 리도 없고 화장실도 안 갈리 없는 건데.


그런 '인간적인' 모습을 노출시켜서 격이 떨어지리라 생각할 만큼 그들이 높은 곳에 있다고 여겼던 거라면 더욱

심각한 오해다. 드라마 촬영은 허가해 놓고, 그런 스틸 사진으로 본관 1층을 쫙 도배해놓은 마당에 일반인들의

촬영은 막으니 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거다.

청남대 전 지역은 산나물 채취금지구역, 어쩌면 이렇게 잘 보전된 채 손을 안 탄 지역에 산삼이라도 한 뿌리
 
자라고 있는 건 아닐까.

기념관에 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손바닥 자국. 손금을 볼 줄 안다는 사람은 저 손금 중 생명선이 2009년께

끊겨 있는지 한번 봐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청남대의 화장실 표시. 일반인들을 위한 화장실이나 대통령을 위한 화장실이나 변기는 똑같구나, 왠지 안심한

마음으로 맘껏 사용할 수 있었던 화장실 변기.

청남대 관람안내. 혹시 다음 가실 분을 위한 자상한 배려.





반야사는 조그만 절, 아무리 느그적한 걸음걸이로도 금세 한바퀴를 돌 수 있을 만큼이다. 잠시 절 밖의 풍경을

볼까, 아까 버스로 지나쳤던 녹슨 수문이나 보러갈까 하는 참에 보살님 한분이 강림하사 산위 망경대로 오르면

문수전이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빠른 걸음으로 오르면 십분이면 오른다길래 헥헥대며 뛰어올랐다.

가까워지는 문수전. 조그마한 전각이 산 위에 살포시 올려놓인 느낌이다.

올라가는 길..이라지만 산길이란 게 종종 오르고 내리는 길이기 마련이어서, 가파른 경사길에는 이렇게 벽돌로

계단을 만들어두기도 했다.
 
문수전에 도착, 빠른 걸음으로 십분 내에 도착하긴 했는데 폐가 불타오른다. 카메라쥔 손까지 떨려서 한참

쉬어야 했다. 날이 풀려야 어서 운동을 할 텐데.

여기서 보이는 반야사의 명물 '호랑이' 모양 돌무데기들은 살짝 야윈 듯하다. 호랑이라기보다는 고양이..?

두서없이 움직이던 시선을 멈춘 곳은 저 아래쪽, 호랑이를 바라보시는 듯한 방향으로 염불을 외는 스님들과

다른 파워블로거 일행들.

그들을 조금 거슬러 오르면 인상적인 자취를 남기며 쎄하니 흘러내리는 물살이 있었다.

파노라마를 한번 찍어서 이어만들어볼까 했지만 실패, 대신에 문수전 문짝에 대고 찰칵찰칵. 스님의 센스겠지,

철사를 도롱도롱 이뿌게 말아서 손잡이로 쓰고 계시다니. 저런 거 넘 좋다.

내려다보면 바로 깍아지른 절벽의 느낌, 안전을 담보하는 엉성한 울타리. "튼튼하게"라는 주문 대신 "불심"이

들어간 게다. 저렇게 만자가 연이어지도록 하나하나 자르고 붙이기도, 게다가 색칠까지 꽤나 품이 들었을 텐데
 
말이다.

다시 문수전서 내려가는 길. 올라왔던 길과 다른 길을 택해 내려섰지만 역시나, 전반적으로는 내려가야 하지만

곧잘 다시금 올라서기도 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정말 여기 때문에라도 반야사는 한번 다시 와봐야겠구나, 싶었던 문수전.

반야사와 문수전을 떠나는 길, 가을길이래도 믿겠다 이건.

길에서 만난 잠수중인 나뭇가지. 초등학생도 다 아는 '물의 굴절현상'으로 가지가 세방향으로 갈라졌다.

애초 문수전을 몰랐으면 여길 와서 이 풍경을 찍고 싶었던 거다. 파랗게 녹슨 수문이 해바라기하는 투실한

고냥이마냥 조용히 하천을 굽어보는 표정.

하아, 지금쯤이면 좀더 연두연두해지고 초록초록해져서 따끈따끈하게 데워졌을 텐데.




절을 찾아가는 길은 꼭 산과 내를 찾아가는 길이 되곤 한다.

다독다독 잘 다져진 흙길을 따라 걷다 보면 그 길 끝쯤, 더이상 들어갈 수 없다 싶은 깊숙한 산허리춤에서

문득 산사가 나타나는 거다.

불끈 진로를 비틀고 내려닫는 나뭇가지가 수면을 희롱하고 있다.

백화산 반야사 들어서는 입구. 커다란 대문이 반긴다.

선명한 단청보다 눈에 들어왔던 건 배불뚝한 기둥에 그려져 있던 네 마리 용.

사천왕상을 대신해서 휘감겨있는 네 마리 용인가보다.

흑백톤으로 바꾸니 또 다른 분위기가 나는 것 같다. 이른 봄 실개천을 가로지른 돌다리.

500년 묵었다는 나무가 굵고 커지지는 않고, 꼬불꼬불 안으로만 무성해졌다. 배롱나무랬던가. 메롱이다.

삼층석탑의 단단한 기단 위에 사면으로 네 명 부처가 앉았다. 그리고 그보다 많이 올라앉아 있는 돌멩이같은

납작한 동전들. 어떻게 보면 부처를 향해 가르침을 청하는 것 같기도 하고.

스님들이 수행하시는 곳, '출입금지'라는 두꺼운 붓글씨가 멋지다. 금지의 '지'자가 살풋 앞으로 구부린 모습이

이런 딱딱한 표현을 쓰게 된 것에 대한 미안함이랄까, 종교인답게 양해를 구하는 것만 같다.

무너져 내릴 듯 살짝 위태로운 산방의 대나무울타리.

백화산 산신령의 호랑이가 출현하는 국내유일의 도량, 백화산 반야사. 절 에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형상이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낙석무더기들이 흘러내린 모양이 호랑이를 닮았다는 건데, 글쎄. 그냥 저건 많이 휘어진 나이키 로고다.

아까 지나친 삼층석탑, 기교와 크기와 가용자원의 차이일 뿐 그것과 같은 정성이 땅에 발딛고 하늘로 뻗었다.

다소간 끈적해 보이는 개울물이 휘여휘여 흘러내리고 있었다. 엉성한 나뭇가지로 까칠한 윤곽을 가리던 산이

너울너울해진 수면 위에 내려앉아 한결 부드러워졌다.

돌탑위에 또 돌을 올리자니 이미 완결되어 버렸다 싶은, 오를 대로 오른 돌탑들 뿐이다. 괜찮다. 위로 오를수록

작고 가파르고 위험해지는 돌탑이 정점에 달했다 싶으면 또 다시 그 옆에 큰 돌 하나부터 차분히 박아넣고

시작하면 되는 거다.  

오밀조밀 사이좋게 쌓여있는 땔나무들이 이쁘다. 그 땔나무가 토해내고 있을 흰연기가 굴뚝을 거쳐 사방으로

뽈뽈뽈 번져 나갔다.



▶◀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기억합니다.





'향수', 鄕愁. 아련한 느낌,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과 가슴먹먹한 상실감이 뒤범벅된 느낌의 단어다.

다소 멍한 눈빛으로 흐르는 물을 부질없이 갈퀴질하는 듯한 그런 이미지랄까.

정지용의 번듯한 생가가 마치 민속촌의 그것처럼 초현실적으로 시골 한복판에 박혀있는 그 곳, 곱게 입혀진

이엉지붕 아래로 낡고 헤진 슬레이트 지붕이 보였다.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남지 않아 깨끗하고 주름지지 않은 채

박제된 '유물'과 수십년동안 사람손타고 때묻은 채 헐벗은 60년대식 슬레이트 건물.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간다는 그 실개천 옆으로는 허름한 시멘트담벼락,

그리고 드문드문 녹이 슬은 다홍빛 철문이 회색빛 슬레이트 지붕에 연해있다.

이렇게 이쁜 간판들을 찾아 사방으로 선불맞은 멧돼지마냥 뛰어다니다가도,

어느새 이런 건물 앞에 서게 된다. 어쩌면 어떤 세대들에겐 이런 건물들이 이상화된 단정한 초가지붕보다 더욱

생생한 '향수'를 자극하는 모티브가 될지 모르겠다. 정지용이 살던 시기에도 저렇게 깔끔하고 아름답도록 잘

꾸며진 초가지붕을 얹고 있었을까 싶은 의구심도 한 몫 했는지 자꾸 이런 슬레이트 지붕들에 눈이 간다.

나중에 저런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집들도 깨끗하게 잘 정돈된 채 '박물화'되어 있을까.

그나마 아슬하게 서있는 전면과는 달리 완전히 무너져 내린 건물의 뒷면.

그리고 80년대 향토예비군 훈련공고 내용을 적어두었을 양철판 하나가 잔뜩 녹슨 채 내걸려 있었다. 어쩌면

여긴 이미 '추억의 그 시절' 쯤 될 만한 운치를 구비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어렸을 때 본 것도 같고.

하얗게 식은 연탄재가 담벼락에 기대어 있는 곳, 살짝만 걷어차도 떨어져나갈 듯한 문짝이 바람결에 철컹이는 곳.

이렇게 연탄을 잔뜩 쟁여두고 겨울을 보내던 풍경은 사실 내 어릴적만 해도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향수'랄 것 떠올릴 만큼 나이를 먹지도, 상실감을 느낄 만한 풍경을 갖고 있지도 않지만, 그래도 초가지붕보단

저 연탄무데기에서 '향수'에 가까운 걸 느끼고 말았다.

구멍 퐁퐁 뚫린 벽돌담 위의 도둑고양이. 보통 어렸을 적엔 저런 벽돌담 위에 시멘트를 얹어선 깨진 유리병조각을

촘촘히 박아두곤 했었더랬는데.

허름한 창고, 곰표 밀가루도 취급하고 설탕도 취급한다는 곳의 시꺼먼 내부는 뭔가가 숨어있는 듯. 어렸을 적엔

학교 지하실 창고니, 저런 버려진 건물이니 어둑어둑한 곳들에 손전등 들고 친구들이랑 많이 싸돌아다녔었다.

녹슨 철문 뒤, 할머니댁같기도 하고 그냥,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그런 문과 그런 오톨도톨 시멘트 장식의 기둥.

괜시리 신발주머니를 질질질 벽에 대고 문대고 다니던 그 시절.

그러고 보니 정지용 생가에서 마주쳤던 부엌의 분위기는 얼마전 '신식 슬레이트' 지붕 얹힌 양옥으로 바뀌기

전까지 넓고 시원한 툇마루를 지키던 작은 할아버지 댁과 꼭 닮았다. 물론 좀더 퀘퀘하고, 닦이지도 않는

그을음이 온통 끼어있었지만.

정지용의 향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의 그 곳은, 사실 여느 머릿속 이상향들처럼 현실에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그리고 그 머릿속 그림을 아무리 재현하려 노력해봐야 백인백색, 저마다 다른

그림을 그려내지 않을까. '향수'가 homesick이라기보다 nostalgia에 가까운 이유다.




'향수'의 시인,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시작하는 첫머리만 알았지 가사도 다 모르던 그 시를 지은 사람이

살던 곳이다. 충북 옥천의 정지용 생가. 사실 여행을 가도 엔간함 피하게 되는 곳이 누구누구 생가, 이런 곳인데

이 곳 역시 그냥, 새로 지은 듯한 깔끔한-사람 온기없는-집 하나 덜렁 있고 옆에 박물관이 있었다.

깔끔하고 이쁘니까 좋긴 하지만, 여기서 정지용이 살았단 걸 그려낼 수 없는 건 내 비루한 상상력 때문일까.

조금은 더 리얼한 모습을 남겨주면 좋지 않았을지 생각해 봤다.

그의 '생가' 옆에 있던 지용문학관, 시인이 조탁해낸 언어들과 시세계를 비쥬얼로 보여주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무엇보다 그곳에서 일하던 문화해설사(맞나..)분의 질문이 계속 와닿았던 인연이었다. '향수'라는 (노래)제목은

다들 알지만, 정작 그 제목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향수란, 어떤 뉘앙스와 정조를 품고 있는 단어일까요.

"멋진 신세계"는 향수의 시인이자 최초의 모더니스트, 고도의 감각적 시어를 구사했던 정지용의 고장 옥천의

'시문학아트벨트'를 지칭한다고 했다. 정지용의 생가와 지용문학관에서, 옥천의 '향수30리길'을 따라 이어지는

그 공간에서 시인의 정취를 보고 듣고 느낄 수 있게 해보자는 공감각적 프로젝트라고.

생가 주변에서 만났던 풍경들은 놀라웠다. 이런 간판들이 있다니. 이런 아이디어를 실제로 실현하다니.

물결은 유리판처럼 부서지며 끓어오른다.

모초롬만에 날려온 소식에 반가운 마음이 울렁거리여
가여운 글자마다 먼 황해가 님설거리나니....

나의 가슴은 조그만 갈릴레아 바다.
때없이 설레는 파도.

헐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항상 머언 이,
나는 사랑을 모르노라.

곡식알이 거꾸로 떨어져도 싹은 반듯이 우로! (이곳은 탈곡기가 쉼없이 돌아가는 실제, 그런 곳이었다..!)

얼골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감을 밖에.

감탄할 밖에. 간판들에 눈을 못 떼고 정신없이 싯구절들을 탐하다가, 문득 삐딱한 맘이 고개를 들었다.

이 비용은 누가 다 감당했을까. 강제적으로 시행된 건 아닐까.

가까운 가게에 들어가 물을 사며 슬쩍 물었더니, 군청에서 비용을 전부 부담했다고 한다. 원하는 사람만 간판을

바꾸도록 한 거였고, 내키지 않는 사람은 안 바꿨다고. 하나 더 물었다. 간판 제목과 싯구절은 누가 정했는지.

뭐, 본인이 딱히 원하는 게 있으면 그걸 요청했다 하지만, 대개 '간판 만드는 전문쟁이'들이 알아서 만들어

왔다고 했다. 대체로, 다행한 대답이고 따뜻한 사업이지 싶다.

다른 가게들을 구경하면서 훨씬 맘이 후련해졌다. 멋지다, 고 맘껏 감탄할 수 있어서였을 거다.

↓ 맘놓고 감상하기.



향수의 2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난 여지껏 지랄..뭐라고? 이렇게 듣곤 했었다는, 쓰잘데기없는 사족.




진짜인지는 모르지만 중학교 다닐때던가, 왕님이 사시는 궁궐만 백칸짜리 건물로 지을 수 있었기 때문에

양반댁들은 그보다 한 칸 모자란 구십구칸짜리 건물로 집을 짓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거 같다. 백 칸이면

방이 백 개, 구십구칸이면 방이 구십구개니까 고작 방 하나 차이일 뿐, 커다랗기는 매한가지다. 


충북 보은에 그런 구십구칸짜리 한옥집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는 길, '선병국 가옥'이란 곳이다. 더구나

1904년부터 1921년에 걸쳐 건축된 건물인지라 시멘트나 벽돌도 활용되었다는둥 나름 전통과 현대가 버무려진

곳이라 하여 더욱 호기심이 동했다.

선병국 가옥에 들어서는 초입, 보기만 해도 여유로운 정자 하나. 누렇게 익은 솔잎들을 처마 위에 소담하게

쌓아올린 모습이 맘에 팍 꽂혔다.

비록 구십구칸이 고스란히 보전되어 있지는 않다지만 여전히 상당부분 그대로 남아서, 그 후손들과 객들의

일상생활을 떠받치는 제대로 된 집 구실을 한다고 한다. 사람 손을 계속 타야 온기도 느껴지고 보존도 되고,

그렇단 걸 알고 있는 분들이다. 장담그기 체험프로그램도 있다던가, 그래선지 와글와글 모여있는 장독들. 

(그리고 반대편께로 와글와글 모여있는 '파워블로거'분들..굉장한 장비와 굉장굉장한 글빨/말빨을 가지신.)

뒤로 산을 이고 있었다. 풍수란 거, 모르지만,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다른 차원의 이야기들은

차치하고라도 미감의 측면에서, 자연의 어디메쯤 놓이면 이쁜 그림이 나올지에 대한 경험적 미감이 축적된

심미안으로부터 비롯한 걸지 모르겠다고. 구름이 솔찮이 낀 하늘, 덩굴이 솔찮이 휘감은 담장, 이뻤다.

조금 징그럽다 싶을 정도로 빽빽한 덩굴들, 북쪽의 응달진 곳이라 저렇게 더욱 비비적대며 살겠다고 아우성인

건가보다. 본채와 따로 떨어져서 배치된 '효열각' 기왓장 위로 삐쭉삐쭉 자란 풀떼기들이 보인다.

효열각 안으로 들어서니, 모처럼 보는 듯한 자연스레 퇴락한 단청이 멋스럽다. 너무 선명하고 작위적이다 싶은

모습, 혹은 아예 미미한 맛조차 남지 않은 모습들은 쉽게 보이지만 이렇게 살짝 바래고 씻겨나가기란 쉽지

않을 거 같다. 적당히 인간의 것이기도, 또 적당히 자연의 것이기도 한 그 기교랄까, 신비랄까.

어흥. 호랑이는 아니고 무슨 괴물딱지같긴 하지만 어쨌든, 백호의 해 기념삼아 어흥.

벽에 찰싹 붙은 채 사방으로 종횡하는 덩굴 줄기를 보노라면, 파직파직 사방으로 균열이 번져나가며 깨어지는

유리창을 초고속카메라로 돌려보는 느낌이다.

효열각을 마지막으로 올려봐주고, 안에 있는 비석을 촬영하려 몇 번 시도하다 전부 실패. 살풋 말려올라간 처마

끝으로 올라가는 완만한 곡선이 편안하다.

만리장성만큼은 아니지만 구불구불 꽤나 긴 담장으로 둘러쳐진 선병국 가옥채에 들어서는 입구.

옆으로 계속 이어지는 담장따라 시선을 넘겨보면 운치있고 담백한 느낌의 건물들이 차곡차곡 들어서 있다.

그리고 마당엔 제법 수령이 되어보이는 잘 생긴 나무 하나, 뒤로는 구름을 뒤집어쓴 아늑한 산 하나.

"이리오너라"를 여기서 아무리 외쳐봐야 건물 안에까지 안 들렸을 거 같은데. 예전에는 과객실, 방앗간채까지

있었다고 하니 아마 이옆에도 뭔가 발레파킹할 때 쓰이는 간이천막같은 거라도 있지 않았을까.

사랑채. 건물 기둥이 모두 둥글둥글한 원기둥인 게 눈에 띈다. 안채는 네모기둥과 원기둥이 모두 쓰였다던데

뭐가 전통적인 스타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쩜 둘다 전통적으로 쓰이던 스타일인지도. 
 
바람소리를 기다리는 풍경.
 
나무 자체의 발색이 그대로 살아있는 문틀이 고상해 보인다. 화려하지 않고 깔끔하다 싶으면서.

바싹 마른 해바라기는 그런, 갓 베어낸 나무색이다.

따뜻한 발바닥을 기다리는 추운 털신.

삐뚤게 박힌 석등, 살풋 열린 정지간 문짝. 발랄한 노란빛 토담을 지그시 눌러주는 기왓장.

안채, 사실은 외부인 출입금지..라는 푯말이 서있었지만 살짝 돌고 나왔다. 시멘트로 마감된 기와지붕, 벽돌로

정돈된 한옥집의 아랫도리. 끝에서 끝까지 이어진 빨랫줄에 쭉 늘어선 옷가지와 이불들이 다정하다.

두툼한 패딩점퍼를 벗어던지듯 쭉 찢어진 목련꽃방울, 그 곳에서 봄기운이 쏟아져내린다.

부엌에서 이어진 연통이 ㄴ자 형태로 하늘을 향했다. 문짝 하나하나가 세심하게 공들여 만들어졌다는 느낌은

여기서도 계속됐다.

잘 손질된 생선, 조기인지 뭔지, 안채의 어느 나무기둥에 열매처럼 매달려 있었다. 연목구어, 가끔은 통한다.

바닥에 철퍽 떨어지는 생생한 소리와 이미지를 느낄 수 있는 걸 보면 분명 재래식 화장실인데, 이런 식으로

'현대화된' 재래식 화장실은 첨이다. 차마 찍을 순 없었지만 나름 발로 조종가능한 뚜껑도 있고, 찍지는 못해도

체험은 해볼 수 있었다. 다만 그 주황빛 함석지붕이 주변 경치를 흐트려놓아 아쉬웠달까.

돌아나서는 길, 작년 가을에 나리워졌을 낙엽들이 여전히 소복하다. 왠지 테이프를 거꾸로 감듯 저 낙엽들이

다시 물기를 쭉쭉 빨아선 초록빛 가득 채워 포르르 날아오르는 걸 상상하니 즐겁다. 착착, 자신들이 의탁했던

가지로 다시 돌아가 단단히 붙는 초록잎새들의 향연이라면.

살짝 삐뚤게 매달린 우편함이 외려 편안해 보인다.

둘러보고 나오는 길, 놓쳤던 풍경이 하나 시선을 끌었다. 저긴 뭔데 한쪽 면이 전부 저렇게 나무로 짜여져 있는

걸까. 굉장히 독특해 보이는 나무빗살무늬가 가득하다.

토담길 옆 나무 한그루가 땅거죽을 뚫고 허리케인처럼 솟아올랐다.

잘 가라고 배웅하는 풍선춤 나무 두 그루. 온 몸이 오글오글하다.



청남대, [충북팸투어-청남대] 김대중과 노무현의 '아바타'가 그곳에 있다.에 이어 나머지 대통령들의 이미지도

가득 담아 올 수 있는 곳이다. 아무래도 전두환 대통령 때 지어진 곳이라 그런지 그 이전 대통령들의 체취랄까

흔적은 남아있지 않지만, 그 이후로도 워낙 (여러 의미로) '씨알굵은' 대통령들이 있으니 아쉽진 않다.

참 씨알 굵은 양반. 산책로에서 제일 먼저 만났던 분인데, 이후 제각기의 특징을 잡고 있는 동상의 모습을

되짚어 보니까 저 자세는 어쩌면 구보와 각잡힌 걸음새에 익숙한 퇴역군인의 특성을 잘 포착한 게 아닐까

싶었다. 찰져보이는 몸뚱이에 완강하고 의지력있어 뵈는 얼굴까지. 딱 그사람이다.

그의 뒷모습. 맨들맨들한 동상 뒷머리에 흔히 떨어져 있을 법한 새똥 하나 없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다음 타자는 골프채를 시원하게 휘두르는 노태우 전 대통령. 그가 대통령을 하던 시절 나는 삐라를 모았었다.

그 천연색깔 알록달록한 그림과 낯선 글씨체가 신기하고 자극적이었다. 똥오줌 못 가리던 어린 나이인지라

아마 사람들이 회피하고 어쩌면 무서워하던 삐라를 한장 두장 모아가며 묘한 쾌감을 느꼈던 거 같다. 어느날

부모님은 우표수집책 속에 우표처럼 꼽혀있던 색색의 삐라를 보고는 다 태워버리고 말았다.

그의 입꼬리는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원래 그렇게 생긴 걸까 아님 이 동상의 작가가 잘못 만든 걸까. 본인이나

유족으로부터 초상권에 대한 합의를 받고 최대한 실제와 똑같이 만들어낸 작품들이라 했었다. 사실 그가

재임중이던 시절, 난 최루탄 냄새 맡으며 어린이회관에 '우뢰매' 따위 보러다니던 꼬맹이였다. 그의 얼굴을

티비에서 본 기억이 없다. 입꼬리는 더더욱 기억에 있을 리 없다. 별명이...물태우였다던가.

김영삼 전 대통령. 요새도 참 말 많이 하던데, 다행인지 우리 나라 대통령 중엔 아직까지 퇴임 후에도 영향력을

발휘하는 전례가 없었다. 끝까지 무사하게 피 안 묻히고 구정물 안 튀긴 대통령이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조깅을 워낙 좋아했던 대통령답게 흥건히 브론즈색 물들이고도 또 뛴다. 무슨 포레스트 검프도 아니고.

그의 봉긋한 엉덩이를 함께 보며 친구가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다. 한미 정상회담 기간 중 클린턴이 조깅을

제안해왔댄다. 나란히 달리며 한미관계를 논해야 할 그 찬스에서, 그는 죽어라고 달려선 클린턴을 멀찍이

따돌리고 이겼다며 좋아했단다. 그러고 보니 포레스트 검프랑 비슷한 면이 적잖다.

"클린턴도 조깅으론 날 못 이겨~!" 좋댄다.

그리고 책 읽는 김대중과 자전거 타는 노무현을 만나고, 초봄 기운이 드리워진 청평호에 시선을 박았다.

청남대엔 군사시설도 함께 있었다고 하더니, 설마 그때부터 화장실 옆에 저렇게 배치되었던 건 아닐 거다.

여자는 왼쪽으로, 남자는 오른쪽으로, 그리고 볼일급한 꼬맹이는 가운데쪽으로.

대통령 광장에 들어서는 입구. 뒷 벽면에는 각국의 행정수반이 집무를 보는 관청이 있다. 한국의 청와대,

프랑스의 엘리제궁, 미국의 백악관, 뭐 그런 것들.

총 9명의 대통령. (현 대통령을 제하면) 16대 대통령까지 16번의 임기가 지났는데 인물은 9명이다. 뭐 재임,

중임이 항상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지만, 좀더 옵션이 많았으면 조금은 더 맘에 드는 대통령이 많았을지도

모르겠어서 아쉬울 따름.

옆구리에 '대한민국 헌법'을 끼고 있는 대통령,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다. 그의 치하에서 만들어진 헌법이긴

해도 그때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의미는 지금과는 또 달랐을 거다. 당장 국토의 공공성이라거나

수도로서의 서울이 갖는 지위 따위가 해석을 통해 바뀌어 나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장면 내각은 내각제여서 대통령 광장에 끼지 못했나 보다. 바로 윤보선 대통령으로 스킵. 무슨 일을 했는지,

그가 어떤 대통령감인지 알아보고 평가하기엔 그의 재임 기간이 너무 짧았다.

그 사람. 근데, 그 사람하고 진짜 닮았다. 그 사람이 그 사람 흉내낸다고 선그라스 끼고 돌아다니고 그런

모습을 봤을 때도 느꼈지만, 그 사람은 정말 그 사람 닮으려고 꽤나 노력하는 중인 거 같다. 어쩌면 요새는

그 사람보다 더욱 세련되고 고도화된 수준에 올라선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 엄연한 질적 차이가 있으니

그 사람과 그 사람의 엔딩은 얼마나 닮고 또 얼마나 다르게 될까.

최규하 전 대통령. 이 분이 아마 최근의 '서거 러시' 이전 가장 가깝게 돌아가신 분이었던가. 조용하게

돌아가셨던 거 같다. 무색무취한 대통령이었던 걸까, 역시 짧았던 재임 기간 때문인지도.

아까, 군대에서 구보하는 걸음새로 각잡혀서 걷던 아자씨. 그는 여전히 살아있고, 광주의 전남도청은 다른

지역으로 이전한 채 파시드랑 뼈대만 남겨두었으며, 가끔 그는 현실 정치에 훈수도 둔다.

노태우 전 대통령. 그런 생각도 든다. 대통령도, 국민도, 시간이 지난다고 점점 나아지라는 법은 없다.

그건 조금은 무임승차하려거나 언발에 오줌누기식 위로를 구해보려는 얕은 꾀.

IMF라는 재앙이 터진 건 김영삼 전 대통령 재임시기였지만, 그게 터지지 않고 안으로만 내연해서 약자들을

사회 밖으로 튕겨내는 시스템을 만든 건 그 이후였다. 거대한 후폭풍을 불러오고 뭔가 구태의연하던 과거를

지워버려야 할 타이밍에 오히려 한발 더 나아가 고도화된 모순을 만들어내버린 면도 있는 거다. 비정규직을

비롯한 불안정한 고용 시장, 오히려 위축되는 듯한 사회복지망, 수월성 위주의 입시 교육, 민주/반민주 따위

선언적이고 허구적인 경계선에만 자족하는 지난 시대의 비주류들..그래서 김영삼 때문에 IMF가 났다고 쳐도

-사실은 다른 원인들이 많다고 생각하지만-그 뒷수습을 그렇게 한 건 엄연히 다른 문제다.
 
어쨌거나, 대통령 광장 한 가운데에는 커다란 태극무늬가 있다.

대통령 동상들이 바라보는 쪽엔 뭐가 있을까, 싶어서 고개를 돌려봤다. 고개도 돌리고 카메라도 돌렸다.



충청북도 청원군에 위치한 청남대는 대통령 전용 별장이다. 대통령이 국무를 보다가 내려와 쉴 수 있는 공간,

그 정도 되려면 주위 경관이니 입지 조건도 특별해야 할 테고 옛날옛적 어느 스님의 예언 같은 것들도 구비구비

서려 있어야 하는 거다. 청남대 역시, "왕이 머물 곳"이라는 예언이 일찍이 있었다고 한다.

사실 이 곳은 더이상 대통령을 위한 곳은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충청북도에 소유권을 이양한 후

'일반인'에게 개방되었으니, 누구든 입장권을 사면 들어올 수 있는 문턱낮은 곳이 되었다.

최외곽으로 돌면 반나절은 산책할 법한 규모의 청남대 내부에 올 초 새로 '대통령 광장'이 생겼다고 했다.

그곳으로 가는 길, 왼쪽에 과거 골프장으로 쓰이던 풀밭을 끼고선 전직 대통령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전두환과

노태우, 김영삼을 못 본 척 지나고 나니,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마주쳤다.

이 분, 작년에 그렇게 가신 것도 모자라 요샌 묘소에 도깨비불이 횡행한다고 했다. 그런 번다한 세사 따위

모르겠다는 듯 초연히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단단해 보였다. 그는 민주화 투쟁 시절 감옥에서 공부를

많이 할 수 있어서,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어서 좋다고 했었다. 만델라도 그랬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골프장 잔디밭을 일부 밟은 채 국산 자전거에 올라앉아 손을 흔들어 주는 노무현 전 대통령.

그의 환한 웃음을 마주했다. 자전거를 타고, 밀짚모자를 쓰고, 그런 모습들이 워낙 친숙했던 그인지라 이런

동상이 서 있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뭐랄까, 일종의 아바타-화신-인 거다. '노무현'에 대해 갖고 있는 사람들의

이미지들을 똘똘 뭉쳐 놓으면 저런 게 나올 게다. '김대중' 역시 마찬가지.

작년 5월쯤, 그의 갑작스런 서거가 몰고 온 파급력은 정말 대단했다. 마치 온나라 국민들이 이제야 그의 진가를

알았다는 듯, 지켜주겠다고, 지키겠다고 울음지었었다. 아직도 모르겠다. 인간 노무현이 아닌 대통령 노무현에

발견할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일까. 좀더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그의 정책과 비전에 대한 쿨한 평가가 진행되야

하겠지만, 당장은 그렇다. 인간 노무현의 저런 소탈한 웃음은 굉장히 좋았었다.

실개천같던 산책로를 따르다가 어느 순간 대통령 광장으로 탁 트여나왔다. 미래의 대통령 동상이 놓일 자리를

마련해 두었고, 그 뒤로는 역대 대통령 동상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저 '미래의 대통령' 자리에서 어떤 꼬맹이는

자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집을 넓히고 싶다 했고, 어떤 아주머니는 부정부패를 저지른 사람은 설사 남편이라

할지라도 엄벌에 처하겠노라 공약했다고 했다. 유치할 수도, 혹은 순박할 수도 있는 공약들이지만, 단상 뒤로

쭉 섰는 대통령들을 보자니 그런 '단순함' 혹은 '순박함'이 더 크게 다가온다.

우리나라는 그다지 자랑스러운 대통령을 갖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았을 때는 조금 뿌듯했다. 그런 대통령의 단상 위에는 꼬맹이들이 그와 눈높이를 맞춰

기념사진을 찍고 싶었던 듯, 흙발자국이 어지럽다. 다른 대통령들의 단상은 상대적으로 말끔한 편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역시, 여기서도 웃고 있다. 증명사진 찍듯 경직된 자세와 표정을 고수하던 이전 대통령들과

달리 생생한 표정, 생생한 제스쳐다. 그런 모습은 그의 전임 대통령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상대적으로 갖지

못했던 '젊은 모습'이었고, '비권위주의적인 모습'이었던 거다. 그게 연출되거나 의도된 이미지 메이킹이었다고

해도, 이제 그는 '권위주의와 거리가 멀었던 대통령-인간'의 대명사로 남게 된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청남대의 풍수지리적 예언-"왕이 머물 곳"이라던-을 들먹거리는 건 사실 굉장히 시대착오적인

코미디다.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 근엄함과 신성성, '가오'를 일용할 양식으로 삼는 '하늘의 아들'이 아니란

이야기다. 청남대는 왕이 머문 곳이 아니라, 인간들이 스스로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인간 하나를 대표로 내세워

국가대표 공무원을 시켰던, 그 '사람'이 일하다가 와서 쉬던 곳일 뿐이다.

그가 들어올린 손이 앞선 대통령들을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밀쳐내는 듯 하다. 그의 모습이 다른 전임 대통령에

비해 훨씬 커보이는 듯 하다. 가까운 건 커보이고 먼 건 작아보이는 원근법의 효과다. 그뿐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돌아나오는 길, 이번엔 그의 뒷모습을 만났다. 느낌이 달랐다. 아까는 산책로에 들어서는 사람들을 환대하고

맞이하러 나오는 느낌이었다면, 이번엔 뭔가 뒤도 안 돌아본 채 휑하니 사라지려는 듯한 분위기랄까. 그의

등짝을 바라보는데 살짝 울컥했다. 생전의 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나였음에도.

다행히도, 그의 그런 쓸쓸하고 비감한 뒷모습 옆에는 거의 쉴틈없이 사람들이 함께 서 주었다. 전두환과

노태우와 김영삼, 그리고 김대중을 구경하고 지나친 사람들은 저 사진찍기 좋은 동상 옆에서 줄을 서서

사진을 찍으려 기다리고 있었다. 생전에 그리도 만만한 대통령이었던 그는 지금도 청남대에서 딱 그만큼

만만한 전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있는 듯 했다.

청남대, 이 곳은 일반에 개방된 이후부터 적자 행렬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한다. 관리해야 할 시설물과 규모를

생각하면 꽤나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야 겨우 적자를 면하지 않을까 싶다. 그곳에는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자전거를 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있다. (그리고 거슬러 올라가건대 김영삼, 노태우, 전두환,

박정희, 최규하, 윤보선, 이승만 대통령이 있다. 입맛대로 골라갈 일이다.)




(19금)이라 쓰고 어여들 와서 많이 봐라, 라고 읽는다.

뭔가 했다. 미성년자 관람불가라느니, 미성년자 휴게실을 별도로 설치 운영중이라느니 요란은 떨었지만 대체

한국에서 어떤 정도의 수위까지 가능할까 싶었다. 마침 데세랄을 지르고 처음 나간 출사, 그것도 야간 출사인

셈이어서 전시된 작품 하나하나 여러 차례 찍어가며 성능을 시험했다. 그다지 즐겼던 건 아니다.ㅋ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몇몇 장난스런 벽화가 나타나고는, 이런 수돗가가 나타났다. 불끈 힘을 쓰는 근육질의

남정네, 귀엽게 톡 배가 튀어나온 땅딸한 아저씨, 비쩍 골았지만 길이(응?)는 못지 않은 할아버지까지.

땅에는 관람 동선을 알리는 '버섯'이 큼지막하게 그려져있고, 하늘에는 남녀가 네발로 기고 있었다.

아저씨의 불룩한 바지, 그리고 불독의 뭉툭하고 불룩한 콧날. 방향이며 각도가 절묘하다. 제목은 사진상으로

잘 보이진 않지만 이름하야 "즐거운 산책".

농염한 여체였다. 색계에서 탕웨이가 보여주었던 동양적 육체미랄까, 늘씬하고 쭉쭉 시원하게 뻗어나간 느낌은

없지만 굉장히 탐스럽고 욕정적인. 하늘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엉덩이하며.

저 오늘 한가해요, I'm not busy. 라는 제목이었다. 아 그러신가요, 저는 앞으로 계속 한가해요, 라며

당장이라도 덤벼들 태세를 0.5초간 갖췄다가 움찔, 해제했다.

쟤들은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을 하며 즐기는 걸까, 아니면 땅에 거꾸로 처박혀서조차 탐닉하는 걸까.

발등을 묘하게 꺽어세운 거대한 다리 네개가 분수대 한가운데서 엉켰고, 내 머릿속에선 구지가와

처용가가 묘하게 얽혔다. 다리 둘은 내것이건만 나머지 둘은 누구것일꼬, 머리를 당장 내놓지 않으면

구워먹으리.

아, 작가의 센스작렬. 호미걸이랜다.
 
그나저나 이들의 불끈 달아오른 욕구와 애정을 표현하기에는 하반신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걸까.

행여 하반신만 잘라내 보여주는 건 이것이 '애정'이 아닌 '욕정', '육욕'에 가깝다는 함축은 아닐지.

인도의 경전 카마수트라. 만트라의 기원이 되었다던가, 얼추 알고 있기론 중국의 소녀경과 함께 성적 에너지의

활용을 통한 인간 정신의 고양, 궁극의 해탈을 꿈꾸었다던, 그렇지만 낮은 차원에서는 방중술의 묘법을

가르쳤다던 책이다.

신혼부부들이 많이 찾는 제주도인 거다. 저기에 서로 얼굴 집어넣고 행복한 결혼생활, 행복한 애정생활하며

백년해로하라는 뜻이겠거니, '건전'하게 발전적으로 생각키로 했다.

거시기, 그 뭣이냐, 할때의 거시기가 이 거시기인지는. 당근과 버섯, 로켓과 뱀대가리, 심지어는 부리까지

동원되었던 '이상한 나라의 응응응들'. 그러고 보면 내게 가장 인상깊었던 '거시기'의 묘사는 채털리부인의

사랑, 거기에 나오는 산지기의 아내가 가진 응응응을 묘사하던 장면이다. 새의 부리같았다던가.

오호......'비밀의 화원', '다복솔', '깊은 산속 옹달샘', '마르지 않는 샘', '지옥의 불구덩이'.

세상의 모든 은유는 어쩌면 하나로 통한다.

밑에는 연결된 크랭크가 있어서, 손잡이를 잡고 돌리면 위의 모빌이 움직인다. 덜커덕덜커덕, 덩기덕쿵더러러러

쿵기덕 쿵덕. 몇개의 모빌 연작이었는데 앞에는 저마다 다른 제목이, 혹은 설명서가 붙어있었다. '부드럽게

돌리시오', '유연하게 돌리시오'..뭐 그런 따위의 지침.

굉장히 맘에 들었던 구도였다. 제목은 천하장사. 무슨 쏘세지도 아니고..했다가, 아. 했다.

말뚝박기를 영어로 번역하자면 Horse Riding이랜다. 썩 와닿는 의역이다. 여성의 간절하면서도 섬세한

손놀림은 에로틱하고, 욱씬, 고개를 쳐든 그것은 굉장히 도도하고 원시적이다.

고개를 쳐든 이유? 고기가 물을 따르듯. 응응응은 응응응을 찾기 마련. 나비모양 문신의 탁월한 포지셔닝. 

왠지 구릿빛 재료가 그대로 그네들의 피부질감으로 살아난다. 바다의 왕 포세이돈이 바닷가 모래사장을

거닐던 처자를 납치했다더라, 하는 식의 이야기에 어울릴법하다 싶은 건, 이들을 떠받치는 욕정이란 이름의

해일 때문인 걸까. 그런 와중 일본의 촉수괴물이 나타나는 성인망가를 연상케 하는 해일의 미묘한 물결.

여성상위 시대. 유방의 옛 고사를 따르자면 저 다리 밑을 기어야 나중에 큰 인물이 될 거라능. 

거꾸로 여자를 메다꽂고는, 발사~* 갑니다 슝슝슝. 뱅글뱅글 돌아가는 유도미사일처럼 하염없이 지루한

동심원을 그리며 목표물을 향해 뻗어나가는 '가늘고 긴' 응응응.

공원은 꽤나 넓었다. 그리고 몇 개의 실내 전시관을 갖고 있었는데, 거의 성인용품점을 방불케 하는 수준의

화려한 데코와 구비용품들이 흥미로웠던 전시관이 하나-여기는 파리 몽마르뜨에서 구경했던 성인용품점보다

볼 게 많았다. [파리여행] 물랑루즈 거리의 홍등가.-있었고, 이곳은 나무를 깍아 만든 목공 조각들을 전시하는

곳이었다. 작품들은 뭐, 이미 수많은 남근석이니 남근목이니 그런 문화에 익숙하니만치 별다른 건 없었지만

가끔 재미난 것들도 있었다. 이 사진처럼 제목이 정말 운율감있게 딱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고.

이 작품처럼 뭔가 정말 진하게 와닿는 필을 던져주는 것도 있었다. 시작, 을 말할 때의 설레임과 일말의 망설임,

잘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걱정, 혹은 격정적인 기대감 따위. 주위에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사서 선물하고 싶어지는 작품이랄까.(주위에 그런 사람이 없어서 하는 말이다.)

커다란 원을 그리며 조각공원을 한바퀴 돌아 나오는 길, 이번에는 '세차게 돌려주세요'라는 제목, 혹은 요청이

붙어있는 모빌 옆을 지나치게 되었다. 아, 하고 뭔가 깨닫고 말았다.

벤치조차 범상치 않은 그곳, 낮에 갔으면 꽤나 뻘쭘하거나 재미없었을 것 같다. 적당히 어둠이 배경을 지워주고

다른 사람의 이목을 가리워주는 시간에, 조금은 더 '몰래 보는 재미'가 커지는 밤에 가는 게 좋은 거 같다.




제주도에 가면, 네모가 있다~*

"바람난 고추 때려잡는 뿅망치"가 있다.ㅋㅋㅋ





일요일, 점심때쯤 비가 온다길래 비가 그치면 나설라고 창밖만 내다보고 있다가 왠지 '낚였다'는 기분에 우산도

안 챙기고 길을 나섰다. 덕수궁미술관, 배병우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덕수궁미술관은 왠지 원 플러스 원의 느낌이다. 전시도 보고, 가는길 오는길 틈틈이 덕수궁도 구경하고.

갈 때마다 뭔가 새로운 걸 발견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예컨대 중화전 옆구리에 붙어있는 분수대에서

물개인지 수달 모양의 조각을 발견한다던지.

이런 것도 있다. 조선시대엔 우리와 다른 시간을 살았던 거다. 단순히 자시, 해시, 따위 12간지를 본딴

어중띤 시간감각을 말하는 게 아니라, '과학적'인 해시계와 '과학적'인 현대의 시간계측 간에도 적잖은

차이가 있다는 것. 십몇년마다 일초씩 뚱땅뚱땅 고쳐나가는 지금의 시간도 그다지 믿음직스럽진 않지만

어쨌든 문제는 '기준'이다. 지금의 시간대로 '해시계 시대'의 시간을 번역하기 위한 로제타스톤인 거다.

해시계를 짓누르는 음울한 하늘, 뭔가 고장나 버렸지만 여전히 늠름한 해시계의 위용.

뜬금없게도 뭔가 우리들 사이에도 저런 보정표, 혹은 정오표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이런 반응은

너의 요런 반응과 대응하고, 너의 저런 반응은 나의 죠런 반응과 대응한다는 식의 해석을 가능케 해주는.

지금 시간이 몇시니. 하고 누군가 물어보면 이 움푹한 세수대야같은 데다가 고개를 들이박고는 시간을

헤아렸을 당대의 마인드가 왠지 운치있을 법 하다.


정말 멋진 풍경이었다. 한라산등성을 구불텅 넘어가는 왕복 2차선, 길 양편으론 억새가 무성했고 저 멀리로는

어슴푸레 오름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눈이 한뼘씩 쌓인 밤길이었고, 지나는 차 한대 마주치기 쉽지 않았다.

어느 순간 차는 멈춰야 했다. 짙은 먹장구름이 조금씩 헤쳐지면서 동이 트고 있었다. 앞뒤로 오던 차들이

조금은 일찍 알아서 피해가겠구나, 비상등 깜박이도 잘 보이겠구나, 그 와중에 살짝 안심이 되었다.

불과 그 몇십분 전. 캄캄한 어둠 속에서 형형히 헤드라이트를 밝혔던. 

내리막길, 빙판길이었다. 돛대처럼 펄럭, 펼쳐올라 부풀었던 본넷은 그나마 얌전히 구겨 닫았다.

그런 거였다.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차, 몇 걸음 동동거리기도 전에 발등까지 차오르게 쌓인 눈 덕에 신발도

흠뻑 젖고, 손발도 꽁꽁 얼어버렸댔다. 사실은 내가 다치지 않은 것, 누굴 심각하게 다치게 하지 않은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라 생각한다. 충격의 순간, 죽는 건가 했다.

제주 지역주인 '한라산'도 19도쯤의 순한 소주가 나왔더랬다. '한라산물 순한소주'. 후유증인지 만성피로인지

몸과 마음이 여전히 축축 처져있어서, 순한소주 따위 말고 저 북조선산스러운 '한라산'을 마셔버렸다.



비몽사몽, 읽으려고 가져갔던 책은 몇장 읽지도 못하고 세네시간 자다 일어나 숙소에서 내려다본 풍경. 희뿌연
 
아침햇살 아래 보이는 공사판이 답답하다. 정돈이 된다면 그럴듯해지겠지만, 아직 송도는 분장 중이다.

행사는, 비즈니스 미팅은 쉽지 않다. 늘 예기치 않은 상황이 생기기 마련이고, 양측을 만족시키는 미팅을

안배하기란 애초 한계가 있으며, 삼십분의 짧은 미팅시간은 약간의 지각, 약간의 변수 만으로도 충분히 이후

스케줄을 헝클어뜨릴 만큼 위태위태하다.


잘해야 본전일 수 밖에 없는 이런 행사의 운영이란 것, 할 수 있는 부분이란 가용한 부분을 최대한 활용해서

누수를 막고 예측가능한 빵꾸를 때워내는 것. 스물다섯의 운영요원의 건투를 빌며 상담장으로 쓰이는 홀 두개,

등록데스크, 인터넷 까페와 대기장을 빨빨거리고 다녔다.


이틀째 누군가 한 명의 대학생 운영요원으로부터 들은 말, "근데 인턴이신가요?" 뭐. 어리게 봐준거라면 땡쓰,

뺑이치는 게 인턴같아 보인 거라면..흠. 구두가 물에서 막 건져낸 걸레처럼 축축해져 척척 살에 달라붙는 느낌,

이런 행사할 때 한번은 슬쩍 만보기를 차봤던 적이 있는데 이만보가 너끈히 넘었더랬다. 운동 솔찮이 된다.

보도자료에 나갈 사진이 필요하다 하여 찍었던 행사장 전경 중에 실제로 쓰였던 사진. 빈 테이블이 그림에

나오지 않게 하고, 뭔가 열의띈 모습으로 상담하는 모습을 담아내고 싶었는데 사실 맘에 드는 사진이 없었다.


한상, 韓商. 중국의 화상이나 유대인들의 유대상들처럼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해 보려는 시도지만, 아직

갈 길이 먼 것도 사실이다. 비즈니스가 이뤄지려면 국적이나 다른 조건보다 상호간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게

우선이니까. 그런 이해타산을 따지고 서로가 얻을 수 있는 최선의 결과를 윈-윈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준 게다. 내년은 대구.

사람들이 좀 한 풀 꺽이고 난 등록데스크. 운영요원들이 꽤나 능숙하게 해주어서 그래도 운영상 큰 문제는

없이 이틀간의 상담이 지나가고 있었다. 뭐...누군가에게 막말을 듣기도 하고, 누군가의 불끈 쥔 주먹이

금세라도 뻗어나올까봐 쫄기도 했지만, 그 이상으로 고맙다, 만족한다라는 이야기도 들었으니 됐다.

운영요원들. 구두를 신고 온종일 종종거리며 뛰어다니는 게 어찌나 힘든 일인지, 파장 무렵에는 기어이 바닥에

철푸덕 앉아버리고 말았던 높은 굽의 여성 요원들 덕분에 그래도 큰 탈없이 행사가 굴러갔다. 어찌 그렇게

영어도 중국어도 러시아어도 잘하시고 까칠한 사람들에 대응도 잘 해주는지.


짬이 좀 나서 주르르 의자에 앉아 쉬는 그녀들을 보자니 갑자기 면접장 분위기로 바뀌어버렸다. 애초 단정하고

프로페셔널한 분위기를 위해 검정정장과 질끈 묶은 머리를 요청했던 게다.

잔뜩 미어지던 에스컬레이터도 한 숨 돌리는 시간. 행사가 끝나가고 있었다.

창밖으로 기울어지는 해. 이제 몇개 남지않은 미팅을 정리하고 상담실적을 집계하는 일만 남았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본 화장실 표시 중 꽤나 깔끔하고 이뿌다고 생각한 그림. 간략한 선으로 남녀를 표현하고

눈에 잘 띄도록 한다는 목적에 충실한 표지판. 송도컨벤시아에서 제일 맘에 들었던 것.

게다가 이 계단 표시란. 구구하게 계단 표시를 전부 그릴 필요도 없이, 화살표의 구부러짐과 진로만으로

충분히 알아볼 수 있게 한다. 보는 순간, 오..이거 괜찮은데 싶었다.

둘째날 미팅은 오후 세시쯤 완료. 뒷마무리하고, 어느새 급빈티지스러워진 등록데스크를 보며 한바탕 전쟁이

지나간 흔적을 더듬었다. 뭐랄까, 방금까지 부산히 돌아가며 윙윙대던 모기떼들이 갑자기 탁, 하고 멈춰버린

느낌이다. 멍하다. 새삼 느껴지는 발바닥의 통증이 무지근하다.

이제 비어버린 인터넷 까페에 앉아 한 컷. 잔뜩 지쳐버렸지만 그래도 속은 후련하다. 어느 기업대표가 왔는지

안 왔는지, 미팅일정이 어떻게 변경되고 어떻게 취소되었는지 따위 머릿속을 채우던 단기 기억들을 닥닥

긁어모아서 싹 휴지통에 몰아넣고는 '휴지통 비우기'를 해버렸다.


남은 것은 상담실적 집계와 결산, 보고서 작성이라거나 몇몇 한상과 국내기업에 대한 피드백 등이지만, 일단

당장은 좀 쉬기로 한다. 그러고 보면 이틀내내 2층 행사장 밖으로는 한걸음도 안 나섰던 거다.





인천 송도, 얼마전 있었던 '인천세계도시축전'을 구경했던 친구 말로는 온통 뻘밭, 황량한 공사판이라 했다.

정말, 여전히 높은 건물들은 올라가는 와중이었고 커다란 크레인이 무리지어 있는 모습이 두바이의 그것을

조금 축소시킨 느낌이었다.

10월 27일부터 29일, 세계 곳곳에 자리잡은 한상, 한국상인들의 네트워크화를 도모하려는 여덟번째 한상대회가

있는 기간이다. 한상대회의 '꽃'이라 불리는, 예산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일대일 비즈니스 미팅은

28-29일. 전날부터 행사장에 도착해 동선은 어떤지, 배너는 적절히 걸려있는지 세팅상황을 살피고 한상과 국내

기업들의 미팅 일정을 체크한다.

더이상 해외에서 유입되는 신종플루를 겁낼 때가 아니라, 국내에서 돌고 있는 바이러스를 걱정해야 할 때.

어떤 업체에서 제공한 소독용 약산성수 살포기가 입구마다 설치되고 곳곳에 세정제가 비치되었다.

한쪽에 배치된 응급의료소, 라고는 하지만 사실 '응급'상황이란 건 정말 꽤나 드문 일일 터. 응급상황이 아닌

때를 위한 '의료상담, 혈압측정, 혈당검사'도 취급하는 의료소다.

그리고 인천시에서 '생산'하는 수돗물도 무료로 제공. 이름이 뭐였더라...서울 수돗물은 아리수, 인천 수돗물은

뭐였지...미추홀이었던가. 백제의 건국신화부터 유래된 고풍스런 이름 미추홀. 그치만 수돗물의 비릿하면서도

까칠쌉쌀한 느낌은 너무도 현대적이랄까.

동선 체크. 1층 정문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배너와 현수막들이 제대로 배치되어 있었다면 된 거다. 여기를 지나

에스컬레이터만 타면 더이상 샛길로 빠질 염려는 없다는. 작년에 제주도에서 했을 때도 동선이 과히 깔끔하진

않았는데 이번에도 역시 그다지 동선이 쉽지는 않다.

테이블 40개씩 홀 두개를 가득 채운 미팅장. 다음날 아침부터 시작되는 미팅을 위해 상담테이블이 세팅되어

있었는데 공간을 구획하는 저 파티션이 넘넘 어정쩡한 거다. 치우기로 했다.

등록데스크. 아직 비닐냄새가 생생한 배너가 붙어있는 등록데스크지만, 내일아침이면 운영요원들과 업체

관계자들로 정신없이 붐빌 테고, 그렇게 이틀이 지나면 뭔가 '신삥'의 어릿어릿함을 지워낸 채 전투를 겪은

노련함이 묻어날 게다.

2층에서 바라본 인천 송도컨벤시아의 전경. 드라마를 안 봐서 모르긴 하지만, '꽃보다 남자'에서 윤지후가

피아노를 쳤던 곳이 여기 어디라던가.

참 휑하다. 그렇지만 뭔가 부지런히 뚝딱거리며 건물이 세워지고 지표면이 꾸며지고 있는 중이고, 또 그렇지만

아직 갈 길이 참 멀다는 느낌이다. 밥 먹을 곳조차 찾기 쉽지 않아 한참을 돌아야 했더랬다.

근 삼십여명의 운영요원-자원봉사자..라고 하기엔 유급이라 적절치 않은 관계로 호칭이 이렇다는-들을 소집해

담날, 다담날 행사 진행에 대한 간단한 교육과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나서 본격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많이 기울어진 해가 창밖에서 고개를 잔뜩 빼물고 행사장 안까지 구경중이다.

담날 등록데스크에서 등록여부를 확인한 후 나눠주게 될 명찰, 뒷면에는 삼십분 단위로 빽빽히 배치된 미팅

스케줄이 해당기업에 맞도록 적혀있는 터라 약간씩만 일정이 변경되어도 수정해야 할 명찰수가 장난아니게

늘어난다. 한상이 약 200개, 국내업체가 약 300개였던가. 일단은 가나다순으로 정리하고 그새 변경되거나

취소된 일정은 밤에 숙소로 돌아가 반영해놓기로 했다.

환영만찬 일정이 있어 이제야 부랴부랴 세팅에 들어간 홀 하나. 라운드테이블이 빠지고 배너를 바꿔달고,

의자와 테이블을 잔뜩 깔아놓고 착착 형태를 갖춰나가고 있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배너를 늘어뜨리고, 구김을 얼추 펴내리며 사다리를 밟아내려오는 분들의 노련한

손놀림이란. 뭔가 프로의 손놀림이다.

입구에서부터 1층 에스컬레이터 앞까지, 엑스자배너를 설치하고 빨간 화살표모양 스티커를 붙여 방향을

가리킨다. 처음엔 좀 찾아오기 어렵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는데, 배너를 십여개나 '도배'를 해버리고 나니 이건

억지로 딴 길로 새버리기조차 쉽지 않겠다 싶다.

어느덧 깜깜해진 행사장. 저녁먹으러 가자고, 아직 컨펌되지 않아 걱정스러운 미팅건도 있고 행사장 세팅도

채 완료되지 않았으며 테이블 위에 놓일 넘버링 스탠드도 몇개 모자르지만, 밥은 먹자고 재촉하여 나서는 길.


그러고 보니 인천에 도착한 게 오후 두시, 바로 행사장 돌아보고 운영요원 오리엔테이션하고 명찰이다 뭐다

챙기다 보니 숙소에 체크인한 건 밤 열시였던가. 뭐랄까, 한판 행사를 벌이기 전의 긴장과 분주함이란 건

마치 연극을 무대 위에 올리기 전의 어쩔 수 없는 그것과 같지 않을까 싶다. 아무리 준비해도 모자란 부분은

생기기 마련이고, 정작 삐걱대며 무겁게나마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다음엔 알아서 자체의 동력으로

움직이게 되는.



문득 버스를 타고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 온통 텅텅 비어버린 네모난 버스칸의 내부.

평소 늘 이상하다고, 재밌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진찍어두지 못했던 광고를 맘대로 찍어본다.

유패스랜다. Upass. 조금 이상하게 끊어 읽으면 많이 이상해진다. Up/ass. Up (your) ass.

서울교통카드의 새이름, 업유어애스~ 다들 앉아있지 말고 엉덩이들고 서 있으란 얘기렸다.

'개그콘서트'의 "독한 녀석들"이란 코너던가, 그런 식의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공익광고.

술담배 안 하는 게 뭐라고, 수능이랑 연계해서 애들한테 꼬드기냐. 담배 핀다고 수능이 대박나는 것도

아니고, 술마신다고 공부 안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뭐...왠지 이런 식의 샤방샤방한 척 하면서 순진한 척

계도적이고 건전한 광고는 맘에 안 든다. 사람으로 따지면, 목회자같다고나 할까.


여튼, 사실 이 버스는 '아무도 없는 텅빈' 버스는 아니었다. 내가 있었고, 운전기사 아저씨가 있었다.

운전기사 아저씨를 버스에 녹여서 일체로 생각해 버린 건 아닐까 반성. 기분 나쁘셨을 텐데 죄송~*



추석때 갔던 구리 한강시민공원. 차들이 2차선 도로변을 빼곡하게 메워놓고 주차되어 있었고, 사람들은
 
이토록 넓은 코스모스밭에 듬성듬성 풀려나 있었다.

그냥 분홍빛 풀밭으로 보이던 것들, 가까이서 보면 초록 풀빛 위에 얹힌 형형색색의 분홍빛 꽃잎들이다.

발 디딜틈 없이 빼곡하게만 보이던 '그야말로 꽃밭', 한 가운데 길이 나있었다. 물을 공급하는 검정 호스가

좀 거슬리긴 했지만, 양쪽 시야에 코스모스를 꽉 채우고 길을 걷자니 꽤나 멋지다.

꽃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이유는, 색이니 향이니 모양이니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모든 것을 아울러서

이 뽀송뽀송하고 때묻지 않은 '새것'이란 느낌 그득한 점이 크지 않을까. 적어도 난 그렇다.

꽤 잘 꾸며놓았다. 오두막에 주렁주렁 매달린 잘 익은 조롱박, 처음엔 너무 이쁘게 생겨서 가짜인가 했댔다.

언제부터 나와서 원두막을 차지했는지 아예 안방처럼 편하게 자리잡으신 가족들.

신기한 탈것도 있었다. 워낙 넓은 공원을 모두 코스모스 밭으로 꾸며놓은 터라, 걸어서 돌기도 쉽지 않은 터에

피곤하다 싶은 사람이라면 굉장한 유혹을 느낄 만한 탈거리지 싶다.

똑같은 계절인데 코스모스들도 제각기 다르게 느끼나 보다. 잔뜩 만개한 코스모스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한 귀퉁이는 이미 이렇게 꽃이 지고 뾰족하고 길쭉한 코스모스씨를 툭툭 떨구고 있는 대궁이들이 있었고

또 다른 쪽에서는 아직 탱탱한 꽃망울이 터지기 직전의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기도 했다.

제목은? "꽃과 나", "갈대처럼 지저분한 나", "코스모스도 한 철, 나도 한 철", "코스모스가 뛰니가 나도 뛴다"..?

애초 컨셉은 신해철이 넥스트로 활동할 때 잔뜩 가오잡고 있어보이는 척했던 그런 포즈였는데..OTL.





주상절리 가는 길, 잘 생긴 야자수들이 늘어서 있고, 오른쪽엔 현무암으로 쌓은 돌무덤들이 드문드문.

주상절리, 주상절리, 소리내어 발음을 해보면 왠지 '주상절리'라는 쫀득한 젤리가 입안에서 착착 감기는 느낌이다.

막상 녀석의 생김이란 울툭불툭, 육각형의 까칠하기 그지없는 기둥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으니, 이름하곤 별로

매칭률이 높진 않다.

주상절리가 어떻게 생겨난다더라, 뭐 세세한 건 다 까먹었지만 요는 그렇다. 바다 밑 땅속에서 부글부글 끓어 넘쳐나온

용암이 파앗, 하고 분출하는 순간 바닷물에 급속 냉각되면서 빳빳하니 굳어가며 육각형의 결정형태를 이룬다던가.

갠적인 생각으로는, 그런 거 모르고 보는 게 더 신기할 때가 있다.



작년 10월에 제주도 출장을 가서 머물렀던 펜션. 제주 컨벤션센터와 가까워서 좋기도 했지만, 일단 통나무로 이쁘게

지어진 2층짜리 펜션이 넘 이뻐서 좋았다. 더구나 2층은 뾰족한 세모꼴 천장이 그대로 살아있었다는.

펜션 자체도 이뻤지만, 앞마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귤밭이 정말. 2008년 10월 말께의 노란 제주도 귤밭.

워낙 귤나무가 무성한 잎사귀들을 달고 있어서 무슨 정글 속에 노란 귤 한 박스쯤 쏟아 부어놓은 듯한 느낌.

신라호텔이었던가, 여기 전복죽이 아주 맛있다는 이야기에 죽 한사발씩 먹고 산책삼아 걸었던 호텔 정원.

수영장 바닥을 파란색으로 칠하는 건 참 멋진 아이디어였던 거다. 시원해 보이고, 맑아 보이고, 그래서

뛰어들고 싶게 만드는 파랑물이 일렁일렁. 옆에 있는 파라솔들 역시 매력도 아닌 '마력' 아이템.

신라호텔 뒷길 산책로가 그렇게 유명하다고 하길래, 그래? 이랬더니 여기에 바로 그 쉬리 마지막 장면을 찍은

벤치와 언덕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휘적휘적 걷던 중에 마주친 (징그러운) 잉어떼들.

옛날 이야기 중에 물에 빠진 사람을 물고기들이 수면으로 떠밀어올려 살았다거나, 적들에게 쫓기던 와중에

물고기들이 물위로 떠올라 다리를 만들어 주어 큰 강을 건널 수 있다거나. 이걸 보면 왠지 있음직한 일이다.

어디 한번 먹다 죽어봐라, 하는 심정으로 먹이를 뿌려댔을 거다 분명히.

그러고 보니 이 날도 꽤나 흐렸었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니 한걸음 한걸음 가까워지는 해안가. 깜장이 현무암

울타리를 넘어서는 초록빛 싱싱한 풀밭에 들꽃이 지천이었다.

이게 바로 '쉬리 벤치'. 한석규와 김윤진이 나란히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When I dream..

그러고 보면 '쉬리'란 언젯적 작품이냐..1999년이었을 거다. 근데 쉬리의 영문명이 Swiri라는 건 방금 알았다.


일망무제의 바다, 터무니없이 큰 물웅덩이를 눈앞에 두고 있으면 왠지 막막해지기도 하고, 멍해지기도 하고, 그렇다.

해변을 따라 제주도에서 흔치 않을 모래사장이 곱게 이어져 있었다.

돌아오는 길엔 억새가 깃발처럼 나부꼈다. 호텔 시설을 굳이 사용하지 않고도, 단지 산책로를 걷고 쉬리 벤치에

한번 앉아 보는 것도 괜찮다 한다. 지나는 길에 잠깐 차 세우고 걸어봄직한, 짧막하지만 꽤나 이뿐 산책로.




짧은 제주 일정의 마지막 경유지는 바로, 성산 일출봉. 대학교 일학년 때 친구들과 자전거로 제주도를 일주할 때

멀리서부터 그 봉우리를 보고는 다들 미친듯이 페달을 밟았던 기억이 생생한 곳이다. 이번에는 일출봉 바라보고

가던 길에 배가 고파 살짝 무슨무슨 맛집, 어디 프로그램 소개 맛집, 요런 데 들러서 가볍게 식사를 했다.

그 식당 앞에 무질서하게 쌓아올려진 듯 보이는 돌담, 바람이 숭숭 잘도 통하게 쌓아놨다.

매표소 옆의 계랸색 매점 건물을 지나 눈을 높이면, 웅장한 맛을 풍기는 일출봉이 우뚝하다.

제주 지역방송들이 방송 중간중간에 간지 끼워넣듯 껴넣는 이미지, 성산 일출봉에 해뜨는 모습이라지만 사실 여기서

해뜨는 건 번번이 못 보고 지나갔었다. 가족들과 어렸을 적 왔을 때는 아예 요앞에서 묵으며 해를 기다렸는데 날이

흐려서 못 봤었고, 다른 날은 여기에서 일출이나 일몰을 기다릴 타이밍이 되지 못했더랬다.

성산봉 오르는 길목, 초록빛 싱그러운 초원 위에는 잘 생긴 갈색 말 몇 마리가 묶인 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뿐 아니라 제주도를 돌다 보면 드문드문 승마 초보자 환영, 말타볼 수 있는 곳, 이런 간판을 많이 볼 수 있다.

초원 같은 평지, 살풋 각도가 느껴지는 평지를 지나 본격적으로 등산 시작. 일출봉 어귀에 있던 매점에는 중국어가

떡하니 적혀있었다. 샨샹메이요우슈웨이~. 일출봉 오른 후엔 물 파는 데가 없으니 여기서 사란 얘기. 그러고 보면

제주도에서 중국인 단체관광객은 눈에 참 많이 띈다.

일출봉 가는 길이 그때도 이렇게 잘 닦여 있었던가, 처음부터 끝까지 차곡차곡 계단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다지 길지

않고 힘들지도 않은 코스, 지레 겁먹었던 동생님도 어느새 생기발랄해졌다. 왕복 50분이면 넉넉히 보고 돌아올 듯.

일출봉에 올라서서 바람으로 땀을 식히는데, 좀 곤란하다. 커다란 분화구 모양의 일출봉. 사진을 찍을 만큼의 적당한
 
거리를 허용치 않은 채 나와 방문자들을 덥썩 안아 버렸다. 제법 까끌하면서도 부드러운 질감이 느껴지는 초록빛

커버가 분화구를 매끈하게 메우고 있었다. 현무암에 잔뜩 슬어있던 이끼같기도 하고, 스프 위에 좀 과하게 뿌려놓은

아스파라거스 가루 같기도 하다.
 
안개 자욱한 분화구 너머 마을이 희끄무레하게 보이고, 분화구의 오톨도톨한 가장자리가 험준한 산의 능선이나

백두대간처럼 쭉 이어진 산맥처럼 보인다. 파도치듯 쉼없이 달려나가는 백두대간의 미니어쳐랄까. 아님 우유 광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 우윳방울이 낙하한 직후의 왕관같은 흔적과도 흡사하다. 천분의 일초 쯤으로 찍어올린 장면,

튀어오른 물방울들은 전부 어디로 가버린 걸까.

정상에서 굽어본 중간 쉼터. 사람들이 조그만 게 개미같고, 나무들은 딴딴하고 속이 찰진 파슬리나 브로콜리 같다.

멀리 보이는 마을과..저건 호수인 척 하는 바다일까. 그러고 보니 이날 날씨가 하루종일 흐린 편이었기에

더위도 덜했고, 땀도 그다지 많이 나지는 않았던 거 같다. 바람이 찍혀 나온 사진.

성산 일출봉에 올라 사람들이 밟을 수 있는 영역이란 딱 여기까지다. 울타리가 설치된 구간은, 커다란 분화구의

오분지일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의 공간만 확보해 주었을 따름이다. 사람들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나름

최선의 뷰를 잡아보려 애쓰지만, 어쩌면 이 곳의 풍광을 오롯이 감상하려면 열기구나 헬리콥터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게다가 맨눈보다도 못한 카메라로는 눈으로 감상하는 풍경의 절반도 담지 못하겠더라. 적어도 나는.

내려가는 길, 그러고 보니 내게 남아있던 일출봉의 이미지란 단지 그 뾰족한 화구만의 것은 아니었다. 거기까지

이르는 길에 푹신해보이도록 깔려있는 녹색의 잔디밭, 언덕이 그려내는 아름다운 곡선, 그리고 그 너머에서

산산이 부서져 있는 햇살, 그 햇살이 둥둥 표류하는 바다.

어라, 한쪽에는 모터보트 선착장도 생겼나보다. 이런 거 못 봤던 거 같은데. 계속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 내어 굳이

대조해보게 되는 건 왤까.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느끼려고 애쓰면서도, 막상 쉽지 않다. 어쨌거나, 혹시

모터보트 추격신이 필요하거나 해안 총격장면을 찍어야 하는 감독이라면 한번 추천해주고 싶긴 하다.

내려오는 길 어딘가에서부터 사람들이 다듬어진 돌계단길을 버리고 잔디밭으로 걷기 시작했다. 사실 보폭이 그다지

고려되지 않은 채 만들어진 계단인지라 계속 왼쪽 다리로 계단을 내려서게 되거나, 혹은 반발짝을 마저 걸어야 하는

등 좀 불편하고 힘들었다. 푹신푹신, 경사가 제법 되는 길인데도 사방을 둘러보며 걸을 여유가 생겼다. 덩달아

여유로와보이는 저너머 '노인과 말'.

늘 생각하지만 제주도에 가서 성산 일출봉은 왠만함 꼭 들러야 하는 곳이 아닐까 싶다. 단순히 봉우리 하나

등산하듯 오르내리는 게 아니라, 그 봉우리 앞에 쫙 펼쳐져 있는 이런 풍경들, 이렇게 이쁜 길들, 그것들은

'성산 일출봉'이란 이름과 떼어놓을 수 없는 매력적인 공간들이지 싶다. 일출봉이 덮고 있는 무릎깔개처럼

안온하고 포근한 느낌을 전해주는 그 보들보들하고 싱싱한 녹색. 그러고 보니 언젠가 한번 구경갔던 골프장의

인공조경과 비견할 만한 굴곡에 녹색이다.


일단 올해 다녀온 제주도 여행기는 여기서 끝~*


제주#1. 제주올레 7코스, 외돌개를 끼고 걷기 시작하다.
제주#2. 꽃길, 찻길, 논두렁길, 바닷가길을 넘어 건너.
제주#3. 철조망에서 자유로운 제주도의 해안..?
제주#4. 남/녀 노천탕에 사람은 없고 조개껍데기만.
제주#5. 올레길 7코스의 바닷가 우체국.
제주#6. 강정포구 가는 길(올레길 7코스)
제주#7. 올레길 7코스 vs 해군기지.
제주#8. 월평포구에서 끝난 올레길 7코스.
제주#9. '업'에서 나왔던 커다란 새를 찾아내다.(아프리카 박물관)
제주#10. 오설록녹차박물관에서 '현미녹차'를 생각하다.
제주#11. '식상한' 천지연보다 '제주감귤와인'이 궁금했다.
제주#12. 이름이 왜 5.16도로일까.
제주#13. 숲다운 숲, 비자림 거닐며 산림욕 한번 어떨지.



비자림, 어렸을 적 바둑을 잠깐 배웠을 때 적당한 두께의 비자나무 바둑판이 최고급이라는 풍월을 들었던 거 빼곤,

비자나무라는 이름 자체가 낯설기만 했다. 제주도의 서북쪽께, 제주시와 성산일출봉 중간쯤에 있는 비자림은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대단히 희귀한 비자나무 숲이라고 한다.

티켓을 받아들고 이거 뭐야, 했다. 왠지 글씨체가 북한에서 많이 쓸 법한 격정적인 궁서체여서, 전반적인 티켓의

색감도 왠지 남한보다는 북한에서 많이 쓸 법한 느낌? 개성공단에 갔을 때 보았던 한글 간판들의 궁서체와 꽨

흡사하다 싶다. (이런 글 쓰면 조만간 티켓 디자인 바뀌는 거 아닐까 몰라. 근데 특징적이란 얘기지 절대 싫다거나

혹은 '표 디자이너'가 빨갱이 아냐, 란 식의 이야길 하고 싶은 건 아니다. 아 이 기나긴 자기검열과 지레 핑계대기)

매표소에서부터 4-50분 걸으면 비자림을 한바퀴 여유있게 걷고 나올 시간이 된다고 한다.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하트 모양 뚫려 있는 바위와 잘 조성된 정원. 연인끼리 간다면 하트를 마주한 채 양쪽에 설 법한,

전형적인 포토존이다.

비자나무의 이름은, 잎의 뻗어나간 생김생김이 한자 아닐 비(非)자(字) 닮았다고 해서 비자(非字)나무라고 한다.

은행열매랑 비슷하게 생긴 누런 빛의 열매가 투둑투둑 떨어져 있었는데, 은행열매의 고약한 똥내와도 다르고

살짝 시큼한 느낌, 혹은 비린내가 풍겼다. 왜 오존발생기에 코를 박으면 맡을 수 있는 그런 비릿한 냄새같기도 하고.

돌에 잔뜩 끼어있는 이끼는 볼 때마다 신기하다. 대체 저 돌멩이에 빨아먹을 양분이 뭐가 있다고.

'숲'이란 건 왠지 생소하다. 무럭무럭 자라난 나무들이 이렇게 하늘을 가리울 만큼 커진 채 무리를 이루고 있는 걸

보기가 쉽지 않은 탓이기도 할 거고, 숲이라고 불릴 만큼 너른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나무들을 보기도 쉽지 않아서다.

그런 점에서 비자림은 꽤나 숲다운 숲이었다. 울창하고, 푸르고, 아늑한 느낌에다 살짝 비릿하지만 상쾌한 내음까지.

연리지. 아마 이 단어를 대중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건 최지우가 주연을 맡았던 동명의 영화보다도, 각종 퀴즈프로에서

심심치 않게 나왔던 덕분이 아닐까 싶다. "이 비자나무에 영원한 사랑을 빌어보세요."

사진이 좀 흔들렸지만, 한때 나의 드림카였던 푸조 시리즈. 무려 '푸조나무'라는 나무가 있어서 신기해서 한방.

이름이 무려 "새천년 비자나무". 2001년인가, 당시 수령이 830여세의 이 나무를 두고, 비자림에서 니가 짱먹으라며

붙여준 이름이란다. 당시 '새천년'이란 단어가 유행하긴 했지만 나무에도 이런 악취미한 작명이라니. 뭔가

비자림을 관장하는 숲의 신이 깃들어있는 듯한 포스를 쫌 말아먹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내려오는 길, 비자림을 걷는 사람들이 발을 씻거나 신발을 씻고 갈 수 있도록 마련해둔 수도꼭지도 범상찮다.

종종 신발을 벗어들고 맨발로 걷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는데, 따라하고 싶은 맘이 쿡쿡 솟아났지만 참았다.

'새천년 비자나무'를 기점으로 올라가는 길과 내려가는 길이 다른데, 그곳까지 걸어들어가는 길이 나무가 잔뜩

우거진 숲길이었다면, 그곳에서 걸어나오는 길은 잘 정돈된 산책로 같았다.

그림같은 길. 걷기도 편하고. 현무암 돌담길을 옆에 끼고, 황토빛 흙길에 떨궈진 비자열매들을 즈려밟으며,

내딛는 걸음걸음 뚝뚝 끊어져 내린 햇볕들과 희롱하다. 약간의 저항감이 느껴지던 열매가 터질 때 퍼지는

비자열매의 향기란.

이상하다 싶도록 심심찮게 등장하는 이 사람. 누구냐 넌. 안 올리려다 배경이 워낙 이뻐서.

걷는 속도로 사진찍기. 멈춰선 사진엔 왠지 직접 걸으며 느끼는 실감이 덜하겠다 싶어서.

거의 입구까지 돌아나온 길, 한 쪽에는 벼락맞은 비자나무가 있다.

하트무늬로 구멍뚫린 돌 옆도 다시 지나고, 저거 자연적으로 생긴 걸까, 그렇담 정말 멋진데.

이제 제주도에서 꼭 빼놓을 수 없는 마지막 장소만 남겨두고, 비자림을 떠났다. 아무래도 밤비행기를 타기까지

하루코스는 정말 잘 짠 거 같다. 아침부터 오설록녹차박물관-아프리카박물관-서귀포시 점심-천지연폭포-

-비자림-그리고 바로 그곳-제주시 저녁까지.




제주도에 갈 때마다 드라이브 코스로 잊지 않는 5.16도로. 길 양쪽으로 길고 잘생긴 나무들이 쭉쭉 뻗어있다.

이야~ 여기 진짜 좋다, 란 탄성이 한 세네번 터지고 난 즈음이면 어김없이 길 한켠에 차를 대놓고 나와서

주위를 거니는 사람들을 마주치게 된다.

길도 적당히 꼬불꼬불거려서 운전하는 재미도 있고, 온통 양치식물이나 덩굴이 휘감긴 반듯한 줄기들을 보자면

어딘가 원시림의 냄새도 풍기고.

근데 왜, 이 멋진 도로의 이름이 5.16인 걸까. 이름의 유래도 모르겠고, 그런 무성의한 숫자이름 따위보다 좀더

이뿌게 이름을 짓는 게 어떨까 싶은데. 예전에 '블랙홀'이란 헤비메탈그룹이 이런 노래를 부른 적이 있다.

"815, 419, 516, 1212, 518, 629, 그리고 성수대교~" 운운하며 나가는 노래였는데, 5.16이란 숫자 혹은 날짜가

갖는 애초 의미가 무엇이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516도로에서 박정희의 5.16 쿠데타(누군가에겐 혁명)를 생각하지

않을까. 이 도로를 박정희 쿠데타 기념으로 착공한 건 아닐 텐데. 설마 그런건가..ㅡㅡ


차제에 이름 공모라도 해보는 게 어떨지. 이 아름다운 길에 걸맞는 좀더 이쁜 이름이 있을 거 같은데.

주차장 한 켠에서 뒤뚱맞게 어기적대던 오리. 어디선가는 개 대신 오리더러 집을 지키라 시킨다던데, 이 녀석도

목청은 타고 났다. 꽥꽥 꾸엑 그엑 구웩~ 좀만 있음 피토하며 득음하시겠다.

실컷들 사랑하라 가슴이 있을 때, 죽은 뒤에도 네 사랑 간직할 가슴 있겠니.

두 가지다. 가슴이 무슨 밥사발도 아니고 거기에 사랑을 무덤밥모냥 퍼담는 것도 아닐진대, 그리고 '사랑하라'는
 
여리고 고운 메시지를 이렇게 반말투로 해서야 되겠니.

그 옆에 천지호. 윙버스였던가, 에서 보았던 천지연의 대표 이미지였던 거 같은데 이 돛의 그림은.

천지연 폭포를 보러 가는 길은 두 갈래, 보통 오른쪽으로 걸어들어가 폭포를 보고는 왼쪽길로 돌아나온다. 몇 번쯤

제주도 올 때마다 들렀던 거 같은데, 좀체 기억이 안나신다는 동생님의 기억상실증 치유를 위해 다시 간 길이었다.

구멍 송송난 현무암 재질의 돌하르방, 최근 모아이석상의 모자를 어떻게 씌웠는지가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던가,

서태지의 공연이 보고 싶어, 왠지 방구석에 기대어 앉아 두 무릎을 잔뜩 끌어당긴 채 움츠러든 모습 같지 않나..

라는 식으로 마구 자유연상을 뻗게 해준 돌하르방들.

드디어 천지연 폭포, 온통 대기를 젖게 만드는 폭포의 포스도, 엠씨스퀘어나 아이도저처럼 규칙적인 음향을 내며

떨어지는 폭포수의 호쾌한 소리도, 동생님의 기억상실증을 치유하진 못했다. 다만 이제 다시 기억을 꾹꾹 눌러

담았을 테니 됐다.

여름에 수량이 좀더 많았었을 때 왔던가, 내 기억에 비해보면 조금 수량이 줄은 거 같기도 하다.

천지연 폭포 앞에서 이리저리 사진을 찍고 돌아서는 길, 다른 때에도 그랬듯 폭포에 최대한 가깝게 접근해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무리무리 자리잡고 있었고, 친구끼리 여행온 듯한 유쾌한 녀석들 몇몇은 폭포수로 가글하는

사진 연출에 여념이 없다. 왜 그런 거, 피라밋을 손끝으로 잡아올리고 에펠탑을 두손으로 미는 사진처럼.

삼복이 온다고 했다. 거북이와 원앙과 또 하나가...뭐였더라. 장수, 금슬, 또 하나는 백방 출세의 아이콘이었을 텐데,

여튼 다리 아래 저들이 붙잡고 있는 바구니 속에 동전을 넣는데 성공하면 출세도 하고 사랑도 지키며 오래 살 수

있다는 이야기. 원래 안 그런데 단번에 성공했다. 이 날을 기점으로 인생이 바뀌었어, 라고 훗날 말하게 될까.ㅋ

천지연 폭포에서 돌아나오는 길에 저 절벽 어딘가를 잘 보면 사람 얼굴이 나타난다던가. 기본적으로 너무 어둡게

찍은 탓도 있지만, 맨눈으로 봐도 난 잘 모르겠더라. 차라리 그 커다란 바위 병풍 위에 우거진 나무들의 짙푸른

녹음이 와닿았다.

천지연 물줄기가 돌틈을 타고 내려와 바다로 흐르는 길.

천지연 물줄기가 돌틈을 타고 내려와 바다로 흐르는 길을 찍는 사람이 찍힌 사진.

감귤초콜렛은 이미 익숙해졌을 만큼 성공한, 안정된 상품인 거고, 새롭게 등장한 응용상품들이 눈에 띄었다.

제주감귤주, 감귤와인, 백년초초콜렛, 감귤크런치초콜렛...감귤와인이 정말 궁금했다. 복분자와인이니 뭐니

많지만 늘 궁금했던 건, '와인'이란 단어가 애초에 '포도로 만들어진 것'이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건 아닌가?

감귤와인이 아니라 감귤(과실)주 정도가 맞을 거 같은데. 그런 건 차치하고 일단 맛이 너무너무 궁금했지만

운전을 해야 했어서 안타깝게도 패스.

딱 이거다. 돌하루방 중에 가끔 찐따같은 포즈와 표정을 가진 것들이 있다고 느꼈었는데, 딱 이거다.

이녀석의 속마음. "흥, 아무리 옆에서 아줌마들이 날 떼어놓고 자기들끼리 좋다고 웃으며 떠들고 있어도 괜찮아.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내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보이는 건 한라산의 용암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기억하기

때문일 뿐이고, 두무릎을 바싹 땡겨 안은 채 안쓰러워 보이는 포즈를 굳이 잡고 있는 건 그저 무릎이 시려웠을

뿐이야. 기억할지 모르지만 난 제주 할방/하루방이라구. 건방지게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젊은 것들이 말야."


미안해 할방...풋.

* 천지연 티켓. 티켓에 나온 사진이나 지금이나 별반 유량의 차이는 눈에 안 띈다. 원래 이런 거였나.








오설록 녹차박물관, 아침부터 대형관광버스로 꾸역꾸역 관광객들을 토해내는 걸 보니 확실히 여긴 뜬 곳이다.

그럴 만도 한 게 녹차를 사업적으로 재배해 보겠다고 나선 한 기업 오너의 열정과 의지로 나름의 성공을 구가하고

있는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곳이다. 녹차라는 아이템을 세련되게 다듬고 새로운 상품을 고안해 내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의 녹차 문화도 좀더 본격화되었지 않나 싶다. 사실상 곡물차로 분류되어야 할 '현미녹차'가

고소해서 좋다던 입맛을 나름 다양하게 변화시켜 주었으니 말이다.

이 분이 바로 녹차 쪽으로 사업을 추진하라 명령을 내리신 분, 넓은 잔디밭에 서서 흡족하게 바라보는 쪽에는

꾸불꾸불 녹차밭이 웅숭그리고 있었다. 녹차밭 사진 한장 찍어줬어야 하는데, 아침부터 운전하느라 정신없어서 패스.

참...녹차박물관이라고 가서, 녹차밭도 아니고 풀떼기 잔디밭에 누군가 벗어놓고 간 꼬맹이 신발을 좋다고

찍고 있다. 개나리 노란 꽃그늘 아래 가지런히 놓여있는 꼬까신 하나~ 아기는 살짝 신벗어놓고 맨발로 살금살금

나들이갔나, 가지런히 놓여있는 꼬까신 하나, 꼬까신 하~ 나아아~ 고무줄 하던 기억을 뻐끔 퍼올려준 신발.

고무줄 놀이 나름 적잖이 했었던가, 나..?

아침에 비가 살짝 와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비는 그쳤고, 운좋게도 공기 중의 O2가 물방울에 실컷 두들겨맞고선

훨씬 청량해졌다. 현미녹차 티백을 어느순간부터 안 먹게 된 입맛으로, 박물관 내에서 무료로 시음시켜주는

초록빛 일렁이는 세작 녹차 한잔 마시고 나왔다.




업, 근래 봤던 영화 중에 꽤나 인상 깊이 남았던 영화다. ([업] Adventure is ubiquitous.)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고집스런 사각턱 할아버지나 통통한 동양계 꼬맹이 말고, 저 커다랗고 길다란 새를 기억하는지?

아마도 영화 속에서 할아버지가 집을 날렸던 곳은 남미 어디메쯤이었던 듯 하지만, 사실 이 새는 아프리카에

살고 있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짠~* (왠지 익숙한 이 단어, 짠~*) 똑같지 않은가, 강인하게 쭉 뻗은 긴 다리, 두껍고 강력해 보이는 부리, 전체적으로

타조와 비슷할 만큼 대형 몸집을 갖고 있으면서도 슬림하게 뻗어있는 허리와 둔부까지. 깃털까지 꼽아놓았다면 아마

더더욱 흡사하지 않았을까 싶다. 알록달록 빛깔이 선명한 깃털들로. 아프리카박물관엔 이런 조각상이 아주 많다.

제주도 컨벤션 센터와 마주보고 있는 아프리카 박물관, '서아프리카 말리공화국에 소재한 젠네 대사원'을 토대로

설계하였다는 박물관의 외관이 실물을 보고 싶다는 욕구를 마구 자극한다. 무려 세계 최대의 진흙건축물이랜다.

마당 한 켠에 분방하게 전시되어 있는 전통 가면들. 왠지 하늘로 손을 쭉쭉 뻗은 나무들조차 아프리카스럽다.

정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거대한 새의 조각상. 딱 보자마자, '업'에서 벌어지는 탐험의 중심에 있던

그 새가 너로구나, 반가웠다. "코뿔새 상"이랜다. 업에 나왔던 그 새의 이름을 이제야 알겠다. "코뿔새"다.

"코뿔새는 아프리카의 신화적 동물로 반투어로는 코몬도(Komondo)라고 불린다. 코몬도는 양성의 동물이며, 크기가 30m가 넘는다고 전해진다. 가뭄에 시달릴 때, 하늘에 비를 내려 주기도 하고 죽은자의 영혼을 사후세계로 인도하는 죽음의 사신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또한 나쁜 기운과 질병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해 주는 수호신 역할을 한다." (아프리카 박물관 홈페이지 참조)

아프리카박물관은 기대 이상으로 볼 거리도 많았다. 애초에는 하루 세차례, 11:30. 14:30, 17:30에 열린다는 아프리카

전통 공연을 위주로 보고 나머지 소장품들은 설렁설렁 보면 보고 말면 말자는 식이었는데, 소장품들도 풍부하고

재미난 것들도 꽤나 많았다. 아, 이런 아프리카 전통의 S라인 조각상을 봤다고 그러는 건 아니다.

S라인이 제대로 안 살아나 각도를 바꿔 다시 한번(이라고 쓰고 실은 여러번, 이라 속으로 생각한다) 찍는 열의를

보이기는 했지만, 정말 이 조각상이 그렇게 인상적이었던 건 아니다. 단지 아프리카에도 이렇게 수준높은 몸매...

아니, 이렇게 수준높은 조각예술이 발달했었나, 이렇게 육감적인 표현이 가능했었나 신기했을 따름.


어쩌면 마치 우리가 고대의 유물을 두고 다산/순산을 기원했다느니 하는 설명을 아프리카 예술에 그대로 대입하는

것도 무리가 있을지 모른다. 그들 나름의 미감과 미적 쾌감이 발전해 왔을 텐데, 그들은 고대인이 아니고 아프리카

역시 21세기의 아프리카 땅이란 측면을 넘 무시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 싶다.

유리창 너머 보존되는 조각상이라 사진이 안 나왔다. 눈으로 보면 무척이나 섬뜩하고 강렬한 조각상인데.

해서 아프리카박물관 홈피에서 업어온 그림 첨부.
콩고의 주술사가, 부족의 룰을 어긴 사람을 선별해서 벌을 줄 때 사용한 조각상이라 한다. 온통 쇠못이 고슴도치처럼

박혀서는, 냉막한 표정으로 날카로운 송곳을 집어들고 있는 게 처키보다 섬뜩하다. 어찌 보면 단순하다. 사람이

사람에게 주었던 상처, 아픔을 눈에 보이게 하는 게, 치유를 위한 첫걸음인지도 모른다. 저 살벌한 못들처럼.

주술사가 해결할 사건 수가 늘어갈수록 쇠못도 하나씩 늘겠지만, 그래도 사람이 살면서 타인에게 박아넣는 못들보단

훨씬 적은 수일 거다. 만약 그게 저 못들처럼 대가리를 삐죽대며 몸에 박힌 게 보인다면. 으..

신기하게도, '용'이란 존재를 불러내는 상상력은 만국 공통인 듯 싶다. 서양의 용, 동양의 용, 그리고 아프리카의 용.

아프리카의 용은 왠지 짧막하고 가분수인 게, 귀엽다. 이 녀석 어쩜 거대용의 아바타일지도.

시간 맞춰 들어선 지하의 공연장. 자그마한 공연장이지만 사람이 꽉 찬 게 더 놀랍다. 아프리카박물관을 강추하는

온갖 블로그나 까페, 구전의 효과란 말인가. 나 역시 그 구전에 기꺼이 합류하기로 맘먹고 블로그 중이지만.

세네갈에서 왔다는 공연팀이 등장했다. 그 중에서도 열정적인 댄스와 노래-랄까 격한 허밍이랄까-를 선보였던

아리따운 검은 아가씨. 반질하고 매끈한 피부가 꼭 새까맣고 단단한 흑단목을 연상케 했다.

북을 치는 아저씨 둘은, 박자를 마음대로 늘였다 줄였다 깨고 잇고, 굉장히 멋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마주친 수준높고 열정적인 공연이라니. 물론 그 와중에도 뽁뽁이 신발신고 뒤에서 뛰어다니는 아가의 부모는

어디갔는지 보이지도 않았고, 조금 더 큰 아이들은 아무런 제재나 부모의 관리없이 통로를 방황하고 있었지만.

꼭 '국립문화원'이니 '예술의 전당'이니, 돈쳐바른 곳에서만 조용히 예의를 지켜야 하는 건 아니란 말이다.

이제 둘러보고 나가는 길, 코뿔소 새의 휘영청 만곡한 부리가 너무 멋지다. 죽음의 사신이지 수호신이라는 신화적

존재, 코뿔소 새. 근데, 머리 위의 갈기털은..누가 파마를 시켜놓은 건가.

아프리카 박물관의 센스는, 화장실 표지에서도 빛을 발했다. 이런 자그마한 것 하나에서도 그 공간의 이미지와

특성을 드러낼 수 있을 만큼의 섬세함이 난 좋다.

기념품점에서 맞닥뜨린 No.5 던가.(일본만화 '원피스'를 보시는 분이라면 누구나 알 듯.ㅋㅋ) 기린기린열매를 먹은

그가 열심히 단련하여 네모반듯한 기린 전사가 되는 눈물없인 볼 수 없는 감동의 대 서사시. 딱 그녀석이 생각났다.

왠지 우울한 표정의 원숭이, 조삼모사에 낚인 건 아닌지 염려스럽다. 호랑이는 왠지 입에다가 타이거마스크를

하고 있는 느낌이고, 또다시 등장한 기린은 아직 완성체가 되기 이전의 모습.

티켓 값이 그다지 싼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주도의  지원으로 10% 할인이 적용된다고 한다. 참고로 아침일찍

갔다가 허탕쳤음을 호소해도 추가 할인은 없다.









7코스는 외돌개에서 시작해 월평포구에서 끝난다. 그리고 8코스는 월평포구에서 다시 시작하며, 그런 식으로 총13개

올레길이 제주도 남해안을 쭉 잇고 있다. 15.1킬로의 7코스 구간, 놀멍 쉬멍 걸으멍 했더니 반나절이 훌쩍 넘는다.

7코스의 마지막, 월평포구. 천천히 걸었던 어쨌던 코스를 마쳐서 시원하다는 느낌보다는 아쉬움이 강했다.

월평에서부터 거꾸로 7코스를 걸어가는 사람들, 어쩜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초반에 강정마을의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참기만 한다면 이후로는 쭉 즐거울 테니. 뭐, 고기구울 때 제일 노릇노릇 맛난 한 점을 먼저 먹을 건지

아껴뒀다 마지막에 먹을 건지의 차이.

바다 한가운데 부표처럼 떠있는 게 뭔가 했더니, 사람이다. 카메라로 잔뜩 땡겨서 봤더니 낚시 중이신 듯. 근데

뭐에 의탁한 건지 모르겠지만 위험하지 않을까 싶다.

이제 다시, 7코스 시작점쯤에 있는 숙소로 돌아가는 길. 차로 달리니 금방인 것을. 어떻게 보면 멍청한 짓이라겠지만,

슝- 달리다 놓치기 쉬운 풍경들 하나하나에 이야기와 추억들을 촘촘이 링크걸어 놨으니 됐다.

펜션에 도착해서 쉬엄쉬엄 이쁜 구석구석을 돌아봤다. 잘 꾸며져 있던 정원의 꽃도 보고, 개랑도 놀고.

지금 제주도의 모습이 이런 거 아닐까. 오랜 이미지, 현무암 돌하루방, 전통문의 상징 위에다 뭔가 새롭고 깔끔한

이미지를 덧대고 변형시키는 중. 올레길 개척과 커다란 반향이 그 단적인 사례일 듯 하다.

펜션 뒤쪽으로 놓인 그네의자.

털썩 주저앉았다가 주르르 미끄러져 누워버리고는, 흔들흔들 뒤척이며 셔터를 눌렀다.

이번엔 벌레먹은 능소화. 그러고 보니 "벌레먹은"이란 표현은 중의적일 수 있겠다. 벌레가 먹은, 혹은 벌레를 먹은.

여튼 이건 여리디여린 얄포름한 꽃잎을 갉아먹는 갈빛 벌레.

짠~*

제주 올레길 7코스의 강정포구 인근. 여태 해안가와 논두렁길, 꽃길을 걸으며 한껏 들떠있었던 기분이 싸해졌던 구간.

올레길 표시를 지나 문득 꺽여들어간 해안길.

오묘한 형태의 조형물이 바닷가에 서 있었다. 왠지 살풍경하고 휑뎅그레한 분위기, 왤까 싶다.

조금 둘러보니 노란색 깃발이 여기저기 무질서하게 꽂혀있고, 삼엄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한켠에는 천막이랄지 텐트랄지 간이시설물이 있다. 방금까지도 누가 머물러있었던 듯 하다.

올레길을 걸으며 생각지도 못했던 풍경을 맞닥뜨리니 정신이 없다. 우선 사주경계부터. 캄보디아어 같은 꼬부랑

글씨들까지 곳곳에 적혀있는 이 게시판을 보니 조금 정신이 든다. 아. 해군기지 부지가 여기였구나. 강정포구.

MB와 같이 주민의 동의나 의견을 묻지 않고 대규모 국책사업을-더구나 군사시설 유치를-추진하는 제주도지사에

대한 논란이 있었고, 최근에 제주도지사에 대한 전례없는 주민소환 시도가 투표율 저조로 부결되었지만 그 와중에

투표를 방해하려는 여러 조직적 움직임이 있었다고 또다른 논란이 되었으며, 게다가 '주민소환'같은 직접민주주의적

제도가 '열심히 일하려는 사람'을 방해해선 안 된다는 MB의 언질 하에 제도 자체를 축소하려는 움직임마저 있는 상황.

바다 위에 군함이 정박해 있는 그림. 그다지 이뿌진 않다. 주민 공청회나 의견수렴을 위한 최소한의 절차나 노력도

없이 덜컥 위에서 결정된 일이라니까 더 거부감이 든다.

그래서 해군기지가 여기 들어오는 건 시간문제인 상황인 거 같다. 또다시 가시돋힌 철조망이 둘리고, 살인무기들이

집결한 채 살기등등한 이빨을 드러내겠지. 올레길의 여유로움이나 (잠시나마) 품게 되는 관대한 마음 같은 게 그때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아니, 해군기지가 생기고 나면 올레길 7코스가 지금과 같이 유지될지도 모르겠다.

여기도 무료 엽서와 우체통이 있었다. '바닷가 우체국'에서 보았던 잘 꾸며진 모양새는 아니지만, 그래서 더욱 절실함,

그리고 진실함이 있다 느껴진다. 이곳에까지 발톱 세운 철조망을 칭칭 옭죄어야 하는지, 자연 그대로 냅둘 수는 없는지

누군가에게든 다그쳐 묻고 싶었다.

나중에 만난 택시기사 한분에 슬쩍 물었더니, 이쪽 해안에 중국 어선들이 불법조업을 많이 하니 그걸 단속하려면

해군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발전하려면 뭐라도 들어와야 안되겠느냐는 식으로 말씀하셨다. 해양경찰력을 강화하면

될 일을 해군기지까지 섭외할 일인지, 해군기지가 지역발전에 도움이 될지, '세계평화의 섬'으로 비전을 정립하고

올레길 같은 자연자원, 관광자원으로 발전해야 할 제주도의 이미지만 해치지는 않을지 묻고 싶었지만...

아마 해군기지 부지로 선정되고 나서 인근 토지에 대한 보상절차가 진행중인가보다. 이미 황량해져 버린채 버려진

비닐하우스들. 이런 장소에 해양박물관이니 크루즈항 같은 걸 짓고 해군기지를 이용한 지역축제를 개발하여 경제를

부양하겠다는 아이디어, 아...겁없이 용감하고 답답한 사람들. 그래놓고 해군기지서 기름이라도 대규모 유출되면

국민들 동원해 기름닦으라 시킬 거고, 해군기지 갔으니 공군기지도 짓자고 나설 테고, 지역축제에 혈세 낭비하며

위엣것들 사진 몇 장 남기고 선거운동 팜플렛에 한 줄 넣었으니 되었다 할 거고. 너무 시니컬한 건가.

사실 이전까지 걷던 길과 비슷한 풍경인데, 마음상태가 투영되어 버렸다. 왠지 써늘한 불안감과 싱숭생숭함이

둥둥 떠다니는 듯한 대기. 노란 깃발을 희롱하는 거침없고 둔탁한 바닷바람.

파도에 떠밀린 방파제들이 뭍까지 올라와 하얗게 말라죽어있다. 불가사리들 같기도 하다.

벌써부터 황량하고 살벌한 느낌의 바닷가를 벗어났을 때 살짝 안도감마저 들었다. 이제 다시 밝고 따뜻한 느낌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겠구나 싶어서. 걷는 여행의 장점이자 단점은, 마치 보글보글 끓여대는 냄비 속에 들어가있는

개구리처럼 조금조금씩, 점진적으로 주변 풍경을 바라보게 된다는 거다. 드라마틱한 단절이나 충격 같은 거 없이,

사실 강정포구의 살풍경함이란 그렇게 야금야금 예견되어 있었던 거였다. 빠져나가는 길 역시 그렇게 야금야금.

그렇지만 빠져나가는 길은 더욱 독했다. 이미 강정포구까지 잇는 모종의 도로 확장사업이 벌어지고 있었다. 머

명목상으로는 이쪽의 도로 사정을 원활케 하고 관광자원 접근성을 높이니 어쩌니 등등의 건설현장 안내문을 보긴
 
했지만, 아까 이야기를 잠시 나눴다던 그 택시기사 아저씨 역시 이게 해군기지 건설 정지작업이라 보고 있었다.


여론 수렴을 날림으로 하는 이유는, 어쩌면 니들끼리 내부적으로 싸워서 힘빼 버려라, 하는 고도의 수작일지도

모르겠다. 일단 내용에 대한 공지와 협의가 제대로 이루어진 후에야 공통 지반 위에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텐데

공통 지반 없이 각자의 지반 위에서 떠드는 꼴이다. 그렇게 만들어 버렸다.

올레길 7코스엔 이런 공사길도 포함되어 있다. 조만간 아스팔트가 부어지고 판판하게 다져질테지만, 당장은

벌건 흙먼지가 자욱하고 포클레인의 격한 호흡소리와 진동음이 땅을 울리며, 걷는 사람 따위 배려되지 않는.

뭐, 어차피 올레길도 여름 한철 장사라 이건가. 안전띠나 보행자 안전통로 같은 건 전혀 보이지도 않는다.

그렇게 공사판 가운데를 뚫으며 걷고 나니, 시멘트를 대충 발라놓은 제방길을 걸어야 한다. 하아...

이 녀석. 파워가 나가버린 트랜스포머가 칙- 소리를 내며 축 늘어져버리듯 생명이 나가버렸다. 얜 어떤 소리를

내며 죽어버렸을까. 깨져버린 등딱지와, 서로 딴 곳을 향해 고정되어 버린 툭눈. 그렇지만 여전히 생기어린 채

빳빳한 다리털이 안타깝다. 대충 발린 시멘트길 위로 올라와 죽어버려 더욱 비극적인 녀석의 최후.


아, 방금 알아낸 사실 하나, 강정마을 해역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보전지역이라고 한다.




강정천을 뒤로 하고 얼마 남지 않은 7코스를 계속 걷기 시작했다. 올레길 공식홈페이지(www.jejuolle.org)에서

뽑은 지도에 따르자면 남은 포스트는, 강정포구, 알강정을 지나 월평포구까지 총 세개밖에 안 남았다.

8코스를 전날 걸었던 엄마와 여동생이 흥분하며 했던 말들에 따르자면, 8코스에는 이런 쉼터나 매점이 거의 없다한다.

코스도 7코스보다 길고 더 힘들었다고는 하는데, 7코스만큼이나 8코스도 좋았다고.

바다가 보이지 않는 길로 들어섰다. 그러고 보니 꽤 오랜만이다. 그리고 나서 바로 나타나는 소철 '농장'.

비닐하우스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어린 종묘들. 뭔지 궁금해서 한참 봤지만, 짧막한 내 식물학적 지식으론

도무지 모르겠다. 넓적한 건 잎이요, 쭉 뻗은 건 줄기랄까.

비닐하우스 단지 내에서 길을 잃을세라, 바닥에 큼지막하게 그려놓은 올레길 화살표. 자세히 보면 페인트칠 직후에

차바퀴가 밟고 지나간 듯 뽈, 뽈, 뽈 페인트 자국이 남아 있다.

온통 시뻘겋게 녹슬어버린 물탱크, 도로까지 무성하게 뻗어나온 하룻강아지녀석 풀떼기들. 왠지 방금까지 걷던

인적없어도 넉넉하고 여유롭던 바닷길과는 영 딴판으로 황량하고, 뭔가 괴괴한 느낌이다.

그런 길인데, 비닐하우스 안은 또 딴판이다. 온통 꽃밭 가득.

이것은 꽃. 아까 미처 영글기 전의 종묘가 "넓적한 건 잎이요, 쭉 뻗은 건 줄기"랬다면, 꽃에 대해서도 비슷하다.

벌어진 건 꽃잎이요 뭉쳐있는 건 암수술이랄까. 아...너무 무식하다.

그렇게, 황량하고 살짝 불안하기까지한 느낌이 감도는 길 옆에 무덕무덕 무더기로 피어난 꽃들을 위로삼아

강정포구로 가는 길이다.




서건도를 지나 다음 기점, 풍림리조트로 가는 길이다. 어제 신문이었던가, "올레길 싸우멍 다투멍(서울신문, 9/16)에

나왔듯 올레길을 둘러싼 이야기가 온통 찬사 일색인 건 아니다. 걷기 좋게 흙길로 포장하려 하는 측과 먼지나고

지저분하다고 싫다는 땅주인 측, 그리고 사유지 통행을 더이상 두고 볼 수 없다며 올레길 폐쇄까지 이르기도 한다.

"올레길 가운데 가장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제7코스 돔베낭골과 야자수나무숲 길 등 일부 코스는 최근 땅 주인과 마찰을 빚은 끝에 조만간 폐쇄될 전망이다. 올레꾼들은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이런...사유지에 대한 적정 수준의 보상과 합리적인 타협점을 찾았으면 좋겠다. 다녀온지 며칠 되었다고 폐쇄 이야기가.

제주도에서 흘러내리는 민물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 제주도민들의 피서지로 각광을 받는 곳이라 한다.

정오가 가까워져서인지, 파도가 조금씩 거칠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어디선가 해가 높을수록 파도가 거칠단 '속설'을

읽은 적이 있는 것 같아서, 아마 그래서 거칠어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옛날 세탁기가 한참 윙윙 돌 때 슬쩍 열어보면, 안전장치가 작동해서 내부에서 정신없이 돌던 빨래통이 금세

멈추곤 했다. 무슨 먹음직스러운 크림을 떠내듯 손가락 끝으로 풍성하게 떠올리던 비누거품. 딱 저렇게 생겼었다.

앞에서 걷던 엄마가 문득 저 돌을 가리켰다. 저거 무슨 환상속의 동물 같지 않냐고. 황소가 콧김 내뿜는 거 같기도,

혹은 용이 입을 히죽 벌리고 지긋이 응시하는 것 같기도 하지 않냐는. 난 두꺼비가 떠올랐을 뿐이고.

바로 옆에도 뭔가 상상력을 자극하는 바위가 놓여 있었다. 엄마는 사자 같은 동물 두마리 같지 않냐고, 한마리는 밑에

늘어지게 눕고 또 한마리는 그 허리춤 위로 턱을 괴고 기댄 거 같지 않냐는 말씀. 나는, 왠 건방진 배불뚝이 자식이

옆으로 누워 한 팔로 턱을 괸 거 같다.

조그마한 내를 가로지르는 하이얀 나무뼈다귀. 생각보다 많이 흔들려서 여성들에겐 조금 쉽지 않았던 듯.

다리 삼아 누워있던 나무뼈다귀를 밟고 지나고 나니 잔잔하게 흐르는 내 한가운데 가지런히 올려진 돌무더기가
 
그제서야 보인다.

바닷가 우체국이랜다. 뭔가 했더니, 인근 리조트에서 직접 짓고 운영하고 있다는 자그마한 정자, 그리고 무료 엽서와

배송 서비스. 나쁘진 않은데, 엽서 전면에 광고처럼 붙어있는 리조트 시설물의 그림이 좀 아쉬웠다. 좀더 은근하게,

거부감도 덜하면서 더욱 기억에도 남을 방법으로 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한쪽엔 이미 온통 낙서로 자욱해진 '소원기원벽'. 색연필도 넉넉히 비치되어 있었고, 차근차근 읽으면 재미도 있었다.

우체통이 있고 엽서가 있고 펜이 있으며 마침 아픈 다리 쉬어갈 바람솔솔 정자도 있으니, 마음만 있다면 누구라도

엽서 한 통 적고 싶어지는 건 인지상정 아닐까.

그리고 얼마전 누군가 지적하던 이야기를 들었는데, 마치 일본 신사에 주렁주렁 매달린 소원기원 푯말들을 벤치마킹한

소원기원 패..라고 해야 하나. 뭐, 좋으면 벤치마킹할 수도 있는 거지. 이게 무슨 사당도 아니고, 소원을 적어 걸어둔단

정도의 아이디어 갖고 베꼈다고 말하는 건 좀 과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정자를 둘러싼 울타리엔 통나무를 걸어놨다. 거기 역시 소원을 적을 수 있도록 충분히 비치된 펜들.

오호......누군가 빨간 펜으로 "MB OUT"을 적어놓았다. 누굴까, 이거 누가 그랬을까.ㅋㅋㅋ

올레길이라고 전부 올레길 손수건 같은 기념품을 살 수 있는 건 아니랜다. 코스 중에서도 7코스를 비롯한 몇몇 코스,

그리고 7코스중에서도 몇몇 포스트에서만 구매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찾아간 풍림리조트. 그 앞에 그럴듯한 이끼벽.

토토로가 뛰어놀듯한 분위기다.

아마도 여기가 강정천? 리조트 옆을 끼고 흐르는, 아니 정확한 선후사실대로 따지자면 강정천을 끼고 리조트를

지었겠지만, 사계절 내내 맑은 물이 흐르는 은어 서식지랜다. 물이 엄청 맑지 않고서야 코빼기도 안 비친다는

우윳빛깔 은어씨, 수박냄새 은어씨.

그러고 보면 과거 제주도, 하면 떠오르던 돌하르방과 전통 형태의 대문 같은 이미지의 농도가 많이 옅어졌다.

그만큼 제주도에 다른 볼거리와 먹을거리, 이야기거리가 많아졌다는 의미인 거 같아 다행스럽다.






법환포구에 들어섰구나, 누구라도 알 수 있을 만한 징표는 역시 바다 위에 둥둥 뜬 채 매어있는 배들.

남/녀 노천탕이 있어서 깜짝 놀랬다. 알고 보니 제주도에서 흔치 않은 담수가 용출한다는 곳, 역시 그러니 근처에

법성포구 마을이 자리잡은 거겠지만. 여자 노천탕을 얼쩡거려봤는데 아쉽게도(?!) 양말만 벗은 아주머니들만 계셨다.

길바닥에 널어놓은 게, 돌담에 기대어 놓은 게  뭔가 했더니 깨란다. 도로가에 널어놓으면 먼지가 풀풀 쌓일 거 같은데

여긴 별로 오가는 사람도 없고 차도 없으니 괜찮지 싶다.

울룩불룩한 해안선. 울퉁불퉁한 돌멩이.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조각배.

법환 잠녀 마을. 해녀가 일제 시대의 잔재라는 걸 알았던 건 대학교 일학년 때, 제주도를 자전거로 일주할 때였다.

굳이 일제 시대 만들어진 단어를 싸그리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순전히 어감상 해녀보다 잠녀가 로맨틱한 게 좋다.

이런 식의 공공미술 기획이 늘어나면 좋겠다. 뭔가 늙어가는 사람처럼 퇴락하고 벗겨지고 날로 촌스러워져가는 풍경에

새롭게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작업. 요새 오히려 이런 수혜는 지방이나 상대적으로 소외된 곳이 받는 듯 한데, 삭막하고

위압적인 도심에도 마찬가지 생기가 필요하지 싶다.

해안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을 달리는 배, 보아하니 막 출항해서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잠녀 체험이 가능하다는 간판을 보고 들어가 본 건물에서 만난 잠녀복장. 알고 보니 식당이어서 성게국수를 맛보았고,

다시 알고 보니 식당을 빙자한 마을 아주머니들의 모임장소여서 갖고 있던 간식거리도 나눠먹고, 재밌었다.

해안가에 연한 어느 집 야트막한 담장 위에 얹혀 있는 조개껍질들.

유모차를 끌고 저기까지 왜 나가셨나 했더니, 빨랫감을 싣고 나르는 역할을 하나 보다. 동그마니 서서는 빨래가

끝나길 기다리는 얌전한 유모차.

이 나무기둥위에 얹힌 돌들이란. 허참, 이란 감탄사 이외엔 별로 할 말이 없어진다. 아니 요새는 '올레~'라던가.

바닷바람에 장렬하게 펄럭이며 꿋꿋이 길을 알려주는 저 기개는, 왠지 이순신장군의 최후같이 비장감이 감돈다.

법환마을을 벗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주친 매점. 뭔가 분위기가 꽤나 이국적이었다. 100% 망고주스를 팔길래

한번 맛보고 싶었는데, 생망고가 아니라 엑기스나 그런 거 아닐까 싶어서 그냥 포기.

이제 바닷가에 보다 바싹 붙어서 걷기 시작했다. 검은 빛의 현무암 덩어리들이, 살짝 침침한 날씨 아래 빛을 머금었다.

이건 일종의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인 거다. 돌이 두 개 이상만 다소곳이 쌓여 있으면, 삼층이 되고 사층이 되는 건

순간이다.

눈앞에 보이는 건 서건도, "썩은 섬"이란 우리말 지명을 굳이 한자로 옮기다 보니 서건도가 되었다 한다. 섬의 토질이

부식되어 있어서 썩은 섬이라 했다던가. 만조 때는 섬이 되고, 간조 때는 짧으나마 '모세의 기적'이 벌어지는 곳.

서건도로 향하는 구간은 일명 '일강정바당올레'라고도 한다. 일일이 손으로 돌을 골라낸 끝에 새로운 바닷길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한번 그어진 얇은 선 위에 숱한 덧칠을 통해 굵게 만들어내듯, 올레길은 이제 수많은 사람들이
 
밟고 지나며 더욱 뚜렷이 패일 거 같다.

서건도. 썩은 섬. 맘먹으면 섬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제주도와 연결되어 있었지만, 물이 차들어오는 건 또 금방인지라

조금 가보다가 말았다. 가봐야 뭐 별거 있겠어, '저건 신포도야' 이런 마음으로.

바닷가에 떠밀려 온 거겠지. 하얗게 표백되어 버린 나무가 해안가에 길게 누워있었다. 넌, 어디까지 가봤니.(이러고)

바닷가에 바로 붙어있으니 토질이 좋을리가 없다. 소금기 짭짤한 바람이 사시사철 24시간 불어올 텐데, 그 바로

옆에서도 이렇게 흙을 일구고 작물을 돌보시는 분. 대체 저 고랑 사이로 무엇이 튀어올라올지 모르겠지만, 그게

뭐든 튼튼하게 잘 여물었으면 좋겠다.

물질 나가시나보다. 잠녀 아주머니 두 분이 바삐 걸음을 옮기셨고, 나는 그 빨갛고 노란 장갑의 색감이 너무 좋아

카메라를 바삐 들이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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