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길 옆으로 걷다가 마주친 '건설자재 야적장'. 무슨 "때묻지 않은" 천혜의 비경이나 자연만을 보는 길이라면 자칫

일상을 도외시한 잠시지간의 탈출로 끝나기 쉬울지 모른다. 제주도를 삶터로 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이 있고,
 
학생들은 통학하며, 먹고사니즘의 굴레를 놓지않고 사는 현장이 생생히 있어서 걸음걸음 더 재미지다.

윗둥치를 뚝뚝 끊어놓은 나무들에서 몽실몽실 이파리가 돋아놓으니, 왠지 잘 자라고 있는 나무를 거꾸로 꽂아놓은

느낌이다. 이파리들이 좀더 길게 자라나면 위아래를 분간하기도 좀더 쉬워질 듯.

어디로 가야 할 지, 갈림길이 나타나면 두리번두리번 숨어있는 화살표부터 찾는다. 사실은 갈래길에선 딱 화살표

두 개면 해결될 텐데. 갈림길 나타났을 때 당황하지 말라고, 진즉에 길 안내표시 해놨다고 하나, 그리고 갈림길에

서서 멀찍이 양쪽 길을 바라봤을 때 어느 한 쪽을 가리키는 화살표 하나.

아마도 여름엔 사람들이 바글바글댔을 길가 행상의 흔적. 인걸은 간데 없고 천막만 남았다.

문득 즈려밟고 가야 할 징검다리. 보폭에 맞게 잘 배치된 징검다리는 그 위를 밟고 걸으면 도, 레, 미 소리가

경쾌하게 날 듯 하지만, 다리를 억지로 잡아찢게 만드는 징검다리나 계단은 짜증만 난다.

역시 남도라 식생이 다르긴 다르다. 선인장이 꽃을 틔우고, 뾰족뾰족 가시를 드러냈다.

걸으며 지나친 어느 공원. 엉성하게 세워진 탑과 야자수길이 인상적이었다. 이 곳의 야자수는 아랍국가나 동남아의

야자수와는 또 느낌이 다르다. 좀더 조그맣고 부드러운 인상을 남긴다.

거대 알로에..처럼 생긴 선인장..일 게다 아마 저건. 알로에는 토실토실 배가 부른 잎사귀를 갖고 있을 텐데 이건

얄포름한 잎사귀를 갖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한 추측. 잎사귀 하나 잘라내서 칼처럼 휘두르면 재밌겠다 싶었다는.

왜 언젠가 홍길동이던가, 티비 속 퓨전사극에서 휘두르던 연검이랑 닮았다.

화살표를 그려넣기가 애매한 곳에는 등산로를 표시하듯 이렇게 노란끈 파란끈이 묶여 있다. 올레길의 대표색상인지도.

문득 눈에 띈 돌하루방, 돌하르방인가? 어쨌거나 올레길을 걸으면서나 제주도 와서 생각보다 눈에 잘 안 띈다.

올레길을 걸으러 왔던 가족인 듯 한데, 어느 틈에 이런 코팅된 표식까지 준비한 걸까. 그 세심한 마음씀씀이에 놀랬고,

또 저런 멘트는 언제 준비해서 적어넣은 걸까 궁금증이 끝이 없다. 집에서부터 "엄마아빠 힘내세요"라 적어왔을려나.

코팅을 제주도에서 올레길 걷는 와중에 하지는 않았을 텐데. 학교 앞 문방구에서 했을 수도 있겠구나..등등.

아마도 여기가 수봉로. 염소만 다니던 길을 삽과 곡괭이로 올레지기 한분이 직접 개척해서 만든 길이 수봉로라던데,

딱히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올레지기님의 이름을 딴 '수봉로'인지는 걷고 나서도 모르겠다. 그냥, 제주도의 어느 길.

이렇게 돌들이 몽글몽글한 해안가를 바로 곁에 두고, 조금씩 뜨거워지는 태양을 느끼며 걷는 건 여전히 유쾌했다.

등엔 어느 틈엔가 솔찮이 땀이 배어나고 다리도 조금은 묵직해지는 느낌이었지만, 흔히 원형으로 돌게 되는 산책과
 
달리 그저 가고 또 가는 걸음이란 사실 자체가 유쾌했던 것 같다. 去去去中知, 行行行裏覺이라던가.

해삼과 오분작이를 체포한다고? 채취는 알겠습니다만 체포는 무엇인지. 한자를 알면 뜻은 헤아릴 수 있다지만,

이왕이면 조금 더 대중적인 단어를 써도 될 거 같은데 말이다.(잘 안 쓰이는 단어라면 한자를 병기해주던가 차라리.)

이것..난꽃 맞지 싶은데, 꽃들 너머로 열기구가 떠오르고 있었다. 한눈에 섬의 사면, 그러니까 바다로 둘러싸인

땅덩이를 실감할 수 있다는 건 꽤나 매력적이긴 한데...일단 제주도는 섬이라기엔 너무 크다. 실감이 안 날 정도로.

그러고 보면 제주도의 해안이 걸음직한 이유는, 김기덕의 영화 '해안선' 마지막에 나왔던 것처럼 반도 삼면의 해안은

모두 군대에 점령되어 있기 때문이다. 밤에 마음대로 내려가 밟아보지도 못하는 가시돋힌 철조망의 땅. 여기도

그다지 자유롭진 못해서, 파란색으로 색칠된 초소가 드문드문 현무암 사이에 박혀 있다.

소철..이던가. 어렸을 적 집에서 키웠던 뾰족뾰족하고 딱딱한 잎사귀의 식물을 재배중인 듯한 비닐하우스다. 근데

이렇게 관리 안되는 비닐하우스는, 일부러 천장을 뜯어내고 벽면의 비닐도 헐어버린 걸까. 열맞춘 소철 병정들에
 
점령당해버린 듯한 비닐하우스.



여기가 돔베낭길 쯤일까, 옆으로 담장돌들이 가지런히 이빨맞춰 늘어서 있고, 머리위엔 꽃을 잔뜩 얹었다.

색소폰을 형상화한 거 같기도 하고, 다른 악기 같기도 하고. 알고 보니 여긴 무슨무슨 펜션의 정원이랄까,

사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공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다른 올레길 코스도 그런 사적 영역에 기댄 바가 없지 않다.

호텔에 부속된 산책길이라거나, 호텔 홍보를 위해 기증된 정자라거나.

그래도 그런 공간들이 올레길 순례자들에게 (물건을 사라거나 자신의 호텔을 이용해달라는 등의) 강한 압박, 그래서

불쾌할 수 있는 부담감을 주지 않아 다행이다. 그냥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느낌이다. 그 펜션 정원에 들어가 잠시

앉아 쉬며 바라본 꽃과 나비.

거푸 크게 심호흡하는 리듬으로 날개를 접었다, 폈다 하는 나비. 후읍, 하아, 후읍, 하아.

약간 흑백 사진처럼 나와버렸는데, 왠지 분위기가 살아있는 사진같다. 걷기 시작한지 30분도 안 됐으니, 아침 7시반도

안 된 살짝 이른 아침의 제주 앞바다.

그리고 제주의 하늘. 구름이 몽실몽실 한켠으로 우르르.

계속 이렇게 잘 관리되고 '공원'같이 다소 인위적인 느낌의 길만 걷나 했더니, 아니다. 어느 지점에서 잘 닦이고 주변

경관도 잘 조성된 길은 끝나고 '날 것'의 풍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껏 낮은 자세로 웅크린 저 차양들처럼 서서히. 저건 뭘 길러내기 위한 보호막인 걸까.

올레길이라고 샛길이나 곁길이 없을리 없다. 잠깐 샛길로 빠졌더니 바닷가에 내려섰다.

시커먼 돌과 푸르딩딩한 바다, 그리고 그야말로 하늘색 하늘.

다시 올레길 코스로 복귀, 이번엔 문득 호박길이다. 호박이 넝쿨째 이리 뒹굴 저리 뒹굴거리는 길가.

이런 찻길이나 대로변 인도를 걷기도 한다. 온통 '허'로 시작하는 렌트카들이 씽씽 달리는 찻길이라 조금 주춤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찻길 근처에 기댄 구간이 길지 않아 다행이다.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아버지를 빼고 엄마랑 여동생이 함께 갔다. 앞에서 부지런히 걷는 두 모녀.

그렇게 대로변을 지나다 마주친 어느 집의 '팥색' 지붕. 퇴색한 느낌이 너무 좋은 거다. 군데군데 잘 벗겨진

페인트칠도 무지하게 매력적이고. 이게 바로 엣지있는 빈티지스러움..?

공항버스 600번. 제주국제공항에서 15분마다 출발하는 이 버스는 제주시에서 서귀포시까지 제주도를 종단한다.

서귀포시 옆 제주월드컵경기장 근처 펜션에 머무느라, 목요일 퇴근후 비행기 잡아타고 이 버스를 잡아탔댔다.

올레~! 갈래갈래 갈린 길 앞에 서면 이런 식으로 된 스티커던, 파랑색 페인트로 찍찍 그려진 화살표던, 뭔가

표식을 찾게 된다. 스티커가 이뻐서 하나 떼어올까 하는 마음이 0.1초간 들었으나 후인들을 위해 참기로 했다.

서귀포여고를 지나가는 길에 문득 마주한 어느 집 대문. 제주도의 대문이라 하면 나무기둥 세 개를 가로누인 전통적인

그게 생각나는데, 이 녹슨 철문도 못잖은 포스를 뿜고 있다.

아직은 싱싱하니 파랗기만 한 귤. 희끗희끗한 액체가 말라붙어 있길래 혹시 농약인가 해서 물었더니, 영양제란다.

지금 나오는 귤들은 하우스 재배라는 것 같던데, 그래도 인심좋은 가게 주인아저씨에게 받은 귤은 크고 달았다.

어느 집 지붕 위에 불쑥 피어난 꽃무더기. 여린 꽃잎 여기저기 벌레먹은 양 너덜너덜한 게 살짝 민망하지만서도,

외려 '보여주기'용이 아니라 그냥 제 멋에 싹트고 자라고 꽃피웠겠거니 생각하니 또 그럴 듯 하다.





코스 경로(총 15.1km, 4~5시간)

외돌개 - 돔베낭길 - 펜션단지길 - 호근동 하수종말처리장 - 속골 - 수봉로 - 법환포구 - 두머니물 - 일강정 바당올레(서건도) - 제주풍림리조트 - 강정마을 올레 - 강정포구 - 알강정 - 월평포구

ⓒ 제주올레 공식홈페이지.(www.jejuolle.org)

올 여름에 10만명이 다녀갔다는 제주도 올레길, 제주도 사람들끼리 제주도가 가라앉는 거 아니냐는 농담도 돌았댄다.

도보여행자의 성지라는 스페인의 산티아고를 벤치마킹했다지만 없던 길을 새로 만들었다기보다는, 원래 제주도

사람들이 놀멍(놀면서), 쉬멍(쉬면서) 즐기던 길들을 정식으로 코스화했다는 게 맞을 듯 하다.


어찌 하다보니 저번주 목요일 저녁, 제주도에 있었다. 다음날 하루 걸었던 올레길 7코스.

외돌개 근처 솔숲에 숨어있는 자그마한 까페. 아침 이른 시간이라 아직 문은 안 열었다.

제주도의 남해안. 독특한 구름이 씽씽 달리고 있었다.

뭔가, 의도를 갖고 찍어본 사진. 나와 함께 나란히 서서 저 너머를 바라보는 것 같지 않을까 싶도록.

왼쪽을 굽어보면 부지런한 배도 지나가고.

여름휴가철 내내 사람들이 꼬리를 물고 순례했다던 올레길은 이제 고즈넉하다. 앞서 걷고 있는 엄마와 동생.

다복솔이 살짝 얹힌 제주도의 남쪽 끄트머리. 누구던가 조선의 선비 하나가 기생과 흥취를 나눌 때 썼던 표현, '다복솔'.

외돌개가 왼켠에 자리했다. 용암이 분출하면서 신도 걸려 넘어질법한 거대한 돌부리가 솟구쳐 버린 셈이다.
 
삐쭉, 하고. 외돌개라..순우리말 이름도 멋지다. '외', 외롭게, '돌', 돌출해나온, '개', 개....식끼?ㅡㅡ;

홀로 우뚝 솟은 모습이, 아래에서 봤다면 더욱 당당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위에서 이렇게 봐도 나름 느낌이 살고.

외돌개를 끼고 걷는 길, 바다에만 던져뒀던 시선을 육지쪽으로 거두니 잘 정돈된 공원이 나타난다.

외돌개가 유명해진 건 이곳에서 대장금 촬영을 하고 나서란다. 그렇지만 사실 렌트카 몰고 돌아다니는 여행에서

이런 단촐한 지점을 꼼꼼히 보기란 쉽지 않을 거다. 걷기가 주는 묘미란 게 그런 거 아닐까. 완만하고 연속적인

그림, 궤적 위에서 뭔가를 지긋이 바라볼 수 있다는 거. 뚝,뚝, 끊겨서 소위 '명승지'가 눈앞에 나타나는 게 아니라.

아침해가 떠오르는 바닷가 벤치에 앉아 그날의 따뜻한 신문을 펼쳐보는 어르신의 여유. 그치만 왜 신문을 보시나요,

이왕이면 조금은 두툼하고 오랜 시간의 세례를 받은 책이 좀더 운치있을 텐데.

언덕 위의 하얀 집. 누군지 몰라도 그럴 듯한 별장, 혹은 펜션 하나 잘 지어놓았다. 저런 집에 살고 싶다, 라는

과거의 나이브하고 다소 진부한 찬탄은 어느새 '저런 펜션/별장 하나 갖고 싶다'라는 속물적 욕망으로 바뀌었다.

제주도에 많은 거 세 개 중 하나, 바람을 상징하는 신물이랄까. 바람개비. 아까 외돌개에 걸려넘어진 신이란 녀석,

울먹이며 꼬장부리고 있을 때 달래주려고 바람개비 몇 개 듬성듬성 꽂아놓고 준비중인 게다. 그녀석의 둔하고

무딘 손끝에서 쉬이 분질러지지 않도록 강철로 만들어놓은 커다란 바람개비로다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사람들의 보폭이란 게 비슷한 거 같으면서도 다 다르다. 더구나 카메라를 들었는지 짐은 얼마나

챙겼는지 등등 변수란 건 찾아보면 참 많은 거다. 게다가 오늘 하루의 일정, 목적지도 다르니 호흡도 달라진다.

외돌개를 빠져나가는 길 어디메쯤. 구불구불한 길을 걷는 게 참 재밌다. 더구나 어딘가에 도착하기 위해 차를 타듯

'수단'으로 걷는 게 아니라, 그냥 '거기 산이 있어서 오른다'는 식으로 거기 길이 있어서 걷는다는 맘으로 걷고 있자니

마음이 참 너그럽다. 실은, 금요일에 휴가를 낸 덕분인지도 모른다.

왼켠엔 푸른 바다, 오른켠엔 초록 들판. 그 사이로 구불구불, 좌우상하로 굽이치는 길.

제주도는 네번째다. 꼬맹이 때 한 번, 대학교 1학년 때 자전거로 해안도로 일주 한번, 작년에 국제행사 때문에 한번.

그리고 올레길을 처음 걸어보는 지금.


내 방 창문 밖에는 온통 창문을 가리고 선 커다란 나무가 있다. 더운 날에는 바람을 다 막아버려 불만이고,

햇빛 강한 날에는 햇빛을 다 막아줘서 만족스런 나무. 아침에 눈뜨면 나가고 저녁에 해지면 들어오는 일상인지라,

어느날 문득 아직은 밝은 가시광선 아래 드러난 나무를 봤을 때 깜짝 놀랬다.


저건 뭐지? 왠 희한한 열매가 삐쭉삐쭉 뻘건 가시를 드러내고 매달려 있었다. 그것도 한두개가 아니고 가지마다

주렁주렁, 꽤나 흥미롭게 생긴 주제에 발육속도는 지겹도록 느려서 처음에는 신경쓰며 눈여겨 보다간 요샌 다시

시큰둥하다. 그래도 여전히 궁금한 건 그대로다. 저건 뭐지?

뭐랄지, 불꽃이 마구 이글대는 것처럼 생긴 개개의 삐죽한 잎들이 몽우리를 밑에서 위로 싸감고 있는 형태랄까.

연한 녹색이던 삐쭉이들이 윗부분은 햇볕에 달궈진건지 새빨갛게 빛나고 있고 말이다. 나중엔 온통 새빨개지려나.

온통 새빨개져선, 홍시로 변신할지도 모른다.(설마.)


뭔지 아시는 분은 제게 알려주시거들랑 제 기꺼이 저 열매 다 익거들랑 기꺼이 따서 보내드리걸랑~요~*ㅎ

근데 길가의 나무는 주인이 누굴까요. 괜히 경찰서 또(!) 붙들려가는 건 아닌지 소심해졌다는.ㅡㅡ;





매봉터널에는 차들이 다니는 2차선 짜리 터널 두 개가 돼지 콧구멍모냥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터널마다 한쪽 벽면에 바싹 붙어선 온통 도로로부터 차폐된 보행자용 통로도 있다.

보통 차들이 달리는 속도가 통로 한쪽 끝에서 다른쪽 끝까지 윙윙 울리며 정신을 빼놓기 마련이지만.

차들이 문득 끊긴 어느 한순간은, 앞선 사람의 실루엣이 반가울 정도로 괴괴하기만 하다.

터널 안, 그리고 다시 그 안의 통로 안에서 부산스레 사면을 부딪기는 발걸음 소리. 통로 끝이 더욱 멀기만 하다.

불쑥 어디로던 전화를 해보고 싶어지는, 어렸을 적이라면 '오줌이 마려워지는' 그런 타이밍.

어느 순간, 문득 한계다, 싶은 자각과 함께 숨이 턱 막혀올 때가 있다. 여태 숨을 꾹 참고 물속 깊이깊이

잠수한 채 버티고 있었던 걸 몰랐기라도 하듯, 공간을 찢고 어디론가 고개를 내밀어 숨을 헉헉 몰아쉬고

싶을 때가 있다. 자그만 비상구가 그나마 자그마한 위안을 주지만 갑작스레 쳐들어온 폐쇄공포증을

달래기엔 역부족이다. 얼개 밖 내달리는 차들이 더욱 비인간적으로 보이는 순간.

앞쪽에서 왠 아주머니가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더니, 훅 뒤로 지나쳐간다. 카메라를 들고 이 퀘퀘하며 먼지시꺼먼

통로 안에서 미적미적대고 있는 사람이 못 미더웠는지 걸음은 갈수록 빨라진다.

늘 한박자가 늦는다. 옆에서 내달리던 소음들이 뚝 끊겼음을 느끼는 건, 이미 아스팔트 위 빨갛고 노란 조명들이

멀찌감치 내뺀 한참 후다. 내가 보는 세상에, 내가 듣던 세상이 BGM처럼 깔려 있었다. 제대로 보고, 제대로

듣고, 제대로 느끼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또 한번 내 곁을 지나치는 걸음걸이. 이번에는 조금 더 흐느적대고 조금 더 탄탄한 자신감이 느껴진다.

니가 날 어쩌겠어, 라는 분위기랄까. 그의 두 다리가 통로 속에다 쉼없이 자잘한 가위질을 치며 지나갔다.

사각사각, 사각사각.

그러고 보니 그림자가 온통 제 맘대로 뻗어나있다. 터널 속을 뱀처럼 잇고 있는 주홍 백열등 때문에 이미 마구

흩뿌려진 수십개의 그림자들은, 오가는 차의 강렬한 서치라이트를 맞고 번번이 죽었다 되살아나곤 했다.

통로가 끝나면서 터널도 끝났다. 한 200여 미터쯤 되던가. 빈틈없이 구획해 놓은 보행자의 공간을 벗어나려는 순간,

확 넓어지는 보행자의 세상. 그렇지만 기실 보이지 않는 차단막이 차의 공간, 사람의 공간을 나누고 있는 거다.

그러고 보면 참 솔직하달까. 차와 인간의 공간을 선명히 갈라놓고 있는 차단막.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공간을

갈라놓고 있는 터널일 수도 있겠고 말이다. 터널을 걸어나오니 무슨 동굴 탐험하고 나온 느낌, 근데 왠지 기분은

무지하게 가라앉아 버렸다.



지난주 수요일에 한겨레21과의 인터뷰를 위해 홍대 '한잔의 룰루랄라' 만화까페에 갔었다.

(관련포스팅 : [상실의 시대] 하루키를 '염세적 현실주의자'라는 딱지에서 구출하기.)

벌써 몇차례 언론에 소개된 바 있는 만화까페였는데, 그렇게 찾기 쉽지만은 않아서 뱅뱅 헤매다가 한번은

건물 앞을 모른 채 지나가고 말았었다. 어쩔 수 없었다. 간판이라곤, 저렇게 조그맣게 붙은 게 전부다.

애초 1시간을 예정했던 인터뷰가 자유분방하게 진행되면서 3시간이 넘도록 진행되다 보니 정작 까페 내부의

분위기는 잘 못 느꼈던 것 같다. 그래도 드문드문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있었으니 옆테이블에서 독서모임을

의욕적으로 하는 모습이나, 이처럼 만화책이 빼곡하게 꽂혀있는 책장들.

까페 내부에는 온통 만화 캐릭터나 만화 그림, 카툰 같은 것들이 가득했다. 다음에 혼자라도 와서 반나절정도

무념무상 책보거나 음악을 들었음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천장엔 구불구불 환풍용(?) 파이프들이 지나가는 게 빤히 보이고, 그 아래 벽면에는 만화 캐릭터들이 쪼르르

전시되어 있었다. 뭐, 이런 분위기다. 세련되거나 깔끔한 맛은 없지만 분방하고 편한 분위기랄까.

사실 뭐니뭐니해도 만화까페니까 만화가 얼마나 많은지, 보고 싶은 작품들이 고루 갖춰져 있는지가 관건일 거다.

아쉽게도 저 책장들을 가득 메운 만화들이 뭔지 확인을 못 해봤다는.

한켠에는 마치 대학교 도서관을 떼어온 것 같은 좌석이 딱 두개. 사이좋게 앉아서 공부..인지, 독서인지를 하는

뒷모습이 너무 좋아보였다. 저들은, 친하구나. 이런 느낌.

고양이 사진들이 가득했던 한 켠의 장식장..이랄까. 또 꺄아~* 이러면서 사진을 찍긴 했는데 빛이 부족했나보다.

계산대. 이 날 그렇게 많이 먹지는 않았는데...기자분을 당황케 만들었던 카드의 말썽, 더 당황했던 다섯 명의 인터뷰이들.


이태원에서 자주 가게 된 이란 음식점이 있다. 저번 주에 놀러갔던 날은, 마침 그 전날 K방송국이던가에서 방송이

나간 다음이라며 굳이 찾아온 손님들도 있었더랬다. 처음 이곳에 갔을 때는 막 문을 열었던 터여서 주인아저씨가

한국어에 무지 서툴었었는데, 지금은 많이 유창한 분이 서빙도 맡고 계셨다. 저~기 테이블 위에 뱀처럼 또아리를

틀고 있는 물담배 기구. 거기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한쪽 벽면에 붙어있는 페르시안 아트. 흔히 이란을 아랍국가로 오인하거나 중동국가로 분류하긴 하지만, 실은

대부분의 아랍국가와는 전혀 다른 문화적 정체성과 인종적 특성을 가진 나라가 이란이다. GCC, 그러니까

최근 한국과 FTA 협상 중인 걸프연안국가 22개국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언젠가 한번

여행하고 싶은 나라라는 사실.

(추가 : 이란은 다른 국가들과 달리 시아파 이슬람교의 영향이 크다는군요. 서아시아 소재 이슬람 국가들 가운데

페르시아의 본산이기도 했던 이란은 전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인구가 페르시아계라고 합니다.  BlogIcon sephia 님 감솨!)

이란의 전통 요구르트음료와 인도의 난과 비슷한 빵. 요구르트 음료는 시원하면서 살짝 까끌까끌한 모시같은 맛이랄까,

뭐 실제 모시적삼을 물었을 때 나는 그런 맛이란 게 아니라, 깔끔하고도 시원한 맛이었단 얘기.

하나씩 접시가 늘어날 때마다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양고기 케밥. 양고기가 냄새도 없고 기름기도 많지 않아 좋았다.

그리고 저게..이름이 뭐였더라. 양고기 스튜같은 건데, 난에 싸먹으면 무지 맛있다. 색깔이 잘 살지 않아 좀 칙칙한

느낌이 있는데, 실은 무지무지 먹음직스러웠다는. 담엔 메뉴판을 찍어놔야겠다..이렇게 교훈 하나 얻고.

순식간에 다 먹어치워서 왠지 아쉬웠다. 사실 음식이 위장을 자극해 뇌에 '배불러배불러 고만 처먹어'란 신호를 보내기도

전에 너무 빨리 먹어버린 탓이었지, 결코 양이 적지는 않았다. 그저 아쉬워서 마지막으로 닭고기 샌드위치(라고 불렸던가).

닭고기랑 야채가 꽉 차있어서 한입 베어물면 입안이 뿌듯해졌다.

먹고 나니 물담배가 땡긴다. 사과향기의 연기를 뽈뽈 대며 머금었다 뱉었다 그렇게 유유자적하고 싶었다. 문득

터키, 이집트, 그리고 알제리에서의 추억들이 방울방울 맺혀올라서, 한 대에 무려 10,000원이나 한다는 물담배를

주문했다. 물담배 기구...에...그러니까 물담뱃대, 이렇게 표현하는 게 적절하다 싶은데, 거기에 장식된 문양이나

그림들을 구경하면서 불을 쟁였다.

 

물담배는 마약이 아니다. 마약류로 취급되지도 않고, 그냥 담배연기를 물에 한번 걸러서 피우는 거라고 생각함 될 듯.

근데 표정은 무슨...뽕쟁이 같다.ㅡㅡ; 한 30분동안 뻐끔대다 보면 저렇게 된다. 마음이 놓이고, 정신이 쇄락해지며,

육체의 온갖 자잘한 질병과 만성적인 빈궁함이 치유되는 느낌. 캬아.


★ 물담배의 원리!!

어렸을 적 학교에서 배웠던 플라스크 실험 그림을 구글해 보다가, 도무지 안 되겠어서 스스로 그려보았다. 짜잔~*


위에서 불타고 있는 apple-flavour의 물담배용 담배숯이랄까. 한 삼십분쯤 지나니 하얗게 불타버렸다.


이란 음식 전문점을 배경으로 한 물담배의 고고한 자태. 한 대 땡기시면 언제든 시도해보시길.






용산참사현장을 돌아보며 느꼈던 건..이 곳이 단순히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졌던 사고 현장일 뿐 아니라,

약자들을 위한 분향소이자, 거리의 감수성이 그대로 녹아있는 거리미술관이자, 또 그 사건을 잊지 않기 위한

추모의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대로 적나라한 한국의 현실과 빈궁한 민주주의의 허약함을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다시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근거지이기도 했다.


[용산참사 6개월] 참사 현장, 분향소에 다녀왔습니다.(1/5)

[용산참사 6개월] 참사 현장,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2/5)

[용산참사 6개월] 참사 현장, "니들이 경찰이면 나는 송혜교다".(3/5)

[용산참사 6개월] 참사 현장, "용산학살를 용서하지 않다!"(4/5)

[용산참사 6개월] 참사 현장, 매일 추모미사가 열립니다.(5/5)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용산참사 해결없이 이땅에 민주주의란 없다.

진상 규명은 사실상 그들이 원하던 원치않던 어느정도 된 상황아닌가. 누가 잘못한 건지, 안전수칙을 누가 어겼는지,

그리고 누가 지시했는지는 대충 언론보도로 (중구난방식일지언정) 노출된 상황이다. 그렇다면 우선.

과잉진압 사과하고, 재발방지 약속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서 근본적으로는,

생존권대책 마련없는 난개발정책 중단하라.

용산 참사현장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서 유가족분들에게 힘을 보태고, 귀막은 정부와 언론이 바라는 대로 잊혀지지는

않는다는 걸 직접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에 더해 민주주의를 위한 살아있는 교육 현장으로 활용될 수 있지 않을까.



■ 가는 길 :

용산역 1번 출구, 혹은 신용산역 2번 출구로 나와 걸어서 10분 이내.

저기 번개가 내리꽂힌 곳이 바로 용산4구역 철거민분들이 망루를 짓고 올라가셨던 곳이다.

..바로 여기.

다음 스카이뷰에 오른 사진은 언제 찍혔던 걸까. 아직 건물이 멀쩡히 제 기능을 할 때, 유리창들이 온전할 때, 그리고

그때만 해도 누군가 저 위에 올라가리라곤, 또 올라가 불에 타 돌아가시리라곤 생각지 못했던 때임에는 틀림없다.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전세난이 가중되면서 무주택 서민들의 주거환경이 날로 악화되고 있다.

강남권 등 지역에서 전세가격이 매매가격의 60% 수준까지 치솟자 전세입주자들이 아파트에서 연립이나 다세대주택, 단독주택 등으로 밀려나는 현상이 가시화되고 있고 같은 서울 지역에서도 값싼 다른 지역이나 수도권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다. 서민들의 주거 수준이 하향이동하는 현상이 잇따르고 일부 있는 것.

아울러 아파트의 경우 전세난이 매매가격을 밀어 올리는 현상도 본격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서민들의 내집장만 여건도 더욱 험난해지고 있다.

■전세난 속 서민 주거환경 악화


3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주택 전세난이 서울 강남권에서 강북지역 등으로 확산되면서 서민들의 주거환경이 날로 열악해지고 있다.

서울 반포동의 부동산명가공인 관계자는 “최근 아파트의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자금이 부족한 신혼부부나 무주택 서민들이 인근 단독주택가로 몰리고 있다”면서 “이로 인해 서초구 방배동이나 동작구 사당동 일대 단독주택의 전세가격도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도시개발로 주거환경이 개선되는 것은 좋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무주택 서민들의 주거환경이 더욱 악화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더욱이 저가 수요가 몰린 빌라, 단독주택 가격도 크게 오르면서 이제는 저소득층이 서울 내에 사는 것 자체가 힘들어졌다는 지적도 있다.

2000년대 초에는 더 좋은 생활환경이나 투자처를 찾아 서울 거주자들이 외곽으로 나갔다면 지금은 전세자금이 부족한 무주택 서민들이 김포나 광명 등 경기 외곽지역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 용산구 시티부동산의 한 관계자는 “용산구 일대에 새로 분양한 재개발 아파트 전세값이 2억∼3억원을 호가하다 보니 인근 단독주택이나 빌라 전세가도 모두 억대로 급등했다”며 “이 지역에 살던 사람들 가운데 전세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경기도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용산구 용문시장 일대에서는 불과 2∼3년 전만 해도 3000만∼5000만원이면 투룸짜리 전세 정도는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이 돈으로 원룸 빌라도 구하기 힘들다.

ⓒ 파이낸셜뉴스 (2009-08-03 17:44:21)


저녁 7시에는 어김없이 용산 참사 현장 바로 옆 골목에서 추모미사가 열린다. 6시가 조금 넘어서부터 제단을 설치하고

미사 준비가 조금씩 시작되고 있었다. 대체 이런 골목에서, 더구나 차들이 씽씽 달리는 8차선도로를 바라보며..미사가

가능할까 싶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거나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 사람들이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쳐다보는 걸까, 생각이야 약간씩 다르고 해법 또한 다를지언정 가슴속 답답함이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사람들이 다 어디서 와서 이 자리를 채웠는지 모르겠다. 바닥에다가 길다란 깔개를 십여줄 깔아놓는 걸 방금전에

보았는데, 잠시 한눈판 사이에 사람들이 사이좋게 자리를 메웠다. 어린 아들과 함께 온 아버지도 보이고, 혼자

오신 듯한 할머님도 보이고, 친구들끼리 온 듯한 젊은 처자들도 보인다.

7시. 미사가 시작됐다. 난 문정현 신부님이나 다른 빈민활동 담당하시는 신부님이 늘 미사 집전을 하시는 줄 알았는데,

이미 190여일째 진행되는 추모미사라 그런지, 전국에서 신부님들이 오셔서 돌아가며 집전을 맡는다고 하셨다.

이날은 인천에서 오신 신부님이 미사를 주관하셨다.

고 이상림, 고 양회성, 고 한대성, 고 이성수, 고 윤용현님을 위한 생명평화미사.

미사라고는 하지만 종교, 혹은 가톨릭의 신을 위한 제의가 아니다. 시작성가는 노찾사의 그루터기 1절. 민중가요가

골목 안을 꽉 채웠고, 골목을 삐져나간 가요소리는 지나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당겼다. 신앙을 전파하려는 전도의

목적이 아니라, 세속의 일을 세속의 방식으로 해결하자는 설득의 목적으로 열린 미사다.

제단을 향해 미사 참석자들의 머리가 숙여진다. 부디 이런 참사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해주세요, 라고 해야 할까. 사실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하겠습니다.'라고 의지를 벼르는 자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늘에 계신 분은 하늘에서 벌어지는 일을 주관하시라 하고, 땅에 있는 우리들은

땅에서 벌어지는 우리의 일들을 알아서 챙겨야 하지 않을까 싶은 거다.

한쪽에는 '질서유지선' 뒤에 정복 차림 의경 넷이 뭔가 열심히 전화도 받고 무전도 받고, 보고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 의경 네 명이 질서유지선을 설치하고 현장의 질서를 지키는 게 아니라, 이들이 질서 '밖으로'

밀려나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차분하고 가라앉은 분위기의 미사가 골목을 메우고 집전되고 있는데 정작

경찰들은 그렇게 질서정연하고 성숙한 분위기 바깥에 쫓겨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질서유지선이 왜 저기에 쳐져 있는지도 궁금하고, 이 경찰아저씨들은 대체 무슨 목적으로 저기에 나란히 넷이서

서있는지도 궁금하다. 사람들이 경찰에 질서를 부여해준 것만 같다. 경찰을 위한 질서유지선인 거다.

그러는 와중에도 흔들림없이 진행되는 미사. 혹은 미사의 형태를 빌어 죽은 자들을 위로하고 산 자도 더불어 위로하는

신부님의 부드럽지만 힘있는 나직한 말소리. 지나가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쳐다본다.

앞에 길게 깔린 깔개들 말고 뒤에는 색색의 간이의자가 놓였더랬다. 엄격하게 열이 맞춰서 놓이지는 않은, 편할 대로

의자를 땡겨서 앉아 미사를 볼 수 있는 그런 분위기인 데다가, 나처럼 여기저기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람도 적잖았지만

미사 분위기만은 그 어느 미사보다 팽팽하고, 살아있었던 느낌이다.

7시 반..조금씩 해가 기울고 있었다. 다시 한번 올려다본 참사 현장. 네모반듯한 아가리들을 시꺼멓게 벌리고 선

건물이 참...흉흉해 보인다. 건물 탓은 아니다. 그렇게 만든 사람들 탓이다.

여전히 질서유지선이 경찰들로부터 미사 참석자들을 보호해주고 있었고..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그치만 조금씩 속도를 내어 용산 참사현장을 벗어났다. 공기가 너무나도 무거웠다 거긴.

진상 규명은 사실상 그들이 원하던 원치않던 어느정도 된 상황아닌가. 누가 잘못한 건지, 안전수칙을 누가 어겼는지,

그리고 누가 지시했는지는 대충 언론보도로 (중구난방식일지언정) 노출된 상황이다. 그렇다면 우선.

과잉진압 사과하고, 재발방지 약속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서 근본적으로는,

생존권대책 마련없는 난개발정책 중단하라.

단순히 약자에 대한 도덕적 공감이나 정서적 동정심으로 그쳐서 될 문제가 아니다. 한번으로 끝날 일도 아닐 뿐더러,

분명히 옳고 그름을 가리고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하는 그런 종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한다.


"용산학살를 용서하지 않다!" 서툴고 얼핏 웃기는 말, 그렇지만 흔들림없이 다부지게 내려간 ㄹ의 획이라거나

90도로 딱딱 꺽여있는 단정한 서체를 보자니 그 문구를 쓰는데 기울였을 열의와 집중도를 알겠다. 외국인들이

아마 '연대'하러 와서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하고 싶었나보다. 그리고 그 뜻은 분명히, "용산학살을 (일으킨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겠다!"라는 의미였을 거다.

"대학생이 함께 하겠읍니다!" '읍'의 센스도 센스지만, 반드시 이길 거라는 격려가 와닿았다.

아예 시커멓게 문대버린 벽면에 남아 있는 건, 꽃잎, 그리고 꽃잎 사이로 부유하는 다섯 분의 영정사진들.

하고 싶은 말이 많으셨다. 위에서부터 단정하게 써내려갔는데 기둥이 모자라 말을 다 못한 느낌.

여지없이 아스팔트 바닥도 선전 공간이 된다. "이윤보다 사람이다."

이윤 대신 사람을 챙기란 말이 아니다. 이윤을 챙겨도 사람부터 챙겨놓고 챙기란 말이다. 이것도 못하겠다면..

여기 사람이 있다. 잊지 않는다. 여기 사람이 있었다. 잊지 않는다.

3천쪽을 공개하라..는 구체적인 요구조차 묵살당하고 있다.

경찰은 인제 큰일났다. 담벼락에는 살벌한 가위 표시, 공중화장실에는 "견찰사용금지" 표시. 어쩔 테냐.

'내 인생이랑 상관없는 대한민국 7%의 부유층을 위한 건물.' 그걸 위해 부서지는 93%의 생존 공간.

어쩌면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란 믿음 내지 신앙이 우리로 하여금 7%의 가능성에 눈멀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개천에서 용나기란 불가능한 세상이 되어감에도.

우비를 붙여 놓고, "국민들이 완전히 뒤돌아 설 때까지 기다리지 마세요..." 이걸 설치한 사람의 센스도 센스지만,

완전히 뒤돌아 서게 되면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질지..갈수록 섬뜩한 공포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오세훈시장이 야심차게 추진한 광화문광장, 오늘도 10명이 기자회견 중 끌려나갔다고 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광장'이란

아무런 소음이나 불만세력의 '준동'없이 모두가 하하호호하며 개별적으로 즐기는 공간만을 이른다. 나머지는 얼룩.

빠염~* 플리즈 빠염~^^

그래도 웃자. 왠지 이 삼엄하고 살벌한 땅 위에 저런 스마일 표시가 강림하다니, 이걸 적은 사람은 초인인 게다.

그래도 웃자. 맞는 말인데, 이 상황에서 웃자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니. 왠지 먹먹하다.

차라리 이게 인간적이다. 전경은 걷지마, 라고 땡깡을 부리듯. 떽!! 이라는 고함소리까지.

지우려고 애쓰는 사람과 지우지 말라고 외치는 사람. 누군가 촌평했듯 독일 베를린 장벽에 그려졌던 온갖 그림과

메시지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무언가에 대한 항의, 희구, 그리고 열정.

건물 중 아직 철거되지 않은 한 동의 건물에는 민노당 용산4구역세입자분회가 설치되어 있었다. 적잖은 갈등이

이미 있었는지 온통 빨간글씨로 도배되어 있다.

인권의 사막 용산. MB정권의 흉터 용산. 양심의 집결지 용산.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 용산.

작가선언의 이런 언명은,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의지를 표함이다. 양심의 집결지가 되어야 하며,

더이상 밀려날 수 없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여야 한다. 그곳이 용산이어야 한다.




 
"니들이 경찰이면 나는 송혜교다".ㅋㅋㅋㅋ 문득 웃음이 터졌었다.

거울까지 달아놓았다. "거울아 거울아".

"이명박씨, 당신이 선택하시라!" 이미 그는 수차례 선택을 선언해왔다. 새삼스레 바랄 것도 없지 않나..는 게 갠적인 생각.

"용산 참사 해결없이 이 땅에 민주주의란 없다."  힘없는 사람들이라고 목숨값도 가벼워야 합니까...

씁쓸했던 손자보 하나. "닭모가지를 비틀어도 언젠가 새벽은 온다" 서울대 철학과 출신의 대통령이 민주화 투쟁시절

했던 말이다. 이만큼, 뒤로 돌아갔다.

버려진 매트리스 세개로 그려진 세폭짜리 그림. 입에서 포클레인이 나오는 그대는, 진정한 트랜스포머.

용산참사 후 2개월, "용산GAJA展"에 다녀왔습니다. 라는 포스팅에서 소개했던 만평들을 다시 만났다. 반갑다기보다,

가슴이 먹먹했다. 그때만 해도 2개월이나 지났으니 뭔가 해결이 되겠지..했는데 어느덧 6개월이 넘어간다.

"돈놀이로 사람 죽이는 이 미친 개발을 당장 멈춰라." 돈과 사람 사이에 부등호를 세운다면 아가리가 돈 쪽으로 가는 세상.
"삶 자체를 철거하는 재개발 정책."

다섯 분의 영정이 실크스크린같은 형태로 그려졌다. 그리고 그걸 굳이 다시금 지워버리려 한 누군가의 덧칠이 보인다.

이건 전쟁이다. 이 좁고도 별볼일없는 담장을 둘러싼 여론 싸움이다. 누군가는 쓰고, 누군가는 지우며, 다시 그 위에

글씨를 쓴다. 그리고 이 조그마한 공간은 보수언론이 장악한 거대한 체스판의 아주아주아주 미미한 한 톨의 먼지에

불과하다. 그만큼 날 것의, 그만큼 적나라한 이야기가 활자화되는 거지만, 동시에 그건 그만큼 세가 약하고 외롭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2MB 퇴진. 의원내각제였다면 벌써 정권이 열번은 넘어졌을 거라고 손호철 교수가 그랬던가.

길바닥 역시 유용한 선전공간..이라기 보다는, 통로가 없다. 이들이 발언하고, 동의를 구하고, 자신들의 목청을 높일

공간이 없다. 어쩔 수 없이 터져나온 비명같은 외침은 바닥까지 내려앉아 깊이깊이 새겨진다.

"철거하면 이명봙". 봙.

"공권력 메롱". 굳이 지난 촛불시위 때의 발랄함과 재치있는 움직임들을 들지 않아도, 조금씩 그들은 우스워지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스스로를 우습게 만들고, 스스로를 가볍게 만들고 있으니, 풍자의 의욕은 날로 높아간다.

"우리는...더 큰 울음소리로 살아날 것이다." 그치만 때는 진보세력조차 '국가와 민족'을 걱정하게 만드는 시대.

울음소리가 영영 사라질까 두려워 해야 하는 시대.

어느새 용역과 경찰이 한몸이 되어 버렸다. '용역경찰 박살내자'. 자신들이 뿌린 씨앗이다.


'여기 사람이 있다'란 책의 표지에 나왔던 판화 그림이 붙어있었다.

"비록 패배가 지금 우리의 삶일지라도, 우리는 사랑도 알고 꿈도 안다." ...

돌아보다 보니, 무슨 전시회나 미술관을 도는 느낌마저 들었다. 짧막하지만 생생하고 강력한 아포리즘들과 그림과 사진,

판화와 만평, 때로는 설치미술작품같은 것들까지. 그래피티가 별거인가. 어쩌면 애초 그래피티 정신엔 훨씬 어울린다.

이렇게 누군가가 열심히 지우는데 여념이 없을지라도, 그리고 때론 무지막지한 상말이 난무할지라도,

용산이 잊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현세던가, 처음 포돌이 포순이 캐릭터를 제공하며 집회 현장에서 인형가죽을 뒤집어쓴 경찰을 만들어냈던 게.

그야말로 양의 가죽을 쓴 늑대란 느낌이 점점 강해진다. 물론 모든 경찰 구성원을 싸잡을 생각도 없고, 경찰력 자체가
 
없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이렇게 착한 척 귀여운 척 '민중의 지팡이'입네 하면서도 결국은 '상부'의

명령에 따라 학살도 주저치 않는 엄연한 '합법적 폭력조직'의 양면성이 엄존한단 걸 잊으면 안 될 거 같단 이야기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셨길 바랍니다..그날의 화염이 자꾸 눈 속에 어른거려서..오래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참사가 벌어졌던 건물 옆 골목을 들여다보니 지역 전체가 재개발로 인해 허물어진 상태였다. 이미 많이 부서졌고,

앞으로 철거를 앞둔 듯 텅 비어버린 건물들. 거기에 철거민분들과 유가족들은 다시 삶의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여기 아직 사람이 산다. 여기, 사람이 있다.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반년, 여기에 있는 사람, 여기서 외치는 소리에

귀기울여야 할 사람은 뭘 하고 있는 걸까. 뒷산에서 '아침이슬'을 흥얼거리며, 아...나도 한때는 철거민이었고

소상인, 노점상이었으며 의분 넘치는 운동권이었노라고 자뻑에 취해 있는 걸까.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고 노무현 전대통령 노제 때도 반입이 금지되었던 만장용 대나무다. 죽창으로 언제든 변신할 수 있어서라나.

사실 용산참사의 일차적인 평가는 너무너무 명료하다.  생존권 투쟁에 나선 철거민에 대한 과잉진압. 거기에

덧붙여 철거민에 대한 보상의 법적 문제라거나 재개발사업의 불합리함, 등등을 따질수야 있겠지만, 일단 사람이

죽었다. 그것도 여섯 명이나. 안전수칙도 어기고, 그것도 용역과 함께 과잉진압했다, 미안하다, 진상조사해서

재발 방지하겠으며 책임자에 대해 처벌 확실히 하겠다. 이런 말 한마디 못한다니 말이 되나.


'심심한 유감을 표합니다' 정도도 이분들에겐 사치스러웠나.

그러는 와중에 전면에서 부딪히는 건 극도로 날카로워진 철거민분들, 유가족분들과 전/의경들을 앞세운 경찰이다.

이곳으로부터 심심찮게 들렸던 신부님들에 대한 구타, 과잉 대응 사례들은 급기야 천주교 측의 공식 항의로까지

이어졌었다고 들었다. "권력자의 개", 혹은 "민중의 보호자"라는 극단적인 그림 가운데 근래 급격히 어느 쪽에

가까운 모습이 선연히 부각되는 건 사실이다.

주변 철거완료지역을 에워싼 벽에 붙어있는 경고문. 애초 손해 보상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하루아침에 퇴거를

강요당한 철거민들이 살 길을 터달라고 이곳에 버티는 순간, 불법점유, 무단침입, 업무방해, 재물손괴, 폐기물관리법

위반, 폭력행위, 주거침입, 특수주거침입죄..에 더해 안전사고의 책임까지 몽창 떠맡게 된다. 국가의 보호로부터

배제당하게 된 그들인지라, 용역에게 협박당하고 구타당해도 의지할 곳이 없다.

"우리의 웃음이 없는 민주주의 민생은 거짓이다."

어쩌면, 민주주의란 환상인지도 모른다. 가진자들은 여전히 그대로,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절대법칙은 공고한데

대체 뭐가 민주주의란 말인지. 그게 현실이다..라고 한다면 할 말이 궁해지는 거다.

용산 참사 유가족분들을 돕기 위한 장터랄까, 포차가 열렸었나 보다. 철거된 건물들, 철거될 건물들이 온통 주위를

삼엄하게 메운 가운데 샛노랗고 새파랗고 새빨간 간판이 왠지 슬프다.

바로 뒷 건물은 그림책 화가분들이 전시 공간으로 쓰고 계셨다. 전시공간이자 작업공간으로 쓰고 있는지 사람이

계속 상주하는 것 같았다. 우린 끝까지 간다. 우린 힘들지 않다. 최면 문구와도 같은 그런 말들을 현수막에 내걸고.

옆의 텃밭은 고추, 상추, 깻잎, 열무 등 이런저런 채소류를 품고 있었다. 필요한 만큼 가져가서 드시라는 소개글과 함께,

'공동선을 위한' 공권력이란 문구가 언뜻 눈에 띈다. 공동선은 별게 아니다. 같이 살자는 거. 다른 사람을 억압하거나

피해주지 않고 함께 살려나가자는 거. 쉽다면 이토록 쉬운 거다. 채소 나누기만큼.

한 쪽에 쌓인 녹슨 쥐덫들. 아마 예술하시는 분이 작업하려고 놔두신 건지, 퍼포먼스나 작품에 이미 쓰였던 건지.

80년 광주 학살, 09년 용산 학살. 단순 등치에는 분명 무리가 있다. 그리고 희생자에 대해 '우리'라는 마인드를 갖기란

더욱 쉽지 않을 거다. '전라도치'나 '철거민'이나 '우리'란 단어로 묶기는 어렵기 매한가지겠지만 말이다.

'여기 사람이 있다'란 책의 한대목에 그런 말이 있다. 철거민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이 철거민이 될 거란 상상은 꿈에도

못했노라고. 마치 예기치 못한 교통사고처럼 재개발 사업이 닥친 거고, 제도적으로 '보험'조차 정비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었음은 그 이후에야 깨달은 것 뿐이었다. 그뿐이었다고 했다.

아마도 외국인들이 만든 현수막인 듯 하다. 맞춤법도 맞지 않고, 다소 낯선 색감에 못알아들을 단어들이 가득하지만,

그 의도와 의지만은 분명하다.

집은 살 것, 상품이 아니라 살 곳, 기본적인 권리다. 집을 이윤을 위한 상품으로만 여기는 순간, 투기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순간 그 공간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일상이 길거리에 내동댕이쳐진다.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계속해서

열악한 지역으로, 철거와 재개발을 기다리는 지역으로 옮겨가 결국 나락으로 빠져들고 만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에

그들의 게으름, 못 배움, 재수없음, 팔자...를 운운할 바에야, 차라리 2등국민의 존재를 인정하는 게 솔직하겠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몇몇 작품들이 전시되어있었다. 미완성으로 남아있는 이 연필 그림. 그날의 장면이 생생하다.

얼굴이 비어있는 여섯번째 영정사진, 그 경찰과 유가족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정부는, 그들에게는

제대로 사과하고 유감을 표했을까. 그조차 제대로 했을지 모르겠다.

가난한 사람들이 살던 집을 부수고 생겨난 멋진 도시는, 가구수도 적고 집값도 월등히 뛰기 마련이다. 주변집값도

덩달아 뛰어 버리니 결국 집주인과 세입자를 막론하고 원주민 대부분에겐 동네를 떠나는 길 밖에 남지 않는다.

사람들이 대통령을 정비해요. 시멘트를 발라서.

문득 걱정이 생겼다. 이런 작품 찍어올리는 것도 저작권 위반일까. 작가의 의지와 별개로 고발당할 수 있다고 얼핏

들은 거 같은데..문제가 된다면 바로 삭제하는 수 밖에. 쫓겨날 일없어 좋겠다, 불지를 놈없어 좋겠다.는 마지막 문구.

영업합니다, 란 간판이 되려 휑한 분위기를 더했다. 뒷쪽으로 쭉 늘어선 음식점들이 몇군데 문을 열긴

했지만...아마 조만간 다른 곳으로 옮겨가야 할 거다. 제대로 보상은 받으셨을까.

무슨 일이 또 있었던 걸까. 바로 옆의 맥주집 지하로 내려가는 길엔, 폴리스라인이 쳐져서 출입을 금지했다.

참...황량하다. 잔뜩 깨져나간 유리조각들이 흥건한 물처럼 고여있었다.

어느덧 해가 뉘엿거리며 기울어지는 시각. 건물 철거가 완료된 공터를 둘러싼 가림막에 마지막 햇빛조차 텁텁하다.

사람이 살았던 곳, 누군가가 살림을 하고 누군가가 미래를 상상하며 몸을 뉘였을 곳. 세입자의 재산을 털어

건설자본과 구청, 일부의 배만 불려주는 현재의 재개발이 쓰나미처럼 예기치않게 지나고 난 현장이라 더욱 살벌하다.

돈없고 빽없고 힘없으면 당해야지, 어떡하냐. 라고 묻는다면 역시 할 말이 궁하다. 우리의 민주주의란 게, 그정도로

허약하고 별볼일없었다.

이런 식의 구도를 굳이 잡고 싶진 않았다. 뭔가 가진자와 못가진자의 대립을 상징하려는 것처럼 보이잖아.

그런 의도가 아니고, 사실 그런 구도로 보는 게 맞지도 않는다. 이건 '부'를 둘러싼 싸움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한쪽 벽이 완전히 허물어져 집의 내부가 훤히 보이는 집 한채를 마주쳤다. 적나라하게 내부가 드러났다. '집'이란

단어에서 느껴지는 안온함과 포근함 따위 모두 휘발되어 버린, 시멘트 블럭만 거기 남아있었다.


용산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도 그런 거다. 적나라하게 내부가 드러났다. '우리'란 단어에서 헤아려지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그들에 대한 국가의 대우란 게 얼마나 황공무지한지.





신용산역에서 내려 조금 걸었더니 저 앞에 문득 많이 보던 건물이 보인다. 특히 '세무사 조xx 사무소'라는 저 파란 간판.

문득,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제야 직접 와보는구나. 계속 생각만 하고 있다가 이제야.

[여기 사람이 있다] 우리들의 '구차한' 밥그릇싸움에 사형을 언도한 그들.

저 위에서 여섯 생목숨이 날아가 버렸다. 망루를 짓고 올라간지 하루만에, 경찰특공대가 투입되어 그야말로

'테러분자들을 진압'하듯 불구덩이 속으로 토끼몰이해버렸던 거다.
그리고 책임자 처벌은 커녕 3000여쪽의 수사기록도 공개하길 거부하고, 진상 규명조차 마냥 소홀한 정부. 그들은

피해자 측에 대한 책임있는 사과나 유감 표명 등은 고사하고 어떤 대화도 일절 거부해 왔다.

그런 곳이다. 그런 곳에서 문정현 신부님을 비롯한 사제단과 피해자대책위, 철거대책위원회 분들이 분향소를

설치하고 매일 추모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내가 갔던 저번주 금요일, 이날은 참사, 혹은 학살이 발생한지 무려

193일째 되는 날이었다.

시끄러운 도심의 소음조차 낯설게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점차 빠르게 뛰는 심장을 가라앉히며 신호등을 건너니

아마도 작가선언 측에서 나온 듯한 분이 길거리 선전전을 하고 계셨다. "평범한 시민이었다. 죽여야 했는가?"

뭐라도 들고 가야겠다 싶어서 우선 현장을 지나 근처 슈퍼에서 집들이 선물용 휴지를 사가는 길, 유족분들 중 한분인 듯한

아주머니께 들려드리며 "어머니, 잘 풀렸음 좋겠어요."란 멘트를 하고 싶었다. 건물 위에 언뜻 잔뜩 불에 그슬려 허물어진

컨테이너가 보인다.

자, 여기서부터 일상이 깨어져나간달까. 사람들이 부산하게 쏘다니던 거리의 어느 지점에서부터 뭔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불안하게 만드는, 생경한 단어들과 '낯간지런' 호소들.

선연한 빨강색에 느낌표로 끝나는, 뭔가 강력한 어조로 요구하는 선전물들. 용산4구역 철거민들은 재개발을 틈타

한몫 벌어보겠다고 눈이 벌건 '속물'도 못 되었었다. 바랬던 건 단지 재개발 중에 영업을 계속하기 위한 가상가 제공,

그리고 재개발 이후의 임차/임대상가를 보장하라는 것이었을 뿐. 그조차도 묵살당하고, 이렇게 사태가 악화된 건

누구의 책임인가.

전철연의 삑삑거리는 소음 섞인 스피커, 낯설고 무서운 투쟁가, 그런 것들에 대한 관용, 나아가 이해를 바라는 건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사실 무섭고 낯설기는 소리없이 사람을 짓밟는 세련된 공권력이 한 수 위라고.

검찰은 수사기록 3천쪽을 법원의 명령까지 거부하고 벌금을 감수하며 내놓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거기에는 아마

용역과 경찰과의 공동 작전을 펼쳤던 정황이나 진압작전이 아무런 안전조치없이 취해졌음을 드러내는 증거가 있을 거란

추측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런 의혹이 발생할 것을 알면서도 비공개하는 이유는, 정말 뭔가 있는 거 아닐까.

7월 초에 인터넷 공간에도 이슈가 되었던 사건이다. 경찰의 진압훈련 시범 중에 용산 참사와 너무나도 흡사한 그림이

나타났던 것. 경찰은 이미 용산참사를 '도심 테러리스트 섬멸'작전 정도로 규정지은지 오래인 듯 하다.

분향소 앞을 지키고 늘어선 화분들. 조그마한 꽃집처럼, 다양한 종류의 꽃들이 봉싯봉싯 꽃망울을 열고 있었다.

꽃이라도 없었다면 어땠을까. 금방이라도 무너질듯 을씨년스런 건물에 자리잡은 분향소가 풍기는 허름한 분위기에

더해, 조화라거나 거대한 화환 같은 것들 하나 보이지 않는 삭막함까지 사람맘을 쳐댔을 거다.

분향소는 한산했다. 검은색 전철연 조끼를 입고 다니시는 분들은 의외로 매우 밝고 의연하셨다. 뒤늦게서야 이렇게

찾아뵙고 착잡하고 침통한 표정을 짓고 돌아다니는 스스로가 더욱 부끄러웠다.

다섯분의 영정이 모셔져 있고, 역시 조그마한 화분들이 빈소를 지키고 있다. 참사 이후 6개월, 아직 이분들은 장례도

치르지 못했고...끊임없이 이슈를 몰고 다니는 이 정부 인사들에게 용산 참사란 마치 먼 옛날 일인양 까맣게 잊혀진게

아닌가 두렵다. 이분들에 대한 완벽하고 단호한 무시.

분향소 왼쪽에 지어진 평상엔 신부님들이 인터넷도 하고, 책도 보시고, 이야기도 나누시며 자리를 지키셨다.

문정현 신부님이 그 오른쪽 평상에 앉아 사람들을 맞이하고 계셨다. 나지막한 평상은 왠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털썩 주저앉아 잠시 쉬어갈 수 있다고 유혹하는 듯 해서 나도 잠시 앉아 땀도 식히고..신부님과 다른 분들의 이야기도

귀기울여 듣고.

그러고 보니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고 가시는 모양이다. 수박에 생수에 포도, 사과에 쌀포대까지. 좋은 분들이 많다.

다섯 분의 생전 모습이 그려진 액자가 분향소 옆 유가족 분들의 살림터를 가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마치 내장이

터져나온 생선처럼 삶의 '누추한' 흔적들은 여기저기서 불에 그슬린 양동이로, 손잡이가 떨어져나간 냄비로

나타난다. 이런 것들을 안전하고 위협없는 공간에 부려놓고 일상을 살아갈 만큼, 그만큼의 보장도 못해주는

정부라니 한심하다. 화가 난다.

유가족분들의 일상 아닌 일상은 분향소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한쪽에서 매 식사를 준비했고, 또 건물외벽에

의지해 늘어뜨려진 빨랫줄에는 하루치의 빨래가 널려 있었다. 이토록 신산스런 삶을 자발적으로 원하는 사람은 없다.

그건 이분들이 더이상 물러설 수 없는 어느 한계에 도달했음을, 정말 그분들 말씀처럼 '악밖에' 남지 않은 싸움이다.

건물을 반바퀴 에둘러 보았다. 어느 지점에선가 올려다본 하늘은 시커멓게 그을린 채 팍삭 허물어져내린 컨테이너의

잔해로 가려져있었다. 울컥, 눈물이 났다.

여기였다. 이곳을 진압하기 위해 경찰들은 용산 주변 출근길을 온통 마비상태에 빠뜨렸으며, 용역들과 공조하여

토끼몰이식 강경책을 일관했고, 안전대책 하나없이 죽어라, 하며 기름불에 물을 끼얹었다.

건물 뒤에 있는 주차장에는 반짝반짝 세련된 색감의 닭장차가 마치 트랜스포머의 옵티머스 프라임처럼 늠름히 자리를

지키고 서있었다. 닭장차 안에도 역시 먹고 살기 위한 양푼이며 냄비, 식판들이야 있겠지만 차곡차곡 잘 갈무리된 채

깔끔하게 숨겨져 있을 거다. 이건 인간의 존엄성 문제기도 하다.

참 허약하기 짝이 없는 철판 한장이다. 폭발물과 위험물질이 가득하고 인근 주민에 크나큰 위협이 된다 판단하여

해치워 버린 거라지만, 실제로 주변 주민들은 아무 위해도 느끼지 않았다고 증언했던 바 있다.

"죽이지 마라. 민중이 이긴다." 죽이겠다고 달겨들면 사실 방법이 없다. 죽고 나면 이렇게, 끝인가 싶기도 하다.

용산참사가 벌어지고 나서 한동안 여론이 술렁댔었고 이로써 정권이 끝난다는 성급한 예측, 기대섞인 전망도 있었댔다.

그렇지만 그렇게 산뜻한 기승전결의 구조를 가진 이야기란 거, 현실에서 찾긴 쉽지 않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건,

철거민 분들, 저 망루에 오르셨던 분들의 마음이다. 정권 퇴진시키자고 올라간 거 아니다. 민주주의를 원한다고, 이한몸

열사되겠다고 올라간 거 아닌 거다. 내게 살 길 좀 마련해 달라고, 반토막나고 거리에 쫓겨나게 생겼으니 생계 대책

마련해달라고 올라간 거다. 용역이 경찰과 손잡고 죽어라죽어라 괴롭히니 올라간 거다.


최소한 국가라면, 정부라면, 지들이 국가고 정부를 '자처'하겠다면, 국민이 먹고 살게 해줘야 할 거 아닌가.

가톨릭사회교리에 따르면, 양심에 따라서 거부할 권리란 '공권력, 명령이 도덕 질서의 요구나 인간의 기본권 또는

복음의 가르침에 위배될 때, 국민들은 양심에 비추어 명령에 따르지 않을 의무가 있다"고 한다. 전/의경들한테도

못할 짓이다. 그들도 이미 큰 상처를 입었을 터, 거기에 더해 스스로 용기를 갖고 불의에 항거하라 말하는 건 너무나

가혹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애초 그런 상황에 봉착하게 만드는 부조리한 명령의 발화자가 더욱 혐오스럽다.


그들은 자신을 제외한 다른 모든 이들을 아프고 병들게 한다.

고양이에 열광한다. 알레르기가 있다. 고양이까페에 갔다. 오줌을 쌌다.(1/6)

[사진] 고양이 클로즈업..@ 고양이까페.(2/6)

[사진] 스스럼없이 테이블을 차지한 고양이녀석들..@ 고양이까페.(3/6)

[사진] 대자로 널부러진 고양이들..@ 고양이까페.(4/6)

[사진] 가지런히 네발모은 고양이녀석들..@ 고양이까페.(5/6)


에 이어 여섯 번째로 이어지는 고양이 사진選입니다.ㅎㅎ

고양이의 몸에는 늘씬한 팔다리가 차곡차곡 접혀서 숨겨져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가제트 만능팔~이 덜컥

튀어나오듯, 고양이의 재빠르고 군더더기없는 움직임은 항상 우월한 기럭지로 뒷받침된다.

어렸을 적 몇십번씩 보았던 디즈니 만화의 고양이캐릭터들, 그리고 그 오리지널버전의 애기고양이까지.

까페 안엔 고양이들이 들어가 쉴 수 있는 공간이 많이 마련되어 있었다. 털이 복슬복슬한 이런 '고양이수납공간'.

아마 기어코 만지고 비비고 안아주겠다는 손님들이 있으면 쪼르르 이런 곳으로 도망치지 않을까. 저렇게

잔뜩 경계하는 표정으로 공간 밖을 내다보며 말이다.

1층위에 2층, 2층위에 3층, 3층위에..각 층마다 거주하고 있는 고양이들은 서로에 대해 잘 모른다. 2층집 고양이가

애써 1층집 고양이에게 말을 걸어보려고 고개를 뺴꼼히 내세웠지만, 들은 척도 않는 나쁜 1층집 고양이.

그와중에 입맛다시는 3층집 고양이는 뭐고.

큰 대자로 뻗어 두발을 널부러뜨린 욘석은 여전히 잠에서 헤어나오질 못한다.

아늑한 바구니 안에서, 그것도 제몸과 색깔이 똑같은 보호색을 띈 바구니 안에서 옹송그린 고양이 한마리.

뭔가 놀란 표정의, 눈을 똥그랗게 뜨고 카메라를 바라보는 고양이.

그리곤 다시 고개를 돌려, 고양이들 밥먹는 방으로 들어가려다 시작되어버린 눈싸움.

의자에 사람처럼 기대 앉아선 주변을 호기심어린 눈길로 바라보는 하양고양이.

그리고, 유독 내 가방에 관심을 보이던 몇몇 고양이들. 가죽냄새가 너희들을 흥분시켰던 거니.

짱구의 울라울라춤은 아마 고양이를 보고 영감을 받은 게 아닐까.

뭔가를 붙잡고 자야 안심이 된다는 듯 밧줄에 팔 하나를 걸쳐놓고 뒹굴거리는 대자 널부러진 꼬마 고양이.

까페 한구석에는 상처입은 유기고양이가 철망 안에서 적응 중이다. 뭔가 부럽기도 하고 착잡해보이기도 하는 애매한

눈빛이라고 느꼈다.

이제 슬 갈 준비를 하려는데, 눈치를 챘는지 좀체 내 가방에서 떨어질 줄 모르고 급기야 앙탈을 부리는 녀석.
시간이 지나면서 늘어난 손님들, 여기저기서 본격적으로 놀기 시작하는 고양이들.

막판에 워낙 귀엽게 구는 통에 정신이 쏙 빠졌다. 아주 그냥 내 가방을 제 둥지삼아 끌어안고 살 기세다. 좋은 기세다.

형님 저는 이만.

왠지 이 녀석이 내 가방위에서 취하는 포즈들이, 요새 연예인들 섹시화보니 하며 찍어대는 그 사진들과 비슷한 포즈에

분위기에 눈빛이다. 요염한 녀석 같으니라고.

기어코 떨쳐내고 일어섰더니, 마침 옆 테이블에 와서 앉는 사람 가방으로 쪼르르 옮겨가 버린다. 순간판단력이나,

대응속도나...나무랄데 없이 쾌속하다. 아마 이녀석은...가방에 대한 페티쉬를 가진 듯.

집에 가는 길, 횡단보도에 빨간 불이 길어서 살짝 넘어섰다가 경찰아저씨가 쫓아왔다.

딱지를 떼고 말았다.ㅜ

그리고, 의사선생님은 '마치 짚을 이고 불섶에 들어간 것'과 같다며 알러지 반응이 폭발적으로 일어난 것이라 했다.

삼일동안 눈이 뻘겋게 충혈되어 지냈다.






꺄아~~ 완전 귀여워~!!

얼굴을 살짝 돌리면...꺄아~~ 너무 귀여워~!!

반대편 얼굴도 보여주셔요 고양이님~~! 꺄아~~~

고양이님과 눈높이를 맞춰 카메라를 들이대는 즐거운 한때.

꺄아~

응? 

꺄아~ 마치..해변가를 걷던 잘빠진 구릿빛 피부의 젊은 남자가 뒤에서 부르는 나긋한 여성의 목소리에 반응해 고개를

살짝 돌아보는 듯한 분위기랄까. 방심한듯, 무심한듯, 하면서도 내 여자에겐 따뜻하겠지..라는.ㅋ

이 몰입한 눈빛연기. 앞에 각잡고 앉아있는 고양이들을 눈빛만으로 제압할 기세다. 근데, 실은 아무것도 앞에 없었다.

왠지 심통스런 표정의 고양이. 나 지금 진짜 삐졌거든. 말걸지 마 흥. 정도랄까.

짝눈뜨니까 완전 불량해 보여. 왕년에 껌 쫌 씹었던 고양이. 그치만 별로 무게감은 없다.

완전 귀여운 새끼고양이. 눈을 몇번 꿈뻑거리다간 정신못차리고 잠들어버렸다.

흔히 여성의 눈을 두고 '고양이눈'이네 뭐네 하지만, 똑같은 고양이눈도 눈가 주름이 약간씩 씰룩거리면서 영

다른 분위기를 풍긴단 말이다.

왠지 고양이가 아니라 부엉이나 올빼미를 떠올리게 만들던 녀석.

이 아이들은 말을 할 줄 아는데 안 하고 있거나, 말을 이해할 수 있거나. 둘 중 하나..라고 믿게 만드는 눈빛을 가졌다.

이렇게 우아하고 의젓한, 그야말로 왕족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고양이는 처음 봤다. 다만 저 갈기갈기 갈기수염이

밥먹을 때 많이 불편하지 않을까 염려스러울 뿐.



금요일은 휴가였다. 비가 오는 꾸물꾸물한 날씨인지라 차를 끌고 그동안 별렀던 고양이까페에 가기로 맘먹었다.

유리창에 볼록볼록, 빗방울이 도톰하게 올라붙었다.

왠지 가는 길에 경찰차가 계속 눈에 밟혔다. 마침 빨간불에 걸린 김에 사거리 반대편에 보이는 경찰차가 뭐하나

궁금해하다가. 자꾸 경찰차가 유난히 눈에 띈다 싶을 때 조심했어야 했다. 결국 나오는 길에 딱지를 떼고 말았으니.

서울대입구역 4번출구로 나와 신한은행을 끼고 좌회전하면 나오는 지오캣, 알고 보니 6, 7년째 고양이까페를

운영해 오신 베테랑 사장님이 버티고 계신 고양이까페계의 좌장이랄까.

이곳을 가르쳐주신 윤뽀님의 포스팅에서도 봤었던, 이미 한번 눈에 익었지만 여전히 섬뜩한 경고문구.

고양이의 생명을 위한 길이 뭔지를 잘 생각하고, 양육자로서의 책임이 뭔지도 잘 생각하고.

(궁디)팡팡 금지!! 드래곤볼에서 손오공이 찌찌와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는지를 기억한다면 조심.

고양이나 개의 '성격' 운운하는 말은 항상 뭔가 낯설면서도 신기하다. 당연히 갸들도 나름의 성격이나 스타일이 있겠지만,

대개 한 번에 한마리씩 조우하게 되는 터라 비교하기란 쉽지 않았던 터. 한꺼번에 수십마리의 고양이를 만나면 '성격'을

구분해 낼 수 있겠지..라는 기대로 드디어 입장~*

가장 먼저 눈에 띈 새하얀 고양이. 도도하게 몸을 누인 채 방심한 듯한 눈매를 흘리고 있다.

고양이들이 세걸음마다 한마리씩 놓여있었다. 말하자면 단위면적당 고양이밀집도에 있어서는 거의 세계최고수준 아닐까.

의자위에 올라가 있던 조그마한 새끼고양이. 하얀 털실뭉치같으면서도 올망졸망 달릴 건 다 달려있어 더욱 귀여운.

아무도 없던 금요일 오후 1시의 고양이 까페에 밀고 들어선 방문객에 조금은 동요하는 녀석들.

이녀석은 사자처럼 늘어뜨린 갈기를 우아하게 펼치고는 뭔가 다 안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봐주었다. 고양이 왕인가.

주둥이와 귀, 발끄트머리가 온통 까매서 무지 세련된 느낌의 요 고양이는 슬슬 카메라를 의식하고 있었다.

고양이의 이 풍부한 표정이란..! 입매와 눈빛, 살짝 이지러진 얼굴의 각도만으로 표정과 분위기가 확 바뀐다.

못생겼단 표현은 고양이님께 죄송하지만...얜 참 독특하게 못 생겼다. 얼굴이 평면이다. 뭔가 스타워즈의 캐릭터스럽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길고양이나 친구집에 놀러가 마주한 고양이와는 다른 듯 비슷한 느낌이다. 다들 머릿속엔

나나나나나, 자신만 들어있는지 주변에 별로 괘념치 않고 있었다. 내가 카페 안을 헤집고 다니며 카메라를 들이대도

피하거나 겁먹지도 않고, 그렇다고 둔한 것도 아닌 것이 참 묘하다. 묘妙한 고양이猫들.

나와 동생은 고양이든 개든 키우고 싶어하는데, 어머니가 원체 반대하신다. 당신이 동물털들이 날리는 걸

못 보아넘기는 때문이기도 하고, 사실 아버지나 내가 살짝 알레르기 기운이 있어서 안된다는 거다. 난,

이렇게 고양이가 떼지어 모여있는 걸 보고 마냥 좋을 뿐이고.

이제 조금 차분하게 앉아서 고양이들이 노닥거리는 걸 구경할 생각이었다. 여태 까페 안을 헤집고 다녔으니 한마리한마리

눈여겨 보며 사랑해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내가 테이블에 앉자마자 내 무릎에 앉아 귀염을 떨던 고양이 녀석 하나, 갑자기

휴대폰 진동처럼 부들부들 떠는 거다. 급격히 따뜻해지는 내 아랫도리.

떨리는 목소리로 주인 아저씨를 불렀더니, 화장실 가서 깨끗이 씻고 드라이기로 말리면 된댄다. 자주 일어나는 일인갑다.

씻고 나와 그 녀석을 찾았다. 구석에 이렇게 숨어들어서는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그런 것처럼 보였다. 에구 귀여워라.




어제, 그러니까 6월 10일. 하얏트호텔에서 하루종일 행사가 있었다. 뷰가 좋다는 2층 룸이 행사장이었지만

저번에 왔을 때와는 달리 하늘이 온통 시커멓고 꿉꿉하다. 스모그인지, 안개인지, 먹구름인지.


저번엔 서울 시내가 멀리까지 내다보였던 화창하고 반짝이는 날이었는데, 정작 카메라가 없었다.

배너나 마이크장비, 통역 부스나 테이블 스탠드 같은 것들 확인하고 발표자들 피피티 자료를 리허설해 본다.

며칠씩 속썩였던 자료집, 올컬러에 양국 정상 축사가 들어가는 바람에 꽤나 신경써야 했다. 언제나 그렇듯

헤드테이블에 앉으려는 자칭 V.I.P., very important person은 차고 넘치기 마련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 빗방울에 흐렸던 하늘이 개기 시작했고, 시야도 조금씩 넓어지기 시작했다.

이건 흡사 스타크래프트의 치트키, "Black sheep the wall" 아닌가.

그러고 보니 눈에 들어오는 이태원 고갯마루 위의 모스크 첨탑. 하얏트 호텔이랑 이태원이 가깝단 걸

잊고 있었다. 참...모스크의 미나렛치고는 참...안 이뿌다. 여기뿐 아니라, 조금씩 건물들의 스카이라인이

식별되고는 있다고 해도, 별로 눈에 딱 띄게 이뿌다거나 인상을 던질 만한 구석이 안 보인다.

줌으로 땡겨보니 저멀리 아스라히 트레이드타워, 그리고 타워와 마주한 한전 건물이 보이긴 하는데, 그 역시 그닥.

앞으로 용산이니 어디니 100층 이상 초고층 건물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서면 조금 스카이라인이 이뻐질까. 이뿌단

게 뭘 말하려는 건지 나 역시도 잘 모르겠지만, 단순히 삐쭉삐쭉 세워댄다고 이쁠 거 같진 않다.

오찬장 사전점검. 'Taste of New Zealand'라는 타이틀이었던가. 예컨대 그런 식이었다. 뉴질랜드산 등심스테이크,

뉴질랜드산 와인, 그리고 뉴질랜드식 디저트. 거기에 약간씩 한식이 퓨전처럼 한발 걸쳤다. 스테이크 옆엔 잡채와

물김치, 김치류가 서브로 나오는 식이고, 음식에도 불고기 양념이 쓰인 정도.

뽀얀 창밖의 기운을 머금은 말간 글래스들이 이뿌다. 쨍쨍 소리를 내며 경쾌하게 테이블 위에 앉아 노닥거리는 듯.

한국 측 등록데스크. AEROK. 애록.

오후로 접어들며 날씨가 많이 개었고, 나는 전날 작가들이 시국선언을 했다는 기사를 우연찮게 읽었다.

안개/먹구름/스모그가 차근차근 벗겨지는 거대한 서울. 온통 아파트다. 스카이 라인이 이쁘기가 어려운 이유.

멀리 보이는 저 뾰족탑은 뭘까. 주위에 다닥다닥해 보이는 집들이 온통 저 뾰족탑 주변으로 몰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집 한채 한채가 사람인 양, 불빛을 향한 날파리처럼 신을 향한다.

이쪽은..역삼이다. 역삼동 GS타워와 강남파이낸셜센타가 돌출해있다. GS타워는 배 모양을 차용해서 만들었다던가.

저대로 스르르 한강으로 미끄러져내려도 좋겠지만, 우선 앞길을 가로막는 아파트 군락들이 너무 많은 데다가, 운하

따위 만들어봐야 필요도 없다.

나름 은근하게 버티고 선 무역센터. 어렸을 적에 물색 모를 때는 저 건물을 보고는 63빌딩이다~하며 말똥말똥

눈알을 굴렸던 적이 있었다.
작년에 제1회 아랍문화축전을 보고 와서는,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공연이었어서 감탄했었습니다.

아랍권 국가들의 민속공연이나 미술전시회가 열렸던 작년보다 더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제2회 아랍문화축전이 2009. 5. 18(월)~20(수) 3일간 열린다고 하네요.


흔히들 '중동국가'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아랍국가'라고 불러주는 것이 그네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존중해주는 표현이라고 합니다.(저도 잘은 모릅니다만..^^;) 일본을 일러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한다면,

아랍국가들은 멀고도 먼 나라쯤 되려나요?


아랍국가라고 할만한 나라들이 어디어디가 있을지부터 쉽지 않습니다. 일단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카타르...이란은 포함될까? 수단은? 소말리아는 아랍국가일까?


아랍국가는 '아랍국가연맹'에 가입한 22개국가를 말한답니다.





단편적이고 선정적으로만 보도되는 아랍국가들에 대한 모습들 말고 그들의 오랜 역사와 문화, 전통을

보여주고, 또한 (갠적으로는) 현재를 그들 나름의 어법으로 보여줄 수 있는 영화를 골라볼 수 있다는

사실에 상당히 설레고 있습니다. 더구나 전부 무료라니, 예약만 하면 된다네요.

아래 그림들은 모두 제2회 아랍문화축전 공식홈페이지(http://www.arabfest.org/)에서 갓 잡아올린 것들이에요.


우선 공연에 대한 내용들..

그리고 영화에 대한 내용들..


그리고 전시/체험에 대한 내용들..

갠적으로는 캘리그래피에 대한 전시회를 꼭 가보고 싶어요.

아니면 헤나 아트도. 타투(Tatoo)는 넘 헤비하단 느낌이고, 한달이 채 못가 흐물흐물해지지만 맘껏 그리고

싶은 것들을 부담없이 려넣을 수 있는 헤나의 매력이랄까요. 아마 한귀퉁이에서 무료 시술도 해주지 않을지.ㅋ


요 그림 가운데 있는 저 기기묘묘한 글씨도 아니고 그림도 아닌 것이 바로 캘리그래피!
관심있으신 분들, 혹여 공연 보는데 옆자리에서라거나, 영화관에서 뒷통수만 마주할지언정, 함께 할 수 있으면

좋을 거 같습니다~*


며칠 전, 어쩌다 카메라를 들고 출근하게 되었더랬다. 퇴근하고, 가벼운 회식 자리까지 마치고 집까지 오는 길..

회사를 나와 눈에 보이는 풍경들은 하나같이 왜 이리 칙칙하던지.
둥그런 가로등이 보름달처럼 휘영청 낮게 떠있는 이곳은, 코엑스 유리피라밋 주위의 자그마한 휴식공간이랄까.

그렇지만 겨울비에 온통 젖어버린 벤치엔 앉아 쉴 곳이 없다.

유리 피라밋 너머로 보이는 코엑스몰의 식당가. Glass Ceiling과는 다른 Glass Barrier, 추욱 처질 만치 따뜻하고

안온한 실내의 부유한 공기와 찬 비가 탐욕스럽게 훑고 간 바깥의 가난한 공기를 갈라놓고 있는 그것. 그것은

깜깜한 어둠이 내린 가운데서도 반들반들 개기름낀 이마빡처럼, 번뜩이는 섬광을 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며칠 전 지났던 대보름에는 보름달을 찾아 하늘 한번 볼 생각도 못 했고, 땅콩이나 호두 등속이 가득

담긴 그릇을 다리 사이에 끼고 앉아서는 쉼없이 까먹는 호사도 못 누렸으며, 소원을 뭘 빌지 생각조차 해보지도

않았다. 보름달이 떴다면, 이 정도 각도로 고개를 들어 올려다봐야 저 정도 위치에 있지 않았을까.

이러저러한, 즐겁지만 피로한 술자리, 사람들 만나는 자리들을 정거장처럼 지나쳐서는 집 앞에 섰다.

그러고 보니 우리동네 아파트 가로등도 코엑스 지상의 그것처럼 둥그렇다. 둥그렇고 하얗다. 둥그렇고 하얗고

차갑다. 그리고 왠지 불안하다. You must be fallen from the sky...

술을 마신 탓일까, 아님 야심한 밤에 찍은 탓일까, 한 점에 야무지게 모아져야 할 불빛들은 약간씩 흐트러져 번진

것이 마치 술에 취한 그녀의 립스틱 번진 입가나 살짝 풀린 채 젖은 눈동자 같다. 게다가 사물들이 하늘을 향해

기립하길 거부하고 있는 이 5도쯤의 기울기. 창백한 가로등 불빛에 온통 낯설음만 덕지덕지한 공간.

여전히 그닥 네 녀석에게 빌 만한 건 없어, 중얼거리며 아파트 복도를 지나다. 사람의 기척을 알아채고 귀를 쫑끗

세우는 충성스럽고 성가신 강아지 모냥 반짝 불을 밝혀야 할 센서는 나를 알아채지 못한 채 묵비권을 행사중이다.
 
괴괴한 통로, 묘하게 울리는 구둣발소리의 사성부돌림노래.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위치에너지를 축적하곤, 운동에너지를 소모하며 조금 걸어 대문 앞에 서다.

뒤를 돌아보니 왠지 가슴시린 어둠. 얼른 열쇠를 돌려 문을 열곤 재빨리 닫아걸었다.

"요새 늙은것들은 왜 그리도 예의가 없는지. 휴대폰을 붙잡고 아무데서나 고성방가다. 지하철을 기다리면서도,

자리에 앉아서도, 누구랑 큰소리로 싸우기도 하고 농담따먹기도 하고 심지어는 정신사납게 커다란 배경음악과

함께 맞고도 친다. 얼마전에는 노약자석에 앉아있는 애보고 딴 비어있는 자리가라고 호통치다가 치고받고

싸웠댄다. 꼴사나워라. 지하철 기다리는 줄이 네줄이던 두줄이던 서있거나말거나 무조건 밀고들어가는 것도

나이먹은 것들이고, 자리 좀 알아서 비키라고 피곤한 애들 앞에서 패악이다.


버스에 붙은 노약자석 딱지 옆에 언제부턴가 또다른 '사족'이 붙었다. "임산부에도 양보해 주세요."였던가. 그게

사족일 수 없는 이유는, 노약자석이 대다수 한국인 눈에는 노인전용의 경로석이라 읽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자리가 약자에 대한 배려로써 마련된 것이 아니라 '나이'라는 권위로 금테둘렸기 때문이다. 노약자석이란

딱지는, 그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자신보다 힘들거나 약한 사람에 대한 배려심을 환기하는 역할을 해야 할

뿐이지, 그들에 대한 전적인 쿼터를 제공한다거나 무조건적이고 때론 내키지않는 양보를 강제하려는 게 아니다.

'예의없는 늙은것들'이란 말에서, 불편함을 느끼는건 단지 '것'이란 지칭어 때문인가. 예의없는 늙은이..라 하면

어떨까. 예의란 건 아랫사람전용 껍데기던가 말이다. 서로 어색하긴 마찬가지지만, 늙은것들도 예의좀 지키셈."


하고, (싸가지없는) 철수가 말했습니다. 하하.



우리말에서 존대말이 모두 사라져버렸음 좋겠다. 작년까진 상대가 몇살이던 웬만함 서로 말놓자고 그렇게

시작했었는데, 올해는 갑자기 난 반말, 상대는 존대말하는 패턴에 슬쩍 익숙해져버렸다.

머..공간이 공간이니만치 체념상태. 또래집단에 다시 편입함 반말-반말 패턴이 다시 살겠지. 흥. 그래도 오늘

05학번인 줄 알았다는 얘길 들었는데, 이제야 비로소 그말이 마냥 칭찬인 건 아닐 수 있음을 알았어. 흑..나잇값

못하는 "예의없는 늙은것"처럼 보인단 얘길까..ㅠ.ㅠ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다시,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아마 내리실 문이 왼쪽과 오른쪽을 넘나드는 역은 이곳밖에 없지 않을까.

어떨 때는 왼쪽으로, 또 어떨 때는 오른쪽으로 내키는 대로 승객들을 토해내는 지하철역.

5호선 서쪽 종점 방화역.


그래서 가끔은, 귀에 이어폰을 꼽고 생각없이 왼쪽문앞에 서있다가 전철이 멈춘 후에도 좀체 열리지 않는 문에

당황해 하기도 하고, 또 가끔은 내릴 문이 어느 쪽이라고 표시될지 스스로와 내기를 하며 놀기도 한다.


오늘은 모처럼 오른쪽으로 내린 날이었다.

점심을 먹으러 간 곳은 개성시 초입에 있는 봉동관이라는 음식점이었다. 얼마전까지는 이 곳의 유일한 북한식

고급 음식점이었지만, 평양관이라는 곳이 근처에 문을 열면서 독점 체제가 깨졌다고 했다. 그 이전에 비해서

서비스하는 게 훨씬 부드러워지고 친절해졌다는 짧은 촌평도 곁들여졌는데, 실제로 내가 겪은 바에는 참 친절했던

것 같았다. 한층짜리 건물 외양만 봐서는 마치 시골 어디메쯤에서나 쉽게 볼듯한 콘크리트 벽돌로 설렁설렁 지어진
 
어설픈 가건물 같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군데군데 페인트가 벗겨져 나간 건물 전면에 내걸린 저 간판, 자칫 머리가

부딪히지 않을까 싶을 만큼 야트막하다.

일행들과 함께 조그마한 방으로 안내되었다. 상해에서였던가 북한에서 운영하는 옥류관을 갔을 때랑 비슷한

분위기의 홀이 옆에 있고 그 앞켠엔 무대도 있는 듯 했지만, 우리는 8명이 겨우 자리잡아 서빙을 받을 만큼의

자그마한 방으로 들어갔다. 무대가 있는 홀로 가는 게 좋지 않을까 했지만, 사실 난 '반갑습니다'라거나 '휘파람'류

노래와 연주가 이어지는 그 공연은 이미 봤었기 때문에 그냥 북쪽에 와서 일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는 조용하고 밀폐된 방도 좋겠다 싶었다.


서빙되기 전에 화장실에 가서 손부터 씻으려는데, 남위생실/여위생실, 이렇게 명패가 붙어있었다. 마치 대학가의

허름한 주점에 달린 화장실같이 삐그덕대는 얄팍한 문짝으로 가리워진 그 내밀한 공간.

그러고 보니 자꾸 각지의 화장실 사진을 올리게 되는 듯 한데, 개성서 둘째간다면 서러워할 이 봉동관의 자그마한

화장실 모습.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거울이나 세면대 같은 것 하나 없고 그냥 물도 내려가지 않는

소변기 하나, 그리고 옆에 수도물이 나오는 호스 하나.

여러 메뉴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일인당 30달러짜리 식사를 하면 우선 술이나 음료가 나오고, 몇가지 음식이

연이어 푸짐하게 나오고, 그리고는 평양냉면이나 쟁반냉면을 마지막으로 서빙해준다고 한다. 물도 새 병인듯한

이 '고려 신덕산 샘물'의 마개를 따서는 따라주었다. EVAIN이니 FIJI니 외국물을 마셨을 때 느껴지는 다소 생경한

뒷맛이나 목넘김과는 달리 부드럽고 시원했다. 제주삼다수랑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

술은 백두산들쭉술이니 뭐니, 꽤 종류가 많다고 했지만 괜히 술먹고 실수하지 말자고 음료수를 달라고 했다.

음료수라고 하니까 잘 못알아듣는 것 같아서, 이쪽 공장에서 오래 일하신 분이 다시 주문했다. 단물주세요.

그러니까 나온 '대동강 사과 탄산단물', 탄산의 느낌은 그렇게 강하지 않았고 노란색이었는데 꽤 맛있었다.


음식은 꽤나 여러가지가 나왔다. 녹두전, 소꼬리찜, 오리구이, 닭백숙, 잡채, 양고기 볶음. 우리를 전담하던 '접대원

동무'에게 양고기나 이런 식자재는 어디서 조달하느냐고 물어봤더니 모두 북한산이라고 한다. 북한은 양을 곧잘

키우고 있다고 했다. 거기에 도라지무침, 김치 등 밑반찬도 푸짐하게 나와서 배부르도록 먹었지만, 마지막에 나온

평양냉면은 끝내 남기고 말았다.


30달러짜리 식사면, 공단에서 일하는 공원들의 반달 월급인 셈이다. 그렇게 애초부터 살짝 불편한 마음으로 앉았던

자리였던데다가 테이블 위로 가득 펼쳐지는 음식들을 보면서 더욱 맘이 불편했었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절박한

사람이 그득한 이곳 북한땅에서 이렇게 호사로운 밥상을 받아들고는 얼마 먹지도 않고 깨작대다가 남긴다는 건..

아침을 못 먹고 서둘러 나왔던 탓도 있었지만, 그런 마음이 쿡쿡 찔러왔기에 약간 무리를 하면서까지 먹었던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은 이 쪽의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고 닝닝하다고 얘기도 한다지만,

난 외려 그 깔끔하고 담백한 맛이 땡기기도 했다.

나오는 길에 '접대원 동무'한테 여기 맥주는 무슨 맥주가 있는지 물어봤더니 한켠에 놓인 냉장고를 보여준다.

대동강맥주. 맛을 못 보고 돌아가는 게 아쉽긴 했지만, 일단 어떻게 생겼는지라도 알아놨으니 담에는 꼭 맛보기로

했다.

'접대원 동무'. 보통 어떻게 불러야 하냐는 질문에 그렇게 부르라고 한댄다. 사진이 실물보다 못 나왔지 싶은데,

우리는 김민희 살짝 닮았다느니 이영아 닮았다느니 이야기를 했더니 그게 누구냐고 물어보았다. 한국에서 유명한

배우이자 모델이라고 하니, 그때까지 아저씨들의 얄궂은 농담들을 능란하게 받아넘기며 얼굴색 하나 안 변하던

그녀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좋아하는 것 같았다. 여기에서 일하는 '접대원'들은 상해나 북경에 있는 옥류관으로

순환하며 일하는 것 같은데, 다들 출신성분도 좋고 예술학교를 나와 노래나 악기에 모두 능숙한 솜씨를 보인다고

했다. 게다가 20대 초반 정도의 나이임에도 천연덕스럽고 센스있게 사람들의 말을 받아치거나 받아주는 그 밀고

당기는 감각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일행 중 한 분이 계속 이 아가씨와 사진을 한장 찍자고 조른 덕분에, 그 사진을 찍어준 나 역시 이렇게 한 장 같이

찍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손도 꼭 잡아주셨던.ㅋ


'접대원'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남한 토양에서 뱉는 순간 상당히 불건전한 느낌으로 변하고 마는 것 같다. 그런

같지만 다른 단어의 뉘앙스를 악용했던 사례가 바로 2006년쯤엔가, 당시 열린우리당 당의장이었던 김근태의원이

졸지에 '북측 접대원과 춤을 추는 추태'를 부렸다고 보도되며 '개성공단 춤사건'으로 비화되었던 것이다. 그

장소가 바로 여기, 봉동관이라고 했다. '북한처자와 춤을 춘 좌파세력의 총수'라고까지 매도하는 극우세력들의

선정적인 비난은 당시 핵미사일 발사직후 그런 일이 있었다는 점에서 일부 심적으로 이해는 간다고 해도,

앞뒤맥락 끊어놓고 '북측 접대원'이라는 단어를 설명없이 모호하게 방치하는 건 너무 악의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공연을 구경하는 사람중 연장자나 좌장 격으로 보이는 사람을 무대 위로 끌어올려 잠시나마 함께 율동을

하는 건 흥을 돋우기 위해 일상적으로 있는 일이라고 한다.


어쨌든 불과 1-2분, 앞 무대에서 노래부르며 춤추던 북측 '접대원'의 채근에 못이겨 춤추는 시늉을 했던 그는

보수세력의 십자포화를 맞았고, 유력한 대선후보에서 급전직하하고 말았으니..

봉동관을 떠나 길가로 내려서는 계단에는 그간 내린 눈이 조금 쌓였다. 쌓였다기보다는 살짝 얹혀있다는 느낌이

더 강할 정도로, 그렇게 얄포롬하게 내려있었다.

아마 저 왼쪽에 있는 길을 계속 가면 개성 시내로 들어갈 수 있나보다. 원래 개성공단 내에 있는 모든 교통표지판엔

서울 방향과 개성 방향이 표시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그 글자들이 파란 페인트로 지워져 버렸고,

남아있는 표지판이나 버스 정류장 표지에는 '현대아산', '관리위원회' 등의 공단 내 지명만 남아버렸다고.


아마 교통표지판에 있는 '개성'과, 특히 '서울'이라는 글자가 계속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지 않을까 겁났던

게 아닐까 싶다. 이쪽 방향으로 조금만 쭉 가면 서울이 나오는구나, 그리고 저쪽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개성시내가

보이겠구나. 이런 자각이 언제든 동토를 뚫고 싹을 틔울 수 있을 테니.

다시 본공장으로 돌아가는 길. 차창에 내려앉은 눈발은 금세 물방울로 녹아 흘러내리고 있었다.

차에 내려앉은 눈방울들이 금세 녹아버리는게 차내의 온도때문이라면, 정말 이렇게 초록색 솔잎위에 내려앉은

눈발이 녹지도 않고 가만히 쌓여있는 건 살짝 경이롭기도 하다. 눈이 녹지 않을 만큼 차가운 온도로 저 초록색

싱싱한 솔잎의 체온이 내려가 있다는 건데, 용케 얼지도 않고 잘 버티고 있는 셈이니까 말이다.

아까는 스쳐지나갔던 것들이 조금씩, 배가 빵빵하게 불러버린 내 눈에 들어왔다. 라인마다 한 개씩 위에 달려있는

저 금일목표, 현재목표, 현재실적을 나타낸 안내판. 비록 찰리채플린은 모던타임즈에서 저런 단순 제조작업을

풍자하기도 했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제조업을 경원시하기는 하지만, 사실 일자리 창출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제조업을 살리는 거라고 생각한다. 괜히 금융선진화니, 대규모 토목공사니 할 게 아니라..

그렇다고 저런 목표량 때문에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이나 삶이 위협받아서는 안 되는 건 당연하다.


애초 개성공단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은 남북간의 관계가 계속 진전하고 호전되기만을 바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것도 아닐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남북관계가 점차 발전하면서 노동자에 대한 통제가 점차 완화되고

숙련공이 자유롭게 다른 직장으로 옮겨다닐 수 있다거나 임금인상과 복리후생 등의 측면이 불거지게 되면,

저임금의 이점을 바라보고 개성에 들어갔던 기업들의 경우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남북관계의 현상유지를 내심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며, 그게 전진이던 후퇴던 너무 급박한 움직임은

원치 않고 있다는 건 확실한 거 같다. 지금이야 어쨌든 북쪽에서 정한 최저임금선에 맞춰서 노임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매년 5% 상당의 일률적인 임금상승도 충분히 용인할 수 있는 상황인 듯.

해서, 남과 북의 관계 개선을 견인하는 여러 행위자 중에서 이렇게 북한 측에 이해관계를 가진 남측 기업인들은

점차 보수화된 입장을 표명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흔히 북한의 글씨체는 왼쪽의 저런 힘있고 전투적인 필체, 게다가 빨간 색과 검은 색이 장렬하게 섞여있기 쉽다고

생각하게 되지만, 오른쪽에 보이듯 저렇게 단정하고 힘뺀 글씨를 쓰는 사람도 북한에는 있는 거다.

아까는 제대로 귀기울여 듣지 않았지만, 여유있게 한바퀴 다시 돌아보면서 계속 가사를 분별해내려고 애쓰며

듣게 된다. 작업장 내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스피커에서 나오는 노래는 마치 군가 풍의 씩씩하고 감정이 과잉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는데, 중간중간 장군님 어쩌구, 승리 어쩌구 하는 가사가 들렸던 거 같다. 북한의

대중가요 같은 거 아닐까 싶은데, 노래하는 아저씨나 아가씨나, 금방이라도 감격해서 울어버릴 거 같은 목소리다.

작업장과 사무실 공간을 구획하고 있는 낮은 파티션. 앞에는 '자본주의의 꽃'인 광고 포스터 안에서 전지현이

화려한 외모와 모션, 그리고 옷차림을 과시하고 있었고, 뒷켠에는 하얀 머릿수건에 하얀 작업복, 주홍빛 앞치마를

두른 여공원들이 열심히 옷을 만들고 있었다.

청소를 깨끗이. 청소조로 짜여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면 참 재미있었다. 아까 봉동관에서

양념을 많이 한 음식 먹으면 건강에 안좋다고 한마디하던 '접대원' 아가씨에게도 느꼈던 거지만, 이곳은..그리고

이곳의 사람들은, 마치 30년 전쯤의 한국과 같지 않을까 싶다. 우리 할머니또래의 이름들, 할머니또래의 입맛..

그렇지만 우리처럼 (아직은) 팽팽하고 젊은 사람들.

그렇지만 또 자주 개성공단을 왕래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 이곳에서 일하는 여공원들의 화장이 갈수록

짙어지고 화려해지고 있다고 하니, 이곳의 시간은 어쩜 우리네 경제가 압축성장했듯 그렇게 압축해서 총알처럼

흘러버릴지도 모르겠다.

2시 30분, 출경할 때처럼 꼬리를 물고 늘어선 차들이 북한군 차량의 인도를 기다리고 있다. 혹시나 해서 살짝

켜본 네비게이션에서는 노이즈 섞인 한국TV 방송이 볼만하게 나오고 있어서 깜짝 놀랬다. 정말 이렇게 가깝구나.


북한을 벗어나기 전에도, 들어올 때와 똑같은 절차를 밟았다. 금속탐지기와 검색대를 지났고, 아까 들어올 때

삑, 소리를 유발했던 코트의 금속 쇠붙이는 또다시 삑, 소리를 내고 북한군인 아저씨의 이목을 끌었다. 북측에서

발부했던 출입증은 반납했고, 내 카메라에 찍힌 사진들은 끝에서 끝까지 샅샅이 검사당했다. 군인아저씨가 직접

카메라를 쥐고는 사진을 한장 한장 빠르게 넘겨가며 매서운 눈매로 체크를 했다는 사실. 혹시 뭔가 꼬투리를

잡지는 않을까, 나도 모르게 뭔가 이상한 게 찍혀있는 건 아닐까..예측할 수 없는 위협이 언제고 머리를 쳐들 수

있다는 생각에 은근히 긴장했었지만 별탈없이 넘겨받았다. 하기야, 출입국으로 오면서 몇차례나 샅샅이 찍은

사진들을 확인했었고, 스스로 쫄아서 지워버린 사진도 적지 않았으니까.

개성공단 지구를 벗어나는 길에 세워져 있는 저 커다란 붉은 별이 박힌 바리케이트. 어렸을 때 똘이장군이니 뭐니

반공만화 드라마에서 보았던 북한군인들은 모두 머리위나 가슴팍에 커다란 붉은 별을 달고 있었다. 그것도 왠지

음흉한 느낌을 주는 붉은 색이었거나, 좌우지간 이뿐 빨강이라는 느낌은 전혀 안 들었던 거 같다. 근데 솔직히

군복은 북한 군복이 좀더 이뿐 거 같은데. 소련과 중국의 대륙식이랄까, 그런 군복과 유사한 느낌으로.

유리창 너머 보이는 전면의 커다란 송전탑. 저 탑을 통해 무려 15만여 볼트로 내달리며 남측의 전력이 북측의

개성공단으로 공급되고 있는 거다.


아까 그 봉동관에는 이 전기가 공급되는 게 아니겠지? 밥먹는 와중에 세네차례나 전기가 끊겼더랬다. 갑자기

형광등이 꺼져버리고 주위가 조용해지는 순간, '접대원'이나 이곳에 오래 머물렀던 분들은 놀랍지도 않다는

표정이었지만 난 정말 개성의 전력수급이 이렇게 열악하다는 걸 체감하고 깜짝 놀래버렸다. 개성은 북한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큰 도시인데, 실제 하루에 전력이 들어오는 시간은 네다섯시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비무장지대를 건너, 자유의 다리를 건너면서 계속 카메라를 만지작거렸다. 어쨌든 지금 남쪽으로 향하고 있는 거고

지금 사진을 찍던말던 북측에서 어떻게 제재할 방법이 있겠어, 그리고 남측에서도 그렇게 빡빡하게 나오겠냐라는

생각을 했지만...어쨌든 북한 지역은 벗어나기로 했다. 언제 어디서 총알이 날라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게다. 북측과 남측의 구역을 식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선도로를 따라 함께 늘어선 가로등

중간쯤 꿰어진 저 플라스틱 링을 보면 알 수 있다. 남측 구역은 노란색 링을 끼고 있고, 북측 구역은 파란색 링을

끼고 있는 거다. 실제로 이 사진을 찍은 건 비무장지대를 한참 지난 후의 일.

입경하는 코스는 북한에 들어갈 때와 비교하면 훨씬 간단했고, 훨씬 부드러웠다. 아까 카메라 검사받을 때 한번

크게 풀린 긴장감은, 일렬로 마치 장송행렬하듯 천천히 전진하던 자동차 대열에서 벗어나 남측 출입사무소에서

일단 내리면서 다시금 완전히 해제되었다. 그러고 보니 입경, 표지판에는 한자와 영문이 모두 병기되어 있다.

왠지 그 밑에 웰컴 투 코리아 혹은 웰컴 백 투 코리아, 이런 거라도 적혀 있어야 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지만, 또한 금세 내가 개성을 갔다왔고 북한땅을 밟았다는 사실이 꿈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혼란한 느낌도 들었다. 이건 너무 가까운데, 너무 다른 세상이었다.


저녁때 종로에서 가볍게 술한잔 마시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으레 그렇듯 떠들썩하게 와 하고 퍼지는 웃음소리와

시끌벅적한 붕붕 떠있는 분위기. 개성에서 첫눈을 맞았던 나는, 서울에도 첫눈이 왔다는 사실을 여기 와서야 알게

되었다. 난 오늘 하루 어디를 다녀왔던 걸까 싶었다. 차로 불과 한시간 거리면 그렇게도 비슷하고 닮은 사람들이

참 다른 세상을 감각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서로에 대해 이다지도 낯설고 모를 뿐더러 무관심하게

지내고 있다는 사실, 너무나 놀라운 건데..아무리 놀라운 것도 반세기가 넘으면 그저 진부한 레토릭이 될 뿐인가.


개성엔 편의점이 있을까? 공업단지 내의 도로를 돌아다니다 보면 불쑥 어디 모퉁이에선가 나타난다.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바로 옆쯤에 있는데, 무려 '개성공업지구점'이란 거창한 지점명도 갖고 있었다.

안 들어가 볼 수 없어서 얼른 들어가 봤더니, 북한 아가씨인 듯한 젊은 처자가 카운터를 보고 있다. 엷은 화장에

남측 기준으로 평범한 복장이어서, 순간 여기가 개성 맞는지 의심스러운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역시 이곳은 개성, 북한이 외화벌이를 위해 위험한 시장경제 실험을 벌이고 있는 곳 아닌가. 모든 상품은

달러로 가격이 표시되어 있었고, 그 점원누님은 아마도 16년동안 편의점 알바를 뛰어온 알바의 달인인 듯 능란하게

손님들을 받고 있었다. 다만 다소 들떠 보이고 리드미컬한 북한 사투리가 도드라졌다는 점을 빼면.

이곳에서 파는 담배나 술 종류는 면세가 되기 때문에 가격이 상당히 싸진다고 한다. 이 곳에 주재하며 일하는

남측 직원들은 2주정도마다 남쪽으로 돌아갈 때 애용하기도 한단다.


이 곳에서 쓰이는 돈은 달러, 최소단위는 1달러지폐라는 것이 북한에 넘어오기 전 방북 교육의 내용이었다. 그렇담

저 센트 단위의 거스름돈은 돌려 주려나, 아님 그냥 올림하려나. 편의점을 떠나는 순간부터 궁금했지만 끝내

궁금증을 해소하지 못한 채 돌아오고 말았다. 혹시 모두들 기를 쓰고 센트 단위 거스름돈을 안만들기 위해 머리를

쓰며 상품을 고르려나. 0.9달러짜리를 샀다면 꼭 1.1달러짜리라도 하나 골라서 같이 사는.

그 옆에는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라는, 남측의 관리 주체가 있다. 지금 현재 이곳은 2번째 포스팅에서 이야기한

판-옵티콘으로 입주하기 전까지 임시로 머물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자동차들에 붙어 있는 번호판들을 보면, 흰색

번호판은 이쪽에서 상주하며 쓰이는 차량이거나 잠시 넘어왔던 차량, 그렇게 남쪽 차량을 의미하고, 노란색 판은

북한 차량이다. 노란색 번호판을 단 차량을 꼭 사진으로 남겨놓고 싶었지만, 대부분 그런 차들은 제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타고 있었기 때문에 차마 찍을 수가 없었다.

개성공단 내에는 병원도 있다. 그린 닥터스라는 단체에서 운영하는 병원인데, 1층짜리 건물에 남과 북의 의사와

간호사가 다소 섞여서 남, 북한의 환자를 각기 치료중이라고 했다. 이를테면 남쪽 소속의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병원 한쪽 공간에는 남측 의사와 간호사가 주가 된 채 두세명의 북측 의사, 간호사가 함께 진료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병원의 다른쪽 공간에는 북측 의사와 간호사가 주로 포진하여 북쪽 소속의 환자를 치료한댄다. 그 두 공간

사이에는 반투명한 유리문이 설치되어 있는데 꼭 항상 열려있는 것만은 아니라고 했다.

남측에서 은행도 건너가 있었다. 다소 작다 싶은 지점 수준의 규모였는데, 창구가 두 개 정도 되었던 거 같다.

한쪽 벽면에는 그간 다녀간 귀빈들의 방문 사진이 스크랩되어 있었다. 이명박은 서울시장 재임시절 개성공단을

한번 쭈욱 둘러본 듯 하다. 여기저기서 그의 사진을 볼 수가 있었다.

참 심플한 메뉴판이다. '안내표'란 말은 글쎄, 북한에서 고친 말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어색한 느낌은 없는데

메뉴판이란 단어 대신 바꿔봄직한 거 같다. 그래봐야 영어+한자를 한자어로 바꾼 거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어느

건물인가에는 이런 찻집도 있다. 다시 한번, 참 심플한 안내표다. 1달러, 1달러, 2달러, 2달러, 1달러. 여기선

최하 1달러지폐를 통용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진 듯한 느낌이다.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가 현재 소재하고 있는 건물 한 켠엔가 붙어있는 한반도 지도. 출입증에 보였던 것처럼

명백하고 과장스럽게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저기 얼룩처럼 보이지만 분명히 의도된 두 개의 점을 볼 수 있다.

참 드문 경험이지 싶은데, 독도에 대한 한국정부의 명쾌하고 단호한 입장을 이렇게 쉽사리 마주칠 수 있단 건.

'소방대'도 있다. 이 사진을 찍어도 될지 안 될지, 그리고 저 옆에 살짝 찍힌 아저씨의 츄리닝이 '제복'에 포함될지

안 될지..백만분의 일초 사이에 머릿속에 온갖 걱정과 근심이 어른거렸다. 북한, 개성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단

사실도 놀랍고 슬펐지만, 내가 스스로 이렇게 개성에 다녀왔노라 글을 쓰면서도 단어와 표현, 뉘앙스를 스스로

정제하고 가다듬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슬픈 것처럼. 아, 그러고 보니 이 사진 안의 차들은 모두 노란색 번호판을

달고 있는 북한측 차량이다.

개성공단 내의 도로를 달리면서 보면, 서울이나 어디 남녘 소도시를 다니는 것과 차이를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친숙하고 낯익은 풍경들에 놀라게 된다. 단순히 남과 북의 민족적 일체감...운운이 아니라, 개성공단

내 도로나 가로등, 도로표지판까지 모두 한국 측에서 제공한 것이기 때문인 거다. 파란색 도로표지판의 색도나

그 글씨체까지 모두 남측에서 통일되어 있는 바로 그것들이다. 


우리가 탄 차 앞에서 달리는 트럭에 빼곡히 탄 북측 인부들. 사실은 저것도 애초의 룰과는 벗어나는 일이다. 애초

약속하기로는, (노랑 안전모를 쓴) 북측 사람들은 (노란 번호판을 단) 북측 차에만 타고, (흰색 안전모를 쓴) 남측

사람들은 (흰색 번호판의) 남측 차에만 타기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게 어디 되겠나 싶었다. 아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얼굴 맞대고 한공간에서 일하고 이야기하며 '살고' 있는데, 편의적인 이유에서든 심리적인 이유에서든

그런 불편한 룰은 금세 지워질 수 밖에 없었을 거다.

노란색 안전모들이 몽글몽글 뭉쳐져 있던 그 계란판같은 트럭 위에서 살짝 드러난 얼굴. 나이를 가늠하긴 힘들지만

꽤나 연로해 보이시고 피곤해 보이시는 표정이다. 아님 단지 코가 간질거려서 잠시 재채기를 하려고 하셨는지도.

저런 식으로 유려하게 씌여진 한글 간판이 이 개성공단을 꽉 채울 수 있다면 그것도 꽤나 멋진 광경이 되지 않을까.

이미 몇가지 서체, 그것도 대부분 일본에서 유래되었다는 서체에서 별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남측의 한글디자인

그리고 한글문화에 조금은 자극을 던져 주면서, 북한이 남한이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례가 될 수 있을지도.

현대아산 사무실에 들어왔더니, 개성상황실이 있다. 벽면에는 시베리아횡단철도와 중국횡단철도와 연계해서

발전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개성을 보여주기 위한 온갖 도면이 붙어있었고, '복스럽게' 생긴 북한아가씨가 우리에게

개성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개성은 유명한 박연폭포와 한석봉이 판액을 쓴 걸로 유명한 남대문, 그리고

정몽주가 피살당한 선죽교 등의 문화유산을 품고 있습니다..운운. 어라? 피살? 단어가 상당히 세다고 느꼈는데,

나만 그렇게 느꼈던 걸까. 설명중인 아가씨는 여전히 피냄새가 풍기고 훈김이라도 오를 듯한 그런 단어를 발음해

놓고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이런저런 설명을 이어가고 있었고, 주위의 다른 사람들도 별반 반응이 없었다.

저 디오라마 한가운데 있는 붉은 기둥 같은 건 아마도, 거대한 김일성 동상인 듯 했다. 개성 시내 한가운데에는
 
저런 게 서있나 보다. 설마 조명까지 저 섬뜩한 붉은 색으로 비추는 건 아니겠지.

현대아산의 개성상황실에서 능숙한 말투와 자세로 흐트러짐없이 개성의 현황, 개성공단의 향후 계획에 대해

설명하던 아가씨. 내가 카메라를 들고 멈칫거리는 걸 센스있게 눈치채곤 한마디 해주었다. 자유롭게 사진찍으셔도

됩네다. 그 말 듣고 당장 찍은 그녀의 발표 모습. 겉모습만 보곤 남한과 북한의 처자를 구분하기가 그리 용이하진

않은 듯 하다. 남측보다 결혼이 빨라서 20대 초중반에 결혼을 한다고 하는데, 그 이전까지는 남측과 비슷하게

연령대에 맞는 외양을 유지하다가, 결혼 후 아이를 낳고 나서는 같은 나이의 남측 여성에 비해 한 10년쯤 더 나이가

들어보인다고 한다. 아무래도 출산을 위해 모체의 영양분을 모두 아이에게 넘겨주고 나서 그를 보충할 충분한

영양이 공급되지 않는 환경이니까 그렇지 싶다. 산후조리, 그리고 산중 영양섭취의 중요성이랄까.

개성은 저기다. 강화도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금방 닿을 수 있는, 아마 서울까지 가는 것보다 개성에 가는 게

더 가까울 거 같다. 참 가깝다. 이렇게 남측에 최근접한 곳을 공단시설부지로 내놓을 수 있었던 건 확실히 김정일의

일인독재에서 기인한 결단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당시 북한 군부에서는 격렬한 반대가 있었지만 김정일은 이를

모두 물리치고 기어코 이곳을 남측과의 경협사업에 내어준 거라고 들었다.

이게 개성공단 1단계 공장구역, 백만평에 이르는 부지라고 한다. 현재 노동집약적 업종 중심의 개발사업은 완료된

상태로, 남북경협의 기반을 구축하는 단계라고 한다. 약 250여개 업체가 들어가서 실제 50여개 업체가 공장을

가동중이라고 하는데, 주로 봉제, 신발, 가방 등의 상품이 만들어지고 있다.

2단계 공장구역은 250만평에 이르며, 기계, 전기, 전자 등 기술집약적인 산업을 발전시켜 세계적인 수출기지로의

육성을 꾀하고 있댄다. 배후지역에는 골프장도 두세개 건설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음...골프장이랜다.

3단계 사업은 IT, 바이오 등 첨단산업 중심으로 550만평을 개발하여 동북아 거점 생산기지로서의 역할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이게 2012년까지의 계획이라고 했는데..글쎄, 현재까지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으로 보아서는

다소 지연될 가능성이 크지 싶다. 그리고 다소 지연되더라도 좋으니 그런 청사진대로 개발이 될 지에 대해서는,

글쎄, 지켜보는 수밖에 없지 싶다.

1단계 공장구역과 3단계 공장구역 사이로 고속도로와 경의선 철도가 놓여 있을 텐데, 그 부근에 상업구역을 만들어

저런 고층빌딩을 잔뜩 올릴 계획도 갖고 있다고 했다. 저 반달 형태의 호수는 남북한의 화합과 번영을 상징한다고

했던 거 같은데, 너무 먼 이야기인 거 같아 사실 흘려들었다.

빨간 선이 고속도로, 노란 선이 경의선 철도. 지금도 도라산역에서는 북측으로 하루에 한 차례씩 철도가 운행중에

있다고 한다. 딱히 무언가를 싣고 옮길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해주지 않으면 모처럼 놓인 철로가 못쓰게

되고 수명도 짧아진다고 했던 것 같다.


놀랬던 건, 설명을 하던 북한 아가씨의 입에서 '세계적인 경쟁력', '가격경쟁력', '세계 일류', '세계 시장'같은

자극적인 단어들이 잔뜩 튀어나왔다는 사실이었다. 아..북한도 변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던 순간.

현대아산 건물 위에 올라 개성공단을 조망했다. 아침부터 하늘이 잔뜩 의뭉스럽게 꾸물꾸물하더니 기어코 눈발을

뱉어놓고 있었다. 황량한 공사현장이 산재해 있고, 저 기분나쁜 판-옵티콘은 어디서나 잘 보이지만, 그래도 올해

첫눈을 개성에서 맞게 되다니 기분이 색다르다. 처음에는 딱딱하게 뭉쳐진 싸리눈이 투둑대며 떨어지더니, 조금씩

부드러운 눈발로 바뀌어 나리고 있다.

눈이 내리는 걸 보면서, 어처구니없게도 내가 든 생각은 머리에 바른 왁스물 흘러내리겠다는. 어느순간 눈내리는

것이 싫어진다면 나이를 먹었다는 증표라고 했지만, 단지 머리에 뭔가를 바르지 않던 시절과 멋 낸답시고 뭔가를

바르기 시작한 이후라는 차이가 아닐까 싶다.

시계가 순식간에 잔뜩 움츠러들어 버렸다. 거대한 감시탑 혹은 망루처럼 세워져있는 저 관치냄새 풀풀 풍기는

건물도 슬몃 눈발이 만들어낸 장막 뒤로 한 걸음 숨어들었다. 그리고 여긴 개성.


남북출입사무소 뒷문으로 나가 차를 타려 했는데, 주위의 차들도 그렇고 우리 차도 그렇고 모두 분주하다. 
차 앞의 번호판을 흰 판으로 가리고 있었다. 아무 것도 안 적힌 흰 판으로 고정시켜 가리는 경우도 있었고,

'림시(아마도 임시번호판이란 뜻이겠지만)'라고 적힌 번호판으로 덧대는 경우도 있었고.
 
그리고 차 한쪽에 저런 붉은기를 꼽아 놓아서, 여러 차들이 모두 그런 깃발을 꼽아 둔 걸 보면 마치 어딘가

단체로 여행가는 차들 같다. 저 깃발은 현재 이 차량은 비무장 상태로서, 합법적으로 북한에 방문한 차량임을

식별할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으레 호전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붉은 기보다는 이왕임 하얀색

깃발이 낫지 않을까 잠시 생각했다가, 그건 자칫 북한에 투항한다는 뜻으로 읽힐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이내 폐기.

실제로 그런 논의가 남북간에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남조선 동무, 백의민족답게 흰색으로 하갔시오?" "북한에

사는 친구 A-yo, 그건 우리가 백기들고 투항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 다른 색으로 합시다." 운운.

또 하나, 차 안에 있는 네비게이션은 탈착이 가능한 경우 빼두고 가져가지 말도록 하고, 이것처럼 아예 빌트인

형태의 것이라면 회선을 끊고 흰 종이로 덮어 두어야 한다. 그렇게 부산하게 준비를 마친 차들은 일렬종대로

북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 남한측 2km, 북한측 2km의 비무장지대(DMZ)를 지나 북측에 있는

출입사무소까지 가는 동안에는 사진 촬영이 일체 금지되어 있다고 했다. 차들이 비무장지대 한 복판으로 천천히

나아갔고, 어느 지점쯤에선가 남측 군인들이 탄 지프가 멈춰서서는 우리가 가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앞쪽에는 북측 군인들이 탄 지프가 우리가 오는 걸 지켜보고 있었고. 그렇게 우린 남에서 북으로 '인수인계'.

겨울로 가는 문턱이라 그런지 비무장지대라 해도 뭐랄까, 사람 손 타지 않은 천혜의 자연..이란 이미지는 별로

느낄 수가 없었다. 누렇게 죽어가는 풀떼기들과 나무들이 있을 뿐이었는데, 정말 어느 순간 그 나무들이 무척

키가 작아지고 어린 것들만 보인단 느낌이 들었다. 북측 지역에 넘어섰던 즈음일 게다.


차에 함께 탄 일행 중 한명이 한번 더 주의를 단단히 주었다. 주위에 사람이 없고 풀떼기만 보이는 것 같아도,

북한군인이 어디선가 다 보고 있다고 하면서 사진은 절대 찍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북한군인들이 찍은 사진을

전부 검사하며, 혹시 사진촬영금지지역에서 찍힌 사진같으면 벌금 몇백달러에 자칫 카메라 압수까지 당할 수

있다고 했다. 별 수 없이 카메라를 얌전히 꺼두고 차창에 붙어 열심히 눈알만 굴렸다.


우리가 가고 있는 길 옆으로 커다란 송전탑이 따라 오고 있었다. 개성공단 지역의 전기 수급을 담당하기 위해

남측에서 전기를 송전하기 위한 설비라고 했다. 송전탑이 든든히 남과 북을 잇고 있는 듯한 느낌.

정주영회장이 몰고 왔던 소떼들이 바로 이길을 지나 북으로 갔다고 하던데, 아마 그 소떼의 걸음속도로 천천히

움직이는 차들이었지만 4km는 금방이었다. 그래서 불과 십분 안팎? 그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저 앞에 북측

군인들의 경계 초소가 보였고, 붉은 별이 그려진 바리케이트가 얼기설기 놓인 것이 보였다.


서울에서 개성까지 불과 80여km. 참...가깝구나 싶었다. 그러면서도, 남한에서 북한으로 넘어가면서 말그대로

깜깜하기만 한 구역, 블랙박스를 지나면서 은근히 긴장했던 걸 깨달았다. 그리고 아마 북한을 다시 떠나기

전까지는 이런 긴장이 계속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물론 그 블랙박스는 북한에서만 설정한 건 아니겠지만.

북한측 출입사무소에서 비행기 입국심사하듯 검색대를 지나, 세관에 출입증을 제출했다. 빨간 계급장과 김일성

배지가 달라붙은 채 칼같이 각잡혀있는 누런 북한군복을 입은 군인이 딱딱한 낯빛으로 나를 맞았다. A4지 몇장에

걸쳐 프린트된 소속, 이름 등등의 표를 한장씩 넘겨가며 내 이름을 확인하길래, 그보다 먼저 내 이름을 발견한 내가

손가락을 짚어 여기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랬더니 도장 한 방, 쾅 찍고는 통과. 딱히 무섭게 하려거나 긴장감을

준다기보다는, 그냥 그 군인은 나를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으로 보는 느낌이다. 소 닭 보듯 하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바로 공장으로 들어섰다. 김대중 대통령이나 김정일국방위원장도 방문한 바 있고, 최근에 북한군 고위

장교가 개성공단 내 공장을 돌면서 짐싸는데 얼마나 걸리는지 물어볼 때 맨 처음 다녀갔을 만큼 개성공단의

대표적인 공장이다. 한붓그리기를 하는 듯 죽 지그재그로 이어진 형광등 아래 북한사람들이 잔뜩 모여있는 광경을

첨 맞닥뜨리고 살짝 당황했던 건 단지 미처 심적 준비가 안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공장 건물 입구를 들어서면

바로 그 옆에서부터 작업 라인이 늘어서 있단 걸 몰랐기 때문에 당황키도 했지만, 솔직히 이렇게 많은 북한 사람과

한 공간에..그것도 상대적으로 소수인 입장으로 마주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렇지만 내 속내가 어떻게 복잡하게 돌아가는지 상관없이 그네들은 모두 자신들이 할 일에 골똘히 열중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재단하는 공원(직원)들, 그리고 차례차례 순서를 거쳐가며 봉제를 해나가는 공원 라인들.

그러고 보면 난 단지 의류 제조공장이란 곳에 처음 들어와서 느낀 생경함을 북한사람들과의 대면에 대한 문화적

충격으로 잘못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사방에서 돌아가는 재봉틀 소리, 그리고 자신의 수족인양 민첩하게 쓰이는

다리미와 각종 도구들. 처음엔 그냥 이 '봉제실 2반'의 전체 덩어리를 뭉뚱그려 보고 있었지만 조금씩 한 명 한 명,

여공원들의 표정과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우선 공장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2층에 있는 샤워실, 북측 공원들은 이곳에서 샤워하는 걸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기본적인 먹는 문제조차 쉽게 해결하지 못하는 동네에서, 수도시설이나 전기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을 리가

없는 거다. 설혹 제대로 되어 있다고 해도 샤워를 하는 건 쉽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샤워실'이란 문패 아래 붙은

스케줄표를 볼작시면, 보이는가. "샤와실 리용계획".

그 옆에는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수준의 식당이 있었다. 2005년이던가, 이 업체의 개성공장 준공 기념 패션쇼를

이 공간에서 열었다고 한다. 의자와 테이블을 모두 치워놓고 만들어진 런웨이 위에서 김태희가 워킹을 했다는데,

한국 최고의 여배우가 온다는 소식에 이곳 공원들이 모두 기대감에 충만해 있었댄다. 근데 정작, 김태희는 기대에

못 미쳤다며 그녀와 함께 워킹을 했던 다른 모델이 더욱 이뿌다는 한 목소리였다고 했다. 아마도 조금 통통하고

'복스럽게' 생긴 녀성을 날씬하고 다소 마른 체형의 여성보다 선호하는 이쪽의 미적 기준이 작용한 결과일 게다.

어쨌든, 왠지 그녀와 나는 여러모로 같은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는 묘한 생각을 잠시. 크흑.

원래는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가 되었으나, 언젠가부터 중식을 제공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중식은 이곳에서 일하는 북측 인력들의 가장 중요한 식사시간이란 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알 만하다. 제법

식단도 다양하게 잘 나오는 거 같은데, 모든 식자재는 남측에서 건너온다고 한다.

다시 1층의 작업 공간으로 내려와 한 바퀴 빙 둘러보았다. 한달의 약 60불의 임금을 받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고졸 이상의 높은 학력 수준과 이해력을 갖고 있다고 했다. 다만 인사관리의 권한이 남측 업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북측에 있다고 해서, 근태관리라거나 인센티브 부여, 혹은 내가 이해한 바대로 보다 나이브하게 말해 작업장내

규율 확립과 효율성 증진을 위한 조치를 취할 수가 없다고 한다. 사실 이 여공원들도 북측 상부에서 여기에 와서

일해라, 하니까 일하는 거지 개인의 희망이나 의지가 반영되어 배치된 것은 아니란다.

작년 말께 있었던 제2차 정상회담에서 노전대통령이 언급했던 개성공단 인근 기숙사 건설 문제는, 아직까지는

아무 후속방침이나 조치가 없다고 한다. 이미 개성 인근의 노동력을 모두 흡수한 상태라 하던데 공장들이 증설되면

새로 신규 인력을 어디서 끌어올지도 문제고, 그들이 어디에서 머물지도 문제가 될 거 같다. 다소 심한 경우일지

몰라도, 이곳에서 일하는 한 북한아가씨는 밤 3시에 일어나 밥을 하고 치장을 하고는, 4시 40분께 집을 나선다고

한다. 공단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가 있긴 하지만 코스가 다양하지도, 길지도 않아서 어느 정도 걷거나 자전거를

타야 하며, 그래야 6시 반이던가 출근 시간에 맞출 수 있댄다. 하여 취침시간은 9시에서 9시반. 참...빡빡한 삶이네

속으로 생각했지만..맘 속 한구석에선 월급쟁이란 북녘땅이나 남한땅이나 비슷하구나, 했다.

처음에는 작업장 밖에 안 보이더니, 조금씩 사람들이 보이고, 그리고 그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그네들은 자기들끼리 웃으며 이야기도 드문드문 하고, 뭔가 짜증이 났는지 작업반장같은 사람한테 목소리 높여

살짝 항의도 하고, 옆사람이 시범보이는 걸 진지하게 눈여겨보며 배우기도 하고, 가끔은 발랄한 웃음소리도

시끄러운 재봉틀 소리와 함께 풀어놓기도 했다.

이렇게 재단을 하는 사람이나, 제봉을 하는 사람이나, 심지어는 숙련된 작업 고참으로 작업반장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이나, 임금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한다. 어쨌든 집도 한 채씩 국가에서 제공하고, 일자리도 제공해주고,

기본적인 식량도 국가에서 (원칙상) 제공하게 되어 있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능력에 따라 소비하는(혹은 벌어가는)" 자본주의 사회의 원칙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이상적인 원칙에 한결 가까운 건 맞겠지만..글쎄, 아직 그 누구의 필요도 채울만큼 충분히

주어지지는 않는 건 확실하다. 북측에서 커미션삼아 떼어가는 몫의 문제일 수도 있고, 일시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북측의 불공정하고 불완전한 형태의 노동시장이 갖는 문제일 수도 있고.

공장을 나서서, 새롭게 지어지고 있는 신공장 건설현장을 가보기로 했다. 빨간 기를 꼽고 '림시' 번호판을 단 차를

타고 조금 움직이니 금세 공사현장이다. 노랑색 안전모를 쓴 사람은 북측 인부, 흰색 안전모를 쓴 사람은 남측

인부 혹은 기술자라고 한다. 이 곳에 새로 지어질 공장은 여태 개성공단에 입주한 업체들이 지은 공장들 중 최대

규모가 될 것이라고 하는데, 실은 개성공단에 입주한 기업들 중 적지 않은 수는 아파트형 공장에 입주해 있기

때문이기도 할 거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공사 현장이나 공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찍는 건 되고, 경찰복이던 군복이던 제복을 입은 사람을 찍으면 안 된다.

공장 내부에서는 맘껏 찍어도 되지만, 개성공단이 차지한 땅 바로 그너머서부터 시작되는 민가들은 찍으면 안

된다. 다 쓰러져 가고 페인트칠조차 드문, 지붕엔 다 썩어들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너덜너덜한 기왓장이 용케

달라붙은 채 웅크린 폐허같은 민가들이었다. 개성공단과 바로 인접한 개성시내에는 12층짜리던가, 엘리베이터가

있는 고층아파트가 있긴 하지만 엘레베이터는 안 움직인지 오래라고 했다. 북측 윗사람들이 무작위로 지정해준

자신의 집이 그 꼭대기층이라면, 게다가 자신이 5,60대 노인이라면, 죽을 때까지 집아래로 몇번 내려오지도 못하는

비극적이고도 희극적인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고 한다.

남측도 우스운 건 마찬가지다. 개성공단 중앙에 높다랗고 지어올리고 있는 저 건물은,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가

입주해서 행정, 법제 관련 업무를 담당할 곳이라고 한다. 아마 남측의 관료나 높으신 냥반들이 왔을 때 호텔로도

활용되지 않을까 싶다. 저렇게 높은 건물을 대체 무슨 용도로 다 채울 건지 모르겠다.

이렇게 보니까 조금 뜨악하달까, 푸코가 이야기했던 판-옵티콘이 생각났다. "감시와 처벌"이란 그의 책에서 나왔던

근대적 의미를 충실히 구현한 360도 전방위를 감시할 수 있는 감옥 시스템. 끽해봐야 몇층짜리 건물이 전부인

요 야트막한 동네 한가운데다가 저런 건물을 떡하니 지어올려서 감시라도 하겠다는 건지, 그 건물 설계의 의도가,

조금 요란하게는 철학이 궁금해졌다. 개성공단에 입주해 있는 업체들의 편의를 봐주고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마인드가 제대로 서있다면 저런 과잉하고 권위적인 건물에 부담감이나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을까. 관치의 느낌.

산을 따라 빙 둘러쳐진 녹색의 펜스는 사실 남북출입사무소를 지나 자유의 다리를 건너 비무장지대를 지날 때부터

줄곧 우리를 따라 내달리고 있었다. 한발짝이라도 저 펜스를 넘는 순간 허가받지 않은 '입북자'가 되는 거라고.

'입북자'라는 건 '탈남자'의 같은 말인 걸까. 그렇담 '탈북자'를 북측에선 '입남자'라고 하려나. 희떠운 생각 한조각.


북한에서는 그런 이야기도 들린다고 했다. 최근 '비타협적인 자세'를 견지하며 북측으로 삐라를 마구 뿌려대는

사람들을 과연 이명박 정부가 못 막아서 못 막는 건가. 이미 촛불집회 때 유모차 부대라는 애기아주머니들도

강경하게 대처하고 진압했으면서, 이제와서 민주주의 국가라고 못 막겠다는 걸 믿으라는 건가. 물론 법적인

근거가 있고 없고의 차이라거나 등의 미시적 차이를 모르고 한 말이겠지만(해가 진 후 집회 및 시위를 금지한

어이없는 법률이라거나 지극히 자의적인 법적용 등을 차치하고 말하더라도) 거시적 차원에서는 일견 수긍할

만한 구석이 없지 않다고 생각했다.

공장을 돌아보고 나오려는데, 옆에서 한 북측 인부 아저씨가 설렁설렁 자전거를 타고 지나길래 서둘러 셔터를

눌렀다. 마치 남녘땅 시골 촌로들이 자전거를 타듯 거칠것 없는 유유한 자세로, 많이 차갑고 매콤한 바람이 불어

얼굴하며 손등이 온통 새빨개졌음에도 그 바람결을 즐기는 것 같은 태도로 움직이는 게 너무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이것이 북측의 삶의 패턴이랄까, 리듬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에 비하자면, 내 삶의 리듬은 어떤지

돌아보게 되었다.



* 아마 태그에 몇가지 북측과 관련된 금칙어가 있는 것 같다. 애초 올렸던 글이 티스토리 메인홈에 노출되지 않고

거의 읽혀지지 않았던 걸 보고 태그를 좀 수정했더니 그제서야 메인홈에 정상적으로 게시되었던 것 같은데..

뭐가 금칙어였을까.
문득 눈을 뜨니 제법 얼음이 올라붙은 자그마한 강이 보인다. 아마도 임진강의 지류일 게다. 
아침 7시반에 모여 개성으로 출발하기로 했는데, 추운 바람에 뻣뻣해져버진 몸을 삽시간에 녹여버리는 지하철의

빵빵한 난방 탓에 10분 정도 지각하고 말았었다. 미친 듯이 뛰었던 탓일까, 죄송합니다, 를 연발하며 차에 타고는

피곤함과 노곤함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와 금세 또 잠들어버렸었다.


지금 난 개성으로 가고 있다. MB정권이 출범하고 나서 쉼없이 삐걱대던 남북관계, 급기야 개성공단의 존폐를

위협하는 이야기들마저 떠다니다가 급기야 다음달부터 개성으로 통하는 육로를 제한, 통제하겠다는 북측의

통고가 전달된 상황이다. 이번 개성행도 몇 주전부터 갈 수 있을지, 혹 재수없으면 못 가게 되는 건 아닐지 적잖게

걱정했었지만, 그래도 어쨌건 난 북측에서는 통행증이, 남측에서는 방북증이 무사히 발급되었다고 했다. 방북증이

북한을 갈 때 쓰는 여권이라면 통행증은 일종의 비자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함께 오기로 했던 다른 사람같은 경우

이유는 모르겠으되 북측에서 통행증 발급을 거부했다고 한다.

가을걷이를 끝낸 임진강변 들녘의 풍경이 고즈넉하다. 난 육로를 통해 개성에 방문하게 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곳을 방문하는 10시부터 14시30분까지 무얼 볼 수 있을지 잔뜩 휘저어진 상태였지만, 우아한 날개짓을 뽐내는

새떼들을 보며 조금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여차하면 총 맞는 거 아닐까, 북한사람들이 다시 경직되었다고

하던데 자칫 맘에 안들면 못 들어가거나, 혹은 못 돌아오는 거 아닐까. 이런저런 걱정과 설렘이 교차했다.


이곳 남한 최북단의 마을, 얼마전 가봤던 장단콩 마을을 포함한 파주 근방의 마을은 모든 세금이 면제된다고 한다.

게다가 병역의 의무 또한 면제된다고 하니..논밭에 나가든 마을 밖 마실을 나가든, 혹은 새로운 트랙터나 차를 사든

일일이 군인들에게 알리고 움직여야 하는 불편함 쯤은 감수할 만 하지 싶다. 아닌가..?

남북출입사무소 앞에 들어서니, 이미 많은 차들이 열맞춰 서있었다. 한대씩 들어가는 게 아니라, 대략 삼십분

단위로 끊어서 한꺼번에 움직인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나도 아침에 지각만 안 했으면, 사무실 들어가서 "개성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사무실이 있는 건물 앞에서 차를 타고 바로 개성에 다녀오는 경이로운 그림이 나왔을 텐데..

늦는 바람에 지하철 역 앞에서 픽업당해버렸다. 개성간다는 말을 마치 옆집 철수네 가듯 별일 아닌 것처럼

무심하지만 시크하게 내뱉는 그런 멋진 그림은 그래서 다음 기회로.

남북출입사무소에 들어서니 사람들이 바글대는 게, 그냥 무슨 대합실쯤 온 느낌이다. 1층에선 사람들이

출입증 신청을 위해 기다리고 있고, 2층에는 이제 오늘 다녀올 사람들이 출발 시간이 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남북출입사무소의 광고판은 계속 이런저런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는데, 예컨대 컴퓨터 반출하면 혼난다~

라는 이야기. 군수용으로 전용될 수 있는 전략물자 통제라는 차원에서 노트북이던 데스크탑이던 컴퓨터 반출이

금지되어 있댄다. 대부분의 사무를 컴퓨터로 처리하는 요즘 세상에,  개성에 가서 일하시는 분들이 좀 많이

불편하겠다 싶었다. 게다가 몇가지 금지품목이 더 있었다. 정확치 않은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배율 10배 이상의

망원경/쌍안경, 휴대폰과 충전기, 160mm이상 렌즈의 카메라, 그리고 시집과 소설책, 종교서적 등이었다.


휴대폰은 북측 주민들이나 공원(북에서 직원을 '공원'이라 부르는 건 중국식이지 싶다, 꽁위엔)들 손에 넘어가면

자칫 영화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을 테니까. 문득 받은 전화 건너편의 사람이, 내레 북조선 인민입네다, 이렇게.

그리고 시집과 소설책은 다소 의외인데, 자본주의적 문화가 담겨있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차원에서

여성의 나체나 누드가 담긴 책도 반입 불가.

또다른 잔소리는, 모든 식물류, 그리고 흙이 부착된 식물 반입금지라는 국립식물검역원의 안내가 있었다. 이런

경고가 좀더 절실한 건 역시, 지금 여기선 사람들이 육로를 통해 외국에 다녀오는 거니까 그렇지 싶다. 비행기를

통해 먼거리를 왔다갔다 하는 거라면 좀더 관리가 편하겠지만, 그냥 자신이 집에서부터 타고 온 차 그대로 갔다가

오는 거니까..암만해도 좀더 의뭉스런 노림수들이 먹힐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개성을 포함한 북한 남부지역엔 말라리아가 창궐하고 있는데, 그 징후 중 하나는 '무기력증'이라는 안내에 살짝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렇다면 나는 말라리아 초기 징후가 하루에도 몇번씩 수시로 도지는구나. 가장 좋은 예방책은

모기에 물리지 않는 거라는 다소 무책임해 보이는 설명에 분개하려다가, 지금같은 때엔 말라리아 염려는 없다는

일행의 설명에 급격히 평온해졌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손씻기 등 개인위생에 철저하란 이야기는 잘 듣기로 했다.

2층 한 켠에는 저런 사물함이 있고, 가기 전 이런저런 짐들을 넣어두고 있었다. 이런저런 책들이 들어있는 가방과

함께 핸드폰을 잠시 꺼두고는 함께 넣어두었다. 천원, 오백원짜리 두개로 문이 잠기는데 잔돈이 없어서 맞은편

북한상품 판매소 아줌마한테 바꿔달라고 부탁했다. 혹시 나중에 짐 다시 꺼낼 때 돈도 돌려받나요, 하고 여쭈니까

그래서 어디 장사가 되겠냐고, 공짜가 어디 있냐고 타박하셨다. 나는 혹시 이것도 일종의 남북경협 활성화를 위한

인프라로 간주해서 정부가 지원해주는 건 줄 알았지만, 역시 공짜는 없는 자본주의 세상이다.

손에 카메라만 든 채로, 한결 홀가분한 몸으로 출발 전까지 좀더 둘러보기로 했다. 1층에는 우리은행이 있어서

원하는 사람들은 달러화로 환전을 해갈 수 있다. 개성, 평양과 금강산 지역에는 달러화가 통용되며, 기타 지역에는

유로화도 통용된다고 하는데, 원화는 안 받아준댄다. 혹자는 미국과 극렬히 대치하고 있는 북한이 달러 아니면

안 받아주는 게 아이러니하다고 비웃듯 말하기도 하지만 글쎄, 보기에 따라서는 당연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개성공업지구 관리위원회는 행정이나 각종 인허가, 법제를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일종의 통일부 산하기관으로

생각해도 될 거 같은데, 여기 남북출입사무소 2층에는 도라산 출장소가 나와있었다.

출발 전 약 25분에 걸쳐서 방북교육을 받아야 한다. 10분 정도 동영상을 보며 개략적인 사실들에 대해서 교육을

들은 후, 나머지 시간은 사무관이 그 내용을 보완하고 질문을 받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화해와 번영의 시대를

맞이하자는 첫 멘트가 다소 생경하게 들렸다. 10년간 나름대로 진지하게 발전해 온 남북관계가 이렇게 순식간에

얼어붙고 퇴행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그래서 더욱 그간 남북경협을 통해 쌓아온 경제적 연결고리가 소중한

게 아닐까 싶다. 꼭 그 경제적 이해관계로 인해 관계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기능주의적인 기대가 아니라 해도,

남과 북 모두에서 이전의 공고했던 '국가' 행위자 아래의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생겨난다면 최소한 파국은 막을 수

있는 가능성이 올라가지 않을까 해서.

정말인지 모르겠는데, 최근 방북했던 사람 중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병세를 물었다가 즉시 추방당한 사람이 있다고

했다. 왠만하면 민감한 이야기는 피하되, 꼭 해야 하는 경우는 이런 호칭을 써서 말하라고 했다. 대통령님...이라...

국방위원장님이 아니라 국방위원장인데, 대통령님이 아니라 대통령이어야 하는 거 아닌가. 대통령 자체로 이미

존칭인 거잖아. 괜시리 걸어보는 딴지인지도 모르지만, 어디 가서 우리 MB대통령님은,(꼭 MB가 아니라 해도)

우리 대통령님은 어쩌구저쩌구, 이렇게 말하는 거 웃긴다. 왠지 우리 대통령님께서는..이라고 말해야 할 거 같다.

금강산 관광이 어느새 10년이 되었다. 남북간 통신선도 얼마나 오래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노후화되고 있어 서울을

떠나 개성으로 향하는 걸음을 방해하고 있다. 통신선은 노후화하고, 이산가족분들도 고령화하시고, 그리고 (전쟁의

기억을 잊어간다고 한탄하는 것만큼이나) 하나의 공동체로서의 기억도 휘발되고 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포스터에 등장했던 도라산 역 앞의 철마는 워낙 부식이 심해져서 자칫 폭삭 부스러져 내릴 정도가 되었기 때문에

포스코에서 5억원을 들여 복원중이라고 한다. 그만큼 오랜, 아주 오랜 휴전 중이다. 그리고 그 휴전 기간동안

두 나라는 서로를 의식하면서도 외면한 채 기형 내지는 불구가 되어가고 있다. 시간의 세례를 받아 늙고 낡아가는

것들은 죄가 없을 거다. 죄가 있는 것은, 그러한 기형화된, 불구화된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혹은 소극적으로

득을 보는 집단 아닐까.

남북간 출입만을 규율하고 있는 공간이라 그런지 영어나 한자로 병기되어 있지 않아 그 정확한 뜻은 추측하는 수

밖에 없지만, 입경, 출경은 아마도 거의 99%의 확실성으로 경계 경자를 쓴 出境, 入境이라는 한자를 쓰지 않을까

싶다. 설마 서울 경자를 써서 出京, 入京이라고 쓰지는 않을 테고. 국경을 넘어선다는 의미일 거다. 한반도라곤

하지만 막상 대륙에 이어진 반도라고 느낄 수 있는 경험은 여지껏 없었던 게 사실이다. 단지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았거나, 부산에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거나. 그런데 이제 이렇게 땅을 밟으며 국경을 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예민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국경이 아니라 다른 말로 바꾸지 모. '대한민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영토의 경계를 넘는 경험.

남북출입사무소에 붙어있는 포스터. 흰색 저고리에 까만 치마를 입고 머리를 야물게 빗어올린 북한 아가씨가

인상적이었다. 하나된 개성공단, 세계로 미래로라..사실 개성공단은 평소 내게 일종의 딜레마를 던지기도 했었다.

마치 절대빈곤선 부근에서 허덕이는 제3세계 아이들을 부려서 커피를 따게 한다거나, 낮은 임금을 주며 잡일을

시키는 상황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쉽게 판단이 안 서듯이 말이다. 개성공단 혹은 북한의 저임금 노동자를

'활용'해서 가격경쟁력을 부활시켜 한국의 부, 혹은 한국 기업들의 부를 축적한다는 건 일종의 윈-윈일 수도

있겠지만..이미 우리 사회의 노동자층이 정규직, 비정규직, 외국인노동자(이주노동자) 등으로 고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또하나 저임금노동자의 공급처로 전락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걱정스럽기도 했다.

2층 오른켠에는 북한상품 판매소가 있고, 비매품으로 전시된 북측 도예가의 작품들과 수십년은 묵은 듯한 더덕,

상황버섯 등으로 빚은 술, 그리고 제1차 남북정상회담 기념 도자기가 놓여있었다. 한 차례 정상회담으로 뭔가

경천동지할 일이 급박하게 전개되리라고 기대치는 않았지만, 뭔가 많이 바뀌었다 싶으면서도 역시 또 뭔가가

허전하다. 당장 불과 작년에 있었던 제2차 정상회담은 그 시기와, 결과와, 의미 등에 있어 많은 논란이 있었음에도

결국 기억조차 희미하게 지워지고 말았다. 아직까지는.

예전에 어디에선가 북한술을 파는 걸 봤었을 때는, 고작 몇 종류 안 되었던 거 같은데 지금은 이런 두 줄짜리

진열대를 두 칸이나 차지한 채 늘어서 있다. 학교 앞 '그날이 오면' 서점에서 운영했던 '미네르바'였던가, 그 찻집서

한과와 함께 백두산 들쭉술을 마시면서 학회 세미나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술 참 맛있었던 거 같은데 뭐라도

한 병 살까 하다가 말았다.

이게 북한에 들어가기 위한 비자 역할을 하는 출입증이다. 눈길을 끌었던 건 파란 색으로 그려진 한반도 지도에도,

밑에 스탬프 모양으로 만들어진 엠블렘에도, 한반도 등허리 건너 편 동해바다에 점 두 개가 선명하게 보인다는

사실이다. 거의 비등한 사이즈로 그려져 있는 저 점 두 개. 언제부터 우리나라가 한반도 그림을 그릴 때 저토록

선명하게 독도를 표기했던가 싶다.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굳이 독도를 저렇게 뻥튀기한 사이즈로까지

부각시켜서 그릴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또, 혹 남북간에 쓰이는 이런 출입증에만 쓰이는 거라면 괜히

못난 애비가 집안에서만 위세피우는 식인 건 아닌가 싶어서 의아하기도 하고.

출입증과 함께 받은 방북증명서를 보여주고 세관을 통과했다. 방북증명서는 주민등록증처럼 생긴 플라스틱카드로,

유효기간이 5년쯤 되는 복수 여권인 셈이다. 반면 출입증은 북한에서 돌아올 때 반납하게 되는 단수 비자인 셈.

수속을 마치고는 남북출입사무소 뒷쪽 문에서 차를 기다려야 한다. 차는 운전기사 한 명과 함께 별도의 수속을

밟고 이 곳에 와서 다시 일행들을 태우고 출발하게 되는 식이다.

개성, 이라는 표지가 선명한 뒷문어귀에서 한 할아버지가 고개를 떨구고 계신 모습을 보았다. 지난 세월에 닳고 또
 
다듬어져 표정조차 가늠키 힘든 얼굴을 떨구고 상념에 젖은 것처럼 보이셨는데,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을까.

할아버지의 속내엔 무슨 이야기들이 숨어 있었을까.

아파트 엘레베이터에 붙은 예비군 훈련관련 안내공문.

"마대에 모래담기훈련"을 하고자 한댄다. 마대에 모래담기 훈련 후 모래 원상 복구.

참고랍시고 별표붙여 공지한 내용이 더욱 웃긴다. "모래를 담아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음"


대충 훈련 그림이 나오네. 삽질해서 모래주머니를 몇개 만들었다가는, 얼추 시간되면 그 주머니를 다시 탈탈

털어서 아이들 노는 모래사장을 처음처럼 채워주는 훈련. 왠지 어이상실.


애들 노는 놀이터에서 어른들이 장난치면 못쓰는 거다. 그것도 아무도 원치않는 장난질 시키는 놈은 더 나쁘다.


*                          *                          *

생각보다 훨씬 격한 반응이 있다는 데 놀랐습니다.

우선, 군대는 다녀왔냐고 윽박지르지 마시기 바랍니다. 3주 줄어들은 2년 반 만기제대 했습니다.

그리고 군대가서 뭘 배웠냐고(군대가서는 이러저러한 걸 배워야 했다고) 강요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최소한 군대에서는 '다양성'과 '포용성'이란 걸 절대 배울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군대가서 한 게 뭐냐고 하면, '삽질했다'고 합니다. 군대다녀와서는 '바보됐다'고 이야기합니다.

이건 그렇게 "바보를 만드는 삽질", 민간인이 들으면 어이가 없어할 삽질 스토리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부디 감정어린 빨간펜은 뚜껑닫고 넣어두시기 바랍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얼마전 동대문 풍물시장서 밀려나 청계8가에 다시 모인 노점들을 구경가는 길이었다.

주유소 주입구는 호스를 꼽아 주유소 저장탱크에 기름을 쏟아붓는 구멍이다.
화장실은, 신체의 일부를 들이대고 정화조에 똥오줌을 쏟아붓는 구멍인 게다.

일종의 주입구, 화장실의 정체를 노출시키고 만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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