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이란 단어를 들이대는 정부. 위대한 국민이라는 말도, 기적의 역사라는 말도, 너무 쭈뼛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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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엑스 그랜드볼룸의 한식 세트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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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종류의 기본 찬은 미리 깔려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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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채에 들어있는 팬지꽃은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시 고민케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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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배주는 복분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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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유, 어..무슨 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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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로 구이는 언제 먹어도 참 맛깔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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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찜(호주산)이 사실상 마지막 메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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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진지와 국'이 함께 나왔지만, 왠지 한식은 그렇다. 한상 푸짐하게 차려놓고 먹어야 맛이지, 이렇게 쬐끔씩

맛만 보이며 코스로 띄엄띄엄 나오는 건 좀 별루다. 외국 정찬처럼 나이프와 포크가 필요에 맞게 십여개씩

나와서 그때그때 먹는 메뉴를 준비하고, 얼마나 식사가 진행되었는지 가늠케 하는 것도 불가능한 수저 한벌.

한식이 가야 할 고급화의 길은...아직 찾아내지 못한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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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후에 이어지는 쇼쑈쑛. 비보이와 현대화된 템포의 전통악기연주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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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분의 파격적인 한복, 그리고 명치아래께 케잌묶듯 묶인 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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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YTN이나 몇몇 신문방송 기자들이 오긴 했지만, 제대로 기사거리가 될만한 건 없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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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들이 뿜어내는 분위기는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마무리 동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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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주현미. 보톡스의 힘일까, 마치 다림질된 듯한 얼굴을 보곤 생경함만 가득했다.

그녀의 노래는 여전히 구성지고 목소리는 깔끔했지만, 나이를 알 수 없이 요새애들처럼 비슷하게 이뻐진 얼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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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동포! 에서 왜 느낌표가 들어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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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 겨우 '전국노래자랑'의 사회자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왠걸, 사회란 이런 거다~라고 제대로 보여주었다.

좌중의 분위기를 조율하며 끌어올리고 내리고를 자유자재로 하는, 게다가 출연자, 스탭과의 호흡이라거나

여유넘치는 애드립이란. 사회자로서 유재석의 겸손함과 출연자에 대한 치켜세움이 미덕으로 발견되고 있지만,

이미 송해는 출연자에게, 관객에게, 충분히 받아들여질 만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를 풍요롭게 활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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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미는 설운도. 잘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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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찬과 공연이 끝나고 난 후. 일상의 조명이 되돌아오고, 호텔리어들이 부산해졌다.

항상 뭔가 가슴이 휑해지는 순간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직 몇 번 안되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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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토요일, 사람으로 미어터지던 코엑스 아쿠아리움.

매번 갈까말까 하다가 너무 비싼 입장료에 돌아서서 메가박스로 향하곤 했고, 다른 곳으로 가서 맛난 걸 먹고

말았었는데, 마침 건국60년 재외동포 초청행사 스케줄의 일환이었다. 이미 임진각과 도라산 전망대, 상암동

디지털 파빌리온단지를 거치면서 지쳐버리신 재외동포분들은 걸음을 멈추지도 않고 쾌속주파해 버린 그 곳에서

나름, 호흡을 잃지 않고 찬찬히 보려고 애썼다.


생선들의 정글. 미처 거둬내지 못한 생선이 둥둥 떠다니던 수족관을 유유히 떠다니던 돼지코 거북이는,

주둥이로 장난치듯 톡톡 그 사체를 쳐보고는 한입 베어물었다. 이미 그런 식으로 너덜너덜해지고 만 물고기.

어디선가 다 자란 거북이의 턱힘이 왠만한 손가락은 끊어낼만큼 강하다는 이야기도 들은 기억이 있는데,

사진에 찍혀나온 그 고지식하고 우왁스런 표정을 보곤 왠지 납득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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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를 맴돌며 한입만~을 연발하는 생선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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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비늘이 이뿌지만, 이게 바로 피라냐.

어렸을 적 어디 붙었는지도 모르는 아마존강에 산다는 무시무시한 식인물고기의 이름을 대면서, 난 흔히

'피라미~'라고 실수하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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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곰치였던가. 잘 생긴 똥떵어리처럼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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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모를 기시감은 횟집에서 생긴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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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아쿠아리움이라 하면 상어가 머리위로 휙휙 지나다니는 원통형 터널을 생각하지 않나. 난 그랬는데.

근데 이렇게 좁고 짧고 싱거울 줄이야. 중국에서 오신 동포분들이 코웃음쳤단 뒷말을 듣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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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다지 다시 가보고 싶지는 않은 곳이었다.

몇가지 조건이 갖춰진다면 또 모르겠지만.

1) 사람이 적은...평일 오전쯤.
2) 다른 곳을 거치지 않고 바로 와서...두시간쯤 걸어다닐 수 있는 체력.
3) 수족관의 어류를 보고 "뭐야, 다 똑같은 생선이잖아"라고 치부해버리지 않을 호기심과 흥미.

아무리 그렇다 해도 한번 와봤음 다시 올 일이 있겠나 싶네. 너무 냉혹한 평가일지 몰라도.

용미봉탕(龍尾鳳湯) : 잘 차려진 음식이 있어 정동삼락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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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집어 콕 : 브라질리안 풍? 아니, 진짜 브라질리안 요리.
평가 : ★★★★★

국내 굴지의 패밀리 레스토랑 샐러드 바 뷔페는 얼마? 싸게는 13,000\ 호사를 부리자면 23,000\ 정도. 헌데 어디 먹을 것이 있더냐, 몇 가지 킬러 메뉴를 빼면 사실 돈 값 참으로 못하는 것이 샐러드 바다. 그럼에도 매장은 평일 손님들로 붐빈다. 왜? 그 몹쓸 뷔페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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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이빠네마는 나름 고객이 실속을 차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뷔페 중 하나로 국내 유일의 브라질 정통 츄라스카리아 레스토랑이다. 츄라스카리아는 브라질 정통 숯불 BBQ 정도로 생각하면 되는데 이빠네마에서는 소등심, 소안창살, 양갈비, 소시지, 칠면조, 닭다리, 돼지갈비를 재료로 이용하고 있다. 물론 추가 지불 없이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것은 물론이고 직접 테이블로 BBQ를 가져와 썰어주는 일명 로디우스 서비스를 실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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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연어, 샐러드, 초밥, 과일 등의 메뉴를 제공하고 있는데 많은 수는 아니지만 충분한 먹거리라 할 수 있겠다. 다소 부실하다 생각된다면 BBQ 하나만을 생각하자 수입산 꽃등심도 나가서는 200g에 20,000\은 너끈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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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중 수,목,금에 손님이 가장 많다는 이 곳은 특히 다양한 룸과 넓은 홀이 있어 주말에는 매장앞 프란체스꼬 성당에서 열리는 행사의 피로연으로 예약되는 경우가 많아 이 때는 반드시 연락 후 방문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특히 가장 중요한 쉐프는 모두 브라질인으로 어느 나라의 맛을 추구한다. 표방한다가 아닌 브라질의 맛, 바로 그 자체다.

Lunch (11:30~14:30 ) : 1인 1,7000원 어린이요금(4-9세) 8,500원

Dinner (17:30~22:00) : 1인 2,6000원 어린이요금(4-9세) 1,3000원

(02)779-2756~7
경향신문옆 프란체스꼬 교회 맞은편 정경빌딩 지하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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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집어 콕 :  동 가격대 이탈리안 레스토랑 대비 월등한 맛, 유럽풍 인테리어의 원조, 그 감각을 느끼시라.
평가 : ★★★★★

이탈리안 레스토랑 아지오는 체인점이다. 정동을 본점으로 홍대, 인사동, 삼성, 대학로등에 분점이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체인점이 맛에 차이가 없었다면 신문로에 있는 미세스 피자를 소개했으리, 본점답게 타 지점보다 낳은 맛을 제공하는 아지오 본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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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되는 음식으로는 해물 그라탕, 크림소스, 해물 스파게티(각10,000\), 마가리따 피자(14,000\)등이 있는데 맛을 평가하자면 수준급은 아니지만 분명 여타 식당에 비해 훌륭하다 할 수 있으며 가격 또한 딱히 튀지 않는 가격대로 정동길의 왁자지껄한 레스토랑, 카페를 비껴나가 호젓함을 즐기기에 좋은 ‘도심 속의 아지트’ 이 말이 딱 적합한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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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를 살펴보자면 오래된 가정집을 리모델링한 이곳은 계단 난간부터 발코니, 난간, 테라스, 테이블 등 모든 것이 어우러져 분위기만큼은 추구한다는 유럽의 오래된 가정집의 느낌을 가장 훌륭히 재현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최근 아지오와 같은 유럽 어쩌구 지방의 부엌 분위기를 표방한다는 곳이 부쩍 늘었다. 하지만 나름 원조격답게 내외관 모두 여타 업소가 따라올 수 없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이는 분명 사람의 손보다 시간이 가능케 했을 터, 적당히 낡고, 적당히 삐걱거리고 적당히 빛 바랜 노쇠의 미학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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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720-1211
경향신문사 옆 맥도날드 건너편에서 BIS간판이 보이는 곳으로부터 20m 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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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집어 평 : 갈아 끓여 깔끔하고, 듬뿍 넣어 진한 일품 호남식 추어탕
평가 : ★★★★★

정동길 맛집하면 빠지지 않는 곳이 남도식당이다. 평일 점심시간에는 주변 직장인이 몰려 언제나긴 줄을 늘어뜨린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만큼 메뉴인 추어탕의 맛 하나는 누구나 인정하는 그런 곳이다. 특히 일반적으로 뼈째 끓인 추어탕과 달리 갈아 끓인 호남식 추어탕이기 때문에 입안에 씹히는 잔뼈 없이 부드럽고 진한 국물이 만족스런 곳이다. 또 밑반찬으로 나오는 배추김치 3종 세트와 추어탕은 몹시도 훌륭한 궁합을 보여준다.

참고적으로 전화도 없으며 예약도 받지 않는다.
추어탕 8천원. 메뉴는 단 한가지. 일요일, 공휴일 휴무

정동극장 바로 옆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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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집어 콕 : 칼칼하고 진한 국물의 장터 국밥. 쉬이 접하기 어려운 고급형 장터 국밥.
평가 : ★★★★★

서민의 음식 장터국밥이 6,000\이다. 아무리 물가가 하늘을 찌른다는 정동이지만 문제 있는 가격이다. 하지만 조리 과정을 들어보면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사골과 양지머리를 넣고 24시간 동안 고아내 파, 마늘, 무 등을 넣어 만든다는 만든이의 정성까지 추가해 나름 서민 음식의 격을 조금은 끌어 올렸다고 판단된다. 푸짐한 국수사리(리필可)와 함께 제공되는 칼칼하메 얼큰한 청송옥 장터국밥은 주변 직장인들에게 언제나 인기 절정의 메뉴이다.

(02)754-1547
정동 배재빌딩 건너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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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집어 콕 : 음식, 분위기 모두 만족스럽다. 필히 그대가 경제적으로 여유로와야
평가 : ★★★★

영화배우이자 감독인 ‘로베르토 베니니’와 본 업소 창업주의 이름에서 가져온 ‘베니니’는 영화관 ‘미로스페이스’를 총괄하는 ‘미로비젼’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깔끔한 오픈키친이 인상적인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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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런 유럽 레스토랑의 풍경과 자연친화적인 인테리어를 접목하여 유럽의 정원에서 여유로운 식사를 하는 듯한 분위기를 추구한다는 이곳은 원목으로 통일된 자재들과 나무들이 편안한 느낌을 주며 곳곳에 놓인 화분과 나무 조형물은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인테리어를 변모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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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육류, 콩, 보리 등 건강식 재료들을 이용하여 조리하는 이곳은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맛이 매력적인 이탈리아 토스카나식 요리를 선보인다. 특히 지배인인 ‘전현모’씨는 프랑스 농산물 진흥청이 주최한 ‘한국 소물리에 대회’에서 1등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이로 매장 전면에 놓인 와인 저장고는 맛 좋은 와인을 제공한다는 그의 자신감을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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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의 경우 런치세트 기준 21,000\에서 45,000\으로 분명 낮은 가격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고급형 레스토랑의 경우 단순히 재료비와 맛과 같은 음식의 퀄리티로만 가격의 고저를 판단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즉 이곳으로 인해 얼마만큼의 안식과 여유, 그리고 유희 등을 얻었는가 에 대한 부분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므로 이에 대한 가치판단은 모두 개인의 몫이다.

(02)3210-3351,3352
서울시 중구 서울 역사 박물관 옆 가든 플레이스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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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집어 평 : 정동 내 몇 안되는 4,000\ 균일가 식당. 어느 음식을 시켜도 후회치 않는다.
평가 : ★★★★

아마도 정동에서 손님 많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곳이 소공동 뚝배기 집이다. 1962년에 소공동에서 순두부로 시작, 인기가 많아서 서울 여러 곳에 분점을 냈다는 이곳은 사실 그 늘어선 줄 만큼 기대를 가질 맛집은 아니다. 하지만 주변에 4,000\이라는 가격에 이만한 맛을 내주는 곳이 없는 까닭에 인기를 누리고 있다.

주 메뉴 1962순두부 4,000\ ,장모님 된장4,000\, 냄비 비빔밥 4,000\

(02)7759292
정동 배재빌딩 건너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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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집어 평 : 시원한 대구탕, 푸짐하게 주니 어찌 어여쁘지 않을 쏘냐!
평가 : ★★★★

최소한 내 인생의 순댓국밥집은 있어도 내 인생의 대구탕집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다. 그만큼 어지간하면 딱히 흠잡을 것 없는 음식이 대구탕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집 역시 비릿함 없이 시원하고 얼큰하게 대구탕 좀 하는 집이긴 하지만 딱히 특출한 맛을 자랑하지는 않는다. 단 일인분에 6,000\이라는 가격에 제법 푸짐한 양이 주어지니 이 매력에 종종 찾게 될만한 집이다. 또 주 메뉴가 아닌 돼지고기 두루치기 또한 비슷한 가격에 나름 출중한 맛과 양을 자랑한다.

(02)735-4046
경찰 박물관 옆 계단에 올라 두 번째로 나오는 우회골목 지나기 전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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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집어 콕 : 지리산 토종 돼지를 직송한다는 이 집, 부인할 수 없는 진짜다.
평가 : ★★★★

이 집, 좋게 말하면 경영철학, 조금 세게 이야기하자면 곤조가 있는 집이다. 외부에 알려져 무리하게 100명의 손님을 받아 10명을 만족시킬 바에 정성드릴 수 있는 10명만 받아 그 모두를 만족시키길 원한다고 한다. 특히 지리산에서 직송한다는 토종 돼지가 맛 좋은 이곳은 겸손하던 주인장을 반짝이던 눈빛으로 자랑하게 만들었던 메뉴이다. 알려지기 싫다며 한사코 취재를 거부하던 주인 아들의 취재거부는 고깝지만 마음에 든다. 또 그 곤조 만큼이나 전체적인 메뉴의 맛도 나쁘지 않다. 식사, 회식에 추천하는 바이다.

(02)722-3353
경찰 박물관 옆 계단에 올라 두 번째로 나오는 우회골목 진후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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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집어 콕 : 명성에 비해 임팩트가 부족하지만 담백함의 味를 안다면.
평점 : ★★★

정동 국수라고 했다면 이름이 그다지 멋스럽지 않았을 테다. 쉼표의 거리 정동에 딱 어울리는 국시, 그리하여 졍동국시는 조어적으로 아주 탁월한 브랜딩이다.최소한 정동문화벨트에 들른 사람들에게 출입문을 밀고 들어가게 할 정도의 위력은 있다.실내도 아주 깔끔하다. 연예인이나 유명인사의 예찬 사인물과 각종 방송액자도 나름 단정하게 줄 맞춰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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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음식점은 이름이나 분위기로 승부를 내는 것이 아닐 터. 대표음식 정동국시, 즉 칼국수를 먹어보자. 역시 이 집은 무엇이든 시각적 효과에 신경을 많이 썼다.  진한 육수 국물의 손 칼국수가 기품 있어 보이는 사기그릇에 담겨 나온다. 특징은 장시간 끓여내어 깔끔한 사골 국물이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다. 면발이 특별히 쫄깃한 것도 아니고 명동교자처럼 고명이 화려한 것도 아니다. 튼실한 왕건이가 몇 점 들어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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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것은 아닌데 그렇다고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육천 원의 가격을 대입해보면 딱히 추천의 마음은 더군다나 생기지 않는다. 무제한으로 준다는 배추김치와 백김치도 감동스럽지 않다. 심플한, 그러나 가격이 다소 부담되는 국수, 그것이 졍동 국시의 정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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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732-0114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 건물 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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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집어 콕 : 누구에게나 모남없는 맛, 하지만 맛도 서비스도 시시각각 변한다는 치명적인 실수
평점 : ★★★

정동길을 따라 강북 삼성병원 뒤 허름한 억덕배기에 위치한 골목에는 소리 소문 없이 자리를 지키는 맛집들이 모여있는 골목이 있다. 하지만 20대 층에 어필할 만한 메뉴에서는 다소 빗겨나간 관계로 쉽사리 정보를 찾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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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미조 식당은 산지에서 공수한 질 좋고 신선한 돼지고기를 공급하는 곳으로 고기의 맛뿐만 아니라 정갈한 백반 또한 일품인 식당이다. 특히 추천 메뉴라 할 수 있는 낙지 제육 쌈밥의 경우 요란 하게 맛을 내기보다 재료가 가지는 풍미를 잘 살려 깔끔한 뒷맛을 자랑한다. 기본으로 제공되는 구수한 된장찌개는 속 재료가 야박하지 않아 만족스러우며 밑반찬 또한 하나하나 대충 만드는 법 없어 입맛 돋구기에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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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내관은 오래되고 현대인의 미적 관점과 거리가 있다고 할 수 있는 미조 식당은 창 밖으로 보이는 경희궁이 인상적이며 몇 시간씩 엉덩이를 붙이고 있어도 눈치 보이지도 주지도 않는 오히려 차 한잔을 더 대접하는 그런 푸근한 식당이다.

다만 여주인장이 일에 치이는 시간이면 음식의 간도 제 각각이고 양도 늘었다 줄었다, 때론 그냥 오지 말고 반드시 예약하라는 말로 호기를 부리기도 하니 적당히 끼니 때를 피해서 가는 것을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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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은 주변 식당에 비해 싸지도 비싸지도 않다. 암퇘지 구이 8,000\부터, 낙지 제육 쌈밥 6,000\

(02)722-0779
강북 삼성병원 응급실 맞은 편 언덕배기 맛집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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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집어 콕 : 정동길을 바라보며 파스타를 즐긴다는 지정학적 매력.
평가 : ★★

아기자기한 화단과 화사한 유리창이 예쁜 작은 프로방스는 파스타를 전문으로 하는 이탈리안 음식점이다. 하지만 정동길 내에 무시무시리 만큼 많은 이탈리안 레스토랑과 견주어 봄에 딱히 뛰어난 맛은 아니며 내부 또한 좋은 평가를 내리기에는 무리가 있는 곳이다. 또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따르는 의무인 냥 직원들에게 딱히 친절함을 기대하기도 힘들다, 대로변에 위치했고 가격도 가격이니 만큼 점심 저녁에는 늘 손님들로 붐빈다. 그저 적당한 가격에 적당한 서비스를 받고 싶다면 가보시길.

주 메뉴, 파스타 8,000\선, 필라프 5,000\선, 마늘빵 3,000\ (기본제공 반찬:단무지 피클)

(02)757-7723~4
정동길 이화여고 맞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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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집어 콕 : 빈티지한 유럽의 느낌, 이탈리안 요리와 함께 저렴하게 즐기자.
평가 : ★★★

위에 소개한 아지오를 들어서기 전에 만날 수 있는 비스는 피자.해산물 리조쪼새우철판 볶음밥 해산물 칠리 파스타 토마토 스파게티를 메인으로 하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확실히 아지오에 비하여 내외부의 인테리어가 가지는 아우라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크게 뒤지는 것은 아니다. 운치 있게 낡은 가구와 다양한 소품을 보는 재미가 있는 이곳은 점심메뉴인 돈까스(5,000\), 철판 볶음밥(6,000\)의 맛과 가격대를 감안한다면 정동 주변에서 나름 합리적이다 라는 타이틀을 붙일 만한 곳이라 할 수 있겠다.

요리하나 10000원 이내 오전 10시 오후 12까지 영업

(02)722-0520
경향신문사 옆 맥도날드 건너 편 바로 BIS 간판이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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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집어 평 : 정동길 유일한 콩나물 국밥집, 땡긴다면 대안은 없으리라.
평균 : ★

점심시간이면 근처 직장인들로 만원 사례를 이루는 금문은 한식 전문 업소로 이 벽 저 벽에 붙어있는 방송출연 이력은 유명세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음을 알려준다. 주 메뉴인 콩나물 국밥은 깔끔한 맛이 나쁜 편은 아니지만 대명사격인 전주 콩나물 국밥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다만 이 집 저 집에서 곁가지로 만드는 콩나물 국밥보다는 괜찮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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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정동 주변 직장인들이 해장을 위해 찾는다면 권할 수 있겠지만 굳이 정동길에서 맛집 찾아왔다는 개념으로의 접근하려 한다면 극구 말리고픈 생각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내부 구조 또한 여유로이 끼니를 즐기기에는 무리가 따르는데 혼잡한 홀과 룸이 아무런 구분이 없어 배치되어 있고 테이블 간격 역시 그런 호사를 부리기에는 너무도 비좁다. 다시 말해 주문 후 긴 딜레이 없이 바로 준비되는 콩나물 국밥은 일각을 다투는 직장인들의 적당한 맛과 스피디한 한끼! 딱 그에 적합한 식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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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해야 할 것은 콩나물 국밥 외 고등어 조림의 경우 누군가 맛본 후 10여분간 챗머리를 흔들며 절규할 만큼 형편없었다고 하니, 아무리 고등어 조림이 간절하다 하더라도 삼가함이 옳다고 판단된다.

(02)756-0415
시네마 정동 건너편 2층.

 



[뽕빨코리아] 정동삼락(貞洞三樂) 뽕빨지도

일시 : 2008. 8. 11(월) 18:30-21:00
장소 : 웨스틴조선호텔(서울 소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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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및 리셉션이 시작되기 전, 막 금속탐지기의 설치가 끝났다.
행사장에 빠지지 않는 엑스배너와 뒷켠의 등록데스크. 몇가지 버전의 문구와 도안을 거쳐 가다듬어진 녀석.


행사장에 일찍 도착해 저런 배너를 설치하고 등록데스크를 꾸려놓고 명패와 명찰을 준비해 놓는 것.
아무리 에어콘이 출중한 호텔이라지만 넥타이졸라맨 정장차림으로 배너들과 낑낑대며 땀흘리는 것,

그리고 불과 몇시간 후 청와대 경호팀의 경호를 받는 '거물'들이 그 장소를 채우는 것.

다시 행사 후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호텔측 사람들이 테이블을 치우는 가운데 지배인과 영수증을 검토하는 것.

마치 "연극이 시작하기 전", "연극이 끝나고 난 뒤"의 느낌과 사람바글한 행사장의 느낌간의 간격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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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의 은은한 황금빛 조명 아래선, 사실 별 거 없는 종이쪽지 나부랭이도 왠만하면 다 쌔끈해보이고
그럴듯해 보인다. 테이블 위에서 반짝이는 식기들도 마찬가지. 그야말로 조명빨의 극치라고 사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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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측 참석인사들의 명찰. 등록데스크에 정렬시켜 놓고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명찰 왼쪽 상단엔 비표 번호를, 오른쪽 상단엔 청와대 경호팀의 검수 완료 도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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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룸으로 쓰인 로즈룸.
참석자 접수중에 한덕수 전 국무총리는 내게 직접 전화를 해서 참석의사를 밝혀왔고,
등록데스크에서 이구택 포스코회장은 내 요청에 따라 명함을 꺼내 신분을 밝혔다.

meaning,
퇴임 후 무슨무슨 재단이니 어쩌니 직함 하나 마련해 두는 건 비서업무를 직접하기 싫어서인 듯 하고,
난 어쩐지 다소 꼬장꼬장한 원칙주의자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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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 전면에 걸린 현수막. 경제4단체의 로고를 비등한 사이즈로 넣어야 한다는 주문사항이 훌륭히 적용된 사례.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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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가 있을 때마다 빠지지 않는 아이스 카빙.
정장을 차려입은 높으신 분들이 버글대며 칵테일 리셉션을 즐길 때야 아무도 건드리지 않지만,
행사 후엔 손바닥으로 비벼대며 녹이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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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룸을 점거한 사람들.
전체 참석자 명단과 헤드테이블 배치도는 내가 쥐고 있었지만, 누가 누군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쌤쌤..이랄까.

나도 그들을 모른다 할 것이요, 그들도 나를 모른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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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 맨 뒤쪽 끄트머리쯤서 찍힌 사진. 150여명의 사람들의 참석의사를 확인받고, 신원조회를 하고,
이름과 직위와 소속이 적힌 명찰과 명패를 불만없도록 만들어, 뒷말안나오게 잘 '숟가락 놓는 건' 생각보다 큰일.

두꺼운 비프를 꺼리고 흰살생선을 싫어하며, 너무 크리미한 드레싱은 싫어한다는 따위의 까탈스런 호주총리입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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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에 미디어는 꽤나 왔었지만, 사실 이런 식의 의전행사들은 기자의 눈으로 보건대 그닥 영양가가 없다.
어쩌면 행사장에 출입하는 기자 자체가 하나의 의전일 수 있는 거다.

이번 행사 역시, 외려 만찬 후 이구택 포스코 회장이 대우조선 인수건에 대해 한 말이 더 기사감이 되었다.
"이 회장은 이날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케빈 러드 호주 총리 초청 경제 4단체장 만찬에 참석한 후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라는 식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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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중인 Kevin Rudd 호주총리. 그는 무려 20분동안 답사 겸 연설을 했는데 사람들이 모두 지겨워했다.

그치만 기후변화, 비핵화, 자유무역 등의 아젠다를 제시하며 환태평양안보경제공동체라는 비전을 설파하는 그를
보며 난 국기 거꾸로 들고도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 누군가를 생각했다.
미들파워로서 호주와 한국이 갖는 유사한 위상에도 불구, 이렇게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국가지도자의 비전과
마인드. 그리고 자국의 입장에서 이니셔티브를 쥐고 나갈 수 있는 의제를 선점하겠다는 의욕까지.

아무리 지 머리 속에서 나온 게 아니라 보좌진들이 써주는 거라고 해도, 뭔가를 알고 말하는 사람과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지껄이는 사람과는 차이가 나는 게다.

더구나 행사마치고 일일이 테이블을 돌며 호주측 경제인들과 악수하고 흔쾌히 사진을 찍는 마음씀씀이, 퇴장하며
줄곧 온화하고 따뜻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그의 부드러운 카리스마. 저런 류의 정치인은 아직 한국에서 못 봤다.

다음주 월요일에 있을 호주총리 만찬 행사 때문에, 오늘로 연이어 사흘째 '외근'을 다니고 있다. 조선호텔에 가서

호주대사관 측과 이야기도 하고, 호주 본국서 온 경호/의전팀과 사전점검도 하고.

오늘은, 비표 검수를 위해 청와대 경호처에 다녀왔다.


국가 수반 정도의 고위 인사가 방문해서 행사를 가질 때, 참석자의 신원조회를 완료했다는 의미로 발부받는

명찰이 비표랜다. 덕분에 150여명에 이르는 참석자의 주민등록번호와 주소, 영문 이름, 직함, 소속까지 전부

정리하고 추가하고 빼고 고치느라 근 일주일 동안 정신없이 바빴었다.


청와대는 생각보다 넓었고, 생각보다 사람이 바글댔다.

서울시티투어 버스가 나른한 표정의 몇몇 외국인을 태우고 이미 자유로이 청와대 경내를 돌고 있었고,

파란지붕의 맹박이 셋방은 몇개의 튼실해보이는 건물들 뒤로 멀찍이 숨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

삼청동에서 지날 적마다 궁금해하던 그 관공서틱한 입구서부터가 실은 청와대 경내였다는 사실에

저윽이 놀라기도 했고.


땡볕이 내려쬐는 삭막한 아스팔트 도로변에는 사복경찰이 기십여 미터마다 촘촘이 박혀 있었다. 방문차량을 위한

주차장은 이미 만차였고, 아무데나 주차도 불가능했었기 때문에 기자차량을 위한 주차장에서야 겨우 차를 댈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경찰, 전경이나 사복경찰이 아닌 민간인은 전부 어디에 숨은건지, 왠지 서울대가 한없이

관악산을 갉아먹으며 만들어진 휑뎅그레하고 맥없는 공대 건물들이 여름방학을 맞은 느낌이랄까.


북악 안내소였던가..로 불볕을 맞으며 걸어가서 방문신청서를 썼다.

방문 목적 : 호주총리 비표 검수, 방문 기관 : 청와대 경호처, 방문자 성명, 주민등록번호, 소속, 직위 : 대리. 운운.

신청서와 신분증을 맡기고 패찰을 받고 가슴에 달곤, 엑스레이 검색대와 메탈 디텍터를 통과해 청와대의

심장부로 들어서다. 슬쩍 다른 신청자들이 맡긴 신분증을 보니 대부분 정부부처 사람들. 다들 나처럼

허드렛일하러 나온 말단직원이겠거니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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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경호처는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어둑하고 후텁지근한, 왠지 후질그레하고 눅눅한 건물을 더욱 싫게

만드는 정부의 에너지 시책에 부응한 거겠지만, 그런 느낌에 대실망.


제작해간 명찰에 청와대 경호처 도장을 190여개 찍는 동안 경호원 한분이 비타500도 아니고 자그마치 비타1000을

대접해 주셨다. 며칠전 부시가 왔을 때 진심으로 죽는줄 알았다는, 그런 하소연을 들으면서 난 묵묵히 열심히

도장을 찍고, 같이 갔던 선배는 붙임성있게 말을 섞고. 여기 나오면 사설 경비업체로 많이 스카웃되시죠, 아니오

그렇지도 않아요, 젊은 사람이나 받아주겠지만 어디 젊은 사람들이 거길 가겠어요, 어쨌든 가족보다 일이 항상

우선이라 사람이 할 짓이 못 되요, 협회는 공채인가요 뭐이런..


흘낏흘낏 본 그분의 가슴과 어깨, 그리고 허벅지는 역시나 솔찮이 튼실한 게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지원나온

경호원들과는 풍기는 포스나 냄새가 달랐다. 뭔가 엄청 억세고 딱딱한 걸 천 조각 아래 움켜놓고 있다는 느낌.

조선호텔에서 한국측 경호 실무팀하고 만나 동선을 확인할 때에도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그리고 우린 아마 청와대 경호처 건물엔 발칸포나 탱크같은 대형 화기가 숨겨져 있지 않을까, 이런 얘기를 하면서

몰래 건물 뒤켠 그늘에 숨어 각자 가슴에 차고 있던 패찰을 카메라폰으로 찍느라 잠시 부산스러웠다는.

사실 나는 경호처 건물도 좀 찍고 몇장 사진을 찍어두고 싶었던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선배 앞에서 왠지 그렇게

촐싹대는 건 대범치 못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언젠가 청와대 내부에서 사진찍으면 아예 폰카 내부의 사진을

전부 지워버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서 꾹 참고 있었던 거다.


나오면서 패찰을 돌려줄 때, 휴대폰에 실드는 안붙였었나요? 라고 물었던 걸로 보아, 그리고 그 옆에 유리창닦는

그 칙칙이 세정제가 놓여있던 걸로 보아, 아마 좀더 '중심부'에 가깝게 접근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휴대폰 카메라

렌즈에 스티커를 붙이는 게 아닐까 싶었다.

 07-1학기 도예의 기초

인사동 탐방 및 관람기

졸업하기 전에 꼭 듣고 싶었던 ‘도예의 기초’ 수업을 결국 수강하는데 성공한 1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주위 사람들에게 무엇을 만들어 줄까 주문을 받고 있던 때였다. 가족들이 인사동 근처에서 외식을 한 어느 날, 어머니는 내게 인사동을 둘러보며 어떻게 만들지 안목을 좀 틔우라고 조언해 주셨다. 커다란 접시를 세 장 정도 만들어 오라시던 엄마는 당신의 접시가 제대로 만들어질 수 있을까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셨던 것 같다. 내가 예기치 않게 커다란 자기가 만들어져서 대패로 밀어가며 모양을 다듬고 있다는 얘기를 괜히 했구나 싶은 상황이었다. 한 시간여 둘러보며 사진을 찍어 두었는데, 몇몇 특이한 모양의 컵이 눈에 띄었다. 아무 생각없이 쓰던 컵이 이렇게 다양한 손잡이 모양을 가질 수 있구나, 이렇게도 모양을 잡을 수가 있겠구나, 하는 작지만 스스로 기특한 아이디어들을 얻을 수 있었다. 일상적인 쓰임으로부터 사물들을 해방시킬 때 그 본래적인 의미가 드러난다는 마그리트의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다음 작품을 위한 아이디어를 제법 비축해서 수업에 들어가니, 교수님이 불쑥 내주신 숙제, 인사동 탐방 및 관람기 제출. 이미 한 번 다녀왔지만, 사실은 아주 반가웠다. 컵 말고 다른 도예 작품들도 좀더 살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고, 가족들과 함께 다니느라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못했던 탓도 컸다. 이번에는 갤러리 위주로 여유있게 시간을 두고 다녀보고 싶었고, ‘쌈지길’, ‘가나아트스페이스’와 ‘공예갤러리 나눔’ 등 몇 곳을 축으로 해서 도자기가 보이는 가게마다 들어갔다. 사실상 모든 갤러리와 샵들이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눈치껏 뒤돌아서서 가린다거나, 주인이 한눈 파는 틈을 이용하여 사진을 찍어야 했다. 가끔 정말 사진으로 남겨두고 싶은 작품이 보일 때에는 우선 찍고 보자는 심정으로 후다닥 찍고선 제지하는 주인에게 사과하고 도망나오기도 했다. 굳이 사진을 안 찍고 머리에 담아오거나 스케치를 해오면 될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한없이 변형되는 형태와 윤곽선들을 기억하려 애쓰는 것은 무리란 사실을 금방 깨달았다. 게다가 고등학교 2학년 이후 그림을 그리는 따위의 용도로는 전혀 쓰인 적이 없던 내 오른손으로는, 그 미묘한 뉘앙스와 느낌의 차이를 잡아낼 만큼 섬세한 스케치가 불가능했다.



처음에는 비슷비슷해 보이던 주전자, 찻잔, 술잔 같은 것들이 차츰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단순히 색감이나 질감의 차이만이 아니라, 주둥이를 말아올린 느낌이나 형태잡힌 선의 윤곽을 조금은 더 민감하게 분별해 낼 수 있게 된 것 같다. 특히 차주전자의 복잡하고도 미끈한 형태를 보면서 저걸 어떻게 만들어냈을지 경이로움과 동시에 도전의식을 느끼게 되면서, 조금씩 다른 주둥이나 뚜껑의 형태라거나 손잡이의 처리 방식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마침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차주전자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다양한 사이즈의 독특한 주전자들을 구경하면서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도 해보다가 기어코 팜플렛의 도자기 사진을 촬영했다. 아무리 머릿속에 넣어두고 기억하려고 하거나 무딘 손으로 스케치를 해보아도 그 형태를 허물어뜨리지 않고 떠올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갤러리에서 일하시는 분이 ‘도자기 공부하는 사람이 팜플렛 가격을 아끼면 어떡해? 팜플렛을 촬영하는 사람은 또 처음 봤네’라고 구박하셨지만, 정작 도예의 기초 수업을 들을 뿐인 왕초보가 도예 공부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 비쳐졌다는 사실에 마냥 흡족할 뿐이었다.



여섯 시간 가까이 돌아다니며 인사동을 끝에서 끝까지 다니다보니, 흙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빚어낼 수 있는지, 내가 지금 얼마나 많은 것들을 만들고 싶어졌는지 깨닫고 문득 놀라버렸다. 수업에 처음 들어올 때만 해도 그저 머그컵 한 세트와 화분 정도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굽 모양, 손잡이 모양, 주둥이 모양 하나하나에도 무언가 의미와 느낌을 불어넣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불끈했다. 비록 몸은 다소 지치고 피곤했지만 촬영이 금지된 이 곳에서 백여장의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과 무언가 도자기를 보는 안목이 조금은 올라간 것 같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흙을 가지고 놀기만 해도 정신건강에 좋다는 뉴스가 최근에 보도된 적이 있다. 아닌 게 아니라, 도예 수업을 듣는 네 시간동안 꼼짝도 않고 손끝에 정신을 집중하는 작업이 너무나 매력적이라고 느끼고 있던 터였다. 가끔은 전생에 도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라는 택도 없는 망상이 머릴 스쳤지만 주위 사람들의 야무지고도 센스있는 손끝을 보면 꼭 그런 것같지도 않다는 생각도 교차한다. 인사동에서도 그랬지만, 이제는 무엇이든 보면 저걸 흙으로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먼저 생각하게 된다. 술집에서는 술잔과 술병을 보면서, 음식점에서는 그릇과 접시를 보면서 말이다.



인사동의 어느 갤러리에서 한 도예가가 남긴 글귀가 너무 인상적이어서 적어왔다. 비록 이 정도의 쾌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하기는 건방진 초짜지만, 그래도 흙을 만지면서 이런 비슷한 즐거움을 얻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주전자는 참 재미있다.


꼭지를 만들 때는

젖꼭지를 연상하며

뚜껑을 여닫을 때는 살갗이 닿는 느낌으로,

몸통은 둘이 한데 어울어지는 감각이 일게 만들었다.


절정은 注口를 통해 흐르는 물을 느낄 때이다.


이렇게 보고 만지고 느낀 상상까지 확대할 수 있는

주제는 그리 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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