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세던가, 처음 포돌이 포순이 캐릭터를 제공하며 집회 현장에서 인형가죽을 뒤집어쓴 경찰을 만들어냈던 게.
그야말로 양의 가죽을 쓴 늑대란 느낌이 점점 강해진다. 물론 모든 경찰 구성원을 싸잡을 생각도 없고, 경찰력 자체가
없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이렇게 착한 척 귀여운 척 '민중의 지팡이'입네 하면서도 결국은 '상부'의
명령에 따라 학살도 주저치 않는 엄연한 '합법적 폭력조직'의 양면성이 엄존한단 걸 잊으면 안 될 거 같단 이야기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셨길 바랍니다..그날의 화염이 자꾸 눈 속에 어른거려서..오래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참사가 벌어졌던 건물 옆 골목을 들여다보니 지역 전체가 재개발로 인해 허물어진 상태였다. 이미 많이 부서졌고,
앞으로 철거를 앞둔 듯 텅 비어버린 건물들. 거기에 철거민분들과 유가족들은 다시 삶의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여기 아직 사람이 산다. 여기, 사람이 있다.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반년, 여기에 있는 사람, 여기서 외치는 소리에
귀기울여야 할 사람은 뭘 하고 있는 걸까. 뒷산에서 '아침이슬'을 흥얼거리며, 아...나도 한때는 철거민이었고
소상인, 노점상이었으며 의분 넘치는 운동권이었노라고 자뻑에 취해 있는 걸까.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고 노무현 전대통령 노제 때도 반입이 금지되었던 만장용 대나무다. 죽창으로 언제든 변신할 수 있어서라나.
사실 용산참사의 일차적인 평가는 너무너무 명료하다. 생존권 투쟁에 나선 철거민에 대한 과잉진압. 거기에
덧붙여 철거민에 대한 보상의 법적 문제라거나 재개발사업의 불합리함, 등등을 따질수야 있겠지만, 일단 사람이
죽었다. 그것도 여섯 명이나. 안전수칙도 어기고, 그것도 용역과 함께 과잉진압했다, 미안하다, 진상조사해서
재발 방지하겠으며 책임자에 대해 처벌 확실히 하겠다. 이런 말 한마디 못한다니 말이 되나.
'심심한 유감을 표합니다' 정도도 이분들에겐 사치스러웠나.
그러는 와중에 전면에서 부딪히는 건 극도로 날카로워진 철거민분들, 유가족분들과 전/의경들을 앞세운 경찰이다.
이곳으로부터 심심찮게 들렸던 신부님들에 대한 구타, 과잉 대응 사례들은 급기야 천주교 측의 공식 항의로까지
이어졌었다고 들었다. "권력자의 개", 혹은 "민중의 보호자"라는 극단적인 그림 가운데 근래 급격히 어느 쪽에
가까운 모습이 선연히 부각되는 건 사실이다.
주변 철거완료지역을 에워싼 벽에 붙어있는 경고문. 애초 손해 보상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하루아침에 퇴거를
강요당한 철거민들이 살 길을 터달라고 이곳에 버티는 순간, 불법점유, 무단침입, 업무방해, 재물손괴, 폐기물관리법
위반, 폭력행위, 주거침입, 특수주거침입죄..에 더해 안전사고의 책임까지 몽창 떠맡게 된다. 국가의 보호로부터
배제당하게 된 그들인지라, 용역에게 협박당하고 구타당해도 의지할 곳이 없다.
"우리의 웃음이 없는 민주주의 민생은 거짓이다."
어쩌면, 민주주의란 환상인지도 모른다. 가진자들은 여전히 그대로,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절대법칙은 공고한데
대체 뭐가 민주주의란 말인지. 그게 현실이다..라고 한다면 할 말이 궁해지는 거다.
용산 참사 유가족분들을 돕기 위한 장터랄까, 포차가 열렸었나 보다. 철거된 건물들, 철거될 건물들이 온통 주위를
삼엄하게 메운 가운데 샛노랗고 새파랗고 새빨간 간판이 왠지 슬프다.
바로 뒷 건물은 그림책 화가분들이 전시 공간으로 쓰고 계셨다. 전시공간이자 작업공간으로 쓰고 있는지 사람이
계속 상주하는 것 같았다. 우린 끝까지 간다. 우린 힘들지 않다. 최면 문구와도 같은 그런 말들을 현수막에 내걸고.
옆의 텃밭은 고추, 상추, 깻잎, 열무 등 이런저런 채소류를 품고 있었다. 필요한 만큼 가져가서 드시라는 소개글과 함께,
'공동선을 위한' 공권력이란 문구가 언뜻 눈에 띈다. 공동선은 별게 아니다. 같이 살자는 거. 다른 사람을 억압하거나
피해주지 않고 함께 살려나가자는 거. 쉽다면 이토록 쉬운 거다. 채소 나누기만큼.
한 쪽에 쌓인 녹슨 쥐덫들. 아마 예술하시는 분이 작업하려고 놔두신 건지, 퍼포먼스나 작품에 이미 쓰였던 건지.
80년 광주 학살, 09년 용산 학살. 단순 등치에는 분명 무리가 있다. 그리고 희생자에 대해 '우리'라는 마인드를 갖기란
더욱 쉽지 않을 거다. '전라도치'나 '철거민'이나 '우리'란 단어로 묶기는 어렵기 매한가지겠지만 말이다.
'여기 사람이 있다'란 책의 한대목에 그런 말이 있다. 철거민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이 철거민이 될 거란 상상은 꿈에도
못했노라고. 마치 예기치 못한 교통사고처럼 재개발 사업이 닥친 거고, 제도적으로 '보험'조차 정비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었음은 그 이후에야 깨달은 것 뿐이었다. 그뿐이었다고 했다.
아마도 외국인들이 만든 현수막인 듯 하다. 맞춤법도 맞지 않고, 다소 낯선 색감에 못알아들을 단어들이 가득하지만,
그 의도와 의지만은 분명하다.
집은 살 것, 상품이 아니라 살 곳, 기본적인 권리다. 집을 이윤을 위한 상품으로만 여기는 순간, 투기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순간 그 공간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일상이 길거리에 내동댕이쳐진다.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계속해서
열악한 지역으로, 철거와 재개발을 기다리는 지역으로 옮겨가 결국 나락으로 빠져들고 만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에
그들의 게으름, 못 배움, 재수없음, 팔자...를 운운할 바에야, 차라리 2등국민의 존재를 인정하는 게 솔직하겠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몇몇 작품들이 전시되어있었다. 미완성으로 남아있는 이 연필 그림. 그날의 장면이 생생하다.
얼굴이 비어있는 여섯번째 영정사진, 그 경찰과 유가족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정부는, 그들에게는
제대로 사과하고 유감을 표했을까. 그조차 제대로 했을지 모르겠다.
가난한 사람들이 살던 집을 부수고 생겨난 멋진 도시는, 가구수도 적고 집값도 월등히 뛰기 마련이다. 주변집값도
덩달아 뛰어 버리니 결국 집주인과 세입자를 막론하고 원주민 대부분에겐 동네를 떠나는 길 밖에 남지 않는다.
사람들이 대통령을 정비해요. 시멘트를 발라서.
문득 걱정이 생겼다. 이런 작품 찍어올리는 것도 저작권 위반일까. 작가의 의지와 별개로 고발당할 수 있다고 얼핏
들은 거 같은데..문제가 된다면 바로 삭제하는 수 밖에. 쫓겨날 일없어 좋겠다, 불지를 놈없어 좋겠다.는 마지막 문구.
영업합니다, 란 간판이 되려 휑한 분위기를 더했다. 뒷쪽으로 쭉 늘어선 음식점들이 몇군데 문을 열긴
했지만...아마 조만간 다른 곳으로 옮겨가야 할 거다. 제대로 보상은 받으셨을까.
무슨 일이 또 있었던 걸까. 바로 옆의 맥주집 지하로 내려가는 길엔, 폴리스라인이 쳐져서 출입을 금지했다.
참...황량하다. 잔뜩 깨져나간 유리조각들이 흥건한 물처럼 고여있었다.
어느덧 해가 뉘엿거리며 기울어지는 시각. 건물 철거가 완료된 공터를 둘러싼 가림막에 마지막 햇빛조차 텁텁하다.
사람이 살았던 곳, 누군가가 살림을 하고 누군가가 미래를 상상하며 몸을 뉘였을 곳. 세입자의 재산을 털어
건설자본과 구청, 일부의 배만 불려주는 현재의 재개발이 쓰나미처럼 예기치않게 지나고 난 현장이라 더욱 살벌하다.
돈없고 빽없고 힘없으면 당해야지, 어떡하냐. 라고 묻는다면 역시 할 말이 궁하다. 우리의 민주주의란 게, 그정도로
허약하고 별볼일없었다.
이런 식의 구도를 굳이 잡고 싶진 않았다. 뭔가 가진자와 못가진자의 대립을 상징하려는 것처럼 보이잖아.
그런 의도가 아니고, 사실 그런 구도로 보는 게 맞지도 않는다. 이건 '부'를 둘러싼 싸움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한쪽 벽이 완전히 허물어져 집의 내부가 훤히 보이는 집 한채를 마주쳤다. 적나라하게 내부가 드러났다. '집'이란
단어에서 느껴지는 안온함과 포근함 따위 모두 휘발되어 버린, 시멘트 블럭만 거기 남아있었다.
용산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도 그런 거다. 적나라하게 내부가 드러났다. '우리'란 단어에서 헤아려지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그들에 대한 국가의 대우란 게 얼마나 황공무지한지.
그야말로 양의 가죽을 쓴 늑대란 느낌이 점점 강해진다. 물론 모든 경찰 구성원을 싸잡을 생각도 없고, 경찰력 자체가
없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이렇게 착한 척 귀여운 척 '민중의 지팡이'입네 하면서도 결국은 '상부'의
명령에 따라 학살도 주저치 않는 엄연한 '합법적 폭력조직'의 양면성이 엄존한단 걸 잊으면 안 될 거 같단 이야기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셨길 바랍니다..그날의 화염이 자꾸 눈 속에 어른거려서..오래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참사가 벌어졌던 건물 옆 골목을 들여다보니 지역 전체가 재개발로 인해 허물어진 상태였다. 이미 많이 부서졌고,
앞으로 철거를 앞둔 듯 텅 비어버린 건물들. 거기에 철거민분들과 유가족들은 다시 삶의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여기 아직 사람이 산다. 여기, 사람이 있다.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반년, 여기에 있는 사람, 여기서 외치는 소리에
귀기울여야 할 사람은 뭘 하고 있는 걸까. 뒷산에서 '아침이슬'을 흥얼거리며, 아...나도 한때는 철거민이었고
소상인, 노점상이었으며 의분 넘치는 운동권이었노라고 자뻑에 취해 있는 걸까.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고 노무현 전대통령 노제 때도 반입이 금지되었던 만장용 대나무다. 죽창으로 언제든 변신할 수 있어서라나.
사실 용산참사의 일차적인 평가는 너무너무 명료하다. 생존권 투쟁에 나선 철거민에 대한 과잉진압. 거기에
덧붙여 철거민에 대한 보상의 법적 문제라거나 재개발사업의 불합리함, 등등을 따질수야 있겠지만, 일단 사람이
죽었다. 그것도 여섯 명이나. 안전수칙도 어기고, 그것도 용역과 함께 과잉진압했다, 미안하다, 진상조사해서
재발 방지하겠으며 책임자에 대해 처벌 확실히 하겠다. 이런 말 한마디 못한다니 말이 되나.
'심심한 유감을 표합니다' 정도도 이분들에겐 사치스러웠나.
그러는 와중에 전면에서 부딪히는 건 극도로 날카로워진 철거민분들, 유가족분들과 전/의경들을 앞세운 경찰이다.
이곳으로부터 심심찮게 들렸던 신부님들에 대한 구타, 과잉 대응 사례들은 급기야 천주교 측의 공식 항의로까지
이어졌었다고 들었다. "권력자의 개", 혹은 "민중의 보호자"라는 극단적인 그림 가운데 근래 급격히 어느 쪽에
가까운 모습이 선연히 부각되는 건 사실이다.
주변 철거완료지역을 에워싼 벽에 붙어있는 경고문. 애초 손해 보상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하루아침에 퇴거를
강요당한 철거민들이 살 길을 터달라고 이곳에 버티는 순간, 불법점유, 무단침입, 업무방해, 재물손괴, 폐기물관리법
위반, 폭력행위, 주거침입, 특수주거침입죄..에 더해 안전사고의 책임까지 몽창 떠맡게 된다. 국가의 보호로부터
배제당하게 된 그들인지라, 용역에게 협박당하고 구타당해도 의지할 곳이 없다.
"우리의 웃음이 없는 민주주의 민생은 거짓이다."
어쩌면, 민주주의란 환상인지도 모른다. 가진자들은 여전히 그대로,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절대법칙은 공고한데
대체 뭐가 민주주의란 말인지. 그게 현실이다..라고 한다면 할 말이 궁해지는 거다.
용산 참사 유가족분들을 돕기 위한 장터랄까, 포차가 열렸었나 보다. 철거된 건물들, 철거될 건물들이 온통 주위를
삼엄하게 메운 가운데 샛노랗고 새파랗고 새빨간 간판이 왠지 슬프다.
바로 뒷 건물은 그림책 화가분들이 전시 공간으로 쓰고 계셨다. 전시공간이자 작업공간으로 쓰고 있는지 사람이
계속 상주하는 것 같았다. 우린 끝까지 간다. 우린 힘들지 않다. 최면 문구와도 같은 그런 말들을 현수막에 내걸고.
옆의 텃밭은 고추, 상추, 깻잎, 열무 등 이런저런 채소류를 품고 있었다. 필요한 만큼 가져가서 드시라는 소개글과 함께,
'공동선을 위한' 공권력이란 문구가 언뜻 눈에 띈다. 공동선은 별게 아니다. 같이 살자는 거. 다른 사람을 억압하거나
피해주지 않고 함께 살려나가자는 거. 쉽다면 이토록 쉬운 거다. 채소 나누기만큼.
한 쪽에 쌓인 녹슨 쥐덫들. 아마 예술하시는 분이 작업하려고 놔두신 건지, 퍼포먼스나 작품에 이미 쓰였던 건지.
80년 광주 학살, 09년 용산 학살. 단순 등치에는 분명 무리가 있다. 그리고 희생자에 대해 '우리'라는 마인드를 갖기란
더욱 쉽지 않을 거다. '전라도치'나 '철거민'이나 '우리'란 단어로 묶기는 어렵기 매한가지겠지만 말이다.
'여기 사람이 있다'란 책의 한대목에 그런 말이 있다. 철거민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이 철거민이 될 거란 상상은 꿈에도
못했노라고. 마치 예기치 못한 교통사고처럼 재개발 사업이 닥친 거고, 제도적으로 '보험'조차 정비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었음은 그 이후에야 깨달은 것 뿐이었다. 그뿐이었다고 했다.
아마도 외국인들이 만든 현수막인 듯 하다. 맞춤법도 맞지 않고, 다소 낯선 색감에 못알아들을 단어들이 가득하지만,
그 의도와 의지만은 분명하다.
집은 살 것, 상품이 아니라 살 곳, 기본적인 권리다. 집을 이윤을 위한 상품으로만 여기는 순간, 투기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순간 그 공간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일상이 길거리에 내동댕이쳐진다.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계속해서
열악한 지역으로, 철거와 재개발을 기다리는 지역으로 옮겨가 결국 나락으로 빠져들고 만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에
그들의 게으름, 못 배움, 재수없음, 팔자...를 운운할 바에야, 차라리 2등국민의 존재를 인정하는 게 솔직하겠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몇몇 작품들이 전시되어있었다. 미완성으로 남아있는 이 연필 그림. 그날의 장면이 생생하다.
얼굴이 비어있는 여섯번째 영정사진, 그 경찰과 유가족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정부는, 그들에게는
제대로 사과하고 유감을 표했을까. 그조차 제대로 했을지 모르겠다.
가난한 사람들이 살던 집을 부수고 생겨난 멋진 도시는, 가구수도 적고 집값도 월등히 뛰기 마련이다. 주변집값도
덩달아 뛰어 버리니 결국 집주인과 세입자를 막론하고 원주민 대부분에겐 동네를 떠나는 길 밖에 남지 않는다.
사람들이 대통령을 정비해요. 시멘트를 발라서.
문득 걱정이 생겼다. 이런 작품 찍어올리는 것도 저작권 위반일까. 작가의 의지와 별개로 고발당할 수 있다고 얼핏
들은 거 같은데..문제가 된다면 바로 삭제하는 수 밖에. 쫓겨날 일없어 좋겠다, 불지를 놈없어 좋겠다.는 마지막 문구.
영업합니다, 란 간판이 되려 휑한 분위기를 더했다. 뒷쪽으로 쭉 늘어선 음식점들이 몇군데 문을 열긴
했지만...아마 조만간 다른 곳으로 옮겨가야 할 거다. 제대로 보상은 받으셨을까.
무슨 일이 또 있었던 걸까. 바로 옆의 맥주집 지하로 내려가는 길엔, 폴리스라인이 쳐져서 출입을 금지했다.
참...황량하다. 잔뜩 깨져나간 유리조각들이 흥건한 물처럼 고여있었다.
어느덧 해가 뉘엿거리며 기울어지는 시각. 건물 철거가 완료된 공터를 둘러싼 가림막에 마지막 햇빛조차 텁텁하다.
사람이 살았던 곳, 누군가가 살림을 하고 누군가가 미래를 상상하며 몸을 뉘였을 곳. 세입자의 재산을 털어
건설자본과 구청, 일부의 배만 불려주는 현재의 재개발이 쓰나미처럼 예기치않게 지나고 난 현장이라 더욱 살벌하다.
돈없고 빽없고 힘없으면 당해야지, 어떡하냐. 라고 묻는다면 역시 할 말이 궁하다. 우리의 민주주의란 게, 그정도로
허약하고 별볼일없었다.
이런 식의 구도를 굳이 잡고 싶진 않았다. 뭔가 가진자와 못가진자의 대립을 상징하려는 것처럼 보이잖아.
그런 의도가 아니고, 사실 그런 구도로 보는 게 맞지도 않는다. 이건 '부'를 둘러싼 싸움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한쪽 벽이 완전히 허물어져 집의 내부가 훤히 보이는 집 한채를 마주쳤다. 적나라하게 내부가 드러났다. '집'이란
단어에서 느껴지는 안온함과 포근함 따위 모두 휘발되어 버린, 시멘트 블럭만 거기 남아있었다.
용산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도 그런 거다. 적나라하게 내부가 드러났다. '우리'란 단어에서 헤아려지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그들에 대한 국가의 대우란 게 얼마나 황공무지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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