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멋진 풍경이었다. 한라산등성을 구불텅 넘어가는 왕복 2차선, 길 양편으론 억새가 무성했고 저 멀리로는

어슴푸레 오름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눈이 한뼘씩 쌓인 밤길이었고, 지나는 차 한대 마주치기 쉽지 않았다.

어느 순간 차는 멈춰야 했다. 짙은 먹장구름이 조금씩 헤쳐지면서 동이 트고 있었다. 앞뒤로 오던 차들이

조금은 일찍 알아서 피해가겠구나, 비상등 깜박이도 잘 보이겠구나, 그 와중에 살짝 안심이 되었다.

불과 그 몇십분 전. 캄캄한 어둠 속에서 형형히 헤드라이트를 밝혔던. 

내리막길, 빙판길이었다. 돛대처럼 펄럭, 펼쳐올라 부풀었던 본넷은 그나마 얌전히 구겨 닫았다.

그런 거였다.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차, 몇 걸음 동동거리기도 전에 발등까지 차오르게 쌓인 눈 덕에 신발도

흠뻑 젖고, 손발도 꽁꽁 얼어버렸댔다. 사실은 내가 다치지 않은 것, 누굴 심각하게 다치게 하지 않은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라 생각한다. 충격의 순간, 죽는 건가 했다.

제주 지역주인 '한라산'도 19도쯤의 순한 소주가 나왔더랬다. '한라산물 순한소주'. 후유증인지 만성피로인지

몸과 마음이 여전히 축축 처져있어서, 순한소주 따위 말고 저 북조선산스러운 '한라산'을 마셔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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