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톰 동쪽 입구에 연해 있는 두 개의 사원, 톰마논과 차우 싸이 떼보다. 동쪽 입구에서 뻗어나가는 길을

사이에 두고 두 사원의 위치나 형태가 흡사하여 쌍둥이 사원으로 여겨진다고 하지만, 앙코르 유적에 대한

흥미를 더해주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톰마논은 앙코르 왓을 세운 수리야바르만2세 때 세워진 사원이라 그런지 여기저기에서 그 유사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는데, 아직 앙코르왓을 보기 이전이었는지라 정확히 어디가 어떻게 닮았는지는.

천년도 넘은 사원의 무게감, 천년을 두고 돌덩이에 뿌리를 내렸을 이끼들도 돌의 무게감을 배웠다.

그리 크지는 않은 사원이라 한 바퀴 훌쩍 돌아보는데 한 삼십분 정도. 사실 반대쪽의 '차우 싸이 떼보다'란

기묘한 이름의 사원이 신경쓰여서 조금 살살 돌아봤다.

글쎄 길건너편엔 무슨 테마파크에서 봄직한 반짝반짝거리는 사원이 세워져 있었던 것. 똑같은 생김이고 방금

돌아본 톰마논과 같은 장식의 구조지만, 때깔이 너무 생경하다.

대충 뜨거운 태양에 눈먼 채로 보면 나이를 좀체 가늠할 수 없고, 부분부분 과거의 원형이 보전되어 있는 곳들이

있어 그래도 완전 복제품이라거나 100% 신품은 아닌 거 같긴 하지만, 아무래도 중간중간 두드러진다.

이런 식으로. 감히 인간의 손으로는 흉내도 낼 수 없는 시간의 씻김, 그 자연스런 흔적과 함께 할 때 너무도

티가 나는 반듯반듯하고 번쩍번쩍하는 복원 부위. 시간이 지나면서 갓 지은 티가 좀 씻기고 나면 톰마논과

쌍둥이 사원으로 지어졌다는 게 좀더 실감이 나려나.

사원들 옆에 간단하게 지어올려진 천막, 그리고 보기만 해도 너무 편안해 보이는 해먹.

오랜만에 보는 봉긋한 사자녀석의 엉덩이. 이 녀석은 왠지, 봉긋보다는 불룩하단 표현이 맞을 듯 하기도.




박쎄이 참끄롱(Baksei Chamkrong), 박쎄이 참끄롱, 박쎄이 참끄롱, 뭔가 묘한 운율감과 리듬감이 혀끝에서

대롱대롱 살아난다. 앙코르왓과 앙코르톰 사이에 끼어있는 조그마한 사원, 그냥 모른 채 휙 지나기 쉬울 정도로
 
조그맣다. 더구나 다른 후대의 사원들과는 달리 탑 하나 덜렁 있는 일탑형 사원이어서, 이후의 화려하고

울룩불룩한 사원들의 실루엣과는 영 달리 한번 볼록, 하곤 끝이다.

꼭대기까지 끙끙대며 기어올라가 보았다. 저 구멍 안에는 뭐가 있을까 싶어서. 팔을 괴고 누운 와불이 놓여있고

앞에는 향과 꽃이 빼곡하게 들이차있었다. 원래 이 곳은 시바에게 바쳐진 힌두교 사원이라던데, 사실 이 땅에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불교도인 거다. 지금처럼 민족 국가 단위로 그 땅위의 소유주를 주장하고

승인했으니 망정이지, 과거의 힌두교 선인들이 보았다면 당장 제단을 뒤엎고 불상을 깨뜨렸을 일이다.

가파른 벽돌탑, 붉은 기가 언뜻언뜻 배어나는 모퉁이에서, 벽면 귀퉁이에서 마성의 매력이 뿜어져

나온다. 저런 색깔은 아마 캄보디아의 사원에서만 감상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싶다.

낑낑대며 내려오는 길, 70도의 각도라곤 하지만 체감하기론 거의 90도에 가깝다. 모로 비튼 발바닥이 겨우

지탱해낼 만큼 깔려있는 계단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느낌이다. 어느 순간 에잇, 귀찮은데 훌쩍 뛰어버릴까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아, 박쎄이 참끄롱은 '날개로 보호하는 새'를 의미한다고. 그냥, 사원 안에서는 그다지 새라거나 날개라거나

따위의 이미지가 구현된 부분은 못 봤던 것 같다.

뚝뚝을 타고 첫날 자전거로 돌며 만났던 앙코르 톰 내부를 다시 한번 돌아나오는 길. 정말, 자전거로 달릴 때와

차로 달릴 때, 그리고 걸어서 볼 때 눈에 잡히는 풍경이 다르다. 자전거로 달릴 때는 물론 언제든 멈추고 싶을

때 멈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차 안에서나 걸어가면서 뒤로 흐르는 풍경 따라 고개를 한없이 돌릴 수는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다시 만난 앙코르 톰 '승리의 문', 안녕, 크메르의 미소씨?

왠지 전에 봤을 때랑 분위기도, 뉘앙스도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아서 잠시 뚝뚝에서 내렸다. 이 녀석,

햇살의 강도니 각도니 그런 것들에 따라 느낌이 그때그때 달라지는 거 같다.

45도쯤 비튼 각도, 약간 아래에서 위로. 조명이 살짝 위에서부터 스미도록.

'크메르 미소'씨의 얼짱 각도 뽀샵사진.





정오의 햇볕이 내리쬐어 그림자라곤 발밑에서 조금 채일 뿐인 시간, 근 세네시간 동안 돌아보아도 아쉬움이

남던 앙코르왓. 다른 곳을 먼저 돌아보길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야말로 크메르 문화의 정수, 롤루오스 유적부터

북쪽 반띠아이 쓰레이의 모든 시도들은 앙코르왓에서 만개하고 있었다. 시간이 넉넉치 않다면 정말 여기만

봐도 괜찮겠다, 싶기도 하고. 물론 다른 자잘한 사원들이 갖고 있는 나름의 매력과 운치는 모두 생생하지만.

내려서 돌아나오기 전, 포즈를 잡고 계신 스님을 보고 슬쩍 풍경에 담았다.

명예의 테라스 위에서 바라본 앙코르 왓의 참배로. 저 끝에 서문이 보인다.

참배로를 걸어나가면 느꼈던 충만함. 앙코르왓의 구석구석까지 스며있는 과거와 현재의 다감한 손길, 여기가

어딘지 언제인지도 잊을 만큼 강렬하게 감각을 자극했다.

다섯번째 선물상자를 지나 서쪽문, 앙코르 왓 선물 오겹상자를 품고 있던 해자 위로 나왔다.

연못 위로 요요한 구름들이 유영중이다.

앙코르 왓의 전경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연못, 아니 그 이상을 담아내고 있다. 앙코르 왓이 이고 있는 하늘까지.

그리고 앙코르 왓을 떠받치고 있는 벽돌로 다져진 지면까지.

돌아나서는 길, 무려 200여미터나 된다는 해자를 걷는다는 행위는,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더욱 뚜렷이 느끼게

해주었다. 왠지 정말 어딘가 '피안'에서 '차안'으로 돌아온 느낌. 조금씩 사물이 일상적인 것으로 돌아오고,

바닥의 돌 하나, 돌사이 품어진 풀 하나를 조금은 범상한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조금은 둔감하게 세상을

받아들여도 된다는 것, 그게 일상을 살아간다는 의미이기도 한 게다.




내부에는 거의 장식이 없는 밋밋한 벽면으로 일관하던 앙코르 유적들, 앙코르 왓쯤 오니까 내부에도 무엇인가

장식을 하려 했던 시도들이 남아있다. 가슴엔 동그라미 두 개가 선연한 미완성의 압사라 여신들. 완성되진

않았지만 압사라 여신들의 둘레를 휘감고 있는 오오라같은 불꽃 장식이 멋지다.

많은 불상들이 머리가 부러진채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유독 해맑게 웃으며 머리를 지키고 있던 불상 하나.

입술엔 누가 뭔가 발라놓았는지 쥐를 잡아먹었는지.

천장 드문드문 도색의 흔적이 남아있다. 도안 자체가 꽤나 복잡한지라 일일이 구분지어 색칠하려면 굉장한

수고로움이 따랐을 거 같은데, 어느 한 군데라도 온전히 남아있으면 미루어 짐작이라도 하련만.

여기도 도서관이란다. 왜 이렇게 사원 내부에 도서관 건물이 많은가 했더니, 그런 건물들은 당시의 귀중품이던

'책'과 함께 제사용 집기나 향료, 심지어는 음식물까지 보관하는 창고로 쓰였다고 한다. 게다가 도서관 위치에

따라 담당하던 의례의 대상과 운영시간이 달랐다고. 남쪽 도서관은 달이 떠오르는 기간에, 북쪽 도서관은 달이

지는 기간에 각각 다른 신에게 의례를 바쳤다고 한다.

네모난 상자 안에 작은 상자, 그 상자 안에 더 작은 상자, 그런 식으로 앙코르왓을 까는 재미가 있다. 그러려면

우선 상자 하나를 열고 들어가기 전 상자의 네 바깥면을 꼼꼼히 살핀 후 상자 안쪽 네면을 다시 또 살피게 된다.

그리고 나선 다음 상자로 옮겨가는 식이다.

상자에 비기자면 앙코르왓은 총 다섯 개의 상자 안에 있는 셈이다. 그 중 두 개의 상자를 열어젖히고 나면

명예의 테라스가 나타난다. 예전에는 크메르 왕이 외국사신이나 고관대작에 베푸는 연회가 열렸을 이 테라스는

이제 여행자를 위한 '통로'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앙코르 왓의 선물상자 중에서 가장 포장이 화려한 건 세번째 상자, 명예의 테라스를 휙 지나치지 않고

외곽으로 한 바퀴 삥 돌면 나타나는 '포장지'다. 사면에 가득 벽화가 그려져있는데, 혹자는 앙코르왓의 백미는

건물의 조형미나 실루엣이 아니라 이 벽화라는 이야기도 한다.


남북으로 187미터, 동서로 215미터, 둘레가 총 800여 미터에 이르는 '세번째 상자 겉면 포장지' 회랑을 따라

각각의 주제를 가진 8개의 벽화가 조각되어 있고 일반적으로 오른쪽으로 돌며 관람한다고 한다. Godorization.

가장 섬세하고 볼만하다고 생각했던 서쪽회랑 남쪽방면, 그러니까 바로 '명예의 테라스' 오른쪽에 펼쳐지는

'쿠륵세트라의 전투' 부조. 아무래도 인도 역사에 길이 남는 대회전을 새겼으니만치 스케일도 장대하고 등장한

사람들 하나하나의 묘사가 꼼꼼했다. 그야말로 혼란스러운 난투극의 한 장면을 펼쳐 보이는 이 '쿠륵세트라'

전투가 바로 체스와 장기의 게임 규칙으로 전승된 것이라 한다.

수리아바르만 2세의 행렬도를 조각한 두번째 벽면을 넘어, 세번째 주제는 '천상과 지옥'. 굴비처럼 둘둘 엮인채

지옥으로 끌려가는 사람들도 보이고, 소처럼 코뚜레를 하고 끌려가기도 한다. 판결을 받는 영혼들의 모습, 그

판결에 따라 지옥으로 던져지는 영혼들, 나무에 거꾸로 매달린 채 칼로 베이는 벌을 받기도 하고, 온몸에 못이

촘촘하게 박히는 형벌을 받기도 하는 모습들이 적나라하다.

앙코르왓이 지금과 같은 '관광자원', 혹은 '인류유산'으로 보전받게 된 것은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불과 300년

전만 해도, 이렇게 자신의 아내 무덤을 앙코르 왓 내부에 세워두기도 했던 거다. 지금 만약 누군가 여기에다가

자신의 가족을 몰래 묻는다면 심각한 문제로 비화되고 끝내 쫓겨나겠지만, 그래도 300년쯤 먹은 건 나름의

정당성과 역사성을 획득해 버렸다. 덕분일까, 천년짜리 앙코르왓과 놀다보니 무덤이 조로했는지 꽤나 오래고

낡아 보인다. (그리고 조잡해보이기도 한다.)

이곳을 당시 다스리던 사람이 아내 무덤을 여기에 썼다는 내용을 담은 기록이 남아있다. 뭐랄까, 한국으로

치자면 '음택'을 잘 쓰고 싶었던 욕심일까. 그치만 이렇게 사람이 늘상 붐비는 곳이 되고 말았으니, 그 사람이

잘한 짓인지는 모르겠다.

약간 중국식의 냄새가 난다 싶었다. 명예의 테라스 정반대쪽, 그러니까 동쪽 회랑에 있는 그림들은 애초 기획된

기간에 끝나지 못하고 무려 400여년 동안 미완으로 남아있었다고 한다. 이미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어서

중국풍이 섞이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세력이 예전만 못했어서 그런지 딱 한눈에 보기에도 이전 벽화들만

못하게 다소 치졸해 보인다. 저기 저건, 무슨 도인이 하나 캄보디아에 등장해 버리셨다. 이런.

세번째 선물상자의 마지막 네번째 바깥면, '신과 악마와의 전쟁'이 묘사된 곳이다. 여기저기서 거대한 동물과

신들이 펄쩍펄쩍 뛰면서 악다구니를 쓰는 중이다.

싸움 장면에도 지쳐버려서, 잠시 앉아서 쉬려는데 바깥쪽 풀밭에 꼬물꼬물 뭔가 기어다니고 있었다. 저게

뭔가 했더니 원숭이.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가 이리저리 노닐고 있었다.

털의 상태로 보건대 건강 상태는 매우 양호하며 곧게 뻗은 꼬리는 저 아이들이 지금 상당히 기분이 좋은

상태임...을 나타내는 건 아닐까. 캄보디아에선 원숭이를 쉽게 볼 수 있다더니, 앙코르왓에서도 원숭이가 살고

있었다. (그리고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도 드문드문 골목길에서 원숭이를 발견해서 첨엔 깜짝깜짝 놀랐지만

나중엔 익숙해져 버렸댔다.)

마지막 부조 벽화, 왠지 원숭이들이 우글우글 나오는 게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서유기'의 오리지널 버전인가

싶다. 서유기의 등장인물 '손오공'이 동남아 신화로부터 유래했다더니. 마침 원숭이들이 정글에서 뛰노는-

정확히 말함 네 발로 꼬물대며 기어다니는-모습을 보고 나서인지 부조된 원숭이 얼굴들이 확확 다가온다.

수고했어요~ 세번째 포장지는 다 둘러봤으니 이제 들어가 보도록 해요, 라며 금방이라도 미사일이 튀어

나올 것 같은 강철 가슴을 가진 압사라가 말했다. 명예의 테라스에 올라서니 앙코르왓 중심부가 보인다.




앙코르 왓으로 향하는 길, 며칠째 들어서는 길목이라 낯설지 않은 그 길에 노란색 풍선이 떴다. 앙코르 왓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보고 싶다면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그렇지만 또 달리 생각하면, 이미 세계의 이름난

유적들의 전경은 눈에 많이 익숙해져 있는 거다. 그것들을 실감하기 위한 첩경은 그 전체적인 그림에 세세한

자신만의 디테일을 새겨 넣는 것,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며 세세한 부분들을 가슴에 담는 것이라 생각한다.

앙코르 왓에 들어서려면 무려 이백여 미터에 달하는 해자 위에 놓인 한 줄기 참배로를 지나야 한다. 바닥에

깔린 포석들이 불규칙한 듯 하면서도 잘 짜맞춰진 채 서쪽에서 동쪽으로, 그렇게 천년을 버티고 있었다.

참배로 가운데, 이를테면 중앙선 같은 위치 왼쪽으로는 살짝 돌들이 일어서있긴 했지만 유독 그곳만 무너진 건

뭔가 이유가 있어보일 만큼, 다른 곳의 포석들은 탄탄하게 자기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쩌면 중앙선 왼쪽과

오른쪽의 건축 연대가 다르거나 건축 책임자가 다를지도 모르겠다.

참배로 옆으로 보이는 해자, 그리고 무성한 정글의 수풀. 해자는 방어의 목적으로 건설되기도 했지만 이 사원,

앙코르 왓에서 행해지는 의례로 참석하기 전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기 위한 정화의 공간이기도 했다고 한다.

더러운 진흙속에서 싹을 틔워 미끄덩대는 녹조류 가득한 연못물을 헤치고 나와 봉긋 피워올려지는 연꽃봉오리.

게다가 아침에 꽃잎을 열고 저녁이 되면 꽃봉오리를 다시 닫는 그 모양이 세계의 시작과 끝을 상징한다고

여겼댄다. 앙코르 왓의 연꽃봉오리 모양 사원보고 여봐라는 듯한 진홍빛 연꽃.

해자 안으로 들어서면 커다란 공간이 열린다. 예전에 살던 곳 근처 올림픽공원이 1kmX1km의 사이즈였다고

하는데, 이건 그보다 더 크다. 동서로 1.5km, 남북으로 1.3km. 그 공간이 오롯이 앙코르 왓을 위해 바쳐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앙코르 왓은 비슈누를 위한 힌두교 사원이니까, 비슈누에게 바쳐진 셈이다.

아침에 들어서니 태양이 스물대며 떠오르는 걸 바라보며, 동쪽을 향해 걸어야 했다. 구름이 슬쩍슬쩍 태양을

가릴 때마다 격하게 달라지는 빛의 농밀함.

앙코르 왓은 무려 37년 동안 지어진 사원이라고 한다. '왓'은 불교 사원을 뜻하는 단어로, 애초에는 단순히

'앙코르'라고 불렸다고 하며 왕궁이자 사원이자 도시의 역할을 겸했다고 한다. 비록 목조로 지어졌을 왕궁과

가옥은 사라져버렸지만 약 2만명이 거주했던 도시의 분위기는 얼핏 상상해 볼 수 있다. 아직 조금은 이른

시간임에도 바글대기 시작하는 여행객들.

앙코르 왓은 단순히 사원 하나가 아니라 도서관, 연못 등의 각종 '부대시설'을 포함한 공간이다. 참배로를 따라

가는 길 좌우에 포진해 있는 신비한 느낌의 도서관. 건물이 저렇게 '꼬질꼬질'해지기 전에는 얼마나 이뻤을까

싶을 정도로, 뭐랄까 다보탑의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이 언뜻언뜻 비치는 것 같다.

도서관에 들어가서 이리저리 둘러보니 내부는 너무 단촐하다. 장식도 없고 담백해서, 문밖 풍경에 눈에 간다.

앙코르 왓 중앙성소를 바라본 사진들. 구름이 두껍게 내려앉았다가도 깜빡했다는 듯 금세 고개를 내미는 햇살

덕분에 앙코르 왓의 실루엣이 선명하다.

앙코르 왓은-물론 다른 힌두교사원들도 그렇지만-좀더 선명한 피라밋 구조를 느낄 수 있다. 중앙으로 다가서면

다가설수록 한 층씩 고도가 올라가는 거다. 힌두신들이 산다는 메루산, 그 세계 자체를 지상에 구현해 놓으려는

의지가 담겼지 않을까, 사방에서 사원을 수호하고 있는 동물상들.

본격적으로 사원 내부로 들어서기 직전 걸어온 길을 돌아보았다. 아직 해가 본격적으로 성내기 전이라 그다지

힘들진 않았지만, 뙤약볕이 내리쬐는 정오쯤 되면 그늘이 귀한 꽤나 고생스런 길이 될 거 같다.

사원의 북서쪽 귀퉁이, 꽤나 많은 여행객들이 사원 내부로 들어섰는데 워낙 큰 공간에 풀려서 그런지

다들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연밥무늬 창살은, 외부로부터의 가혹한 햇살을 막고 내부의 습기를 밖으로 원활히 빼내는데 적합한

형태로 고안된 것이라고 한다. 그에 더해 안에서는 밖을 잘 볼 수 있지만 밖에선 안을 잘 볼 수 없단

점도 고려된 게 아닐까 싶다.

입구에서부터 건물 내부를 휘휘 도는 회랑이 시작하는 지점, 두 명의 여신이 양쪽을 지키고 서있었다.

근데 왜 저렇게 가슴과 코가 맨들맨들 닳아버린 거지, 여기도 뭔가 저런 데를 부비부비하며 소원을 빌면 애기가

생긴다거나, 남자아이를 잉태한다거나, 로또 대박이 될 거라고 믿는 분위기인가.

원래 여기는 물이 저만큼 차 있어서 목욕재계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쓰였다고 한다. 이를테면 앞선 해자에서

'상것'들과 함께 몸을 섞기 싫은 '높은분'들을 위한 VIP용 욕탕이랄까.

오랜 연원의 유적들을 보면 늘 돌빛깔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서 잊기 쉽지만, 사실은 당대의 모습은 꽤나 화려한

채색과 치장이 되어있었던 게 대부분일 거다. 이집트의 피라밋이나 오벨리스크, 상형문자 가득한 사원들도

사실 굉장히 현란하고 화려한 아프리카풍의 색감이 가득했었지만 전부 씻겨지고 벗겨지고. 여기 역시 마찬가지

채색의 흔적만 아스라히 남아있었다.

반띠아이 쓰레이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정교한 문양들, 각진 모서리가 여전히 쫑긋 서있는 게 신기하다.

중앙사원의 턱밑에서. 아쉽게도 앙코르왓의 최중심부에 서있는 중앙성소에는 올라가지 못하도록 막아 놓았다.

무려 70도에 이른다는 가파른 계단은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인간이 아닌 신을 위한 계단이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신이라고 저런 계단을 잘 오르리란 보장은 없을 텐데. '신성'이 꼭 가파른 계단 오르기 따위로 증명될

건 아니겠지만, 인간을 초월한 존재를 드러내는 참신한 기제인 거 같기도 하다. (다른 식으로 신적인 걸 어떻게

증명하고 나타낼 수 있을지 생각해 보면 꽤나 골치아픈 문제인 거 같다.)

중앙사원을 바라보며 둘레를 한바퀴 탑돌이하듯 돌아 보았다. 돌로 반듯하게 다져진 바닥, 돌로 만들어 세워진

벽, 돌로 만들어 끼워진 창, 그리고 돌로 만들어 올려진 지붕과 장식들까지. 온통 돌이다.

중앙사원에 있는 탑들마다 사받으로 뻗은 계단이 있지만, 서쪽으로 향한 계단들은 약간씩 경사가 완만하다고.

사람들이 탑에 오르내리려면 서쪽 계단으로만 다녔다고 한다.

한쪽 벽에 조각된 압사라 댄스를 추고 있는 여신들. 딱히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듯한 분방한 자세와 표정이 딱

맘에 들었다.

앙코르 왓은 항상 어딘가 조금씩 보수 중이라고 한다. 그래도 전체 그림을 망칠만큼 흉하게 넓은 부위를

덮고 보수 중이거나 탁 튀는 색의 휘장을 둘러놓고 하는 게 아니어서 별로 거슬리지 않았다. 아마 그 때문에

중앙사원 내부로 들어가는 게 금지되었던 것 같지만, 이 정도 거리를 두고 보는 것도 충분히 좋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잘 다듬지도 않은 돌들을 그냥 무질서하게 아무렇게나 쌓아둔 듯한 중앙사원의 탑 꼭대기.

그러면서도 전체적으로는 봉긋한 곡선이 아름답기도 하고, 삐쭉삐쭉 솟은 날카로운 돌의 모서리조차 잘 안배된

것처럼 보인다. 중앙사원탑 위에 짧막하니 올라 있는 저건 현대에 들어와 보완한 피뢰침인 걸까.

아침에 앙코르왓으로 오면서 보았던 노랑색 풍선, 이제 꽤나 높이 올라섰다. 아니, 이미 몇 차례 뜨고 내리기를

되풀이했을 거다. 저 위에서는 이 오돌토돌한 질감이 또 어떻게 느껴졌을까, 궁금해졌다.

차츰 햇살이 강렬해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사원 내부는 마치 동굴 내부에 들어온 양 시원하고 약간의 촉촉한

습기마저 느껴졌던 것 같다. 어디 바람 잘 불고 그늘진 곳을 찾아 잠시 쉬어 가기에 딱 좋은 타이밍.

앉아서도 계속 두리번두리번, 아름다운 사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뭐라더라, 앙코르 왓의 도면을 그리려면

슈퍼 컴퓨터로도 삼년이 걸린다던가, 그런 식의 '선정적'인 이야기는 그다지 믿기지도 않고 의미도 없지만

굉장히 세밀하고 구석구석 아름다운 사원인 건 실감했다.

문득, 창 너머에서 압사라 여신들이 나타났다. 회색빛 돌벽에 퀴퀴한 색감으로 조각되어 있던 그녀들이 입고

있던 옷은 기실 저런 화려한 색감과 금빛 장식이 반짝이는 거였을 터. 여행객들이 얼마인지 모를 돈을 내고

그녀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어서, 살짝 무임승차.




프놈 바껭(Phnom Bakheng)에 올라 바라본 캄보디아의 석양.

처음에는 두껍두껍한 구름들이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날렵하니 달려나가는 걸 보며 오늘 해가 지는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을까, 싶었다.

조금씩 상앗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하늘, 그렇지만 태양이 뜨겁던 대낮에 보았던 파란 하늘은 한점도 남지

않은 채 안개처럼 풀어진 구름이 하늘가득 점령해 버렸다.

프놈 바껭의 사암 돌덩이 건물에 노란 햇살이 스며들어 자체뽀샵의 경지에 올랐다.

휙휙 소리가 들리는 착각이 들만큼 순식간에 구름이 쓸려나가더니 노란 햇살이 본격적으로 비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서부터 점차 커지기 시작한 빗소리, 쏴아...

하늘은 이렇게 노랗게 밝아져 가는데,

사람들은 우산을 쓰고 우왕좌왕이다. 열대의 스콜을 제대로 실감하는 순간.

빗방울이 들이치는 우산들 너머로 하늘만 혼자 청청하다. 발딛은 이 곳과는 다른 세상, 스크린 속에 펼쳐지는

풍경 같이 비현실적이기도 하고, 황홀하기도 하고. 몽롱해지는 느낌이다.

그 와중에도 하늘 풍경은 계속 변하고 있었다. 당장 눈 앞의 비구름조차 휙휙 어디론가 내달리던 상황, 저 멀리

두꺼운 구름장막이 매초 새로운 질감과 두께감을 과시하며 만화경처럼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울렁울렁 노랗게 빛나는 햇살을 배경으로 막 결혼을 한 듯한 신혼부부의 드레스가 흠뻑 젖어버렸다.

악플처럼 까맣게 몰려오는 먹구름.

어느새 이곳도 비가 멈추고 뉘엿뉘엿 넘어가는 햇살이 만만찮게 뿜어내는 온기가 공기가득 충만해졌다.

한순간 눈을 떼기가 아쉬운 풍경들이 계속 이어졌다. 굳이 말이 더 필요하지 않았던 장면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해가 떨어져내리는 궤적을 좇았다. 석양을 보면 어쩔 수 없이 불러내어지는 센치한 감정,

저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사그라들고 어느새 어둠 속에 묻혀버린다는데야.

돌아갈 길이 멀어 한 걸음 먼저 프놈 바껭에서 내려섰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지킨 채 저물어가는

남국의 태양에 젖은 옷을 말리고, 지친 몸을 쉬이고, 하루의 기억을 다독다독 갈무리하고 있었다.

프놈 바껭은 야트막한 산 위에 세워진 사원이다. 예전엔 일출이나 일몰을 보러 몰려들었던 여행객들이 어두운

발치를 조심하지 못해 대형 사고도 난 적이 있다고 한다. 여전히 남아있는 야트막한 경사를 따라 조심조심

내려오면서도 끝내 눈을 떼지 못했던 하늘.





그리스 신들이 올림푸스 산에 오밀조밀 모여살고 있다 하면, 힌두신들이 모여사는 산 이름은 '메루산', 바로

바꽁(Bakong)의 사원이 바로 그 메루산을 형상화한 힌두교 사원의 최초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마치 불이라도 붙은 듯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기운을 이미지화한 사원의 중앙성소가 바로 메루산, 힌두신들의

고향이다. 중앙성소로 올라가는 길은 완만한 피라밋처럼 층층이 쌓인 채 동물상들로 수호되고 있다.

중앙성소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선명해지는 여신상 조각들. 뭔가 아름다운 것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거리잡기가 필수적인 것 같다. 너무 가까워도 전체 그림과의 조화가 뭉개지고, 너무 멀어도 디테일의 섬세함이

사라져 버리니 말이다.

군대에 있을 때 일년에 한 번씩 했던 '동계전술훈련', 대체 공군에 가서 하이바에 꽃꽂이하듯 풀떼기를 꼽고는

뛰어다니는 경험을 한 사람이 얼마나 되려나. 그냥 저 화분처럼 되어버린 사원을 보고 그 하이바가 생각났다.

중앙성소를 오르는 길에 마주했던 코끼리상, 길쭉하게 뻗어나가야 할 코가 부러져나가버리고 없지만, 그래도

얄포름하니 쉽게 펄럭일듯한 큼직한 귀의 묘사라거나, 완고하고 굳건해 보이는 네 다리와 넙데데한 발바닥,

그런 걸로 충분히 코끼리의 특징을 잘 잡아내고 있는 것 같다. 굳이 진짜 코끼리 가죽처럼 거칠거칠하고 완전

건조한 채 두툼한 느낌의 조각상 표면 감촉을 들지 않더라도.

사원이 드리워낸 시꺼먼 그늘, 강렬한 태양 아래 고스란히 노출된 세계와 극명하게 대비된 채 어둠이 내린 듯

어둡고 촉촉한 느낌의 또다른 세계.

중앙성소로 올라왔던 길과는 다른 편으로 내려가면서 돌아본 풍경. 여기저기 풀들이 자리를 꿰어차고 앉아

조금씩 사원을 허물고 있었다.

거의 완전히 허물어져내린 전탑 하나. 어디로도 이어지지 못하는 가짜문 하나만 간신히 남아있다.

얼핏 보면 앙코르왓 사원의 분위기와 비슷하다. 알고 보니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원래 바꽁의 중앙성소는 이런

모양이 아니었는데 전쟁으로 파괴되고 나서는 그새 건축된 앙코르왓의 중앙탑 모양을 따서 재건되었다는 얘기.

사원만 바지런히 따라다니며 보다보니, 퍼석퍼석하고 낡은 느낌의 누런 사암색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나 보다.

광택이 번쩍거리는 생생한 샛노란 꽃 한송이를 보니 생명이 느껴진다.

그리고 다시 바라본 바꽁 사원, 혹은 힌두신들의 고향이라는 메루산의 전경. 뭔가 느낌이 달라진 거 같기도.

시바신의 화신이라는 소 한마리, 메루산에 안 오르고 사원에서 돌아나오는 길 뚝방에서 풀을 뜯고 계셨다.

롤루오스 유적군은 롤레이, 쁘리아꼬, 바꽁으로 이어지며 얼추 돌아본 셈이다. 다시 씨엠립 시내로 들어가기 전

아쉬워서 슬쩍 돌아본 주변에서 발견한 캄보디아의 쓰레기통.

그리고 여기도 시바의 화신, 유유히 풀을 뜯고 있는 뽄새가 아늑해 보이기는 하는데, 지천에 깔린 녹색 풀들을

두고도 넌 대체 왜 이리 갈비뼈가 앙상한 거니. 소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영 풀지 못하는 궁금증 하나.




이제 조금씩 인가가 밀집한 지역으로 들어가는 길, 제법 표지판도 구색을 갖춘 '숲길'이 나타났다. 노란 바탕에

아이둘이 어정쩡하게 서있는 걸로 보아 아이들이 많으니 조심하란 표지 같다. 근처에 학교라도 있다거나.

가만히 보면, 조금 더 큰 남자아이는 폴포트 치하의 캄보디아라거나 중공 등 다른 공산주의 국가에서 흔히 보일
 
법한 모자를 쓰고 책가방을 옆춤에 차고 있다. 저걸 뭐라 해야 하나, 베레모도 아니고 약간 빵모자스럽다고

해야 하나. 모자 가운데 별모양 배지라도 붙어있을 것 같은, 색깔도 왠지 핏기없는 풀색이나 갈색 계열일 듯한.

롤레이는 씨엠립 인근의 앙코르 유적군 중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지라고 한다. 9세기 말에 완성되었다고 하니

다른 사원들에 비해 짧게는 백년, 길게는 이삼백년을 앞선 셈이다. 그 이삼백여년의 차이가 이토록 컸던지

사원이 거의 황폐해져 있었다.

총 네 개의 벽돌탑이 자리잡고 있지만 이미 저렇게 옆구리가 터져나가서는 토사가 잔뜩 흘러나온 탑도 있고,

가운데 중앙성소 역시 연꽃이 봉긋하니 피어오른 형태가 많이 이지러져서 끝이 뭉툭해졌다.

오히려 시선이 가던 건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놀고 있던 아이들. 내 어렸을 적 오징어 모양 그림을 그려놓고

뜀뛰기하며 놀았던 것처럼, 비슷하게 뭔가를 그려놓고 폴짝거리며 놀다가 여행객을 보고는 살살 눈치보며

장난을 걸어온다. 먼저 앞장서서 사원을 함께 돌아봐주기도 하고, 카메라를 의식하고 자세도 잡아주고.

다른 곳에 가면 귀엽지만 그악스럽게 달라붙던 꼬마 상인들이 여기는 아예 보이지 않는 거로 보아, 또 여기에

있던 동안 다른 여행객은 전혀 보지 못한 것으로 보아 꽤나 조용한 동네인가 보다. 그래서 그만큼 더 아이들도

순진하고 때묻지 않은 것 같고. 역시 환경이 중요하다. 사람손을 많이 타고 안 타고의 환경적 요인이 아이들의

눈망울을 바꿨다.

사원 한 귀퉁이에서는 노인 한 분이 돗자리 위에다가 새하얀 뭔가를 고르게 펴놓고 말리고 계셨다. 뭘까, 하고

가까이 가서 보니까 하얀 쌀. 말려서 뭔가 누룽지처럼 해드시려는 건가.

아이들이 아무리 다가가서 장난을 걸고 툭툭 찔러봐도 그저 귀찮아 그늘 아래 널부러져 있던 강아지 한마리.

이 곳의 더위는 개들의 성미조차 노곤하게, 혹은 온순하게 만들어버렸다.

롤레이 옆에 불교 사원이 있는지, 밝은 감색의 승려복이 깨끗이 빨아진 채 널려 있었다. 저걸 그냥 몸에 둘둘

감으면 옷이 되는 건가 싶고, 빨면 참 금방 마르겠다 싶기도 하고.






반띠아이 끄데이, '방으로 둘러싸인 사원'이라는 의미라고 하지만 방이라기 보다는 '벽'으로 둘러쌓였다는

느낌이다. 벽도 사방이 온전히 둘러쳐진 그런 벽이 아니라, 네 면중 한 면쯤은 꼭 허물어져 있는 듯할 정도로

허술해져 버린, 그런 사원이다.

그런 사원에서 가장 눈에 많이 띄었던 건 마치 방금 조각해낸 것처럼 선명한 윤곽과 신선한 색감이 살아있는

여신상들. 이 여신상 말고도 다섯여섯 걸음마다 사원 외벽에 여신상이 모셔져 있었는데 약간씩 다른 표정

다른 몸짓을 한 채 세워져 있었다.

피사의 사탑이 유명해진 이유는 건물이 살짝 기울어서. 이 정도 어긋난 채 기울어진 출입문은 어떤지.

그런 출입구를 지나면서, 또 다른 통로를 지나면서도 좀처럼 마음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위험' 표지판들.

표지판이 아니어도 이미 눈으로 보기에도 충분히 스릴있어 보이는 데다가, 굳이 '노 터치' 같은 사인을

붙이지 않아도 손을 대면 금세라도 폭삭 무너지지 않을까 싶어 아주아주 조심스런 행동을 유발하는 사원.

멋진 부조가 조각되어 있는 기둥. 압사라댄스를 추고 있는 여신들이 좀더 활짝 웃었다면 좋았을 것 같기도 하고

아님 그냥 지금처럼 살짝 웃음을 물고 있는 표정이 더할나위없이 좋아보이기도 하고.

조금씩 기둥이 녹아내리는 걸까, 아마도 철분 성분이나 비슷한 게 기둥 위에서부터 녹아내리는지 까만 얼룩이

기둥을 타고 다크서클처럼 내려왔다. 저만큼 얼룩이 내려오는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을지. 백년에 일센치?

안쓰럽도록 꽁꽁 동여매어진 사원의 연꽃모양 탑.

문틀을 액자삼아 넘겨다본 저 너머의 풍경들.

그러고 보면 사원의 지붕을 장식하고 있는 건 기와가 아니라 기와무늬 돌들이다. 커다란 돌을 올리고는 그렇게

기와무늬를 조각해 넣었나보다. 그 기와무늬 하나하나에 공들여 내려앉은 초록빛 이끼가 화려하다. 또다시

눈앞에 나타난 기우뚱 무너져내리기 직전의 벽면까지.

여기저기서 펼쳐져 있는 거미줄들. 저렇게 사람만한 크기의 거미줄이 펼쳐지고 유지되고 있다는 건 그만큼

사람의 손을 여전히 많이 타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앙코르왓'으로 대변되는 앙코르

유적지가 세계적인 명소라고는 해도, 그 세세한 디테일까지 고루 살펴보기란 쉽지 않은 일일 테니.

빛과 어둠의 대비가 강렬한 사원 내부의 공간들, 예전에 이 건물들을 막 지어올렸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을 거

같다. 아마도 그래서 건물 외부에 정성을 쏟아 조각을 하고 장식을 한 것과는 달리 내부는 거의 아무런

장식이나 무늬를 더하지 않았을 거다.

교정이 필요할 만큼 심하게 들쑥날쑥한 치열처럼 이리저리 어긋나 있는 기둥들. 술취한 녀석들이 우르르

어깨동무하고 비틀비틀 걸어가는 그림 같기도 하다.

사원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 왠지 사원과 스펑나무가 이렇게 사이좋게 함께 있는 모습은 처음 본 거 같았다.

대체로 사원을 스펑나무가 잡아먹고 있는 듯한 무시무시하고 치열한 광경이었는데, 아마 이들도 수백년내에

그렇게 되겠지만, 아직까지는 꽤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중인 듯한 사원과 나무.

사원에서 돌아나오는 길, 한쪽에 좀 본격적으로 마련된 기념품 샵에서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캄보디아 전통

의상을 입은 허수아비 인형들.




캄보디아#3. 앙코르왓 3일 코스짜기.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외곽지역의 유적들을 둘러볼 작정이라, 아예

하루종일 뚝뚝을 대절했다. 씨엠립 시내에서 분쪽으로 약 40킬로미터를 달려야 나오는 '반띠아이 쓰레이'라는

곳 주변과 씨엠립 남동쪽으로 약 15킬로미터를 달려야 나오는 '롤루오스 유적군'까지 가기로 하고,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25달러에 흥정을 마쳤다. 원래 씨엠립 시내 근처에서 종일 뱅뱅 돌아도 15달러 정도 한다고 하니

나쁘지 않은 가격이다. 여행자의 안전을 위해, 그리고 아마도 유적을 돌아보고 나와서 바로 찾기 쉽도록

뚝뚝 운전사마다 저렇게 등록번호가 적혀있는 조끼를 입고 있다.

씨엠립에 흔치않은 보행 신호등. 여긴 아직 교통법규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나라다. 

씨엠립 시내에서 종종 마주칠 수 있는 한국어 광고판. 시원한 소주가 있다고 하지만, 글쎄...캄보디아에 왔으니

캄보디아의 술을 마셔주는 게 인지상정.ㅋ

오토바이를 개조해 삼륜차로 만든 뚝뚝이 부앙~ 오토바이 엔진의 얇고 경망스런 소음과 함께 달려나가는데

전날 자전거를 타고 헥헥대며 달리던 거리가 금세 뒤로 멀어진다. 이렇게 길가에서 다그닥거리며 달리던

마차도 순식간에 뒤로 물러나버리는 정도의 속도. 뜨거운 햇살은 차양이 가려주고 시원한 바람이 맹렬하게

들이치니 한량놀음이 따로 없다.

앙코르 왓 우쭉에 쁘라삿 크라반, 그 위의 반띠아이 끄데이, 쓰라쓰랑을 거쳐 북쪽으로 내달리기로 했다.

쁘라삿 크라반은 씨엠립 북쪽 앙코르 유적지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앙코르톰/앙코르왓에 가까이 붙어있는

힌두교 사원이다. 정갈한 인상의 담홍색 벽돌탑이 다른 잿빛 돌덩이로 이루어진 사원들과 다른 산뜻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연꽃 형태를 형상화한 모양의 건물이야 비슷하다고는 해도 색감과 따스한 벽돌의 질감때문인지

영 다른 느낌이다.

가운데 있는 중앙 성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와서 향을 피우고 꽃을 봉헌하고 소원을 비는 곳으로 쓰임이

있었다. 이런 건 '문화유산'에 대한 훼손인 걸까 아니면 문화유산 이전의 '삶의 공간'으로 제대로 활용하고

있다고 해야 하는 걸까.

벽돌탑 안에는 네 개의 팔에 각각 원반과 연꽃, 법라패와 곤봉을 쥐고 있는 비슈누가 있었다. 원반은 비슈누의

가장 중요한 무기이자 상징으로, 실제 고대에는 전투 무기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곤봉 역시 오랜 연원을 가진

무기임에는 틀림없으며, 연꽃은 해가 뜨면 피고 지면 봉오리를 닫는 속성을 따서 '세계' 그자체를 상징한다고.

법라패란 건 뭔지 모르겠는데 무슨 악기인가 보다. 법라패를 불면 신들은 힘이 생기고 악마는 두려움에 떨게

된다는 설명이었다.

어라, 근데 무수한 팔을 가진 비슈누들이 조각된 벽면을 따라 눈길을 훑어 올리다 보니, 천장이 뚫려 있었다.

간결한 형태의 피라밋처럼 조금씩 주둥이를 오무려가는 벽면 위쪽으로부터 쏟아지는 하얀 햇살.

캄보디아어인가, 아니면 이전에 쓰였던 문자인가, 사원의 문틀에 빼곡히 조각되어 있던 기기묘묘한 글자들.

글자라기보다는 무슨 함축적인 그림이나 아름다운 기호 같다.

아침 일찍부터 나선 덕분에 사람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둘러볼 수 있었다. 대략 삼십분, 휘적휘적 걸으며

아직은 기분좋게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구경하고 나니 조금씩 여행객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앙코르 유적군 쁘레룹(Pre Rup)에서 바라본 캄보디아의 석양 무렵. 천지창조화에 그려진 뭉게뭉게 구름들이

그림만은 아니었구나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던 하늘.

해가 완전히 지고 나면 가로등 하나 없는 깜깜한 길을 자전거로 한시간 넘게 달려야 한다는 사실 앞에서, 어쩔

도리없이 서둘러 일어서야 했다. 자전거로 앙코르 유적지를 돌아보는 건 굉장히 매력적이지만 이런 단점이

있는 셈이다. 체력적으로도 그렇게 쉽지는 않고.


...어둠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나는 전설이다'에서 윌 스미스가 지는 해와 경쟁했듯, 그렇게 정신없이 페달을

밟아 최대한 달렸고, 일단 어두워지고 난 이후에는 길가로 바싹 붙어 조심조심 안전운행에 신경썼다. 사실

차들이 그렇게 많지도 않고 쌩쌩 달리지도 않는 터라, 달릴 만 했다. 현지 캄보디아인들의 주요 교통수단 역시

뚝뚝이라는 3륜으로 개조된 오토바이나 자전거라고 하는데, 아마도 퇴근하는 듯한 자전거 탄 사람들의 인파

속에 섞여드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씨엠립 시내는 자그마한 마을 같은 느낌이지만,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바글대는 활기넘치는 곳이다. 마치

배낭여행자들의 성지라 칭해지는 태국의 카오산 거리 같은 분위기이기도 하고.

2층의 한 레스토랑에 올라 저녁을 주문하고 사람들을 구경했다. 다양한 인종, 다양한 연령대, 다양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넘실넘실대고 있었다. 하나 공통점이 있다면 '여행자' 특유의 여유넘치고 열린 분위기랄까. 어깨를

툭 치며 말을 걸어도 반갑게 웃으며 말을 섞어줄 것 같은 그런 분위기.

중간중간 가게들의 차양에는 '론리플래넷'에서 추천한 명소라느니, 누가 왔다 갔다느니 하는 광고성 문구들이

적혀 있기도 했다. 가이드북 중 가장 좋은 건 역시 '론리플레넷'이 아닐까 (근거없이) 믿고 있는 나로서는 저

가게를 한번 꼭 가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지만 압사라 댄스는 더 괜찮은 곳이 있다고 들었으니 일단 참기로.

외국에 나가면 놀라는 것 중의 하나가 '밤문화'다. 아무리 태국의 카오산 거리라거나 캄보디아의 씨엠립이라고

해도 밤이 으슥해지는 12시 어간이 되면 거리가 한산해지고 가게들도 대략 정리하는 분위기가 된다. 이래서

한국이나 일본만큼 밤 늦게까지 놀 수 있는 도시가 참 드물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는 거 같다. 아니면 이런

유명 여행지역은 아무래도 다음날 아침부터 다시 일정이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일찍 마치게

되는 걸 수도 있겠고.



앙코르왓 인근 주택가에는 마당-마당이라고 딱히 뚜렷한 구획이 지어져 있는 건 아니지만-에서 이런 새들이

자유로이 활보하고 있었다. 저게 칠면조인지 오골계인지, 조류의 이름이래봐야 후라이드치킨 양념치킨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인지라 뭔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이국적인 장면이었다. 

그런데 왜 여기에서 마주치는 소들은 다들 갈비뼈가 몇 개인지 셀 수 있을 정도로 말라붙었을까. 일을 많이

시켜서일 수도, 혹은 더워서 힘이 드는 건지도. 먹을 게 부족하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얼추 해가 저물어갈 시간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앙코르 유적군 외곽에서 씨엠립 시내의 숙소-그것도 하필

꽤나 외곽에 잡아버린-까지 자전거로 가려면 또 두시간여 밟아야 하기 때문에 그걸 감안해 보면 얼른 서둘러

움직여야 했다. 마음이 살짝 조급해져서 그런지 하늘도 조금 어두워진 느낌.

길 양편으로는 우리나라의 촌에서 보이는 그런 무논이다. 빼곡하게 집약적으로 모를 심어놓지는 않았는지

듬성듬성 비어 있지만, 아열대 기후 덕분에 일년 삼모작까지 가능하다는 이 나라에서도 싱그런 녹색이다.

쁘레룹에 가서 석양을 보는 걸로 3-day Pass의 첫날은 시마이하기로 했다. 기어 따위 없는 자전거에서 쉼없이

페달을 밟는 건 보통일이 아니었다. 중간에 잠깐 내려붓던 스콜, 열대성 강우의 물방울이 따꼼거렸지만 차라리

시원해서 좋았다. 그것도 잠시, 채 십분이 되지 않아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다시 후끈거리는 찜통 속으로.

쁘레룹 앞에 도착하니 이미 석양을 보러 온 듯 여행객들을 실은 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앙코르 유적지에서

석양을 보기에 좋은 장소중 하나로 꼽히는 쁘레룹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냥, 많이 파괴된 채 중앙 성소를 감싸고 섰는 네 개의 보조 사원, 총 다섯 기의 연꽃모양 건축물이 비바람에

쓸리고 닳아빠져 있었다. 쁘레 룹은 사실 이 곳에 올라 석양을 보고 싶단 이유만으로 들른 사원이었다.

위에 오르니 별로 넓지도 않은 공간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일찌감치 명당을 차지한 채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들은 전부 한국어로 된 가이드북에 한국말을 시끄럽게 쓰고 있었다. 왠지 그 압도적인 한국인 여행객

비율에 민망해져 버렸다. 외국인들은 석양 보는 거 별로 안 좋아하나? 아님 이 장소가 석양보기에 좋다는

팁은 한국어 가이드북에만 있는 거 아닐까? 이런저런 추측을 해보았지만, 단일 장소에 이렇게 특정 국가

여행자들이 몰려있다는 건 어쨌거나 그다지 건전한 현상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

해가 넘어가려는 즈음, 서늘한 바람이 하늘끝에서부터 불어왔다. 구름들도 물통 속 담궈진 붓에서 잉크가

빠져나가듯 삽시간에 쏴아, 하고 하늘 바깥으로 번져나간다.

파노라마로 어떻게 연결해 보려고 찍어 보았으나 실패. 그치만 해가 구름에 가리고 조금씩 땅 아래로 빨려

들어가는 타이밍의 하늘이란 너무 이뻐서, 계속 질릴 줄 모르고 하늘을 보고 카메라 뷰파인더를 보고.

약간씩이지만 다 다르다. 잠깐 사이에도 구름의 모양과 위치는 급변하고, 구름에 반사되는 햇살의 양과 강도에

따라 그 풍부한 느낌과 질감마저 달라지는 것 같다.

구름이 많아 해가 떨어지는 장면을 직접 볼 수는 없었다. 아마 조금 더 뭉개고 있었다면 찍었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버스나 뚝뚝을 대절한 게 아니라 두 다리만 믿고 자전거 페달을 한 시간 넘게 밟아야 할 몸인 거다.

가뜩이나 교통법규도 안 갖춰진 동네, 가로등 따위 정비되어 있지 않은 동네에서 어둑한 길에 자전거를 타는

불상사는 피하고 싶어 아쉬움을 가득 머금은 채 자리를 떠야 했다.

안녕 사자야~ 인사하고 쁘레룹을 내려섰다. 뒤에서는 여전히 한국말이 다른 나라 언어들을 위압한 채 우렁차게
들리고 있었을 만큼 한국인이 '쁘레룹 석양전망대'의 대세였다.

그래도 아쉬워서, 가파른 각도의 계단을 내려서면서도 연신 눈과 카메라는 하늘을 찾았다.

와중에 두 번째 등장하는 '나'.

급변하는 일기 상태가 고스란히 구름의 형상에 반영되는가 싶다. 저 멀리에서 유유히 피어오르는 뭉게구름,

여기저기서 연기처럼 솟아오르는 두터운 구름, 그리고 눈앞에서 내려앉기 시작하는 깜깜한 먹구름.

그야말로 변화무쌍한 하늘, 그리고 남국의 구름이었다.


때로 어떤 사원들은 다른 사원을 짓기 전 공법을 시험하고 디자인을 구현해 보기 위한 '시험판'의 역할을 맡게

되기도 하고, 임시로 다른 사원의 역할을 대행하기 위한 '가건물'의 역할을 맡기도 한다. 자야바르만 7세가 

아버지를 위한 큰 규모의 사원인 쁘리아 칸(캄보디아#13. 파괴된 듯 이어지는 사원의 명맥, 쁘리아 칸(Preah

Khan)
)을 세우기 전 그보다 작은 사이즈로 지었던 사원이 바로 따쏨이다.


아마도 그래서 중요성에서 많이 밀리기 때문일까, 사원 내부는 어찌 할 수 없이 드러나는 퇴락과 붕괴의 조짐을

억지로 막아놓는 안간힘의 뚜렷한 흔적들이 강렬하게 새겨져 있었다.

금세라도 비바람 한차례면 무너져 내릴 듯 기우뚱한 입구. 이미 돌덩이가 몇개씩 빠진 이빨처럼 듬성거린다.

입구 하나를 집어삼켜 버린 나무, 처음에 과연 어디에서부터 씨가 싹을 틔우고 가냘픈 연두빛 잎을 내밀었을까.

어떻게 생각하면, 나무 뿌리가 땅속 깊은 곳에서부터 이 입구를 움켜쥔 채 땅 위로 끌어올린 느낌이기도 하다.

곳곳에서 드러나는 균열과 붕괴의 조짐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왜, 저렇게 지키고자 하는 걸까.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인간들이 자신들의

시대를 '근대', 혹은 '현대'라고 규정짓고 시대구분을 하면서부터 본격화된 박물, 역사 박제화의 시도들.

그 이전까지는 무너지고 부서지면 그 뿐, 이렇게 처절하게 시간을 거역하려는 움직임이 없었다. (대체 지금이

'현대'라고 규정지어 버리고 나면, 백년이백년 후의 사람들은 스스로의 시대를 어떻게 규정지을까. 현대를

넘어서도 몇번은 넘어섰을 테니, 탈탈탈현대쯤? post-post-post-modernism? 늘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차라리 무너지고 사그라들도록 냅두는 것은 안 될까. 어쩌면 '인간이 왜 죽도록 냅둬서는 안 되는지'와 같은

도덕률과 당위의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잔뜩 얽히고 섥힌 나무뿌리, 혹은 줄기. 어디서부터 줄기고 어디서부터 뿌리라 해야 할지. 차분하게 가부좌

틀고 앉아 수인을 맺고 있는 부처들의 자태가 고고하다.


 

앙코르 유적지의 스몰투어와 그랜드투어, 그 중에서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얼추 하룻동안 돌아보게 되는

그랜드투어 루트를 자전거로 밟고 있다.

앙코르 왓으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앙코르 왓은 앙코르 유적지 중 하나,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하나의 사원이고, 근처에는 아기자기한, 혹은 거대한 사원들과 유적들이 즐비하다. 그렇게 유적지와

유적지를 이어주는 이차선 도로 옆으로는 이따금 소가 풀을 뜯고, 원숭이가 지나가는 정글이다.

그렇게 도착한 니악 뽀안, 사실 그렇게 하나하나 다 돌아봐야 하나 하는 회의도 얼핏 스쳤지만, 어차피 루트를

따라 가고 있는 중에 마주치게 된 것이라 잠시라도 들러보기로 했다. 먼지가 풀풀 나는 비포장도로, 게다가

경사도 살짝 있어서 당장은 좋지만 나중에 돌아나갈 땐 어쩌나 싶은 코스를 오분 정도 달리니 당도했다.

니악 뽀안은 '꽈리를 튼 뱀'이라는 뜻이다. 가운데 분수대처럼 조성된 사원의 계단을 가만히 보면 두 마리의

뱀이 둘둘둘, 흔히 표현되는 잘 싸질러진 Ddong처럼 감겨 있는 걸 볼 수 있으니 이름의 의미는 충분히 알겠다.

사방으로 부조 조각이 있고, 그 중에서도 아직 많이 훼손되지 않은 조각들은 꽤나 그럴듯한 실루엣을 그리고

있었다. 원래 이 곳은 물이 가득 차있는 수상사원인데, 우기에나 물이 찰 뿐 다른 때에는 걸어서 사원 안쪽까지

들어가 볼 수 있는 거다.

주위에도 네 개의 조그마한 연못이 조성되어 있다고 하는데, 대체 물이 어디까지 잠겨들어간다는 건지 그리고

조그마한 연못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감이 오지 않았다.

그냥, 짙푸른 하늘을 보며 잠시 누워 쉬기로 했다. 딱히 여기가 어떤 곳이고 역사적으로 어떻고 조각은 어떻게

조성되었으며 재질은 뭔지, 그런 거 모르고도 그냥 정글 한가운데 커다란 운동장 벤치 같은 거 있고 마침맞게

짙은 그늘도 있으니 쉬기 딱 좋은 타이밍인 거다. 그럴 듯한 운치. 잠시 낮잠을 즐겨도 좋을 만큼 기분좋은

따뜻함, 땀이 식으며 몸이 조금씩 '찰져가는' 느낌, 게다가 쉼없이 달린 자전거로 묵직하지만 유쾌한 두 발의

나른함까지.

잠시 누웠다가 가운데까지 가보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이 말이 웃긴다. 아마 물이 들어차 있었으면 가운데

사원으로 헤엄쳐 가는 말의 형상이 그럴듯 했을 텐데, 지금은 무슨 부적붙은 말 강시처럼 두 팔을 앞으로

내뻗고는 꽁꽁 굳어있는 모습이다. 

중앙성소에서 한번 둘러보며 구경하고 있는데 저쪽 입구에서 우르르, 한 무리의 여행객들이 들어오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이 곳의 매력은 정글 한가운데서 사람 소리없이 편안히 누워 쉴 수 있었단 게 가장

컸었는데 그 평화가 깨지기 직전이다. 사람의 파도를 피해, 서둘러 다시 돌아나가기로 했다.




쁘리아 칸, 크메르어로 '신성한 검'이라는 의미의 남성적 기풍이 물씬한 사원에 도착해 자전거를 내리자마자

쫄래쫄래 쫓아오는 아이들. 조금이라도 흥미를 보이거나 웃음을 보이면 안심한 아이들은 마음놓고 말을 걸고

물건을 내밀고 지칠줄 모르고 따라온다. 어쩔 수 없는 것이, 아이들이 어떻게 그리도 하나같이 이쁘고 눈이

맑은지 웃음을 보이지 않을 수 없는 거다. 숨바꼭질이나 얼음땡이라도 하듯 쫓고 쫓기는 정신사납고 부산한

놀이를 좀 하다가 끝내 털썩 주저앉아 항복하고 만 내게 사진찍어달라며 활짝 웃어주던 아이.

쁘리아칸은 앙코르톰 바로 북쪽에 붙어있는 커다란 사원이다. 한때 불교 승려가 천명을 헤아리던 거대 사원인

동시에, 왕궁이자 도시의 기능도 병행되었던 네모반듯한 계획도시이기도 하다. 정글이 동서남북 사방에서

포위하고 슬금슬금 침투해오고 있지만 여전히 과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사원 내부의 통로들.

사원 중간중간에 배치된 경비원은 딱히 여행객들의 움직임을 제재하지는 않는다. 관람 동선이나 제한구역 등이

제대로 설정되어 있지 않아 그냥 발길 닿는대로, 거대한 사원을 돌아다니다 보면...길을 잃기도 한다.

좌우대칭에 엄격했던 크메르 유적들 안에 들어서면 어쩔 수 없다. 어디가 남쪽인지 이글대는 태양을 보고

가늠해 볼 밖에 없는 거다.

가루다, 한국에서는 불교적 전통에서 '금시조'라고 이야기하는 이 조류의 제왕은, 비슈누를 태우고 다니는

커다란 새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커다란 사원을 이고 있다는 듯 튼실한 '꿀벅지'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사원으로 들어가는 통로. 아무리 캄보디아, 앙코르왓이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라고는 해도 워낙 많은

건축물들이 산재한 터라 생각보다 여행객들로 붐비지는 않았다. 몇몇 주요 건축물만 빼고.

얼핏 보면 조그마한 집 하나가 옆의 나무에 치여서 붕괴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눈의 착각. 실제로는

꽤나 큰 사원인데다가 그보다 훨씬 징그럽도록 크고 거대한 나무다.

사람과 비교컨대 이정도 사이즈. 스펑나무라는 이 나무의 발육속도나 생장력은 어마어마해서 삽시간에 건물을

잡아먹곤 한다고, 그나마 이건 계속해서 신경써 통제하고 관리하기 때문에 좀 늦춰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이런 식으로 벽면을 움켜쥐려던 거대한 나무뿌리를 잘라서 생장억제제를 투여하기도 한다고.

틀림없이 이 사원 어딘가에 자신의 위치가 있었을 돌들이, 더이상 사람들의 기원을 들어주지 못한 채 바닥에

쓰레기처럼 널려버렸다. 그렇지만 그 위에는 이미 또 다른 사람들의 소원이 조그마한 돌멩이로 쌓이기 시작한

셈이니, 결국 어쨌거나 여전히 충실하달까.

무희의 홀이라 이름붙은 공간으로 들어서는 들머리, 사원에 소속된 무희들이 행사가 있을 때마다 공연을 했던

장소라 해서 '무희의 홀'이라고 한다. 공간에 맞는 인테리어, 무려 열세명의 무희들이 춤을 추는 동작이 조각된

문틀.

뱀의 신, 나가를 타고 있는 새의 신, 가루다. 아주아주 전형적인 크메르 유적군의 난간 '액세서리'.

잠깐 앉아서 쉴 만한 그늘을 찾고 나니 딱 이녀석과 눈이 마주보고 앉게 되었다. 뒤엣녀석은 이미 두 발만

남긴 채 자연으로 돌아갔고, 고단한 몸을 이끌고 천년 가까이 사원을 수호하는 사자 한마리.

다소 이국적인 건물이다 싶어 가이드북을 펼치니 역시, 그리스풍의 건축물이라고 딱 찝어놓았다. 여기가

바로 '쁘리아 칸', 신성한 검을 모셔놓았던 곳으로 추측되는 곳이라 하는데 대체 어떻게 생긴 검이었을까.

유난히 촘촘하게 세워진 기둥 사이로 언뜻언뜻 고이 모셔져있었을 과거 '신성한 검'의 잔영이 보이는 듯 했다.

나의 상상 : 뱀의 형상을 한 왕의 침대같은 곳에 누워 육감적인 여성으로부터 크메르식 마사지를 받고 있는

오만한 표정의 남자. 이건 당대 크메르 왕국의 생활상을 드러내는 걸까.

가이드북의 '정답' : 힌두신화에 따라 한 우주의 주기가 파괴되고 지금의 세계가 오기 전에 비슈누가 우유의

바다에서 큰 뱀 위에 누워 다음 세상을 명상하고 있는 장면.

나의 상상 : 퍼덕퍼덕 날아다니는 천사들을 배경으로 한 수레 위 가부좌 아저씨가 벌거숭이 아저씨들로부터

신앙고백을 받는 장면.

가이드북 : ...(침묵, 설명없음)

연씨무늬 창문살이란다. 뜨거운 햇살을 막으면서도 통풍을 원활하게 하고 바깥 풍경을 볼 수 있게 하려는

'조상님의 지혜'인 거다. 꼭 한옥이 어떻네 온돌이 어떻네 하면서만 찾을 수 있는 말은 아니지 않은가.

'조상님의 지혜', 우리보다 앞선 시대를 살아간 선배 인류에 대한 존중, 경탄의 표현이니까 말이다.

중간중간 세워져 있던 No Touch. 흔히 '노다지'라고 하는 말의 어원은 구한말부터 한반도에 들어와 지금의

북한 지역 금광을 채굴하던 서양인들-대개 영어를 구사하는 미국인들-이 갱도 안에서 금을 캐던 한국인 인부가

금을 발견하고 나면 손대지 말라고 하면서 '노 터치! 노 터치!', 그로부터 비롯했다는 설이 있다. 어쨌던

'노터치'란 표지판이 기우뚱 위태롭게 선 저곳도 캄보디아 현대인들에게, 인류에게 '노다지'와 같은 곳.

비록 이렇게 새초록한 이끼가 무성해지고,

문틀 가득 세심하게 조각된 무늬들이 손을 타 닳아갈 지언정,

여전히 사람들은 중앙 성소를 찾아 순례하는 마음으로 사원을 돌아 보는 거다.

앙코르왓 지역 내 어느 사원에서든, 영어/프랑스어/일본어/중국어 등 세계 언어로 가이드를 해주는 캄보디아

현지인 가이드들이 일군의 여행객 무리들을 이끌고 다니는 걸 볼 수 있다. 그 중 한 영어 가이드가 설명하던

이야기를 훔쳐들으며 함께 감상했던 자야바르만 7세의 어머니를 본딴 여신상이라던가.

같은 여신인데, 조명이 없을 때의 은은하던 미소가 조명 아래에선 '쥐잡아먹은 듯한 입술'로 덮여버렸다.

여기는 그 가이드가 은밀히(?) 안내해주며 팁을 요구했던 또다른 숨겨진 여신상. 보존 상태도 훨씬 양호하고

표정도 훨씬 당당하다. 여신이 아니라 여왕의 풍모가 풍겨난다.

한시간반 정도 둘러보니 다 둘러봤다 싶다. 나오는 길에 다시 돌아본 통로.

갈수록 문의 크기가 작아지는 것이 느껴지는지. 사원의 네 개 대문에서 중앙성소로 이어지는 통로 중

서쪽에서 이어지는 통로는 중앙으로 갈수록 문의 크기가 작아지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중앙, 왕이

있는 곳으로 갈수록 신하들의 머리가 숙여지도록 하기 위한 의도적 장치인 셈. 경복궁이나 덕수궁에서,

심지어는 수원화성에서도 왕이 지나다니는 문과 신하들이 다니는 문의 크기가 다르듯 여기 역시

마찬가지 아이디어가 건물에 반영된 거다.

머리가 날아가버린 수문장의 상이다. 이 곳을 공략했던 외적들이 크메르의 기운을 쇠하게 하기 위해 일부러

머리를 파괴했다는 건데, 그런 식으로 '기운'을 꺽기 위해 이러저러한 상징을 깨부수고 파괴하는 일은 사실

어느 나라에서나 조금씩은 자취가 남아있는 듯 하다. 백두대간의 쇠말뚝도 그렇고, 태국의 무수한 머리없는

부처상들도 그렇고.





쁘라삿 끄라반에서 반띠아이 끄데이로 가는 길, 사실 거리는 얼마 안 되는데 그 잠깐 사이에 뭔가 호기심을

잡아끄는 장면이 눈에 띄었다. 물이 들어찬 논바닥 같은 곳 근처에 몰려 있는 사람들.

정말 논일을 하고 있는 건지 궁금해서 가까이 가봤더니,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허리를 가득 굽힌 채 뭔가 일을

부지런히 하고 있는 분들이 보였다.

다른 한쪽에서는 몸빼 바지와 비슷해 보이는 바지를 입고 머릿수건을 두른 채 모심기에 여념이 없는 여성농민

분들이 계셨다. 남자와 여자가 각기 모여서 일하는 상황, 여기만 그런 건지 아니면 캄보디아의 문화가 원래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눈에 띈 또 다른 점 하나, 베트남 다녀온 사람들이 흔히 저렇게 생긴

모자를 쓰고 기념사진을 찍고 오던데, 그게 여기에도 널리 쓰이는 모자였나 보다.

조금 떨어진 곳을 보니 소도 농사에 동원되고 있었다. 두 마리로 뭔가 땅을 갈아엎는 써레질(?)을 하고 있기도,

또 뭔가를 운반하기도. 하얀색 소인데다가 뿔도 그럴듯하게 생긴, 그렇지만 다소 야윈 소들이다.

조금 더 가는 길에 마주친 원두막(?). 우리나라 초가집 지붕을 덮는 이엉을 잘 마른 짚으로 엮어서 얹듯, 

갈색으로 잘 마른 잎새를 엮어서 둘둘 말아놓은 이엉들이 푸짐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정말, 직사광선만 피할

수 있다면 바람이 솔솔 불고 하니 낮잠자고 쉬고 놀기에 참 좋을 거 같다. 딱 안성맞춤인 원두막.

그러다 보니 도착해 버린 반띠아이 끄데이. 그늘이 드리워진 돌들은 다크서클 내린 눈마냥 더욱 새까맣다.






이 소리는 캄보디아 씨엠립, 앙코르왓 사원군의 꽃인 '반띠아이 쓰레이'로 향하는 뚝뚝을 운전하는 '청'이

부르는 콧노래입니다, 라는 식으로 소개하고 싶었는데. 온통 바람소리 뿐이다.


앙코르왓 중심부에서 한 40킬로미터를 달려야 나오는 그곳, 마침 정오에 가까운 시각이라 지글거리며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아스팔트 위에는 우리 밖에 없었더랬다. 청이 뒤집어쓴 헬멧이 고작 한뼘도

안되는 그림자만 짙게 드리우는 중천의 태양, 오토바이가 거스르며 달리는 바람조차 뜨거웠던 그 때.


뼈에 추위가 저며드는 때가 아니라 해도 무시로 떠오르는 행복한 기억.





앙코르왓이 있는 씨엠립에선 신호등 같은 거 신경도 안쓰고 다녔는데, 역시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은 좀더

교통체계도 잡혀 있고 무단횡단도 함부로 하면 안 될 분위기였다. (그치만 내가 알기론 여전히 캄보디아에는

교통관련법이 정돈되지 않은 상황이라 한다.)


프놈펜에서 몇 차례나 내 앞에서 번쩍이며 제자리뜀을 즐기던 녀석, 한국처럼 빠르게감기로 돌아가는

초시계가 아니라 캄보디아스럽게 여유로운, 아마도 느리게감기중인 듯한 초시계도 인상적이었다는.






@ 캄보디아, 씨엠립.





@ 캄보디아, 씨엠립.


@ 캄보디아, 씨엠립.
더운 나라, 더운 날씨, 더운 시간대.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혀있는 캔맥주가 딱이다.

캄보디아의 특색이 드러난다는 '앙코르' 맥주, 깡통에는 무려 'my country my beer'라는 문구가 박혀 있다.

가이드북에는 캄보디아에서는 맥주를 '온더락'으로, 얼음을 띄워 마신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며칠 머무는

동안 그렇게 맥주를 서빙하거나 마시는 사람이 눈에 안 띄었던 거 같다.

테이블에 앉아서 땀을 닦고 있으려니 문득 아이들이 왔다간다. 뭔가 조잡한 악세사리류를 가득 담은 봉지를

팔에 끼고, 등에는 바구니를 끈에 묶어 매달고는, 조심스레 눈길부터 건네고는 뒤이어 말을 건넨다.

관광지인지라, 여행객들이 많이 오는 곳인지라 꽤나 뺀뺀해졌을 법한데 여전히도 수줍고 착한 아이들.

한국의 어디 재래시장에 가면, 아니면 길거리 포장마차 같은 곳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빨간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선풍기를 쐬고 있으면 그저 행복하다. 여유롭게 앙코르왓을 설렁설렁 돌다가, 배고프고 다리아파지면

아무데고 들어가 앉아 맛있는 걸 먹고 마시고. 여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거지만 특히나, 이렇게 점심을

먹는 때가 가장 뿌듯하지 싶다.

뒤가 이상해서 돌아보니 글쎄 해먹이 두개나 묶여 있다. 정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해먹이 필수품이라더니,

아무 나무등걸 두 쪽에 엮어서 추욱 늘어뜨리고는 몸을 실으면 그뿐인 거다. 식당이 좀 한산해지면 저기에

누워 쉬나 보다. 당장 애기를 재우려는 아주머니가 다리 하나로 흔들흔들 해먹을 흔들어 주고 있었다.

그 옆에서, 누에고치처럼 해먹에 휘감긴 채 세상 모르고 자는 어린 아이. 해먹이 어찌나 부럽던지.

주변을 두리번대는 것도 음식이 나오면 끝이다. 어딜 가든 무엇을 먹든 잘 먹고 맛있게 먹는 나라지만, 정말

캄보디아 전통음식들은 하나도 실망한 게 없었던 거 같다. '아목'이었던가, 전통 음식의 하나라던데, 서빙하는

아주머니의 추천대로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문둥이왕 테라스에 길게 이어진 건 바로 코끼리 테라스, 여기는 앙코르톰 동쪽 '승리의 문'을 통해 들어올 수

있었던 개선군이 왕에게 승리를 보고하던 곳이라 한다. 코로 연꽃을 휘감아 왕에게 바칠 태세를 갖춘 코끼리

코들이 벽에서 뻗어나왔다.
 
아니, 어쩌면 코끼리들의 육중한 몸으로 벽을 쌓아 왕의 전면에 도열시켜 놓았음을 상징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굉장히 유니크하면서도 재미있는 발상, 그리고 건축물이다.

코끼리 코, 하면 생각나는 건. 근데 돌로 깎였음에도 미끈하게 쭉 뻗은 코끼리 코라기보다는 팔을 스트레칭하는
것 같이 나와버렸다. 아놔.

통일신라시대던가, 이 땅에서 발굴된 막새-기왓장-무늬에도 비슷한 그림을 분명 본 적이 있다. 흔히 요새

'치우천황기'라고 흔드는 데 들어간 그 그림 말이다. 그건 사실 한민족의 고대 인물을 드러내기엔 다소 적젏치

않은 상징일지 모르겠다. 캄보디아에서도, 다른 불교 베이스의 국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이미지인 탓이다.

('치우천황'이란 인물에 대한 악의적 이미지 왜곡이 중국에 의해 이뤄졌고, 그게 아시아 문화권 일반의 악귀,

라거나 악귀를 쫓는 무서운 신, 의 이미지로 변용되었단 점을 감안해도 그렇단 얘기다.)

여기서도 빼놓을 수 없는 매혹적인 저 사자의 뒷태. 완전 잘록한 허리와 풍성한 힙의 조화라니. 사랑스럽다.

뭐랄까, 카메라 광고의 한 장면을 연출하고 싶었는데. 그들이 의식하지 않게 하겠다, 어쩌구 하는 비를

따라가다간 가랭이 찢어지겠다. 두다리를 허공에서 펄럭이며 날고 있는 압사라 여신도 비웃었다.

코끼리 테라스에서 왕이 바라본 풍경은 또 어땠을까, 싶어 휘휘 둘러보았다. 우선 정면.

멀리 보이는 건축물들은 원래 창고 용도로 쓰이다가, 나중에 외국 사신들을 접대하는 일종의 영빈관으로

쓰였을 거라는 게 가이드북의 설명이지만 글쎄. 저런 데 사람이 살기엔 좀 불편하지 않았을까, 커다란 굴뚝

아니면 무슨 화장터 같이 생겼는데.

왼쪽으로 고개를 틀면, 저쪽에 문둥이왕 테라스와, 길게 이어진 코끼리 코가 인상적인 코끼리 테라스.

오른쪽, 문무백관들이 왕의 좌우로 호위하듯 둘러서 있었겠지. 빳빳한 밀랍인형처럼.

관광객들도 눈에 잘 띄지 않는 한산하고 다소 휑한 분위기, 운치를 더하듯 어슬렁대는 검정개 한마리.

가만히 앉아 쉬고 있자니 휘적휘적대며 느릿하던 녀석이 어느새 바로 앞까지 찾아왔다. 심심했던 게냐.

왕이 서 있던/앉아 있던 바로 그 장소. 다소 기울어져 보이는 게 카메라 잡은 이의 농간이었는지 아님 원래

저 지반이 살짝 뒤틀어져 기우뚱해 있던 건지 모르겠다.


왕의 시각에 빙의되어 보자, 이게 바로 왕의 시야.




'나가'란 힌두교/불교에서 신성시되는 '뱀신'으로, 그 형태상 주로 난간에 많이 응용된다. 앙코르톰 내

문둥이왕 테라스, 코끼리 테라스 뒷켠에 있는 뗍 쁘라남(Tap Pranam) 뒷쪽 '쁘리아 빨리라이'에 있는 난간도

마찬가지.

몸의 몸통은 난간을 따라 쭉 이어져 있고, 뱀의 (무려) 일곱개나 되는 머리는 난간의 끝을 장식하고 있다.

이렇게 뱀 두마리가 인도하는 통로, 머리갯수로만 따지면 열네 머리가 인도하는 통로를 따르면 불교사원이

나타난다.

약간 이지러진 건축물, 그다지 임팩트 있는 건물은 아니었지만 문 위에 조각된 것들이 꽤나 선명해서

시선이 자연스레 옮겨졌다.

한쪽 조각면에 '우뚝' 서있는 부처, 그리고 밑에 옹송그리고 자세를 한껏 낮춘 '가련한' 중생들. 이런 식으로

신성성과 위엄을 강조한 조각은 사실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조금 거부감이 든다. 쟤넨 무슨 벌레처럼.

가이드북에서 그럴듯하게 설명해놓았던 '쁘리아 빨리라이'의 북쪽 벽. 앙코르 유적에서 찾아 보기 쉽지 않은

조각이라고 한다. 부처가 성나서 폭주중인 코끼리 머리에 손을 얹어 진정시키는 장면이라고 하는데, 왠지

하얗게 녹아내린 건지 색칠이 된 건지 그런 바람에 좀 제대로 감상하기 쉽지 않다.

그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건, 사원의 한쪽 벽면을 따라 이리저리 강렬하게 뻗어나간 뿌리가 사원의 벽돌들을

움켜쥐고 있는 장면이었다. 저건 나무라기보다는, 뭔가 기괴하고 이질적인 외계의 생명체같은 느낌.

어떻게 보면 하얗게 뼈다귀만 남아버린 거대한 생명체 같기도 하고, 빤딱빤딱 빛나며 비닐같은 비늘이 돋아나

있는 게 무슨 인공적인 조형물 같기도 하고, 허옇다 못해 펄빛나는 형광까지 감돌고 있다.

윗둥이 잘려져 나갔음에도 이런 포스를 내뿜을 수 있다니.

캄보디아에서 본 '나무'들은 한국에서 보아온 '나무'와는 다르다. 내가 알고 있던 '나무'를 그려라 했을 때

그릴 법한 아기자기하고 다소곳한 생명체가 아니라, 껍데기 안쪽에서 뭔가 에너지가 꿈틀거리며 나갈 구멍만

찾고 있는 느낌, 강렬하고 동적인 느낌이 강하다.

아마도 이건 나무의 '발'이라 불러 마땅한 무엇인지도 모른다. 아무도 안 볼 때, 끄응~ 소리를 뱉으며 땅 속에

박아뒀던 발을 끄집어 쿠웅, 쿠웅 걷듯. 이런 이미지는 사실 '반지의 제왕'에서 구현됐댔다.

나무로 포위된 사원은, 가운뎃 부분만 위태로이 온전하다. 아직은. 알고 보니 저 위에 굴뚝처럼 뾰족하니

세워진 부분은 나중에 새로 쌓아올려진 부분이라 한다.

위태로이 세워진 탑 안에 서슴없이 들어가는 사람들, 나도 저 안을 들락날락 거렸지만 막상 내가 들어갈

때는 못 느끼던 위태로움이 멀찍이 거리를 두고 바라볼 때 비로소 생겨난다.

돌아나오는 길, 뜨거운 태양 아래 나른히 늘어져 있던 개가 귀뒤를 긁는다.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아님 착해서

그런지 좀처럼 짖지도 않고 지들끼리 쫓고 쫓기며 시끄럽게 놀지도 않는 개들이다.

다시 돌아 나오며, 이번엔 뱀 두마리, 뱀머리 열네개가 수호하는 통로 옆길로 나란히 뱀과 함께 걸었다.




앙코르 톰 내부를 비롯, 앙코르왓 유적군 모두에 화장실은 이런 식으로 안내되어 있다. 허름한 안내판만큼 화장실도

허술할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글쎄. 화장실은 꽤나 깔끔한 편이다.

앞에 관리인이 목욕탕 티켓파는 곳처럼 앉아 있고, 여자가 다가오면 왼쪽, 남자가 다가오면 오른쪽을 손짓한다.

앙코르톰 사원이란 사실 가로 3킬로, 세로 3킬로의 거대한 성곽도시라고 할 수 있다. 그 안쪽 중심부에 늘어선

바이욘, 바푸온 등과 같은 사원과 궁전터 등이 실제 앙코르톰이 품고 있는 유적들인 거다. 마치 크메르 왕의

집약된 중앙집권 권력을 반영하듯 하나로 응축된 사원들과 궁전들, 그런 유적들이 뭔가 하나로 눈이 모이는

집약식 볼거리라면, 뗍 쁘라남이나 쁘리아 빨리라이는 슬슬 산책하며 이리저리 휘휘 둘러보기 좋은 그런

분산식 볼거리라고 할 수 있을 거 같다.

뗍 쁘라남, 이라는 이곳은 돌로 잘 포석이 깔아진 이 길이 인상적이었다. 잔뜩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한 줄기

잘 다듬어진 돌길을 걷노라면, 가뜩이나 여행객도 드물어 호젓한 이곳은 고요한 산책로처럼 느껴진다.

물론 그 뒤편으로는 이렇게 야자수를 큰 칼로 썰어 빨대를 꼽아주는 자그마한 행상도 있다. 물이 꽉 들어찬 살풋

덜 익은 코코넛은 칼이 닿자마자 찍, 하고 물을 내뿜고 만다.

대불좌상이 놓여있는 산책로의 끝. 그 오른쪽으로는 스님들이 묵고 있는 요사채..가 있다고 한다. 불상도 최근의

것인지 색깔이 아직 싱싱한 돌멩이다.

실제로 지금 꾸려지고 있는 사원인지 감색 옷을 입은 스님이 앞에 앉은 두 사람 등목을 시켜주고 있다. 시원하게

물을 뿌려준 스님, 그리고 시원하게 사방으로 튀기는 물방울. 아니 근데 오른쪽 사람은 여자였었나...?

사람이 살고 있음이 틀림없는 집. 우리네 시골 집 툇마루와 비슷하면서도 살짝 다른 분위기.

앙코르왓 내부에서 기거하고, 수도하는 사람들이 있는 게다. 이렇게 펌프질을 해야 물이 나오는 수돗가도 있고.

거대하고 묵직하고 '케케묵은' 사원들이 가득해 보이기만 하던 앙코르왓 내부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저 봉곳한 궁둥이와 허리라인이 예술이다. 도무지 저 엉덩이로부터 흘러넘치는 마력같은 매력에 저항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도 함께. 무릎을 굽히고 두 팔을 쭉 펴고 엉덩이를 있는 힘껏 뒤로 빼고 경계에 들어갔다.





바푸온 사원에서 조금만 걸으면 바로 나타나는 피미니아까스, 그리고 옛 궁전터. 건장한 금발남자 세네명이 우르르

몰려다니길래 슬쩍 끼어들어 말을 섞어봤다. 엑, 회사를 삼개월동안 쉬며 여행을 다니고 있다고. 무지하게 부럽긴

했는데, 사진은 참...이상하게 찍어준다.  

피미니아까스란, 궁전 내부에 있는 사원이다. 궁전은 이미 다 헤집어져서 주춧돌만 남았다는 이야기에 가보지 않고,

그 바로 앞에 있는 사원인 이 곳만 올라갔다 내려오기로 했다. 저 어마어마한 경사도. 인간이 아닌 신이 걷는 길이라

하여 일부러 저렇게 가파른 경사의 계단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앞에 버티고 선 사자상의 각목같은 다리가 아쉽다.

여기도 노골적으로 각목같은 사각기둥 모냥의 네 받침대 위에 둥둥 떠있는 조각상. 복원을 어정쩡하게 시멘트로

눈속임하듯 발라놓느니 차라리 저렇게 노골적으로 "여긴 파손된 부위입니다"라고 알려주는 게 솔직하지 싶다.

사원 벽면 돌 틈새에, 그리고 벽돌 한장한장에 숭숭한 구멍 틈새를 놓치지 않고 무수하게 싹을 틔운 초록생물들.

왠지 '토토로'에서 우산든 토토로가 씨앗들을 틔우는 장면이 떠오를 정도로 귀엽고 작은 잎새들이지만, 사원을

지키기 위해서는 아마 금세 전부 솎아내질 거다.

신이 걷던 길을 인간이 오르려니, 쉽지 않다. 피라밋 오르는 것도 일종의 익스트림 스포츠로 만끽되다가 사람

몇명 떨어져 죽고는 금지되었다고 하던데, 여기 경사는 피라밋보다 더 높은 거 같다. 보통 사원 네 면에 모두

이런 계단이 있는데, 약간씩 경사가 다르다. 허물어지고 이지러진 탓도 있겠지만, 잘 돌아보면 특정 방향

계단이 일부러 좀더 완만하게 만들어진 곳도 있다.

이 곳의 서쪽 계단을 통해서만 3층의 성소까지 갈 수 있다. 경사가 약 40도에 이른다는 이 계단 아래에도 여지없이

'곰팡이처럼' 피어난 녹색의 여리여리한 이파리들. 이 계단 말고 돌계단을 직접 밟고 가다 보면 가끔은 덜컹덜컹

움직이는 계단석이 있었다. 순간 움찔하게 되는 상황.

3층 성소에 해당하는 지역. 예전에는 원래 ‘황금탑’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이 3층 꼭대기.

원나라 때던가, 중국 사신이 이곳에 거주하며 남긴 글에 따르면 여기가 온통 황금으로 치장된 그곳이라지만,

지금은 네발짐승처럼 팔다리를 온통 몸무게 지탱에 쓰는 여행자들만이 굳이 올라가 보는 곳.

낑낑 올라가서 내려다 본 피미아니까스의 연못. 여기는 왕과 왕비가 동침하기 전에 스르륵 옷가지를 풀어헤치고

몸을 씻던 곳이 아닐까, 아니면 얼핏 어디선가 본 것처럼 후궁들이 몸을 씻었던 곳인지도. 힌두교의 사제들은

정절을 어케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이 곳에서 딱 이런 시선으로 마치 나뭇꾼이 선녀 목욕 훔쳐보듯 밤마다

벌건 눈으로 두리번거렸을지도 모른다.

어느 사원 근처에나 쭉 늘어서 있는 행상들. 잡다구레한 액세서리도 팔고, 시원한 물과 음료는 기본이고 코코넛을

큰칼로 손질해 즉석에서 빨대를 꽂아 코코넛주스를 팔기도 한다. 그리고 예외없이 눈크고 이쁘장한 아이들까지 완비.

사람 댓명이면 꽉 차버릴 만큼 좁은 정상에는 향꽂이랑 조그마한 함이랑 뭐 그런, 예불 드리기에 딱 좋은 일습이

구비되어 있었다. 뭐랄까, 저 사진만 보면 왠지 계룡산이니 마니산이니, 그런 곳에서 예불을 보거나 나름의 종교의식을

치르는 분들의 장비랑 그 분위기랑 비슷하다.

앙코르왓의 돌들은 전부 이런 사암석, 라테라이트라고 한다던가. 흙을 물에 개어서 벽돌을 만들면 오랜 세월을

견딜 수 있는 단단한 벽돌이 된다고 했다. 부분부분 누런색이 끼어있는 걸 보고 혹시 과거의 금칠이 남아있는 건가

눈을 크게 뜨고 꼼꼼히 뜯어봤지만 아니었다는. 손톱으로 좀 긁어봤어야 했다.

내려가는 길에 우왕좌왕하는 사람들, 올라오긴 햇는데 막상 내려가려니 그 체감하는 경사가 또 다른 게다.

밑에서 올라오려 기다리는 서양 아주머니들이 몇 분 있길래, 위에 아무 것도 없다고 얘기해줬더니 마침 잘됐다

싶은지, 냉큼 앞장섰던 의욕에 찬 아주머니 한 분 손을 이끌고 뒤로 이끄셨다.

사진이 좀 작게 찍혔는데, 저 달구지 같은 것 위에 올려져 있는 건 무슨 조각상의 몸통이다. 아마도 배꼽부위쯤.

그야말로 유적이 발로 차이고 홀대받을 정도로 넘쳐나는 공간이라는 실감이 들었다.

수퐁나무, '툼레이더'에서 그 신비로운 폐허를 만들어낸, 그밖에도 다른 앙코르왓 유적들을 잡아삼킨 주인공이다.

마치 어린왕자의 바오밥나무를 연상케 할 정도로 두려울 정도로 거대하고 거침없는 이 나무는, 그래도 현지인들에게

큰 효용이 있다고 한다. 저기서 나오는 검정액체가 일종의 기름 대체물이 된다는 것. 호롱불도 밝히고, 배도 용접하고.

그러고보니 캄보디아는 여전히 전기가 귀하여 어두워지면 이곳 사람들은 바로 잠자리에 든다고 한다.

궁전터를 돌며 마주친 또다른 연못. 어렸을 적 동남아 지역에 대해 어렴풋이 들었던 내용 중에는, 비가 오고 나면

커다란 물웅덩이가 생기는데 그 안에서 바로 고기들이 뛰어논다던가. 그토록 풍족하고 먹기 살기 편하다는 정도의

이야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발전이 늦었다느니, 식의 왜곡된 사실까지는 당시에도 별로 와닿진 않았지만,

비가 내리면 물고기가 뛰어노는 물웅덩이가 생긴다는 이야기는 꽤나 매력적이었다.

문득 무너져 내린 왕궁 담장. 나무들이 빼곡하고 잎사귀가 무성해서 시야가 많이 가리지만, 답답한 느낌보다는

뭔가 야~ 눈이 좋아지겠다, 라거나 피톤치드를 많이 흡수하겠네, 라는 식의 상쾌한 기분.

쭉쭉 뻗은 미끈한 나무들. 잘 생겼다, 라는 느낌도 있지만 워낙 크다. 머리 하나쯤 큰 서양인의 훤칠하고 우월한

골격을 보는 것 같다.

온통 녹조류가 끼어서 초록빛 스프가 고인 것처럼 되어버린 연못. 뭔가 신비한 것이 저 아래 숨어있지는 않을까,

마주한 연못 하나가 문득 몽환감을 불러일으켰다.



바푸온으로 향하는 잘 닦인 돌길은 여느 힌두교 사원과는 달리 '나가 난간(뱀머리와 몸통으로 장식된 난간)'이 없다.

지상과 천국을 잇는 다리를 재현하려는 의도였다고 추측된다는데, 탁 트인 채 주변 녹지와 이어져 있어 살짝

어색하면서도 시원한 느낌이다. 지상에서 천국으로 가는 길에 한 컷. 그런데, 저 너머 천국은 얼핏 봐도 공사중.

양쪽에 배치된 인공 연못은 열대 기우 특유의 끈적한 느낌이 묻어났다. 뭔가 쏴한, 시원하고 청량한 느낌이 아니라

끈적한 젤리나 타르처럼 몸에 덕지덕지 묻어날 것 같은 연못물. 바람이 일면 수면이 푸딩처럼 흔들렸다.

사방에 흩뿌려진 돌덩어리들에 쭈그려 붙어앉아 뭔가를 열심히 정돈하는 사람들. 혹은, 단순히 잔디깍는 중인지도.

'바푸온', 숨긴 아이라는 뜻의 사원은 전쟁 때 아이와 아내를 숨겼다던가, 그런 연유로 이런 이름이 붙었다 한다.

지금이야 무너지고 부서져 사방에 구멍이 숭숭 난 채 헐벗어 있지만, 그때만 해도 피신자들을 품넓게 넉넉히 안아줄
 
만한 커다란 사원 아니었을까. 아마도 새들마저 조심할 만큼의 위엄이나 신성을 띄고 있었을 거다.

네모 반듯반듯한, 게다가 계단 차곡차곡한 연못. 아마 사원에 들어가기 전 몸을 씻는 공간이었지 싶다. 어디서나

어느 때나 물이 갖는 이미지란 별 수 없는 거다. 정화, 죄씻음, 그런 이미지. 인간의 상상력이란 의외로 한계랄까

그 구획이 뚜렷하다. 마치 저 연못처럼.

인류에게 공동된 거대한 지식창고가 우주 어딘가에 있고, 인류의 각 민족들은 거기서 조금씩 지식을 끌어쓰고

있다는 뉴에이지류의 상상력이 새삼 신선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먼 타지에서 '별수 없군'이란 생각을 들게

만드는 몇가지 진부하고 익숙한 사고방식이나 그 결과물을 만날 때.

가까이서 바라본 바푸온 사원의 본전은 생각보다 많이 뭉개져있었다. 복구를 한다고는 하는데, 오랜 내전이나 

킬링필드, 인접국과의 전쟁 등 여러 역사적 굴곡을 겪으면서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심지어 도면이 사라지기도

했다는데, 엄격한 좌우대칭의 원칙을 지키는 공법과 여러 노력을 기울인 덕에 나름 복원을 재개하고 있다고.

캄보디아는 근 칠십년이던가, 19세기 중반이래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었다. 아마 앙코르왓이 재발견된 것도

프랑스 식민시절이 아닐까 싶은데, 이 곳의 수많은 유적들은 지금 각국의 지원을 받아 복원되거나 유지되고 있다.

당장 바푸온사원도 이렇게,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복원이 한창이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다면 더욱 좋았을

텐데...캄보디아가 스스로의 힘으로 '과거'를 돌보기엔, 그들의 '현재'가 너무 숨가쁘다.

돌덩이에 그려진 전 식민국가 프랑스의 자유/평등/박애 삼색기.

태양을 피하는 법. 몸을 숨길 조그마한 그늘막 아래서 뜨거운 태양볕을 피하고 있는 인부들. 저 그늘막의 남루함

혹은 빈티지스러움은 왠지 천년을 지낸 사원에서 느껴지는 '남루함' 혹은 빈티지스러움에 필적하고 있다.

새로 해 넣은 이가 과장스럽게 반짝거리듯, 뭔가 새로운 걸로 '땜빵'해넣은 곳이 온갖 시선을 한몸에 받듯,

반짝거리는 복원부분. 보통 새로 기워진 부분이 이전 몸체에 융화되려면 그간 본체를 써온 만큼의 시간이 흘러야

한다던데. 바푸온 사원의 새롭게 복원된 부분이 자연스럽게 원형에 녹아들려면 또다른 천년쯤이 흘러야 하지 않을까.

문틀에 조각되어 있는 동물들의 움직임이, 마치 문틀을 발로 차 깨고 어디론가 도망가려는 것처럼 역동적이었다.

아마도 사원의 복원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사무실로 쓰고 있지 않을까, 싶도록 사원 옆에 딱 붙어 세워져있던

'움집'. 아기돼지 삼형제 중 게으른 첫째가 지었다던 지푸라기집이 이런 거 아니었을까 싶다. 사실 그 첫째돼지는

게을렀던 게 아니라, 동남아와 같은 아열대성 기후에 적응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한 건지도 모른다.

엉성해보이는 외관은 실은 바람 숭숭 통하기 위한 지혜이며, 햇볕만 막음 되니 공들여 담쌓고 벽세울 필요도 없을 터.

사원 위에 올라 내려다 본 천상과 지상을 잇는 참배로. 저 멀리 보이는 건 한무리의 참배객, 아니 단체여행객.

어느 나라인지 모르겠지만 한국이나 영어 가이드가 붙었다면 설명도 훔쳐듣고 좋았을 텐데, 한템포 빨랐다.



바이욘은 크메르왕국의 전성기를 구축했던 '자야바르만 7세'의 무덤으로 추측되고 있다. 바이욘에 있는 오십여개의

탑 네면에는 모두 사람 얼굴이 돌로 짜여져 있는데, 이 얼굴이 아마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로 죽고 나서도 왕국을

수호하겠다는 의지, 지켜보겠다는 경계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게 아닐까, 라는 해석이다.

바이욘에 들어가 돌아보기 전 한번 여행책자를 일별해 보았다. 뒤로 보이는 수많은 아이들은, 여행객의 복장, 말투의

힌트를 얻고 '안녕하세요 일달러, 니하오, 곤니찌와, 하이'를 넘나들며 조악한 악세사리를 다짜고짜 들이댄다.

자야바르만 7세, 앙코르왓 유적군의 대부분은 그의 치세 때 세워진 것들이다. 이름이 잘 안 외워진다면,

"잘 발음해봐" 자야바르만. 이제 한 큐에 외워버렸다.

캄보디아에 대한 몇 안 되는 이미지 중에 빠지지 않는 '압사라 댄스', 머리에 금탑같은 거 쓰고 손으로 인을 맺으며

추는 춤이 바로 이런 '압사라'들의 동작을 흉내낸 거다. '압사라'란, 태초에 세계가 거대한 우유바다였는데 그걸

신과 악마들이 휘저으며 세상을 창조할 때, 우유 거품에서 태어난 무희의 신들이다.

바이욘에 들어서니 이미 두 무리의 단체여행객이 회랑을 선점했다. 바이욘 회랑에 그려진 벽화를 따라 가이드의

선전을 들으며 그들이 진격하는 사이, 한쪽에 자리잡고 앉아 사간 용과(Dragon Fruit, 龍果)을 까먹었다.

삐딱하게 세워진 위험 표지판만큼이나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는 유적. 그렇지만 여긴 그래도 대표적인 곳 중 하나라

잘 관리되고 있는 축에 속했다는 사실은 나중에 깨달았다.

돌에 새겨진 조각이라기엔, 드문드문 곰팡이도 슬고 퇴락한 것처럼 보여서 무슨 그림 같다. 그냥 자연 그대로의

돌덩이였다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저 씻겨지고 부서져 여전히 돌덩이 그대로였을 텐데, 사람의 손을 타고나니

돌에 시간이 새겨진다.

앙코르 톰은 4대문을 가진 성곽도시였다. 바이욘을 기준으로 남쪽은 귀족들의 거주지역, 북쪽은 왕궁과 사원이었다고
 
하며, 백성들은 악어가 사는 해자를 지난 성벽 외부에 살았단다. 돌로 만든 것들만 남아서, 지금은 가로세로 3km의

성곽과 내부의 왕궁, 사원들만 남아 있지만 이런 회랑의 벽화를 통해 과거의 모습을 그려볼 수가 있다.

얼굴이 숨어있는 돌탑들, 이정도면 차라리 얼굴이 스며들은 돌탑이라는 게 나을지도. 20만개가 넘는 돌들을 쌓아올려

만들어졌다는 이 얼굴들은 약간씩 표정이 다르다. 세월에 따라 버즘처럼 피어오른 얼룩이들이 뉘앙스와 표정을

바꿔놓았는지도 모르지만. 가만히 보고 있으면 저 두툼하고도 커다란 입을 벌려 껄껄 대고 웃을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입을 벌려 혀를 움직이고 이를 부딪혀 무언가 말을 만들어낼 것 같기도 하다.

다소 양식화된 형태의 나무. 정글 지역의 나무답게 사방팔방으로 가지를 뻗었다.

코끼리가 한바퀴 돌았나보다. 바이욘 사원의 문간 너머로 문득 잡힌 코끼리.

알고 보니 흡연 금지, 쓰레기 투척금지, 식사 금지, 음...떠들기 금지.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그리고 사원이니만치

민소매 대신 반팔을 입으라는 지침. 반팔을 입으라는 건, 사실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서양인들은 차제에

선탠까지 같이 하고 싶은 듯 다들 바짝바짝 짧게 입었고, 나도 벌써 흠뻑 젖은 옷을 보니 차라리 나시가 낫겠다싶다.

희끗희끗한 붓의 터치감, 약간 탁한 초록빛 풀빛이 섞인 진회색의 사원. 불투명수채화 화폭 가운데에다 대고

사람이 얼굴을 마구 눌러대는 것만 같다.

낙서란, 어쩔 수 없다. 아예 정과 망치로 새겨버린 듯한 이 오랜 낙서는, 어느 시점부터는 '유적'이 될 게다.

회랑을 지나 사원의 내부로 들어가는 길, 아무런 조명도 없는 그곳까지 스물거리며 기어들어온 정글의 햇살.

아래서 보면 살짝 웃는 거 같기도 하다. 훈남. 정면에서 볼 때랑 밑에서 볼 때랑, 이게 바로 얼짱 각도의 마법?!

원래 54개의 탑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약 40개가 안 되는 탑만 남아있다고 한다. 그 탑 중 하나 안에 들어가보니

하늘이 저멀리로 밀려나있다. 하늘을 길어내릴 수 있을 법한 거꾸로 '우물'이다.

"Hey Ya hey Ya Fire Fire 오 아가씨 Yeah ya Yeah Ya Warning Warning No No"(냉면, 명카드라이브 中)

명수 생각하다. 이정도 가파름이라면, 제시카를 업어야 한다. 근데 낼모레 마흔인 내가, 내몸도 추스리기 힘들텐데.

시카 생각하다. 이정도 가파름이라면, 명수 오빠를 업어야 한다. 에효. (팬픽 '금단의 사랑' 51부 中)

이 사자상의 매혹적인 뒤태. 돌로 조각해서 만들었다기엔 너무 유연하고 봉곳하다.

어이, 비웃지 말라고. 사자상 뒷태 좀 감상했기로서니. 가까이서 보면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것들.

압사라 댄스 무희 복장을 하고, 여행객들과 함께 사진찍을 준비를 하고 있는 젊은 처자들. 1 달러였던가, 나는

누군가 함께 찍힐 준비를 하고 있는 새 그녀들만 사진에 담아와 버렸다. 내가 들어있지 않아도, 내가 찍은

사진이면 만족한다.

누구라도 생각할 법한, 액자식 프레임 안에 담긴 '크메르의 미소'.

질문. 이 사진안엔 총 몇 개의 얼굴이 담겨 있을까요.

미소짓고 있는 압사라. 왠지 머리굵어지고 나서 석굴암에 다시 한번 가봤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거기에도 압사라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이건 좀. 무슨 공포영화도 아니고, 얼굴을 정육점 회전분쇄기에 대고 갈아버린 것 같잖아. 근데 좋댄다.

돌들에 나 있는 구멍들은, 아마도 돌들을 서로 이어놓기 위한 이음새를 꼽아넣었던 자국 아닐까 싶다.
 
약간 폐허의 느낌처럼 돌조각들이 산재해 있는 바이욘의 내부 공간. 그래도 천년이나 무사히 버텨온 게 대단하다.

여긴 금세라도 이런 거대한 나무와 덩쿨들이 짖쳐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은 '정글'이란 말이다. 악어와 원숭이들이

뛰놀고 뱀들이 쉭쉭거리며 한동안 인적을 끊어놓았을 그런 깊은 야생의 정글.

그 와중에 마주친 고양이 한마리. 꺄아~ 이 곳의 고양이도 한국의 고양이처럼 보드라운 털실을 신고 살금살금

사람 사이를 돌아다녔고, 살짝 뾰루퉁한 듯 어깨를 으쓱거리며 도도함을 잃지 않았다.

목이 잘려나간 수문장. 신화와 은유의 세계였던 그 때 사람들의 사고를 어찌 오롯이 이해하랴만은, 이 곳의

힘을 약화시키겠다며 수문장의 목을 꺽고 조각상들을 훼손한 침략자들의 심보야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어쩌면 발전한 건 인간의 도구일 뿐, 그걸 다루고 이용하는 인간은 별반 진보하지 않았다. 어쩌면 철저히

분업화되고 실제 생산활동에서 유리된 현대인은 생존능력이랄까, 어떤 면에서는 퇴보했는지도 모른다.

올록볼록 양감이 뚜렷한 탑들이 천년을 버티고 서있었다. 아기자기하게 인공으로 꾸며진 작은 돌산 같기도 하고.

떠나기 전 뒤돌아 바라본 바이욘의 전경. '크메르의 미소'는 숨어버리고 '크메르의 사원'이 남았다.




흔히 '앙코르왓'이라고 칭하는 크메르 유적군은 멀게는 씨엠립 시내에서 16킬로미터 떨어진 롤루오스 지역,

37킬로미터 떨어진 반띠아이 쓰레이까지 포괄하는 넓은 지역에 수십여 유적이 산재해 있는 방대한 지역을
 
이른다. (사실 '앙코르왓'은 그 유적군 중 하나, 대표적인 하나의 유적 이름이다.) 캄보디아만 따로 다룬 안내책은

생각보다 많지도 않지만 보통 뚝뚝을 하루 종일 대절하는 것을 전제로 하루짜리, 혹은 삼일짜리 일정을 엇비슷하게
 
소개하고 있어서 나름 좀 새로운 루트를 구상해봤다.


첫날(자전거) : 일명 '그랜드 투어'라 불리는 코스. 오전에는 앙코르 톰(Angkor Tom)(바이욘, 바푸온, 피미니아까스,
 
옛궁전터, 문둥이왕테라스, 코끼리테라스), 오후에는 쁘리아 칸(Preah Khan), 니악 뽀안(Neak Pean),

따쏨(Ta Som), 그리고 쁘레룹(Pre Rup)까지.

* 자전거 대여료는 호텔에서 보통 하루 3달러, 예치금을 맡기기도 한다. 그랜드 투어 이외에 스몰 투어 코스가 있는데

이름 그대로 좀더 짧고 여유로운 코스가 될 거 같다.


둘째날(뚝뚝) : 외곽지역의 포스트들을 작정하고 둘러보는 코스. 오전에는 쁘라삿 끄라반(Prasat Cravan), 반띠아이
 
끄데이(Banteay Kdei), 쓰라쓰랑(Sras Srang), 반띠아이 쌈레(Banteay Samre), (한참달려) 반띠아이 쓰레이

(Banteay Srey), (한참달려) 오후에는 롤루오스 유적군(롤레이(Lolei), 쁘레이꼬(Preah Ko), 바꽁(BaKong)까지.

* 뚝뚝의 종일 렌트비는 12-15 달러 정도? 흥정하기에 달린 거 같다. 다만 반띠아이 쓰레이 쪽을 가려면 10달러 정도
 
비용을 더 내야 하니, 차라리 추가비용 내고 도는 김에 외곽지역을 다 도는 게 좋을 듯 하다.



셋째날(자전거 또는 도보 또는 뚝뚝) : 앙코르왓 유적군의 핵심, 앙코르왓과 기타 지역 둘러보는 코스.

오전에는 박쎄이 참크롱(Baksei Chamkrong), 앙코르왓(Angkor Wat), 승리의문(Angkor Tom East Gate),

오후에는 톰마논(Thommanom), 차우싸이 떼보다(Chausay Thevada), 스삔토마(Spean Thma), 따께우(Ta Keo),

따쁘롬(Ta Prohm), 프놈바껭(Phnom Bakheng)까지.

* 체력 상태에 따라, 충분히 도보도 가능할 만큼 오밀조밀 붙어있는 포스트들이다. 다만 도보라 해도 뚝뚝 등을

이용해 앙코르 왓 내부까지는 들어와야 하며, 씨엠립시내에서 앙코르왓까지 최소 5달러는 줘야 하는 듯. 그러느니

자전거나 뚝뚝을 이용하는 게 경제적이기도, 편하기도 할 거다.



기타 문의사항이 있으시면 언제든 제게 문의해주시면..최대한 성의껏 대답해 드리겠지만, 막상 이렇게 정리하고보니

기존 루트와 아주 다르진 않다. 다만 앙코르왓을 맨 마지막으로 아껴두었던 건 정말 잘 한 거 같다. 그걸 보고 다른 걸

봤다면 아마도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듯. 갠적으론 반띠아이 쓰레이, 앙코르왓, 따 쁘롬이 정말 좋았다.

어쨌든, 그런 정도로 거칠게나마 일정을 짜두고 출발한 첫날 아침, 물안개 너머 어슴푸레한 앙코르왓의 유혹을

뿌리치고 그대로 앙코르 톰까지 직진. 남문을 지나기 직전이다. 이미 사람들이 바글대는 건가 살짝 긴장했는데

워낙 넓은 곳에 흩어지다 보니 별로 여행객이 많다는 느낌은 내내 안 들었던 것 같다. 남문 고푸라(현관문짝..

이랄까)에서 언뜻 내비치는 큰바위 얼굴이 보이는지.

난간에 장식되어 있는 사람의 형상. 실은 이런 장식 하나하나에도 과거 신화의 한 대목을 구현한 내용이 응축되어

있어서 아는 만큼 보이는 거고 더욱 재미있게 느낄 수 있는 거라지만, 모른대도 딱히 문제될 건 없다. 앙코르톰을

둘러싼 넓은 해자는 살짝 말라있었다. 유럽 중세의 성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깊은 해자와 도르레로 오르내리는

거대한 성문이 떠오를 텐데, 그 해자가 서기 천년경 크메르 양식으로부터 전래된 거란 사실은 꽤나 놀라웠다.

어디로 갈까, 여기는 어딘가 잠시 자전거를 내려 길을 살펴보고 있는 라이더 윤. 그러고 보면 이날 햇볕이 그리

뜨겁지 않아 왠종일 자전거를 타는 게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오후엔 스콜이 잠시 내려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달리기도 했지만, 그 역시 더위를 식히는 데 일조했을 뿐더러 무척이나 기억에 남는 일이었다.

남문에서 쭉 올라가니 앙코르 톰의 대표 유적지, 바이욘Bayon이 있다. 캄보디아에 대해 갖고 있는 몇 안되는

이미지 중 하나가 바로 이 거대한 돌머리, 이른바 '크메르의 미소'가 아닐까 싶다. 그 크메르의 미소가 사면에

그려져있는 탑이 백여개라던가, 그런 유적지가 바로 바이욘이다.

멀리서 보면 그냥 정교하게 잘 쌓아올려진 완만한 굴곡 띈 돌탑들, 혹은 사원으로 보이지만 조금 눈살에 힘을 주고

눈여겨보자면 몇 개의 얼굴이 떠오르는 게 보인다.

앙코르 톰 주변을 코끼리로 돌아보는 여행자들. 쭉쭉 뻗어나간 나무들, 울창한 정글 사이를 저렇게 코끼리 타고

누비는 것도 꽤나 매력적일 거 같았다.

뭐랄까, 나무들이 전부 훅, 하고 자라난 느낌이었다. 한국에서 익숙했던 사이즈와 기장의 나무들이 아니라

훨씬 크고 훨씬 높다란 나무들이어서 영판 다른 종을 보는 듯한 느낌. 이런 나무들이 쭉쭉 자라나는 정글속에서

문득 앙코르왓 유적지, 천년 동안 버텨낸 유적지를 처음 발견했을 자의 경이로움이란, 상상하기도 쉽지 않다.

앙코르 톰, 바이욘 앞에 정비된 자그마한 연못들. 세월의 때가 눅진눅진 묻어있는 돌덩이들인지라, 건조물 자체가

하나의 자연석인 양 느껴진다. 본격적인 앙코르 톰 탐방은 다음 포스팅으로~*




앙코르왓을 돌아보는 루트는 짜기 나름이다. 몇 권 들춰본 가이드북마다 제각기의 코스를 제안하고 있었는데,

그건 대개 가이드를 대동하고 뚝뚝을 이용하는 걸 전제로 깔고 있었다. 여행이라고 와서 오토바이로 윙윙 지나는 건

왠지 아니다 싶어서, 첫날은 우선 자전거를 타고 달려보기로 했다. 숙소에서 하루에 3달러에 대여해 주었고, 사고에

대비한 예치금 20달러를 별도로 내야 했지만, 이미 자전거를 이용한 그랜드투어, 스몰투어 코스가 있을 정도로

자전거 이용은 활성화되어 있다. 근데 실제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사람은 전부 서양인이었다는.

자전거를 타고 숙소에서부터 앙코르왓까지 밟아댄 설레는 아침. 출근길의 캄보댜 사람들이 신기한 듯 흘낏대며

쳐다봤고, 승용차와 트럭과 뚝뚝과 오토바이(모또)와 자전거가 뒤섞인 도로는 생각보다 정신사나웠다. 알고 보니

아직 캄보디아는 제대로 된 교통질서가 확립되지 않았다던가. 신호등이나 교통 체계, 표지판 같은 게 꽤나 취약하다.

그래도 모두들 알아서 조심조심, 비록 차선도 무시되고 역주행도 흔한 일임에도, 별탈없이 유유자적 흐름을 잘 타고

있었다.

달리다가 보니 어느 순간 한적해진 길, 아마 씨엠립 시내 중심부까지의 출근길을 벗어나 앙코르왓으로 빠지는

길 어귀에서부터 급 한가해졌던 것 같다. 이제 자전거를 타며 카메라를 찍어대는 묘기를 부리기 시작. 춤추는

카메라에 길가 좌대가 잡혔다. 저건 뭘까. 양주병, 음료수페트병, 그리고 큼지막한 깔대기 하나까지.


뭐냐면, 오토바이 혹은 개조한 삼륜차 뚝뚝이 주된 교통수단이 되고 있는 나라인지라, 기름을 저렇게 병 단위로

사서 즉석에서 주유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빈병은 어디서 났는지, 저런 비싼 고급양주병이 흔할리가 없는데.

알고 보니 워낙 흔히 보이는 풍경이라 나중엔 그러려니 했지만, 처음엔 어찌나 신기하던지.ㅎ

캄보디아, 라고 하면 무지 멀어보이고 무지 못 사는 나라같지만-또 실제로도 맞긴 하지만-생각보다 세련되었달까

잘 꾸민 여성들, 남성들도 눈에 종종 띄었다. 특히 씨엠립같은 시골 관광마을 말고 프놈펜같은 수도로 가면 더욱.

매우 '컨츄리틱'한 '구루마'와 나름 세련된 스타일의 뽀얀 여성분.

이런 식으로 기름을 팔기도 한다. 휘발유와 디젤인가, 아마 그렇게 두 종류인 듯 한데 그냥 드럼통을 갖다놓고

저기서 바로 뽁뽁이로 주유. 아까 봤던 병들이 기름보다는 일보 전진이라 해야 할지.

아침 일곱시부터 서둘러 나서서 그랬는지, 앙코르왓까지 가는 길은 무척이나 한적했다. 드문드문 현지 사람들과

함께 달리기도 하고, 아직 관광객들은 아침을 먹고 있나보다 싶었다. 어쩌다 보니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 입장료

사는 곳을 지나쳐버린지라 좀 돌아가야 했지만, 덕분에 아침부터 한시간 이십여분을 줄창 자전거로 달려야했지만,

꽤나 재미있었던 라이딩.

아침부터 사이좋게 아이스크림을 빨며 자전거를 타던 귀여운 남매, 자전거를 타고 카메라를 두리번대는 내게

자신있는 ^^V 제스처를 취해준다. 스스럼없는, 그리고 그저 친근한 그 태도에 나 역시 활짝 웃고 말았다.

옆에서 미친듯이 페달을 밟으며 맹추격했던 꼬맹이 녀석. 저 의지에 가득찬 눈빛과 그야말로 건각(健脚). 건강한 다리.

나랑 한동안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유쾌하게 앙코르왓으로 향하는 정글 가운데 이차선 도로를 점령했던 꼬마친구.

입장소에서 파는 앙코르왓 입장권은 1일 패스, 3일 패스, 그리고 일주일 패스. 3일짜리, 일주일짜리는 즉석에서

사진을 찍어준다. 저 여자분 뒤에 조그맣게 캠이 설치되어 있는데, 그걸 찍으려는 순간 여자분이 몸으로 가려버려

의도치 않은 도촬...ㅡㅡ;; 좀 더 웃는 얼굴로 나왔음 더 이뿌셨을 텐데 아쉽..

보통 앙코르왓을 제대로 보려면 최소한 3일 패스는 써야 한다고 한다. 워낙 넓은 지역에 많은 사원들이 흩어져있어서.

1일 패스는 20달러, 3일 패스는 40달러, 일주일 패스는...모르겠다. 입장권의 배경은 앙코르왓 유적의 정수 중 하나인

'반띠아이 쓰레이'. 여긴 앙코르왓서 약 30킬로 떨어져있어서 차량을 타고 가야 한다.

입장권을 사고 다시 앙코르왓으로 힘차게 페달을 밟는 길, 길을 좀 헤멘 탓인지 툭툭을 타고 속속 도착하고 표를

사 떠나는 여행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맘이 급해졌다.

그래도 이미 한시간여 자전거를 내리 달린 데다가, 입장권 판매소에서 앙코르왓까지는 2-3킬로미터를 또 달려야

하는 터라 길가에 과일판매대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바나나, 용과, 라임, 오렌지 따위를 팔고 있길래

용과를 사서 다시 출발하려는데, 저토록 편안해보이고 재미있어 보이는 해먹에 자꾸 눈이 갔다.

앙코르왓을 둘러싼 100미터짜리 해자, 그 바깥쪽 둔덕에 앉아 아이들을 씻기고 있던 아주머니. 아이들 셋을 혼자

단도리하려면 얼마나 힘들까 싶다. 해자가 얼마나 넓던지, 아침햇살을 맞으며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감싸니 마치

여름날 한강 상류에서나 마주할 몽환적인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뜨겁게 이글거릴 햇볕을 예고하는 짙은 물안개.

물안개 너머 보이는 앙코르 왓의 실루엣.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아마 한시간 넘게 쉼없도록 달린 자전거

탓도 있겠지만, 툭툭 타고 슝 왔으면 왠지 이런 설렘은 덜하지 않았을까. 자전거 타고 첫날을 시작하길 잘했다 싶은

순간이었다.

문득 돌아본 길가엔 코끼리 주의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음..코끼리가 노니는 땅이로구나.

짙은 정글, 그 사이 놓여진 얄포름한 포장길 한 줄. 그렇게 한참 가다가 문득 당도한 앙코르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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