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슬포여객선터미널, 새롭게 단장중이던 터미널 앞 건물에는 철썩철썩 파도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여객선으로 대략 20-30분 정도면 금세 제주도를 떠나 가파도에 가닿는다. 산방산과 송악산이 바다너머 보이고.

 

  

누군지 참 공들여 쌓아둔 돌탑.

 

올레길 코스를 가리키는 파란색 화살표가 오두막에 단단히 박혔다.

 

 

 

새파랗던 하늘, 시퍼렇던 바다, 초록초록하던 가파도의 해안길.

 

 

 

 

선인장이 드문드문 자라는 식생도 조금 이질적으로 보이고.

 

풀숲 위로 스물스물 낮은 포복하듯 기어가는 하얀 구름, 파란 배경 탓에 바로 눈에 띈다.

 

 

 

가파도 마을 사람들이 바다에 제사를 지낸다는 제사단.

 

그리고 사람들이 앉아 쉬었다 가는 팔각 정자의 시원한 대청마루.

 

 

 

 

 

온통 동글동글한 몽돌로 치장한 가파도 마을의 어느 민박집.

 

올레길의 또다른 상징, 파랑색 조랑말 모양의 표지판.

 

아무래도 이런 조그마한 섬에선 급한대로 이렇게 쓸 일이다. 나무판자에 (아마도) 락카로, 급커브.

 

 

 

해안도로랄까, 산책로와 바다의 경계에는 씨알굵은 바윗덩이들이 일렬로 늘어서 단단히 박혔다.

 

 

그리고 가파도 민박식당. 이곳의 정식은 갈 때마다 참, 신기하고도 맛난 반찬들로 가득하다.

 

어느 갈래길. 제주도의 흔한 현무암 돌멩이들로 쌓아올린 돌담들의 실루엣이 미묘하다.

 

 

 

단단히 묶여있고 싶었던 거다. 이리저리 묶고 조여서는, 붉게 녹슬어 거죽은 부서져내릴지언정 철심에 기대고 싶었을 거다.

 

 

가파도를 해안선따라 한바퀴 걸어서 돌아보는 시간은 고작해야 두어시간, 중간중간 쉬고 사진찍는다 해도 그정도.

 

 

 

풍력발전기가 두 기. 거대한 바람개비처럼 윙윙 돌아가는 모양새가 한마리 학처럼 우아하기도 하고.

 

 

구멍이 숭숭한 돌들이 어찌나 많은지, 처음엔 신기한 수석보듯 보다가 나중엔 그저 범상해 보이기만 하더라는.

 

와중에 만난 하얀 강아지 한마리.

 

그리고 이 뜬금없는 시멘트 구조물은, 바다를 향한 미끄럼틀.

 

가파도를 닮아 담백하고 조용한 할머니 한분이 천천히 지나가며 슬쩍 웃음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제주도와 가파도를 오가는 배의 선장님은 때로는 피자배달부가 되기도 하더라는.

 

 

 

 

 

 

 

안나푸르나 푼힐&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6일차 새벽, 단언컨대 지상 최대의 스펙타클한 장면 중 하나를 꼽으라면

 

절대 뒤쳐지지 않을 안나푸르나의 일출 장면을 지켜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전날 오후부터 온통 구름밭 속을 거닐던 듯한 베이스캠프 바깥 풍경이 나름 또렷하니 현실감을 얻은 새벽. 

 

밤새 추위에 뒤척거리다가 사람들이 술렁거리는 소리에 문득 창밖을 보니 희뿌연 불빛이 새어나오는 게 새벽인 거다.

 

침낭과 담요를 그대로 뒤집어 쓴 채로 카메라 쥐고 밖으로 뛰쳐나오자마자 맞이한 안나푸르나와의 첫 대면.

 

 

잠깐 사이에도 세상은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고 수묵화로 그린 듯한 하얗고 검은 안나푸르나 산등성 아래로도 풍경이 살아나는 중이다.

 

 

 4,200여미터 고지의 베이스캠프에서 올려다보는 7-8천미터 높이의 히말라야 영봉들, 두텁던 구름이 사방으로 찢기고 난리판이다.

 

 산골짜기를 따라 흘러내리던 만년설들, 빙하들, 그것들이 산비탈에 그어낸 깊고 굵은 주름살들. 사실 겨울에는

 

이곳 ABC에서 MBC까지 내려가는 길 한켠으로 온통 빙하가 꽁꽁 얼어붙어있을 정도라고 한다.

 

안나푸르나 쪽으로 좀더 올라가 내려다본 베이스 캠프. 그 너머로 보이는 건 물고기 꼬리모양으로 삐쭉한 마차푸챠레 봉우리.

 

 

 거대한 빙벽이나 댐처럼 버티고 선 히말라야 산맥, 얼룩덜룩한 만년설의 흔적이 흡사 호랑이의 얼룩무늬같기도 하다.

 

 

 이곳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안나푸르나 사우스, 안나푸르나 1 봉우리로 가는 길은 달리 없다고 한다.

 

그저 이 거칠고 황량해 보이는 곳 가운데를 조심스레 즈려밟으며 그나마 길 비슷한 것을 만들며 앞사람을 따르는 것 뿐.

 

그리고, 동쪽 하늘에서 드디어 샛노랗게 불빛이 일기 시작했다. 산봉우리들과 맞붙은 구름들이 조금씩 타오르는 하늘.

 

 안나푸르나 쪽도 마찬가지. 봉우리에 노랗게 불빛이 쟁여지더니 조금씩 형체를 갖추어 맺히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번져오르는 불길을 피해 사방으로 아우성치며 쏟아져나오는 짙고 하얀 구름. 빙하가 흐르던 길을 구름이 흐른다.

 

 그리고, 끝내 안나푸르나 봉우리 위에 맺힌 불길은 구름을 흩어냈다. 화이트 앤 블랙의 투톤에 더해진 황금빛 햇살.

 

 

기를 쓰고 내달린 구름이 다시 밑에서부터 서서히 잠식하며 차오르기 시작했다. 빙하가 긁어낸 흔적이 잠기고, 베이스 캠프

 

아랫동네가 잠겼으며, 이제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의 턱밑까지 다시 차올랐다. 

 

 

 그리고, 어느 새 등뒤의 풍경을 온통 감춰버린 짙은 회색의 장막. 그러고보니 함께 흥분해서 셔터를 누르던 사람들도

 

추위를 못 견뎠는지 대부분 흩어져 사라지고 말았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의 숙소로 돌아가 전날밤 주문해둔 아침부터 든든히 챙겨먹을 시간, 6일차의 아침이 밝았다.

 

* 정신나간 울릉도 2박3일 도보여행.

 

울릉도 성인봉에서 내려가는 길, 다시금 발아래 짙은 구름을 헤치는 나가는 길이다.

 

 

 

제법 가파른 하산길엔 나무도 눕고 바람보다 먼저 고사리(같은 것)들도 누웠다.

 

 

대체로 보자면 성인봉 끄트머리를 잡고 바싹 땡겨올린 원뿔 모양을 하고 있는 울릉도, 그 북쪽 사면에 움푹 패인

 

너른 분지가 바로 나리분지. 옛날부터 사람이 자리를 잡고 살았던 곳이 나리분지 쪽이라고 한다.

 

 

 

 

 

 

나리분지 중간쯤에서 만난 투막집. 울릉도 전통 가옥인 투막집은 저멀리 구름을 두른 채 뾰족한 봉우리들과 대치 중.

 

 

 

 

 

 

사실 그렇다. 어디서부터가 성인봉 등산로의 시작이고 끝인지, 어디서부터 성인봉이고 옆 봉우리인지 알기란 어렵다.

 

그저 길이 이어질 뿐.

 

 

제법 늦은 시간에 성인봉을 오르기 시작했다 생각했는데, 나리분지가 끝나도록 여전히 해가 중천이다.

 

어디에 묵겠단 계획은 없었지만 이렇게 된 거, 바다를 보기로 했다. 울릉도 남쪽 바다에서 시작했으니 이제 북쪽 바다로.

 

 

 

 

파꽃이 온통 피어있는 밭을 지나고 캠프장을 지나, 길을 조금 더듬으며 가다 문득 고개를 돌려 발견한 풍경.

 

이곳저것 집들에서 밥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그 연기가 뭉게뭉게 모여서는 산 중턱에 구름으로 걸렸다.

 

 

그러고 나니 다시 오르막길. 생각해보니 여긴 나리'분지'. 분지를 빠져나가려면 다시 야트막하나마

 

고개를 하나 다시 넘어야 하는 거다. 그냥 여기에서 멈출까 3초쯤 생각하다가 그냥 계속 걸었다.

 

고개를 얼추 올라 돌아본 나리분지의 전경. 마을이랄 것도 없는 집 몇 채가 듬성하니 꽂혀 있는 초록빛 풀밭같은 곳.

 

그리고 내리막. 닳고 나면 재생되지 않는다는 도가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가파르고 꼬불거리던 길.

 

그냥 한바퀴 빙글 돌아 전방낙법을 치고 나면 아랫목에 도달했음 좋겠다 싶도록 지치고 질리고 힘들던 걸음.

 

홍살문이 하나 갈림길에 서서 삿된 것들을 걸러내고.

 

산을 둥글둥글 타고 내려가는 길은 대체 어디에서 어디로 이어지는 건지, 이쪽으로 가면 되는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멀찍이 보이는 바다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만 믿고 계속 걷기.

 

해가 조금씩 가라앉는가 싶더니 가속이 붙었다. 어느새 어둠이 살라먹은 짙은 숲, 나무그늘, 그리고 비탈의 사면들.

 

 

조금 마음이 바빠지던 찰나, 길을 헤매거나 맴돌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해지던 차에 문득 나타난 천부 마을.

 

 

이제야 안심하고 널 보낼 수 있을 듯 하여. 저물어가는 해를 잠시 구경해주며 아스팔트 바닥에 철푸덕 앉았다가.

 

 

반나절만에 다시 만난 건물들이 반갑기도 하고, 그래봐야 울릉도의 조그마한 마을이라 아기자기하기도 하고.

 

 

'독도수호 중점학교'란 게 뭔지 모르겠지만, 독도의용대라도 양성하는 곳인지 뭔지. 여하간 자그마한 학교.

 

이 조그마한 마을에 내려서는 와중에 놀란 건, 헤아릴 수 있을 만큼의 건물이 옹기종기 모인 마을에 십자가가

 

네다섯 개나 꼽혀 있었던 모습. 그것도 하나같이 크고 높고 뾰족한. 음...

 

드디어 천부 도착. 다행히 여전히 밝은 중에 도착했다. 해가 가장 길다는 하지 다음날이라 재수가 좋았던 걸지도.

 

 

잠시 바닷가를 거닐다가 바다를 코앞에 낀 전망 좋고 파도소리 좋은 펜션에 절룩거리며 들어갔더니 맘좋은

 

주인아주머니가 우뭇가사리로 만든 냉콩국을 한 사발 내어주셨다. 어찌나 감사하고 맛있게 먹었던지.

 

금세 어둠이 나리고, 밥먹을 곳을 찾아 조금 마을을 헤집고는 부둣가 제방에 앉아 바람 쐬며 파도소리 듣다가 한장.

 

 

 

 


차들이 복작거리는 사거리, 깜빡이도 켜지 않고 대가리부터 디밀고 보는 마구잡이 운전자들이 잔망스런 각다귀떼처럼

귀찮게 굴더니 슬쩍 빨간불 맨앞으로 밀쳐놓았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원하던 원치않던 쉬어 가는 타이밍.


버팔로 떼처럼 온갖 소음과 말풍선들을 동댕이치며 앞으로 앞으로 내달리는 차들에 가로막힌 시선을 둘 곳 없어

하늘로 조금 띄워올렸더니 보석상자처럼 말갛게 닦인 백퍼센트 유리벽 건물엔 흰구름과 파란하늘이 담겨 있었다.


경포호를 한 바퀴 돌아보려 나선 길, 첨에 강릉에 도착해서는 여기서부터 바다인가 시끌시끌하다가 택시기사

아저씨한테 타박을 맞았었다. 그럴 만큼 크고 넓은 호수, 햇살이 모래알처럼 흩뿌려진 그 수면위로 화살표처럼

손가락질하고 나선 전망대.

너울너울. 겨울치고는 부드러운 바람이 수면에 몸을 부비며 자욱을 남기곤, 그 물결을 헤치며 오리들이 나아간다.

오리 두 마리가 둥싯둥싯 떠있는 수면 너머, 멀찍이 경포호의 반대편 끝이 보이고 그 위로 보이는 직선상의 구름 두개.

경포호 가운데에 있는 조그마한..섬이랄까. 자그마한 정자가 하나 세워진 조그마한 그 곳에는 새들이 잔뜩 와서

쉬었다 간다고 했던 거 같다. 뱃놀이가 가능하면 저기까지 배타고 나아가서 들어가 놀아도 좋겠는데.


호수 곳곳에 둥둥 떠다니며 한량질 중인 물새들. 그렇지만 가만히 보고 있으면 똥꼬를 하늘높이 쳐들고는

쉼없이 자맥질하며 먹이를 찾는 게 나름의 먹고 사는 고민에 빠져있는 것 같기도 하다.

무슨 생선일까, 경포해수욕장 가는 길에 벚꽃나무가 쫙 이어지는 길이 유명하다던데, 그 벚꽃나무 사이에 드문드문

저렇게 인공불빛이 밤에 일렁일렁거릴 가짜 나무가 심어져 있던 거다. 그런 나무에 기대어 허공에 내걸린 생선들.


호수의 가장자리, 제법 두꺼운 얼음이 수면을 덮어버린 곳 위에서는 한 무리의 새들이 뒤뚱뒤뚱, 발맞춰 걷고 있었다.

경포대로 옮겨지던 발걸음이 살짝 벗어났던 건, 다소 뜬금없긴 하지만 호수 옆 밭두렁에 촘촘히 꽂힌 채

겨울바람에 떨며 문득 잊었다는 듯 파닥거리던 바람개비들 때문.


그러고 보면 이날 참 하늘이 쨍하니 맑았다. 경포대에 도착하니 모두들 쌍쌍, 게다가 문화유산 해설사까지

동반한 단체 여행객들이 우르르 있길래 똥마려운 강아지모냥 주변에서 뱅뱅 돌며 차례를 기다리다가 한 장.

경포대에 올라 바라본 경포호수. 좀더 걸으려 했는데, 예기치 못한, 갑작스런, 그리고 계속 기다리던 호출.

그래서. 경포호의 나머지 둘레길은 다음 기회에.





쨍하니 파란 겨울 하늘에 짙고 풍성한 흰 구름을 더해내는 듯 연기가 하얗게 바람의 결을 짚어내던 모습.

굴뚝의 높이란 건 생각보다 꽤나 높아서, 저 위쪽 하늘에서 부는 바람은 늘 그녀를 기다리는 마음처럼 들떠있던 것.



@ 서울 서쪽, 안양천 너머.

구름이 불시착하던 어느날, 자동차들의 피난행렬 사이에 꼼짝없이 끼인 채 바이크 위에서 찍었던 사진.

하늘이 저렇게 싱숭생숭하기도 했지만, 색다른 눈높이에서 바라본 차들의 붉은 불빛들도 맘을 흔들긴 매한가지.

서울 시내, 라고는 해도 가로수를 굽어보는 건물들이 늘어선 곳은 사실 강남 일대와 종로 일대를 제하고 나면

흔치 않은 게 사실이다. 가로수와 건물이 까치발을 서며 키재기중이던 어느 사거리에서 신호에 걸렸다.

불시착할 듯 하던 구름은 점점 새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저너머로 내빼버렸는데, 붉은 신호등과 하얀 횡단보도와

시커먼 사람 그림자와 저너머 단속카메라에 포박당한 채 얼음, 으로 멈춰서고 말았다.




강원도 정선, 그 근방에 있는 가리왕산 자연휴양림. 조그마한 동네인 정선에 슬쩍 그 산자락 하나를

얹어놓은 것만 같은데, 실은 강원도란 데가 온통 산자락이 구불렁구불렁한 곳인지라 어디서부터 어디가

무슨 산인지 딱 끊어 이야기하기도 어려운 거다. 여하간 그 이름모를 산자락 앞에 바싹 머리를 디민

커다란 해바라기 하나. 파란 하늘도 좋고 샛노란 해바라기 꽃잎도 좋고.

정선의 메인로드라고 해봐야 이삼층을 못 넘는 야트막한 건물들이 채 백여미터나 될까 싶은 왕복 4차선

찻길을 호위하고 있던 그 호젓하던 길, 길가에 무성하게 자라난 야생국화꽃이 지나는 사람들과 눈높이를

맞춰보겠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정선역까지 기차를 타고 왔던 게..아마도 2001년쯤, 군대 가기 전이었던가. 그때 역사가 어떻게 생겼었는지

주변 풍경이 어땠는지에 대해서라면 아무 기억도 없다. 그저 그 때 강원 카지노랜드와 민둥산을 들러서

눈밭에서 잔뜩 뒹굴고는 정상에 올라 꽁꽁 언 캔맥주를 마셨었던 기억 뿐.

가리왕산 자연휴양림, 하늘. 새파랗고 새하얗고. 정말 너무나 좋은 9월의 하늘.

땅. 손을 아무리 뻗어도 닿지도 않는 하늘과는 달리, 땅에는 약한 것들 투성이다. 뽑고, 꺽고, 밟고,

심지어 만지는 손길에도 치명적일 수 있는 여린 생명들.

이렇게 여린 빛깔을 여지껏 품고 있는 거다. 빛을 받아 문득 투명해진 연두빛의 잎사귀들, 저런 여리고

약한 생명 앞에선 손끝에서 가위라도 절그럭대는 것처럼 조심조심 몸가짐을 여미는 게 인지상정.

휴양림 내에서 크고 작은 동그라미를 그리는 산책로 옆에 뒤집어져 있는 쓰레기통, 그 첫 글자인

'쓰'의 쌍시옷이 왠지 방긋 웃고 있는 이모티콘을 연상시킨다.

본격, 9월의 가리왕산 자연휴양림 위에 펼쳐진 하늘. 그냥 아무 말없이 흘러가는 구름만 바라보고 있어도

하나도 지루하거나 심심하지 않은 날이 있는데, 딱 그런 날의 하늘이었다.

그래서 정말, 휴양림 어디쯤엔가 철푸덕 자리 깔고 앉아서는 하늘만 보다가 돌아나왔다. 숲속을 떠나도

하늘은 따라와서, 정선의 고즈넉한 길가 위에나 허름한 슬레이트 지붕 위에도 파랗고 하얗고. 문득

스머프가 생각나기도 하지만 우야튼,


저렇게 동글동글 수제비처럼 떼어내진 구름떼가 바람에 밀려가고, 그 훨씬 위에 칠해진 투명한 파랑색 하늘이

어느순간 일렁인다 싶은 환상에 빠질 즈음이면, 누군가 기분좋게 머릿카락을 쓸어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정선 시내를 산책하다가 만난 풍경들 몇 개. 바리케이드로 쓰이는 노랗고 까만 철제구조물에 비닐을

씌워서는 고추를 말리는, 아아 나른하다 나른해, 라고 고추들이 비틀리며 중얼거리는 거 같다.

쌍꺼풀이 엄청나게 짙던 강아지 한마리. 쌍꺼풀도 길고 속눈썹도 길어서 왠지 눈매가 낙타를 연상시킨다. 


'자전거포'라고 어렸을 때 불렀던 거 같은데 요새야 엔간하면 전부 무슨무슨 샵, 으로 바뀌었다지만. 아마

그 나이를 따지자면, 바이크샵<자전거포<자전차 정도 되지 않을까.

벌써 어디인가는 연탄불을 지피고 있는 건가, 근처에 연탄불 고기집 같은 곳이 안 보이는 주택가였으니

아무래도 난방용으로 쓴 건가 싶다. 아니면 무슨 온실같은 곳에서 공기를 덥혀주느라 태웠다거나.

어느 골목길, 아이들이 길가에서 공을 차며 자기들 눈에만 보이는 골대를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색색의 플라스틱 우유상자를 화분삼아. 구멍이 숭숭 난게 공기 통하기도 좋겠고, 사방으로 나 있는

손잡이 덕에 옮기기도 편하겠고, 여러 개 저렇게 배열해놔도 깔끔하게 아귀가 딱 맞아떨어지고.

전깃줄 위에 앉아서 쫑긋쫑긋 머리를 사방으로 돌려대는 새 한마리. 저렇게 새들이 머리를 마구 돌려대며

사방을 경계하는 걸 보면, 꼬깃꼬깃 돌려대다가 뚝 하고 끊어져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이 슬몃 들기도 한다.

여하간, 또다시 가슴을 둥둥둥 울려대는 9월의 하늘. 여행가고 싶다..





열린 하늘 틈으로 빗발보다 먼저 뭉게뭉게 비구름이 들이찼다. 갈라진 천장 사이를 억지로 더욱 비틀어

비집고 들어오려는 듯 우왁스런 안개가 시시때때로 만들어져선 용을 쓰다 사라졌고, 그로부터 굵고 길죽한

빗발이 죽죽 그어져내렸다. 그렇게 온통 하얗고 까만 그 공간에서 빗물에 젖은 강철지지대가 녹슨 적빛을

식은땀처럼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순간 수직으로 낙하하는 빗방울과 교직하며 홍대입구행 'INNER CIRCLE LINE'이 도착했다.

애초 '내부순환' 정도의 의미밖에 없었을 저 단어가 언제부터 내게 그야말로 '이너서클', '파워엘리트집단'

따위의 부차적인 의미를 먼저 제시하게 되었을까, 잠시 생각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말았다.




김포에서 김해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촬영한, 일종의 항공사진이랄까. 어젯밤에 중부지방에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내렸다더니 제법 가벼운 느낌으로 쳐내어진 구름들이 하얗게 깔려선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조그마한 비행기가 굉음을 내며 분명한 속도감으로 움직이고 있었지만, 구름들은 더러

비행기보다 빠른 속도로 뒤로 물러나기도 하고 혹은 딱 붙어서는 전혀 움직임없이 비행기와

함께 흘러가는 듯 하기도 했다. 비행기 탈 때마다 잠시 구경하다가 이내 창문을 내리고

잠을 청하거나 영화를 보곤 했었는데, 작정하고 카메라를 들이대니 지루할 틈 없이 뭉개지고

다시 뭉쳐지고 또다시 뭉개지는 그 모양새와 디테일한 보슬보슬함에 눈을 뗄 수가 없다.

터키의 파묵칼레, 온통 하얀 석회석으로 이루어져 반짝거리는 새하얀 산이었던 그곳에

다시 오른 느낌이었다. 비행기 문을 열고 저위로 한걸음 내딛으면 딱딱한 바닥이 감각될 듯한.

맨발로 그 하얀 석회석과 미끈거리는 물을 가르며 걸었던 기억이 문득 발에 돌아왔지만,

아니면 북극이나 남극에 둥둥 떠다닐 커다란 빙하에 오른 듯 차가운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이곳에도 제법 날카롭고 높직한 산맥이 내달리는가 하면, 평야가 넓게 펼쳐지기도 하고,

새하얀 대지 아래를 적시며 잿빛 강이 흐르기도 했다. 예전에 봤던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업'이 떠올랐다. 색색의 풍선들을 매달고 하늘을 나는 집, Adventure is up there라고 했지만

실은 Adventure란 게 어디에나 있음을 이야기하던, 그리고 인생을 순식간에 흘려보내는

압도적인 오프닝이 있었던 멋진 애니메이션. 풍선들 대신 비행기를 탔지만, 그림으로

접했던 그네들의 설렘과 열광, 흥분을 왠지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부산에 거의 도착할 무렵, 지상이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불쑥 굽어진 어떤 강이

온통 황토빛으로 흐르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탁하고, 무겁고, 혹시나 4대강 삽질때문은

아닌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늘에 떠있는 구름이 워낙 새하얗고 가볍고 장난스러워서

상대적으로 더욱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줘야 하지 않으려나 싶기도 하고.





이런 식으로 생긴 구름은 아무래도 신기하다. 길고 곧은 직선처럼 쭉, 너무 두껍거나 얇지도

않게 딱 알맞은 두께로 한참동안 지탱되다간 슬몃 사라지는 구름이다. 그것도 정말로

한참동안, 아무런 흔들림이나 흐트러짐없이 막대사탕처럼 단단히 굳어버린 듯한 구름.


어렸을 적에는 전투기나 비행기가 지나간 궤적은 아닐까 싶었는데, 혹은 UFO의 항적은

아닐까 했는데 그런 건 아닌 거 같다. 또 어디선가 듣기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우연찮게

길게 늘어뜨려져 생겨난 구름일 뿐이라고 했던 거 같기도 하고.


역시 모르겠다. 사실은 저런 구름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누가 뱉어낸 건지는 그리 중요한

건 아닌 거다. 그냥 저런 구름이 생겨난 걸 문득 보면, 굉장히 의지력 강해보이고 단호한,

흔들림없이 목표를 향해 내달리는 그런 녀석이지 싶어서 응원해주고 싶어진다.








@ 올림픽공원.


때로는 말보다 그저 사진 몇 장으로 그치는 게 낫겠다 싶다. 어제의 하늘, 어제의 구름이 그랬다.




타이페이에서 올려다 보았던 구름. 워낙 뜨겁게 달궈놓는 태양이라 공기가 휙휙 움직이고, 그러다 보니 구름의

생김생김도 굉장히 드라마틱하고 흐르는 속도 역시 무시무시하게 빨랐다.

온통 파랗기만 하던 하늘, 구름 역시 한 점 어둑어둑한 부분없이 새하얗기만 했던 며칠간.

내려다 본 하늘은 또 달랐다. 타이페이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한 즈음, 솟구치던 비행기가

슬쩍 균형을 잡으며 단단한 아스팔트 도로 위를 달리듯 딱딱해진 공기 위에서 주행하던 때 내려다본 하늘.

그러다 보면 가끔 있는 터뷸런스 상황도 비행기가 공중에서 위태롭게 흔들리고 추락할지 모른다는 걱정보다는,

그냥 잠시 커다란 돌멩이를 바퀴로 밟았나보다 싶은 느낌이 드는 거다. 저 구름속 어딘가에 숨어있는 커다란

돌띵이를 밟고 비틀대는 그림이 머릿속에서 그려지면 왠지 웃기다.





대만 가는 길, 구름이 두껍고 보드라운 크림처럼 비행기 아래로 깔렸다.
 
구름 위로 올랐으니 굉장히 하늘 높이 올라 있는 셈이지만 여전히 달은 멀고도 높다.

파랗게 나염한 천에 손톱으로 폭, 선명히 자국을 남긴 듯한 손톱달이다.

파란 하늘, 이라고 뭉개버리기엔 그 변화무쌍한 색감과 분위기가 너무 생생하다. 더구나 순식간에 휙휙 형태를

바꾸며 능란하게 접근해 오는 그 육덕진 구름들의 향연이란.





건강검진을 마치고 뒤늦은 출근길, 트레이드 타워의 유리 벽면에 흰 구름이 크림처럼 가득 얹혔다.

파란 하늘 위 흰구름이야 원체 이쁘니까 따로 말할 필요도 없다지만, 이런 칙칙한 건물조차 이토록 쌈빡하게

꾸며줄 수 있다니. 저 키큰 건물이 하늘에 풍덩 빠져버렸거나 미끌려 들어가버린 듯한 느낌으로. 좋은 날.





앙코르왓 인근 주택가에는 마당-마당이라고 딱히 뚜렷한 구획이 지어져 있는 건 아니지만-에서 이런 새들이

자유로이 활보하고 있었다. 저게 칠면조인지 오골계인지, 조류의 이름이래봐야 후라이드치킨 양념치킨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인지라 뭔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이국적인 장면이었다. 

그런데 왜 여기에서 마주치는 소들은 다들 갈비뼈가 몇 개인지 셀 수 있을 정도로 말라붙었을까. 일을 많이

시켜서일 수도, 혹은 더워서 힘이 드는 건지도. 먹을 게 부족하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얼추 해가 저물어갈 시간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앙코르 유적군 외곽에서 씨엠립 시내의 숙소-그것도 하필

꽤나 외곽에 잡아버린-까지 자전거로 가려면 또 두시간여 밟아야 하기 때문에 그걸 감안해 보면 얼른 서둘러

움직여야 했다. 마음이 살짝 조급해져서 그런지 하늘도 조금 어두워진 느낌.

길 양편으로는 우리나라의 촌에서 보이는 그런 무논이다. 빼곡하게 집약적으로 모를 심어놓지는 않았는지

듬성듬성 비어 있지만, 아열대 기후 덕분에 일년 삼모작까지 가능하다는 이 나라에서도 싱그런 녹색이다.

쁘레룹에 가서 석양을 보는 걸로 3-day Pass의 첫날은 시마이하기로 했다. 기어 따위 없는 자전거에서 쉼없이

페달을 밟는 건 보통일이 아니었다. 중간에 잠깐 내려붓던 스콜, 열대성 강우의 물방울이 따꼼거렸지만 차라리

시원해서 좋았다. 그것도 잠시, 채 십분이 되지 않아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다시 후끈거리는 찜통 속으로.

쁘레룹 앞에 도착하니 이미 석양을 보러 온 듯 여행객들을 실은 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앙코르 유적지에서

석양을 보기에 좋은 장소중 하나로 꼽히는 쁘레룹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냥, 많이 파괴된 채 중앙 성소를 감싸고 섰는 네 개의 보조 사원, 총 다섯 기의 연꽃모양 건축물이 비바람에

쓸리고 닳아빠져 있었다. 쁘레 룹은 사실 이 곳에 올라 석양을 보고 싶단 이유만으로 들른 사원이었다.

위에 오르니 별로 넓지도 않은 공간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일찌감치 명당을 차지한 채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들은 전부 한국어로 된 가이드북에 한국말을 시끄럽게 쓰고 있었다. 왠지 그 압도적인 한국인 여행객

비율에 민망해져 버렸다. 외국인들은 석양 보는 거 별로 안 좋아하나? 아님 이 장소가 석양보기에 좋다는

팁은 한국어 가이드북에만 있는 거 아닐까? 이런저런 추측을 해보았지만, 단일 장소에 이렇게 특정 국가

여행자들이 몰려있다는 건 어쨌거나 그다지 건전한 현상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

해가 넘어가려는 즈음, 서늘한 바람이 하늘끝에서부터 불어왔다. 구름들도 물통 속 담궈진 붓에서 잉크가

빠져나가듯 삽시간에 쏴아, 하고 하늘 바깥으로 번져나간다.

파노라마로 어떻게 연결해 보려고 찍어 보았으나 실패. 그치만 해가 구름에 가리고 조금씩 땅 아래로 빨려

들어가는 타이밍의 하늘이란 너무 이뻐서, 계속 질릴 줄 모르고 하늘을 보고 카메라 뷰파인더를 보고.

약간씩이지만 다 다르다. 잠깐 사이에도 구름의 모양과 위치는 급변하고, 구름에 반사되는 햇살의 양과 강도에

따라 그 풍부한 느낌과 질감마저 달라지는 것 같다.

구름이 많아 해가 떨어지는 장면을 직접 볼 수는 없었다. 아마 조금 더 뭉개고 있었다면 찍었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버스나 뚝뚝을 대절한 게 아니라 두 다리만 믿고 자전거 페달을 한 시간 넘게 밟아야 할 몸인 거다.

가뜩이나 교통법규도 안 갖춰진 동네, 가로등 따위 정비되어 있지 않은 동네에서 어둑한 길에 자전거를 타는

불상사는 피하고 싶어 아쉬움을 가득 머금은 채 자리를 떠야 했다.

안녕 사자야~ 인사하고 쁘레룹을 내려섰다. 뒤에서는 여전히 한국말이 다른 나라 언어들을 위압한 채 우렁차게
들리고 있었을 만큼 한국인이 '쁘레룹 석양전망대'의 대세였다.

그래도 아쉬워서, 가파른 각도의 계단을 내려서면서도 연신 눈과 카메라는 하늘을 찾았다.

와중에 두 번째 등장하는 '나'.

급변하는 일기 상태가 고스란히 구름의 형상에 반영되는가 싶다. 저 멀리에서 유유히 피어오르는 뭉게구름,

여기저기서 연기처럼 솟아오르는 두터운 구름, 그리고 눈앞에서 내려앉기 시작하는 깜깜한 먹구름.

그야말로 변화무쌍한 하늘, 그리고 남국의 구름이었다.





@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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