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3. 앙코르왓 3일 코스짜기.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외곽지역의 유적들을 둘러볼 작정이라, 아예

하루종일 뚝뚝을 대절했다. 씨엠립 시내에서 분쪽으로 약 40킬로미터를 달려야 나오는 '반띠아이 쓰레이'라는

곳 주변과 씨엠립 남동쪽으로 약 15킬로미터를 달려야 나오는 '롤루오스 유적군'까지 가기로 하고,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25달러에 흥정을 마쳤다. 원래 씨엠립 시내 근처에서 종일 뱅뱅 돌아도 15달러 정도 한다고 하니

나쁘지 않은 가격이다. 여행자의 안전을 위해, 그리고 아마도 유적을 돌아보고 나와서 바로 찾기 쉽도록

뚝뚝 운전사마다 저렇게 등록번호가 적혀있는 조끼를 입고 있다.

씨엠립에 흔치않은 보행 신호등. 여긴 아직 교통법규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나라다. 

씨엠립 시내에서 종종 마주칠 수 있는 한국어 광고판. 시원한 소주가 있다고 하지만, 글쎄...캄보디아에 왔으니

캄보디아의 술을 마셔주는 게 인지상정.ㅋ

오토바이를 개조해 삼륜차로 만든 뚝뚝이 부앙~ 오토바이 엔진의 얇고 경망스런 소음과 함께 달려나가는데

전날 자전거를 타고 헥헥대며 달리던 거리가 금세 뒤로 멀어진다. 이렇게 길가에서 다그닥거리며 달리던

마차도 순식간에 뒤로 물러나버리는 정도의 속도. 뜨거운 햇살은 차양이 가려주고 시원한 바람이 맹렬하게

들이치니 한량놀음이 따로 없다.

앙코르 왓 우쭉에 쁘라삿 크라반, 그 위의 반띠아이 끄데이, 쓰라쓰랑을 거쳐 북쪽으로 내달리기로 했다.

쁘라삿 크라반은 씨엠립 북쪽 앙코르 유적지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앙코르톰/앙코르왓에 가까이 붙어있는

힌두교 사원이다. 정갈한 인상의 담홍색 벽돌탑이 다른 잿빛 돌덩이로 이루어진 사원들과 다른 산뜻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연꽃 형태를 형상화한 모양의 건물이야 비슷하다고는 해도 색감과 따스한 벽돌의 질감때문인지

영 다른 느낌이다.

가운데 있는 중앙 성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와서 향을 피우고 꽃을 봉헌하고 소원을 비는 곳으로 쓰임이

있었다. 이런 건 '문화유산'에 대한 훼손인 걸까 아니면 문화유산 이전의 '삶의 공간'으로 제대로 활용하고

있다고 해야 하는 걸까.

벽돌탑 안에는 네 개의 팔에 각각 원반과 연꽃, 법라패와 곤봉을 쥐고 있는 비슈누가 있었다. 원반은 비슈누의

가장 중요한 무기이자 상징으로, 실제 고대에는 전투 무기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곤봉 역시 오랜 연원을 가진

무기임에는 틀림없으며, 연꽃은 해가 뜨면 피고 지면 봉오리를 닫는 속성을 따서 '세계' 그자체를 상징한다고.

법라패란 건 뭔지 모르겠는데 무슨 악기인가 보다. 법라패를 불면 신들은 힘이 생기고 악마는 두려움에 떨게

된다는 설명이었다.

어라, 근데 무수한 팔을 가진 비슈누들이 조각된 벽면을 따라 눈길을 훑어 올리다 보니, 천장이 뚫려 있었다.

간결한 형태의 피라밋처럼 조금씩 주둥이를 오무려가는 벽면 위쪽으로부터 쏟아지는 하얀 햇살.

캄보디아어인가, 아니면 이전에 쓰였던 문자인가, 사원의 문틀에 빼곡히 조각되어 있던 기기묘묘한 글자들.

글자라기보다는 무슨 함축적인 그림이나 아름다운 기호 같다.

아침 일찍부터 나선 덕분에 사람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둘러볼 수 있었다. 대략 삼십분, 휘적휘적 걸으며

아직은 기분좋게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구경하고 나니 조금씩 여행객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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