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서 나온 한식 코스메뉴를 쭉 훑어내려 보다가 문득 놀랐다. 얼간이 된장국? 얼간이?

먹으면 얼간이가 되는 된장국인 걸까. 얼이 빠진 사람, 정도가 얼간이의 뜻일 텐데.

그래도 호텔에서 만드는 메뉴이니만치 오타는 아닐 거라 믿고 싶었지만, 또 동시에

'얼간이 된장국'이란 말에 이렇게 생경한 나 자신도 찜찜하길래, SMART하게 스마트폰을

활용해서 국어사전에 접속했다.

얼간망둥이랑 얼간이가 둘다 표준어란 건 알게 된 수확은 있었지만, 그리고 얼간이의

관련어휘로 멍청이, 멍텅구리, 바보, 얼뜨기 따위가 있다는 걸 재발견한 수확은 있었지만

도무지 '얼간이 된장국'의 유래를 알 수가 없었다. 이거 혹시 '얼갈이'의 오타는 아닐까.


왜 그 얼갈이 배추니, 얼갈이 김치니 하는 단어가 있지 않은가 말이다. 얼갈이는 얼간이랑은

영 다른 의미를 담은 단어, ㄹ과 ㄴ의 한끝차이일 뿐인데 느낌이 확 다르다. 그야말로 절묘한

오타라고나 할까. 아무래도 얼갈이 된장국이 맞지 싶어 수정을 요청했다.

그렇게 다시 고쳐진 메뉴, 얼간이 된장국이 아니라 얼갈이 된장국이 되고 나니까 속이 다

후련해진 기분이다. 그런데 이제 다시 눈에 띄는 다른 문구. 진지와 얼갈이 된장국. 밥 대신

진지라고 하니까 그것도 또 나름 웃기다.

여하간 이게 그 '진지와 얼갈이 된장국'의 정체. 그냥 뭐..흰쌀밥과 배추국이다.

아무래도 한식을 호텔에서 먹는 건, 뭔가 코스모폴리타닉해진 맛이랄까, 많이 심심하고

밋밋한 맛으로 순화되어서 그런지 별로 맛있다는 느낌은 없고 정갈하다랄까, 딱 그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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