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트럴역에서 나와 조금 걷다보면 자칫 놓치기 쉬운 간판이 보인다. 홍콩의 지하철역이 으레 그렇듯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바로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힐사이드 에스컬레이터가 출발. 참고로 이곳의 시꺼멓게 그을려 글씨도 알아보기 어려운 간판엔

 

'the Central Escalator Link Alley Shopping Arcade'라고 적혀 있다.

 

 다짜고짜 시작되는 에스컬레이터. 1994년 300억원이 넘는 자금을 투입해 2년반만에 완공했다는 800미터짜리 에스컬레이터다.

 

연간 2천만명이 이용하는 이 에스컬레이터는 산 윗동네 사람들의 출퇴근을 돕고 교통 정체를 완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애초 출퇴근용이니만치 오전엔 하행, 오후엔 상행으로 방향을 바꾼다고 한다.

 

 그런 내용이 적혀 있는 안내판, 에스컬레이터를 안전하게 타기 위한 온갖 지침이 총망라되어 있는 듯 하다.

 

 중간에는 이렇게 벽화가 그려져 있기도 하고.

 

 

건물 중턱에서 툭툭 튀어나와 사방으로 연결되는 아케이드를 따라 에스컬레이터로 합류하는 사람들하며.

 

 어느새 에스컬레이터가 오르는 길 아래로는 저만치 간판들이 늘어뜨려져 있을 만큼 높이 올라왔다.

 

 

 

 아래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정수리도 보이고.

 

 

 초록빛 화살표를 따라 멍하니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싣고 주변 풍경을 살피느라 정신이 없는 사이 어느새 소호.

 

 소호의 조금은 음침하면서도 술렁이는 분위기를 간직한 골목통을 지나고.

 

 어느 그럴듯한 바에 앉아 맥주병을 홀짝거리는 하얀 머리의 멋진 할머니도 만나고.

 

 그새 이렇게나 많이 올라왔나 가끔은 뒤도 돌아보며 에스컬레이터가 직선으로 관통해온 궤적을 헤아려보고.

 

 위로 오를수록 점점 눈에 띄는 주택가의 올망졸망한 풍경들을 보며 그들의 일상이란 어떤 걸까 상상해보기도 하고.

 

 아무래도 소호를 넘어 위로 올라가면 주택가라 '볼 것이 없다'더니 관광객의 출입이 드문지 에스컬레이터까지 뚫고 들어온

 

왕성한 생명력의 파초 이파리가 불끈.

 

 그런 와중에 이어지는 주택들의 창문들. 에스컬레이터 양쪽 풍경을 온통 꽁꽁 닫힌 창문으로 막아버렸지만, 그래도

 

저렇게 리듬감있게 매달린 화분들이나 몇가지 소품들로 지나는 사람들을 배려했달까.

 

 

 끝까지 올라갔더니 정말, 당황스럽도록 아무것도 없는 휑한 주택가여서, 어쩔 수 없이 조금 걸어내려가야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를 땐 몰랐는데, 꽤나 가파르고 길다. 더구나 내려가는 길이나 무릎 도가니에 꽤나 부담이 가는 듯.

 

이 정도의 경사라면 조금 실감이 나려나. 마침 빨간 색이 화려한 홍콩의 택시들이 우르르 멈춰서서 신호를 기다리던 장면.

 

 

몇달전인가, 어느 시사잡지에서 '통인시장'의 상인분들이 미대생들의 재능기부를 받아 각자의 상점을 나름대로

이쁘게 꾸몄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생선가게에는 생선의 테마로 한 참신한 간판이나 장식들이 내걸렸고

옷가게는 옷을 가지고 꾸며서 사람들의 이목과 발길을 붙잡는다는 컨셉이었던 던 거 같은데, 직접 가서 보니

정말 시선을 확 붙잡을 만큼 독특하고 재미있는 것들이 여전히 깔끔하게 손님들을 끌고 있었다.

'여기 속옷집이 있다, 비와이X'. 가게 앞에 속옷만 입은 사람 형상의 판넬이 둥둥 공중부양중이다.

건어물가게, 주렁주렁 엮인 명태가 매달려 있는 옆에는 눈이 부리부리한 오징어가 매달려 있다.

'반찬과 함께 사라지다', 오래된 영화포스터를 연상시키는 간판과 함께 LP판을 활용한 메뉴판.

두부와 콩나물국과 만두, 새하얀 천과 금박이 입혀진 빨간 천이 번갈아 널린 장식이 제법 단정한 분위기.

어느 생선가게, 겨울이라 조금 춥게도 보이지만 생선들이 신선하다는 느낌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바다수영의 포스.


미용실 앞에 있는...음...용도불명의, 그렇지만 스케일도 그렇고 모양새도 그렇고 딱 미용실을 나타내는 (아마도) 간판.

과일들이 으레 그렇듯 바닥에서부터 차곡차곡 진열된 것 뿐 아니라, 가게 위쪽에도 맛나보이는 과일들이 그득하다.

어느 분식점, 과자 포장지를 활용해서 찢어붙이기를 한 듯, 곰인형 한마리가 둥둥 떠있다.

어느 고깃집 유리창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댕기머리 총각. 티비를 훔쳐보는 건가 싶은 재미있는 풍경.

생선가게 앞에 '천하대장군'처럼 우뚝 선 물고기 한마리. 심심하게 서 있던 기둥에 표정이 생겼다.

그리고 심심찮게 보이는 SINCE 천구백몇년, 생각보다 연륜이 오랜 가게들이 많이 있었다. 50년이 넘은 떡집도 있고.

자하문길로부터 들어가는 통인시장 입구. 쭉 한길로 이어지는 심플한 시장통이 필운대길쪽까지 뻗어있다.


전통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한번 가서 오뎅 하나 집어먹고 뻥튀기 하나 산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이렇게 시장을 정비하고 꾸미고, 이야기를 얹는 등 다양한 노력이 있어도 쉽지 않은 일일 텐데.


이렇게 고객만족센터도 만들고, 통인시장에서 파는 반찬거리나 부식재료로 만든 도시락 까페도 만들어 운영하고,

통인시장은 나름 재래시장으로 살아남고 부흥하기 위한 서비스 마인드와 아이디어가 통통 튀고 있었다.

일회용 우의를 판다는데 포즈는 왜 저리도 시크한지. 우산을 슬쩍 쥐고 있는 두 손가락이나 푹 눌러쓴 모자도 완전 시크하다.

김치마을, 가게 주인 아저씨 아주머니들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게 '마을'의 분위기가 물씬하다. 통인시장, 통인마을이랄까.

심지어 상점에도 이렇게 손이 많이 들었을 아치가 세워져 있었다. 가게에서 파는 맛소금이니 밀가루니 따위의

포장재를 하트모양으로 잘라서 달아놓으니 뭔가 가게에서부터 하트가 뿅뿅 날아올라가는 분위기.

분식 집 앞에서 방긋 웃으며 손님을 기다리는 김밥 내외.

전집 간판에 달라붙어 놀고 있는 몇몇 살찐 졸라맨 버전의 아이들은 '전의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신발이 전시된 모양 그대로 이미 이쁘단 느낌을 자아내는 신발가게의 간판은 화려한 색감을 더했다.

식당의 메뉴가 그림과 글씨가 묘하게 뒤섞인 캘리그라피로 문짝이 그려져 있는가 하면,

떡집의 '떡'자는 화려한 꽃그림으로 치장이 되어 시선을 붙잡는다.

어느 만두집 간판 위에는 크리스마스 트리에 감긴 레이스를 잡아 떼어서 돌돌 뭉쳐만든 듯한 고양이가 한마리.

과일가게의 하얀 벽면에는 제법 섬세한 필치로 그려진 과일나무가 한 그루.

무와 배추와 양파를 파는 가게에는 허공에 무가 매달려 있는가 하면 가스통은 꽃무늬 옷을 입은 배추아줌마로 변신했다.

옷 수선점의 간판은, 크고 작은 각종 모양의 실패를 이어달아서 커튼처럼 드리웠다.


필운대길쪽으로 빠지는 통인시장의 입구. 천장이 유리 지붕으로 덮여있는 아케이드 형태인지라 날씨가 궂거나 춥거나

비가 오는 날에도 살짝 들어가서 둘러보기 좋은 재래시장이다. 아이디어가 통통 튀는 통인시장.






@ 제주.


● 일시 : 2011년 11월 25일(금) PM 18:00부터

● 장소 : "다른異 색깔彩을 지켜낼 자유"(http://ytzsche.tistory.com)

● 자격 : 저 간판의 이름을 불러주세요.

            + 초대장을 받을 이메일주소!^-^*


● 주최 : ytzsche(이채, 異彩)

● 제공 : 초대장 8장





출구라고 적힌 간판이 환하게 빛을 밝혔다.

무언가가 나오고 밀어내어지는 곳이 출구, 그런데 출구 앞 볼록거울에 비친 출구는

외려 다시금 그걸 꾸역꾸역 되짚어넣고 밀어넣는 그런 구멍처럼 보였다.


뗏국물이 말라붙은 더러운 거울은 출구의 기능을 반사시켜 뒤집은 것도 모자라서,

출구란 글자도 앞뒤로 바꾸어 구출이 되고 구출 역시 반전시키고 말았다.

왠지 막막한 느낌. 출구도 막히고, 구출도 글러먹은 더러운 거울속 세상.


1박2일의 짧은 남해안 여행이 끝나고 올라오는 길,

뭐 하나 바뀐 것도 없이 돌아올 곳만 정해져있다는 사실에 실망했던 거다.




@ 광주, 어느 백화점 주차장 출구 앞.

전주의 전동성당 앞 골목에서 문득 고개를 들어 발견한 간판 하나.

국수카페, 카페 이름이 그냥 국수인 걸까 아니면 국수도 팔고 커피도 파는 카페라는 걸까,

조금 당황스런 마음으로 몇 초간 하염없이 바라보던 간판이었다.


뭘까. 손님들이 한쪽에서 후루룩쩝쩝 하며 국수를 먹고 다른 한쪽에서는 커피잔을,

이왕이면 앙증맞은 에스프레소잔을 손가락에 꼽은 채 그럴듯한 표정짓기 놀이중이란

그림은 좀 상상이 되지 않는데..뭘까나.





전주 한옥마을에서 만난 화장실 표시. 이야..내가 여태 한국에서 돌아본 화장실 중에서 거의

손꼽히는 화장실 표시가 아닐까 싶다. 나무결이 슬쩍 드러나는 판을 마치 쪼갠 듯이 잘라내서는

이렇게 깔끔한 도안으로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고, 한국어와 영어로 깔끔하게 알리는 표시.


한옥마을에 어울리는 화장실이라고 뚝,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시간차를 두고 메아리로 울리는

푸세식변기, 그리고 허름하고 오래된 화장실 표시를 냅둬서는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시설은

쾌적하고 깨끗하면서도, 서구화된 채 천편일률적인 표시 대신 이렇게 특색있고 느낌이 사는

표시를 달아 붙이는 것. 가장 눈에 안 띄지만 또 가장 중요한 곳에 대한 세심한 손길이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높이는 첫걸음이지 않을까.




* 여행을 다니며 결코 빠질 수 없는 '답사지' 중 하나가 그곳의 화장실이란 점에서, 또 그곳의

문화와 분위기를 화장실 표시에까지 녹여내는 곳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국내외의 특징적인

화장실 사진을 모아보고자 합니다. 자신이 본 최고의 화장실 표시를 제보해주실 분은 댓글을

부탁드립니다~!





길을 달리다 문득 내다 본 하늘. 사방으로 종횡하는 고가도로와 때마침 머리 위를 지나려는 육교, 그 위에서

흰색 솜뭉치들을 흩뿌려놓은 하늘.

우. 브리즈센터 앞에서 섹시한 포즈를 잡은 그녀의 입에 말풍선을 달아준다면 딴 한 단어. 우♡

단수이로 달리던 길, 어느 다닥다닥한 건물이 비탈을 이루고 있었다.

유난히 새파란 하늘, 오토바이들이 길 앞으로 분리된 좁은 도로 양쪽을 틀어쥔 건물들의 압박.

기차가 지나가는 어느 길목. 어렸을 땐 늘 집앞에 기차가 지나가면 좋겠다 싶었는데, 요새도 변함없는 생각.

어린이 보호구역...이라 하던가. 나라마다 다른 특징을 좀더 선명하게 잡았어야 했는데 차의 속도를 이기지 못했다.

보통우편은 초록색, 급행은 빨간 색. 왜 난 이걸 보고 양념반후라이드반이 생각나는 걸까.

주펀의 메인 골목 들어가기 전, 오랜 건물들의 1층은 전부 사설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었다. 2층은 사람이 살고

1층은 외지인들의 차에 양보하는 그들의 미덕.

주펀에서 내다봤던 해안선. 삼면이 바다로, 그리고 그 바다는 또 철조망으로 겹겹이 둘러쳐진 우리나란 참 특이한 곳.

구비구비 골목길을 버혀내어 임오신 날 밤에 펴내오리라. 주펀의 홍등가 골목길을 숨겨둔 산비탈 마을.

타이페이의 도로를 달렸다. 어디든 도시는 공사중, 어쩌면 이 거대한 무생명의 존속을 위해 쉼없는 공사는

필연적이다. 늘 어딘가 파헤쳐지고, 무너지고 새로 쌓고.

스쿠터의 빨간 브레이크등을 멍청히 보고 있으면, 그리고 누군가가 지극히 무성의하게나마 '레드썬' 비스무레하게

우물거려주기만 하면, 금세라도 최면에 걸려버릴 거 같다.

어둠 속에 둥실 떠올라 낮과는 다른 운치를 녹여내는 한자어 빼곡한 간판들.

베이먼. 여기도 저렇게 관리 안하다가 싸그리 불타 버리면 어떡할라고.

룽산쓰 옆의 화시제야시장을 갔다가 지하철 역사 옆 광장의 벤치가 홈리스들에 점령당한 모습을 보고, 카메라가

반사적으로 올라갔다가 이내 뜨끔했다. 겸연쩍은 김에 그들 위에 가로놓인 기둥에 그려진 그림에 급호기심.

끝내 풀어내지 못한 마지막 궁금증은, 밤이면 밤마다 이토록 화려하게 거리를 불밝히는 저 폭죽같은 모양의

네온사인들, 그들이 광고하는 '빈랑'이 뭘까 하는. 뭘까. 뭐였을까. 무지무지 궁금했는데 끝내 맛도 못 보고

제대로 풀어보지도 못했던 타이완의 수수께끼. "빈랑(賓郞)"이었던가, 그게 뭘까요.







강해지기를 원하는 것은 허약함이며, 우월해지기를 원하는 것은 다름아닌 열등감이다.

자신감을 말하는 것은 불안감의 발로인 것.



얼마전 만난 친구는, 무슨 얘기인가 끝에 '서울대 간판 떼고 나면 너도 별거 없잖아?' 그랬다.

최근 누군가로부터 집중적으로 듣는 얘기 중엔 '별 것도 아닌 스펙만 믿지말고 공부좀 하세요'라는.

사실 새삼스럽지도, 도발적이지도 않은 지적이지만 때가 때인지라 다르게 다가왔다. (사실 그넘의

스펙은 믿어본 적도 없지만.ㅋ)


그치만 난 여태 내가, 혹은 내 능력이 모종의 시험에 처하는 상황이 되면 항상 잔뜩 긴장한 채

'원점부터 다시 평가받는다'는 자세를 취해온 게 사실이다. 내가 과연 그 시험에 통과할 만한지,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받아온 '간판'의 후광을 받을 자격이 있었던 건지, 그리하여 나에 대한 지금의

기대치가 합당한 수준인 건지. 그러한 것들에 대한 자신감을 번번이 다시 허물어뜨렸다가는, 곧 다시

회복하는 그런 피곤한 패턴.


그건 단지 시험에 겸손하게 임하고자 하는 실용적 목표만이 아니라, 혹여 불의의 결과가 나오더라도

충격을 덜 받고자 하는 꼼수이기도 하다. 사실 내 스스로도 내가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갖고 있는지,

얼마나 똑똑한지, 아니 대체 똑똑하기나 한 건지 의구심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일이 시도때도 없는

거다.(아마 내 주위 사람들은 더욱 의심하고 있겠지만) 그럴 때는 불쑥 조바심이 고개를 든다.

내게서 '간판'을 제하고 나면, 뭔가 남을까. 좀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그저 어쩌다 수능 한번 잘

쳤을 뿐인지도 모르는데 너무 분에 넘치는 대우를 받아왔단 게 뽀록날까봐. 수능맞춤형 인간일지도

모르는데, 너무 여러 방면으로 호들갑스런 대접을 받아왔던 게 아닐까 불편해져서. 세상에 꽁짜는

없다는데, 언젠가는 다시 전부 뱉어내야 하는 건 아닐까 하고.


해서 서류심사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들리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붙었단 소식에 감사하고,

일단은 당분간 조금 더 잘난척 하고 다녀도 되겠구나 안도하고(아직 내가 어리버리하단 소문이

그쪽까진 안 퍼졌구나, 이러면서), 혹여 떨어진 소식은 얼렁 머릿속에서 지우려 애쓰고ㅡ,

그러고 있다. 아..쉽지 않은 거다, 취직이란. 쳇.


그런 와중에, 이제 최소한 몇자리 숫자따위에 연연치 않을만큼은 철들었어, 라는 믿음으로

얼마전 봤던 멘사 테스트 결과가 나왔다. 몇자리 숫자일 뿐이고, 그저 특정 부문의 지력만을

잰 것 뿐인 결과임에도, 조금은 더 스스로를 믿어봄직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러면서 애써

퍼올리는 자신감 한주먹. 오늘 시험은 망치셨고. 어쩌면 아무데도 못가겠다는 위기의식으로

방금 네시간만에 네군데 지원서 꼽아버리셨고.



잘난척할 타이밍 = 잘나지못함이 아프게 와닿는 타이밍.

사실 '잘난 척'이란 건 나랑 상당히 거리가 먼데...오늘따라 왕창 가까워져 버리셨다. 흑.



(2007.10.14)





'향수'의 시인,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시작하는 첫머리만 알았지 가사도 다 모르던 그 시를 지은 사람이

살던 곳이다. 충북 옥천의 정지용 생가. 사실 여행을 가도 엔간함 피하게 되는 곳이 누구누구 생가, 이런 곳인데

이 곳 역시 그냥, 새로 지은 듯한 깔끔한-사람 온기없는-집 하나 덜렁 있고 옆에 박물관이 있었다.

깔끔하고 이쁘니까 좋긴 하지만, 여기서 정지용이 살았단 걸 그려낼 수 없는 건 내 비루한 상상력 때문일까.

조금은 더 리얼한 모습을 남겨주면 좋지 않았을지 생각해 봤다.

그의 '생가' 옆에 있던 지용문학관, 시인이 조탁해낸 언어들과 시세계를 비쥬얼로 보여주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무엇보다 그곳에서 일하던 문화해설사(맞나..)분의 질문이 계속 와닿았던 인연이었다. '향수'라는 (노래)제목은

다들 알지만, 정작 그 제목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향수란, 어떤 뉘앙스와 정조를 품고 있는 단어일까요.

"멋진 신세계"는 향수의 시인이자 최초의 모더니스트, 고도의 감각적 시어를 구사했던 정지용의 고장 옥천의

'시문학아트벨트'를 지칭한다고 했다. 정지용의 생가와 지용문학관에서, 옥천의 '향수30리길'을 따라 이어지는

그 공간에서 시인의 정취를 보고 듣고 느낄 수 있게 해보자는 공감각적 프로젝트라고.

생가 주변에서 만났던 풍경들은 놀라웠다. 이런 간판들이 있다니. 이런 아이디어를 실제로 실현하다니.

물결은 유리판처럼 부서지며 끓어오른다.

모초롬만에 날려온 소식에 반가운 마음이 울렁거리여
가여운 글자마다 먼 황해가 님설거리나니....

나의 가슴은 조그만 갈릴레아 바다.
때없이 설레는 파도.

헐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항상 머언 이,
나는 사랑을 모르노라.

곡식알이 거꾸로 떨어져도 싹은 반듯이 우로! (이곳은 탈곡기가 쉼없이 돌아가는 실제, 그런 곳이었다..!)

얼골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감을 밖에.

감탄할 밖에. 간판들에 눈을 못 떼고 정신없이 싯구절들을 탐하다가, 문득 삐딱한 맘이 고개를 들었다.

이 비용은 누가 다 감당했을까. 강제적으로 시행된 건 아닐까.

가까운 가게에 들어가 물을 사며 슬쩍 물었더니, 군청에서 비용을 전부 부담했다고 한다. 원하는 사람만 간판을

바꾸도록 한 거였고, 내키지 않는 사람은 안 바꿨다고. 하나 더 물었다. 간판 제목과 싯구절은 누가 정했는지.

뭐, 본인이 딱히 원하는 게 있으면 그걸 요청했다 하지만, 대개 '간판 만드는 전문쟁이'들이 알아서 만들어

왔다고 했다. 대체로, 다행한 대답이고 따뜻한 사업이지 싶다.

다른 가게들을 구경하면서 훨씬 맘이 후련해졌다. 멋지다, 고 맘껏 감탄할 수 있어서였을 거다.

↓ 맘놓고 감상하기.



향수의 2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난 여지껏 지랄..뭐라고? 이렇게 듣곤 했었다는, 쓰잘데기없는 사족.





의상실.

@ 제주도.

누군가의 잠재력과 능력을 평가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결혼하기 전에 미리 좀 살아봐야 상대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다고 하듯, 직접 함께 일해보기 전에는 그 사람의

능력이나 타입을 알기가 힘들다. 자신조차 스스로에게 내재된 능력과 취향을 닥치기 전에는 모르는 판국이니

타인을 비교, 평가한다는 건 애당초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타인을 평가하는 것은 불가결한 활동이다. 어찌됐건 살아가면서 일정한 경쟁이 요구된다는 대전제

하에서, 우리 사회의 경쟁이 얼마나 과다하고 비인간적인지를 차치하고서, 경쟁 결과를 산출하기 위한 판단

기준이 필요해진다. 그건 이력서에 나와있는 학점, 토익성적, 자격증, 어학연수 등의 기록이나 때론 동산/부동산

보유 정도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무엇보다 출신대학이 절대적이다. 그 치열했던 고등학교 교육을 뚫고선

공고하게 서열화된 대학에 차례로 채워나갔다는 것은, 분명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하나의 중요한 잣대로

기능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잣대로서 기능하는 학력이 어느 순간 권력화되고 구조화되어서, 여러모로 스스로의 영향력을

확대재생산하는 '절대반지'가 된지 오래라는 것이다. 대학의 위계에 따라, 사회적인 직업군에도 일반적인

경향성이 생겨난다. 여지껏 공고했던 이러한 현상에 대한 정책적 반응으로 최근 이력서의 출신학교란을 빼는

등의 시도가 있지만, 대부분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이른바 명문대 입학생의 출신성분이 갈수록 상층화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게다가, 같은 학교, 같은 과 출신끼리 밀어주는 연고주의는 이러한 학벌의

영향력을 한층 강화한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비단 출신학교의 문제가 아니라 이른바 인기학과/비인기학과의

문제이기도 하여, 점차 높아가는 경쟁의 파고를 반영하고 있다는 메타적인 측면을 도외시해서도 안 된다.


이러한 학벌주의는, 혹은 서울대학교 프리미엄은, 비서울대 출신이나 서울대 출신 모두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비서울대 출신은 불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불만과 출신 대학에 올인해야 한다는 '교훈'을 각인하게

된다. 이러한 교훈이야말로 공교육을 파탄내고 사교육 광풍, 멀게는 부동산문제까지 일으킨 장본인이 아닌가.

서울대 출신 역시, 자신이 학벌의 덕이 아닌 스스로의 능력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계속해서 증명해내야 하는

부담감을 안게 된다. 한국 내 대학위계의 최정점에 안착하기 위해 부차시되었던 자신의 적성, 희망 등은 여전히

접어두어야 하고, 일렬로 달리는 레이스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밤잠을 설쳐야 하는 것 아닌가. 게다가

요새는 '서울대 폐지론', '학벌주의타파종합대책' 등 자신의 안위를 위협하려는 '세력'도 준동하고 있고 말이다.

(서울대..라는 게 한국 교육체계 '피라밋'의 정점에 선 하나의 상징이라 비판받는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서울대가

사라져도 제 2, 제 3의 '서울대'는 당연히 생겨날 수 밖에 없다. 이는 애초 그러한 '피라밋'을 설정하고 당연시하는

교육 체계와 그 이면의 교육철학의 깊숙한 문제를 건드려야 할 문제다.)



그러한 '불순세력'의 준동에 너무 걱정은 마시라. 서울대라는 간판은 그렇게 녹록하진 않으며 거품이 빠진다 해도

여전히 최상급 레어 아이템 중 하나인 것은 사실이니까. 갈수록 부식되어 유명무실화되고는 있지만, 아직은

'서울대'라는 위상이 역설적으로 대학의 상아탑적 기능, 혹은 취직공부에 목매지 않고 자신의 관심사를

돌볼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도 사실이다. 바라건대 그러한 시간에 '학벌주의'에 대한 논란이 사회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어떠한 작용을 하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그러한 논란이 비록 '엘리티시즘'에 대한

대중의 적개심이나 한국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다소간 '묻지마'식 비판/비난으로 흐르는 면이 없지 않다 하더라도,

학벌에 대한 비판 및 해체 시도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공정한 경쟁과 획일적인 위계를 드러내는 것과 맞물려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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