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는, 그래도 세상에 '꼭' 있어야 하는 것들, 이것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었다.

이것, 이사람, 이길, 뭐가 되었던 그렇게 절대 놓치거나 없어져선 안 될 것들이 있다고 말이다.

다른 것들이 전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런 '머스트해브' 아이템들만 쥐고 있으면

결국 길을 잃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세상이 그렇게 '꼭' 있어야 할 것들은 있고 '결코' 있어서는 안 될 것들이 없는 동네가 아니란 건

점점 더 리얼하게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한발씩 뒤로 물러나면서 양보하기 시작해서, 꼭 이길만이

길은 아니란 것, 꼭 이러저런 가치나 아이템이 필수는 아니란 것을 배워가면서 주춤거리다 보니까

뒤에 숨겨둔 '머스트해브' 아이템의 목록들이 어느새 한두줄로 줄었다.


그리고, 꼭 이사람이어야 한다는 식의 사고방식도 어쩌면 그렇게 양보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이사람 아니면 안된다, 이사람이 평생에 한번 만날 내사람이다, 라는 생각이 이사람이 아니어도

괜찮을지 모른다..라는 식으로 바뀌어나가는 건, 그런 배움의 한갈래일지도 모른다. 애초 모든

만남과 이어짐과 헤어짐은 순간순간 눈앞에 놓인 갈래길을 두고 일어난 겁과 망설임의 결과.


'꼭'과 '결코' 따위 단언할 수 있는 여지라곤 있지 않은 흐물흐물한 세상에서, 객관적인 표현으론

'융통성'이 생겨나고 있는 걸까.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단단한 기준점을 잡아두고 싶었던

마음 그자체가 욕심이었고, 애초에 길잡이가 되어줄 만한 변치 않는 무언가, 꼭 쥐고 놓지 말아야할

무언가는 있지도 않았단 걸 조금씩 납득하고 있다. 슬프지만.



p.s. 요샌 'lost'의 세계에서 방황하는 중. 말 그대로 lost in lost.  시즌 1과 2를 이틀에 주파하고

시즌3를 달리고 있다. 하루하루 아무 생각없이 돌을 굴리듯, 똥을 말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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