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루사로 인한 대민 피해가 사상 최악으로 계속하여 경신되는 가운데, 일주일 째 성주서 삽 한자루 의지해

민간인 곁에 항상 자리하는 "국민의 군대"로서의 위상을 굳히고자 열혈을 불태우는 군바리...

하루 8시간씩의 육체노동을 통해 소중한 땀의 가치와 노동의 즐거움마저 식상해질 무렵, 삽질이란 단순한 몸짓이

궁극에 달아 득도하고야 말았으니. 자그마한 언덕만큼 쌓인 그 시궁창흙을 한삽한삽 떠가는 과정이야말로

세상만사를 대하는 인간의 허접찌끄레한 온갖 행위의 응축적인 필살은유였던 것이다.


이른바 삽질.

첫삽을 푸욱~ 스피디하게 꼽아 퍼내는 순간, 왠지 뭉텅 베여나간 그 언덕의 허한 빈자리가 그렇게 커 보일 수가

없고 무언가 많이 얻어냈다는 충족감과 자신감으로 야~ 뭔가 되나부다~ 란 의욕에 불타오른다.

허나..갈수록 새침해지며 자신을 안 내주려하는 그 '언덕'. 그리고 그새 올라가버린 충족감의 역치로 인하야

피로도가 가중되며 약간의 암담함이 끼기 시작한다.


머, 약간의 위로를 자신에게 던지고자 가증스런 자위 한마디를 던진다면 그런 삽질의 과정 속에서 알게 모르게

그 삽'질'의 대상인 언덕과 주체인 나 자신이 동질화되어가고 닮아간다는 거.

삽에서 튀긴 흙부스러기와 모래먼지를 점차 뒤집어써가며 내가 흙무더기 언덕인지 흙무더기언덕이 나인지

알 수 없는 수준에 이른다면 '삽질'을 통한 소기의 목적은 달성된 것이 아니겠는가! 허나 이러한 갸날픈

자기기만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그 언덕(작업대상)에 이를 즈음 처참하게 깨져 나가는 것이니,

삽이란 작업 수단의 원초적이고 형태적인 본질상 그 밑바닥에 고여있는 엑기스..그니까 시궁창 냄새 풀풀 나고

구데기가 스물대는..를 아무리 애써봐도 떠낼 수가 없다는 거다. 인간으로 비기자면, 마치 모든 인간이 소유하고
 
있다는 자신만의 각기 섬들..그 영역과 경계에 있어서의 가히 절대적이라 할 불가침성과 같을 터.


하여, 삽질은 언제나 목마르다.


(2002.9.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