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GS 중역들과 함께 했던 회식에서 전무 하나가 내게 마치 인사면접보듯 질문했다, 술이 불콰히 취해서

이런저런 얘기중에. 윤선생은, 자네는 나중에 무엇이 되고 싶은가.



그건 날 곤란하게 만드는 질문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자기소개서, 에세이, 커버레터를 쓸 때 잠시 손을 멈추게

되는 지점. 어쩔까 하다가, 늘상 몇마디 공격을 허용하고 마는 대답을 그대로 읊었다.

무엇이 되겠다는 완결된 꿈은 없습니다, 다만 하루하루 의미를 찾으면서 살고 싶습니다. 원점에서 항상 새롭게

볼 수 있는 시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변덕스럽진 않습니다.



만약 레쥬메를 들고 하는 Q&A였다면, 아마도 나는 이런 식으로 좀더 읊조렸어야 했을 거다. 이력을 얼핏 보면 좀

미친년 널뛰듯 한다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그 밑에는 일관된 열정이 있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제가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것이 책임감이라 쓴 에세이 역시 그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고자 함이였구요. 운운.



정형화된 남성성은 목표지향적인 반면, 여성성은 과정지향적이라 했다. 어떻게 보면, 나는 무언가를 갖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갖고 그 무엇을 향해 치닫는 '남성적' 성품이란 게...상당히 희박하다. 똑같이 '성취'라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예컨대 이번학기 학점과 같이, 그건 분명 목표학점을 찍어놓고 달린 결과라기보다는 리포트, 중간,

기말..하나하나 찍어나가면서 얻어진 결과였다. 사람들간의 관계 역시 그렇다. 對이성 관계에 있어서도, 애초부터
 
뭔가 이뤄보겠단 심잡고 만난다기보다는..그냥 만나는 게 좋고 보는 게 좋고 그러다 보면 뭔가 되든 안되든, 그런

것 같다. 그냥 '지금의' 것이 좋은 건데, 그 '지금의 것'으로부터 어떤 정향을 추출해내는 사람에겐 오해를

부르기도 하고. (어쩌면 이 모든 건 사람을 겁내고 감정을 두려워하는 내 핑계일지 모른다)



과정 자체를 즐긴다는 말은, 그래서 사회적 통념상 '불건전'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슬며시 빠져나갈

구멍을 항상 보고 있겠다는 말을 뒤집은 것인지도 모른단 얘기다. 원하는 목표 대신 목표를 향하는 길 자체를

즐기겠단 말, 어디로 어떻게 꺽이고 변화/변전/변질/변색/혹은 퇴색(?)되더라도, 사후적인 한마디,

이를 앙다물고/기꺼운 표정으로/썩소를 지으며/비극을 연기하듯, '재밌었어.' 혹은 '그걸로 충분해.'



내가 정말 과정을 중시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운전대를 잡고 '지금 현재'만 주시하는 고속주행에선

조그마한 돌멩이 하나가 밟혀도 차가 휘청하듯이, 조그마한 일 하나에 마음 전체가 왈칵 쏟아지기도 한다. 애초

별것아닌, 아주아주 사소한 일 하나라 할지라도, 그건 몇달몇년 간의 내 의지를 순식간에 뒤엎어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애초 그 바램, 의지란 것 자체가 뭐 그리 대단한 이유나 설득력이 있었겠냐만, 관성에 기대어 응고되어

가던 그 마음이란 게, 한순간에 휘발되어 버린다. 고시를 그렇게 그만 둘 수 있었던 것도, 사람과의 관계를 그런

식으로 정리하는 것도, 돌아서면 무지 차가울 것 같다는 누군가의 사려깊은 통찰도, 결국은 같은 궤적에 있는 것

같다. 현재를 탐닉하는 마음, 그리고 한순간의 (언제고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필연적일) 엇나감, 그리고는

망설임 없는 돌아섬. 그 돌아섬에는, 이러한 사건,일상,이벤트를 통해 무언가를 '얻었다'는 자기만족 내지

자기위안과 자족감이 가득한 데다가, 애초 무언가를 끝까지 추구하지 못하는 주의력 결핍장애나 집중력핍진증의

징후가 뚜렷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애초 전형적인 여성상에 비추어진 '과정지향적'이란 단어 자체에 마초적이고 악의적인 의도가

내포되어 있진 않은가 의심할 판이다. 아님, 초점을 보다 좁혀서, 나 자신의 성품이란 게 단지 '다소 여성적'이란

식으로 넘어갈 게 아닌 무언가 문/제/가/있/다/라고 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무엇을 끝까지 추구해서

상처투성이가 되더라도 '쇼부'를 보고야 말겠다는 우악스러움(혹은 집요함/보다 중립적으론 굳건함)이 결핍되어

있다. 그리고 여태까진, 어렴풋이 느껴졌던 그러한 빈궁함의 이유를 '목표'가 없다는 데서 찾고 있었지만..

그게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일본 애니에서 느껴지는 그 상실의 미학. 이쁜 비극. 그런 결말. 마지막을 얼마나 농도짙은 애수, 혹은

싱실감으로 가득 채울 수 있을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듯이, 거침없이 '추락하는' 캐릭터들. 애초 목표를 향해

쏘아진 살이 아니었다는 듯이. 얼마나 이쁜 궤적을 그리며 하루하루 추락했는지가 문제였다는 듯이.



과정이 중요하다고,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그 과정이 충실하고 이뿌다면 된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그건 언제고 나타나는 돌부리가 버거워지는 순간 널부러지며, '에라 모르겠다

여태 즐거웠으니/행복했으니 됐다'라는 식의 방탕스러움 그것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이고, 그런 식으로 해석할 여지 역시 충분히 예측가능한 거였다. 그치만 역시나, 발딛어

직접 감촉하기 전까지는 모든 땅이 미지의 섬이었던 게다.



목표를 놓쳐선 안 되는 거 아닐까. 책임감이란 거, 그런 게 아닐까.

그렇게 합리적이지도, 납득할 만하지도 않지만.



아, 그 전무가 내게 치고 들어온 공격은 그런 거였다. 와이프, 혹은 여자친구가 그런 모습에 실망하지 않겠나.

내 대답. 그런 나를 이해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그런 관계가 불가능하겠죠. 잘한 대답인진 모르겠지만,

전무는 그저 내 어깨를 몇차례 두들겨 주고는 술한잔 말아주더군.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