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이 하나 있다. 서울로 비기자면, 삼성동 봉은사..라기보다는 도심의 조계종이나 실상사쯤으로 비기는 게
맞을래나. 좀더 번잡하고 오래된 건물들 사이에 콕 박혀 있는 그런 느낌.
천재지변이니 전란에 시달려 온 지라 지금의 건물은 2차 세계대전 후에 재건된 거라고 한다. 근데 이 때깔이나
분위기는 거의 이 도시가 생겨나기 이전부터 버티고 있었던 듯한 터줏대감의 포스.
바글바글, 단위면적당 인구밀도는 룽산쓰 주변에 비해 꽤나 높겠다.
사방에서 무규칙하게 내부를 돌아다니는 사람 사이에서 순간 길을 잃은 느낌마저 들었다.
일이 세상에는 많은 거다. 어떨 때는 신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있긴 하지만, 아직은.
관제, 삼신할머니 같은 신불들. 제각기의 목적에 맞는 신을 찾아 '성적 올려달라고', '사랑을 이뤄달라고', '돈벌게
해달라고', 그런 것 쯤일까. 문득 든 생각인데, 요새는 '오래 살게 해주세요'는 별로 신에게 빌 꺼리가 못 되는 거
같다. 보통 드라마보면 의사 소매춤 잡고 비는 거 같던데.
절이 쉬는 데야 아니라지만, 그래도 한국의 절들처럼 여유로운 부지를 가지고 숨통이 트이는 여지가 없어서.
붙잡고 봉춤 중인 우리의 용님. 화려하고 이뿌지만 폭염 속에서 잠시 앉아 땀 식힐 곳이 넘 아쉬웠다는.
마음때문인 거다. 좀만 더 햇살이 직사하지 않는 시간대에만 왔어도 좀더 멋지게 남길 수 있었을 텐데,
좀만 더 기다려 해가 기울면 조금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 거 같은데. 어쩌면 정말 어딘가의 모습을
온전히 발견하고 캐내려면, 매 계절, 그리고 하루의 아침점심저녁쯤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봐줄 여유가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게 아마 확실할 거다.
만들 걸까 아니면 뭔가 틀에 찍어낸 걸까.
운전 중이셨다. 저 분은 룽산쓰의 봄여름가을겨울, 아침점심저녁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을 다 알고 있겠지.
살짝 부러워졌다. 사람들이 이토록 꽉꽉 미어지는 곳이 정작 숨기고 있는 표정을 알고 있을 스쿠터 스님.
'[여행] 짧고 강렬한 기억 > Taiwan-2010'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0년 정리하며, 올해의 사진들 (여름 ver.) (4) | 2010.11.12 |
---|---|
타이완의 낮과 밤, 그리고 수수께끼 하나. 빈랑이 뭘까요. (14) | 2010.08.06 |
이열치열, 송글송글 응결된 물방울처럼 땀이 맺히다. (2) | 2010.08.06 |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촬영지, 단수이의 캠퍼스타운. (2) | 2010.08.06 |
타이페이 야시장의 먹거리 코스요리 제안. (4) | 2010.08.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