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표적인 성이라고 하면 역시 오사카성, 이려나. 아직 오사카를 가보지 못했으니 구체적인 이미지는

하나도 안 잡히지만, 그래도 대략 이런 그림일 거다. 3층 이상의 고층으로 쌓인 탑같은 모양의 기와지붕 건물.

알고 보니 이 건물 자체는 '성'에 포함되어 있는 방어시설이자 망루의 역할을 하는 천수각이라고 한다.

오사카까지 가지 않고 아오모리현 히로사키 공원에 있는 히로사키성에 가서 알게 된 사실 하나.

히로사키성은 1895년 히로사키공원으로 개방되어 사람들이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으로 변모하였는데, 이곳에

벚나무를 심은 것은 약 300년 전부터라고 한다. 현재 공원 안에는 일본에서 가장 큰 왕벚나무와 일본에서

둘레가 가장 큰 왕벚나무를 포함해 약 2600그루의 벚나무가 있다고. 4-5월 벚꽃 축제 기간 중에는 전국에서

약 250만명이 찾아오는 일본 제일의 벚꽃 명소라고도 한다.

히로사키성 천수각은 원래 1611년에 축성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낙뢰를 맞아 완전히 불타버렸고,

1810년에야 재건이 이루어져 지금의 이런 모습을 이룬 것이라고 한다. 에도시대에 재건된 천수각으로는

도호쿠 지방의 유일무이한 것이라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고 하는데, 현재는 히로사키성과 관련한

유물이나 자료들을 전시하며 일반에 개방되어 있어 꼭대기층까지 올라가볼 수 있다.

전시한 유물 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건 화승총, 흔히 조총이라 부르는 그 '신무기'와 그곳에 들어갔던

옥구슬 총알, 그리고 화약통 세트. 거북이 등껍질이 통으로 쓰이고 있는 화약통도 신기했지만 무엇보다

조총의 탄환으로 동그랗게 갈아서 만든 동그란 옥구슬이 쓰였다는 게 신기했다. 저건, 거의 준보석 아닌가.
 

그리고 남성용 가마. 아마도 이 히로사키성의 번주가 타고 다니지 않았을까, 싶은데 역시나 크기는

매우매우 작아서 요새 체형이라면 열살짜리 어린애가 겨우 들어갈 정도인 거 같다. 까맣게 옻칠이

되어 있는 거나 사람 몸무게를 지탱하도록 단단해 보이는 외관은 그럴 듯 했다.


그리고 또, 신기했던 무기 하나. 이건 '바람의 검심'에 나왔던 그 사슬낫 아닌가. 그저 만화에서만 나오는

무기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걸 실제로 휘두르며 싸웠던 사람이 있었으니 여기 이렇게 똑같이 생긴

무기가 전시되어 있는 걸 텐데. 일본어로 뭐라뭐라 설명이 되어 있었는데 대충 에도시대 무기의 일종,

동으로 만든 추와 철로 된 낫을 사슬로 이었다는 이야기인 거 같다. 저걸 휘둘렀으리란 생각만으로도

굉장히 섬뜩한 느낌이 든다. 여기저기 마구잡이로 가 박히진 않았을까.


그런 불상사가 일어날 경우에 대비해 '윗대가리'들은 이렇게 탄탄한 갑옷을 입고 버티는 거겠지만, 역시

아까 그 남성용 가마의 주인공임에 틀림없을 이 히로사키성의 번주는 참 작다. 요새 열살짜리 꼬맹이의

체구와 비슷했겠구나, 생각에 확신이 들었던 순간.

성의 각 층 옆구리마다 나있는 조그마한 창문을 자세히 보니 동으로 만들어진 거 같다. 파랗게 녹이 슬어서

제법 세월의 더께가 실린 표정을 하고 있던 창문, 아무래도 방어의 목적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서 창문이 작고

저렇게 이중으로 나무 문살을 해둔 게 아닐까. 바깥 풍경을 보기에 딱히 유리한 창문은 아니다.

굉장히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데 머리고 발걸음이고 온통 조심하라는 표지가

시뻘건 영어로 적혀있다. 아무래도 성의 기본적인 사이즈가 체구가 작은 일본인들 기준으로 맞춰져있어

(영어를 쓰는) 서양인들에게는 꽤나 곤혹스러울 거 같다. 한국인 표준에 가까운 나 역시 저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서 비행기 이코노미석에 끼어앉은 듯한 갑갑함을 느꼈으니 서양인들은 오죽할까.

굉장히 세련되게 만들어진..쟁반이랄까, 접시랄까, 아님 그냥 장식품이랄까. 조개껍데기를 본따서

만들어진 황동색 틀 안에 슬쩍 웃고 있는 듯한 생선이 한마리 돋을새김되어 있었다. 그리고 가만히

자세히 보면 생선 뒷목쯤에 무슨 조그마한 집처럼 생긴 자개가 붙어있기도 하다.

그리고 히로사키성의 번주로 임명되었던 번주들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일종의 '족보'. 봉건제도의 시스템상

번주들은 언제고 중앙의 권력자가 임명하고 폐할 수 있었던 거라지만, 실제로는 혼인관계나 세습으로 인한

변화가 더 많은 편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얼핏만 보아도 1600년대 이래 19세기말까지 꽤나 복잡해 보인다.

그나마 번주들의 가문을 나타내는 문장이 때마다 바뀌었으니 다행이지, 유럽처럼 가문이 합쳐지거나 하면

문장도 합쳐지고 했으면 완전 복잡한 문장이 최종적으로 남지 않았을까.

그래서 1895년, 이 히로사키성이 히로사키 공원으로 일반에 개방되기 직전에 이성을 지키고 있던 번주

가문의 문장은 바로 요것. 아마 성 2층에 밀랍인형으로 제작되어 관광객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있는

저 분이 이 성의 마지막 주인 아니었을까.


천수각의 어느 창문에서 내려다본 히로사키 성의 전경. 앞에 새빨간 이쁜 다리가 보이길래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천수각을 떠나 성의 다른 곳들을 살펴볼 때 일부러 지나보았다. 역시 생각했던 대로 천수각을 올려보기

딱 좋은 장소기도 하고, 성의 모습이 시원하게 트여보이는 곳이었다.  

3층짜리 천수각의 꼭대기층은 생각보다 전시물이 없어서, 사람들은 천장 한번 쳐다보며 천수각의 누각이

어떻게 생겼는지 한번 확인하고 사방의 창문에 붙어선 히로사키 성의 전경을 눈에 담기에 바빴다. 어떻게

생각하면 커다란 범선의 전망대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무로 만든 고층건물의 독특한 분위기가 맘에

들었다. 원래 5층짜리로 만들어졌었다니 그때는 이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멀리까지 보였을 텐데 아쉽다.

오른쪽 위에 보이는 게 히로사키성의 천수각, 그리고 나머지 보이는 부분은 히로사키성의 혼마루(本丸).

지금은 온통 초록빛 넘실거리는 벚나무밖에 보이지 않지만 원래는 저렇게 어전과 보물창고, 돈창고 같은

것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고 한다.

창문뿐 아니라 천수각의 기와도 청동으로 덮여있었던 거다. 어쩐지 그 미묘한 빛깔이 인상적이다 싶더니

청동이 녹슬어 에메랄드빛 비슷하게 변색되고 말았다. 그런 이끼덮인 듯한 느낌의 색깔이 천수각 벽면의

하얀 빛깔, 그리고 지반을 이루는 돌들의 담백한 색조와 어울려서 꽤나 매력적인 분위기를 연출해냈다.

천수각을 나와 성의 다른 곳들을 둘러보러 걷다보니 어디서도 천수각이 언뜻언뜻 드러난다. 그러면서도

해자를 따라 빼곡하게 심어진 나무들이 휘영청 가지와 잎사귀를 늘어뜨려 좀처럼 완벽하게 제 모습을

노출시키지 않는 모습이, 아무래도 천수각을 외적이나 간첩의 침투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고려가 되어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나마 선명하게 나타난 건 아까의 그 빨간 다리, 게조바시 다리 위에서나 겨우.


그러고 보니 천수각을 해자의 깊은 바닥에서부터 떠받치고 있는 기반석들이 만들어낸 콧날이 굉장히

날카롭다. 칼날처럼 우뚝 서있는 기반석의 형태를 저렇게 짜맞춘 것도 신기하지만, 이게 바깥쪽 해자와

중간 해자를 통과한 후에 세번째이자 최종으로 나타나는 안쪽 해자인 걸 감안하면, 혹시 모를 침입과

전쟁에 대한 방비가 굉장히 철저했다는 걸 반증하는 것 같다. 그만큼 불안정하고 전쟁이 일상이던

시대상을 보여주는 거겠지만, 그 언젠가 시체가 산처럼 쌓였을지 모를 저 해자 아래엔 그야말로

반들반들 싱싱하기 이를 데 없는 연잎들이 무섭도록 자라 있었다.


히로사키 성이 통째로 공원과 식물원으로 변한 히로사키 공원에 천수각만 있는 건 아니다. 천수각이

있는 혼마루를 포함해서 북쪽에 남아있는 성곽이라거나, 3개의 망루와 5개의 성문, 삼중으로 된 해자등이

꽤나 그럴듯한 풍광을 만들어내는 거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왕벚나무 옆의 '동내문'의 모습.

활짝 열린 문밖으로 보이는 수령 오래되어 보이는 굵은 나무들은 언제부터 여길 지키고 있었을까.

성문의 쇠경첩이 저렇게 붉게 녹슬고 삐걱거리며 쉬이 움직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지만

문짝에 살벌하게 이열 종대로 징처럼 박혀있는 저 쇠못들의 예기는 여전해 보인다.  


그리고 또다른 문. 거의 비슷하게 생긴 문이 혼마루를 둘러싸고 동쪽과 남쪽에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밖으로

성루 세개가 천수각과 혼마루를 에워싸고 지키는 형태. 좀더 높은 데서 한눈에 볼 수 있었다면 히로사키성이

무엇을 꼬옥 품고서 지키려 하는 건지 바로 알아볼 수 있지 않았을까. 비록 지금에야 온통 벚나무가 가득한

공원이 되어버려서 과거의 그 적나라하고 잔혹한 성의 '권력지도'가 잘 보이진 않겠지만. 모든 것은 성의

중심, 그리고 성의 주인을 위해 고안되고 배치되었을 그 때의 풍경.

히로사키 공원 내에는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식물들과 화초들을 기르고 있는 식물원이 별도의 공간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한다. 가보지는 못했지만, 공원 내를 여기저기 정처없이 걸어보는 것 만으로도 거의

무슨 식물원이나 우거진 숲을 걷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나무가 빼곡했고, 온통 녹색이었다. 그치만

별도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다는 그 식물원에는 꽃달력길이나 고산식물들만 모아든 정원 등, 흥미를

돋우는 것들이 적지 않은 거 같으니 기회가 닿으면 가보는 것도 좋을 거 같다.

드문드문 이렇게 숲으로 난 길을 막아선 낡은 바리케이트도 보이고, 그 뒤로는 무려 50여 헥타르에 이르는

이곳 공원에서 벌채한 게 틀림없는 나무들이 차곡차곡 정돈된 채 서로를 의지하고 서 있었다.

그리고 화장실. 공원 여기저기에 이렇게 잘 만들어진 단아한 느낌의 화장실 건물이 있었다. 멀리서 보면

저게 화장실인지 매점인지 잘 모를 정도로 깔끔하고 정갈한 분위기를 풍기는 게 인상적이었다.

히로사키 성에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왕벚나무가 있다곤 하지만 그 나이는 '고작'(?) 120살, 그에

비기자면 500살이 넘는다는 이 나무는 거의 히로사키 성이 지어진 이 땅의 주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 같다. 높이가 거의 18미터에 이르고 둘레도 5미터가 훨씬 넘는 이 임팩트 강렬한 나무는

이젠 그 거대한 몸뚱이를 스스로 지탱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는지 꽤나 높은 곳에다가 저렇게

끈을 칭칭 동여매어 몸이 비틀리거나 쪼개지지 않도록 조치해놨다는 게 좀 아쉬웠지만.

히로사키 성을 돌아나오는 길, 제일 바깥쪽 해자에서 수면을 덮고 있는 풀들을 걷어내고 있는 분들이

눈에 띄었다. 어딜 봐도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고 흐트러짐없이 정갈한 모습이 유지된다 했더니 역시

그건 저런 분들이 계속해서 풍경이 뭉개지지 않도록, 지저분해지지 않도록 신경써서 관리한 덕분.

천수각에 비치된 스탬프를 움켜쥐고, 이걸 과연 여권에 찍어도 나중에 출국하고 한국에 다시 입국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을까 잠시 고민을 했더랬다. 주위 사람들이 신성한 여권에 그런 스탬프를 마음대로

찍으면 나중에 한국 못돌아간다고 겁을 주는 바람에 그냥 다른 종이에 찍고 말았던 씁쓸한 기억이

묻어있는 히로사키성 천수각 기념 스탬프.







* 이번 여행은 하나투어 '겟어바웃' 필진의 일원으로 다녀왔습니다.
Get About - 당신의 여행이야기

이게 뭘까. 직경이 지름 1미터쯤 되는 거대한 기둥 6개가 뻗어나가고 삼사층짜리의 자그마한 건물같은.

이런 비슷한 용도모를 건물이 원시인들이 살던 약 오천년 전에 세워졌었다면 거의 중세시대 성이라거나

요새의 초고층건물에 비견될 만한 거 아닐까. 에도시대부터 유명했다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를 기다리는

일본 아오모리현에 있는 산나이마루야마(三內 丸山) 유적군에 있는 대표적 유적이다.

그러니까 이곳은 이런 가죽옷을 입고 원목 몽둥이를 휘두르는 원시인 500여명이 일본 본섬의 북동쪽끝에서

대략 오천년 전부터 천삼백년쯤 살았다는 대규모의 집터 유적이 보존되어 있는 곳인 거다. 약 2천여 점의

유적이 대량 출토되었다는 이곳은 사실 야구장을 건설하기로 되었던 부지였는데, 1994년 아오모리현 지사가

유적의 중요성을 고려하여 보전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덕분에, 원래 계획대로라면 철제 펜스가 높다랗게 세워진 채 삥 둘려있어야 할 이곳 야구장 건설부지는

일본의 국가사적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등재를 기다리는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남은 셈이다.

우선 마을 유적부터 둘러보기로 하고 박물관 건물 밖으로 나와 구불구불한 오솔길을 지나니 왠 샛노란

민들레 꽃밭이 먼저 나타난다. 그럴 리 없겠지만 오천년 전에도 여기 살던 사람들이 같은 꽃밭을

보고, 밟았던 건 아닐까 하는 착각이 일었다.

그렇지만 오천년 전의 기후나 지형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거다. 당장 그때는 해수면이 지금보다

2-3센티 높았는지라 바로 이 마을 코앞까지 바다가 들이찼을 거라고, 퇴직하기 전까지 학교에서

근무하는 선생님이셨다는 '산나이마루야마 응원대'라는 자원봉사자 할아버지가 설명해 주었다.

그래서 이 마을에서는 음식으로 삼았던 생선이나 해산물등의 흔적이 많이 발견된다고도 한다.


사실 이 나무 구조물이 무슨 용도로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이런 형체가 확실한지에 대해서도 뚜렷이

이야기할 수는 없다고 한다. 자원봉사자 할아버지가 여기가 '번지점프대'였는지도 모른다고 농하셨듯이.

그래도 여러 정황상 여섯 개의 대형 기둥이 규칙적으로 배치되어 있었고 그 위에 저런 형태의 구조물이

설치된 채 아마도 망루의 기능으로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모든 유적 복원물에는 합당한 추정과 근거가 있는 법. 이 '망루' 추정 유적에는 뚜렷한 근거가 있었다.

토목, 건축, 고고학자들이 망라된 발굴조사 중에 무려 2미터 깊이, 2미터 직경의 구멍이 이렇게 뽕뽕

규칙적으로 박혀있는 걸 발견했다는데 그 중 일부 구멍에 지하수에 잠긴 밤나무 기둥조각이 온전히

남아있었다는 거다.


이곳이 그 복원된 '망루' 옆에 있던 실제 건물터. 이렇게 깊고 큰 구멍에 걸맞는 두껍고 튼튼한 기둥이

여섯개나 박힌 건물이라면, 글쎄 아무리 원시시대였다고 해도 꽤나 그럴듯한 건물이 지어지지 않았을까.

지금 복원해 놓은 건 가장 보수적이고 냉정한 상상력을 동원해 지어놓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상상은 다른 마을 유적들을 둘러보면서 더욱 퍼져나갔다. 길이가 30미터가 넘는 커다란 집터의

우람한 덩치라거나 뒤로 이어지는 많은 주거지들의 흔적들을 보자니 여긴 정말 꽤나 커다란 마을을

이루고 있었겠구나, 그만큼 일손(노동력)도 많고 집짓고 망루짓는데 동원할 나무니 끈이니 자원도

많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무려 500여명이 살았다고 추정되는 마을이니만큼.

가장 큰 건물에 먼저 들어갔다. 길이가 32미터, 폭이 10미터에 이르는 이 커다란 건물은 무려 19개나

되는 밤나무기둥으로 지탱되고 있었다는데, 용도에 대해서는 공동작업소라거나 마을 집회소, 혹은

겨울철을 나는 공동가옥이었을 거란 여러 설들이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런 설명들을 듣는 사이에

계속 코를 찌르던 연기 냄새가 거슬려 뭔가 물었더니, 건물을 구성하는 나무들을 튼튼하게 오래

보전하기 위해 원시인들이 처리했던 훈증 작업을 재연한 결과라고. 아닌게 아니라 나무들이 다 탔더라.

여기는 마을의 남쪽에 위치해있던 흙을 버리던 장소. 대량의 토기와 석기, 토우와 장신구들이 흙과 함께

버려지고 버려져서는 약 천년동안 언덕처럼 불룩 솟아올랐다고 한다. 말하자면 '난지도' 같은 곳이었을라나.

깨진 장신구, 못쓰게 된 토기 등을 생활쓰레기랑 함께 모아서 버리던 곳이랄까. 그런 곳이 수천년이 지나니

유물들이 산처럼 쌓여있는 유적의 보고가 되어버렸다.

이 곳에 당장 복원되어 있는 집터들도 꽤나 많다고 느꼈는데 이게 전부가 아니란다. 바닥에 땅을 파서

만든 집터도 있고 기둥을 세워 땅 위에 세운 집터도 있다는데 도합 600기 가까운 주거터가 발견되었지만

복원한 건 그 중에서 불과 20여기 남짓이라고. 땅에 대한 소유권이 없던 시절이었을 테니, 그들은 그저

원하는 장소에 스스로의 힘으로 나무 뼈대를 세우고 움막같은 집을 지었으면 땡이었을 거다. 그럼 굳이

여러 채 갖겠다고 과잉하게 노력해서 집을 지어놓지도 않았을 거고, 필요 이상으로 크고 화려한 집을

짓겠다고 난리치지도 않았겠지. 뭐 단순비교하긴 그렇지만, 오천년 후 지금은 그때보다 행복할까.

이게 땅바닥을 파서 만든 주거터. 슬쩍 들어갔더니 암사동 선사유적지에 복원되어 있는 움집처럼 별 거 없다.

뭐 원시인들이 '일본땅' '한국땅' 출신이란 자각을 갖고 있지도 않았을 거고, 뭔가 고유하거나 특징적인

문화적 차이점을 주거 형태에 구현하기에는 아직 집 한채 짓기도 급급한 수준이었을 테니깐. 중앙에는

화로가 하나, 이때는 아직 쌀을 재배하기도 전이라 주식으로 도토리, 그리고 연어니 오징어니 생선과

해산물을 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땅에 구멍을 파서 기둥을 세운 주거터. 하나 재미있는 건, 이곳에 살던 원시인들이 먹었을 음식의

흔적 중에서 생선 머리뼈는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러가지 이유를 추측해 볼 수 있는데

토막내서 머리는 바다에 버리고 몸통만 먹었을 거다, 혹은 머리에 붙은 아가미가 공기에 닿아 쉽게

부패하면서 머리뼈까지 삭혔을 거다, 혹은 머리는 신에게 바치는 제물로 썼을 거다, 라는 정도가 있다고

할아버지가 설명을 해주었다. 글쎄, 어차피 씌어지기 전의 역사, '선사(先史)'시대니까 상상하기 나름,

머리뼈는 몸에 좋다며, 아님 머리가 똑똑해진다며 다 먹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외에도 마을에는 어른들의 무덤, 아이들의 토기 무덤이라거나 북쪽에 조성된 쓰레기장들이 복원되어

있었는데, 오천년 전의 마을이라기엔 정말 생생하게 한 마을 풍경을 망라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런

대규모 마을 유적에서 발굴된 다량의 토기, 석기, 목제품이나 골각제품들은 2002년에 개관된 박물관에

전시해두고 있다고 하니 이젠 뙤약볕을 피해 박물관 내부를 관람할 차례. 그 전에 화장실을 가려고

표지를 찾았더니, 저렇게 귀여운 남/녀 화장실 사인이라니.

일본에서 까마귀가 길조로 여겨져서 많은 걸까, 아니면 워낙 많아서 길조로 여겨지게 된 걸까. 마치

닭과 달걀의 선후를 따지듯 골치아프고 애매모호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할 생각도 없지만, 이곳

산나이마루야마 마을 유적에도 까마귀가 참 많았다. 그러고 보면 일본 소설에서 까마귀는 길조이면서

동시에 죽은 자와 산 자를 잇는 메신저 역할도 하고, 아니면 죽은 사람의 영혼 그 자체라고 표현되는

경우도 왕왕 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 왠지 오천년 된 유적지에서 만난 까마귀라 더욱 상서롭달까.

박물관, 정확히는 조몬지유칸(時遊館) 내부에 미니어쳐로 전시되어 있는 산나이마루야마 마을의 유적.

실제 마을에 선사시대 원시인들이 꼬물거리는 모습이 모형으로나마 시각화되니까 훨씬 그럴 듯 하다.

마을을 둘러싼 숲, 그리고 그 너머의 바다는 이 곳에 살던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었을까. 외적이 쳐들어올 수도, 예기치 못한 짐승들의 습격이 있을 수도, 혹은 대규모의

자연재해가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니만치 저렇게 불쑥 튀어나온 '망루'의 쓰임이 더욱 실감나기도 하고.

'망루' 유적의 커다란 구덩이 밑에서 보존되어 있던 1미터짜리 두꺼운 밤나무 기둥의 잔해 진품.

무려 오천년쯤이나 땅 속에서 썩지도 않고 이렇게 버텨왔다는 게 대단하다. 역시 진짜를 보니까

모조품을 보는 것과는 또 느낌이 다른 듯.

마을 유적에서 발굴되었다는 수많은 토기 조각들을 일일이 짜맞춰서 복원한 토기들. 토기를 어떻게

제작하는지를 마네킹이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저 푸른 초원 위에 복원된 십여기의 움막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을지를 보여주는 모형.

무엇보다 흥미롭던 건 십자가 형태로 정형화되다시피 빚어지는 사람 모양의 토기, 토우였다.

아무래도 다산을 상징하고 싶었는지 불룩 튀어나온 두 가슴과 둔덕이 세 뿔을 이루고 있는

십자가 형태의 사람 흙인형은 얼핏 보면 노릇노릇 잘 구워진 쿠키같기도 하고, 초기 기독교시대의

십자가 원형 같기도 하고.

아무래도 오천년 전 선사시대를 살던 사람들에 대한 편견 아닌 편견을 좀 수정해야 할 것 같다. 각 토우들에

그려진 문양들은 이렇게 숫자를 나타내는 표식이기도 했다는 것. 그냥 거의 동물에 가깝거나 두뇌 활동은

미미한 사람일 거라 생각했는데, 고쳐 생각하면 지금의 인류보다 훨씬 생존력도 강하고 적응력도 강하고,

심지어 저런 것을 보면 두뇌 수준도 훨씬 우수했던 건 아닐까. 막말로 요새 사람을 그들이 맞닥뜨렸을

환경에 떨궈놓는다고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싶은 거다.

그리고 토기에서도 이런 인물 문양이 발견되기도 했단다. 사람의 형체가 뚜렷하게 나타나서 얼굴과 손,

그리고 발의 모양이 쉽게 구별되긴 하는데, 손에 든 건 뭔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여태 토기에 그려진

문양들은 대개 빗살무늬니 아라베스크 무늬니 하는 간단하고 기하학적인 것들 아니었던가. 아님 아예

아무것도 그려넣지 않은 민무늬거나. 꽤나 이례적인 토기 문양 같아서, 일본어는 모르지만 제법 중요하게

생각하고 비중있게 전시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아 진짜, 이런 캐릭터 맘에 든다. 산나이마루야마 유적의 마스코트 캐릭터라는 '산마루', 십자가형

토우에 호피가죽옷을 입히고 똥글똥글한 눈을 가진 귀여운 캐릭터로 마스코트를 삼다니. 게다가

박물관 입구에 도토리로 만들어둔 저 귀여운 녀석들은 어떻고.


* 교통편.





* 이번 여행은 하나투어 '겟어바웃' 필진의 일원으로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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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차 (인천-아오모리-고마키)


12:30 인천공항 출발
14:50 아오모리공항 도착

17:00 고마키, 핫쇼쿠센터 도착

18:30 고마키 아오모리야 호텔(일본 100대 온천호텔) IN

21:00 아오모리 남부 민요쇼(엔카, 쯔가루샤미센 연주 등)


 

2일차 (고마키-도와다-카즈노)

09:00 호텔 OUT


10:20 도와다, 오이라세계류 도착


12:00 점심
13:00 도와다호, 도와다신사, 소녀상 관람

15:00 카즈노, 히메노유 호텔 IN


18:00 만찬(일본 전통 카이세키요리)




3일차 (카즈노-쿠로이시-히로사키-시라카미-오와니)

08:40 호텔 OUT
10:00 쿠로이시, 네프타마을 도착 (쯔가루전승공예관, 코케시관)


12:00 점심
13:00 히로사키, 히로사키성 도착


15:00 시라카미, 시라카미산지(세계자연유산) 도착



18:00 오와니, 아오모리 로얄호텔 IN



4일차 (오와니-아오모리-인천)

09:30 호텔 OUT


10:20 아오모리, 산나이마루야마 공원 도착


12:00 점심
12:50 AEON 쇼핑센터 도착


14:30 아오모리공항 도착


16:40 아오모리공항 출발
19:20 인천공항 도착







 

이 평소같지 않은 포스팅은 일본에서, 더 정확히는 티비에서 소녀시대, 카라, 동방신기와 2PM을 봤다고

자랑같지 않은 자랑질을 하는 포스팅.


사실 한국의 아이돌 그룹들에 딱히 관심은 없었다. 소녀시대니 카라니, 아 그리고 아이유니 티비에서

나오면 잠깐 그녀들의 다리나 몸매를 응시하긴 하지만, 딱히 가요 프로그램을 찾아본다거나 그녀들의

이름을 번거롭게 외우려드는 따위 추가적인 노력을 들일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랬는데, 일본 여행중에 문득 티비를 켜니까 아침저녁으로 한국의 아이돌들, 연예인들이 나타나는

거다. 아침에 눈떠서 티비를 켜니깐 장근석이 나오고 저녁에 온천 마치고 티비를 켜니까 소녀시대니

카라니, 그리고 2PM이니 동방신기가 연이어 노래도 부르고 농담따먹기도 하는 식이다.

역시 '소녀시대는 다리'랄까나. 근데 이 아이들이 언제 이렇게 섹시해졌다지 싶도록 까맣고 반질거리는

의상도 멋졌거니와 무대위를 자유로이 종횡하며 그녀들 혹은 그녀들의 다리를 담아내는 역동적인 카메라

워크도 멋졌다. 태연은 좀 사진이 안 나오긴 했지만..저 머리스타일 맘에 든다.

한국 사람들이 일본어를 쓸 때면 평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든다. 뭔가 말투도 바뀌고, 콧소리도 앵앵

들어가는 느낌이고, 게다가 약간 하이톤으로 올라간 목소리가 더욱 색감적이랄까. 그녀들, 참 열심히

일본어 공부했구나. 하긴 '외화벌이'라는 동기부여가 뚜렷하니.

동방신기가 나왔는데, 왜 두명이지 싶었다. 원래 다섯명인데 세명이 JYJ로 나갔더랬지. 뭐 그러거나

말거나 이 아이들도 참 일본어 잘 하더라는. 이번 3박4일동안 꾸역꾸역 히라가나 외우면서 심각한

두통을 겪었던 나로서는 그들의 유창한 일본어가 새삼 놀라웠다.


일본 현지 가이드분이 JYJ를 좀 비난하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나. 그랬더니 바로 한국에 있는 딸에게

누군가 그 사실을 알렸고, 따님께서는 팬까페와 기타 등등을 동원, 가이드 소속 여행사를 순식간에

초토화시켰다는 '미담'을 전해들었다. 굉장한 IT강국이고, 굉장한 '대중문화강국'이다.


그래도 정말, 다른 일본 가수들에 비해 춤도 파워풀하고 박력있었다. EXILE이니 뭐니 일본의 남성

그룹들보다 노래나 춤 면에서 좀더 멋졌지 싶다. 그러니 이번에 프랑스에서 있었던 콘서트가 그리도

대성황을 이루었달 정도로 세계적인 한국 대중문화, 혹은 아이돌계가 발전했다고들 하는 거겠지만.

그리고 2PM. 이 아이들은 또 언제 일본어를 이렇게 공부했는지. 서로 뒷통수를 퍽퍽 쳐대며 완전히

프리스타일의 진행을 하던 두 명의 진행자가 농담을 걸어도 잘 받아치고, 다른 일본인 가수의 빈약한(!)

근육에 대한 품평을 해달래도 팔근육을 꿈틀거리며 위트있게 넘어가고. 이제 니들은 한국과 일본, 그리고

다른 한류 열풍에 감긴 나라에서 떼돈을 벌겠구나.

그리고 카라! 그녀들은 직접 티비 프로그램에 출연한 건 아니었고, '명곡 특집'이라는 꼭지에서 마이클

잭슨이니 하는 다른 유명한 가수들과 나란히 소개되었더랬다. 좀처럼 대중 문화나 아이돌가수들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나로서도 그녀들의 미스터, 뮤직비디오만 보고 이아이들이 생계형의 딱지를 드디어

떼겠구나 싶어서 뮤비까지 포스팅했었는데, 왠지 모르게 정감가는 그녀들. 하라짜응~♡


여하간, 한국에서는 본체만체 소 닭보듯 하던 그녀들, 특히 그들. 남자놈들에 대해선 아무런 관심도 없고

오히려 약간의 적대감마저 품고 있었다지만 일본에서 티비를 틀자마자 나타난 그녀들과 그들 앞에서

왠지 모를 반가움이 불끈 하더라는. 근데 왜 아이유짜응~♡은 안 나올까나.







이십여일 동안 지겹도록, 아니 아무리 짧게 잡아도 저번주 금요일부터 쉼없이 내리고 있으니 근 열흘동안

엄청시리 퍼붓는 빗발 앞에서 자칫 마음도 몸도 눅눅해지기 쉬운 때다. 그렇다고 가만히 집에만 틀어박혀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나는 또 어디론가 가고, 어딘가로부터 온다. 버스정류장에서 쫄딱 젖은 팔과

카메라를 들어서는 너덜너덜해지고 살이 휘청거리는 앙상한 우산 대신 단단하게 버틴 정류장 천장의

아크릴판과, 그 너머 빗발이 실루엣이 동글동글 뭉개진 건물들을 가리켰다.

아, 3박 4일동안 일본 아오모리현 다녀옵니다. 원전이 폭발한 후쿠시마와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아 조금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올해나 내년 X-ray를 안 찍으면 어케 허용치 기준량 이하에서 선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 삼성역, 마을버스 7번을 기다리다.

'공기인형' 리뷰는 기네스 병맥주를 사서 마시고는 그 딸랑이는 것의 정체를 찍은 사진을

포스팅할 때까지 미뤄둬야겠다, 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이런 영화를 보고 나서 바로 잠드는 건

역시 못할 짓이다.


노조미가 처음으로 밟은 해변가 모래사장에서 발견한 달그락대는 병, 아마도 기네스 병맥주일

그 이미지만으로 이 영화는 응축될 수 있다. 별 다를 거 없는 그 유리병은 조그마한 구슬 하나를

안에 꼭 품고 있다. 고작 조그만 구슬 하나가 더 들어있을 뿐인데, 그 존재로 인해 오히려 유리병

속이 텅 비어있음이 더욱 부각되는 거다.


유리병을 꽉 채우지도 못하고 절겅절겅 소리만 내는 구슬, 사람의 마음이 딱 그렇다. 존재를 꽉

채워주지도 못하면서 그 '결락감'만 더욱 부각시키는, 도무지 쓸모를 모르겠는 '맹장'같은 녀석.


마음이 생긴 공기인형이 바라보는 세상은 누군가가 누군가의 대용품이 되는 세상이다. 그것은

그녀가 늘 스스로 '나는 공기인형, 성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대용품'이라고 아프게 되뇌여왔다는

점에서, 스스로의 처지로부터 비롯한 날카로운 시선이다. 그녀가 그렇게 보이는 세상에 마음

아파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옛 여자친구를 잊지 못하고 섹스돌에 그녀 이름을 붙인 채 인형놀이에 열중인 아저씨,

자동응답기에 녹음해둔 자신의 목소리와 대화하며 스스로를 위안 중인 아가씨, 젊은 시절

학교에서 대리교사로 일했던 할아버지, 자신의 가게에서 일하는 여직원을 세탁기 위에서

겁탈하는 사장님..심지어는 공기인형 그녀가 마음을 주려는 남자조차 그녀를 옛 여자친구의

대용품으로 여기고 있다.


어쩌면 그녀의, 또 나의 과잉한 반응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의 집에 여전히 간직된

옛 여친의 사진들, 옛 여친이 썼던 헬멧의 긁힌 자국, 자신도 공기인형과 비슷하다는 그의 고백,

그녀의 바람을 뺐다가 넣었다가 하고 싶다며 그가 아무 설명없이 요청해왔던 것들 모두

'공기인형 그녀는 그의 옛 여친 대용품'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공기인형 그녀의 바람을 뺐다가 넣다가 하는 건, 그야말로 옛 여친에 대한 그의 욕구를

극적으로, 그리고 지독히도 이기적으로 해소하는 방식 아닐까. 떠난 옛 여친에 대한 복수심

-죽어라죽어라 하는-인지, 반대로 아마도 죽어버린 옛 여친을 살려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그야말로 공기인형을 통해서만이 해소할 수 있는 그의 욕구. 적어도 그녀의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배려하는 행위는 아니었다. 그걸 왜 하고 싶은데, 라는 그녀의

질문에 우물쭈물 답하지 못했던 그의 흐트러진 눈빛만 봐도 뻔하다.


그녀가, 인간의 마음이란 게 꼭 '대용품 or not'으로 칼처럼 갈리는 게 아니란 걸 깨달은 후여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쉽게 분별증류될 수 없는 복잡미묘한 게 마음이란 걸 깨달아서 다행이었다.

그녀는 이미 훌쩍 자라난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를 품어줄 만큼, 비록 그녀의 숨으로 그를 살릴

수는 없을지언정, 그녀가 어쩌면 그보다 성숙한 마음을 갖게 되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는 아직

미처 인정하거나 깨닫지 못하는 공기인형 그녀에 대한 '사랑'을 그녀는 그의 마음 속에서 발견해냈다.


한때 그녀의 주인이었던 남자는 말한다. 마음이 없던 때가 좋았어, 그때로 돌아와주지 않을래.

글쎄. 그저 자신의 욕망을 쏟아붓고 돌아서 화장실에서 씻어내면 그만이었던 그때를 말하는 거라면,

당신이 쭈그려앉은 모습은, 섹스돌을 껴안고 말을 거는 모습은, 왜 그리도 불행해 보였던 걸까.


'마음이 생겨난다'는 표현, 그야말로 자신도 모르게 생겨나는 거다. 어느날 문득 공기인형이 눈을

깜빡이며 몸을 움직이듯, 누군가를 생각하고 무엇인가를 바라는 마음이란 건 한순간에 번쩍

생겨난다. 비록 그 마음이 꼭 충만하고 행복한 순간을 약속하는 건 아니라지만,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 괴롭고 쓰디쓴 경험만을 불러 오겠지만, 그건 텅빈 유리병들 틈에서 스스로를 구분짓는

'가능성'이자 '축복'에 가까운 무언가다.


영화를 보는 시각에 따라서, 영화는 밝을 수도, 혹은 지독히도 어두울 수도 있을 거 같다.

아마도 그게 '마음'이란 녀석이 작동하는 방식이기도 할 거고. 그 녀석은 그저 그림자도 투명한

'공기인형'들 틈에서 잘그랑잘그랑, 나 여기 있다고 소리내고 있을 뿐이다.



거꾸로 보는 고대사 - 10점
박노자 지음/한겨레출판
 
"현재 북한을 충분히 이길 수 있으니 군사적 압박을 가하자는 전쟁 불사론은 바로 이런 네오콘식 선제 정밀 타격과 전쟁 수행을 통해 무력으로 김정일 정권을 붕괴시키자는 주장의 판박이다.
일부 국내 호전론자들은 만일 미군이 결심만 하면 북한 수복은 물론이고 만주까지 치고 올라가 잃어버린 고토를 회복할 수 있다는 황당한 주장까지 펼친다."
- 시사인 11.29일자, 한반도 전쟁 시뮬레이션 해봤더니…하루만에 240만명 사상 중.


정말 황당한 주장이다. 당장 황당한 건 '잃어버린 고토'라는 단어에서 배어나오는 재미없고

칙칙한 열혈 우국지사틱한 마인드고, 또 그들이 잃어버린 고토라는 '우리땅' 만주에서

비롯하는 낯설고 생경한 어감이다. 수백만명이 죽고 다치는 전쟁을 무슨 땅따먹기놀이처럼

생각하는 무식한 야만성이나 미군이 미국 국익의 고려없이 무조건 우리편이라는 유아적

사고에 멈춰있다는 따위, 지엽적인 문제는 넘어가기로 하자.


대체 어떤 또라이들이 저런 주장을 하나 싶다. 그런데 사실 그들이 발딛고 선 논리랄까,

마인드의 문제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유롭지 못하단 게 문제다. 사실 이미 드라마니

영화니 잡서들을 통해 가공의 역사와 특정한 시각이 알게 모르게 친숙해져 버린 건 아닐까

걱정스러울 정도다. 주몽이니 근초고왕이니, 고대사를 다룬 드라마들이나 조선의 세종을

다룬 영화('신기전'이었던가), 심지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따위 쓰레기까지, 조금만

더 진지해지면 저런 황당한 주장을 펼치는 또라이와 같아질 정도로 접근해왔다.


그들은 단순하게도 오늘날 나라와 나라 사이를 구획하는 경계선이 단단하듯 수천년전에도

똑같이 명확한 국경선이 그어졌을 거라고 상상한다. 아니, 그렇지 않다는 거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정립했다는 시기에조차 각 고대국가는 도읍을 중심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정 권역의 개념이었지 국가간 경계선을 그을 정도로 안정적이고 확정된

근대적 '영토'를 갖지는 않았다. 예컨대 고조선이 만주 일정지역에 영향을 행사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신채호가 말한 것처럼 '정복 왕조'로서 파악되거나 단군을 '정복자'로

묘사할 만한 정도의 것이 아니라 일정 지역에서 공물을 거두는 정도였다는 거다.


게다가 어느 한때, 잠시동안 '만주'를 영향력 하에 두었다고 해서 '원래 우리민족,

우리나라 땅'이라고 하는 게 말이 되나. 그 이전이후의 다른 점유자들은 강탈자인 건가.

팔레스타인 땅을 두고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벌이는 강탈과 똑같은 논리인 셈이다.

물론 '만주'에 대한 고토회복의 열망은 좀더 근대의 기록에 근거한다고 반박할 거다.

백두산 정계비에 쓰인 조선-청 간의 영토획정 결과 간도지역이 조선에 속한다는 건데,

글쎄, 청과 조선이 모두 망했고 백년이 넘은 지금 상황에서 그걸 주장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한국이 독도를 실효적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중국이 지배하고 있는 땅이다.


두번째로, 오늘날 그어진 국경선 내에 꾸깃꾸깃 살고 있는 사람들이 수천년 전부터 동일한

민족을 이룬 채 살아왔다고 착각한다는 점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주민들은 서로를

한민족으로 인식하고 있었을 거라는 착각인데, 덕분에 당나라를 끌어들여 '통일'을 이룬

신라의 김유신과 김춘추는 거의 '민족반역자' 수준의 비난을 받아온 거다. '조선일천년래

제일사건'이라며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을 애통해 했던 신채호의 입장은 이후 남북한을

막론하고 이 사건을 보는 기본적인 시각이나 멘탈리티로 굳어진 셈이다.


그렇지만 과연 그랬을까. 그때의 '우리'라는 관념이 지금처럼 국가나 민족단위로 단단하게

있었을지도 의문이고, 동일 언어를 쓰는 한민족, 혹은 단군의 자손이라는 '삼한일통'의

정신이 뚜렷이 드러나는지는 더욱 회의적이다. 국가가 구성원을 통제하는 수단이나

정도가 근대국가에 비해 훨씬 미미했던 그때, 사람들은 씨족이나 가문 정도에서 가장 크고

확실한 정체성을 얻지 않았을까. 설혹 신라인, 백제인으로 스스로를 규정한다 해도 그들이

'뙤놈'과 '왜놈' 사이에서 '우리민족'을 의식했다는 건 소설에 가깝다. 동일 언어를 썼으니

말도 잘 통했을 거라는 막연한 상상도 서로 국서가 불통하더라는 사실 앞에 무너진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일본 혹은 다른 타국을 의식하는 방식이다. 일본에 대해서는 근대의

아픔만큼 과거에는 우리가 우월했음을 강변하는 식으로 대처하고, 중국에 대해서는 과거의

조공으로 맺어진 사대관계를 얼버무리는 대신 '만주'를 회복해 우리가 중심이 되겠다는

식으로 대응한다. 특히 일본에 대해서는 고대 한국으로부터의 일방적인 문화전파만이

있었는데 배은망덕하게도 한반도를 호시탐탐 노려왔다는 아주 간편하고 단순한 전제가

늘 깔려 있다.


일부 민족사학자들은 일본을 아예 백제 유민이 건설하고 이후 쭉 천황계보를 이어오고 있는

형제의 나라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백제의 일본'이라 해도 그런 전제가 달라지진 않는다.

아무런 문화도 없던 섬나라의 원숭이들에게 문화를 전파하는 선진국의 이미지, 그리고

그런 은인의 나라를 욕보이고 덥썩 집어삼킬 생각에만 골몰하고 있는 양아치 원숭이의 이미지.

역사를 조금만 보면, 오히려 한반도와 왜국 간의 긴밀한 문화 교류-일방적 전파가 아니라-의

사례들이 수천년동안 발견될 뿐 아니라 왜국은 중요한 외교적 파트너로 존중되었단 거다.


사대교린 관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중국의 문화적 역량과 군사적 역량을 앞세워 구축한

천하질서는 당대 외교질서의 문법이었을 뿐이다. 오늘날 미국이 구축한 세계질서 하에서

다른 국가들이 자리매김하고 각개약진하며 미국의 문화적 군사적 역량을 제공받듯, 당대

중국의 문화를 교류하고 천하질서 하에서 상석을 차지하는 경쟁이 벌어진 셈이다. 그건

국가의 실리를 위한 외교정책이었을 뿐, 그 어디에도 근대적 의미로의 '예속'이나 '식민'의

굴욕을 떠올려야 할 구석은 찾을 수 없는 거다.


결국 '거꾸로 읽는 고대사'를 읽으면서 계속 부딪히는 건 '민족사관'의 문제 그 자체다.

'우리 대한민국', 혹은 '우리 한민족'이 먼옛날 언젠가 만주벌판을 호령하며 '뙤놈'과

'왜놈' 따위는 가뿐히 무찌르고 군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최고였다는 유치찬란한

환상, 그리고 그 '우리'는 수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변함없어서 가히 개인의

목숨 따위보다 훨씬 지고하고 신성한 집단, 민족공동체라는 구라. 박노자가 줄기차게

하는 이야기는 굉장히 심플하고 기본적이다. 민족사관의 거품을 빼자. 민족사관이

편의적으로 취사선택해 부풀린 몇 개의 사실들만 말고, 균형을 잡고 보자는 거다.


신채호가 고대사를 읽어내던 시대는 지금의 시대와 다르다. 달라야 한다. 근대국가로의

경쟁적인 변신이 이루어지던 와중, 일본 제국주의가 한반도를 침탈하는 등 야만적이고

가차없는 힘의 논리가 극강하던 시절에야, 뒤늦게라도 '한민족'을 만들어내고 하나로

규합해서 근대민족국가를 만들 필요가 '민족사관'을 만들어냈던 거다. 언제고 국제사회는

냉엄한 현실 논리, 힘의 논리로 움직인다고는 하지만, 엄연히 존재했던 평화와 공존의

시기에서 눈돌려서는 안 될 일이다.


일본을 늘 한결같이 악하고 못 믿을 존재로 규정짓는 역사를 공부한 사람과, 때로는 굉장히

갈등하기도 했지만 또 때로는 생각 이상으로 긴밀하고 절실하게 상호 교류해온 나라로

공부한 사람, 그 인식의 차이는 어쩌면 이후 한국 사회가 얼마나 다채롭고 성숙할 수 있을지

열쇠가 될지 모른다. '한민족'이라는 집단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생성되고 변화되어 왔는지

그 임의성을 알게 된다면 사람들은 비로소 근대인으로, 주체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P.S. 박노자는 이 책에서 한사군이 존재했다 말한다. 한사군이 존재했는지에 대해서는

감정적인 불쾌감과 민족적 '책무감'이 더해 가타부타 말이 많지만, 박노자는 정작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탄탄히 대는 데에는 힘을 쏟지 않는다. 그는 한사군의 존재 여부보다

그 존재에 대해 일단 거부하고 보는 한국 사학계의 멘탈리티 혹은 태도를 한번 따져보길

바라는 거다. 한사군이 있었다고 해도 일제 시대처럼 총독부를 설치하고 식민화한 게

아니라, 그저 중국계 유민들의 부락 정도였을 거라는 게 그의 추측이다. 우리 시대에

우리가 현재 아는 것에 빗대어 상상하는 게 위험하다는 걸 잘 보여주는 좋은 사례.





모방범 1 - 10점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문학동네
모방범 2 - 10점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문학동네
모방범 3 - 10점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문학동네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엔 너무 커져버린 세계.


"너희들은 인간의 생명이 뭐라고 생각하나?"
"남의 생명이니까, 남의 생명이라고 생각할 뿐이지요." 피스는 상냥한 말투로 그렇게 말했다.
"우리는 원칙적으로 지인이나 친구는 죽이지 않아요. 죽으면 슬프니까요. 그렇지만 남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 남들도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어! 그 사람의 죽음을 슬퍼할 사람들이 있단 말이야!"
"그야 그렇겠지요. 그렇지만 우리와는 관계없어요."
"이런 짓을 해서 뭐가 좋단 거야!"
"즐겁지요. 당신도 해보면 알걸요. 재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지만요."


단순히 미친 또라이의 생각일까. 남의 생명은 나와는 상관없는 남의 생명일 뿐이라는 저런

식의 사고라는 건.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지만, 그 너머 어딘가서부터 나와 상관있는 사람과

상관없는 사람을 가르는 경계선이 있다는 거다. 서로의 아픔과 슬픔을 함께 나누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 나의 사람들과 타인을 가를 경계, 그런 경계선 자체를 부정하기란 사실 쉽지 않다.


지구 반대편에서 굶어죽어가는 아이들, 지구 곳곳에서 쉼없이 벌어지는 전쟁에서 죽고 죽이는

사람들, 일본에서, 휴전선 너머에서, 심지어 이 나라에서도 부당하게 고통받고 괴롭힘당하며

죽거나 상처받는 사람들이 잔뜩 있는 거다. 나와 남을 가르는 경계가 있지 않고서야 우리가 단

일초라도 웃을 수나 있을까. 우리가 주위 사람, 가까운 사람만 보듬고 사는 건 어쩔 수 없는지도.


평생 직간접적으로 접하게 될 사람들의 대다수가 경계선 밖에 '남'으로 존재하고 있단 얘기다.

급작스레 커져버린 세계와 헤아릴수 없이 많아진 인간들을 대하고선, 인간 능력에 한계가 온 건

아닐까. 정말이지, 세계가 이토록 커져 버린 건 인류 역사에 유례없는 일이니까.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인류가 갑자기 흉포해진 것도 아니고, 그저 너무 커지고 많아진 건지도 모른다.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인간 본연의 욕구.


"피해자를 죽이기 전에 범인은 여자에게 이렇게 말하는 거야. 너는 죽고 싶지 않다고 애걸하지만, 지금처럼 보잘것없이 살아봤자 뭘 하겠어? 그렇지만 내가 기획한 이 연속살인극에 참가하면 네 이름은 전국으로 알려지게 돼. 모든 사람이 네 이름과 얼굴을 기억해줄 거야. 모든 사람이 너의 죽음을 애도해줄 테고. 이거 너무 멋지다는 생각 안 들어?"

"가장 두려운 것은 인생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거야. 아무에게도 주목받지 못하고, 아무런 자극도 없는 인생을 보낼 바에야 죽는 편이 낫다는 그런 지향성."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단 욕구는 '모방범'을 추동하는 근본적인 에너지와 같은 무엇이다. 범인들이

뚜렷하게 보여주는 그런 인정에의 욕구처럼 삐뚤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의

주목을 끌고 알려지고 싶다는 욕망을 내밀한 가슴 속에 품고 있는 거다. 범죄사건의 목격자이던

논평자이던, 소설 속의 수많은 사람들은 저마다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하고 방송에 나오려고 한다.


어쩌면 사람들은 점점 그런 인정욕구에 목말라가는지도 모른다. 세상은 점점 광활해지기만 하고

사람수는 헤아릴수 없이 늘어나기만 하는 와중에, 거대한 도시, 수많은 사람 속에서 살아남고

두드러지기에 실패한 사람들은 얼마나 많을까. 모두가 인정받고 싶지만, 또 모두로부터

버림받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 거다. 너무 커져버린 사회 속에서 각자도생, 팽개쳐진 영혼들.


범죄의 피해자였던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버려졌다고, 있으나 없으나 세상에 별 상관없다고

느끼고 있었다. 범죄의 가해자였던 사람들 역시 어려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잊혀진 채였다.

굳이 시니컬하게 '자존심 비대증의 실패자'라며 비하하지 않더라도, 가해자들의 삶은 공히

가족으로부터, 친구로부터, 너무 커진 세계로부터 결정적인 상처를 받고 있었던 거다.



도시 반대편에 사는 사람에게 신, 혹은 스타가 되다.


"나는 안 잡혀. 계획은 완벽해. 황홀해질 정도로 아름다운 스토리야. 가즈아키, 잘 들어. 이 사회는 내가 만들어내는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어. 그 다음 이야기와, 최고의 클라이맥스와, 길게 여운이 남는 라스트신. 그러니까 네가 협력해줘야지. 공연자로서 말이야."

피해를 입은 여성들과 비슷한 연령대의 딸이나 손녀를 두고 있는 사람들은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때 거의 예외없이 어딘지 모르게 꺼림칙한 표정을 짓는다는 것이었다...그것은 아마도 정말 안됐다는 생각과, 우리집 딸이나 손녀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같은 농도, 같은 온도로 섞인 결과일 것이다...자신이 피해자가 되었을 수도 있었고 또는 앞으로 될지도 모를, 피해자들과 동년배의 여자들은 심한 불안과 슬픔과 분노를 드러냈지만, 때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밝은 표정으로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겁도 없이 낯선 남자를 따라가니까 저렇게 되는 거야, 하고 희생자들을 매도함으로써 안도하는 경향이 있다.


범죄자들은 생각한다. 도시 반대편의 사람들에게 자신들은 어쩌면 신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

세상의 모든 타인을 발아래 둔 채 생사여탈권을 쥐고 모두를 위한 스토리를 통제하는 존재.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흥분에 들떠 추측만 해댈뿐인 사람들을 위에서 내려보며 오락거리를

제공해주는 신.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에 봉사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지경이다.


사실은 수많은 익명의 군중 속에서 사람의 마음은 정작 어디론가 묻혀버렸다. 연쇄살인 역시

도시 반대편의 사람에겐 하나의 가십에 지나지 않은 채 소비되고 만다. 마치 해외토픽처럼.

이미 그런 선정적이고 비극적인 스토리들은 계속 수위를 높여가며 제공되고 있었고, 연속선

상에서 연쇄살인사건 역시 최초의 충격을 지나서는 그저 엔터테인먼트, 남일이었을 뿐이다.


그건 합리적인 반응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그들이 사람을 죽여봐야, 자신의 일이 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자기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 친구의 일이 될 가능성이란 건. 대개의 경우 그런

사건은 내가 아닌 절대다수의 '타인'에게 벌어지는 거다. 그리고 그들 모두에게 공감하고

감정이입하기를 바라는 건 어쩌면 무리인지도 모른다. 세상이 너무 크고, 사람은 너무 많다.



언제고 또 나타날 '모방범'.


'모방범' 속의 사건들은 1990년대 후반의 일들이다. 휴대폰과 인터넷이 막 보급되기 시작하는,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중전화기나 집전화를 이용해서 서로 연락하는 그런 시대이다.

지금은 그나마 거대한 세계에 모래알처럼 흩어진 인류가 조금은 서로를 끌어당기려 애쓰는

도구들이 많아진 시대다. 휴대폰도, 트위터니 페이스북이니 따위의 소셜 네트워킹도.


그렇다고 상황이 나아진 건 아니다. 그런 도구가 아무리 발달했다고 해서 사람들이 나와

타인 사이에 세워두는 경계선이 좀더 확장되거나, 결국엔 사라질 거라고 믿을 근거는

어디에도 없는 거다. 휴대폰이 생겼어도, 가상 사회가 건설되었어도, 가장 중요한 인간의

깜냥 자체는 조금도 커지지 않았다. 타인에 대한 공감이나 이해를 위한 능력, 의지.


결국, 사람은 어디까지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까. 우리는 혹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지점에서 서로를 괴롭히고 못견뎌하고 있는 건 아닐까. 도시 반대쪽의 살인마를

키워내는 건 이쪽에서 티비를 보며 범죄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한편 연극의 등장인물처럼

소모하는 우리들 아닐까 하는 거다. 이 소설이 아무래도 우울한 비극으로 읽히는 이유다.


이 거대해진 세계, 인간의 수용치를 넘어버린 세계에서 '모방범'의 도래를 피할 수 있을까.






일본에 유학가 있는 친구녀석(http://yakisobapang.tistory.com/)이 비싸기만한 외지생활과

예기치 못한 후쿠시마 사태로 멀어져버린 현지 취업의 꿈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뚝딱뚝딱

만들어낸 가죽지갑. 불우이웃돕는 셈 치고 주문하고 봤더니 색깔이 너무 이쁜 거다. 말하자면,


"홍대출신 디자이너가 일본 가서 직접 색깔을 믹싱했다는 바로 그 청순네이비블루 가죽지갑".

파란색감도 굉장히 맘에 들고, 굵고 촘촘한 스티치도 분위기 있고, 두껍고 탄탄한 가죽도

앞으로 어떻게 길이 들고 때가 껴서 말랑해질지 기대가 커지는 거다. 가뜩이나 날도 하루가

다르게 더워지는데, 두꺼운 반지갑 대신 얄포름한 요고 하나 들고 가면 괜찮겠다. 뭐 땀도

흡수하고 물도 먹고 해서 더욱 빨리 빈티지스러워지겠지만.ㅎ

배송되고 포장을 뜯기가 넘 아까웠던 것도 빼먹을 수 없는 포인트였다. 두꺼운 갈색종이가

굵은 스티치의 하얀 실로 박혀서는 가죽지갑을 감싸고 있던 거다. 그리고 뒷면에는 제품명과

색깔, 제품번호가 진한 갈색으로 박혀있었고.

눈에 잘 안 띄게 둘러져 있던 띠를 벗기고 나니 숨겨져 있던 글씨들이 눈에 들어왔다.

Constant Leather Goods, 그리고 뒷면에는 무려 QR코드가 숨어있어서 스마트폰으로

긁어보면 바로 홈페이지로 연동이 되는 거다. 전체적으로 갈색 종이에 검정 글씨가

깔끔하면서도 단정하다 했더니 QR코드의 불규칙한 문양이 딱 맞아 떨어지는 느낌.

안에는 제법 많은 것들이 들어있었다. 그저 지갑 하나 들어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뭔가 워런티

비슷한 분위기의 일련번호가 새겨진 카드 하나. 그리고 제품에 대한 컨셉이나 디자인을

설명한 카드가 몇장. 다른 것보다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언제 제작되었는지 그 날짜가 적혀

있더란 점이었다. 내 지갑은 2011년 5월 5일, 어린이날 빨간날이라고 전부 나가 놀고 있을 때

누군가는 열심히 수작업으로 이렇게 두꺼운 가죽을 바느질하고 있었겠구나.


조명에 따라 색깔이 휙휙 바뀌며 검정색처럼 보이기도 하고, 살짝 남색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다소 경쾌한 느낌의 청색이랄까. 엷은 베이지색의 실이랑 가죽 안쪽의 살색이

대충 깔맞춤은 되고 있지만 앞으로 손때도 묻을 테고, 이리저리 굴러다니면서 먼지도 낄 테고

그렇게 더욱 빈티지스러운 느낌으로 운치가 살지 않으려나 싶다. 두꺼운 반지갑을 들고 다니기

부담스럽거나 귀찮다 싶을 때, 슬쩍 카드 두어장이랑 현금 조금 넣어서 갖고 다니기 좋을 듯.

* 지갑이나 다른 가죽제품에 관심있는 사람은 QR코드로 이 그림을 찍어보거나, 아니면

그냥 귀찮더라도 www.constant.co.kr을 찍어보거나.





시청 근처를 걷다가 문득 발견한 술집,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술집에 내걸린 황금색 플래카드가

눈에 번쩍 뜨였던 거다. 다름 아닌 '선토리 프리미엄'. 그것도 생맥주와 병맥주를 모두 판다는

소식에 완전 흥분해버리고 말아서, 가던 길도 제끼고 당장 들어가 앉아 각 일병씩 주문부터.

선토리 프리미엄, 일본에서 발견한 최고의 맥주.

선토리 프리미엄 캔맥주는 일본 여행갔을 때 발견해버린 최고의 맥주였는데, 병맥주나 생맥주도

그럴까 싶었다. 아무래도 생맥주는 좀더 가볍고 탄산이 진해 시원한 느낌이 강하고, 병맥주는

반년전쯤의 기억에 따르자면 캔맥주랑 비슷하면서도 살짝 다른 느낌? 그렇지만 역시 선토리는

선토리. 약간씩 미묘한 차이는 있었지만 역시 최고다.

그 전에도 정말 희소한 몇몇 주점에서 사적인 라인을 통해 수입해온 듯한 선토리 맥주를

팔지 않았던 건 아니다. 다만 공식적인 라인이 아니었기에 딱히 저런 배너같은 홍보물도

없었고, 이렇게 정식 수입절차를 밟은 명찰도 안 붙었던 거 같다. 물론 가격도 좀더 비쌌고.

여기서 파는 선토리 생맥주와 병맥주는 각각 만삼천원. 비싸긴 하지만, 기네스같은 프리미엄급

맥주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으니만치 만족이다. 값싼 거 두 잔 마시기보다 선토리 한 잔을

마시고 싶은 날도, 사람도 있는 거니깐.

주점 아저씨한테 물어보니까 정식으로 수입되기 시작했으며, 다만 시중의 마트 같은 곳에서도

팔릴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고 한다. 다른 맥주 업체들의 반발이 있다나, 해서 당분간은 이렇게

주점에서만 팔릴 거 같다는 말씀인데, 어디까지나 그 분 말씀이니 진위 여부는 확실치 않으니

좀더 추이는 지켜봐야 할 듯 하다. 그런데 여기 발견하고 나서 보니 여기저기 배너가 내걸리고

하는 걸로 보아 일반 주점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두근두근.

언젠가 마트에서 선토리를 살 수 있는 그날이 오면, 냉장고 한가득 선토리 캔맥주만 쟁여놓고

마시는 그날을 꿈꾸며. 맛있게 마시는 방법을 공유! 맥주와 거품의 비율은 7:3의 황금비를

지켜서 따르기 위한 테크닉이 담겨 있으니 꼭 선토리뿐이 아니어도 다른 맥주를 마실 때

충분히 응용이 가능한 팁 되시겠다.






이런 스토리로 빠질 줄은 몰랐다. 청소년보호법의 존재로 인해 유명무실한 처벌을 받을 뿐인 아이들의

범죄에 대해서 피해자의 어머니이자 가해자의 선생님인 그녀가 나름의 방식으로 응징을 한다는 식의

이야기가 예고편 따위를 통해 접했던 이야기의 얼개였다. 그 응징이 왠지 풋풋하고 발랄한 식으로

내려지리라는 건, 어른이자 선생님이 어린이이자 학생에게 내리는 벌이리라는 안이한 기대에 더해

주연배우 마츠 다카코의 여성스럽고 선한 이목구비 때문이었던 거 같다.


영화는 계속해서 내달렸다, 이런 내 안이한 예상치를 훌쩍훌쩍 여유롭게 뛰어넘으며. 학생들이 점령한

무질서하고 소란스런 교실을 거닐며 종업식을 진행하는 시종 무기력한 그녀의 이미지도, 그녀의

아이를 죽인 살인자  A와 B가 적나라하게 까발려지는 순간도, 그 살인자들에 AIDS환자의 혈액을 섞은

우유를 먹였다고 그녀가 폭로하는 순간도, 끝내 막장까지 내몰리는 살인자 두 명의 지옥과도 같은

일상의 묘사도, 그리고 등장인물들 제각기의 고백에서 수시로 번뜩거리는 가학과 살인의 충동까지.


그런 충격은, 물론 조밀하고 탄탄한 스토리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어린이', 혹은 '청소년'에 대해

한수 접어두던 사회적인 태도 탓이 큰 거 같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비슷하게,

그들을 아직 스스로의 의지와 사고를 통제하지 못하는 판단력 부족한 미완성의 인간으로 보거나,

아직 인간의 덕목이나 인간성을 다 갖추지 못한 한정치산의 존재로 보는 시각이랄까. 덕분에 그들은

'계도'나 '훈육'의 대상으로만 여겨지는 동시에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도 제한된 책임만 지는 거다.


근데 영화에서 그려진 그들은,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아이들 중 일부는

작고 어리지만 이미 활짝 피어난 어른, 악인일 뿐이지 꽃봉오리나 씨앗의 무궁한 잠재력을 품은

'청소년'의 이미지와는 전혀 동떨어진 거다. 글쎄, 그런 아이도 있을 수 있겠다 싶다. 아이라고 해서

모두 선하고 순진무구하기를 바라는 건 어른들의 퇴행적인 로망, 자신들 멋대로 꾸며내고 믿고

싶어하는 신화니까. 아이들도 결국 백인백색이라는 사람과 같은 종(種)인 바에야 당연할지도.


영화가 딱히 '어린이는 조그만 어른이나 마찬가지'라고 강변하려는 건 아닌 거 같다. 다만 그런

악마적인 아이의 범죄와 맞닥뜨렸을 때 어디까지 잔혹하고 또 잔인한 복수가 이뤄질 수 있을지

극한까지 내달리고 싶었던 거 같다. 거의 면책에 가까운 특권을 가진 아이들의 악의적이고

의식적인 범죄로 삶이 망가져버린 사람이, 그 아이들의 흉포하고 잔인한 인간적 본성이 그대로

드러난 반들거리는 눈빛을 마주하고 난다면 어떻게 변할까. 어떻게 복수할까.


두 살인마에게 복수를 마치고, 그녀의 마지막 대사가 굉장히 섬뜩했다. 이제 아무 희망도

남지 않은 절망의 구렁텅이를 느껴봐, 거기서부터 갱생이 시작되는 거야. 아니, 장난이야.

대충 이런 식의 이야기. 절망의 바닥으로 떨어지고 삶이 온통 부서지고 난 이후에는, 갱생이고

뭐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 폐허만 계속되었다는 그녀의 고백. 그리고 또 너 역시 그런 폐허를

거닐게 될 거라는 처절한 저주. '파리대왕'과 '올드보이'의 교집합, 그 어딘가쯤 이 영화가 있다.



겨울을 보내고, 벚꽃이 날리는 봄이 되어 문득 생각나는 일식 주점 하나.

일본에서 갔던 그런 주점들의 분위기도 제대로 나던 곳, 게다가 일본인 주방장의 솜씨가 좋아서

안주도 술도 모두 맛있던 곳. 특히나 복어 지느러미의 향이 담긴 히레사케를 두손모아 마시면.

갈 때마다 앉게 되었던, 주방장이 안주 재료를 꺼내고 손질하는 걸 바로 구경할 수 있었던

주방쪽 바에 앉아 올려다봤던 냉장고와 벽면에 가득한 일본술들. 그리고 자기 그릇에 가득

쌓아두고 필요할 때마다 한두알씩 꺼내쓰던 달걀도 눈에 들어왔었다.


이제 원전 사고 때문에 일본을 가는 것도, 일본에서 건너온 식재료나 술들도, 맥주니 사케니..

먹을 수 있으려나. 이래놓고 어제도 아사히 맥주를 죽도록 마셨지만. 언제든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이웃나라 일본,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고와 그 거대한 후과로 인해서 문득 그 어디보다

멀고 먼 나라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딱히 색깔이나 무늬를 맞출 생각은 없는 듯 무질서하게 쌓여있는, 그래도 대충 모양새는 비슷한

앞접시들. 누구에게 어떤 접시가 갈지는 모르고, 함께 가서 앞이나 옆에 앉았던 사람과 같은

접시를 쓸 수 있을지도 모르는 그런 뽑기같은 랜덤함도 재미있었다.

빨간색과 검은색 젓가락이 점쟁이 산통에 들어있는 산가지들처럼 뺴곡하게 꼽혔다.

유난히도 길고 지루하던 지난 겨울, 몸을 녹여주고 곤두섰던 신경들을 다독여주던 따뜻한 술 한잔.

도쿠리에 나오는 술이 그렇게 싼 걸 쓰는 건 아닌 거 같았다. 향이나 맛이 조금은 달랐었다.

그리고 유쾌하던 화장실 표지. 가볍게 한 도쿠리와 맛난 안주를 먹고 나서 한참 이야기하다가

나오면, 이미 들어가기 전부터 어두웠던 사방이 더욱 짙은 어둠 속에 가라앉아 있었다.

언제 또 갈 일이 있으려나. 정말 맘에 드는 가게였는데, 겨울이 지나면서 히레사케의 독특한 향도,

따뜻한 도쿠리의 감촉도, 그리고 무엇인가가 사라져버렸다. 일본이란 나라의 '뚜껑'이 닫혀버린

느낌과도 같이 더이상 접근하기도 열어보기도 어려워져버린 기억.





어떤 미로든 그 곳으로 들어서는 입구는 굉장히 친절하다.

길을 잃게 되는 길을 알려주는 이상한 표지가 커다랗게 놓인 그곳에서 시작이니까.

그러고 보면 유원지의 '유령의 집' 같은 곳도 마찬가지다.

눈에 잘 띄고 절대 놓칠 수 없는 그 입구, 를 지나치고 나면 정신이 혼미한채 이리저리 쫓기는 거다.


출구는 어디일까. 출구는, 출구는 어디일까...입구는 어디였을까.

블랙박스의 시꺼먼 내부 같은 그 안에서 술취한 듯 갈지자로 헤매다보면 차라리

입구를 다시 찾아서, 그 표시가 가리키는 반대로 내닫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지는 때도 있었다.

결코 찾을 수 없는 뫼비우스의 실마리를 찾듯 결국 내딛는 걸음걸음은 제자리걸음이 되지만.


방향감각을 완전히 상실해서는, 대체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건지 아니면 뒤로 멀어지고 있는 건지 따위를 하나도 알 수 없게 되버리는 순간.

누군가 날아올라 내가 어디 있는지를,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보고 말해줄 수 있으면 했다.

그럴 때가 아마도 죽어버렸다는 신의 손끝이 움찔움찔 경련하는 순간일 거다.


날아올라 무찔러라 메칸더의 용사들아, 최후의 승리는 우리 것이다.

일본의 방사능 물질이 둥그런 지구를 휘감아 도는데, 2012년에는 지구가 망한다는데 여전히

나는 차마 어쩌지 못할 내 신변잡기와 하찮은 일상을 견디지 못하고 심호흡을 뱉는다.

뫼비우스의 대지 위에서 비둘기의 날개를 부러워한다.




@ 서울대공원.

#1. 

운동장에 그어진 뱀처럼 꼬불거리는 하얀 선을 따라 줄을 서서 구호용품을 배급받는 일본인들.

사재기도 없었고, 치료를 받을 때도 더 급한 다른 사람은 없었는지 물어보며, 일사분란하고

차분한 대응을 하고 있다는 거다. 그에 더해 몇몇 사람들이 쓰나미가 오는데 막판까지 안내

방송을 하며 마이크를 놓지 않았다거나, 녹아내리는 원전을 막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원전 속으로 들어갔다거나. 일본인에 대한 미담은 이어진다. 이상할 정도로.


#2. 

일종의 미안함을 동반한 반작용인지도 모른다. 일본에 지진이 나자 한국 언론은 계산기를

두드려 국내 경제의 호재임을 입증하려 애쓰기도 했고, 정치인들은 한국에 산다는 게 다행이라

거침없이 이야기했으며, 무엇보다 일부 정신병자는 '하느님의 뜻'을 운운하며 천벌이라 했다.

다른 사람들도 나을 건 없었다. 이 기회에 일본을 꺽자느니, 일본이 그간 역사적으로 가해온

범죄행위에 대한 응징이라느니, 격하게는 아예 없어졌으면 좋겠다느니. 


#3.

문득 부끄러워진 걸까. 태극무늬를 앞세워 따끈따끈한 감동을 전하자는 쓰레기같은 말이

터져나오고, 수천수만을 헤아리는 사람들이 죽어가는 앞에서 비로소 인간이 보인걸까. 위안부

할머니들의 '국경을 넘어 생명은 소중하다'는 당연한 이야기가 새삼스러워 보일 지경이 되서야.

그에 더해 '아이티' 때와는 다르다느니, '명성높은 외국 언론'들이 일본의 겸양하는 멘탈리티를

부각하고 일사분란한 분위기를 주목하니 왠지 '트렌드'가 그게 아닌가보다 생각한 건 아닐까.


#4.

근거가 있다. 극단에서 극단으로 휘휘 내둘리는 이 나라의 언론 혹은 여론은 이미 숱한 사례를

배출해 왔다. 이번에 그 자극적인 '장자연 편지'에 대한 들불같은 분노는 어떤가. 이미 팩트는

익히 드러났던 사안임에도 그 야설같은 스토리에 반응해서는, 필적 조사 등 객관적인 절차 이전에

불끈 달아올라 버렸다. 그 이전 '중국 총영사 정보 유출'에 대해서는 또 어떤가. 희대의 스파이인

양 묘사되다가, 막판에는 초라한 생계형 브로커의 모습만 남지 않았나.


#5.

대개 실상은 극단과 극단 사이에 있기 마련이다. 팩트는 일본인들이 그렇게 전혀 새로운 질높은

인간성을 보였노라는 격찬과 그들의 '깃발을 따르는' 국민성 및 문화적 특성 때문이라는 질시어린

폄하 사이에 어딘가 존재할 거다. 한점 흔들림없이 사재기도 없고 질서도 잘만 지킨다는 차분한

일본 국민이라는 이미지는 상당부분 자연재해에 대한 철저한 준비와 지침을 마련해 둔 것에 기대어

있었겠지만, 사태가 장기화되고 심각해지면서 조금씩 균열이 나타는 것처럼 보인다. 카트리나때

미국인들은 어땠었는지 돌이켜보면, 지금의 상황이 딱히 예외적이란 느낌은 안 든다.


#6.

문제는, 그 와중에 "재앙 속에서도 빛나는 성숙한 시민정신"이라느니, 저런 게 바로 일본의

저력이라느니 하는 쎈 타이틀들이 은근슬쩍 주입하려는 듯한 고정관념이다. '시민'이 갖춰야
 
할 덕목 중의 그런 차분함과 이타심도 있겠지만, 과연 일본사회가 권리의식, 정치적 민주화,

사회경제적 민주화 따위에 눈뜨인 '성숙한 시민정신'을 갖춘 각성된 시민사회일까. 극단적이지만

그런 표현들이 숨긴 속마음은 이런 거 아닐까. 김문수가 말했듯, "일본 국민은 일이 터져도

대통령 탓을 하지 않는다". 조용하고 다루기 쉽다. 그걸 배우라는 건 아닌가.


#7.

결론. 일본인들이 지금같은 최악의 상황에서 저토록 차분하게 대처하는 걸 신화화하거나

신비화해서는 안 된다.
평소의 교육과 심적 대비, 그에 더한 사회적, 문화적 특성이 발현된

결과이지 무슨 새로운 인간형이 출현했다거나, 우리보다 멀찍이 앞선 '선진'시민이라거나,

우리가 배워야 할 '시민의식'의 궁극이 저런 모습이라거나 식의 이야기로 홀리는 건 곤란하다.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인식이 사춘기 소녀의 마음처럼 냉소와 찬탄으로 휙휙 바뀌는 건 결국

'질투'라는 감정에 사로잡힌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성숙하려면 아직 멀었다.


* 이 글을 쓴 다음날, 아니나다를까 치졸한 비방이 시작됐다.(중앙일보 편집인, 2011/3/16)

"그 풍경은 우리 시민의식을 되돌아보게 한다. 천재지변 탓에 비행기 출발이 늦어도 창구에 몰려가 항의하는 가벼움과 어이없음, 준법 대신 목소리 큰 사람이 행세하는 떼 법, 끼어들기 주행, 남 탓하기의 풍토를 부끄럽게 한다. 우리 부모 세대들은 그렇지 않았다. 자기 탓, 자기 책임부터 먼저 생각했고 염치를 지키려 했다. 그들은 한강의 기적과 국가적 풍모를 만든 세대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 남 탓하기와 떼 법의 억지와 선동의 싸구려 사회 풍토가 득세했다. 일본발 문화 충격은 그 저급함을 퇴출시키는 자극이 될 것이다."
주말이면 아키하바라의 넓은 대로는 차 대신 코스프레 걸들로 가득 찬다고 그랬었다.

가이드북에 딱 한 줄, 그렇게 나온 정보만 믿었던 게 실수였던 거다. 코스프레걸들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주말에 맞춰 당도했던 아키하바라는 전혀 예상과 다른 곳이었다.


* 알고 보니 코스프레는 하라주쿠에서 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하라주쿠 역 근처 다리 옆이

본산이라던가, 아키하바라는 건물 내 실내에서 드문드문 볼 수 있는 정도라고.


코스프레걸들이 제각기 빼입고 온 의상과 제스처를 선보여야 할 넓은 대로 위엔 차들이

씽씽거리고 달리고 있었고, 대로변엔 온통 게임샵들 뿐.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게임기를

직접 체험해보는 사람들이 있고, 줄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고, 흘낏흘낏

구경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고.

게임엔 별로 관심이 없으니 그대로 전부 스킵하고 지나자니 이제 망가샵들이 나타나기 시작.

코스프레걸들을 구경하는 대신 애니메이션 샵들을 구경하기로 맘을 정하고, 5-6층짜리

건물이 통째로 애니메이션 관련 상품을 파는 그런 건물들을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활용한 상품들이야 한국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거지만, 이런 식으로

캐릭터들의 코스튬을 파는 가게들은 신기했다. 유니폼이나 응원복 같은 걸 맞추는 옷가게나

수선집 같기도 하고, 다소 유치하다 싶을 정도로 빨강 파랑 원색의 의상들이 줄줄이 걸려있었다.

그 와중에 조금 비싸고 질이 좋아 보이는 옷은 이렇게 마네킹에 입힌 채 디피되어 있었고,

에메랄드색 가발도 가발이지만 머리뒤로 깍지낀 두손의 포즈는 또 뭔가 싶고. 그래도 저런

옷은 옷걸이에 빼곡하게 걸려있는 다른 것들과는 달리 인간이 입을 수 있겠다 싶은 느낌.

재질도 그렇고 모양새도 그렇고.

샵마다 조금씩 퀄리티나 분위기가 달랐는데, 내 취향은 (굳이 따지자면) 이런 쪽이랄까.

원색의 빤짝거리는 나이롱 재질의 옷들 말고, 단정하면서도 신선한 느낌의...ㅋㅋ

굳이 치마가 잔뜩 짧을 필요도 없지 싶은 건, 역시 에반겔리온의 세례를 받았기 때문인지도.

여전히 에반겔리온의 캐릭터들이 살아있구나 싶어서 기쁘기도 하고, 그 이후 이만한 작품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거지 싶어서 아쉽기도 하고.

그러다 발견한 재미난 상품 하나. '원피스'의 캐릭터들이 제법 에로틱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저 물건의 용도는 바로 마우스 패드였던 거다. 이미 만화에서부터 풍만하게 그려졌던 그녀들의

가슴을 팔목받침으로 써서 손목의 피로도 줄이고 터널증후군도 방지하겠다는 그 갸륵하고도

참신한 발상이라니. 그 유쾌한 용도를 확인하는 순간 빵 터지고 말았다.

그리고 슬쩍 올려보는 '공기인형' 상품. 배두나가 주연했던 영화 '공기인형'에서 첨부터

끝까지 등장했던 녀석들이 이런 실리콘 재질의 물컹이는 것들이었던 거다. 푸시시식, 하며

바람 빠지는 장면과 그 때의 배두나의 눈빛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영화.

[공기인형] 짤그랑대는 기네스 병맥주, 사람의 마음이 그렇다.

그 밖의 건담이니 뭐니 캐릭터가 반영된 여러 성인용품들도 한쪽에서 팔고 있었고, 그것들의

모양새라거나 특징들이 어찌나 변화무쌍하던지 자꾸 눈이 가더라는.

그 밖의 여러 기기묘묘한 것들이 잔뜩 있었지만 차마 사진으로 담을 수는 없어서 그저 두눈으로

마음으로 곱게 담아두고, 잠시 바람쐬러 건물 밖으로 나와 또다시 옆 건물로.

아마 사무실에 저런 넥타이를 하고 가면 당장 출근길에서부터 쏟아지는 눈화살에 맞아

죽어버리지 않을까. 쟤는 뭘까, 하는 의구심과 경계심을 가득 품은 눈화살들.

귀여운 물건들도 많아서, 저런 다양한 이모티콘이 그려진 컵이라거나, USB 포트에 꽂으면

쉼없이 자전거 페달을 젖는 강아지라거나, 질릴 줄 모르고 돌아보게 되는 마력이 있던 곳.

캐릭터를 활용한 음식도 한가득이었다. 이름하야 '메이드 쿠키'. 메이드 복장을 한 꼬마아가씨가

귀여운 저 포장 때문이라도 한번 더 눈이 가게 되는.

웃기면서도 다소 의미심장한, 나이키 로고를 패러디한 NEET 로고. No Job, No Guts.

Just Don't do it이란 절묘한 말장난이 일본의 심각한 청년실업과 고용불안을 시사하는 듯.

그리고, 무엇보다도 맘에 들었던 건, 심지어 저 가슴을 활용한 마우스 패드보다도 훨씬 맘에

들었던 건 역시 미야자키 하야오의 캐릭터상품들. 지브리 스튜디오 샵에서도 못 봤던 것 같은

캐릭터상품들이 많이 있었다.

아...이 녀석들을 하나씩 수집하는 건 어떨까, 싶다가도 저 만만치 않은 금액에 깜놀해서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하야오의 아이들.

그리고 마치 우리나라 모든 관광지에서 똑같은 등긁개니 곰방대니 옥돌이니 따위 파는 것처럼,

도쿄의 어느 관광지에서고 팔고 있던 녀석. 복던지는 고양이 스몰사이즈가 우르르.

건물 안에 들어가 샵들을 구경하는 데도 워낙 재미가 쏠쏠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러저러한 캐릭터상품들도 구경하고, 일본냄새가 물씬한 아이디어상품들도 보고,

그러다가 밝은 햇살 속으로 나오면 또 드문드문 메이드복을 입은 아가씨들이 이런

메이드샵 광고지도 나눠주고. 만화캐릭터의 뽀얗고 맑은 피부, 커다랗고 그렁그렁한

눈망울, 여릿한 허리와 가늘고 기다란 다리 따위와는 전혀 거리가 먼 그녀들이

우르르 찍혀 있는 광고지를 요모조모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던 일본의 추억 중 하나.



하코네의 어느 료칸, 잠깐 들러서 온천욕만 즐기다 갈 수도 있고 혹은 아예 숙박을 하며

온천을 즐길 수도 있는 곳이라는데, 도쿄에서 꽤나 떨어진 하코네까지 와서 하루만에

돌아가거나 료칸 대신 일반 숙소에 머무는 건 좀 아닌 거다. 분명히 싼 가격은 아니지만

온천의 질이나 시설들, 그리고 숙박비용에 포함된 저녁식사와 아침식사가 워낙 훌륭하니

절대 강추. (훌륭한 저녁식사에 대해서는 하코네, 어느 료칸의 감동적인 저녁식사.)

료칸 입구 신발장에 정리되어 있던 색색의 게다들. 아무거나 본인이 원하는 걸 골라서 신고 다닐수

있었는데, 따그닥 따그닥 소리가 재미있어서 신고 나가선 가볍게 동네도 한바퀴 돌아봤다. 생각보다

굽이 높고 발 앞굽과 뒷굽사이 간격도 좁아서 뒤뚱뒤뚱, 여자들 킬힐 신음 이렇지 않을까 싶은

느낌으로 신발 위에 올라타서 걷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던.

삼층짜리 료칸 건물 옆에는 정기적으로 하코네 역과 료칸 사이를 오가며 손님들을 옮기는

고풍스런 수송차량이 한대 서 있었다. 버스라기에도 뭐하고, 승용차라기에도 뭐한 클래식한

느낌이 물씬한 차. 조금 일찍 시간을 맞췄으면 이 차를 타고 편하게 료칸에 도착했을 텐데,

돌아다니다가 늦어서 택시를 타고 손짓발짓으로 설명해서 들어왔댔다.

료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던 신사. 밤이라 많이 어둑어둑해지고 나니 왠지 조금

으스스한 느낌이 들어서 안으로 들어가보려다가 포기하고, 여기서 짧은 게다 산책은 끝.

복던져주는 고양이야 뭐, 한국에도 이미 워낙 많이 퍼진 일식 밥집과 술집들에서 익숙하지만

이렇게 천으로 만들어진 건 못봤던 거 같다. 도자기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것과는 달리

좀더 따뜻한 느낌이 배어나오는 고양이다.

다다미가 깔려있는 나무바닥은 반질반질 윤이 나서 천장의 형광등 불빛을 고스란히 되비치고

있었고, 나무색이 가득한 안온한 일층 로비의 분위기는 이층, 삼층의 객실과 식당 같은 곳까지

전부 이어져 고급스럽고 편안한 기분을 주었다.

한쪽에는 이렇게 유카타를 진열해놓기도 하고, 회의나 기타 목적으로 쓸 수 있는 방도

마련해 두었다. 여럿이면 오면 저런데 둘러앉아 보드게임을 하는 것도 괜찮을 듯.ㅎ

남녀 욕탕으로 들어가는 앞에는 이런 100엔, 200엔짜리 뽑기 기계도 놓여있었다. 아마도

아이들의 마음을 자극하려는 용도 아닐까 싶지만 또 잘 살펴보면 하코네의 특색이 담긴

뭔가를 뽑을 수 있는 것 같다. 어른들도 기념품삼아 한번 돌려봄직 하겠네, 싶어졌다.

고양이 인형이니 클래식한 돌림식 전화기니 료칸 복도나 벽면을 꾸미고 있는 것들도 하나하나

눈길을 붙잡아 두는 것들이었다. 미처 사진은 못 찍었지만, 밤새도록 울어대는 귀뚜라미들

소리가 어디선가 녹음해둔 걸 무한 재생시키는 건가 했는데 알고 보니 귀뚜라미들을 잡아서

기르는 통 안에서 '쌩 레알'로 난 거라는 것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이런 고양이 문양이 가득한 벽면도 있고. 유카타를 입은 내 모습도 비쳐보이고.

여기저기에 숨어있는 고양이 인형들, 어디서 요런 귀여운 것들만 모아뒀는지, 장식품들

하나하나가 다 허투루 만들어진 싸구려같진 않은데.

그리고 아마도 이 토끼는 몸 속에서 양초나 향을 태우는 용도로 쓰이는 거 아닐까. 아랫배 쪽에

구멍이 뽕뽕 뚫려있는 걸 보면 저기서 뭔가 연기가 송송 나오던 불빛이 새어나오던.

이제 방 내부로. 간결한 수납공간과 거울이 붙어있고, 역시 하얀 벽지에 나뭇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뼈대가 은은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휴지 케이스도 '깔맞춤'해서 은은하고 차분한 갈빛으로

씌워두었고.

이런 디테일에 대한 세심함, 형광등 스위치까지도 싸구려 플라스틱으로 분위기를 망치지 않으려

나무결 분위기가 묻어나는 걸로 챙겨서 설치하는 점에는 정말 감탄할 수 밖에.

검은색 흰색 두 가지 종류의 면봉과 솜까지도 넉넉히 구비해 두고,

반지나 귀걸이니, 액세서리들을 따로 챙겨둘 수 있는 이런 접시도 있어 빼두고 다시 찾기도

쉬웠다. 이런 소소한 것들이 모여서 료칸의 전체 분위기를 만들고 더할 나위없는 흡족한

기분을 느끼도록 해주는 거 같다.

그리고 희뿌옇게 동이 터오던 아침, 간단하게 온천욕을 마치고 전날 저녁식사를 맛있게 했던

그 식당으로 다시 내려갔다. 아침식사는 또 어떨지, 간소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기대할 만하지

않을까 싶어서 제법 설레는 마음으로.

확실히 저녁 메뉴와는 많이 달랐다. 일단 기본 세팅부터가, 젓가락도 그렇고.

우선 상큼한 냉국과 크리미한 계란찜으로 아직 깨어나지 못한 식욕을 좀 다독다독 일으켜세우고.

생선튀김이 한마리 나오고 끈적끈적한 마가 데코레이션처럼 살짜기 놓였다.

커다란 밥통에서 이런 이쁜 공기에 밥을 퍼서 조금씩 생선이랑 먹기 시작했더니 또 금세

식욕이 깨어났다. 온천을 하고 나니 아무래도 금방 배고파지는 거 같기도 하고, 식욕도

빨리 돌아오는 거 같고.

유부피에 쌓인 어묵이 오드득오드득, 찰지고 탱탱한 식감이다. 국물도 시원하니 좋았고.

일본식 미소국은 확실히 우리네 된장국이랑은 다르다. 좀더 맑고 간질간질한 느낌이랄까,

우리네 된장국이 좀 텁텁하고 맛이 진한 것에 비하면 그런 거 같다.

디저트, 오미자 한 알이 폭 박혀있는 푸딩이 나왔다. 이쯤되면 정말 제대로 나온 아침식사다.

아침부터 생선 한마리를 다 먹고, 큰 밥통의 밥을 또 거진 다 먹고, 이런저런 사이드디쉬의

음식들도 다 먹고 후식까지 먹었으니. 여행다니며 아침을 든든히 먹는 게 꽤나 중요한데

이 정도면 든든한 정도가 아니라 점심을 한참 늦게 먹어도 될 듯.

그러고 방으로 돌아가니 간식으로 들어왔던 검정깨 푸딩, 그리고 약간의 과일이 있어서

마저 또 다 먹고서 그야말로 정말 든든해져서, 1박 2일 하코네 료칸에서의 온천여행을

마치고 도쿄로 돌아갈 준비는 끝~*




2000년에 나온 영화, 그 즈음 언젠가 대학 근처 '비디오방'에서 봤던 영화다. 새삼 영화 내용을

되짚기도 애매한 시간이 흐른 지금 다시 본 그 영화는, 그 때와는 많이 다른 느낌을 전했던 거다.

굳이 이렇게 글을 남겨 영화를 기억하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학에 갓 들어간 그녀가 도쿄로 떠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집과 고향을 떠나 차창 밖 햇살조차

덜컹이는 기차를 타고, 그녀의 마음은 알 수 없는 미래와 터무니없는 공백으로 가득한 가능성으로

뛰놀았을 거다.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 무엇을 하게 될지, 어떤 삶이 펼쳐질지. 


대학교라는 공간은 그랬다. 이곳저곳에서 선배들의 뜨거운 공연이나 거침없는 움직임이 있었고,

무엇을 배울지 어떻게 시간을 쓸지, 그 모든 것들이 스스로에 맡겨져서 그녀처럼 나 역시도 처음엔

살짝 당황하기도 하고 여기저기 뜬금없이 기웃거려보기도 하고. 아무래도 좋아, 라고 생각했다.


정말, 아무래도 좋은 때였고 아무래도 좋은 곳이었다. 그 낯선 공간과 사람들이 낯익어지면서 점점

사그라들고 말았지만, 마치 낮과 밤 사이의 그 퍼런 빛을 사방에 머금는 몽환적인 시간대에 그렇듯

묘하게 들떠 있는 기분은 잊을 수가 없는 거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뚜렷해지고, 점점 그리워지는

그런 느낌. 뭔가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고, 전혀 알 수 없는 삶으로 나를 흘려보내는 그런.


그녀의 사랑은 그런 순간의 정서를 하나로 모아내는 그런 거였다. 새롭고 낯선 삶으로 흘러온지

한달쯤 지난, 4월의 어느날에나 일어날법한 사랑 이야기. 전혀 앞을 내다볼 수 없고 어떻게 해야할지

하나도 모르겠는 그런 상황에서, 문득 쏟아내리는 소낙비처럼 한순간의 격동을 따라 마음을 전하고

전해받는 그런 사랑. 앞으로의 진부한 전개 따위가 아니라 그 순간으로 아름다운 사랑.


이전에 봤을 때에 비해 강렬하게 와닿던 것들은 그런 거였다. 한순간, 그 자체로 아름다운 삶과 사랑.

더이상 뭘 더할 것도 없이 하루하루 살아있는 자체로, 살아서 느끼던 그 자체로 아름답던 시절이

있었노라고. 다소간의 회고체, 약간의 '노화 자각' 증상이 보태어진 그시절의 재구성이겠지만,

모든 게 마냥 설레고 들뜨기만 하던 그런 때가 있었고, 지나버렸다는 느낌이랄까.




뭐 하나 딱 떨어지거나 명료하지 않은 채 뿌연 눈세계 속의 풍경처럼 불분명하고 모호한

그녀들의 사랑 이야기가 다시 와닿는 날이다. 같은 사람에 대해 서로 다른 기억을 갖고

있을 뿐이라고, 그래서 그 기억들을 잘 합쳐보면 그 사람에 대한 보다 '완전한' 기억과

이미지를 추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그녀는 성공했을까. 그리고, 뒤늦게 받아든

누군가의 '러브레터'로 톡톡 두들겨진 오래전 첫사랑의 기억은 또다른 그녀에게 어떤

의미로, 혹은 상처로 남을까.


오겡끼데스까. 와따시와 오겡끼데스.


결국 지나간 두 개의 사랑에 안부를 묻는 영화, 너무나도 선명하고 강렬하게 지나버려

2년이 지나도록 지우지 못한 사랑과 그게 사랑이었는지도 모른채 지나버린 사랑에 대해

'잘 지내고 있는지'를 묻고 '난 지금 잘 지내고 있어요'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은 마음.

그건 상대가 감기에 걸리진 않았는지, 봄꽃은 보았는지, 눈이 내리는 날 뭘하며 지내는지

묻는 그런 소소한 말건넴 밑바닥에 깔린 채 쉼없이 속삭이는 본심일 거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말이다. 지나간 일들은 모두 아름답게 분칠되고 지난 사랑 역시 늘

아름답게만 기억되기 마련이지 않을까. 사실 우리는 지나버린 사랑, 다시 붙잡을 수 없는 사랑,

아름답지만 더이상은 가망없는 사랑-혹은 더이상 가능성이 남지 않아 더욱 아름답기만 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에 대해 '오겡끼데스까'를 물어야 할 게 아니라, 지금 옆에 있는 사랑,

전쟁중인 사랑에 '오겡끼데스까'를 물어야 할지도 모른다.


지나간 사랑에 안부를 묻기란, 진행 중인 사랑에 안부를 묻기보다 쉬운지 모른다.

중부지방에 폭설특보가 내린 날, 모처럼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를 다시 보고.




일본의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만화 몇 페이지가 아주 난리다. (최소한 언론에서는.)

한국일보의 기사를 조금 따오면, "이 만화는 전직 한국 아이돌 가수 출신 호스티스의 말을 통해

한국 가요계의 실상을 전달하는 것처럼 꾸며, 한국의 걸그룹이 성 상납을 하고 있고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노예계약을 하고 있다고 묘사하고 있다." 일본만화, 소녀시대·카라 성접대 묘사 '파문'


어라, 연예계 성상납에 노예계약이란 키워드라면 당장 수백수천개의 관련기사가 뜨는, 다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상식에 가까워져 버린 주제 아닌가.


물론 소녀시대나 카라라는 특정 그룹을 바로 연상할 수 있는 장면을 그려내고 저런 야시시한 그림으로

표현한 건 '법적으로'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는 일이라고 본다. 소속사 측의 강경대응 방침이야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조금 걸리는 부분들은 두 가지다. 1) 사람들이 이렇게 분노하는 건 왠지

'우리가 연예인들의 성을 상품화하고 농락하는 건 괜찮지만 일본인은 안 돼'라는 마인드의 발로는

아닌지, 그리고 2) 실제 우리나라 연예계가 그렇게 지저분한 것도 사실에 가깝지 않은지 하는 거다.

우선 사람들이 화내는 건, 결국 일본에 대한 반감과 '우리 노리개'를 그들에게 더럽힐 수

없다는 이상한 소유의식의 발로 아닐까. 남자들 말로 '구멍동서' 못하겠다는 식의?


우리나라에서도 소녀시대니 카라니, 온갖 걸그룹이나 여성연예인들을 성적인 환타지의

대상이나 '노리개'로 전락시켜 상품화하는 일들은 일상화된지 오래다. 음습한 영역에서는

누구니 누구니 구체적인 실명까지 나오며 동영상이니 사진이 나오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대표적인 포털사이트 대문에 도배되는 기사는 저런 식인 거다. 새삼 걸그룹들을 노골적으로

성적으로 대상화했다고 손가락질하고 분노하기엔 우스울 정도라는 거다.


사실 이건 대중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공모한 결과이기도 하다. 대중은 호기심과 성적 욕구를

충족하고, 엔터테인먼트사들과 스타는 인지도를 높이고 이미지를 구축하여 돈을 버는 거니까.

이번 일도 딱히 그녀들에게, 아니 좀더 정확하게는 그녀들 소속사에게 나쁘기만 한 일일까 싶다.

게다가 온 국민이 무작정 경쟁상대, 적으로 생각하는 '일본인'들이, 좀 적나라하게 이야기하자면

온국민, 온 남정네들에 돌림빵당하던 그녀들을 '더럽힌다'는 식으로 몰고 가면 지금처럼 핫한

언론의 관심사를 받는 거니까, 이래저래 남는 장사가 되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또 하나, 우리나라 연예계를 둘러싼 온갖 비리와 부정의 이야기들은 대부분 사실아닌가?


일부 보도에서는 다소 객관적으로 만화의 내용을 전달하면서 '장자연'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다시 찾으려니 도저히 못 찾겠다. 슬쩍 지웠는지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연예계 쪽이 정재계와

연관되어 온갖 뒷말이 나오고 비리와 유착, 스폰서 등 부적절한 관행이 만연해 있는 건 딱히

비밀이랄 것도 없겠지만, 우리나라에서 그런 비리가 유야무야 덮였던 실제 케이스가 적잖은

것도 사실인 거다. 노예계약이나 성상납, 키워주겠다며 접근하는 유형무형의 성폭력 사건들까지.


무작정 동인지 수준의 만화 하나를 갖고 혐한류네 어쩌구 하며 반일 감정에 편승하기 보다는,

실제로 연예계 생활 중에 착취당하고 성적으로 팔려다니는 우리네 현실에 좀더 정면으로

들여다보고 반성하는 게 필요한 거 아닐까. 그런 진지한 게 싫다면, 최소한 지금 일본인들에

분노하는 이유가 그저 '우리들(한국 남자들) 노리개 쪽바리들에 뺏기고 더럽혀지기 싫다'는

'째째한' 마인드의 발로는 아닌지나 생각해 보기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진지하게 연예계 현실의 문제를 생각한다면 널리 사랑받는 그녀들의 삶이 조금은 더 사람답게

나아질 테고, 진지하지 않더라도 일본에서 좀더 눈치보지 않고 대담한 '육탄공세'로 돈을 벌어들일

수 있도록 대범한 자세를 보여주는 셈이니 그녀들과 소속사들에게 도움이 되는 셈이고. 이미

이런 낚시성 기사에 울컥해 그녀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높아졌을 테니 도움이 되었겠지만.

어떤 식으로던 '팬'으로서의 자세를 자처하고 그녀들을 애정해주려면 조금은 생각을 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기사를 기다렸다. 쉼없이 악의적으로 북한을 흔들어대는 기사들, 마약이 창궐했다느니

젊은 여자들이 몸을 판다느니 완전히 무너질 날이 머지않았다는 식의 기사들을 한줄로 꿰어내는

좋은 시선을 가진 기사. 그렇게 북한이 금세라도 붕괴할 듯 남한 주민들을 동요시키고 동시에

북한을 향한 한-미-일의 압박을 더욱 강화하려는 시커먼 속셈까지 품고 있는 전쟁광들을

분간해낼 수 있어야 할 거 같다. 그들은 합리적인 해결책을 외면하고 대화와 타협의 여지를

봉쇄하며, 결과적으로는 전쟁의 한길로만 몰아가는 사람들이니까.



질문 1. 여태 60년을 버텨온 북한이 갑자기 무너질 거라고 보는데는 합리적 근거가 있을까.

질문 1-1. 북한 붕괴론이 쉼없이 나오는 데에는 차라리 국내정치적 이유가 더 큰 건 아닐까.

질문 1-2. 연평도 사태 이후 남북 관계, 국제 정세의 주도권은 남한보다 북한에 넘어간건 아닐까.

질문 2. 남북한 문제에 있어 전쟁을 하나의 전략적 옵션으로 고려할 수 있을까.


(기사 중 굵은글씨 처리는 자의적으로 취사선택)




이제 '종말론'은 그 종착역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북한이 조만간 망할 것이라는, 망해야 한다는 신앙에 기반한 종말론은 지난 3년 "조금만 더 기다리면…" "조금만 더 조이면…"이라는 주문으로 태평양 상공을 배회했다. 이제 그 종말론은 "얼마를 더 기다려야 하느냐"는 질문을 회피할 수 없는 '심판의 날'에 다가가고 있다.

이명박 정부와 오바마 정부가 찰떡공조를 과시하며 일관성 있게 추진해온 '전략적 인내'의 결과가 이제 확실히 나왔다. 북핵의 포기가 아니라 그 반대인 북핵의 강화, 핵 프로그램의 확대라는 결과가 나왔다. 개방과는 정반대인 "자력갱생 원칙 철저 구현"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남북 교류·협력은 차단되고 남북관계는 전쟁 직전의 위기 상태로 추락했다. 적과도 대화를 하겠다던 오바마 정부는 서해에서, 동해에서 벌이는 군사 시위로 자위하며, 제대로 된 대화의 통로도 확보하지 못한 채 중국의 입만 바라보는 처지로 전락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어떻게 하여 '비핵·개방·3000'은 '우라늄 농축봉 2000'으로 돌아오고 '전략적 인내'는 '전쟁 위기의 인내'를 강요하고 있는 것일까?

▲ 이명박 대통령과 현인택 통일부 장관 ⓒ연합뉴스

"이제 북한 스스로 군사적 모험주의와 핵을 포기하는 것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연평도 포격 이후에야 속내를 만천하에 드러냈지만 이미 모두가 알고 있던 사실 아니던가. 한국 정부의 관리들은 미국 관리들과 만나서도, 중국 관리들과 만나서도 북이 스스로 핵을 포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북한 정권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고 되뇌고 다니지 않았던가. 북은 이미 동요하기 시작했으니 조금만 더 기다리면 '구원의 그날'이 곧 올 것이라고.

대충 2008년 여름부터만 잡아도 이명박 정부의 주문(呪文)은 고장 난 레코드마냥 되풀이 된다. "김정일이 쓰러졌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유엔 제재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화폐개혁으로 북 경제가 혼란에 빠지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천안함 폭침은 내부 불안을 밖으로 돌리기 위한 술책입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김정은의 등장으로 내부 불만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연평도 포격 이후 평양의 엘리트도 동요하고 군도 이탈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죽음을 기원하는 절절한 비나리는 죽음의 춤사위를 불러일으킨다. 봉쇄 춤사위는 유엔 결의안에 맞춰 크게 펄럭이며 북의 숨통을 노린다. 작전계획 5030 춤사위도 추가된다. 북한 가까이 급작스런 군사 훈련을 수시로 벌여 북의 군사력을 소진시키고 혼동을 유도하겠다는 위험한 춤사위다. '급변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개념계획 5029 춤사위를 작전계획 5029로 격상한다. 아예 이참에 일본 자위대도 한반도로 끌어들여 한·미·일 3각 연대 춤사위도 꿈꿔본다.

죽음의 춤사위에 장단과 추임새가 빠질 수 없다. 북한 깊숙이 정보원이 있다는 '언론 매체'들은 흉흉한 뉴스를 장단 맞춰 뿌려준다. 주민들은 배가 고파 일을 가지 못하고,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고, 불만 때문에 당 간부와 갈등이 심하단다. 절망의 심연에서 마약이 창궐하고, 한국을 구원의 땅으로 갈망한단다. 종말이 멀지 않았단다. 수백 명이 참가한 당대표자회 개최일조차 알지 못했던 이들 '언론매체'는 미래의 일은 족집게처럼 집어낸다. "10년 내에 붕괴한다. 그리고 그 경로는…"

이들의 추임새로 춤사위는 치솟고 비나리는 높아진다. 확신은 확신을 낳고 세상을 재단한다. 북이 6자회담 복귀 의사를 밝히면 경제 제재를 견딜 수 없어 굴복한 것이고, 북이 포격을 가하면 경제 제재를 견디지 못해 주먹을 휘두른 것이라고 믿는다. 김정일이 언론에 나타나지 않으면 병세가 위중한 것이고, 언론에 나타나면 와병설을 불식시키기 위한 쇼라고 믿는다. 한국의 포격훈련에 맞대응하면 북한은 호전적이고, 한국의 군사훈련에 대응하지 않으면 북한이 굴복한 것이라고 믿는다. 이미 이들에게 북은 죽어도 죽은 것이요, 살아도 죽은 것이다.

하여 이명박 정부는 스스로의 주술에 취해 한바탕 죽음의 굿판을 벌이고, 모두를 끌어들이려 한다. 동참하지 않는 자들은 저주하고 배척하고 단죄한다. 굿판에 남아 있는 이들 끼리는 같은 주문을 주고받고, 서로의 코드를 확인하고, 안도한다. 이들 사이에서 종말론은 확신이 되고 현실이 된다.

그 굿판의 와중에도 물론 현실은 굴러간다. 북은 지난 1년 동안에도 발전소를 완공하고, 화학공장과 금속공장을 개비한 데 이어 소비재 생산을 확대하고 놀이동산을 짓고 핸드폰 보급을 늘렸다. 재작년에 헌법을 '김정일 헌법'으로 개정하고 국방위원회를 명실상부한 최고통치기구로 공인하는 등 국가체제를 정비하더니, 지난해에는 40여년 만에 당 대표자회를 열어 노동당도 '김정일 체제'로 재정비했다. 선군정치는 '핵 억제력' 강화를 넘어 우라늄 농축과 경수로 발전소 건설로 이어지고 있다. 연평도 포격에 분풀이라도 하듯 한미 양국군이 총력을 동원해 포격훈련을 하던 날 북은 "비렬한 군사적 도발에 일일이 대응할 일고의 가치도 느끼지 않았다"고 '물'을 먹이고, 연이어 열린 한국 육·해·공군 군사훈련에는 김정일 최고사령관 취임 '경축연회'로 대응한다. 그 와중에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를 통해 대화 제의를 하고 핵 연료봉을 해외에 매각할 용의가 있음을 천명하는 것으로 화룡점정이다.

사제들의 현란한 언론 마사지와 종교재판으로 유지되던 천동설도 결국에는 종말을 맞았다. 현실만이 최후의 심판관이다. 조만간 오바마 대통령이 질문할 때 이명박 대통령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이명박 대통령 각하, 기다리라는 대로 기다렸는데 결과는 정반대 아닙니까?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합니까?"

하여 김지하를 빌린다.

"죽음의 굿판을 걷어 치워라."

/서재정 美 존스홉킨스대 교수

이수영이 뮤직비디오를 찍었다는 큐슈 유센테이코헨의 화장실 표시. 울창한 녹색 수풀 사이로

토토로가 튀어나올 것만 같이 야성적이면서도 깔끔하던 일본 전통정원은 정말 일본스럽도록

구석구석 잘 정돈되어 있었고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이 담뿍 쓰여져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화장실표시조차 이렇게 공들여 만들어진 타일조각 작품이니 뭐,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남자 화장실을 손발 쫙 펼친 적극적인 남성의 큰대(大)자 모양의 표시로 형상화했다면

그와 달리 손발을 곱게 모으고 노란색 끈으로 동여매인 듯한 여성의 모습이 대비된다.

빨간 색감이 산뜻하고 이쁘긴 한데, 이런 화장실 표시에서도 역시 일본에서 여성을 보는

시각이랄까 암묵적으로 합의된 채 상식처럼 통용되는 문화가 흐르는 건 아닐까 싶다.

크게 손발을 활개친 검은 옷의 당당한 남자, 손발이 다소곳이 모인 채 아름다운 빨간 옷을

동여맨 여자의 대비.


* Mother nature is calling me, 직역하면 '자연이 나를 부르고 있어' 정도가 되겠지만 보통

이 문장은 허물없는 사이에서 화장실 다녀오겠다는 의미로 새겨지게 됩니다. 여행을 다니며

결코 빠질 수 없는 '답사지' 중 하나가 그곳의 화장실이란 점에서, 또 그곳의 문화와 분위기를

화장실 표시에까지 녹여내는 곳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국내외의 특징적인 화장실 사진을

이 폴더 'Number one or number two?'에 모아보고자 합니다. 그 표현 역시 우리말로 치자면

'큰 거야 아님 작은 거야?' 정도겠네요^^





블로그를 하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열리는 때가 있다.

올해 여름 떠났던 도쿄 여행 중에 '에도도쿄건축공원'에 대한 내 포스팅을 보고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책을

집필중이신 저자분이 사진을 부탁해오신 것도 그런 사례 중 하나..

* 참고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그 배경이 모여있는 에도도쿄건축공원

기꺼이 수락하며 사진을 닥닥 긁어 보내드리고 나니 블로그도 한 페이지에 걸쳐 소개해준다하셔서, 끄적끄적.


끄적끄적대놓은 글 모아둘 곳이란 역시 이곳밖에 없어서, ctrl+c, ctrl+v.


뭐, 실제로 출간된 책에 얼마나 어떻게 반영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괜한 설레발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써놓은 게 새삼스레 내 블로그를 소개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는데다가, 미야자키 하야오를 내가 왜

좋아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있는지라 일종의 팬레터라 치기로 한다.



“다른異 색깔彩을 지켜낼 자유”

제가 2008년 여름쯤부터 차곡차곡 특정 시간과 공간에 얽힌 글과 사진들을 쟁여 모으고 있는 작은 가상 공간(ytzsche.tistory.com)에 붙여놓은 이름이니까 일종의 ‘책제목’이라 해도 될 듯 합니다. 대학에 들어와서부터 줄곧 쓰다가 급기야 군대에 있을 때 전투모에도 단단히 오바로크쳤던 이채(異彩, ytzsche)라는 필명을 ‘여행 블로그’에 어울리게 살리려다 보니 조금 꿰어 맞춘 감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끔씩 새삼스런 눈으로 읽어보며 몸과 맘을 돌이켜보게 하는 효과는 있는 듯 하니 다행이랄까요. 여행은, 자꾸만 일상 속으로 녹아들어가 잔뜩 늘어지고 진부해지고 둥글둥글 남들과 닮아만 가게 되는 ‘어른병’을 멀리하기 위한 하나의 치유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 사진 속 ‘절대반지’를 구하러 이집트 룩소로 떠났던 이야기에서부터 서울 이태원 골목, 심지어 소소한 집 앞 골목에서의 이야기로 차츰 제 ‘여행기’를 제 ‘삶’의 이야기로 넓혀가고 싶습니다. 모든 게 낯설고 설레는 여행자의 눈과 마음을 지키면서, 그렇게 다른 색깔 異彩를 지켜내면서요.






‘센’의 세계와 ‘치히로’의 세계가 섞이는 곳

에도도쿄건축공원은 박물관 속 유물처럼 사람과 유리된 채 차갑게 식어버린 ‘민속촌’은 아니란 느낌이었습니다. 아마도 가마지기 영감의 손때가 반질반질 묻은 문구점의 빼곡한 서랍들하며, 녹은 슬었지만 금세라도 삐걱대며 달릴 듯 거리에 서있는 자전거 달구지, 치히로의 부모가 아니라 누구였대도 자리에 앉아 술을 한잔 청할 듯 사람의 온기가 풀풀 나던 주점까지. 하야오가 작품을 구상하며 이곳으로 자주 산책을 나왔던 것도 이곳의 그 묘한 분위기, 1900년대 어느 어간의 도쿄와 2010년의 도쿄가 마구 뒤섞인 채 만들어내는 새로운 느낌과 묘한 에너지에 자극받았던 건 아니었을까요. 웃는 얼굴이 아기같던 안내원 할아버지가 건넸던 바람개비를 공원 돌아다니는 내내 들고 다녔던 것도, 그리고 어느 나무엔가 바람개비를 꼽아두며 주렁주렁 열매맺길 기원했던 것도 모두 그곳이 ‘센’의 세계와 ‘치히로’의 세계가 섞여있는 마법같은 공간이라고 느꼈기 때문일 겁니다.



 

놓칠 수 없는 여행,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

사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은 늘 그런 식입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붕 떠서는 어딘가 낯익은 듯 하면서도 생전 처음 보는 시공간에 내려앉아 등장인물들과 어깨를 맞대게 만드는 마법인 거죠. 쌍발 수상비행기가 기관총을 쏘는 시기의 유럽인가 싶다가도 뭔가 낯설어지고, 근대 개화기 즈음의 일본인가 싶다가도 또 뭔가 낯설게 이지러져 있고. 어쩌면 그의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여행’을 하는 것처럼 느끼기도 합니다. 그가 열어주는 소리에 쫑긋 귀를 기울이고, 그가 보여주는 세상에 눈을 떼지 못하며, 그가 상상해낸 이야기에 가슴 두근거리며 잔뜩 설레고 마니까요. 모든 게 낯설고, 흥미롭고, 끝내는 감탄하게 만들어 모든 사람을 ‘여행자’로 변신시키는 그의 재주는 역시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요. 그가 상상해낸 세계로의 여행은, 그래서 여행자로 살기를 꿈꾸는 제게는 언제든 가슴 설레는 일입니다.

 

* 사실은 사진 한 장 더 넣고 싶던 게 있었는데, 이 것들이 전부 반영될지 아닐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 괜히

책에 누를 끼치는 건 아닐까 싶어 포기했던 게 있다. 누군가; 해맑게 바람개비를 들고 놀이터의 목마를 탄 채

흔들거리는 사진 하나. 하야오 영감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신주쿠에서 약 한시간 반 오다큐선 급행열차를 타고 도착한 하코네, 질좋은 온천과 일본식 전통 료칸으로 이름을

떨치는 곳이지만 등산열차, 케이블카, 로프웨이, 유람선 등등을 타며 한바퀴 돌아볼 수 있는 그 짙푸른 녹색의

자연이 품고 있는 미술관이나 아기자기한 사원들도 무지하게 매력적인, 어찌됐건 절대 놓칠 수 없는 곳이다.

그 곳 중에서도 '족탕'을 품고 있는 야외 정원으로 기억에 남는 '조각의 숲 미술관'.

등산열차로 '초코쿠노모리'역에 하차하고 백걸음도 채 안 걸어 매표소 입구에 도착했다. 일반 1600엔, 그렇게

싸다고는 할 수 없는 입장료인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굳이 하코네에 와서 여길 돌아보고 싶었던 이유는 딱 두개.

피카소 작품이 많이 소장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족탕'이 있어 지친 발을 잠시 쉬어갈 수 있겠다는 나름의 안배.

입장권을 끊고 들어서는 길은 에스컬레이터로 조금 내려가는 길, 하코네 자체가 산에 기대어 경사가 급격한

동네이기도 하니까 미술관도 너른 부지를 마련하려면 좀 아랫턱으로 내려가야 하나보다.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와 굴다리를 지나면, 시꺼먼 그늘과 새하얀 햇살이 극명하게 대비를 이루는 풍경. 너무

갑작스레 공기가 바뀌고 밝기가 바뀌니까 약간 어리버리해진다. 이상한 나라에 끌려들어온 앨리스의 느낌이랄까.

사실 '이상한 나라'라고 번역해 놓은 건 어폐가 있다. 'Wonderland', 놀라운 나라라면 모를까, 이상하다는 표현은

정상적인 것은 이런 거라는 전제가 숨어있는 셈이다. 사람 열명쯤 덮고 잘 수 있을 만큼 커다란 계란 후라이들이

공원 곳곳에 이렇게 철푸덕 떨어져있다면, 이상한 나라일까 놀라운 나라일까.

커다란 머리가 분수대에 뉘어져 있기도 했다, 온통 싱그러운 초록색의 가짜 잎사귀 화환을 한 채.

조금 올라서는 계단길, 뱀이 몸을 구불거리며 나아가듯 유연하고 정연하게 구불대는 계단 손잡이가 재밌다.

그리고 빨주노초파남보의 프레임들이 네모난 무지개를 만들고 있기도 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어서

보는 각도에 따라 완전히 중첩되기도, 혹은 약간씩 서로의 몸을 잡아먹으면서.

네모난 무지개 옆으로는 커다란 몸집의 소가 커다랗게 불어난 젖통을 드러낸 채 띠굴띠굴.

어른 대표선수의 목을 두 발로 힘껏 조르고 있는 아이 대표선수. 불끈 튀어나온 어른 선수의 두 눈이 극렬한

고통을 맛보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는 듯.
꽤나 커다란 '조각의 숲', 색색깔의 목마도 품고 있고, 너트처럼 생긴 조형물들도 여기저기 흐트러진 듯

설치되어 있고. 그렇게 애기들이나 아이들이 만지고 타고 기어들어가며 놀이터처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어느 사거리길 한가운데, 커다랗고 반짝거리는 금속공이 매달려있었다. 내가 지나온 뒷길을 계속 비쳐주던

금속공이었지만 그 아랫춤까지 바싹 다가가서 올려다보니 사거리길 사방을 모두 펼쳐내어 준다.

조각의 숲 미술관에서 중심부에 해당하는 건 바로 이 별 모양의 정원, 미술관 입구에는 챙긴 지도의 그림으로

봤을 때는 그냥 별 모양으로 다듬어놓은 정원이겠거니 했는데. 실제로 보니까 저렇게 깊숙이 차라리 통로라고

해야할 만큼 미로처럼 길을 내놓았다.

입구도 있어서 정원 안으로 들어가 거닐어 볼 수도 있었는데, 이건 정원의 꽃들을 굽어보며 맘편히 산책하는

느낌이 아니라, 어딘가에 숨어있는 치즈를 찾아 헤매며 '내 치즈는 누가 옮겼을까' 정도를 중얼거릴 법한

그런 미로에서 헤메이는 느낌이다.

별 모양의 정원 옆에는 또, 통나무들을 얼기설기 이어만든 커다란 둥지 같은 것이 있었다. 저건 뭐지, 뭔가

얼음덩어리를 쌓아서 만든 이글루를 흉내낸 통나무 버전 이글루같기도 하고, 새들이 지푸라기를 물고 와서

짓는 둥지를 인간 사이즈에 맞춰서 지어놓은 것 같기도 하고.

아이들이 완전 좋아라 하던, 내부는 마치 에일리언이 잔뜩 알을 까놓은 오염된 우주선의 느낌. 여기저기

축축 늘어진 에일리언 알같은 놀이공들을 향해 원투 잽을 날리는 여자아이의 스텝이며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제법 짙은 그늘을 드리운 이 곳에서 어른들은 조금 쉬고, 아이들은 권투를 익히고 있었다.

그야말로 얼기설기, 이런 거 설계하기도 쉽지 않았겠다 싶다. 뭔가 나름의 규칙이 있었을 테고 그것만 알면

지어나가기는 생각보다 수월할지도 모르지만, 애초에 통나무를 이런 식으로 쌓아올려서 뭔가를 커다랗게

지어서 사람들을 들여보내 놀게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예전에 다방에서 하릴없이 쌓아올렸다는 육각성냥갑 속

성냥들의 탑쌓기와는 차원이 다른 거다.

그리고 피카소. 이 곳에서 피카소 관은 마치 가장 소중한 것을 깊숙이 숨겨놓듯 미술관 맨 안쪽에 위치해 있다.

피카소의 드로잉, 조각, 도예 같은 작품들 300여점이 소장되어 있는 이 곳에 가까이 다가가니 뭐랄까, 명당의

느낌. 사방을 산들이 삐쭉삐쭉 호위하며 에워싸고 있고, 미술관 전체 부지를 출렁이던 구릉도 피카소 관 앞에서

잘 다려진 와이셔츠처럼 판판하게 펼쳐졌다.

들어가는 길, 이미 나는 무지개가 뜬 아래 귀여운 우산이 장식되어 있는 우산꽂이에서부터 감탄하고 말았다.

내부는 사진촬영금지, 그래도 2층 전시관으로 올라가는 길에 푸르스름하게 정돈된 햇살을 내어놓는 스테인드

글라스가 너무 이뻐서 한 장 찍고 말았다.

피카소 관에서 나오니 바로 앞에 있는 건 '심포니 조각'. 저 커다란 탑 하나가 고스란히 작품인데 내부로

들어가면 타워를 에워싼 스테인드글라스 조각으로부터 번져들어오는 빛깔의 향연에 감탄하고 만다.

그리고 바로 그 탑을 바라보며 쉴 수 있는 위치, 그곳이 바로 그토록 궁금해 마지 않던 '족탕'이 있는 곳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맨발벗은 두 발을 탕에 담근 채 앉아서 쉬고 있었지만, 그래도 드문드문 빈 자리가 많아

쉽게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양말을 벗고 발을 살짝 물에 담궜더니, 너무 뜨겁지도 않고 싱겁지도 않은 그런 온도다. 따스하게 물이 발을

보듬어주는 정도의 온도. 뒷목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발끝에서부터 찌릿찌릿 전해졌다. 십여분 앉아서 앞의

미술품들도 하나하나 눈으로 좇아보고 주위 여행자들도 구경하다 보니 금세 땀도 식어버리고 완전 기운을

회복해서 벌떡 일어날 수 있었다. 정말 강추. 야외 족탕을, 이런 야외 미술관을 거닐다가 중간쯤 잠시 쉬며

체험해 볼 수 있다는 건 흔치 않은 데다가 굉장히 절실하기도 한 경험.

어떻게 보자면 서울에 있는 올림픽공원이랑 비슷하기도 하다. 자유로이 들어갈 수 있는 잔디밭에 심심치 않게

세워져 있는 온갖 예술품들, 어렸을 적 올림픽 공원에 소풍을 가고 사생대회를 가고 백일장을 가고 또 소풍을

가고 했을 때에는 '출입금지' 표지판이 있거나 말거나 잔디밭 깊숙이 들어가서 조형물들을 막 타고 놀고

그랬었는데. 이제는 저런 벤치에 앉아 조금은 차분하게 쉬고 싶은 맘이 더 커져버렸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풀밭에 뒹굴고 있는 조각 사람을 보면 괜히 나도 같이 옆에 가서 똑같은 자세로 엎드리고

싶고, 그게 안된다면 이렇게 똥침이라도 놔주고 싶고. 아직은 그런 맘이 욱씬욱씬.

앗. 이 녀석은 현대미술관에서도 봤었는데, 그때 설명해주던 도슨트가 굉장히 비싼 작품이라며 무지무지 뿌듯해

하던 게 기억에 남아있다. 거대한 신체, 어딘지 일그러진 채 뮐렌도르프의 비너스를 떠올리게 만들던 그것.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뮐렌도르프의 비너스가 현대 사회에 살면서 힐을 신고 핸드백을 든 느낌.

숲 가장자리에 슬어있는 벌레들 알뭉치 같기도 하고, 칭칭 감긴 거미줄 같기도 한 이것, 완전 아이들이 좋아죽는

또다른 놀이 공간이다. 어렸을 적 꿈꿔보던 그런 스릴넘치고 아드레날린 쭉쭉 분비되는, 좁은 통로를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며 불쑥불쑥 예기치 않은 곳에서 고개를 내미는 그런 반투명한 공간.

어느새 잔뜩 커져버린 내 몸뚱이에는 가혹하게 작은 구멍과 통로 공간을 원망하다가, 사실은 어느새 저런 곳에

들어가 와와 소리지르며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기엔 '쪽팔림'을 알아버린 스스로를 원망하다가, 옆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우리, 제로나 할까.

그렇지만 난 군대도 현역으로 제대한 신체건강하고 정신멀쩡한 이땅의 성인남성. 얼굴 따위 붙어있지도 않은

두 팔모가지가 권해오는 제로 게임보다는 이런 남녀 신체의 향연이 훨씬 좋단 말이다. 와우.

삼각대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다가, 문득 삼각대 다리 한쪽에 꽃대궁이가 낑겨 있는 걸 발견하고 깜짝 놀랬다.

어디서부터 따라나섰는지 모르겠지만 새하얀 꽃잎의 부드러운 색감도 그렇고 나풀거리는 모양새도 그렇고

너무 청초해 보인다.

돌아나오는 길, 그래, 아까는 오른쪽의 좀더 각진 문으로 이 '조각의 숲 미술관'에 들어왔댔다. 이번에 나가는

문은 좀더 둥그렇고 좁은 문. 들어오는 문과 나오는 문이 같을 필요도, 그 모양이 같아야 한다는 법도 없는데

이런 식으로 입구와 출구가 다른 것도, 모양새가 다른 것도 신선하기만 하다.

독일의 캐릭터던가, 왜 그 엑스자 모양의 입을 가진 과묵한 토끼인형 미피(Miffy)전도 특별전의 형식으로

하고 있었다.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옆에서 방문자들을 배웅해주던 스탠드로 변신한 미피. 참 뭐랄까, 끝까지

재미있게 해주는구나 싶었다.

* '조각의 숲 미술관' 지도.




에비스(EVISU)는 일본의 칠복신 가운데 하나, 낚싯대와 월척을 끌어안은 모습으로 나타나듯 원래는 어촌에서

풍어를 기원하던 신이었지만 점차 시장의 신이자 복의 신으로 섬겨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에비스의 이름을

따서 '에비스'란 맥주가 생겼고, 그 맥주공장이 세워진 곳에 '에비스'란 지명이 붙고, '에비스역'이란 역이 생겼다니

꽤나 강력한 신인 건 틀림없겠다.

에비스 역에서 에비스 가든플레이스까지는 사실 그렇게 멀지 않아 금방 걸어갈 수 있지만, 역에서 나와서 반대

방향으로 걷다보면 지구한바퀴를 걸어야 도착할 수 있을 거다. 중간에 알아채서 돌아왔기에 망정이지, 어쨌든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 타워 앞에 섰다.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타워의 별명은 '거품 경제의 상징탑'이란다. 일본의 경제가 한창 잘 나가던 1990년대 중반

에비스 맥주 공장을 철거하고 세웠다는 이곳, 공장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에비스 맥주기념관은 남아서 시음을

할 수 있다. 비록 공짜는 아니라 하고, 딱히 에비스 맥주에 대한 충성도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맥주를

공장이나 기념관에서 맛보는 건 가능한 최상의 것을 맛볼 수 있는 기회. 후쿠오카의 아사히맥주공장에서도 그랬다.

* 참고 : [후쿠오카] "첫잔은 슈퍼 드라이로" - 아사히맥주공장의 무한정 맥주리필.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는 왠지 이화여대의 아트 하우스 모모를 살짝 떠오르게 한다. 딱히 외관에서 분명한

유사점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공간 배치가 똑 떨어지게 비슷하다 싶은 것도 아닌데 왠지 분위기가

비슷하달까. 경사가 있는 넓은 길 양편으로 녹색 정원이 배치되어 있다거나 정면에 고풍스런 유럽식 건물이

보인다거나 하는 점이 그런 거 같다.

길을 따라 내려가니 바로 화살표가 눈에 띈다. 화살표를 따라 걷다보면 바로 눈앞에 보이는 에비스 맥주 기념관의

입구. 사실 '에비스'라고 해야 할지 '에비수'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치만 '에비수'보다는 '에비스'가

왠지 맥주 이름으로는 훨씬 깔끔하고 세련된 느낌으로 맞아떨어지는 거 같다.

아마도 에비스 맥주를 처음 만들어낸 사람의 동상인 듯. 붉은 벽돌로 그럴듯하게 안배된 공간에 시퍼렇게

녹슨 동상이랑 초록빛 풀떼기들이 멋진 보색을 이루고 있다.

둥글게 만들어진 자동문 안에서부터 에비스 맥주기념관 이름이 큼지막하게 박혀 있다. 슬쩍 자동문 앞에 섰다가

문이 감지해서 열린 사이에 사진 한 장.

맥주박물관 안내팜플렛은 일본어, 영어, 그리고 중국어와 한글 버전으로 준비되어 있다.

* 참고 : 도쿄도 시부야구 에비스의 에비스역 에비스가든플레이스 내 '에비스 맥주기념관'.

가운데에서 황금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맥주 양조통. 그리고 오른켠에서 에비스 맥주 캔으로 만들어놓은 커다란

에비스 맥주 캔의 형상. 뒤로는 칠복신 '에비스'가 보인다. 뭔가 세련되면서도 화려한 조명 덕분인지 벌써부터

맥주가 땡기기 시작했다. 사실 에비스는 국내에서 맛보기는 쉽지 않은 맥주 중 하나인 거다.

공장이 철거되고 조그맣게 남은 공간인 여기에서는 더이상 맥주를 만들고는 있지 않으니, 이전 에비스 공장의

자취와 에비스 맥주의 역사를 돌아보는 게 주된 관람의 포인트. 이전 공장은 이렇게 생겼었구나 싶다.

에비스는 1887년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맥주, 독일 양조 기술을 빌어 탄생했다고 한다. 이건 1893년에 새롭게

바뀐 라벨 디자인을 붙이고 생산된 에비스 병맥주.

에비스 맥주를 선전하던 당대의 광고 이미지들인 듯. 선명한 색감도 이쁘지만 에비스 맥주잔을 들고 있는

에비스신의 복스럽고 귀여운 자태가 시선을 붙잡는다.

아마도 에비스만의 문제는 아니었겠지만, 초기의 병맥주는 와인처럼 코르크 마개로 닫혀 있었나보다.

와인따개와 비슷하게 생긴 병따개와 함께 진열된 1900년대 초의 에비스 맥주. 근데 맥주병은 처음부터

갈색으로 시작했구나. 산화를 막기 위해서라곤 하지만,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다양한 색깔로 시험해본

역사가 있다면 지금 돌아보기에 꽤나 흥미로웠을 텐데.

그리고 어느 순간 현재의 병마개와 비슷하게 오톨도톨한 아귀로 꽉 병주둥이를 움켜막고 있는 마개가 사용되고

그걸 따기 위해 현재와 비슷한 모양의 병따개가 필요해졌을 것. 병따개 모양은 아직은 클래식하지만 말이다.

병맥주보다는 이런 나무통에 담긴 채 더 많이 팔리지 않았을까. 아무래도 병에 담기면 훨씬 맥주값이 높았을 테니.

무려 1946ml가 들어가는 왕 댓병. 거의 2000씨씨짜리 생맥주 피처에 맞먹는 용량이 들어가는 병이란 얘기렸다.

에비스를 광고했던 알흠다운 아가씨 모델 그림들. 제법 섹시한 분위기도 우러나오고, 포즈나 표정이 자못 도발적인

것이, 오늘날 광고랑 조금 비슷한 면이 있다. 대체 이렇게 아리따운 아가씨가 맥주잔을 드는 거랑 아가씨들

벗겨놓는 거랑 맥주 맛이랑 무슨 상관이지 싶게 만드는 것 역시.

에비스 맥주 박스에 그려진 에비스 신 영감. 아주 제대로 커다래서 사람몸통만한 사이즈의 물고기 한마리를

므흣한 표정으로 누르고 있다.

에비스 광고음악이 흘러나오는 오르골, 태엽을 잔뜩 감아올렸다가 풀어놓으면 저렇게 구멍뚫린 종이를

뱉어내면서 노래소리를 흘렸을 텐데, 실제 들어볼 수는 없어서 아쉬웠다는.

초기 에비스 공장, 그리고 에비스를 팔던 술집의 전경. 사람 키만한 나무드럼통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공장에선

맥주 냄새가 하루종일 풀풀 풍겼을 텐데. 근처 주민들은 꽤나 행복했을 거 같다.

박물관에 전시된 것들을 돌아보고, 드디어 고대하던 순간. 시음장에서 맥주를 마시려 했는데 가이드북에

나와있던 '4잔 세트'가 없다. 각기 다른 네 가지 맛의 맥주를 모두 맛볼 수 있다는 그 세트가 정말 없어져

버린 건지 직원에게 확인을 했더니, 올초쯤에 없어져버렸다고 했다. 2009년 7월에 개정된 가이드북이니

반영되지 않았겠지만, 사실 가이드북의 에러보다 화나는 건 없어져버린 4잔 세트.

자동판매기를 이용해서 '에비스 코인'을 두개 뽑았다. 코인 하나에 400엔, 맥주 한잔 가격이다.

자동판매기에 엔화를 넣고 코인을 뽑아서 시음장에 건네는 시스템인 거다. 아사히 공장같은 경우는 무료에다가

30분간 무한리필이 가능했던 시음장이었는데, 여긴 제법 정가를 다 받는 유료라니 괜히 조금 억울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역시, 에비스의 이름을 걸고 파는 맥주겠거니 하고 두근두근.

크리미한 거품과 쌉쌀하고 진한 맥주맛이 꽤나 좋았던 에비스 스타우트 한잔, 그리고 그에 딸린 잔받침.

가볍고 톡 쏘면서도 굉장히 시원했던 에비스 프리미엄 한잔, 그리고 또 그에 맞는 잔받침.

시음장 한 옆에 붙어있던, 아마도 공장이 여기 있던 시절에 쓰였던 것 같은 압력 밸브.

맥주를 맛있게 마시는 건 한모금한모금을 비슷한 만큼만 마시며 한 잔을 비우는 것. 에비스 스타우트의 경우,

크림이 이렇게 궤적을 남기기에 맛있게 맥주먹는 법을 연습하기가 수월했다.


맥주 한 잔을 마시고 나니 살짝 아프던 다리도 씻은 듯이 펄펄한 기운이 샘솟았고, 다소 느지근해졌던 심장도

활기차게 펌프질을 시작했다. 더불어 좀더 반짝반짝거리는 에비스 맥주기념관의 실내 공간.

심플한 화장실 표지도 새삼스레 눈에 들어오고,

아까 놓쳤던 가이드 투어 시간표도 새삼스레 눈에 띈다. 30분 간격으로 시작되는 가이드 투어는 참가비가

500엔, 그리고 한바퀴 기념관을 둘러보며 전시 물품들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시음장에서 에비스 맥주를

블라인드 테이스팅하는 것으로 끝마치는 것 같다.

돌아나오는 길, 에비스 맥주기념관 스탬프가 있어서 하나 찍어주고 돌아섰다. 에비스 신 녀석 참 복스럽기도 하다.

돌아나오는데 에비스 가든플레이스에 있는 사포로 비어 스테이션도 보인다. 여기도 뭔가 삿포로 맥주를 맛보고

과정을 견학할 수 있는 곳인가 했는데, 딱히 그런 것은 아니고 그냥 삿포로 맥주를 파는 곳인 거 같아서 스킵.

주상복합 건물이라는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 내부에도 볼 만한 게 이것저것 있다는 거 같았지만, 아이쇼핑은

하라주쿠와 신주쿠에서 하려고 그냥 돌아서기로 했다. 사실 에비스 맥주기념관에서 의외로 많이 걸었는지

다리가 살짝 아픈 탓도 있었다.





기치조지역에서 지브리 스튜디오, 산책로를 지나 미타카역으로. 미타카역 근처에 '에도도쿄건축공원'이 있으리라

생각했던 건 가이드북에서 '기치조지/나카노' 지역으로 묶인 곳에 지브리 스튜디오랑 같이 묶여있어서 지레

그렇게 오해했던 거지만, 사실은 꽤나 멀다. JR 추오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움직여야 하는데 대략 삼십분.

미타카역에서 JR 추오선을 타고 '무사시고가네이(武藏小金井)'역에 내려 버스를 잡아타야 한다.

가이드북('클로즈업 도쿄')의 설명을 그대로 따오자면,

"JR 추오선 무사시고가네이武藏小金井 역 하차. 북쪽 출구 北口의 개찰구를 나와 오른쪽으로 10m쯤 가면 육교가 있다. 육교를 건너면 바로 밑에 버스 정류장이 있는데, 2/3번 정류장에서 세이부西武 버스를 타고 5번째 정거장인 고가네이코엔니시구치小金井公園西口에서 내린다(170엔, 5분). 버스 진행 방향 뒤쪽의 횡단보도를 건너 고가네이공원 안으로 들어가면 에도도쿄건축공원의 표지판이 보인다. 도보 7분"

무슨 보물찾기 하는 기분으로 지령을 따랐다.

무사시고가네이武藏小金井 역에서 버스정류장은 쉽게 찾았다. 버스정류장에서 하야오가 그려 공원에 선사했다는

그 애벌레 캐릭터가 굼실대고 있었다. 그리고 다섯번째, 고가네이코엔니시구치小金井公園西口 역도 보였다.

글자로 써진 걸 읽으면 머릿속이 온통 굼실굼실해지는 느낌이었는데, 일단 믿고 따라나서니 생각보다 쉽다.

그렇지만 역시 멋도 모르고 그냥 찾아나서긴 쉽지 않겠다, 생각보다 여기까지 찾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후쿠오카에서도 그랬지만, 일본의 교통 체계는 참 정확하다. 몇시 몇분에 정류장에 도착할지를 저렇게

명기해 두다니. 손님과의 약속이기도 하고, 본인과의 약속이기도 하렸다. 일상 생활을 하면서 뭔가 예측가능한

스케줄을 원한다면 저런 명확한 시간표가 있음 정말 좋을 듯. 정말 일분의 오차도 없이 도착한 버스.

다섯 정거장이라 그냥 서 있었다. 하차벨에 적힌 꼬불꼬불한 히라가나를 눈을 붙잡았다. 올해 초에 그래도

일본어 공부 좀 해본다며 아침에 일찍 일어나 수업도 듣고 그랬는데, 히라가나 외우려다 포기해버렸댔다.

쓰는 건 참 이쁘긴 한데, 글자에 무슨 규칙도 없고 무조건 외우고 봐야 하다니 원. 그 법칙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외운 후에 일본어 문법을 따르면 될 텐데, 그 법칙 자체를 수용하질 못하겠다. 넘 자의적이란 느낌.

하기야 한국어도 마찬가지지만, 어려서 생각없을 때 일단 틀을 받아들이고 말았으니. 외국어 못 해먹겠다. 쳇.

굳이 가이드북의 설명을 한단어 한단어 유심히 살필 필요도 없었다. 다섯 번째 정류장에서 내리니 사방에서

화살표가 그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애벌레녀석도 사방에서 슬금슬금.

가는 길에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만들 때 여기로 자주

산책을 왔다더만, 여기까지 걸어온 걸까 싶다. 한적하고 조용한 게 산책하기 좋긴 하겠지만, 이건 아무래도

지브리 스튜디오에서부터는 넘 멀다.

고가네이코엔小金井公園은 에도시대부터 벚꽃으로 유명하던 곳이라 한다. 울창한 나무들이 뜨거운 도쿄의

햇살을 온몸으로 가려주며 시원한 바람의 냉기를 보존하고 있었다. 에도도쿄전축공원은 이 고가네이코엔의

안에 있는 또다른 공원. 공원 속의 공원인 셈이다.

에도도쿄건축공원의 입구. 입장료가 없는 고가네이코엔小金井公園 내의 테마공원인 셈이니 빈틈없이 둘러쳐진

울타리 윤곽선이 두드러졌다.

공원의 내부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그 배경이 모여있는 에도도쿄건축공원.

건축공원을 돌아보고 나와서 기념품 샵에서 발견한 사진들. 왼쪽의 저 사람은 하야오, 맞는 거 같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얼굴없는 요괴, 가오나시'다. 이거 그림이나 합성이 아니라 실제로 찍은 거 같은데, 대단하다.

이렇게 무슨 코스프레하듯 가오나시 복장을 입고 돌아다니면, 지브리 스튜디오나 여기 에도도교건축공원이나

모두 무료통과는 물론이고 꽤나 환대받지 않았을까. 일본 사람들의 따뜻한 환대를 온몸에 받았을지도. 나도 담엔.

하야오가 선사한 에도도쿄건축공원의 마스코트인 애벌레 녀석도 기념품 인형으로 이렇게 팔고 있었고,

그 밖에, 이런 귀여운 고양이 인형들도 왜인지 팔고 있었다. 건축공원하고는 그다지 상관없는 듯 한데.

캐릭터를 이렇게 치밀하게 이용하는 그 아이디어가 넘 좋은 거다. 모처럼 하야오가 만들어준 캐릭터를 그냥

썩히는 게 아니라, 기념품샵 봉투에도 넣고, 그 봉투를 봉하는 테이프에도 넣고. 감탄해 버렸다.

에도도쿄건축공원을 나서는데, 눈앞의 잔디밭이 온통 꺼뭇꺼뭇하다. 뭔가 했더니 모두 까마귀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왔던 마녀도 아침이 되면 까마귀로 변신해 성을 떠나고는 했다.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길, 한번 왔던 길을 다시 가는 건 참 쉽다. 대충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어디서 길을

건너거나 방향을 꺽어야 할지도 대략의 감이 오는 거다. 그러면 주변이 보인다. 눈앞을 새하얗게 만드는 햇살에

뽀송뽀송 말라가는 사이좋은 빨래들 같은 것도.

버스 정류장. 오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비록 오는 길이 제법 솔찮이 시간도 걸리고, 교통비도 적잖이 들어가는

건 사실이지만, 도쿄까지 왔는데 교통비 몇 푼 아낀다고 여길 스킵하는 건 좀 아닌 듯. 게다가 여기저기 인증샷만

남기고 떠나는 여행을 원하는 게 아니라면,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세상을 동경한다면.

에도도쿄건축공원의 맵. 서쪽존까지도 돌아볼 걸, 하는 생각이 없진 않지만 동쪽 존만으로도 넘 많은 것들을

보고 말았다. 하야오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느낌을 가득 받아 올 수 있었던 공원.

가이드북 말고 공원 팜플렛에서 발견한 또다른 루트. 참고하면 좋을 거 같다.






@ 도쿄, 편의점

@ 도쿄, 하라주쿠
@ 도쿄, 신주쿠

@ 도쿄, 미타카역 인근
@ 도쿄, 하라주쿠
@ 도쿄, 편의점.
@ 도쿄, 기치조지역
@ 도쿄, 미타카역에서 사서

@ 도쿄, 에도도쿄건축공원에서 먹다.

@ 도쿄, 지하철 자판기

@ 도쿄, 편의점
@ 도쿄, 에비스 맥주박물관

@ 도쿄, 츠키지 시장

@ 하코네

@ 하코네, 자판기

@ 하코네, 유황온천 달걀과 아이스크림

@ 하코네

@ 도쿄, 아키하바라

@ 도쿄, 우에노









"프랑스의 파리, 미국의 뉴욕, 한국의 (서울도 아니고) 홍대앞'으로 비견해 놓은 일본 도쿄의 하라주쿠. 글쎄,

다른 건 그렇다 쳐도 한국의 홍대 앞과 비교하는 건 조금 아닌 거 같다. 홍대 앞보다 훨씬 밀도 높고 넓은 규모로

번져 있는 하라주쿠의 스타일리시한 상점가들을 직접 보았다면 말이다.

하라주쿠의 대표적인 패션스트리트라고 할 캣스트리트와 메이지도리만 따라 쉼없이 걸어도 반나절이 훌쩍

가는데다가, 계속해서 뭔가 들어가 보고 싶은 샵들이 눈앞에 튀어나오는 거다. 대로 이외에 골목들에는

개성넘치게 입은 일본 사람들이 왠지 껄렁대며 걷고 있고, 차들도 골목에는 다니지 않아서 정신빼놓고

사방을 두리번대며 걷기에 딱 좋다.

한 쪽에는 명품 샵들이 차도를 사이에 두고 이열 횡대로 늘어서 있기도 하지만, 또 이런 처음 보는 간식거리들을

파는 가게들도 그 와중에 점점이 박혀있곤 했다. 아이스크림 도넛이랄까, 아이스크림이 케잌을 도넛모양으로

만들어선 화이트초콜렛으로 껍데기를 얇게 입힌 건데 가게 건물의 치장부터 남달라서 확 눈에 띄었었다.


조만간 한국에도 상륙하지 않을까, 일본에서 이제 막 생겨난듯한 아이템이니 대충 일본의 반응을 살핀 후에

되겠다 싶으면 1, 2년 내로 한국에서 볼 수도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난 꽤 맛있게 먹었는지라.

중절모 샵이 꽤나 많아서 나도 하나 사서 써볼까 싶어 돌아보았다가, 중절모 대신 속눈썹을 요렇게 단정하게

붙이고 눈을 살포시 내리깔고 있는 마네킹에 정작 시선이 가고 말았다.

샵들 앞에 세팅되어 있는 이런 소품들도 참 아기자기하다. 뭐, 그러고 보면 전반적인 분위기는 홍대에서 많이

좇으려 하는 그런 거 맞긴 하지만 여긴 조금 걷다보면 금세 벗어나버릴만큼 그렇게 작은 지역이 아니란 거.

말하자면 홍대앞과 신촌과 이대 앞과 효자동과 삼청동과 신사동 가로수길 정도를 한군데로 합쳐놔야 그

복작복작한 분위기와 커다란 규모가 만들어내는 다채로움이 느껴지지 않을까.

신기한 모양의 백팩. 괴롭히거나 시비거는 녀석이 있으면 가방을 한 손에 꼬나쥐고 마구 휘두르면 전부 쓰러지고

말 거다. 저런 가방 하나 있으면 교실 내에서 군림하는 건 시간문제.

외국을 여행하면서 이런 섹스샵, 콘돔샵을 둘러보는 건 나름 흥미로운 기회. 더구나 여긴 망가의 나라 일본이니까.

기대했던 대로 온갖 신기한 것들이 조그마한 샵을 무색하게 그득그득 차 있었지만, 아쉽게도 사진촬영 불가라

그저 머릿속에 넣고 오기만 했다는. 주머니 속에는 넣지 않았다.

그렇게 오모테산도 역에서 JR하라주쿠 역까지 반나절이 넘도록 돌아다니며 밥먹고 음료수 마시고 간식먹고

구경하고 써보고 하던 발걸음이 이윽고 멈췄다.
도쿄타워가 있는 야경, 모리타워에서 보는 게 최고. 에서 이미 보았던 그 야경,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은 사람을

위한 안내도. 도쿄 타워를 기준으로 어디가 어디에 해당하는지, 빌딩들 하나하나에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내게 와서 꽃이 될지도.






선토리 프리미엄, 지인들로부터 정말 맛있는 맥주다, 한국에 아직 안 들어왔지만 들어오면

꼭 먹어봐라, 강남 일부 맥주집에서만 파는데 한 잔에 만오천원이더라, 같은 온갖 이야기를

듣고 있던 차였다.


도쿄로 여행가서 하루에 아무리 적어도 한 캔씩은 꼬박꼬박 마셔준 '선토리 프리미엄', 정말

그런 호들갑이 하나도 과하지 않다 싶을 만큼의 굉장한 맛이었다. 쌉쌀하면서도 시원하고,

맛이 진하면서도 상큼한 느낌이랄까.

첨 보는 맥주를 먹고 이렇게 감동하기는 참 오랜만. 첫날에는 이 대단한 맥주, 선토리

프리미엄과 에비스니 아사히니 다른 캔맥주를 함께 한 캔씩 사서 마셔봤지만 다음날부터는

무조건 선토리만 샀다.


이런 맥주, 왜 한국에선 못 만드는 거지 했는데, 이유가 있었다. 한국에선 '맥주'라고 정의되는

술의 범주가 굉장히 협소하고 제조 과정도 까다롭게 제한되어 있어서 홉이나 밀의 비율을

다양하게 조정하며 맥주를 만드는 게 불가능하다고 한다. 게다가 맥주를 만들려면 확보되어야

하는 최소한의 용량도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가 꽤나 엄격하고 큰 편이라고 한다. 그래서

가내수공업처럼 조금씩 만드는 맥주도가가 없다는 것.


에라 모르겠고, 선토리 프리미엄이 어서 한국에 수입이나 되었으면 좋겠다는 1人. 정말 최고.



일본 애니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제작할 당시 산책하러 즐겨 찾던 에도도쿄건축공원.

도쿄 시내에서 옮겨온 27채의 20세기 전후반 건물들이 대충 동쪽 구역과 서쪽 구역으로 나뉘어 산재해 있는데,

대충 동쪽 구역은 서민들의 생활상이 그대로 보이는 건물들이 모여 있다. 역시나, 하야오가 애니메이션에 주로

차용한 배경들도 동쪽 구역의 건물들. 치히로의 부모가 돼지로 변한 식당, 센의 숙소와 일터인 목욕탕, 그리고

가마지이가 목욕탕 약초물을 달이던 방, 센이 바다를 건널 때 탔던 열차까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지브리 스튜디오와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라 하야오가 산책삼아 왔다갔다 할 수 있었다곤 하지만, 사실 부실하게

소개된 가이드북만 따라 오기에는 좀 무리가 있는 여정이었던 것도 사실. 관리동에서 입장권을 끊으면서 여기까지

오로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이 되었던 건물들을 직접 보겠다며 꾸역꾸역 찾아온 스스로에게 감탄하고

말았다. 입장료는 400엔.

에도도쿄건축공원의 마스코트라고 할 수 있는 이 애벌레는 다름아닌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들어낸 캐릭터라고

한다. 참 복받은 공원이다. 에도도쿄건축공원에 찾아올 수 있는 쉬운 방법은 이 미타카역에서부터 이 캐릭터가

그려진 버스 정류장을 찾아 캐릭터가 그려진 버스를 타고 캐릭터가 많이 그려진 즈음에서 내리는 것. 그렇게

도착한 '고가네이(小金井)공원' 안에 위치한 에도도쿄건축공원을 찾는 것 역시 캐릭터를 찾아나서기.

입장권을 확인한 후 실외로 다시 나서는 길, 건축공원 안내팜플렛이 세 종류로 비치되어 있었다. 영어, 중국어,

그리고 한국어/조선말 버전. '에도도쿄건조물원'이란 건 한국어라기보단 조선말에 더 가까운 표현인 거 같은데.

하얀 햇살이 쏟아지는 밖으로 나섰다. 커다란 안내판 옆에서 길안내를 도와주시던 할아버지 한 분이 친근하게

다가서선 안내판 위에서 푸닥대며 돌고 있던 바람개비를 하나 선물해 주셨다.

중앙구역에는 유명한 역사적 인물들의 생가나 관련 건물들이 복원되어 있었다. 짧고 단호하게 끊겨진 일본

전통 가옥의 처마는 볼 때마다 나름의 미감이 떠오른다. 여기 건물들은 모두 실제로 사람이 살던 건물들, 도쿄가

쉼없이 개발되고 발전해나가면서 밀려나가고 지워지기 마련인 옛 가옥들을 옮겨둔 것이라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민속촌 같은 곳에서 느껴지곤 하는 휑하고 선뜻한 기분은 덜한 거 같다.

건물 안에 들어갈 때는 신발을 벗고 미리 받았던 비닐봉투에 신발을 담아 들고 가야 한다. 건물마다 자리를 잡고

마치 터줏대감같은 포스로 건물에 얽힌 이야기나 설명등을 해주시는 (듯한) 자원봉사자 할아버지들이 정다웠지만,

아쉽게도 일본어는 '와까리마셍' 정도나 읊조리는 앵무새인지라 그분들이 숨겨둔 이야기 대신 창 밖 경치만

열심히 보았다. 좋네 뭐.

일본, 도쿄에서는 까마귀를 꽤나 쉽게 볼 수 있는 것 같다. 하라주쿠의 메이지신궁에서도 그랬지만 여기서도

까마귀들이 떼지어 날아다니고 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단순히 옛 건물들만 집결시켜 둔 것이 아니라

주변 풍광까지 고려하고 이렇게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배경까지 안배하여 보존해 둔 공원이니, 모이는 게 비단

까마귀만은 아닐 것 같기도 하다.

고풍스런 가로등이 듬직한 발톱을 한껏 드러낸 네 발로 땅거죽을 움켜쥐고 있었다. 이것도 그 언젠가의

도쿄 거리를 밝혔던 가로등인 걸까. 저런 가로등이 비추는 거리라면, 운치가 1.2배쯤 상승할 듯.

계속해서 동쪽 구역으로 가는 중이다. 공원이 생각보다 커서 동쪽 구역만 돌아보고 나와도 다리 꽤나 아프겠다

싶은 정도의 규모랄까. 이런 하천도 품고 있으니. 하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는데, 문득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가 괴이쩍은 터널 안에서 불어오는 바람 같은 게 한 줄기 불어왔다. 풍경이 흔들렸다.

그리고 덜컥 등장한 기차. 어이, 이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스토리 라인하고는 좀 다르다구. 노란색깔이

어울리는 건 솜털 보송한 유치원 꼬맹이들 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열차도 의외로 잘 어울린다. 애니 속에서

나왔던 열차도 물론 노란색이긴 했지만, 애니 속 열차와 비스무레한 것이 이렇게 전시되어 있으니 새삼 감탄.

실제 시부야에서 긴자까지 운영되던 열차란다. 더 놀랬다. 하루 이용자가 130여만명에 달했다는 이 전차는

190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근 반세기동안 운행되었다가 퇴임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바로 이리로 온 걸까.

차내로 들어와보니 깔끔하게 잘 유지되고 있는 게, 금세라도 사람들이 바글바글 손잡이를 잡은 채 빼곡하게

꼽혀 있어도 하나도 안 이상할 듯. 센과 가오나시가 저기쯤 앉았었다.

그리고 커다란 목욕탕 건물을 앞에 두고 좌우로 벌려진 주점, 꽃집, 문구점, 음식점, 상가 등등. 동쪽 구역의

중심가인 셈이다. 드문드문 보수 중인 건물들도 보인다.

옛 건물들을 모아두고, 이렇게 식물들을 기르고 사람의 손을 거치며 다시금 생명을 얻는다. 사람으로부터 유리된

채 건물들이 박물관 속 유물처럼 차갑게 굳어버리거나 온기 하나 느껴지지 않는 괴물같은 것으로 변해버리는

경우에 비하자면 정말 멋진 공간.

치히로의 부모가 음식에 홀려 돼지처럼 먹다가 진짜로 돼지가 되어버린 그 음식점의 모델이 되었다는 건물.

딱 보니 알겠다. 저 의자에 남자 하나 여자 하나가 앉아서는 양손으로 한껏 음식을 그러쥐고 그야말로 우걱우걱

먹어대다간, 주변을 돌아보던 치히로가 돌아왔을 때에는 부모님은 간데없고 살찐 돼지 두마리가 허부적대고

있었던 곳이다.

활짝 펼쳐진 메뉴판 옆에 도꾸리도 하나 나와있고, 주홍색 알전구 조명도 들어와 있는 게 금방이라도

주방 안쪽에서 누군가 '이럇사이' 하며 반겨 나올 거 같다. 혹은 이 자리엔 방금까지도 치히로와 부모들이

앉아있었는지도.

일본인들의 디테일함이야 익히 알려져 있는 바지만 정말, 이 주점을 더욱 사람냄새나게 만들어주는 건 이런

자그만 조화 한 송이. 자신의 가게를 꾸미고 손님을 불러모으겠다는 식의 생각 없이 이런 치장을 엄두나 낼 수

있을까 모르겠다.

가게 바깥에는 어제 장사한 흔적인 듯 빈 병들이 삼엄하게 꽂혀 있었다. 이래서야 원, 치히로 부모님이 아니라

나라고 해도 당장 의자에 철푸덕 앉아 음식부터 주문하고 볼 판이다.

그리고 치히로가 센으로 이름이 바뀐 채 일하게 되는 목욕탕의 모델이 되었다는 커다란 대중 목욕탕.

애니에 나오듯 그렇게 으리으리하고 커다란 건물은 아니고 조금 천장이 높은 단층 건물인데, 그 건물의

어느 부위를 어떻게 살리고 뻥튀기해내어 애니 속 모습을 가공해 낸 건지 상상해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옷바구니. 목욕탕 안을 이런 기회 아니고선 또 언제 찍어보겠나 싶어, 또다시 신발을

벗고 비닐봉지에 담아 들고 다니는 불편을 감수하고 덥썩 안으로 들어왔다.

남탕은 됐고, 여탕으로 직행. 보통 일본의 목욕탕은 오른쪽이 남탕, 왼쪽이 여탕이라는데 여긴 뒤바뀌어 있다.

이유는 모르지만 여하간 여기는 바뀌어있다는 것. 글쎄, 장난기 심한 주인남자가 여자남자가 습관에 이끌려

덜컥 문열었다가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거 아닐까. 혹은 응큼하고 연기잘하는 남자손님들을 좀더

불러모으려는 고도의 상술일 수도. "어익후 깜짝이야, 남탕인 줄 알았네요. 반갑습니다. 차라도 한잔?" 정도.

여탕 내부에 걸려 있는 그림들. 이런 그림들, 실제 여기가 목욕탕으로 쓰이던 때에도 걸려있었을까. 요새 시대에도

여탕엔 이런 그림이 걸려있나. 아무리 어릴 적 기억을 되짚어도 내가 가본 여탕엔 이런 야시시한 그림은 없었던

거 같은데. (아쉽게도.)

나무판을 이어붙이고, 쇠로 된 테두리를 감아 만든 고풍스런 물바가지. 얼룩이 여기저기 서려 있는 게 정말

쓰이던 걸까 싶은 상상을 계속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조그맣지만 야무지게 딴딴하게 생긴 나무의자도.

남탕엔 저울이 없던데, 여탕에만 있었다. 그것도 개씩이나. 슬쩍 올라갔다가, 얼추 비슷한 수치로 홱 당겨지는

바늘에 놀라 얼른 내려와 버렸다. 아..살 빼야되는데. 회사생활 2년차까지만 나름 선방했는데 올해가 문제.

목욕탕 뒤뜰..이라 해야 하나. 그리 넓진 않은 툇마루 밖으로 석등이며 이끼서린 돌덩이며 요리조리 꺽인 나무들,

보기 좋은 정원이지만 조금 이상하달까. 목욕하고 여기서 차라도 한잔 하고 갈 기세의 정원이다. 정말 그때의

목욕탕이 저랬다면, 현대인이 과거의 인간들보다 행복하다는 건 뻥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 한개 추가.

보드랍고 가벼운, 낭창한 이파리를 풍성하게 드리운 버드나무에 바람이 불었다. 목욕탕 우측의 건물은

구두방이라던가, 그냥 분위기로 족했다. 하나하나 굳이 문열어서 확인할 곳이 아니라, 그냥 이렇게 그때의

인기척을 듣고 바람소리를 감각하며 거닐어 보는 곳. 하야오가 이 곳을 즐겨 산책한 이유를 알 거 같다.

이 건물도, 그렇게 풍족한 마음으로 살살 거닐던 차에 우연찮게 발견했다. 자칫 놓쳤으면 사실 아쉬웠을 거 같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가마지이 영감이 기다란 여덟개의 팔로 약초를 다듬던 그 공간. 치히로가 일을

시켜달라며 무작정 찾아들어갔던 그 공간. 애니메이션 속의 분위기가 그대로 살아있지만, 애니와는 다르게

여긴 문방구점이었다는 사소한 사실 하나만 다르다.

한쪽 벽면에 뺴곡한 서랍은 대략 300여개가 넘는다고 하는데, 붓, 벼루, 먹 등의 문방구들이 담겨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고스란히 담겨 있을지, 꽤나 궁금했지만 차마 함부로 손댈 수가 없어 궁금증을 꾹 눌러 참았다.

아귀가 딱딱 맞는 조그마한 서랍들이 300여개나 된다니, 더구나 백 년 가까이 사람손에 길들어 반질하게 윤도

나고 은은한 나무색이 더욱 살아난 그 느낌이 너무 매혹적이다. 그리고 이렇게 천장부터 바닥까지 채워진

서랍들이 실재하는 걸 두고 손이 마음대로 쭉쭉 늘어나는 가마지이 영감을 상상해 내다니, 역시 하야오.

다른 구역들, 화장품 가게도 있고, 음식점도 있고. 그리고 왠지 바람에 휘청휘청댈 것만 같은 얄포름한 외피에

쌓인 건물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그럴 듯한 풍치.

자전거 달구지가 삐걱, 소리내며 막 멈춰선 듯한 가게 앞. 어디까지가 진열되고 연출된 소품이고 어디까지가

정말 이 공간을 꾸려나가는데 쓸모있는 일상의 것인지가 도무지 불분명하다. 그냥, 2010년의 일본과 1900년

어느 어간쯔음의 일본이 마구 뒤섞인 채 새로운 느낌의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커다란 월계관 사케병이 둥글게 둥글게 모여서 있는 술집. 하얗게 탈색된 채 가장자리부터 조금씩 허물어져

내리는 라벨이 시간의 엄연한 흐름과 사람의 쉼없는 손짓을 가늠케 해준다.

이 곳에서 다시 만난 저울들, 신기하게 생긴 저울들이 두개 세개씩 놓여 있는데, 예전엔 술집에서 술을 저울에

담아 팔았던 걸까. 주전자를 들고 가면 주전자에 담아서 그램수로 팔았나..사케를 무슨 막걸리마냥 그렇게

팔지는 않았을 거 같은데.

꽃가게도 있고, 비록 조화지만 햇볕을 담뿍 받아 싱싱한 생화에 못잖은 자태를 과시하고 있는 걸로 보아 이동네는

당장이라도 몇 가구 이사와서 생활하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어 보인다. 술에, 음식에, 목욕탕에, 그런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에 더해 꽃과 화장품까지 커버되는 동네면 뭐.

돌아 나서는 길, 금칠이 화려한 사당같은 건물이 하나 있었고, 그럴듯한 건물, 그렇지만 용처를 잘 가늠할 수

없는 건물이 하나 있었다. 서쪽 구역을 좀더 돌아보았어도 꽤나 재미있었을 거 같은데, 이미 오전부터 지브리

스튜디오를 잔뜩 걸었는데다가 동쪽 구역만 돌아보아도 솔찮이 시간이 소모되어 어느새 해가 살짝 기울고

있어서. 슬슬 빠져나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에도도쿄건축공원, 그 안을 돌아다니며 계속 한 손에 들고 바람맞히던 바람개비, 주위에 커다란 건물도 없고

거침없이 휘감기던 바람을 떨쳐내고 가까운 나무에 접붙이기 해버렸다. 나중에 이 나무에서 바람개비가

잔뜩 돋아나진 않을까, 아님 물과 양분을 쭉쭉 빨아먹고 이 바람개비가 거대하게 피어나는 건 아닐까, 하는

상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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