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를 많이 했었다. 그리고 기대 이상이었다.


전주국제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순식간에 매진되었다는 것 같은 단편적인 '카더라' 기사들도

계속 꾹꾹 자극을 해댔지만 무엇보다 스스로 가게를 차리고 맛집방송에 출연해서 그 거짓을

벗겨내겠다는 기획의도가 대단해보였던 거다. 통틀어 한주에 177개나 소개된다는 '왼갖 짭새가

날아들듯' 하는 맛집들이 진짜일 리는 없다는 생각은 이전부터 모두가 해왔을 터, 이걸 어떻게

요리해서 보기 좋게, 먹기 좋게, 그리고 재미있게, 결국은 맛있게 보여줄까. 그런 기대였다.


그 천편일률적인 손님들, 단골을 자처하는 손님들의 리액션이나 광고문구같은 몇마디 대사는

대본에 가까운 뭔가가 있을 줄 알았다. 이미 모든 프로그램이 시청률 경쟁에 매몰된 지금

맛집프로그램 역시 시청률이 높도록 더욱 충격적이고 신선하고 흥미로운 것들을 찾아서 눈이

빠지도록 돌아다니고 있을 줄도 알았다. 그러다보니 홍보를 원하는 음식점과 방송국(혹은

외주제작사)과의 금전 거래가 없진 않으리라, 그것도 짐작했었다. 짐작대로였고, 기대대로였다.


그런데 그 이상이다. 사실은 브로커를 통해 돈이 오가며 '방송'시간을 광고시간으로 팔고 사는

자체로도 이미 충격적인 범죄인데, 이미 자극적인 것들에 잔뜩 둔해져버린 미각으로는 '고작'

그 정도의 폭로로는 성에 안 찰 우리임을 알았던 걸까. 브로커는 친절하게도 가게의 방송용

컨셉을 정해주고, 전지전능한 상상력을 동원해 음식들을 마구 퓨전해주기에 이른다. 캐비어

삼겹살, 특제 대판요리, 청양고추범벅의 돈까스, 해물과 호박찜..방송을 위한 일회용 메뉴들.



실망하고 있었다. 그리고 절망하기에 이르렀다.


몰랐던 것들도 아니고, 그렇게 '보기좋은 떡'을 만들어 방송국에, 실은 시청자에 팔기에 열중인

브로커의 넉살좋은 얼굴과 느끼한 목소리에 문득문득 실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장난같았다.

그렇게 '매워서 죽던지말던지 돈까스'가 그들의 세트장이자 음식점인 곳에서 뚝딱 만들어져

촬영이 되는 장면이 그야말로 블랙코미디의 정점이었다면, 그렇게 장난처럼 만들어진 것이

수분동안 공중파를 타는 장면에선 울컥, 분노랄까 절망이 치솟았다.


방송이 장난인가. 맛집이라 주장하는 가게 주인들은, 환호하며 엄지손가락을 내미는 알바들은,

온갖 말장난으로 코너 하나를 해치우는 연예인과 방송인들은, 그리고 뚝딱 컨셉을 만들어내고

그 모든 컨텐츠를 조율하는 제작진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이건 단순히 '먹기 좋도록' 떡을

포장하는 수준이 아니라 떡인 양 비닐봉지를 씹어먹는 CG를 촬영하는 수준 아닌가 말이다.

오대수, '오늘만 대충 수습해서 살자'라는 마음가짐으로 방송 한번하고 모르쇠하는 마음가짐,

그 어디에도 시청자는 없었다. 시청자는 그저 시청률의 숫자, 혹은 우스운 호구였을 뿐.


그렇지만 사실 더하고픈 질문은, 사람들이 맛집프로를 보며 얻으려는 게 맛집 정보가 아니라

가학적이고 선정적인 비쥬얼쇼와 박스로 돈을 쓸어담는 대박의 판타지는 아닐까 하는 거다.

만약 그렇다면 맛집 프로를 공장처럼 찍어내는 그들은 사실은 사람들의 욕망과 니즈를 아주

적확하게 꿰뚫고 그에 부응하는 것 뿐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굉장히 날카롭고 위험한 영화의

칼끝은 사실 방송국 혹은 외주제작사가 아니라 천박한 입맛과 취향을 가진 우리들 자신에게로

향하고 있는 건 아닐까.



문제는, 놀림감으로 전락 중인 우리 자신이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그들'의 거짓과 사기행각에 분노하는 건, 직면하기 낯뜨겁고 수치스러운

질문 앞에서 굉장히 단순무식하고 손쉽게 문제를 푼 척 하거나 아예 부숴버리려는 시도인지 모른다.

영화는 분명 그 부분을 불편하게도, 굳이 까칠하게 짚고 있다. 시청자들의 취향과 입맛이 고작

그정도라 이런 프로와 이런 되먹잖은 맛집들이 횡행하는 건 아닌가, 어느 맛집 컬럼니스트가

영화에서 분명히 지적했듯이. '그들'을 욕하는 건 쉽지만 결국 그들을 키워낸 건 '우리'다.


꼭 맛집프로그램에 관련된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자존심강하고 자기잘난 줄 아는 대중이 사실은

이리저리 휘둘리고 희롱당하는 모험담은 주위에서 넘쳐난다. 조선일보가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열독률 1위의 신문', 자신들을 무시하면 자신들을 그토록 열독하는 대중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논리라거나, 한나라당과 박정희에 대해 다수결이나 지지율을 근거로 정당화하고

복권시키는 논리라거나, 언론이 던져주는 떡밥을 덥썩덥썩 물며 남의 사생활이나 캐대고

연예인이나 마녀사냥해대는 웃지 못할 이야기들이라거나. 잘난 척하지만 놀림감으로 전락중인.



내가 원하는 건 뭔가. 무엇을 보고자 하는가.


영화 마지막의 장면은 자못 심각하게 방송이 맛갔음을 선포하지만, 사실 감독은 지금

우리 모두가 맛이 갔음을 먼저 인정하라고 솔직히 말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채널선택을

하기에 앞서 우리가 맛집프로그램에서 무엇을 보고 싶었는지, 저널리즘에 대한 기대치가

얼마나 있었는지, 있기는 했는지부터 따져보았어야 한다는 거다. 단순히 일부 방송의

문제, 시청률 경쟁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방송을 굳이 챙겨보는 우리의 문제란 거다.


결국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스스로의 머리로 생각해서 질문을 던지고, 자신의 욕망과

결핍을 알아내야 하는 거다. 내가 원하는 건 뭔가. 무엇을 보고자 하는가. 만약 당신이

맛집프로그램에서 맛집 정보를 찾고자 한다면, 그 사람의 삶 자체이자 즐거움인 음식을

조롱하고 더럽힌 제작진에게 불의 철퇴를. 만약 당신이 맛집프로그램에서 대박의 판타지와

시트콤을 보고 싶다면, 지금까지처럼 하면 된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무의미해질 때까지.


낯뜨거움과 수치스러움을 무릅쓰고 던진 질문의 최종적인 답은 이런 식으로 나오지 않을까

두렵다. 지금 우리의 입맛, 취향과 사고수준은 너무나도 저렴하고 천박해서, 이런 맛집프로는

바로 지금의 우리 수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을 뿐이라고. 거울처럼. 나는 맛집 정보를

손쉽게 뽑아보고 싶었고, 나는 뜨겁고 맵고 신기한 음식 앞에서 연예인들의 리액션이 즐거웠고,

나는 맛집들의 성공담에서 자영업 성공신화를 보았고, 따위들.


트루맛쇼. 의도했는지 모르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MBC, KBS, SBS의 맛집프로그램에 대한

대대적인 선전포고 따위를 넘어서고 말았다. 가처분신청을 내고 어쩌고, 약간의 소란이 있긴

했지만 이미 맛집프로그램들은 택시기사의 추천을 받는다거나, '티비 안나와도 손님이 너무

많아 걱정'이라는 따위 변형을 거쳐 또다시 우리들의 욕망에 발빠르게 응답하고 있는 거다.

결국, 우리가 바뀌지 않는 한 맛집프로그램 따위 지엽말단의 이슈는 바뀌지 않는다.


거악(巨惡)은 우리다. 현재로선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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