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근처를 배회하다가, 문득 방금 시선이 슬쩍 훑었던 곳 중에 굉장히 맘에 걸리는 뭔가가

있었다는 불편함이 느껴졌었다. 뭘까, 이리저리 휘적대던 시선을 다시 뒤로감기해서 발견한 그것,

'삘딍'이라는 굉장히 생경하고 낯선 단어. 저건 뭐지. 초록색 페인트가 다 벗겨져나간 황동판의

고풍스러움은 저리 가랄 듯한 포스가 느껴지는 두 글자인 거다.


아무리 외래어표기법이 여러번 바뀌어왔고, 그 와중에 상식선에서 쉽게 이해되지 않는 표기도

적지않았음을 감안하더라도 이건 좀. buiding이란 단어 어디에서 '삘딍'이란 표기가 나올 수

있는 걸까. '삘', 은 그렇다고 쳐도 저 요상한 '딍'이란 표현은 순간 수십년전, 혹은 백년전쯤의

아스라하고 케케한 과거의 향내를 짙게 풍겼다.


저런 풍경은, 아무래도 뭔가 효과가 더해진 모습으로 사진을 찍는 게 훨씬 그 분위기를 전달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저 색감을 강렬하게 살린 느낌의 사진이 아니라, 뭔가 2011년의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1900년대 어딘가의 골동품, 그것도 녹이 잔뜩 슬은 골동품을 만난 느낌을

전달할 수 있으려면 뭐가 좋으려나.

1) 토이카메라. 주변부가 어둡고 색감이 약간 붉어져서, 좀더 오랜듯한 분위기가 묻어나긴 하지만,

빛이 모인 중앙부에 '삘딍' 두 글자에 온통 시선이 몰리는 거 같긴 하다.

2) 수채화. 저 단어와 시공간과의 불화를 조금이나마 화해시켜주는 게 수채화 모드랄까.

너무 그림같이 변형되어 버리고 나니 2011년의 도심 한복판에 뭐라 써져있대로 이상하지 않을 듯.

3) 파스텔. 전반적으로 부드럽고 말랑한 질감으로 바뀌어버렸다. 차가운 청동판이나 대리석기둥이

아니라 파스텔을 빚어 만든 판과 기둥인 것처럼. 삘딍이란 단어 역시, 조금은 부드러워 보인다.

4) 포스터효과. 원색의 색감이 강렬하게 발산하는 느낌이다. 삘딍이란 두 글자에 조금이나마

녹이 서려 있었다면, 완전 빤짝빤짝하게 닦아내서 광이 나는 거 같달까.

5) 모노크롬. 역시 오래된 느낌을 주거나 살짝 아련한 느낌을 전하는 건 모노톤, 살짝 갈빛을

섞어서 세피아의 느낌을 주니까 이것도 나름 나쁘지 않다. 근데 좀, 모노톤은 슬픔이 묻어나.


뭔가 맘에 드는 거 한 장만 올리려다가, 글쎄, 딱히 이거다 싶은 느낌을 팍 전해주는 사진이

없어서 우다다 올리고 보는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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