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반양장) - 10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문학동네

특별봉사대, 그것도 '수비대와 국경 및 인근 초소를 위한 특별봉사대'의 역할은 분명하다.

열대 우림의 후끈하지만 여자 한명 찾기 힘든 환경 속에서 갈곳없이 억눌리고 있는

병사들의 성적 욕망을 만족스럽게 풀어내는 것이 그들의 사명이다.


"항상 봉사하고 봉사하며 또 봉사하세, 조국의 육군에게...병사들을 행복하게 해주세...

땅에서건, 그물침대에서건, 수풀에서건, 막사에서건, 야영자에서건, 공터에서건

상관이 명령하면 우리는 키스하고 포옹하며 사랑한다네..."


이런 노골적인 가사가 담겨있는 그들의 공식적인 '특별봉사대 찬가'만 봐도 뻔하다.

군대의 억눌린 성적 욕구를 풀기 위한 합법적인 배설구, 그런 조직에 대한 이야기란 거다.

포인트는 그런 예외적인 조직이 군대라는 극단적인 관료주의 사회 내에서 어떻게 커나가고

어떻게 사람을 갉아먹는지, 그리고 얼마나 의도치 않은 유머러스한 부조리를 만들어내는지.


한국적인 특수성을 감안한다면, 그러한 유머나 아이러니에 고분고분 따라가기는 조금

걸리적거리는 것들이 없지 않다. 이번 지진 때 '사람의 귀한 목숨은 국경을 초월한다'며

침묵으로 일본대사관 앞에서 위로와 항변을 전했던 종군위안부 할머니들. 그분들의 기억이

여전히 위로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이 땅에서, '위안부'의 이야기라니.


그렇지만 다르다. 201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저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그토록

적나라하고 비인간적인 상황, 누가 봐도 뚜렷한 선악의 구별이 있는 상황이 아니라 조금은

더 복잡다단하고 애매모호한 상황을 주목하는 거다. 그들은, 특별봉사대는, 자발적으로

질병과 불규칙한 수입을 피해 군대 조직에 편입되길 원하며, 나름의 사명감마저 갖고 있다.


상황을 악화시키는 건, 그런 어처구니없는 아이디어에 조응해 혼신의 힘을 다해 최선의

성과를 얻어내려고 하는 완벽주의적이고 순결하기 짝이 없던 '판탈레온 대위'. 그는

나무랄 데 없이 성실한 미덕을 갖추었고 가정에 충실한 사람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성실함'과 '충성심'이 스스로를 어디까지 파멸시킬 수 있는지 보여준다.


판탈레온의 '특별봉사대'가 점점 성공리에 시스템화되면 될수록, 그를 둘러싼 주변의

풍경과 평판은 걷잡을 수 없이 굴절되어 나간다. 동시에 진행되는 또 하나의 이야기,

이적을 행한다며 십자가에 각종 사체를 못박는 '프란시스코 형제'를 따르는 광신도의

그것은 마치 판탈레온의 거울 이미지인 양 애초부터 품고 있던 파국을 향해 부지런히

달려나가는 것만 같다.


성욕, 그리고 종교적 신심이 관리되는 세상. 약간의 삐긋거림만으로도 그들은 단숨에

집창촌 포주, 혹은 광신으로 치닫고 만다. 더욱 무서운 것은 그런 '삐긋함'을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요청하고 있는 시스템의 잔혹함. 그 와중에 성실함과 순응, 자신의

소박한 삶에 최선의 가치를 두던 사람들은 괴물이 되고 광신도가 되어버리고 마는 거다.


판탈레온이 며칠밤을 새워서 작성한 평가와 도표, 그래프들. (창녀를 고용하기 위한)

예산이 22% 증액되면 매주 500회에서 800회의 봉사를 제공하면서 작업량을 60% 넘게

향상시킬 수 있다는 그런 류의 이야기는 자체의 논리 내에서는 아무런 결함도 없다.

오히려 군대의 (성적인) 병참을 담당하고 있는 그의 탁월한 능력을 반증하는 것.


남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쯤 되지 않을까. 개인이 아무리 발버둥쳐봐야, 나름의 신념과

미덕을 실천하려 애써봐야, 마치 개구리가 서서히 끓는 물에 삶아지듯 의식하지 못한

거대한 시스템의 부조리를 잡아내지 못한다면 결국 '포주'로 몰락하는 건 아닐까. 그리고,

이 책에 따르면 '평균 20분도 채 되지 않는' 잠깐의 성욕을 부자연스럽게 억압하고 다시

부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배출시키며 관리하는 세상에서 남자로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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