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회사의 홍보대사를 뽑는다는 자리에 면접관으로 갔었다. 88, 89년생이 대부분인 대학교 2,3학년. 남자는

그래도 군대도 다녀오고 이러저러하여 85년생까지도 보이던 자리.


대학생들인지라 자기소개서는 꽤나 '신선'했다. 반말투로 적은 자기소개서, '성별 : 남'이 아니라 '성별 : 건장한

남', 느낌표와 말줄임표와 이모티콘이 난무하던 자기소개서까지. 아, 볼에 바람 불어넣은 셀카사진을 첨부한

여학생도 빼놓을 수 없겠다. 나쁘진 않았지만, 아무래도 사진과 실물이 다르니 '실망'이라 부를 만한 감정이

불끈, 오른 건 사실이었고, 그보다 자기소개서 같은 공식적인 글은 조금은 형식을 갖추는 게 좋을 거 같았다.


면접 자리에서도 꽤나 재미있었다. 아무래도 정식 직원이 아니라 홍보대사를 뽑으려는 거라 본인의 적극성과

사교성을 보여주려는 응시자들이 많았다. 대입 면접을 대비하며 지하철 객차 안에서 했다던 인사말을 정말 큰

소리로 다시 해보이는 학생, GEE 가사를 개사해서 개다리춤과 함께 노래하는 학생, 본인의 계획과 의지를

스케치북에 적어서는 발표해보겠다는 학생, 핸드폰을 팔아보이겠다는 학생도 있었으니, 반나절 내내 백 명

가까이 보면서 심심하진 않았다.


제주에서 비행기 타고 왔다는 학생은 그랬다. "여기까지 오는데 한시간 반밖에 안 걸립니다. 제주라고 넘

멀다고만 생각지 마시고, 그런 선입견 없이 저를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멋진 멘트, 멋진 학생이었다. 지방은

확실히 서울 근교에 비해 (그들의 표현에 따르면) '스펙 업'할 기회도, 경력도 적어 보였다. 이력서에 적힌 온갖

인턴, 홍보대사, 봉사활동이니 단체활동이니, 절대적인 양에서 차이가 엄연하지만, 그래도 이런 배짱이라면.


GEE를 부르며 개다리춤을 춘 학생은 정말 부끄러운 기색 하나 없었다. 옆자리의 차장님이 부끄러워 하시며

그만하라 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난 끝까지 듣고 나선 다시 한번 앵콜을 청했을지도. 그리고 나선 아마도

무한재생 버튼을 눌렀겠지. 그치만 정말 가사를 적절히 개사하고 외워서 면접관들 앞에서 흔들림없이 춤과

함께 노래할 수 있단 건 굉장한 일이다.


둘이 맞춰서 보핍보핍~을 재연해보려던 학생들은 합이 전혀 맞지 않아 왠지 캥거루 권투시합을 떠올리게

만드는 장면을 연출하고 말았지만, 그래도 뭔가 보여주려는 의지가 강해보였다. 아무리 기회를 주려고 해도,
 
잔뜩 옹송그린 채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지원자들도 적지 않았기에 그 권투시합이 좋게 보였던 게다. 더구나

이건 '조용히 중간만 가도 되는' 그런 거라기보다는, 아무래도 본인이 홍보대사에 적합함을 어필하는 게 나은

전략일 텐데 묻어가려는 지원자들이 의외로 많았다.(어쩜 정말 되면 좋고 아님 말고, 그런 식이었는지도.)


혹시 '소'수염을 굳이 깍으라 한다면 어쩔 건지, 란 질문에 그건 오히려 학생들에게 우리 회사의 자유로움을

보여줄 수 있는 증거일 수 있는 데다가 본인의 개성이라 말하던 학생도 있었다. 내가 인턴 면접보러 가서

귀걸이 못 빼겠다고 뻔뻔히 이야기하고 합격했던 게 생각나서 만점을 줘버렸다. 회사의 입장에서도, 직원

채용과 홍보대사/인턴 채용이 엄연히 다른데 그정도의 유연함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사실 이런 면접 경험이라곤 대입 때나 알바 구하는 첫자리 정도였을 미숙함에 더해서, 게다가 요새 여기저기

공공기관과 사기업에서 온갖 인턴이다 홍보대사다 '스펙 업'하라며 숙제만 잔뜩 내어주는 터라 나름 긴장도

적지 않았나 보다. 생각보다 많은 응시자들이 확연히 떨고 있었다. 별 것도 아닌 홍보대사인데, 안쓰러워서

농담도 해주고 기회도 두번세번 주고 했지만 끝내 버벅이고 움츠러드는 게 넘 마음이 안 좋았다. 그만큼 정말

부담이 커지기도 한 게 사실이니까. 괜히 개나소나 다 인턴이니 뭐니 뽑겠다며 대학생들을 괴롭히니 원.


이왕 뽑는 거면 좀 잘 썼으면 좋겠다. 인턴 뽑는 거야 내가 함께 일하며 가르쳐주고 잘해주고 하면 되지만

홍보 대사는 직접 함께 상시적으로 일하는 것도 아니어서. UCC니 블로그니 활용할 줄 아는 능력자도 많고

말잘하고 열정적인 사람도 많았는데, 회사나 뽑힌 사람이나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관건인 듯 하다.






우리 회사는 벌써 몇년째 매 학기마다 학교와의 협의를 거쳐 학점을 인정받는 인턴을 십여명씩 뽑고 있다.

오늘은 상반기 인턴이 3월-6월로 마치고 난 후, 9월-12월 동안 근무하게 될 인턴들의 면접이 있는 날이었다.

상반기에도 인턴 면접때 면접관으로 들어갔었고 당시 경험의 포스팅(인턴 채용 면접관으로 들어가 보니.)이
 
다음 첫화면에 뜨기도 했었지만, 그 때와는 또 다른 것들이 적잖이 보이는 경험이었다.


인턴 면접은 각 팀의 실무자가 나가서 팀의 업무에 대한 짧막한 소개를 한 후, 그걸 기반으로 지원자들-서류

전형을 통과한 지원자들-이 1, 2, 3순위 희망팀을 적어내고 면접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내가 물었던 질문들은 대체로 올 초와 비슷했던 것 같다.


"우리 팀에서 무슨 일을 한다고 알고 있는지? 아까 설명드렸던 내용이 충분히 이해되셨는지?"

"마지막 학기신데 졸업은 어떻게 하실 건지? 연말까지 인턴하려면 구직활동과 병행해야 할 텐데 괜찮을지?"

"경력사항 중의 이것은 무슨 일을 한 건지?"

"앞으로 이쪽 분야와 관련해서 커리어를 쌓고 싶은 건지?"

"친구들이 자신을 센스있다, 눈치빠르다고 평가하는지?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 평하는지?"


조금 까칠하다 싶은 질문이라면 이런 게 더 있었다.

"팀의 특성상 개인의 능력보다 팀웍과 융화력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팀웍을 배우러 들어오겠다니 조금

앞뒤가 안 맞는다고 생각진 않는지?"


이건 뭐 살짝 압박해서 반응을 보려는 질문이기도 했지만, 혹시나 모를 기우에서 말하자면 (원칙적으로)

인턴이나 정식취업이나 뭔가를 가르쳐주려고 사람을 뽑는 건 아니다. 물론 당연히 뭔가를 배우게 되는거고,

그 자리에 딱 맞는 능력을 이미 갖춘 사람이 어디있냐만, 말하기의 스킬 면에서, 설득력 면에서 이런 식의

발언은 조금 주의해야 할 것 같다.


"경력이 좀 다양한 방면으로 뻗어있는데 설명할 수 있는지?"

이건 내 경력도 워낙 일관성이 없어서 많이 들었던 얘기였기에, 이런 가벼운 인턴 면접때 미리 한번

물어보고 대비케 해주고 싶었다. 나는 그럴 때 "얼핏 보면 좀 (미친년) 널뛰듯 하는 경력이라 여기실지

모르지만"이라고 이야기를 시작했었는데..별로 성공적이지는 못했던 듯 하다. 그치만 상대가 묻기 전에

먼저 그걸 방어해주거나, 묻고 나서 뭔가 잘 답하지 않으면 큰 허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인 건 틀림없다.


그 밖에 우리팀 하반기 일정상 인턴이 운전면허가 필요할 듯 하여 그것도 물었다.

"운전면허증은 있는지? 운전은 잘 하는지?"

물론 면허증이 결정적인 조건은 아니지만 다만 있으면 좋겠다, 정도.


몇가지 촌평이라면, 올 초에 내가 올렸던 포스팅(인턴 채용 면접관으로 들어가 보니.)에서 지적했던 몇몇 아쉬운 점들,

1) 단답식의 답변이 아닌 서술형의 답변을 하자,

2) 상대와의 호흡을 고려해서 자연스러운 인터벌을 두고 대답하자,

3) 말할 때 태도가 흐트러지거나 고개를 흔드는 등의 동작을 피하자,

4) 마지막으로 묻는 자유질문의 기회를 잘 활용하자.

정도에 더해 다른 것들, 특히 남녀간의 차이가 두드러졌던 것 같다.


서류 통과자, 그니까 면접 대상자 중 남성은 채 1/3도 안 되었는데, 역시 요새 여학생들이 남학생들보다

훨씬 성적관리나 기타 취직준비에 철저한 건 확실한 것 같다. 그리고 사실 야무진 (듯한) 표정과 말투는

남성보다 여성에게 조금 더 유리하지 않나 싶기도 하고. 몇가지 남정네들의 허술한 답변이 맘에 안들었다.


"저는 군대를 다녀와서 인화/협동심/여하튼 좋은 것..을 배웠습니다."

"저는 행정병이었기 때문에 조직 문화에 훨씬 익숙한 편입니다."

"군대가 제 삶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혹은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군대에서 있었던 xx입니다."

"군대에서 안 해 본게 없기 때문에 뭐든 시키면 다 잘합니다."

"군대다녀온지 얼마 안 되어 몸쓰는 건 자신있습니다."


군대 갔다와서 조직에 훨씬 적응을 잘 할거라는 장담, 군대 다녀왔으니 협동심을 체화했다는 장담,

이런 대답은 좀 곤란하지 싶다. 군대 문화가 곧 조직 문화는 아닌데다가, '센스있고 눈치빠르며 팀웍을

중시하냐'는 게 '군대 문화에 절어있'냐는 걸 묻는 건 아니다. 물론 여전히 한국의 조직문화가 군대의 그것과

과히 다르지 않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회사도 있는데다가 면접관 개개인과

대면하고 있는 거지 저높이 앉아 조직을 위해 발언하는 기성세대-꼰대-와 대면하고 있는 건 아니다.
 

CEO 면접이나 고위급 면접이라면 좀더 조직차원에서 생각하고 그들의 입맛에 맞게 안전하게 가야하겠지만,

그때 역시 군대를 앞세운 이야기는 위험하다고 본다. 이미 그들도 최소한 머리로는 충분히 군대문화의 폐해와

부정적인 이미지를 공유하고 있는 시대인 거다. 심지어 면접관이 젊은 사람이고, 혹은 여성인 경우에도

그런 식의 이야기를 할 건가.


백번 양보해서 정말 군대에서 개인적으로 그런 값진 체험을 했고, 떳떳이 타인에게 이야기할 수 있고

이야기하고 싶어 미치겠다 하더라도, 실용적인 견지에서도 군대 이야기는 너무 식상하다. 너무 식상하고,

이미 너무 부정적인 이미지가 잔뜩 끼어있어 그걸 만회하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게다가 놀랍게도(안 놀라움

말고) 꽤나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자기소개서에 군대이야기를 주절주절 적고 있다는 거다. 달리 쓸 만한

경험이 없어서인지, 혹은 정말 이시대 한국 20대 남성의 삶에 그만큼 큰 흔적을 남기는 게 사실이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이경우라면 십분 공감하는 바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남자들, 좀 영리해지자. 는 거다.


자신을 어필하고 자신의 장점을 알리려는데 전혀 참신하지도 않고, 상대의 흥미를 끌지도 못하는 '군대'란 소재를

앞머리에 끼워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건 어떻게 보나 손해보는 짓이란 뜻이다. 가뜩이나 여성들이 이야기하는 것에

비해 어수룩해 보이고, 훨씬 수줍어 보이는데다가 말도 잘 못하는 게 남성들 아닌가.(일반적으로 말이다.)
 



덧댐. 물론 특수직종이나 특정 기업에서는 군대의 경험을 높이 살지도 모르겠다. 어디까지나 난 내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바에 따라 하나의 추세를 이야기하는 것일 뿐이니,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남성이 여성보다 회사생활에 쉽게 적응하는 이유 중의 하나를 '군대' 덕분이라 하지만, 굳이 말투까지 군대 말투를

따라야 하나 싶을 때가 있다. '~니다' 혹은 '~니까', 흔히들 다나까로 끝난다고 하는 군대식의 말투를 쓰는 게

조직생리에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꽤나 많은 것 같아서 하는 얘기다. 인턴, 혹은 신입직원들까지도

회사에서는 당연히 그런 말투만이 허용되며 그런 말투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어색한 말투를 입에 붙이려

노력하는 거 같지만, 그것도 분위기 봐서 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회사에 들어오고 처음 만나는 자리, 맘속이야 어떻든 겉으로 보이기에 좀 겸손해 보이고(라고 쓰고 '쫄아보이고'

라고 읽는다) 적당히 긴장한 듯 보이고(라고 쓰고 역시 '군기잡힌 듯'이라고 읽기로 하자) 그런 이미지를 만들려면

역시 그에 딱 어울릴 만한 딱딱하고 경직된 말투가 제격이긴 하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아 영 어색한 느낌을 지울

길 없다 해도 차라리 다행이다. 그만큼 '조직을 무서워하고 있구나', '잘해보려고 긴장하고 있구나'라는 식의

뉘앙스마저 풍길 수 있으니. 몸에 붙지 않는 붕붕 뜨는 정장 차림 역시 그런 걸 보이기 위함 아닌가.


그렇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처음 이미지, 첫인상의 덫을 피하기 위함일 뿐이다. 적당히 넥타이조임을 풀고 옷차림도

조금씩 편해지듯이, 그렇게 말투도 편하게 가야 뭐 좀 인간같은 느낌이 들고 친해지기도 쉽지 않을까. 물론

회사마다 약간씩 다를 수야 있겠지만, 글쎄, 내가 알기론 그런 식의 딱부러지고 비인간스러운 말투를 고집하는

곳은 없는 걸로 알고 있다. 분위기에 따라, ~했죠. 했어요. 아닌가요? 아니에요? 라고 생각하는데요...등등 다양한
 
어미를 써도 되니까, 너무 생경하고 딱딱하기 짝이 없는 말투를 의식적으로 고집하진 말일이다.


최근 행정인턴이 정책적으로 급증하면서 '인턴제도' 자체가 실업률을 낮추려는 꼼수로만 치부되는 면이 없지

않지만, 그 이전에도 인턴 제도는 꾸준히 있어왔고 나름의 역할을 해온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막연히

상상하던 황금칠된 이미지를 좀더 현실로 끌어내리고, 실제로 어떻게 일이 굴러가며, 직장이란 곳에서 사람들이

어떤 패턴의 일상을 살게 되는지 좀더 명료한 상을 갖게 되는 점에서 그렇다.


사실 직장인들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저마다 자신의 직장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고 막연히 다른 직장을

부러워하지만 그 곳이 정확히 어떻게 돌아가며 어떤 분위기인지는 잘 모른다. 그저 알음알음 들은 풍월이나,

기사에 난 단편적인 사실들-대개 '숫자'들이기 마련이지만-에 기대어 제각기의 직장이라는 우물 속에서 바깥을

바라볼 뿐. 그래서 입사 전 이러저러한 인턴 경험을 갖는 것은 해당 직장에 대한 현실 감각을 미리 익힐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듯 하다. 그게 결국은 어느 직장이나 비스꾸름하다는 식의 살풋한 냉소를 부르건, 혹은

조금은 더 자신의 생각과 지향에 맞는 직장을 찾는 조심스런 탐색을 부르건 간에.


부수적으로는 실제 업무를 하는데 있어 자신이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예컨대 전혀 엑셀이나 파워포인트를

못 다룬다거나 하는 등-알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취직을 위한 필기/면접 시험 중에 컴퓨터 활용능력 평가는

없으니 그런 거야 취직후에 자연스럽게 익히면 되는 거고. 그런 것보다는, 직장인으로 산다는 건 평일에

조조영화를 못 보게 된다는 것, 그리고 방학이 없다는 것..같은 치명적인 사실을 의식하는 게 더욱 중요한

인턴 생활의 성과 아닐까 싶다.




연애나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듯, 처음 관계를 어떻게 맺어가는지가 이후의 관계를 상당부분 규정짓는 것 같다.

근무를 시작한지 한달이 넘어도 사람들과 데면데면한 인턴은 근무기간이 끝나도록 겉도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지지만 의외로 초반에 쉽게 친해지면 이후에도 상대적으로 속편한 인턴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관계를

쌓아간다는 게 정속 운행이라기보다는 뭔가 초반에 가파르게 얼마나 치고 들어가느냐가 중요한 탓 아닌가

싶기도 하고, 초반에 사람들의 관심을 어느정도 끌 수 있을 동안에 얼마나 호감을 쌓을 수 있느냐가 관건인 듯.


인턴이 어떻게 해야 잘 보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많이들 하는 것 같던데, 경험상으로는 '인사잘하기'가

최선이지 싶다. 사무실에 올라가는 엘레베이터 안에서나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혹은 통로를 왔다갔다하며

마주치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인사만 제대로 해도 의외로 쉽게 좋은 평판을 얻을 수 있다. 사실 인턴이

그 밖의 요소로 눈에 띄고 주목받기란 쉽지 않은 게 사실이기도 하고, 정말 두번 뒤돌아보게 되는 정도의 외모

정도가 아니라면 말이다.


사실 인턴이든 신입직원이든 밉게 보고 갈굴 만한 꼬투리가 달리 뭐가 있겠는가. 쟤는 인사도 안 하더라, 쟤는

화장실에서 휑 소리나게 돌아나가버리더라, 눈 마주쳐도 웃지도 않더라..그 정도 꼬투리를 잡을 수 밖에 없는데

선제적 대응 차원에서라도 '인사하기'란 중요한 생존 스킬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휑한 분위기의 엘레베이터나 통로에서 낯선 얼굴의 직원이 보인다면 주위 사람들은 모두 관심을 갖고 저 친구가
 
누구인지 궁금해 하기 마련인데, 그렇게 알게 모르게 쏠리는 관심에 부응하여 때마다 밝게 인사해준다면 상대도

어느순간 자신의 이름을 묻거나 불러주며 아는 척을 해 주더란 게 개인적인 경험.

뭐 화장실에서는 목례만 가볍게 하라거나, 한번 인사한 사람한테는 가볍게 눈인사만 해도 된다거나 하는 세세한

어드바이스들이 있다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그 조직에서 하고 있는 대로 따르면 되는 일이지 싶고, 인사를 먼저

잘 하고 다니는 게 쉽지만 확실한 자신의 존재를 각인하는 정공법이라 생각된다.




분명히 그런 식의 지시였다. 자신이 손보아 놓은 자료를 그대로만 타이핑해달라는 거였다. 급하다 했다.

드문드문 오자도 보이고 문맥이 어색하다 싶은 것도 있었지만, 자신이 다시 정리할 거라 했었으니 그대로 갔다.

자료를 넘기고 한 오분이 지나서, 그는 내게 심각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깔고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당신을 쓰는 게 고작 단순 작업하라는 건 줄 알아? 머리쓰고 일 안 할 거야?


어쩌라구. 그때는 참 이상한 사람이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그런 식으로 자신의 실수 내지 무지에 대해

타인(이라 쓰고 약자라 읽는다)을 힐난하는 사람이 의외로 적지 않은 듯 하다. 힐난하지는 않더라도 그들의

불명료하고 애매한 지시로 인해 빚어진 혼선의 결과를 두고 상대에게 '실망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뭐라고 뒤늦게 해명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 또 그러겠지. "말대꾸까지 하네 요놈?"

억울한 일 안 당하고 부당한 평가 안 받으려면 미연에 방지하는 수 밖에 없는 듯 하다. 우선 이해하지 못한 일,

그림이 제대로 안 그려지는 일을 받으면, 조금 혼자 고민해보다가 바로 모르는 부분을 말하고 조언을 구하는 게

정공법이다. 또 센스없게 첨부터 모르겠다고 뻗대는 건 피하고,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게 괜찮은 듯 하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A->B->C->D 이렇게 넘어가면 되는 거 같은데 맞는 건가요? 특히 B->C 부분이요?"

애초 불분명한 지시라면 차라리 지시를 스스로 좀 명료하게 되묻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내 경우였다면 이런

식으로. "제가 고칠 수 있는 부분은 고쳐볼까요?"


아무리 피하려고 애써도 어떤 분들의 억울하고 편파적인 평가는 피할 수 없는 똥물인지 모른다. 그런 소소한

것들에 넘 스트레스 받지는 말기를. 어차피 직장 들어와서도 받을 거 미리부터 받지는 말길.




모처에서 인턴을 할 때 친구가 '싸대기'와 온갖 쌍욕을 들었던 이야기다.


그 부서에는 나와 또다른 친구 하나가 투입되었는데, 미처 우리를 위한 자리가 마련되지 않아 마침 비어있는 선배

자리에 급한대로 앉으라고 했었다. 뭔가 지급된 노트북을 사용한 작업을 시켰는데 책상 위는 온통 서류와 책들이

가득 어질러져 있길래 조금씩 밀어내거나 차곡하게 쌓아두고 딱 노트북이 자리잡을 정도의 공간을 마련했다.

우리가 공간이 없어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본 지나가던 분이 조금씩 치워서 하라고, 괜찮다고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주인이 없는 자리를 빌려 앉으면서 함부로 위치를 옮기는 건 기분이 나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최대한

손을 안 대려고 했다.


이쁨 받겠다고 일찍 출근해서는 부서원들 책상 위를 정돈하는 인턴 이야기도 얼마 전에 들었지만, 아무리 청소라

해도 자신의 책상이나 공간에 남의 손이 타는 걸 싫어하는 게 일반적이지 않나 싶다.


어쨌든,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했다. 그렇게 정신없고 긴장한 채 하루를 보내고 났더니 다음날 그 선배님이

출근해서 두 명 다 호출한 거다. 이 자리 누가 앉았었어, 누가 남의 자리 앉으래, 앉아도 물건을 건드리면 되겠냐,

너는 부모님이 그렇게 가르치냐, 뭐 이런 되먹지도 않은 엑스엑스 삐삐 운운. 급기야 친구는 뺨을 맞았다.


물론 그 분의 성격 자체가 스스로 흥분을 자가발전하며 열폭하는 스타일이기도 했고, 뭐 아마 그날 따라 기분이

안 좋았을 수도 있다. 어디에나 그런 성격을 가진 분들은 있을 수 있고, 자칫 재수없고 잘못까지 하면 이렇게

맞을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 케이스기도 하다. 그렇지만 사실 실수한 것은 맞다고 생각한다. 여의치 않아 남의

자리에 잠시라도 앉게 되면 그 자리 주인의 물건들에는 손을 대지 않고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게 원칙 아닐까.


남의 책상에 함부로 손만 안대면 맞을 가능성은 반으로 줄어든다.

"저기요, 무슨무슨 일은 어떻게 하나요?" "저기요, 여쭤볼 게 있습니다." "저기요" 운운.


인턴의 저기요, 비단 인턴 뿐 아니라 신입직원들도 종종 범하게 되는 실수가 아닌가 싶다. 뭔가 다급했거나 당황한

상황에서 나올 수야 있다고 하더라도 가끔 굉장히 차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상대를 부르는 인턴을 보곤 했다.

'Hey'같이 단순히 주의를 환기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 일종의 호칭으로 "저기요"를 상습적으로 쓰는 건 좀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어쨌든 인턴으로 있는 동안 함께 일하는 동료, 혹은 선후배로 가깝게 지내야 할 관계인데

마치 시장통에서 익명의 사람을 부르는 듯한 이런 호칭은 피해야 할 것 같다.


인턴이 윗사람들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회사마다, 또 부서마다 분위기가 다르고 나름의 룰이 있을

거다. 개인적으로는 들어온지 얼마 안된 분들하고는 '선배님' 정도 부르면서 친하게 지내는 게 좋은 거 같다.

그렇지만 역시 가장 바람직하다거나 일반적인 룰은 그공간의 사람들이 서로를 어떻게 부르고 있는지를 알고,

과거의 인턴들이 어떻게 불렀으며, 또 그 분들이 어떻게 불리고 싶어하는지를 그나마 제일 만만하고 가까운 분께

넌지시 여쭤보는 거라고 생각한다. 모르는 것을 물어보고, 좀더 잘해보겠다고 물어보는 건데 쫄지 않아도 된다.

우리 회사같은 경우는 인턴과 주로 함께 일하는 바로 위 직원에 대해서는 '누구 선배'라고 부르고, 다른 분들에

대해서는 직급을 불러드리는 게 룰인 듯 하다. 그 밖의 계약직 등 비정규직 분들에 대해서는 '누구 씨'라고

부르는 게 일반적이다.


첨언하자면, 일부 '몰지각한' 신입직원도 바로 윗 선배를 이런 식으로 부르는 경우가 있어서 '개념없다'란 뒷담화를

듣기도 한다. 인턴이나 신입직원이나, 어떤 면에서는 상당히 겹치는 실수들이나 태도가 보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인턴 생활을 하면서 어느 정도의 눈치를 쌓고 경험치를 높인다면 나중의 신입직원 생활에도 도움이

적지 않을 거 같다. 역시, 어느 정도는, 하기 나름인 거랄까.



어제는 우리 회사에서 3월에서 6월, 한 학기동안 함께 일할 인턴들을 뽑는 면접을 함께 했다. 학점인정이 되고

노동부에서 지원받는 인턴제도라 그런지 경쟁율이 정식 공채 못지않게 가혹하다고 한다.

이미 치열한 서류 심사를 거쳐 면접만을 남겨둔 그들은 이미 적어도 한두개의 인턴 경험과 여러 학내외 활동, 또한

컴퓨터 관련 자격증에 제2외국어 자격증까지, 취업준비생으로서 구비해야 한다는 여러 아이템들을 획득한

'준비된 취업준비생'인 셈이었지만, 다들 까만 정장을 어색하게 차려입곤 긴장된 기색이 역력했다.


무엇을 물어봐야 할지, 내가 면접을 보는 입장에서 생각나는 질문은 사실 그다지 신선하진 않았던 거 같다.


우선 암만해도 인적사항을 한번 일별하며 눈에 띄는 특이사항에 대한 질문을 하며 시작하게 되었다.

"경력사항 중에 이건 무슨 내용이었는지?"

"이 전공은 어떻게 선택하게 된 건지?"

그리고 그래도 나름 신선하다 싶었던 건 각자의 이메일 아이디에 대한 의미를 물었던 질문이었다. 이건 사실

내가 취업을 준비하면서 내 아이디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에 가능한 질문이었는지 모른다.


그다음 질문할 만한 건 아무래도, 그런 거다.

"꼭 이 팀에 지원한 이유는 무엇인지?"

"이 팀이 어떠한 일을 하는 팀이라고 알고 지원하게 된 건지?"

이러한 질문들은, 사실 의외로 많지 않은 사람들이 우리 팀에 1지망으로 지원했다는 사실에서 비롯한

건지도 모른다. 지원자들이 팀들의 소개를 전부 듣고 그 중 1, 2지망을 선택해서 각 팀 담당자들과 면접을

보는 방식이었는데, 인사담당자가 우리 팀 경쟁율이 높을 거라고 지레 겁을 줘서 그런 것 같았다.

어쨌든, 아까 내가 설명했던 우리 팀의 일하는 방식과 내용을 제대로 들었는지, 그리고 그걸 자신의 목소리로

다시 이야기할 수 있는지 보고 싶었다.


다들 이야기를 잘 하는 편이었다. 단답식으로 뚝뚝 끊기는 대답을 하지도 않았고, 자신감있는 태도로

자신을 잘 어필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몇 가지 거슬렸던 점은 다소 공격적으로 느껴질 만큼 자신있게 치고 나오는

그(녀)의 반응속도라던가, 말할 때 고개를 흔들거나 입술을 삐쭉이는 태도 정도?

내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로 내 호흡을 채고 나와 대답하는 건 글쎄, 여러모로 좋아보이지 않았다. 생각을

조금 하고 대답하는 게 더 나아 보일 것 같고, 상대가 질문을 주면 그 호흡에 맞춰서 대답을 건네는 게 편안한

분위기로 가도록 도울 거 같고. 자칫 너무 도전적이라거나 비우호적이라고 느끼기 쉬운 듯 하다.

말할 때 고개를 흔들거나 입술을 비대칭으로 삐쭉이는 것 역시 상당히 신경쓰였다. 뭔가 안정되고 차분한

태도로 말하는 게 아니라 중간중간 입술을 씰룩이거나 고개를 흔드는 등의 산만한 제스쳐는 괜시리 내 주의를

흐트러뜨리고 상대에 대한 호감도를 저하시키는 것 같다.



몇가지 질문을 더했다.

"친구들이 당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성격은?"

"이 인턴 경험이 앞으로 취업을 준비하는데 어떤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하는지?"


사실 인턴이란 게..그렇게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하는 것도, 재미있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닌 거다. 그렇지만 하루 종일
 
전화기만 붙잡고 RSVP를 확인받는다거나, 등록데스크에서 내빈들을 상대해야 할 일이 많을 테니 센스라거나

발랄함 같은 것이 굳이 요구되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우리 팀 같은 경우에..팀워크를 중시하며 하나의 행사를 같이
 
준비하기 때문에, 말하자면 인턴은 그 중 자그마한 하나의 부분을 준비하는 걸로 끝나버리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는데, 그런 것들을 감수하고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를 남길 수 있을지 궁금했다. 게다가 전체 그림을 보면서

자신의 맡은 부분이 뭔지 계속 위치를 잡아가지 못한다면 붕뜨고 의미없는, 재미도 없는 고역이 될 수 있을 거라서

염려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는 뻔하지만 중요한 질문.

"무엇이든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물어보세요."
 
이 질문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지만, 상대가 얼마나 이 인턴에 열의가 있고 관심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인턴을 하는 자신을 상상해 본 듯한 지원자는 좀더 구체적이고 한단계 깊이있는 질문을 했고, 그렇지

않은 듯한 지원자는 좀 뜬금없다거나 문득 떠오른 듯한 질문을 했다.


면접을 당하는 입장이 아니라 하는 입장이 되니까, 의외로 재미있는 것들이 많이 보인다. 그 중 하나는 대체로

사람들이 보는 눈은 비슷하다..란 점이었다. 각 팀들마다 눈독 들이는 지원자는 대개 중첩되어 있었고, 그건

어느 정도 첫인상에서 가름나는 거 같기도 하다. 면접이란 것도 어쨌든 사람을 만나고 사귀는 일, 자신의 얼굴과

자신의 분위기에 책임을 져야지 몇 개의 스킬이나 번지르르 외운 말과 단어로 커버될 일은 아니라고 이야기하면

너무 가혹한 걸까.


그나저나 정부는 인턴을 늘리고 신입 정규직 초봉을 줄이니 어쩌니...말이 많다. 20대(혹은 30대 초반)를 희생시켜

기성세대의 기득권을 사수하겠다는 건데, 말도 안 되는 짓거리다. 그렇지만 마치 '학생'이나 '아이'같은 집단이란

게 늘 물흐르듯 흘러가며 집단 구성원들이 바뀌기 때문에 자신들 집단의 이익을 보호하거나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 힘든 것처럼, '구직자' 혹은 '졸업예정자'라는 타이틀 역시 하나의 잠정적이고 금세 거쳐갈 임시적인 표식이라

이런 미친 소리에 반대하기가 쉽지 않다. 당장 취직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단물 쓴물 가릴 처지가 아니란 걸

아니까 더욱 답답할 뿐이다.





*                                   *                                   *

덧댐. 혹시 구직 중이신 분들께 도움이 될까 싶어, 예전에 포스팅해 둔 자기소개서 쓰는 법에 대한 몇가지 팁을

같이 덧붙여 둡니다. 자기소개서 쓰는 법에 대한 몇가지 팁. 





#1. 금주.

오늘 새벽 문득 발동된 금주령. 기자질한답시고 그간 쉼없이 술마시며 돌아다닌 게 많이 맘에 안드셨던 게다.

내 8년간의 생활..대학이나 군대나..에서 술 때매 버린 시간이 대체 얼마나 되냐고, 너처럼 술 많이 먹는 녀석

첨봤단 얘기에 불끈 금주 선언. 결국 금주령이 아니라 자체 금주선언인 셈인가..얼굴이 좀 많이 부어버린 걸로

봐서, 함 쉬어가줄 타이밍이긴 하다.



#2. 인턴.

굳이 정리라고 할 건 아직 모르겠다.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기자에 대한 열정이나 동경없이 들어간 탓일까. 훨씬

강하게 하고 싶은 말들 찍찍 해대고, 부사장이랑도 티격태격하고..고시공부하느라 한쪽으로 잔뜩 휘였던 가지를

반대쪽으로 홀딱 급꺾음하는 시늉인지도 모르겠고, 내 속내를 정련하는 과정인지도 모르겠고. 어쨌거나 부질없이

강성좌파 이미지만 바람이 들어가버렸다. 조만간 펑..할지도.


그렇지만 인턴기자질이 끝나고 났더니 또다시 레테르가 휘발되어 버렸다. 뭔가 손에 쥔듯한 안락감이 날아가

버리고, 태엽조차 미처 다 감기지 않은 어정쩡한 장난감처럼, 비실비실대고 있다. 레닌식으로, "What is To Be

Done?"이라는 호기로운 외침은 이제 이물감이 느껴진다. 그 기반이랄 "What Should I Do?"를 되돌이켜 보고

있다.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은, 즐겁지도 않은 되먹임.



#3. 글.

이미지겜을 이토록 집요하게 줄구장창 했던 적이 처음이라 그럴까. 내 이미지란 거, 그보다 말과 글이란 거,

무기력하기도 하지만 치명적이기도 한 거 같다. 말의 주술력. 난 소설쓰기엔 그다지 관심도 없지만 재능도 없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의 감정을 단도리하기에도 버거운데, 뜬금없이 펄떡이는 글을 써대고 싶지는 않았다. 글은..

아무때고 뱉어질 수는 없는거다.



#4. 사람.

다들 어학연수던, 교환학생이던 다녀온 재원, 재자들.ㅋㅋ 날카로움과 둔중함을 고루 갖추고 있는데다가,

풀어내는 말과 글에 자유로이 악센트, 크레센도, 피아니시모 등을 붙여가며 조이고 풀고, 그렇게 흐름을 통제할

줄 아는 사람들. 사람을 끄는 매력이란 게 이런 거구나, 라고 일깨워준 사람이 있었고, 내게 부족한 것들이 이런

거구나..라고 내 머리를 두드려 주기도 했고. 졸지에 친구들이 잔뜩 늘어버렸다. 멋진 사람들.




#5. 지리산.

용케도 지리산을 향한 마음은 살그머니 간직해두고 있었는데, 정말..가야겠단 생각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거기엔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안다. 단지 거기까지 가는 길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궤적에 우겨넣을 사념과 시간이

필요하단 건 알고 있다. 화욜..가면 목욜쯤 올 수 있겠지 싶다.



..납작하고 까만 작은 돌로 수제비를 뜰 때의 느낌. 어디론가 향하지 않으면 가라앉아 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조바심. 수면을 위태롭게 가로지르는 돌 중 하나, 제일 무겁고 뚱뚱한 거 하나는 '마음'이란 건지도 모르겠다.

뭐, 그냥 맥락없는 잡념이다.ㅋㅋ

사람 두명 덮고잘만한 사이즈의 깃발이 펄럭이는 걸 보면, 더구나 피처럼 붉은색의 붓글씨라면 가슴이 뛴다.

깃발을 볼 때마다 난 가슴이 뛰고, 또 내가 얼마나 비이성적인지 되돌아보게 된다. 1학년 때 곽모군과 표모군이랑,

전경이 겹겹 에워싼 학교를 넘보다가 담을 넘어 기어코 가보았던 국보법 문화제. 그 이후로 엔엘 애들 문화제는

참 오랜만이었다. 마임보단 전투문예가 좋았던 나.


연세대의 교정에는 자주와 민족이라는 단어들이 낙엽처럼 뿌려져 있었지만, 사람들은 발로 툭툭 찰 생각도 없어

보였다. 학교에서 아예 외부인사의 출입을 금하고 나선 분위기 탓도, 노무현의 '무능한 진보'라는 이미지 탓도

아니었다. 그냥, 으레 그런 시위 전야의 분위기. 더군다나 35도가 넘는다는 햇볕아래였으니.


문화제를 보면서 대체 한총련이 좌파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가 들었다. 물론 분단국가인 한국의 지형

아래에선, 통일을 말하는 것 자체가 진보성을 일정하게 담보할 수 있겠지만, '통일과 자주'라는 성긴

그물망으로는 빠지는 것들이 너무 많다. 이미 '지배 진영'의 수사로 포섭되어 버린 '민족 자주'라는 이야기의

한계도 있고. 이미 그들의 유인물에는, "미사일 기술을 원천기술로 해서 남북한 양국이 과학강국으로 발전하자"

라거나, "통일이 되면 북한의 값싼 노동력으로 국가발전에 획기적인 전기가 된다"등의 위험한 이야기들이 버젓이

실려있다. 민족의 딸로 성화된 효순, 미선의 여성성,그리고 부끄러운 민족의 치부라서일까, 거기서 배제되기

십상이던 성매매 여성들의 죽음들은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우리 '민족'처럼 순박하고 착하지 않아서 제국주의적인 모습을 보이는 게 아니다. 피해자로

스스로를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를 정화하고 순결한 양 치장하고 싶은거 같다. 우리나라가 "분단의 족쇄를

끊고, 미제의 얼룩을 깨끗이 씻어내면" 평화와 행복으로 가득찬 세계가 도래한다는 건가. '양키'와 '원숭이'와

'뙤놈'이 우리보다 센게 문제라는 건가. 그물망을 보다 섬세하게 짜보려는 노력 따위 보이지도 않았다.

반미투쟁!이라는 꼬리말이 무색하게, 영어단어들이 무딘 혀끝에서 적잖게 튀어나왔다. 문화제에서 사장과

노동자는 오로지 통일을 위해 어깨를 걸었으며, 통일은 무조건 되야한다는 말에서 공감을 요구했다.


결국, 한총련 혹은 민족자주 진영은...멘탈리티로 뭉쳐있을 뿐인 거 같다. 민족에 대한 센티멘탈리즘과

전통사회에의 향수. 미국을 최종 심급의 거악으로 규정짓는 순간 세상사는 단순해진다. 어찌보면 이미 한총련은

비전이 희미해지고 있다. 통일 이후에..그들은 어떤 비판의식을 유지할 수 있을까. 통일이 마치 세상 끝날인

것처럼 절대적으로 봉헌된 마당에. 노무현을 때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아직도 재고 있다. '민족'과 '자주'는

더이상 비주류가 아니다. 센치한 녀석들.


통일을 말하고, 민족을 운운하는 건, '민족정론'을 자처하는 우파 보수 언론들이 해야 할 거 아닌가. 왜 이땅에선

그런 것들이 빨갱이로 몰려 '좌파'로 매도당하지? 좌우가 상대적인 개념이라면, 대체 우리나라에서 그들을

'좌파'라고 칭하는 진영은 어떻게 스스로를 규정짓고 있는 걸까.



#. 왜 동아일보는 노무현을 '좌파정부'라고 까대냐는 내 질문에 선배기자가 했던 말. 원래 좌우는 상대적인 거야.

치사하고 교활한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좌'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과 불신감을 심어놓은 왼손이 한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한다 이거지.

#. 다 쓰고 나서 봤더니, 난 어쩜 '좌'라는 단어에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다. 센치하게.ㅋㅋ

알선수재 및 배임혐의로 기소된 정몽구. 그가 조중동, 혹은 동조중의 엄호를 받아 보석으로 나오곤 두번째

공판이었다. 대각선으로 내 바로 옆자리에 앉아있던 검버섯핀 왕년 깍두기 스탈의 할배가 정몽구인줄은 몰랐다.

그는 포승을 차지도, 병원복을 입지도 않고 방청석에 앉아 있다간, 특별히 제공된 푹신한 의자에 앉아 네명

피고인 중의 수괴임을 자랑했다.--;


검찰은 변호인단이랑, 증인이랑 싸우고 있었다. 초동수사 쯤에 어설프게 뱉었던 말들의 사전적의미를 잘

주물러서 방향을 바꿔보려는 증인들의 '잘 기억이 안납니다', '모르겠습니다' 랩소디. 현대우주항공을 왜

두차례나 증자했는지, 0원으로 평가받은 주식을 왜 5000원으로 몇백억어치씩 발행한건지, 그대들에게

구조조정이란 결국 '청산'의 다름아닌 말이었는지, 정몽구는 자기 개인빚을 왜 계열사에 떠넘긴건지, 하나도

풀리지 않는 신비. '절차적 정의'를 찾는 과정은 너무도 지난하다.


네 시간동안 에어콘도 안 나오는 답답한 법정에서, 어디 장례식에 온 양 깜장양복쟁이 현대맨들이 우글우글한

사이에 껴서, 선배가 시킨대로 말하나 빼놓지 않고 다 적고 있으려니 문득 한심해졌다. 아무 알맹이도 없는, 이미
 
모든 신문들에서 몇번씩 우려낸 이야기를 왜 이렇게 소중히 받아적고 있을까. 펜도, 종이도 아깝단 생각.

증인이랑 변호인이랑 입맞춘 게 뻔히 보이고, 논리도 어떻게 끌고 갈지 뻔히 보이는데-국가 경쟁력 운운..-왜

여기서 웃기지도 않은 개그를 보고 있어야 하는지 하고.


신문은 '일용'할 정보를 판다. 유효기간은 하루. 만물은 유전한다. 며칠전까지 현직이던 조부장판사의 법조비리

이야기로 며칠째 시끄러웠지만, 계단형의 진보를 무작정 믿지 않는다면 무의미하다. 우리는 여전히 같은 기둥을

휘감고 뺑뺑이치고 있고, 신문에서 다루는 사건, 사람, 논조, 모든 건 무성생식중이다. 기자란 건, 참 허무할 거

같다. 보람을 찾을 수 있을까. 글나부랭이로, 무엇을 전하고 무엇을 바꿀 수 있을지. 서래마을같은 엽기적인

사건도 몇년 전, 또 몇년 후 마주칠 사건. 정몽구의 보석, 그리고 웃기는 공판도 몇차례씩 보아온 그것. 데자뷔는

뇌의 작용만이 아니다.


하루살이에게나 소중한 게 신문아닐까. 어쩌면 지금 중요한 건 무슨무슨 사건..이 아니라, 도돌이에서 다카포로

무한반복하는 리듬이다. 신문이 죽는 이유는, 더이상 new's가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디선가 본 기사, 어디선가 본 말투. 아마도 예측가능한 결말. 재미없다. 원심력이 필요하다.

모처럼 한가한 토요일, 늦잠 좀 자고 동생데릴러 드라이브 좀하고 '시월애' 좀 보고 천호동가서 친구들이랑

양주먹었더니 다가버렸다. 그러고 보니 인턴시작하고 매일 술을 먹었다. 거의 모든 점심, 저녁마다 반주삼아

마신다는 술이 몇병씩으로 늘어났으니. 술자리의 즐거움이 조금씩 소실되며 '술자리'가 '일자리'로 변질되는

느낌이 짙다. 이것도 '음주'로부터의 소외 현상인겐가.


법조팀으로 옮긴 후, 대검찰청에 견학을 다녀왔다. 인천 가월도 어린이들과 함께 둘러본 대검 내부에서, 검사와의

대화시간이 있었다. 푸근한 웃음을 지어보이는 여검사는, 아이들에게 "가장 무서운 형벌"이 무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감옥가는 거요, 오리걸음이요, 토끼뜀이요. 어디선가 사형이요, 라고 머리굵은 대답. 검사는 반가워하며

그렇담 사형이 뭘까, 하고 꼬리를 물었다. 선뜻 대답을 하지못하는 아이들. 이제 검사가 곤혹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사형이란 건, 사람을 죽이..도록 시키는 일. 이란 게 그녀의 늦은 대답이었다. '사형'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다.

이토록 단순한 설명을 쉽게 내뱉지 못하는 건, 토끼뜀을 가장 무서워한다는 아이들에게 도무지 설득할 자신이

없어서였으리라. 어쩌면 사형을 합리화하는 지반이란 게 생각보다 약할지도 모른단 기꺼운 생각.


법조팀가서 처음 마주친 사건은, 최근 대법원과 대검찰청 간에 굵은 갈등선을 그은 '김홍수 브로커관련

조부장판사 건'이었다. 마지막 남은 성역이라 칭해질 만한 중진급 판사, 브로커, 고위직 출신 변호사가 얽힌 수뢰

사건인지라 검찰로서도 쉽지 않았던 듯. 대검 3차장검사와의 언론브리핑에서 칼을 품은 말들이 소득없이

날라다니는 것을 보고, 그날 저녁 조부장판사의 '정치적인' 사표가 수리되고 바로 선배기자와 전화인터뷰하는

것을 옆에서 들었다. 음..결론적으로는, 불쑥 터져나온 법원의 치부를 가능한 이뿌게 봉합하는 방법이었던 것

같다. 판검사간의 갈등도 다시 잠복.


에어콘도 시원찮고 천장만 휑뎅그레한 법원건물은 참 위압적이다. 기자 생활 10년까지는 자신이, 자신의

취재원과 동류인 거라고 착각하고 거들먹거린다고 했다. 이러저러한 '높으신 분'들과 함께 밥을 먹다보니, 그

말이 진짜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난민촌같이 부산스럽고 정신없는 기자실로 돌아가면 조금

정신이 들려나..매일같이 정장을 입고 출근한다는 게 무지 힘들다. 원래 여름엔 나시에 쪼리 하나 찍찍 끌고

다니는게 젤인데..ㅠ.ㅠ

"신문은 싸우면서 만드는 거다."

국제부 선배기자가 했던 말이다. 동아일보에서 국제부란 공간은, 귀양지랄까, 다소 소외받고 있는 곳 같다.

정치부에 있다가 노무현 탄핵사태때 미운털이 박혀서 떠밀린 선배. 신문은 싸우면서 만드는 거라면서,

동아일보에 굵게 그어진 균열선 하나를 보여준다. 평기자들 대 데스크 윗계급 사이. 사회부에 왔어도 마찬가지다.

대법원과 대검찰청에 있는 선배들도 동아일보의 '삿대질'같은 기사들을 보고 아연해한다.



그렇게 간단하지도 않다. '동아일보'란 덩어리가 내부의 다양성을 무시해버리듯이, 그렇게 간단히 그어버린

전선은 많은 것들을 지워버린다. 요샌 젊은 기자들이 동아일보 데스크의 입맛에 맞는 기사들을 '알아서' 골라

쓴다는 것, 세무조사때 조선과 중앙의 개뻘짓과는 달리 동아는 기자총회를 거쳐 아무런 조직적 대응을 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 그리고 다른 부서가 관할하는 기사에는 전혀 서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 fact를 다루는

기자는 결국 기능인에 불과하다는 것.

눈높이를 어디에 맞추냐에 따라 새로운 문맥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인턴기자에 대한 그들의 선입견도 마찬가지다. "한겨레만 보며 감정적으로 치닫고 아주 순진하고 이상적인

편향성을 가진 대학생" 정도랄까. 선배기자들과 말을 섞으면서 계속 부딪히는 편견. 생각보다도 훨씬 더, 우리를

대학생이라고 덩어리짓는 힘보다 갈기갈기 찢는 힘이 클지도 모르는데. 확고한 ready-made의 시각이 편할지는

몰라도, 공허해질 뿐이다. '구호'에서 '구체'로. 갈수록 어려워진다.

동아일보 국제면은 해외토픽인가.

 조금이라도 한국에 관련된 기사는 다른 지면으로 넘어간다. 여타 신문도 마찬가지지만, 동아일보의 국제면은 특히 그렇다. 포차 떼고 장기두는 격이다. 미일-중러의 군비 경쟁,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정치면에서 다룬다. 북한, 독도문제는 정치, 사회면, 그리고 동원호는 사회면이었다. 오늘자 발제를 봐도 그렇다. 사실의 선택 자체가 정치적이라는 점은 알지만, 국제면은 한국의 독자들에게 대체로 무미하다.

 국제부에서 종합면이나 사회면을 빌어 쓰는 기사는 그렇지 않다. 동아일보는 국제면을 약간은 진지한 일종의 해외 토픽란으로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국제부 기자는 국제면과 일반 지면을 오가면서 기사를 쓰는 것이 원칙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내 지적은 무의미해지겠지만, 국제면 자체로 한국의 독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던지고자 하는가.



사실을 꿰는 바늘은 누가 쥐고 있는가.

 국제면에서 기사화된 ‘미국’, ‘레바논’ 등의 먼나라 이야기들은 해석의 과정을 거치면서 독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의미를 던지게 된다. 스트레이트성의 기사들은 나름대로 깊이 있는 이해와 전문지식을 가지고 쓰여졌고, 균형을 맞추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점은 알게 됐다. 하지만 정작 이러한 사실들을 꿰어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국제부 외부의 칼럼진이나 논설위원이고, 아주 가끔은 ‘기자의 눈’, ‘광화문에서’를 확보한 국제부 기자이다.

 동아일보는 국제부(라는 정체성이 존재하는지는 차지하고라도)에서 그러모은 사실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고정적인 공간을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본다. 물론 동아일보의 정견과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한 조율이야 불가피하겠지만, 동아일보가 포용할 수 있는 정치적 스펙트럼 내에서 국제부 기자가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에 나서는 것도 필요하다. 사실과 해석이 떨어질 수 없는 까닭이다. 그것이 바로 언론들이 논조를 세련화하고 서로 소통가능한 기반을 만드는 초석이다.



여전히 특파원이 필요한가

 인터넷을 통해 공간적인 제약을 극복할 수 있게 된 오늘날, 특파원은 해당 지역의 뉴스에 대한 우선 접근권을 상실했다. 특파원에게 남겨진 역할은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현지에서만 얻을 수 있는 생생함을 기사에 투영하는 것이 하나이고, 해당 지역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넓은 인맥을 바탕으로 전문적인 취재를 하는 것이 다른 하나이다. 하지만 동아일보의 특파원 제도는 그러한 문제 의식없이 구태의연하게 운영되는 것 같다.

 지역 전문가를 육성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특파원을 보낼지 말지의 문제가 아니라, 해당 지역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안목을 갖추고 있는지가 문제이다. 기술적인 차원에서는, 단기 특파원 제도를 활용하거나 현지 언론과의 제휴를 강화해서 현지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파원이 왜 여전히 필요한지부터 따져야 한다.



국제부 인턴을 마치는 개인적인 소회

 신문은 더 이상 신속성이나 가독성을 염두에 두어서는 안 될 것 같다. (굳이 신문을 찾아보는) 독자들은 수준도 높고 관심도 크다. 역피라미드형의 우람한 기사틀은 이제 재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자를 ‘글 잘 쓰는 사람’이라고 흔히 칭하지만, 인턴을 해보니 그보다는 ‘사실을 잘 전달하는 사람’이라는 정의가 아직까지는 적절한 듯하다.

 국제부의 인턴 프로그램이 참 좋았다. 기자를 본격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본격적인 기자 훈련보다 이곳의 분위기와 개략적인 이미지를 얻는 것이 훨씬 유익했다. 그리고 이아무개 선배, 김아무개 선배를 비롯한 국제부 기자들도 인턴기자를 귀찮아하지 않고 살갑게 챙겨주는 것이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는, 점심시간에 이스라엘 대사관으로 뉴스브리핑 갔을 때 이아무개 선배가 점심은 어떡할 것인지 네 번이나 전화를 해서 챙겨줬던 것이 제일 가슴에 와닿았더랬다. 부장님, 이아무개 선배님, 김아무개 선배님의 술 약속도 잊지 않고 있다.



하나 더.

 동아일보는 보수지다. 이는 위험하지도, 감정적이지도 않은 말로 들려야 한다. 국제부 인턴을 두 주간 하면서, 많은 질문을 던지기도 했고, 많은 대답을 하기도 했다. 그러고 나니, 덩어리로 인식하고 있던 ‘동아일보’라는 ‘공기’는 이제 나름의 내부 동학을 가진 ‘기업’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보수적인 사람들에게 보수적인 논리와 사실을 제공하는 것이 이 ‘기업’의 영업방식이다.

 다행인 것은, ‘찜질방 한번 안 가본 기자가 찜질방 기사를 쓰더라’는 인턴 동기의 이야기는 전혀 실감할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국제부의 선배기자들은 나름의 시각을 가지고 있었고, 많이 열린 자세를 갖고 있어서 좋았다. ‘보수’, 혹은 (상대적인 개념어로서) ‘좌파, 우파’라는 단어가 거부감없이 쓰일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하는 동아일보를 바란다.

오늘도 점심때 소주, 저녁때 소주, 그리곤 맥주로 입가심..했더니 지하철 노약자석에 앉아 잠이 들어버렸다.

종점에 사는 것이 좋은 점도 있구나 싶었다. 선택지를 버리면, 맘편히 잠들 수 있다. '저, 여기서 내려요' 정도의

대사가 방해하지 않는한, 여닫히는 문과 그 밖에 펼쳐진 풍경은 내게 아무 의미도 없다.



1) 일개미가 쉴새없이 먹이를 실어나르듯, 기자들은 끊임없이 하루짜리 fact를 주워모은다. 자유롭다고도,

자유롭지 않다고도 말할 수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속박이 만만해보일 수도, 혹은 이미 자기검열이 시작되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다만 일정한 수준내에서 자신의 입맛대로 상큼한 먹잇감을 골라든다.


2) 이른바 데스크에서 조율이 이루어진다. 무엇이 'new's인지, 어떤 것이 '기사로서의 가치'가 있을지 정하는

것은, 생각보다 비이성적으로 결정된다. 찜방 한번 안 가본 기자가 찜방기사쓰듯.


3) fact는 언어로 짜여지기 시작하고, 그럴듯한 레테르로 포장된다. 글말 가지고 먹고사는 사람들이라 단어를

배치하고 뉘앙스를 얹어주며 아웃복싱의 쾌감을 느끼다. 어디에 힘을 실어줄지 결정하는 정교한 구조물. 물론,

스트레이트성 기사는 역삼각형의 흉칙한 바디.(이제 신문을 읽는 독자가 신속성, 가독성을 중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면, 문체도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4) 기사의 표현과 호흡이 유지하던 아슬아슬한 객관성의 외피는, 논설과 칼럼에서 화려하게 재정렬된다. 무질서한
 
듯 뿌려져있는 철가루를 바싹 긴장시키는 강력한 자기장. 기사면에 헐겁게 매달려있던 구슬들을 꿰맨 바늘은

누군가에게 날아가 꽂힌다. 조선의 계륵, 동아의 '약탈정부', '노무현조크' 따위 유치한 삿대질, 그리고 그것에

대처하는 유아틱한 정부의 막말은 차치하고라도.


0) 애초, 객관성은 무리다. 기자들은 사실 기능공이다. 누추한 현실을 재단해서 뭔가 있어보이게 짜깁기하는

바느질공. 아니, 기자는 단지 한 땀만 꿰매는 건지도 모른다. 각자가 가진, 서로 구태여 확인하며 맞춰볼 필요없는

정향에 따라서 허용된 한땀을 꿰맨다. 삐뚤빼뚤하게 엮여나간 실의 궤적은 때론 비둘기를, 때론 매를 그린다.

혹은 정신나간 art brut일지도.



...'동아일보'라는 덩어리를 깨서 보기 시작했다. 80년대 해직기자들은 아무러해도 결국 무능력과 비사교성으로

짤릴 처지였단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고, '지식인의 군기'를 요구하는 선배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사실은, 5시가 다가오면 죽을듯 괴로워하며 헛구역질하듯 글을 토하는..안쓰런 족속인거다.

하지만 사회에 버티고 선 건, 동아일보 기자 누구가 아니라 논설과 칼럼을 두른 동아일보 덩어리다. 대체

마이크를 쥔 건 누군가. 기자에게 쥐어진 건 고작 외마디 fact를 울리는 캐스터네츠 아닌가 싶다. 짝. 짝. 짝.

누군가가 그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아, 물론 모든 신문은 정향이 있어야 한다. 동아일보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언론'의 문제. 1인 1매체가

불가능하다면 부딪힐 수 밖에 없는 괴리감의 존재. 게다가 잔뜩 우그러진 정향이라면야.

이번주는 아시아재단이나 ICG같은 곳으로 인터뷰 반, 견학 반 다니느라 상당히 바쁘게 지나갔다. 내일은

저번주부터 추진했던 이스라엘 대사와의 인터뷰. 첨에는 사실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대사랑 인터뷰해봐야 동아일보 지면을 이스라엘 찌라시로 만드는 게 아닌가 싶어서. 이런저런 기사를 찾아서

사전 조사를 하다보니 이자식..생각보다 매콤하다. 국제부 선배가 오늘 중동 문제에 대한 '간단한 브리핑'을

해줬는데, 딱 그만큼 매콤하다. 이스라엘은 '영토와 평화'를 교환하고자 하며 성경이 점지해준 땅에 조용히

살고 있는데, 테러단체들이 숨통을 졸라온다는 거다. 사실의 채택조차 정치적이라는 사실을 '새내기 교육하듯'

그리도 강조하던 기자들이 정작 균형을 잡는 건 레바논이 '제대로 된' 주권국가가 아니라서 주권침해가

성립되는지가 애매하다는 지점이다.


당하고 있는 사람이 착할 거란 건 환타지다. 장갑차에 치었다고 갑자기 '순결한 애국처녀'로 둔갑하는 건

코미디다. 하지만 똑같이 테러로 맞대응하는 이스라엘이 '평화, 사랑' 운운하는 건 혐오스럽다.


질문지 위의 번호 붙은 것은 선배들이 선정해준 질문에 내멋대로 살짝 시즈닝, 그리고 #표시는 내가 묻고 싶은

것들. 대체 이게 기사가 어찌 나오려나......또 내 질문은 짤려버리는거 아닌지.

음음...동아일보는 조선일보보다도 보수적이다. 의외인 건, 프레시안 편집부장이던가...가 동아일보의 전직

국제부장이란 사실. 인턴을 조금더 일찍 왔어야 했던가.ㅋㅋ


1. 이스라엘은 이번 사태를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군인 2명을 납치한 것에 대한 자위권을 발동한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대대적인 군사작전은 자위권이 갖추어야 할 ‘비례의 원칙’에 어긋나는 대응이라는 평가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2. 이스라엘의 공격이 계속되면서 어린이나 노약자 등 민간인들에 대한 피해가 크게 발생하고 있다. 헤즈볼라와는 관련이 없는 일반 주거지나 사회 기반시설에도 대대적인 폭격을 가하고 있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민간인 피해를 막기 위해 이스라엘은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3. 이스라엘 총리가 이란을 이번 사건의 배후로 지목하는 등 점차 대립구도가 아랍권 대 이스라엘의 구도로 변화하고 있다. 헤즈볼라를 무력화하겠다는 애초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전장이 기타 지역(시리아나 이란)으로 번질 수도 있는가. 먼저 이스라엘을 공격하지 않는 한 전장이 두 나라로 확대되지 않는다고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는데, 전황이 장기화되는 경우에도 이는 유효한 약속인가.


4. 이스라엘은 현재 레바논에 헤즈볼라의 무장 해제를 휴전의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분열되어 있는 레바논 내각은 헤즈볼라를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레바논 남부를 무인지대화하거나 다국적군이 주둔하도록 구상하고 있는데, 이스라엘이 생각하는 이번 사태의 궁극적인 바람직한 해법은 무엇이며,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 레바논의 유엔 감시단원들은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초소가 파괴되기 전까지 6시간 동안 무려 10차례나 공격을 중단해줄 것을 이스라엘군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 사무총장도 이를 고의적인 공격으로 규정하며 규탄한 바 있는데, 이에 대한 이스라엘의 입장은 무엇인가.


#.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의 작전으로 헤즈볼라가 약화되면, 비록 레바논이 치르고 있는 희생과 대가가 크지만 레바논 정부의 주권 행사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알-카에다를 향해 수행했던 비대칭전쟁의 양상을 떠올리게 한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가 점유하고 있던 지역을 점령할 수는 있겠지만, 결코 단시간 내에 현장을 장악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은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이라크에서 벌어졌던 미국의 대테러 전쟁에서 어떤 교훈을 얻었는가.


#. 사실 여부를 떠나 노르웨이 등 세계적인 차원에서 반미 여론과 함께 반유대 여론도 대두하고 있다. 올해 3월 주한 이스라엘대사도 연세대 채플 시간에 강의를 하던 중 강한 반발을 샀던 일이 있는데, 한국 대중들의 반유대 정서를 막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강연 도중 아랍인들을 테러리스트라고 지칭하고 민주주의도 전혀 모른다는 등의 아랍권 비하 발언)

사실 기자에 대한 동경은 없었다. 단지, 짜장면 받침이 되더라도 일정하게 확보된 지면을 장악한 채 자신의

이름을 걸고 무언가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마이크'를 쥔 그들이 부러웠을 뿐.


국제부를 2주간, 사회부를 2주간 하게 됐다. 원래는 국제부 대신 정치부를 가고 싶었는데, 글쎄..암만해도 전공을

감안한 듯하다. 한국에서 '국제면'은 무슨 이야길 해야할까. FTA, 개성공단, 동아시아 군비경쟁과 우익화, 유엔,

북한문제..아니다. 국제면만이 실을 수 있는 건, 고작해야 얼음축구공을 핥고 있는 북극곰 사진과 어딘가

먼 나라의 축제 사진. 아니면 미인대회 사진?


FTA를 둘러싼 찬반논의가 간과한 건, 이미 한국은 벨트까지 끌러져내린 상태란 거다. 더이상 한나라의

정권이나 시민사회가 독존할 수 없는 세상, 미국조차도. 국제면 폐쇄를 건의해야겠다. 사회, 경제, 정치..살점은
 
모두 뺏긴 채 앙상하게 레바논 넝마 한벌 걸치고 있는 꼴이다. 그것도 경쟁지'조선'이 치는 만큼 따라간 기사.


아니면, 깊이다. 가십거리야 이미 사이버공간에 넘쳐난다. 최근 미국 외교정책의 전환이나, 중동과 유대인의 문제

그리고 약간의 국제정치학적 씨즈닝을 곁들이면 어떨까 싶은데. 글쎄...기사가 한국과 가까워지는 순간 다른

지면에서 요리된다. 조선처럼 적극적으로 국제기사를 '활용'해서 국내 정치를 까는 것도 아니고. 멕시코 대선을

보며 '일자리도 못만드는 정부는 필요없다'는 식.ㅋ


국제부 선배 하나가 그런다. 기사문에 익숙해지면 글을 못 쓰게 된다고. 이건, 어디에서도 잘려나갈 수 있어야

하는 인스턴트 글. 우람하지만 정형화된 역삼각형의 근육미는 그다지 매력적이진 않다. 도마뱀 꼬리처럼 언제고

잘려나간 준비가 된 나머지 글들이 허하다. 속보성이 떨어진다면, 훨씬 호흡을 잘 갖춘 글이 먹힐 수도 있을 거

같은데. 하긴, 알고 있었다. 하루치 상식(내지 상식인 양 포장된 교묘한 프로파간다)을 파는 지식 노동자, 먹고

살아야 하는 밥벌이로서의 기자질. 술자리서 부딪혔던 부국장단 아저씨들은 그들이 이미 태반의 삶을 실어버린

동아일보의 이미지와 정견에 대한 신념이 있었지만, 젊은 기자들은 그렇지 않은 거 같다. 뭐..좀더 깊이 이야기를

해봐야겠지만. 어디까지가 그들의 의지였고, 어디까지가 그들의 타협선일까. 땅따먹기 놀이같단 생각이 든다.

선을 그어 자유로이 밟을 수 있는 땅따먹기.

기자가 뭘까라는, 오늘 시작된 인턴 수업 매 시간마다 내게 불편하게 내질러졌던 질문. 사실 그다지 진지하게

뭘까~하고 생각했던 것이 아니어서, 일단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며 관망세를 취하다. 진리를 구성하고,

사회적 책임이 막중하고, 머 그런 것들이 짚어졌다. 김학준 사장은 조선 시대의 사관과 언관에 비유를 하기도,

혹은 군사독재 시절 정의의 횃불로 비유를 하기도 하며, 권력에 대해 결연하게 맞장뜰 수 있는 자세를 강조했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분명히 기자는 어떤 축복을 받은 직업이긴 할게다. 자신의 호기심을 도발하고, 그것을

충족시키는 쾌감. 무엇 하나 전문지식을 쌓지는 않더라도, 그만큼 자유롭게 알고 싶은 것들을 공부해가며 자신의

발로 눈으로 직접 알고 싶은 사실을 캐낸다는 것. 그저 쏟아지다시피 제공되는 정보에 만족하는 사람들과는

확실히 다른 입장일 거다.



하지만, 지금이 유교적 기치가 공고했던 조선 시대나, 악과 정의의 구분이 선명했던 군사독재 시대와 같을까.

절차적 민주주의가 확보되고 나선, 오히려 제멋대로 호명되는 '민주주의'의 허울. 역설적인 이념 과잉의 시대에서
 
'민주주의'라는 둔탁하고 애매한 수사로는 아무것도 말해지지 않는다. 확고한 지반은 이미 무너졌다.

도끼를 짊어지고 왕에게 상소를 하던 심정으로 오늘날 언론의 사명을 운위한다는 것은, 내게 다시 황장엽씨를

떠올리게 했다. 인간이 중심되는 세상을 구축하기 위한 그의 철학-함이 결국 기대고마는 '민주주의', 그것은

그러나 '미치광이'가 지배하는 북한을 의식해야 하는 한국에서는 의사 민주주의, 곧 반공 이데올로기로 변질된 채

제기된다. 그리고, 그 자신의 삶을 온통 묻어버린 그러한 사고방식은 자기가 옳다는, 옳을 수밖에 없다는

경직성으로 귀결된다. 맞장뜨자라는 도전적 사고. all or nothing의 극단성.

정치 권력에 대한, 시민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대립각.



오늘날 기자에게 필요한 건, 진부하지만 똘레랑스 같은 거 아닐까. 물론 자신의 정견이나 의견이 없을 수야

없지만, 그조차 사회의 이념적 스펙트럼의 한부분을 구성하는 톱니같은 것..이라고 인정하는 것. 구성되는 진실에

수만가지 버전이 있을 수 있고, 압축성이 생명이라는 짧막한 기사글에 담기는 진실이란 허약하기 짝이 없다는

자기 반성..주제 파악. 좀더 경험해보면, 어떻게 생각에 살이 붙어갈지 지켜볼 일이다.

얼마전 GS 중역들과 함께 했던 회식에서 전무 하나가 내게 마치 인사면접보듯 질문했다, 술이 불콰히 취해서

이런저런 얘기중에. 윤선생은, 자네는 나중에 무엇이 되고 싶은가.



그건 날 곤란하게 만드는 질문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자기소개서, 에세이, 커버레터를 쓸 때 잠시 손을 멈추게

되는 지점. 어쩔까 하다가, 늘상 몇마디 공격을 허용하고 마는 대답을 그대로 읊었다.

무엇이 되겠다는 완결된 꿈은 없습니다, 다만 하루하루 의미를 찾으면서 살고 싶습니다. 원점에서 항상 새롭게

볼 수 있는 시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변덕스럽진 않습니다.



만약 레쥬메를 들고 하는 Q&A였다면, 아마도 나는 이런 식으로 좀더 읊조렸어야 했을 거다. 이력을 얼핏 보면 좀

미친년 널뛰듯 한다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그 밑에는 일관된 열정이 있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제가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것이 책임감이라 쓴 에세이 역시 그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고자 함이였구요. 운운.



정형화된 남성성은 목표지향적인 반면, 여성성은 과정지향적이라 했다. 어떻게 보면, 나는 무언가를 갖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갖고 그 무엇을 향해 치닫는 '남성적' 성품이란 게...상당히 희박하다. 똑같이 '성취'라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예컨대 이번학기 학점과 같이, 그건 분명 목표학점을 찍어놓고 달린 결과라기보다는 리포트, 중간,

기말..하나하나 찍어나가면서 얻어진 결과였다. 사람들간의 관계 역시 그렇다. 對이성 관계에 있어서도, 애초부터
 
뭔가 이뤄보겠단 심잡고 만난다기보다는..그냥 만나는 게 좋고 보는 게 좋고 그러다 보면 뭔가 되든 안되든, 그런

것 같다. 그냥 '지금의' 것이 좋은 건데, 그 '지금의 것'으로부터 어떤 정향을 추출해내는 사람에겐 오해를

부르기도 하고. (어쩌면 이 모든 건 사람을 겁내고 감정을 두려워하는 내 핑계일지 모른다)



과정 자체를 즐긴다는 말은, 그래서 사회적 통념상 '불건전'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슬며시 빠져나갈

구멍을 항상 보고 있겠다는 말을 뒤집은 것인지도 모른단 얘기다. 원하는 목표 대신 목표를 향하는 길 자체를

즐기겠단 말, 어디로 어떻게 꺽이고 변화/변전/변질/변색/혹은 퇴색(?)되더라도, 사후적인 한마디,

이를 앙다물고/기꺼운 표정으로/썩소를 지으며/비극을 연기하듯, '재밌었어.' 혹은 '그걸로 충분해.'



내가 정말 과정을 중시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운전대를 잡고 '지금 현재'만 주시하는 고속주행에선

조그마한 돌멩이 하나가 밟혀도 차가 휘청하듯이, 조그마한 일 하나에 마음 전체가 왈칵 쏟아지기도 한다. 애초

별것아닌, 아주아주 사소한 일 하나라 할지라도, 그건 몇달몇년 간의 내 의지를 순식간에 뒤엎어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애초 그 바램, 의지란 것 자체가 뭐 그리 대단한 이유나 설득력이 있었겠냐만, 관성에 기대어 응고되어

가던 그 마음이란 게, 한순간에 휘발되어 버린다. 고시를 그렇게 그만 둘 수 있었던 것도, 사람과의 관계를 그런

식으로 정리하는 것도, 돌아서면 무지 차가울 것 같다는 누군가의 사려깊은 통찰도, 결국은 같은 궤적에 있는 것

같다. 현재를 탐닉하는 마음, 그리고 한순간의 (언제고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필연적일) 엇나감, 그리고는

망설임 없는 돌아섬. 그 돌아섬에는, 이러한 사건,일상,이벤트를 통해 무언가를 '얻었다'는 자기만족 내지

자기위안과 자족감이 가득한 데다가, 애초 무언가를 끝까지 추구하지 못하는 주의력 결핍장애나 집중력핍진증의

징후가 뚜렷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애초 전형적인 여성상에 비추어진 '과정지향적'이란 단어 자체에 마초적이고 악의적인 의도가

내포되어 있진 않은가 의심할 판이다. 아님, 초점을 보다 좁혀서, 나 자신의 성품이란 게 단지 '다소 여성적'이란

식으로 넘어갈 게 아닌 무언가 문/제/가/있/다/라고 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무엇을 끝까지 추구해서

상처투성이가 되더라도 '쇼부'를 보고야 말겠다는 우악스러움(혹은 집요함/보다 중립적으론 굳건함)이 결핍되어

있다. 그리고 여태까진, 어렴풋이 느껴졌던 그러한 빈궁함의 이유를 '목표'가 없다는 데서 찾고 있었지만..

그게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일본 애니에서 느껴지는 그 상실의 미학. 이쁜 비극. 그런 결말. 마지막을 얼마나 농도짙은 애수, 혹은

싱실감으로 가득 채울 수 있을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듯이, 거침없이 '추락하는' 캐릭터들. 애초 목표를 향해

쏘아진 살이 아니었다는 듯이. 얼마나 이쁜 궤적을 그리며 하루하루 추락했는지가 문제였다는 듯이.



과정이 중요하다고,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그 과정이 충실하고 이뿌다면 된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그건 언제고 나타나는 돌부리가 버거워지는 순간 널부러지며, '에라 모르겠다

여태 즐거웠으니/행복했으니 됐다'라는 식의 방탕스러움 그것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이고, 그런 식으로 해석할 여지 역시 충분히 예측가능한 거였다. 그치만 역시나, 발딛어

직접 감촉하기 전까지는 모든 땅이 미지의 섬이었던 게다.



목표를 놓쳐선 안 되는 거 아닐까. 책임감이란 거, 그런 게 아닐까.

그렇게 합리적이지도, 납득할 만하지도 않지만.



아, 그 전무가 내게 치고 들어온 공격은 그런 거였다. 와이프, 혹은 여자친구가 그런 모습에 실망하지 않겠나.

내 대답. 그런 나를 이해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그런 관계가 불가능하겠죠. 잘한 대답인진 모르겠지만,

전무는 그저 내 어깨를 몇차례 두들겨 주고는 술한잔 말아주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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