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선수재 및 배임혐의로 기소된 정몽구. 그가 조중동, 혹은 동조중의 엄호를 받아 보석으로 나오곤 두번째

공판이었다. 대각선으로 내 바로 옆자리에 앉아있던 검버섯핀 왕년 깍두기 스탈의 할배가 정몽구인줄은 몰랐다.

그는 포승을 차지도, 병원복을 입지도 않고 방청석에 앉아 있다간, 특별히 제공된 푹신한 의자에 앉아 네명

피고인 중의 수괴임을 자랑했다.--;


검찰은 변호인단이랑, 증인이랑 싸우고 있었다. 초동수사 쯤에 어설프게 뱉었던 말들의 사전적의미를 잘

주물러서 방향을 바꿔보려는 증인들의 '잘 기억이 안납니다', '모르겠습니다' 랩소디. 현대우주항공을 왜

두차례나 증자했는지, 0원으로 평가받은 주식을 왜 5000원으로 몇백억어치씩 발행한건지, 그대들에게

구조조정이란 결국 '청산'의 다름아닌 말이었는지, 정몽구는 자기 개인빚을 왜 계열사에 떠넘긴건지, 하나도

풀리지 않는 신비. '절차적 정의'를 찾는 과정은 너무도 지난하다.


네 시간동안 에어콘도 안 나오는 답답한 법정에서, 어디 장례식에 온 양 깜장양복쟁이 현대맨들이 우글우글한

사이에 껴서, 선배가 시킨대로 말하나 빼놓지 않고 다 적고 있으려니 문득 한심해졌다. 아무 알맹이도 없는, 이미
 
모든 신문들에서 몇번씩 우려낸 이야기를 왜 이렇게 소중히 받아적고 있을까. 펜도, 종이도 아깝단 생각.

증인이랑 변호인이랑 입맞춘 게 뻔히 보이고, 논리도 어떻게 끌고 갈지 뻔히 보이는데-국가 경쟁력 운운..-왜

여기서 웃기지도 않은 개그를 보고 있어야 하는지 하고.


신문은 '일용'할 정보를 판다. 유효기간은 하루. 만물은 유전한다. 며칠전까지 현직이던 조부장판사의 법조비리

이야기로 며칠째 시끄러웠지만, 계단형의 진보를 무작정 믿지 않는다면 무의미하다. 우리는 여전히 같은 기둥을

휘감고 뺑뺑이치고 있고, 신문에서 다루는 사건, 사람, 논조, 모든 건 무성생식중이다. 기자란 건, 참 허무할 거

같다. 보람을 찾을 수 있을까. 글나부랭이로, 무엇을 전하고 무엇을 바꿀 수 있을지. 서래마을같은 엽기적인

사건도 몇년 전, 또 몇년 후 마주칠 사건. 정몽구의 보석, 그리고 웃기는 공판도 몇차례씩 보아온 그것. 데자뷔는

뇌의 작용만이 아니다.


하루살이에게나 소중한 게 신문아닐까. 어쩌면 지금 중요한 건 무슨무슨 사건..이 아니라, 도돌이에서 다카포로

무한반복하는 리듬이다. 신문이 죽는 이유는, 더이상 new's가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디선가 본 기사, 어디선가 본 말투. 아마도 예측가능한 결말. 재미없다. 원심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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