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부터 둘레길 코스에 딱딱 맞춰서 주파해나갈 생각은 없었다. 1코스 종반부의 민박집에 자리를 잡고 났더니 


2코스 끝에 도착해서도 여전히 체력도, 시간도 남았다. 설렁설렁 3코스를 계속 가보기로 한 참이다.



모내기에 한창이던 시절, 저렇게 여리고 자그맣던 아이들이 올여름 무더위와 가뭄에 잘들 버티고 있기를 바랄 뿐.


둘레길 코스를 따라 함께 흐르는 강 너머엔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우는..(이 가사가 맞는지는 모르겠다만서도)



어느 장소의 분위기를 아는데엔 한번의 방문으로는 택도 없다. 사계절을 다 보는 것, 그리고 하루의 시간대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담는 것, 그런 공을 들이고서야 이 공간이 가질 풍성한 느낌을 비로소 가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꽃길을 따라 가볍게 걸어가던 길 끝의 어느 마을. 베이지색으로 단정하게 칠해진 담벼락에 벽화가 꽃길을 이어준다.



3코스의 진행방향을 알려주는 표지판, 그 아래 개구멍을 꽉 들어채운 시퍼런 잡초.


담벼락에 기대 섰던 나무의 등걸에 기대어 그려진 벽화의 센스가 재미지다.



요새 축사는 그렇게 소똥 냄새가 멀리 않을 만큼 위생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듯. 코앞에 도착해서야 저 안에서


뒹굴거리며 되새김질중이신 소들이 보였다.


산비탈을 따라 제법 층층이 포개진 다랭이논, 그리고 그 옆을 지나 구불구불 이어지는 둘레길.


3코스에는 황매암을 경유하거나 산신암을 경유하는 두가지 갈래길이 있다는데, 어쩌다보니 황매암으로 와버렸다.


코스 표지판을 부지불식간에 놓쳐버렸거나, 아니면 생각보다 길안내가 부실하거나 둘 중 하나.



그래도 황매암을 둘러보며 잠시 다리를 쉬어가는 건 꽤 괜찮았다. 산속길 깊숙이 숨은 곳에서 문득 마주하는


자그마한 암자의 정취도 그렇고, 온통 푸릇푸릇하게 감싸고 올라오는 녹색의 기운도 그렇고.






지리산 둘레길 중에 가장 인기있다는 3코스, 아무래도 1박2일에서 이 코스를 배경으로 촬영했던 덕분인 거 같은데


역시나 방송에 나왔던 장소라는 현수막이 이렇게 떡하니 붙어있다. 




이런 개울을 지나고 산길을 계속 걷다 보면, 


현지 주민들이 지각없는 일부 둘레길 여행자들에 대해 읍소하는 이런 표지판도 보이고.


유려하게 구부러지는 마을길이 산모퉁이로 사라지고 숲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고즈넉한 풍경.




그리고 마을과 함께 수백년을 함께 했을 오랜 낙락장송 한 그루. 가지를 휘청휘청 늘어뜨린 모습이 연륜 가득하다.


대충 두어시간을 걷고 나니 장항마을에 도착, 또다른 아름드리 나무에 기대 만들어진 쉼터에서 맥주랑 라면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며 머리를 맞댄 결과 숙소로 이제 돌아가기로. 죽자고 걷기보단 여유롭게 가자는 컨셉이니만치.



버스 시간표를 잠시 확인해보니 대충 이삼십분만 기다리면 한대 오겠다 싶다. 이런 여유로운 자세라니.





 

지리산 둘레길을 걸어보려 마음을 세운 것이 벌써 몇 년째, 5월초의 황금연휴에 불쑥-떼밀리듯-내려와버렸다.

 

별생각없이 잡은 숙소는 1구간 중간의 행정마을/삼산마을의 부녀회장님댁. 역시 전라도의 손맛이란 게 어찌나

 

훌륭하던지 아침저녁으로 푸짐하고 맛있으면서 저렴한 식사를 하고 내처 사흘째 걷다가 왔다.

 

 

모내기를 준비중인 논들은 온통 그득그득 물을 받아두었다.

 

 

처음에는 조금 당황했지만 이내 둘레길의 방향과 코스를 안내해주는 표지판들의 도움을 얻어 2구간쪽으로.

 

1구간 남은 곳과 2구간을 걸을 요량이었다.

 

 

 

 

 

유채꽃인지 무꽃인지, 화사하게 피어난 노란꽃들이 지천.

 

 

모내기를 준비하느라 물을 가득 채워놓은 논. 수면에 모든 풍경들을 가둬놓은 모양새가 마치 수상마을 같기도.

 

 

 

그렇게 양쪽에 무논을 끼고 멀찌감치 지리산이 시야에 툭툭 걸리는 풍경을 배경으로 이내 운봉읍까지 도착.

 

 

읍내 곳곳의 조금 낡았지만 정겨운 풍경들도 골목골목 들어가며 찾아보고.

 

 

 

색이 빠지고 바래서 이젠 파스텔톤이 되어버린 간판과 자전거와 풍경들.

 

 

그와중에도 버스 정류장은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것인 듯.

 

 

 

울타리나 철책이 둘리지 않은 자그마한 초등학교.

 

 

 

그렇게 설렁설렁, 금세 도착하게 된 2구간 시작점. 운봉-인월 구간, 거리는 9.9km라는데 뭐 무슨 정복하러 온 것도

 

아니고 갈 수 있는데까지 걸어보고 택시던 버스던 타고 숙소로 돌아오기로 했다.

 

 

 

광화문 인근을 지날 때마다 늘 맘속 한켠에 머물던 산, 인왕산. 온통 바윗덩이로 이루어진 듯한 험준한 산세 때문에

 

주저하곤 했었지만 이 짧디짧은 봄철의 산을 놓칠 수 없다 싶어 전격 트레킹.

 

 

대체 철쭉과 진달래는 어떻게 구분하는 건지, 늘 이맘때면 헷갈리고 다시 찾아서 익히고, 그리고 다시 내년엔 까먹고.

 

생각보다 훨씬 금방 올랐던 인왕산 정상머리쯤. 광화문과 서촌, 북촌은 물론이고 효자동 윗자락의 청와대까지도 환히

 

보인다. 슬쩍 카메라를 그쪽으로 돌리니 어디선가 휘리릭 나타난 의경 아저씨가 '사진 찍으시면 안됩니다'라고.

 

국내지도의 해외반출이 안되는 거나 청와대 사진찍으면 안된다는 거나 참 웃기기는 마찬가지다. 백악관 사진 찍으면

 

안된다거나 다른 나라 정부수반이 위치한 공간에 대해서 사진찍지 말란 이야기는 듣도보도 못한 일이다.

 

그래도 물리력을 갖춘 의경아저씨가 있으니, 얌전하고도 순순하게 카메라를 돌려서 이번엔 인왕산 자락 반대편,

 

독립문쪽이랑 아마도 신촌 근방이려나. 애꿎게 사진 한장.

 

 

광화문이랑 경복궁 궁궐들이 내려다 보인다. 아마 조선시대에 인왕산에서 내려다본 한양의 전경은 꽤나 멋졌겠지 싶다.

 

날씨가 그리 좋지 않아 시계가 맑지 않았음에도 이렇게 아늑한 느낌으로 자리잡은 서울의 구도심이라니.

 

내려가는 길에 줄곧 함께한 북한산 성곽. 뱀처럼 구불구불 이어지는 성벽이 제법 운치가 있다.

 

그렇지만 코앞에 들이댄 풍경은 또 다르다. 키치와 오리지널이 각기 보여주는 깊이와 색감의 차이.

 

 

벚꽃잎을 풍성하게 매달았던 벚가지 끄트머리에도 비로소 새순들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봄이 지난다.

 

 

 

 

 

 

 

 

 

 

 

 

 

 

 

 

잠실5단지의 벚꽃들, 복숭아빛으로 물든 그 복숭아빛 꽃망울들이 너무 흐벅지게 탐스러워서.

 

바람이 잠시 불어 꽃비라도 내릴라 치면 마음이 아득해지는 게 순식간에 2002년, 1993년의 어딘가를 더듬곤 하는 거다.

 

 

 

 

 

 

공지천을 굽어보는 테라스 난간, 아가씨가 걸터앉아 피리를 불었다. 옷자락이 나부끼고 바람이 불었다. 가느다란 팔목에

 

살풋 긴장이 어렸다. 피리를 어루만지던 손가락들이 바람을 더듬었다.

 

 

 

 

 

경주 남산에 오르는 길, 삼릉을 거쳐 지나는 골짜기에서 제일 먼저 마주치는 건 다소 묘한 손모양의 목잘린 좌불.

 

석조여래좌상, 삼릉어귀의 길로부터 출발해 남산에 오르는 길은 예전부터 절도 많고 불상도 많았다나.

 

무려 11개소의 절터와 15구의 불상이 산재한데다가 금오산 정상까지 오르는 길이라 제일 즐겨찾는 등산로란다.

 

 

어느새 싱그러운 녹빛이 솔잎바늘 끝까지 충만한 소나무들. 남녘에는 봄이 왔다.

 

바위 위에 새겨진 관세음보살상. 천수관음의 자비를 바라는 사람들의 열망은 천년을 이어지고.

 

관세음보살이 굽어보는 경주 남산의 앞마당. 하늘이 좀만 더 파랗게 맑았음 좋았을 텐데 아쉽다.

 

삼릉계곡 선각육존불. 석가삼존과 아미타삼존이 새겨져 계시다는데, 머리에 둥그렇게 보름달같은 휘광이 비치는

 

부처님 세분이 계시니 뭔가 더욱더 강력해 보인달까. 이렇게 선으로만 새겨진 부처상은 남산에선 드문 거라고 한다.

 

하얗고 검은 바위의 육중한 옆구리에 명료하지만 가느다란 선으로 한붓그리기하듯 그려놓은 부처님들을

 

눈으로 따르다 보면 중간에 살짝 선을 놓치기도 하고 어지러워지기도 하고. 구도의 길이 멀고도 험하다는 은유일 수도.ㅋ

 

그리고 석가여래좌상. 부분부분 깨어져나간 부분도 보이고 뒤의 휘광도 다시 조각붙이기를 한 거 같지만

 

엄숙하고 우아한 표정이나 진중한 앉은 자세가 여전히 당당하다.

 

 

부처님한테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 요모조모 얼굴과 몸의 굴곡을 살펴보려는데, 부처님 왠지 우셨던 거 같다.

 

하긴 요새 세상이 위에서 내려다보기에 참 슬픈 일 투성이들일 테니. 놀랄 일은 아니지만 눈물자국이 선연하다.

 

 

남산 정상까지는 안 가고 내려오는 길, 색색의 등산복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그다지 좁지 않은 길을 꽉 채워서

 

남산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좌우로 허리를 굽힌 채 소나무 터널을 만들어주고 있던 남산의 노송들.

 

 

그리고 남산 아랫자락에 그리 오래진 않아보이는 망월사라는 절에 잠깐 인사드리러 들어가는 길.

 

나른하고 촉촉한 봄볕이 내리쬐이는 절 앞마당에는 벤치도 늘어서 있고, 가지런히 누워 몸을 달구는 기왓장들도 쪼르르.

 

댓돌 위에는 하얀 고무신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였다.

 

 

대웅전 뒤로 푸릇푸릇한 기운이 마구 돋아나는 남산을 배경으로 크고 작게 솟아오른 불상과 불탑들.

 

 

 

 

천년고도 경주 남산에 찾아드는 봄. 꽃망울이 툭툭 터지며 노랑 꽃잎이 비집고 나왔다.

 

남산을 올라가는 길은 굉장히 여러갈래가 있는데, 그 골짜기마다 온갖 돌을 쪼아 모신 와불과 좌불이 숨어있다.

 

일단은 남산 아랫둔치에 있는 포석정부터 살짝 눈도장찍고 남산을 에둘러 삼릉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경주에 오면 뭐니뭐니해도 소나무. 거침없이 뒤틀린 그 기기묘묘한 생동감이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 와중에 이른 봄볕을 쬐러 나온 청설모 한 마리. 쉼없이 앞니를 놀리며 겨우내 아껴두었을 도토리를 까먹는 참이다.

 

그리고 삼릉. 제법 경사가 있는 곳에 울창한 소나무숲을 지나다 보면 부드럽고 우아한 곡선이 둥실 떠오른다.

 

 

능 세개가 연이어 봉긋봉긋 솟아있는 곳엔 따스한 봄볕이 나리고, 주변에는 짙은 솔숲 그늘을 드리워 서늘한 기운이 뻗친다.

 

조그마한 구릉처럼 솟아난 저 신라시대 왕들의 무덤을 보면 참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

 

천년 전의 죽음이 이토록 자연스럽고 평온한 분위기로 승화되었구나, 랄까.

 

딱히 어디가 길이랄 것도 없는 남산 언저리를 더듬다 보면 이런 표지판이 보인다. 신라인의 미소와 도깨비의 형상.

 

경애왕릉을 향해 걷는 길, 곧고 늘씬하게 아름다운 소나무들이 신비로운 기운처럼 하늘을 향해 하늘하늘 번진다.

 

 

그리고 다시, 삼릉과 경애왕릉을 지나고 남산을 향해 본격적으로 걷는 길, 양쪽으로 소나무가 어깨를 구부려 터널을 만들었다.

 

 

 

 

안양에 있는 학의천,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랏돈으로 건물 올리고 콘크리트 붓는 게 최고라고 생각하던 시절

 

안양시청에서 하천을 정비하고 생태를 복원하겠다고 했을 때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그래도 다른 지자체나 일반인들이 자연 하천과 주변 지역의 중요성과 소중함을 알기 전 미리미리 자연을 지켜낸 결과

 

학의천은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이자 아름다운 산책길을 가진 곳으로 인정을 받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한강으로 이어지는 하천들, 그 좌우로는 녹색지대가 넓게 펼쳐져 있고 하천을 따라 이어진 길들엔 세월이 흐른다.

 

 

그렇게 관내 주민들의 반발과 냉소에도 불구하고 일찍이 정비를 마친 학의천, 그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노랑 꽃을 바닥에서 올려다보니 마치 몇 마리 노랑나비가 사방으로 날아가는 듯한 자태.

 

내친 김에 클로버꽃의 시각도 빌려봤다. 꽃들이 올려다보는 하늘은 이렇겠구나.

 

 

 

이름은 몰라도 꽃의 형상과 색과 질감이 남는다. 사람이나 꽃이나, 중요한 건 이름보다 그런 것들일지도.

 

 

 

학의천에 배를 깔고 물결을 일으키며 유영중인 오리들.

 

 

 

건너편으로 이어지는 돌다리, 저쪽 끝에서부터 건너오는 아저씨 하나가 기우뚱. 덩달아 카메라도 기우뚱.

 

다리 위에서 학의천을 내려다보며 슬슬 자전거를 몰고 가시는 아저씨도 한분. 그 아저씨를 내려다보는 아파트도 하나.

 

 

나무벤치에 박힌 못처럼 연둣빛 새순이 박혔다.

 

 

 

곳곳에서 야생화들, 들꽃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이미 대낮의 햇살은 여린 꽃잎이 버티기엔 살벌해져 버린 듯 하다.

 

황톳빛 흙길바닥으로 둥그렇고 탐스런 그림자를 드리운 버드나무 두어 그루.

 

 

어느 다리 아래엔 아이들의 장난질이 심술궂다. 즐, 이라니.

 

 

 

 

하천에는 버들치니 참게도 살 정도로 물이 아주 맑다고 하더니, 산란기에 접어들었다는 잉어들이 서로의 몸을

 

비비적대며 열중하고 있었다. 찰박이며 일어나는 잔물결들, 그리고 물결 위로 얹혀지는 햇살부스러기들.

 

 

 

다리 아래로만 들어서면 시원한 바람이 온몸을 훑고 지났다. 어느새 나무 그늘을 찾고 시원한 바람을 찾는 날씨가 되었다.

 

 

 

아직 채 형체도 못 이룬 꽃잎들이 때깔부터 욕심을 냈는지 벤치 지붕위 또아리를 튼 등나무 덩쿨에 보랏빛 커튼이 치렁치렁. 

 

바람이 슬쩍 불 때면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한껏 뒹굴면서도 그게 또 재미있다고 때이른 꽃향기를 퍼올리는 중이다.

 

 

 

 

 

제주 모슬포항, 고등어회가 유명한 이 곳, 가파도로 들어가는 배를 탈 수 있는 곳에서 맞았던 봄.

 

 

짠기운 섞인 비바람에 삭아내려 조각조각 부서져내리는 항구 끄트머리의 나무틀.

 

 

그 틈새에서 용케도 뿌리를 내리고 새 잎사귀를 틔워내고 줄기를 겯고 급기야 꽃망울까지 터뜨린 녀석들.

 

언제고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모슬포항, 곳곳에 그려진 벽화도 무척이나 리얼하다.

 

모슬포에서 해안도로를 타고 달리는 버스를 몇차례 타보면서,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건 꼭 사람만은 아니더라는.

 

기다림이 간절하면 저렇게 갓 박아둔 보도블록 틈새로 손가락만큼 굵은 꽃대를 세우기도 하더라는.

 

 

 

 

 

어렸을 적 백원, 이백원을 쥐고 달려갔던 곳은 으레 허름한 공터에 엉성한 천막으로 지어졌던 '덤블링장'.

 

앞으로 엎어지고 뒤로 엉덩방아를 찧으면서도 쉼없이 튕겨올라오는 그 탄력 넘치는 그물망이 좋아서 침까지 질질 흘리면서

 

온몸이 흠뻑 땀에 젖을 때까지 뛰었던 기억이 있다. 문득 너무 높게 뛰었다 싶을 때의 짜릿한 공포감 역시 생생하다.

 

 

예기치 않게도 주문진의 어느 골목 귀퉁이에서 만난 '덤블링장', 정식이름은 트램폴린이란 건 이제야 알았다.

 

아직도 이런 곳이 있구나, 하는 신기한 마음에 들어섰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덤블링을 하며 까르르 웃음을 사방에

 

흩뿌리는 중이었다. 연령대에 따른 1점프대, 2점프대로 구분이 된 건 나 어렸을 적에도 그랬던가. 기억이 안 난다.

 

자전거를 대충 주차해놓고 그물망 위에서 온몸에 힘을 주어 발을 튕기고 엉덩방아를 튕기며 쑥쑥 키가 크는 아이들.

 

허름한 천막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건지 어설프게 걸쳐진 지붕천 사이로 봄볕이 함께 튕겨들었다.

 

무시하다 다치면 주인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무시무시한 안전수칙판의 낡은 상태를 보니, 내 어렸을 적에도

 

저런 거 하나쯤은 옆에 세워져 있었겠구나 싶다. 그런데 다 좋지만 6번은 대체 뭐지. 음주후엔 올라가지 못한다는.

 

그리고 11번도 웃긴다. 크게 소리지르거나 심하게 장난치는 어린이는 퇴장도 감수해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룰이라니.

 

 

 

 

 

어렸을 적 무주구천동에 놀러가서 텐트치고 엄마아빠랑 '곰발바닥 닭발바닥~'하면서 놀았던 기억으로만 남았던 곳.

 

꽃구경을 하겠다며 나섰던 4월 마지막주의 무주 봄 풍경.

 

출발하기 위해 모였던 양재역 옆의 새순들. 새싹들이 새살처럼 돋아나고 있었다.

 

 

훌쩍 무주. 점심을 먹었던 식당 옆의 한적한 시골풍경 역시 연둣빛이다.

 

풍성하게 피어나다못해 보도블럭 아래로까지 흘러넘치던 잘디잘은 꽃송이들.

 

올려다 본 하늘에는 내려꽂힌 벼락처럼 우왁스럽고 거침없는 나뭇가지에 여린 이파리가 돋았다.

 

 

 

땅 위에 살포시 놓인 노란 물음표 하나.

 

 

봄철을 맞아 온몸에 영양제 주사를 맞고 있는 나무 한 그루. 피가 되고 살이 되길 바랄 뿐.

 

 

 

 

 

버들강아지도 아니고 뭔지는 몰라도, 오동통하게 살이 불은 솜털보숭이들.

 

 

언제든 그대로 조심스레 파내어 쓰시라며, 땅에 동그랗게 화관을 만들어둔 노랑꽃들.

 

 

 

 

무주구천동로, 두갈래 갈랫길이 쪼개지는 어간에 서서 연둣빛 행진을 사열하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바람조차 숨을 죽였는지 꽃눈이 그쳐버렸다.

 

그래서 슬쩍 자리를 이동하면 그 사이로 놀리듯 지나버리는 바람 한 줄기.

 

 

바야흐로 벚꽃잎을 우수수 밀어내며 연둣빛봄이 남도에 피어나는 중이다.

 

 

 

그나마 비로소 담아낸 한 컷. 벚꽃비가 나풀대며 '초속 5센티미터'로 날아가는 순간.

 

 

 

온통 뿌옇고 희끄무레하기만 하던 무채색의 겨울 풍경에 샛노란 개나리빛이 하나 풀어헤쳐졌더니 그냥 봄이다.

 

 

 

서울숲과 바로 이어지는, 금호역 옆의 응봉역과 가까운, '응봉산'. 가끔 차를 몰고 다니다가 문득 눈에

 

띄었던 적은 있을지언정 서울 시내에 이런 이름의 산이 있는지도, 또 이 산이 봄철이면 샛노랗게 개나리가

 

지천으로 피어나는 곳인지도 전혀 모른 채 서울살이 30년이 넘었다.

 

 

 

중간에 나타난 쉼터에서 잠시 앉아 쉬는 참, 등산객처럼 몸풀기 운동을 하시는 건지 아이들처럼 마주보며

 

장난을 치는 건지 헷갈리는 두 어르신을 향해 아주머니의 폰이 찰칵 소리를 냈다. 절로 웃음지어지는 풍경.

 

 

 

산이 그냥 노랗다. 아니, 이럴 때 제대로 표현할 수 있도록 어렸을 때 48색 크레파스를 썼던 거 아니겠는가.

 

그야말로 산이 그냥 개나리색 지천이다. 유독 춥고 길던 겨울이다 했는데 어느덧 개나리꽃에 뒤이어 파릇한

 

새잎까지 돋는 4월이 되었다.

 

 

 

온통 개나리꽃 덤불이 지천이었는지라 새하얀 목련 한 그루가 확 눈에 띄었던 건지도 모른다. 아직 채

 

꽃망울도 여물지 않아서 가까스로 삐쭉삐쭉 꽃이파리를 내밀고 있는 정도지만 곧 도톰하고 풍만하게

 

물이 차오르면 시원하고 다복스런 꽃망울을 펑펑 잘도 터뜨려댈 거다. 아직 바람이야 좀 차다지만.

 

 

 

응봉산 정상에 있는 팔각정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점, 바로 오늘 2012년 4월 13일 14시~17시까지 응봉산

 

개나리축제를 벌이는 공간이기도 하다지만, 사실 이렇게 산 전체가 개나리색으로 출렁이고 있는대야

 

새삼 축제를 벌일 것이 또 무에 있겠는가. 금요일 오후라니, 딱 초등학생들을 위한 어린이 축제겠다.

 

 

그저 그 즈음이 개나리꽃 구경을 위한 최상의 타이밍이겠거니 참고삼으면 족하다. 축제 전전날, 그러니까

 

온통 전국이 시뻘개지던 4.11 총선날에도 사람이 이렇게 많았어서 줄 서서 돌아다녀야 할 정도였다.

 

 

팔각정 도착. 생각보다 너른 공간에는 이미 몇몇 아이들이 저..뭐라 그러더라, 저 그림판을 그려놓고 놀다가

 

잠시 앉아 쉬고 있던 참이었다. 어렸을 때 저거 진짜 많이 하고 놀았는데.

 

 

 

흐물흐물하니 멀찍이 보이는 남산N타워. 보듬어 주겠다는 듯 꽃무더기를 매달고 조심스레 들어올린 꽃가지.

 

아직까지 이파리 하나 없이 앙상하기만 한 겨울나무들이 황량한 풍경 앞을 막아선 노란 담벼락.

 

 

 

산이란 게 으레 그렇듯 응봉산에 오르는 길도 꽤나 여러갈래다. 서울숲에서부터 길게 걸어오는 길도 있고,

 

아니면 응봉역이나 금호역에서부터 오는 길도 있고, 아니면 아예 응봉산 둔턱까지 차로 올라와 능청스레

 

슬몃 개나리꽃밭에 섞여드는 길도 있는 거다.

 

 

산에서 내려와 응봉역 쪽으로 걷는 길. 응봉산을 가득 채운 개나리빛 물감이 산비탈을 타고 줄줄 흐르더니

 

살짝 낡고 허름한 풍경에도 발랄하고 따스한 봄기운을 전한다.

 

 

 

 

 

이빠진 신호등이 파랗게 빛나는 걸 보고는 어딘가로부터 훌쩍 시야 안으로 날아들던 비둘기 한마리.

 

온통 빨간 불이 삼엄하게 들어온 차도 위 육교를 건너며 짐짓 시크하게 담배를 꺼내무는 아저씨.

 

그리고 온통 쾌청한 파란 하늘, 드문드문 소리도 없이 흘러가는 흰구름따라 게으르게 깜빡이는 신호등 하나.

 

 


쁘띠프랑스 안에 츄러스도 팔고 커피도 파는 조그마한 까페, 잠시 앉아갈 수 있나 쭈뼛거렸더니 아주머니가 안으로

 

들어와서 쉬었다 가라며 이끌어주셨다. 생각보다 아늑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창가엔 선인장이 촘촘하던 자리.

 

걸리적대는 선인장과 창문살을 타넘어 침투에 성공한 햇살이 테이블에 함뿍 스며들고는 바닥으로 따끈하게 흘러내렸다.

 

창밖으로 슬몃 보이는 보이는 건 쁘띠프랑스의 이국적인 건물 지붕선들이 모여 만든 운치있는 스카이라인.

 

다들 입구에 서서 차와 간식을 사서 쁘띠프랑스 안의 어딘가로 향하기 바빠보이는데 이렇게 안에서 느긋하게

 

자리잡고서 커피와 츄러스를 먹는 것도 일종의 '상대적 풍요로움'을 만끽하게 해주었던 거 같다.

 

쁘띠프랑스 오가는 길, 커다란 청평호를 끼고 달리는 75번 국도, 호반로를 따르는 드라이브코스는 과장섞어

 

'환상의 드라이브코스'라고들 하던데. 커다란 청평댐이 그러쥐고 있는 북한강 물줄기가 잔뜩 또아리를 틀고 앉았다.

 

청평호에서 피어오른 물안개 너머로 수묵담채화처럼 은은하게 그려진 산줄기들. 앞서거니 뒷서거니 존재감이 확연하다.

 

 

선루프를 활짝 열고서 달리는 차를 따라 전선이 함께 달리고, 제법 두터운 구름과 숨바꼭질 중이던 햇살도 함께.

 

 

돌아오는 길 어느 보리밥집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나물을 둘로 나눠 탈탈 털어넣고 된장에 슥슥 비벼먹은 밥 한 그릇.



































충북 괴산의 산막이옛길, 예전에는 산골 마을에 살던 사람들이 옆 마을로 넘나들거나 장터갈때

이용하던 길이라던데 점차 마을이 조그매지면서 잊혀져가던 길이라고 한다. 최근에야 휘적휘적

구비진 강을 따라 오르내리며 내달리는 산길을 정비해서 근 삼 킬로미터에 이르는 '옛길'을

되살려냈다던가. 제주 올레길의 예기치 못한 성공담이 지자체에 던진 울림은 이다지도 컸지싶다.

세 그루의 연리지, 아니 여섯 그루의 연리지라고 해야 하나. 서로 사이좋게 몸을 섞은 채

고개를 살풋 외로 꼬고 이쪽을 바라보는 듯한 세 커플나무들. 연리지 하나가 생겨나기만 해도

울타리도 치고 포토존도 만들고 수액도 맞아가며 특별대접을 받는 판인데 무려 세 쌍이라니.

옛길 초입부터 계속 유유한 호흡으로 따라오는 건 괴강. 그러고 보니 이곳의 지명은 괴산,

강이름은 괴강. 57년에 이승만대통령이 괴산수력발전소를 만들고선 호수가 되어버려 괴산호라

불리게 되었다곤 하지만, 조금씩 방류되고 있는 건지 바람이 미는 건지 아니면 드문드문 다니는

조그만 철선과 목선이 만드는 건지 수면에 잔물결이 꼼꼼히 새겨져 있었다.

나무에 묶인 그네에선 아이들이 꺅꺅 소리를 질러대며 산아래쪽을 향해 발을 구르고 있었다.

저러다 휘잉~ 하고 날면 그대로 괴강, 괴산호까지 날아가겠고만 겁나지도 않는지 마냥 즐거운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리 살벌한 그네 대신 조용조용 잔물결처럼 일렁이는 흔들의자에서 잠시

앉아 쉬었다. 전날 내렸던 비가 어느결에 말랐는지 보송보송한 의자에서 슬몃 나무냄새가 났다.

출렁다리, 어렸을 적 고성 잼버리장에서도 뛰놀아보고 했지만 이렇게 길고 출렁대는 다리는

처음 본 거 같다. 이거 재미있겠다 싶어서 우다다 걷다가 일부러 흔들기도 하고, 그러다가

뒤의 꼬맹이가 완전 겁먹은 거 보고 미안해져버려서 사뿐사뿐 흔들림없이 걸어보려 했지만

몇걸음 가지 못해 다시 출렁출렁. 처음 느낌 그대로, 어른들한테도 꽤나 길고 재미있던 코스. 

출렁다리에서 내려와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쬐이는 단단한 흙길을 밟으니 기분이 상쾌하다.

흔들리던 발아래 나무판자 대신 땅을 딛으니 시선이 자연스레 주변을 스캔하게 되는 거다.

약간 뜨겁긴 하지만 아직 설익어 부드러운 느낌의 오전 봄햇살도 그렇고, 본격적으로

짙어지기 전의 싱그러운 녹색 풀떼기 같은 것들.

산막이옛길은 그냥 하이킹 삼아 가볍게 걷는 길도 좋지만 저 위로 본격 등산로를 따라 걷는 것도

꽤나 좋을 거 같다. 대충 코스를 짜보자면 등산로로 크게 돌아서 산막이마을까지 가서는 옛길을

따라 돌아오는 길 정도가 좋지 않으려나. 여기가 바로 등산로와 옛길이 갈라지는 지점인데

등산로라기엔 넘 푸릇푸릇하고 완만한 길이 시작되는게 꽤나 유혹적이었다.


괴산수력발전소가 물을 가두고 나서 몇개 마을이 잠기고 구불구불하던 강의 생김생김도 많이

변했다지만 여전히 옛길 옆을 따라 출렁이는 강물은 구불한 실루엣을 간직하고 있었다. 제법

폭이 넓은 강, 호수를 끼고 있어서 그런지 바람이 굉장히 시원하다. 미처 땀이 솟을 겨를도

없이 에어콘바람처럼 시원한 산바람 강바람이 땀을 식혀주었다.

연화담. 지금은 연꽃이 피워올려지는 저 연못이라지만 이전에는 천수답, 논이었다고 한다.

충북 괴산, 여기 옛길까지 차로 달리며 놀랐던 건 마치 강원도의 느낌처럼 쉼없이 울룩불룩

높진 않아도 야무진 삼각산들이 늘어서있던 풍경. 논농사를 짓기엔 땅이 부족했던 걸까,

저 손바닥만한 세모땅에까지 벼를 심었다니. 직각이등변삼각형 모양, 올만에 떠올린 단어.

산막이옛길을 따라 걷다가 발견한 큼지막한 동굴이 있었고 왠 뜬금없는 호랑이 상과 인형이

놓여있었다. 앞에 세워진 표지판을 보기도 전에 뭐야 이거, 호랑이굴이야 했더니 역시나.

믿거나 말거나 1960년대까지 호랑이나 다른 산짐승이 자리잡고 살던 굴이라고 하는데

그것보다 더 놀라웠던 건 대체 왼쪽의 호랑이 인형은-ZOO COFFEE에서 들고 온 듯한-

어제의 장대비를 견디고 저리도 뽀송거리는 걸까.


적당한 강약으로 오르내리는 계단도 있고, 그리 좁지 않은 너비로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나무

데크 길이 쭉 이어지고 있어서 아이들도 신나라 걷고 뛰고 있었다. 그러다가 조금 지칠 만하면

나타나는 전망대니 약수터니. 앉은뱅이가 물을 마시고 벌떡 일어났다나, 그런 약수터의 전설이

무색하게 물이 아낌없이 펑펑 흘러나오던 물맛은 나쁘지 않았다.

비가 그친 연후라 그런지 완전완전 산뜻한 초록색을 뽐내며 옛길을 터널처럼 감싸고 있던

나무들, 그리고 제법 울창해진 그 틈새를 비집고 기어이 불어오는 산바람과 이따금씩 뚝뚝

떨어지는 봄볕 쪼가리들. 어디선가 풍기는 나무냄새, 꽃냄새까지 더해지니 정말, 한없이

걸어도 좋겠다 싶었다. 그야말로 풀향기 가득한 이런 길만 쭉 이어진다면.

괴강에서는 선착장과 선착장, 산막이옛길의 처음과 끝을 잇는 목선과 철선이 부지런히

움직이며 옛길 위의 사람들을 앞서 달리고 있었다. 배를 몇번을 보내고 맞이하며 급할 것 없이

걷다가 문득 올려다본 하늘에선 반짝, 초록빛 나뭇잎새를 뚫고 햇살이 눈부셨다.


중간중간 지게에 얹혀있던 것들은 이곳, 산막이옛길을 노래하는 시들이 적혀있었다. 제법 많은

시들이 이곳의 경치와 분위기와 역사에 감동하고 감탄하고 있었지만, 사실 그렇다. 풍경이 이리

눈앞에 펼쳐져 있는데 굳이 다른 사람의 말을 건네 들을 필요가 있나. 그래서 내용은 늘 스킵,

차라리 지게 위에 늘어뜨려진 성긴 나뭇잎을 보며 안구를 정화. 피톤치드를 달라며.

어디였더라, 그랜드캐년이었던가, 바닥이 유리로 된 이 전망대는 분명 그걸 염두에 두고 만든 게다.

뭔가 바닥을 보고 겁먹기에는 온통 초록빛의 여리여리한 이파리들, 그리고 보기만 해도 보들거리는

괴강의 잔물결들이었는지라 저런 꼬맹이도 펄쩍펄쩍 겁먹지도 않고 뛰놀고 있었지만. 그래도 저만큼

밖으로 불룩 나가서 바라본 풍경은, 강 한복판은 아니어도 대충 깊숙히 들어와 강의 좌우를 바라보는

느낌을 줬다. 잔뜩 굽어진 강물, 강물 따라 잔뜩 굽어진 산등성들, 또 산등성들 따라 굽어진 초록빛들.

총 길이가 채 삼 킬로미터가 안 된다는 거 같던데, 조금씩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아..이제

슬슬 길이 끝날 때가 되어가려나. 좀더 길면 좋겠는데. 좀더 이어졌으면 좋겠는데. 그런 마음이

가득한 채 아껴 핥듯이 한걸음 한걸음 길을 뒤로 밀어보내고 있었다. 갈수록 멈춰서서 사진을

찍어 남기고 싶은 마음만 강해지다 보니 사진은 어느새 기백장을 헤아릴만큼 찍어대고 있었고.

산딸기길. 6월이 되어야 산딸기가 길 좌우로 잔뜩 피어나 붉고 푸른 색감이 강렬할 텐데

지금은 그저 푸른 색 일색이었다. 날이 좋은 주말에는 이 길 가득 사람들이 걷는다는데

이때는 그래도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었던 거 같다. 그래도 주차장은 이미 만차가 되어

주변 골목까지 차들로 빼곡하게 넘쳐나는 상황이었지만.

뭘 파종한 걸까, 갈빛 땅위에 초록색으로 가지런히 빗질을 한 듯한 평행선들 너머로 잔뜩 여윈

나무 한 그루가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선착장 도착. 여기가 산막이옛길의 끝 '산막이마을' 선착장이고, 애초 출발했던 지점은

'차돌바위' 선착장이라던가. 십오분만에 바로 가는 소형배는 오천원, 그리고 멀리 한바퀴

돌아서 한시간여 유람까지 하는 유람선은 만원.

11인승인 소형배는 두 종류가 있었다. 목선이랑 철선이라고 부르던데, 이게 그 목선.

뭔가 정신사나운 만국기가 무당집처럼 내걸려 있는 거 빼고는 그래도 좀 운치가 있달까.

배 뒤로 남겨두는 궤적도 뭔가 뽈뽈뽈뽈, 통통거리는 엔진소리에 맞춰 리드미컬하다.


아쉽게도 내가 탔던 건 목선이 아닌 철선. 11명 이상이 타면 뽀글대며 가라앉지 않을까 싶은

간단하기 짝이 없는 모터배였다. 그래도 뭐, 괴강 한복판에서 올려다보는 양쪽 강가의

풍경이란 건 다른 맛이 있었으니 배가 어쨌거나.

산막이옛길 반대편 강가에도 습지가 제법 발달해 있었고, 나무가 뭉텅이뭉텅이 소보록하니

자라나 있었는데 아직 그쪽에는 이런 길이 나있지는 않다고 한다. 거참..딜레마다. 좋은

길을 보면 걷고 싶은데, 또 사람들이 한둘 모여 걷다 보면 길이 황폐해지고 자연도 조금씩

상해버릴 텐데. 산막이옛길도 잘 관리되고 보전되었으면 좋겠는데..그런 점에서 나무데크로

단단하게 만들어놓은 길이 조금 아쉽긴 했다.

설렁설렁 걷긴 했지만 한시간반 정도 걸려 꼼꼼이 걸었던 길을 이십분도 안 되어서 훌쩍

되돌아오다니 조금 섭섭하기도 하고. 눈으로 옛길을 되짚다가 불쑥 뜨인 난파선에 시선이

가기도 하고,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색으로 칠해둔 남한 최초의 수력발전소라는

괴산수력발전소의 유머러스함에 웃어주기도 하고.

그렇게 한 세네시간동안 잘 돌아본 산막이옛길, 다시 돌아나오는데 아까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사인이 샛노랗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다리를 건너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목,

큼지막하고 선명하게 새겨진 산막이옛길. 그리고 빨간 화살표가 선연한데 아까는 왜

저걸 못 봤나 했더니 주차장이 만차라 반대쪽으로 돌았더랬다.





백운산에 오르려다 개울을 만났다. 날이 풀리고 산이 뱉어내는 물, 개울 너머가 궁금해서

결국 벗어던진 양말과 신발 속 창백한 맨발이 꽁꽁 얼어붙어버렸다.

花. 신발을 벗어던지고 시원하다 못해 모세혈관까지 꽁꽁 얼어붙는 듯한 개울에 발담그게 만든

풍경, 낙엽이 갈빛으로 깔린 바닥 가운데로 개울이 졸졸거리며 흐르고, 나무들엔 물이 올라

불쑥 연두색 새순이 돋았고, 개울 옆에는 점점이 노랑빛 꽃이 한웅큼씩.

水.
마침 드문드문 내렸던 비로 물이 불기도 했나보다. 수량이 넘쳐서 곳곳에 엉킨 채 섬을 이룬

낙엽들, 벚꽃잎들, 그리고 위에서부터 떠내려왔을 썩은 나뭇가지들. 그렇게 자연이 순환하는

개울 위로 세상은 온통 푸릇푸릇하다.

 


花. 산등성에 가렸는지 아직 꽃눈이 채 다 벌어지지 않은 꽃송이들이 있었다. 분홍색 빛깔이

여리여리하면서도 어찌나 곱던지, 뒷배경처럼 싱싱한 연두빛이 깔린 위에 압정처럼

꽂혀있는 꽃봉오리들이 조만간 폭죽처럼 펑펑 터뜨려지리란 예감에 괜히 가슴이 설렜다.


生. 땅을 온통 뒤덮은 채  사체들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피어난 얄포름하고 여린 이파리들이

눈에 띈다 싶더니, 그 위에 얹힌채 바람에 풀썩이는 노랑 알갱이들이 궁금했다. 잔뜩 몸을

구부려 눈에 힘을 주니 보이는 건 꼬물거리는 아기 거미들.

新綠. 그야말로 신록, 올해 새롭게 뻗어나는 녹색의 잎사귀들. 하늘을 향해 양손을 활짝 펼친

그런 겁없고 당찬 느낌이다. 온몸을 들어 하늘로 향하는 듯한, 그런 거침없고 적극적인

모양새 덕에 굉장히 동적인 분위기가 나는 거다. 게다가 저 이파리들에 햇살이라도 비칠라치면,

온통 속살까지 투명하게 반짝거리며 빛나는 모습이라니.

 

影. 산이 흘려낸 물들은 모두 저수지로 모였다. 봄바람이 불자 바다처럼 잔물결이 일었지만,

그래도 제법 잔잔한 수면 위로 녹색의 나무가, 녹색의 둑길이, 녹색의 산이 전부 담겼다.

가을철의 나무처럼 아직은 헐벗고 앙상해보이는 나무들이지만 좀더 부드럽고 긴장감이

느껴지는 것이 역시, 봄날의 새순을 기다리고 있다는 분위기가 물씬 맴돌았다.




을왕리 해수욕장, 뱅글뱅글 달팽이 문양을 그리던 스피드보트에 두 가족 시선이 붙박혔다.

방금까지 모래를 가지고 놀던 에너지 넘치던 두 남자아이도, 조그마한 돗자리 위에서

바닷바람을 즐기며 따끈한 햇살을 감각하던 두 어머니도 시간이 멈춘 듯 가만히 멈춰선 채

시선만으로 그 궤적을 따르고 있었다. 뭔가 보트를 꼭지점으로 한 삼각형이 만들어지는 듯.




@ 을왕리 해수욕장

비오는 날, 잠은 안 오고 괜히 마음만 싱숭생숭 들락날락하는 때는 운전대를 잡고 맘에 드는 씨디

몇 장 쥐고서는 슬쩍 드라이브를 하는 것도 좋은 거다. 타닥타닥, 유리창을 때리는 빗물이 엔간히

풍경을 뭉개버리고 나면 기분도 후련해지고 속도 뚫리는 게 바다를 마주한 만큼이나 시원하다.

나나 이 도시 전체가 바다에 잠겨드는 듯한 분위기여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뭉글하게 뭉개진 풍경을 보고 있다가 와이퍼로 문득 빗물을 걷어올렸다. 뽀득하게 닦인

유리창 아래 풍경은 선명한 불빛이 새겨졌고, 그 위로는 물방울에 포섭된 불빛들. 잠시 와이퍼가

움직인 사이 맑아졌던 풍경은 이내 흐려졌다. 눈물이 가득 괴는 느낌처럼.

물방울들은 아예 비닐봉지처럼 불빛을 동그랗게 감싸고 있었다. 하얀색, 노란색, 빨간색

불빛을 감싸쥔 반투명한 비닐봉지들. 질질 새어나온 불빛은 온통 아스팔트 위에 처덕처덕

내려앉았고 사방에 사람은 하나도 안 보이던 그 늦은 밤, 누군가가 죽도록 보고 싶었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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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타워로부터 내려오는 케이블카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남산타워를 다시 오르는 케이블카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남산의 옛이름을 딴 찻집에 앉아 땀을 식히던 중 휘영청 기와지붕의

부드러운 곡선을 따라 케이블카가 오르내리고 있었다.

남산에 서린 기억들을 구비구비 펼쳐놓으려니 터질듯한 연둣빛의 가로수가 팔을 뻗어 아서라, 한다.

하얀 강아지를 앞세워 다정하게 산책하는 모녀의 모습이 가로수와 가로수 사이, 말줄임표가 되었다.

기상청의 구라는 끝이 없는 걸까. 꿈과 희망의 오월이니만치 구라를 쳐도 조금은 긍정적인 구라를

치면 좋겠고만, 꾸물거린다는 예보 덕에 집에서 꾸물대다가 느지막히 나오는 거다. 그래도 이토록

반짝반짝 잔디밭 한가득 튀겨대는 햇살을 놓치지 않았으니 다행이었다.

남산도서관 옆의 그 유명한 돌계단. 둘씩, 셋씩 짝지어 계단을 오르내리고 더러는 철퍼덕 앉아

쉬어가는 모습이 정말 모두 느긋하고 여유로워보였다. 제각기의 사연과 이야기를 가졌을 사람들,

이렇게 한 사진에 담기고 나니 뭔가 모자이크 하나를 완성한 느낌이기도 했다.



@ 남산.


정답 : 얕은 내에 웅크리고 있는 도롱뇽알들.

@ 백운산


일시 : 2011년 5월 6일(화) PM 15:55부터

장소 : "다른異 색깔彩을 지켜낼 자유"(http://ytzsche.tistory.com)

● 자격 : 이 괴물체의 정체가 뭘까요, 맞춰주세요.
             (얼핏 보면 똥 같기도 하고, 구불구불 이어진 게 뱀같기도 한..)
+ 초대장을 받을 이메일주소!^-^*


주최 : yztsche(이채, 異彩)

제공 : 초대장 5장


In Honor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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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zs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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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산에서 물이 흘러넘쳤다.

개울을 이루고 흐르는 수면 위로 몇 겹의 동심원이 노래처럼 번졌고,

어느 순간 통통한 심장 모양의 벚꽃 한 잎이 나려앉았다.

아직 눈도 채 못 뜬 봄꽃들이 알알이 핑크빛을 머금고 있던 곳.

이미 활짝 피워올려진 꽃 한 송이가 머쓱하지만 단호하게 외친다. 봄이다.

하늘을 향해 번쩍번쩍, 두팔 벌려 세팔 벌려 환호작약하는 이파리들.

조그맣고 귀여운 모양새 안에 꽉 채워진 연두빛깔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 경기도 백운산.

최악의 황사라더니 햇살만 눈부시던 날. 아무래도 5월의 첫날 메이데이의 집회/시위를 막으려던

음모는 아닌가 싶도록 그럴 듯한 날씨였다. 붉은 목련이 햇살을 맞고 온통 하얗게 탈색된 그런 날.

서울 근교에 있어 지하철로도 갈 수 있는 경기도 모락산, 산 이름을 발음하니 재미있다 싶었는데

사모할 모, 낙양 낙, 해서 조선시대 왕이 낙양을 사모하며 올랐던 산이라나. 봄볕이 갸냘픈 신록을

뚫고 뚝뚝 뭉텅이로 떨어져 있는 그런 산길로 접어들었다.


몇 걸음 들어가니 좀더 짙어진 나뭇가지들의 차양, 덕분에 좀더 짙어진 녹색과 갈색의 향연.

자잘한 잎새들이 사방에 온통 튀어버린 페인트 물감처럼 점점이 흩날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황사가 극심할 거라는 일기예보 탓인 듯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고즈넉한 산길.

겨울산이 잔뜩 품었던 잔설들이 투명하고 맑은 물이 되어 산의 옆구리에서 줄줄 새어나오기 시작,

사람들이 걸어서 오르내리던 계단이 한단한단 물그릇이 되어서 잔뜩 물을 움켜놓았다.

하늘이 조금 뿌옇긴 했지만, 그래도 갓난애 뺨같이 보들거리고 싱그러운 느낌의 둥근 산자락이다.

아스파라거스나 브로콜리처럼 봉긋봉긋, 그러면서도 울룩불룩한 질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산등성에서 또다른 등성으로 넘어가는 길, 잘 정돈된 잔잔한 평지를 지나니 또다시 나무뿌리가

울퉁불퉁 핏줄처럼 돋아난 오르막길이다. 뭐하나 반듯하게 수평이 잡히지도 않고, 이리 뒤뚱

저리 뒤뚱 기울어진 천연 나무계단에 약간씩 뒤틀려 자라나는 나무들, 덩달아 지나는 사람들도

제각기의 각도로 기울어진 채 산을 타고 있었다.

잔뜩 말라붙은 채 두껍게 나무에 덧붙어있는 껍질들, 드문드문 떨어져나간 모습이 더 황량하지만

그 뒤로 보이는 반짝반짝 연두빛 꼬마전구들이 켜진 덕에 조금은 부드럽게 다독다독. 근데 저건

무슨 코르크나무도 아닌데 나무껍데기가 저렇게 두꺼운가.


아무래도 블랙 & 화이트의 그림에서는 뭔가 서늘하고 가라앉은 느낌이 나는 거 같다. 아무래도

봄의 신록을 잡아내기에는, 저렇게 하늘 향해 조막손을 펼친 새순들을 찍는다 해도 왠지 그냥

전부 겨울산, 겨울나무 같은 느낌. 뭔가 분위기도 무거워지고 사연있는 느낌이랄까.

여릿한 잎사귀의 유아틱하게 작고 귀여운 비율을 가진 모양새도 모양새지만, 채 제대로

염색되지 않은 옅고 여린 빛깔이 아무래도 어린 잎의 뽀인트 아닐까. 저런 연두빛 잎새로

쫙 한줄기 햇살이라도 들이치면.


문득 느낌이 이상해서 하늘을 보면, 문득 파란빛이 담겼다간 이내 뿌옇게 흐린 구름이나 먼지에

덮여버리곤 하는, 그런 패턴이 반복되는 날씨. 그런 침침한 하늘 아래 침침하게 뻗는 나무의

잔가지들, 그리고 물기 뺀 큰 붓을 비틀어 대충 꾹꾹 누른 듯한 연두빛뭉치들. 청소 오랫동안


안한 집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먼지 뭉치 같기도 하다.

모락산 정상, 그렇게 높지 않은 산이라 쉬엄쉬엄 오르멍 사진찍으멍 밥먹으멍 놀았지만 금세

올라버렸다. 아래로 펼쳐진 건, 자줏빛 진달래숲, 연둣빛 나무숲, 그리고 회색빛 아파트숲.

휘휘 둘러보다가 문득 시선이 콱 꽂혔던 풍경이다. 하늘은 여전히 뿌옇지만 저게 황사인지

안개인지 구름인지는 모르겠고, 그 아래 여전히 까슬한 채 잎사귀옷을 챙기지 못한 나무들이

부드럽게 뭉개져버린 풍경 속, 연둣빛이 저렇게 강렬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모락산에서 능선을 타고 가면 바로 이어지는 백운산, 정확히 어디서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뭐,

표지판이 말해주겠지 싶어서 설렁설렁 내딛던 발걸음. 양쪽으로 아직은 힘이 덜 붙고 나이가

덜 찬 나무들이 구불구불 길을 만들어주던 그 오솔길을 세심하게 헤아려주던 봄바람.

지루했던 겨울과 지겨워질 여름 사이에서 잠깐 주어지는 봄날, 한눈팔 시간도 없는 거다.




봄이면 으레 드는 생각. 뭔가 죽은 줄 알았던 것들이 저런 생명을 품고 있었구나. 만물이

푸릇푸릇 움트기 시작하고 죽은 듯하던 나뭇가지에서 어여쁜 연두빛의 잎사귀가 꼬물꼬물

기지개를 켜는 시간이라는 생각이다. 너무 작고 여려서 손가락끝 갖다대기도 저어스러워지는

그런 여린 속살이 어떻게 저런 딱딱하고 두텁한 나뭇가지를 뚫고 나왔을까.

거칠한 나뭇가지를 기어가는 빨간 벌레인 줄 알고 자세히 살폈더니 꽃눈이었다. 전혀 나뭇가지와

어울리지도 않고 융화해보이지도 않는, 툭 돌출한 까실까실한 꽃눈. 일단 한번 눈에 뜨이고 나니

나뭇가지 곳곳에서 툭툭 터져나오고 있었다. 정답을 알고 난 숨은 그림찾기처럼.

고만고만하니 고개만 삐죽이 내민 꽃눈, 잎눈들이 아니라 나름 날개를 펼친 아이들. 바싹 마른채

툭툭 분지러질 거 같이 위태한 나뭇가지 끝에서 한웅큼 새순이 올랐다. 보기만 해도 보들보들.

그렇다고 이 따뜻한 봄날이 온통 생명의 기운, 새롭게 시작하는 느낌으로만 충만한 건 아니다.

겨우내 산이 품고 있던 물들이 흘러넘치는 개울가에 푹신하도록 뭉쳐있는 솔잎들, 그리고

이미 분해되기 시작한 그 주검들 위에 내려앉은 얇고 투명한 벚꽃잎들. 쓰나미가 몰아닥쳐

온갖 부산물들이 뒤엉킨 그런 현장처럼 뒤숭숭하고 비감한 분위기마저 느껴진다.

그 와중에도 드문드문 바람결에 휘감겨 개울로 낙하하는 벚꽃잎들. 이미 많이 상하고 시든

꽃잎이지만 벚꽃잎의 위엄은 그대로다. 새하얀, 투명한, 그리고 입술처럼 감각적인 모양새까지.

물길을 따라 이리저리 휩쓸리다가, 돌틈에 숨어 한숨 돌리기도 하고, 자기들끼리 만나서

넝출거리며 비비대기도 하고.


물살이 빨라지는 곳, 돌멩이 위에 차곡차곡 잔뜩 걸려있는 낙엽들 위에 슬쩍 얹혀버린 꽃잎

한장이 동그란 구멍처럼 보이기도 하고. 보글보글 봄볕에 끓는 물빛이 투명하기만 했다.

더러는 이렇게 물살에 휩쓸리지 않고 어딘가에 단단히 정박중인 고목나무를 붙잡고 있기도.

옆에는 그새 형체를 사그라들어가버린 벚꽃잎의 자취가 남았다. 조금은 서늘한 기분.

개울가 옆에 하얗게 내려앉은 벚꽃잎들, 녹지 않는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일 듯한 기세로

바닥을 온통 하얗게 덮은 채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나풀나풀.

 

개울이 흘러 저수지에 다다랐다. 전날의 폭우로 잔뜩 흐려진 수면 위에서 더욱 싱그러운

연두빛의 잔가지들. 저 수많은 뉘앙스의 색감을 표현할 단어란, 초록색, 연두색, 연두빛,

풀색, 누런색, 노랑색 등등이 뒤적뒤적 뭉쳐진 그 무언가쯤이 되려나.

딱딱하고 바싹 말라 되려 쭉쭉 갈라터지는 나뭇가지 속에 저런 솜털보송보송한 잎사귀가

숨어있었다는 것도, 조그만 티눈같았을 점에서부터 저렇게 귀엽고 앙증맞은 잎사귀

형체를 뻗어내는 것도, 그리고 무엇보다 저 부드러운 잎사귀에 떨어지는 이 따사롭고

포근포근한 봄볕까지. 모든 게 다 황홀하던 어느 봄날.




@ 백운산.(경기도 의왕시, 백운호수 옆)

봄날의 새파란 하늘에다가 덥썩, 셀수없이 많은 수의 끈끈한 촉수를 내뻗었다.

땅바닥에서부터 스물스물, 낑낑대고 기어오르며 더 높은 하늘에까지 팔을 뻗으려는 안간힘이

느껴졌달까. 아직 망울이 터치지도 못하고 그저 송글송글 맺힌채 징그럽도록 내걸고서는

잔뜩 긴장하고 있는 나무가 눈길을 끌었다.


막판 꽃놀이를 즐기러 나온 사람들이 신사동 가로수길을 가득 채운 그 때.

탱탱한 긴장감을 꽃눈처럼 머금은 채 기다리고 있던 그 때.


벌써부터 부처님 오신 날을 준비중이었다. 파스텔톤의 등불을 빼곡하게 달아두고 있던 경내 마당에

얼룩덜룩 팔각 그림자가 융단처럼 깔렸다. 올록볼록 엠보싱 같기도 하고. 전등사 이름부터 범상치

않더니 땅바닥에 연등 그림자를 내걸었다.

보통 알록달록한 원색으로 만들어진 연등에는 익숙했는데, 이런 식으로 파스텔톤의 다정다감한

연등들이 바람불때마다 쏴아, 가만히 앉아 그 빛깔들이 섞여들어가는 걸 보고 있어도 좋았다.

아무리 날씨가 구질구질하고 여전히 바람이 쌀쌀해도, 5월이 오긴 하겠구나. 이런 식으로

4월이 슬그머니 닥친 걸 보면.

색색의 꽃들, 전등사는 그러고 보면 한해에 한번씩은 꼭 가는 거 같은데. 그때마다 차를 갖고 가서

순무김치를 안주삼아 인삼동동주를 마실 수 없음에 아쉬워하면서 번번이 그런다. 술기운 대신

꽃향기를 맡고서 힘을 내는 패턴이랄까.

그리고 풍경의 두가지 버전. 요새 토이카메라 모드가 꽤나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서 자꾸 찍어보게

되는 첫번째 풍경 사진, 그리고 그냥 여느 때처럼 찍은 두번째 풍경 사진. 물고기가 하늘에 둥둥

떠서는 바람결에 퍼덕거리다가 산호초 사이에 낑겨 버렸다.




@ 충남 부여, 궁남지

@ 충남 부여, 사비성





@ 봉은사. 초파일 준비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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