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효자동.

보리밭 새순처럼 싱싱하고 여린 연두빛, 겨우내 노천까페를 감쌌던 비니루에 반사되다.

굳이 맨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렌즈를 거치고 또다시 구태여 (심술궂이) 비니루에 반사된 연두빛을

탐하는 건, 어느새 '젊다'는 것만으로 전부 이뻐보인다는 노친네의 음흉한 마음과 같아가는 징조인지 모른다.






햇살이 반짝거리며 하얀 종이 위에서 튕겨나던 날, 포스트잍이 바람에 치마처럼 나부끼던 날.

상하이의 허름한 뒷골목 분식집을 찾았다. 6위안짜리 라면을 시키고 끄적끄적.

막다른 골목으로 간소한 테이블과 의자가 깔려있었다. 마주보고 있는 집에선 6위안, 7위안짜리 메뉴로 점심

장사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아직은 점심먹기엔 조금 이른 11시.

막다른 골목이라긴 어폐가 있겠다. 어느 허름한 아파트의 정문이었나보다.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주문한

음식이 채 나오기도 전인데 오토바이며 자전거가 쉴새없이 눈앞을 지나갔다.

바람에 나부끼는 빨래들, 아 그러고 보니 상하이 사람들은 빨래를 전부 창밖에 널어두고 말리는 것 같았다.

워낙 바람이 많은 동네라 쉽게 마르는 듯. 잔뜩 우그러들고 꼬질한 양은 다라이가 모자처럼 씌워졌다.

라면, 이라고는 하지만 일본이나 한국에서 먹는 그 '라면'과는 다르다. 고작 6위안이니 대충 천원 정도일 텐데

상하이에 와서 그때까지 먹었던 이런저런 것들보다 맛있었다. 면도 쫄깃쫄깃, 중국산 밀가루가 실은 굉장히

좋다더니 정말 그런 거 같고, 비누냄새 나는 쏙(이던가..)의 미묘한 향기도 국물이랑 잘 어울렸다.

마치 지금은 사라진 인사동 피맛골 골목통에서 올려다보는 종로 거리처럼, 상하이의 고층건물들이 뒷골목의

하늘을 잠식하고 있었다. 이제 슬슬 들이차기 시작하는 테이블들.

음식 맛이 이런 분위기라고 말할 수 있으려나. 호텔이나 고급 음식점의 화려하고 깔끔한 분위기와 데코레이션,

서비스 따위와 함께 나오는 음식과는 정반대의 맛, 정반대의 분위기.

바스락대는 얄포름한 비닐봉지 위로 햇살이 하얗게 내려앉으니 눈부시게 하얀 꽃다발같다.

순식간에 6위안짜리 라면을 국물까지 싹 먹어치우고는 두리번두리번하다가 일어섰더니 아까 골목에 들어설 땐

미처 보지 못했던 행상이 하나 더 섰다. 저걸 뭐라고 해야 하나. 프랑스의 크레페 만드는 거랑 거의 비슷하게

계란푼 반죽을 둥그렇게 펴고는 속을 얹어서는 요리조리 접어서 건넨다. 크레페랑 다른 점은 그 속이 초코나

시럽, 설탕이 아니라 파니 숙주니 고기니 뭐, 그런 것들이란 점 정도?

그리고 저런 소세지도 들어간다. 사진만 찍기 미안해서 하나 사먹으려다가 잔돈이 없어서 못 사먹었다. 이렇게

혼자 나와서 조금이라도 돌아볼 시간이 있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던 터라 환전도 안 했었다.

왼쪽으로 들어가면 골목 안 분식집과 행상들이 섰다. 몇 걸음 골목밖으로 나서니 또 다른 세상. 방금까지 살짝

지치고 낡고 남루해보이더니 다시 여느 대도시의 풍경으로 돌아서 있었다.





@ 충북.

그림 속에 글씨가 들어갔다. 벤치 위에 마음이 또아리틀었다. 잘 익은 똥처럼. 돌돌돌.

I'm riding on the BOM.





뭔가 밍숭맹숭한 하루가 또 지난다. 

출근길에 몇 장 넘긴 '자유죽음'의 몇몇 대목이 와닿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거나, 스스로의 의지로 회사를

그만두거나, 결국은 그 사람의 선택이자 권리의 문제. 최진영도, 최진실도, 노무현도, 갑남을녀도, 그(녀)들의

삶을 위한 스스로의 선택. 그들이 수행해야 할 기능-밥벌이, 재생산, 부양 따위-을 안한다며 구박할 순 없다.


게다가 월요일, 다소 지치고 질려버린 채 시작한 업무들은 '돈과 시간의 등가교환'. 친구는 "하고 있는 일이

개인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 생각할 때 어케 할지"를 물어왔고, 자신의 시간을 돈받고 파는 건데 뭘 바라냐고,

혹여 배우는 건 원플러스원 이라고 답해줬다. 배우는 게 있음 땡큐고, 없어도 뭐랄 수는 없는 거고.


조그마한 창으로 햇살이 비껴내리는 살짝 까뭇까뭇한 까페에, 푹신한 쇼파에 앉아서 하루종일 책이나 읽음

좋겠다. 펜 하나 갖고 맘에 드는 구절 밑줄쳐 가면서, 가끔은 무릎위에 받쳐둔 베개를 하릴없이 꽉 안아보기도

하면서, 게름뱅이짓이나 잔뜩 했으면 좋겠다.






보송보송한 솜털이 햇살에 반짝거리는 때는 바야흐로 3월말. 무슨 벌레의 딱딱하고 안전한 고치처럼 섬세하고

보드라운 꽃잎을 단단히 품었던 꽃망울이 쭉, 봄볕에 잡아째지기 직전이다.

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같지 않단 말이 내 입안에서 뒹군지는 고작 몇 년, 이 녀석들은 수백수천년 전부터

변덕스럽고 제멋대로인 인간들의 말따위와는 상관없이 때가 되면 피고 지고. 또 피고 지고.







#1.

퇴근할 때 두번 놀란다. 퇴근할 때에도 날이 여전히 훤해서 놀라고, 그런데 여전히 추워서 또 놀라고. 제길,

기나왔던 개구리들도 죄다 얼어죽지 않을까 싶도록 쌀쌀하다. 이번 겨울은 참 길고, 지루하고, 무겁고도

추웠다. 아니 여전히 춥다.

#2.

이승환 콘서트를 보고 왔다. 이천까지 가서, 이천쌀밥정식을 먹고 콘서트장에서 두시간 반 내내 방방 뛰고

소리지르다 왔더니 목이 살짝 가셨다. 언젠가부터 그의 과격한 바이브레이션과 꺽음이 부담스럽다 생각했었고,

결혼 후 망가진 아티스트의 영혼이라 생각했었지만, 여전히 최고다. (혹은 헤어짐 후 다시 최고인지도.) 게스트

하나 없이, 자신의 노래들로 두시간반을 온전히 꽉 채웠던 시간. 나도 꽉 차버렸다. 역설적이게도 그의 이번

콘서트 제목은 '空 콘서트'였다. 99년엔 '무적無敵 콘서트'.

그의 노래를 듣다보면 감정이입이 되는 거다. 저 절규는 채림을 향한 걸까, 저 황홀하고 달콤한 고백은 채림을

향한 거였을까. 괜히 순진한 척 사랑을 믿고 말하고 싶어졌던 건지도 모르지만, 그의 노래들은 가사 하나하나

허투루 넘어갈 수가 없게 만든다. 그렇게, 99년 이후 십여년 만에 그의 콘서트장을 다시 찾았던 소감.

#3.

MB와 유인촌의 피해자 1인이 요새 읊조린다는 '권주가' 한구절이 문득 와닿았다.

"아흐, 인생이 귀치않다. 처마 밑 거미줄에 내 목을 맬까. 호박잎 고인 이슬에 빠져죽을까."

貴하지 않다. 귀치 않다. 귀찮다. 귀찮다는 뜻은 그런 거였다. 귀하지 않으니 에라 모르겠다, 쌈빡하지 않으니

에라 모르겠다. 아 귀찮아. 귀차니즘의 기원은, 귀하지 않은 것에 대한 홀대 내지 천대.


아직 봄의 훈풍도 안 부는데 봄을 타기 시작했나보다.


#4.

사무실 컴터의 '받은 파일', '네이트온 받은 파일' 폴더를 정리하려니 온갖 파일들이 그득하다. 위에 올려둔

그림들도 그런 것들이고, 그 중 맨 마지막 사진은 작년인가 결혼식 참석차 부산 해운대에 가서 찍힌 뒷모습.

차라리 오프라인으로 남아있는 것들이면 그냥 버리고, 태우고, 그렇게 치울 것들이 파일로 남아있으니

지우기가 쉽잖다. 지워도 지운 거 같지 않아서 문제.


여튼, 이제 다음에서 'ytzsche 블로그'로 찾으면 여기가 나온다. 기념삼아 캡쳐 한방.





진짜인지는 모르지만 중학교 다닐때던가, 왕님이 사시는 궁궐만 백칸짜리 건물로 지을 수 있었기 때문에

양반댁들은 그보다 한 칸 모자란 구십구칸짜리 건물로 집을 짓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거 같다. 백 칸이면

방이 백 개, 구십구칸이면 방이 구십구개니까 고작 방 하나 차이일 뿐, 커다랗기는 매한가지다. 


충북 보은에 그런 구십구칸짜리 한옥집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는 길, '선병국 가옥'이란 곳이다. 더구나

1904년부터 1921년에 걸쳐 건축된 건물인지라 시멘트나 벽돌도 활용되었다는둥 나름 전통과 현대가 버무려진

곳이라 하여 더욱 호기심이 동했다.

선병국 가옥에 들어서는 초입, 보기만 해도 여유로운 정자 하나. 누렇게 익은 솔잎들을 처마 위에 소담하게

쌓아올린 모습이 맘에 팍 꽂혔다.

비록 구십구칸이 고스란히 보전되어 있지는 않다지만 여전히 상당부분 그대로 남아서, 그 후손들과 객들의

일상생활을 떠받치는 제대로 된 집 구실을 한다고 한다. 사람 손을 계속 타야 온기도 느껴지고 보존도 되고,

그렇단 걸 알고 있는 분들이다. 장담그기 체험프로그램도 있다던가, 그래선지 와글와글 모여있는 장독들. 

(그리고 반대편께로 와글와글 모여있는 '파워블로거'분들..굉장한 장비와 굉장굉장한 글빨/말빨을 가지신.)

뒤로 산을 이고 있었다. 풍수란 거, 모르지만,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다른 차원의 이야기들은

차치하고라도 미감의 측면에서, 자연의 어디메쯤 놓이면 이쁜 그림이 나올지에 대한 경험적 미감이 축적된

심미안으로부터 비롯한 걸지 모르겠다고. 구름이 솔찮이 낀 하늘, 덩굴이 솔찮이 휘감은 담장, 이뻤다.

조금 징그럽다 싶을 정도로 빽빽한 덩굴들, 북쪽의 응달진 곳이라 저렇게 더욱 비비적대며 살겠다고 아우성인

건가보다. 본채와 따로 떨어져서 배치된 '효열각' 기왓장 위로 삐쭉삐쭉 자란 풀떼기들이 보인다.

효열각 안으로 들어서니, 모처럼 보는 듯한 자연스레 퇴락한 단청이 멋스럽다. 너무 선명하고 작위적이다 싶은

모습, 혹은 아예 미미한 맛조차 남지 않은 모습들은 쉽게 보이지만 이렇게 살짝 바래고 씻겨나가기란 쉽지

않을 거 같다. 적당히 인간의 것이기도, 또 적당히 자연의 것이기도 한 그 기교랄까, 신비랄까.

어흥. 호랑이는 아니고 무슨 괴물딱지같긴 하지만 어쨌든, 백호의 해 기념삼아 어흥.

벽에 찰싹 붙은 채 사방으로 종횡하는 덩굴 줄기를 보노라면, 파직파직 사방으로 균열이 번져나가며 깨어지는

유리창을 초고속카메라로 돌려보는 느낌이다.

효열각을 마지막으로 올려봐주고, 안에 있는 비석을 촬영하려 몇 번 시도하다 전부 실패. 살풋 말려올라간 처마

끝으로 올라가는 완만한 곡선이 편안하다.

만리장성만큼은 아니지만 구불구불 꽤나 긴 담장으로 둘러쳐진 선병국 가옥채에 들어서는 입구.

옆으로 계속 이어지는 담장따라 시선을 넘겨보면 운치있고 담백한 느낌의 건물들이 차곡차곡 들어서 있다.

그리고 마당엔 제법 수령이 되어보이는 잘 생긴 나무 하나, 뒤로는 구름을 뒤집어쓴 아늑한 산 하나.

"이리오너라"를 여기서 아무리 외쳐봐야 건물 안에까지 안 들렸을 거 같은데. 예전에는 과객실, 방앗간채까지

있었다고 하니 아마 이옆에도 뭔가 발레파킹할 때 쓰이는 간이천막같은 거라도 있지 않았을까.

사랑채. 건물 기둥이 모두 둥글둥글한 원기둥인 게 눈에 띈다. 안채는 네모기둥과 원기둥이 모두 쓰였다던데

뭐가 전통적인 스타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쩜 둘다 전통적으로 쓰이던 스타일인지도. 
 
바람소리를 기다리는 풍경.
 
나무 자체의 발색이 그대로 살아있는 문틀이 고상해 보인다. 화려하지 않고 깔끔하다 싶으면서.

바싹 마른 해바라기는 그런, 갓 베어낸 나무색이다.

따뜻한 발바닥을 기다리는 추운 털신.

삐뚤게 박힌 석등, 살풋 열린 정지간 문짝. 발랄한 노란빛 토담을 지그시 눌러주는 기왓장.

안채, 사실은 외부인 출입금지..라는 푯말이 서있었지만 살짝 돌고 나왔다. 시멘트로 마감된 기와지붕, 벽돌로

정돈된 한옥집의 아랫도리. 끝에서 끝까지 이어진 빨랫줄에 쭉 늘어선 옷가지와 이불들이 다정하다.

두툼한 패딩점퍼를 벗어던지듯 쭉 찢어진 목련꽃방울, 그 곳에서 봄기운이 쏟아져내린다.

부엌에서 이어진 연통이 ㄴ자 형태로 하늘을 향했다. 문짝 하나하나가 세심하게 공들여 만들어졌다는 느낌은

여기서도 계속됐다.

잘 손질된 생선, 조기인지 뭔지, 안채의 어느 나무기둥에 열매처럼 매달려 있었다. 연목구어, 가끔은 통한다.

바닥에 철퍽 떨어지는 생생한 소리와 이미지를 느낄 수 있는 걸 보면 분명 재래식 화장실인데, 이런 식으로

'현대화된' 재래식 화장실은 첨이다. 차마 찍을 순 없었지만 나름 발로 조종가능한 뚜껑도 있고, 찍지는 못해도

체험은 해볼 수 있었다. 다만 그 주황빛 함석지붕이 주변 경치를 흐트려놓아 아쉬웠달까.

돌아나서는 길, 작년 가을에 나리워졌을 낙엽들이 여전히 소복하다. 왠지 테이프를 거꾸로 감듯 저 낙엽들이

다시 물기를 쭉쭉 빨아선 초록빛 가득 채워 포르르 날아오르는 걸 상상하니 즐겁다. 착착, 자신들이 의탁했던

가지로 다시 돌아가 단단히 붙는 초록잎새들의 향연이라면.

살짝 삐뚤게 매달린 우편함이 외려 편안해 보인다.

둘러보고 나오는 길, 놓쳤던 풍경이 하나 시선을 끌었다. 저긴 뭔데 한쪽 면이 전부 저렇게 나무로 짜여져 있는

걸까. 굉장히 독특해 보이는 나무빗살무늬가 가득하다.

토담길 옆 나무 한그루가 땅거죽을 뚫고 허리케인처럼 솟아올랐다.

잘 가라고 배웅하는 풍선춤 나무 두 그루. 온 몸이 오글오글하다.






@ 캄보디아, 씨엠립.




@ 남이섬.



@ 기억이 나지 않는 어디선가.


@ 제주도, 서귀포 인근.








@ 이대 근처 까페.
벚꽃잎이 바람에 실려 후둑후둑 떨어질 때, 그렇게 이는 꽃바람을 보면 왠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

그런 게 봄을 타는 거라면, 난 봄을 심하게 타고 있는 중이었어.


우산조차 벚꽃잎처럼 나빌레라던 비바람이 장악해버린 창밖 풍경을 보면서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달까.

연분홍빛 꽃잎들을 곱게 모두고 있던 꽃받침에 그악스럽게 달려있던 마지막 꽃잎들마저 니녀석이 쓸어가겠구나,

그렇게 후둑후둑 후두둑 여릿하고 아슬아슬한 것들은 모두 날려버리고는,

텁텁하지만 탄탄한 갈빛가죽의 골격만 남기겠구나 싶더라구.


꽃바람을 보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게 봄을 타는 거라며?

2009년 봄은 끝났어. 내년에 다시 올지언정, 2009년 봄은 끝.



잔뜩 지친 채 버스 좌석에 몸을 얹어놓고서 잠시 심령이 창밖을 부유하던 그때...문득 전화기가 온몸으로 울음을

울었다. 지금 무슨 생각하고 있어?

다짜고짜 달려드는 그 목소리는 껌처럼 늘어진 채 저어기 어딘가쯤 철푸덕 널부러져있던 내 의식을 황급히 유체로

복귀시켰고. 난 여전히 술에 취한 듯...혹은 복화술을 시험하듯...내 입술이 어디서부터 말려올라가고 혀가 어디에

위치하며 어떻게 잇몸을 쳐올리는지 하나하나 점검하며 대답하기 시작했다.


나...돌아올 길 찾을라고 아침에 옷에다가 밥풀을 잔뜩 묻힌채 집을 나섰어...하나하나 살금살금 뜯어가며, 길가다

왠지 맘에 드는 사람들 이마빡에 666 바코드 새기듯 하나씩 납작하게, 동그랗게 붙혀놨었지..풍경이 갑자기

겹쳐지면서, 내가 지금 마녀가 들끓는 숲속에 버려졌다는 그 화급함...떨림...그런 느낌이 내 폐에 가스처럼

스며왔어. 무언가 내 손을 잡고 있었는데, 무언가 내게 따스한 느낌을 주고 있었는데, 무언가 내게 이것이

현실임을 항변하고 있었는데...그 뭔지 모를 상실감이 차오르면서 왠지 이제 더이상 세상은 당장 방금 전까지의

살아있는 세계랑은 달라졌다는 느낌.


공드리의 '수면의 과학'에 나왔던 풍경처럼 두터운 벽지에 발린 세계가 2차원처럼 내 앞에서 철푸덕 누워버릴 거

같은 느낌. 아...헨델은 그레텔의 손을 절대 못 놓았겠구나, 다른 한 손으로 잡은 빵은 아마도-분명히-이빨로

물어뜯어 길바닥에 흩뿌려 놓았겠구나...손을 놓치면, 손을 놓으면, 숲의 나무가 전부다 누워버리거나 혹은 계란빛

모래로 가득차 사막으로 가라앉는 걸 보고 말았겠지...깨어진 공간틈으로. 마녀가 등 뒤에서 목덜미를 깨물듯한

조바심으로, 나무가 금세라도 뿌리를 뒤틀며 윈드밀을 선보일 듯한 위화감으로 가득 차버린 듯해서,


눈알을 디룩이며 겁먹은 채 바라보는 세상에는 온통 내가 정성껏 붙여놓은 밥풀떼기들을, 헨젤이 이빨로 왕왕

물어뜯었을 빵 부스러기들을 소멸시켜버리는 녀석들이 푸드덕거리고 있었다. 그게 세발달린 까마귀가 되었건,

혹은 발톱사이에도 털이난 붉은 낙타가 되었건, 결국 햇볕에 바래 까매지고 말 파랑새가 되었건.

그래서 차는 달리는데 내 몸은 의자에 얹혀 있었고, 의식은 아마도 그림자를 떼어내고야 갈수있다는 그 곳에서

야위고 있었다는 걸...현실과 현실과 현실과 현실.


잠시동안 말이 없던 전화기가 마침내 입을 떼었다, 지금 거기 어디야? 와타나베, 거기 어디야? 어디야? 어디야?

미도리는 녹색이란 뜻이지. 안녕 녹색, 안녕 헐크..안녕 식물성플랑크톤, 안녕 엽록소. 전화기가 녹아내리더니

내 혈관을 타고 심장을 삼키려 달겨들기 시작해서...난 오른손으로 왼쪽 팔뚝을 잔뜩 움켜쥐고 그놈을 막아야만

했지. 격하게 몇번 의자 손잡이에 그녀석을 부딪히고 나서야 다시 그건 내 머리속의 소주병에 들어가 스스로

병뚜껑을 닫고 잠을 청했어. 램프의 요정 바바..이제 소원은 하나밖에 남지 않았지?


안녕 하루키, 결국 난 노르웨이의 숲으로 돌아왔어. 이토록 성가신 인사말이라니. 내일 아침은 호랑이 버터에

미역을 말아먹어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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