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심, 경복궁을 축으로 동서남북으로 자리한 동네에는 아주 심플한 이름이 붙어 있다. 궁에서 동쪽에는 동촌, 서쪽에는 서촌,

 

그런 식인 거다. 어찌 생각해보면 그 퉁명스럽고 게으른 작명에는 일종의 특권의식, 우월감이 기저에 자리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구중궁궐에 가장 근접한 동네, '일번지'를 누리는 셈일테니.

 

그래서 여기는 그 중 서촌, 경복궁의 서쪽에 붙어있는 동네다. 한가한 골목길에 깜빡깜빡 잊고 있었다는 듯 성기게

 

듬성듬성 기와지붕 한옥집을 꽂아둔 동네, 이렇게 볕이 좋은 날에 그 중 골목 하나를 골라잡아 자리를 깔고 앉았다.

 

참여연대 부설 아카데미인 '느티나무'에서 수강중인 '서울 드로잉' 수업 첫번째 날, 한옥집과 기와지붕을

 

그려보라는 게 세시간 남짓한 수업시간 중 한시간은 명도 실습, 삼십분은 구도 설명 등으로 날리고 남은 시간,

 

한시간정도를 채워야 하는 미션.

 

고경일 선생님이 몇군데 추천해준 포스트 중에는 '대오서점' 건물도 있었다. 이전에도 지나다가 굉장히

 

매력적인 건물이라 생각했었는데 미처 사진에 담아두지 못했던 곳, 청와대 근처라 온통 야트막한 건물들로

 

스카이라인이 내려앉은 이 곳에서도 특히 땅바닥에 달라붙은 기와지붕은 허물어져내리고 있었다.

 

이 각도로 그림을 그려볼까 잠시 망설이던 사이 같이 수업을 듣는 분들이 우르르 자리를 잡으셨다.

 

구도가 같다고 같은 그림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왠지 다른 걸 찾아보는 게 낫겠다 싶어서 미련을 버리고.

 

그래도 아쉬우니 앞뒤로 좌우로 둘러보며 이 정감가는 건물을 뜯어보았다. 저 기묘한 폰트의 '대오서점' 간판은

 

언뜻 어설프고 어색하면서도 묘하게 마음을 끌어당기는 인간미가 있는 거 같다. 적당히 허물어져가고 바래가는

 

기와지붕이니 건물의 외벽도 마찬가지.

 

또다른 추천 장소, 그냥 여느 동네의 골목길과 같았는데 문득 말끔한 기와지붕과 단정한 돌담문양 벽면이 서있었다.

 

하다못해 전선들조차 직선으로 쭉쭉 뻗어나가는 '근대화'된 골목길에 능청스레 살풋 처마끝을 쥐어올린 기와지붕.

 

그런 은근한 까불거림, 혹은 여유가 느껴지는 전통적인 기와지붕이란 건 눈으로 보거나 사진으로 찍을 땐 참 좋은데,

 

그걸 그림으로 담아낸다는 건 굉장히 머리가 아파지는 거다. 좀처럼 평면에 담아내기 쉽지 않은 그 입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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