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한옥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 희뿌연 하늘이 계속되더니 끝내 펑펑 눈이 내렸다.

 

진눈깨비처럼, 혹은 쌀가루처럼 휘몰아치는 눈이 내리고, 시커먼 기와지붕위에는 하얗게 줄이 그어졌다.

 

 

 

전주의 숨어있는 까페, 나무라디오. 혹은 나무라듸오. 오랜 한옥집의 얼개를 거의 그대로 유지한 채 까페로 탈바꿈한 곳인지라,

 

나름의 따뜻함과 오랜 목재들이 빚어내는 운치가 살아있다. 게다가 잔잔한 분위기의 음악과 그걸 그대로 체현한 듯한 주인 아저씨도.

 

 

 

 

 

 

 

어슴푸레해질 무렵 들어서는 입구에 이렇게 이쁘게 반짝반짝 조명이 섰다.

 

 

벽면에 붙어있던 다종다기한 낙서같은 모양새의 나무라디오 간판..이라고 해야 할까, 아마도 주인 아저씨가 취미삼아

 

나무를 만지시나본데, 하나하나 꽤나 품과 시간을 들이셨을 법 하다.

 

 

 

 

 

후텁해진 실내 공기 속에서 나른하게 겨울볕을 쬐다 잠들어버린 고양이, 그런 고양이를 구경하다 보면 어느결에 카레냄새가.

 

 

 

 

아직 한옥마을의 상권이 확 번져나가지는 않은 끄트머리쯤의 카레전문점. 문구점 간판을 리폼한 듯한 얼기설기한 간판이 좋다.

 

그리고 벽초 홍명희의 생가였던가, 한옥 건물 한켠에 기대어선 돌멩이 가족들.

 

 

 

이런 터무니없이 거창한 이름의 부동산집도 여전히 구경거리가 아닌 실제 삶의 터전으로 버텨내고 있었고.

 

왠지 옛날 목욕탕을 떠올리게 하는 붉은 벽돌담에 한자씩 큼지막하게 돋아난 한약방의 간판도 눈길을 끈다.

 

 

전주에서 차로 조금 이동해야 나타나는 오스 갤러리, 어느결에 사람들이 수두룩빽빽해진 전주 시내 말고 좀더 내밀한 곳을 원할 때.

 

 

봄에 오면 벚꽃이 만개해 있다는 길을 한참 꼬불꼬불 달리다보면 툭, 하고 나타나는 야트막한 건물. 갤러리 느낌이 벌써부터.

 

여리지만 섬세한 겨울볕, 그만큼 희뿌옇고 존재감없는 겨울 그림자.

 

귀여운 화장실 표시.

 

그리고 통유리로 시원하게 트인 바깥 풍경과 함께, 어느 푸릇한 봄철 이 곳을 담았을 사진 몇장이 겹쳐졌다.

 

 

 

 

 

 

 

 

 

 

 

 

 

 

 

 

 

 

 전주 전동성당. 벌건 벽돌 그림자가 늘어뜨려진 성당 앞 공터에 사람들이 비켜나가길 바라던 기대는 가당치도 않았다.

 

 

 촘촘하게 햇살을 체쳐내던 하얀 창문틀. 황사가 누르께하던 중부지방과는 달리 이른 봄볕을 선물처럼 받던 그곳.

 

 

 한옥마을의 어느 까페. 야트막한 담장과 소담한 울타리 너머로 골목들을 가득 메운 사람들,

 

사람들 사이에 부대끼다 조그마한 단층 까페의 폭신한 의자에 잠시 앉아 쉬어가는 봄볕 한 줌.

 

검푸른 바닷빛깔의 기와지붕이 넘실넘실, 하늘을 향해 검포도빛 치마 끄트머리를 쥐고 살포시 인사하는 것만 같다.

 

 

 시퍼런 기와물결 너머, 동해 바다 저멀리의 조그마한 섬처럼 아스라히 보이는 전동성당의 실루엣.

 

 

전주한옥마을에서 삼천동 막걸리골목까지 걷던 길, 지름길이라 지레 짐작한 채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었던 산길을 겨우 빠져나온 순간.

 

 


전주의 전동성당 앞 골목에서 문득 고개를 들어 발견한 간판 하나.

국수카페, 카페 이름이 그냥 국수인 걸까 아니면 국수도 팔고 커피도 파는 카페라는 걸까,

조금 당황스런 마음으로 몇 초간 하염없이 바라보던 간판이었다.


뭘까. 손님들이 한쪽에서 후루룩쩝쩝 하며 국수를 먹고 다른 한쪽에서는 커피잔을,

이왕이면 앙증맞은 에스프레소잔을 손가락에 꼽은 채 그럴듯한 표정짓기 놀이중이란

그림은 좀 상상이 되지 않는데..뭘까나.




2층짜리 나즈막한 국립전주박물관 본관 안에서 만난 화장실 표지, 산뜻한 노란색 배경에

지난 어느 왕국의 전통 와당 문양이 담겨 있고, 그 앞으로는 혼례때 입을 법한 긴 두루마기를

입은 남자가 환히 웃고 있다. (지방색이 살아있는 훌륭한 (공짜)문화공간, 국립전주박물관.)

여자화장실 역시, 간결하고 깔끔한 도안으로 처리된 혼례복장의 여자가 환하게 웃고 있는

노란색 표지. 전반적으로 환한 분위기의 국립전주박물관의 화장실에서 더욱 산뜻하게

눈에 띄는 기분좋은 표지였다.

역시 국립박물관이라 조금 더 세세한 부분까지 문화를 담고자 노력했다는 게 보인다 싶어

기분좋게 돌아서는 길, 조금 아쉽게도 박물관 마당에 있는 화장실은 저렇게 금빛이 번쩍이는

글씨로 적힌 채 여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파랑색 빨강색 사람이 우두커니 서있었다.


이왕 하는 거 안이나 밖이나 좀더 통일되고 이쁘다 느껴지는 표지를 붙이면 더 좋았을 텐데,

문화가 담긴 화장실 표지판, 인상에 남는 화장실 표지판 찾기가 쉽지 않다.



* 여행을 다니며 결코 빠질 수 없는 '답사지' 중 하나가 그곳의 화장실이란 점에서, 또 그곳의

문화와 분위기를 화장실 표시에까지 녹여내는 곳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국내외의 특징적인

화장실 사진을 모아보고자 합니다. 자신이 본 최고의 화장실 표시를 제보해주실 분은 댓글을

부탁드립니다~!^-^*



지방에 그럴 듯한 박물관이 있다는 건 꽤나 행복한 일이다. 모든 게 서울에만 편중되어 있는 이 지독한

'서울공화국'이라지만, 지방에 사는 사람들도 슬쩍 맘만 내키면 훌륭한 전시품들을 둘러볼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는 일이기도 하고, 각 지역의 지방색이 드러나는 좀더 특성화된 전시 테마나 기획을 통해

국가 단위의 역사인 '국사' 속에 숨겨져 있는 지방사나 홀대되었던 역사를 발굴하는 일이기도 할 거다.


무엇보다도, 날씨가 죽도록 촙던 날 사방으로 쏘다니다가 잠시 들어가 몸을 녹이며 설렁설렁 둘러보기에

딱 좋은 경유지라는 점. 전주에 있는 국립박물관, 높지 않은 2층짜리 아담한 국립전주박물관은 입장료가

무료일 뿐더러 이 지역에 위치했던 마한이라거나 가야의 유물들이 제법 풍부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사진은 가야의 철제 갑옷, 굉장히 이국적이라는 느낌이 들었을 정도로 가야의 역사나 문화유산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던 거 같다.


이 곳이 정말 매력적인 공간이라고 느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유물들에 붙어있는 이름표들에 있었다.

'점을 치는 뼈', 이 정도면 뭔가 갸우뚱하면서도 그럭저럭 별다른 낯선 느낌없이 넘길만하다 치더라도,

'신께 바친 다양한 제물', '크기를 줄여 만든 석제품'이라니. 왠지 이런 건 '제사공헌물', '석제모조품'

따위 한자어로 퉁명스럽고 고압적인 느낌으로 이름이 붙어있었던 게 일반적이지 않았나.


그런 식의 '친절한 이름표'종결자랄까, '고종 황제의 도장'이란다. 나이 든 사람들은, 아니 당장

나부터도 '어보'라거나 '옥새'라거나 '국새'라거나 따위 한자어로 적혀야 뭔가 있어보이고 격에

맞다고 얼핏 느껴지는데 과감하게 '도장'이란 단어를 써버렸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쉽게 풀어쓴

이름표를 보니까 그 유물이 뭐에 쓰인 건지 감이 확 온다. '네귀달린청자항아리'라니 실제 유물

특징이랑도 딱 와닿고, 이름만 들어도 상상이 대충 되고.


아이들을 데리고 교육삼아 오는 학부모들이 급격히 많아진 걸 생각하면 바람직한 변화인 듯 하다.

게다가 사실 괜히 어렵고 함축적인 한자어로만 이름표를 적어두는 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일, 전주국립박물관에서처럼 한글로 풀어쓴 이름을 크게, 한자어로 작게 병기하는 정도가

딱 좋은 거 같다.


박물관에서 본 신기한 것들이 몇 점 있었다. '시가 새겨진 청자 조롱박모양 주자',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신기하다기보다는 집에 저런 거 있으면 좋겠다 싶은 것들. 청자에 저렇게

술을 권하고 풍류를 즐기는 시를 새겨두고 술을 담아 주거니 받거니. 얼마나 멋졌을까.

집에서 저런 청자 주전자에 술을 담고 분위기 맞는 깔맞춤한 잔에 따라마시면 멋질 텐데.

그리고 실내 전시관 한켠 장독대에 뜬금없이 붙어있던 하얀 버선발 한짝. 알고 보니 집의 장맛을

지키기 위해서 숯도 깔고 꼬추낀 금줄도 두르고, 요기까지가 익히 알고들 있는 내용이지만

이렇게 버선발을 거꾸로 장독에 붙여두는 것도 '잡귀'를 쫓는 방법 중 하나였다고.

그리고, 사방에서 출몰하는 쥐는 '토끼의 해'특별전시 공간도 비켜가지 않았다는. 정작 토끼에

관련된 전시도 몇 점 되지 않는 상황에서 눈에 번뜩 뜨인 쥐 녀석. 요새 엿기름에도 빠지고

케잌속에도 들어가고 파란집에도 들어가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이 글에 오른 모든 사진은 일체의 후보정을 거치지 않은 것임을 미리 밝힙니다.

(보정을 거치면 좀더 봐줄만한 사진이 되겠지만, 그래도 뭐, 보정 안해도 제법 봐줄만하지

않나 싶은 '제눈에 안경' 심리가 발동해 버렸네요.)


평소 들고 다니던 Pentax K-x를 한달넘게 묵혀 두고는 SONY의 알파33을 들고 다니면서,

그러고 보니 (여느 때처럼) 참 많이도 돌아다니고 사진도 참 많이 찍었다. 더구나 연말연시

괜시리 부산하고 싱숭생숭한 마음결 따라서 여행도 가고, 전시도 보고, 술도 마시고, 그렇게

낮이나 밤이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나름대로 뿌듯하게 보낸 한 달이었던 듯.


그 중에서 그나마 '발로 찍은' 느낌이 덜한 사진들을 좀 정리하며 카메라 리뷰도 마무리짓고,

2010년 12월부터 2011년 1월까지 엉겁결에 한숨에 몰아온 페이스도 잠시 되짚어볼 필요가

있을 거 같다. 앉은 김에 쉬어간다고, SONY a33으로 찍은 사진들로 포스팅했던 지난 50여개

글들도 다시 한번 흘낏거리는 잔 재미도 있었다.


#1. 시선은 넓혀주고, 기억은 생생하게.(스윕 파노라마 기능)



전주 한옥마을에 갔을 때, 파노라마로 찍기에 딱 안성맞춤이라 생각했던 풍경이 있었다. 돌담이

제법 짧지 않은 길이로 쭉 이어져 있는 길에서라면 사진 끝에서 끝까지 멋진 파노라마를 찍을 수

있겠다 싶어서. 이씨가문 할아버지 얼굴 익히라고 만들어둔, 전주한옥마을 경기전.


약간 창문빛이 반사되긴 했지만, 강남의 50층쯤의 빌딩에서 서울을 내려다보며 찍은 풍경 역시

a33이 가진 스윕 파노라마 기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었던 거 같다. 구불대는 탄천과 하늘로

치솟은 아파트들의 윤곽이 거의 그대로 정밀하게 잘 드러났었다.

 
그리고 이 사진, 포스코사거리의 루미나리에를 쌍쌍이 즐겁게 지나가는 사람들을 피해

혼자 카메라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드르륵드르륵, 끝내 수평을 맞춰서 사진 바닥과 위에

나무들을 심어낸 것에 스스로 너무 대견했다. 매콤하게 추운 밤, 하늘과 땅에 맞닿은 불빛.



#2. 1420만 화소의 압도적인 화질.

전주한옥마을, 경기전을 들어서는 길이었다. 아무런 보정을 하지 않은 사진(여기에 쓰인 사진들

전부가 그렇지만)인데 그때 내가 보았던 하늘색을 그대로 담아올 수 있었다. 파란 하늘에 슬쩍

무지개처럼 걸려있는 빨간 홍살문.

단정한 수묵빛의 기와지붕 아래로 슬쩍 먹물이 번져버린 단청이 웅크리고 있었다. 그 위로

수없이 자잘한 실금이 그인 파란 하늘이 살금, 내려앉았다.

전주한옥마을 경기전의 차분하고 담담한 풍경들, 사방에 나린 눈과 꽁꽁 얼어 반짝거리는

바닥의 얼음 때문에 사진찍기가 쉽지 않았지만 아무리 못해도 기본은 하던 a33.

한옥마을 옆의 전동성당, 그런 게 있는지도 미처 모른 채 생각지도 못하고 맞닥뜨렸을 때.

눈덮인 한옥마을, 불쑥 올라선 전동성당의 둥근 지붕.

오랜만에 찾았던 학교에서 예기치도 못한 샤방샤방한 인테리어의 까페를 만났을 때도

녀석은 나보다 훨씬 능숙해 보였다. 기억해 줘, 아고라.


사진 속에 다양한 빛깔이 들어가는 '예제'라면 비빔밥만한 게 또 있을까 싶다. 전주에서 맛본

비빔밥은 그 맛도 맛이었지만, 먹기 전부터 그 때깔이 남달랐달까. 대충 김이 파랗고 보랏빛도

품고 있다 치면 무지개색이 다 들어간 셈이다. 전주엔 '전주비빔밥'이 없다, '비빔밥'이 있을 뿐.

비빔밥말고도, 평소 음식 사진을 정말 맛나보이게 찍는 사람들은 굉장한 실력의 능력자라고

생각했는데 얼추 흉내낸 사진을 찍을 수도 있었다. 사진만 봐도 배고파지는, 전주의 '골동반' 정식.

인형전시회를 둘러보며 이것저것 찍어본 사진들도 뭔가 내가 써본 다른 카메라들과는 발색이

다른 거 같기도 하고. 시크릿가든의 현빈과 하지원, 2010 서울 인형전시회에 참가하다.



#3. DRO와 HDR의 섬세한 표현.

전동 성당을 맞닥뜨렸던 건 마침 해를 대략 정면에서 바라보던 역광 시츄에이션. 정면이 온통

까맣게 나올까봐 DRO기능을 발휘해서 찍어봤다. 눈덮인 한옥마을, 불쑥 올라선 전동성당의 둥근 지붕.

호텔의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반사되는 테이블 유리 속 세상, 조금은 전반적으로 어둡고

조명이 마치 조각보처럼 여기저기 뚝뚝 끊겨서 떨궈지는 데도 꽤나 화사한 풍경을 담아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맹장같던 하루하루가 지나고.

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도중에 들렀던 화장실, 화장실 옆에 있는 물그릇에 둥둥 떠있는 촛불을

발견하고 다시 자리로 가서 카메라를 들고 찍고는, 화장실 가는 것도 잊은 채 다시 술마시기에

열중했다는 슬픈 전설이 함께 하는 사진이다. 히레사케가 땡기는 날.

그러고 술집을 나와서, 서로 계산하라며 이리저리 미루다가 먼저 도망나온 이는 유유히 카메라를

꺼내들고 술집 마당에 꾸며진 트리를 감상했다던가. 이미 저런 꼬마전구로 불밝히기에는 꽤나

캄캄히 어두웠었지만, 이때 역시도 DRO기능의 힘을 빌려보았다.


#4. ISO12800의 강력한 고감도 성능.

다소 어둡고 나른한 분위기의 바, 내부가 온통 컴컴하고 어슴푸레한 조명이 드문드문 서 있던

그런 곳이어서 사진이 제대로 찍히기나 할지도 걱정스러웠던 곳이다. 그래도 제법 분위기도

전해지면서 인테리어의 디테일도 뭉개지지 않고 살아난 거 같다.

그 곳의 인테리어를 좀더 찍어보면, 유리로 된 칸막이에 통나무가 스팸처럼 꼽혀있던 곳. 역시

조명이 꽤나 어두워서 그 통나무의 나무테무늬나 거칠거칠한 결이 제대로 찍힐까 싶었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꽃도 촛불을 가까이 하지 않고서는 이게 무슨 색깔의 꽃인지, 꽃잎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기 쉽지 않던-과장을 조금 보탰지만-그런 상황. 일렁이는 촛불에 의지해 찍은

사진 치고는 꽃잎의 모양이니 색깔이 꽤나 선명하다. 위로 뻗치는 촛불의 광선도 슬쩍 잡혔고.

또다른 술집, 왜 이렇게 음침하고 어둑어둑한 술집만 찾아다녔는지 새삼 의아하긴 하지만, 여기도

어둡기로 치면 그다지 나을 게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복잡한 문양을 가진 칸막이를 나름대로

잘 잡아내고 술집 분위기도 조금은 더 밝고 따뜻하게 찍힌 것 같다.

깜깜하기로 따지면 요 강아지들도 못지않다. 온통 까만 녀석들이 어둑한 방안에 슬쩍 흩뿌려진

햇살 한줌을 맞으며 해바라기하던 시간. 까맣고 반들거리는, 의젓하고 충직한 눈매가 맘에 든다.

조그만 꼬마전구들이 아무리 수백수천개 모여봐야, 시간이 너무 늦어서 밤이 깊어지면

사진으로 찍기에도 좀 막막해졌던 경험이 누구나 한번쯤 있지 않을까. 신데렐라가 열두시

종이 치는 순간 느꼈을 안타까움이 바로 그런 거였을 텐데, 아무래도 ISO12800까지 가능한

카메라다 보니까 그 시간이 조금은 늦춰지는 것 같다. 한시반쯤?


#5. 그냥 왠지 빠질 수 없는 사진들.
 

그냥, 뭔가 인상적이어서 올린 사진들. 왜 무슨 카메라가 참 좋아요, 라는 식의 글에 붙어있는

샘플이미지를 보면 이런 거 한장씩은 꼭 들어가 있는 거 같길래 나 역시 질 수 없다며 올려본

사진들이다. 마지막 사진은 자세히 보면 자전거를 탄 사람이 차창 밖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중.


#6. Auto-Focus를 구현한 Full HD 동영상.

동영상은 아니고, 그 동영상의 한 장면을 캡쳐한 사진이다. 내처 걷고 있던 말이 어느순간

카메라를 의식했는지 똑바로 이쪽을 쳐다보았다. a33은 계속 그랬듯 움직이는 말머리에서

초점을 벗어나지 않은 채 고화질의 동영상을 촬영하고 있었고, 그 화질은 이렇게 대충 한컷

캡쳐해 봐도 알 수 있듯이 굉장히 선명한 거다. 아마 SONY a33의 최대 장점 중 하나 아닐까.


終. 'DSLR종결자'를 환영하며.


첫 리뷰글에서 한 문장을 떼어와도 지금의 생각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요새 이런 카메라 한 대 없는 사람이 누가 있나.

너도나도 DSLR 들고 다니는 세상에 신제품이래봐야 거기서 거기 아니냐, 라는 실망감 내지

냉소가 아니라, 이제 DSLR시장의 판도와 문법을 바꿀 새로운 카메라가 나왔으니 조만간

사람들 손에마다 이 카메라를 쥐고 다니는 풍경을 보지 않을까 싶다는 환영과 독려의 의미로.




* 이 글들은 소니 a33 평가단 활동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전주한옥마을, 그 중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 중의 하나는 '경기전'. 마치 덕수궁 돌담길이

하염없이 이어진 듯 보이는 이 길을 걸었다. 날씨가 워낙 추워서 사람들이 얼마 보이지 않았고

저만치 앞에서는 혼자 온 듯한 외국인 관광객이 새하얀 얼굴이 빨개진 채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는데, 왠지 이런 날 이렇게 마주치면 웃음부터 주고받게 되는 거다.

길바닥이 온통 반짝반짝하게 얼어붙었다. 경기전 내부로 들어와서도 바로 옆 전동성당의

멋진 풍모는 가려지질 않는 게 묘한 느낌이다. 조선시대 한옥 마을과 고풍스런 성당이

한 장면에 담기다니, 어디선가 유생들이 '야소'귀신 물러가라며 뛰쳐나올 법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제법 이쁜 그림이 된 거 같다. 시간이 쌓여 공자귀신과 야소귀신도 화해를 한 건가.

그리 높지 않은 한옥이지만 오르락내리락하는 처마의 윤곽선을 눈으로 더듬다보니 뭐랄까,

리듬을 타는 기분마저 느껴졌다. 야트막한 담 너머로 보이는 건물들은 이 곳 경기전에서

제사를 지낼 때 쓰는 음식을 만들고, 떡을 찌고, 제기를 보관하는 등 온통 제사를 위해

마련된 건물들이니 그런 기분은 조금 안 어울리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경기전'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영정)을 봉안하기 위한 건물이라고 한다. 대략 500년 전에

그려진 이성계의 초상화를 그의 후손들이 대대로 왕노릇을 하면서 바라보고 기리면서 할아버지,

할아버지할아버지의 얼굴을 익혔을 거라고 생각하니 나름 절실하기도 했겠지 싶다. 사진도

없고, 딱히 그 이미지를 남겨둘 방법이라고는 그림밖에 없을 텐데 그걸 얼마나 애지중지했을까.


그렇게 1410년, 태종때 처음 지어져서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한 이래 이 곳의 중요성은 계속

높아지기만 한 거 같다.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네 곳의 사고 중 하나인 '전주사고'도 여기에

있으니 꽤나 중요한 공간인 거다. 게다가 전주이씨와 경주김씨의 시조묘까지 있다고.

기와지붕위로 나뭇가지들이 살얼음처럼 번져나간 풍경. 잎새 한두장이 남아서 더욱 추워보인다.

태조 이성계의 영정이 봉안된 건물, 내부를 찍거나 영정 자체를 찍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니

슬몃 카메라를 돌려 모퉁이 사진이나 찍을 수 밖에. 깨끗하게 칠해진 단청이 선명하다.

영정이 모셔진 경기전 내부 깊숙한 건물로 들어서는 가운뎃길은 사람을 위한 길이 아니다.

이름도 '신도', 아마도 이성계를 위시한 조선왕조의 이씨 혈족들, 그들의 영혼만이 다닐 수

있는 영혼길인 셈. 아쉬웠던 건 가운뎃길도 그렇지만 주변 길도 좀 정비 좀 잘 해두었으면

어땠을까 싶도록 삐뚤빼뚤 들쭉날쭉하던 바닥돌들의 배열이었다.

아마도 '전주사고' 건물을 복원이나 수리 중인 듯한 곳, 홍살문의 살들이 무언가에 잔뜩

치이기라도 한 듯 삐뚤빼뚤 제각기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 부디 '잘 보존된 우리문화'로

이 곳이 좀더 정비되면 좋을 거 같다.

햇볕은 좋았지만, 꽁꽁 언 바닥에서 튕겨나오는 햇살들이 눈을 찔러대던 겨울날의 아침나절.

톡톡 튀어나온 문짝의 장식들을 유심히 바라보던 눈에 바깥세상은 온통 하얗기만 했다.

이런 걸 솟을대문이라고 하던가.  차곡차곡 늘어지던 담벼락이 어느 한 곳에서 불쑥 튀어올랐다.

그러고 보니 슈퍼마리오가 머리로 벽돌을 찧을 때 저런 느낌이었는데. ㅋ

한옥마을같은데 가면 꼭 궁금하게 만들던 이것의 정체, 이건 바로...굴뚝이었다. 기와집

앞마당에 불뚝불뚝 솟아있는 조그마한 탑같이 생긴 이곳에서 김이 펄펄 올랐던 걸까.

밑에서 올려볼 때는 꽤나 커보였지만 실제로는 저런 조그마한 쓰레기통 크기, 소복하니 눈을

덮은 채 정갈한 담벼락에 기대 선 모습이 아이러니하게도 따뜻해 보인다.


경기전은 어진박물관을 깊숙이에 품고 있었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비롯해 다른 조선왕들의

어진을 모아둔 박물관. 어진들은 모두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눈으로만 담았고, 한양에서

이곳으로 이성계의 어진이 옮겨지던 당시의 행렬을 재현한 모습은 파노라마로. 세 면에 걸쳐

구비구비 늘어선 아이들을 한 화면에 평면으로 구겨넣다니 역시 신기하다.

어진박물관을 나와, 제사를 준비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들을 하나하나 구경하다가 신기한

곳을 발견했다. 우물인데, 온통 담벼락으로 둘려진 채 작지만 잘 갖춰진 솟을대문까지 있다.

여기에서 퍼올린 물로 제사밥도 짓고 떡도 찌고, 여하간 음식을 준비하는데 전적으로

쓰였다는 설명이 흥미롭다.

경기전 내부에서 보이는 전동성당의 뾰족하고 둥근 외양. 기와지붕 틈틈이 소복하니 나려든

하얀 눈뭉치들도 소담스럽고, 희끗희끗 눈이 얼어붙은 바닥도 (미끄러워 위험하지만) 정겹다.

아까 함께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경기전 바깥 돌담길을 걸었던 외국인 여행객이 슬쩍

사진에 잡혔다. 웃음만 주고 받던 우리는 슬쩍 방향을 틀어 각자의 길을 걸었는데 어느새

내 카메라에 잡혔던 걸까. 이제서야 발견하고 새삼 반갑다는.

아무래도 이 곳에 태조 이성계의 영정이 모셔진 건 국가적인 차원의 의미라기보다는 혈족

혹은 씨족 차원의 의미가 더 부여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경기전 출입문 단청에 온통 적혀있는

복(福)자와 희(喜)자를 보면 그렇다. 나라를 연 건국시조에 대한 예우가 아니라 조상에 대한

예우, 그리고 그 후손에 대한 복과 기쁨을 비는 커다란 사당 같은 느낌이랄까.

돌아나오는 길, 사실은 좀더 있고 싶었는데 손도 곱고 다리도 시렵고 도저히 못 견디겠다

싶어서 도망치듯 돌아나와야 했다. 온통 하얗고 차갑게 얼어붙은 공간에서도 홀로 파랗게

섰는 소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아, 이래서 옛 선비들이 그렇게도 소나무를 좋아했구나 싶다.

그랬는데 어라, 돌아나오는 길에 나무 한그루, 등저리에 온통 이끼를 안고 서 있었다.

겨울이라 파란 게 소나무만이 아니라 저런 선태식물, 이끼도 있는데 옛 선비들은 역시

가오를 따졌던 것인가 싶어졌다. 아무래도 이끼보다는 소나무의 덕을 칭송하는 게

보기에도 좋고 듣기에도 좋으니, 인지상정이겠다.

다음에는 좀더 화사한 계절에 다시 한번 오고 싶어졌다. 어딘가를 가서 제대로 그 모습을

보려면 최소한 일년에 네 번, 사계절의 모습은 모두 보아야 한다고 했는데 요새들어 정말

그 말이 맞다 싶을 때가 있다. 봄의 경기전, 여름의 경기전, 가을의 경기전이 궁금해졌다.





전주에서의 화려한 점심식사, 이름난 요리집에서 '골동반' 정식을 주문했다.

요리들이 한상을 가득 채우고 넘치도록 즐비하게 서빙되었던지라, 가히 사진으로 남기고

글을 몇 자 끼적여 기억해둠직한 화려한 상차림.

 '골동반(骨童飯)'이란 '여러 가지 귀한 재료로 준비된 식사'란 의미로, 옛부터 궁중의 임금님

수라상에 올렸던 비빔밥을 골동반이라 하였다고 한다.


 '골동반(骨童飯)'이란 '여러 가지 귀한 재료로 준비된 식사'란 의미로, 옛부터 궁중의 임금님

수라상에 올렸던 비빔밥을 골동반이라 하였다고 한다. 골동반 정식은, 그런 비빔밥과 전주식

일품요리를 모두 맛볼 수 있는 풀코스 상차림이랄까. 우선 수삼샐러드와 황포묵무침이 선봉에

섰고, 이내 모주의 달콤하고 걸쭉한 물결을 타고 북어구이와 전들이 육회와 함께 쳐들어왔다.


수삼향이 감도는 샐러드도 맛있었고, 완전 탱글거리는 황포묵이 일단 입안을 싹 헹궈주더니

굉장히 진한 모주가 김치전과 생선전, 육회들을 돌돌 감고서 까무룩하니 목구멍 동굴 속으로

뛰어들어 버렸다. 북어구이도, 완전 부드럽고 완전 고소하고.

바늘꽂을 틈새도 없이 꽉 메워진 밥상의 위엄.jpg

이보다도 더 빼곡하게 음식이 즐비했던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 때는 이미 몇몇 접시가

잔인한 젓가락질로 난도질당한 다음인지라 그다지 이쁜 그림이 안 나오기에 이 사진으로 대체.

맛난 음식을 먹는 게 춥고 힘든 날에는 가장 좋은 위로 중의 하나란 게 정말 맞는 말이다.


잡채랑 삼합이 나왔을 때 이미 지금까지 먹은 걸로도 대충 뱃속이 40%는 충전된 느낌,

잡채도 괜히 면발만 많은 게 아니라 목이버섯에 돼지고기 따위가 면발보다 많이 들어있어

맛있었는데, 삼합은 생각보다 조금 실망한 게 홍어가 좀 덜 삭았다. 뭐, 어디까지나 홍어찜과

홍어애탕, 홍어애 날것을 좋아하는 내 입맛에서 그렇단 거니까 그렇게 덜 삭은 편은 아닌지도.

신선로와 갈비떡찜의 본대가 밥상 위에 얹힐 때쯤 완전 행복해져 버렸댔다. 김이 펄펄 오르는

신선로에는 어찌나 작은 새우들이 많이 들어있던지 국물이 죽도록 시원했고 온갖 해물들이

가득 들어있어서 감탄하고 말았다.


이제 더이상은 배불러서 못 먹겠다, 싶을 즈음 잊고 있던 '골동반'의 등장. 짜잔.

밥이 뜨겁게 달궈진 방짜 유기그릇에 담겨나왔고, 따로 8가지 고명과 10가지 반찬이

깔끔하게 정리된 밥상 위에 올랐다.

단순히 전주식의 일품요리들을 조금씩 맛보고 마는 게 아니라, 요리 하나하나 제대로 맛본데다가

비빔밥까지 이렇게 야채를 잔뜩 넣고 비비니까 또 왕창 양이 늘어난 느낌. 그렇지만 서울에 올라가

언제 또 이렇게 맛난 전라도 음식을 먹어보겠나 싶기도 했고, 그런 생각으로 합리화하기도 전에

이미 혀와 목구멍과 식도와 위장이 애타게 음식들을 탐하던 터라 결국 다 먹어버리고 말았다.


아, 사진만 봐도 다시 배고파진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만난 화장실 표시. 이야..내가 여태 한국에서 돌아본 화장실 중에서 거의

손꼽히는 화장실 표시가 아닐까 싶다. 나무결이 슬쩍 드러나는 판을 마치 쪼갠 듯이 잘라내서는

이렇게 깔끔한 도안으로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고, 한국어와 영어로 깔끔하게 알리는 표시.


한옥마을에 어울리는 화장실이라고 뚝,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시간차를 두고 메아리로 울리는

푸세식변기, 그리고 허름하고 오래된 화장실 표시를 냅둬서는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시설은

쾌적하고 깨끗하면서도, 서구화된 채 천편일률적인 표시 대신 이렇게 특색있고 느낌이 사는

표시를 달아 붙이는 것. 가장 눈에 안 띄지만 또 가장 중요한 곳에 대한 세심한 손길이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높이는 첫걸음이지 않을까.




* 여행을 다니며 결코 빠질 수 없는 '답사지' 중 하나가 그곳의 화장실이란 점에서, 또 그곳의

문화와 분위기를 화장실 표시에까지 녹여내는 곳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국내외의 특징적인

화장실 사진을 모아보고자 합니다. 자신이 본 최고의 화장실 표시를 제보해주실 분은 댓글을

부탁드립니다~!





전주에 내려가면 꼭 먹고 싶던 것 중 하나, 전주비빔밥! 그렇지만 96년만에 낙동강이 얼어붙는

강추위가 한반도를 뒤덮던 주말, 관광객 따위 보이지도 않는 전주의 관광안내소를 굳이 들러

추천받아 간 곳에서 펼친 메뉴판에는 '전주비빔밥'이란 다섯 글자가 보이지 않았다.


순간 당황, 자리를 박차고 다른 추천해준 곳으로 옮겨야 하나 싶은 맘이 울컥, 깜깜한 새벽부터

서울에서 전주까지 죽어라 어둠과 추위를 뚫고 왔건만 전주비빔밥은 어디에서 맛볼 수 있나,

맛집 어플에 나온 곳들은 전부 점심때부터나 문열던데 그때까지 세시간쯤 기다려볼까..싶다가.


메뉴판 둘째줄, '비.빔.밥'. 국내산 육우니 뭐니 자투리가 달려있는 건 무시하도록 하고, 하기야

전주에서 굳이 '전주비빔밥'이라고 메뉴판에 적어두는 것도 웃긴 거다. 그래서 깨달은 건,

전주엔 '전주비빔밥'이 없구나. '비빔밥'이 있을 뿐. ('전주'는 그저 도울 뿐.)

요놈이 바로 그 '비.빔.밥'. 노란 곤약은 깔맞춤을 위해 최근에야 추가된 고명이 아닐까 했는데,

국립전주박물관에 가보니까 복원된 주막과 전통음식들 중에 떡하니 버티고 섰던 비빔밥에도

꼭 같이 노랑색 곤약이 들어가 있었다. 돌솥이 후끈후끈.
이 아이는 비빔밥보다 이천원이 더 비쌌던 '육회비빔밥', Holy 메뉴판 첫째줄 참조. 비빔밥과

다른 건 역시, 추가된 두 글자 '육회'가 말해주듯 육회가 한줌 추가되어 있더라는. 그리고 그

육회가 후끈후끈한 그릇 때문에 금세 뜨겁게 익어버리지 않도록 차별화된 유기 그릇에 담겨

나왔다는 것도 다른 점이겠다. 아무래도 몸에 좋고 소화도 잘되는 고기가 있으니 더 맛있었다.

빼놓을 수 없는 모주, 창 너머 비스듬히 내리쬐는 햇볕에 길게 그림자를 늘어뜨린 반찬들

가짓수도 제법이었지만, 그보다도 서울에서 맛보던 모주 세네잔은 만들 수 있을 만큼

걸쭉하고 진하기가 그지없던 전주의 모주가 인상적이었다.


대추알이 통째로 동동 유영을 하고 있는 모주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 전주, 종로회관.
전주 한옥마을 근처로 비빔밥을 먹으러 가다가 문득 독특한 실루엣을 발견했다. 돌담 너머 언뜻

비치는 기와지붕들이 느적느적대던 스카이라인 가운데 불쑥, 로켓처럼 하늘을 향해 온몸 뻗쳐있는

건물 하나. 그렇게 크지도 않은 건물이 꽤나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었다.

끌리듯이 다가섰다. 이 아름다운 건물이 영화 '약속'에서 박신양과 전도연이 슬픈 결혼식을

올렸던 그 곳이란 건 나중에야 알았다. 그리고 '전동성당'이란 이름의 유명한 건물이란 것도.

두 팔을 한껏 벌린 예수가 성당을 꼭 껴안을 듯 하다.

뭐랄까, 전문용어로는 '비잔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을 절충했다는 이 성당은 한국 최초의

순교자를 기리고자 지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정문을 몇 겹으로 에워싸고 있는 틀 덕분에 뭔가

성당으로 들어가는 길이 길고도 멀어보이는 느낌이 든다. 마침 미사 중인지 성가를 부르는 소리가

문밖으로 메아리처럼 흘러나왔다.

내부는 사진촬영금지, 잠시 들어가 몸을 녹였다가 숨을 참으며 밖으로 뛰쳐나왔다. 이번 주말

날씨가 어찌나 춥던지, 서울에서 한참 남쪽에 있는 이곳도 서울처럼 춥기는 매한가지. 그치만

차 안에 앉아 볕을 쬐노라면, 혹은 실내 찻집에 앉아 밝은 양달을 내려보노라면 꽤나 따뜻해

보일만큼 햇살은 좋았다. 사진 속에서도, 그림자가 지고 잔설이 남은 곳 말고 햇살을 바로

쬐고 있는 곳들은 은근히 포근해보이기까지 하는 듯.

한바퀴 빙 둘러보는데 이거 은근 흥미로운 구조다. 정면에서 보면 평평한 구조물이 뾰족뾰족

탑을 이뤘고, 길쭉하게 뒤로 뻗은 몸통은 일정한 패턴으로 연장되며, 마지막으로는 둥글게

십자가를 모신 공간 배치까지.

그리고 어디에서 보던, 꽤나 멀리에서까지 분명히 식별할 수 있을 저 십자가와 세 개의 둥근 돔.

붉은 벽돌로 처음 지었을 때에는 반짝반짝 경쾌하고 가벼운 느낌이 좀더 들지 않았을까 싶긴

하지만, 적당히 녹슬고 빛바랜 지금의 모습은 많이 부드럽고 현명해 보인달까. 굳이 비기자면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뭔가 생기충만하고 의욕이 넘치는 모습, 저 안에서 기도를 하면 바로

푸슝! 하고 하늘로 힘차게 쏘아올려질 것 같은 그런 에너지가 있었을 거 같다면, 지금은 뭐랄까

저런 곳 안에서는 기도도 왠지 조심스럽고 온화하게 드릴 거 같다.

사제관인 듯한 옆 건물도 불그스름한 파스텔톤이 되어버린 벽돌들이 따스하게 느껴진다.

식빵 모양처럼 뚫려있는 곳으로 바람이 거침없이 숭숭 들고 나면 실제로는 굉장히 추울 듯.

전주 한옥마을 옆에 바로 붙어있던 전동성당. 전혀 모르고 있던 사람에게도 눈에 번쩍 띌 만큼

아름다운 건물이었지만, 그 성당 안의 (촬영) 금지된 모습과 분위기는 더더욱.





리프트가 흔들거리는 계절 @ 어디선가 찍은 리프트 사진.

주인의 온기를 품고 있는 털신 한 짝 @ 어디선가 찍은 고택의 털신.

어느 계절을 대비하는 우리의 자세 @ 아마도 전주 한옥마을.

따뜻한 불빛 아래 따뜻한 사람들과. @ 인사동 피맛골.




@ 전주 한옥마을.


어렸을 적 자주 꾸던 꿈이었다. 팔과 다리, 가슴과 목, 얼굴에 이르기까지 온 몸에 구멍이 숭숭 나서는 벌레들이

스물스물 기어다녔었다. '미이라'란 영화를 보기도 한참 전이었지만, 만약 내가 그 꿈의 모습을 재연해낸다면

딱 그 영화에서 풍뎅이들이 팔뚝 속에서 울룩불룩 꿈틀대며 사람 몸속을 헤집고 돌아다니고 눈알을 파내는

모습과도 같았을 거다.


그렇다고 벌레들이 그 구멍들을 헤집은 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네들의 여섯개 다리가 잘그락잘그락, 정교하게

움직이며 온몸과 구멍들을 살살 간지르긴 했지만 아프지는 않았고, 내 몸에 더이상 구멍을 낼 생각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별로 적대적이지 않았고, 난 어쩜 그들의 반짝이고 반들거리는 케라틴질 껍데기를 차라리

쓰다듬어주고 싶다는 눈길로 바라보았는지도 모르겠다.


문득, 꿈에서 내가 사람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수십년 묵어 썩어빠진 고목이거나, 아니면

최소한 연밥이라도 되지 않았을까. 어쩌면 단순히 그 벌레들은 이미 누덕누덕 구멍난 상태라 더이상 내 몸에

구멍뚫기는 무리라 여겨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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