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고도 시간만 흐르면 자연스레 다가오는 기념일,

그다지 요란스레 축하할 날은 아닌 거다. 따지고 보면 대부분의 이벤트들, 입학식, 졸업식, 생일

등등은 그저 as time goes by, 시간의 힘에 맡겨진 것들.

그래도, 하루동안 축하해준 이들이 참 많아서 좋았다. 뭐랄까, 어제 하루동안 내게 생일축하한다

말해준 이들의 말풍선을 톡톡 떼어서 돌돌 뭉치면, 원기옥 하나쯤은 쉽게 생겨날 듯 했달까.

그리고 어제 저녁에 갔던 레스토랑, 청담동의 제법 이름난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라는데 분위기가

오밀조밀하니 괜찮았다. 소화전에 이탈리아 국기처럼 초록색, 흰색, 빨간색을 칠해놓은 게 보인다.

바닥 모퉁이에는 '벽난로' 모양으로 쉼없이 활활 타오르는 조명도 있었고, 벽면에는 다소 빼곡한

느낌으로 책들과 술병들과 장식품들이 놓여있었다. 갠적으로는 저렇게 꾸미는 게 이쁘고 아니고를

떠나서, 저렇게 책들이 그저 장식품으로 소모되는 게 조금 걸리긴 한다. 아무도 펼쳐보지 않고

내용에는 관심도 없으며 그저 공간을 채울 껍데기로만 존재하는 책들이라니.

게다가 하나같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이런 곳의 액세서리용 책들은 전부 영어나 외국어 책들.

아마 헌책방쯤에서 무게를 달아 1키로에 얼마, 이렇게 사온 책들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여튼지간, 생일날까지 저런 소소한 것들에 신경쓰기 보다는, 뭔가 좀더 좋고 이쁘고 맛난 것들에

집중하는 시간. 예컨대 테이블 위에 올려진 보드랍고 풍성한 붉은 꽃잎 같은 거.

우선 빵이 나왔고, 십자 형태로 그어진 선을 따라 쪼개 먹으며 우선 감탄. 빵 괜찮네.

전채로 생굴이 나왔다. 역시 겨울엔 굴, 제철음식이 최고인 듯. 씨알굵고 신선한 굴 위에 소스를

약간 얹어서 관자를 칼로 긁어내곤 입에 대고 후르륵. 힘이 불끈불끈..?

어디선가 얼핏 들었던 거지만, 사실 보통 익숙한 '까르보나라 스파게티'의 흥건한 크림소스는

미국에 들어와 변형된 버전이라고 했었다. 여긴 이탈리아 레스토랑, 변형되기 이전의 까르보나라가

어떤 거였는지 보여주는 오리지널 버전. 크림소스가 아니라 계란을 풀어 만든 소스에 수제 베이컨이

두툼하게 들어가 있다. 그리고 얇게 채를 친 치즈가 후두둑후두둑 뿌려져있고.

할라피뇨나 오이 피클이 아니라, 알타리무 피클이 나왔던 것도 신기했던 점 중 하나. 근데

깔끔하고 쌈빡하니 잘 어울렸다는.

리조또 위에 글뤼와인 소스를 곁들인 삼겹살찜. 호텔 음식들처럼 이쁘게 치장되지는 않았지만

맛은 훨씬 낫다. 딱히 지방색이 강하게 드러나지 않는 둥글둥글한 맛의 호텔음식들보다 이렇게

이탈리아 본연의 스타일과 맛을 고수하는 타협하지 않는 음식점들이 훨씬 좋다는.

그렇게 크지 않은 레스토랑에 알콩달콩 이쁘장한 소품들이 모여있는 곳이었지만, 테이블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지 않은 것도 꽤나 맘에 들었다. 테이블이 너무 붙어 있는 곳에서 밥을 먹다 보면

옆테이블 사람에게 뭔가 대꾸를 해주거나 그들 대화에 껴들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아기자기하고 꽉 찬 느낌이면서도 테이블 간격이 지켜진다는 건 쉽지 않을 텐데.

투토베네. '투토'란 all의 의미를 가진 이탈리아어, '베네'란 good의 의미정도라던가. 결국

모든 게 좋다, 란 의미를 가진 이름의 레스토랑. 가격도 생각보다 저렴한 편이었고 음식도 넘

맘에 들어서 앞으로 파스타가 생각날 때 종종 가볼 거 같다.

찾기가 다소 쉽지 않은데, '투토베네'란 뜻이 중국어로, 혹은 한자어로 치자면 '만사쾌조'란 걸

알면 바로 찾을 수 있다. 신기하게도 간판이 저거 하나 달랑 내걸려있는 조그마한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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