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호 갈대습지는 시화호의 수질개선을 위해 만든 국내 최초의 대규모 인공습지, 이제는 제법

수질이 많이 개선되었고 생태계가 다시 안정이 되어 새들도 많이 날아오는 명소가 되었다.

새들을 구경하는 걸 좀 있어보이는 단어로 '조류탐사', '탐조'라 하던가, 우리 나라에서 새를

구경하기 좋은 곳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는 곳이라고 한다.

환경생태관은 갈대습지에 대한 자료들이 두개 층에 걸쳐 전시되어 있는 공간, 갈대습지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당장 2층 전망대부터 탐이 났다. 저길 올라가면 이 넓은 시화호 습지를 전부

바라다 볼 수 있지 않을까.

아쉽게도, 안개가 자욱하던 11월의 습지는 잔뜩 안개를 머금고 있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막상 안개가 걷혔다 하더라도 고작 2층 정도의 높이로는 전부를 바라보기

힘들만큼 너른 습지였다. 가운데 잘 포장된 길을 두고 양쪽으로 펼쳐지는 습지, 그리고 그 습지

구석구석으로 번져나가는 갈래길들이 얼핏 보였다.

다시 생태관 1층, 시화호의 역사를 보여주는 공간으로 돌아왔다. 농경지와 공장부지를 마련하려

방조제를 쌓고 간척사업을 하는 모습들, 그리고 호수처럼 갇혀버린 바다, 시화호가 생겨나고 이내

급격히 오염되어가는 모습들이 보였다. 그런 '아픔'을 딛고 이제 갈대습지를 인공으로 조성하여

수질을 개선하고 생태를 복원해냈다는 현재의 모습으로 오기까지, 참 쉽지 않았다.
 
갈대습지가 어떻게 수질을 개선하는 걸까, 그저 막연하게 갈대가 오염물질을 해독하겠거니

했는데 그림으로 된 설명을 보고서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갈대사이로 물이 천천히

흐르면서 물속의 찌꺼기들이 자연스레 가라앉게 되고, 갈대 줄기나 뿌리에 오염물질이

부착된 후에는 미생물이 오염물질을 분해한다는 거다.

그러면 생태관 밖으로 한 걸음만 나가도 바로 시작되는 이 드넓은 갈대밭은 결국 오염물질을

양분으로 삼아 이만큼 무성하게 자라났다는 이야기도 되는 셈이다. 인간이 토해내는 온갖

부산물과 오염물질들을 처리하느라 고생이 참 많다. 어찌보면 굉장히 비옥하고 우호적인

환경이랄 수도 있겠지만, 갈대의 입장에선 쉼없이 흘러들어오는 영양분들이 미처 소화시키기

버겁지 싶지 않을까. 돼지처럼 살만 뒤룩뒤룩 찐 갈대들이 다이어트의 권리를 호소할지도.

제일 중요한 건 아마도 유속이 느려진 물이 최대한 넓은 범위에서 갈대와 접촉하는 거 아닐까.

그게 바로 이 시화호 갈대습지의 존재의 이유, 레종 데트르(Raison Detre)인 셈이다. 시화호의

영어명은 어떻게 되나 했더니 의미심장하다. 'Sihwa Constructed-Reed Wetland'. 한글명칭에

비해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진 '인공'이란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나 있는 게 흥미로웠다.

1층의 또다른 공간에서는 이곳 시화호 습지에서 서식하는 동식물들의 표본이 전시되어 있었다.

고라니, 너구리, 멧토끼, 족제비나 청설모 따위 동물들이 흔하게 발견된다니 아까 사진에서

봤던 불과 몇년전의 시뻘건 뻘흙이 드러난 황량한 곳이었다고는 상상하기 힘들다. 아마도

그게 자연의 복원력, 위대함 아닐까. 그밖에 쉽게 보기 힘든 여러 야생화나 곤충들도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문득 이 곳의 동물들은 소중히 보호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러고 보니 저 박제들이

눈에 못내 밟혔던 거다. 나 뿐만 아니라 이 곳을 찾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게 새삼 생명의

소중함, 자연의 소중함에 민감해지나보다. 한쪽에 있는 안내문이 눈에 띄었다.


"이 박제는 시화호 주변에 서식하는 조수로 부상 입은 상태로 신고되어 안산시에서 치료중

죽은 것을 자연생태 교육용으로 제작한 것입니다."


다행이다. 애초 밀렵꾼의 총알이나 무지한 자동차 바퀴 따위가 부상을 입힌 거라면 다행이라

말하기도 힘들지만, 그래도 박제를 만들어 전시하겠다고 작정하고 사냥한 게 아니라 다행이다.

그리고 이 곳에서 산다는 몇몇 이름도 재미있는 야생화들, 이름만 들었었는데 저렇게

생겼구나. 제대로 생태공부 하고 가는 기분이다. '며느리밑씻개'라니, 이 풀은 시어미가

며느리를 싫어하는 마음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를 온몸으로 웅변하는 중이다.

그리고 개불알풀, 큰개불알풀. 음...민망한 이름이지만, 정작 풀의 생김은 그 민망한 이름과는

달리 꽤나 청초하달까. 암술수술이 뻗어나온 게 독특하긴 하지만, 저기서 '그것'의 '그것들'을

연상해내다니 거참 조상님네들도.

물길이 이리저리 조심조심 흐르며 습지 전체를 촉촉하게 적시고 있었다. 차분한 흐름이지만

그 흐름을 따르다 보면 어느새 생태연못에 모여 얼마나 깨끗해졌는지, 그 곳에 살고 있는

물고기들에게 검사를 받는다고 한다.

습지 내부로 깊숙이 들어가서 관찰할 수 있는 관찰로 곳곳에는 갈대습지가 어떻게 수질을

정화시키는지, 이 곳에 어떤 동물과 식물이 살고 있는지 등등 습지를 걷다보면 자연스레

궁금해지기 쉬운 질문들에 대한 답안을 마련해 두었다. 아이들의 교육공간으로도 꽤나

괜찮을 거 같고, 호젓한 관찰로를 산책하며 조곤조곤 담소를 나누기에도 좋을 거 같고.

다만 계절은 조금 살펴서 오는 게 좋을 거 같다. 겨울의 초입에는 이렇게 습지에 가득 피었을

연꽃들이 고개를 폭폭 수그린 채 자맥질을 하고 있고, 풀과 나무들도 조금은 황량한 느낌.

그렇다고 너무 여름에 가는 것도 습지의 특성상 모기나 하루살이떼들이 극성일 거 같아

조심스럽고. 이왕 가는 거 제대로 새를 보고 싶다면 12월에서 2월경이 절정이라고 하니

망원경 하나 챙겨서 가는 게 좋을 듯.

안산수돗물의 이름은 상록수. 이 물 역시 시화호 갈대습지를 거쳐 깨끗해진 물이 돌고돌아

다시 사람들의 음용수로 변신한 거 아닐까. 뭐 바로 갈대습지를 돌아나온 물을 퍼서 음용수로

쓰는 것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음용수 기준에 따른 몇가지 절차를 거쳐 음용수로 변신하는

걸지도 모르고. 갈대습지를 보고 바로 이런 수돗물을 보니까 더욱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가

뗄레야 뗄 수 없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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