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후인 료칸, '유후인몰'의 외관 탐구. 료칸에 들어서면서 꼭꼭 눈에 담기던 풍경을 좇아 밖으로 나왔더니

 

곳곳에 숨어있는 깨알같은 아이템들을 찾아내는 게 더욱 큰 재미였던.

 

 

료칸의 입구. 입구에서부터 온통 울긋불긋 그야말로 꽃대궐이다.

 

  

입구에 놓인 차임벨. 여느 술집이나 교실에서 볼 수 있는 벨에도 온통 꽃무늬다.

 

유후인에서 실감했던 '원피스'의 위력. 료칸에도, 유후인 거리에도 온통 원피스!

 

 

 

풀섶에 숨어서 갸웃이 고개를 내민 고양이 인형들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고.

 

 

유후인몰, 조그마한 세로형 간판 양 옆에 서서 손님을 반기는 마냥 해피한 얼굴의 인형 두개.

 

 

이건 사실 유후인몰이 아니라 이전에 들렀던 숙소에서 담은 풍경. 비슷한 료칸의 풍경이다.

 

 객실문마다 별자리를 따서 붙인 이름, 그리고 나무를 파서 만든 호실 명패.

 

 

1층에 있던 레스토랑의 입구. 이 곳에서 저녁도 먹고 아침도 먹고.

 

 

남녀탕이나 가족탕으로 향하는 길에 발에 채일만큼 많이 널렸던 아이템들, 이 장난감 강아지도 그중 하나.

 

 

완전 싱싱하게 뻗어나간 굵고 탄탄한 대궁 위에서 활짝 피어난 잎사귀.

 

 

 

 혼자 사진에 담긴 고양이는 왠지 도도해 보이는 느낌이 아주 강하지만,

 

  두 녀석이 함께 담긴 사진에서 녀석들은 왠지 다소곳하다.

 

 

그냥 되는 대로 툭툭 아무데나 던져둔 것 같은 악세사리들이 료칸 바깥에 온통 널렸다.

 

 

 

그리고 따사로운 큐슈 지방의 햇살을 온몸으로 흠뻑 맞고 있는 꽃들.

 

2층 객실로 올라가는 길, 그 옆에 소복소복 쌓인 초록빛 무더기들.

 

가족탕으로 꺽어들어가는 길, 그 앞에 빨간 불이 들어온 걸로 보아 어느 가족이 지금 사용중이다.

 

주의할 것조차 딱히 없어서 온통 녹슬어버린 주의 표지판. 이 조그마한 온천 마을이란.

 

 

자칫 못 보고 지나칠 뻔 했다. 저 도자기 밖으로 뛰쳐나올 듯한 고양이 녀석 한 마리를.

 

 

 

료칸에서 펑펑 솟는 온천수 덕분일까, 새로 돋는 잎사귀가 무지 두텁고 반질거린다.

 

 

 

 

사람도 딱히 눈에 띄지 않는 고즈넉한 마을의 조용한 료칸, 건물 밖의 의자에 앉아 흐느적대기 딱 좋은 곳.

 

 

온통 담쟁이덩굴이 칭칭 휘감아 시간도 끈적하게 쉬엄쉬엄 흐르는 곳이라 이끼조차 한모금 머금었다.

 

 

 

 

조화라는 티가 너무 많이 난다 싶어서 처음엔 그냥 지나쳤었지만, 아무래도 그 빨갛고 푸른 색감이 참 선명하다.

 

 

 

어느새 어슴푸레하게 너울지는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풍경, 시퍼런 어둠에 먹힌 바깥 풍경과는 달리

 

아직은 제 색깔을 고르게 지켜내고 있는 테이블 위에 아기자기한 장식들. 

 

 

체크인했을 때 고개를 꿇어박고 서류를 작성했던 딱딱한 책상에도 주홍빛 불빛이 둥실 떠올랐다.

 

  

그렇게 조금씩 어둠이 건물을 갉아들어왔고, 카메라로 담을 수 있는 풍경은 조금씩 줄어들어가고.

 

 

그 와중에 나비 모양 등불은 꽃망울을 향해서 활짝 날개를 펼쳤다.

 

 

 

아이폰 사진폴더에 지저분한 사진들을 정리하다가 몇 장 선별해서 올렸던 포스팅들에 이어.

 

 

잡다구레한 사진들이지만 나름 하루하루 일상을 짚어나가고 있어서 재미있는 듯.

 

어느 고등학교였더라, 무슨 자격증 시험감독으로 나갔을 때 교실 형광등스위치에서 발견한 낙서. 딱 남고 수준.

 

또다른 학교의 또다른 자격증 시험감독이었던가, 고루하게 나가던 교훈에 급 '훈훈한 우리'라니. 훈훈한 교훈.

 

추석 때, 초등학교 다니는 조카가 가져왔던 문제집 푸는 걸 도와주다 만난 문제. 담배피는 그림이라고 했었다, 이녀석.

 

무역의 날 행사, 이제 그만 좀 보고 싶은 그 사람.

 

뭔가 기분이 아주 더러웠던 날, 어느 술집에 장식되어 있던 성생활 교과서.

 

이런 기사는 기억해둘만하지 않을까, 싶어서 제목만 덜렁 뜬 연합의 속보를 캡쳐.

 

매달 나가진 못하지만, 영유아 보호센터에서의 봉사활동. 색색의 형광펜이 그참. 

 

유난히도 길고 추웠던 이번 겨울, 동면에 들어간 오토바이는 그래도 이삼일에 한번씩 시동을 걸어줬었다.

 

뭔가 삶에 흔들림없는 '영구 지침'이 생긴 건 아닐까, 설레던 맘 가득하던 그 때.

 

강릉 경포 앞바다를 보겠다고 무작정 떠났던 그 겨울, 그 바다. 그리고 만화책 한 컷.

 

 

오물렛? 오믈렛 아니고? 오물오물 오물렛.

 

선유도 공원의 어느 벤치에 누워서 누군가에게 하늘을 보여주고 싶다 생각했었다.

 

겨울, 봄, 그리고 여름이 곧 올테고 그러고 나면 가을. 사계절이 한번 도는 셈이다.

 

부모님이 최초의 커플폰이자 스마트폰으로 프라다폰을 들여놓으셨던 날.

 

속초의 갯배를 타러 걷다가 발견했던, 암수 서로 정다운 저 복어 두마리.

 

유난히 과시성 국제행사가 많던 시절, 핵안보정상회의 때 받아들었던 비표.

 

어느 금요일 오후, 겨울비가 주룩대며 낙하하던 비사이로 막 내달리며 7시간짜리 마라톤 워크샵을 하러 가던 날.

 

새롭게 시작하는, 이전부터 생각은 있었던 그림 그리기. 팔레트에 물감을 짤 때의 느낌이란.

 

서울과 울산을 당일로 주파하는 코스란 생각보다 녹록치는 않았지만.

 

만수무강을 위해 오토바이를 팔고 나니 자전거를 사야 하나, 볕좋고 바람좋은 날씨에 싱숭생숭.

 

일단은 걷고 있다. 족저근만염을 막기 위해 출퇴근은 정장에 트레킹화로 대체.

 

다시 찾았던 강릉.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흰색과 검은색의 모노톤으로 채색은 끝.

 

문득 시선을 잡아당겼던 작품 하나를 다짜고짜 폰카로 찍어서 저장.

 

올해 건강검진은, 사람을 물총새로 변신시키는 대장내시경을 처음으로 포함시켜보았다.

 

그야말로 5월의 햇살. 눈 깜짝하니 벚꽃이 사그라들었고 뜨거운 햇살이 촘촘해졌다지만.

 

온통 산산조각이 난 푸우를 겨우겨우 맞춰놓았지만, 배은망덕한 녀석은 오른손에 총을 쥐었다.

 

한강둔치를 따라 걸으며 바라본 성산대교의 야경. '행복'이란 추상어의 구체적 현현.

 

지하철 플랫폼에 적힌 시들이 다 좋은 건 아니지만, 그때의 기분과 상황에 따라 딱 와닿는 때가 있다.

 

 

 

 

일본 아오모리현 도와다 호수의 오리배는 이렇게 생겼다. 지금 다시 보니 네스호의 괴물이라거나 공룡이 떠오르는

 

외모이기도 하지만, 그때는 딱 보자마자 원피스의 고잉메리호가 떠오르더라는.

 

나름 원피스의 명장면 중 하나로 기억하고 있는, 고잉 메리호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던 장면.

 

 

호숫가 나룻터에 묶인 채 둥싯거리는 오리배들. 최근에 다시 색칠을 한 건지 부리나 리본이 화사하다.

 

둥싯거리다간 서로의 부리를 입맞춤하며 느그적 휘어진 모가지로 하트를 그리기도 하고.


나룻터 끝에서 바라본 도와다 호수는 어찌나 넓던지, 오리배 페달을 밟는 발놀림이 비장해 보였다.


오리배들을 어루만져주는 두 할아버지, 한가로이 파라솔 아래 앉아 담소를 나누시던 모습.

 

호수를 따라 죽 이어지는 산책로, 울창한 숲과 산을 옆에 끼고 있는 데다가 시선을 어지럽히는 가게나 매점도 없다.

 


호수를 바라볼 수 있는 망원경의 푸르스름한 렌즈가 똘망똘망하다.

 


도와다 신사로 가는 길, 다른 관광대국들도 그렇지만 일본도 맨홀뚜껑을 소홀히 넘기지 않았다.


지금은 한국에서도 보기 힘든 나무 전봇대가 아직도 서 있는 도와다 신사 경내의 산책로.

나무뿌리가 잔뜩 헤집어진 건지, 아니면 벼락을 맞은 건지 위풍당당한 모습에 이끼가 잔뜩 슬었다.

 

곰이 출몰하는 지역이니 주의하라는. 굉장히 무시무시한 표정과 포즈의 곰 앞에서 손도 떨었나보다.



도와다 신사 도착.

 



나무의 잔뿌리가 지면 위에까지 핏줄처럼 툭툭 튀어나온 모습이 땅 속을 궁금하게 만든다.

나무 계단은 하얗게 바랬을지언정 말끔한데 정작 아래 돌받침은 둘로 쪼개진 채 이끼가 잔뜩이다.


 


석등을 둘둘 휘감고 기어오르는 덩굴도, 석등 위에 꽂힌 깃털처럼 나부끼는 풀떼기도 고작 한계절이면 저리도

 

그악스럽게 자라날 텐데, 왠지 바라보는 사람은 거기서 이 신사의 고색창연함을 느끼는 거다.



일본 신사의 '약수터'는 물을 마시는 곳이 아니라 손을 씻어 몸을 정갈히 하는 곳.

 

 

도와다 호수의 명물이라는 소녀상. 소녀라고는 하지만 사실 이를 만든 작가와 평생 해로했던

 

아내의 모습을 본따서 만들었다고 했던가. 호수의 물안개를 잘도 버티고 서 있다.

 

 



도와다 호수 주변을 좀 거닐면서 담은 풍경들.



차를 타고 좀더 올라가 도와다 호수 전망대로 가서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구름인지 안개인지, 희뿌연 간유리 너머

 

풍경처럼 어슴푸레한 호수 너머 풍경과 온통 짙푸른 녹색이 가득한 풍경. 아오모리, 푸른숲靑森이구나.

 


전망대 위로 올라가는 샛길이 하나, 무성한 수풀 뒤로 숨어있었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인지

 

낙엽이니 풀들이 온통 점령해버린 땅바닥엔 발딛은 맨땅 한뼘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자연에 정복당해버린 숲길을 혼자 걷고 있자니 왠지 무섬증도 살짝.

 

어디선가 곰이 나타나면 어떻게 해야할지 살짝 머릿속으로 이미지트레이닝도 해보고.

 


계속 신경을 긁던 까마귀 한마리가 숨어서 울어제끼던 곳을 결국 찾아냈다. 사진 속의 그곳.


슬쩍 제2 전망대까지만 찍고 내려오는 길. 인적끊긴지 오래인 듯한 괴괴한 숲에서 들려오는 소리 하나하나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며 불안하게 만들었는지라 내려오는 길은 카메라를 꼭 쥐고 거의 날 듯이 뛰었지만,

 

그래도 푸른 숲과 퍼런 호수의 풍경은 놓칠 수 없어 시선은 계속 도와다 호수에 붙박혀 있었다.

 

 

 

 

 

 

 

 


 

세계각국의 유명 건축물들의 미니어처를 모아두었다는 제주 미니미니랜드, 삼십분의 일이라거나 십오분의 일

사이즈로 줄여놓았을 뿐 실물과 똑같다는 그 건축물들이 모인 곳을 어떻게 해야 가장 재미있게 돌아볼 수

있을지 생각해보니, 다녀온 곳들, 보았던 곳들 앞에서 각자 인증샷을 찍으면 괜찮겠다 싶다. 간 데가 몇군데

안된다 하더라도 뭐, 어쨌든 세계 곳곳에 산재한 명소들이 한 곳에 모여있단 건 큰 메리트니깐.

건축물들 미니어쳐 앞에 섰을 때, 걸리버가 소인국에 떨어졌을 때의 느낌에 최대한 가까울수록 성공적인

거 아닐까. 소인들이 꼬물거리며 지어올리고 그 안에서 사는 건물들의 디테일이나 리얼리티란 건 그야말로

최고의 수준일 테고, 그들 소인들보다 크고 무딘 손으로 조그마한 건축물을 지어올리려면 말이다.

타이완의 중정기념당, 한 사람을 위한 공간, 중정기념당에서 장개석을 생각하다.

중국 자금성, 블로그를 시작하기 전, 내가 카메라랑 그다지 친하지 않던 시절 다녀왔던. 비가 내리는 궂은

어두컴컴한 날씨였지만 황금빛 기와지붕과 붉은 담벼락은 여전히 화려하게 반짝거렸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왓, 캄보디아#31. 채색의 흔적을 발견하다, 앙코르 왓(1/3)

캄보디아#32. 박스 안의 박스, 무한선물상자를 열어보는 즐거움, 앙코르왓2

캄보디아#33. 앙코르왓의 전경보다 많은 것을 담고 있던 연못, 앙코르왓3

캄보디아의 앙코르톰. 사실 앙코르왓은 씨엠립의 여러 옛 사원 중 하나의 이름일 뿐.

캄보디아#4. '크메르의 미소' 바이욘(앙코르 톰)

이집트의 스핑크스. 이집트#7. 카이로 달동네를 거쳐 피라밋으로.

이집트#8. 쿠푸왕 대피라밋 안의 석관에 누워보다.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과 플랫아이언빌딩이 있었는데, 여기도 2001년..까마득한 과거에 다녀왔는지라.

뭐 자유의 여신상이나 플랫아이언에서 찍은 건 아니지만 어느날의 월스트리트.  풍요로운 땅 뉴욕의 공립도서관.


태국의 왕궁, 왕궁(Grand Palace)에서 만난 수호상, 랍스타 퍼레이드.

공원이 꽤나 넓었다. 무려 120여점의 건축물을 오밀조밀 세워둔 세계 7대 미니어처 파크라니 이정도 크기는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조경까지 생각하고 지역이니 나름의 테마에 따라 보기좋게 진열하려면 정말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거 같다. 어느 순간 비가 쏴아 쏟아붓기 시작해서 부랴부랴 비를 피하다가 결국 어쩔 수 없이

우의를 사입고 구경을 재개했다.


인도의 타지마할, 인도#5. 우윳빛깔 풍만한 타지마할의 자체발광, 하악하악.

미국의 워싱턴 국회의사당. 여기도 2001년에 3개월동안 체류하며 불법으로 알바하며 모은 돈으로 갔던 곳.

쿠웨이트의 쿠웨이트타워, [쿠웨이트] 24시간의 쿠웨이트 체류.

중국의 만리장성, 미니어처 건축물과 건축물 사이에 뱀처럼 몸을 좌우로 뒤채며 늘어져있었다. 

역시 내가 블로그를 하기 전, 카메라랑 친하기 전에 다녀왔던 곳. 


미국의 백악관. 워싱턴을 샅샅이 훑었던 그 때, 마일스톤 앞에서 잔뜩 폼을 잡고 사진을 찍었던 곳.

그리고 역시 미국의 링컨 기념관. 이번에 정말 재미없던 트랜스포머3에서 저 거대한 의자에 앉은 링컨을

밀어내고 나쁜 로봇이 편하게 앉았었다.

여긴 다녀오진 않았지만, 이 곳에서 가장 크고 이쁜 미니어처 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어서 한 장.

이탈리아의 트레비분수였다던가.

이것도 뭔지는 모르겠지만 초록빛깔 잔디와 잘 어울리는 게 왠지 스위스 쯤에 있는 뭔가가 아닐까.

안 가본 나라가 너무 많은 거다. 이곳에 모인 것들은 전세계 곳곳의 50개국을 대표하는 한두점들일 뿐인데도

이 중에서도 안 가보고 모르는 것들이 이리도 많다니. 미니어처 말고 진품을 직접 보고 싶은 맘이 무럭무럭.

그리고 한국의 불국사. 여기야 뭐, 초등학교 때 중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많이들 갔었지만, 막상 혼자던 친구랑이던

한번 다시 가면 새삼스러운 구석이 참 많던 곳이다. 불국사 말고도 경주라는 도시가 그랬다.

청와대. 시화연풍, 청와대 들어가기.

남대문, 지금 열심히 복원공사중일 텐데 이전보다 더욱 오리지널에 가깝고 단단하게 복원되면 좋겠다.

건축물들만 밋밋하게 열맞춰 늘어선 게 아니라, 나름의 야트막한 언덕이나 구릉이 있었고 또 이런 나무들도

있었으며 연못도 있고 다리도 있고 그랬다. 이끼가 파랗게 낀 보슬보슬한 촉감의 나무에 덩굴 하나가 체인처럼

기둥을 휘감은 채 흘러내린 모습이 너무 이뻤다.

하루방을 뭔가 캐릭터로 만들어보고 싶었던 거 같은데, 좀 아쉽다. 좀더 간결하고 참신하게 바꿨으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싶다. 무엇보다 좀더 귀여웠어야 했지 싶다.


제주도 똥돼지를 멀뚱하게 바라보는 젊은이 하루방.

아무래도 제주가 좀 습하고 따뜻하고 그래서 그런지 나무들이 조금만 그늘진 곳이다 하면 저토록 빽빽히

이끼가 끼는 거 같다. 온통 연두빛 융단을 휘감은 듯한 느낌의 나무둥치.

세계 위인들의 조각상들도 있었다. 어떻게 선정된 위인들인지 모르겠지만 한국 선수로는 충무공 이순신과

세종대왕. 아마 화폐에 활용된 인물을 기준으로 한 게 아닌가 싶은데 그보다 놀랍고 기분좋았던 건 바로

맑스가 이 곳에 전시되어 있단 사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맑스의 조각상 뒤에서 주먹 불끈 쥐고 인증샷 찍고는 맑스 조각상을 따로 찍는 걸

깜빡하고 말았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는 러시아어가 적혀있는 그의 조각상을 전시하다니,

미니랜드가 급 좋아져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만화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공간도 있었다. 스머프들이 뛰노는 마을 뒤에서 음흉하게 웃으며

쳐다보고 있는 가가멜과 그의 고양이 아즈라엘도 보인다.

그런가 하면 얄미운 표정을 짓고 있는 똘똘이 스머프 뒤로 텔레토비도 보인다.

그리고 원피스! 루피와 조로, 샹띠가 멋진 포즈를 잡고 있었는데 애들 보다는 오히려 내 또래의 '어른'들이

더 좋아라하던 포토존이었던 듯. 그나저나 대체 원피스는 언제 완결되려나.

무엇보다 캐릭터들 중의 압권이자 대미는 우리의 뽀통령. 모자빨과 안경빨일 뿐, 조그만한 눈에 앞머리 탈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게 함정이라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 인기만점이던 포토존.

이건 태권V의 입체그림이라고 했다. 정해진 뷰포인트에 두발을 고정하고 그림을 바라보면 바닥에 그려진

그림이 마치 벽처럼 일어나는 걸 느낄 수 있다는 거다. 아마도 지정된 점으로 집중되도록 소실점을 잡고선

원근을 감안한 덕분인 듯 한데, 페인트칠한지 좀 오래라 발색이 선명하진 않아도 제법 일어난 느낌이다.

쥬라기공원에 등장했던 렉터, 티라노사우루스도 있었다. 꽤나 정밀하게 묘사된 피부나 이빨, 발톱의

모양새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박치기하는 애들, 이름이 뭐더라, 그 초식공룡들도 마치 산책로를

점거할 듯한 기세로 산책로 옆에 서 있었다.


마지막으로 들렀던 곳은, 무료라는 글자를 큼지막하게 박아두고 있던 매직거울체험관. 미로공원에서 이미

겪었듯 길 찾기에는 영 젬병이란 걸 알고 있었는데, 이 기둥이 무한하게 이어지는 듯 보이는 거울의 방에서

자칫 못 나올 뻔 했다. 두 손을 엉거주춤 벌리고 앞의 공간을 더듬으며 그게 거울인지 아님 열린 공간이지

확인하며 한참을 버벅댄 후에야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비만 안 왔으면 좀더 둘러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는데, 그래도 제법 꼼꼼하게 다 살펴보았더니 두시간 가까이

흘렀던 거 같다. 나오는 길에 눈길을 잡았던 건 오줌싸는 소녀의 상. 이건 대체 어느 나라에 있는 조각상을

소개한 건지는 전혀 확인하지 못했지만 익살맞은 표정이나 편안해보이는 자세가 매력적이었다.





구 소련이 멸망할 때까지 공산정권의 치하에 있었던 이 공간은, 이후 투르크메니스탄이란 이름으로 독립하게

되고 스위스와 같은 영세중립국임을 선포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후 두명의 대통령을 맞으면서 사실상의

일인 독재정권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 공산주의 정권이나 일인독재 정권이나 어슷비슷하게 통하는 것도 있을 테고,

사람들의 일상이야 딱히 혁명이 일어나 뒤집히지 않은 바에야 크게 달라진 건 없는 듯.

어쩌면 북한의 평양 시내 모습도 이와 같지 않을까. 외부에 보이기 위한 일정 구획 안에만 잘 관리되어 있고

그 너머를 향하는 순간 마치 '매트릭스'의 세계의 끝에 도달한 느낌을 던지는.

시내 중심의 커다랗고 새하얀 건물들이 아쉬하바드의 집결된 부와 권력을 상징한다면, 그걸 좀더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건 곳곳에 서있는 초대대통령의 금빛 동상과 현직대통령의 대형 초상화, 그리고 탑이나 조형물들인 듯.

실제로 저런 커다란 건물들은 관공서, 정부 청사, 역사 혹은 국립 대학이라고 했다. 건물 외벽에 커다란 초상화를

걸어두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건물들인 거다.

그에 비해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건물들은 많이 허름했다. 옛 소련식으로 지어졌다는 아파트 건물들하며, 살짝

이지러져가는 슬레이트 지붕의 가정집들. 모래폭풍이 심심찮게 불어오는 뿌연 공기 속에 내놓은 채 말리는

빨래들처럼 이들의 삶은 적당히 까끌까끌하고 건조하진 않을까 싶었다. 이 땅에서 많이 난다는 석유와 가스

팔아서 번 돈으로 저런 관청이나 대리석으로 지을 게 아니라,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여야 하는 건 아닌가.

그치만 또 그렇게만 볼 일도 아닌 거 같다. 외부인의 시각으로야 이상하고 비정상적이라 여겨질 만한 일이라도

이들의 시각으로는, 그리고 이들의 기준으로는 나름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국가로부터 대우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러니까 초대대통령에 대한 애정이 하늘을 찌르고 현직 대통령 역시 못지 않는 지지를

한몸에 받고 있는 걸 거다. 분수대 앞에 아이를 데리고 나와 사진을 찍는 어머니도 그랬지만, 길거리를 걷는

많은 투르크인들의 표정은 분명히 밝았었다.

그녀들의 화사한 전통의상이나 원피스도 이쁘고, 나름 생기발랄한 표정도 그렇고, 찌푸리거나 쩔어있는 표정은

아니다. 그리고 흔히 '공산주의국가'나 '독재국가'를 상상할 때 그려지는 회색빛의 음침한 분위기도 아닌 거

같아서 다행이었다. 이들은 이전에도 이런 표정을 짓고, 이런 옷을 입고 다녔을까.

어쩌면 그런 변화는 구소련의 공산정권 치하를 벗어나고부터, 혹은 최소한 가스와 기름 덕에 조금씩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면서 일어났는지도 모른다. 허름하고 흐릿하던 신호등이 이렇게 반짝거리며 녹슬지 않는 스테인레스

재질의 선명한 LED조명 신호등으로 바뀌었듯이.

그리고 여전히 이 나라는 러시아식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시내 곳곳에서 눈에 띄는, 그런 나라인 거다.

거리에 서 있다가 누군가를 향해 경례를 올려붙이는 딱딱하고 건조한 군인들, 이들은 샤방한 원피스를 입은

아가씨들과 함께 변화중인 투르크메니스탄을 상징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쉬하바드 거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던 커다란 깃발들, 깃발들을 꽂아 놓은 깃발꽂이들. 저건 어디에 쓰이는

건지 모르겠지만 왠지 평양 시내를 스케치한 사진들에서도 비슷한 걸 봤던 거 같다. 집체 공연을 하거나 군중무를

할 때도 깃발은 전체주의 국가에서 흔히 활용되는 도구기도 하다. 여기선 대체 뭐에 쓰이는 걸까. 궁금증을

끝내 풀지 못한 채 돌아오고 말았다.

아파트 벽면에 걸려있는 커다란 그림, 성모 마리아 같은 인물을 그린 종교화 같기도 하고, 인민의 표상 같기도

하고, 혹은 공산주의식의 계급의식을 드러낸 벽화같기도 하고. 전체적인 분위기로만 따지면 소련의 느낌.

구소련 시절에 세웠던 제2차 세계대전 '기념탑'(이라고 해야 하나 위령탑이라고 해야 하나..)이 여전히 남아

있기도 했다. 사실 제2차 세계대전을 끝내고 연합국 측의 승리를 가져온 건 팔할이 소련의 힘이었던 거니까

그들은 이곳저곳 치열한 전쟁의 상흔이 남은 곳에 탑을 세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곳에서 굴러다니는 차들도, 오래 된 것들이다 싶으면 대개 소련에서 양산되어 공급되었던 '국민차'에 속하던

것들이라 보면 딱히 무리가 없다고 했다. 물론 새 차들이야 벤츠에 BMW에 폭스바겐에 전부 외국 브랜드.

저 버스는 뭔가 깡총하게 생긴 게 뒷바퀴가 조금 앞쪽으로 땡겨져 있다 싶기도 하고, 어쨌든 꽤나 귀엽다.

그리고 아쉬하바드 시내 중심가를 벗어나는 순간 황량해지는 풍경. 뜨문뜨문 떨어져 있는 건물들조차 저만치

멀어지고, 그 사이로 바싹 마른 채 헐벗은 땅거죽이 붉게 드러났다. 우리나라도 서울에서 조금만 교외로

빠져도 금세 스카이라인이 땅바닥에 달라붙고 도시적인 느낌이 사라지긴 하지만, 여긴 도시의 외관이 벗겨지면

바로 사막의 거칠고 헐벗은 식생이 드러나니까 더욱 극적인 거 같다.

와중에 화려한 색감의 옷을 입은 투르크 여성분이 한 분 지나가셔서 급 화색이 돌던 풍경.

그나마 몇 그루씩 듬성듬성 있는 나무들도 비리비리하긴 마찬가지, 튼실하다거나 싱싱하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나무 밑둥에는 병충해를 방지하기 위해 하얗게 무언가를 칠해놓았다고 하던데, 알제리에 갔을 때도 이렇게

나무 밑둥을 전부 하얗게 칠해놨던 걸 봤었다. 물론 이유는 달랐지만. 거기선 '이뻐 보일라고' 칠했다던데,

어쩌면 알제리 역시 병충해 방지를 위한 목적일지도.

투르크메니스탄에도 소수의 쿠르드 족이 산다. 쿠르드족은 터키에서 분리독립을 주장하며 종종 무력 충돌도

일으키고 소요를 발생시키곤 하는 소수민족인데, 이 곳의 쿠르드족은 그런 분리독립 주장을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아쉬하바드를 벗어나 조금 산 쪽으로 가다보면 보이는 저쪽 동네가 바로 쿠르드 족의 거주지역이라고.

정말, 아쉬하바드 시내 역시 참 작아서 이십분이면 끝에서 끝까지 차로 달릴 수 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금방

주위 풍경이 바뀌어버리라곤 생각지 못했었다. 건물다운 건물은 눈에 잘 띄지도 않고, 건조한 땅을 조금이라도

녹화시켜 보겠다는 의지로 심었을 조그마한 나무들은 사막의 거센 삭풍에 희롱당하며 비척비척.

그래서, 여기가 바로 아쉬하바드의 끝. 공산독재의 지난 세월이, 일인독재의 현재가 어떤 식으로 이 경계지역을

변화시키고 발전시켜 나갈지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여기가 아쉬하바드의 끝.





기록 지침: 위대한 항로에서 항해할 때 항해사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물건. 섬의 자기를 기록해서 그 자기의 방향에 따라 각 섬을 들러가며 항해해야 한다. 기록 지침이 없다면 위대한 항로에선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

영구 지침: 기록 지침과 달라서 한 번 섬의 자기를 기록시키면 그 지침을 어디로 옮기든 반드시 그 섬만을 가리키는 지침.

- 원피스 단어백과사전 中 -



그러고 보니 이곳은 여전히 '어디든 되거나 어련히 잘 되겠지'라던 불과 한달전의 마인드의 기록에서 멈춰있었다.

실은 이미 '어련히 잘 된' 홀가분함을 느끼는 목표상실의 멍청한 상태를 지나, 그럼 나는 어떡해야 하나 라는

긴장감을 조금씩 끌어올리는 상태랄까.

연말의 싱숭스러운 분위기를 핑계로 맘껏 늘어져서는 무슨 말로 자신을 추스리기 시작해야 할지 엄두를 못내고

있었을 뿐이다. 어느새 최초의 홀가분함은 퇴락하고 새로이 부딪힐 문제, 선택들이 정신차리고 진지해지라고

재촉하고 있으니.



수십여 곳에 지원을 했고, 하이바도 안 씌워주는 퀵서비스를 타고 시속120을 넘나들며 가능한 선택지를 넓혀

보고자 욕심을 부렸다. 세달동안 온갖 업종의 기업들 앞에서 내가 했던 말과 보였던 행동은 팔할이

'내숭'이었으며, 04년 이래 늘상 껴왔던 반지를 빼는 행위나 한미FTA를 찬성한다는 프리젠테이션, 혹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여자친구와의 선약 대신 회사를 택하겠다는 대답들이 전부 그러한 내숭..혹은 '짜고 치는

고스톱'같은 통과의례였다고 생각한다.



꼭 가고 싶은 곳은 없었다. 사실 '꼭 가고 싶은 곳'이란 단어로 내가 여태까지 지시해 왔던 것은, 들어가기만 하면

내가 선망하던 삶을 이뤄줄 것 같은 레디메이드 형태의 틀이었는지 모른다. 어느정도의 진보성을 두르고 중상류

이상의 소비생활을 영위하는, 미국보다 20-30년 늦은 한국에서 2010년쯤 대박예감의 '보보스'족이랄까.

그치만 그렇게 헐겁거나 만만한 선택지는 없었다. 물질적/비물질적 '보수'와 자신을 위한 '여가'라는 두 측면은

여지없이 상충했으며, 나자신 이미 88만원 세대에서 자유롭지 못했기에 정말 뽑아줘서 마냥 감사할 뿐인 일개

구직자였던 거다.



엊그제 동아일보 인턴친구들을 만났을 때, 나랑 같이 인턴면접을 봤던 친구가 그때 많이 놀랐노라는 얘기를

했다. 내 빤짝이는 귀걸이를 보며 면접관이, 직장에 들어갔을 때 그걸 빼라 그러면 어쩔 거냐 그랬더니 내가

그랬댄다. 그 정도의 융통성도 없이 꽉 막힌 조직이라면 안 가겠다고. 전혀 잊혀졌던 기억이었다. 음..지금까지

내가 의지해온 것들은, 기록지침이었던 걸까. 어딘가 도착하면 도구로서의 효용을 다하고 버려질 뿐인. 갈지자

행보를 부추기는 기록지침말고..흔들리지 않는 영구지침을 한개쯤 품고는 있는 걸까. 나 자신에 대한 혼란.

협소한 정치적 지형만의 문제가 아니라, 진부하게도,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혼란.



오늘 우연찮게 중경삼림을 다시 봤다. 당신과의 기억을 통조림에 담는다면 유통기한이 없었으면 좋겠다는..만약

있다면 만년으로 하고 싶다는 대사. 그 대사가 먹히는 이유는, 대다수의 기억은 편리하게도 유통기한이 파인애플

통조림만큼밖에 안 되기 때문일 거다. 사랑과 삶, 영구지침과 만년짜리 기억. 한살 더 먹는다는 따위로, 책임질

것이 많아진다는 따위로, 그걸 찾는 '척'만 하게 되는 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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