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중부지방의 유명한 휴양지로는 파타야 정도가 흔히 알려진 곳이지만, 파타야 조금 아래쪽에 있는 해안마을인

 

반페(BANPHAE)에서 배를 타고 30분이면 갈 수 있는 꼬싸멧은 그야말로 (한국인들에게) 숨겨진 휴양섬이다.

 

 

* 가는 길 : 방콕 동부버스터미널(에까마이)에서 07:00부터 1시간 간격 반페행 버스 운행(3시간반 소요)

반페 항구에서 꼬싸멧행 배 1시간 간격 운행(30분 소요)

 

방콕 에까마이에 있는 동부 버스터미널에 도착, 7시에 출발하는 반페행 첫 버스를 탔다. 역시 정시 출발은 무리.

 

반페까지 달리는 길은 대체로 왕복 이차선에 아스팔트 포장도 군데군데 벗겨져나간 편치 않은 길이지만 버스는 나쁘지 않다.

 

에어콘도 나오고, 제법 시트도 푹신하고, 차냄새도 심하지 않은데다가 운전기사 아저씨도 편안하게 운전했던 듯.

사실 태국 방콕까지의 5시간여 밤비행 덕에 다소 지쳐있기도 했고, 공항에서 버스터미널까지 새벽 시간에

 

짐을 끌고 가는 길도 쉽지 않아서 꽤나 지쳐있던 터라 반페에서 배에 오르는 시점으로 순간이동.

 

항구에 가득한 배들이 제각기 구명복들을 오징어처럼 널어두었다.

 

저 얄팍하고 약하디 약해보이는 발판을 딛고 배로 가야 한다는데, 들고 있던 짐은 20키로가 훌쩍 넘는다는 게 함정.

 

 

부두의 널빤지는 이빨이 어찌나 넓던지 짐가방의 돌돌이 바퀴를 계속 깨물려고 들어 더욱 쉽지 않았지만,

 

그 와중에도 부둣가에서 일하던 아저씨들의 저 여유로운 의자 위 소품들과 긴의자의 세상이 머지않았다는 예감.

 

반페의 부두에서 내다본 방파제, 그리고 그 너머 아늑한 언덕같은 느낌의 섬이 아마도 꼬싸멧.

 

 

정시마다 반페를 떠나 꼬싸멧을 출항하는 배는 이제 항구를 벗어나기 시작.

 

시원한 바닷바람과 강렬한 태양이 이제야 조금 태국에 있음을 실감케 했다.

 

 

그렇게 작지 않은 배는 잔잔한 바다 위를 제법 빠르게 내달려 꼬싸멧을 왈칵왈칵 끌어당기고 있었고.

 

아무리 남국이라도 여기 역시 북반구인지라 현재 계절은 겨울, 현지인들은 목도리도 하고 비니도 쓰고 그런 날씨였다.

드디어 손에 잡힐 정도의 거리에 육박해오는 꼬싸멧. 해안가를 따라 늘어선 리조트 건물들과 빌라들이 멋지다.

 

그리고 꼬싸멧의 항구 도착.

 

 

저 거대한 뒷태가 뭔가 했더니 아마도 바다의 신, 이런 분이신가 보다. 손에는 사람들이 바친 꽃다발이 주렁주렁.

 

그러고 보면 역시 태국의 꽃의 나라. 뱃전마다 꽃다발이 모셔졌다.

 

항구를 벗어나 처음 밟는 꼬싸멧의 풍경은 살짝 허름한 방콕의 골목 같달까.

 

(아마 세븐일레븐 앞의 저 아저씨가 피리를 불며 바다의 신을 위로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역세모꼴 모양의 섬 북부에 위치한 숙소까지 걷기로 맘을 정하고 몇걸음 떼지 않아 발견한 풍경들.

 

이곳이 태국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보전되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하늘이 조금만 더 청명했다면 더욱 이뻤을 테지만, 하얀 모래사장하며 맑은 청록빛의 바다.

 

서울에서 이 곳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10시간여의 여독이 어느새 사그라들었다.

 

 

 

 

짜오프라야강 서안에 있는 왕실선박박물관은 사실 가이드북엔 그리 크게 나와있지도 않을 뿐

아니라, 찾는 사람도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다. 가면 꽤 괜찮은데, 그리고 가는 길도 꽤나

매력적이었던 곳이었다. 왕의 배들이 웅크리고 있던 방콕의 선박박물관

큰길을 따라 걷다가 표지판을 보고 꺽어서 골목으로 들어가는 길, 그야말로 허름한 빈티지 삘

가득한 뒷골목의 느낌이라 조금 당황한 건 사실이었다. 더구나 앞으로 나가봐야 길이 막혀있는

것처럼 벽이 벌써부터 보이니까 더욱. 그래도 옆에 화살표가 크게 붙어있으니 믿고 들어가기로.

골목을 틀어 돌아가니 개 한마리가 좁은 길 가운데 위풍당당하게 버티고 섰다. 옆엔 나른하게

널부러져 있는 황구 한마리. 길 양켠을 차지한 건 허름한 음식점과 두개밖에 없는 테이블.

뭔가 의구심이 생길 즈음이면 어김없이 나타나주는 화살표라 더욱 믿음직스러웠달까.

거침없이 계속 앞으로 가다가, 잠시 후진을 해야 했다. 좁은 길폭에 딱 맞춤하게 만들어진

세바퀴 수레를 끌고 길을 나오고 있던 아저씨, 양쪽으로는 다닥다닥 붙은 슬레이트 지붕의

집들이 벽처럼 서 있어서 적당히 피할 공간도 없길래 조금은 뒤로 후진. 근데 저 수레 위에

올려진 것들은 대체 뭘까. 뭔가 양념통 같은 것도 보이고.

아저씨와 수레를 보내드리고 나니 다시 막막한 외길이다. 다른 길로 샐 데가 없으니 그냥 조금만

걸음 되겠거니 싶긴 하지만, 조금씩 당황스러워진 것도 사실이었다. 금방 가 닿을 줄 알았는데,

바로 눈앞의 건물인가 싶었는데 계속 화살표만 나오니까. 그리고 이젠 화살표가 벽에 그려졌다.

마음을 조금 널럴하게 먹고, 설렁설렁 산책한단 기분으로 걷기로 했다. 주위에 널어진 옷가지도

보고, 저렇게 돼지모양 깔개가 귀를 물린 채 널려있는 것도 보고.

아, 그러고 보니 선박박물관에 배들이 물에 띄워져 있을 테니 수로 근처에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던 건, 조금씩 집들의 바닥이 드러나며 물위에 떠있다는 게 느껴지면서였다. 생활용수랑

섞여들고 각종 쓰레기가 섞이면서 희뿌얘진 물에 조그만 물고기들이 살고 있었다.

저렇게 집들의 아랫도리를 질퍽질퍽하게 적신 물이 이런 큰 수로로 섞여들어서는 조금은 더

깨끗해보이는 물줄기를 이뤘다. 여전히 탁하고 잔뜩 고인 채 지저분해 보이긴 하지만..그래도

말갛게 비추는 풍경은 실제보다 이뻐보인다.

허술하게 만들어진 안전바, 그 곁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은 여봐란 듯이 내부를 활짝

열어제끼고 있었다. 어디서 어디까지가 한 집인지도 그저 눈치로 추측할 뿐 일렬로 다닥다닥

붙어있던 집 안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대체 이렇게 가는 게 맞는지 싶어서 묻고 싶어도.

이제 뭐, 사실은 초점이 조금 바뀌어 있었다. 굳이 선박박물관을 찾아야 할 이유는 없고

이미 충분히 이 구불구불한 미로길을 걸으며 방콕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거 같기도 했고

나름 세세한 풍경들이 맘에 와닿는 것들도 많았으니. 대충 벽면에 그려둔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에서 일부러 조금씩 돌아가 보기도 하고 옆길로 새보기도 하면서 설렁대며 걸었다.

일부러 세팅이라도 해 둔 것처럼 하천 위에 벤치처럼 묶여 있는 화단이라거나, 하천 옆에

손바닥만한 땅바닥에도 빼곡히 들어서 있는 각종 녹색 풀떼기들. 하나같이 싱싱하고 푸른.

태국 사람들은 전부 Green Thumb을 가진 건가 싶을 정도로 싱그런 초록색이었다.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어느 집 앞의 아저씨가 담배를 태우고 계시길래 슬쩍 말을 붙였다. 집안에

온통 강아지들이 가득 하길래, 그리고 또 뭔가 신기해보여서 인사도 하고, 안에 좀 둘러봐도

되냐고 물었더니 굉장히 반가워하신다. 직접 가꾼 운하위의 정원도 보여주고.

그 집을 벗어나서 다시 화살표를 따라가는 길, 산뜻하게 새로 세워진 담벼락 위로 누군가가

노랑색 물총을 걸어놨다. 뭔가 물총이 담 아랫길을 굽어보는 게 씨씨티비의 각도인 게, 골목길의

안녕과 평화를 지키는 듯한 포스.


어느새 선박박물관은 아웃 오브 안중, 그냥 촘촘하게 구불구불 쟁여진 골목길을 즐기고 있었다.

낡은 창문짝들이 활짝 열려있는 하얀 벽 아래 적색의 항아리가 뒤집어져 있는 모습이라거나,

이끼처럼 벽을 타고 오르는 꺼뭇꺼뭇한 자국이라거나.

어느 집앞에 널린 빨래를 무심히 지나치다가 살짝 놀랬다. 속바지가 여러벌 널려있었는데, 색깔만

다르고 전부 똑같은 제품이었던 것. 음..패션이나 심미적 만족 따위가 아니라 그냥 실용적으로다가

한다발 사서 쓰는 듯했다.

거의 다 도착했나 싶다. 삼거리에서 불쑥 눈에 뜨인 건 마치 하이네켄의 색감과 비슷하게

그려진 선박박물관을 향한 안내화살표. 얼룩덜룩한 시멘트벽돌담이 운치있다.

그리고 선박박물관. 왕의 배들이 웅크리고 있던 방콕의 선박박물관

돌아나오는 길에 슬쩍 고개를 집어넣고 구경했던 미용실 풍경. 국왕의 얼굴이 달마다 실려있는

달력이 몇개씩 걸려있고, 손님을 받는 곳도 고작 의자 두개, 옆에 소파에 누운 아주머니의 머리에

'구루뿌'를 말아주고 있었다.


다시 처음의 큰길 쪽으로 돌아나오면서 조금씩 정돈되고 깔끔해지는 건물들의 분위기. 단적으로

페인트칠도 말끔하고 태국국기도 산뜻하게 걸려있는 이런 집이 몇 채 몰려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집 현관에도 왠 뜬금없는 자동차 타이어가 하나 뒹굴고 있고. 뭔가 관광지를 따라다니는

동선으로는 보지 못했을 것들을 살짝 둘러봤다는 느낌이었다.


 


부모님의 결혼기념일. Pentax K-r로 거의 처음 찍어본 사진이다. 케잌을 하나 사서 집에 들어가니

이미 동생이 숫자초까지 야무지게 준비한 케잌을 사놨길래, 두개 모두 꺼내고 초에 불을 쟁였다.

태국 방콕으로의 여행. 갑작스럽게 떠난 길이었다. 겨우내 꽁꽁 얼어붙은 날씨에 넘 질려있었고

따끈한 햇살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던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온통 매진된 항공권들 속에서 운좋게

방콕행 티켓을 손에 쥐었다. 방콕 시내를 이리저리 가로지르던 수로, 그 위에 슬쩍 얹힌 나무벤치.

그리고 비둘기가 지켜보고 있는데, 비둘기처럼 몸을 구부린 채 식사중이신 아주머니 한 분.

분홍꽃이 뚝뚝 굵은 눈물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차 위에도, 벤치 위에도, 가리지 않고 눈처럼 쌓이고

있었다. 그렇게 온통 꽃이 만발한 도시였지만 가장 인상적이던 꽃은 역시 선인장꽃. 에피톤프로젝트의

'선인장'을 들으며 노래가 끝날 때까지 근처를 한참 서성거렸다.

왕실선박박물관, 태국 왕실의 의례용으로 쓰이는 금빛 번쩍이는 날렵한 선박들이 보수 중인 곳이었다.

다리를 오므려 꽉 쥐고 있는 대포는 선수에 장식된 괴물 '가루다'의 무시무시함에 비하면 귀여울 정도.

이런 날것의 시멘트벽의 색감도 신선하게 다가오는 건 여행의 효과일 거다. 벽돌틈 사이로 조금씩

삐져나온 시멘트의 굳은 모양새도 맘에 들고, 대충 그려넣은 티가 역력한 저 화살표 사인도.


왓 포에서 만난 수십수백개는 헤아릴 듯한 탑들. 지상에 단단히 뿌리박은 채 사람들의 염원을

쭉쭉 흡수해서는, 날렵하고 유려하게 응축해내며 한방울의 엑기스로까지 끌어올리고는 하늘로

발사하는 거다.

짜오프라야 강 서쪽 기슭에 서 있는 왓 아룬, 새벽사원에 올라 내려다본 풍경. 극히 섬세하지만

자칫 조잡해지거나 지저분해 보이는 느낌을 피할 수 있었던 건 역시 한땀한땀에 들인 땀과 노력.

강을 건너며 멀찍이서 보면 또 전혀 다른 느낌으로 어슴푸레한 실루엣이 멋지다.

그리고 토끼를 향해 치솟다 허공에 얼어버린 듯 멈춘 물방울들의 부동심결. 구슬구슬 꿰어서


만들어진 목걸이 같기도 하고, 몽글몽글 불규칙하게 뭉쳐있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담겼다.

태국에서 만났던 신들. 불교 일색의 나라로만 알고 있었지만 시내 어딘가에서 요한바오로2세

전 교황이 방문했다는 성당을 우연찮게 찾아낸 건 큰 소득이었다. 천사에게도, 교황에게도 부처에

그러듯 똑같이 화환을 걸어주고 발밑에 봉헌하는 태국인들의 신앙심. 신 옆에는 항상 꽃이 있었다.


신 옆에 항상 꽃이 있더라는 발견을 살짝 뒤집으면, 꽃 옆에는 항상 신이 머물지도 모르겠다.

온갖 색깔과 모양의 꽃들이 그득하게 쌓인 꽃시장을 구경하다가, 이 곳에서도 신에게 바쳐진

꽃다발은 얼기설기 창백한 형광등 밑에 매달려있었다. 노랗고 보들한 신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수로 옆의 허름하고 구질한 건물들 사이에도 신이 머무는 사당과 화환들은 원색이 선연했다.

꽃시장 앞에 일렬로 늘어서있던 삼륜 오토바이들. 열맞춰 세워져있는 귀엽고 조그마한

앞바퀴도 재미있었고, 툭툭 튀어나온 눈알같은 헤드라이트들이 주르륵 열선 것도 웃기고.

해가 기울어가는 '마법의 시간', 슬쩍 공원으로 들어와서 벤치에 누워 하늘이나 보려는데 왠 꼬마가

공원 대리석 바닥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공을 몰고 우다다다 중이었다. 귀여워서 한참 보다가

카메라를 들이대니 정말 거짓말처럼 딱, 멈춰서서 포즈를 잡아주는 녀석. 위대한 축수선수의 삘이.


허름한 방콕 시내를 쾌속으로 질주하는 쾌속선. 사방에 물보라를 일으키며 수로 기슭의 집들에

거대한 파도를 철썩이게 만드는 그 스피드도 놀랍지만 귀가 멍멍하도록 시끄러운 소음도 놀라웠다.

그리고 금빛으로 번쩍대는 관광지 말고, 허름하고 누추하지만 화분 하나씩은 꼭 키우는 판잣집들.


짜오프라야 강은 방콕의 젖줄과도 같은 커다란 강이다. 방콕 시내 곳곳을 거미줄처럼 흐르는

수로들이 모여서 이뤄지는 너른 강, 유람선을 타고 돌거나 강변을 따라 걷거나. 강을 즐기는 방법.

하얗고 까만 건물의 색감이 뚜렷이 대비되는 것 같다. 하얀 건물은 오래전 지어진 요새인지라

사방에 자잘한 금과 얼룩이 땟국물처럼 남았고, 검정 건물은 카오산의 유명한 까페인지라

온통 꽃이 만발했다.

태국의 유명한 맥주, 캔 위에는 안쪽 원통을 따라 빨간 동물이 몇 마리 그려져 있었다. 눈뜨이면

일어나 대충 씻고 외국인이 적은 음식점을 찾아 쌀국수 하나, 캔맥주 하나로 늦은 아침을 먹던

그 때. 땀이 송글송글 맺히기도 전에 시원한 맥주가 먼저 땀을 흘리고 있었다.


태국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 무에타이. 킥복싱 연습장이 동네 여기저기에 하나씩은 숨겨져

있었던 거 같다. 야외에 설치된 링에 주렁주렁 매달린 채 땀을 말리는 글러브들이 빨갛고 파랗다.

방콕의 야경, 조리개를 적절히 조정했더니 불빛이 육각형의 별모양으로 변해버렸다. 짙은 보랏빛이

되어버린 하늘 아래 주홍불빛들이 별처럼 늘어섰고, 눈에 불을 밝힌 차들은 짐승처럼 내달렸다.

색감을 좀 바꾸고, 셔터 속도를 좀 바꿨다. 마치 백투더퓨처의 한장면처럼, 노랑색 초록색이 반반으로
 
뒤섞인 방콕의 택시가 길게 그림자를 늘이고는 휙 사라졌다.

매봉터널을 걸었다. 왠지 패닉의 '달팽이'라는 노래가 떠오르는 길고 긴 터널, 온통 플라스틱

창문으로 차도랑 분리되어 있는 그곳에서는 지나치는 행인도 드물지만 누군가 지나친다고 해도

괜시리 마음이 황량해지는 그런 느낌의 공간.

집앞. 그렇다고 어린이집에 사는 건 아니고, 하루에 두번씩은 꼭 지나치는 곳이지만 시간대에 따라

날씨에 따라, 그리고 무엇보다 내 기분이나 상태에 따라 참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곳이다. 이날은..

조금 기분이 까맣고 하얗게, 그렇게 얼룩덜룩했던 날인 거 같다.

방에서 키우는 선인장 하나. 선인장이 이렇게 이쁘게 생긴 건 처음 봤다. 잎새도 하나하나 포실포실

도톰하게 살이 올랐고 붉게 물든 가장자리에 솜털이 촘촘이 자란 것도 그렇고. 전자파먹고 쑥쑥 자라길.

봄맞이 건물청소. 사층짜리 건물 꼭대기쯤에 가느다란 줄 하나로 매달려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건물벽을 닦고 있는 아저씨가 용맹스러워보였다, 그렇게 커다란 움직임들은 아니었지만.

친구의 결혼식. 신부대기실에서 다른 친구들과 노닥거리며 잔뜩 긴장한 그녀의 표정을 풀어주려

애썼지만 역시. 그녀를 웃게 하는 건 그녀의 신랑. 손을 잡고 대기실을 나서는 그들의 표정이

한편으론 화사하고 다른 한편으론 비장해보이기도 했다.

오랜 연애를 거쳐 드디어 결혼에까지 이른 두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나름 '민주적인 가정'을

강조하는 주례 교수님의 짧고 임팩트있는 덕담에 귀기울이며. 새하얀 드레스와 노란 꽃들에 꽂혔다.

양가 부모에 다소곳이 인사하는 갓 태어난 부부 한 커플. 은은한 조명과 얄포름한 면사포, 노랗게

일렁이며 떨궈지는 촛불과 꽃불이 인상적이었다.

신논현역 근처의 어느 주점. 빨갛고 하얀 조명이 비닐 커버를 타고 줄줄 흘러내리는 아랫춤에선

술잔이 넘칠 듯 술을 따른 두 젊은이가 망연하게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께집의 붉은 조명. 바람이 불어 벽에라도 세게 부딪혔는지 딱 모서리가 깨져나갔다. 아직 달린지

얼마 되지도 않은 깔끔한 느낌의, 새것의 분위기가 채 가시지도 않은 조명등인데 격하게도 터져나갔다.

문앞에서 달그랑거리던 풍경, 물고기의 등뼈에서 뻗어나온 각기 다른 길이의 금속 대롱들이

가시처럼 성가신 소리를 내고 있었다. 저렇게 생긴 풍경은 좀만 세게 닫겨도 한참동안 지들끼리

비비 꼬여있단 말이지.

어느 까페. 창밖에서 볕이 손가락을 뻗쳐왔다. 이미 봄볕에 사로잡힌 꼬마아가씨는 분홍빛가방을

들고 어디론가 룰루랄라 스텝을 밟으며 봄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조용히 스며들어온 봄볕은

꽃무늬가 커다란 테이블을 지나 보랏빛 쿠션이 보드라운 의자위에 느긋이 몸을 눕혔다.


풍성하게 바람넣은 머리처럼 불룩한 화분을 둥지삼아, 붉은 새 한마리가 가만히 앉았다.

주체못하고 쏟아져들어오는 봄볕, 강물에 빠져버린 자동차의 깨진 창문으로도 저렇게 쏟아져

내리지는 않을 거다.


이층과 일층을 잇는 계단, 아래로 내려다보며 찍은 사진은 종종 수평감각을 희롱한다.

이렇게 보니 계단이 아니라 격자처럼 좁아져 나가는 통로같기도 하고 거울은 천장에 붙은 듯.

사선으로 그어진 채 첫째 곰의 몸뚱이를 두개로 쪼개놓은 햇살 아래서 보니 표정이 떠오른다.

저 녀석들의 조심스런 손의 위치, 살짝 외로 꼬은 고개의 각도, 그리고 조금 우울하게 늘어진 표정.


쓰리쿠션으로 치고 들어가는 조명. 벽에서부터 뻗어나온 얇지만 완강한 메탈의 가지는 천장으로

치고 올랐다가 불쑥 꺽어져선, 슬쩍 고개를 돌려 벽을 바라본다.


벽에 있던 이집트 냄새나는 조각상 하나. 쭉 찢어진 눈이라거나 칼처럼 날카로운 콧날들이 좀

영특하다 못해 교활한 분위기를 주기도 하지만 화려하고 정교한 꾸밈을 보면 대충 만들어진

물건은 아닌 거 같다. 하긴, 이집트가 아니라 다른 어느 나라일지도 모르겠다. 음..어디려나.

봄이 오려나, 싶은 날씨지만 창밖에 내밀어진 화분들은 여전히 바싹 마른 채다. 그 위로 데코처럼

외벽을 감싼 얄궂은 청록색의 잎사귀들이 눈에 띄지만 땅 아래 사람들은 케잌에 정신이 팔렸다.

이층에서 삼층으로 오르내리는 계단, 많은 사람들의 발이 나무를 조금씩 깎아낸 거다. 색깔이

빠지고, 나무의 이빨이 빠지고, 그렇게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궤적이 남았다. 무질서하게 늘어선

와인병들이라지만 일정한 수량이 넘어서는 순간 나름의 미감이 생겨난다. 규칙없이 내걸어둔

티스푼 장식장들이라지만 역시, 나름의 균형이 잡히고 미감이 떠오른다.

이곳의 불빛과 저곳의 불빛. 저 창문을 거울삼아 비치고 있는 풍경 속에는, 좀더 각도를 틀어서

여기저기 이쪽 세상을 비쳐본다면 뭐가 더 보일런지.


제법 선명하고 튀는 색감의 테이블, 의자들, 쿠션들이 구석구석 차지하고 있지만 나름 분위기는

어찌어찌 정돈되는 게 신기하다. 창문이라고 뚫려있는 곳에 보이는 곳은 이웃한 건물의 붉은 벽돌

뿐이라지만, 그것도 나름 호의적으로 봐줄 수 있다.


까페 옥상에서 바라본 풍경. 고만고만하게 다닥다닥 붙어있는 건물들 사이에서 탑처럼 우뚝 솟아난

나무하며, 해가 지면 바통체인지해서 불을 밝힐 야트막한 가로등 하나. 밑을 내려다보면 여느

때처럼 줄을 늘어선 채 삼청동을 순례중인 사람들. 여기서 저쪽은 잘만 보이는데, 왠지 저쪽에서

여긴 안 보이는 거라고 자꾸 의심하게 되는 거다.


얼음만 남기고 홀딱 마셨던 라떼, 얼음이 녹은 자리엔 물이 들이찼다.

물과 기름이 미끌거리며 서로 버텨내듯 가만히 녹아내린 얼음은 잔뜩 흐려진 라떼의 잔해와 버텨낸다.


마치 무슨 우주선처럼 스르르 다가오는 스크류 모양의 장식품들. 이상하게 꼬였네~ 하는 노래도

생각나는데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네, 선명한 그림자만큼이나 단호하고 거침없는 존재감.

어느 갤러리. 빨강 주황 노랑으로 이어지던 갤러리의 간판이 아쉽다 싶더니 그 너머에서

초록색 국기가 바람에 펄럭인다. 나 여기있소, 나 여기있소 하는 것 같이. 그래서 빨주노초.

서울민속박물관. 장승이니 석물이 곳곳에 서 있던 제법 너른 부지에 사람들이 빼곡했다.

'입춘대길'이란 종이가 아직도 붙어있나, 했다가 아직 입춘만도 못한 날씨지 싶기도 하고.

경복궁 담장을 배경으로 해서 옹기종기 서있던 각종 석물들. 어딘가의 할매 바위, 어딘가의 장승,

어딘가의 장군상 따위들이 모여있어서 그런지 저마다 표정을 찡그리고 험상궂어보이려 여념이 없다.

어느 화원의 꽃다발. 아무래도 이 기능은 참 매력적인 거 같다. 빨강색과 노랑색만 읽히는 세상이

있다 해도 세상이 딱히 덜 아름답지는 않을 거 같단 생각이 팍팍 드는 거다.

흑백의 공간에서도 화려하기만 한 꽃들을 마지막으로 Pentax K-r로 꾹꾹 눌러찍은 일상 끗.





짜오프라야 강을 남쪽으로 달리는 쾌속 유람선에 별 대책없이 올라탔다. 뭐 어디까지 가나

보자는 심정 반, 가다가 괜찮은데 있음 내키는대로 내리자는 심정 반. 의외로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불쑥불쑥 솟아있는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버티곤 선 오성급 호텔들이나

새로 지어지고 있는 고층빌딩들.

촌스럽다 싶을 정도의 원색을 세개나 써서 빨갛고 노랗고 초록빛나는 배가 통통거리며 지나고,

그 뒤로는 흰색으로 우아하게 뻗은 유람선, 그리고 턱없이 불끈 솟아오른 완강한 빌딩의 뼈대

사이엔 뭔가 적잖은 이질감이 느껴졌다. 너무 크고, 혹은 너무 작고.

뱃전에 선 아이들은 아주 신나셨다. 사방으로 손가락을 찔러대고, 격한 강바람을 온몸으로

즐기면서 속절없이 부어지는 햇볕 아래 펄쩍대고 있었으니까.

유람선이 짜오프라야강의 마지막 역인 '오리엔탈' 역에 멈춰섰다. 그 전역, 전전역, 전전전역에서

내릴까 말까 갈등하다가 강바람이 좋아서 그냥 끝까지 와버렸다. 배 위 이층탑 위에서 배를 조종하던

마도로스 아저씨의 선그라스가 반짝, 빛났고 나는 내려서 '유럽의 어느 길'을 옮겨놓은 듯 하다는

오리엔탈 역 근처를 걷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찾아도 '유럽길'을 옮겨놓은 듯 하다는 고풍스럽고 세련된 느낌의 거리는 간데없고

그냥, 여느 방콕의 거리랑 비슷한 거다. 관광지 쪽에만 집중된 밀도높은 사람들, 활기 같은 것들이

벗겨지고 난 고즈넉하고 한산한, 적당히 허름한 거리. 그리고 어디에나 뿌리깊이 박혀있는 불교.

그랬는데 문득 눈앞에 전 교황님인 요한 바오로2세의 동상이 나타났다. 이럴 수가. 역시 이쪽 동네는

'유럽'의 거리를 옮겨놨다더니 성당도 다 보이는구나 싶었다. 자세히 밑의 명판을 읽어보니 그가

태국 방콕에 한번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걸 기념해서 이렇게 동상을 만들어 놓은 거라고 하는데,

그의 발치에 놓인 조그마한 화환이 역시 태국이구나, 싶다.

성당 내부는 꽤나 화려하다. 성당임에는 분명한데 금색 도료가 아낌없이 칠해진 걸 보면 역시

종교가 수입될 때도 나름의 문화적 맥락과 고유한 미감이 덧칠해져서 받아들여지는 거다.

그리고 얼핏 굉장히 이국적으로 보이는 천사상도, 태국스럽다고밖에 할 수 없다 싶은 건 역시

팔에 푸짐하게 둘려진 꽃다발. 노란빛깔이 강렬한 화환이 다소 가라앉은 색감의 천사상을 둥실

하늘로 띄워올리는 느낌이었다. 태국의 성당은 역시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저런 화환 만으로도.

그리고 한참을 방황하다가 발견한 건 그 '유럽스러운' 분위기가 가득하다는 동아시아회사.

과거 제국주의 시절 유럽 열강이 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을 경영하면서 진출했던 기업의

건물인 듯 한데, 아쉽게도 입구는 막혀있었다. 그저 겉으로만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뭐 조금

1밀리그램쯤은 유럽의 느낌이 난다고 쳐줄 수도 있겠다.

저 위의 깃대에는 어느 나라의 깃발이 휘날렸을까. 안에 들어가면 뭐가 있을까. 이것저것 꼬리무는

물음표들이 떠오르긴 했지만, 그런 것만큼 더 확실하게 다가왔던 건 역시나, 어줍잖은 몇마디

감상평이나 가이드북 코멘트에 낚이는 건 위험하단 사실. 그래도 저 태국화된 성당의 느낌을

얻어내었으니 나름 뜻밖의 수확은 충분했다.
카오산로드에서 동쪽으로 걷기로 맘먹은 날이었다. 점점이 몰려있는 외국인 여행자들을 지나치며
 
무작정 걷다가, 문득 어디선가 징소리가 은은하게 들렸다. 그것도 한두개가 아니라 여러개의

징을 산발적으로 두드려대는 댕댕대댕댕 소리. 저건 뭔가 싶어서 가까이 다가갔더니 왠 자그만

동산이 있고 꽃과 나무가 우거졌으며 태국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점점 커지는 징소리는 이제

머리 위에서, 커다란 말풍선에 담긴 채 하늘에서 징징 진동하며 떨어져내리고 있었고.

집 위의 야트막한 동산에 오르듯 계단을 따라 사람들을 따라 조금 올랐다. 옆으로는 꽃과 나무,

반대편으로는 자연적으로 조성된 건지 인공적으로 만든 건지 알 수 없는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다 중턱쯤에서.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냈다. 수많은 종들. 잡아당기는 손들.

길 양쪽으로 온통 종들이었다. 울림통 안에서 웅얼웅얼대며 빠져나가는 게 아니라 그냥 징 치듯

댕, 하고 짧게 끊기는 쇳소리였지만, 사람들이 순례하듯 지나며 일일이 하나씩 울려주고 있던

덕분에 끊기지 않고 대앵대앵- 울려퍼지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이렇게 커다란 징도 하나. 어찌나 많이 부딪혀댔는지 나무가 온통 뭉그러져버린 데다가

받아주는 징의 볼록한 부분도 한참을 움푹하게 꺼져들어갔다. 뭐, 그럴 만도 한 게 나 역시도

수십개의 종들을 울리며 올라왔지만 그 손맛과는 전혀 비교도 안 되는 커다란 징의 웅웅거리는

울림과 찌릿찌릿한 손맛이라니. 뒤에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지만 않음 좀더 두들겨보고 싶어지는.

그 이후로도 길은 계속 가늘게 이어지며 동산 위로 이끌었다. 종 역시도 계속 이어졌고, 가만 보니

종들의 듬직한 등짝에는 이 곳의 모양이 돋을새김으로 새겨져있었다. 푸 카오 텅, Golden Mountain.

높이 80미터로 정상에 황금색 탑이 세워져 있어 수많은 태국 불자들의 발길이 닿고 있다나. 계단수는

무려 320개를 헤아리는데, 사원은 전체적으로 우주의 중심이라는 메루산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그런 건조한 사실들보다 더욱 눈길을 끄는 건 이런 쓰레기통. 쓰레기를 버리란 건 알겠는데

저 해골바가지 그림은 뭔가 싶었다. 태국어를 알았다면 해골바가지 밑의 간단해보이는 몇글자쯤

해독해 냈을 텐데 싶기도 하고.

드디어 도착한 산..이라기보단 야트막한 언덕의 정상. 사원이 하나 세워져있고 깃발이

나부꼈다. 황금빛 칠이 번쩍거리는 건물벽은 방콕 시내가 반사될 듯 반짝거렸다. 원래

여기를 지을 당시에는 방콕 시내를 벗어나 평화로운 교외의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는데

지금은 여기까지 도시가 우물우물 삼켜버려 예전의 정취와는 판이해졌다.

여기에 모셔진 부처님들 중 일부는 인도에서 가져온 것들이라고 한다. 나름 1960년대까지 방콕을

내려다보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했던 사원인만치 그만큼 보물들이 많이 모셔진 걸까.


그런데 이건, 네모난 금박들이 펄럭펄럭 나부끼는 헐벗은 불상들. 선풍기가 돌고 건물 안 공기가

휘몰아 돌면서 불상에 붙어있던 금박들이 파닥파닥 날뛰고 있었다. 더러는 위태롭게 나부끼다가

공중으로 날아오르고, 또 더러는 지나는 사람들의 머리위나 옷위로 내려앉기도 하고.

거의 다 벗겨진 채 누워있는 와불, 아마 저렇게 금박을 한겹한겹 입히는 것도 부처님께 공덕을

쌓는 일일텐데 뭔가 입혀드리는 날짜가 정해져있나보다. 그리고 문득 돋는 세속적인 생각 하나,

저 금박들이 진짜 금일까. 24K는 아닐 테고 18K나 14K쯤? 꽃가루처럼 날아다니는 금박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건물 중앙에 모셔진 황금빛 번쩍거리는 불상 하나가 포인트였다. 동서남북 사면으로

뚫려있는 한 가운데에 모셔진 불상은, 황금 금박이 촘촘하게 붙어있어 바늘꽂을 곳 하나 찾기 힘든

그런 번쩍번쩍한 느낌이면서도 또 보들보들하고 부드러운 인상이었다. 그 앞에 털썩 앉아 간절히

기도하는 분의 뒷모습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내부에 워낙 사람이 꽉꽉 들어차 있었지만, 밖을 향한 창문이 온통 활짝 열려 있어서 딱히 답답한

느낌은 없었다. 밖을 향해 활짝 열린 창문들, 밖으로 고개를 빼문 아이들, 그리고 멀리까지 내려

보이는 방콕의 전경.

뒤에서 아이들의 눈을 따라 휘적휘적 둘러보았다. 태국 국기와 황금산 깃발이 나부끼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낮고 허름한 슬레이트 지붕 뒷켠으로 뾰족뾰족 서 있는 사원들. 그리고

멀찍이 이 언덕보다 높이 솟은 고층건물들이 보였다. 그 아이들의 눈은 어디에 머물렀을까.

옥상으로 올라가니 거대한 금탑이 있었다. 하늘로 향할수록 긴장감넘치게 뾰족해지는 저

삼엄한 탑의 모양은, 거꾸로 지상의 소원과 염원들을 모두 흡입하겠다는 듯 굉장히 크고

넓은 밑둥아리를 갖고 있었다. 그 앞에 가지런히 무르을 모아꿇고 손을 맞붙인 사람들의

엄숙한 표정이나 조심스런 몸가짐들이 신성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런 와중에도, 큰 금탑 주위의 사면에 하나씩 버티고 선 커다란 징은 계속 대앵, 대앵. 어떤

콧수염 아저씨가 채를 잡길래 카메라를 들어 'May I'했더니 방긋 포즈를 잡아주었다.

그리고 진중한 한 방, 사방으로 부들부들 퍼져나가는 울림이 언덕 아래로 낙하했다.

신 앞에 꽃을 바치고, 돈을 바치고, 종을 바치고, 그리고 빨간 천에 소원을 적고. 탑을 감싼

천에 직접 만든 색색의 리본을 달아주기도 하고. 기도를 바치는 존재가 신이라면 굳이 저렇게

써놓거나 박아넣지 않아도 다 알지 않을까. 아닌가, 신은 눈이 하나라서, 그 시선이 내게 오길

기다리는 것보다 스스로 노력하는 게 더 빠를 거라는 이야기도 있으니까 좀더 큰 목소리로

좀더 튀고 마음에 들만한 걸로 신을 꼬드기는 것도 나름 합리적인지도 모르겠다.

선박박물관에서 봤던 그 굉장한 용 머리가 여기에선 몸통까지 제대로 묘사된 채 종을 물고 있었다.

이거..용이 아니라 새였던가, 대체 뭐지 싶을 만큼 상상력이 발휘된 동물. 그 밑으로 바람을 타고

흔들리는 소원들이 재잘거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 용머리가 사람들의 소원들을 발톱으로

움켜쥐고 금세라도 하늘로 날아오르려는건가, 그런 분위기를 노린 건가 싶기도 하고.

이쁘게 만들어진 화환들이 탑 여기저기에 걸렸고, 하얀티에 청바지를 입은 긴머리 아가씨의

뒷모습이 참 이뻤다. 발바닥이 하얗게 질리도록 미동도 않고 곱게 두손 모은 채 뭘 그리도

기도하고 있는 걸까 싶기도 하고. 내 마음까지 절로 숙연해지고 뭔가 간절해지는 느낌.

다시 돌아가는 길, 사람들은 마치 손잡이라도 되는 듯 종을 하나씩 잡고서 댕댕거리며 내려왔다.

뭔가 조금은 더 조신하고 조심스러운 몸가짐으로.

내려오던 길에야 전체 모습을 조망할 수 있었다. 아, 이렇게 생긴 거였구나. 푸 카오 텅, 혹은

GOLDEN MOUNTAIN. 황금산. 저렇게 빙빙 도는 계단을 따라 오르내렸고, 걸으면서 쉽없이

징이나 종을 울려댔던 거로구나 싶었다. 어김없이 걸려있는 꽃 한다발까지.



황금산 정상에서 탑돌이를 하던 분들, 그 와중에 징을 울리며 풍경을 뒤흔들던 그 묘하고도

묵직한 분위기. 소리가 좀더 생생하게 잡혔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실제 음량에 많이 못 미쳐서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 방콕, 태국.

 
일시 : 2011년 3월 22일(화) PM 23:22부터

장소 : "다른異 색깔彩을 지켜낼 자유"
                 (http://ytzsche.tistory.com)

● 자격 : 이 사진 속의 물건-아마도 자동판매기-이 뭐에 쓰는 물건인지,
           이유 한두가지와 함께 말씀해 주세요.

              + 초대장을 받을 이메일주소!^-^*


주최 : yztsche(이채, 異彩)

제공 : 초대장 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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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uty is in the eye of the beholder.

흔히 그런 말들이 '상식'처럼 굳어서 나도는 걸 본다. '인물'이 이쁘게 나오려면 무슨 브랜드,

'풍경'이 이쁘게 나오려면 무슨 브랜드라는 식의 간편한 도식이다. 그렇지만 조금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한두푼 짜리도 아닌 DSLR이라는 정교한 장난감이 그저 인물용, 풍경용

이렇게 딱 떨어지는 색감을 갖고 있다고? 정확히는 모르지만 카메라의 기본적인 색감과

톤 설정의 문제 아닐까 싶다.

Pentax *ist, Pentax K-x를 거쳐 Pentax K-r까지 오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던 기능은 그거다.

'아름다움은 보는 이의 눈 속에 있다'는 말처럼, 내가 원하는 색감으로 이미지 톤을 조정할 수

있도록 몇 가지 옵션이 제공되는 '커스텀 이미지' 설정. 기본적으로 '브라이트'모드로 정해져

있는 설정은 무려 아홉가지나 되는 커스텀 이미지를 제공한다. 뭐가 그렇게 많이 필요해, 할지도

모르지만 '①브라이트 모드'로 찍힌 위 사진에 무지개색으로 배열된 넥타이들을 3초만 눈에 꾹꾹

눌러 담은 채 밑의 사진들을 한 번 보기를 권하고 싶다.


위에서부터 '②내츄럴, ③인물, ④풍경, ⑤강렬색감, ⑥희미함, ⑦블리치 바이패스,

⑧리버설필름, 그리고 ⑨모노크롬의 이미지톤으로 찍힌 사진들이다. 무려 아홉가지 깔맞춤.

같은 노랑색이라 해도 모드에 따라서 분위기나 색감이 판이하게 달라지는 걸 쉽게 느낄 수

있다. 모노톤의 흑백사진은 말할 것도 없고, 마치 이것저것 렌즈를 바꿔가며 시력검사하듯

모드에 따라 특정색깔이 강조되거나 선명해지는 게 재미있다.


이제 원하는 모드를 골라서 사진을 찍으면 되는 거다. 어떤 색깔로 나와야 정답이라느니,

원래 색깔과 다르면 틀린 거라느니 조바심내지말고, 이것저것 모드를 바꿔가며 다양한

색감을 시험해보며 '나름의 깔맞춤'을 시도해보면 훨씬 더 사진찍는 게 재미있지 않을까.

무지개색이라고는 하지만 보는 이의 시각이나 기분에 따라서 제각기 다른 색깔로 느낄 수

있는 거다. 어차피 '아름다움은 보는 이의 눈 속에 있'는 거니까 말이다.


 - 이렇게 찍어요 : '커스텀이미지' 팔레트 활용하기.


K-r의 메뉴 버튼을 누르면 커스텀이미지를 조작할 수 있는 선택 모드 창이 뜨게 된다. 거기서

①브라이트, ②내츄럴, ③인물, ④풍경, ⑤강렬색감, ⑥희미함, ⑦블리치 바이패스, ⑧리버설필름,

그리고 ⑨모노크롬의 아홉가지 커스텀이미지를 선택할 수 있는데, 그에 더해서 본인이 좀더

변화를 주고 싶다면 채도니 색상이니, 콘트라스트나 선명도 따위를 매만질 수 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 메뉴는 사진을 어떻게 찍을지, 색감을 어떻게 조합하고 변형할지를

마음껏 뒤섞어볼 수 있는 팔레트 같은 공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색감과 분위기의 사진을 찍기 위해서 이것저것 색깔도 더하고 명암도 더하고, 그렇게

내가 보거나 느끼는 아름다움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는 셈이다.



 - 보너스 : 군대에 대한 기억을 색감으로 표현하기.


군대에 대한 기억은 제각기 다를 거다. 남자의 기억과 여자의 기억이 다를 거고, 다녀온 사람과

아직 다녀오지 않은 사람이 다를 거고. 만약 그런 기억과 감정을 실어 '예비군 모자'를 찍어보려

한다면 어떨까. 각각의 기억과 느낌에 따라 원하는 이미지 톤과 색감은 제각각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는 거다. 내 경우에는, ⑦블리치 바이패스나 ⑨모노크롬, 그런 모드를 활용하겠다.

다른 사람들은 어떠려나 모르겠지만.


하얗고 까만 얼룩소 사진을 피하는, 광폭 고감도설정

사진을 찍다보면,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낮이나 남국에선 대부분의 배경이 하얗게 날아가 버리거나

파랑 하늘색이 그저 새하얗게 탈색된 것처럼 보이는 사진이 찍힐 때가 있다. 아니면, 해가 진 후에

조명이 껌껌한 곳에서 사진이라도 찍으려 하면 온통 까맣게만 나와서 인물이나 풍경이 제대로

식별되지도 않는 경우가 왕왕 있는 거다. 무슨 얼룩소 사진 찍는 것도 아니고, 하얗고 까맣고.


Pentax K-r로 사진을 찍으면서 확실히 나아졌다고 느낀 것 중 다른 하나는 빛의 양에서 좀더

자유로워졌다는 거다. 이전에는 좀 밝다 싶으면 하얗게 나오고, 좀 어둡다 싶으면 까맣게

나왔는데 무려 ISO 100에서 25600까지 확장되는 광폭의 감도설정이 가능해지면서 훨씬

여유롭게, 햇빛과 조명에 연연하지 않고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었다.

방콕에서 찍었던 사진, ISO 3200으로 놓았는데 전혀 무리없이 디테일이 다 생생히 잡혀 나왔다.

감도를 더 높이면 노이즈가 생기지 않을까 싶었지만-경험상 DSLR에서 한계치로 설정된

값까지 끌어올리면 노이즈가 많이 두드러졌으니까-실제로는 훨씬 만족스러웠다. 


 - '고감도 노이즈감쇄(NR)' 기능 활용하기


더구나 이전 K-x에 비해 고감도 노이즈감쇄(Noise Reduction) 모드가 훨씬 정교하게 갖춰져

무려 여섯 가지의 모드가 제공되는 거다. 감도를 높이면 사진에서 약간 거친 입자 느낌의

노이즈가 발생하는 걸 볼 수 있는데 실제로 고감도NR을 강으로 설정하면 꽤 많이 줄어드는 걸

볼 수 있었다. 밑에 사진이 바로 고감도NR을 강으로 설정했을 때와 OFF했을 때의 차이. 

물론 그런 입자가 찍혀나오는 것 자체가 꼭 잘못된 거라곤 할 수 없다. 역시나, Beauty is

in the eye of the beholder.


 - 이렇게 찍어요 : '감도'설정 활용하기

감도를 설정하는 방법도 매우 간단하다. ISO 설정을 위한 버튼을 누르고 자동모드로 설정하거나

아니면 수동으로 100부터 25600까지 원하는 감도값으로 맞추면 된다. 그리고 K-r의 경우 촬영모드 중

SV(감도우선) 모드가 있어서 감도를 조정하며 사진찍기에도 편하다.
 



Pentax의 흘러넘치는 색감을 무시하지 뫄~!

 


 

결국은 보여주는 수밖에 없는 거다. 어려운 거나 이론 따위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저 나름

열심히 찍다보면 Pentax K-r로 이렇게 '나름' 멋진 색감의 사진들을 얻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백마디 말보다 빠르고 효과적일 테니까. 펜탁스만의 스타일이랄까, 이미지 색감이

존재한다고 하면 그게 다른 브랜드의 DSLR에 비해 결코 뒤에 서진 않는단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이번 K-r의 멋진 기능 중의 하나는 사진을 찍고서 이렇게 본인이 모니터를 확인해 나가면서

몇몇 사진을 골라서 1장으로 편집할 수 있는 '인덱스' 기능이 있다는 것. 덕분에 여러 사진들을

좀더 간편하게 한눈에 보여줄 수 있게 되었지만, 오리지널 버전의 사진들을 보고 싶다면

꽃의 나라, 태국 방콕에서. 를 찾아보면 되겠다.

 


 - 무지개 깔맞춤한 사진들, K-r로 찍었어요. 


나름의 빨주노초파남보, 중간에 눈이 얼얼한 형광핑크가 좀 걸리긴 하지만 그래도

K-r로 찍힌 사진들의 색감을 보여주기에는, 발로 찍은 사진이나마 조금 맛이라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차들이 씽씽 다니는 도로 위라면, 더구나 거대하고 육중한 건축물이 머리 위로 버틴 채 하늘을

가리고 소리를 울려대는 고가 아래라면, 아무래도 뭔가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불안해지기 마련.

그래서 경찰관이 한 명 버티고 섰나, 심상하게 쳐다보며 횡단보도 앞에 멈춰섰는데 어라.

경찰관이 뭔가를 쥐고 있었다.

탄탄하게 생긴 게 등산용 로프처럼 생긴 줄을 두 손에 꽉 쥔 채 횡단 보도를 가로막고 있는 거다.

자세히 보니 로프는 반대쪽 가로등에 묶인 채였고, 사람들은 이런 일에 익숙한 듯 전혀 놀라지

않은 표정이어서 나만 혼자 놀라고 있었다. 초등학교 앞에 녹색어머니회 분들이 깃발로 슬쩍 막고

있는 모습이야 자주 보지만, 이건 아예 사람들의 발을 꽁꽁 묶어둔 셈이다. 그렇게 신호등의 빨간

등불만큼이나 단호하게 그는 줄을 잡고서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뭐, 신호등도 있고 경찰관도 있고 무엇보다 저 팽팽한 로프도 있으니 무단횡단으로 인한 사고는

획기적으로 막을 수 있을 것 같다. 국내 도입이 시급하다, 고 생각하려다가 뭔가 불안해진 건

아무래도 경찰관도 사람인데 파란불 바뀌는 타이밍에 딴청을 피우거나 딴생각에 빠지면 어떡하지

하는 지극히 한국적인, '빨리빨리'의 사고방식 때문이었을까.


근데 정말, 파란 불이 바뀐 순간 경찰관은 슬쩍 딴 데를 바라보던 차였고-아마도 여자, 이쁜 여자-

불빛이 바뀐 것보다 한두 템포 늦게 로프가 풀려나가 땅에 떨어졌다. 여행자 모드였으니까 딱히

내게도 거슬리진 않았지만, 한국에서 이런 게 가능할까 싶어졌다.




방콕에서 인물 사진을 찍을 때는 간단히 물었다. 'May I?' 하며 카메라를 슬쩍 들어올리면

애나 어른이나 다들 알아듣고선 방긋 웃어주거나, 별 흔들림없이 시크하게 멈춰주거나.

그렇게 찍은 사진들. 황금산 위에 올랐을 때 올망졸망 머리를 맞대고 방콕 시내를 내려다보던

가뭇가뭇한 아이들이 귀여웠다.

황금산 주변동네를 진동시키던 징소리, 종소리를 만들어내던 저 팔뚝들. 여자친구와 함께

무언가를 빌러 온 아저씨 하나가 나의 '메이 아이?(카메라 들썩)' 앞에서 흔쾌히 포즈를

취했다. 사진 이후의 다시, 대애앵- 귓바퀴에서 데굴데굴 구르던 굵은 떨림.

황금산 위의 황금탑, 사람들의 기원을 모으는 안테나처럼 위로 뾰족하게 곧추선 그 탑을 향해

무언가를 조용하게 빌고 있던 태국의 아가씨. 꺾인 발바닥이 하얘지도록 미동도 없이 탑을 향했다.

어딘가의 재래시장, 순대를 튀긴 것처럼 곱창 안에 밥풀이 잔뜩 채워진 채 기름으로 튀겨진

간식을 팔던 해맑은 꼬맹이 숙녀들. 하나만 달라는 내게 계속 두개를 디밀어주어 당황시키던.

두리안에도 제철이 있는줄은 몰랐다. 지금은 남국에도 두리안은 제철이 아니라더니, 과일시장은

온통 파인애플과 수박뿐. 조그마한 밴 위로 바늘꼽을 틈도 없이 차곡차곡 쟁여진 파인애플을

내리던 이들의 머리에는 하얗게 서리가 내려 있었다.

그리고 적재가 끝난 다음인지 파란색 바구니들을 탑처럼 쌓아둔 채 고단한 몸을 뉘인 아저씨.


다른 시장, 또다른 고단함. 고개를 한껏 젖힌 채 불편한 자세지만 잠시라도 쉬어 가실 수 있다면.

짜오프라야 강으로 스미는 방콕의 거미줄같은 운하들, 사람들은 마을버스를 타듯 수상보트를

타고 방콕 깊숙히 들어갔다. 그리고 좁은 운하만큼이나 가늘고 긴 배를 타고 온통 물보라를

일으키며 내달리는 통에 저런 파란 방수포를 끌어올린 채, 검표원만 배 밖에 남겼었다.

지저분한 방콕의 운하 좌우변의 허름한 수상 가옥들을 쾌속 보트로 휙휙 지나치며 문득 눈에

꽂혔던, Joy is UP이란 저 높은 건물. 선착장에 내리니 문득 풍경이 바뀌었다. 여기는 모던 방콕.

그리고 제법 대도시스러운 복장의 사람들.

그리고 어느 재즈바, 클래식기타를 쥐뜯으며 분위기를 잡던, 그리고 그만큼의 공력을 갖췄던

태국의 아티스트가 있었다. 구불구불한 장발을 커튼처럼 늘어뜨린 채 그가 만들어내던 멜로디들.

그런가 하면 태국의 소수부족, 아마도 북쪽 치앙마이 인근에서 온 듯한 분들이 나무 개구리를

막대기로 긁으며 개구리 소리를 내기도 하고, 원색의 고깔모자처럼 생긴 전통모자를 쓴 채

여행자들에게 팔고 있었다. 대부분은 저렇게 단호한 거절, 그래도 개구리 소리는 그치지 않고.



정말 귀엽게 생긴 백인 꼬맹이들이 짜오프라야 강을 위아래로 오르내리는 유람선 앞선창에

딱 버티고 서서는 아주 신났다. 찢어질 듯 맹렬하게 펄럭이는 태국 깃발에 얼굴을 들이밀고는

어찌나 재미있어하던지. 녀석의 윗도리도 질세라 나부끼고 있었다.

카오산로드 바로 옆에는 커다란 복권 상설도매시장이 위치해 있었다. 방콕 구석구석을 넘어

태국의 곳곳으로 퍼지는 복권을 대량으로 구매하기 위한 사람들, 그리고 팔기 위한 사람들의

손길이 분주했다. 잔뜩 쌓아둔 채 몇십장 단위로 끊어서 스테이플러로 묶어두는 어른들의

부산함 속에서 혼자 가판을 지키는 아이의 눈빛이 심퉁스럽다. 놀고 싶은 거겠지.

라오스에서 왔다는 Kai, 이 게이 아저씨는 내 선글라스를 굉장히 부러워했다. 아침부터 쌀국수에

맥주를 먹는 내 앞에 앉아 계속 재잘재잘, 며칠 안 되는 사이 세번이나 가서 밥도 먹고 그와 얘기도

나누는 '단골'이 되어버렸다. 남자친구 자랑을 어찌나 하던지 문득 시샘이 샘솟듯 하더라는.

왕실선박박물관에서 온몸을 구부린 채 배 안쪽을 수선하고 있던 아저씨. '메이아이(카메라)?'의

물음에 슬쩍 흘려주던 수줍은 미소가 참 좋았는데.

숙소로 돌아가던 길, 카오산로드로 돌아가는 숏컷shortcut, 지름길을 자기집 안방인 양

차지하고 의자에 누워 티비를 보는 가족들이 넘 웃기고 정겨운 거다. 전등 불빛과 함께

어둑한 골목길을 비추는 티비 조명.

어느 음식점들, 골목 뒷켠에 숨어 외국인이나 여행자는 눈에 띄지 않던 그 곳은 태국의

아저씨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신문을 꾸깃하게 펼친 채 달겨붙는 파리에게 엉성하게

손을 휘저으며.

그렇지만 카오산에만 들어가면 이렇게 꿈틀거리는 문신을 과시하며 벗고 다니는 외국인들 천지.

유럽인, 미국인, 아시아인들, 온갖 국적의 인종들이 몰려들어와선 그야말로 국적불명의 문화를

만들어놓은 해방구의 분위기가 참 좋았는데.

이렇게 온몸 가득 타투가 새겨진 마네킹이 서 있던 카오산의 그 어느 골목, 아무래도 저런 식의

타투는 그렇게 이쁘다는 생각은 절대 안 든다.

공원의 큼지막한 그늘 아래에서, 돗자리처럼 펼쳐진 초록빛 잔디밭에 기대 누운 채 책도 읽고

낮잠도 자는 금발의 아가씨들. 저런 식의 여유를 그렸던 거다. 사진을 찍고는 나도 슬몃

풍경에 끼어들어 책도 보고, 낮잠도 자고. 또 누군가 사진을 찍었을지도.

하얗게 칠해진 길다란 벤치 위에 척하니 양반다리를 한 채 신문을 읽던 아저씨가 있었다.

밑에는 커다란 개 두마리가 녹아내린 듯 땅에 달라붙어서 나른하게 잠들어있었고. 꽤나

한가롭고 평화로워보이는 풍경이었는데, 카메라를 들이대니 개들은 도망가고 아저씨만 웃었다.

조그마한 불당에 들어갔는데 아저씨가 부처상 앞을 싸리빗자루로 쓸다가 잠시 멈추더니 한참을

통화하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는 내게 하나도 의미를 싣지 못한 채 그저 시끄럽고 야릇한 노래처럼

울렸지만, 왠지 부처는 다 이해했다는 듯 빙긋 웃고 있었다.

드디어 돌아오던 날, 짐가방을 질질 끌며 공항버스를 기다리던 때. 따끈하게 덥혀진 보도블록에

앉아 눈앞에서 내달리는 차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사방으로 꼬불거리는 글씨가

창문에 가득 적힌 시내버스 한 대가 멈췄고 사람들을 쏟아냈고 다시 삼켰다. 사람들이 몸싸움하듯

오르내리던 부산함 가운데도 흔들림없던 그녀, 무심한 눈빛으로 버스를 보내버렸다.





짜오프라야강 서안, 카오산로드에서 북서쪽으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선박박물관',

태국 왕실이 기념일이나 행사 때마다 짜오프라야강에 띄우는 화려한 배들이 정박해 있는

곳이다. 가는 길이 쉽지는 않았지만, 덕분에 박물관에 들어섰을 때 이토록 한적할 수가.


입장료는 100바트, 300바트에 대략 10달러, 만이천원이라 치면 100바트는 대략 3000원선.

안에서 사진 촬영은 금지되지만 따로 100바트를 추가로 내면 사진 촬영도 가능하다고 했다.

걍 둘러보지 뭐, 하고 입장료만 내고 들어갔다가 헉, 아니다 싶어서 냉큼 100바트 더 내고 촬영을

허가받았다는 표시의 얄포름한 종이 한장을 목에 걸었다. 바람에 펄럭펄럭 나부끼던 촬영증.

이런 금빛찬란한 화려한 뱃머리가 나란히 모여 있던 거다. 첫눈에도 정교한 조각과 세련된 마감,

금빛이 번쩍거리면서도 결코 싸지 않은 느낌의 배색과 품격이 느껴졌다.


하나하나 자세히 뜯어보기 시작, 무려 1981년에 만들어져서 지금까지 의식용으로 쓰이는

이 배의 뱃머리엔 옆구리에 손을 짚은 신장이 당당히 저멀리를 내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아랫춤엔 조그맣게 숨어있는 포신. 이런 배를 넓고 도도한 짜오프라야 강심에서 마주친다면

어떤 기분일까. 이렇게 화려하고 세련된 뱃머리, 저 눈길을 올려다본다면.


이것들은 더 멋졌다. 동남아에서 신격화되는 뱀의 신 '나가'를 형상화한 듯한 일곱 머리를 가진

뱀의 흉흉하고 위압적인 모습도 그렇고, 날개처럼 두 팔을 펄럭이며 날아오를 듯한 분위기의

날렵한 신장도 그렇고. 특히 저 빨간 혀와 새하얀 이빨을 가진 일곱머리 금빛 뱀은 태국 왕실을

배경으로 유유하게 짜오프라야 강을 점령한 화려한 배들이 담긴 풍경 엽서에서 자주 봤었다.

이 녀석은 정말, 이 배를 타고 수많은 선단으로 구성된 전투용 배들의 앞머리에 섰다면, 적선들이

딱 마주쳤을 때 바싹 쫄았을 거 같다. 화염이 불타오르는 듯한 저 사납고 들끓는 듯한 갈기들,

그리고 단숨에 숨통을 물어뜯어낼 듯한 강력한 턱과 이빨, 그리고 새빨간 혀가 날름거리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시꺼먼 아가리까지. 뱃전에 설치된 포신이 차라리 귀여워 보일 지경.


옆으로 넘어가며 배를 하나하나 둘러보는 데도 은근히 동선이 길다. 배가 그다지 크지는 않다

싶었는데, 앞에서 보았을 땐 얄포름하다 싶어서 그랬지만 정작 배의 길이가 꽤나 긴 거다.

전체적으로 가늘고 긴 형태의 배라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탈 수 있을지는 모르곘지만, 그런

날씬한 형태를 갖추고도 정면에서 보았을 때 이런 위엄을 갖출 수 있다니 그것도 놀랍다.

여기에 보관되어 있는 여덟 척의 배중에서 가장 아름답던 배, 초록색 눈과 은빛 어금니가

온통 보석으로 꾸며진 것 같다. 학처럼 우아하게 뻗어올려진 미끈한 목에도 비늘같은 무늬가

꼼꼼하게 세공되어 있었고, 슬몃 쳐들어올려진 고개도 당당한 분위기를 더한다. 용이 또아리를

틀고 땅에 내려앉은 채 하늘을 바라본다면 이런 느낌일까.


그리고 배의 뒷꼬리, 미끈하게 쭉 빠진 느낌도 그럴 듯 하지만 배의 앞섶과 마찬가지 문양으로

통일성을 갖춘 모양새는 왕실의 선박으로 부족함이 없다. 게다가 번쩍 들린 앞머리와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인지, 실용적인지 감각적인 측면인지 모르겠지만, 하늘로 은근히 슬금슬금

올라가다가 어느 순간 번쩍 치켜올려지는 휘영청한 곡선의 아름다움까지.

배 가운데, 금빛 휘황한 좌대가 설치되어 있다. 물론 왕과 왕비, 왕자나 공주를 위한 자리일 테고.

시야를 확보하고 바람이 넉넉하도록 그랬는지 햇빛을 가릴 천장이 좌대만큼 높았다. 저렇게

높이고서도 배가 균형을 잘 잡을까 싶을 정도로.


현재도 언제든지 불려나갈 준비가 되어있어 보이는 반짝거리는 배들 옆으로, 옆면이 휑하니 빈 채인

배도 한 척 보였고, 아예 분해해서 새롭게 만들 작정인 듯 뱃머리만 떡하니 떨어져나가있는 덩어리도

보였다. 다리 사이로 대포를 쏴대는 모양의 뱃머리, 모양이 제각기 다 다르니 한척 한척이 모두

굉장히 소중한 거 같다.

그래서겠지만, 박물관 한 쪽에는 이전에 쓰였던 배의 잔해들과 장식들을 보관해 두고 있었다.

언제든 새로운 배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그리고 한척 한척 모두 독특한 자기만의 모양새와

분위기를 가지고 짜오프라야 강을 당당하게 가로질렀노라 기억해 두려는 듯. 박물관이긴 하지만

이 배들은 유물이 아니었다. 지금도 계속 저렇게 자재를 운반하고, 배 안에 들어가 사포질을 하고

뭔가 수선하고 보완하는 공장 같은 분위기였다. 박제된 기념품들이 아니라, 언제든 행사 일정에

맞추어 나설 준비가 된 살아있는 것들.

아마도 저런 일꾼들이 이렇게 소담스런 불당을 차려놓은 거 아닐까. 박물관 아닌 박물관의 기둥

한켠에 새집처럼 올려둔 불당 앞으로 빨강색 환타 두병을 열어서 빨대까지 꼽아둔 저 다정함이라니.

한쪽 벽면에는 배를 실제로 어떻게 젓는지, 그리고 수병들의 복장은 어땠는지, 그런 모습을

에둘러 짐작해볼 몇 장의 자료들이 있었고 조그마한 형태로 축소된 배도 전시되어 있었다.

가만히 보니 배들은 언제든 수로를 통해 짜오프라야 강으로 나갈 수 있도록 제각기의 도크

위에 번쩍 들려있는 것이었다. 고개를 당당히 든 채 다리가 치워지고 철문이 열려 짜오프라야강

위로 둥실, 의연하게 미끄러져가는 그림이 자꾸 머릿속에 그려졌다. 허름한 창고 같은 박물관

안에서 벗어나 남국의 햇살 아래 온통 번쩍거리며 그 섬세한 디테일 하나하나가 사방으로

빛무리를 떨쳐낼 그럴 장면. 왕의 배들이 어둠속에 웅크린 채 기다리고 있었다.



방콕의 시장통에 선 레깅스 모델. 굉장히 당당한 체구를 자랑한 채 공중부양 둥둥.

태국의 마네킹 모델은 우리나라의 마네킹들처럼 그렇게 바싹 마르지는 않았나보다.

아니면 아마도 레깅스의 신축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일부러 바람을 양껏 불어넣은 걸까.

고작 네 개 마네킹을 걸었는데 행거가 꽉 차버렸다. 근데 저걸 보면서 수영장에 끌어안고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 난 뭐지.;; 구명용으로도 딱일 거 같은데. 방콕을 휘감고 도는 짜오프라야

강에 누군가 빠지기라도 하면 슬쩍 들고 와 던져주면 되겠다.

대책없이 '공주풍'인 원피스들도 있었다. 강렬한 핑크빛의 원단과 레이스에 휘감긴 신데렐라,

백설공주, 인어공주 같은 공주님들이 우아하게 스마일. 저런 건 입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얼얼한 형광핑크에 눈이 아파 시선을 돌렸다. 그랬더니 눈을 찌르는 직사광선을 비늘처럼

반짝거리며 나부끼는 태국 깃발들, 게다가 만국기 아래에서 번쩍이며 발색하는 형광파랑,

형광핑크, 형광초록의 택시들.

어라..저건, '품바'라고 읽어야 하는 건가.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하는

각설이타령의 품바 그건가. 근데 저 그림은 또 뭐지. PUMBA를 품바, 각설이라 읽어야 하는

건지 아님 뭔가 영어 단어에 뜻이 있는 건지 문득 혼란에 빠져버렸다.

옆골목으로 무작정 꺽고 들어갔다. 허름한 건물 아랫도리로 쭉 늘어서 있는 노랑색 파라솔들이

산뜻하다. 노랑 간판들이 번쩍 서있는 곳에서부터 노랑색 파라솔들을 지나 돌돌돌, 굴러오는

노랑망고 파는 노랑모자 아주머니. 잘 익은 노랑망고도 맛있지만 덜 익은 파랑색 망고도 꽤나

맛있었는데. 그렇게 달지 않고 산뜻해서 목이 마를 때 아작아작 씹어먹으면 딱이었다.

주차를 한 건지 방치를 한 건지.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 쓴 차들이 범퍼에 범퍼를 붙인 채

어느 골목 한 켠을 온통 차지하고 있었다. 뜨끈하게 덥혀진 본넷 위에는 누군가 작업할 때

끼는 목장갑이 몇 짝 나뒹굴고 있었다. 말리려고 한 건지 버리려고 한 건지, 차나 장갑이나.

다시 재활용할 건지 아님 버려둔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어느 가게 옆 벽면에서 발견한 외계인의 신호. 쭈꾸미별에서 온 듯한 외모,

이미 '아기공룡 둘리'에서 본 적 있는 그 외계인이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며 웃고 있었다.





밤 열두시가 넘어 텅빈 방콕의 거리, 늦게까지 재즈바에서 공연을 보고 맥주를 마시다가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새 비가 쏟아부었는지 아스팔트 바닥엔 가로등 불빛이

그렁그렁 번져 있었다. 파란색 조명이 애꾸눈처럼 노려보는 뚝뚝의 뒷자리에서 나 역시

질수 없다며 운전수 아저씨 뒷통수를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그러다 문득 떨궈진 시선, 풉- 하고 짧게 터져 버렸다. 아저씨가 방구쟁이였단 말인가.

누군가 뒷좌석에 손님이 탔고, 아저씨는 방구를 트셨고, 견디지못한 손님이 괴로웠고,

마침 어디선가 산 방구금지 스티커가 있었고, 복수하는 맘으로 붙이고 내린 건가.

뒤에 붙은 스티커는 아는지 모르는지, 아저씨는 계속 달렸다. 파란조명에서 뿜어나온 시선은

쓰리쿠션 돌듯 내게 튕겨 다시 아저씨 뒷통수로. 요란스런 폭음이 문득 멈췄고, 파란조명은

빨간조명 두개와 어깨를 걸었다.




왓 아룬, 새벽사원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 곳은 첫날 일정을 위한 일종의 반환점이었다.

5년 전에 다녀갔던 그 곳. 그 때도 나름 똑딱이로 사진을 남기고 나름의 감흥을 남겼었다

"거대한 것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려면, 적당한 거리잡기가 가장 중요하다.
얼마만큼 거리를 격해야 나와 당신의 그림이 이뿌게 나올 수 있을지..
당신의 위풍당당함과 아름다움을 해치지 않고 내가 그 곁에 자연스럽게 설수 있는 사진은.

너무 멀면, 모든게 용서될 것 같다. 고작 한웅큼 흩뿌려진 저녁 햇살 만으로도
너무도 부드러워보이는 당신의 실루엣.

너무 가깝게 들이대진 말기. 그 오색찬란한 빛깔과 생생한 질감이 사실은
사기접시를 깨넣고 붙여넣은 재활용품처럼 보일 수 있으니.

고슴도치가 사랑을 하듯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바싹 다가가기엔 한 평생 호흡이 길다.
크레딧이 올라가도 삶은 계속되고, 한마디 말로 감정을 전달한다는 건 편집기술의 승리일뿐.

간격잡기는, 고수의 스킬. 당신은 내 간격 안에 들어와있어. 베인다.


p.s. 풍경만이 아니라, 사람도, 삶도, 너무 거대해보이는 요즘이다.



정말이다. 이 커다란 사원의 그 오밀조밀하고 오톨도톨한 질감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었다.

어떻게 새겨넣었는지 일일이 눈으로 쫓으려면 어지러울 정도로 현란한 무늬들에 온통 둘둘

감겨 있는 거대한 탑, 그리고 요기조기서 탑을 온몸으로 (그리고 한쪽 무릎을 확 꺽어 바닥을

찍은 채) 받치고 있는 신들. 그저 탑의 굵은 윤곽만으로 섬세함과 장엄함을 던져준다.

그렇지만 역시나, 몇 걸음 가까이로 내딛으면 금세 드러나는 거다. 그 굵고 단호한 선 뒤에

가려있던 디테일들이란 게 얼마나 불규칙하고 마구잡이식으로 붙어있는 타일 조각들인지.

하나하나 정갈하게 붙어있다기보다는, 철퍽 접착제를 덧바른 후에 준비된 타일들을 꾹꾹

빠르게 붙여나간 게 아닐까 싶은 느낌으로 더러는 회칠 속으로 잠겨 있기도 하고, 조금은

들떠 있기도 하고.

원래 왓 아룬이 완공되었을 때는 지금과 같은 모습을 의도하진 않았다고 한다. 중국에서

태국의 왕에게 선물로 보내온 온갖 자기들이 있었는데 딱히 왕이 달가워하지 않아 그걸

이 곳의 사원을 꾸미는데 활용했다고 한다. 더러는 깨뜨려서 모자이크 타일처럼 썼지만

사진에서처럼 조그마한 자기는 통째로 붙여 장식하기도 했나본데, 하나가 쑥 빠졌다.

저건 누가 챙겨갔으려나. 괜히 손가락을 힘을 주어 옆의 자기도 슬쩍 건드려보고.

위로 오를수록 가팔라지는 중앙탑에는 사방으로 계단이 나있다. 위로 오르는 사람들은 점점

몸을 탑에 의지하며 파이프 난간을 굳게 잡고, 밑으로 내려오는 사람들은 거의 엉거주춤한

자세로 스물스물 계단에 붙어 기어내려오고.

탑의 중턱까지 올라와서 한숨 돌렸다. 짜오프라야 강이 내려다 보이고, 단정한 사원의 뒷끝있어보이는

뾰족한 부리들이 생생히 보이고, 온통 평지인 방콕 시내가 멀리까지 보이고. 남국의 햇살보다

바람이 더 힘센 공간이기도 했다. 따끈한 햇살을 시원한 바람이 산산조각낸 채 사방으로 날려보내는.


그렇지만 이미 상당히 좁아진 공간, 한바퀴 탑을 돌아보는데 좁은 통로를 비비적대며 사진도 찍고

바깥도 구경하는 사람들이 발에 걸리는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사실, 사방을 바라보는 각도와 시야가

몇 가지로 제한되어 버리는 곳이기도 했다.

다시 꾸역꾸역, 더이상 방문객에게 허용되지 않는 제한선까지 올라왔다. 조금더 높아졌고

그만큼 멀리까지 방콕을 바라볼 수 있었고, 짜오프라야 강 너머 꼬물대는 사람들이나 차들이

조그만 벌레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아까 중턱쯤에선 남국의 햇살과 바람 사이에 입을

오른쪽으로 벌린 부등호가 한 개 정도 끼어있었다면 여기는 한 두세개 쯤. 햇살<<<바람.


그만큼 몸을 움직이기도 어려워졌다. 공간이 더욱 좁아져서는 이미 올라와있는 사람들이

돌아보는 방향으로 일방통행밖에 가능하지 않았을 뿐더러, 보여지는 세상도 광각으로 잡힌

그저 작고 귀여워서 마냥 용서가 되는 듯한 사이즈. 그러고 보면 왓 아룬을 멀리서 볼 때의

느낌이나, 이 위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 볼 때의 느낌이 같다.

거의 수직에 가깝게 솟아있는 탑의 나머지 상단부, 여기에서도 몇 명의 역사가 조금 졸린 눈을

하고서 탑을 떠받치고 있었다. 조금은 더 인상을 쓰고 있어야 실감이 더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 탑을 떠받드는 것 자체가 굉장한 공덕이라 여겼으리라 생각하면, 저 나른하고

흐뭇한 표정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그렇지만 가만 보면 탑 상단부에는 이렇게 코끼리들이 머리를 모은 채 커다랗게 휘영청한 상아 이빨과

길다란 코를 휘두르며 금방이라도 탑 밖으로 튀어나올 듯 육박하고 있는 거다. 조그마한 창문 하나를

완전히 꽉 메운 채 탑의 사방에서 돌진하는 녀석들, 그 무게만 해도..하며 어림짐작해보려다가 말았다.

탑 위에서 내려다보는 왓 아룬의 화려한 전경. 저렇게 길고 가늘게 뻗어있는 첨탑은 어떻게

위에 올렸을까. 길기도 길지만 무게도 무게일 텐데, 균형을 잡고 유지하기도 쉽지 않지 싶다.

언제 이 곳에 공양된 화환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낮을 버텨낸 것만으로도 대견하다.

비실비실 수분을 잃고 축 처져버리긴 했지만 아직 그 색과 향은 여전했다.

다시 내려왔다. 탑을 한바퀴 둘러보기에도 여유롭고, 탑의 위와 아래, 디테일과 실루엣을

내키는대로 올려보고 굽어보기에는 역시 아래에 내려와 있는 게 좋은 거 같다. 위에 오르면

아무래도 시각도, 시야도 특정하게 묶여버리고 마는 거다. 그렇게 여기저기 훑어보다가

발견한 저 일란성 쌍둥이 난간 장식들 틈의 미운 오리 한마리. 훼손된 장식을 회색 시멘트로

그냥 다시 붙여버렸나 보다.



그러고 보면, 역시나 태국 사람들은 참 꽃을 사랑하는 거 같다. 모든 장식문양은 결국 꽃.

넓은 꽃잎, 좁은 꽃잎, 긴 꽃잎, 짧은 꽃잎, 그렇게 왓 아룬 사원 전체를 꽃밭처럼 뒤덮은 꽃들.

탑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토끼 분수대. 금색 토끼가 사실적으로 묘사된 조각이 신묘년

토끼해를 맞은 사람들에게 나름 의미를 던지는 듯 하다. 근데 태국도 십이지신의 개념을

매년 적용해서 의미를 부여하려나, 그건 잘 모르겠다.

그리고 이 곳의 아이들에게 이 사원은 그저 잔디가 파릇파릇 깔려있는 폭신한 공원. 깔깔거리며

배드민턴을 치고 있는 아이들이 시선을 확 끌어당겼다.

바로 앞의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짜오프라야 강 동안으로 넘어가는 길, 꽃 한송이 한송이를

묘사하던 타일 조각들, 탑의 구석구석 피어난 그 꽃송이들, 그것들이 그어내던 미묘하고 자잘한

떨림 같은 선들이 싹 걷혀버렸다. 그리고 다시 처음에 봤던 모습 그대로, 단호하고 기하학적인

굵은 선으로 강렬하게 그어진 탑 한덩이만 남아버렸다.


+ 태국여행, 특히 방콕에 들러 이국적인 문화를 만끽하고 싶다면 방콕호텔 예약은 판매못한 객실을

모아 저렴하게 판매하는 '레이트스테이즈'를 추천하니 참고하면 되겠다.






#1. 기분좋게 땀이 흘러내리는, 마치 찜질방에 온 듯 하던 방콕의 대낮이 기울고 나면 제법 바람도
 
선선하고 땀도 보송보송 마르는 게 너무 좋았던 거다. 그런 데다가 하늘이 퍼렇게 멍들고 주홍빛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면, 도로를 가득 메운 차들이 번쩍번쩍 헤드라이트를 휘날리며 좁은 인도길을

침범해오는 그런 붕붕 뜨고 살짝 불안하면서도 싱숭생숭한 분위기라니. 한국은 여전히 등골 대신

고드름을 꼽아놓은 듯한 날씨인지라 더욱 유난하게 그리워지는 거다.


#2. 장자연의 편지라며 상세하게 내용이 공개되기에 이른 그 내용. 약에 취해 밤새 변태짓을

했다느니 동료들 앞에서 어쨌다느니. 사람들의 분노만 어떻게든 들끓게 만들어보려는 건 아닐지

오히려 그 진위와 의도가 의심스러워진다. 연예계에서 그런 노예계약에 성상납이 있었다, 라는

사실 만으로 부족한가. 거기에 더해 밤꽃 냄새 풀풀 풍기고 야설스런 묘사가 푸지게 나와야 하는

건가. 그렇게까지 세밀한 묘사와 공개, 거침없는 인용들이 공유되는 건 대체 누구의 알 권리를

위해서인지 모르겠다. (이래서야 마치 성매매업소 특별취재 르포랍시고 가는 길과 서비스를

상세하게 광고해대는 찌라시 기사들 같잖아.)


#3. 오전내내 춥고 배고프고 졸렸다. 요새 계속 늦게까지 잠을 못 들어서 아침엔 간단히 뭐라도

먹을 시간이 없고, 회사에 오면 아스팔트와 철근에서 뿜어나오는 냉기에 번번이 지고 마는 데다가,

어제는 특히 네시반에야 잠들었으니 졸리는 게 당연한 거다. 격한 영화 '블랙 스완'을 보고 잔뜩

지쳐서 집에 와서는, 책 좀 읽다가 노래듣다가, 노래듣다가 술 한잔 마시고, 술 한잔 하다가

아이폰으로 점백만원짜리 맞고쳐서 백억을 딸 때까지 멍하니, 눈도 깜빡 않은 채 조그마한 화면에

집중하고 말았다. 그만둬야지, 그만둬야지, 하는데 며칠째 자괴감만 쌓이고.


#4. 이번 상하이 스캔들, 상무관 한 명이 아는 사람이다. 그냥 뭐 다른 이야기는 차치하고 그와

함께 일하며 가장 인상깊었던 것 하나. 그의 건배 구호가 굉장히 임팩트 있었다. "조배죽!"

무슨 뜻이냐면, '조직을 배신하면 죽는다'라나. 그쪽 공무원들의 마인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무시무시한 건배사라고 생각했었다. 이번 건, 배신일까 사기피해일까.



아무 목적지 없이 그냥 걷기..가 이번 여행을 하면서 괜히 별 이유도 없이 세웠던 고집이었는데

생각보다 그런 건 쉽지 않았던 거다. 가다 보면 문득 지금 방향에 대해 두려움이 생기고, 이쪽이

아니라 저쪽으로 가야 뭔가 중요하고 귀한 걸 놓치지 않을 것 같고, 무엇보다 목적지 없이

휘청대는 걸음 자체에 대한 불안함이 있었던 거 같다. 망망대해에서 무작정 항해하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었다.

조금 타협하기로 했다. 걷다가 여기가 어디쯤인지 지도만 슬쩍 보고 확인하기. 지도를 보고

그곳의 몇몇 이름난 명소를 향해 졸졸 따라가는 길을 인도받으려는 게 아니라, 그냥 정말로

지금 내가 어디에 와있는지만 확인하면 족한 걸로. 누군가 일러주는 대로 길을 가는 건 이미

한국에서 내비게이션의 지령을 따라 운전하는 걸로 질릴만큼 질려버렸으니까.

그러고 나니 조금은 수월하게 걸을 수 있었다. 한참 걸으며 대충 머릿속으로 여기가 어디쯤일지를

상상하다가, 내키는 곳에서 오렌지주스나 망고를 먹으며 쉬기도 하고, 아님 아예 그럴 듯한

까페에 눌러앉아 책을 읽기도 하고, 슬쩍 지도를 곁눈질하며 어디쯤인지를 확인하는 건 나름의

밀고 당기는 리듬감이 느껴져서 좋았다.

길을 가다보면 문득 차들이 쌩쌩 다니는 고가 도로 위를 걷기도 하고, 맨발의 소년이 낚시찌를

던지는 냄새나는 강둑을 지나기도 했다. 누군가가 굳이 담벼락 위에 CCTV처럼 걸어둔 노랑색

물총을 보며 궁금해 하기도 하고, 차도 옆까지 온통 꽃밭으로 가꿔둔 태국인들의 꽃 사랑에

감탄하기도 하고. 더러 황량한 골목으로 부러 꺽어지며 어떤 풍경과 사람들이 숨어있나 슬쩍

기웃거려 보기도 하고. 그러다 문득 동서남북의 방향감, 얼만큼 걸었는지의 거리감이 상실되면

적당한 표지판 앞에서 지도를 펼치는 거다. 여기가 어디지, 하며.

어쩔 수 없이, 랄까 가다 보면 뭔가가 가까워지고 그럼 자연스레 발길이 그리로 향하기도 했다.

뭔가 커다랗고 특이하고 사람과 가게들이 몰려있는 곳들, 몇 대의 대형버스가 관광객들을 토해내고

거두어가는 그런 곳. 인적없는 곳을 한참 떠다니다가 그런 부산한 지점이 가까워진다 싶으면

마치 철가루가 자석의 자장에 이끌리듯 내 궤적 역시 몇 개 지점으로 수렴하고 마는 거다.

그래도, 그렇게 덥썩 일로직진하여 그곳으로 돌입하고 싶진 않았다. 쿡쿡 찔러보고 슬슬

에둘러가며 멀찍이서 감각하다가 우연처럼 이쁜 까페를 발견해서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선그라스를 벗고 시원한 망고&라임 쉐이크를 쭉 빨아서 땀을 식히려다가 차가운 두통에

조금 인상도 써주고. 쿠션을 껴안고 늘어지게 앉아서는 다시 책을 꺼내들어 조금 읽기도 하고.

그렇게 설렁설렁, 이날의 반환점은 왓 아룬이었다.

마음 같아선 그저 걷다가 쉬고 또 걷고, 그렇게 어디로든 거침없이 뻗어나가는 선이 되고 싶었다.

그렇지만 또다시 어쩔 수 없이, 나의 걷기 자체도 해와 달에 귀속되고 마는 거였으니 해가 저물고

어둠이 나리면 슬슬 돌아갈 염려를 할 수 밖에 없는 거다. 그러다 보면 언제나 커다란 원의

궤적을 염두에 두어야 하고, 해가 정점을 찍고 낙하할 무렵 방향을 홱 틀어야 하는 거다.

러시아 민담이었던가, 하루종일 걸어서 원위치로 돌아온 땅이 전부 자기 것이 된다는. 그런

이야기에 빗대자면 나는 하루치 걸어서 무얼 갖게 된 걸까. 어느 광장에 따끈한 대리석 위에서

엉덩이만 비비가 뭐해서 아예 가방을 베고 에라, 누운 채 해가 떨어지고 퍼렇게 멍들다가

까뭇해지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제 돌아가야 할 때. 여행을 떠나도 돌아갈 곳은 남는다.

여행을 떠나도 돌아갈 곳은 남는다. 원하던 원치 않던. 닭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다.

조그만 골목에 기대어 테이블을 세우고 음식을 팔았을 허름한 길거리식당, 어디에서나 마주치는

태국 국왕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 둥실 떠올랐다.





지도에도 그려져 있지 않은 짜오프라야 강 서안, 방콕의 서쪽 끄트머리에서 만난

갈래갈래 운하길에서 선인장과 조우했다. 조우. 불쑥 에피톤프로젝트의 이 노래가

생각났고 단숨에 가사가 머릿속을 지나갔다. 뭐랄까 가사가 그리는 풍경, 감정이

한순간에 휙 머금었다가 휙 빠지는 느낌이, 마치 스펀지를 미지근한 물에 푹 담궜다가

힘주어 꽉 짜내는 그런 기분이었다.


잔뜩 구겨진 스펀지로부터 손을 타고 끈적한 물이 뚝뚝 흘러떨어지듯, 그렇게 땀이

얼굴에서 뚝뚝 떨어졌더랬다. 어쩔 수 없었다. 알지만, 땀이 흘러주어 다행이었다.

어쩔 수 없었지만 맘이 아픈 것도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선인장, 에피톤프로젝트.


햇볕이 잘 드는 그 어느 곳이든

잘 놓아두고서 한 달에 한번만

잊지 말아줘, 물은 모자란 듯 하게만 주고


차가운 모습에 무심해 보이고

가시가 돋아서 어둡게 보여도

걱정하지 마, 이내 예쁜 꽃을 피울 테니까


언젠가 마음이 다치는 날 있다거나

이유 없는 눈물이 흐를 때면 나를 기억해

그대에게 작은 위로가 되어줄께


내 머리 위로 눈물을 떨궈

속상했던 마음들까지도

웃는 모습이 비출 때까지

소리 없이 머금고 있을께


그 때가 우리 함께 했었던 날 그 때가

다시는 올 수 없는 날이 되면

간직했었던 그대의 눈물 안고 봄에서 있을께


언젠가 마음이 다치는 날 있다거나

이유 없는 눈물이 흐를 때면 나를 기억해






주홍빛 옷을 둘둘 감고 머리를 박박 밀은 승려들에 대한 태국인들의 존경심과 신심은

정말 대단한 거였다. 얼마 남지 않은 머리가 희끗거리는 할아버지가 두 승려와 함께

길을 걷는 모습을 보았고, 할아버지가 번쩍 치켜든 검정우산이 그 두 젊은 승려의 몸위로

온통 서늘한 그림자를 내리뜨리는 모습을 보았다.

터미널이나 공항에 있는 의자에도 마찬가지. 늙은 할아버지가 젊은 승려들에 깍듯하게 양산을

받쳐주는 그림에야 비할 바가 아니지만, 그들의 '노약자석'에는 어김없이 승려가 들어가있다.

마치 미이라처럼 온몸에 둘둘 천을 감고 있는 듯한 형상이 바로 승려, 그러고 보면 '노약자석'이란

우리나라식의 이름이 적절하지만은 않은 듯. 장애인석, 노약자석의 개념에 담기지 못했던

임산부들을 위해 별도의 스티커를 붙이곤 하는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배려석' 정도의 넓은

이름이 필요하지 않을지.

어느 골목을 걷다가 문득 호기심이 동해 들어갔던 이름모를 조그만 사원의 뒷뜰. 그리고 빨랫줄에

내걸린 채 산뜻하게 색깔을 내고 있는 승려들의 주홍색 천들. 정말 저 옷에는 앞도 없고 뒤도 없고,

그저 적당한 모서리를 잡고 적당하게 몸에 감으면 되는 걸까 싶어졌다.

그리고, 스님들의 거쳐 주변에서 떠들지 말아달라는 저 절박하고 단호한 손바닥 그림. 실은

저 그림이 떠들지 말라는 건지 들어오지 말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스님들이 근처에

계시니 행동을 조심하고 삼가라는 의미란 건 충분히 알고도 남겠다.





전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래서 '빅맥지수' 따위의 경제학적 개념에도 동원되는

맥도널드는 나라마다의 특성을 살려낸 메뉴를 만들어내기도 하는 거다. 터키에서는

돈두르마 아이스크림을 팔기도 하고, 한국에선 라이스버거였던가. 뭐 그런 식으로.


태국에서도 그런 식으로 신메뉴를 내놓았는지도 모르겠다. 들어가서 메뉴판만 슬쩍

일견했어도 쉽게 알아챘을 테지만 음식의 나라 태국에서 맥도널드라니 안 될 말이다.

대신 발견한 건 맥도널드의 상징, 로널드.


노란 아치형 맥도널드 마크와 빨간 머리, 큰 구두를 신은 삐에로, 그의 이름이 바로

로널드였다. 이름은 이제야 여기저기 검색하다 알게 되었지만 그 캐릭터야말로 미국과

맥도널드의 영향력을 상징하는 아이콘 아닐까. 63년에 TV 광고를 통해 최초로 선을 보인

로널드는 이후 미국 중심의 세계화 물결 맨 앞에서 영욕을 겪어온 셈이다.
 

그런 와중에 나름의 변화를 겪지 않은 것도 아니라고 한다. 비만의 주범으로 패스트푸드가

지목되는 가운데 헐렁한 노랑옷이 예전과는 달리 몸에 꼭 맞게 바뀌는가 하면, 프랑스에서는

로날드 대신 프랑스 만화인 '아스테릭스'의 캐릭터가 나타나기도 했다고.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에선 매출이 부진하다고 하이힐과 비키니 차림의 날씬한 여성을

새 마스코트로 쓰겠다나.

하이힐 여성이니 만화 캐릭터니 보다, 이 로널드는 꽤나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한 셈이다.

태국에 대한 외국인의 이미지는 아무래도 그 우아한 손놀림과 해맑은 미소, 그리고 그런

손놀림과 미소가 어우러진 인사가 강렬하게 박혀있지 않을까. 두 손을 앞으로 기도하듯

모으고 상대를 향해 슬쩍 고개를 숙이는 인사.



"싸와디~"(안녕하세요, 라는 뜻의 태국어).




방콕에 가서는 꼭 들르게 되는 바가 있다. '색소폰Saxophone'이라는 이름의 재즈바.

방콕 북쪽 전승기념탑 근처에 있는 이 라이브바는 9시부터 라이브 공연을 시작하는데 그다지

한국인들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은 곳 같다. 사실 장소도, 시외로 나가는 버스들이 우르르 서있는

큰길가에서 조금 빗겨나 예기치 않은 장소에 놓여있어 찾기도 쉽지 않다.

그렇지만 막상 들어가면, 맥주 한병에 120-150바트 정도 과히 비싸지는 않은 가격에 주로 서구에서

온 외국인들이 우글우글하다. 게다가 공연 라인업도 가히 방콕 최고의 퀄리티를 자부한다는.

9시 이후 본격적으로 밴드들이 공연하기 전엔 가볍게 클래식 기타 공연, 이렇게 맥주 한잔 마시면서

다이어리도 정리하고 엽서도 쓰고. 중간중간 곡이 끝나면 박수쳐주는 거 빼고는 오롯이 내 시간이다.

아마도 Byrd의 초상화인 듯한 그림이 한 점 천장 가까이에 걸려 있고 알토, 테너, 소프라노

색소폰들이 반짝반짝 빛내며 전시되어 있었다. 알토 색소폰을 손에서 잠시 놓은 게 어느새

육개월, 나도 얼른 다시 시작해야 할 텐데.

아홉시가 지나니 이렇게 저렇게 마이크도 체크하고 한참을 부산하게 굴더니 꽤나 시간을 잡아먹는다.

근 이십여분 가까이 지나서야 겨우 시작한 밴드는, 그렇지만 그 기다림이 전혀 아깝거나 화나지

않을 만큼 훌륭하고 그럴듯한 공연을 보여줬다. 특히 뒤에서 알토 색소폰을 불던 저 까까머리 아저씨.

알토 색소폰 말고도 플룻도 불고 테너 색소폰도 불고, 여차하면 트럼펫도 같이 부는 굉장한 실력을

보이며 화려한 손놀림과 입놀림을 보였댔다.

10시쯤 되니까 사람들이 바를 가득 메우고 급기야 자리가 없어 벽에 기대어 서서 병맥주를 홀짝이는

사람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바 한쪽 벽면에는 실내 소음크기를 측정하여 보여주는 전광판이 대충

80에서 90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는 데시벨을 나타냈고.

원래는 열한시쯤 일어날 생각이었는데 글쎄 금세 새 밴드가 와서 공연을 한다는 거다. 이미 앞의

밴드가 후끈 달궈놓아 흥분한 혈관에 알콜이 더해졌고, '색소폰'에 대한 신뢰가 더했다. 그렇게

조금 더 기다려 맞이한 두번째 밴드, 역시 말이 필요없을 정도로 최고였다. 특히 저 건반을 맡은

아저씨의 무시무시한 속주 실력이란.

그리고도 저 귀여운 아가씨와, 슬쩍 우습게 생긴 이 아저씨의 노래 솜씨는 정말 들어보지 않고는

말을 할 수도 없는 정도. 바를 온통 후끈 달군 채 사람들을 열광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었던.

하나 아쉬웠던 점이라면 저 아저씨가 신고 나왔던 모카신, 그리고 공연 시작 전 기타리스트의

엉덩이를 슬쩍 만지며 들어서던 모습을 내가 똑똑히 보고 말았다는 것. 사실 내가 특별히 아쉬울

부분이란 게 있을 것도 없지만 저런 모카신을 소화해낼 수 있다는 게 대단해 보였다.

후끈 달아오른 바의 관객석. 원래는 8시쯤 들어갔으니 세시간 정도만 놀다가 숙소로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어쩌다 보니 한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야 아쉽게 아쉽게 돌아서고 말았다.

혼자 하는 여행의 장점이랄까, 딱히 정해진 스케줄 없이 다음날 일정에 대한 압박감없이

그냥 머물고 싶은 곳에 머물고 싶은 시간만큼 머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장점을

최대한 뽑아쓸 수 있게 해주는 공간, 색소폰이었다.





왓포에서였던가, 금발 꼬맹이 하나가 잔뜩 늘어진 고양이를 일으켜 세우려고 무진 애를 쓰는 중이었다.

고양이한테 소리도 질러보고, 슬쩍 꼬리나 귀를 잡아당겨보기도 하고. 그럼에도 철저히 몸뚱이를

내팽개친 채 끄떡없이 눈을 감고 있던 이 녀석. 야윈 목덜미를 감싼 색색의 목걸이가 눈에 닿았다.

방콕 가이드북 지도에도 나와있지 않은 짜오프라야강 서안, 운하가 촘촘한 그 어디메를

헤매이다 발견한 늠름한 개자식. 더럽고 위험해보이는 이곳에도 피터팬과 푸우는 살풋

이불보처럼 내려앉아서 개자식의 위용에 커튼을 더했다.

실은 이 녀석의 밥을 훔쳐먹는 두 마리 까마귀를 담고 싶었는데, 영악한 녀석들은 카메라

렌즈 움직이는 소리에 멀찍이 도망가고 객쩍은 참새만 남아서 부리질 중이었다. 그나마도

찰칵, 소리에 눈을 뜬 개자식은 더운 나라의 개답잖게 미친 듯이 짖어대며 밥값을 했다.

빡크롱 꽃시장에서, 핏줄이 섞인 듯한 이 두 녀석이 늘어지게 자는 걸 보고 접근했더니 두 녀석

모두 어느 순간 번쩍 눈을 뜨고 말았다. 앨런포의 '검은 고양이'를 떠올릴 만큼 악마처럼 새까맣던

녀석들의 잠을 방해했단 사실이 따끔따끔해지도록, 그렇게 날카로운 눈빛을 쏘아대던 녀석들.

이렇게 서글서글한 눈빛이라면 얼마나 좋은가 말이다. 꽃시장의 아지매들, 아저씨들이 슬쩍

쌀국수 그릇을 걸친 채 한끼를 해결하던 식탁 대용 테이블에 퍼진 채 남국의 고양이다움이란

이런 것임을 늘어지게 과시하던 녀석.

오늘은 동쪽으로 걸어볼까, 싶던 날. 차도와 인도가 슬몃 섞여들어가던 어느 길 위에서 지하세계로

통하는 비밀의 문을 발견했다. 절실한 손과 발 모양으로 그곳을 갈구하던 도마뱀 한 마리, 도망갈까

싶어 조심조심 사진을 찍고 나서 한숨돌리며 슬쩍 발로 밀었더니 슬슬 밀린다. 고인의 명복을.

아침에 먹던 쌀국수와 캔맥주를 제하면 사실 남국의 과일로 배를 채우다시피하던 낮의 시간,

그에 더해 맥주와 재즈 공연 따위로 버무려진 저녁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배가 꾸륵꾸륵꾸르륵.

어딘가 있을 무료 화장실을 찾아 애타게 방황하던 타이밍에도 고양이는 놓칠 수 없었다.

날 그렇게 심문하는 눈초리로 노려보지 말기를. 나 역시도, 너 역시도 왜 사는지는 모르잖아.

우린 이제 요절하기엔 너무 많은 나이. 한 시간에 이백바트짜리 타이 마사지로 몸을 풀기에는

배배 꼬인 구석들이 워낙 많더란 말이다. 근데, 심문을 하려는 거냐 아님 측은해하려는 거냐.

싸판풋 야시장, 라마1세 동상이 서 있는 앞에서 불경하게도 두어 시간 누운 채 노래를 듣고 책을

읽으며 해가 지기를 기다렸었다. 따끈하게 달아오른 대리석 화단조각에서 내 게으른 등짝을

떨어뜨렸던 건, 어디선가 웽웽거리며 나타난 R/C 카, 그리고 그 자동차를 따라 짧은 발을 재게

놀리며 눈을 뗄 줄 모르고 내달리던 강아지 한 마리.

방콕의 물가는 많이 올랐다. 타이 마사지는 삼십분에 백바트, 한시간에 이백바트. 이건 그나마

배낭여행객의 천국, 게으름뱅이들의 천국 카오산의 시세고, 이런 이쁜 고양이가 지키는 다른

동네에선 한시간에 이백육십여바트. 고양이값이라기엔, 저녀석은 먹을 수도 입을 수도 없다는.

카오산 동쪽으로 걸어볼까 싶던 날이었다. 예기치 않게 마주친 골든 마운틴, 푸 카오 텅의

황금산을 올랐다 내려오는 길에 슬쩍 풍경과 섞여있던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울룩불룩한

탑의 무늬에 스며든 채 달게 자던 녀석이 부러워 굳이 탑모서리를 밟고 다가가선 카메라를

들이밀었더니, 심술궂은 눈을 번쩍 뜨고 만 녀석의 심통스러움이라니.

남쪽으로 걷던 날이었다. 팟퐁을 지나 쑤언 룸 나이트 바자를 가는 길은 무슨 공원을 하나

끼고 있었더랬다. 공원을 따라 걷는 길에, 불쑥 난 경련하듯 몸을 떨며 잠시 멈춰선 채 저

미지의 생물체가 뭔지 곰곰이 뜯어봐야 했다. 이 거대한 도시 한 가운데 수로를 유유히

헤엄치던 저 녀석들은 대체 뭐란 말인가.

그래, 룸피니 공원. 이리저리 물길을 품고 있는 그 공원의 울타리 저쪽으로, 더러는 버스 정류장

뒷편의 깨어진 콘크리트와 벽돌 자재들 사이로 일미터는 쉽게 넘을 거대 도마뱀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비둘기가 심상히 도마뱀의 상륙을 바라보듯, 정류장의 태국인들은 심상히 도마뱀들을

눈으로 좇고 있었던 거다. 거대 도마뱀을 품고 있는 도시, 방콕.

미국식으로라면, Cock-a-doodle-do!의 순간이랄까. 카오산 로드 앞의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에 들어맞을 그 사원 근처를 어슬렁거리던 오만한 수탉 녀석이 시도 때도 없이 목을 뽑아쥐고

꼬꼬댁을 외치던 타이밍이었다.

남국의 개들은 남국의 고양이들만큼이나 축축 늘어진 채 순한 눈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

그 앞을 장군처럼 꼿꼿한 걸음걸이로 비장한 히프를 내민 채 사열하는 수탉들의 위엄이라니.

태국에서, 태국의 방콕에서 만났던 개와 고양이와 닭, 그리고 더러는 도마뱀들에 얽힌 이야기들.





말그대로 푸지게도 피어있던 꽃들.

꽃 하나하나의 이름은 모르지만, 어느 시인이 그랬듯 굳이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야 내게 와서

꽃이 되는 건 아니었다. 꽃의 이름을 몰라도, 아니 그것이 꽃인지 꽃잎인지 실은 꽃받침인지 몰라도,

그저 바라만 봐도 마음이 화사해지고 열포름하니 가벼워지는 존재들.


혼자 떠난 여행, 어디서나 꽃들이 함께 했다.



@ 태국, 방콕.



오랫동안 생각만 하고 있었다.


5년전, 일년반 기약하고 매달렸던 공부를 마치고 태국으로 놀러갔을 때부터 꽂힌 타투였다.

몇 군데 샵을 알아보고 샘플북을 뒤져보았지만 딱히 멋진 도안을 찾을 수가 없기도 했고

조금 무섭기도 하여 그때는 그냥 타투 대신 헤나로 만족하고 말았었지만, 헤나는 역시 일주일도

못 가서 뭉개져버리고 말았었다.


카오산 로드에 숙소를 정하고 나서 마음 내키는 대로 느적느적 놀기로 맘먹은 여행이었다.

눈뜨이면 일어나고, 대충 씻고 걸쳐서는 나가서 쌀국수와 캔맥주 하나로 아침, 오늘은 서쪽으로

걸어볼까 싶으면 서쪽으로 걷고, 동쪽으로 걸어볼까 싶으면 동쪽으로 걷고. 저녁에는 재즈바나

라이브클럽에서 공연을 보고 들으며 맥주를 마시고, 오렌지와 망고, 철지난 두리안까지 과일로

잔뜩 배를 채우며 가져간 책들도 다 읽고 다이어리도 꼬박꼬박 쓰고. 사진도 잔뜩 찍고.


그렇지만 이번에도 카오산에 도착하자마자 눈에 뜨인 건 역시 타투샵들. 돌아다니다 덥다 싶으면

에어콘이 빵빵한 샵에 들어가 샘플북을 뒤적거리며 맘에 드는 도안을 찾았다. 아쉽게도 대개가 무식하고

무시무시한 데다가 큼지막한 녀석들이어서 번번이 땀만 식히고 일어나길 수 차례, 드디어 맘에 드는

도안을 발견했다. 그렇게 커다랗지도 않고, '조폭'스럽지도 않으며, 평생 몸에 새긴 채 살아갈.


타투샵 전면에는 이런 경고문이 붙어있긴 했지만, 사실 위생상의 문제는 딱히 걱정스럽진 않았다.

내가 특별히 심장질환이나 질병이 있는 것도 아니고. 타투 아티스트도 태국의 타투 대회에서

몇차례나 상을 받았던 사람이라고 하니까 실력없고 장비없는 '야매'의 어설픈 솜씨로 예기치

못한 불상사가 있을 거 같지도 않고.


그렇게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몸에 새겨넣을 순간이 다가오니까 살짝 긴장했다.

몸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낙인 같은 거니까. 가볍게 생각하면야 어디서 사고로 죽더라도

내 시체는 손쉽게 찾겠구나, 식일 수도 있는 거지만 무거워지기 시작하면 한없어지는 거다.

회사에서 뭐라고 하진 않을까, 친구들이나 가족들은 어떻게 보려나, 주위 여자들은 어떻게

보려나, 나중에 결혼할 때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 나중에 후회하게 되면 어쩌나.


그리고 빠질 수 없는 고민, 주사맞기도 뜨악해하는 내가 일초에 구십번 다다다다 바늘이

찔러대는 타투머신 앞에서 괜찮으려나. 많이 아프진 않을까. 타투 아티스트가 본을 그리고

위치를 맞추어 내 몸에 본을 옮기는 와중에도 슬쩍 진땀이 났다. 새기다가 기절하지나 않을까,

발버둥치다가 바늘에 푹 찔려서 출혈과다로 급살맞는 건 아닐까 따위 망상이 시작됐다.

이미 돈은 다 냈는데, 걍 돌려달라고 하고 도망가버릴까.


근 한 시간, 재봉틀 소리를 내며 맹렬하게 움직이는 바늘이 파란색을 머금었다가 검은색을 머금은 채

몸에 그림을 그려나갔다. 생각보다는 덜 아팠는데 특정 부위에 집중되다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아려오는 느낌이었다. 그치만 점점 아픔의 강도가 세지면서도 어느 순간 그정도 아픔에 만성이

되었는지 약간은 시원하다거나 자극적인 쾌감이 느껴지기에 이르렀고, 바늘 끝에서 그려지는 그림을

매의 눈으로 관찰하며 선이 조금 엷다거나 저기 조금 색칠이 덜 되었다는 식의 지적질까지.


흔히 '낙인'을 찍힌 사람은 그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종류의 사람이 되곤 한다. 만화에서든

성경에서든 드라마에서든 언젠지 모르지만 죽고 몸이 썩어질 때까지 변치 않을 그 낙인의 존재가

굉장히 의미심장한 메타포로 쓰이듯이, 타투의 무게 역시 정말 굉장히 무겁구나, 생각했다.


주어진 대로 쓰고 있는 몸뚱이에 내 의지로 결정한 뭔가를 그려넣고, 이 몸은 내가 장악하고

있음을, 이 몸에는 다른 몸들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하나의 흔적이 있음을 말없이 보여주는 거니까.

내 몸에 대해서 남들이 뭐라고 하던 어떻게 보던, 그런 거 개의치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며

살겠다는 조용한 저항 같은 걸 수도 있겠다. 최소한 내 몸만큼은 내 의지대로.


어쨌거나 이러저러한 의미 따위야 좋을 대로고, 이뻐 죽겠다. 이걸 찾으려고 몇 개의 타투샵을

뒤지고, 또 몇몇 권의 샘플북을 정독한 보람이 있었다. 이 그림을 새긴 채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느낌이라면 너무 과한 걸까. 최소한 ver.1.0에서 ver.2.0으로 렙업은 한 느낌.


I inked TATTOO.



얼마전 도쿄 여행을 다녀온 친구로부터 선물받은 깜찍한 아이템, 고양이 볼펜이다.

고양이 양팔이 번쩍! 위로 올려져서는 검정색 쓰자, 하면 오른손 내리고, 빨간색 쓰자, 하면

왼손 내리는 식의 아주아주 깜찍한 볼펜.

원래 만년필을 즐겨 쓰지만 당분간 이 펜을 써주기로 했다. 왼손 내려, 오른손 내리지 말고

왼손 내려, 왼손 내리지 말고 오른손 내리지 마, 오른손 내려, 따위의 구령을 맘속으로

붙여가며 찰칵찰칵 빨강색 검은색 모드를 바꿔주는 거 은근 재미있어서.


게다가 여행을 가는 길에 만년필을 갖고 다니는 건 넘 부담스러워서, 4박 6일동안 따뜻한

남쪽 나라로 도피하는 여행에는 딱이다. 오늘 출발, 3월 2일 새벽 6시반에 도착, 그리고 바로

집으로 내달려서 짐놓고 옷갈아입고 출근. ㄷㄷㄷ

방콕은 예전에도 한번 다녀왔던 곳이고, 딱히 꼭 집어 방콕을 가고 싶던 게 아니라 그저 순전히

따뜻한 남쪽 나라를 가고 싶다는 일념으로 온갖 가까운 동남아 국가들을 뒤지다가 나온 곳이라서

아무 계획도 없고 예약한 숙소도 없고 그냥, 티켓만 들고 간다.


일단은 그저 온종일 걷고, 배고프면 까페나 조그만 음식점에서 먹고 마시고, 열대 과일 잔뜩 먹고

특히 두리안 잔뜩잔뜩 먹고, 사진 많이 찍고, 가져가는 책 두권 다 읽고 오고, 이것저것 헝클어진

머릿속도 좀 청소하고, 그럴 생각이다. 아무 계획없이, 특별한 목적없이 휴양하러 가는 건데

막상 써놓고 보니 굉장히 할 일이 많은 거 같다는..;


하얀 고양이 인형은 '개운초복', 운을 열어주고 복을 불러준다는 인형이니 부디 비행기 안 떨어지고

이상한 범죄에 휘말리지 않고 몸건강히 마음건강히 돌아올 수 있기를. (아무래도 이런 새삼스런 걱정은

요새 비행기 추락사고로 섬에 불시착해 벌어지는 미국드라마 LOST에 빠져있던 탓이 크다.)




간판들이 조금씩 젖는다
나는 어디론가 가기 위해 걷고 있는 것이 아니다
둥글고 넓은 가로수 잎들은 떨었고
이런 날 동네에서는 한 소년이 죽기도 한다.
저 식물들에게 내가 그러나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언젠가 이곳에 인질극이 있었다
범인은 '휴일'이라는 노래를 틀고 큰 소리로 따라부르며
자신의 목을 긴 유리조각으로 그었다
지금은 한 여자가 그 집에 산다
그 여자는 대단히 고집 센 거위를 기른다

가는 비......는 사람들의 바지를 조금 적실 뿐이다
그렇다면 죽은 사람의 음성은 이제 누구의 것일까
이 상점은 어쩌다 간판을 바꾸었을까
도무지 쓸데없는 것들에 관심이 많다고
우산을 쓴 친구들은 나에게 지적한다

이 거리 끝에는 커다란 전당포가 있다, 주인의 얼굴은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은 시간을 빌리러 뒤뚱뒤뚱 그곳에 간다.
이를테면 빗방울과 장난을 치는 저 거위는
식탁에 오를 나날 따위엔 관심이 없다

나는 안다, 가는 비......는 사람을 선택하지 않으며
누구도 죽음에게 쉽사리 자수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랴, 하나뿐인 입들을 막아버리는
가는 비.......오는 날, 사람들은 모두 젖은 길을 걸어야 한다

- 기형도, '가는 비 온다'

 *                                                  *                                                  *

빗방울이 톡......톡...톡, 톡톡, 번지다가 어느 순간 쏴아하고 쏟아지던 태국의 밤거리.

비가 번져나가면서, 번들거리는 불빛이 온통 사방으로 녹아내렸었다.
태국 여행 중에 어쩌다 보니 맞닥뜨렸던 전철의 마지막 종착역. 그 평행한 두 철길이 끊기는 곳에 적혀 있던 STOP.

그리고, 언젠가 술먹고 카메라를 덜렁대며 집에 돌아가던 길에 찍었던 시꺼먼 지하철 터널 속의 심연.

형광등이 찬란한 플랫폼이 끝나고 어둠이 불빛을 살라먹는 터널을 금지하는 '출입금지'의 푯말.
열반을 뜻하는 와불이 있어 열반 사원이란 이름을 갖고 있다는 왓 포. 46미터나 되는 거대한 와불상이 눈을 홉뜨고

사람들을 굽어보고 있는 곳이다. 왓 포는 또한 방콕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이자 가장 커다란 사원이랜다.

오돌토돌한 머리가 무슨..손에서 갖고 놀며 혈액순환을 돕는다는 그런 건강보조기구 닮았다. 온통 금빛으로 찬란한

불상인데, 왜 난 저게 정말 금일까 두께는 얼마나 될까 18K정도는 될까 요런 생각만 나던 걸까. 부처님 죄송염~*

미끈한 각선미를 자랑하는 부처님. 크기는 크지만 사실 디테일은 그닥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다리라고 쭉 뻗은

원통 두개를 붙여놓곤 끝이다. 어찌 보면 하반신 마비인 거 같기도 하고. 부처님 다시 죄송염~*

자개로 삼라만상을 표현했다는 부처님의 발바닥. 무슨 도장같이 파여져 있다. 이렇게 거대한 발바닥, 그리고 이런

그림으로 가득한 발바닥은 아마 이게 세계최고지 싶다. 그림은 하나하나 세밀하게 자개조각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하나씩 뜯어보아도 참 이뻤다.

거대한 부처님이 누워계신 방안에는 벽을 따라 쭈욱 헌금 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왠지 저 항아리마다 동전 하나씩

빠짐없이 전부 봉헌하면 뭔가 소원성취 인생역전될 거 같은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가방을 둘러메었던 어깨에는

땀이 흠뻑 젖었던 이 때는 8월..쯤이었던가.

왓 포의 바깥에는 이런 뾰족한 탑들을 불규칙하게 늘어서 있었다. 딱히 열을 지어 서있는 느낌이 아니라 그냥 아무

곳에나 자유롭게 산개해 있다는 느낌. 저 기묘하고 이국적으로 생긴 탑이 하나만 덜렁 떨어져 있었음 얼마나

뻘쭘했을까. 배경처럼 층층이 세워진 왕궁의 지붕과 다른 것들과 맞물려 딱 어울린다.

이런 탑, 그리고 저런 문, 그 앞에서 지키고 선 거대한 석상까지..조영남 식으로 말하자면, 여기는 태국의 방콕,

왓포사원 앞마당입니다~* 타일을 하나하나 붙여서 저런 무늬를 만들고, 규칙과 배열을 만들어낸 것이 신기하다.

품도 엄청 많이 들었을 테고 시간도 그만큼 많이 들었을 거다. 하기야 과거의 사람들에겐 무던하고 참을성있게

몇십년, 한평생, 혹은 몇 세대에 걸쳐 일을 해낸다는 게 그다지 두렵거나 망연스러운 일은 아니었던 듯 하다.

요 쬐꼬맣고 귀여운 코끼리 모양의 수호상은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되었달까, 그 코끼리 코로 열린 문짝을 고정하는

지지대 역할을 하고 있다. 근데 저렇게 바싹 말아올려진 코 모양이 영락없이 뭔가 힘껏 끌어당기는 모양새지 싶어

가만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났다.

다른 퉁퉁하고 묵직한 느낌의 수호상과는 달리, 상당히 얍씰하게 빠진 보디라인을 가진 이런 청동 수호상도 있다.

여긴 왓 포 사원과 인접한 다른 불당이었는데, 스님이 앉아 있는 자세가 워낙 다소곳하니 이뻤다. 무슨 일을 하던,

일정한 수준에 도달한 사람들의 몸짓, 태, 이런 것들은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있다. 마치 오랜 기간 연마한

발레리나의 손짓, 몸짓처럼 더없이 매끄럽고 우아하게 떨어지는 그 흐름과 분위기랄까. 스님은 부처님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는지, 당신의 뒷태로 이야기하고 있는 거 같았다.

금빛찬란한 좌대 위에 올라앉은 부처님 위에는 작은 양산도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보랏빛 꽃으로 온통 장식된

좌대 아래에는 국왕의 사진도 보였고 다른 스님들인 듯한 분들의 사진도 많이 놓여있었다. 조명의 효과랄까,

부처님은 그 모든 걸 지긋이 내려보고 있던 느낌.

쇠파이프로 만들어진 청룡언월도를 꼬나쥐고 있는 걸 보니, 이 수호상들은 좀 최근에 만들어 세워진 것 같다.

저 수염은 왠지 '캐리비안의 해적2'에선가 나왔던 문어 수염 선장을 생각나게 한다.

저토록 정교하고 섬세한 문양들은 거리를 어느 정도 격하고 바라본다고 해서 디테일이 뭉개지지도 않을 뿐더러,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하나하나 박아넣었을지 절절이 느껴졌다. 돌출된 타일이래봐야 주변 것들에 비해 고작해야

몇 밀리미터 어간이겠지만, 그런 약간의 도드라짐으로 이런 입체감과 깊이를 느끼게 할 수 있다니 감탄했다.

우리 부모님. 뭔가 화보집 촬영이나, 적어도 2009 S/S 의류패션집처럼 나왔지 싶어서 살짝 자랑질.ㅡㅡ;ㅋㅋ

슬랩스틱이 난무하던 어린 시절의 개그 프로에서 단골 레퍼토리로 나오던 동네가 있다. 방콕. 방에 콕? 그 방콕.

태국의 왕이 살던, 그야말로 방콕 중에서도 노른자위라 할 Grand Palace 내에 세워져 있는 이 황금빛 기둥은

'도시의 기둥'이란 의미의 락 므앙이라고 한다. 태국인들은 도시를 세우면 꼭 기둥을 세우고 그 곳에 사당을

세운다나. 끄트머리가 연꽃봉오리 모양인 황금빛 기둥은 얼핏 두꺼운 국기봉같기도 하지만, 글쎄, 아마도

태국인들은 이 기둥이 도시 위의 하늘을 떠받친다고 생각한 것일까.

뭔가 영험한 힘이 깃들었다는 곳은 한국이나 태국이나 온통 번쩍번쩍하고 화려한 문양이 눈에 띈다. 규칙적으로

배열된 벽지 디자인하며, 붉은빛 금빛으로 채색된 문짝하며, 그리고 그 위의 얹힌 핑크 테두리 그림까지. 참

이질적이다 싶으면서도 또 어떻게 생각하면 익숙한 면이 없지 않다. 한국의 절들에서 보이는 사천왕상이나

다른 벽화들, 혹은 불교에 포섭된 삼신각의 그림들까지.

락 므앙에 들어가는 문 중의 하나였지 싶다. 저토록 조밀하고 섬세하게 표현된 문양들과 문짝의 그림들이라니.

금색을 그냥 쳐발랐다면 무지 촌스럽고 유치찬란해 보였을 텐데, 금색의 고급스러움과 위풍당당한 느낌은

살리면서도 화려함 역시 갖추려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지 않았을까.

왕궁, Grand Palace는 어디나 그렇듯 무지하게 넓다. 여러 전각으로 구획된 공간마다 층층이 높고 주렁주렁한

장식이 달린 럭셔리 지붕이 턱하니 얹혀있었다. 상대적으로 심플하고 깔끔해 보이기만 하는 하얗고 네모난 기둥들.

이곳 기둥들을 전부 그 '도시의 기둥'처럼 금칠해놨었음 더욱 화려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외려 시선이 분산돼

지붕에서 펼쳐지는 기기묘묘한 장식들의 향연을 즐기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싶기도 하고.

전철 안에서,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태국인들의 먼 선조들이 일군 유물들. 그치만 서울의 을지로입구쯤서 드문드문

마주치며 과거의 사실을 일깨워주는 황당한 대리석비들처럼, 기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과 과거의 그것들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을지도 모른다. 근대에서야 본격적으로 치장되기 시작한 과거, 박물관안에 모셔지고, 왕궁을

복원하고, 그렇게 시간 앞에 허물어지려는 기억과 흔적들을 애써 그러쥐며 난 관광중인 한국인, 그대는 순찰중인

태국인. 조금은 선명하게 너와 내가 갈라진다.

사진을 찍다 보면 문득, 아..이 건물들은 계속해서 내 시선을 높은 곳에 잡아두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위풍당당하고 권위를 과시하려 지어진 건물들이 그렇다. 왕궁 안으로 들어와서 내 카메라는 계속 높은 곳을 향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지나다니는 여행자들의 목을 전부 뎅강뎅강 잘라버리고 건물을 담기에 여념이 없어지고 만다.

그치만 건물들이 워낙 화려한데다가 온통 금빛으로 번쩍거리니 원 정신을 차릴 수가 있어야지. 숨겨진 고대의

황금도시를 발견한 느낌이랄까. 그러다 보면 주위의 여행자들, 동료들 목을 뎅강뎅강 친다는 스토리도 나오는 게

전혀 이상할 일은 아니다.

같은 건물을 다른 측면에서 뒤로 잡고선, 조금 호흡을 가다듬어 한걸음 뒤로 재겨나서 찍은 사진엔 그래도 아빠가

제대로 들어가 있다. 왕궁이 관광자원화되려면 저런 식의 울타리는 필수인 걸까. 곳곳에서 마주치는 금지의 표식은

이 공간을 방문한 우리가 어쩜 상당한 불청객인지도 모른다는-실제로 그렇겠지만-느낌을 상기시키곤 했다.

이 금색의 원뿔탑은 부처님의 가슴뼈가 안치되어 있는 뼈라고 했다. 대체 어디에?라고 묻고 싶어지지만, 뭐 있다니

그런가보다 할 뿐. 너무 둔탁한 형태의 금빛 탑이라서 처음 봤을 땐 왠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달까. 햇살이

강하게 내리쬘 때는 온통 번쩍거려서 눈이 아프도록 부시더니 살짝 구름이 끼니까 번쩍이던 불빛이 여기저기서

툭툭 힘을 잃고 떨어져내렸다.

계단 옆 난간도 범상치 않은 용가리 모양이다. 그것도 머리가 다섯개 짜리인. 사실 용이라기엔 입크기나 모양이

살짝 조잡스러워서 무슨 제삿상 굴비 입과 이빨이 아닌가 싶긴 하지만..그래도 머리 다섯개 위에 제각기 그럴듯한

모자를 쓰고 있으니 용이려니 너그러이 받아주기로 했다.

저 탑은 뭔가 돌덩이로 탑의 형체만 얼추 잡아놓고, 금색 천이나 금색 벽지로 얼기설기 풀칠해서 싸발라버린 느낌.

축축 늘어진 윤곽들도 그렇고, 왠지 흘러내리는 듯한 느낌의 금빛 광택도 그렇고.

그 탑을 밑에서 받치고 있는 괴물딱지들이 신기하고도 귀여워서, 어정쩡하지만 아빠랑 나랑 그 포즈를 따라했다.

...뭔가 저 괴물딱지들은 심하게 쩍벌쟁이들인 거다. 어떻게 저 자세가 가능하단 말이냐.ㅡㅡ;




중요한 사원, 신전들을 보호하는 수호상들. 비슷한 모티프로 제작된 상상속의 동물들이나 인물들이지만, 곳곳에서

색다른 표정과 뉘앙스를 만나게 된다. 약간은 찡그린, 멍청해보이기도 하고, 뭔가 불만에 가득하거나 화장실이

급해보이기도 하는 다양한 표정들. 

이거 왠지, 서울시청 으슥한 곳으로부터 아무런 조율도 의견수렴도 없이 서울의 상징으로 불도적식 밀어붙여지고

있다는 '해태'와 느낌이 닮았다. 사실 내가 알기로는 해태란 상상속의 동물은, 불교적인 색채를 많이 띄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불교의 나라 태국에 비스꾸레한 형상들이 넘쳐나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이겠다.


찍다 보니까, 얼레, 의식하기 시작하니까 사원 내 온갖 곳에 그런 수호상이 세워져있다. 문 양쪽으로 당당히 시립해

있는 건 물론이고, 이 아이들은 왠지 저 쓰레기통을 지키고 있다. 주위에 흘리거나 제대로 버리지 않음 우씨,

제스처를 취한 저 아저씨의 돌주먹에 호되게 맞는다는 뜻이렸다.

계단 모서리에도 생명체의 형상을 한 무언가가 스물스물 계단턱을 타고 내려와 쫑긋, 대가리를 세웠다. 머리

다섯개 달린 용가리라고 해야 하나, 발가락 하나하나 날카롭고 까칠할 듯한 이빨을 품고 있는 발바닥이라 해야하나.

난 왠지 황금발바닥에 한 표. 발바닥이라기에는 넘 심한 평발이긴 하다는 반론은 기꺼이 인정.

뭔가 불꽃같은 이미지의...개? 늑대? 여우? 어찌 보면 또 닭같기도 하다.

이 녀석은 왠지...뭔가 닮았다 닮았다 싶더니, 퍼뜩 떠올랐다. 요놈.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가? 왠지 살짝 슬퍼보이면서 순종적인 눈매와 처연한 입꼬리, 그리고 몽땅한 두 앞다리를

치켜든 제스처와 분위기가 딱인 거 같은데.

이런 서양적인 마스크를 가진 녀석은 언제부터 이 태국 땅에 서있었을까. 어쩌면 이미 '색목인'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다른 이러저러한 경로로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고대, 중세에는 훨씬 활발한 교류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이녀석, 얼굴을 조금만 추상화시켜서 볼라치면 딱 시골동네 어귀에 섰는 장승닮았다.

입꼬리를 자세히 보면, 이녀석 비웃고 있는 거다. 푸훗..이런 식으로.


그리고 현대적 의미의 수호상들은, 영국의 왕궁 앞이라거나, 미국 워싱턴 국립묘지의 교대식장이라거나, 아직

잔존하는 몇몇 왕궁과 같은 시설을 경호하고 있는 살아있는 경비병들일 게다. 꼼짝도 하지 않고 그 자체, 공간의

일부가 되어 관광객들의 배경이 되어 주기도 하고 여전히 날선 권위의 생생한 증인이 되어 주기도 한다.

태국 왕궁의 경비병들은, 하얀 제복이 새하얗다 못해 형광등처럼 푸르스름한 기운마저 머금었다.

종종 수호상들은 문짝을 고정시켜놓기 위한 유용한 받침돌로도 사용되고, 만들어진지 얼마 안된 수호상들은

차가운 금속성의 철파이프를 잡고 있기도 했다. 예전같으면 생각도 못했을 용도를 발굴해낸 근대의 도구적 인간들.


이를 드러내고 제법 용맹한 표정을 짓고 있는 녀석의 입안에서 굴러다니는 돌을 간지럽히며 표정 흉내내보기.

저 달그락거리는 자그마한 돌맹이를 만지작대다 보니 왠지 유쾌해졌다. 그나저나, 어떻게 집어넣었을까?

저 녀석이 찌익~ 입을 벌리고 돌을 앙 물고선 다시 빳빳하게 돌로 돌아갔을 리도 없는 거고, 돌을 덧붙여서 구멍을

막는다거나 할 리도 없는 거고, 신기한 일이다.

태국적인 느낌의 수호상..이라고 하면, 이제 이미지가 좀 머릿속에 구체화되면서 그게 무얼 말하는지 알 거 같다.

마치 A형의 혈액형을 가진 여자라거나 O형의 남자..라는 묘사가 대화하는 사람 간의 머릿속에 무언가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해서 나름의 유용성을 확보하듯이 말이다. 태국적 느낌의 수호상이라는 걸 머릿속에 그려보자면

아마도 뭔가 도톨도톨한 느낌의 혹이 잔뜩 붙어있고, 입꼬리를 쫘악 올려붙이고 있으며, 굵은 주름이 사정없이

흘러내리는 얼굴에 표정이 생생하게 묘사된 다소 위압적이면서도 살짝 우스꽝스러운..동물상이랄까. 그것도 닭의
 
벼슬, 사자의 갈기, 개의 꼬리 등속을 마구 짬뽕시켜 놓은..상상력에 적지 않은 재량권을 허용하는 윤곽.

나중에, 여행을 많이 다녀서 이런 수호상들 사진을 잔뜩 모으게 되면, 나름의 컬렉션으로도 괜찮겠다 싶다. 종교를

막론하고 지키고 싶은 권위와 힘이 있던 곳에는 모종의 경비병, 신적인 권능을 상징하는 수호자를 세워놓기 마련.


일종의 power-base가 소재하는, 소재했던, 혹은 새롭게 부각되는 곳의 상징, 슈렉 고양이를 닮은 수호상들.


전란으로 목이 잘려나가 땅에 나뒹굴었을 부처의 머리가 똑바로 서있다.

나무 뿌리에 단단히 걸린다는 다소 과다한 우연의 힘과, 실수없이 끌어올려지는 수백년의 시간의 힘을 빌어.

부처상의 머리 부분에 대고 빈다기 보다는, 난 왠지 그 우연과 시간이 빚어낼 수 있는 경이로움에 질려버려 비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왠지 2000년대 한국의 건축물에서도 자주 쓰이는 붉은벽돌로 지어졌다 해도 그다지 큰 어려움없이 믿을 수 있을

법한 아유타야의 사원들. 그렇지만 약 1300년대에 건설되어 400여년 동안 아유타야 왕조의 수도로 번영했다는

그 단단한 역사적 사실을 떠올려 보면, 저 정교하고 튼실한 벽돌郡이 수백여년을 버티어 왔다는 사실이

경탄스럽다. 더구나 여기는 여름, 우기, 겨울로 계절이 구분된다는 비많고 수풀우거지는 타일랜드인 거다. 인간의

흔적 따위 한 철 비바람이면 물에 씻기고 녹색 덩굴에 씻기기 십상일 텐데.

그런데 이렇게 하늘을 향한 탑..혹은 탑파의 원형을 세밀한 부분까지 보존하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물론 자세히 보면 새들이 남기고 간 얼룩부터 시작해서 군데군데 잠식해나가는 파랗고 강인한 풀떼기가

보이지만. 한 옆에서는 서울서 가로수 정비할 때 쓰는 도구같이 생긴, 끝에 칼을 묶어놓은 장대같은

것으로 관리원들이 식물의 접착을 막고 있었다.

여행의 컨셉은 배낭여행이었다. 휴가를 못받은 동생을 빼고, 엄마랑 아빠랑 나. 여행을 좋아하는 가족인지라,

패키지는 애초 코웃음 한방, 투어는 원칙적으로 안하기로. 일정은 전적으로 내가.

방콕에서 북쪽으로 두시간, 버스를 타고 달리면서 비가 오지는 않을까, 일정을 얼마나한 밀도로 채워야 할까..

(더구나 부모님이랑) 이런저런 생각이 피워올랐지만. 여름, 우기, 겨울, 이렇게 세가지 계절을 가진 태국은 우리가

한나절 내내 걸어다녀도 그닥 덥지않을 만큼 선선한 날씨를 선물했다.

'툭툭'이라는 이름의 탈것은 오토바이를 개조한 엉성한 삼륜차지만, 나름 태국 시내에서나 근처 관광지를 돌때에는

아주 편리한 것 중 하나다. 뭐..두 명이 타기엔 저렇게 다소 힘들어보일 수는 있지만, 정작 부모님 본인들은 괜찮다

하셨다.


인력으로 움직이는 이러한 탈 것에 대해 다소 양가적인 감정을 갖게 된다. 마치 제3세계 빈곤국의 아이들이 커피를

수확하는 노동에 종사한다는 사실에 대해, 가혹한 수준으로 착취받고 있다고 지적할 수도 있지만 반면 그러한

노동의 기회마저 없다면 당장 그 아이들의 생존이 백척간두에 처하고 만다는 엄연한 사실도 동시에 존재하는 거다.

어쩌면 이렇게 뚜렷한 옳고 그름의 지표를 집단적인 차원에서 내릴 수 없는 경우라면, 우선 개인적인 차원에서라도

그 긴장을 해소하려 노력하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진심이 느껴지고 따뜻한 웃음으로, 조심스럽고

존중하는 태도로, 상대와 상대의 일을 존중하고 내게 그 서비스를 베품에 감사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그렇게 우리가 간 곳은 코끼리 탑승장, 사람이 태워주는 것도 민망한 판에 코끼리를 타는 것도 다소 미안했다.

다큐멘터리를 즐겨보는 나로서는, 이런 식으로 사역당하거나 공연장에서 쇼를 하는 코끼리들이 얼마나 고통받고

부려지고 있는지에 대한 이미지가 가득했던 거다.

그렇지만, "코끼리 비스켓"이란 표현이 적절했던 것 같다. 나 한명 그리고 저 아저씨..조종수랄지 운전수랄지 혹은

기수랄지..가 탔다고 해서 코끼리가 움쩍하는 기색도 없었다. 그냥 앉았다가 일어서는 동작, 사뿐하고도 부드러운

리듬을 타고서 지상 삼 미터쯤 위로 불끈 올라섰다.


코끼리의 등짝과 정수리쪽의 가죽은 물에 흠뻑 젖었다가 바싹 말라비틀어진 소가죽같았다. 거칠거칠하면서도

아무런 수분의 느낌없는 부석부석한 촉감. 그리고 완강하게 잡혀있는 깊게 패인 주름들. 동물을 만질 때 느껴지는

체온이나 따스함, 부드러움 등의 느낌은 별로 전해지지 않는 거대한 초식동물.

중간에 아저씨는 코끼리와 모종의 교감을 거쳤는지, 억센 생명력 그 자체인양 뻗어나간 풀잎들이 삼엄한 한 쪽

풀밭에 코끼리를 주차했다. 이내 강력하고도 섬세한 코를 사용해 식사를 시작한 코끼리.


부드럽고도 날렵한 코의 스냅이란. 그리고 단호하면서도 세련된 그 완력이란.

내가 탄 코끼리를 '운전'하신 분의 이름은 KLUAYMAI. 그리고 그 밑에 병기된 일어가 눈에 거슬렸었나보다.

앞뒤로 파도치듯 일렁이는 코끼리 걸음의 리듬을 타고 있었을 한 자존심강한 '한국인'이 굳이 한글로 적어넣었다.

        아이   이'. 코끼리 등에서 느껴지는 리듬감이 고스란히 글자에 남아있었다.
 '클루     마


글쎄..다소 유치하단 생각이 들면서도, 실제로 태국으로 많이 쏟아져들어가는 한국인들의 편의를 생각한다면
 
당연한 처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다만 그렇게 한글로 굳이 적어넣은 행동이 영어와 일어가 병기된 데로부터

촉발해 발끈한 속좁고 치졸한 행동만은 아니기를 바랬다.

왠지 몽환적이었다. 정글 한가운데서 불쑥 튀어나온 고대의 사원들은 어느새 인공의 느낌과 자연의 느낌을 묘하게

뒤섞어 놓은, 인간의 것도 자연의 것도 아닌 느낌이었다.

자연을 굳이 '신'이라 표현한다면, 신과 인간의 경계지대에 놓여있는 듯한 느낌.

거대한 것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려면, 적당한 거리잡기가 가장 중요하다.

얼마만큼 거리를 격해야 나와 당신의 그림이 이뿌게 나올 수 있을지..당신의 위풍당당함과 아름다움을 해치지 않고

내가 그 곁에 자연스럽게 설수 있는 사진은. 

너무 멀면, 모든게 용서될 것 같다. 고작 한웅큼 흩뿌려진 저녁 햇살 만으로도 너무도 부드러워보이는 당신의

실루엣.

 
너무 가깝게 들이대진 말기. 그 오색찬란한 빛깔과 생생한 질감이 사실은 사기접시를 깨넣고 엉성하게 붙여넣은

재활용품처럼 보일 수 있으니.

고슴도치가 사랑을 하듯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바싹 다가가기엔 한 평생 호흡이 길다.

크레딧이 올라가도 삶은 계속되고, 한마디 말로 감정을 전달한다는 건 편집기술의 승리일뿐. 간격잡기는,

고수의 스킬. 당신은 내 간격 안에 들어와있어. 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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