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림픽공원.


때로는 말보다 그저 사진 몇 장으로 그치는 게 낫겠다 싶다. 어제의 하늘, 어제의 구름이 그랬다.





어제 퇴근하고 나서, 친구랑 삼성역 인근에서 치킨에 맥주를 마셨다. 배고팠던 나는 치킨과 맥주를

함께 마시다가 친구가 '적당히' 오백씨씨 맥주잔에 소주를 콸콸 부어대길래 치킨과 맥주와 소주를

함께 마시고 말았다.


뭔가 모자라서 양주 한 병을 들고 아셈타워 옆 산책길 벤치에 앉아 마시다가 맥도널드로 들어와

마저 마셨다. 상하이스파이스와 빅맥세트, 그리고 발렌타인 17년산. 이건 전적으로 햄버거로 해장을

하는 녀석의 습관 때문이라고 우기고 싶지만, 사실 꽤나 멋진 조합.


또 한번 술병 멱살을 잡고 맥도널드로 쳐들어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끈불끈.









@ 일본 하코네, 야외조각공원


● 일시 : 2010년 9월 20일(월) 18:00부터

장소 : 다른異 색깔彩을 지켜낼 자유
              (구)異彩가 꿈꾸는 경험적세계의 유토피아적 가능성

                 (http://ytzsche.tistory.com)

주최 : yztsche(이채, 異彩)

제공 : 초대장 6장

● 자격요건 : 추석 복 많이 받고 싶으신 분 중에서,
                    소원 적어주시는 분 중에서,
                    선착순으로 드리겠습니다~*

In Honor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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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zs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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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ce Monday September 20, 2010



R.S.V.P
ytzsche.tistory.com

@ 도쿄, 도쿄에도건축공원.



가족들은 전부 어디론가 떠나고, 혼자 외로이 남아 집을 지켜야 하는 추석 연휴.

마음 속에서 바람소리가 휑하니 들리는 듯 하지만.


9월 20일(월) 저녁부터 9월 23일(목) 밤까지 어떻게 놀아야 재미있게 추석 연휴 보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가 볼만한 곳이나 재미있는 꺼리들에 대해 가장 매력적인 조언을 해주신 여섯 분께 초대장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제가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으로는, '좌우파 사전'같은 새로운 책을 몇 권 주문해 놓았고 '반지의 제왕'

디비디를 전부 빌려두어 한번도 쉬지 않고 이어서 볼 생각입니다. 미술관 전시나 하나 둘러볼까 생각중이기도

하구요. 그런 것들에 더해서 뭘 해야 추석 연휴를 쓸쓸하지 않게 보낼 수 있을까요?


미리~ 감사합니다~*




* 참고 : 제 거주지역은 서울, 제 성별은 남자..또...




선토리 프리미엄, 지인들로부터 정말 맛있는 맥주다, 한국에 아직 안 들어왔지만 들어오면

꼭 먹어봐라, 강남 일부 맥주집에서만 파는데 한 잔에 만오천원이더라, 같은 온갖 이야기를

듣고 있던 차였다.


도쿄로 여행가서 하루에 아무리 적어도 한 캔씩은 꼬박꼬박 마셔준 '선토리 프리미엄', 정말

그런 호들갑이 하나도 과하지 않다 싶을 만큼의 굉장한 맛이었다. 쌉쌀하면서도 시원하고,

맛이 진하면서도 상큼한 느낌이랄까.

첨 보는 맥주를 먹고 이렇게 감동하기는 참 오랜만. 첫날에는 이 대단한 맥주, 선토리

프리미엄과 에비스니 아사히니 다른 캔맥주를 함께 한 캔씩 사서 마셔봤지만 다음날부터는

무조건 선토리만 샀다.


이런 맥주, 왜 한국에선 못 만드는 거지 했는데, 이유가 있었다. 한국에선 '맥주'라고 정의되는

술의 범주가 굉장히 협소하고 제조 과정도 까다롭게 제한되어 있어서 홉이나 밀의 비율을

다양하게 조정하며 맥주를 만드는 게 불가능하다고 한다. 게다가 맥주를 만들려면 확보되어야

하는 최소한의 용량도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가 꽤나 엄격하고 큰 편이라고 한다. 그래서

가내수공업처럼 조금씩 만드는 맥주도가가 없다는 것.


에라 모르겠고, 선토리 프리미엄이 어서 한국에 수입이나 되었으면 좋겠다는 1人. 정말 최고.



어제 술자리에서 만난 새로운 맥주, 캐나다에서 왔다는 이 친구는 이름도 독특하다. 무스헤드.

Moosehead라니, 두껍고 넓은 뿔을 가진 사슴처럼 생긴 녀석이 전면에 모델로 나선 걸로 보아 아마도

저 녀석의 이름이 '무스'인 거 같다.

백과사전을 찾아보게 만드는 맥주라니, 뭔가 대단한 면이 있는 맥주. '무스(Moose)'라는 녀석의

우리말 이름이 더 대단하긴 하다. 무려 '말코손바닥사슴'이란다. 이런 호랑말코같으니, 할 때의

그 '말코'인 거 같긴 한데 정말 정면에서 본 이 녀석의 코 생김새가 말같이 길게 늘어지긴 했다.

맥주맛, 뭔가 굉장히 시원하면서 부드러운 맛. 호가든과 같은 느낌으로 목을 타고 내려가긴 하는데,

쟈스민향이 지워진 대신 좀더 쿨한 자극을 주는 허브같은 게 들어간 건 아닐까 싶은. 캐나다산

보드카니 위스키는 먹어봤지만 그러고 보면 캐나다산 맥주는 또 처음이었던 거 같다. 꽤나 깔끔한 출발.

앞으로도 이름을 기억해두고 가끔 먹어주겠어. 무스헤드. 말코손바닥사슴 대가리.




어제는 회사에서 1박2일 워크샵을 떠났었다. 아침부터 내린 비는 그칠 줄을 모르는데 마침 예약해둔

곳은 남양주 한강변의 펜션. 에콰도르 대통령 밥먹인다고 1시부터 떠난다던 선발대에는 함께 못하고,

결국 떠난 시각은 잔뜩 어두워져 버린 저녁 6시. 자동차 타이어가 물에 뜬 채 달리는 듯한 느낌이

불안하더니, 펜션에 접근하기 위한 비포장도로 군데군데를 불어난 물줄기가 잡아먹고 있었다.


이러다간 일박이 아니라 십삼박 십사일을 하거나 아예 못 돌아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위기감,

게다가 펜션 주인은 아무 대책도 안 세워둔 채 바베큐는 안 되니 생고기를 뜯어먹거나 말거나,

라는 자세로 일관하는 돼지녀석이길래, 마침 팔당댐을 방류할 거라는 소식을 듣고는 물이 더 불기 전에

신속기동, 긴급퇴각을 결정했다.


왜 그리도 선발대에서 사둔 고깃덩이들과 과자, 술, 음료수 따위가 많은 건지. 특히나 술. 우산을 든 채

고상하게 움직이는 건 일찌감치 포기하고 폭우를 맞으며 발이 물웅덩이에 푹푹 빠져가며 그것들을

다시 차로 날랐다. 이미 차가 펜션 앞까지 접근하기는 불가능할 만큼 물이 삽시간에 불어난 상황,

한참을 들고 날라야 했다는.


회사일 하면서 늘은 건 테이핑질, 커다란 대용량 쓰레기봉투에 과자니 상추니 고깃덩이니 쓸어담고는

봉투바닥과 옆면에 박스테이프를 길게 붙여서 만의 하나 째져서 전부 쏟아지는 난감한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는가 하면, 이미 잔뜩 너덜너덜해진 골판지상자를 테이프로 둘둘 감아 요긴한 바구니로 써먹었다.

아 자랑스러워라. 해외출장길에 맨날 몇 박스씩 테이프로 단단히 묶어내고 이빨로 끊어내던 '커리어'가

이럴 때 빛을 발하다니.;


그래서,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코맹맹이 소리에 폐병환자스런 무한기침, 머리는 무겁고 식은땀이

줄줄줄. 내가 좋아하는 맥주 중 하나인 크롬바허 맥주를 마시다가 안 되겠어서 뜨거운 술이랍시고

꼬냑을 마시면서 노래를 듣고 있다. 이럴 때 덥혀먹는 와인 한 잔이 딱이지 싶은데, 그건 작년 겨울에

다 마셔버렸다.


아니 그보다, 잠을 자야 할 텐데 잠이 안 온다. 하아...술에 취해버리면 잠이 오려나.



쓰레기는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정부종합청사 화장실에서 발견한 멘트라서 더욱 가슴 깊이 파고드는 문장이랄까.

쓰레기..쓰레기..굉장히 함축적인 단어. 굉장히 함축적이라, 누가 누굴 지켜보고 있다는 건지

그 두 개의 '누구'에 온갖 상황을 대입해보게 만드는.




@ 정부종합청사

어쩌다 보니 올해 여름은 짧막한 휴가를 두 번이나 가게 되고 말았다.

7월에 다녀온 타이완, 그리고 내일부터 다녀올 일본 도쿄.

회사 일정상 살짝 무리한 감이 없진 않지만, 여름휴가철 문닫는 셈치고 미친 척 휴가.

며칠 전부터 내 네톤 아뒤는 '토꾜로 토끼기 D-xx'.


공주박물관에서 둘러봤던 문화유산 중에 눈에 띄던 것 하나,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무령왕의 왕관.

그야말로 'before & after'를 내걸고 선전하기 딱 좋을 만큼의 드라마틱한 차이를 보이는 오리지널과 카피.


인간은 왕관이랑 달라서 지금 내 상태가 후줄근한 왼쪽인지, 그래서 오른쪽의 살짝 얼띠지만 번쩍번쩍한

모습으로 옮겨가려는 건지. 아님 오른쪽으로부터 다소 후줄근하고 꼬질꼬질해졌지만 시간의 향취가 묻어나는

왼쪽으로 옮겨가려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둘 중 하나는 before,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after가

되겠지 뭐. 아님 말고.ㅋㅋㅋ


해서, 9/1~5 출타합니다~*


< 생존 일본어 어휘대백과사전?!?!? >

곤니찌와, 야빠리, 기모찌, 가와이, 요로시꾸네, 오이시, 아레, 아리가또, 니뽕, 이예, 하이, 센세, 스미마센, 고멘고멘, 삥, 마끄도나르도, 다찌마와리, 오겡끼데스까, 와따시와 오겡끼데스, 사요나라, 곰방와, 도죠, 사께, 아사히 비루, 오꼬노미야끼, 오네가이시마쓰, 기무치, 다꽝, 덴뿌라, 큐슈난지, 헨타이, 히키코모리, 오타쿠, 망가, 미야자키 하야오, 잇힝, 아사다 마오...;;;;







버르장머리 없는 말투, 혹은 군대에서나 들어봄직한 말투.

"잔다"는 자도록 한다, 라는 명령, "먹는다"는 먹도록 한다, 라는 명령. 같은 맥락으로 "마신다"는 마시도록 한단 말.

이런 건방진 물병 같으니라고. 제 몸을 바싹 움켜쥐고 입술을 대어 한껏 빨아주셔요, 라고 섹쉬하게 유혹해도

모자를 판에, 갑자기 왠 개구리무늬 전투복을 떠올리게 하는 군바리 말투인 거냐. "마신다."라니.

영어로는 소리나는 그대로 풀었다. "masinda". 아놔. 맛있나, masinna도 아니고 마신다, 라니. 작명센스하고는

참. 마셔주십사 하는 섹쉬버전으로는 '마셔줘 아항' 정도? 영어로는 'masherjo AHANG'. (AHANG은 특별히 강조)

경상도 물이라 그런가. 갱상도 사내스런 말투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어떻게 보면 제주도의 기생화산인 '오름'같기도 한 둔덕. 소나무로 유명한 사진작가 배병우가 즐겨 찍었다는

오름의 둥그스름함을 닮은 거 같다.

그런 봉긋한 둔덕 아래로 사람이 잔뜩 몸을 옹송그려야 들어갈 법한 입구가 하나씩 띄엄띄엄 박혀 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닫혀 있는 곳. 이 곳은 어딜까.

초대장을 나눠주며 별별 방식을 동원해봤지만 이렇게 여기가 어딘지, 를 맞추신 분께 드린다는 시도는 처음.

무조건 초대장 내놓으라며 ctrl+c, ctrl+v 신공을 발휘하시곤 광고성 블로그를 만드시는 분들을 막기 위한

나름의 고육지책이니 넓게 혜량하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힌트를 드린다면, 이곳에서 발견된 유물들 덕에 1400년전 고대 국가의 화려한 문화가 비로소 상당 부분 온전한

형태로 세상에 알려졌다는 정도. 그 전까지는 드문드문 발견되던 그 나라의 유물을 두고도 이렇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걸 이 나라에서 만들었을 리가 없다고 학계에서 평가절하했었지만, 이 곳에서 쏟아져나온 왕과 왕비의

장신구들 일체 덕분에 이 나라의 문화적 역량이 제대로 평가받는 계기가 되었다나.



ㅇ 일시 : 2010. 8. 28. 02:22~

ㅇ 질문 : 이 사진에 나온 장소가 어디일까요?

ㅇ 선정 방식 : 선착순 (8명)

ㅇ 증정 : 티스토리 초대장 8장

감사합니다~*


"그냥 국물 몇 숟갈 뜨고, 못 먹겠다고 하면서 삼계탕이나 하나 시켜먹어."


저녁 회식자리에서 개고기를 먹게 되었다고 알린 나도 나지만, 문자를 받고 득달같이 전화한 엄마도 엄마다.

그만큼 우리 집에서 '개고기'는 아무도 먹어보지 않았고 먹을 생각도 해본 적 없는 그야말로 '금기의 음식'.

뭐 딱히 개를 사랑해서라거나, 비위가 약해서는 아니다. 우리 집안에선 예전부터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 개고기를 안 먹는 이유는 그러니까 말하자면 개고기를 먹는단 것에 대한 거부감이라기보다는

안 먹던 거니까, 왠지 찝찝하니까 정도의 부담감이랄까. (그렇지만 안 먹어 보았던 새로운 음식을 먹는 건 아주

좋아라 하니 찝찝함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도 되겠다.)

처음 와 봤으니 이것저것 맛을 봐야 한다 하여 수육이랑 탕이랑 테이블 위에 올랐다. 기름을 반들반들 머금은

고기가 나오는데, 속살은 흑염소고기처럼 결이 져서 부드럽고 껍데기쪽은 쫀득거린다. 맛이 나쁘지 않았다.

음식점 한 켠에는 '드시지 못하는 분을 위해 외부음식의 아웃소싱을 해드린다'는 안내까지 있었지만 적어도

내가 있던 룸 내의 사람들은 전부 잘만 먹더라. 딱히 먹으면서 추억할 만한 누렁이와의 기억도 없고, 그렇다고

먹으면서 점점 내 말소리가 개소리로 변해가는 것 같지도 않고.


집에 도착해선 다녀왔습니다, 대신 멍멍, 짖어서 인사를 갈음했다. 국물만 먹었냐고, 고기 정말 먹었냐고

그러길래 계속 멍멍, 그렇게 답하다가 한 대 맞고. 그러다가 개고기를 먹어선 안되는 이유에 대해서 나름

'치열한(이라 쓰고 저열한, 이라 읽는다)' 논리 싸움. 우리 윤씨는 대대로 개와 잉어를 피했다고 하길래,

조상이 개나 잉어에서 변신한 것도 아닌데 뭘 그러냐고 그러다가 멍멍거린다고 한 대 맞고. 뭐라더라,

개랑 잉어한테 도움을 입었다던가, 그래서 그랬다. 어차피 키우던 소랑 돼지랑 닭한테도, 그리고 키우던

깻잎이랑 상추한테도 도움을 입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집안에 도움이 된 게 어디 개와 잉어 뿐이겠냐고.


그리고 친가 쪽만 조상이냐고, 외가 쪽에서는 먹지 않냐고 했다가 외가 쪽도 안 먹는다는 말에 깨갱 한번.

뭐 대충 그렇게 일 합씩 주고 받는 상황에서 우리 집 족보가 과연 진짜일까욤, 요런 질문 던져봐야 별로

도움될 이야기는 아니어서 속으로만 하고 말았지만, 사실 그것도 그렇다. 씨족에 따라 존중하고 보살피는

동물이 있다고 치더라도, 그 씨족에 대대로 속해서 족보와 가계에 맞는 오리지널 정통 계보가 얼마나

되려나 싶다. 대부분 돌쇠, 점순이를 조상으로 갖고 있을 텐데.


할머님이 먹지 말라 했다고 당부하셨다고, 옛날 어른들 말씀이 다 이유가 있는 거라고 그랬다. 손에 잡히지 않는

'조상'이란 단어보다는 훨씬 와닿는 할머니의 말씀이었다니 왠지 뜨끔하긴 하지만, 옛날 어른들 말씀이라고

다 삶의 지혜니 살아본 경험이니 응축된 건 아닌 거다. 막말로 사람들 영혼 빼앗긴다며 사진찍히지 말라던 것도

고작 백년안팎 이전의 옛날 어른들 말씀이다. 혹시 모르지, 현대 과학으로는 아직 입증되지 않았겠지만 특정

성씨의 씨족에겐 개고기의 DNA와 충돌하는 치명적 오류가 있다거나 하여 옛 어른들의 경험칙으로만 구전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어젯밤은 하얗게 지새우고 말았다. 몸을 보하는 게 아니라 허하게 만드는..;


결국 우리집에서 개고기를 먹지 말라는 이유는, 그러니까 말하자면 개고기를 먹는단 것에 대한 거부감이라기보다는

개고기를 먹지 않았던(먹지 말라는 불문율이 내려오는) '전통' 혹은 '조상'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움이겠다. 그런 조심스러움에 더해 조상님들 심기를 거스르면 안 될 거 같다는 막연한 두려움, 외경이

개고기에 대한 찝찝함을 증폭시키는 이유랄까. 맛보고 나니 사실 맛있게 먹을 수 있었고 전혀 거리낌없이 먹을

수 있긴 했는데, 왠지 그런 부분이 걸려서 딱히 다음에도 또 먹고 싶을 만큼 땡긴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괜히

조상님들을 화내게 만들고 싶진 않아..란 생각이 깊숙이 인셉션되어 있는 거랄까. (아...이렇게 심지가 약했던 걸까...)


물론 그 밖에 개고기를 둘러싼 많은 찬반의 이야기들이 있다. 개는 인간의 친구라느니, 가장 유전적으로

유사한 생명체라느니, 혹은 반대로 우리 민족의 전통이라느니(사실 동남아니 다른 나라에서도 참 많이들

먹고 있다길래 깜짝 놀랬지만) 따위의 감성에 호소하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영양학적 근거를 통해 우수한

단백질 보충원(보양식꺼리)라는 입장과 요새같이 영양분 넘치는 세상에 굳이 개고기까지 먹을 필요가 있냐는

다소 실용성에 주목한 입장(음식의 맛 차이나 그런 요소는 모조리 무시한) 등이 있는 거다. 혹은 위생적으로

전혀 깔끔한 도축 과정이나 유통 과정을 거치지 않는 지금의 실태를 지적하며 이를 개선하라거나 아님 아예

금지하라는 입장도 있는 거고. 정답은 뭘까.


그냥, 개인적으로는 아무 생각없이 개고기를 가리키며 "개속살은 담백하니 맛있네요. 근데 개껍데기는 좀

쫀득하면서 돼지족발같애요."라고 이야기했다가 살짝 뜨아했다. 개속살, 개껍데기라...돼지속살, 돼지껍데기랑은

조금 다르게 울리던 단어들. 그리고 사실 단순히 이 문제는 개냐 돼지냐의 취사선택이라기보다는 육식이냐

아니냐의 선택이 좀더 근본적이고 깊이있는 프레임이 아닐까 싶다. 이전에 국과수에서 시체 부검하는 것보고

생각했던 것처럼. (음식의 미학-부검 견학의 감상.)


* 나름 개고기계에서 이름난 맛집이라 하여 첨부해 보는 정보. 먹을 사람은 먹어야지 싶어서.


#1.

대학신문 쪽에서 2학기 개강호에 회사 광고를 실어달라며 컨택이 왔다. 

인지도 못 올려서 안달난 회사도 아니고, 광고라니 뜬금없다 싶었는데 갑자기 1면에 커다랗게 광고를 싣기로.

G20 정상회의 및 비즈니스 서밋의 성공개최를 기원한다는.


후배들의 반응이 대략 두 종류로 갈릴 텐데 두가지 경우의 수 모두 부끄럽다.

저 쓰잘데기없는 대가리들 말잔치갖고 지랄을 트는구나. 일번.

우리나라가 '지구촌 유지'의 일원이 되고 개최국이 되었다니 뿌듯하구나. 이번.


일번은 내가 부끄럽고, 이번은-이번처럼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그들이 부끄러워지겠지.

정말 그렇다. G20 따위 말의 성찬만 벌어지는 행사 때문에 수능도 미루고, 택시기사들 두발검사도 하고,

온갖 광고를 통해 '국론 통일'을 기하는 그들의 정치적 의도와 유치하고 천박한 동원방식이라니.


하아..짱난다. 대학신문은 재정도 부족치는 않을 텐데 광고 유치에 있어서도 좀 걸러서 받지. 제길.



#2.


어제는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초청 오찬행사에 갔었다. 신라호텔에서 있었던 오찬,

왕의 형님, 상왕, 이상득 의원은 전날 본인이 만찬도 주재했다더니 여기 오찬에도 왔었고, 청와대에서 있었던

만찬까지 빠지질 않았다. 자원외교의 선봉장이란 이미지가 그에게 그만큼 절실한 거겠고, 굳이 볼리비아

리튬 자원의 중요성을 폄하할 생각도 없지만, 공석에서 일국의 대통령을 일러 '동생'이라 칭하는 그런 사람의

맨파워에 기대어 우리나라 자원외교를 하기엔, 너무도 불연속적이고 불안하기만 하다.


개인의 공과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로 해결되어야 할 텐데, 송민순 전장관이 격하게 비판한 것처럼 지금 정부의

외교는 사실상 외교가 아니다. 대강의 정책도 없고, 일관성도 없으며, 나름의 레버리지를 활용하겠다는 것도

없으니. '자원외교'도 이상득 일개인의 공적이 아니라 한국외교 전체의 공적이 되어야 하는 거다.


볼리비아엔 리튬만 있는 게 아니다. 전력 생산이나 광물 분야에 대한 적극적인 국유화를 통한 수익의 국가적

환원을 꾀하는 '빨갱이식 정책', 노인복지 및 학자금 지원확대를 통한 적극적 내수진작책까지. 자원만 빼먹을

생각말고 이런 아이디어를 배우는 건 어떨지.






● 일시 : 2010년 8월 20일(금) PM 18:18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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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최 : yztsche(이채, 異彩)

● 내용 : 본인이 알고 있는 도쿄/오사카의 강추 여행지를 알려 주세요!!
 
 1) 여행지의 이름과 가는 방법, 본인이 그곳을 강추하는 이유까지 적어주시면 좋겠습니다. 
 2) 동선과 시간을 감안하여 하루 코스를 제안해주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제공 : 초대장 8장

제공기준 : 여행 일정 및 장소에 대한 정보를 검토하고 가장 제게 맞겠다 싶은 정보를 주신 분을 여덟분 선정토록 하겠습니다^^

이왕이면 너무 잘 알려지고 가이드북마다 빠지지 않는 그런 곳 말고,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본인의 경험상 너무너무 좋았다 하는 곳이면 선정될 가능성이 높아지실 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초대장을 드리는 걸로 너무 고급 정보를 부탁드리기엔 염치가 없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제가 다녀와서 리뷰는 꼭 올리는 것으로 보답하도록 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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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S.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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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감기약을 삼키며 상상한다. 이 작지만 다부진 타블렛들이 식도를 지나 내려가다가 내 몸속 나쁜 것들이

윙윙거리고 가래를 뱉어대는 그 모터 스위치를 톡 건드려 꺼버리는 상상.



#2. 인셉션 후기삼아. 매트릭스스러운 아바타? 아바타스러운 매트릭스? 머릿속 칸막이, 꿈 속의 꿈을 보여주겠다는
 
거 자체는 이미 단물빠진 이야기, 비쥬얼과 이야기스킬은 인정하겠지만. 빨간약과 파란약 사이에서 균열 한번

감각하고 나면 먹고먹고또먹는 데까진 금방 생각이 와닿는 법이다.


그렇잖아, 나비가 나인지 내가 나비인지, 를 의심하기 시작한 이성의 '간지'에겐 나비가 나인데 그 내가 다시

나비인지 의심하는 것쯤이야.


#3. 손바닥 위에 똑바로 세워놓은 초록색 알약. 손바닥에 고인 짭조름한 약간의 수분으로 캡슐을 수직으로

붙여놓기엔 아무래도 무리, 손가락들이 제멋대로 휘청대며 캡슐을 떠받쳤다.






내 안으로 더이상 아무것도 들일 것이 없어. 이미 머릿속도, 가슴속도 꽉꽉 차 버렸다구.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신호장치들, 장비들은 고작해야 날 반쯤 살려놓은 상태로 유지시킬 뿐.




날고 싶다.





하트 모양의 술병, 모양새부터 범상치 않은 꼬냑. 그대의 심장을 꽉 채운 알콜을 조금 덜어 내게 옮겼다.

40%에 이르는 알콜도수에도 불구하고 강렬하고 사치스러운 향기, 그리고 뜨겁고도 매끈한 목넘김같은

점이 꼬냑의 특징이라곤 하지만, 이건 그 중에서도 우월하다.


후각을 마취시킬 듯 훨씬 짙고 단단한 듯 하면서도 혀끝에서 사르르 풀려나가는,

그렇게 한상 가득 차려내는 맛과 향. 나즈막하면서도 뭔가 밑에서부터 무너뜨려내는 느낌이다.


손바닥으로 꼬냑잔 바닥을 온전히 덮어주면, 덥혀진 알콜이 솔솔 올라오며 애초의 찌를 듯한 예기가

어느정도 녹아내리는 느낌인 것도 좋고, 병 속의 짙은 호박색 액체가 잔으로 옮겨지며 조금 엷어진

황금빛으로 변하고 조금씩 투명하게 노란빛 노을빛깔로 연해지다 사라지는 모습도 황홀하고.


빛깔의 변화는 일몰의 역순, 그렇담 일출의 상쾌함이나 뿌듯함이 일어야 할 텐데 그렇진 않고,

여유작작 술마시며 낙조를 구경하는 기분. 꼬냑을 좋아하는 이유.

한 잔이 두 잔을 부르고, 두 잔이 세 잔을 부르고. 세 잔이 네 잔까지 불렀던 거 같다.


그대는 나즈막히
당신은 언제라도 날 떠날 수 있어요
얘기하네

난 아무 말 못하고
두터운 목도리를 말 없이 벗어준 채
돌아서지만

세상에 어떤 인연은 변하지 않을지도 몰라
그래서 사람들 모두 껴안고서 조심스럽게 걸어가겠지

스쳐가는 말이라도 그렇게 얘기 말아요
나에게 그대는 언제나 말할 수 없이 고마운 사람
사랑하는 나에게는 모질게 얘기 말아요
언젠가 마음 변할 수도 있다고 말할 필요 없어요

세상에 어떤 인연은 변하지 않을지도 몰라
그래서 사람들 모두 껴안고서 조심스럽게 걸어가겠지

스쳐가는 말이라도 그렇게 얘기말아요
나에게 그대는 언제나 말할 수 없이 고마운 사람
사랑하는 나에게는 모질게 얘기 말아요

언젠가 마음 변할 수도 있다고
말할 필요 없어요
필요 없어요
언젠가 마음 변할 수도 있다고
말할 필요 없어요

"루시드 폴, 그대는 나즈막히"
어쩐지 오늘 기분이 무지하게 싱숭생숭했다. 그러고 보니 어제는 납량특집인 듯한 '군대 꿈'을 꿨던 것 같다.

잔뜩 얼고 쫄아있던 이등병 시절, 밤에 코 곤다며 두루마리 휴지를 던지고 쓰레빠를 던지고 하이바를 던지고

급기야 하이바를 뒤집어 씌우고 주먹질에 발길질을 해대다가 새벽까지 내무실 전체를 뒤집어놨던 말년 병장의

패악질이 생생히 되살아났었다. 그치만 어쩌나,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밤에 잘 때 코에다가 휴지를 돌돌 말아

(소음기 삼아) 끼우고 자는 거랑, 그자식 팬티니 반팔티니 널어주고 거둬오고 개켜줄때 한개씩 두개씩 돌에

감아 지뢰밭에 던져버리는 정도. 그조차도 지 팬티 자꾸 사라진다며 또다른 낙수물효과식의 구타를 낳았지만.

아, 휴가 나오던 날 세살인가 어리던 바로 윗고참이 아침에 주임원사실에 가두고 갈구고 주먹질하던 것 역시

잊을 수 없는 기억. 훈련소에서 특식이라며 나눠줬던 '치토스'의 '따조'가 허가받지 않은 놀이기구라며 전부다

수거해가고 다먹은 과자봉지를 네모나게 '파지해서' 버렸던 기억도 있다.


뭐, 재미있던 기억도 있다. 민노당이 최초로 원내진출하던 때 BX를 털어 밤새 복분자주를 부어라 마셔라 했던

기억, 밤에 동기들과 BX 냉장고 불빛을 조명삼아 맥주궤짝에 앉아 한박스씩 마셔대던 기억, 그리고 여전히

남아있는 그 녀석들까지. 그 때나 지금이나, 군대는 인간과 인간성에 백해무익하다고 믿고 있지만.


네이트 대화명을 바꿨다. "장어를 뜯고 삼계탕을 마시니 남는 것은 애정욕."에서, "6년전 오늘, 제대할때만 해도
 
꿈많던 소년."으로. 2004년 8월 5일, 제대를 했었다. 무려 2년 5개월하고도 1주일, 지랄같은 군생활을 마치고

거대한 마침표, 혹은 쉼표를 내려놓는 기분이었던 것 같다.


기념삼아, 바로 그날, 6년전 오늘 올렸던 싸이월드의 끼적거림 하나쯤 스크랩.



궁극의 업. (2004.08.05)

정말이다. 이제서야 비로소 난 몇가지 아직 내가 희미하게밖에 잡아내지 못하던 감정표현들과 상황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거 같다. "감정이 복받치는" "심장이 두근거릴정도로 좋은" "가슴이 벅차오르는" "가슴이 부풀어오르는"

"죽도록 좋은""뱃속이 요동치도록 좋은"..게다가 몇몇 가슴시리도록 절박해보이는 갈구의 표정들, 자유의 몸짓들...

그런 놓여남의 순간들...그런 것들이 나름대로 단단하고도 생생한 느낌으로 내 안에 이제야 각인된 듯한.


어제 잠시나마 평소 늘 가던 자기계발실의 두번째 자리에서, 아무것도 생각이 안 떠오르고 할말을 집어낼 수 없이
 
멘탈이 아웃된 상황에서 꾸역꾸역 그 공간에서의 마지막 일지를 적었다. 아무 생각도 못할 정도로 그저

좋아서였는지, 혹은 실감이 안 나서였는지, 아님 한번 풀려버린 긴장을 추스리지 못하고 여전히 늘어져

버려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년휴가 복귀때 꼭 챙겨간 일기는 막판까지 아무런 기억도 남기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마무리를 할 생각이었을 뿐인데, 감정이 토해지더군.


울컥울컥, 제대다 제대. 이제 여길 뜬다. 약간 늦었다. 아님 약간 이른지도 모르겠다. 아무생각없이, 제대다 제대.


넘 경계심없이 올라갈 때까지 올라와버린 걸까. 살짝 돌아갈 길이 걱정된다. 이 '궁극의 업'된 경지에서...어떻게
 
해야 상처받지않고 연착륙할 수 있을지. 그야, 제대하고 나서 세상이 뒤집히길 바라거나 갑자기 모든 일이 날

중심으로 훌훌 풀리길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럴 거라 여길만큼 내가 '불손'하진 않은 거 같다. 다만, 아무리

'겸손한' 해방감일지라도...지금과 같은 거의 완벽하리만큼 충만한 행복감은, 금세 스러져버릴거란 게 뻔한 걸.


마치 무진장 좋은 영화를 봤을 때 당분간 입을 딱 다물고 그 황홀함을 두고두고 되새기려 애쓰듯이..그렇게

당분간은 혼자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어느 순간엔가 입을 떼게 될 거란 걸 알고 있는 데다가,

더이상 '군바리'라는 핑계로 주위에 투정부릴 수 있는 조건이 아니기에 조금쯤은 입다물고 지금의 감정을 아껴서

맛봐야겠다. 살아간다는 게 어찌할 수 없는 늙어감의 동의어라면 어찌할 수 없는 상처입음 또한 같은 거 같다.

감정이 움직움직하며 긁히고 까이고 패이고 혹은 흉터가 이지러지거나 조금씩 상실해 가기도 하고, 그렇게

조금쯤 '신품 인간'의 기준에서 빗겨나가는게 피할 수 없는 과정인 거 같아서..흔치 않은 이런 업에 올랐을 때

내 의지와 상관없이 외부로부터의 충격으로 경착륙 내지 추락해 버리고 싶진 않거든. 최대한 이뿌게, 고아한

곡선을 그리며 일상적인 평정심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우왁스런 진폭으로 리듬을 헝클어뜨리는 일은 사절.


몸값 어쩌구 하며 만남을 '종용'하거나 '선택'하려 하던 군바리의 투정은 이제 접어야 할 때, 인간들과 같은

생활을 살며 비슷하게 바빠지겠지. 제대했고, 세상이 경천동지는 커녕 어줍잖은 기상 이변조차 없이 멀쩡했고,

여전히 아무일 없이 조용했거나 여전히 어제처럼 시끄러웠고, 사람들은 여전히 두다리로 걸어다녔고,

전화통에 불이 나는 일도 없었고, 행인들이 화환을 걸어주거나 꽃을 뿌려 주는 일도 없었으며, 여전히 땀은

끈적하고 불쾌했고, 밥을 안먹으면 금세 배가 고파왔고, 이제 슬 피곤을 느끼며 잠도 오기 시작했고, 내가 아는 한
 
오늘을 임시 공휴일로 삼거나 국경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은 절대로 없었다.


그렇게 어쨌든 난 홀로 궁극의 업된 상태를 체험하며 제대했다. 제대.




* 제대가 오신다. (2004.07.06)

끝나간다. 담주 화욜임 말년휴가 나간다. 부산가서 이틀정도 놀다가, 잘함 알바 거기서 구해서 한 이삼일 더

일하고=놀고 할지 모르는 일이며..2주간의 휴가를 마치고 또다시 드러운 기분으로 복귀하면 8일만 개김 된다.

머 제대선물도 받을 거 같고, 제대회식도 뽀지게 함 할 테고. 부대 함 삥 돌면서 인사해주고, 그러면...

클클클...나도 제대란 걸 하는군.


한달 고참들이 제대하고 나서야 나도 제대하겠구나, 란 느낌이 정말 찐하게 들었다. 제대란 걸 하긴 하는구나.

이제 내 차례구나. 여전히 전역신고하고 부대를 내려올때의 기분이 상상조차 안가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 부대

정문정도까지는..내 상상력이 뻗어갔다. 제대를 하면, 하면서,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장면이 몇개 더 늘어날 거

같다. 아우슈비츠의 수용소에서 탈옥한다던가, 쇼생크탈출의 포스터와 같은 액션에 담긴 감정, 사형선고받았다가
 
전기의자가 고장나서 무기형으로 감형되는 죄수, 그 정도까지는 감정을 얼추 이입할 수 있지 싶다.


외박 나갈 때마다 집에서 그런다. 너처럼 유난하게 군대 싫어하는 넘 첨 본다고. 머, 어느 집의 경우를 보셨는지

몰겠지만, 제대회식할 때쯤 보면 그래도 내 '유난스러움'이 외롭지 않단 걸 느낀다. 다들 감춰놓고 있었거나,

잠시 무뎌져 있었거나, 혹은 제대하기 위해 걍 외면하고 있었거나...그게 폭죽처럼 펑펑 터지는 때가 제대회식이란
 
자린 거 같다. 남은 자들에 대한 위로, 좆같음의 새삼스런 일깨움(얄밉다..), 바깥에 대한 동경...근데 알아버린

거 같다. 군생활 끝, 이란 말로 어떤 일상을 매듭짓는 일이라거나 새로운 시작 등의 말로 심기일전해보려

해보아도, 내가 분기탱천하는 그 순간에 세상 전체가 깨어 새로운 의욕으로 쇄신되는 것도 아닐 뿐더러 이미

'못 가볼 길'이란 건 하루하루 내 전망을 좀먹고 있는 셈인 탓이다. 아니, 그다지 부정적으로 말하거나 보고

있는 건 아니다. 존재가 귀속되는 공간과 시간, 그 밖의 제반조건들-객관적이던 주관적이던-자체가 존재를

구성한다니까. 그냥 내가 바라볼 수 있는 지평이나, 내가 발딛을 수 있는 지형이나..내가 코드와 모드가 통해서

소통할 수 있는 인간群이나..그런 것들은 새까만 어둠 한가운데서 작은 꼬마전구 주위의 세상을 구성하는 셈이다.

그림자를 가진 것들.


해서, 제대라는 이벤트를 수행한다고 미션 클리어, 넥스트 스테이지, 이딴 문구가 뜰 리도 없고, 아마 2002년

1월 쯔음의 세상이 나름대로 나이먹은 채 '연속'되어 성큼 다가올 거 같다. 비슷하게 돌아가는 세상에, 비슷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비슷한 단검과 방패를 가지고, 비슷한 능력치에 약간의 경험치를 더한채 복귀한다. 환류.


제대가 오신다. 아무런 환상이나 근거없는 기대 따위 버리고 replay다. 결국 같은 곳에서, 약간의 문스텝으로

시동을 걸어줄지언정, 2년 6개월은 나나 너나 훌륭하게 해치웠다. 글치 세상아?ㅋ

몇 년 전부터 와인을 마실 때 꼭 코르크마개를 모으려 들었던 윤OO씨(29세, 서울). 덕분에 테이블

건너편 끄트머리에 놓인 코르크마개를 집으려다 물잔을 엎지르기도 하고 넥타이를 와인잔에

빠뜨리기도 하는 고난의 길을 걸어왔다고 술회한다. "와인색으로 넥타이를 염색한 건 차라리

양반이었죠, 처음 마셔보는 와인의 마개를 잔뜩 눈독들이고 있다가 재빨리 집었는데, 마침 동석했던

상무님이 본인과 같은 취미를 가졌다며 은근슬쩍 내놓으라고 압박하실 때는 어휴. 옆구리 찔리기

전에나 드렸음 갈비들이 아프지나 않을걸."

그 뿐만 아니다. 럭셔리하고 우아한 와인 바에서 멋진 손목 스냅을 보여주는 웨이터들이 '그깟

코르크마개'를 탐하는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아 보일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는 고백이다. 사실,

코르크마개가 별건가. 코르크나무 껍데기가 발바닥 각질처럼 두텁게 자라나면 적당한 사이즈로

잘라서 일정한 약품처리를 거쳐 와인병을 막아두는, 말그대로 '병뚜껑'인데 말이다.


햇살이 사방으로 번지는 것 같은 모양을 하고 깨물면 이가 시리거나 깨지는 콜라병 뚜껑,

얄포름하고 오묘한 질감을 차마 훼손치 못해 플라스틱 밑창을 물어뜯게 만들던 요쿠르트 뚜껑과

전적으로 같은 부류에 속하는 거다. 뚜껑, 혹은 따꿍이라고도 불리는 그런 것들.

그렇지만 이 녀석들은 뭔가 달랐다. "함께 있을 때 우리는 무서울 게 없었어요." 윤씨가 말했다.

세계 곳곳에서 넘어온 녀석들을 한 곳에 모아놓으면 서로 포도덩굴도 잡아당기고 이탤릭체의

글자들도 분지르고 투닥투닥 싸우는 듯 하다가, 어느 순간 서로의 덩굴을 꼬아 만든 해먹 위에서

향긋한 코르크 내음을 풍기며 뽀골뽀골 재미지게 놀더라는 그의 백일몽.


그들의 가장 큰 위기는 알제리에서 왔던 코르크가 프랑스 아이들과만 놀겠다며 편을 가르려

들었을 때, 그리고 중국에서 넘어온 정체불명의 과실주뚜껑이 자기도 와인코르크라며 지독한

냄새를 풍겼을 때였다고 추억하는 윤씨의 눈가에 화이트와인인 듯 눈물이 맺혔다.

마지막으로 보내기 전 열맞춰 늘어세운 녀석들. 모아봐야 잡동사니, 코르크마개에 집착하는

것도 일종의 병. 습관 하나를 버렸고, 그들이 꼬물대던 공간엔 다소 텁텁해진 코르크 냄새만

남아버렸다. 굳이 더하자면 또하나, 코르크의 매끈하고 보드라운 촉감도.





@ 주펀, 타이완.


늘 여행에 나설 떄마다 부딪히고 마는, 걷지 못한 길,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

그렇지만 이번 여행에선 외려 다른 마음이 욱씬거렸었다. 그것은 지나온 길에 대한 미련.

인파의 흐름을 거꾸로 역주행을 할지라도 다시 한번 되짚어 돌이키고 싶었던 순간, 장소, 기억들.


그래서, 골목길 아래 황금박물관의 간판이 반짝거리고, 그 너머 퍼렁 불빛이 잉크 번져나가듯

일렁이는 낯선 마을이 있었지만 굳이 골목길을 헤집고 들어가지 않았댔다. 모든 골목들을 전부

샅샅이 열어보려는 건 애초 욕심이었다.





단단했던 공기를 찢고 지면 위에 바퀴를 내리고 나면 이미 마음은 머리 위 캐비넷에 손을 뻗어 짐을 꺼내들었다.

잔뜩 부풀었던 날개가 가라앉으면서 문득 다리도 저리고 온몸이 뻐근하게 앙탈하기 시작하는 거다.


엘리베이터가 중간에 덜컥 멈춰선 채 십수명과 함께 가삐 이산화탄소를 뱉고 산소를 집어삼키는 그런 느낌,

비좁은 공간에선 더이상 못 배기겠다고 뇌에서부터 폭죽처럼 터져나오는 경고음. 죽을지도 몰라, 라고 덜컥

들쑤셔지는 폐쇄공포증과 같은 두려움.


소떼처럼 우르르 일어서선 한걸음도 움직이지 못하는 그들의 조급하고 두려워하는 듯한 등을 바라보고 있자면

나 역시 호흡이 가빠지고 두려워지는 거다. 얄미운 의자들로 만들어진 좁은 통로 속에서 낑긴 채 앞뒤로 사람이
 
가득한 채, 옴쭉달싹도 못하고 여기서 평생 못 벗어날 것을 예감하듯.







ㅇ 제출 테제 : 사랑은 (뿅뿅뿅)야 나머지 반은 네가 입었어.

ㅇ 출제 의도 : 사랑은 뭘까요.

ㅇ 응답 방법 : 밑줄치고 기울이고 가로치고 글자키운 (뿅뿅뿅)
                     세 글자를 맞춰주시면 됩니다.


ㅇ 정답 선물 : 티스토리 초대장 5장 선착순 배포


감사합니다~* (특히 진리를 깨치신 조석님 감솨.ㅋㅋ)









사막형 전투복에 무장을 단디 한 미군이 총을 꼬나쥐고 자세를 잡았다. 그런 그림만 아니었으면, 언뜻 비치는

글자로 추측컨대 아프가니스탄의 미를 대표하는 "MISS AFGHANISTAN" 정도로 기꺼이 오독해낼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쉬운 일이다.

지인이 아프가니스탄에 다녀오며 현지에 주둔 중인 미군의 피엑스에서 선물로 사가져온 것이었다. 여전히

산발적인 전투가 진행중인 배틀필드, 실제로 탱크들이 저렇게 뿌연 흙먼지를 날리며 기동하고 다니는 게 전혀

낯설거나 드문 풍경은 아닐 거다. 

험비를 타고 경계중인 미군. 모랫빛 황량한 풍경에 건조하게 녹아들어간 사물들이다. 그러고 보니 포장박스도

은근히 모래색의 위장술을 전개 중이다.

태스크포스 로지스틱스. 미군의 로지스틱스, 미군의 피엑스는 아프간에도 이런 맞춤형 머그컵을 팔고 있었다.

드디어 박스 안에서 튀어나온 머그컵, 손잡이가 붙은 모양이 왠지 아프간같은 곳에 딱 어울릴 법한 실용성을

강조하는 것만 같았다. 디자인이나 장식이 지워지고 전적으로 실용성에 포인트가 맞춰진 듯한.


그래도 아프가니스탄 전도와 몇몇 주요 지역이 표시되어 있었다. 많이 익숙한 지명들, Peshwar니 따위도.

작전명은 Enduring Freedom이었구나. 무려 Int'l Security Assistance Force. 그놈의 씨큐리티를 미군들이

지켜내고 있는 건지 헝클어뜨리고 있는 건지, 혹은 보다 정확히는 헝클어뜨리고 다시 쌓고 있다는 게 맞겠지만.

여튼 굉장히 자족적이고 자기애적인 작명이다.

'미스 아프가니스탄'으로 끊겨 읽혔던 문구의 풀 버전은 다음과 같다. 'Mission in Afghanistan'.


어디고 여행을 다녀오면 기억에 남을 만한 선물을 하나쯤 남겨오고 싶은데, 아프가니스탄 정도 되는 곳에

다녀왔다면 미군 피엑스에서 요런 기념품 하나 괜찮은 거 같다.




온통 녹색식물에 잡아먹힌 듯한 건물, 시멘트의 날빛깔이 그대로 드러난 벽면에서는 녹슨 쇳물이 눈물자국을

남겼고 무시무시하게 자라난 덩굴식물과 잡초들은 건물을 안팎에서 온통 포위했다.


그 와중에도 허름한 창문으로 빗겨내는 풍경은 용케도 푸르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

비단 그 한 구획만이 아니다. 건물 전체가 온통 위아래에서 진격해 들어오는 초록빛 전사들에 포위되고, 포획되고

포승줄을 이고지고 말았다. 그야말로 폐허.

저 정도면 엔간한 사람은 저 뭄을 삐걱, 여는 동작 하나에도 적잖은 부담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무섭도록

싱싱한 저 초록빛 대궁과 줄가리들을 갈갈이 찢어놓아야 비로소 열릴 법한 저 초록빛 매듭으로 꽁꽁 옹쳐매진

듯한 문 앞에서. 에라, 짓기는 인간의 손을 빌어 지어졌으되 이제 니네꺼 해라. 이러면서.

그런 폐허였다. 저렇게 유리창 안쪽에 소담하고 복스러운 꽃덩이를 뭉클뭉클 품고 있던 곳은 그런 폐허였다.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다. 저건 인간의 손으로 섣불리 되어질 것이 아니라, 그냥 인간이 눈감고 있던 공간에도

엄연히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무언가 움트고 자라고 피고 지는 그런 생동감이 가득 차 있음을 항변하는 듯한

그런 포스를 내뿜고 있는 무엇이었다.

꽉 찬 공간을 밑에서 차곡차곡 채워나가는 듯 했다. 초록빛 잎사귀들은 도도하게 건물 내 공간을 잠식하고

온통 차지한 채 창밖으로 그 부피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언젠가 저 문을 열면 사방으로 튀어나가는 얌체공들처럼

덩굴손들이 사방으로 뻗쳐나갈지도. 혹은 자신의 힘을 이기지 못해 어느 순간 문짝을 온몸으로 밀며 바깥세상을

채워나가기 위해 후퇴없는 전진을 계속할지도. 겨울이 오기 전까지.





@ 헤이리.
어느날의 올림픽공원,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집 바로 옆에 있었어도 한번을 제발로 갔던 적이 없던 곳인데,

막상 멀어지고 나니까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어슴푸레하게 보이는 평화의 문...


사실 올림픽공원도 내가 변해온 만큼이나 계속 변해왔다. 몽촌토성의 자취를 따라 그럴듯한 산책로가 차례로

정비되었고, 변변한 구멍가게 하나 찾기 쉽지 않던 곳에 디초콜렛이니 스타벅스니 많이 생겼다. 이런 곳 근처에

살고 있는 건 정말 꽤나 멋진 장점을 안고 있는 셈인데, 사실 지금도 선릉공원이 멀지 않은 곳이면서도 거의

본체만체 중이니 할 말이 없다. 

회사 동기들과 갔던 길이었다. 두툼한 것들이 시야를 가리고, 어둠이 내려앉은 밤하늘을 배경으로 선명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무슨 그림자극같기도 하다.

우아하게 커피를 꼬나쥔 녀석, 그리고 다소 소심한 듯 조용한 몸짓으로 고요를 지키고 있는 녀석, 길이와 굵기로

다른 사람들을 압도하는 녀석, 그리고 긴머리 여자사람 하나까지. 이제 뒷모습만 보아도 누구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 쌓이고 있다.

뭔가 부조화스러우면서도 그럭저럭 뒷태가 괜찮은 건, 이들이 남자사람 둘과 여자사람 하나로 묶여서가 아니라

그냥 친구들이어서다. 워낙 개(성)스럽고 확실한 성깔들을 가진 분들이라 쉽진 않지만, 그래도 뭐.






갓 구운 따뜻한 쿠키와 브라우니 빛깔의 가구가 약간은 낡고 헤진 느낌으로 느슨하게 배열된 곳.

잔잔하게 나오는 노래에 야 좋다, 하다가 어느 순간 책읽기나 다이어리쓰기에 몰입하면 금세 귓전에서

지워진 채 조용히 자신에 몰입할 수 있을 정도의 분위기.


저런 식으로 길쭉이 내려다보는 전등에서 따스하게 쏟아져내리는 백열등 불빛도 좋고. 눈앞에는

읽고 싶은 책 한권과 다이어리, 펜 하나, 그에 더해 커피 한잔 정도면 딱 좋겠다.

그치만 현실은 시궁창.  내 마음속 까페엔 불이 꺼졌다. 내일 행사 한 건. 내일모레부터 삼일간 같은 종류의

다른 행사 한건. 그리고 나면 토요일에는 최종시험. 까페에서의 유유자적한 시간을 그리는 건 가뜩이나

월요병에 시달리는 스스로를 위무하려는 아스라한 백일몽. 


@ Spring comes, Rain falls.



DDR. 아마도 이천년대를 전후해서 한참 붐이 일었던 그 즈려밟기 게임을 떠올릴 사람도 있을 거고, 컴퓨터를

좀 아는 사람이라면 DDR 램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근데 왜 난 다른 게 계속 생각나는 걸까.


가끔 좀 야한 생각만 가득찬 게 아닐까 싶긴 하지만, 사실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 아닌 척 하지만 밤낮으로

다들 열심히 하고 계시잖아? 밤꽃냄새를 알고 그 비유 대상을 찾는 게 아니라 그 비유대상부터 잔뜩 익숙해진

후에 어느 산에쯤 올라서는 '아~~ 이게 밤꽃냄새구나.ㅋㅋㅋ'할 텐데. 가끔 그런 상상을 하면 사방에서
 
새어나온 것들로 걸진 홍수라도 나는 건 아닌지 끔찍한 기분이 되곤 한단 말이다. 여하간에.


아. 그래서 여기의 DDR은 Deutsch Democratic Republic, 구 동독의 약자. 헤이리 토이뮤지엄에서 구 동독의

아이들도 별다를 바 없이 장난감을 갖고 놀았다는 증거를 찾았다. 머, 사람 사는 게 여기나 거기나. 밤꽃냄새나

액냄새나.




@ 헤이리, 토이뮤지엄 내 非사진촬영금지 구역에서.
@ 강화도


#1. 국립의료원에서 황열병 주사를 어제 맞았다. 치사율이 무려 오백만분의 일이라던가. 의사가 말하길 그렇게

낮은 수치는 아니지만, 그래도 가기로 한 거 안 갈거 아니니까 맞으셔야죠, 그랬다. 실은 이달 말께 가기로 했던
 
아프리카 출장이 무기 연기되는 바람에 딱히 오백만분의 일이라는 운세를 시험해볼 필요는 없었지만 그래도

십년이나 효과가 지속된다니, 이김에 (꽁짜로) 맞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싶었다.


삼일정도 금주를 하라 했고, 며칠 몸살기운이 있거나 컨디션이 안 좋을 수 있다 했는데 딱히 모르겠다. 아직

살아있는 거 보면, 오백만분의 일의 확률은 날 비켜간 듯. 그 정도면 높지도 낮지도 않은 확률이었는데.



#2. 그러고 보니 막걸리를 마시면서 포스팅중. 객관적으로야 삼일이 채 안 지났지만, 이미 내 맘속으로는

한 삼백일쯤 지난 듯 하니 패스.



#3. 5월말부터 월, 수, 금, 퇴근 후 일곱시부터 열시까지 교육을 받고 있다. 이제 다음주말에 시험만 보면

끝나는데 이걸 내가 왜 하고 있나 싶기도 하고, 또 어쨌든 꾸역꾸역 출석하고 중간셤도 나름 잘 보고 하는 걸

보면 어쩔 수 없는 '성실함'이 빛을 발하는 거 같기도 하고.


그냥, 회사를 다니면서 목표를 상실한 듯한 느낌에서 벗어나려면 조금씩 단기 목표를 세워가며 사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어영부영한 맘으로 시작했던 코스인데 끝이 보여서 다행이다. 내일 열두시부터 여섯시까지

여섯시간동안이나 수업 겸 평가를 들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깝깝하긴 하지만서도.


#4. 종일 주룩주룩 비가 내렸다. 아침부터 심각하게 찌푸렸던 하늘에서 물방울이 톡톡 돋아나는 것부터 보았던

터라, 내내 기분이 좀 처져 있었다. 게다가 다음주엔 무슨 행사가 그리도 많은지, 손가락은 열 개인데 키보드

자판은 무려 백네개나 되어서 힘겨웠던 하루였던 거다.


주말에 일박이일로 여행이나 갈까 했는데. 아쉽게 되고 말았다.



#5. 아...막걸리 한잔에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려온다. 오백만분지일의 가능성이 꿈틀거리기 시작한 건가.

국립의료원에서 황열병 예방주사를 신청한 사람이 생각보다 많아서 놀랐는데, 이미 내 앞으로 사백구십구만

구천구백구십구명의 사람이 무사히 주사를 맞고 돌아갔던 건지도 모르겠다.





#0. 태국에서 언젠가 먹었던 맥주. 싱하. 태국 도처에 널린 사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수호상-아마도

해태?-의 심볼이 새겨진 담담한 색감의 맥주캔이 책상 위에 놓였다.


#1. 파나마에 간 G는 운하 앞에 서서 "한국에 돌아오면 열심히 하겠다"고 소회를 밝혔다고 한다.

자칫하면 내가 따라갈 뻔했던 출장. 아무리 파나마의 수도 파나마의 가로수가 온통 망고나무인데다가

잘 익은 망고가 뚝뚝 떨어져 아찔하고 강렬한 향을 피워올린다고 해도, 그 꼴 안 봐서 다행. (이랬다가

또 사찰당해서 회사 쫓겨나고 법정투쟁 옥중투쟁해야 하는 건 아닌지. 어제 피디수첩에서 다룬 '민간인

사찰'이야기를 보신 분으로부터 진보신당 당비 이제 그만 내는 게 어떠냐는 이야기를 들었던 거다.)


#2. 세르비아 총리, 방글라데시 총리 등이 많이 왔다갔다 하면서, 나름의 '경제외교'를 펼친다. 외교의

많은 부분이 국가의 경제발전을 위해 온통 기울여지고 있는 추세상 새삼스레 '경제외교'랄 것도 없겠지만.

문제는 그런 제3세계랄까, 개도국의 경제성장을 위해 유입되어야 할 외국의 자본과 상품들은 선택적으로

'시장'을 택한다는 것. 그들은 국가가 아니라 (국가가 조성해놓은) 시장을 본다. 시장 규모, 더한다면 구매력.


정치인들의 연설과 판촉의 꼬드김을 들으며 경제인들은 속삭인다. 저긴 시장이 넘 작아서 먹을 게 없어.

이래서야 개도국이 발전하고 절대빈곤의 수준에서 탈출할 가능성은


일국 차원에서의 인민 대 인민 간의 관계를 규율하는 민주주의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많은 부분 상식이 되었고

그 상식에 기대어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외치며 진보를 지향한다면, 지구적 차원에서는 영 아니다. 국가 대

국가간의 관계, 혹은 시장 대 시장간의 관계에서는 민주주의 따위 통하지 않는다. 적자 생존, 규모의 경제,

형식적이나마 국가 내를 규율하는 1인1표 따위의 평등한 원리 대신 1원1표의 원리로 선택되고 결정되는

국가, 그 안의 국민들의 미래. 그나마 국제연맹이니 국제연합이니 칸트의 이상이 살아있던 때가 있었지만,

더이상 국제 관계는 정치가 아닌 경제가 규율하고 있는 거다. 외교와 민주주의는 더욱 멀어졌고.


#3. 그 와중에 누구는 전시작전권을 소고기와 팔아먹는다. 이 기묘한 셈법은, 상품을 내어주며 돈을 주는 것과

같다. 그리고 전작권 환수연기에 동의해주어서 감사하다니. 소고기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갈지, 실제 계산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뻔하다는 생각이 진하게 든다.


#4. 뭐랄까, 물리적 거세를 해봐야 그런 놈은 넘쳐나는 성욕을 주체하지 못해 허벅지라도 대고 부비댈 놈이다.

이상, 술꼬장.



저토록 처참하게 벌어진 입구녕을 통해 붉은 내장 깊숙이서부터 삐져나온 거대하고 날카로웠을 말풍선은,

아마도 이녀석들이 바싹 말려진 채 꼬챙이에 꿰여 여까지 오는 그 길 중간쯤에서 떨궈지고 말았을 거다.


그야말로 소리없는 아우성. 잔인하기도, 비장하기도, 또는 립씽크하듯 코믹하기도.

(노가리 사진갖고 노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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