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선릉역 인근의 코코브루니였던 거 같은데, 먼저 눈에 들어왔던 건 의외로 여자화장실이었다. 화장실 근처로


자리를 잘못 잡았던 게 되려 저런 재미난 표지판을 인지할 수 있었다. 아주 심플한 모양새로도 누가 봐도 여자임이


분명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었음에도 굳이 위에 정식의 심심한 표지판을 하나 더 얹었다.


남자 화장실 역시 마찬가지. 누가 봐도 남자일 수 밖에 없는 그림으로 분명히 의미를 전달하고 있음에도 재차


문자와 클리셰에 가까운 이미지를 통해 실수의 여지를 제로에 가깝게 끌어내렸다.






이화동 인근의 어느 까페였던 거 같은데, 무심코 들어간 화장실에 남녀 구분을 이렇게 심플하고 명료하게 해놓은 거다.


원목의 느낌을 그대로 살린 문짝에다가 하얀색 페인트로 깔끔하니 눈에도 잘 띄고 이쁘기도 하고. 맘에 들었다.


여자화장실에도 마찬가지, 다소 밋밋해보였던 남성의 그것에 비하면 제법 배려를 많이 한 듯 큼지막한 모양새를


띄고 있다는 점에서 디자이너가 얼마나 섬세하게 고민했는지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겠다.




올댓재즈였던가, 핸드폰에 묵혀둔 케케묵은 사진인지라 어디에서 찍었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아마도.


등신대 크기의 남자와 여자가 자못 분위기 넘치는 포즈를 잡고 화장실 문에 기대어 있으니 헷갈릴 일은 없겠다만


혹여 여자의 잘록한 허리라거나 남자의 근육질 팔목에 혹해 이성을 좇아 문을 열지 모를 일이다.





성을 주제로 한 테마파크이다 보니 아무래도 화장실 표시부터 남다르다. (그리고 화장실 문이 절대 닫혀있지 않도록


쇠사슬로 열어놓은 채 고정해놨다는 건 또다른 포인트) 큐빅인지 뭔지, 그런 소재를 가지고 남자의 몸을 형상화하고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이 눈물만은 아닙니다'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듯한 남자화장실 표시.


그리고 제법 현실적인 몸매를 갖춘 여성의 닭똥같은 낙루. 여자화장실. 더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런던 타워 브릿지 인근의 애프터눈티 까페에서 마주친 화장실 표시. 남자와 여자, 트럼프의 킹과 퀸의 이미지를 그대로


갖다가 화장실 표시로 쓰고 있었다. 여왕이 통치중인 나라에서, 왠지 트럼프도 영국에서 생겨났을 것만 같은 데다가,


젠틀맨이란 표현 역시 영국에 맞춤한 표현이다 보니 여러모로 절묘한 표시란 생각.


남자용입니다. 젠틀맨, 킹.


여자용입니다. 레이디, 퀸.





싱가폴 Mount Faber Park의 케이블카 정류장, 땀을 많이 흘리며 걸었음에도 맥주를 큰 잔으로 한잔 원샷하고 나니


아무래도 생리 현상은 피할 길이 없다. 급한 맘에도 모처럼 재미난 화장실 표지판을 만나니 반가운 맘에 사진부터


찍고 나서 입장.


옆에 붙어있던 여자 화장실 역시 귀여운 표지판이 딱. 포인트는 다소곳이 모은 손과 살짝 올린 한쪽 다리 되시겠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만난 화장실 표시. 이야..내가 여태 한국에서 돌아본 화장실 중에서 거의

손꼽히는 화장실 표시가 아닐까 싶다. 나무결이 슬쩍 드러나는 판을 마치 쪼갠 듯이 잘라내서는

이렇게 깔끔한 도안으로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고, 한국어와 영어로 깔끔하게 알리는 표시.


한옥마을에 어울리는 화장실이라고 뚝,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시간차를 두고 메아리로 울리는

푸세식변기, 그리고 허름하고 오래된 화장실 표시를 냅둬서는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시설은

쾌적하고 깨끗하면서도, 서구화된 채 천편일률적인 표시 대신 이렇게 특색있고 느낌이 사는

표시를 달아 붙이는 것. 가장 눈에 안 띄지만 또 가장 중요한 곳에 대한 세심한 손길이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높이는 첫걸음이지 않을까.




* 여행을 다니며 결코 빠질 수 없는 '답사지' 중 하나가 그곳의 화장실이란 점에서, 또 그곳의

문화와 분위기를 화장실 표시에까지 녹여내는 곳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국내외의 특징적인

화장실 사진을 모아보고자 합니다. 자신이 본 최고의 화장실 표시를 제보해주실 분은 댓글을

부탁드립니다~!





이수영이 뮤직비디오를 찍었다는 큐슈 유센테이코헨의 화장실 표시. 울창한 녹색 수풀 사이로

토토로가 튀어나올 것만 같이 야성적이면서도 깔끔하던 일본 전통정원은 정말 일본스럽도록

구석구석 잘 정돈되어 있었고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이 담뿍 쓰여져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화장실표시조차 이렇게 공들여 만들어진 타일조각 작품이니 뭐,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남자 화장실을 손발 쫙 펼친 적극적인 남성의 큰대(大)자 모양의 표시로 형상화했다면

그와 달리 손발을 곱게 모으고 노란색 끈으로 동여매인 듯한 여성의 모습이 대비된다.

빨간 색감이 산뜻하고 이쁘긴 한데, 이런 화장실 표시에서도 역시 일본에서 여성을 보는

시각이랄까 암묵적으로 합의된 채 상식처럼 통용되는 문화가 흐르는 건 아닐까 싶다.

크게 손발을 활개친 검은 옷의 당당한 남자, 손발이 다소곳이 모인 채 아름다운 빨간 옷을

동여맨 여자의 대비.


* Mother nature is calling me, 직역하면 '자연이 나를 부르고 있어' 정도가 되겠지만 보통

이 문장은 허물없는 사이에서 화장실 다녀오겠다는 의미로 새겨지게 됩니다. 여행을 다니며

결코 빠질 수 없는 '답사지' 중 하나가 그곳의 화장실이란 점에서, 또 그곳의 문화와 분위기를

화장실 표시에까지 녹여내는 곳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국내외의 특징적인 화장실 사진을

이 폴더 'Number one or number two?'에 모아보고자 합니다. 그 표현 역시 우리말로 치자면

'큰 거야 아님 작은 거야?' 정도겠네요^^





작년 이맘때 갔던 제주도, 미성년자 관람불가의 성인용 조각공원에서 발견했던 조각들은 온통

남자와 여자의 몸 일부만을 소재로 다양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들이 반짝거렸었다. 꼭 그만큼

그 공원 내의 화장실도 재기발랄함이 가득했는데, 남자용 화장실 유리문에 그려진 남자가

여느 파란색 인물이 다소곳하고 밋밋하게 선 것과는 달리 실감나는 포즈와 물줄기를 그리고

서있던 거다. 그리고 또 하나 놓칠 수 없는 뽀인트는 바로 저 손잡이.

여자쪽은 어떠냐 하면,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사실 빨간색 여자가 남자와 똑같이

두발 쩍 벌리고 선 채 '여기가 여자화장실이에요' 하는 건 좀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거다.

저렇게 실제 포즈를 잡고 물줄기까지 고래처럼 뿜어줘야, 아 여기가 여자화장실이구나

하지 않을까. 남자화장실보다 재미있는 모양, 훨씬 공들여 만든 게 분명한 손잡이는

역시나. 대박 센스.



* 참고 : (19금) 제주의 미성년자 관람불가 조각공원.




* Mother nature is calling me, 직역하면 '자연이 나를 부르고 있어' 정도가 되겠지만 보통

이 문장은 허물없는 사이에서 화장실 다녀오겠다는 의미로 새겨지게 됩니다. 여행을 다니며

결코 빠질 수 없는 '답사지' 중 하나가 그곳의 화장실이란 점에서, 또 그곳의 문화와 분위기를

화장실 표시에까지 녹여내는 곳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국내외의 특징적인 화장실 사진을

이 폴더 'Number one or number two?'에 모아보고자 합니다. 그 표현 역시 우리말로 치자면

'큰 거야 아님 작은 거야?' 정도겠네요^^



최근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안동 하회마을 인근의 한지미술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다녀가기도 한 이 곳에서 볼 수 있는 화장실 사인은 다른 곳들에 비해 훨씬 맘에 들었다.

나즈막한 2층짜리 건물, 그다지 화려하거나 대리석 번쩍거리는 건물도 아니면서 이렇게

화장실 표시에 신경을 써주다니 제법 감탄할 수 밖에 없었지만 다만 한가지, MEM은 뭔가욤.;
 
남자 화장실에 그려진 건 도포입은 양반탈바가지, 쥘부채를 슬쩍 등뒤로 돌려 쥐고 있는

모습에 넓게 벌어진 두 발까지 팔자걸음을 재미있게 표현해 낸 거 같다.

여자화장실 앞에도 마찬가지, 곱게 차려입은 한복에서 옷고름이 휘영청 바람 탓인 듯

말려올라가 있다. 어렸을 적 봤던 반공만화영화 '각시탈'의 영향 탓에 이런 안동의 여인네탈

하면 거의 무조건반사적으로 각시탈이겠거니, 했는데 뭔가 다르다. 머리모양이 저렇게 반쯤

올린 머리가 아니었던 것 같아 찾아보니 역시. 이건 부네탈을 쓴 여인네의 모습.

간단히 말하자면 부네탈은 기녀, 각시탈은 새색시를 묘사한 탈이란 이야기. 근데 왜 남자는

양반탈로 표현하고 여자화장실은 각시탈이 아니라 부네탈로 묘사한 건지는 여전히 남는 의문.

그리고 역시나, 이번에도 WOMEM이 뭡니까...;; MEM, WOMEM. 그 오타만 아니었다면 참

흠잡을 데 없이 맘에 쏙 들었을 화장실 표시.




* Mother nature is calling me, 직역하면 '자연이 나를 부르고 있어' 정도가 되겠지만 보통

이 문장은 허물없는 사이에서 화장실 다녀오겠다는 의미로 새겨지게 됩니다. 여행을 다니며

결코 빠질 수 없는 '답사지' 중 하나가 그곳의 화장실이란 점에서, 또 그곳의 문화와 분위기를

화장실 표시에까지 녹여내는 곳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국내외의 특징적인 화장실 사진을

이 폴더 'Number one or number two?'에 모아보고자 합니다. 그 표현 역시 우리말로 치자면

'큰 거야 아님 작은 거야?' 정도겠네요^^







종로의 피맛골, 왠지 추석 연휴에는 한번씩 가게 되는 곳이다. 오세훈 시장이 디자인 서울 어쩌구하면서 금세라도

다 밀어버릴 듯 하더니 아직도 '피맛골 고갈비집'은 건재하다. 워낙 추억이 촘촘이 서린 곳이라 참 반가운 곳.

몇 년전이더라, 불이 나는 바람에 가게 절반이 날아가고 그때부터 그냥 이렇게 공터로 놀리던 곳, 그 우켠에 선

건물 역시 완전완전 허름해서 무슨 폐가같기도 하고 쓰러지기 직전같기도 하지만 추석에도 쉼없이 맛있는

고갈비와 막거리를 팔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아직 시간이 조금 일렀는지라, 가게 안에는 혼자 와서 막걸리를 드시고 계신 머리 희끗한 아저씨 한 분을 빼고는

텅텅 비어 있었다. 모양새도 색깔도, 짝도 제대로 맞지 않는 삐뚤빼뚤 제각기 놓인 의자들.

메뉴판이 있긴 하다. 얼마나 오래전에 붙여놓은 건지 반질반질 윤기가 흐르는 베니어판 벽면과 비슷한 색깔로

누렇게 변해버렸지만, 사실 여기서 다른 건 맛본 적도 없다. 앉으면 그냥 갖다주는 막걸리 한 사발과 고갈비.

메뉴판에도 벽면에도 온통 낙서투성이다. 낙서라기엔 꽤나 그럴듯한 시간과 사건들을 이겨낸 것들.

나왔다. 양은으로 만들어진 양푼에 담긴 막걸리랑 고갈비 한 마리. 여기 막걸리는 뭔지 모르겠는데 탁하면서도

단 맛이 강한 것이 특징이랄까. 살짝 짭조름하면서도 담백한 고갈비랑 같이 먹으면 딱 좋다.

조명은 늘 그렇듯 어두침침하다. 드문드문 박힌 채 테이블 하나만큼의 공간을 겨우 밝히는 전구, 그리고 창밖에서

슬몃슬몃 넘쳐흐른 햇살이 조명의 전부. 아, 냉장고에서 흘러나오는 푸르스름한 불빛도 있구나.

누군가 창문에 깃발을 붙여두었다. 지난 지방선거때 붙였두었던 깃발인 듯. 창밖으로 보이는 리어카들이 왠지

살풍경하다. 저게 혹시 서울시 표준형 리어카인가, 반듯반듯 주차된 그들 앞에서 현란한 녹색 거죽이 입혀진

리어카 한대가 반갑다.

어떻게 보면 토굴같은 느낌도 들고, 나지막한 천장과 울퉁불퉁 고르지 않은 바닥 높이 때문에 행동거지 하나가

조심스러워지는 게 기분이 색다르다. 올 때마다, 여긴 뭔가 정겨움이 그득그득.

이런 화장실 표지판도 넘 좋다. 촌스런 초록색의 왠지 촌스런 남자 여자의 그림도 그렇지만, 과거에는 단호하고

선명했을 화살표 앞뒤꼭지에 누군가 짖궂게 장난쳐둔 모양새들까지, 웃음지을 수 밖에 없는 그림들.

온통 낙서투성이인 벽면, 여기도 뭔가 신품의 냄새를 가득 풍기던 그런 때가 있었을까.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어디서 누구 한명 담배라도 피워올리면 금세 가게 전체에 티가 나는 그런 곳이지만 나름 환기는 잘 되어서 다행,

안 그랬음 무슨 수산시장 같은 냄새가 늘 배겨있었을지도.

이런 낙서들, 추억과 즐거움을 증거하는 흔적들. 이런 게 언젠가 무지하고 둔탁한 포클레인의 무쇠 이빨에

산산이 부서져나가리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싸하다. 그야말로 수십년에 걸친, 수많은 사람들의 집단 작품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이 벽면을 통째로 어디에든 전시한다고 해도 훌륭할 텐데. 사람들은 자신이 이 공간에서

함께 했던 사람, 나눴던 이야기, 서려있는 추억을 기억하며 자신이 남겼던 낙서 한 줄을 곰곰히 찾아보지 않을까.

무엇보다 좋은 거야 그냥 이 공간이 계속 남아있는 거지만.

기둥이라고 그대로 넘어가지 않았다. 화이트로, 검정펜으로, 누군가의 기록 위에 또 누군가가 기록을 덧씌우고

차곡차곡 쟁여간다. 심지어는 전등 스위치까지. 모든 곳에 공평하게 내려앉는 눈송이처럼, 허름한 가게 안

모든 장소에 아낌없이 내려앉았다.

아니, 눈송이는 천장에까지 채워지진 않는다. 낡고 깨져서 여기저기 덧대인 천장 쪼가리에도 어김없이 새겨지는

누군가의 메시지들.

막걸리 한 동이를 기분좋게 비우고, 고등어를 남김없이 해체하고 나서 돌아나오는 길. 들어설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웬 달마도가 입구 앞에 그려져있었다. 저건 정말, 작정하고 그렸겠구나 싶다. 기록을 남기고 전한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한순간의 장난이나 술기운으로 끼적인 것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

이 집 이름이 와사등이었나 보다. 몰랐다. 벌써 수십번은 왔을 텐데, 오는 사람들끼리는 그저 '피맛골 고갈비집',

이렇게만 말하면 통했으니까. 가게 주인 할머니한테 물었다. 여긴 안 없어지죠? 할머니가 그랬다. 여긴 절대

안 없어져요. 계속 있을 거야.


부디 계속 남아있었으면. 맛있는 고갈비도, 누군가의 메시지들도. 그래서 내 추억도.





한자 그대로 읽자면 충렬사, 그리고 중국식 발음으로 읽자면 중례츠, 조금 답답한 게 한자는 뻔히 보이고 무슨

뜻인지, 한국식으로 읽음 어떻게 읽는지 다 알겠는데 좀체 타이완 사람들과 소통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중례츠'라는 발음 역시 아무리 책으로 보고 눈으로 익혔어도 좀체 입에 붙지가 않아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중례츠, 라는 현판이 걸린 좌우에는 인을 이루라는 뜻의 성인(成仁), 그리고 의를 취하라는 뜻의 취의(取義)라는
 
조금 작은 현판이 걸린 채 내부로 들어가는 세 개의 아치형 정문 위에 걸려있었다.

말하자면 여기는 서울의 현충원 같은 곳이랄까. 일제 세력과 중국 내 공산당 세력과 항전하며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를 위해 목숨을 바친, '타이완'의 애국선열을 위한 공간인 거다.

해가 중천에서 약간 이그러지고, 그렇지만 이제 잔뜩 열받은 땅이 한창 열기를 푹푹 쏟아내기 시작하는 오후2시

거칠고 하얀 바닥 표면에서조차 섬광처럼 번뜩이는 햇살이 튕겨나왔다.

북경 자금성 내의 태화전을 따라 지었다는 중례츠, 충렬사의 본전에 얹힌 금색 지붕도 어찌나 반짝거리던지.

처음 도착했을 때만 해도 나 밖에 없다 싶더니, 슬금슬금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관광버스에서 올컥울컥

토해내지고 나니 어느새 북적북적대고 있다. 정문의 뒷면 현판에는 만고유방, 충의천추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이들의 타이완을 향한 '애국'의 의기가 오래도록 전해지리라는 희망과 주문, 그리고 그들의 충성과 '의로움'이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는 계시나 점지와도 같은 의미렸다.

공사 중인지라 내부에선 사실 가까이 들어가 살펴보거나 건물 안에 들어가 돌아볼 만한 여지가 전혀 없었다.

아마도 저 누각 아래 있는 흉상도 장개석의 것이 아닐까 싶은데, 그가 공산당에 쫓겨 내려와 원주민을 압박하며

만들어낸 '타이완'이란 나라에 대한 애국의 대가, 애국의 보상을 위한 공간인 셈이다, 여긴.

화려한 문양들, 고궁박물관에서도 느낀 거지만 이들의 용 문양에는 꼭 발톱이 다섯 개다. 황제의 용에는 발톱이

다섯 개, 왕이나 제후의 용에는 발톱이 네 개나 심지어는 세 개. 조선시대 왕의 곤륭포니 의복이나 장신구에

나타난 용의 발톱은 늘 네 개였다. 사대교린의 국제질서와 관념 하의 세계였으니 그게 당연한 거였다.

태양은 양껏 때려부었지만 그래도 바람이 멎지 않아 다행이었다. 내부 양켠으로 쭉 늘어선 깃발을 쉼없이

희롱하는 바람 덕에 '청천백일기'가 휘날리는 걸 원없이 봤다. 파란 하늘에 선명히 박힌 하얗고 강렬한 태양,

그리고 온통 시뻘건 핏빛으로 가득한 대지. 그게 청천백일기에 담긴 의미 혹은 비주얼이라는.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고 정결한 몸과 마음으로 매시 정각에 시작하는 위병 교대식을 보기로 했다. 9시부터

17시까지 문을 연다고 하는데, 그럼 17시 정각에도 교대식을 하는 걸까 아님 그냥 위병들이 들어가고 문닫으면

끝인 걸까 모르겠다. 그나저나, 참 촌스럽고 색이 바랠대로 바랜 표지판. 아무리 여기가 국가를 위해 죽어간

영혼들의 애국심과 용맹을 기리는 공간이라 해도, 산 사람은 싸야 할 거 아니냐.

꼼짝도 않고 밀랍 인형처럼 굳어 있던 위병들이 움직이기 직전. 그들은 숨을 쉬는지조차 눈치채지 못하게

아주아주 얌전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고, 그러고 있었을 거다.

기합소리와 함께 시작된 위병 교대식. 아마 매 시간마다 정복의 색깔이 흰색과 파란색, 교대로 바뀌나보다.

교대할 위병 두명, 그리고 약간 앞에서 그들을 인솔하는 인솔자 한 명이 팔과 무릎의 각을 탁탁 맞춘 채

구분동작으로 걸어나오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제자리걸음부터 시작해 서서히 굳었던 몸을 풀기 시작한 위병 둘.





다섯 명이서 내부로 스무 걸음쯤 걸어들어가더니 한참을 총도 돌리고, 군화로 착착 소리도 내고, 그랬다.

움직임은 과히 나무랄 데 없어서 볼 만 했지만, 기본적으로 그런 군대 병정놀이따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요새 많이 자제하고는 있지만 또 울컥, 아뉘 그 EBS 강사가 한 말 다 맞잖아. 군대가서 사람죽이는 거 배워오는

것도 맞고, 군대가 애초 사람죽이고 나라지키려고 가는 거잖아. 게다가 그에 더해 온갖 사회의 더러운 꼴의

원형에 익숙해져 오는 것도 맞고, 그렇게 자발성도 없고 동기부여도 안되는 허섭스런 징병제도의 부작용이

긍정적 효과보다 크다 싶으면 다른 방식을 찾아가는 것도 맞는 거고. 근본적으로는 군대나 경찰, 국가로부터

인증된 합법적 폭력집단이 해체되어야 하는 것도 맞는 거고. 뭐가 문제인 거지..?

이들 위병들이나, 이미 이 공간에서 기려길 자격을 획득한 군인들이나, 타이완 쪽에서 보면야 나라를 사랑하고

가족을 지키고 '진충보국'하는 모범사례겠지만, 사실 그들은 적국의 군인과 민간인을 살상함으로써 그걸 가능케

하는 거다. 전쟁터에 총알받이되러 나간다, 는 표현의 어폐는 그걸 숨기는데 있다. 전쟁터에는, 전쟁은, 사람을

죽이러 가는 거다. 그리하여 파란하늘, 하얗게 작렬하는 태양 아래 대지를 온통 적의 피로 붉게 물들이려는 거다.


이 분 파란색 정복에 있는 명찰을 보니 공군의전, 이라고 적혀 있다. 그러면 흰색 정복은 공군이 아닌 육군이나

해군인 걸까. 왠지 삼군이 번갈아 한 시간씩 지키고 있지 않을까 하는 심증이 굳어졌지만, 그걸 확인하자고

한시간이나 더 여기서 개기자니 딱히 볼 거라곤 교대식밖에 없는 곳에 발이 묶일 순 없다 싶어서 포기.

드디어 교대해 줄 병정 둘이 위에 올라섰다. 꼬맹이들은 어찌나 열중하고 보고 있는지 입을 헤 벌린 채 눈도

똥그랗게 뜨고 있는 게 꽤나 귀엽다.

대 위에 올라서고 나서도 한참 계속되는 일사분란한 '구.분.동.작'. 왼다리 들어, 오른다리 들지 말고 왼다리놔.

왼다리 들고 오른다리 부딪혀. 총 한바퀴 돌리고 멜빵끈에 손가락 걸어, 뭐 요런 식의 성마르고 까탈스런

청기백기 게임처럼 한없이 지속될 거 같은 그들의 움직임이 기이한 침묵 속에 계속되었다. 들리는 소리라곤

가끔씩 부딪혀주는 군화발 소리, 그리고 휘둘려지고 꽉 쥐여지는 총에서 비롯하는 철컥대는 쇳소리.

약 십오분에서 이십분, 그렇게 위병 교대식이 끝나고 나니 다시 위병 둘은 밀랍인형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잠시 어물대는 사이 관광객들을 다시 꾸역꾸역 버스 안으로 소환되어 쌩하니 떠나고 말았다. 



병정 둘이 남았다. 왠지 그들이 딛고 선 중례츠의 바닥이 온통 붉은 핏빛으로 보였다.








빨강색 러브, 근데 뭔가 이상하다. 영문 알파벳이 아니라 저건 한글 모음들인 거다. L을 대신하는 니은, O를

대신하는 이응, E를 대신하는 ㅌ, 티읕. 그리고 거꾸로 물구나무선 시옷이 제대로 V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조그마한 금속링들을 붙여서 만들어낸 커다란 수탉. 벼슬과 부리의 위엄도 볼 만 하지만, 아직 성글게 자라난

꼬리깃이 좀만 더 풍성해지면 완전 볼 만 하겠다 싶었다. 중닭에서 완연한 장닭으로 변신 뾰로롱.

토이뮤지엄에서 만났던 커다란 인형, 그리고 햇살 가득 들여보내주는 관대한 창문 아래 나뭇빛 책상과 소품들.

화장실 표시가 귀엽긴 한데, 가만 살펴 보면 대체 저 쩍벌녀 꼬맹이는 급하다면서 전화기를 잡고 있으며, 저

어정쩡한 표정은 또 왜 짓고 있으며. 혹시 저 의자가 휴대용 변기인 건가..;

몇 장 너무 재미있는 그림들을 방문객들이 남겨두었길래, 차마 혼자 보기 아까워 사진을 찍어버렸다. 지재권은

전적으로 그리신 분들께 있으며 원치 않으실 경우 변호사 선임 및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

'거짓말하면 묻히는 거다'. 그 아래 정말 묻혀있는 피노키오.ㅋㅋ

어리다기엔 뭔가 '중닭' 정도 크기로 자라난 듯한 '어린왕자'. 소년의 복숭아빛 두 뺨은 싱그럽건만 눈빛속엔

번뇌가 눈물처럼 차올라 있으니 나이먹는 게 아쉬울 따름인가 보오.

입체 카드의 허점. 사람의 시선이 항상 최적의 위치에서 카드를 펼쳐보거나 바라보는 것만은 아닌 거다.

온통 깨어지고 뒤틀린 사자의 얼굴과 앞발바닥. 이글이글 불길처럼 타오르는 갈기, 라기보다는 그냥

되는대로 자르고 구겨놓은 쓰레기뭉치에 불붙은 거 같다.

토이 뮤지엄 앞에는, 심지어 이런 공공 시설물까지 이쁘게 포장되어 있었다. 말 그대로 포장. 무슨

거대한 선물상자같은 게 길가에 떡하니 놓여있길래 뭔가 했더랬다.

그리고, 마치 천공의 성 라퓨타에 나옴직한 장면. 거대한 나무가 건물 안쪽 어딘가에서부터 무럭무럭 자라났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는 덜 떨어진 질문을 좀더 참신하게 바꿔볼 수 있을 듯. 건물이 먼저냐 나무가 먼저냐.






1월, 내 생일날. 옛 서울역사에서 했던 서울국제사진페스티벌을 보러 갔었다. 휑하니 낡은 역사에 수도조차

얼어붙은 그곳의 화장실은, 뿌옇게 먼지낀 창밖 풍경처럼 남루하고 싸늘했다.

3월 어느날, 홍대 근처의 어느 와플집. 적나라하지만 이쁘다고 생각했다.

HOMME과 FEMME가 적힌 알제리의 쉐라톤 호텔 화장실. 5월이었다.

7월, 휴가를 내고 고양이까페에 가서 고양이들이랑 네시간도 넘게 놀았던 날. 폭발적인 고양이들의 환대와

더불어 폭발하고 만 알러지 증세. 다음날까지 눈이 시뻘갰었지만, 여전히 고양이를 좋아한다.

고양이 까페에서 놀다가 찾았던 용산 남일당건물, 그 뒤의 공중화장실. 견(경)찰사용금지.

8월 여름휴가로 떠났던 캄보디아, 씨엠립 국제공항의 화장실에서부터 영역표시에 들어가다.


앙코르왓 어디메쯤에서의 화장실 표시. 생각보다 많지 않게 띄엄거리던 화장실이었던지라 표시가 무척이나

반가웠더랬다.

앙코르왓이 있던 씨엠립에서 프놈펜으로 달리던 버스 안에 있던 화장실. 한번 써보려다 말았다.

프놈펜의 왕궁. 왕궁 안에 있던 화장실, 맨다리와 맨팔을 드러냈다고 입장을 제지당한 사람들이 허겁지겁 옷을

갈아입고 나오던 탈의실로서의 소임도 다하고 있었다.

앙코르왓 어딘가의 화장실에 붙어있던 표지판. 변기 위에서 똥싸지 마시오, 가 좀 충격적이었던.

9월, 예상치 않게 가게 되었던 제주도에서 들른 아프리카박물관의 화장실. 유쾌하고 귀여운 그림이다.

11월, 또다시 예기치 못한 제주도. 모 박물관에서 숱하게 마주친 화장실 그림.

예컨대 이런 식, '팬티 내리는 곳'이랜다.

공원식으로 꾸며진 뮤지엄 내부, 관람객들의 편의를 위해 도처에 설치된 화장실 표시등.

입구 옆에 떡하니 화룡점정을 찍어주시는. 이제부터 나오는 두 장의 사진은 '19금'이다.

엄훠.

항가항가.

역시 11월의 제주도, 산굼부리. 레고블럭의 인형들처럼 생긴 남자와 여자가 몹시 마려운 듯한 표정과 포즈를.

화장실로 본 2009년. 끗.

앙코르 톰을 벗어나 소위 '그랜드 투어 코스'를 자전거로 돌아 보기로 했다. 네모반듯한 앙코르 톰의 동쪽에는

'승리의 문'과 '동문'이 있는데 그쪽으로 나가면 '스몰 투어 코스'로 작은 원을 그리며 앙코르왓으로 돌아오게

되고, 북쪽의 '북문'으로 나가면 '그랜드 투어 코스'로 좀더 많이 큰 원을 그리며 한나절 코스가 되는 거다.

사실 한나절 코스니, 반나절 코스니 미리 재단하는 건 좀 웃기는 일이다. 가서 맘에 드는 곳이 있으면 몇시간이

지나가던 앉아서 쉬고, 책도 보고 낮잠도 자고 그럴 수 있는 건데 말이다. 여행을 떠나서 아침에 대략적인

스케줄만 스케치하듯 잡고서는 나머지 디테일은 그때그때 내키는대로 채우는 게 그래서 좋은 거 같다.

북문에도 여지없이 눈똑바로 뜨고 앙코르 톰을, 씨엠립을, 캄보디아를 지키는 '크메르의 미소'. 네모나게 각진

얼굴에 저런 은근한 미소를 물려주지 않았다면 꽤나 무섭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이곳에도 역시 깊고 넓게 파인 해자를 건너기 위한 다리가 있고, 다리 위에는 거대한 뱀의 몸뚱아리를 줄 삼아

잡아당기고 있는 신들이 있다. 감사해요, 덕분에 다리 밑으로 떨어지지도 않겠군요.

쁘레아칸(Preah Khan)으로 가는 길 중간, 느닷없이 마주친 한무리의 아이들. 축축 늘어져있는 가지에 매달려

그네처럼 좌우로 거침없이 흔들기도 하고, 해먹인 양 편히 기대어 쉬기도 하고, 쪼꼬마한 아이들도 나무를 꼭

쥐고서 놀고 있는 게 꼭 열매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요즘에도 가끔 나타나 화제가 되고 하는 '정글 인간', 십수년씩 혼자 정글에서 동물들과 생활했다는 그들이나

정글북에 나오는 모글리같은 아이들이 저렇게 지내던 게 아닐까. 정글 깊숙이 우거진 나무들에 기대어 쉬고,

놀고, 잠들고. 저렇게 많은 아이들을 품어 주고 버텨주는 나무가 듬직하다.

앙코르 왓 내부에는 화장실이 드물다. 몇 킬로미터씩 가야 띄엄띄엄 있는 수준인데, 가끔은 입장객임에도

불구하고 돈을 받는 유료 화장실도 있다. 자전거를 격하게 달린지라 장 활동이 활발해졌는지, 화장실의

위치 추적에 예민해졌던 그 때, 문득 눈앞에 나타났던 '한국-캄보디아 우호의 숲'이라고 읽히는 낯익은 글자.


의전 원칙에 따라 자국 국기를 왼쪽으로, 외국 국기-여기선 태극기-를 오른쪽으로. 자국어인 캄보디아어로

먼저 소개를 했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보질 못하겠고, 한글로는 한국이 먼저 나와 '한국-캄보디아', 그다음

병기된 영어로는 'Cambodia-Korea'로 자국이 먼저 나오고. 나무랄 데 없는 배치다.

우호의 숲 속에 자리잡고 있는 화장실. 타고 다니던 자전거를 세워두고 급한 불부터 끈 후에, 건물을 따라 숲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뭐, 딱히 다를 건 없었고 그냥 여느 앙코르 왓 내부의 정글과 같이 치렁치렁하고 빽빽한

정글, 숲이었다.

화장실 안에서 재미있는 그림이 있어서 한 장. 왼쪽부터 보자면, 흡연 금지다. 아무래도 정글에 목재 건물이니

화재 예방이 중요한 거다. 그담 변기뚜껑에 올라앉아 일보지 말라는 표시, 워낙 많은 불특정다수가 쓰는 공용

변기이다 보니 더러워지기 쉬울 테고 그럼 또 저런 자세를 부득불 취해 더욱 더럽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겠지.

그렇지만 저 자세로는 물이 사방으로 튈 텐데.ㅡㅡ;; 세번째는, 옆에 있는 수도꼭지로 발 닦지 말라는 건지

신발을 닦지 말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날이 워낙 더운데다 여기 오면 아무래도 많이 걷게 되니 발 한번 씻고

나면 피로도 좀 풀리고 좋지 않나? 좀 이해가 안 되는 표지다. 마지막 그림처럼 샤워하지 말라는 거야, 다른

사람에 민폐도 될 수 있고 '선녀'처럼 옷을 분실할 수 있는 위험도 있으니 그렇다지만. 


이 중 하나를 어기고 말았다. 너무 더운데다 이미 옷에 하얗게 소금꽃이 피어나 어쩔 수 없었다는.


알제리 쉐라톤 호텔은 호텔 투숙객을 위한 전용 비치를 갖고 있다. 초록색 잔디 정원이 넓게 펼쳐진 뒤로 보이는

남푸른 지중해 바다. 3박을 묵으면서 늘 창밖으로 바라보기만 하는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틈만 나면 창가에 붙어

바다를 바라봤다.

어디를 가던 외국 단체 방문단에겐 경찰 호위가 붙어야 하는 나라지만, 의외로 호텔에 들어오는 절차는 간단했다.

물론 따로 우리 방문단을 챙기는 시큐리티팀이 가동되었다고는 해도, 저 금속탐지기와 엑스레이검색대, 그리고

검색하겠다는 의지의 수위가 다른 아랍국가에 비하자면 매우 낮은 편이었달까. 최대한 우리 측의 편의를 봐준 탓도

있겠지만, 이거 너무 허술한 거 아닌가 하는 희미한 불안감이 들 정도였다.

호텔 로비를 딱 들어서면 보이는 계단. 이틀동안 회의다 오찬이다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면서도 막상 저 계단을

밟아본 건 삼일째쯤 되는 날이었다.

금연 표시는 어디에나 붙어있었다. 화장실, 엘레베이터, 복도..그렇지만 그건 거꾸로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담배연기가

피워올려짐을 의미했다. 심지어는 회의장 내부, 호텔 복도..모든 곳에서.

내가 있던 곳은 주로 호텔 로비에 있는 푹신한 긴의자. Amir를 만나 아랍어나 불어 통역을 부탁할 때, 혹은 환전을

부탁할 때, 그리고 Farid에게 급작스레 변경된 배차계획을 알려주고 차량 이동을 부탁할 때. 금연공간이라지만

아랍인들이 모두들 장소불문 담배를 피워올렸고, 금세 한국인들도 장소불문 담배를 꼬나물었다.

담배연기로 자욱한 그 로비 귀퉁이 긴의자에서 바라보는 화려한 계단. 저 정도의 계단이면 뭔가 무도회를 열기에도

안성맞춤이겠는걸. 하얀 미소가 아름다운 그녀가 하얗고 나풀거리는 드레스를 살짝살짝 발등으로 쳐내리며 계단을

우아하게 내려오는 모습을 상상했다.

지중해 비치를 소유하고 있는데다가, 이런 벨리댄스 쇼까지 호텔에서 볼 수 있는 이곳은 휴양지로 정말

더할나위없이 좋은 곳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국제행사를 하기에는 영...

일단 불어의 문제. 화장실도 이렇게 '옴므'와 '팜므'로 표시되어 있을 정도. 영어는 기본적으로 이들 알제리인들에게

친숙하지 않은 언어인 게다.

화장실 앞에서 만난 신기한 기계. 뭐냐면, 무료로 구두를 닦을 수 있는 구두닦이 기계였다. 왼쪽에서부터 구두약을

찍찍 눌러서 구두위에 짜내고, 두번째 부드러운 솔로 한번 구두약을 문질러 주며, 부드러운 세번째, 거친 네번째 솔
 
중 취향에 맞는 것으로 광내기작업 마무리. 새벽부터 저녁까지 벗지도 못하고 발발댄 탓에 막 물기짜낸 걸레처럼

찐득거리는 구두에 호사 좀 부려볼랬더니, 구두약부터 안 나온다. 걍 솔질 몇번 하며 킬킬대주고 치웠다.

오찬 행사장을 미리 점검하러 들어갔더니 의자들에 하얀 시트를 씌우고 있었다. 무질서하게 배열된 그 의자들이

마치 자체의 의지를 가지고 창밖을 내다보거나, 혹은 자신들끼리 담소를 나누는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를 그 위에

앉히고야 소명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만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몸짓일까.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바다, 초록빛 잔디. 나처럼 의자들도 저런 풍경에 매혹되고 말았나보다.

한편에는 풀장도 있다. 이 풀장 이야기를 듣고 혹시나 수영복을 가져갔는데, 고이 접어 가져간 그대로 고이 접힌 채

집까지 들고 왔다. 수영은 무슨.

종종 보기에는 이쁜데 실제 가서 앉고 싶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 의자가 있다. 사람도 그렇다. 매력적이고, 딱히

나쁜 점을 꼽아낼 수 없으며 외려 내게 과분할 수도 있는 사람인데, 뭔가 주저하게 된다. 내게 그런 의자들은

왠지 호텔에서 자주 마주치게 된다.



남자의 색 파란색, 남자화장실에 그려진 기저귀 찬 쪼꼬만 애기. 올 11월 일본 큐슈에 갔을 때 하카다 역 안의

화장실에서 발견했던 왠지 기분 좋아지는 화장실 표시. 이제 남자가 애기 기저귀 갈아주는 게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정도로는 세상이 변하는 있는 게다.

그림만 봐서는 카이로 쿠푸왕 대피라밋 정도에 있어야 할 것 같은 화장실 표시이지만, 사실은 일본 하카다 역 근처

자그마한 비즈니스급 호텔 로비의 화장실. 대체 왜...?

하카다 근교 다자이후에서 마주친 화장실 표시. 일본색이 풀풀 나는 선남, 선녀의 그림이랄까.

이수영이 뮤직비디오를 찍었다는 큐슈 유센테이코헨의 화장실 표시. 손발을 쫙 펼친 적극적인 남성의 큰대(大)자

모습과는 달리 손발을 곱게 모으고 노란색 끈으로 동여매인 듯한 여성의 모습이 대비된다.

11월 말, 남북간 육상 교류가 심각한 교착상태에 빠지기 직전쯤 다녀온 개성에서 손꼽히는 '고급'음식점에서 만난

화장실 표시. 남한의 고위 공직자들, 정치인들이 숱하게 다녀갈만큼 유명한 곳이지만 조각조각난 '위생실'도

모자라 앞에 빨간 펜으로 '남'이라고 써놓은 게 엉성엉성하다.

화장실 내부를 잠시 볼작시면, 딸랑 하나 있는 '편의시설' 그리고 세면대도 따로 없이 초등학교 때 걸레빨던 곳처럼

대충 만들어놓은 개수대에서 알아서 일보라는 듯. 당연히 핸드 드라이기나 심지어 휴지조차 없었다.

10월, 사우디-카타르-쿠웨이트 출장을 다녀오면서 마주쳤던 남녀 화장실 표시. 턱수염 콧수염이 덥수룩한 아랍의

남자가 반짝반짝 불빛에 반사된 채 왠지 시크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반면, 우연찮게 조명도 어두컴컴하게 받아버린

여성이 검은 히잡을 쓰고 검은 망사로 얼굴에 격자무늬 빗금이 둘러쳐진 건 아랍 지역에서 상대적 열위가 두드러진

여성의 위상을 반영하는 걸까. 그러고 보면 표정도 살짝 입을 앙다문채 새침해 보인다.

사우디였던가, 공동화장실의 남성용 편의시설. 왜 저렇게 길게 쭉 턱을 내뻗고 있는지 얼핏 보면 '큰 것'을 위한

시설로 보일 정도지만, 엄연히 저건 '작은 것'을 위함이다.

카타르의 쇼핑센터에 있던 화장실, 한 켠에는 앉아서 발을 씻을 수 있는 수도꼭지가 늘어서 있다. 무슬림들이 사는

세상에선 당연시되는 것들, 이집트나 카타르를 막론하고 모스크 입구에 꼭 설치되어 있는 발씻는 곳.

쿠웨이트 국제공항 내의 화장실. 살짝 당당한 포즈로 양허리춤에 손을 괸 남자와는 달리, 손발이 경직된 여성의

치마가 뾰족하다. 그러고 보니 두 발 사이의 간격도 다르다. 살짝 쩍벌남의 기운이 느껴지는 남성.

아랍 삼국의 호텔을 돌면서 계속 마주쳤던 룸 내의 화장실. 욕조와 편의시설 사이에 놓인 저 제3의 편의시설은

뭘까, 생각하다가 비데의 일종임을 알고 무지 신기해했었다. 그렇지만 얼마전 송년회삼아 그랜드인터콘티넨탈

호텔 룸에서 일박을 하면서 똑같은 시설물을 마주하곤, 이건 왠지 글로벌 스탠다드인가..하는 깨달음이 번뜩.

8월 파리 여행에서 숙소삼았던 유학생 친구의 집에서 만난 화장실. 세면대와 욕조는 다른 공간에 있고

덩그러니 지저분한 편의시설 하나만 비치되어 있는 조그마한 공간.

퐁피두센터 옆에서 만난 공중화장실. 뭔가 쌔끈한 메탈 튜브가 떠오르는 외관이지만, 정작 필요할 때는 항상

내부에서 모종의 거사가 진행중이었거나 심각한 냄새의 원천이 되고 있어서 차마 발들일 수 없거나 했다.

어느 여름, 가족들과 함께 삼청각 찻집에 갔다가 예기치 않게 마주쳤던 한국식 화장실 표시. 국내에서 내가 본 것

중에 이만큼 세심하고 이뿌게 한국의 미를 살리려고 애쓴 화장실 표시는 없었던 것 같다. 아주 사소하고 하찮을 수

있는 화장실 표시 하나에도 생각보다 많은 걸 담을 수 있지 않을까. 또 나처럼, 누군가는 그 표시 하나에도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찾아내려 애쓰는 사람이 또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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