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6차를 맞는 한-알제리 경제협력 T/F 합동회의. 원래 한 해에 두 번, 알제와 서울에서 진행되고 있다가

작년부터 한 해에 한 번씩만 개최되고 있다. 태스크포스라는 게 원래 어느정도 모멘텀을 키우고 초반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시한부적인 시스템인 거니까, 이제 어느정도 양국관계가 궤도에 올라섰다는 징조다.


그간 돌아봤던 다른 아랍국가와는 달리, 백이십여년 동안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이곳은 불어와 아랍어가 혼용된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직원은 호텔-심지어는 쉐라톤같은 오성급 호텔에서조차-에서도 그다지 흔치 않은 상황이어서,

영-불-아랍 통역을 위한 현지인을 따로 고용해야 했다. 파리에 열흘 있었다곤 해도 아는 거라곤 '오브와', '봉쥬',

요딴 거 밖에 없었기에 종종 연출되었던 와구와구 손짓발짓.

행사 전 조금씩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한국과 알제리의 고위 관료 혹은 재계 인사들. 이맘 때 꼭 생각나는 노래는,

김현철의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실제로 행사를 파하고 텅빈 테이블이나 행사장을 바라볼 때보다, 이렇게 행사 전

한번 행사장을 돌아보거나 준비할 때 외려 그 노래가 귓전을 맴도는 건 왠지 모르겠다.


뒤엔 한-불 동시통역사 두분이 부스안에, 오키, 무대 윗자리엔 물병과 잔 세팅, 오키, 양국 국기 세팅, 오키, 리시버

나눠줄 인원 체크, 오키, 발표자료는 컴터에 다 심어놨는지, 오키, 프로젝터는 이상없는지, 오키..뭐 그런 식.

오디토리움에서도 만난 부테플리카 대통령, 그는 재선을 거쳐, 개헌을 거쳐 삼선에 최근 성공한 대통령이다. 여러모로

박정희랑 비교할 만 하지 않을까. 자기가 알제리의 화신인양 국기를 꼭 저렇게 곁에 두고 있다는 게 눈에 띄인다.

'우리의 박통'은 자기 얼굴만 큼지막하게 클로즈업했었다구. 촌스럽긴 쯔쯔.

불어, 아랍어, 영어, 한국어로 쓰여진 이번 합동회의 현수막. 세상엔, 영어만으론 뜻이 닿지 않는 구석이 알고보면

무지 많은 게다. 그러고 보면 영어에 몰입할 일도 아닌데..어차피 컨텐츠가 중요하지 그걸 옮기는 수단이 중요한 건

아니지 않나. (이런 식으로 짧은 영어실력을 도닥거리고 있다.)

알제리 역시 무슬림이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회교국이지만, 이 곳의 여성들은 히잡도 두르지 않고 자유스럽게

사회생활도 하고 있다. 등돌리고 계신 여성분은 한국에도 몇번씩 왔다갔다한다는 한국통, 휴대폰줄도 한국의 전통

수공예품으로 걸어뒀다.

합동회의 전 접견실에서 있었던 지경부 차관과 알제리 산업투자부 장관과의 면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앞전의

쇼파에 넓찍하게 자리한 두사람을 향했다. 역시, 시선을 따라가면 권력관계를 알 수 있군. 하고 내 카메라도 그 쪽을

향했는데, 알고 보니 이 모든 걸 내려다보고 있는 부테플리카 대통령. 아...이 맛이겠구나. 싶더라는.

알제리에서 정시에 행사를 시작하기란 애초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다. 어차피 장차관과의 면담 일정도, 회의 주제도,

행사 장소도, 모든 것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알제리에 도착하고야 만 터였다. 그래도 어쨌거나 행사는 시작됐다.

"It will pass away like others."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이번에 계속해서 맘속에 새겼던 말 중 하나.

합동회의가 시작되고, 통역 부스 뒤 창문으로 바라본 행사장. 저렇게 생긴 국제회의 통역실을 처음 구경했던 건

2001년이던가, 뉴욕에 있는 UN 본회의장을 견학했을 때였다. 일단 행사가 시작되면 별로 할 일이 없어지지만,

다시 오찬 준비를 위해 자리를 떠야 했다.

오찬은 해산물. 뭐가 뭔지 모를 꼬부랑 프랑스어로 된 메뉴판이었지만, 두번째 코스로 나온 건 얼핏 추측할 수 있었다.

스프 드 포이즌? 독이 든 스프?

새우와 야채 샐러드. 지중해가 바로 코앞이니 해산물이 풍부하다고 했다. 그냥 뭐 맛은..그럭저럭.

좀더 있어 보이게 말하자면, 이런 식으로 말할 수는 있다. "새우는 너무 데쳐져서 특유의 단맛이 떨어지고

탱글한 식감이 많이 손실되었으나, 빨간 자두와 노란 오렌지, 녹색 오이를 함께 배치한 센스는 평가할 만하다.

전반적으로 식전의 미각을 돋우고 위를 자극하여 더욱 맛난 식사를 가능케 하는 훌륭한 전채였다." 정도?

뭐. 환언컨대 별로였단 얘기.

애꿎은 기둥 한번 찍어주고. 대체 내가 이 사진에서 어딜 기준으로 잡았던 거지, 궁금해하고 있다.

독이 든 스프가 아니라 해산물 스프였다. 게살 냄새도 나고, 약간 생선 냄새도 나는 게 독특했다. 알제리식 스프 중

하나라고 얼핏 들었는데 맞는지는 모르겠고 맛은 머...일단 다 먹었다.

다시금 좀더 있어보이게 말하자면, "첫눈으로 보기에 다소 밋밋해보이고 식욕을 떨어뜨릴 수도 있는 외양이지만,

그 카레빛깔 스프에는 오묘한 바다의 맛이 담겨 있다. 한 숟갈 입에 넣으면 혀끝에선 킹크랩이 커다란 집게를 짤깍이고

목구멍을 타고 넘어갈 땐 칼칼한 생선 가시의 근성이 느껴진다. 심지어 접시를 싹 비우고 난 후 가슴과 뱃속에서

느껴지는 뜨끈한 온기라니, 이는 흡사 수백만년전부터 지중해 해저를 따라 흐른다는 열수의 기억을 더듬는 느낌이다."

이 사진은 어디를 찍은 걸까. 뭔가 관음증적이고 애매한 느낌의 부위이긴 하다.

라운드테이블에서 늘어뜨려진 하얀 식탁보와 내 무릎 위 다소곳하게 얹힌 하얀 수건, 그 사이. 아무 이유없는 사진.

정식은 새우와 생선, 오징어와 구운 토마토.

은근히 재미나서 한번 더 있어보이게 말하자면, "고개를 뒤틀고 누운 새우 두마리는 레몬 소스의 축성을 받아

영면을 취했고, 불과 몇 시간전만 해도 지중해를 노닐었으리라 짐작할만큼 신선한 생선은 몸의 일부를 저며진 채

하얀 접시 위에 누웠다. 새우가 다소 고혹적인 자태로 나를 먹어주세요, 라고 애처롭게 바라보는 것을 뒤로 하고

먼저 맛본 생선구이는 담백하면서도 고소한 생선 본연의 맛을 잘 이끌어 내는데 치중하였음을 실감케 했다. 반면

새우의 크리미하면서도 상큼한 속살은 생선의 신선하고도 정직한 맛에 다소 둔감해진 혀를 다시금 짜릿하게

일깨우기에 충분했다. 십자무늬 칼집이 들어간 오징어 두 조각은 그야말로 적당한 수준의 불에서 최적의 시간만큼

익혀져 자칫 딱딱하거나 흐물거리기 쉬운 오징어의 미묘한 쫀득거림을 잘 표현하는데 성공했다. 이 모든 것은

레몬즙의 세례를 받아 더욱 풍부하고 깊은 흥취를 풍기게 되었으며, 구운 토마토를 곁들이면 이곳 회교국 알제리에서

와인없이 먹는 정찬의 아쉬움을 99%까지 덜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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