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죽도어시장을 돌아다니며 찍었던 사진 중에 가장 맘에 드는 한 장의 사진을 꼽으라면.

 

과메기 축제중인 시장통을 구경하다가 문득 시선을 돌린 한쪽에는 생선을 파느라 열심인 어느 청년이 보였다.

 

대담하도록 치켜올라간 점퍼와 내려뜨려진 츄리닝 바지를 위아래 입술삼아, 환하게 웃고 있었다.

 

 포항은 역시 과메기와 대게의 고장. 시장통 골목 곳곳에서 짙고 풍만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참돔배기라고 불리기도 하는 상어 녀석. 경북 지방의 제수용 생선으로 널리 쓰인다던가. 세모꼴 이빨이 원통하다.

 

원래 과메기는 청어로 만들었던 게 원조라고 하는데, 요새는 거의 이런 꽁치로 만든단다. 살가죽이 말라비틀어질 지경.

 

흔치는 않지만 이렇게 청어로 만들어진 과메기도 곧잘 내걸려 있었다. 아쉽게도 이 녀석들은 시식용이 없더란.

 

 좌판마다, 상점마다 맛보기로 내건 (꽁치) 과메기 시식을 하나씩 하며 시장을 걷다보니 배가 부를 지경이다.

 

입으로는 시식을 권하며 쉼없이 과메기의 껍데기를 벗기고 꼬리를 떼어내던 그네들의 손놀림은 가히 생활의 달인급.

 

 아무래도 살짝 찝찝한 건 없지 않았다. 과메기 클러스터, 형님 예산, 만사형통 따위의 단어들이다.

 

포항까지 내려와서 네놈의 이름 석자를 들을 줄은, 그래도 몰랐다.

 

에라이, 말라비틀어지다 못해 하얗게 성에가 내려앉은 동태의 썩은 눈깔같은. 

 

성황이다. 주말이라 그랬는지 서울같은 먼 곳 말고도 인근 지역에서도 총출동한 듯 하다.

 

 꼬리에 철사를 꿰고는 물구나무선 채 해풍에 노닐던 생선들도 있었고.

 

 보기만 해도 묵직하고 맛깔스런 핑크빛의 몸뚱이를 가진, 지느러미가 촘촘한 생선도 있었다.

 

 그런 생선들의 장막 뒤로 손만 바쁘게 움직이고 계신 아주머니들.

 

 그리고 마치 커튼처럼, 시장통의 어느 예기치 않게 한적한 모퉁이에서 건너편 풍경을 미묘하게 가리는 생선들의 버티컬.

 

붉은 대게 한마리가 붉은 벽돌 건물벽을 기어오르다 잠시 쉬어가는 중.

 

그리고, 오랜 세월 사람들의 질척한 발길과 무수한 생선비늘로 갈고 닦인 이곳 죽도시장의 분위기만큼이나

 

운치있고 정감어린 돼지국밥집의 모자이크 창문 하나.

 

 

 

경주 대릉원에 도착했을 즈음 기대와는 달리 겨울비는 한창 기세를 올리던 중이었다.

 

자욱하게 내려앉은 안개 너머 첨성대와 봉긋한 선대의 능들이 찢겨지는 게 아닌가 싶도록 수천수만의 빗방울이 드세던 그 때.

 

 

켜켜이 내려앉은 시간이 무겁게 가라앉은 경주만큼이나 수백년을 산다는 천개의 가지를 가진 나무가 묵직하게 다가왔다.

 

이 땅을 누르고 있는 건 천년의 시간만이 아니었다.

 

시간이 이상하게 기록되긴 했지만, 1번! 번호표를 뽑아 호떡을 사간다는 군산의 '중동호떡'으로 아침 요기거리를 하겠다고

 

갔는데, 이렇게 위치가 요상한데 있을 줄은 몰랐다. 군산항에서 '째보선창 삼거리'까지 와서 우회전, 인적도 드물고 인가도

 

별로 눈에 안 띄는 소소한 목공소나 작업장들이 늘어선 길을 가며 "여기가 정말 맞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할 즈음.

 

네이버 지도로 찾아보니 심지어 본점 말고 '나운점'도 있나 보다.

 

 이렇게 생긴 가게가 뙇. 문을 닫았나 했더니, 건너편 건물에서 영업한댄다.

 

 그리고 똬뙇. 대리석 건물이 반짝반짝. 이것이 바로 호떡으로 지은 건물의 위용인가.

 

제법 넓고 깔끔한 인테리어의 실내. 색색의 의자가 특히 눈에 띄었다.

 

 12월 중순, 크리스마스를 두주 남겨둔 시점인지라 계산대 위엔 자그마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놓여 있어 분위기를 돋운다.

 

 아침 시간인데도 벌써부터 호떡을 만드시느라 여념이 없으신 아주머니들. 쉼없이 밀대로 반죽을 밀고 한줌씩 떼어내는 작업중.

 

그리고 여기는 그렇게 떼어낸 반죽을 팬 위에 넣고 기름기 없이 담백하게 구워내는 중이다. 그러고 보니 호떡 사진이 없는데,

 

기름기 하나도 없이 담백하고 찰진 게 맘에 들었다. 언제든 군산까지 먼 걸음할 일이 있으면 한번 찾아볼 만 한 듯.

 

 

한개 700원, 다섯개 3,000원이던가. 저렴한 가격인데도 번호표 뽑아가며 사람들이 호떡을 찾으니 저렇게 번듯한 건물을 지었겠지.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에서 야요이 쿠사마를 만나다.

에 이어, 철길을 따라 걷다가 만난 두마리 고양이, 턱시도 고양이랑 얼룩이 고양이 뒤를 쫓아다니며 찍은 사진들.

 

평상 아래 숨어서 지그시 이쪽을 경계하고 있던 턱시도 고양이 녀석.

 

 

조금 경계심이 풀렸는지 지푸라기 가지고 콧구멍을 후비는 대담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고.

 

 

 

날 좀 봐주소, 놀아주소, 하는 용맹무쌍한 눈빛까지 쏴주시는 녀석.

 

그런가 하면 얼룩이 녀석은 어찌나 새침하던지, 카메라만 들이대면 도망가기 바쁘던.

 

그래도 철길마을의 좁다란 철길 위를 오가며 지나는 사람도 좇아보고, 골목통 양쪽의 세간살이나 쓰레기들을 부벼보며 의기양양.

 

어디선가 수도가 터졌는지 쏟아져나온 물이 꽁꽁 얼어버린 빙판에 고개를 박고는 사이좋게 얼음을 빨기도 하고.

 

못내 아쉬운 채로 바이바이를 하고 돌아서려는 참에도 여전히 경계심을 풀지 못한 이 녀석.

 

턱시도랑 얼룩이 두 녀석 모두 힘든 겨울 잘 지내고 길냥이지만 건강하게 오래 살면 좋겠다.

 

 

 

 

 

눈이 펑펑 쏟아지다 못해 눈보라가 맹렬하던 서울의 하늘과는 달리, 나몰라라 새파랗기만 하던 가평의 하늘.

 

클림트의 '키스' 작품을 천조각 퍼즐로 짜맞추는 일은 생각보다 무척이나 어렵다. 반복적인 문양과 미묘한 색감의 변주.

 

 

강아지들이 눈보면 완전 신나서 펄쩍펄쩍 정신줄 놓고 나댄다더니, 정말 그 끝을 보여준 누렁이 한 마리.

 

문득 얌전한 틈을 타고 카메라를 들이댔더니 뭘 알았는지 늠름하게 카메라를 응시해주신다.

 

 

마당에 놓인 테이블 위에 눈이 두껍게 내려앉았다가 슬슬 녹고 있다.

 

 

NEX-5R의 일러스트레이션 필터를 적용해 촬영해 본 몇 장의 샘플들. 꽤나 재미있는 효과라서 자꾸 써보게 된다.

 

 

이런 느낌, 뭔가 거칠게 붓질을 한 느낌같기도 하고 굵은 윤곽선을 따라 형체만 잡고 나머지는 뭉개버린 느낌이 색다르다.

 

침실 옆에 깔린 핑크빛 커튼이라거나 비즈 장식, 그리고 굵은 매듭이 잡힌 매무새가 이쁘다.

 

 

마당에 주차되어 있던 차들과 외바퀴 수레. 엊저녁까지 눈을 치우는데 썼는지 눈이 가득 담긴 채 바닥엔 장갑이 한 짝 널부러졌다.

 

 

계속되는 일러스트 샷들. 펜션 옆 진입로를 비추는 등 주변에 소복하니 내려앉은 하얀 눈과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들.

 

 

눈이 녹고 다시 얼어붙은 바닥에 갇혀버린 단풍잎 한 장.

 

 

그리고, 펜션 앞으로 흐르던 비실거리던 개울 위론 꽁꽁 두껍게 얼음장이 얹혔다. 제법 겨울 풍취가 동한달까.

 

 

더위가 한풀 꺾이던 9월, 커튼을 너풀거리게 만들던 살랑바람이 마냥 상쾌하기만 하던 그 때의 안면도.

 

서해의 바다 풍경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바다맛이랄 게 없는 굉장히 지지부진해 보일 수도 있지만, 야트막한 갯벌을 품은

 

그 어슴푸레한 분위기는 또 나름의 맛이 있지 싶다. 바다라는 게 꼭 시퍼러둥둥 깊고 진한 느낌만이 아니라는 식의 웅변.

 

 

새까맣고 조그만 강아지 한마리가 졸졸졸 사람들 발꿈치를 따라다니는 게 어찌나 귀엽던지. 까만 눈이 반짝반짝.

 

그러면서도 겁은 많아서 막상 정면으로 사람을 마주보진 못하고 한발 떨어져서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간밤에 생겨난 이 모래무더기들은 어느 게가 싸지른 똥무더기들인고.

 

 

꽃지해수욕장 인근의 해변을 잠시 산책하다가 배가 고파졌으니, 안면도에 왔으면 역시 대하.

 

 

이쁜 선홍빛으로 익어가는 새우들의 팔딱거림이 잦아들고, 파라솔을 가게 앞에 늘어세운 가게 안쪽 깊숙히 비밀의 문이 보인다.

 

 

새우깡 따위 던져주는 거 받아먹고 사는 비둘갈매기가 아니라, 진짜 바다냄새 풀풀 풍기는 포스를 풍기는 갈매기떼들.

 

어디로도 통하지 않는 이 나무 사다리는, 어느 배에서 떨어져나간 걸까. 머리를 바다에 처박고 한없이 뭔가를 그리는 듯 하다.

 

 

바닷물이 들고 나면서 키가 커졌다 작아졌다, 빨갛고 파란 물풀들이 나무처럼 모래밭에 버티고 섰다.

 

그러고 보니 멀찍이 배 한척이 지나고, 여기는 뭔가 바다 속에 초원이나 숲처럼 녹색의 띠가 사방으로 얽혔다.

 

 

 

 

 

강릉 앞바다가 고스란히 내려다보이는 호텔. 대체로 경포해수욕장이나 그 옆의 사근진해수욕장에 인접한 호텔/모텔들은

 

바다쪽 오션뷰와 경포호쪽 마운틴뷰 중에 하나를 골라잡게 되는데, 이 곳 같은 경우는 높이나 위치나 딱 바다 옆이다.

 

창가 밖 테라스에 나가 아래를 굽어보면 용궁민박집도 보이고, 담백하고 고졸한 기와지붕과 색색으로 널린 빨래를

 

몽창 삼켜버릴 듯한 파도가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밀려들어오고 빠져나가고.

 

비치 하우스라고 적힌 간판의 '스'를 가만히 보면 나름의 센스랄까 미감이 느껴져서 훈훈하기도 하다.

 

해안도로와 바다 사이, 갈수록 쓸려나가며 좁아지기만 한다는 모래톱에 바닥을 뉘이고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파랗고 벌겋고 희끄무레한 단층 민박집들이 쪼르르 늘어섰다.

 

 

 

이리저리 창밖으로만 둘러봐도 속이 탁 트이는 동해바다 풍경.

 

다음날 아침, 졸린 눈 부비며 테라스로 나가 게으르게 몇 방 찍어본 일출 사진. 날이 흐려서 조금 찍다가 말았지만.

 

언제고 이런 풍경을 가진 방이라면 와서 머물고 싶다는 생각. 몸이고 마음이고 금세 충전될 거 같다.

 

호텔방을 나와 잠시 해변가를 산책하다 눈에 띈 들꽃 한 무더기. 11월 중순이니 제법 추웠는데 지지 않았다.

 

지지 않은 건 노랑 꽃잎들 말고도 싱싱한 젊음들 역시. 저러다 따뜻하게 덥혀진 방에 들어가면 바로 뻗겠지만서도.

 

아무래도 겨울 바다란 건, 이렇게 휑한 게 정상이다. 일말의 로맨스나 낭만을 꿈꾸지만 이내 차갑게 몸이 식고 마니까.

 

 

조금 차로 내달려 강릉초당순두부마을을 가다가 만난 텅빈 들녘. 어느새 산너머 가라앉는 해가 단말마의 비명을.

 

뙇. 하고 내지르다.

 

바다를 옆에 끼고서, 잠시잠깐의 침묵도 존재하지 않도록 파도소리가 우르릉거리며 맥놀이 중인 곳이기도 하지만.

 

살짝살짝 변주되며 쉼없이 이어지는 파도소리가 어느 순간 먹먹하게 사라져버리는, 그런 순간이 찾아오는 곳이기도 하다.

 

 

 

 

 

 

강릉에 가면 꼭 들르게 되는 커피 포레스트 바이 테라로사, 경포 해수욕장에서 순긋 해수욕장으로 가는 해송숲 옆에

 

슬쩍 숨어있는데, 그렇게 좁지 않은 건물 앞 주차장이 온통 차로 가득하다.

 

벽난롯불이 이글이글 열기를 내뿜는 1층의 공기가 2층짜리 높은 천장의 카페 건물을 지긋이 덥히고 있었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다소 어둑한 와중에도 중간층에 걸려 있는 인형이 눈길을 잡는다.

 

 

까페 라떼랑 아포가토, 커피를 붓기 전에도 이미 초코시럽이 촉촉하게 쿠키랑 아이스크림에 젖어들었다.

 

 

바닷바람에 치이긴 했겠지만 아직 해송림의 푸른 빛이 살아있던 11월, 햇살이 문득 봄인양 하던 잠시지간.

 

시원하게 유리창으로 구분된 야외 테라스, 겨울 바람과 얄포름한 겨울 햇살이 자유로이 드나는 공간처럼 보인다.

 

 

 

까페에서 책도 보고 뒹굴대다 보니 어느새 짧은 겨울해가 까무룩하니 바닷속으로 잠겨버리고 까페 역시 어둠에 잠기다.

 

 

까페 입구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찻잔과 찻잔받침들이 반짝반짝 금빛을 번쩍이며 늘어서 있기도 했고.

 

 

도심의 이러저러한 까페들과는 달리 넉넉한 스탭들의 공간과 위아래로 즐비하게 늘어선 커피 원두나 찻잔들이 여유롭다.

 

(아마 이건 서울과 지방의 땅값 차이가 크게 작용했겠지만)

 

밤이 깊어지면서 더욱 활활 불타오르고 있는 벽난로의 화염이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사실 열기는 그다지.

 

떠나기 전 까페 건물 앞에서 노랑불빛이 일렁이는 유리창들을 한 장 담았다. 해송림 너머에서도 슬몃슬몃

 

드러나보이던, 보석을 담아둔 유리상자같이 화려하고 아기자기한 모습의 까페.

 

 

 

 

 

 

 

트리가 공간 한가운데 떡하니 자라난 까페, 잠시 앉아 노닥거리던 중.

 

문득 트리를 따라 펜을 슥슥 끼적거리다가 장난삼아 엉성한 트리 하나 완성.

 

 

 

아무래도 벽면의 이 장식이 가장 맘에 드는 까페.

 

 

카메라의 화이트밸런스와 세팅을 이리저리 조정해가며 여기저기 카메라를 들이대 보기도 하고.

 

 

 

송글송글 피어오른 잎사귀를 얼마나 블러블러하게 표현해야 이쁘려나 화분 하나 갖다놓고 이리저리 찍어보기도 하고.

 

 

 

@ 커피와 사람들.

 

 

 전날 눈이 엄청 내렸던 십이월의 어느 날. 춘천으로 내달렸다.

 

 

 가져갔던 NEX-5R의 일러스트레이션 필터를 사용해서 찍어본 사진.

 

 생선들이 주렁주렁 내달린 춘천 엠비씨 안의 이쁜 까페 알 뮤트, R. Mutt 앞에 차를 대고 주변 산책.

 

 코카콜라의 빨간 자판기 앞에 새하얀 백곰들과 물개들이 주르르 엉덩이에 코를 박고 늘어섰다.

 

 까페 옆의 살수송수구, 는 총 여덟개나 되는데 그 위에 색색깔의 번호표를 붙여두었다. 오호라. 이쁘네.

 

왠지 천경자 류의 화려한 원색과 남국의 풍취가 묻어나는 조각이 까페 입구에 서 있었지만 일단은 스킵.

 

 우선은 이렇게 새파란 하늘을 품고 있는 공지천 너머 닭갈비집까지 쉬엄쉬엄 걸으며 좀 바깥공기를 마시기로.

 

 거의 형광색을 띈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새파란 하늘이 수면에 고스란히 내려앉았다. 아..실력이 나부랭이라.

 

 눈이 슬쩍 녹은 가로수길, 사람들이 많지 않아 호젓하게 그리고 질퍽하게 한걸음 한걸음.

 

다리 옆에 오리배가 뜨는 선착장 가까이엔 온통 얼음이 꽁꽁 얼어붙었다.

 

 방금 지나온 가로수길을 한발짝 떨어져 바라보니 온통 하얗게 눈이 덮였고.

 

 

 담배를 꼬나문 아빠, 손길이 새털같은 엄마, 그리고 쪼꼬만 아기까지 눈사람가족을 지나쳐.

 

 꽝꽝 얼어붙은 강과 눈이 번쩍이는 얼음으로 변한 강둑길은 경계가 모호할 지경.

 

그리고 춘천엠비씨에서 가장 가까운 곳의 일쩜오 닭갈비던가, 맛있다는 집에 드디어 도착~

 

춘천식 닭갈비답게 양배추와 야채가 많고 푸짐하더니, 밥을 이렇게 돌돌 말아서 볶아주신다. 신기하기도 하고 맛도 있고.

 

다시 알뮤트로 돌아오는 길, 조각공원에 있는 모자상 앞으로 찍힌 발자욱은 마치 저 둘이 찍어둔 거 같기도 하고.

 

 

어느새 깜깜해진 저녁무렵, 아까까지는 채 눈에 띄지 않던 다리 위로 색색의 불빛이 빙판위를 비춘다.

 

 

 

오리배 한 척 뜨지 못하는 공지천의 두꺼운 얼음로 미끄러지는 선착장의 네온사인 불빛들.

 

그리고 알뮤트에 도착했더니 그새 확 바뀐 풍경이라니. 까맣게 어둠이 내려앉는 동안 여긴 오색 불빛이 둥실 떠올랐다.

 

 

풍차도 있고 곰도 있고 눈사람도 있고.

 

 

춘천엠비씨에서 크리스마스 창작트리 공모전을 했다던가, 가장 참신했던 건 크리스마스 탑.ㅎㅎ

 

 

아까 줄줄이 엉덩이에 머리를 파묻고 있던 녀석들이 이젠 제자리를 잡았나보다. 아까가 더 귀여웠던 거 같기도 하고.

 

 

 

 

 

 

 

속초의 갯배. 온전히 사람의 팔힘으로, 아니 온몸의 힘을 실어 잡아당기는 쇠줄을 따라 꾸역꾸역 움직이는 사각형 배.

속초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청초호를 끼고 갯배선착장까지 걷는 길. 호수라고는 하지만 속초항 앞을 지나 바다로

나갈 수 있어서인지 가장자리를 따라 고깃배들이 일렬주차중.

서울역 광장에서 종종걸음치며 날개를 퇴화시키는데 힘쓰는 비둘기떼들마냥, 속초에선 갈매기들이 그런다.

청호대교 위를 따라 완만한 오르막길을 오르는 길. 빗발이 듬성듬성 내리는, 그렇다고 우산쓰기는 애매한 날씨.

대교의 고갯마루쯤에 오르면 바깥으로 툭툭 튀어나온 전망대 비스무레한 곳이 있다. 고개를 슬쩍 빼면 저만치 갯배가 떠다닌다.


다리 아래 아스팔트 바닥에서 생선 대가리를 토막치는 분도 보이고, 바싹 뭍에 붙여놓은 조각배도 보이고.

가까이 다가갈수록 점점 크게 보이는 갯배. 배라기엔 참 투박하고 모양새가 없어서, 그냥 커다란 네모 부표라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천천히 산책하는 속도랄까, 그래도 한걸음씩 단단히 힘주어 밟아가듯 확실히 전방진행중인 갯배들.


다리 아래, 생각지도 못한 곳에 이런 화사한 그림이 숨어있었다. 하트가 샤방샤방하게 날리는 복어커플.

이런 플래카드는 좀 없어도 좋을 거 같은데. 하긴 이런 방송의 힘이 없었다면 찾아오기도 쉽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이용요금은 성인 200원, 아이 200원, 자전거 200원, 손수레 200원. 갈 때 200원, 올 때 200원.


자전거 두 대가 왜 저렇게 묶여있나 했더니, 가을동화에서 그들이 탔던 자전거라고 한다. 그보다 더 흥미롭고 시선을

잡아당겼던 건 저 오징어 모양의 장승. 속초 시내 곳곳에 세워두면 나름 명물이 될 거 같은데.

갯배로 건너가는 구간은 굉장히 짧아서, 설설 걸어가는 속도의 갯배라곤 하지만 채 2-3분도 안 걸리는 거 같다.

그래도 이렇게 갈매기가 마구 날아다니는 엄연한 바다 위를 저렇게 간단한 뱃조각에 기대어, 아저씨가 끌어주는

쇠줄에만 의지해서 건넌다는 건 꽤나 독특한 체험이다. 속초의 이곳, 갯배선착장을 지나면서야 경험해볼 수 있는.

뱃손님이 다 내릴 때까지 저렇게 쇠줄을 바투 땡겨잡고는 배가 흔들리거나 풀려나지 않도록 고정하고 계신 아저씨.

 

속초시내에서 걸어다님직한 거리 내에 있는 볼거리들. 야트막한 스카이라인, 허름하고 한산한 거리는 걷기 좋은 듯.






속초 해변의, (내맘대로 이름붙인) 사랑나무. 사랑이 주렁주렁.

저 생선의 이름은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폴짝 뛰어올라 등대를 집어삼키려는 타이밍에 사진 한장.

겨울날의 바다는 잔망스러운 파도 앞에서 다들 멈춰서 있는 느낌이다. 벤치도, 감시탑도, 바다를 찾은 사람들도.

바다가 거칠어져 쓰나미가 몰려오면 바로 코앞에 있는 고속버스터미널을 지나 가까운 이마트까지 도망가라는 안내판.

고놈 참 잘 생겼다. 사람들이 쉼없이 번갈아 사진을 찍어대는 틈새에서 비스듬히 올려다본 사랑나무.


속초에서 만난 이번 겨울 마지막 눈. 청초호 너머 보이는 눈덮인 설악산 자락이 웅장하다. 희끗희끗한 색감하며.

어딘가로부터 달려와 네바퀴 자국을 뚜렷이 남긴 채 어딘가에 멈춰 선 승용차 한 대, 그리고 들고 나는 바퀴가

어찌나 많았는지 마구 붓질된 듯한 주차장 입구.

차바퀴들이 굴러간 까만 궤적은 그대로 행인의 길이 되었다. 더이상 아이가 아닌 사람들은 눈을 피해 걷는다.

띄엄띄엄 놓인 건물들 사이엔 그대로 맨 땅거죽이 드러나있다. 까만 까마귀들을 품었다가 훠이 날려보내는 하얀 눈밭.

하얀 눈을 뒤집어쓴 주택 몇채가 추위를 견디려는 듯 다닥다닥 붙어서 온기를 나누고 있기도 하고.


빨갛고 파란 지붕 위를 남김없이 덮었을 하얀 눈이 조금씩 미끄러져 내리는 3월 초의 속초. 곧, 봄이다.




노란 반딧불이같은 꼬마전구가 노란불빛으로 터널을 만들었다. 그 너머로 보이는 색색의 휘황한 나무와 수풀들,

아침고요수목원에서 매년 12월부터 2월까지 열리는 '오색별빛정원전'의 풍경이다.

겨울해가 지는 걸 지켜보면 늘 마음이 조급해진다. 차라리 깜깜해지고 나면 맘이 놓이는 석양과의 경쟁. 가평 축령산

계곡이 스물스물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 걸 보며 달려간 아침고요수목원, 입구부터 범상치 않던.

입구에 들어서니 사슴 두마리가 반긴다 싶더니, 한 녀석은 빨간코 루돌프인 듯 하고, 다른 한 녀석은 '원피스'의

쵸파처럼 목덜미에 커다란 리본을 매고 있다.

가녀린 미성으로 불렸던 '마법의 성' 가사가 떠오르던 빛무리들이다. 마법의 성을 지나 늪을 건너 어둠의 동굴속

멀리 그대가 보여..어둠의 장막에 빛으로 드리워진 터널엔, 크리스마스 트리에 매달릴 법한 색색의 반짝이는 구슬과

별모양, 눈꽃모양 장식들이 아낌없이 달렸다.


10만평에 이르는 아침고요수목원의 주요 정원, 고향집정원, 분재정원, 하경정원, 하늘길을 지나 달빛정원에 있는

수만그루의 잘 생긴 나무들과 그 나무 형체 그대로 빛으로 되살아난 풍경을 보려면 생각보다 많이 춥다. 다행히도

길목 곳곳에 땔나무를 피워올린 연통 꼽힌 난로가 있어 사람들이 열을 보충하곤 떠날 수 있었다.

참 이쁘다는 말 밖엔. 원체 나무가 이쁘고, 그 나무의 수형과 수세를 잘 살려서 전등을 감아놓은 덕분이다. 다만 하나,

저렇게 전등을 칭칭 감아두면 나무들의 동면과 성장에 방해가 된다고 들은 거 같은데 괜찮으려나 싶었다. 아무래도

수목원 측에서 알아서 잘 했겠지 싶긴 했는데, 나중에야 '오색별빛정원전' 팜플렛에서 관련내용을 찾았다. 옮겨보면,

"LED는 일반전구와 달리 전기에너지를 빛에너지로 전환하는 효율이 높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친환경 전구로,

일반 전구에 비해 점등시 발생하는 발열량도 적어 월동에 들어간 식물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소재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좀 걱정스럽긴 하다. LED 조명으로 '열'이 해결된다 하더라도, 식물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소 하나는

'빛'일 텐데. 이렇게 강한 불빛이 밤 늦게까지 나무에 작열하고 있다는 건. 아, 정원전의 점등시간은 대충 밤 9시까지.

토요일의 경우는 10시까지 점등하는데, 그 정도면 그래도 나무와 인간간의 '타협점'이랄 수 있으려나.

수목원의 핵심부에 있는 대표정원, 하경정원에 들어서는 입구. 사실 말보다 사진으로 전해야 하는 공간이다.

높고 낮은 키의 나무들이 온통 색색으로 물들어 세상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그 와중에 무슨 동양화에서 볼법한

기이한 형상의 소나무들이 둥실둥실 떠있기도 했고, 사람들은 몇 걸음 걷다말고 이내 사진찍기에 몰두하던.


특히 인상적이던 나무 한 그루. 시커먼 어둠 속에서 제 색깔을 잃어버린 나무에 빛으로 제 옷을 입혀주었다.

게다가 형광색의 소담한 열매들까지 주렁주렁.

하경정원의 전경들. 나중에는 살짝 눈이 어른어른해질 정도로 아낌없이 화려하고 호사스런 빛의 향연.


잠시 몸을 녹이기 위해 무작정 쳐들어간 초화온실. 빵빵한 온풍기가 맹렬하게 돌아가고 있어서 금세 몸이 녹고 나니

주변에 꽃과 풀들, 초화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태세를 정비하고 진입한 하늘길. 풍등이나 청사초롱처럼 만들어진 불빛이 굽이길을 따라 사람들을 인도했고,

잠시 후에는 불빛들이 모여 만들어진 신데렐라의 호박마차, 그리고 튼실해 보이는 말 한마리가 나타났다.

원래 봄부터 가을에 이르는 기간에는 이 곳 하늘길 좌우로는 튤립이나 계절별로 화려한 꽃들이 가득하다고 한다.

지금은 그런 생화들 대신 꼬마전구로 만들어진 서양란 같은 화려하고 커다란 꽃들이 피어났다.

그리고 하늘길의 끝에서 이어지는 달빛정원. 쭉쭉 곧게 뻗어올라간 나무들을 따라 담쟁이덩굴처럼 불빛들이 얽혔고,

신비로운 불빛을 타고 올라가던 기운이 뿅뿅, 터지듯 저 높은 가지 끝에서 열매로 맺혔다. 사방에서 새들이 날고

기린이니 코끼리니, 동물들이 열지어 선 가운데 천사가 지키고 있던 새하얀 작은 교회가 저만치 보인다.


교회를 지키고 선 천사들. 사방으로 새가 날고 별이 빛나는 풍경이 굉장히 몽환적이기도 하고 신비롭다.


돌아내려오는 길, 달빛정원 입구를 지키고 있던 노랑색 천사들을 지나는데, 사람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게 느껴진다.

어느새 토요일의 폐장 시간인 10시가 가까운 시간, 오히려 아까보다 바람도 덜 불고 덜 추운 거 같은데 아쉽..

돌아나오는 길. 크리스마스 즈음에 왔어도 정말 분위기 좋았겠다. 이런 수준의 조명이라면, 작년 연말의 심심했던

서울 도심의 루미나리에들 백개를 보는 것보다 훨씬 낫겠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

나오는 길목에서, 한참 눈길을 붙잡던 나무 한 그루. 당당하고 의연하며, 그러면서도 살짝 소슬해보이는.

아침고요수목원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돌아본 수목원의 앞모습. 요모조모 디테일까지 세심하게

꾸며진 불빛들이 눈을 감아도 계속 반짝반짝거리는 느낌.
 






경포호를 한 바퀴 돌아보려 나선 길, 첨에 강릉에 도착해서는 여기서부터 바다인가 시끌시끌하다가 택시기사

아저씨한테 타박을 맞았었다. 그럴 만큼 크고 넓은 호수, 햇살이 모래알처럼 흩뿌려진 그 수면위로 화살표처럼

손가락질하고 나선 전망대.

너울너울. 겨울치고는 부드러운 바람이 수면에 몸을 부비며 자욱을 남기곤, 그 물결을 헤치며 오리들이 나아간다.

오리 두 마리가 둥싯둥싯 떠있는 수면 너머, 멀찍이 경포호의 반대편 끝이 보이고 그 위로 보이는 직선상의 구름 두개.

경포호 가운데에 있는 조그마한..섬이랄까. 자그마한 정자가 하나 세워진 조그마한 그 곳에는 새들이 잔뜩 와서

쉬었다 간다고 했던 거 같다. 뱃놀이가 가능하면 저기까지 배타고 나아가서 들어가 놀아도 좋겠는데.


호수 곳곳에 둥둥 떠다니며 한량질 중인 물새들. 그렇지만 가만히 보고 있으면 똥꼬를 하늘높이 쳐들고는

쉼없이 자맥질하며 먹이를 찾는 게 나름의 먹고 사는 고민에 빠져있는 것 같기도 하다.

무슨 생선일까, 경포해수욕장 가는 길에 벚꽃나무가 쫙 이어지는 길이 유명하다던데, 그 벚꽃나무 사이에 드문드문

저렇게 인공불빛이 밤에 일렁일렁거릴 가짜 나무가 심어져 있던 거다. 그런 나무에 기대어 허공에 내걸린 생선들.


호수의 가장자리, 제법 두꺼운 얼음이 수면을 덮어버린 곳 위에서는 한 무리의 새들이 뒤뚱뒤뚱, 발맞춰 걷고 있었다.

경포대로 옮겨지던 발걸음이 살짝 벗어났던 건, 다소 뜬금없긴 하지만 호수 옆 밭두렁에 촘촘히 꽂힌 채

겨울바람에 떨며 문득 잊었다는 듯 파닥거리던 바람개비들 때문.


그러고 보면 이날 참 하늘이 쨍하니 맑았다. 경포대에 도착하니 모두들 쌍쌍, 게다가 문화유산 해설사까지

동반한 단체 여행객들이 우르르 있길래 똥마려운 강아지모냥 주변에서 뱅뱅 돌며 차례를 기다리다가 한 장.

경포대에 올라 바라본 경포호수. 좀더 걸으려 했는데, 예기치 못한, 갑작스런, 그리고 계속 기다리던 호출.

그래서. 경포호의 나머지 둘레길은 다음 기회에.





대설경보니 주의보니 오후부터 푸지게 눈이 올거라더니, 눈도 눈이지만 날씨도 참 추웠던 1월의 마지막 날.

잡았던 약속들도 취소하고 모두들 퇴근하자마자 집으로 바삐 돌아가던 것과는 반대로, 역귀성하듯 텅빈 도심의

한적한 섬에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그새 눈은 그치고 눈물은 흘러내려 고드름이 되어버렸다.







커피 포레스트 by 테라로사. 강릉 순포해변 인근에 해안가를 잠식한 군부대 뒷켠에 이차선 도로 안쪽으로 숨어있는.

2층짜리 건물 벽면이 시원하게 온통 유리창이다. 말간 유리창에 비치는 솔숲과 맑은 하늘.

1층 전경. 널찍한 공간에 띄어띄엄 놓인 테이블이 맘에 들었다. 일단 주문부터 하고 한바퀴 돌아보기로 결정.

2층에 올라가 내려본 풍경. 2층 일부만 바닥이 있어 테이블이 놓였고, 나머지 대부분의 공간은 이렇게 뻥 뚫렸다.

1층과 2층 사이 계단에서, 커다란 액자처럼 바깥 풍경을 담고 있는 창문.

그리고 각양각색의 커피 가는 기계들. 우리 집에 있는 기계도 저렇게 손때가 잔뜩 묻고 세월의 연륜이 담기고 있으니

버리지 말고 계속해서 아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땔나무를 드문드문 넣어주던, 맹렬한 불길이 날름거리던 벽난로. 온통 유리로 된 건물이라 자칫 추워보일 수 있는데

벽난로가 있으니 심리적으로나 실제로나 덜 추운 거 같다.

내가 앉았던 자리. 예가체프 드립 커피를 시켰는데 자리에서 직접 내려주지는 않아 아쉬웠지만.

그래도 새콤하고 쌉쌀한 맛은 실망스럽지 않았던. 이쁜 찻잔 역시 맘에 들었다.

자리에 앉아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히니 보이는 창밖 풍경. 건물 외벽을 타고 올라가는 사다리, 그리고 얼핏

시야 끄트머리에 가지만 걸쳐진 소나무들.

쿠스모토 마키 선집, 이란 책이 책꽂이에 꽂혀 있길래 뭔가 했더니 만화다. 이날 여기에 앉아 봤던 두 권의 책중

한 권. 필치도 좋고 스토리도 매력적이고, 그 중에서 인상적이던 페이지 하나.

그렇게 책도 보고 노래도 듣고 멍하니 있다 보니 창밖은 어느새 어둠이 깔렸다. 비워진지 오래였던 찻잔은

치워지고, 혼자 와서 청승떠는 게 불쌍해 보이셨는지 아메리카노 한잔을 서비스해주신 점원분. 감사해요.


그리고 2층 야외 테라스. 천막처럼 보이는 곳은 따로 마련된 흡연공간이고, 비스듬히 올라가는 벽면에는

커다란 통유리가 시원시원하게 짜맞춰져 있다. 근데 여기는 뭔가 세미나실같은 분위기기도 하고.

금세 어둑어둑해지는 한겨울의 금요일 저녁. 2층이나 1층이나 손님들이 거의 없어서 맘대로 돌아다니며 구경하기도

좋고, 누구 눈치볼 일도 없어서 참 좋았던 까페. 아니, 까페도 까페지만 시간대가 중요했을 거 같긴 하다.

찬바람을 맞으며 멍해진 정신을 애써 추스리고 있는데 저쪽의 도로에서 차들이 드문드문 달려오고 달려간다.

가뭄에 콩 나듯 쌩쌩 내달리는 차들 중에서도 더욱 드물게 코너를 돌아 까페로 찾아 들어오는 차 한대.


더이상 깜깜해지면 돌아가는 길이 걱정이다 싶어, 그리고 이미 네다섯시간 가까이 혼자 놀다보니 괜시리

혼자 눈치도 보인다 싶어 일어나기로 했다. 벽난로 속 노란 불빛은 여전히 맹렬하게 탁탁 타오르고.

다시 순포해변, 순긋해변과 사근진해변을 거쳐 경포해변으로 걷는 길. 이미 차갑게 얼어붙은 공기가 따꼼거렸고

깜깜해진 밤바다는 살짝 무섭기까지 해서, 그냥 도로를 따라 걷기로 했다. 안개가 끼었는지 뿌연 가로등만 띄엄띄엄.

갈 때보다는 훨씬 빠르게, 한시간정도 걸려서 도착한 경포해수욕장의 밤풍경. 차갑고 여린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던.




한 장의 사진을 기억하며 찾았던 강릉 경포해수욕장. 해풍을 막는 야트막한 솔숲 너머로 깔끔한 흔들의자가,

그리고 그 너머로 탈색되어버린 듯한 누런 빛의 모래사장과 퍼러딩딩한 바다가 있었다.

바다에 도달하면 더 나아갈 곳이 없다 멈추게 되지만, 사실 조금만 몸을 틀면 될 일이다. 바다와 함께, 파도소리와

함께 발맞춰 걸어갈 수 있는 길이 무한하게 뻗어가는 거다.

모래사장엔 경사에 기대어 꽁꽁 얼어있는 잔설들이 아직 남아있었다. 여름철 뜨겁게 달궈졌던 누런 모래사장이

색이 바랜듯 창백해져버린지라 시퍼렇게 차가운 얼음눈들은 자연스레 보호색을 맞춰입어 잘 눈에 띄지 않는다.

바다를 따라 앞서 걸어간 걸음걸이들. 발자욱들이 줄맞춰 정연히 늘어선 게 왠지 땅을 헤집어둔 공동묘지같다.

무언가 저 구덩이에 넣고 봉긋하게 흙을 쌓아올리면 파도가 와서 다 쓸어버릴 것 같은. 그런 세기말적 풍경.

바다를 따라 걷는 기분이 그랬다. 파티나 잔치가 끝난 뒤의 적막함이랄까, 50연발 폭죽이 숨쉴틈 없이 터지고 나서

텅 비어버린 채 모래사장에 나뒹구는 느낌. 겨울바다의 풍경들이 하얗게 재만 남아버린 가슴에 날아와 박혔댔다.

BGM은 서영은의 '겨울바다', 경포해수욕장에서 무작정 북쪽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뭐 뾰족한 일정이 있는 것도

가야 할 곳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었으니, 그냥 저 위쪽 어딘가에 테라로사라는 까페가 있다는 이야기만 듣고

슬슬 걸어보기로 했던 참이었다. 바다를 따라 걷다가 불쑥 기습하는 파도에 발걸음이 뒤척거리기도 하고,

문득 뒤를 돌아보면 어느새 발걸음이 파도에 씻겨내리기도 하는 길.

그러다 문득 발에 채인 유리병 하나. 와인병에 코르크 마개로 단단히 막힌 게, 안에는 돌돌 말린 종이까지 제대로

갖춰져 있는 게 한눈에도 파도에 실려온 메시지를 담고 있어 보였다. 뭐지, 일본에서 왔나. 아님 미국..?

그 자리에서 코르크마개를 따고 안의 종이두루마리를 꺼내 보았다. 약간 습기가 차 있긴 했지만 까끌한 종이의

질감이 그대로 남아있고, 테이프로 허리춤이 둘둘 감겨 있어 슬쩍 들춰본 속지엔 한글이 써져 있는 듯. 일단은

들고 가다가 나중에 따뜻한 데 앉아서 읽어보기로 했다.

꽁꽁 언 민물길이 바다로 향하는 길, 얼음에 반사된 빛무리들이 시멘트 교각 바닥을 긁으며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삼면이 바다라는 한국의 해안가에 빼놓을 수 없는, 군부대와 군대 시설물들. 여긴 심지어 탱크가 한대

바닷바람에 녹슬어가고 있었다.

뭍에서 흘러내리는 민물이 모래사장 사이로 야트막한 개울을 만들었다. 찰박거리며 위태로이 바다로 향하는

물길을 시시각각 얼리며 덮쳐오는 얼음판, 그 위로 성글게 번지는 빛그림자.


더이상 물의 흐름이 읽히지 않는 빙판, 여러번 깨지고 얼고 깨지고 얼고의 과정을 반복한 듯 조각난 얼음판들이

조각보처럼 이리저리 얽혔다.

그리고 어느 모래사장에 꽂힌 채 당당히 바다를 굽어보던 팽팽한 낚시대 하나. 가늘고 약해 보이는 낚시대가

바싹 성난 듯이 머리를 곧추세우고 있는 게 제법 긴장감을 머금고 있다.

몇 걸음 걷다가 문득 뒷주머니가 허전해졌다. 아까 그 와인병 안에서 꺼냈던 메시지를 뒷춤에 꼽아넣고 있었는데

여러번 앉았다 일어났다 하며 카메라를 만지다 보니 어느 틈에 도망가 버린 것. 왠지, 그 종이쪼가리를 꼭 찾아야

한다는 조바심이 들었다. 발걸음을 되짚어 거꾸로 걷길 십여분. 이렇게 얌전히 구덩이에 놓여있는 걸 용케 다시 만났다.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모습은 언제 봐도 가슴이 시원해진다. 바다가 떠밀어 보내준 메시지도 다시 찾았고,

방파제를 때려부술 듯한 소리를 내며 들썩이는 파도를 보며 계속 걸었다. 


날카로운 칼날처럼 깨어졌을 유리조각조차 이렇게 부드럽고 둥그런 모습으로 바꿔버리는 파도의, 바다의 위력.

특히나 겨울바다가 주는 신산하고 허한 느낌이란 건, 어쩌면 이렇게 모든 것들을 쓸어버리고 잘게 부숴버리다가

종국에는 남는 것 하나 없이 지워버리는 그 압도적이고 거대한 힘에 대한 경외감이나 허무함일지도 모르겠다.

겨울이라 그런지, 바다 색깔이 한결 더 검푸르다. 잉크처럼 검푸른 바닷물이 수면으로 밀어올려져서는 점점

에메랄드빛으로 연해지다간 하얀 파도로 보글보글. 모래사장까지 끌려나온 파도는 뒤미쳐 온 파도에 익사해버린다.

이쯤이 좋겠다 싶어서, 메시지를 펼쳐 보았다. 누군가의 글씨가 하얀 종이 가득 적힌 채 인연을 칭하며 친구를

청하고 있었고, 언제나 행운이 가득하기를 바란다는 인사까지 적혀있었던 메시지. 이메일 주소도 적혀있었지만

알아볼 수가 없어 연락할 도리는 없고, 배를 접어 바다에 띄워보내는 게 최선이지 싶었다.

그렇게 뭍에서 흘러내리는 민물이 만들어낸 자그마한 개울에 띄워서 바다로 흘려보내며. 중간중간 모래톱에

걸쳐 멈추기도 하고, 빙글빙글 제자리에 맴을 돌기도 했지만 어쨌든 바다까지 나가는데 성공.

순긋해변이던가, 간소하게 만들어진 부두가 방파제의 품 속에 안겨 있었다. 시뻘겋게 녹슨 철제구조물 위로

앙상하게 덮인 나무판때기, 그리고 딱딱한 부두시설과 딱딱하고 약한 배 사이의 완충을 위한 고무타이어.


파도가 철썩철썩 방파제에 속절없이 부딪혀 깨지고 있었다. 자그마한 부두의 외곽을 단단히 감싼 방파제,

언뜻 보면 아무렇게나 팔다리를 쩍쩍 벌린 채 내팽개친 탕녀나 탕아 같기도 하다.

모래사장을 따라 계속 걷고 있는 참이었다. 경포대에서 사근진, 순긋, 순포해변까지 이름이 계속 바뀌고는

있었지만, 모래사장은 죽 이어진 한 길이었다. 물론 이렇게 중간중간 민물이 넘실거리며 모래사장을 가르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물이 마른 겨울철이라 잔뜩 녹슨 다리는 아무 쓰임도 없이 그저 거기 있을 뿐.


바다를 계속 끼고 걷자니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아까는 바다가 모든 걸 지워버리고 무화시켜 버리는 힘을

갖고 있어서 허무하다 했지만, 아니, 그건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아무리 잘게 깨고 부수고 으깨어도 뭔가는


남는다. 그렇게 남은 것들이 조금씩 쌓여 모래사장을 이룬 걸 테니까. 말하자면 저건 수백년, 수만년 전의

감정과 희로애락이 그대로 담겨 있는 거대한 아카이브인지도 모른다.

사념(思念), 사념(沙念), 모래들의 사념들. 파도가 아무리 으깨고 바스라뜨릴 기세로 억겁년을 덤벼든다 해도

사념들은 고스란히 남는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게 변한다는 말이 진리처럼 통용되지만, 아닐지도 모른다.

조금씩 해가 기울어갔다. 쉬엄쉬엄 사진도 찍고 돌아보기도 하며 걸은 길인지라, 게다가 바닥이 단단하지 않아

걷기 쉽지 않은 모래사장으로만 따라 걸어온 길인지라 꽤나 시간을 들여 걷고 있었다.

저 너머 고래등처럼 수면 위로 불쑥 튀어나온 바위 위에는 갈매기들이 가득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녀석들이

싸질렀을 게 뻔한 배설물들이 성난 파도로도 쉽게 지워지지 않을 하얀 줄무늬가 얼룩덜룩.

순포해변을 지나 계속 올라가려는데 아무래도 분위기가 이상하다. 해안가를 따라 철망을 얹은 철책이 끝없이

이어져있고 중간중간 저렇게 침투 대비용 표찰까지 붙여놨다. 어렸을 때는 돌멩이를 철책에 꼽아놨었던 거 같은데.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모래사장, 녹슨 깡통만 굴러다니며 버려진 해변이나 마찬가지다.

한쪽엔 바다를, 한쪽엔 부대를 끼고서 아예 쭉 주파해버릴 생각으로 열심히 걷고 있는데 갑자기 앞에서 난리가

났다. 호루라기를 불고 손을 흔들고. 더이상 접근하지 말라길래 은근 부아가 나서 걍 지나간다는데 왜 난리냐고

한마디 했다가, 그냥 왔던 걸음 되짚어 돌아가기로. 불쌍한 군바리들, 까라면 까는 그들이 무슨 잘못인가.


어렸을 때 크리스마스 트리 위에 얹었던 탈지면 솜뭉치를 닮은 얼어붙은 눈 한조각. 밟으면 아작아작 소리가 나는게

좋아서 한참 밟고 돌아다니다가 조그마한 이 녀석은 차마 밟지 못하고 사진 한장.

이 녀석은 얼마나 묵은 걸까. 모래를 잔뜩 묵은 이 녀석은. 페인트가 벗겨지고 단단한 알루미늄 캔이 호일처럼

얊고 약해질만큼의 시간이 흘렀고, 이제 조금씩 몸이 헐어가며 모래알로 변해갈 거다.

돌아나와선 부대 뒷켠의 차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앙상한 싸리비를 거꾸로 꽂아놓은 듯한 겨울 나무, 그 위로

싸리비에 이리저리 쓸리고 번져버린 듯한 겨울 하늘. 슬몃 노을이 번지기 시작했다.


애초 목적지도 없이 그저 걷던 참이었지만, 문득 생각해보니 이 근방에 테라로사라는 까페가 있다고 했었다.

겨울바다라봐야, 도착하면 금세 추워져서 이내 돌아올 걸 알고 있었으니까. 저런 까페에 앉아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거짓말처럼 눈 앞에 번쩍 나타났다.

그렇게 근 세시간, 경포대에서부터 북쪽으로 해안선을 따라 모래사장을 밟아 걷던 길이 끝나고, 테라로사에 앉아

다시 또 네다섯시간 커피도 마시고 책도 읽고 글도 끼적이고.


잔뜩 걸었지만, 쉼없이 뭔가를 생각했던 것 같지만. 막상 엉덩이를 붙이고 앉으니 다 사라져버린 것 같아서

따뜻한 까페 안에서 이상한 죄책감과 자기혐오에 빠지기도 했던. 그렇지만 그건 또 다른 이야기.




그녀의 시선을 정면으로 맞서며 조심스레 자세를 잡는다.

그녀는 아이폰, 나는 카메라. 바싹 움켜쥐어 상대에 겨누고는 잠시의 틈을 노리는 순간.


그녀가 한걸음 비틀어 내딛는 걸 신호로 한바퀴 팽팽한 원을 그리며 서로를 향한 맹렬한 연사.

온실 속 꽃들과 이파리들이 나부끼는 중에도 서로에 가닿는 초점은 용케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비비적대는 걸음걸이를 감히 플라맹고의 춤에 비기는 건 황송한 노릇이겠지만,

카메라와 아이폰으로 세워진 방패를 벗겨내려는 놀이는 그렇게 사랑춤이 되고 말았다.




@ 아침고요수목원.

쨍하니 파란 겨울 하늘에 짙고 풍성한 흰 구름을 더해내는 듯 연기가 하얗게 바람의 결을 짚어내던 모습.

굴뚝의 높이란 건 생각보다 꽤나 높아서, 저 위쪽 하늘에서 부는 바람은 늘 그녀를 기다리는 마음처럼 들떠있던 것.



@ 서울 서쪽, 안양천 너머.

밤을 꼬박 샌 참이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였지만 배가 고프지도 않았다. 머릿속은 온통 한가지 생각뿐이었다.

그랬는데 어느 순간 곧 동터올 시간이 되었음을 의식했고, 굳이 커다란 가방에 쑤셔넣어온 삼각대가 머릿속 귀퉁이부터

스물스물 다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목도리까지 꽁꽁 싸매고 내키지 않는 몇걸음 나서니 바로 경포 해수욕장의 모래변.

싱겁게 벌겋던 하늘, 날이 흐려 해뜨는 게 안 보이나 했다. 어느 순간 파도가 미친 듯이 펄쩍거렸고, 귀가 얼얼한

파도소리에 덩달아 흥분하기라도 한 듯 붉은 해가 솟았다. 잿빛의 짙은 안개같은 구름을 찢고 그야말로 불쑥, 솟았다.

그 순간만큼은 머릿속을 꽉 채운 채 미동조차 없던 그 한가지 생각도 잠시 사라진 듯 했다. 다행이었달까.

환상이었다. 그 생각은 잠시 밀려났던 성난 파도처럼 내 머릿속을 온통 휩쓸고 다시금 흠뻑 잠식해버렸다. 그렇지만,

태양이 솟고 파도가 철썩이던 그 순간의 압도적이고 삼엄하던 분위기는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온몸에 직접 와 부딪히는

것처럼 격하게 헐떡거리며 절정을 향해 내달리던 파도소리, 그리고 그 거대하고도 무거운 구체의 몸뚱이를 우아하고도

가볍게 하늘의 길을 따라 쳐올리던 태양의 부지런한 궤적.


 


 

@ 강릉, 경포 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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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찬으로 나온 부페를 마지막으로 종무식이 끝나고 바로 달려온 곤지암리조트.

올 겨울 처음으로 스키장에 간 셈인데, 지난 겨울 익혔던 밸런스감각과 무게중심의 이동, 엣지 활용감각 같은 것들이 금세 돌아왔다. 역시 머리는 기억하지 못해도 몸이 기억하고 있더라는.


뭐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어도 어찌어찌 상급에서 놀만큼은 배웠는지라. 사람이 띄엄띄엄한 상급코스에서 쉼없이 슬로프와 리프트를 쳇바퀴돌면서 올 겨울 첫 스키를 만끽하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꽁꽁 얼어붙은 50cc 짜리 심장에 조심스레 열쇠를 밀어넣곤 피스톤을 돌려본다.

덜컹이며 부르르 떨던 녀석의 몸부림이 잦아들 때까지 가만히 시트 위를 누른 채 앉아있었다.

조금씩 부드러워지는 진동, 그래도 여전히 가쁜 숨을 내뱉으며 불규칙하게 몸을 떠는 녀석.


네놈이 길들 떄까지 나는 올라타겠다. 그러다보면 겨울이 가고 봄이 올지니.



* 겨울철 오토바이 관리요령.

1) 2-3일에 한번씩 시동을 걸어준다.

2) 기름통에 기름을 가득 채워둔다(녹 방지)

3) 커버 씌워두기 (눈/비에 녹스는 것 방지)


[장기간 움직이지 않을 경우]

4) 눈/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에 세워두기.

5) 메인스탠드를 세우고 앞뒤바퀴를 지면에서 떨어지게 두기(공기압 유지 목적)

6) WD-40(녹방지제, \4,000원 상당) 뿌려주기.


















바이크의 '시즌-오프'철이 되었음에도 일단은 달린다. 헬멧은 꼭 챙겨쓰고.

딱히 월동준비랄 것도 없고 걍 든든히 입고 조심해서 타는 수 밖에.

버틸 만큼 버티다가, 오토바이를 버리고 나면 운동 겸 걸어서 출퇴근을 해야겠다.






컴퓨터 정리를 하다가 문득 튀어나온 사진들, 지난 여름 즐겨 다니던 잠원 한강고수부지공원에서 찍었는데 잊고 있었다.

그 때만 해도 우와, 굉장히 시원해 보이는 사진이다 싶었는데 지금 다시 보면 왜 저리 헐벗고 있나 싶기도 하다.

꼬맹이가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분수물이 솟구치는 구멍을 밟는 재미에 빠져있는 모습이 귀여워서 잡으려 했는데.

물줄기들이 좀 지저분하게 담긴 거 같다. 위의 사진처럼 무슨 해파리나 연체생물이 튀어오르는 모양으로 잡혔다면

좀더 보기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두 장 다 아쉬움만 가득한 사진.

아이들이 모조리 분수대 속으로 들어가서는 사방으로 팔다리를 휘젓고 다니며 꺄르륵 숨넘어갈 듯이 즐거워하는

웃음소리를 닮았다. 위로 솟구치기만 하고 내려올줄 모르는 분수가 그랬다.






겨울을 보내고, 벚꽃이 날리는 봄이 되어 문득 생각나는 일식 주점 하나.

일본에서 갔던 그런 주점들의 분위기도 제대로 나던 곳, 게다가 일본인 주방장의 솜씨가 좋아서

안주도 술도 모두 맛있던 곳. 특히나 복어 지느러미의 향이 담긴 히레사케를 두손모아 마시면.

갈 때마다 앉게 되었던, 주방장이 안주 재료를 꺼내고 손질하는 걸 바로 구경할 수 있었던

주방쪽 바에 앉아 올려다봤던 냉장고와 벽면에 가득한 일본술들. 그리고 자기 그릇에 가득

쌓아두고 필요할 때마다 한두알씩 꺼내쓰던 달걀도 눈에 들어왔었다.


이제 원전 사고 때문에 일본을 가는 것도, 일본에서 건너온 식재료나 술들도, 맥주니 사케니..

먹을 수 있으려나. 이래놓고 어제도 아사히 맥주를 죽도록 마셨지만. 언제든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이웃나라 일본,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고와 그 거대한 후과로 인해서 문득 그 어디보다

멀고 먼 나라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딱히 색깔이나 무늬를 맞출 생각은 없는 듯 무질서하게 쌓여있는, 그래도 대충 모양새는 비슷한

앞접시들. 누구에게 어떤 접시가 갈지는 모르고, 함께 가서 앞이나 옆에 앉았던 사람과 같은

접시를 쓸 수 있을지도 모르는 그런 뽑기같은 랜덤함도 재미있었다.

빨간색과 검은색 젓가락이 점쟁이 산통에 들어있는 산가지들처럼 뺴곡하게 꼽혔다.

유난히도 길고 지루하던 지난 겨울, 몸을 녹여주고 곤두섰던 신경들을 다독여주던 따뜻한 술 한잔.

도쿠리에 나오는 술이 그렇게 싼 걸 쓰는 건 아닌 거 같았다. 향이나 맛이 조금은 달랐었다.

그리고 유쾌하던 화장실 표지. 가볍게 한 도쿠리와 맛난 안주를 먹고 나서 한참 이야기하다가

나오면, 이미 들어가기 전부터 어두웠던 사방이 더욱 짙은 어둠 속에 가라앉아 있었다.

언제 또 갈 일이 있으려나. 정말 맘에 드는 가게였는데, 겨울이 지나면서 히레사케의 독특한 향도,

따뜻한 도쿠리의 감촉도, 그리고 무엇인가가 사라져버렸다. 일본이란 나라의 '뚜껑'이 닫혀버린

느낌과도 같이 더이상 접근하기도 열어보기도 어려워져버린 기억.





가끔..이라기보다는 더러..집에서 술을 마시곤 하는데, 얼마전 술안주로 맞춤한 메뉴를 발굴해선

겨울내 잘 해먹고 있는 중이다. 탱글탱글한 은행열매를 구워 먹는 거다.

원래는 겨울철에 목이 잘 잠기시는 어머니가 드시려고 경동시장에서 대량 구매해온 거였는데,

중불 위에 올린 후라이팬에 데굴데굴 굴리면서 구우면 쫀득쫀득 맛있어서 술생각이 절로 나더라는.


* 약용으로 쓰려면 :

진해거담에 좋은 은행의 효과를 보려면, 하루 열알 내외를 꾸준하게 먹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경동시장 상인 아지매의 말씀. 너무 많이 먹어도 배탈이나 설사를 일으킬 수 있으니 열알정도

후라이팬에 구워서 간식처럼 먹으면 된다고 한다.


굉장히 만들기 간단하면서도 맥주, 소주, 위스키, 꼬냑, 와인, 사케, 뭐 대부분의 술에 어울리는

안주라 앞으로도 애정해줄 거 같긴 한데, 하다보니 조리할 때 두 가지 정도만 유의하면 더욱 쉽고

맛있게 즐길 수 있을 거 같다.


1) 불조정 :

너무 센불로 하면 은행열매에서 즙이 흘러나와서 쫀득한 식감도 떨어지고 타서 달라붙기도

하는지라 적당한 불조정이 중요하다는 점. 아무래도 은행이 노랗게 익어서 쫀득쫀득하게

씹혀야 술안주로도 제격이지, 바싹 말라붙은 채 타버리면 건강에도 안 좋을 듯하다.

2) 살살 뒤집어주기 :

어느정도 익고 난 후에 움직여주지 않으면 금세 타버리기 때문에 달궈진 후라이팬 위에서 계속

뒤집어줘야 하는데, 넘 세게 흔들다보면 사진처럼 은행 껍질이 절로 벗겨지며 사방으로 날리기도

하니 조심해야 한다는 점. 기분좋게 취해 있는 상태에서 바닥 닦느라 술 깰 수는 없는 일.




은행의 약리효과니 적정 음용량이니 따위 따지지 않고라도, 이렇게 노릇노릇 이쁘게 구워진

녀석들을 한알씩 입에 넣으며 술을 홀짝대는 건 꽤나 기분좋아지는 일이다. 가끔 은행알이

작아서 아쉽다 싶으면 한번에 세네알을 털어넣어주는 것도 좋고.

집에서 술을 마시면, 책상은 술상이 되고 의자는 긴의자로 변신하며 컴퓨터는 뮤직박스가 된다.

그리고 모니터 안 풍경은 그대로 창밖 풍경처럼.




오대산 자락에서 한밤중에 내려서는, 세시간정도 내처 걸었더니 조금씩 해가 밝아왔다. 때맞춰

주위를 둘렀던 산세도 조금씩 완만해지더니 바다까지 슬슬 기어내려왔더랬다. 그리고 하조대.


바닷가에 도착해서 굉장히 추웠던 지난 밤의 고생을 되새길 겨를도 없이 그새 해가 쑤욱 오르진

않았나 걸음을 재촉하는데 문득 눈에 이상한 게 띄었다. 해변 바위들에 띠처럼 둘러져 있는

하얀색 얼룩들. 뭔가 했더니 얼음이다. 파도가 치고 바위에 부딪혀 조금씩 얼어붙은 바다,

그야말로 하얗게 얼어붙은 파도인 셈이다.

보통 철썩, 철썩 치는 파도소리도 강추위에 얼어붙은 채 저기 어딘가 벤치 위에 날카롭고

무겁게 내려앉은 느낌이다. 그래도 벤치 하나가 동그마니 놓인 풍경이 아니라, 파도소리조차

서걱대는 한겨울철 동해바다가 조금은 덜 서럽다.

조금 미적대는 사이에 해가 불쑥 떠올라 버렸다. 새까만 어둠 속에서 꽁꽁 얼어가며 여기까지

왔는데 해돋이를 놓칠 수 없다 싶어 등대 전망대까지 카메라를 들고 뛰었다. 해뜨기 직전이

가장 춥다는 말이 빈말이 아님을 다시금 오랜만에 확인했고, 사방이 온통 밝아지고 난 이후에야

해가 불쑥 떠올라버린다는 것도 새삼 확인하는 순간.

그리하여 하조대의 해돋이. 시시각각 떠오르는 태양에서 뻗쳐나온 불빛이 하늘을 주홍빛으로

밝히고는, 파도가 출렁이는 바다를 두 조각으로 갈라내선 이쪽으로 뻗쳐왔다.

하늘에 구름이 좀 끼어있어야 빛이 얼룩덜룩 구름을 물고 들어가서 더욱 화려한 모습이

되었을 거 같긴 한데, 그래도 역시 온통 깜깜하던 세상에 불쑥 들어밀어진 주홍빛 광채가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푸른색 바다에 대비되는 장면은 참 멋지다.

그리고 후두둑 후두둑 날아가던 말줄임표들. 파도따라 출렁거리며 남쪽으로 날아가던 녀석들.

어느 정도 해가 둥실 떠오르고 나서, 동그랗게 윤곽이 뚜렷하던 해가 더욱 강렬해지면서 스물스물

벌건 하늘로 녹아버릴 즈음, 함께 갔던 신입직원들의 2011년 새해 소망을 담은 연들이 하늘로

날기 시작했다. 뭐, 저렇게 연 하나 띄우는 걸로 뭔가 새해 다짐을 날려보내고 의지를 북돋는 건

조금은 우습다고 생각하지만 좋게 봐줄라 했는데. 바람이 워낙 거세게 불어서 연들이 지들끼리

잔뜩 꼬이고 엉키고, 정말 저기에 그네들의 '새해 다짐'이란 걸 고이 실어보내려 했다면 대부분이

돌바닥에 떨어지거나 바다로 추락해버렸을 듯.

그래도, 그 와중에 몇몇 연은 치열한 경합과 부딪힘을 뚫고서 하늘로 솟았더랬다. 연싸움하듯

얽혔던 실들을 겨우겨우 떼어내고 한줄기 강풍을 따라 하늘로 하늘로.

이제야 조금 해돋이의 의식을 마쳤달까, 한숨 돌리며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하조대

전망대의 등대도 올려다보고, 주위에 놀러온 한줌의 여행객들도 구경하고. 이런 날씨에 여기로

해돋이를 구경하러 나온 사람들이 우리 말고도 있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붉은 기운이 돌던 하늘은 이제 엷은 청색이 돌며 바다랑 비슷해지기 시작했다. 동그랗고 시뻘겋던

태양은 그 형태와 물질성을 잃어버리고, 노른자가 터지듯 하늘 구석구석으로 스며든 채 번져나가는

듯 하다. 노른자가 터지는 거 같기도 하고, 캡슐약이 터지는 거 같기도 하고.






질퍽하게 더러워지고 만 도로와는 달리 사람들이 감히 밟고 다닐 엄두도 못 내게 만들던

삼엄한 눈발 속 쓰레기통의 위엄. 자동차도로보다 순결해보이는 쓰레기통이다.

게다가 하얗게 눈모자를 쓰고는, 평소라면 캔 나부랭이나 담겼을 그물망에는 소보록하니

눈송이가 잔뜩 담겼다. 예수가 '사람 낚는 어부' 운운했던 걸 빌자면, 이 쓰레기통이 쥐고 있는

그물망은 '쓰레기 낚는 그물망'이 아니라 '눈송이 낚는 그물망'으로 변신한 셈이다.

그리고 조금은 지치고 시든 듯한 초록빛 상록수잎 위로 그득하게 엉겨붙은 눈뭉치들.

이미 나려들던 때의 여리여리함과 따꼼한 찰나의 온기 따위는 지워버린 채 덜 떨어진

냉동고 속이나 찜질방 얼음방 속에 서걱거리는 얼음샤벳으로 변신해 버렸다.

눈이 턱밑까지 차오르면 내일 출근할 때에는 삽 한자루를 쥐고 버스 정류장까지 굴을 만들어서

뚫고 가는 재미라도 있을 텐데, 밤에 돌아오려니 제법 삼삼한 날씨인 것이 더이상 눈오기는

글러먹었다. 게다가 차도도 대충 무지막지한 염화칼슘의 위력으로 정리된 듯 하니...별로

딱히 일상에 영향을 미칠 거 같지는 않아서 아쉽달까. 하루쯤 일 안하고 모두들 그냥 집안에

갇힌 채 지내는 것도 좋을 텐데. (일체의 열외없이 전부.)

이런 날은 어디든 사람들 눈치 안 보고 눈밭에서 마구 뒹굴 수 있는 곳에 있었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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