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의 유명한 '경암동 철길마을'.

 

기찻길 옆 오막살이~ 라는 노랫말이 무색하도록, 그 옛날옛날 한옛날에나 있었을 거 같은 기찻길 옆 오막살이들이

 

여전히 고스란히 살아있는 곳. 옛 군산역에서 페이퍼코리아 회사까지 원자재 및 제품을 실어나르던 화물열차길인데,

 

놀랍게도 1944년에 개통된 이 노선이 2008년 6월에야 폐선이 되었다고 한다. 좀더 일찍 알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좁은 일차선 철길 옆으로 기차가 다니는 풍경은 어땠을까. 지금은 이렇게 철길에 다닥다닥 붙여서 온갖 잡동사니들을

 

늘여놓았다. 과거에도 그 자투리 공간을 주민들이 어떻게든 활용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는데 덕분에 영화촬영지나

 

출사지로 명성을 날렸다고 한다. (근데 왜 난 전혀 몰랐을까..)

 

이제 열차가 지나다닌지도 오육년이 흘렀고, 철길 옆으로 다닥다닥 어깨를 겨루는 허름한 슬레이트 건물들 지붕을 따라

 

떨어진 낙숫물들이 철길 위에 고드름을 만들었다.

 

지나는 사람도 흔치 않은, 칼바람이 심하던 12월 중순의 어느 평일날에 찾아든 사람을 보고 강아지가 신났다.

 

 

 이런 식으로 약 일 킬로미터 이어지는 단선 철로, 그리고 그 양쪽으로 늘어선 슬레이트 가건물과 엉성한 외벽 건물들.

 

 

 그리고 페인트칠이 벗겨져 나가는 철문, 그야말로 '우드득 우드득'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

 

 

 얼음이 꽁꽁 얼어서 손수레 안은 온통 작지만 두꺼운 빙판이 되어 버렸고, 어디고 물방울이 떨어지던 곳은 고드름이 익었다.

 

 빨간 기본칠에 더해 초록색 페인트칠을 했던 슬레이트 벽면에 자글자글 균열이 생기고 말았다. 딱 보자마자 생각났던 건,

 

최근 루이비통과 콜라보레이션 작업중인 '도트의 여왕' 야요이 쿠사마의 작품들. 시각에 문제가 있어 세상 모든 물체가

 

점들의 배열로 보인다는 그녀의 작품 세계랑 저렇게 균열진 벽면이 묘하게 닮은 거 같다.

 

 

 

야요이 쿠사마와 루이비통의 콜라보레이션, 이런 식의 디스플레이를 두고 혐오스럽다는 사람도 있었던 거 같지만,

 

그녀의 집요하고 강박적이랄 수도 있을 작품들은 어찌됐건 굉장한 시각적 임팩트를 남기는 건 틀림없어 보인다.

 

특히나 위에 스크랩한 야요이 쿠사마의 작품 중 마지막 작품을 보고 나서 다시 보면, 정말 그렇게 보이지 않나. 나만 그런가;

 

기찻길 철로 위에는 발이 걸리적거리지 않게 아예 나무로 판판하게 덮어버린 구간이 태반이고, 아예 이렇게

 

길 옆에 초막이랄까, 지붕 달린 평상이 하나 지어져 있기도 했다.

 

 

샛길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채 곤죽이 되어버린 선거 홍보물. 18대 대선이 아무리 시끄러웠다고 해도 이런 볕이 덜 드는

 

공간에까지 커버하지 못하는 대선이었으니 무슨 좋은 결과를 바라랴 싶기도 했다. 실제로 그랬고. 

 

 

 

아마도 이전에는 철길 건널목이 있었을 골목통, 지금은 거침없이 차들이 달리는 길을 지나 계속 철길 따라 가는 길.

 

흘러내릴 듯한 슬레이트 지붕이 켜켜이 쌓인 무게를 이기지 못했는지 야트막한 집이 한층 더 낮아보인다.

 

 

덧대고 이어붙이고 다시 쪼아맨 그물망 뒤로는 개인지 닭을 기르던 공간 같은데, 지금은 하얀 눈만 망사를 뚫고 한가득.

 

어느 녀석이 참 꼼꼼히도 그려놨다. 누군가의 이름, 그리고 볼록하니 풍요로워보이는 하트가 두근두근.

 

바로 옆에 이어지는 학교가 있길래 슬쩍 들어갔다가, 무려 20년짜리 타임캡슐이 줄줄이 묻혀있는 곳을 발견.

 

구암초등학교 졸업생들이 이십년 후라고 하면 대충..서른 초반인가. 별 거 없다 흥.ㅋ

 

좀더 가까이, 철길마을의 널판지와 얼기설기 엮인 벽면 너머를 들여다 보고 싶었다. 잔뜩 녹슬어 언제 마지막으로 열렸는지

 

알 수 없는 자물통들이 대개 더이상의 접근을 막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이런 흔적들. 지금도 여전히 텃밭을 일구고 고추를 말리고 빨래를 널어놓는다더니, 지난 여름에 썼을 호미가 널렸다.

 

아리랑 티비에서 취재를 했던 적이 있는지, 그래피티 아래 아리랑 로고가 보인다.

 

아마 텃밭을 일구다가 흘렸던 땀방울을 닦을 수건을 널어두고 싶으셨던 걸까. 조금 부서지고 이그러지긴 했지만

 

여전히 수건 몇 개 걸어두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는 자바라 옷걸이.

 

 

 

흔친 않지만 2층 이상 되는 건물들도 철길 옆으로 바싹 어깨를 겯고 있었는데, 발이 숭숭 빠질듯 보이는 사다리는 참.

 

철로에 머리를 대고 아예 누워버린 국화꽃 화분 위에 하얀 눈이 이불처럼 덮였다.

 

 

안전하려나, 싶을 만큼 붉게 녹슬어버린 양철판으로 지어진 (그것도) 2층 집. 카드로 만든 집처럼 위험해 보이는데..

 

 

눈이 흠뻑 언덕처럼 올라서 버린 어느 곳에서 불쑥 머리를 세우고 있는 맨드라미. 살짝 색이 바랜 느낌의 도돌도돌 맨드라미.

 

그러다가 평상 밑에서 눈을 피하고 있는 꼬맹이 블랙앤화이트 고양이를 만나기도 하고.

 

'당신이 불편해 했을 거란 생각도 했었죠' 라는 시적인 문구가 적힌 장독대도 만나고.

 

그 근처에서 또 발견한 문구 하나. '그래서 다음 만남은 편안하게'. 누가 누구에게 남긴 메시지일까.

 

또다른 문구가 남겨진 게 없나 찾아보는데 계속 뒤를 졸졸 쫓아오는 고양이 녀석.

 

물기도 모두 날려버린 채 바싹 마른, 얼어버린 행주가 빨래집게에 찝혀서는 너울너울 그림자를 흔들어 주었다.

 

다 타버린 살색의 연탄이 구멍을 송송 드러낸 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기도 했던 경암동 철길마을변 풍경.

 

 

군산에 가면 꼭 들러보아도 좋을 곳. 가는 방법은, 군산 이마트를 찾아가면 바로 그 입구 맞은편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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