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크메니스탄이란 나라가 생겨난 건 1991년 10월 27일, 무너져내리는 구 소련으로부터 독립선언을 한 날이다.

이후 15년간 니야조프 초대 대통령의 독재가 이어져왔지만, 정치적 반대세력도 많지 않고 국민만족도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2006년에 니야조프가 사망한 뒤 그의 자리를 이어받은 건 그의 주치의였던

치과의사 출신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 투르크메니스탄의 모든 건물 로비, 건물 내 사무실들, 심지어는

투르크메니스탄 국적 항공기에도 티비가 있어야 할 자리에 그의 커다란 초상화가 붙어있는 나라다.

그런 나라인지라, 초대 대통령의 묘소가 으리으리하게, 마치 파리에 있는 나폴레옹의 무덤 앵발리드를 떠올리게

하듯 금빛 번쩍이는 돔 형태의 지붕과 대리석 뻑적지근한 건물로 꾸며져있는 건 새삼 이상할 것도 없을지

모르겠다. ([파리여행] 나폴레옹의 휴식처, 앵발리드) 사진 촬영조차 금지된 채, 니야조프 초대 대통령과

그의 부모, 그리고 두 형제를 위한 다섯개의 대리석 관이 봉안된 그 곳에서 가이드 압둘라는 낭랑한 목소리로

죽은 이의 안식을 비는 코란을 노래했다. 그의 아버지는 이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유해도 못 찾았고, 어머니와

두 형제는 45년인가, 투르크메니스탄에 있었던 대지진때 전부 돌아갔다고 한다. 압둘라는 그가 대통령이어서가

아니라 그저 망자에 대한 무슬림의 예의로 코란을 읊었다 했다.

그리고 이 건물, Ertogrul Gazy 모스크가 그 묘소 바로 옆에 있었다. 1998년 터키가 건설해서 투르크메니스탄에

선물했다는 건물, 남자 5천, 여자 2천이 한꺼번에 수용가능한 거대한 모스크라고 한다.

현대에 만들어진 모스크라 그런지 전통적인 모습은 그대로 유지되었으면서도 뭔가 현대적인 느낌이 드는 거 같다.

형태의 문제가 아니라 새하얗게 반짝이는 대리석과 화려하게 번쩍이는 금박이 아직 그 풋풋함이랄까 신선함을

잃지 않고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빼곡히 세워진 채 미나렛 첨탑을 따라 위로 쭉쭉 솟은 가로등들 때문일지도.

황금빛과 나무색이 섞인 기하학적 문양이 가득한 문을 지나면 바로 모스크 안으로 입장, 더이상 사진촬영은

불가능한 공간에서 잠시 내부를 둘러보았는데 1층은 남자를 위한 기도공간, 2층은 여자를 위한 기도공간이라고.

여느 모스크들과 다를 바 없이, 기도를 바칠 때 메카 방향을 알 수 있도록 살짝 움푹 패인 '키브라'가 꾸며져

있고 천장의 커다란 돔에는 알라를 의미하는 아랍어가 쓰여있고, 우상숭배가 금지된 그들의 교리 덕분에

발달한 기하학적인 문양들이 빼곡하게 채워진 공간.

다만 이집트나 다른 아랍국가의 모스크에서 느꼈던 편안함이나 여유로움이 느껴지지 않았던 건 아쉬웠다. 아무래도

커다란 덩치를 자랑하는 특별한 '과시용' 모스크이기 때문이겠지만, 사람들의 일상에 콕 박힌 채 누구라도 편히

와서 기도하고 쉬고 갈 수 있는 공간이 아니어서 그랬을 거다. 더구나 바로 옆의 초대대통령 묘소와 맞물려서

더욱 경건하게 위엄을 부리려는 탓도 있을 테고.

사막의 나라 투르크메니스탄, 그곳에서 이런 분수를 넓게 조성해 놓고 또 저렇게 녹색 정원을 잘 관리하는 것은

꽤나 많은 돈과 시설을 필요로 할 거다. 중동의 여러 아랍국가들에서 그렇듯, 이곳 역시 정원과 분수는 부와

권력의 상징. 이 사원은 그런 점에서도 역시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소망교회'쯤 위상을 차지할 거 같다는.

무슬림들은 모스크에 들어가기 전 손발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는 계율이 있다고 한다. 보통 다른 모스크들은

입구 앞 정면에 몇 개 수도가 설치되어 있어서 거기에서 손발을 씻고 들어가는데, 여기처럼 칠천명이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거대한 모스크는 고작 몇 개의 수도시설로 택도 없는 거다. 하여 지하에 목욕탕처럼 잔뜩

설치된 수도꼭지들. 왠만한 사이즈의 목욕탕은 훌쩍 뛰어넘는 거대한 공간이다.

단정하면서도 화려한 느낌의 조명, 그 등불이 천장에 그려내는 격자살 무늬 그림자가 인상적이었다.

Ertogrul Gazy 모스크에서 돌아나오는 길, 사실은 여기에서 초대 대통령 묘소를 향해 사진을 찍는 것조차

금지되어 있다고 했다. 그새 살짝 움직인 태양, 덕분에 잔뜩 역광을 받고 선 모스크를 향해 사진 몇 장을 더

찍으며 압둘라에게 물었다.


투르크 사람들은 이번 대통령이 죽고 나서도 저런 화려한 대통령 묘소를 지으려고 할까. 그는 아마 그럴 거라고

했다. 대통령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는 건지, 아님 그만큼의 애정인 건지 모르겠지만 조금 착잡했다. 십여년

독재를 해온 대통령에 대해 불만없이 수긍하며 죽고 나서도 계속 그의 죽음을 기리는 사람들. 물론 엄청난

부존량을 자랑하는 석유가스 자원이 가져다 주는 '먹고사니즘'의 해결이 그 일등공신이겠지만, 그게 다일까.







투르크메니스탄의 수도 아쉬하바드를 돌아다니며 눈에 띄었던 건 버스 정류장이 곳곳마다 참 다르게 생겼더란

사실, 그리고 그 모양들이 어떤 건 굉장히 공들여서 만들어졌는가 하면 다른 건 그냥 쇠파이프로 얼기설기

엮어놓은 듯 만들어진 것처럼 천태만상이더라는. 게다가 그런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투르크인들의

옷차림이나 행색 역시 꽤나 인상깊었다. 그런 서로 다른 버스정류장과 그 풍경 만을 찍은 것만도 수십여장에

이르는 사진들 퍼레이드.

버스정류장에 멈춰서는 버스들 역시 대개는 저런 신품의 쌔끈한 버스들이곤 했지만, 가끔은 앞 유리창이 온통

먼지낀 채 거미줄같이 사방으로 금이 가있는 그런 버스도 다니곤 했다.

약간명이 앉을 수 있는 벤치가 마련되어 있다는 점과 (아마도) 태양을 가리기 위한 지붕이 얹혀 있다는 점만

같은 특징으로 공유하고 다른 것들은 제각각인 버스 정류장들.

사람 하나 없이 텅빈 정류장이 있는가 하면, 아저씨 하나가 쓸쓸히 벤치를 지키는 정류장도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빨간 투르크 전통의상을 입은 아가씨들이 우르르 버스를 기다리고 있기도 했고. 여긴 무슬림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오랜 공산주의 정권 치하에서 젊은 사람들은 대개 무신론자로 바뀌었다고 한다. 덕분에 히잡을 쓰고

있는 모습도 거의 볼 수 없었다.

투르크메니스탄의 버스정류장에서 볼 수 없는 또 하나의 풍경, 담배를 피고 있는 사람들이다. 여기 투르크에선

공공장소에서의 흡연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물론 외국인이 상대적으로 많이 모이는 호텔 로비나

정문 밖에서는 다들 삼삼오오 모여서 피우긴 했지만, 내국인들에게는 나름 철저히 지켜지는 룰인 듯. 그렇게

법적으로 아예 금연을 시켜야 할지는 좀 생각할 문제지만, 적어도 담배연기가 제멋대로 날아들지 않는 버스

정류장은 생각만 해도 꽤나 쾌적하다.

밤이 되었다고 버스 정류장이 어둠에 먹혀버리는 건 아니다. 전기 아까운 줄 모르고 펑펑 써대는 이 곳에서는,

아마도 아쉬하바드의 이 동네는 일종의 대외용 '쇼윈도우'일 테니 더 심하겠지만, 버스 정류장 역시 화려하다.

실제로 밤에도 버스가 다니는지, 이용할 사람들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달리는 차 안에서 찍은 몇 장 더, 아무래도 동네마다 특징을 잡고 그 모양대로 버스 정류장을 만드는 거 같기도

하고. 아님 그 정류장의 특징에 맞춰서, 예컨대 커다란 재래시장 앞의 정류장은 좀 커다란 간판처럼, 관청들

앞의 정류장은 좀 화려하고 럭셔리하게 만드는 거 같다는 이야기다.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모든 게

획일화되어 있고 몰개성화되어 있으리라 막연히 생각하던 '중앙아시아의 북한' 투르크에서 이렇게 다채로운

버스 정류장들을 헤아려 볼 수 있었던 건 꽤나 흥미롭던 일이었다.




'중앙아시아의 북한'이라 불리는 투르크메니스탄, 수도 Ashgabat는 아쉬하바드라 읽어야 할지 아쉬가바드라

읽어야 할지 스튜어디스들조차 헷갈리던 그런 곳. 아침부터 35킬로그램짜리 출장용 짐을 바리바리 싸느라 테이프

한 롤을 전부 박스포장하는데 써버렸다가, 수하물은 32킬로그램으로 무게가 제한되어있단 이야기에 저 노가다가

결국 아무 쓸데없는 삽질이 되고 말았다는 슬픈 이야기로 시작된 출장.

모래바람이 낭자하게 사방에 모래부스럭지를 흩날리던 거친 사막의 나라. 땀방울조차 붉다던 적토마의 조상인

명마 '아헬테케'를 품고 있는 투르크메니스탄. 자줏빛 석양은 특히나 마음을 흔들었더랬다.

투르크메니스탄의 자동차 번호판. 다섯 주를 의미하는 문양 다섯 개는 각 지역의 전통적인 카펫 문양에서 따온

거라고 한다. 카펫박물관도 있고, 심지어 카펫부-외교부, 지경부처럼-도 있다니 카펫은 이들에게 굉장히 큰

의미를 담고 있는 듯.

오래 된 차들과 소형 버스들, 러시아에서 넘어왔다는 이 낡고 고풍스런 차들이 번쩍거리는 BMW나 벤츠와 같이

도로를 달리는 아쉬하바드의 시내.

여전히 공산주의의 내음이 짙게 풍기는 이곳은 형식상 민주주의를 빌어 정권의 부자세습이 이루어진 나라.

러시아 풍의 군복입은 군바리 아저씨가 누군가를 태운 지나가는 차에 경례를 붙여올리는 순간.

전기가 꽁짜, 물도 꽁짜. 세계 4위의 가스 잠재부존량을 갖고 있는 부유한 나라라 그런지 졸부짓을 좀 해놨다.

촘촘이 늘어선 가로등에 커다란 건물마다 간접조명은 빠지지 않아 밤이 되면 더욱 화려해지는 야경.

러시아, 중앙아시아 지역의 전통음식이라 하면 샤스리크, 돼지고기나 양고기 꼬치구이를 말한다. 아무리 일이

바빠도 현지음식은 제대로 먹어야 되지 않겠냐는 간절한 마음이 담긴, 양 통구이 샤스리크 맛집을 묻기 위한

나의 그림 설명. 이넘의 나라는 러시아어나 투르크어가 주로 쓰일 뿐더러, 영어로 '양 통구이'를 뭐라 해야할지

참 난감하더라는. 생떽쥐베리가 양 그림을 그려달라는 어린왕자를 만났을 때의 고충을 이해했다.

현지 국영방송에 살짝 나온 내 얼굴. 행사를 마치고 잔뜩 지쳐서 돌아온 호텔 방에서 문득 틀었던 티비 속에서

이번 행사 스케치가 한 오분여에 걸쳐 나오는 걸 보고 나름 보람찼다는. 살짝살짝 나오던 얼굴을 찾는 재미 역시.

그리고 잠깐, '투르크의 배한성' 가이드 압둘라를 앞세워 돌아보았던 그들의 초대대통령 묘소. 독재자에 대한,

대통령에 대한 그들의 애정은 너무나 대단해서 거대한 모스크를 지어 기리고 있었다.

마지막날 투르크메니스탄 정부에서 주관했던 만찬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문득 눈에 띈 반달. 투르크도 이렇게

와 보았구나, 그래도 행사 잘 마쳤구나, 며칠씩 두세시간만 자며 고생한 보람이 있구나, 만감이 교차하던 순간.

황량하고 헐벗은 투르크메니스탄을 떠나 때마침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터키 이스탄불에 당도하니 모든 게

풍요롭고 윤택해 보인다. 활짝 열어둔 창문도, 창문틀 위의 작은 꽃화분도.

터키는 요새 석류주스가 유행인 듯. 골목마다 석류를 잔뜩 쟁여두고 바로 짜서 내어주는 주스가게가 성업중.

시지도 않고 새콤하면서 산뜻한 게 아픈 다리 쉬어가며 한잔 쭉 들이키기에 좋더라는.

6년전 터키를 여행할 때 필름카메라를 들고 간 게, 그래서 아껴찍은 데다가 잘 못 찍어 사진이 몇 장 없는 게 

너무 아쉬웠었다. 게다가 내 사진을 찍어 주겠다며 열심히 셔터를 눌러줬던 여행속물 한국인 아저씨는 그 뒤로

연락을 끊고 도망쳐 버려서 더욱 아쉬움이 컸었는데, 한을 풀듯이 잔뜩 셔터를 눌렀다.

어디를 가도, 무엇을 보아도 이쁘게만 보이는 이 도시, 이스탄불은 아무래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곳.

비가 촉촉히 내리고 나니 더욱 산뜻한 색깔을 발하는 까페 앞의 테이블 & 의자.

보스포러스 해협을 달리는 크루즈 위에서 예니 사원을 바라보다. 그때, 저기서 그림그리던 할아버지와

대판 싸웠던 기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그랜드 바자르 뒤쪽의 꼬불꼬불한 골목을 헤매던 기억도 떠올리고.

그때는 너무 비싸서, 아니 돈이 없어서 그저 밖에서만 구경했던 갈라타 타워에 올라가 볼 수 있었음에 뿌듯해하며,

저 갈라타 대교 아래 어디메쯤에서 팔던 고등어케밥의 맛은 그대로일지 궁금해하며.

그렇게 이스탄불에서의 남은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무사귀환. 투르크메니스탄과 터키에서 찍은 사진들은

조만간 정리해서 올리겠지만, 우선 출장 잘 다녀왔습니다~ 하고 인사도 할 겸.




블로그를 하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열리는 때가 있다.

올해 여름 떠났던 도쿄 여행 중에 '에도도쿄건축공원'에 대한 내 포스팅을 보고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책을

집필중이신 저자분이 사진을 부탁해오신 것도 그런 사례 중 하나..

* 참고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그 배경이 모여있는 에도도쿄건축공원

기꺼이 수락하며 사진을 닥닥 긁어 보내드리고 나니 블로그도 한 페이지에 걸쳐 소개해준다하셔서, 끄적끄적.


끄적끄적대놓은 글 모아둘 곳이란 역시 이곳밖에 없어서, ctrl+c, ctrl+v.


뭐, 실제로 출간된 책에 얼마나 어떻게 반영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괜한 설레발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써놓은 게 새삼스레 내 블로그를 소개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는데다가, 미야자키 하야오를 내가 왜

좋아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있는지라 일종의 팬레터라 치기로 한다.



“다른異 색깔彩을 지켜낼 자유”

제가 2008년 여름쯤부터 차곡차곡 특정 시간과 공간에 얽힌 글과 사진들을 쟁여 모으고 있는 작은 가상 공간(ytzsche.tistory.com)에 붙여놓은 이름이니까 일종의 ‘책제목’이라 해도 될 듯 합니다. 대학에 들어와서부터 줄곧 쓰다가 급기야 군대에 있을 때 전투모에도 단단히 오바로크쳤던 이채(異彩, ytzsche)라는 필명을 ‘여행 블로그’에 어울리게 살리려다 보니 조금 꿰어 맞춘 감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끔씩 새삼스런 눈으로 읽어보며 몸과 맘을 돌이켜보게 하는 효과는 있는 듯 하니 다행이랄까요. 여행은, 자꾸만 일상 속으로 녹아들어가 잔뜩 늘어지고 진부해지고 둥글둥글 남들과 닮아만 가게 되는 ‘어른병’을 멀리하기 위한 하나의 치유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 사진 속 ‘절대반지’를 구하러 이집트 룩소로 떠났던 이야기에서부터 서울 이태원 골목, 심지어 소소한 집 앞 골목에서의 이야기로 차츰 제 ‘여행기’를 제 ‘삶’의 이야기로 넓혀가고 싶습니다. 모든 게 낯설고 설레는 여행자의 눈과 마음을 지키면서, 그렇게 다른 색깔 異彩를 지켜내면서요.






‘센’의 세계와 ‘치히로’의 세계가 섞이는 곳

에도도쿄건축공원은 박물관 속 유물처럼 사람과 유리된 채 차갑게 식어버린 ‘민속촌’은 아니란 느낌이었습니다. 아마도 가마지기 영감의 손때가 반질반질 묻은 문구점의 빼곡한 서랍들하며, 녹은 슬었지만 금세라도 삐걱대며 달릴 듯 거리에 서있는 자전거 달구지, 치히로의 부모가 아니라 누구였대도 자리에 앉아 술을 한잔 청할 듯 사람의 온기가 풀풀 나던 주점까지. 하야오가 작품을 구상하며 이곳으로 자주 산책을 나왔던 것도 이곳의 그 묘한 분위기, 1900년대 어느 어간의 도쿄와 2010년의 도쿄가 마구 뒤섞인 채 만들어내는 새로운 느낌과 묘한 에너지에 자극받았던 건 아니었을까요. 웃는 얼굴이 아기같던 안내원 할아버지가 건넸던 바람개비를 공원 돌아다니는 내내 들고 다녔던 것도, 그리고 어느 나무엔가 바람개비를 꼽아두며 주렁주렁 열매맺길 기원했던 것도 모두 그곳이 ‘센’의 세계와 ‘치히로’의 세계가 섞여있는 마법같은 공간이라고 느꼈기 때문일 겁니다.



 

놓칠 수 없는 여행,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

사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은 늘 그런 식입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붕 떠서는 어딘가 낯익은 듯 하면서도 생전 처음 보는 시공간에 내려앉아 등장인물들과 어깨를 맞대게 만드는 마법인 거죠. 쌍발 수상비행기가 기관총을 쏘는 시기의 유럽인가 싶다가도 뭔가 낯설어지고, 근대 개화기 즈음의 일본인가 싶다가도 또 뭔가 낯설게 이지러져 있고. 어쩌면 그의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여행’을 하는 것처럼 느끼기도 합니다. 그가 열어주는 소리에 쫑긋 귀를 기울이고, 그가 보여주는 세상에 눈을 떼지 못하며, 그가 상상해낸 이야기에 가슴 두근거리며 잔뜩 설레고 마니까요. 모든 게 낯설고, 흥미롭고, 끝내는 감탄하게 만들어 모든 사람을 ‘여행자’로 변신시키는 그의 재주는 역시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요. 그가 상상해낸 세계로의 여행은, 그래서 여행자로 살기를 꿈꾸는 제게는 언제든 가슴 설레는 일입니다.

 

* 사실은 사진 한 장 더 넣고 싶던 게 있었는데, 이 것들이 전부 반영될지 아닐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 괜히

책에 누를 끼치는 건 아닐까 싶어 포기했던 게 있다. 누군가; 해맑게 바람개비를 들고 놀이터의 목마를 탄 채

흔들거리는 사진 하나. 하야오 영감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신주쿠에서 약 한시간 반 오다큐선 급행열차를 타고 도착한 하코네, 질좋은 온천과 일본식 전통 료칸으로 이름을

떨치는 곳이지만 등산열차, 케이블카, 로프웨이, 유람선 등등을 타며 한바퀴 돌아볼 수 있는 그 짙푸른 녹색의

자연이 품고 있는 미술관이나 아기자기한 사원들도 무지하게 매력적인, 어찌됐건 절대 놓칠 수 없는 곳이다.

그 곳 중에서도 '족탕'을 품고 있는 야외 정원으로 기억에 남는 '조각의 숲 미술관'.

등산열차로 '초코쿠노모리'역에 하차하고 백걸음도 채 안 걸어 매표소 입구에 도착했다. 일반 1600엔, 그렇게

싸다고는 할 수 없는 입장료인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굳이 하코네에 와서 여길 돌아보고 싶었던 이유는 딱 두개.

피카소 작품이 많이 소장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족탕'이 있어 지친 발을 잠시 쉬어갈 수 있겠다는 나름의 안배.

입장권을 끊고 들어서는 길은 에스컬레이터로 조금 내려가는 길, 하코네 자체가 산에 기대어 경사가 급격한

동네이기도 하니까 미술관도 너른 부지를 마련하려면 좀 아랫턱으로 내려가야 하나보다.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와 굴다리를 지나면, 시꺼먼 그늘과 새하얀 햇살이 극명하게 대비를 이루는 풍경. 너무

갑작스레 공기가 바뀌고 밝기가 바뀌니까 약간 어리버리해진다. 이상한 나라에 끌려들어온 앨리스의 느낌이랄까.

사실 '이상한 나라'라고 번역해 놓은 건 어폐가 있다. 'Wonderland', 놀라운 나라라면 모를까, 이상하다는 표현은

정상적인 것은 이런 거라는 전제가 숨어있는 셈이다. 사람 열명쯤 덮고 잘 수 있을 만큼 커다란 계란 후라이들이

공원 곳곳에 이렇게 철푸덕 떨어져있다면, 이상한 나라일까 놀라운 나라일까.

커다란 머리가 분수대에 뉘어져 있기도 했다, 온통 싱그러운 초록색의 가짜 잎사귀 화환을 한 채.

조금 올라서는 계단길, 뱀이 몸을 구불거리며 나아가듯 유연하고 정연하게 구불대는 계단 손잡이가 재밌다.

그리고 빨주노초파남보의 프레임들이 네모난 무지개를 만들고 있기도 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어서

보는 각도에 따라 완전히 중첩되기도, 혹은 약간씩 서로의 몸을 잡아먹으면서.

네모난 무지개 옆으로는 커다란 몸집의 소가 커다랗게 불어난 젖통을 드러낸 채 띠굴띠굴.

어른 대표선수의 목을 두 발로 힘껏 조르고 있는 아이 대표선수. 불끈 튀어나온 어른 선수의 두 눈이 극렬한

고통을 맛보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는 듯.
꽤나 커다란 '조각의 숲', 색색깔의 목마도 품고 있고, 너트처럼 생긴 조형물들도 여기저기 흐트러진 듯

설치되어 있고. 그렇게 애기들이나 아이들이 만지고 타고 기어들어가며 놀이터처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어느 사거리길 한가운데, 커다랗고 반짝거리는 금속공이 매달려있었다. 내가 지나온 뒷길을 계속 비쳐주던

금속공이었지만 그 아랫춤까지 바싹 다가가서 올려다보니 사거리길 사방을 모두 펼쳐내어 준다.

조각의 숲 미술관에서 중심부에 해당하는 건 바로 이 별 모양의 정원, 미술관 입구에는 챙긴 지도의 그림으로

봤을 때는 그냥 별 모양으로 다듬어놓은 정원이겠거니 했는데. 실제로 보니까 저렇게 깊숙이 차라리 통로라고

해야할 만큼 미로처럼 길을 내놓았다.

입구도 있어서 정원 안으로 들어가 거닐어 볼 수도 있었는데, 이건 정원의 꽃들을 굽어보며 맘편히 산책하는

느낌이 아니라, 어딘가에 숨어있는 치즈를 찾아 헤매며 '내 치즈는 누가 옮겼을까' 정도를 중얼거릴 법한

그런 미로에서 헤메이는 느낌이다.

별 모양의 정원 옆에는 또, 통나무들을 얼기설기 이어만든 커다란 둥지 같은 것이 있었다. 저건 뭐지, 뭔가

얼음덩어리를 쌓아서 만든 이글루를 흉내낸 통나무 버전 이글루같기도 하고, 새들이 지푸라기를 물고 와서

짓는 둥지를 인간 사이즈에 맞춰서 지어놓은 것 같기도 하고.

아이들이 완전 좋아라 하던, 내부는 마치 에일리언이 잔뜩 알을 까놓은 오염된 우주선의 느낌. 여기저기

축축 늘어진 에일리언 알같은 놀이공들을 향해 원투 잽을 날리는 여자아이의 스텝이며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제법 짙은 그늘을 드리운 이 곳에서 어른들은 조금 쉬고, 아이들은 권투를 익히고 있었다.

그야말로 얼기설기, 이런 거 설계하기도 쉽지 않았겠다 싶다. 뭔가 나름의 규칙이 있었을 테고 그것만 알면

지어나가기는 생각보다 수월할지도 모르지만, 애초에 통나무를 이런 식으로 쌓아올려서 뭔가를 커다랗게

지어서 사람들을 들여보내 놀게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예전에 다방에서 하릴없이 쌓아올렸다는 육각성냥갑 속

성냥들의 탑쌓기와는 차원이 다른 거다.

그리고 피카소. 이 곳에서 피카소 관은 마치 가장 소중한 것을 깊숙이 숨겨놓듯 미술관 맨 안쪽에 위치해 있다.

피카소의 드로잉, 조각, 도예 같은 작품들 300여점이 소장되어 있는 이 곳에 가까이 다가가니 뭐랄까, 명당의

느낌. 사방을 산들이 삐쭉삐쭉 호위하며 에워싸고 있고, 미술관 전체 부지를 출렁이던 구릉도 피카소 관 앞에서

잘 다려진 와이셔츠처럼 판판하게 펼쳐졌다.

들어가는 길, 이미 나는 무지개가 뜬 아래 귀여운 우산이 장식되어 있는 우산꽂이에서부터 감탄하고 말았다.

내부는 사진촬영금지, 그래도 2층 전시관으로 올라가는 길에 푸르스름하게 정돈된 햇살을 내어놓는 스테인드

글라스가 너무 이뻐서 한 장 찍고 말았다.

피카소 관에서 나오니 바로 앞에 있는 건 '심포니 조각'. 저 커다란 탑 하나가 고스란히 작품인데 내부로

들어가면 타워를 에워싼 스테인드글라스 조각으로부터 번져들어오는 빛깔의 향연에 감탄하고 만다.

그리고 바로 그 탑을 바라보며 쉴 수 있는 위치, 그곳이 바로 그토록 궁금해 마지 않던 '족탕'이 있는 곳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맨발벗은 두 발을 탕에 담근 채 앉아서 쉬고 있었지만, 그래도 드문드문 빈 자리가 많아

쉽게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양말을 벗고 발을 살짝 물에 담궜더니, 너무 뜨겁지도 않고 싱겁지도 않은 그런 온도다. 따스하게 물이 발을

보듬어주는 정도의 온도. 뒷목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발끝에서부터 찌릿찌릿 전해졌다. 십여분 앉아서 앞의

미술품들도 하나하나 눈으로 좇아보고 주위 여행자들도 구경하다 보니 금세 땀도 식어버리고 완전 기운을

회복해서 벌떡 일어날 수 있었다. 정말 강추. 야외 족탕을, 이런 야외 미술관을 거닐다가 중간쯤 잠시 쉬며

체험해 볼 수 있다는 건 흔치 않은 데다가 굉장히 절실하기도 한 경험.

어떻게 보자면 서울에 있는 올림픽공원이랑 비슷하기도 하다. 자유로이 들어갈 수 있는 잔디밭에 심심치 않게

세워져 있는 온갖 예술품들, 어렸을 적 올림픽 공원에 소풍을 가고 사생대회를 가고 백일장을 가고 또 소풍을

가고 했을 때에는 '출입금지' 표지판이 있거나 말거나 잔디밭 깊숙이 들어가서 조형물들을 막 타고 놀고

그랬었는데. 이제는 저런 벤치에 앉아 조금은 차분하게 쉬고 싶은 맘이 더 커져버렸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풀밭에 뒹굴고 있는 조각 사람을 보면 괜히 나도 같이 옆에 가서 똑같은 자세로 엎드리고

싶고, 그게 안된다면 이렇게 똥침이라도 놔주고 싶고. 아직은 그런 맘이 욱씬욱씬.

앗. 이 녀석은 현대미술관에서도 봤었는데, 그때 설명해주던 도슨트가 굉장히 비싼 작품이라며 무지무지 뿌듯해

하던 게 기억에 남아있다. 거대한 신체, 어딘지 일그러진 채 뮐렌도르프의 비너스를 떠올리게 만들던 그것.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뮐렌도르프의 비너스가 현대 사회에 살면서 힐을 신고 핸드백을 든 느낌.

숲 가장자리에 슬어있는 벌레들 알뭉치 같기도 하고, 칭칭 감긴 거미줄 같기도 한 이것, 완전 아이들이 좋아죽는

또다른 놀이 공간이다. 어렸을 적 꿈꿔보던 그런 스릴넘치고 아드레날린 쭉쭉 분비되는, 좁은 통로를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며 불쑥불쑥 예기치 않은 곳에서 고개를 내미는 그런 반투명한 공간.

어느새 잔뜩 커져버린 내 몸뚱이에는 가혹하게 작은 구멍과 통로 공간을 원망하다가, 사실은 어느새 저런 곳에

들어가 와와 소리지르며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기엔 '쪽팔림'을 알아버린 스스로를 원망하다가, 옆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우리, 제로나 할까.

그렇지만 난 군대도 현역으로 제대한 신체건강하고 정신멀쩡한 이땅의 성인남성. 얼굴 따위 붙어있지도 않은

두 팔모가지가 권해오는 제로 게임보다는 이런 남녀 신체의 향연이 훨씬 좋단 말이다. 와우.

삼각대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다가, 문득 삼각대 다리 한쪽에 꽃대궁이가 낑겨 있는 걸 발견하고 깜짝 놀랬다.

어디서부터 따라나섰는지 모르겠지만 새하얀 꽃잎의 부드러운 색감도 그렇고 나풀거리는 모양새도 그렇고

너무 청초해 보인다.

돌아나오는 길, 그래, 아까는 오른쪽의 좀더 각진 문으로 이 '조각의 숲 미술관'에 들어왔댔다. 이번에 나가는

문은 좀더 둥그렇고 좁은 문. 들어오는 문과 나오는 문이 같을 필요도, 그 모양이 같아야 한다는 법도 없는데

이런 식으로 입구와 출구가 다른 것도, 모양새가 다른 것도 신선하기만 하다.

독일의 캐릭터던가, 왜 그 엑스자 모양의 입을 가진 과묵한 토끼인형 미피(Miffy)전도 특별전의 형식으로

하고 있었다.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옆에서 방문자들을 배웅해주던 스탠드로 변신한 미피. 참 뭐랄까, 끝까지

재미있게 해주는구나 싶었다.

* '조각의 숲 미술관' 지도.




흡사 이것은 신호등의 빨노초, 아니면 신호등을 따서 만든 '신호등' 사탕의 빨노초. 아마도 같은 호박일 텐데

이렇게 다른 색깔로 늙어버릴 수 있는 건지. 제각기 바람에 씻기고 빗물이 괴었던 풍상의 자국이야 매한가지라지만

늙고 나서 돌아본 색깔이 저렇게도 다르다.

이 녀석들이 그렇게 늙어버린 거야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요렇게 셋이 쪼르르 이어 붙여놓은 건 분명

센스있고 다감하던 가게 주인아주머니의 작품일 거라 짐작해보며, 요리조리 사진을 찍어보는데 그다지 맘에

드는 구도가 안 나온다.

그냥, 그래도, 푸욱 맘놓고 늙어버린 저 녀석들을 보면 왠지 가을의 정취가 막 밀려오는 것 같고, 게다가

저렇게 제각기의 색깔로 지인생 마무리하는 듯한 모습도 보기 좋고. 곱게 늙을지어다, 우리도 이 정도는

곱게 늙지 않았는가베. 하고 말해주는 거 같기도 하다. 빨갛든 파랗든, 혹은 노랄지라도.





이름도 재밌는 '똥빵', 입안에서 발음을 할라치면 연이어 터지는 된소리의 박력에 깜짝 놀라고 만다.

잘 익고 잘 만들어진 그야말로 순대와 똥꼬의 환상적인 궁합을 보여주는 결정체, 이름에 걸맞는 모양새의 똥빵이다.

똥빵을 싸지르는 가게엔 역시 똥모양 인형들이 주렁주렁. '똥'이라고 한마디만 해줘도 자지러져라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아예 작정한 듯 노골적이다.

시식법은 다음과 같다. 똥빵을 산다, 냠냠~맛있게 먹는다, 응가한다, (이 대목에서 아이들 꺄아~*^0^*),

상태를 관찰한다, (아이들 자지러진다~**^O^**), 봉투에 기록한다, 그리고 봉투를 보관한다.;

봉투에 뭐라고 기록하냐고? 완전 내장과 똥꼬의 환상 콤비플레이였다고 적든, 김연아와 오서 코치처럼 이제는

내장과 똥꼬가 헤어져야 할 때라고 적든. 그건 아이 맘대로.

사실은, (어른들에게만 몰래 귀속말로 전하건대) 똥빵이나 호두과장나 풀빵이나 그게 그거다. 대충 기계는

삥삥 돌고 밀가루 갠물 찍찍 싸면 잣 하나 끼워주고 팥앙금 자그맣게 얹어주고 포개서 뒤집는다. 근데 뭐,

맛있긴 맛있더라는. 팥도 그렇게 달지 않고 똥의 훌륭한 조형미 덕분인지 빵 껍데기도 온통 노릇노릇 고소하고.

그 맛의 비밀은 인체공학적 디자인, 평생 한번 보기도 힘들다는 잘 싸진 똥을 닮은 잘 생긴 똥빵, 헤이리 가면

한 번쯤 시도해 보시길.




@ 헤이리 어디메쯤.

이효석이니 정지용이니, 지역을 대표할 만한 인물이 있다는 건 지자체들로서는 꽤나 '땡큐'한 일일 거다. 아니,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끼리도 산타클로스의 고향이 핀란드니 아이슬란드니 하면서 툭탁대면서 서로

갖겠다고 야단인 걸 보면, 요새같이 '마누라와 자식들 빼고 다 파는', 심지어 자신조차 좋은 값에 팔기 위해

버둥대는 시대에 정말정말 땡큐한 일일 듯. 강원도 평창의 인물, 가산(可山) 이효석 문학관으로 향하며 가장

처음으로 들었던 생각.

이효석, 그는 '메밀꽃 필 무렵'으로 중고교 교과서를 평정해버린 인물인 거다. 그 밖의 '분녀'니 '화분'이니 몇개

읽었던 작품들도 있긴 하지만, 그리고 그의 문학관 가는 길목에 문처럼 버티고 선 저 커다란 책들이 보여주듯

다른 대표작들도 많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메밀꽃 필 무렵'의 그 선뜩하고 소름돋도록 아름다운 묘사들의

임팩트가 워낙 크다. 내게 가장 인상깊은 구절은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 운운하던 그 대목.
 
길 오른편으로 선명한 녹색과 노랑색 모자이크가 조그맣게 펼쳐진 논밭 풍경을 끼고 메밀밭에 포위당한 언덕을

조금 올랐다. '소금을 뿌린듯이' 하얗다는 메밀꽃은 8월말에서 9월초쯤에 피는데, 그때 맞춰 이곳에선 지역

축제가 벌어진다 한다. 올해는 축제기간 중 대부분 비바람이 몰아쳐서 영 재미가 없었다는 메밀부침팔던

아주머니의 전언.

그렇지, 이 대목이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풀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굉장히 운치있고 애잔하면서도 에로틱하고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섹시한 묘사. 이효석은 정말이지 푸른 달이 풀포기와 옥수수 잎새를 폭풍처럼 덮치는 광경을

보고 말았던 건지도 모른다.

'메밀꽃 필 무렵'의 처음부터 끝까지가 새겨져 있는 판목, 이효석 문학관 바깥 벽면에 걸려 있었다. 잠시 발걸음

멈추고 좋아하는 구절을 찾아보고, 기억이 가물가물하던 장면을 되짚어 읽어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길다면 긴,

그렇지만 사실 굉장히 짧아 보이는 저만큼의 글자들 무더기 안에, 물레방앗간의 속살거림이 있고 달이 따르며

비추는 길도 있고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도 생생하게 담겨 있는 거다.

사실 초기 이효석은 당대 식민지 조선의 인텔리 청년답게 사회주의, 러시아혁명에 동조했던 '동반자 작가'의

일인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일제가 계급주의 문학을 탄압하기 시작한 30년대 초반, 그리고 이효석 개인으로서는

열흘남짓 조선총독부 검열계에서 일하다가 때려치고 말았던 그 즈음부터 그는 인간의 애정욕이라거나 자연에

집중하는 탐미적인 글들을 쓰기 시작한다.


왠지 굉장히 와닿던 구절. "사상적 동감보다도 시각적 애정으로 첫눈에 끌은 그를 주리야가 사랑하지 않을 리

없었다...사람의 육체에 눈이 있고 심장이 있는 이상 이것은 결코 죄악이 아니라고 그는 생각하였다...감정의

명령을 잘 좇는 것이 도리어 양심에 충실한 소이가 아닐까 생각하였던 것이다."([주리야], 이효석)

그의 서재 모습을 재현해 놓은 공간에서 지금의 우리가 느끼는 것과 그때 이효석이 자아내려고 했던 느낌과는

사뭇 다른 점이 있을 거다. 그가 빵과 버터를 즐기고 프랑스 영화감상을 즐기며 유럽여행을 늘 꿈꿨다고 해서

이걸 단순히 서구지향적이라거나 서구적 취향을 갖고 있었다, 라고 이야기하고 말기에는 그 시절의 '서양'과

지금의 '서양'은 꽤나 다른 뉘앙스를 풍기는 거 같다. 그 시절의 '서양'은 뭔가 바다너머, 평생 한 번 가보기도

힘든 그런 곳. 일종의 '피안'이랄까 '노스탵지어' 같은 공간 이미지 아니었을까.


그런 곳을 지향하던 이효석의 지향은 오늘날로 바꿔 이해하자면, '달'이나 '외계' 정도로 알아들음 되려나.

그런 점에서 그를 '서구지향적 모더니스트'라고 하기보다는 '보헤미안' 아님 '노마드(실향민)' 정도로 지칭하는게

좀더 적실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 시대적 좌절 속에서 정면으로 맞서지도 적응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취향대로

시대에 반응하던 존재. 빵상아줌마나 허경영 따위 짭퉁 말고, 밤하늘 어딘가 자신이 돌아갈 곳이라 믿는 작은 별

B-612를 그리는 어린왕자 쯤이 이효석의 문학세계의 감수성에 맞을 듯.

그렇지만 지구에 불시착한 어린 왕자같은 그인지라, 한글 실력은 참. 도무지 알아보기도 쉽지 않은 난필이다.

'메밀꽃 필 무렵'이 영화로도 만들어졌었다는 사실. 이효석의 다른 작품인 '분녀' 역시 영화화되었었다고 한다.

책을 보고 영화로 다시 보게 되면 십중팔구 실망하기 마련인데 저 영화를 봤던 사람들은 어땠을까. 조금은

아슬아슬하고 색정적인 이미지들을 머릿속으로만 그리다가 직접 눈으로 보게 되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자그마한 문학관이 나름 칸칸이 알차게 꾸며져 있어서, 메밀의 효능과 메밀을 활용한 음식들을 구경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돌아나오기까지 한참이나 걸렸다. 굉장히 담백하고 선굵게 그어진 '화장실' 사인부터 찾아 한숨돌렸다.

문학관이 C자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자그마한 정원 한귀퉁이에 섰던 빨간 우체통. 이효석 문학관과 봉평을

홍보하는 무료 엽서에 글을 적어 우체통에 넣으면 나중에 배달이 된다는.

정원 한가운데 책상에 앉아 공책을 펼치고 머릿속 단어들을 가다듬고 있는 가산 이효석의 동상이 있다. 마침

누구라도 와서 앉을 수 있게 비어있는 의자도 이효석 옆자리에 마련되어 있어서 함께 사진찍고 돌아서기 딱

좋은 공간인 듯. 그게 아니라도 이렇게 이쁘장하게 꾸며놓은 벤치도 있고.

문학관 안에는 '메밀꽃 필 무렵'의 인상적인 장면 몇몇을 재현해놓은 인형 세트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그 유명한 '물레방앗간' 장면에서 느껴지는 저 생생한 긴장감과 벌떡거림이란. 젊던 허생원의 손끝이

갈피를 못 잡고 허둥대는 것만 같다.

문학관에서 조금 내려와 걷다보면 이내 그 물레방앗간이 나타난다. 허생원과 동이들이 술을 마시던 '충주집'은

원래 실존했던 거여서 예전 위치 부근에 '복원'해 놓았다고 하고, 이 물레방앗간은 이효석 생가를 복원하면서

함께 만들어 놓은 것이라 한다. 그렇지만 낮에도 저렇게 깊고 완고한 어둠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라니 왠지

이전에 존재하던 '레알' 물레방앗간과 크게 다르지도 않을 거 같다.

이효석 문학관 주변은 온통 메밀전, 메밀동동주를 파는 집들이다. 이효석의 문학 작품 하나 덕분으로 지역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메밀. 집집마다 초가지붕과 옹기 조각 따위로 한껏 분위기를 내었지만 이 집이 그 중에서도

가장 출중한 듯. 가게 입구 어름에 동이나귀와 성처녀나귀가 장승처럼 버티고 섰다.

그리고 이번에는 조금 다른 버전의 성처녀상. 푸훗.

봉평 재래시장에도 들를 겸 섭다리를 건넜다. 한번 장마에 떠내려가고 나면 다시 만드는데 오백만원이 든다는

섭다리는, 작년 재작년에는 거푸 떠내려갔었지만 올해는 어째 물이 찰랑찰랑하더니 다행히도 떠내려가지는

않았다고 했다. 

걷다가 살짝 출렁출렁하는 느낌이 들어 장난삼아 쿵쿵 뛰었더니 금세라도 밑이 쑥 빠져버릴 것만 같다. 소나무로

틀을 짜고 거적대기와 소나무가지들을 위에 올려서 흙으로 다진 거 같은데, 삐죽삐죽 튀어나온 소나무 가지들도

그리고 자잘하게 균열이 그려져 있는 다져진 흙들도 재미있다.

그에 반해, 이건 정말 아니다 싶던 것들. 말라죽거나 말거나 듬성듬성 갖다가 꼽아놨으니 내 할일은 다 했다고

말하는 듯한 이 인도변의 '꽃.밭.'. 게다가 그 옆에 저 얼룩덜룩한 무늬의 보도블록은 뭔가.

으악. 이건 너무너무 촌스럽고 하나도 도로 바닥과 어울리지 않는 디자인인 거 같다. 무슨 꽃인지 모르겠지만

하얗고 뻘겋고 시퍼런 얼룩이 보도블록에 마치 곰팡이처럼 슬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회색빛 블록이나

검은빛 아스팔트와 맞닿아 있는 상황에서 전혀 쌩뚱맞아 보이는 부조화를 보인다는 것도. 뭔가 튀고 싶었다면

차라리 이효석이나 다른 문인들의 작품을 한글로 프린팅해 넣던가.

봉평 이효석 문화마을, 아기자기한 것들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이어져 있는 데다가 워낙 고즈넉한 동네여서

산책하듯 걸으며 즐기기 딱 좋은 마을인 거 같다. 다음번에는 8월말이나 9월초, 흐뭇한 달빛아래 메밀꽃이

소금을 뿌려놓은 듯 새하얗게 빛나는 때 와봐야겠다. 혹시 그때는 나도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여행 정보


주요 관광지


아쉬하바드(수도)

1881년 러시아 수비대가 건설

1893,1895,1929년 지진으로 파괴와 재건 거듭

1948년 지진으로 도시 전파, 약 11만명 희생

민족 역사 박물관

1998년 11월 9개의 전시관으로 개관

중생대 자료, 니사의 신석기 유물, 청동기 유물 등 약 50만점의 자료 전

조로아스터교 종교의식에 쓰였던 제기가 유명

카페트 박물관

□ 주소 : Archabil av.31

□ 전화번호 : 48-97-32

□ 관람시간 : 매일 10:00-17:00 (화요일 휴관)

□ 관람요금 : 외국인 $10, 내국인 2 DTM

1994년 개관

골동품 융단 및 대형 수직 카페트 전시

크기 : 302㎡, 무게 : 1.2 ton 의 대형 수직 카페트 전시 (기네스북 등재)

Ertogrul Gazy 모스크

□ 주소 : Shevchenko str.48

□ 관람시간 : 매일, 24시간

□ 관람요금 : 무료

1998년 터키가 건설 투르크멘에 선물

총 7,000명(남자 5천, 여자 2천)이 동시 기도 가능

코브 아타(동굴의 아버지) 동굴

□ 관람시간 : 매일 09:00-18:00

□ 관람요금 : 외국인 30 DTM

아쉬하바드 남서쪽 170km에 위치

대형 강당 같은 공간 존재(230x20x57m)

52m지점에 유황 성분을 함유한 수온 33-37도의 호수(72m x 30m) 위치


◆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 지정지

메르브

ㆍ 1999년 투르크메니스탄 최초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ㆍ 마리시에서 북동쪽으로 약 25km

8백년전 바그다드, 카이로, 다마스커스 등과 이 이슬람의 가장 중요한 거점도시 중 하나

ㆍ 13세기 몽골군의 침입으로 완파

쾌네 우르겐치

ㆍ 2005년 투르크메니스탄에서 두 번째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ㆍ 아쉬하바드에서 북쪽으로 480km

ㆍ 고대 호라즘 제국의 수도

ㆍ 중앙아에서 제일 높은 67미터의 쿠트룩 테미르 첨탑 위치

○ 니사

□ 관람시간 : 주중 09:00-17:00 (13시~14시 점심, 일요일 휴일)

□ 관람요금 : 외국인 10 DTM

ㆍ 2007년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세 번째로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

ㆍ 아쉬하바드에서 서쪽으로 18km

ㆍ B.C 3~4세기 고대국가 파르티아의 수도

ㆍ 그리스의 영향을 받은 유물 다수 출토

ㆍ 13세기 몽골군의 침입으로 완파


치안상태


안은 비교적 양호한 편이나 아프가니스탄 접경지역으로의 여행은 자 제하여야 함.

시내에서 불시 검문이 잦은 바, 외출 시 반드시 여권 또는 신분증을 소지하여야 함.


교통


○ 교통 소통 원활한 편임.

○ 외국인의 경우 대중교통수단보다는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함.

시의 경우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으며 요금은 기준요금이 아니 흥정을 통해 결정함. 보통 20~3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라면 $2~$3불 정도 지불함.


환전 & TIP


환전은 보통 도시 곳곳의 환전소를 이용하며 고정 환율로 $1당 2.843 마나트임.

일부 호텔을 제외하고는 신용카드나 T/C는 통용되지 않음.

신용카드 사용시 수수료 5% 별도 추가.

○ Tip은 호텔 객실 $1, 식당은 인원에 따라 $1~2 정도 지불.


국제전화


투르크메니스탄 → 한국

ㆍ 일반전화

810 - 82 - 2 - xxx xxxx

(한국)(서울)(전화번호)

ㆍ 휴대전화에 통화시

810 - 82 - 0을 제외한 휴대전화번호

(예 : 810-82-11-234-5678)

한국 → 투르크메니스탄

ㆍ 일반전화

001 또는 002 - 993 - 12 - xxxxxx

(투르크멘)(아쉬하바드)(전화번호)

ㆍ 휴대전화

001 - 993 - 66(또는 65) - xxxxxx

(투르크멘)(사업자번호)(전화번호)

(예 : 001-993-66-123456)


의료


재국은 의료 시설이 크게 낙후되어 있으며, 약국은 많으나 간단한 의약품도 구하기가 어려운 바, 감기, 설사, 소화제 등 상비약은 휴대하는 것이 좋음.


위생


돗물은 식수로 사용 불가하며, 반드시 생수를 사서 마시는 것이 안전.


전기


기는 220볼트, 50㎐이고 콘센트는 일반적인 둥근 2핀 콘센트. TV, VTR은 SECAM 방식임.


색안경 착용 권장


히 여름철에는 햇빛이 강한 바, 눈 보호를 위해 색안경을 착용하는 것이 바람직함.


에티켓


○ 방에 들어서면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 다가가 한사람씩 인사를 나눠야 함.

○ 방에 누군가 들어서면 항상 일어서서 맞이해야 함.

○ 누군가 방문하면 항상 차와 음식을 대접함.

○ 휘파람을 부는 것은 예의 없는 행동임.

○ 나이 많은 사람에게 대들지 않아야 함.

○ 상대방이 무안해질 말을 삼가.

○ 문지방에서 손님을 환영하거나 악수하는 것을 피함.

○ 손님은 항상 대문을 통해서 맞이하고 집안에 들어와서 환영함.

○ 공공장소에서 배우자에게 애정을 표시 삼가.



현지 주요 연락처


재외공관 정보


○ 주소 : Embassy of the Republic of Korea, Archabil avenue 25 Rahat Hotel,Ashgabad, Turkmenistan

○ 전화 : 993-12-48-97-61(62)

○ 팩스 : 993-12-48-97-60

주요 호텔정보 (아쉬하바드 시내)


○ President Hotel (5성급)

- 주소 : Archabil Higway

- 전화 : 993-12-40-00-00

- 팩스 : 993-12-40-02-22

○ Grand Turkmen Hotel (4성급)

- 주소 : Gerogly Street, 7

- 전화 : 993-12-51-05-55

- 팩스 : 993-12-51-12-51

○ Four Points Ak Altyu (4성급)

- 주소 : Magtumguly ave., 141/1

- 전화 : 993-12-36-37-01

- 팩스 : 993-12-36-35-43






투르크메니스탄 약사


민족 형성 및 각국의 지배


구석기시대 투르크멘바쉬 인근에서 인류 거주

○ 8,000년 전 코페트다그 산맥 지역에서 신석기 농경 시작

○ 청동기-Anau(아나우)문화 코페트다그 북부와 테젠강 하류에서 발흥

○ BC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 그레코-박트리아 왕국에 의해 피지배

○ 9세기말 이후 투르크계 오그즈족 이슬람교 수용→투르크멘 명칭 처음으로 등장

○ 12세기말 ∼ 13세기초 호레즘왕의 지배

○ 1219 ∼ 1221 징기스칸의 지배

15세기 ∼ 17세기 남부부족-페르시아, 북부부족-히바와 부하라왕의 지배

○ 18세기초 페르시아, 18세기말 부하라왕의 지배


帝政러시아와 舊소련 시대


1860년 제정 러시아군에 의해 크라스노봇스(現 투르크멘바쉬)시 건설

1869 ∼ 1880년 대러 항쟁

1884년 항복

1917년 자카스피 반볼세비키 지역 정부 형성, 투르크멘 의회 수립

1918년 4월 투르크멘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선포, 7월 영국 지지하 민족주의자들 볼세비키 정부 전복, 독립 정부 수립

1920년 붉은 군대에 의해 독립정부 전복

1924년 10월 투르크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수립

1930년초 정치적 자치 운동 시작했으나 많은 지식인이 투옥 또는 처형됨


영세중립국 투르크메니스탄


○ 1990년 8월 주권 선언

○ 1991년 10월 독립 선언(10.27 독립기념일)

○ 1995년 UN 총회에서 영세중립국 결의안 채택

○ 2006년 12월 니야조프 초대 대통령 사망

○ 2007년 2월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 취임

○ 2008년 9월 헌법개정안 채택



정치 · 사회 동향


정치 및 국제관계


야당 및 반대세력이 없어 정치 안정 가능

2007년 2월 11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전임 부총리이자 보건부 장관이었던 베르디무하메도프가 의회(Khalk Maslakhaty) 및 엘리트 집단의 절대적인 지지와 높은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음.

ㆍ 철권통치를 자행해온 니야조프 전임 대통령의 2006년 말 사망으로 신임대통령 선거 실시

ㆍ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은 여당인 투르크메니스탄 민주당(구공산당)을주축으로 하는 단일정당체제 유지 및 실질적인 반대세력과 언론에 대한통제를 지속할 것으로 보여 당분간 정치적 불안은 없을 것으로 보임.

헌법 개정으로 대통령 권한 강화

ㆍ 2008년 9월 헌법이 개정되어 인민평의회(Khalk Maslakhaty)가 폐지되었으며, 의회(Mejlis)의 의원수가 65명에서 125명으로 증가됨으로써 명목상 국민의 대표자 수는 증가되었음.

ㆍ 동년 12월 민주적 총선이 실시되었으나, 유일합법정당인 민주당과 정부가 승인한 비정부기구만이 후보를 낼 수 있어 일당체제는 여전히 유지

ㆍ 그러나, 동 헌법 개정으로 대통령이 주지사 임명권을 보유하고 국가안보회의(State Security Council)의 의장이 됨으로써, 대통령의 권한은 더욱 강화되었음.

러시아와 갈등 발발에도 불구 여전히 중요한 협력 상대

ㆍ 투르크메니스탄은 연간 700억㎥의 가스를 생산하며, 니야조프 정권이 2003년 체결한 25년 장기 가스 공급계약에 따라 이중 약 500억㎥를 러시아 국영석유기업 Gazprom의 송유관을 통해 러시아로 수출하고 있음.

ㆍ 러시아는 투르크메니스탄으로부터 저가 구입 후 우크라이나에는 고가판매를 함으로써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한편, 중앙아시아에서의 에너지 패권을 강화하고 있음.

ㆍ 2009년 4월 가스관 사고로 인해 분쟁이 발생하여 대 러시아 가스공급이 중단되었으나, 동년 9월 13일 가스공급 재개에 합의함. 그러나 투르크메니스탄은 러시아의 자국 가스 재수출을 반대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투르크메니스탄의 고정가격 기반 가스공급에 불만을 가지고 있어 향후 분쟁 재발 가능성이 남아있음.

ㆍ 그러나 투르크메니스탄 입장에서 러시아는 여전히 최대 가스수출 대상국이며, 러시아 입장에서도 자국 가스전개발에는 고비용이 소요되어 투르크메니스탄의 가스공급이 에너지 정책에 있어 중요하므로 현재 갈등에도 불구 양국의 경제협력관계는 유지 될 것으로 전망됨.

○ 중국과의 경제협력 관계 증진

ㆍ 2006. 4월 중국과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 협정을 체결한데 이어 2007. 8월 중국 CNPC 주도의 총 7,000km의 가스 파이프라인(Central Asia Gas Pipeline) 건설에 착수하였고, 2009년 12월 가동될 것으로 전망됨.

중국에 대한 가스 공급 물량을 연간 300억㎥에서 400억㎥로 확대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동 파이프라인이 완공되면 중국은 러시아에 이은 두 번째 가스 수입국이 될 것임(러시아에는 약 500억㎥ 수출).

ㆍ 2007년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의 중국 방문과 2008년 후진타오주석의답방을 통해 양국은 에너지 부문 이외에 섬유, 은행업, 통신 등 다방면에 걸친 협력을 약속하는 등 최근 양국간 경제협력관계가 증진되고 있음.

○ 가스 수출 다변화 움직임의 일환으로 서방과의 협력 확대

ㆍ 최근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은 러시아와 이란에 국한된 가스 수출선 다변화하기 위해 서방과의 협력의사를 표방함.


사회 및 소요사태


○ 장기 독재정권 지속에도 불구, 저항세력이 많지 않아 소요사태 발생가능성은 낮음

ㆍ 전임 니야조프 대통령의 독재정권이 15년 동안 지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저항세력이 많지 않고 국민만족도도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현대통령이 급격한 정치적 변혁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지 않아 사회불안사태가 야기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임.



국제 신인도 및 대외지급능력


주요평가기관 신용등급


○ 주요기관별 신용도 평가순위

ㆍ 2008. 1월 OECD는 투르크메니스탄의 높은 자원개발 가능성 및 신정부의 대외관계 개선 노력 등을 바탕으로 국가 신용등급을 7등급에서 6등급으로 한 단계 상향 조정한 바 있음.


평가기관

최근 평가 등급

종전 평가 등급

수출입은행

D2(2009.12)

D2(2008.11)

OECD

6등급(2008.1)

7등급(2007.1)

S&P

B2(2006.5)


*
Euromoney: 155/186('09. 3) → 155/186('09. 9)

* I.I: 129/177('09. 3) → 120/178('09. 9)


외채상환실적


○ 가스 수출에 따른 외환보유액 증가

ㆍ 에너지 수출 호조에 힘입어 외환보유액은 2005년 45억 달러에서 2008년 167억 달러로 크게 증가하였음. 2009년 러시아에 대한 가스공급 중단으로 수출이 감소하여 꾸준히 증가하던 외환보유액이 94억 달러 수준으로 감것으로 예상되나, 2010년부터는 중국으로의 수출이 개시될 것으로예상되어 외환보유액 증가세는 회복될 것으로 전망됨.

○ 총 외채잔액은 낮은 수준

ㆍ 투르크메니스탄의 투기 등급(B2, Moody's)로 분류되고, S&P 및 Fitch사에서는 등급평가 대상국에서도 제외되어 있는 등 국제자본시장에서 소외되어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았고, 폐쇄적인 경제구조로 외채가 소규모인데 반해 동국의 외환보유액 및 가스 수출 전망이 긍정적임을 감안할 때, 외채 상환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임.

2009년 말 총 외채잔액은 6억 6천만 달러(GDP 대비 3.4%)로 예상



사회


언어


○ 투르크멘어는 투르크-오구즈어 계통으로써 우즈벡어와 카작어보다 터어키어와 아제리어에 가까움. 투르크멘의 부족들은 각기 다른 방언을 말하지만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차이가 나지는 않음. 투르크멘의 표기문자는 18세기 들어 도입되어 주로 소수의 존경받는 시인들에 의해 사용되어옴. 투르크멘의 국립대학과 아쉬가바드의 주요 도로중 하나의 이름도 바로 이러한 유명한 시인중의 하나인 Magtumguly(막둠굴리)의 이름을 따서 지어짐. 시인들은 페르시아의 아랍 문자를 사용해 왔으나 1917년 혁명이후에는 라틴문자의 표기법이 개발됨. 이것이 1939년 소비에트 문화를 러시아화하기 위한 스탈린의 노력의 일환으로 시릴릭 표기법으로 바뀜. 1994년에 다시 라틴표기법이 재기되어 초등교육에서부터 시작하여 실시하다가, 2001년부터 공식적인 모든 정부문서 및 신문 등 공적게제에는 라틴표기법을 사용하도록 제정하여 실시되고 있음.

○ 구소련의 다른 민족과는 달리 투르크멘 종족들은 러시아화 운동에 저항을 해왔고 그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투르크멘인들은 투르크멘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며 러시아어를 말하지 않음. 그러나 지역 상권과 대부분의 공식 사업관계에 있어서는 여전히 투르크멘어보다 러시아어가 좀더 공식적인 언어로 받아들여지는 편임. 특히 아쉬가바드와 같은 도시에서는 대화 중에 투르크멘어에서 러시아어로 자유롭게 전환하는 사람이 많음.


복장


○ 서구사람들에 비해 투르크멘인은 항상 깔끔하게 복장을 갖추려고 노력하는 편. 남자들은 보통 넥타이와 깨끗한 구두에 정장을 입고 여자들은 아주 화려한 색상의 긴 드레스를 입음. 이것은 부를 과시하는 의미에서라기보다 예의를 갖추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것임.

○ 공공장소에서 단정치 못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김. 하지만 집안에서는 손님이 있건 없건 자유로운 복장을 선호. 이에 반해 이 지역에 같이 사는 러시아인들, 특히 여성들은 전혀 다른 의복문화를 가지고 있어서 긴치마와 긴소매, 머리에는 스카프를 둘러쓴 투르크멘여인과 짧은 미니스커트에 티셔츠를 입은 젊은 러시아 여성들의 대조되는 의복형태를 볼 수 있음.


교육


○ 투르크메니스탄의 초중등 교육체제는 구 러시아 때의 11년, 또는 12년의 의무교육제도를 폐지, 9년으로 축소 확정.

‘멕뎁’이라고 부르는 이 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4년제 종합대학(우니버시테트) 이나 단과대학(인스티투트)을 진학할 수 있는데, 2년 동안의 정부관계의 인턴쉽 취업, 군대복무, 또는 정부가 인정하는 공식적인 활동(예를 들면, 예술, 체육 등)들을 하여 직장의 추천을 취득한 후에야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음. 대학교육도 정부가 학비를 전담하는 무료교육으로 되어 있으나, 입학을 하려면 엄청난 수준의 입학뇌물 또는 출신배경에 따른 입학청탁이 없으면 거의 입학이 불가능할 정도. 동시에 대학교육의 정원을 제한하고 교육계에 일하는 교수 및 교직원들의 일자리를 축소시킴으로써 고등교육을 제한하고 있음. 또한 투르크멘 내에서는 외국에서 취득한 학위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외국에서 공부한 유학파들의 국내활동을 저지하려 함. 이러한 교육체제는 한 마디로 말하면 ‘우민교육’ 정책이라고 볼 수 있음. 가능한 국민들의 고등교육의 기회를 제한하고, 외부와의 정보, 지식을 교환하고 지식을 확장시키는 것을 방해함으로써 국민들을 무식하게 만들고 바보가 되게 함으로써, 비판의식을 통제하여 철저하게 자신독재체제의 위치를 강화하려는 의도로 보임. 동시에 투르크멘 내의 국립대학의 종교학과를 제외한 어떠한 학교체제 내에서도 쿠란(이슬람의 성전)교육을 금지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것은 원리주의 이슬람들이 쿠란교육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도 금지하고 있음. 4년제인 종합대학과 단과대학 외에도 2년제의 직업훈련 중심적 콜리지(College)제도가 있음. 따라서 부실한 교육내용과 짧은 교육과정에 만족치 않는 고소득권력층의 자제들은 많은 사교육에 의지함.


종교


○ 투르크메니스탄의 종교인구 분포는 이슬람교(수니파) 89%, 동방정교 9%, 기타 2%임.

○ 이슬람 정교 : 순니 이슬람의 ‘하나피’ 파에 속한 투르크멘 종족은 과거 70년간의 소련 공산 치하에서 이슬람 성전을 비롯한 다른 예배장소들은 폐쇄를 당했고 유물론적 세계관이 모든 교육과 사상을 지배. 그러나 1991년 독립이후 투르크메니스탄의 이슬람은 공식적으로 인정되어 이슬람교는 번성하기 시작함. 이슬람 성전인 메짓(모스크)이 다시 개방되고 하루 다섯 번 기도를 알리는 애잔(이슬람 물라가 마이크를 대고 크게 코란을 읊으므로 기도시간을 알리는 방법)이 재개되는 한편, 대학에서는 이슬람을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종교학과가 신설. 여러 개의 이슬람 성전이 새롭게 건축됨. 하지만 소련 문화의 영향으로 이슬람은 투르크멘 사람들에게 신앙이라기보다는 그로 인해 민족적 정체성을 찾고자하는 노력으로 보여짐.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이슬람에 대해서도 거의 알지 못함. 최근 터키의 문화와 이슬람교육에 초점을 둔 터키 학교들이 생겨났고 이란정부도 아쉬하바드에 대규모 이란 문화관을 설립. 이렇듯 증가하는 투르크메니스탄 내에서의 터키와 이란의 종교적 영향력에 대해 보통 시민들도 그들의 동기를 의심스럽게 바라보고 있음.

○ 민속 이슬람 : 소련 치하의 종교성 억제 정책에도 불구하고 나이 많은 투르크멘인들 가운데는 개인적으로 민족적 정체성을 지키고자하여 민속 이슬람을 통한 종교활동을 이어옴. 이 민속이슬람은 원래 투르크멘이 갖고 있었던 샤마니즘적인 요소와 이슬람이 결합하여 이루어진 종교적 형태이며 독립이후 이러한 활동은 상당히 널리 퍼지게 됨.

○ 악한 눈 : ‘악한 눈(괴즈데그메)’을 믿는 것은 도시나 지방을 막론하고 투르크멘인들에게는 매우 흔한일임. 예를 들어 신생아를 보고 귀엽고 예쁘다고 칭찬하는 것조차 아기에게 ‘악한 눈’을 심어놓는다고 생각하여 용납되지 않음. 왜냐하면 아기를 칭찬할 때 말하는 사람이 질투심을 가지고 간접적으로 아기를 저주한다고 받아들이기 때문임. 이러한 저주를 끊기 위해 투르크멘 사람들은 공식처럼 정해진 말을 세 번 반복하기도하고 처음부터 ‘악한 눈’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코란에서 인용한 구절들을 종이에 써서 삼각주머니에 꿰메어 휴대하는 등 여러 가지 처방이 있음. “악한 눈이 당신을 건드리지 못할 것이라”라는 의미의 “퉤이레미”라는 말이 ’잘했어‘라는 표현으로 흔히 쓰임.

○ 낙타 털 : ‘악한 눈’을 비롯하여 다른 않좋은 일을 예방하는 대책으로 흔히 낙타털을 많이 사용함. 대부분의 차에는 운전대나 거울에 낙타털이 매어져 있는데 이것이 위헙으로부터 차를 보호한다고 믿고 있음. 또한 여자들은 낙타털로 만든 팔찌를 만들어 끼고 다니기도 함. 또한 낙타털은 병을 고치는 힘이 있다고 믿어 만약 임신한 부인이 예정일을 넘기면 아이를 낳기 위해 낙타 밑으로 지나가야 한다고 믿음.

○ 후다이 욜리(신의길): 투르크멘 사람들은 좋은 일이 생기면 하나님께 감사하는 표현으로 ‘후다이 욜리’ 즉 ‘신의 길’ 이라고도 말함. 예를 들어 가족 중에 돌아가신 분의 기일이나, 아들이 군대에서 무사히 돌아오거나 기타 경사스러운 일이 생기면 볶음밥(파로브)을 만들어 이웃의 모든 사람들을 초대하고, 종종 이슬람 선생인 뮐라를 초청하여 코란을 읽히고 기도함. 사소한 경사가 났을 때는 빵이나 후식을 넉넉히 준비하여 이웃에게 나누어주기도 함. 이렇게 함으로써 알라가 그 가정에 앞으로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보호할 것이라고 믿음.

○ 길일 : 투르크멘 사람들은 수요일과 금요일을 길일로 여김. 긴 여행을 떠나거나 새로운 일, 혹은 어려운 일을 시작할 때 이러한 길일에 택함. 수요일은 투르크멘 고어로 ‘챠샨베’ 즉 ‘4’라고 하는데 그 날에는 사방이 모두 열려서 성공할 가능성이 많다고 믿음. 금요일은 무슬림의 성스러운 날이므로 길일로 여김.






한-투르크메니스탄 관계 일반


외교관계


외교관계 수립 : 1992.2.7 수교 (북한과는 1992. 2. 10)

상주공관 개설 : ‘07.12월 주투르크메니스탄 한국대사관 신설

* 김종열 대사 부임

무상원조 : '91-'09년간 총 42만불 제공


주요협정 체결 현황


○ 외교관여권사증면제협정, 항공협정, 공동협력위설립협정 (‘08)

이중과세방지 협정 가서명

ㆍ 우리나라는 2009년 11월 9일 투르크메니스탄과 조세 및 금융정보를 무제한 교환하기로 합의하고, 이중과세방지 협정에 가서명함으로써, OECD 국가 중 최초로 투르크메니스탄과 조세조약을 체결할 것으로 기대됨.


교역 및 투자 현황


○ 무역현황

무역현황

2007

2008

2009

주요품목

수입(천달러)

6,884

22,364

66,262

석유화학제품, 수송용기계, 섬유사, 섬유제품

수출(천달러)

696

177

749

○ 최근현황(‘10.8)

ㆍ 對투르크메니스탄 수출 : 58백만불(전년도 동기간 54백만불)

(주요수출품목 : 엘리베이터, 합성수지, 자동차)

ㆍ 對투르크메니스탄 수입 : 34만불(전년도 동기간 63만불)

(주요수입품목 : 플라스틱제품, 의류)

투자현황

2007

2008

2009

2009년 말 누계

신규법인 수

1

-

1

2

천 달러

18

-

15

33


○ 투자현황

투자현황

2007

2008

2009

2009년 말 누계

신규법인 수

1

-

1

2

천 달러

18

-

15

33



주요 수출입품목


한국의 對투르크 주요 수출품목

(MTI 3단위, 천불)

순위

품목명

2009

2010(1월~8월)

금액

증가율

금액

증가율

총계

66,262

196.3

58,090

7.0

1

레일및철구조물

2,043

9,865.6

12,911

765.8

2

자동차

40,494

787.0

12,672

-67.8

3

철강재용기및체인

0

-

12,300

-

4

철강판

3,892

-

3,986

622.1

5

자동차부품

190

124.1

3,008

6,552.3

6

운반하역기계

373

1,945.1

2,920

916.9

7

압연기용접기및주조설비

0

-

1,735

-

8

건설광산기계

1,512

326.5

1,724

164.8

9

합성수지

3,658

-28.8

1,639

-39.6

10

농약및의약품

614

274.6

1,333

-


한국의 對투르크 주요 수입품목

(MTI 3단위, 천불)

순위

품목명

2009

2010(1월~8월)

금액

증가율

금액

증가율

총계

749

322.1

341

-46.0

1

의류

102

26.1

281

278.7

2

기타농산물

542

-

49

-90.1

3

기타섬유제품

42

-7.3

11

-60.4

4

공구

0

-

0

-

5

컴퓨터

0

-

0

-

6

곡실류

0

-

0

-


주요인사교류


ㆍ ‘07.12월호자무하메도프 석유가스광물자원부 장관 방한

ㆍ ‘08. 2월 한굴리예프 도로교통부 장관 방한

ㆍ ‘08. 5월한승수 국무총리 방문(경제인수행, 우리협회 주관)

ㆍ ‘08. 8월이윤호 지경부 장관 방투(투르크 경협사절단)

※ 08. 8월북경 올림픽 계기 양자정상회담

ㆍ ‘08. 8월타기예프 부총리 공동협력위 대표단 등 방한

ㆍ ‘08. 11월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 국빈방한

ㆍ ‘10. 4월이상득 대통령 특사 방투







경제개황 및 주요지표



경제 구조 및 특징



○ 투르크메니스탄의 경제의 구조는 농림수산업, 광업 등 1차 산업이 10.0%, 제조업과 건설업 등을 포함한 2차 산업이 33.9%, 3차 산업이 56.0%를 차지하는 3차 산업 중심의 구조임.


주요 국내경제 지표


단위: %

구분

2005

2006

2007

2008

2009

경제성장률

13.0

11..4

11.6

10.5

5.7

재정수지/GDP

3.5

14.8

17.0

35.4

29.6

소비자물가

상승률

10.4

7.1

8.6

8.9

4.1



최근 국내 경제 동향


○ 고성장세를 지속하던 실질 GDP 성장률은 다소 둔화될 전망

ㆍ 2008년에는 건설 및 인프라에 대한 대규모 공적 투자와 교통, 통신 및 소매업의 활발한 경제활동에 의해 글로벌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10.5%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하며 성장세를 이어감

ㆍ 2009년에는 4월에 대 러시아 가스공급 중단 사태로 주요 성장 동력인 가스 생산이 감소되고, 주요 경제협력 파트너인 러시아의 경기침체 등으로 인해 성장률이 다소 둔화되어 5.7%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됨.

○ 2008년 7월 이후 안정되고 있는 소비자 물가상승률

ㆍ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008년 7월 석유제품과 교통비에 대한 가격조정, 국제식품가격 상승 및 2008년 5월 환율 단일화의 영향으로 18.9%까지 상승하기도 하였으나 동년 말 국제식품가격 및 관세율이 하락하여 9%대로 안정되었음.

○ 2009년 GDP 대비 재정수지 흑자 비중 둔화 전망

ㆍ 2008년 재정수지는 석유 및 가스 수출 수입증가에 따른 재원확충 및 환율 단일화에 따른 조세수입 증가의 영향으로 수입이 증가하여 GDP 대비 35.4% 수준의 흑자를 기록하였음.

ㆍ 공적 금융관리 개혁을 통해 2008년 10월 창설된 투르크메니스탄 안정화 펀드에 재정흑자를 적립하고 있음

ㆍ 그러나 2009년에는 사회보장지출 확대로 지출이 늘어난 반면, 수출입 관세율 하락, 가스 수출감소 등으로 인해 수입이 감소하여 GDP 대비 재정 수지가 전년 대비 다소 둔화될것으로 보임.


국외경제 지표 및 경제 동향


단위 : 백만 달러, %

구분

2005

2006

2007

2008

2009

경상수지

870

3,345

4,024

3,544

4,113

경상수지/GDP

5.1

15.6

15,5

18,7

16.8

상품수지

1,997

4,598

4,300

6,294

2,710

수출

4,944

7,156

7,919

11,895

6,862

수입

2,947

2,558

3,619

5,601

4,152

외환보유액

4,458

8,059

13,222

16,713

9,414

총외채잔액

1,058

886

743

720

660

총외채잔액/GDP

6.2

4.1

2.9

3.8

3.4

D.S.R

7.3

3.9

3.0

1.2

0.5

자료: OECD CRAM, EIU, IMF


최근 대외 경제 동향


○ 외환보유액은 월평균수입액의 20개월분 이상을 유지

ㆍ 에너지 수출 호조에 따른 수입 증가로 2008년 말 외환보유액은 약 167억달러(월평균 수입액의 21.7개월분)를 기록하였으며, 2009년에는 가스수출 감소로 외환보유액이 작년에 비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나, 경기침체에따라 수입역시 감소하여 월평균수입액 대비 외환보유액은 22.7개월분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됨.

대 러시아 가스공급 중단으로 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비중 둔화전망

ㆍ 동국의 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는 석유 및 가스 수출 호조에 힘입어 2006년 이후 두 자릿수를 기록하고 있으며, 2008년에는 석유 및 가스가격의 상승으로 인한 수출수입의 20% 증가로 인해 국내 수입수요 증가에도 불구하고 GDP 대비 18.7%의 흑자를 기록하였음.

ㆍ 2007년 말 러시아와의 수출가격 재협상으로 2008년부터 천연가스 수출단가가 인상(1,000m³당 100달러→상반기 130달러, 하반기 150달러)되었으며, 2009년부터 수출단가가 유럽시장가격에 연동되어 경상수지 흑자기조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동년 4월 대 러시아 가스공급 중단으로 수출이 감소되어 경상수지 흑자폭은 물론 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도 전년대비 감소할 전망임.

○ 폐쇄적인 경제구조로 인해 상대적으로 작은 외채규모

ㆍ 총 외채잔액은 2003년말 17억 달러에서 2009년 말에는 약 6.6억 달러로 대폭 줄어들어 총 외채잔액/GDP는 3.4% 수준이 될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투르크메니스탄이 그동안 외국자본의 국내정치에 대한 간섭을 막기 위해 폐쇄경제체제를 유지해왔으며, 국제금융시장에서의 차입도 어려웠던 점에 기인하는 것으로 분석됨.

○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D.S.R

ㆍ 총 외채규모는 감소하고 있는데 비해 총수출은 증가하고 있어 D.S.R은 꾸준한 감소세를 보여 2009년에는 0.5%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보임.

ㆍ 3.0%(2007) → 1.2%(2008) → 0.5%(2009)


경제구조 및 정책



경제 구조 및 정책



○ 에너지부문에 대한 높은 신뢰도

ㆍ 동국은 석유 및 천연가스가 총수출 수입의 90%를 차지하는 등 에너지부문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으며, 1990년대에 전체 수출의 10%에 달했던 면화 생산이 점차 둔화되어 최근에는 수출비중이 1%이하로 낮아짐.

ㆍ 2007. 02월 출범한 베르디무하메도프 정부는 최근 경제성장의 주요 동력인 가스, 석유, 부문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한편, “농촌개발프로그램” 도입을 통해 쇠퇴해가는 면화생산 등 농업부문 활성화에 노력하고 있음. 또한, 수출루트 확보를 위한 신규 파이프라인 건설도 적극 추진하고 있음

○ 국가 주도의 통제경제 체제유지

ㆍ 과거 니야조프 정부는 물가통제를 최우선 순위로 두고 임금 동결, 고정환율제도 유지, 생필품에 대한 가격상한제 실시 등을 통해 물가 상승을 억제해 왔음. 또한, 정권유지를 위해 각종 보조금 혜택 및 가스, 전력을 무상으로 공급 등 반시장적인 정책을 추진한 바 있으며, 이에 따라 국영기업의 민영화는 시도조차 하지 않음.

현 베르디무하베도프 정부는 최근 외국인투자 유치 등 대외적인 면에서 부분적으로 개방을 추진하고는 있으나, 대내적으로는 지난 정권의 정책기조를 대부분 계승하고 있어 국가 주도의 통제경제 체제가 크게 변화될 가능성은 낮음.

석유.천연가스 등 풍부한 천연자원 보유

투르크메니스탄의 2008년 말 기준 천연가스 확인매장량은 7.94조㎥(전 세계 매장량의 4.3%)로 러시아에 이어 구소련지역 2위의 천연가스 보유국이며, 원유 확인매장량은 약 6억 배럴(1억 톤)로 추정됨.

외국인투자자에 대한 현 정부의 우호적인 태도로 투자 확대 전망

최근 베르디무하메도프 정부는 최근 투자 미비 및 기술 부족으로 생산이 둔화되고 있는 에너지부문 개발 및 투자 확대를 위해 외국인투자를 적극유치하고 있으며, 서방국가들은 최근 자원민족주의가 강화되고 있는 러시아, 카자흐스탄을 대신할 신규 에너지공급원 확보 차원에서 투르크메니스탄 에너지 부문에 관심을 보이고 있음.

중국, 러시아, 독일 에너지 기업들이 PSA(생산물 분배계약) 등을 통해 투르크메니스탄 내에 직접투자하고 있음.

석유. 가스 분야는 국영기업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고, 석유.화학, 면방, 건설, 통신분야 등에서는 지적재산권 및 계약 관계의 불확실성 등의 문제가 있음. 따라서 향후 정부가 투자제도 미비, 환율제도 불안정, 수출루트 확보의 어려움 등 제도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관건이 될 전망임.

화폐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 실시

2009년 1월 1일부터 리디노미네이션을 실시하여 기존 5,000마낫을 1마낫으로 변경하는 화폐개혁을 단행함. 이로써 소액거래 용이, 공식/비공식 환율 격차 감소, 외국인투자환경 개선 등의 효과가 기대되고 있음.

리디노미네이션 이후 환율은 달러당 2.85마낫으로 안정되었으며, 실제로 2009년 1분기에 마낫수요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남.

이번 조치는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이 공약인 화폐금융 시스템 안정화의 일환으로 평가되며, 500마낫을 제외한 모든 화폐에서 니야조프의 초상화가 다른 역사적 인물로 대체되었다는 점에서 전임자로부터 독립된 정체성을 정립하기 위한 움직임으로도 분석됨.

○ 환율 단일화 조치로 공식 환율과 실거래 환율의 격차 해소

2008년 1월 1일부터 자국 통화의 평가절하를 통해 공식환율을 달러당 6,250마낫으로 비공식 환율은 달러당 20,000마낫으로 조정한 바 있으며, 2008년 6월 1일부터 공식환율과 비공식 환율을 통합하여 달러당 14,250마낫으로 환율을 단일화시킴.

환율 단일화는 화폐의 신뢰성을 증가시킬 뿐 아니라, 수출 수입도 증가시키는 효과를 가져와 재정수지 흑자 유지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침.





[투르크메니스탄 전도]


 

개관


 국 명 :
Turkmenistan(투르크메니스탄)

 수 도 : Ashgabat(아쉬하바드, 83만명)

○ 주요도시 : 아쉬가바드, 발칸아바드, 다쉬오우즈, 투르크멘아바드, 마리

○ 면 적 : 488.1천 km2 (한반도-221,000km2-의 약 2배)

○ 위 치 : 중앙아시아

○ 인 구 : 4.9백만명(‘10)

○ 민 족 : 투르크멘인 85%, 우즈벡인 5%, 러시아인 4%, 기타 6%

○ 종 교 : 이슬람교(수니파89%), 동방정교 (9%), 기타(2%)

○ 언 어 : 투르크메니스탄어(공식언어), 러시아어(통용어)

○ 정부형태 : 대통령중심제(임기 5년)

○ 국가원수 : Gurbanguly Berdymukhamedov 대통령

○ 의 회 : 단원제(125석)

주요정당 : 투르크민주당

○ 독 립 일 : 1991. 10. 27 (구소연방)

○ 화폐단위 : 마나트(Manat)(1$=2,843Manat)

○ 산업구조 : 서비스업 56.0%, 제조업 33.9%, 농업 10.0%(‘09)

○ 주요수출품 : 가스, 석유, 연화류, 직물(‘08)

○ 주요수입품 : 기계·설비, 식료품, 화학제품

○ 주요부존자원 : 석유, 천연가스, 유황, 소금

○ 경제적 강점 : 풍부한 천연자원의 높은 개발잠재력

○ 경제약점 : 국가주도의 통제경제체제, 에너지 산업에 절대적 의존

○ GDP : $ 77억 (2009)

○ 1인당 GDP : $ 1,604 (2009)

○ 표 준 시 : UTC+5

○ 기 후 : 투르크메니스탄은 대륙성 건조기후가 뚜렷, 기온의 연교차·일교차가 극심. 습도가 낮고 증발이 높으며 강수량이 적음. 여름은 건조, 겨울은 대체적으로 온화하고 때때로 약간의 눈이 내림. 짧은 봄은 습윤하며 가을은 건조함. 식물생육일수는 200∼270일 정도.



일반개황


○ 구소련 당시 세계 10대 면화생산국에 들만큼 면화, 밀 등 농업부문이 발달되어 있었으나, 설비투자 부진으로 농업생산이 크게 위축되었음. 러시아에 이은 구소련지역 2위의 천연가스 보유국(확인매장량 7.49조㎥)으로서 각광을 받고 있으며, 최근 동국 에너지 부문에 대한 관심이 높은 EU, 중국, 러시아 등의 경쟁을 부추겨 자국의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고 있음.

○ 1991년 구소련 독립 이후에도 니야조프 전임 대통령의 철저한 제하에 '중앙아시아의 북한'이라고 불릴 만큼 폐쇄적인 철권통치가 유지되었으며,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유일한 구소련 국가로 남아있음.

○ 2006년 니야조프 전임 대통령의 사망으로 인해 2007. 2월 취임한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이 외국인투자 유치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는 있으나 지난 정권의 정책기조를 대부분 계승함에 따라 국가 주도의 통제경제 체제에는 별다른 변동이 없음


헤이리의 아프리칸 갤러리. 국내에서 유일하게 아프리카 목조각상들을 전문취급한다는 곳이다. 입장료는 천원.

무료로 개방된 공간에 하도 사람들이 바글바글대길래 냉큼 천원을 내고 유료 공간으로 넘어와버렸더니 정말

거짓말처럼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렇게 무료에서 유료로 넘어가는 계단 벽면을 빼곡하게 장식한 전통탈.

각도에 따라 느낌이 제법 다르다. 대충 눈높이를 맞춘 상태에서 보면 나름 우스꽝스럽고 친근한 구석까지도

읽혀지는 표정이지만, 이렇게 밑에서 올려다보니까 차갑게 눈을 흘기는 것 같기도 하고 볼이 잔뜩 부은 채

금세라도 시니컬하게 갈굴 것만 같다.

며칠 전 트위터에서 누군가 알려준 인도의 소식. 코끼리떼가 이동하다가 새끼 코끼리 발이 철로에 끼고 말았다나,

기차가 달려들 때까지 수십마리의 어른 코끼리들이 새끼를 둘러싼 채 버텼고 결국 일곱마리인가 기차에 치여

숨지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먹먹했었다. 그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던 너무 리얼한 코끼리,

그리고 그 살점을 뜯어먹는 콘도르떼들.

아프리카, 하면 기린떼도 빼놓을 수 없다. 드넓은 초원을 달리다가 문득 나무처럼 삐죽삐죽 솟아있는 그들의

긴 목부터 마주치는 순간은 아프리카에 대한 일종의 로망. 에버랜드에 생겼다는 초식동물 사파리에 가서 기어이

기린에 먹을 풀떼기를 쥐어주고 말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아프리카의 이 생생한 표정들, 조개껍질과 돌멩이를 활용해서 저런 얼굴을 표현해 낸다는 건, 대담하기도 하고

창의적이기도 하고. 군대 있을 때 '야전성'이란 표현을 우리끼리 썼던 적이 있는데, 뭐랄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재빨리 해결하는 응급조치의 순발력이랄까 유연한 발상이랄까. 그런 게 아프리카의 것들에서 느껴졌다.

그런가 하면 이런 식으로 조금은 더 '갖춰진' 인형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옷도 제대로 갖춰입었을 뿐 아니라

눈코입의 묘사 역시 클래식한 아프리카 토속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으면서도 아프리카스러운 느낌은 살아있는.

조약돌 세개씩 깜장돌과 하얀돌을 늘어세운 뭔가 단촐한 게임판을 앞에 둔 채 맞은편에 놓인 화려한 의자. 저건

진짜 무슨 게임인지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꽤나 단순한 외양 때문인지 쉬워 보이기도 하고.

강아지가 고개를 슬몃 쳐들고 눈망울을 또르륵 굴려대는 이건, 흔들의자. 반질하게 잘 다듬어진 뒷마무리가 좋다.

책을 세원둔 채 양쪽에서 받쳐두는 책꽂이가 이정도 포스를 풍기다니. 이런 아이템이 제대로 분위기를 가지려면

꽤나 그럴듯한 서재가 있어야 할 듯. 왜 그 마호가니 나무 책상에 벨벳 카펫이 깔려있는 아늑한 방.

기린 모양을 따서 만든 경쾌한 느낌의 의자들. 기린 다리 네 개로 의자의 내 다리를 형상화하고 나니 기린

모가지가 남는다. 모가지가 길어 슬픈 짐승, 바닥으로 잔뜩 꿇어박음으로써 모가지도 해결.

험상궂고 단호한 턱을 가진, 아마도 짐바브웨에서 왔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전사의 목각상. 전사의 얼굴 생김이

왠지 동네 어귀 장승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게다가 짚으로 엮은 머리띠며 목걸이를 칭칭 감고 있는 것도

낯설지 않은 느낌.

이쁜 아이템들도 많았지만, 아무래도 이런 것들은 하나만 덜렁 놓여있으면 참 멍청해 보이기 마련이다. 그냥

이렇게 이쁜 것들 눈요기하는 것으로도 잠시나마 아프리카의 뜨거운 태양빛을 머리에 부어내리며 돌아다닌듯

여행의 즐거움을 살풋 맛볼 수 있어서 만족.

아프리칸 갤러리를 나와 경기도 헤이리의 햇살을 한바가지 뒤집어 썼다. 갤러리 앞에서 날개를 퍼덕이며

빙빙 돌고 있던 앵무새가 인사를 했다.





헤이리를 걷다가 '천공의 성 라퓨타'의 경비로봇과 마주치고 말았다. 여기에서 이 로봇을 마주칠 줄은 생각도

못했었는지라 조금은 놀랬고, 어렴풋하던 로봇의 실루엣이 조금씩 세세한 디테일을 곁들여 눈에 들어오면서는

그 엉성하고 옹색한 모습에 실망해버렸다.


이건 너무 엉망이란 생각, 두 팔은 무게를 버티지 못해서 쇠파이프 두개를 지팡이처럼 지탱해 놓았고, 홀쭉한

배와 밋밋한 아랫도리와 두 다리의 이어짐이라거나, 완전히 부식된 채 곳곳이 터져나간 두 발. 그래도 상대적으로

고글을 낀 것 같은 머리통은 잘 남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깡통 로봇을 하야오의 경비로봇이라고 한눈에

알아본 힌트도 바로 저 머리통.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법솥, 지브리 스튜디오 A to Z.

이게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에 나왔던 경비로봇을 세심하게 재연해낸 지브리 스튜디오

옥상정원의 경비로봇. 뭐, 이걸 그대로 따라 만들거나 세부 모습까지 하나하나 재연하는 데 흥미가 없었다면

저런 식의 버전도 나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어쨌든 한눈에 이 두 로봇이 '경비로봇'이란 같은 걸 보여주려

하는 '출제자의 의도'를 알아챘으니 그것만으로도 성공이랄까.

그리고 옛날 장난감들을 모아놓은 갤러리에서 발견하고 만 토토로와 고양이버스의 태엽 인형. 그러니까 저 태엽을

잘 감아올려서 바닥에 놓으면 토토로가 우산을 쓴 채 성큼성큼 다가오고, 고양이버스도 체셔고양이같은 웃음을

흘리며 달려드는 장난감인 듯. 갖고 싶다. 갖고 싶다. 갖고 싶다고 한 대여섯번은 중얼거린 거 같다.

그렇지만 이 녀석들은 비매품, 90년대인가 일본에서 판매되던 장난감이라며 진열되어 있던 소장품이다.

토토로 6만원, 고양이 버스 4만원 해서 한 10만원까지는 기꺼이 냉큼 쥐어줄 용의가 있는데.ㅜ







에비스(EVISU)는 일본의 칠복신 가운데 하나, 낚싯대와 월척을 끌어안은 모습으로 나타나듯 원래는 어촌에서

풍어를 기원하던 신이었지만 점차 시장의 신이자 복의 신으로 섬겨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에비스의 이름을

따서 '에비스'란 맥주가 생겼고, 그 맥주공장이 세워진 곳에 '에비스'란 지명이 붙고, '에비스역'이란 역이 생겼다니

꽤나 강력한 신인 건 틀림없겠다.

에비스 역에서 에비스 가든플레이스까지는 사실 그렇게 멀지 않아 금방 걸어갈 수 있지만, 역에서 나와서 반대

방향으로 걷다보면 지구한바퀴를 걸어야 도착할 수 있을 거다. 중간에 알아채서 돌아왔기에 망정이지, 어쨌든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 타워 앞에 섰다.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타워의 별명은 '거품 경제의 상징탑'이란다. 일본의 경제가 한창 잘 나가던 1990년대 중반

에비스 맥주 공장을 철거하고 세웠다는 이곳, 공장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에비스 맥주기념관은 남아서 시음을

할 수 있다. 비록 공짜는 아니라 하고, 딱히 에비스 맥주에 대한 충성도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맥주를

공장이나 기념관에서 맛보는 건 가능한 최상의 것을 맛볼 수 있는 기회. 후쿠오카의 아사히맥주공장에서도 그랬다.

* 참고 : [후쿠오카] "첫잔은 슈퍼 드라이로" - 아사히맥주공장의 무한정 맥주리필.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는 왠지 이화여대의 아트 하우스 모모를 살짝 떠오르게 한다. 딱히 외관에서 분명한

유사점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공간 배치가 똑 떨어지게 비슷하다 싶은 것도 아닌데 왠지 분위기가

비슷하달까. 경사가 있는 넓은 길 양편으로 녹색 정원이 배치되어 있다거나 정면에 고풍스런 유럽식 건물이

보인다거나 하는 점이 그런 거 같다.

길을 따라 내려가니 바로 화살표가 눈에 띈다. 화살표를 따라 걷다보면 바로 눈앞에 보이는 에비스 맥주 기념관의

입구. 사실 '에비스'라고 해야 할지 '에비수'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치만 '에비수'보다는 '에비스'가

왠지 맥주 이름으로는 훨씬 깔끔하고 세련된 느낌으로 맞아떨어지는 거 같다.

아마도 에비스 맥주를 처음 만들어낸 사람의 동상인 듯. 붉은 벽돌로 그럴듯하게 안배된 공간에 시퍼렇게

녹슨 동상이랑 초록빛 풀떼기들이 멋진 보색을 이루고 있다.

둥글게 만들어진 자동문 안에서부터 에비스 맥주기념관 이름이 큼지막하게 박혀 있다. 슬쩍 자동문 앞에 섰다가

문이 감지해서 열린 사이에 사진 한 장.

맥주박물관 안내팜플렛은 일본어, 영어, 그리고 중국어와 한글 버전으로 준비되어 있다.

* 참고 : 도쿄도 시부야구 에비스의 에비스역 에비스가든플레이스 내 '에비스 맥주기념관'.

가운데에서 황금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맥주 양조통. 그리고 오른켠에서 에비스 맥주 캔으로 만들어놓은 커다란

에비스 맥주 캔의 형상. 뒤로는 칠복신 '에비스'가 보인다. 뭔가 세련되면서도 화려한 조명 덕분인지 벌써부터

맥주가 땡기기 시작했다. 사실 에비스는 국내에서 맛보기는 쉽지 않은 맥주 중 하나인 거다.

공장이 철거되고 조그맣게 남은 공간인 여기에서는 더이상 맥주를 만들고는 있지 않으니, 이전 에비스 공장의

자취와 에비스 맥주의 역사를 돌아보는 게 주된 관람의 포인트. 이전 공장은 이렇게 생겼었구나 싶다.

에비스는 1887년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맥주, 독일 양조 기술을 빌어 탄생했다고 한다. 이건 1893년에 새롭게

바뀐 라벨 디자인을 붙이고 생산된 에비스 병맥주.

에비스 맥주를 선전하던 당대의 광고 이미지들인 듯. 선명한 색감도 이쁘지만 에비스 맥주잔을 들고 있는

에비스신의 복스럽고 귀여운 자태가 시선을 붙잡는다.

아마도 에비스만의 문제는 아니었겠지만, 초기의 병맥주는 와인처럼 코르크 마개로 닫혀 있었나보다.

와인따개와 비슷하게 생긴 병따개와 함께 진열된 1900년대 초의 에비스 맥주. 근데 맥주병은 처음부터

갈색으로 시작했구나. 산화를 막기 위해서라곤 하지만,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다양한 색깔로 시험해본

역사가 있다면 지금 돌아보기에 꽤나 흥미로웠을 텐데.

그리고 어느 순간 현재의 병마개와 비슷하게 오톨도톨한 아귀로 꽉 병주둥이를 움켜막고 있는 마개가 사용되고

그걸 따기 위해 현재와 비슷한 모양의 병따개가 필요해졌을 것. 병따개 모양은 아직은 클래식하지만 말이다.

병맥주보다는 이런 나무통에 담긴 채 더 많이 팔리지 않았을까. 아무래도 병에 담기면 훨씬 맥주값이 높았을 테니.

무려 1946ml가 들어가는 왕 댓병. 거의 2000씨씨짜리 생맥주 피처에 맞먹는 용량이 들어가는 병이란 얘기렸다.

에비스를 광고했던 알흠다운 아가씨 모델 그림들. 제법 섹시한 분위기도 우러나오고, 포즈나 표정이 자못 도발적인

것이, 오늘날 광고랑 조금 비슷한 면이 있다. 대체 이렇게 아리따운 아가씨가 맥주잔을 드는 거랑 아가씨들

벗겨놓는 거랑 맥주 맛이랑 무슨 상관이지 싶게 만드는 것 역시.

에비스 맥주 박스에 그려진 에비스 신 영감. 아주 제대로 커다래서 사람몸통만한 사이즈의 물고기 한마리를

므흣한 표정으로 누르고 있다.

에비스 광고음악이 흘러나오는 오르골, 태엽을 잔뜩 감아올렸다가 풀어놓으면 저렇게 구멍뚫린 종이를

뱉어내면서 노래소리를 흘렸을 텐데, 실제 들어볼 수는 없어서 아쉬웠다는.

초기 에비스 공장, 그리고 에비스를 팔던 술집의 전경. 사람 키만한 나무드럼통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공장에선

맥주 냄새가 하루종일 풀풀 풍겼을 텐데. 근처 주민들은 꽤나 행복했을 거 같다.

박물관에 전시된 것들을 돌아보고, 드디어 고대하던 순간. 시음장에서 맥주를 마시려 했는데 가이드북에

나와있던 '4잔 세트'가 없다. 각기 다른 네 가지 맛의 맥주를 모두 맛볼 수 있다는 그 세트가 정말 없어져

버린 건지 직원에게 확인을 했더니, 올초쯤에 없어져버렸다고 했다. 2009년 7월에 개정된 가이드북이니

반영되지 않았겠지만, 사실 가이드북의 에러보다 화나는 건 없어져버린 4잔 세트.

자동판매기를 이용해서 '에비스 코인'을 두개 뽑았다. 코인 하나에 400엔, 맥주 한잔 가격이다.

자동판매기에 엔화를 넣고 코인을 뽑아서 시음장에 건네는 시스템인 거다. 아사히 공장같은 경우는 무료에다가

30분간 무한리필이 가능했던 시음장이었는데, 여긴 제법 정가를 다 받는 유료라니 괜히 조금 억울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역시, 에비스의 이름을 걸고 파는 맥주겠거니 하고 두근두근.

크리미한 거품과 쌉쌀하고 진한 맥주맛이 꽤나 좋았던 에비스 스타우트 한잔, 그리고 그에 딸린 잔받침.

가볍고 톡 쏘면서도 굉장히 시원했던 에비스 프리미엄 한잔, 그리고 또 그에 맞는 잔받침.

시음장 한 옆에 붙어있던, 아마도 공장이 여기 있던 시절에 쓰였던 것 같은 압력 밸브.

맥주를 맛있게 마시는 건 한모금한모금을 비슷한 만큼만 마시며 한 잔을 비우는 것. 에비스 스타우트의 경우,

크림이 이렇게 궤적을 남기기에 맛있게 맥주먹는 법을 연습하기가 수월했다.


맥주 한 잔을 마시고 나니 살짝 아프던 다리도 씻은 듯이 펄펄한 기운이 샘솟았고, 다소 느지근해졌던 심장도

활기차게 펌프질을 시작했다. 더불어 좀더 반짝반짝거리는 에비스 맥주기념관의 실내 공간.

심플한 화장실 표지도 새삼스레 눈에 들어오고,

아까 놓쳤던 가이드 투어 시간표도 새삼스레 눈에 띈다. 30분 간격으로 시작되는 가이드 투어는 참가비가

500엔, 그리고 한바퀴 기념관을 둘러보며 전시 물품들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시음장에서 에비스 맥주를

블라인드 테이스팅하는 것으로 끝마치는 것 같다.

돌아나오는 길, 에비스 맥주기념관 스탬프가 있어서 하나 찍어주고 돌아섰다. 에비스 신 녀석 참 복스럽기도 하다.

돌아나오는데 에비스 가든플레이스에 있는 사포로 비어 스테이션도 보인다. 여기도 뭔가 삿포로 맥주를 맛보고

과정을 견학할 수 있는 곳인가 했는데, 딱히 그런 것은 아니고 그냥 삿포로 맥주를 파는 곳인 거 같아서 스킵.

주상복합 건물이라는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 내부에도 볼 만한 게 이것저것 있다는 거 같았지만, 아이쇼핑은

하라주쿠와 신주쿠에서 하려고 그냥 돌아서기로 했다. 사실 에비스 맥주기념관에서 의외로 많이 걸었는지

다리가 살짝 아픈 탓도 있었다.








@ 도쿄, 에비스.


일본의 칠복신 중 한 명이라는 에비스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에비스(EVISU)라는 맥주,

그 맥주 공장의 이름을 따서 에비스라는 동네가 생기고, 에비스 역도 생기고.


앞으로 세계의 맥주공장 견학을 다녀야겠다, 는 다짐을 하게 됐다. 아무래도 맥주는 맥주공장의 시음장에서

맛보는 게 최고인 듯.






@ 한강시민공원 잠원지구.


보름달 옆에 떨어질 줄 모르는 저 유난스레 반짝이는 뭉치는 분명 인공위성일 거라 생각했다. 서울 하늘에서

저렇게 밝게 빛나는 별이 보일 리도 없거니와, 다른 별들은 다 어둠 뒤로 숨었는데 쟤만 저렇게 고개를 빼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어려웠으니까.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만 스모그 자욱한 도시에서 보일만큼 맹렬히 반짝이는 것들은 전부 인공위성, 이라고 믿던 내 얇팍한

과학적 '상식'을 비웃듯, 어젯밤에 그토록 선명하던 저 불빛은 다름아닌 목성이랜다. 항상 달의 오른쪽 허리춤

아래에 떨어뜨린 동전처럼 반짝이는 저 별은.


우야튼, 소원이란 건 지금 내가 아무리 해도 내힘으로는 안 되는 걸 비는 거라 했던가. 올해 추석은 보름달을

보고도 소원을 빌지 않았다. 여차하면 소녀시대한테 말하지 뭐.





기치조지역에서 지브리 스튜디오, 산책로를 지나 미타카역으로. 미타카역 근처에 '에도도쿄건축공원'이 있으리라

생각했던 건 가이드북에서 '기치조지/나카노' 지역으로 묶인 곳에 지브리 스튜디오랑 같이 묶여있어서 지레

그렇게 오해했던 거지만, 사실은 꽤나 멀다. JR 추오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움직여야 하는데 대략 삼십분.

미타카역에서 JR 추오선을 타고 '무사시고가네이(武藏小金井)'역에 내려 버스를 잡아타야 한다.

가이드북('클로즈업 도쿄')의 설명을 그대로 따오자면,

"JR 추오선 무사시고가네이武藏小金井 역 하차. 북쪽 출구 北口의 개찰구를 나와 오른쪽으로 10m쯤 가면 육교가 있다. 육교를 건너면 바로 밑에 버스 정류장이 있는데, 2/3번 정류장에서 세이부西武 버스를 타고 5번째 정거장인 고가네이코엔니시구치小金井公園西口에서 내린다(170엔, 5분). 버스 진행 방향 뒤쪽의 횡단보도를 건너 고가네이공원 안으로 들어가면 에도도쿄건축공원의 표지판이 보인다. 도보 7분"

무슨 보물찾기 하는 기분으로 지령을 따랐다.

무사시고가네이武藏小金井 역에서 버스정류장은 쉽게 찾았다. 버스정류장에서 하야오가 그려 공원에 선사했다는

그 애벌레 캐릭터가 굼실대고 있었다. 그리고 다섯번째, 고가네이코엔니시구치小金井公園西口 역도 보였다.

글자로 써진 걸 읽으면 머릿속이 온통 굼실굼실해지는 느낌이었는데, 일단 믿고 따라나서니 생각보다 쉽다.

그렇지만 역시 멋도 모르고 그냥 찾아나서긴 쉽지 않겠다, 생각보다 여기까지 찾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후쿠오카에서도 그랬지만, 일본의 교통 체계는 참 정확하다. 몇시 몇분에 정류장에 도착할지를 저렇게

명기해 두다니. 손님과의 약속이기도 하고, 본인과의 약속이기도 하렸다. 일상 생활을 하면서 뭔가 예측가능한

스케줄을 원한다면 저런 명확한 시간표가 있음 정말 좋을 듯. 정말 일분의 오차도 없이 도착한 버스.

다섯 정거장이라 그냥 서 있었다. 하차벨에 적힌 꼬불꼬불한 히라가나를 눈을 붙잡았다. 올해 초에 그래도

일본어 공부 좀 해본다며 아침에 일찍 일어나 수업도 듣고 그랬는데, 히라가나 외우려다 포기해버렸댔다.

쓰는 건 참 이쁘긴 한데, 글자에 무슨 규칙도 없고 무조건 외우고 봐야 하다니 원. 그 법칙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외운 후에 일본어 문법을 따르면 될 텐데, 그 법칙 자체를 수용하질 못하겠다. 넘 자의적이란 느낌.

하기야 한국어도 마찬가지지만, 어려서 생각없을 때 일단 틀을 받아들이고 말았으니. 외국어 못 해먹겠다. 쳇.

굳이 가이드북의 설명을 한단어 한단어 유심히 살필 필요도 없었다. 다섯 번째 정류장에서 내리니 사방에서

화살표가 그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애벌레녀석도 사방에서 슬금슬금.

가는 길에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만들 때 여기로 자주

산책을 왔다더만, 여기까지 걸어온 걸까 싶다. 한적하고 조용한 게 산책하기 좋긴 하겠지만, 이건 아무래도

지브리 스튜디오에서부터는 넘 멀다.

고가네이코엔小金井公園은 에도시대부터 벚꽃으로 유명하던 곳이라 한다. 울창한 나무들이 뜨거운 도쿄의

햇살을 온몸으로 가려주며 시원한 바람의 냉기를 보존하고 있었다. 에도도쿄전축공원은 이 고가네이코엔의

안에 있는 또다른 공원. 공원 속의 공원인 셈이다.

에도도쿄건축공원의 입구. 입장료가 없는 고가네이코엔小金井公園 내의 테마공원인 셈이니 빈틈없이 둘러쳐진

울타리 윤곽선이 두드러졌다.

공원의 내부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그 배경이 모여있는 에도도쿄건축공원.

건축공원을 돌아보고 나와서 기념품 샵에서 발견한 사진들. 왼쪽의 저 사람은 하야오, 맞는 거 같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얼굴없는 요괴, 가오나시'다. 이거 그림이나 합성이 아니라 실제로 찍은 거 같은데, 대단하다.

이렇게 무슨 코스프레하듯 가오나시 복장을 입고 돌아다니면, 지브리 스튜디오나 여기 에도도교건축공원이나

모두 무료통과는 물론이고 꽤나 환대받지 않았을까. 일본 사람들의 따뜻한 환대를 온몸에 받았을지도. 나도 담엔.

하야오가 선사한 에도도쿄건축공원의 마스코트인 애벌레 녀석도 기념품 인형으로 이렇게 팔고 있었고,

그 밖에, 이런 귀여운 고양이 인형들도 왜인지 팔고 있었다. 건축공원하고는 그다지 상관없는 듯 한데.

캐릭터를 이렇게 치밀하게 이용하는 그 아이디어가 넘 좋은 거다. 모처럼 하야오가 만들어준 캐릭터를 그냥

썩히는 게 아니라, 기념품샵 봉투에도 넣고, 그 봉투를 봉하는 테이프에도 넣고. 감탄해 버렸다.

에도도쿄건축공원을 나서는데, 눈앞의 잔디밭이 온통 꺼뭇꺼뭇하다. 뭔가 했더니 모두 까마귀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왔던 마녀도 아침이 되면 까마귀로 변신해 성을 떠나고는 했다.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길, 한번 왔던 길을 다시 가는 건 참 쉽다. 대충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어디서 길을

건너거나 방향을 꺽어야 할지도 대략의 감이 오는 거다. 그러면 주변이 보인다. 눈앞을 새하얗게 만드는 햇살에

뽀송뽀송 말라가는 사이좋은 빨래들 같은 것도.

버스 정류장. 오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비록 오는 길이 제법 솔찮이 시간도 걸리고, 교통비도 적잖이 들어가는

건 사실이지만, 도쿄까지 왔는데 교통비 몇 푼 아낀다고 여길 스킵하는 건 좀 아닌 듯. 게다가 여기저기 인증샷만

남기고 떠나는 여행을 원하는 게 아니라면,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세상을 동경한다면.

에도도쿄건축공원의 맵. 서쪽존까지도 돌아볼 걸, 하는 생각이 없진 않지만 동쪽 존만으로도 넘 많은 것들을

보고 말았다. 하야오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느낌을 가득 받아 올 수 있었던 공원.

가이드북 말고 공원 팜플렛에서 발견한 또다른 루트. 참고하면 좋을 거 같다.






종로의 피맛골, 왠지 추석 연휴에는 한번씩 가게 되는 곳이다. 오세훈 시장이 디자인 서울 어쩌구하면서 금세라도

다 밀어버릴 듯 하더니 아직도 '피맛골 고갈비집'은 건재하다. 워낙 추억이 촘촘이 서린 곳이라 참 반가운 곳.

몇 년전이더라, 불이 나는 바람에 가게 절반이 날아가고 그때부터 그냥 이렇게 공터로 놀리던 곳, 그 우켠에 선

건물 역시 완전완전 허름해서 무슨 폐가같기도 하고 쓰러지기 직전같기도 하지만 추석에도 쉼없이 맛있는

고갈비와 막거리를 팔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아직 시간이 조금 일렀는지라, 가게 안에는 혼자 와서 막걸리를 드시고 계신 머리 희끗한 아저씨 한 분을 빼고는

텅텅 비어 있었다. 모양새도 색깔도, 짝도 제대로 맞지 않는 삐뚤빼뚤 제각기 놓인 의자들.

메뉴판이 있긴 하다. 얼마나 오래전에 붙여놓은 건지 반질반질 윤기가 흐르는 베니어판 벽면과 비슷한 색깔로

누렇게 변해버렸지만, 사실 여기서 다른 건 맛본 적도 없다. 앉으면 그냥 갖다주는 막걸리 한 사발과 고갈비.

메뉴판에도 벽면에도 온통 낙서투성이다. 낙서라기엔 꽤나 그럴듯한 시간과 사건들을 이겨낸 것들.

나왔다. 양은으로 만들어진 양푼에 담긴 막걸리랑 고갈비 한 마리. 여기 막걸리는 뭔지 모르겠는데 탁하면서도

단 맛이 강한 것이 특징이랄까. 살짝 짭조름하면서도 담백한 고갈비랑 같이 먹으면 딱 좋다.

조명은 늘 그렇듯 어두침침하다. 드문드문 박힌 채 테이블 하나만큼의 공간을 겨우 밝히는 전구, 그리고 창밖에서

슬몃슬몃 넘쳐흐른 햇살이 조명의 전부. 아, 냉장고에서 흘러나오는 푸르스름한 불빛도 있구나.

누군가 창문에 깃발을 붙여두었다. 지난 지방선거때 붙였두었던 깃발인 듯. 창밖으로 보이는 리어카들이 왠지

살풍경하다. 저게 혹시 서울시 표준형 리어카인가, 반듯반듯 주차된 그들 앞에서 현란한 녹색 거죽이 입혀진

리어카 한대가 반갑다.

어떻게 보면 토굴같은 느낌도 들고, 나지막한 천장과 울퉁불퉁 고르지 않은 바닥 높이 때문에 행동거지 하나가

조심스러워지는 게 기분이 색다르다. 올 때마다, 여긴 뭔가 정겨움이 그득그득.

이런 화장실 표지판도 넘 좋다. 촌스런 초록색의 왠지 촌스런 남자 여자의 그림도 그렇지만, 과거에는 단호하고

선명했을 화살표 앞뒤꼭지에 누군가 짖궂게 장난쳐둔 모양새들까지, 웃음지을 수 밖에 없는 그림들.

온통 낙서투성이인 벽면, 여기도 뭔가 신품의 냄새를 가득 풍기던 그런 때가 있었을까.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어디서 누구 한명 담배라도 피워올리면 금세 가게 전체에 티가 나는 그런 곳이지만 나름 환기는 잘 되어서 다행,

안 그랬음 무슨 수산시장 같은 냄새가 늘 배겨있었을지도.

이런 낙서들, 추억과 즐거움을 증거하는 흔적들. 이런 게 언젠가 무지하고 둔탁한 포클레인의 무쇠 이빨에

산산이 부서져나가리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싸하다. 그야말로 수십년에 걸친, 수많은 사람들의 집단 작품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이 벽면을 통째로 어디에든 전시한다고 해도 훌륭할 텐데. 사람들은 자신이 이 공간에서

함께 했던 사람, 나눴던 이야기, 서려있는 추억을 기억하며 자신이 남겼던 낙서 한 줄을 곰곰히 찾아보지 않을까.

무엇보다 좋은 거야 그냥 이 공간이 계속 남아있는 거지만.

기둥이라고 그대로 넘어가지 않았다. 화이트로, 검정펜으로, 누군가의 기록 위에 또 누군가가 기록을 덧씌우고

차곡차곡 쟁여간다. 심지어는 전등 스위치까지. 모든 곳에 공평하게 내려앉는 눈송이처럼, 허름한 가게 안

모든 장소에 아낌없이 내려앉았다.

아니, 눈송이는 천장에까지 채워지진 않는다. 낡고 깨져서 여기저기 덧대인 천장 쪼가리에도 어김없이 새겨지는

누군가의 메시지들.

막걸리 한 동이를 기분좋게 비우고, 고등어를 남김없이 해체하고 나서 돌아나오는 길. 들어설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웬 달마도가 입구 앞에 그려져있었다. 저건 정말, 작정하고 그렸겠구나 싶다. 기록을 남기고 전한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한순간의 장난이나 술기운으로 끼적인 것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

이 집 이름이 와사등이었나 보다. 몰랐다. 벌써 수십번은 왔을 텐데, 오는 사람들끼리는 그저 '피맛골 고갈비집',

이렇게만 말하면 통했으니까. 가게 주인 할머니한테 물었다. 여긴 안 없어지죠? 할머니가 그랬다. 여긴 절대

안 없어져요. 계속 있을 거야.


부디 계속 남아있었으면. 맛있는 고갈비도, 누군가의 메시지들도. 그래서 내 추억도.





@ 도쿄, 편의점

@ 도쿄, 하라주쿠
@ 도쿄, 신주쿠

@ 도쿄, 미타카역 인근
@ 도쿄, 하라주쿠
@ 도쿄, 편의점.
@ 도쿄, 기치조지역
@ 도쿄, 미타카역에서 사서

@ 도쿄, 에도도쿄건축공원에서 먹다.

@ 도쿄, 지하철 자판기

@ 도쿄, 편의점
@ 도쿄, 에비스 맥주박물관

@ 도쿄, 츠키지 시장

@ 하코네

@ 하코네, 자판기

@ 하코네, 유황온천 달걀과 아이스크림

@ 하코네

@ 도쿄, 아키하바라

@ 도쿄, 우에노









"프랑스의 파리, 미국의 뉴욕, 한국의 (서울도 아니고) 홍대앞'으로 비견해 놓은 일본 도쿄의 하라주쿠. 글쎄,

다른 건 그렇다 쳐도 한국의 홍대 앞과 비교하는 건 조금 아닌 거 같다. 홍대 앞보다 훨씬 밀도 높고 넓은 규모로

번져 있는 하라주쿠의 스타일리시한 상점가들을 직접 보았다면 말이다.

하라주쿠의 대표적인 패션스트리트라고 할 캣스트리트와 메이지도리만 따라 쉼없이 걸어도 반나절이 훌쩍

가는데다가, 계속해서 뭔가 들어가 보고 싶은 샵들이 눈앞에 튀어나오는 거다. 대로 이외에 골목들에는

개성넘치게 입은 일본 사람들이 왠지 껄렁대며 걷고 있고, 차들도 골목에는 다니지 않아서 정신빼놓고

사방을 두리번대며 걷기에 딱 좋다.

한 쪽에는 명품 샵들이 차도를 사이에 두고 이열 횡대로 늘어서 있기도 하지만, 또 이런 처음 보는 간식거리들을

파는 가게들도 그 와중에 점점이 박혀있곤 했다. 아이스크림 도넛이랄까, 아이스크림이 케잌을 도넛모양으로

만들어선 화이트초콜렛으로 껍데기를 얇게 입힌 건데 가게 건물의 치장부터 남달라서 확 눈에 띄었었다.


조만간 한국에도 상륙하지 않을까, 일본에서 이제 막 생겨난듯한 아이템이니 대충 일본의 반응을 살핀 후에

되겠다 싶으면 1, 2년 내로 한국에서 볼 수도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난 꽤 맛있게 먹었는지라.

중절모 샵이 꽤나 많아서 나도 하나 사서 써볼까 싶어 돌아보았다가, 중절모 대신 속눈썹을 요렇게 단정하게

붙이고 눈을 살포시 내리깔고 있는 마네킹에 정작 시선이 가고 말았다.

샵들 앞에 세팅되어 있는 이런 소품들도 참 아기자기하다. 뭐, 그러고 보면 전반적인 분위기는 홍대에서 많이

좇으려 하는 그런 거 맞긴 하지만 여긴 조금 걷다보면 금세 벗어나버릴만큼 그렇게 작은 지역이 아니란 거.

말하자면 홍대앞과 신촌과 이대 앞과 효자동과 삼청동과 신사동 가로수길 정도를 한군데로 합쳐놔야 그

복작복작한 분위기와 커다란 규모가 만들어내는 다채로움이 느껴지지 않을까.

신기한 모양의 백팩. 괴롭히거나 시비거는 녀석이 있으면 가방을 한 손에 꼬나쥐고 마구 휘두르면 전부 쓰러지고

말 거다. 저런 가방 하나 있으면 교실 내에서 군림하는 건 시간문제.

외국을 여행하면서 이런 섹스샵, 콘돔샵을 둘러보는 건 나름 흥미로운 기회. 더구나 여긴 망가의 나라 일본이니까.

기대했던 대로 온갖 신기한 것들이 조그마한 샵을 무색하게 그득그득 차 있었지만, 아쉽게도 사진촬영 불가라

그저 머릿속에 넣고 오기만 했다는. 주머니 속에는 넣지 않았다.

그렇게 오모테산도 역에서 JR하라주쿠 역까지 반나절이 넘도록 돌아다니며 밥먹고 음료수 마시고 간식먹고

구경하고 써보고 하던 발걸음이 이윽고 멈췄다.


* 추석 연휴에 파리에 다녀오는 가족들을 위한 깨알같은 선물.




1st Day

 

● 숙소 -> 뮈제 오르세 역

 

1. 루브르 박물관(3h) + 카루젤 개선문

 

(점심 : 마레지구 혹은 시테섬 인근)

 

2. 퐁뇌프 다리

 

3. 시테섬 : 콩시에르쥬리, 생샤펠 성당(1h), 노틀담성당(1.5h)

 

 

● 샤틀레 역 -> 프랭클린 디 루즈벨트 역

 

1. 샹젤리제 거리(1.5h) : 커피 한잔

 

2. 개선문(1.5h) : 전망대

 

 

● 샤를 드골 에투알 역 -> 트로카데로 역

 

1. 샤이요 궁전

 

2. 에펠탑(1.5h) : 전망대

 

3. 바토무슈 유람선 @ 퐁 드 알마 역

 

(저녁 : 표 사고 기다리며)

 

 

2nd Day

 

● 숙소 -> 뮈제 오르세 역

 

1. 오랑주리 미술관(1.5h)

 

2. 콩코드 광장

 

 

● 콩코드 역 -> 오텔 드 빌 역

 

1. 파리시청사

 

2. 퐁피두 센터(1h)

 

3. 생 메리교회(0.5h)

 

(점심)

 

 

● 샤틀레 레알(혹은 랑뷔토) 역 -> 앙베르 역

 

1. 몽마르뜨 언덕(1h)

 

2. 사크레쾨르 성당(1h)

 

3. 몽마르뜨 묘지, 물랑루즈

 

 

● 앙베르 역 -> 오페라 역

 

1. 오페라 극장(오페라 가르니에) : 가능하면 다음날 공연표 구매

 

(저녁)

 

2. 쁘렝땅 백화점 등 쇼핑

 

 

3rd Day

 

● 베르사유 궁전

 

 




* 기타 가볼만한 곳

- 앵발리드(나폴레옹 무덤)

- 오르세 미술관

- 몽파르나스(현대 건축물)

- 그랑팔레/쁘띠팔레/알렉산드르3세다리

 

도쿄타워가 있는 야경, 모리타워에서 보는 게 최고. 에서 이미 보았던 그 야경,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은 사람을

위한 안내도. 도쿄 타워를 기준으로 어디가 어디에 해당하는지, 빌딩들 하나하나에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내게 와서 꽃이 될지도.






일본 애니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제작할 당시 산책하러 즐겨 찾던 에도도쿄건축공원.

도쿄 시내에서 옮겨온 27채의 20세기 전후반 건물들이 대충 동쪽 구역과 서쪽 구역으로 나뉘어 산재해 있는데,

대충 동쪽 구역은 서민들의 생활상이 그대로 보이는 건물들이 모여 있다. 역시나, 하야오가 애니메이션에 주로

차용한 배경들도 동쪽 구역의 건물들. 치히로의 부모가 돼지로 변한 식당, 센의 숙소와 일터인 목욕탕, 그리고

가마지이가 목욕탕 약초물을 달이던 방, 센이 바다를 건널 때 탔던 열차까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지브리 스튜디오와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라 하야오가 산책삼아 왔다갔다 할 수 있었다곤 하지만, 사실 부실하게

소개된 가이드북만 따라 오기에는 좀 무리가 있는 여정이었던 것도 사실. 관리동에서 입장권을 끊으면서 여기까지

오로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이 되었던 건물들을 직접 보겠다며 꾸역꾸역 찾아온 스스로에게 감탄하고

말았다. 입장료는 400엔.

에도도쿄건축공원의 마스코트라고 할 수 있는 이 애벌레는 다름아닌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들어낸 캐릭터라고

한다. 참 복받은 공원이다. 에도도쿄건축공원에 찾아올 수 있는 쉬운 방법은 이 미타카역에서부터 이 캐릭터가

그려진 버스 정류장을 찾아 캐릭터가 그려진 버스를 타고 캐릭터가 많이 그려진 즈음에서 내리는 것. 그렇게

도착한 '고가네이(小金井)공원' 안에 위치한 에도도쿄건축공원을 찾는 것 역시 캐릭터를 찾아나서기.

입장권을 확인한 후 실외로 다시 나서는 길, 건축공원 안내팜플렛이 세 종류로 비치되어 있었다. 영어, 중국어,

그리고 한국어/조선말 버전. '에도도쿄건조물원'이란 건 한국어라기보단 조선말에 더 가까운 표현인 거 같은데.

하얀 햇살이 쏟아지는 밖으로 나섰다. 커다란 안내판 옆에서 길안내를 도와주시던 할아버지 한 분이 친근하게

다가서선 안내판 위에서 푸닥대며 돌고 있던 바람개비를 하나 선물해 주셨다.

중앙구역에는 유명한 역사적 인물들의 생가나 관련 건물들이 복원되어 있었다. 짧고 단호하게 끊겨진 일본

전통 가옥의 처마는 볼 때마다 나름의 미감이 떠오른다. 여기 건물들은 모두 실제로 사람이 살던 건물들, 도쿄가

쉼없이 개발되고 발전해나가면서 밀려나가고 지워지기 마련인 옛 가옥들을 옮겨둔 것이라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민속촌 같은 곳에서 느껴지곤 하는 휑하고 선뜻한 기분은 덜한 거 같다.

건물 안에 들어갈 때는 신발을 벗고 미리 받았던 비닐봉투에 신발을 담아 들고 가야 한다. 건물마다 자리를 잡고

마치 터줏대감같은 포스로 건물에 얽힌 이야기나 설명등을 해주시는 (듯한) 자원봉사자 할아버지들이 정다웠지만,

아쉽게도 일본어는 '와까리마셍' 정도나 읊조리는 앵무새인지라 그분들이 숨겨둔 이야기 대신 창 밖 경치만

열심히 보았다. 좋네 뭐.

일본, 도쿄에서는 까마귀를 꽤나 쉽게 볼 수 있는 것 같다. 하라주쿠의 메이지신궁에서도 그랬지만 여기서도

까마귀들이 떼지어 날아다니고 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단순히 옛 건물들만 집결시켜 둔 것이 아니라

주변 풍광까지 고려하고 이렇게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배경까지 안배하여 보존해 둔 공원이니, 모이는 게 비단

까마귀만은 아닐 것 같기도 하다.

고풍스런 가로등이 듬직한 발톱을 한껏 드러낸 네 발로 땅거죽을 움켜쥐고 있었다. 이것도 그 언젠가의

도쿄 거리를 밝혔던 가로등인 걸까. 저런 가로등이 비추는 거리라면, 운치가 1.2배쯤 상승할 듯.

계속해서 동쪽 구역으로 가는 중이다. 공원이 생각보다 커서 동쪽 구역만 돌아보고 나와도 다리 꽤나 아프겠다

싶은 정도의 규모랄까. 이런 하천도 품고 있으니. 하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는데, 문득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가 괴이쩍은 터널 안에서 불어오는 바람 같은 게 한 줄기 불어왔다. 풍경이 흔들렸다.

그리고 덜컥 등장한 기차. 어이, 이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스토리 라인하고는 좀 다르다구. 노란색깔이

어울리는 건 솜털 보송한 유치원 꼬맹이들 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열차도 의외로 잘 어울린다. 애니 속에서

나왔던 열차도 물론 노란색이긴 했지만, 애니 속 열차와 비스무레한 것이 이렇게 전시되어 있으니 새삼 감탄.

실제 시부야에서 긴자까지 운영되던 열차란다. 더 놀랬다. 하루 이용자가 130여만명에 달했다는 이 전차는

190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근 반세기동안 운행되었다가 퇴임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바로 이리로 온 걸까.

차내로 들어와보니 깔끔하게 잘 유지되고 있는 게, 금세라도 사람들이 바글바글 손잡이를 잡은 채 빼곡하게

꼽혀 있어도 하나도 안 이상할 듯. 센과 가오나시가 저기쯤 앉았었다.

그리고 커다란 목욕탕 건물을 앞에 두고 좌우로 벌려진 주점, 꽃집, 문구점, 음식점, 상가 등등. 동쪽 구역의

중심가인 셈이다. 드문드문 보수 중인 건물들도 보인다.

옛 건물들을 모아두고, 이렇게 식물들을 기르고 사람의 손을 거치며 다시금 생명을 얻는다. 사람으로부터 유리된

채 건물들이 박물관 속 유물처럼 차갑게 굳어버리거나 온기 하나 느껴지지 않는 괴물같은 것으로 변해버리는

경우에 비하자면 정말 멋진 공간.

치히로의 부모가 음식에 홀려 돼지처럼 먹다가 진짜로 돼지가 되어버린 그 음식점의 모델이 되었다는 건물.

딱 보니 알겠다. 저 의자에 남자 하나 여자 하나가 앉아서는 양손으로 한껏 음식을 그러쥐고 그야말로 우걱우걱

먹어대다간, 주변을 돌아보던 치히로가 돌아왔을 때에는 부모님은 간데없고 살찐 돼지 두마리가 허부적대고

있었던 곳이다.

활짝 펼쳐진 메뉴판 옆에 도꾸리도 하나 나와있고, 주홍색 알전구 조명도 들어와 있는 게 금방이라도

주방 안쪽에서 누군가 '이럇사이' 하며 반겨 나올 거 같다. 혹은 이 자리엔 방금까지도 치히로와 부모들이

앉아있었는지도.

일본인들의 디테일함이야 익히 알려져 있는 바지만 정말, 이 주점을 더욱 사람냄새나게 만들어주는 건 이런

자그만 조화 한 송이. 자신의 가게를 꾸미고 손님을 불러모으겠다는 식의 생각 없이 이런 치장을 엄두나 낼 수

있을까 모르겠다.

가게 바깥에는 어제 장사한 흔적인 듯 빈 병들이 삼엄하게 꽂혀 있었다. 이래서야 원, 치히로 부모님이 아니라

나라고 해도 당장 의자에 철푸덕 앉아 음식부터 주문하고 볼 판이다.

그리고 치히로가 센으로 이름이 바뀐 채 일하게 되는 목욕탕의 모델이 되었다는 커다란 대중 목욕탕.

애니에 나오듯 그렇게 으리으리하고 커다란 건물은 아니고 조금 천장이 높은 단층 건물인데, 그 건물의

어느 부위를 어떻게 살리고 뻥튀기해내어 애니 속 모습을 가공해 낸 건지 상상해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옷바구니. 목욕탕 안을 이런 기회 아니고선 또 언제 찍어보겠나 싶어, 또다시 신발을

벗고 비닐봉지에 담아 들고 다니는 불편을 감수하고 덥썩 안으로 들어왔다.

남탕은 됐고, 여탕으로 직행. 보통 일본의 목욕탕은 오른쪽이 남탕, 왼쪽이 여탕이라는데 여긴 뒤바뀌어 있다.

이유는 모르지만 여하간 여기는 바뀌어있다는 것. 글쎄, 장난기 심한 주인남자가 여자남자가 습관에 이끌려

덜컥 문열었다가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거 아닐까. 혹은 응큼하고 연기잘하는 남자손님들을 좀더

불러모으려는 고도의 상술일 수도. "어익후 깜짝이야, 남탕인 줄 알았네요. 반갑습니다. 차라도 한잔?" 정도.

여탕 내부에 걸려 있는 그림들. 이런 그림들, 실제 여기가 목욕탕으로 쓰이던 때에도 걸려있었을까. 요새 시대에도

여탕엔 이런 그림이 걸려있나. 아무리 어릴 적 기억을 되짚어도 내가 가본 여탕엔 이런 야시시한 그림은 없었던

거 같은데. (아쉽게도.)

나무판을 이어붙이고, 쇠로 된 테두리를 감아 만든 고풍스런 물바가지. 얼룩이 여기저기 서려 있는 게 정말

쓰이던 걸까 싶은 상상을 계속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조그맣지만 야무지게 딴딴하게 생긴 나무의자도.

남탕엔 저울이 없던데, 여탕에만 있었다. 그것도 개씩이나. 슬쩍 올라갔다가, 얼추 비슷한 수치로 홱 당겨지는

바늘에 놀라 얼른 내려와 버렸다. 아..살 빼야되는데. 회사생활 2년차까지만 나름 선방했는데 올해가 문제.

목욕탕 뒤뜰..이라 해야 하나. 그리 넓진 않은 툇마루 밖으로 석등이며 이끼서린 돌덩이며 요리조리 꺽인 나무들,

보기 좋은 정원이지만 조금 이상하달까. 목욕하고 여기서 차라도 한잔 하고 갈 기세의 정원이다. 정말 그때의

목욕탕이 저랬다면, 현대인이 과거의 인간들보다 행복하다는 건 뻥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 한개 추가.

보드랍고 가벼운, 낭창한 이파리를 풍성하게 드리운 버드나무에 바람이 불었다. 목욕탕 우측의 건물은

구두방이라던가, 그냥 분위기로 족했다. 하나하나 굳이 문열어서 확인할 곳이 아니라, 그냥 이렇게 그때의

인기척을 듣고 바람소리를 감각하며 거닐어 보는 곳. 하야오가 이 곳을 즐겨 산책한 이유를 알 거 같다.

이 건물도, 그렇게 풍족한 마음으로 살살 거닐던 차에 우연찮게 발견했다. 자칫 놓쳤으면 사실 아쉬웠을 거 같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가마지이 영감이 기다란 여덟개의 팔로 약초를 다듬던 그 공간. 치히로가 일을

시켜달라며 무작정 찾아들어갔던 그 공간. 애니메이션 속의 분위기가 그대로 살아있지만, 애니와는 다르게

여긴 문방구점이었다는 사소한 사실 하나만 다르다.

한쪽 벽면에 뺴곡한 서랍은 대략 300여개가 넘는다고 하는데, 붓, 벼루, 먹 등의 문방구들이 담겨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고스란히 담겨 있을지, 꽤나 궁금했지만 차마 함부로 손댈 수가 없어 궁금증을 꾹 눌러 참았다.

아귀가 딱딱 맞는 조그마한 서랍들이 300여개나 된다니, 더구나 백 년 가까이 사람손에 길들어 반질하게 윤도

나고 은은한 나무색이 더욱 살아난 그 느낌이 너무 매혹적이다. 그리고 이렇게 천장부터 바닥까지 채워진

서랍들이 실재하는 걸 두고 손이 마음대로 쭉쭉 늘어나는 가마지이 영감을 상상해 내다니, 역시 하야오.

다른 구역들, 화장품 가게도 있고, 음식점도 있고. 그리고 왠지 바람에 휘청휘청댈 것만 같은 얄포름한 외피에

쌓인 건물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그럴 듯한 풍치.

자전거 달구지가 삐걱, 소리내며 막 멈춰선 듯한 가게 앞. 어디까지가 진열되고 연출된 소품이고 어디까지가

정말 이 공간을 꾸려나가는데 쓸모있는 일상의 것인지가 도무지 불분명하다. 그냥, 2010년의 일본과 1900년

어느 어간쯔음의 일본이 마구 뒤섞인 채 새로운 느낌의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커다란 월계관 사케병이 둥글게 둥글게 모여서 있는 술집. 하얗게 탈색된 채 가장자리부터 조금씩 허물어져

내리는 라벨이 시간의 엄연한 흐름과 사람의 쉼없는 손짓을 가늠케 해준다.

이 곳에서 다시 만난 저울들, 신기하게 생긴 저울들이 두개 세개씩 놓여 있는데, 예전엔 술집에서 술을 저울에

담아 팔았던 걸까. 주전자를 들고 가면 주전자에 담아서 그램수로 팔았나..사케를 무슨 막걸리마냥 그렇게

팔지는 않았을 거 같은데.

꽃가게도 있고, 비록 조화지만 햇볕을 담뿍 받아 싱싱한 생화에 못잖은 자태를 과시하고 있는 걸로 보아 이동네는

당장이라도 몇 가구 이사와서 생활하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어 보인다. 술에, 음식에, 목욕탕에, 그런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에 더해 꽃과 화장품까지 커버되는 동네면 뭐.

돌아 나서는 길, 금칠이 화려한 사당같은 건물이 하나 있었고, 그럴듯한 건물, 그렇지만 용처를 잘 가늠할 수

없는 건물이 하나 있었다. 서쪽 구역을 좀더 돌아보았어도 꽤나 재미있었을 거 같은데, 이미 오전부터 지브리

스튜디오를 잔뜩 걸었는데다가 동쪽 구역만 돌아보아도 솔찮이 시간이 소모되어 어느새 해가 살짝 기울고

있어서. 슬슬 빠져나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에도도쿄건축공원, 그 안을 돌아다니며 계속 한 손에 들고 바람맞히던 바람개비, 주위에 커다란 건물도 없고

거침없이 휘감기던 바람을 떨쳐내고 가까운 나무에 접붙이기 해버렸다. 나중에 이 나무에서 바람개비가

잔뜩 돋아나진 않을까, 아님 물과 양분을 쭉쭉 빨아먹고 이 바람개비가 거대하게 피어나는 건 아닐까, 하는

상상과 함께.




신주쿠의 빌딩숲 사이를 걷다가 문득 발견한 거대한 글자탑. L.O.V.E. 글자가 이렇게 차곡차곡 쌓여있는 모습도

모습이지만, 그 글자의 크기가 뭔가 낯설만큼 커서-저렇게 큰 글자로 씌여진 책장 한 페이지의 사이즈는 또

얼마나 클까-주변의 풍경을 살짝 일그러뜨리는 듯 했다. 붉게 달아오른 러브.

신주쿠의 도쿄도청 뒤쪽, 오거리던가 사거리를 건너려다 저 너머에 있는 빨간 글자조각을 발견한 거였다. 사실

그보다 먼저 눈에 띄었던 건, 사거리를 삥 둘러 세워진 신호등과 가로등을 고리처럼 이어주던 환.

그 글자가 거기 놓였다는 게 보이지도 않는 듯 완전 무심하게 지나는 사람들은 도쿄의 현지인들, 이렇게 요리조리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람은 여행자들..이라지만, 사실 이런 글자가 서울의 테헤란로 어디메쯤 덜컥 떨어뜨려놓은

듯 놓여있으면 지나칠 때마다 기분이 묘해질 거 같다. 너무너무 익숙하고 뻔해서 진부해진 공간이 문득 새로워지고

재미있어지는. 발바닥을 간질간질하는 느낌. 혹시, 이 글자 외지인에게만 보이는 건가.

이번엔 측면 사진. 정면에서 2D로 볼 때와 또 다른 3D의 위엄. 그리고 두툼한 깊이가 느껴지는 만큼이나 더욱

커다란 존재감을 가지고 주변공간을 휘어버리는 그 간질간질함.

사실 이 오리지널 'LOVE'의 또다른 버전은 파주 헤이리에서 본 적이 있다. 그 때도 그걸 보고 꺄아~ 하면서

마냥 신기해했던, 포스팅까지 했던(Alice in 헤이리.) 기억. 그 때 보았던 건 그치만 한글 자모로 만들어놓은 것,

게다가 훨씬 작고 귀여운 사이즈에 얄포름한 두께를 가진 것이어서 이만큼의 임팩트는 느껴지지 않았었다.

같은 모양새여도 그 크기에 따라 느낌이 이렇게나 달라질 수 있단 건, 아무리 본질이 이러니저러니 잘난 척 해도

생각보다 사람이란 동물이 단순하고 곧이곧대로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는 걸까.

내킨 김에 신주쿠의 야경 한 장. 신기하게 생긴 건물들이 쭉쭉 시원하게 뻗어오른 그곳.





공룡이라고 다 무서운 건 아니지만, 여태 인류가 상상해낸 공룡의 표정 중에선 가장 불쌍한 표정 아닐까 싶다.

다른 광포한 육식공룡들에게 다구리를 당하다가 바닥을 기어 도망가려는 듯한 애틋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이 녀석, 표정이 너무 인간스럽달까. 애니의 왕국 일본이어서 이런 표정의 공룡을 상상하고 표현하는 게 가능했던

건 아닐지. 어떻게 보면 조금 '개'같이 생기기도 했지만서두.



@ 일본 도쿄, 모리타워에서 열린 공룡전 광고판에서 한 컷.






지브리 미술관에서 나오는 길, 미타카 역을 가리키는 화살표 하나, 미술관을 에워싼 공원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또 하나. 미타카 역에서 지브리 미술관으로 이어지는 길이 꽤나 매력적인 산책로라는 이야기에 그쪽으로 바로

빠지기로 결심은 했지만, 지브리 스튜디오의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져 있는 공원에서 좀더 여운을 즐기고 싶은

마음도 움찔움찔.

아까 뛰어들어오느라 보지 못했던 지브리 박물관/미술관/스튜디오의 간판.

끝내 문을 나서서 돌아나오는 길, 샛노란 칠이 산뜻한 지브리 스튜디오 건물 안의 커다란 토토로가 배웅해주는

듯하다. 이제 막 스튜디오에 들어선 꼬마아이 하나가 토토로와 눈싸움을 시작했다.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나와 미타카 역쪽으로 방향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태풍 '곤파스'가 가로수를 뽑고 휘두른다던

서울과는 달리 이곳 도쿄는 사람이 몇 명이나 죽어나간다는 전례없는 폭염이 계속되던 중. 비행기 타고 고작

두시간도 안 날아가는 거리인데 이토록 판이한 날씨라니. 이런 점에서도 가깝고도 먼 나라, 맞다.

이국적인 느낌의 신호등, 빨간 신호등의 불빛이 유난히 붉다.

사실 미타카역에서부터 지브리 미술관으로 걸어오면서 점점 줄어들어야 하는 숫자, 미술관까지 300미터

남았음을 알리는 표지판. 푯말을 들고 있는 토토로도, 푯말 위에서 휘영청 몸을 꺽어내는 도마뱀도 귀엽다.

한참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닐 시간 아닌가, 오후 두세시경. 옆에 개천을 끼고 이어지는 골목길에는 그렇지만

사람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고즈넉하고, 조용하면서 깨끗한 거리.

나무도 많고, 집들도 아기자기하고, 그런 산책로를 따라 가다보니 금세 지브리 미술관에서 멀어진다. 어느새

500미터나 떨어졌다. 거꾸로, 미타카역에서 이 길을 따라 지브리 미술관을 향하는 길도 생각보다 금방 가닿을듯.

어느 집 앞마당에 얼기설기 세워진 대나무 울타리에 붙여진 안내판.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개와 고양이 그림이

귀엽다. 뭐, 이런 개나 고양이가 마당에 침범하지 않도록 주의해 달라는 그런 걸까.

좀더 걷다 보니 다른 그림들도 눈에 띈다. 아이들이 손으로 직접 그린 듯한 포스터들, 그리고 검정귀를 가진

하얀 강아지가 푯말로 붙어있는, 그런 류의 귀여운 안내판들.

그리고 칠백미터. 토토로 말고 다른 캐릭터들도 푯말을 들고 있게 하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긴 하지만, 아무리

뭐니뭐니 해도 지브리의 가장 대표적인 캐릭터는 역시 토토로. 붉은돼지 아저씨가 푯말을 들고 있기엔 왠지

어울리지 않는 거 같고.

이번엔 파란 불, 이건 또 아까 신호등과는 모양생김이 다르다. 햇살은 워낙 내리쬐이고 그늘은 또 그만큼

짙고, 도무지 광량을 조절하기가 쉽지 않았던 도쿄.

신호등 앞에는 이렇게 멈춰서서 기다리라며 발자국 모양까지 그려넣는 세심함..이랄까 유머러스함이랄까.

장난스럽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지브리 스튜디오-미타카 역을 잇는 이 산책로의 이름은, '바람의 산책로'. 아닌 게 아니라 개천을 따라 쓸듯이

불어내리는 바람이 머리빗처럼 순순한 방향으로 행인들을 빗어넘기고 있었다.

문득 툭 튀어나온, 그렇지만 너무 과하게 튀거나 부조화스럽지는 않은 일본 스타일 강렬한 집도 한 채 지나고.

그러다보니 벌써 지브리 스튜디오에서부터 천백미터. 그리고 거의 코앞까지 당겨져버린 미타카역.

지브리에서의 여운을 곱씹으며 마음을 탁 놓은 채 걷기에 딱 좋던, 딱 알맞은 거리와 분위기의 산책로.





도쿄의 야경을 보겠다고 도쿄타워에 오르는 건, 뭐랄까, 코끼리를 보겠다며 꾸역꾸역 코끼리 등짝을 기어오르는

개미와 비슷한 짓을 하고 있는 거다. 도쿄타워의 내부가 궁금하다면야 모르겠지만, 도쿄타워없는 도쿄의 야경은

왠지 심심할 수 밖에 없는 것. 그래서 도쿄타워가 있는 도쿄의 야경을 보려면 모리타워에 가라고들 한다.

롯폰기힐즈에 있는 모리타워, '고작' 52층짜리 건물이지만 그래도 왠지 서울에 있는 54층짜리 트레이드타워보다

많이 높고 커보인다. 단순히 타워만 있는 게 아니라 주변 쇼핑몰과의 연계라거나, 빌딩 주변의 녹지공간이라거나

본격적으로 마련해둔 전망대 공간이나 모리미술관 같은 시설물들이 양팔을 활짝 벌려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는 분위기 때문인 거 같다.

전망대로 바로 직행하는 엘레베이터, 모리 아트뮤지엄과 도쿄시티뷰, 전망대가 있는 52층. 타이완의

101빌딩처럼 미친 듯이 빨리 쏘아져올라가는 느낌은 없었지만 뭐, 괜찮다.


그리고 다른 것들보다 도쿄의 야경. 도쿄는 참 크다는 느낌, 게다가 빌딩들이 이렇게 촘촘하게 늘어서있단

것도 인상적. 아무리 서울의 도심이래봐야 고작 몇 블록만 지나면 하늘까지 치솟던 스카이라인이 어느결에

땅으로 잔뜩 가라앉아있기 마련인데, 여긴 도쿄의 도심중에 도심이라고는 해도 참. 게다가 사방에서

반짝이는 불빛들까지.

도쿄에 오기 전 '도쿄타워'를 이제야 보았었다. 생각보다 영화 중에서 도쿄타워의 비중은 크지 않았고, 내부의

모습도 그렇게 많이 노출되지 않았는데 다녀온 사람들은 전부 생각보다 별 거 없더라는 입을 모은 반응들. 낮에

보면 더욱 별거 없다는 둥 많은 이야기를 듣고 갔지만, 불빛이 온통 내려앉은 도쿄 시내에 우뚝 서서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불이 환하게 켜진 도쿄타워는 꽤나 멋지다.


모리 미술관에서의 전시와는 별도로, 전망대 내에서도 다른 특별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공룡전'. 전망대의

유리는 뭔가 빛이 난반사되지 않는 특수유리를 갖다 꼽아놨으면 좋겠는데 사방에서 빛이 튕기는 바람에 사진

찍기도 쉽지 않았지만, 심하게는 이렇게 공룡 한마리가 도쿄타워를 쥐고 흔드는 듯한 일루젼이 펼쳐졌다.






이태원에 갈 때마다 늘 지나치는 골목, 늘 눈여겨보는 간판. 하필 오늘따라 그득그득 채워진 쓰레기봉투가 간판 양쪽을

가린 채 잔뜩 나와있었다. 아프리카 음식점이라니 대체 어떤 맛의 음식을 파는 걸까, 친절하게도 요리 하나하나 사진과

제목이 적혀 있는 메뉴판같은 간판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뭐 하나 가늠해 볼 수가 없다.

이 곳의 아프리카 음식점을 꼭 한번 와봐야겠다고 맘먹은 지는 사실 오래되었지만, 궁금증 만큼이나 왠지모를 주저함도

적잖았던 게 사실이다. '아프리카 음식'에 대한 막연한 궁금증, 또 그만큼이나 막연한 거리감이랄까. 음식점은 2층,

그 위 3층에는 고시원. 저기 사는 사람들은 한번씩 맛이라도 봤으려나. 아무래도 아프리카 음식은 대중화되고 세계화된

다른 지역의 음식들에 비해 그 고유하고 독특한 맛을 타협하지 않고 지켜내고 있을 거 같다.

기세좋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안에는 온통 깜깜..;; 검은 분들이 마치 동네 사랑방처럼 둘씩 셋씩 모여앉아 못 알아들을

언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한국인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한쪽 벽면에 조그맣지만 단호하게 액자에 넣어져

걸려있던 사업자등록증이니 그런 서류들에서 보이는 낯익은 한글의 분위기 말고는 온통 낯선 이국의 분위기. 순간

나이지리아 쯤 되는 아프리카 어디메로 휙 순간이동해버린 듯한. 저 아프리카분들도 이런 분위기에서 위로받고 싶어

이 '해피홈'에 찾아오는 것이겠구나 싶었다.

이런 곳에서 괜히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찍어대는 것도 민망한 짓이다. 그들의 일상, 그들의 '해피 홈'에

침입해서는 일일체험 증빙샷이라도 남기듯 마구 사진을 찍어대고 훌쩍 떠난다는 건. 그렇게 생각은 했어도

워낙 사방이 신기한 거 투성이라 가만히 있기가 좀이 쑤셨다. 흡사 여행을 떠나온 듯 방방 떠오르는 공기.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물비누 뽁뽁이랑 핸드로션의 용도가 뭘까 궁금했는데, 궁금증은 이내 풀렸다.

Grinded Rice, Gari, Pounded Yam, Fufu with Egwusi Soup이라는 길고 긴 이름을 가진 메뉴와 Joll of Rice라는

볶음밥 비슷한 걸 주문했다. 생각보다 많은 양에 놀랬고, 주문한 음식들과 함께 나온 분홍빛 양동이에 놀랬다. 손으로

음식을 먹고 마지막에 저 양동이에 담긴 물에서 손을 씻으라는 의미. 사실 다른 아프리카인 손님들에겐 전부 기본으로

주어졌던 이 양동이 대신 우리 테이블엔 스푼과 포크가 제공됐지만, 괜히 특별대접받고 싶지 않아 손으로 먹겠다고

양동이를 달라 했던 거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생활을 다룬 다큐멘터리 같은 걸 보면 하얀 쌀가루나 나뭇가루 같은 걸 물에 개어서 떡처럼 해서

먹는데, 이게 바로 그거랑 같은 거 같다. 얌..이라던가. 생각보다 풀기도 없고 미끈한 느낌, 그야말로 '무미'해서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옆에 스프를 찍어 함께 먹는 건데 의외로 손을 사용해서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요런 식. 프랑스 사람들이 빵을 손으로 떼어 돌돌 말아서 먹듯이, 알아서 적당량을 떼어 손으로 매만지곤 스프에 찍는다.

보통은 작은 경단만한 사이즈로 만드는 거 같던데 옆에 앉았던 커다란 검은아저씨 한 분은 무슨 새송이버섯만한

기둥을 만들어서 왕창왕창 씹어드시더라는. 손으로 먹는 재미에 스프가 말라붙을 때까지 떼어먹었고, 양이 많다

걱정하던 볶음밥까지 다 먹어버렸다. 볶음밥은 꽤나 맛있었는데, 돼지껍데기나 힘줄살들이 푸짐하게 들어간 게 역시

뭔가 색다른 면모가 분명히 있었지만 이 커다란 하얀 덩어리를 손으로 떼먹는 재미앞에선 오히려 평범했달까.

냉장고에 쟁여둔 음료는 뭐, 별반 다를 것 없는 사이다, 콜라, 미란다..이런 거였는데 그런 사이에서 불쑥 눈에 띄던

음료 하나가 있었다. 말타고야, 라는 신기한 이름의 음료. 그냥 딱 보기에 맥주지 싶어서 주문하고 보니 논-알콜의

어린이 음료.;;;;

끈적하고 달콤한 카라멜시럽 맛이 생생히 살아있던, 마시고 나면 목이 마른 그런 류의 음료지만 나름 아프리카 음식하고

먹으니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음식을 다 먹고 가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더니, 문득 낯설다. 아프리카에서 한국으로 어느새 돌아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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