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고궁박물관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 중 하나, 박물관에 위치한 찻집에서 맛보았던 황제를 위한 다과 세트.

고궁박물관 가는 길, 아무리 한국이 요새 폭염이니 뭐니 하지만 대만에는 비길 바가 아니다. 훨씬 뜨겁고, 훨씬

습하다. 작렬하는 태양 밑에서 허둥대다가 하얗게 찍어버린 사진. 버스들 뒤에는 운전사 이름이 번호판처럼

별도로 붙어있다. 오른쪽 밑부분, 하얘서 잘 안 보이지만 실제로는 눈에 아주 잘 띄인다는. 난폭운전이나 사고

발생시 아주 유용할 거 같다.

드디어 도착, 고궁박물관. 장제스가 이끌던 부패하고 나약한 군대가 마오쩌둥의 붉은 군대에 휩쓸리고 나서,

대륙 본토에서의 패배가 거의 기정사실화되던 즈음 전례없는 군사작전이 펼쳐졌다. 청나라 때부터 북경의

자금성에 수집되었던 대규모의 엄선된 중국 국보급 유물들을 대만으로 옮기는 작업. 수십만점의 회화, 도자기,

조각, 서적 등 귀한 유물들이 전쟁의 북새통 속에서도 무사히 이 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사실 이건 대만 쪽, 장제스 쪽의 시각이고, 중국 쪽, 마오쩌둥 쪽의 시각으로 따지자면, 그야말로 중국 문화의

정수를 송두리째 빼앗겨 버린 셈이다. 지금 중국에 남아있는 유물들은 청나라 때부터 누대에 걸친 정선 작업을

통과하지 못한 B급 유물이 대부분이라 할 정도니까. 고궁박물관은 그런 박물관이다.

마치 타지마할처럼 온통 하얀 계단을 꾸역꾸역 올라가야 고궁박물관의 본관에 도착한다. 그 와중에 계단의

장식이 눈을 잡아끌었다. 구름 모양인지 십장생의 하나인 영지버섯의 모양인지. 저 너머로는 야자수가

수양버들처럼 휘영청 잎새를 드리우고 있었다.

박물관 내부는 총 3층, 내부는 거의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더욱 꼼꼼이 살펴보아야 했다. 사진 따위에 의지해

기억을 남겨둘 수 없으니, 하나하나 눈에 마음에 새겨두겠다는 결의로 근 반나절을 돌아보았다. 특히나 도자기,

그리고 황제의 장난감으로 특수 제작되었다는 보석함이니 장식품들이 굉장히 인상적이어서 기꺼이 많은 시간을

들여 세심하게 관찰하게 되었다.

청대의 도자기와 현대의 도자기 질감을 직접 만져보고 비교해 볼 수 있도록 마련해둔 코너에서 마주쳤던 '조각'.

이건 무려 네 자의 한자가 하나로 합쳐져 있는 글자. 중국이나 대만의 상점에서 재운을 기원하는 뜻으로 종종

걸어두는 장식품이라 하는데, 招財進寶, 초재진보. 재물을 부르고 보배를 나오게 하려는 뜻이 담겼다 한다.

그리고 박물관 내의 화장실 표지. 남여화장실이 바로 옆에 나란히 붙어있기도 했지만, 별도로 여자화장실만

좀더 마련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일인당 '용무'에 필요한 공간이 남자보다 여자가 넓게 필요하기 때문에 같은

갯수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세심한 조치가 아닐까 싶었는데, 종종 급한 남자들이 여자용 화장실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나 보다.

박물관 나오는 길, 유리로 만들어진 자동문에 마치 자금성의 붉은색 대문처럼 오돌토돌 징이 박혀 있었다.

본관 말고도 별관도 있고, 행정용 관리관도 따로 있고. 별관에서는 지금 베트남 특별전시를 열고 있었지만

그것까지 돌아보기에는 다리도 아프고 시간도 넘 많이 걸릴 듯 하여 패스.

대신에 좀 쉴 겸, 박물관에 딸려 있는 찻집에 들어갔다. 찻집 이외에도 고궁박물관을 감싸고 잘 조경되어 있는

정원과 정자 등도 있어서 어딜 갈까 잠시 고민했지만 워낙 더워서 에어컨이 절실했던 터라 망설임없이 실내로.

찻집 내부. 황실에서 즐기던 다과 세트를 맛 볼 수 있다는 곳이라더니, 실내 인테리어가 꽤나 화려하고 세련됐다.

모란차를 시켰더니 투명한 유리잔에 조그마한 잎새가 꽁꽁 뭉쳐진 덩어리 하나를 툭 떨어뜨린다. 정말이지

건조한 느낌으로 툭. 그리고 유리잔 주둥이가 찰박이도록 뜨거운 물을 뽈뽈뽈 부어주었다.

뭉글뭉글뭉글, 곧바로 반응하기 시작하는 덩어리. 바싹 말랐던 만큼 급했던 거다. 뭔가 잔뜩 뒤틀고 꼬깃꼬깃

말려있던 것들이 한껏 기지개키며 일어서고 있었다.

어느새 유리잔을 꽉 채워버린 꽃 한 송이. 초록색 꽃받침과 분홍색 꽃잎, 그리고 위풍당당한 수술까지 꽃송이

하나가 완연하게 피어올랐다. 투명했던 유리잔 속 물빛도 은은한 금색으로 바뀌었고 무엇보다 향기. 꽃향기.

모란차 말고 일반 녹차류를 시키면 이렇게 단정한 다기에 담겨 나왔다.

그리고 드디어 메인, 다과 세트. 정말 그럴 듯한 쟁반-이걸 뭐라 불러야 할지조차 모르겠지만-에 담겨 나왔다.

3층, 2층, 그리고 2층짜리 쟁반이 제각기의 높이와 공간을 확보한 채 이쁘게 빚어진 다과를 사뿐히 올린 채다.

콩으로 빚어진 오리 한 마리. 물결문양 날개깃이 새겨진 날개하며, 우스꽝스럽게 벌어진 부리하며. 검은깨로

콕 눌러박은 귀여운 눈매하며.

그리고 호박모양으로 빚어진 떡, 호박색도 딱 리얼하지만 그 위에 호박 줄기를 묘사하려고 올려둔 건포도는 참.

고궁박물관의 유명한 전시물 중 하나가 황제의 장난감이라는, 옥을 빚어 만든 배추다. 아마도 이 전시품을

흉내내어 만든 게 아닌가 싶은, 떡으로 빚은 배추.

그리고 복숭아 모양으로 빚어진 만두..라고 해야 하나. 호빵이라고 해야 하나. 비록 좀더 허술하고 치졸하게

만들어진 것일지언정 복숭아 모양의 호빵은 그리 신기한 편은 아니지만, 확실히 맛은 달랐다.

그리고 젤리 형태로 만들어진 다과. 투명하면서도 굉장히 탄력있는 젤리였는데, 의외로 맛은 어쩐 영문인지

굉장히 시원하다고 해야 하나. 독특한 식감이었다.

그리고 1층에 담겨 있던 다른 다과. 이 아이는 좀 평범한 형태의 떡이었다. 아무래도 1층에 있는 것보단

2층에 있는 것들이 화려하고, 그 중에서도 3층에 있는 오리모양으로 빚어진 다과가 최고였지 싶다.

또다른 떡, 카카오 가루를 아낌없이 뿌려넣은 떡이었는데, 고명이 평범한 팥이 아니라 검은쌀로 만들었다는

점이 특이했다.

찻집 천장에 달린 조명도 자세히 보니 고궁박물관의 다른 유명한 전시품을 따라 만든 모양이다. 고대한자가

조각된 청동종의 형태가 천장에 주렁주렁.

이쁘게 빨간색 파란색 끈으로 매만져진 하얀 종지들.

여전히 햇살은 미친듯이 내려쬐고 있었고 남국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야자수 한 그루가 박물관 앞 정원에

커다란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지만, 박물관을 한 바퀴 돌고 황제의 다과를 맛보고 났더니 뭔가 세상이 색다르다.

70만점이 넘는 소장품을 갖고 있다는 고궁박물관, 70만점이면 루브르 박물관이 가진 소장품의 배가 넘는 숫자,

게다가 그 퀄리티가 중국 오천년 역사의 정수를 품고 있는 수준이니 더 보탤 말이 없다. 그리고 그 전시품들의

흔적이 여기저기 녹아있는 찻집에서 그 자취를 찾아보며 차 한잔 여유롭게 즐기는 여유까지 부려보는 것,

대만에서 꼭 고궁박물관을 들러야 한다는 사람들의 조언에 나 역시 한 표.





대만 가는 길, 구름이 두껍고 보드라운 크림처럼 비행기 아래로 깔렸다.
 
구름 위로 올랐으니 굉장히 하늘 높이 올라 있는 셈이지만 여전히 달은 멀고도 높다.

파랗게 나염한 천에 손톱으로 폭, 선명히 자국을 남긴 듯한 손톱달이다.

파란 하늘, 이라고 뭉개버리기엔 그 변화무쌍한 색감과 분위기가 너무 생생하다. 더구나 순식간에 휙휙 형태를

바꾸며 능란하게 접근해 오는 그 육덕진 구름들의 향연이란.





꾸스꾸스, 예전에는 조나 수수, 뭐 그런 걸로 만든 음식인 줄 알았었다. 알고 보니 밀가루를 오돌도돌 뭉쳐서

빳빳하게 건조시켜서는 주머니 속에 담아 낙타에 싣고 다니는 거라고 했다. 부패도 막고 이동에도 간편하며

조리도 쉽도록. 지혜롭도다.

조금씩 깔리기 시작하는 코스 메뉴. 알제리는 프랑스의 피식민 경험 때문인지 빵이 꽤나 맛있었다.

양고기가 꽉 차있었던 조르바, 라는 이름의 튀김요리. 양고기의 육즙이 울컥울컥 배어나오던.

잘 삶아진 수육처럼 나온 양고기 덩어리. 그리고 그 옆에 일견 밥처럼 보이는 하얀색 알갱이들이 바로 꾸스꾸스.

양고기를 주식으로 먹는 나라에서 먹는 양고기는 확실히 한국에서와는 맛이 다르다. 그만큼 많이 소비되니

신선한 고기가 쉼없이 공급되는 탓도 있을 거고, 레시피와 조리사의 한계도 있을 거고.

그 위에 이렇게 소스를 뿌려준다. 걸쭉한 카레같기도 하지만 그런 향신료의 냄새가 강하지는 않고. 보슬보슬한

꾸스꾸스가 더욱 부드럽고 달콤고소하게 느끼게 해주는 도우미랄까. 양고기의 혹시 모를 퍽퍽함 역시 한결

덜어내 주는 소스의 위엄.

수분을 잔뜩 빨아들인 밀가루 알갱이들이 고소하게 입안에서 깔짝깔짝, 씹는 식감도 독특하고 은근 배도 꽉

차게 불러오는 음식. 더구나 스테미너에 좋다는 양고기와 함께니 한끼 식사로 더할나위없던 알제리 꾸스꾸스.

알제리가 또 프랑스로부터 넘어온 와이너리 기술이 발달했다고 하던데, 함께 마셨던 알제리 와인도 꽤나

괜찮은 맛이었다.

거기에 더해, 죽도록 달디달던 알제리의 디저트 쿠키들. 아랍쪽을 다니며 아무리 맛보아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디저트류의 그 아리도록 단 맛. 어찌나 단지 한입 베어물면 귓속에서 폭죽 터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라면

너무 구라라는 게 티가 나려나.




대학가가 밀집했던 동네에서 문득 마주쳤던 고풍스런 성당, 꽤나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건물이었는데, 하늘로

솟은 첨탑에 가까울수록 대리석의 빛깔이 뽀얗게 살아있는 반면 아랫도리쪽은 꼬질꼬질 때가 낀 것 같았다.

성당 내부의 분위기는 늘 그렇듯 기침소리조차 조심스럽다. 부조에 집중된 조명이나, 공간축과 시간축을 순간

헝클어뜨리려는 의도가 다분하게 배치된 조형들이 빚어내는 효과들이란 건, 한걸음 떨어져서 보면 왠지 재밌다.

바스티유 감옥이 있었다는, 1794년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바스티유 감옥에서의 대량 탈주가 있었다는

바로 그 곳이다. 바스티유 광장. 뭔가 당시의 분위기를 어림해볼 흔적이 당연히, 프랑스니까,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의외로 아무런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내가 과문한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옆에 있던 건 바스티유 오페라관. 한때 정명훈이 지휘자로 활동하던 곳이라던가, 정치인들과의 친분이 돈독하다는

그는 작년이었던가, 여기까지 그를 만나러 와서 순식간에 정리해고당한 서울시향단원들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던

학생들에 막말을 했다고 한다. 니들 좌빨이지, 뭐 그런 식이었다던가. 그 기사를 썼던 분은 나름 정명훈을

위대한 음악가로서 그에 걸맞는 감성과 도덕을 가졌으리라는 기대치가 있었나보던데, 사실 그런 거 없다.


지상의 더러운 것들에서 벗어나 고고하게 천상에서 독야청청하는 예술 같은 건 존재할 수 없을 텐데.

작게는 정부의 온갖 되도않는 공익광고에서 이뿌고 멋진 목소리와 이미지를 팔고 있는 사람들, 크게는 음악과

예술의 천분을 팔아 자리를 차지하고 완장질하는 온갖 또라이들. 정도의 차이지만, 다들 '부역'중이다.

오페라홀에서는 공연도 없었고, 그저 거리를 배회하다 보니 바닥이 냉큼 눈에 띄는 거다. 자전거 통행길이

참 꼼꼼하게도 그려져있다. 파리는 서울과 달리 구릉이 심하지도 않고, 사이즈도 한결 작으니 자전거 타고

돌아다니기에 참 좋을 거 같다. 그래서 아마 파리의 연인들에서 김정은이 그렇게도 자전거를 즐겼는지도.

반대편에 서 있던 쇼핑센터. 여긴 아무래도 주거지역이 가까운 탓인지 '오리지널' 프랑스인들 말고 아프리카에서

온 듯한 흑인들과 유색인종들도 많이 보였다. 퇴근시간이었던가, 직장인들도 많이 보이고 뭔가 입구에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고.

미국식 패스트푸드에 대해 경멸에 가까운 무관심을 보이는 프랑스인들이라고 하던데, 정말 KFC니 맥도널드니

세계의 엔간한 도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패스트푸드점을 보기가 쉽지 않았던 도시였다. 그런데 여기서

딱 발견한 KFC. 그리고 그 옆에는 다소 생경한 색감의 맥도널드까지.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버스 안의 쾌적한 공간에 앉아 바라본 파리의 시내 풍경.




스마트카가 곰실곰실 기어다니는 파리 시내, 엷은 잿빛의 대리석만큼 하늘이 우중충하던 날 거리를 거닐었다.

스마트카가 참 귀엽다며 서울에서도 저런 차들이 많아졌음 좋겠다고 생각하던 즈음, 거의 달구지 수준으로

낡은, 그렇지만 또 어찌 보면 굉장히 유니크하고 귀여운 녀석이 하나 지나갔다. 네모 반듯하게 각진 '월-E'의

캐릭을 처음 봤을 때 그 가공할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을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이제는 저런 투박한 생김에서도

뭔가 귀여움을 찾아낼 수 있게 되어 버렸다.

화려한 장식이 주렁주렁 꾸며져 있는 다리, 하얀 대리석으로 꾸며진 위에, 구릿빛 주물들을 포인트마다 조금씩

얹어 놓고, 반짝반짝하는 금칠로 마무리. 밤에는 그 위에 주홍빛 불빛이 한겹 내려앉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세느강변, 어느 아가씨가 둔덕에 걸터앉아 다리를 흔들며 사과를 깨물어 먹던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한참을

쳐다봤댔다. 그녀가 가버리고 남은 자리.

한강 고수부지와는 다른 느낌, 뭔가 좀더 풍경들의 디테일이 살아있는 느낌이다. 바닥에 깔린 포석부터. 한강은

그냥 시멘트로 맨들맨들, 아무런 질감이나 요철감이 느껴지지 않는 거죽이 대부분인 거다.

가방을 앞에 앉힌 채 근처 까페에 들어갔었다. 까페 이름은 퐁뇌프. 바로 그런 이름의 다리 옆이었다.

잔이 넘치도록 찰랑찰랑 따라진 화이트와인을 홀짝홀짝. 빵을 담았던 종이봉투가 꼬깃꼬깃해지도록 손에

쥐고 다녔으니 여기서 저 와인의 마지막 한 방울이 사라질 때까지 같이 다 마셔버릴 셈인 거다.

일요일날에 나왔을 적엔 차들의 통행을 막은 채 거리 축제 분위기를 한껏 풍겼던 바로 그 거리, 평일의 찌뿌린

하늘 아래에선 왠지 살짝 쓸쓸한 분위기의 한적한 길가로 변해버렸다.

성 샤펠성당을 지나며 다시 한번 그 뾰족뾰족한 외양을 눈길로 슬쩍 쓰다듬어 주고.

관광객도 잘 눈에 띄지 않던 어느날 오후, 금세라도 비가 꾸물댈 듯한 날씨에 서둘러 걸음을 옮기던 사람들

틈에서 왠지 나도, 여행자가 아니라 현지인인 양 무심하게 한번 올려다 보았다.

자유, 평등, 박애. 프랑스 삼색기에 담긴 그럴듯한 뜻도 그렇지만, 프랑스의 국가 역시 피 냄새가 가득하다.

피를 먹고 세워진, 자라난 그네들의 국가 이미지. 최소한 그 정도의 피값을 주고 기억해 내어야 나라의 기풍이

이러이러한 것이다, 라고 이야기할 만한 건덕지가 생기는 걸까.

노틀담 성당. 프랑스 파리의 중심부는 딱히 랜드마크라 할 만큼 두드러지게 높은 건물이 눈에 안 띄지만, 그래도

단연 노틀담 성당의 아름다운 모습이 시선을 잡아끄는 거다. 자연스레 시선을 붙잡아 두는 효과.

오르세 미술관 지나는 길. 철도역을 개조해서 만들어진 오르세 미술관 옆을 지나면 나도 모르게 언뜻 옛 서울역의

풍취가 떠오르기도 하고, 그리 작지는 않은 사이즈의 도시에서 마주쳤을 법한 철도역사의 기억이 떠오르곤

했었다.




하얗게 눈이 부시던 하늘, 시퍼렇게 출렁이던 바다, 드문드문 진한 그림자를 얼룩처럼 가진 초록색 잔디밭,

그리고 청결하고 깔끔해 보이는 하얀 커튼.

알제리에서 가장 앉아보고 싶던 자리 중 하나였다.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 속에 들어가버리고 싶었으니.

소들이 뛰노는 그림이 그려진 테이블 앞접시. 뭔가 시원한 에어콘 바람이 꽉 채우고 있는 공간에서 느긋하게

맛난 음식으로 이국의 향취를 맛볼 수 있다면.

아랍식으로 길게 늘어지는 응접실 분위기를 한껏 낸 음식점 한쪽의 룸. 저런 곳에서 물담배나 뻐끔뻐끔 피워

올려야 제대로 나른하게 뻗어있을 텐데. (..뭔가 약쟁이의 말투;; )

뭔가 불어로 씌어져서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던 메뉴. 그렇지만 대략 소고기가 나오고 그전엔 벽돌이 나온단

정도는 알겠다.

막 먹다가 문득 생각나서 찍은 '벽돌'. 생선까스랑 비슷한 맛이었던 듯.

그리고 소고기. 난 사실 핏물이 줄줄 흐르는 뱀파이어 스타일의 레어 스테이크가 좋은데, 이아이는 저토록

두툼하면서도 잘 익었다.

후식. 그다지 인상적인 디저트는 아니었다, 외양에서나 맛에서나.

크리스탈이 달랑달랑거리던 조명.

밤에 슬쩍 나가서 쐬었던 알제리의 바람은 시원하면서도 건조했다. 바닷가에 바로 연한 호텔이었지만 끈끈함이나

후텁지근함, 꿉꿉함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아 좋았다.

늘 출장 중에는 그림의 떡, 멀리서 바라보기만 할 뿐인. 호텔의 온갖 시설들. 수영장, 헬스장 따위들.

밤이 깊어 불밝혀진 후에야 슬쩍 한번 돌아보고 나오는 그런 곳들.

여름 휴가를 슬슬 가고 싶은 거다. 이런 불꺼진 고즈넉한 장면들이 자꾸 머릿속에 떠오르는 걸 보면.



입구부터 뭔가 화사하다. 잘 가꿔진 녹색식물들이 엉겨붙은 담벼락과 대문, 그리고 이쁜 꽃바구니가 그려진 채

무겁고 두툼해보이는 문짝하며. '타샤의 정원'이란 이름의 퓨전 한정식집.

정원이다 정말. 다소 정신없어 보일 정도로 잔뜩 늘어세운 화분들과 '풀떼기'들로 건물은 입구만 겨우 남고

전부 가리워지고 말았다.

약간의 산만함, 혹은 빼곡한 치장은 이 곳을 관통하는 키워드인 듯. 내부에 들어가도 진열되다 못해 바닥을 온통

잠식해 들어온 소품들과 장식품들이 은근한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비가 오리라던 기상청 예보 따위, 지들 운동회날 비나 맞으라지. 온통 번쩍번쩍 양광에 휘감겼던 날.

따스하게 햇볕에 바래가는 체크무늬 쿠션, 고소하고 살짝 시큼한 커피 향기, 그리고 저만치 떨어진 좌석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발랄한 목소리. 나른하고 느긋한 여름날 휴가의 모양새.

창밖에서 까페 내부를 들여다보던 네 명의 흑인 인형. 왠지 뉴올리언즈 쯤에서 막 재즈 공연을 마치고 상경한

포스가 느껴지는 그들.

심지어 건물 앞, 주차 안내원을 위한 공간조차 허투루 냅두지 않았다. 거대한 허브 화분 두개가 보초처럼 서있고,

문틀 위엔 수탉 두마리가 올라앉아 눈빛 겨루기 중.

사진이 좀 애매하게 찍혀서, 마치 저 나무통 똥꾸멍 쯤에서부터 저 붉은 꽃화분이 뿅, 하고 튀어나온 느낌으로

찍혀버렸지만, 그런 건 아니다. 괜한 해명인 건가.;

조금 어둡게 나왔지만 그래서 더욱 선연하게 떠올라버린 다섯장 꽃잎을 가진 이름 모를 꽃. 확 도드라져 보이는

색감이 눈을 어질어질하게 한다. 아놔. 좀 더 잘 찍어볼 걸.






빨강색 러브, 근데 뭔가 이상하다. 영문 알파벳이 아니라 저건 한글 모음들인 거다. L을 대신하는 니은, O를

대신하는 이응, E를 대신하는 ㅌ, 티읕. 그리고 거꾸로 물구나무선 시옷이 제대로 V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조그마한 금속링들을 붙여서 만들어낸 커다란 수탉. 벼슬과 부리의 위엄도 볼 만 하지만, 아직 성글게 자라난

꼬리깃이 좀만 더 풍성해지면 완전 볼 만 하겠다 싶었다. 중닭에서 완연한 장닭으로 변신 뾰로롱.

토이뮤지엄에서 만났던 커다란 인형, 그리고 햇살 가득 들여보내주는 관대한 창문 아래 나뭇빛 책상과 소품들.

화장실 표시가 귀엽긴 한데, 가만 살펴 보면 대체 저 쩍벌녀 꼬맹이는 급하다면서 전화기를 잡고 있으며, 저

어정쩡한 표정은 또 왜 짓고 있으며. 혹시 저 의자가 휴대용 변기인 건가..;

몇 장 너무 재미있는 그림들을 방문객들이 남겨두었길래, 차마 혼자 보기 아까워 사진을 찍어버렸다. 지재권은

전적으로 그리신 분들께 있으며 원치 않으실 경우 변호사 선임 및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

'거짓말하면 묻히는 거다'. 그 아래 정말 묻혀있는 피노키오.ㅋㅋ

어리다기엔 뭔가 '중닭' 정도 크기로 자라난 듯한 '어린왕자'. 소년의 복숭아빛 두 뺨은 싱그럽건만 눈빛속엔

번뇌가 눈물처럼 차올라 있으니 나이먹는 게 아쉬울 따름인가 보오.

입체 카드의 허점. 사람의 시선이 항상 최적의 위치에서 카드를 펼쳐보거나 바라보는 것만은 아닌 거다.

온통 깨어지고 뒤틀린 사자의 얼굴과 앞발바닥. 이글이글 불길처럼 타오르는 갈기, 라기보다는 그냥

되는대로 자르고 구겨놓은 쓰레기뭉치에 불붙은 거 같다.

토이 뮤지엄 앞에는, 심지어 이런 공공 시설물까지 이쁘게 포장되어 있었다. 말 그대로 포장. 무슨

거대한 선물상자같은 게 길가에 떡하니 놓여있길래 뭔가 했더랬다.

그리고, 마치 천공의 성 라퓨타에 나옴직한 장면. 거대한 나무가 건물 안쪽 어딘가에서부터 무럭무럭 자라났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는 덜 떨어진 질문을 좀더 참신하게 바꿔볼 수 있을 듯. 건물이 먼저냐 나무가 먼저냐.






강화도 대명항, 수많은 갈매기들이 무어에라도 쫓기는 듯 온통 날아올랐다. 여기저기 물찌똥을 찍찍 갈기는

건방진 녀석들이지만, 닭둘기와는 다르게 날아다니는 폼이 여유가 있다.

그렇지만 여기 역시, 마치 석모도 들어가는 페리에 파리떼처럼 달라붙는 그 손탄 갈매기의 기풍이 없을 수는

없는 거다. 사람들은 풍족하게 먹고 소비하고 남기고 버리고, 약간의 휴머니즘이나 센티멘탈리즘을 더해

동물들에 먹을 걸 던져준다. 시혜 욕구와 식욕 모두를 충족시키는 윈-윈이랄 수도 있겠지만, 저들이 부디

나는 법을 잃어버린 채 사람들의 손끝만 바라보는 닭둘기로 전락하지 않기를 바랄 뿐.

먹이를 두고 첨예한 날개죽지 싸움이 벌어지는 뻘밭. 그들의 매끈하고 반들거리는 몸통과 날개는 웬만한

더러움쯤은 쉽게 튕겨낼 듯 한 포스가 배어있다.

과자를 던지는 아이의 손에 꽂힌 녀석의 눈빛. 인형에 붙어있는 유리눈깔같이 조금은 괴기스럽기도 하고,

생기를 잃은 듯 하면서도 묘하게 살아있음이 느껴지는 눈빛이다.

과자 먹느라 신나셨다. 홰를 친다고 표현하던가, 날개를 푸드덕대며 태양을 피하고, 한 입에 과자를 꿀꺽.

이 녀석은 왠지 털도 부시시해 보이고, 뻘밭 웅덩이를 물끄러미 응시하며 자학에 빠진 것만 같다. 이리 살아

뭐할끼고. 과자 한 입 못 얻어 먹는 시러배새새끼.

시간만 있으면 갈매기들의 비상을 제대로 한 컷 잡아 보고 싶었는데 어느순간부터 이녀석들 전부 저공비행이다.

어렸을 때던가,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는 식의 속담에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했던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나면서, 지금은 공기도 무거워지고 벌레들도 지표면 가까이로 내려와 있어 새들이 낮게 저공비행하는 걸 테고

내일쯤 비가 오려나 생각했는데, 비는 결국 안 왔던 듯 하다.

대명항에서 기우뚱거리는 어선들. 잘 손질된 어구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항구 바로 앞에 세워진 어물전에서는 시뻘건 소고기같이 생긴 고래고기도 팔고, 지느러미가 리얼한 상어고기도
팔고, 저마다 아주머니들의 남편이, 아들이 잡아왔다는 국내산 생선들을 파느라 분주했다. 그 와중에 빛나는

아이디어, '껍질홀라당벗겨진, 금방 돌아가신 간제미'.


수백마리의 생선이, 수만마리의 새우 사체가 산처럼 쌓인 채 소금에 절여진 냄새를 뿜어내는, 조금은 잔인하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의 어시장이었지만 저런 덕분에 재미있었다.

아무래도 바다를 제대로 보려면 서해보단 동해다. 뭔가 바다를 바라보아도 질척하고 끈적한 뻘밭이 시야의

한웅큼을 뺏어가는데다가, 거의 틀림없이 바다 너머엔 또다른 육지가 보인다. 이래서야 원, 강인지 바다인지

알 방법이라곤 짠내밖에 없는데 그조차도 왠지 서해 쪽은 많이 희석되는 느낌이다.

어느 횟집의 빈티지스러운 테이블 세팅. 색이 바랠대로 바랜 의자 여섯개가 노골적으로 부조화스런 색감을

뽐내며 척하니 자리를 잡았고, 고등학교 때까지 익숙했던 파랑색 쓰레기통이 상석을 차지했다. 한눈에 보아도

잔뜩 녹슬어 보이는 테이블 위 석쇠를 넘보는 건 보랏빛 바디가 딱정벌레처럼 반들거리는 오토바이.



토실한 엉덩이. 탄력도 좋아 처짐없이 탱탱하다. 키를 잡고 있는 이 시퍼러딩딩한 녀석은 이 전시관의 마스코트.

색깔로 보아하니 상해엑스포 심벌인 '하이바오'와 친척간인 듯.

여긴 중국선박기업연합관, 강남조선공장(江南造船厂)의 일부를 변형, 개조하여 설계하였다고 한다.

생선의 등뼈와도 같은 배의 용골 모양 외관이 인상적이었던 전시관, 빳빳한 벽면을 둘러친 공간이 아니라 기분상

좀더 넓고 탁 트여보인다.

선박 제조공간의 분위기가 그대로 살아있으면서도, 중간중간 최대한 녹색 식물로 치장한 게 눈에 띄었다.

이번 상해 엑스포의 주제가 녹색생활인지라 역시 나름 친환경의 구색을 맞추기 위해 노력한 흔적인 거다.

그렇지만 사실, 이런 엑스포 한번 치루기 위해 발생하는 건축 쓰레기와 대규모 인파가 몰려들고 빠지면서

발생하는 온갖 유무형의 공해라는 걸 감안하면, 애당초 이런 소비적, 과시적 관념 위에 선 '박람회'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고민이 필요했던 건 아닐까.

넓은 공간에 까페도 있고, 레스토랑도 있고, 푸서 지역에 위치한 지라 그렇게 관광객이 많이 보이지는 않는다.

좀 심하게 공장 냄새가 나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까 보였던 그 살짝 변태캐릭의 앞모습. 뭔가 귀엽지도 않은 게 귀여운 척 하느라 힘들어 보이는 표정이다.

아직 중국은 자체의 미감과 자연스러움이 살아있는 캐릭터를 못 만드는 건가..

그리고 다소 민망한 사진. 이 녀석은 성별이 뭐지. 자웅동체인가, 달팽이처럼.

어떻게 보면 불룩한 위아랫배에 더해 섹시한 엉덩이까지. 정준하의 몸매가 문득 연상되는 질펀한 몸매의 그(녀).




전등사 들어서는 길, 마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떠올리게 만드는 자그마한 돌문을 사이에 두고 풍경이

바뀐다. 양켠에 즐비한 음식점의 번다하고 소란맞은 풍경에서 싱싱한 초록빛 물감냄새 물씬한 그것으로.

대학다닐 때 수업은 듣기 싫고 어디던 떠나고 싶은 마음에 다 째버리고 혼자 여까지 꾸역꾸역 기어왔던 적이

있었다. 이번 주말처럼 폭우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잔뜩 가물어 쩍쩍 갈라진 논바닥같은 소나무 둥치 고랑에

초록빛 이끼가 촘촘하게 올라붙었다.

이걸 한 바퀴 돌리면 경전을 한번 읽은 효과가 있다지만, 문맹자를 위한다는 명목이 사라진 지금은 아무리 봐도
그건 야매에 가까운 무엇이다. 종교가 현세와 내세의 안녕과 축복을 지켜내는 세련된 기복 시스템으로

타협하면서 일그러진 부처의 메시지는 심지어 그걸 '야매/short-cut' 공덕쌓기용 시주함으로 전락시킨

사람들에 의해 조금 더 상처받은 거 같다.

전등사에 도착. 빤딱빤딱하는 것들보다는 불투명하고 담백한, 그런 이미지의 것들이 왠지 절이라는 공간에

맞춤한 거 같아서, 저런 식으로 반짝거리는 유리창 대신 한지라거나 간유리 느낌의 창이 아쉽다.

시원하게 활짝 제껴진 창문들 사이로 공을 몰고 질풍처럼 드리블하는 바람을 그려보는 걸 보면, 월드컵 시즌.

적당히 보기좋게 퇴락한 단청을 얹은 처마 끄트머리에서 풍경이 짤강거린다. 비온 후 갠 참이다.

목도리처럼 염주를 감고 있는 부처, 학업성취를 다짐하는 동자승, 소림사에서 수행중인 동자승들 틈에서

은근슬쩍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저 洋夷의 아이는 누군고.

전등사 경내의 찻집,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에 혹해 뒤로 돌아갔더니 장독들이 팀파니처럼 앉아있다.

갈 길을 잃어버린 개미 한 마리. 두 개도 아니고 여섯 개나 되는 더러운 발로 꽃잎을 희롱해대더니 갈 길을 잃고

그대로 멈췄다. 얼음.

너른 꽃잎 벌판을 지나 탱글하게 감긴 채인 꽃송이들 사이를 덜컥거리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개미 녀석의

몸크기에 비기자면, 지금 녀석은 비포장의 시골길을 달려가는 마을버스같은 율동감을 느끼고 있을 듯.

문득 도예 수업 시간에 내가 만들었던 도자기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궁금해졌다. 굉장히 이쁜 것들 많았는데.

두툼하고 튼튼해 보이는 부리, 다소 우글쭈글하지만 쭉 뻗은 각선미. 휘영청 감아올라간 허리까지.

그냥 초록빛이 넘 좋아서.

빛 조절에 실패한 사진이지만, 왠지 살짝 환타지스런 느낌이 있다. 낡고 오랜 성벽을 꾸역꾸역 말아올리는

악령의 손아귀처럼 덩굴식물이 시커멓게 잠식해 들어가는.

원래 요렇게 밝은 색감이어야 하는데.

이 사진만 보면, 그냥 돌바닥에서 잎사귀들이 하늘을 향해 나무처럼 자라오른 느낌이다.

무더기무더기, 소원을 빌며 사뿐하지만 조심스레 올린 돌멩이탑이라기보다는 그냥 돌무더기.

이건 더 심하다. 쪼개지고 토막난 나무 위로 빼곡하게 돌멩이들이 들어차 있는데, 그냥 누가 포대 가득 차있는

돌멩이를 탈탈 거꾸로 털어서 쏟아부은 듯. 올라앉을 놈 올라앉고 굴러떨어질 놈은 굴러떨어지고. 지 팔자지.

토요일 쏟아붓던 비는 적어도 일요일까지는 문제없다는 기세더니 웬걸.

돌아나서는 길. 누군가는 새롭게 들어서고 있었다. 그들의 '행방불명' 이야기.




조금씩 밤이 깊어오면 건물들 대부분에서 LED 조명이 뿜어나온다. 한국기업연합관과 마주보고 있는 중국의

국영석유공사 전시관은 그 중에서도 굉장히 화려한 편이다.


쉼없이 벽면을 타고 흐르는 천연색의 조명들이 이러저러한 무늬를 그린다.

그리고 황포강 건너편, 포동쪽의 국가관들 역시 마찬가지. 달빛도 지지 않겠다고 감바떼감바떼.

붉은 색 중국관이 굽어보는 가운데 화려한 조형물이 성화처럼 밤을 밝히고 있다.

포서와 포동을 잇는 아치 형태의 다리.

개막식을 연습하던 날 밤이었을 거다. 강을 따라 삼엄하게 도열한 조명시설들에서 레이저광선처럼 파릇한

빛이 뿜어져 나가며 이리저리 수면을 핥아내렸다.


한국기업연합관, 상모돌리듯 돌아가는 벽면의 윤곽을 따라 빨갛고 노랗고 초롷고 파랗고 보란 조명들이 감기어

흘러내린다.

돌아나오는 길, 중국국영석유관과 나란히 선 한국기업연합관.

그리고 일본산업관. 상해역사관.

엑스포 박물관, 그리고 그 앞에 꽃처럼 피어있는 조형물들.

포서와 포동을 잇는 다리가 보이고, 관람객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 휑한 공간에 불빛만 가득하다.







문득 길 옆에서 걷는 남자를 만났다. 하얗게 친 백구가 반들거리긴 하지만, 뭐 과히 놀랍진 않다.
 
아마도 꿀두피 윤성호 덕분인 건가..

근데 아니다. 스쿠터 사이로 얼핏얼핏 보이는 날씬한 다리하며, 살색그림 펑펑 보여주시는 웃도리하며.

탱크탑처럼 가슴께에서 바싹 쪼인 웃도리, 그리고 허벅지 윗둥치까지 올라온 몽땅한 미니스커트.

이정도는 입어줘야 상하이 패셔니스타. (날씬한 다리가 섹시하다...고 느끼면 안 되는 건가...ㄷㄷㄷ)








상해 신천지를 가로질러 마주한 음식점 하나. 이러저러한 행사들 때문에 제법 호텔이나 고급 음식점에 익숙한

입맛으로 변질되어 버렸음에도 굳이 기억해 둘만한 가치가 있는 음식들이었다.

무려 9개짜리 코스요리. 보통 호텔 오찬이나 만찬이래봐야 많아봐야 7개 코스가 대부분일 텐데. 인당 388위안이면

대략 7만원에...택스 붙으면 8만원 정도 하려나. 맘잡고 가는 한끼 식사로는, 아무래도 중국 물가 감안하면

꽤나 비싼 거긴 하다.

우선 목 마른 김에 중국의 '입을 즐겁게 하는 음료' 하나 시키고.

오이 위에 얹힌 캐비어, 전복, 장어, 그리고 마 같기도 하고 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마지막 한가지의 에피타이저.

샥스핀이 이렇게 커다랗게 등장하는 스프는 처음 봤다. 거의 지느러미 하나를 통째로 썰었나 싶을 정도로 큰.

그러고 보니 난 여태 아무 생각없이 읊던 단어였는데, 샥스핀이 Shark's Fin이었다. 아. 그렇구나.

묵직하게 시큼한 맛의 스프, 그리고 부드러우면서도 쫀득하고 결이 살아있던 상어지느러미.

랍스터. 반으로 잘린 랍스터안에 꽉 차 있는 속살이 뽀송뽀송, 탱탱하다. 이녀석은 대가리가 크고 껍데기가

두꺼워서 늘 문제다. 이등신이다, 몸 반 머리 반. 쳇. 늘 아쉽게 만드는.

이게 무슨 생선이더라..껍데기가 두툼하면서 쫀득하고, 비늘 벗겨낸 자리가 까칠까칠한 식감을 주는 생선.

사진을 찍으면서 계속 거슬리던 조명. 샥스핀에 샹들리에 조명이 반사되고, 노리끼리한 조명 때문에 영

색깔 내기도 쉽지 않아서 불만이었지만, 사실 등 자체는 이쁘장했다. (너한테 유감은 없단 말이다.)

계절 채소 조금과 함께 나온 건,

두 가지 중 하나를 고르는 메인 음식. 양갈비거나, 혹은 스테이크거나. 난 양갈비를 골랐는데 꽤나 맛있었다.

중국에서 널리 쓰이는 요리재료가 다양하니 먹을 만한 옵션도 넓어지는 거 같다.

연어알이 얹힌 대나무통밥. 메뉴상으로는 'home-made' 스타일이라 주장하고 싶은가 본데...날치알과는 비교도

안 되는 풍성하고 호사스런 바다맛을 내는 연어알이 우리집 밥상에 오른 적은 한번도 없었다. 

마지막 디저트. 들깨를 갈아만든 푸딩이랄까, 굉장히 고소하고 탱탱한 푸딩. 그리고 망고와 수박과 키위 삼형제.

원래 먹는 거 포스팅은 피하려 하는데, 그래도 상해에서 먹었던 잊을 수 없는 호사스런 자리 중 하나였기에,

게다가 지금 쪼끔 배가 고픈 나머지.ㅎ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대장정'의 영웅 마오쩌둥이다. 어디선가 많이 본 중년의 마오쩌둥 사진. 그런데 뭔가

다르다. 귀에 삽을 박고 다니는 사람도 있지만, 이이는 이어폰을 귀에 걸었다. MP3로 노래라도 듣고 있는 걸까.

그들의 국부라 할 수 있고, 중국공산당의 아버지라 할 만한 사람의 귀에 이어폰을 꼽아주다니, 어쩌면 중국은

이제 한국보다도 정치적으로 유연하고 관용적인 사회가 되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상해의 '신천지(新天地)', 삼청동 쯤을 연상케 하는 그럴듯한 까페와 갤러리들이 모인 곳의 어느 가게에서 무심코

카메라를 꺼내들게 만들었던 그림 한장. (사실 그런 갤러리에선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기 마련이다.)

상해의 조계 지역이었을까. 굉장히 고풍스러우면서도 이국적인 분위기의 벽돌건물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사람들이 사방에서 자리를 잡고 차를 마시거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그저 햇볕을 즐기는 듯이 보였다. 어떻게 보면

중국의 느낌이 아니라 파리 샹젤리제 거리같은, 그런 여유롭고 유럽스러운 분위기의 공간이다.

왠지 커피빈은 외국에서 만나면 반갑다. 아놔.

바닥의 포석들도 나름 신경써서 깔아둔 듯 하다. 최소한 아무런 미감이나 주변과의 조화를 고려치 않고 그저

아무데나 막 깔아버리는 '범용' 포석은 아닌 거 같단 이야기. 포석이 이쁜 길은 걷기에도 즐겁다.

그다지 높지 않은 건물들이 요리조리 방사형으로 퍼진 골목길 따라 늘어서 있었다. 1층엔 까페, 2층엔 갤러리,

뭐 그런 식으로 공간을 겸하고 있는 샵들도 보였고, 저렇게 생긴 테라스들이 이층마다 툭툭 턱처럼 나왔었다.

아직 뜨겁다기보다는 따땃해서 기분좋은 햇살을 걸러주는 연두빛 투명한 여린 잎사귀들.

그리고 빨간 완장이 우스꽝스럽던 토실토실한 아저씨는 바싹 마른 소같은 자전거를 타고 소처럼 느릿느릿

햇살 속을 유영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유연한 그의 페달질에 놀랬고, 붉은 완장이 생각보다 그럴듯해 또 놀랬다.




상해에서 지나친 커피숍, 몇걸음 떼다 뭔가 이상해서 눈여겨보니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낯설면서도 익숙하다.

이 아이랑 참 비슷한 분위기의 배색, 그리고 도안이지 싶은데. 사실 안에 들어있는 가슴큰 인어공주의 이미지를

노골적으로 비틀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 해야 할까. 나름 비슷하지만 딱히 어디라고 찝어낼 순 없는 경계에

달랑달랑, 그 정도 수위의 카피인 듯 하다.

메뉴판이 동그라미 링으로 조금은 두툼하게 나왔지만, 뭐 팔고 있는 커피 종류가 많은가 보다 했다.

근데 아니다. 심지어 국수류도 팔고 있었다. 중국식 소면, 메뉴만 보고는 여기가 까페란 사실을 망각하겠다.

다시 말하자면 여기는 상해 어느 길거리의 별다방 닮은 듯 안 닮은 듯 딱히 찝어말하기 힘든 로고를 가진 까페,

보통 까페라 하면 커피를 팔고 차를 팔고 여름에는 팥빙수 정도를 팔곤 하지만 김이 무럭무럭한 면을 팔지는

않는단 말이다. 중국어로 '까페이'라 읽히는 건 우리말로 커피숍, 까페라고 분명 배웠는데.

조금 불안했지만 ice-coffee를 시켰다. 서빙되어 나온 건, 그야말로 아이스커피와 냉커피의 차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한 잔의 다방 커피. 커피 둘 설탕 둘 프림 셋의 커피에 뜨거운 물 조금 부어 녹인 후에 얼음 동동 띄운.

그치만 빨대가 비비 꼬인 건 맘에 든다.

바닥에 깔아준 받침을 유심히 보니 꽤나 재미있는 말들 투성이다. Latter, Colombian, Hawail Coffee, Sunmiyaki,

그렇지만 대박은 뭐니뭐니 해도 'Espresson'. 에스프레소가 아니라 에스프레'손'!

어라, 더 심한 걸 보고 말았다. 무려 양갈비다. 까페 유리창에 붙어있는 메뉴는 다름아닌 기름기 줄줄 흐르고

노린내 응큼하게 나는 양갈비. 다시 한번 리마인드하자면 여기는 까페. 대개는 커피나 차를 마시는 곳. 와우.

80, 90년대 한국의 다방에는 동전을 넣어 오늘의 운세가 돌돌 말린 종이를 뽑는 재떨이도 있었고, 한쪽엔

오락기도 있었고 그랬던 거 같다. 한 숟갈씩 퍼먹던 프림의 숨막히도록 텁텁하고 달달한 맛과 함께 떠오르는

추억이다. 중국의 커피숍엔 그런 건 없었지만, 제법 이런 식으로 생긴 호출벨도 있지만, 저 아저씨는 왜 저리

입을 쫙 벌리고 힘든 표정을 짓고 있을까.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좀더 걸어들어가면 영추문이 나온다. 가을을 맞이한다는 그 문과 마주보고 있는 거리에는

자그마한 미술관들과 까페들이 거창한 간판도 없이 숨어있다.

늘 그 동네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건 회칠이 벗겨진 담벼락에 그려진 여리여릿한 나무 한 그루. 더이상 회칠이

벗겨지지도 않고 딱 저만한 공간 속에서 나무는 호젓하다.

그 옆에 붙은 '보안여관', 한때 안기부에 조사받으러 불려다니던 피조사인들이 애용하던 곳이었다던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 허름한 뽄새와 왠지 모를 시간이 켜켜이 쌓인 포스를 늘 눈에 담고 갔었다. 마침 전시가

있어서, 카메라 뚤레뚤레 흔들며 구경질 시작.

자연에서 채취한 재료들로 인형을 만드는 작가분이 1층과 2층을 모두 쓰며 작품을 전시하고, 또 계속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솔방울, 잔가지, 마른꽃대궁, 씨앗..담담하고 조신한 색감이 맘에 든다.

여관(으로 쓰였던) 건물 내에 붙어있던 재미있는 표어. "미성년자는 입장해서도 안 되고 입장시켜도 안됩니다."

그리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방들마다 숨겨진 보물처럼 꼭꼭 감춰진 작품들.

빼꼼히 열린 방문 틈으로 창을 휘두르는 기사도 보이고, 다소곳한 매무새의 아가씨도 보이고.

2층으로 올라가는 길, 온통 낡고 헤진, 그리고 지저분한 여관의 내음이 물씬하면서도 나뭇가지니 마른 잎사귀

따위로 잘 갈무리된 느낌이다. 사실 이렇게 오래되고 우중충한 건물, 더구나 그야말로 갑남을녀가 잠깐 머물다

떠나는 여관이란 곳은 청결함이라거나 말끔함과는 워낙 멀리 떨어진 곳 아닌가. 예술작품과는 더더욱.

솔방울과 마른 콩깍지 따위로 만들어낸 순간. 조그마한 새끼가 커다란 새에게 잡아먹히기 직전의 순간이다.

우연찮게 여길 들르기 직전에 돌아봤던 곳은 대림미술관, 커버 아트의 대가라는 로저딘의 회고전을 봤었다.

'Dragon's dream'이란 제목의 그 전시를 보고 나서 막상 여기서 또다른 형태의 용을 만나다니 신기했다.

이제 끝. 한번 설렁설렁 돌아보기 딱 좋은, 부담없고 재미있는 전시인 거 같다. 마치 전시작품들과 작가를

수호하듯 카랑카랑한 자태로 1층을 지키고 있던 (아마도) 샤먼.

그리고, 전세낸 듯 혼자 기대앉아서 해가 저물도록 책을 읽다 돌아온 통인동의 어느 까페. 정말 요새 까페하기

참 쉽다. 대충 짝이 맞지 않고 이가 어긋나 보이는 가구들 잔뜩 들여넣음 끝..이랄까. 사실은 이런 분위기 참

좋은 거 같다. 게다가 노래 선곡도 넘 맘에 들었던 게, '베란다 프로젝트', '에피톤 프로젝트', 그리고 '루시드폴'

앨범이 고스란히 순서대로 공간을 채웠었다.

그리고 굉장히 맛있던 갓구워낸 초코 브라우니, 그리고 에스프레소.

조그마한 병이 쟁반에 같이 나왔는데, 첨엔 시럽이려니 생각했다가 잠시 혼란스러웠다. 그럼 이 녹색식물떼기는

왜 꼽아둔거지. 그냥 데코레이션으로 꼽아둔 건가. 아님 그냥 화병인 걸까. 뭔지 모르겠더라.



한 네시간동안, 노래에 흠뻑 취해 책 한권을 홀딱 다 읽고는 나왔다. 노래 참 잘 들었어요, 하고 나왔다.




거대 잠자리가 날아다니다가 날개를 풀고 쉬어가는 곳. Dragon-fly라는 영어이름이 비로소 그 위용을 되찾는 듯.

그리고 가슴팍에 붉은 심장 대신 은색 바람개비가 파닥대는 아저씨가 아이들에게 아낌없이 몸을 내어주는 곳.

서울숲이다.




오늘 시청앞에서 뜬금없이 마주쳤던 말과 포도대장 아저씨, 옆에는 버스가 씽씽 달리고 있는데 요 잘생긴

말들은 벌써부터 주눅이 들었는지 잔뜩 겁먹은 표정이다.

이번 월드컵, 사실 4년마다 돌아오는 월드컵은 그다지 마뜩찮다. 축구에 평소 관심이 있던 것도 아닌데다가

사실 별로 긴장감도 없고 스릴도 없는 경기를 두시간여 멍하니 지켜봐야 한다는 건 고문에 가까운 일이다.

더구나 갈수록 그 'Reds'들이 대기업에 놀아난다는 느낌. 처음 2002년에 거리를 그들이 접수했을 때만 해도

오, 이건 뭘까 멋지다~ 생각이 없지 않았지만, 점점 상업화되고 대기업의 도구로 전락하는 느낌이다. 하여

'대한민국은 샤우팅입니다' 요 짧은 문장 하나에서 맘에 안드는 글자가 무려 일곱글자나 된다.

우야튼, 교보빌딩 앞을 지나다가 재미있는 장면을 발견. 교보빌딩이 포장중이었다.

아직 어떤 문장인지 명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대들의 함성으로 승리를 두드려라' 정도 되려나. 홍명보

형님이 활짝 웃고 있는 오른쪽의 그림은 열심히 건물 외벽에 부착작업 중이었다.

참 고생이시구나, 싶었다. 늘 여길 지날 때면 교보빌딩 외벽에 적힌 몇마디 촌철살인의 문구들이 참 좋았는데

저기도 월드컵 열풍을 빗겨나가지는 못하는구나 싶어서 씁쓸하기도 하고. 사실 난 차라리 SBS가 월드컵

중계를 독점해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월드컵 기간이라고 개자식들이 사건사고를 안 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채널에서는 그래도 내가 궁금한 것들에 대해 무기력하게나마 이야기해주겠지.





상해엑스포 중국관, 북한관, 그리고 몇몇 관에서는 기념 스탬프를 찍어주고 있었다. 이건 중국관 내 귀주성

부스에서 찍은 스탬프. 세 개의 산봉우리가 갸름한 달을 받치고 있다.

이건 베이징 부스의 스탬프. 뭔가 우뚝 솟은 성같기도 하고 건물같기도 한 형체를 배경으로 北京 두 글자가

뚜렷하다.

그리고 이게 어디였더라...구불구불 뱀이 웨이브치는 스탬프.

참 이쁘다며 팔짝팔짝 뛰며 좋아했는데, 스탬프를 찍은 종이에서 잉크가 미끄러져 내렸다.

아..나의 귀여운 팬더가. 사천성 부스의 팬더.

그리고 이건 조선관(북한관)의 기념 스탬프. 말을 타고 동만주를 내달리며 진격하는 장군님의 모습일까,

한 손을 번쩍 든 건 마법의 주문을 외워 솔방울로 총알을 만들어내려는 순간을 형상화함인지도.

어디선가 만난 상해 엑스포 기념품점. 아직은 사람이 많지 않은 한가한 시간대, 실은 막 물건들을 전시해둔

따끈한 기념품점을 마수걸이삼아 찰칵.

하이바오를 이런 식으로 다양하게 변신시켜 둔 아이템들을 보다 보면, 왠지 뭔가 다른 게 떠오른다. 나만 그런가.

몸뚱이는 파랗고, 더러는 하얀 색 모자와 옷을 입고. 작고 귀여운 외모까지.

특히 요놈들. 완전 닮았다고 생각하는데....아닌가.

뭐 비슷비슷할 수야 있는 거니까 말하기가 조심스럽긴 한데. 그래도, 여기가 대나무숲이라 믿고 한마디,

쟤넨 스머프잖아.





쟁반, 접시, 물잔, 맥주잔과 숟가락이 비닐 포장되어 있던 상해의 어느 음식점. 웬만한 음식점에 가면 음식은

맛있다 해도 대부분 찐득찐득하고 더러운 접시 때문에 살짝 기분이 상하곤 했었는데, 이렇게 비닐로 잘 싸여있는

식기류라면 왠지 믿음직스럽겠다 기대가 되었다. 아마도 그런 부분을 감지하고 나온 아이디어 아닐까, 일인용

식기 세트를 완전히 비닐포장해서 그때그때 서빙하는 거.

비닐을 짝짝 찢어서 접시랑 컵이랑 숟가락을 세팅하니까 이런 모양이다. 비닐 포장되긴 했지만 생각보다는 그닥

깨끗하진 않았다. 물이 질질 흐르고, 여전히 군데군데 뭔가 찌꺼기같은 게 붙어있어서, 그냥 비닐 포장하나

안 하나 별차이없는 중국의 식기구나 했다.

그런 접시들을 앞에 놓고, 상해의 명물이라는 '민물게요리'를 먹었다. 새우같기도 하고 가재같기도 하고, 커다란

집게 모양의 앞발이 두 개 달린 새우라고 하면 되려나. 매콤한 양념도 맛있었지만, 껍데기를 입으로 까서 먹는

그 속살의 쫀득이는 식감이 꽤나 매력적이어서 정신없이 먹었다. 접시가 깨끗하니 안하니는 이미 아웃 오브 안중.

먹고 안 죽으면 되지 뭘.

맥주는 맛있는 칭다오. 한국과는 다른 디자인이 꽤나 깔끔하고 고급스러웠다. 민물게요리랑 딱 어울렸던.





Clifford 였던가, 그런 비스무레한 이름으로 FAKE ID도 만들었댔다.

도서관에 들어가 앉아 미국의 대학생들과 함께 책도 읽고 눈인사도 하고, 앞자리 아가씨도 훔쳐보고 싶었는데.


문득 궁금해진 건 대체 저렇게 멀리서 잡아준 사진은 누가 찍어줬던 거지.

길 가는 사람 붙잡고 부탁했단 얘긴데...풍요의 땅 미국이라도 내 카메라 들고 토끼지 말란 법은 없건만.






2001년 늦은 봄, 도망치듯 한국을 빠져나와 마주했던 뉴욕의 하늘.

"렌즈의 메마름을 피해 비구름을 그려보다.." 누군가 찍어준 내 흐릿한 모습.

이유없이 우울하고 정신없이 센치했던 그때였지만, 돌이켜 보면 하늘이 마냥 잿빛이었던 것만도 아니다.


맨하탄의 스무디바에서 일주일에 닷새씩 하루종일 당근을 까고 레몬을 까고 레모네이드를 만들면서도,

온갖 야채와 과일박스를 실은 커다란 카트가 울부짖는 굉음과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32번가를 종횡하면서도,

심지어는 악명높은 뉴욕 지하철에서 변태에 희롱당하고 고속도로에선 과속으로 딱지가 떼이면서도,


재미있었다.


최소한 그때처럼만 살아야겠다.




상하이의 짝퉁시장 근처에는 한글 간판이 굉장히 많았다. 짭냄새 풀풀 나는 카피 상품에 대한 한국인의 수요가

그만큼 크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 같았고, 한국인이 그 제조 공정에 그만큼 깊이 개입해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건지도 모른다.

'최고의 서비스', 는 알겠는데 '일반소비자가격'은 뭘까. 어쩌라구.

신기한 메뉴 투성이다. 두부김치냄비는 그렇다 쳐도, '미소코디레코딩'은 대체 뭘까. 레코드판을 먹어야 할 기세.

이건 더 대박, '뼈없는 쇠고기 돼지갈비'. 응...응?? 쇠고기랑 돼지갈비가 같이 나온단 건가, 아님 소를 먹인

돼지 고기를 준다거나 돼지를 먹인 소고기를 준단 건가. 

이어지는 단어들, 소고기 어깨고기, 소의 갈비뼈, 혀..최소한 부위들이 제시되는 것들이니 뭔지 상상이라도

해보겠지만, 대체 '유명 쇠고기'는 뭘까.

혹시 직접 가보고 싶은 분을 위한 친절한 가이드. 여기는 남북으로 jinhui로가 달리고 동서로는 xianfeng로가

가로지르는 지점쯤이다. 역시 지금의 상해는 상당부분 계획된 도시로 설계되어 그런지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는 거 같다. 그렇지만 이렇게 설명해서 쉽게 찾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고.

차라리 이렇게 이야기하도록 한다. '금보나 보건안마클럽'을 찾으세요.

가게 이름이 '오토종닭'이다. 뭘까. 오~ 토종닭? 오토(auto) 종닭? 황당무계한 간판.

자랑스런 한국의 미용산업의 명성은 진즉부터 알아모시고 있던 게다. 무려 '한국전문가 직접관리'. 신뢰100%!?

불법복제 디비디들 사이에서도 한국영화는 섭섭치 않을만큼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안 본 영화가 세상엔

넘 많다. 고작 저 판때기 하나 위에 깔린 영화 중에도 안 본게 잔뜩이다.

나름의 운치를 과시하는 어느 가게의 간판. 중간에 오타나 요상한 표현이 있는 건 아닐까 눈에 불을 켜보려다가

말았다. 저 간판 위의 세상은, 말하자면 '시적허용'의 세계인 거다.

이 간판도 그런 세상인 걸까. 숱불구이. 하긴 이런 식의 오타나 실수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한국에서 소비되는

한국어들조차 그다지 정확하진 않다. 표준어법을 알면서 피해가는 재치있게 비틀린 표현들 말고, 정말 몰라서

자꾸 틀리는 표현들. 그건 좀 거슬린다. 나는 않 틀린다.ㅋㅋㅋ

짭퉁들의 본거지라는 민차오패션마켓. 꽤나 큰 건물을 온통 차지한 마켓 정문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아저씨들.

한국복식 매력 연출, 아무래도 여기에서 한국어 표현을 사용하고 감수하는 사람들은 조선족인 거 같다. 남측보다

북측의 어휘나 분위기에 훨씬 어울리는 단어 선정이다.

수출정품관? 엄선된 상품들이란 의미의 정품(精品)인 건 알겠지만 역시 눈에 선 표현이다. 게다가 옆에 자석은

왜 갖다가 그려놓은 거지. 뭘 끌어당기고 싶은 거냐 네놈들은.

아이의 하얀 박꽃같은 엉덩이가 완전 흐뭇한 스마일 미소를 짓고 있다. 겸둥이~ 꺄아~~*

출장마사지 서비스도 있읍니다. 저 '읍'자가 아무래도 어색하게 손봐진 걸로 봐서,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억지로 틀리게 고쳐쓴 거 같다. 딱 억지개그치는 느낌이 가득한 게 전혀 '레알'스럽지 않은 거다.


혹시 야밤을 틈타 저기 슬쩍 다녀가신 거 아냐? 떡검들이랑 G랑 어깨걸고 '못생긴 마사지사' 찾아서?

상해에서 이번에 먹었던 음식중 가장 독특했던 건, 중국식으로 매콤한 '개구리 요리'. 우리식대로 매운 거는

뭔가 땀이 뻘뻘 나고 혀끝에서 불이 나는 건데, 여기의 매운 맛은 혀와 입안을 온통 얼얼하게 마비시킨다.

치과에서 마취제를 입안에 맞고 있는 듯한 느낌, 식용 개구리의 뒷다리는 정말이지 왠만한 치킨가게에서 파는

닭날개랑 비슷한 사이즈를 과시했다. 12足쯤 먹었으니...6마리 되시겠다.



중국관은 다른 국가관들에 비해 높이가 두배나 높을 뿐 아니라 위치 상으로도 엑스포장 내의 최중심에 위치해

있는 셈이다. 게다가 건물 모양 자체가 위로 향할수록 넓어지는 커다란 역사다리꼴이니, 마치 주렁주렁한

장식이 달린 황제의 관을 쓴 중국의 천자가 세계를 굽어보는 격이다.

중국관의 외벽을 두르고 있는 문양도 특이하다. 뭔가 왕조의 문양이랄까, 기하학적인 무늬가 돋을새김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대기시간 90분임을 알리는 중국관 입구. 아무래도 중국 사람들은 중국관에 가장

관심이 많이 쏠릴 수밖에 없는 인지상정.

커다란 관처럼 생겼다고 생각했던, 하늘로 퍼져나가는 형태의 골격은 끝에 옥새의 도장밥모냥 문양이 음각된

여러 개의 기둥이 서로 얼기설기 지탱하고 있는 것이었다.

중국관 드디어 입장, 천장에 빨간 무늬가 이리저리 휘감기고 있었고, 기둥에도 꿈틀꿈틀 붉은 빛이 용틀임중.

중국관 1층은 중국 내 각 성들의 연합전시관이었다. 오각형 형태의 공간이었다는 건 행사장 도면을 보고서야

알아차렸다.

전시관 내로 들어서니 드글드글한 관람객들, 대부분이 중국사람이라 온통 중국말 뿐이다. 웅성웅성, 천장까지

튀어올랐다가 귓바퀴로 파고드는 리드미컬하고 커다란 중국어 소리.

각 성에서는 제각기의 전통문화를 소개하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많이 본 듯한 선녀옷과 머리모양을 하고 이쁘게

치장한 아가씨들은 꼭 한 명씩 있었고, 나름의 고유한 음악이나 예술작품을 보여주려 애쓰는 게 느껴졌다.

부스 모양 자체도 각 성의 특징이나 컨셉에 따라 꽤나 참신한 것도 있었고, 혹은 아주아주 화려한 것도 있었고.

종이공예를 선보이신 분은 심지어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거나 앞엣사람과 이야기를 하면서도 가위질을 멈추질

않았다. 가위 끝으로 호랑이 눈알을 파고 발톱을 일으켜세우는 솜씨가 대단했다는.

팬더가 유명한 사천 지역이던가, 아예 산등성이를 옮겨와 팬더와 원숭이와 새에게 사이좋게 자리를 마련했다.

사방에서 질 수 없다는 듯 한껏 치장한 중국 각 성의 부스들에, 관람객들은 이리저리 물풀처럼 흔들리며

휘둘리고 있었다. 중국이란 이름 아래 묶였던 각 성의 고유한 색깔, 유전자, 문화가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어느 성이었더라. 안으로 들어서면 아늑한 누각 안에 들어선 기분을 맛보게 하던 곳.

신장-위구르 지역은 중국 지도부가 분리독립 움직임을 늘 경계하며 주시하는 곳이다. 부스 이름에서부터

아랍어가 꼬물꼬물하는 게 역시 많이 이질적인 느낌을 풍긴다.

신장성이었던 거 같다. 이 아가씨들의 터키스럽달까 아랍스러운 의상과 외모를 마주쳤던 건 역시나.

잠시 그녀의 우아하고도 발랄한 턴을 바라봐주고, '중국'이란 나라 밑에 숨어있는 수많은 이질적이고 모순적인

집단들, 개인들을 떠올렸다.

이 분도 참 풋풋한 분위기를 풍기셨다.

이 분들의 춤은 왠지 스스로의 목을 꺽어버리려는 듯한 손놀림으로 한동안 일관하여 보는 이의 마음을 콩닥콩닥

뛰게 만들었지만, 어쩐지 북한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는 경직되고 작위적인 웃음이 더욱 마음을 격탕시켰다.

내 팔뚝에 근육 점 보이소. 으이?

마무리는 항상 화창하게. 노란 꽃밭을 배경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 연출.



상해엑스포의 푸서지역에 위치한 한국기업연합관.

한국기업연합관 동선을 따라가며 간접적으로나마 구경도 할 겸 중국어 브로슈어를 보며 중국어 공부도 할 겸, 겸겸.




내가 떠나는 출장이란 이런 거다. 한꺼번에 수십개의 가방을 부치고, 또 한꺼번에 수십개의 가방을 잘 챙겨서

누구 하나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


내가 사는 삶이란 이런 거다. 한꺼번에 수십개의 생각과 희망을 품다가, 몇 개쯤 중간에서 잃어버리고 지워버리고

결국 여권만 달랑 남긴 채 죽음에의 입국 수속을 밟는 것.






부처님 오신 날, 혹은 석가탄신일, 초파일이라고 불리는 하고 많은 이름들이 있는데 왜 하필 머릿속을 스친 건

'부처님의 날'이었는지 모르겠다. 점심시간, 작정하고 카메라를 둘러메고 나갔던 봉은사 풍경이다.

소담하게 피어오른 하얀 꽃이 절간의 처마를 가렸고, 그보다 훨씬 크고 번쩍거리는 연등이 하늘을 온통 가리웠다.

불기 2554년, 부처님 오신지는 2500년이 넘었는데 끝없는 윤회의 업을 넘어 니르바나의 땅에 도달한 중생은

몇이나 될런가. 이번 생도 피곤하다.

도심 속 '노른자위' 땅에 이런 절이 자리잡고 있다는 건 사실 많이 드문 일이다. 대부분 산좋고 물좋은 벽지에

둑뚝 떨어져 있기 마련이어서, 결과적으로 지금은 갈수록 협소해진 채 보호받는 '국립/도립/군립 공원'에

하나씩 겹쳐져 있는 셈이다.

초파일 연등 접수대. 연등 하나도 꽤나 적잖은 가격이 붙어있다고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연등 하나에 얼마면 여기

몇개가 달리니까 토탈해서 얼마쯤 되는 건가, 하는 계산이 머릿속에서 이뤄지곤, 그 금액에 입이 벌어지기까지.

불과 몇 초 어간에 일어난 일.

천안함 희생자들에 대한 근조 간판, 현수막은 여기저기서 봤었는데, 봉은사에도 하나 있었다. 메시지를 내건

주체에 따라 꽤나 다른 방식의 서술과 뉘앙스가 있었지만, 글쎄. 이미 천안함 사건은 팩트 차원을 떠나 그들의

소설이 단단한 현실 영향력을 갖게 된 듯.

멋지게 용트림중인 나무. 에구구구, 라는 요조의 노래를 BGM으로 깔아주면 딱 좋을 텐데.
 
에구구구, 봄이 왔구먼. 성가시고로.

뒤에 삐쭉삐쭉 선 코엑스 인터콘티넨탈 호텔과 아셈타워, 멀리는 트레이드타워랑 그랜드 인터콘티넨탈 호텔까지.

그런 배경으로 이렇게 고풍스런 누각이 서 있는 풍경, 게다가 빛이 가득 배어나오는 5월의 하늘.

부처님 입상 옆에는 연등을 세팅하느라 정신없으신 분들, 아시바를 저렇게 쌓고 색색의 연등으로 부처님 주위를

뺑~하니 두를 모양. 부처님의 날/초파일/석가탄신일/부처님오신날에 여기 꽤나 볼만 하겠다.

선연한 자줏빛의 철쭉..이던가, (정확히) 이름모를 꽃들과 이름표들이 빼곡히 달랑대는 연꽃들.

스님들이 거처하는 절간방, 그 신발꽂이에서 발견한 따뜻해보이는 털신발들.



중국관 1층에서 만난 진시황릉의 토우와 상해엑스포 마스코트인 하이바오가 손을 맞잡은 모습. 구경온 꼬맹이가

양손에 집게를 쥐고 취한 포즈가 근사하다. 근데 왠지 하이바오 표정이 좀...얄밉달까. 한국에서 봤던 버전은

꽤나 귀여웠던 거 같은데, 쟤는 입가에 물린 미소도 그렇고 눈매도 그렇고. 쩝.

응, 이게 코엑스 입구에 설치된 하이바오 조형물이란 말이다. 표정도 평온하고 입가에서 흐르는 미소도 잔잔한

바다를 연상케 하는 안정적인 율동감이 있는 게 꽤나 다르다.

중국의 서쪽 어딘가에 위치한 성(省)에서 차려놓은 부스. 코끼리 두마리가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화려한

단청을 얹은 기와문이 조명을 사방에서 맞고 있다.

둔황이던가, 거기에 있다는 석굴을 옮겨온 부스. 중국관 1층은 마치 중국버전 '우리나라 관광상품박람회'랄까

각 성마다 부스를 하나씩 차리고 각 성(省)의 문화와 특징들을 알리고 있었다.

역시 각 성의 재정상태와 경제력에 따라 부스의 규모나 화려함이 드러나고 있었다. 이번 상해엑스포가 열리는

상해관은 일찌감치 사람들이 줄을 늘어섰고, 뺑글뺑글 사람들이 줄을 지은 옆면의 벽면엔 그나마 모빌이 있어

지루함을 덜어줬다.

EXPO  CITY, Shanghai. 수많은 삼각기둥이 이리저리 돌면서 글자를 만들어내고 그림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 와중에 꼭 저런 거 하나씩은 있다. 남들 다 돌아가는데 자기 혼자 덜컥, '내가 여기서 뭐하는 짓일까' 싶은지

멈춰서서 명상에 잠긴 녀석.


상해관 내부에는 흥미로운 영상관이 하나 있었다. 무려 6D, 3D도 아니고 그 두배인 6D라니 뭘까, 오감을 넘어

육감까지 자극하는 영상을 보여주겠다는 걸까 싶었다. 바닥을 제외하고 천장과 사면-정확히 말하자면 둥그런

돔 형태의 벽면-에 온통 화면이 쏘아지고, 중간중간 물방울도 튀기고 심지어는 천장에서 사람이 와이어에

매달려 내려와서는 헤엄치는 시늉도 하고. 뭐라 해야 할까, 음...재미있었다.

그리고 북경관. 베이징관은 아무래도 베이징올림픽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있으리라 생각해서인지 대부분

올림픽과 관련된 물건들과 이미지를 전시해두었다.

올림픽에서 쓰였나 보다, 이 옥새 비스무레한 도장은. 근데 꽤나 멋스러워 보이긴 한다. 사람의 모습을 형상화한

저 인장의 모습이나 기품있게 다듬어진 도장의 매무새나.

성화 봉송에 실제로 쓰였다는 봉송대 옆에서 환하게 미소짓는 중국인들.

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도로 공식 선포되고 나선 작년 2009년까지 딱 60년, 한 갑자가 흐른 셈.

어디였더라, 차로 유명한 지역이었는데 정기적으로 이런 공연을 보여주고 있나 보다. 아가씨 둘이 찻잔을

이리저리 옮기며 자세를 잡고는, 저 아저씨의 '차따르기 물총쑈'가 시작됐다.

멀찍이 서서는 머리 위에서부터 쏘기도 하고,

뒤로 돌아서 허리를 양껏 꺽은 채 찻물을 붓기도 하고,

한 손엔 찻잔, 다른 손엔 찻주전자를 들고 이렇게 멋진 자세를 취해서 머리 뒤로 주전자목을 넘긴 채 찻물을

붓기도 했다. 기예라면 기예지만, 조금은 야릇한 느낌이 드는 공연. 그는 사방에서 백발백중 싸는구나, 라는.

사천성 앞에 선 기둥에는 귀여운 팬더 그림이 함께 있었다.

아마도 사천성의 소수민족 의상이었던가, 어디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나름 풋풋한 분위기셔서 기분좋게 인사하고

잠시 옆에서 사진을 찍는 시간을 가지게 해주셨던 소녀분.

사천성에선 곧잘 공룡 화석도 발견되는 모양이지, 라고 혼잣말을 하며 이리저리 구경하다가 쓸려들어온 다도 체험방.

어느 순간 이게 엑스포야 관광상품전이야, 헷갈리던 와중에 쐐기를 박았던 건 이 다도체험방이었다. 딱히 이게 유난히

상업적이랄까 선전의 냄새가 진했다기보다는, 엑스포라 하면 뭔가 첨단의 과학기술과 성취를 과시해야 하는 거

아니던가 하는 자각이 딱, 머리빡을 쳤던 지점.

뭐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다. 둘러보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야 있으면 되는 거지 딱히 엑스포장 왔다고 우주선

쏘아올리고 초초초첨단 기술의 향연만을 접하란 법이야 없으니까. 이런 식으로 중국 각 성의 특징적인 문화와 분위기를

맛볼 수 있는 기회도 사실 흔치는 않은 거다.

천진성, 개항장으로 근대 초기 몸살을 앓던 지역답게 부스 역시 개항장의 서구적 향취를 가득 담고 있었다.

절강성, 대나무 형태로 만들어진 철판 구조물로 부스 외관을 장식하고 있는 게 특징적이었지만, 내부는 아쉽게도

시간이 모자라 돌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둘러봤던 곳은 소림사가 있는 성, 어디더라...;;; 무술 동작을 연마하는 작은 인형들이 부스 곳곳에

빼곡하게 늘어서 있었다.

무기를 들고 무예를 연마하거나, 머리 위 와이어를 달고선 날아차기를 연습하는 땡글땡글한 머리의 인형들. 꼼짝없는

장난꾸러기 동자승의 이미지다.

1층에서 6층까지 총 여섯개 층의 중국관, 그중 1층만 돌아봤을 뿐이었다. 듣자 하니 다른 층은 비슷비슷한 느낌이지만

무엇보다 6층이 진짜 볼 만한 것들이 많다고 했다. 중국에서 손꼽히는 국보급 문화재들을 총동원해서 6층에 전시해

두었다고 했다. 다시 갈 기회가 된다면 중국관 6층은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곳.




전깃줄을 저렇게 둘둘 말아놓고 있다니, 무거워서 줄이 처지거나 전봇대가 꺽이면 어떡할라고.

곳곳에서 공사중인 지하철들, 새로 지어지는 지하철 역사도 그렇지만 주변의 스카이라인도 그렇게 '저렴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곳곳에 내걸린 빨래들을 흔들어주는 바람. 하얗게 벽면을 날려버리는 햇볕. 며칠새 한겨울과 한여름 날씨를

넘나드는 그 곳 역시 별수없이 이상기온이 창궐한 지구.

이런 요상하고 자기과시적인 건물들은 이제 지구적인 트렌드다. 여기도 두바이나 다른 신흥 개발도시들처럼

평범하고 밋밋한, 그리고 동일한 모양의 건물은 건축허가 자체를 내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역시

서울의 랜드마크는 성냥갑 모냥 빼곡한 아파트촌이다.)

어디나 그렇지만 거대한 도시의 위용넘치는 스카이라인 곳곳에는 자그맣고 조촐한 사람들의 보금자리가

숨겨져 있다. 국가나 민족 따위 거창한 정체성과 전통과는 상관없이 대개 고만고만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처음에는 중국땅의 스타벅스가 눈에 띄었고, 다음에는 온통 남자뿐인 가게 내부가 눈에 띄었다.

도로 곳곳에 설치된 주차장 안내 표시. 땅이 넓어서 그런지 주차장이 사방에 있었는데다가, 이렇게 현재 몇대의

여유공간이 있다고 알려주기까지 하니까 굉장히 좋은 거 같다. 국내 도입이 시급하다고 사료되오.

거리 가로수엔 온통 조명을 저렇게 휘감아 놓고, 샹하이의 밤거리를 휘황하게 빛나게 하겠다고.

택시 기사는 리츠칼튼 호텔까지 손님을 싣고 다음 손님을 받을 때까지 급한 점심을 먹고 있었다. 무려 폭스바겐

택시, 그 안에서 간단한 음식으로 요기중인 아저씨. 폭스바겐은 중국 시장이 열리던 초기, 너무 거만하고

불친절하게 굴어서 많이 호감도를 상실했다던가, 그렇지만 여기 폭스바겐 택시가 많이 보이는 건 그 때

전부 들여온 거라고 했다.

궁전처럼 꾸며놓은 리츠캂튼 호텔의 정문. 실제로 큰 호텔이기도 하지만, 입구를 이렇게 만들어 놓으니 더욱

커 보인다.

안에는 크리스티 미술 경매품이 전시되고 있었고, 크리스티의 중국식 표현은 佳士得 이었다는.

중국에 미술품 전시장에서 한국 작품을 만났다. 만났는데, 술취한 태권브이가 소주병을 흔들고 있고, 놀다가라는

온갖 명함판 광고가 나부끼는 그런 그림. 반가웠다. 한국이구나 하고.

회의에 들어갔다가 만난 물병. 농부산천. 좋은 물이냐고 누가 물었는데, 이영애를 광고모델로 쓴 브랜드라고 했고

그 말을 듣고 모두들 음~ 하면서 꿀꺽꿀꺽 마셨다는.

회의가 끝나고 난 후, 호텔이 제아무리 멋져보이려 천장을 높이고 대리석을 깔고 백열전구를 휘감아도 어쩔 수

없는 게 있는 거다. 주변의 경관. 그닥, 멋지지 않은 상하이의 그저그런 풍경.

눈물어린 눈으로 세상을 보듯 온통 어른어른 번져나는 조명불빛들. 고가도로 옆에서 갈매기가 날고 있다.

자동문, 이라고 적힌 차의 옆문. 익숙치 않은 글씨 혹은 간체자 청맹과니라는 이유로 저 문을 잡고 낑낑대던

사람이 있었다. 수리비 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까봐 조마조마.

숙소로 썼던 아파트먼트형 호텔. 근사한 조명과 외관이 굉장히 멋졌지만, 슬프게도 맨날 별보고 퇴근하고 그별

다시 마중가며 출근했는지라. 싱가폴 자본이 상하이에 많이 진출했다더니 이 호텔 건물들도 싱가폴에서 투자,

운영하고 있었다. 냇물이 흐르고 분수가 튕기는 멋진 정원에서도 싱가폴의 상징 머라이온(Merlion : Mermaid+ lion)이

굽어 보고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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