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고 피어39에서 금문교를 지나, 그만큼의 거리를 또 달리고 나면 소살리토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처음 도착한 여행지에 들렀을 때 으레 그러하듯 다짜고짜 여행안내소로. 여기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먹으면 좋을까요?

 

왠지 현지에서 사시는 분들의 추천은 가이드북과는 달랐던 경험에서 나온 건데, 역시나 새하얀 백발이 눈부신 할머니의

 

카랑카랑하고도 자부심 넘치는 한 마디. 꼭 봐야 하는 건 없지만, 한나절 여유롭게 거닐기엔 딱 좋은 사이즈와 분위기가 있답니다.

 

소살리토 초입에 들어서자 바다넘어 보이는 샌프란시스코의 마천루.

 

 

 

그리고 해변의 돌들을 가지고 아주아주 미묘하게 균형을 잡아 세우는 예술작업중이신 예술가 아저씨.

 

 

샌프란시스코의 도로변에도 비슷한 표지가 있었는데, 소살리토의 표지는 생선 모양으로 조금 다르다.

 

그리고 소살리토를 돌아볼 때 일종의 이정표가 될 수 있는 분수. 삐에로처럼 고리눈을 한 채 활짝 웃는 표정이 괴랄하다.

 

미국의 소도시, 작은 마을에서 왠지 인도 냄새가 나는 코끼리상을 볼 줄은 몰랐는데.

 

샌프란시스코나 여기나, 시끌벅적하게 공기를 찢으며 내달리는 소방차의 위용은 마찬가지.

 

 

그런데 참 번쩍번쩍, 얼핏 보기에도 관리도 잘 되어 있고 굉장히 신형인 차들이다. 새빨간 도색은 말할 것도 없고.

 

 

소살리토의 샵들, 레스토랑들, 까페들과 자그마한 갤러리들을 휘적휘적 둘러보고 나니 두어시간.

 

 

자전거 주차는 아무데나 하지 말라고 경고판이 사방에 붙어있지만, 사실 또 그렇다고 유료로 주차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다고 사진의 포인트가 저 자전거 주차금지 표지판인 건 아니랄까.

 

 

화단이 잘 정돈된 모양새나, 천박하지 않은 간판들이 차분하게 늘어선 모양새나. 제각기 개성있는 건물들하며.

 

 그 와중에 소살리토의 메인로드로부터 샛길로 빠지는 왼갖 골목길들이 호시탐탐 여행객들을 노리고 있다.

 

 금문교를 건너 자전거로 여기까지 온 여행자들은 대개 페리를 이용해서 샌프란 시내로 돌아가는데, 대충 두어시간이면

 

돌아갈 수 있는 길이니 그냥 사람들 배타는 것만 조금 구경하다가 슬슬 돌아가기로 했다.

 

 

비지터 센터의 호호백발 할머니 말씀이 맞았던 거 같다. 뭔가 특별히 볼 게 있다거나 즐길 게 있는 곳은 아니지만,

 

샌프란시스코에서 맞이하는 바다와는 다른 느낌의 풍경과 분위기를 맛볼 수 있는 작은 어촌 마을이다. 소살리토란.

 

 

 

 

 싱가포르에서 놓쳐서는 안 될 볼거리를 하나만 꼽으라면 아무래도 나이트 사파리를 꼽아야 할 것 같다.

 

세계 최초로 야간에 개장하는 동물원으로, 저녁 7시부터 개장해서 트램을 타고 한 바퀴 돌거나 트레일 코스를 걸어서 구경할 수 있다.

 

싱가포르 외곽 지역에 위치해 있어서 도심내 선택 시티나 싱가포르 플라이어에서 티켓을 포함한 왕복 버스편을 사는 게 나은 듯.

 

 

 7시부터 동물원 입구에서는 싱가포르 원주민들의 전통춤과 불쇼를 보여주고 있었다. 관객을 끌어내어 불쇼를 막 시키기도 하고.

 

대략 130여종의 야행성 동물들이 천여마리 득시글거리는 사파리 코스, 트램을 먼저 타고 한바퀴 돌아본 후에 다시 걸어서

 

한바퀴 돌아보는 게 좋은 거 같다. 트램과 도보 코스가 각기 다른 구역을 섭렵하기 때문에, 사자 포효소리를 듣고 싶다거나

 

좀더 가까운 곳에서 치타와 표범, 하이에나들을 보고 싶다면 꼭 다시 한번 걸어볼 가치가 있다.

 

 

 아래 사진들은 대개 굉장히 흔들렸는데, 트램 위에서 찍지 않고 걷다가 멈춰서 찍은 거라 해도 빛이 너무 부족해서

 

눈에 담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저 불빛들도 달빛과 같은 성질로 동물들에게 최대한 스트레스가 되지 않도록

 

배려한 거라고 하고,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는 행위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어서 카메라는 거의 유명무실한 조건.

 

 

 여느 동물원들의 공간들과는 달리 최대한 날것의 생태를 그대로 재현한 모습도 좋았고, 동물들이 사람들에 시달리거나

 

스트레스받지 않도록 안배하고 있는 것이 역력한 모습들도 좋았다.

 

 코뿔소를 밤에 보니까 왜 그렇게 무시무시하던지. 하마도 그렇고.

 

 

 

 트램으로 지나는 코스 바로 옆으로는 커다란 개미핥기라거나 온갖 종류의 사슴들이 어슬렁거리며 지나고 있었다.

 

 

 트레일 코스 중에는 커다란 그물망이 쳐진 공간 내에서 이런 박쥐들이 날아다니는 걸 볼 수 있도록 해두기도 했고,

 

날다람쥐들이 날아다니도록 풀어두기도 했고. 신기한 동물들, 밤에 보니 더욱 더 신기했던 모습들.

 

 

 이녀석의 팽팽한 근육질 몸뚱이, 근육과 함께 실룩거리던 얼룩무늬들에 매료되어 한참 보고 있었는데

 

이 꼬맹이 녀석도 나랑 같은 느낌이었는지 꼬리를 말고는 어디선가 슬몃 다가와 엉겨붙었다.

 

 그리고 곰.

 

선택시티나 플라이어에서 바로 사파리를 찾을 수 있는 가장 편한 방법.

 

 

 

 

* 정신나간 울릉도 2박3일 도보여행.

 

눈이 뜨이고 나니 온몸이 아팠지만, 뒷꿈치는 얼얼함이 그대로 남아있었지만, 짐을 주섬주섬 챙기고 나섰다. 천부항의 아침.

 

 

바다를 따라 시계반대방향으로, 현포를 지나 태하등대까지 가볼까 하는 참이었다. 울릉도의 북쪽 해변가를 따라 몇 걸음

 

걷기도 전에 에어콘 바람같은 시원한 강풍이 불어오는 쉼터가 있길래 일단 쉬고 보겠다며 엉덩이를 붙였다.

 

 

 

 

조금이라도 일찍 나서길 잘했다 싶었던 게, 날이 삼일 내내 흐리리라던 예보와는 달리 둘째날엔 아침부터 햇볕이 쨍쨍.

 

 

바닷가와 도로를 구획하고 있는 콘크리트 블록이 해풍과 파도에 온통 삭아내려 페인트가 벗겨지고 자갈들이 드러났다.

 

버스 정류장. 제법 띄엄띄엄 눈에 밟히긴 했는데 막상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던 한적한 울릉도.

 

 

울릉도 북쪽 해변 중앙에 떡하니 버티고 선 송곳산. 그 앞으로는 추산 몽돌해변이 펼쳐지고, 해변 너머 바닷가에는

 

코끼리 바위가 보인다. 툭 튀어나와 몸뚱이랑 떨어져 있는 굵은 기둥 하나가 영락없는 코끼리 코다.

 

 

각도를 달리 해서-한참 더 서쪽으로 걸어가서- 확인한 코끼리 바위의 코끼리 코.

 

 

 

 

 

투명하고 시퍼런 파도가 넘실거리며 둥글둥글한 돌멩이들을 희롱하는 소리에도 아랑곳않고 부동자세중인 새들.

 

그리고 뒷꿈치가 온통 까져버려서 급기야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걷기 시작한 시점. 그다지 현명한 짓은 아니었던 게,

 

얼마 걷지 못하고 맨발바닥 아래에 물집이 잡혀서 다시 신발을 꿰어차야 했다.

 

 

바다에 이랑을 내고 씨를 뿌리러 갈 기세인 산뜻한 색감의 경운기 한대가 바다에 찰싹 붙어 주차 중이다.

 

그리고, 들어갈까말까 잠시 망설이다가 입장했던 예림원, 문자조각공원. 망설였던 이유는 4,000원의 입장료도 아니고

 

구경온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한적한 분위기 때문도 아니었다. 다만 해안도로에서 걸어가려면 제법 가파른 오르막을

 

꽤나 걸어야 했다는 이유, 게다가 발바닥에 콕콕 박혀오는 잔돌멩이들이 너무 많은 길이었어서.

 

 

 

 

이 바위의 이름은 얼굴바위였던가, 얼굴의 옆 실루엣이 어찌어찌 잘만 따져보면 나타나는 것 같기도 하다.

 

전망대 아래를 잘 살피면 파도가 철썩이며 부딪히는 전복 바위랑 조개 바위도 찾을 수 있다는데.

 

 

 

 

 

얼굴바위 위까지 이어지는 전망대로 오르는 길. 오를까 말까 잠시 고민하다가 저 높이에서 내려다본 풍경이 궁금해졌다.

 

 

 

 

얼굴바위 위의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아침에 꾸역꾸역 걸어온 길. 맨발에 느껴지던 서늘한 콘크리트의 감촉이 서서히

 

달아올라 뜨거워지기에 이른 시간만큼 해가 내달려선 하늘 높이 솟았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이내 도착할 곳, 현포항이 미리 내다보인다. 빨갛고 하얀 등대가 배들을 항구로 이끄는 곳.

 

반듯한 직선에 가까운 도로가 섬세한 물결이 새겨진 에메랄드빛 바다와 싱싱한 초록의 보들보들한 기슭을 가른다.

 

 

 

그리고 전망대에서 발견한 '젖봉' 또는 '찌찌봉'이라 불린다는 제법 리얼한 느낌의 봉우리 하나.

 

 

현포항의 모습을 좀더 바싹 땡겨보고는, 저쯤에서 점심을 먹으면 되겠구나 가늠해보았다.

 

 

 

정말 향기가 그윽하던, 그리고 한번 손으로 훑고 나니 한참이나 손과 온몸에 향기가 배어있던 섬백리향. 이름도 참 이쁘다.

 

예림원, 특히 예림원 안쪽에 자리한 얼굴바위 전망대는 꼭 한번 올라가 보시길 권하고 싶다.

 

 

안녕, 어린왕자는 잘 있니. 사막여우를 만났다. 이집트 사막에서도 총총이 찍힌 발자국밖에 못 봤던 녀석인데,

가을 낙엽을 보러갔던 서울대공원에서 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자그마한 몸집, 커다란 귀에 귀여운 얼굴.

샐쭉한 표정이 왠지 고양이를 닮은 거 같기도 하고, 전반적으론 강아지 같긴 한데. 고양강아지랄까.

미어캣. 언젠가 방송에서 이 녀석들의 생태를 담은 다큐를 본 적이 있는데, 전부다 뒷다리에 힘주고 꼿꼿이 서서

멀리 경계하는 포즈가 너무 인상적이었다. 제발 한번만 한마리라도 뒷다리로 우뚝 서봐봐,라고 진지하게

부탁했지만 이녀석, 한참 튕기다간 마지못해 뒤돌아서 서보이더라는.

이녀석도 뭔가 미어캣처럼 두발로 깡충 서는 포즈를 선보이는 동물이었던 거 같은데, 이름이 뭐였더라.

프레리독이었던 거 같다. 컹컹, 개 짖는 소리를 낸다고 했던가. 두발로 선다는 게 저렇게 퍼져 앉는 포즈를

말하는 건 아닐 텐데.

개미핥기, 이 동물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건 '개그콘서트'에서 개미퍼먹어, 란 개그가 뜨면서부터 아닐까 싶은데.

참 볼품없이 생기긴 했다. 정장용 옷걸이처럼 굽어져서는 어깨뽕처럼 복슬한 느낌을 주는 개미핥기가 할짝할짝.

나무늘보, 시속 240미터의 지구상에서 가장 느린 동물이라는 설명이 붙어있었다. 계산해보면, 분속 4미터인 셈.

일분에 4미터를 어기적어기적 혼신의 힘을 다해 기어가는 모습을 어디 한번 봐줄 생각이었는데, 의외로 날카로운

발톱을 얽어놓아 나무에 철컥 매달려서는 꼼짝도 안 했다.

초등학생 때였나, 동물도감을 보다가 굉장히 신기하게 생각하며 주위 친구들한테 이런 동물 아냐고 자랑하듯

묻고 다녔던 그놈. 아르마딜로다. 딱딱하고 무거운 갑주를 걸친 듯한 외모도 특이하고, 여차하면 몸을 둥글게

말아버릴 수 있다는 것도 독특한 게, 어려서는 공벌레가 무지무지 커지면 아르마딜로가 되는 걸까 생각했었다.

몰랐던 사실 하나, 저렇게 하얀 털이 숭숭 징그럽게 나있는 줄은...;;

울부짖는 물개 아저씨, 입을 쩍 벌리니까 토토로랑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 가지런히 늘어선 이빨이 온통

새까만 게 건강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올겨울엔 물개 아저씨네 임플란트 해드려야겠어요.

'홍학'이란 새는 발음하기가 참 쉽지 않은 것이어서 '학'의 기억을 마저 발음하려 애쓰던 혀는 늘 미끄러져

'합'에 가까운 소리에 머물고 마는 것이다. 유연하게 움직이는 길다란 모가지는 어쩌면 내 혀보다도 더욱

능란하고 미묘하게 움직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영덕대게를 떠올리게 만든느 길다랗고 뻣뻣한 다리조차

우아하게 사뿐사뿐 즈려밟는 녀석이니.

그와는 반대로, 목이 완전 뻣뻣한 녀석들이 길다랗기까지 하다는 건 사실 꽤나 큰일이다. 털이 헝클어졌을 때

고양이처럼 자기 혀로 자기 털을 다듬을 수도 없을 테고, 잘 때도 여느 동물들처럼 고개를 꺽은 채 둥글게 만

몸뚱이를 베개삼을 수도 없을 테고, 뭔가 늘 부족한 느낌일 거 같다. 몸뚱이도 때론 버거운 판에, 몸뚱이 위에

또 그만한 사이즈의 몸뚱이가 하나 더 얹혀 있는 느낌 아닐까.

낙타의 시크한 듯 빈정대는 표정은 익히 알고 있으니 간단하게. 꾸물럭꾸물럭 입을 놀려대는 모양새는 언제봐도

참 얄밉단 말이다. 그래, 니녀석은 등 위에다가 기름이랑 양분이 담긴 혹주머니를 얹고 있으니 든든하다는 거냐.

가지런히 모은 앞발, 단단히 버티고 선 뒷발. 성스러운 대지의 에너지 순환에 임하는 엄숙한 자세.

물색없이 구박하러 다가왔다가 역사적 순간에 동참하게 된 옆 친구녀석은 슬쩍 고개를 돌려주는 센스를.

곰들은 사진찍히는 데 이력이 난 듯 했다. 한 녀석이 슬쩍 귀염둥이 포즈를 취해서 시선을 집중시키는데 성공하면,

그걸 보고 있던 옆엣 녀석이 슬쩍 포즈를 따라한다. 그런 와중에 울타리 바로 앞까지 바싹 붙어서는 마치

'돈 좀 있냐'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곰 녀석. 돈이 아니면 '코카콜라'일지도 모른다.

이 곰탱이는 포즈가 은근 인형같다. 앙증맞게 매달려 있는 두 귀도 그렇고, 철푸덕 앉았다는 느낌으로 아무렇게나

던져둔 두 뒷발도 그렇고. 그 와중에 가지런히 날이 선 손톱 열개와 발톱 열개의 위엄.

호랑이들은 뭐, 올초에 왔었을 때 눈도장 찍고 갔으니까 가볍게 스쳐지나주고. 근데 찍고 나서 보니 저 가운데

녀석 왠지 사방에서 다구리 당하는 느낌. 왼쪽 녀석은 머리로 치받고, 오른쪽 녀석은 굵직한 꼬리로 찰싹

때리는 것 같은 순간이 잡혔다.

질펀한 엉덩이라는 표현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동물이 또 있을까 싶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고, 토실하다 못해

투실투실 정말 질펀질펀한 엉덩이만큼이나 깊은 골짜기가 패여있었다. 게다가 대충 만들어서 엉덩이 아무데나

대충 붙여놓은 듯한 저 꼬리는 뭐냐. 심하게 좌우대칭을 벗어난 위치인 거 같은데.

모래찜질을 즐기는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 과자를 주면은 코로 받지요, 라지만. 요새 동물원 우리들은

전부 씨씨티비가 달려있어서 누군가 과자를 던져줄라 치면 바로 경고 방송이 나오더라는.






그리스 신들이 올림푸스 산에 오밀조밀 모여살고 있다 하면, 힌두신들이 모여사는 산 이름은 '메루산', 바로

바꽁(Bakong)의 사원이 바로 그 메루산을 형상화한 힌두교 사원의 최초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마치 불이라도 붙은 듯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기운을 이미지화한 사원의 중앙성소가 바로 메루산, 힌두신들의

고향이다. 중앙성소로 올라가는 길은 완만한 피라밋처럼 층층이 쌓인 채 동물상들로 수호되고 있다.

중앙성소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선명해지는 여신상 조각들. 뭔가 아름다운 것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거리잡기가 필수적인 것 같다. 너무 가까워도 전체 그림과의 조화가 뭉개지고, 너무 멀어도 디테일의 섬세함이

사라져 버리니 말이다.

군대에 있을 때 일년에 한 번씩 했던 '동계전술훈련', 대체 공군에 가서 하이바에 꽃꽂이하듯 풀떼기를 꼽고는

뛰어다니는 경험을 한 사람이 얼마나 되려나. 그냥 저 화분처럼 되어버린 사원을 보고 그 하이바가 생각났다.

중앙성소를 오르는 길에 마주했던 코끼리상, 길쭉하게 뻗어나가야 할 코가 부러져나가버리고 없지만, 그래도

얄포름하니 쉽게 펄럭일듯한 큼직한 귀의 묘사라거나, 완고하고 굳건해 보이는 네 다리와 넙데데한 발바닥,

그런 걸로 충분히 코끼리의 특징을 잘 잡아내고 있는 것 같다. 굳이 진짜 코끼리 가죽처럼 거칠거칠하고 완전

건조한 채 두툼한 느낌의 조각상 표면 감촉을 들지 않더라도.

사원이 드리워낸 시꺼먼 그늘, 강렬한 태양 아래 고스란히 노출된 세계와 극명하게 대비된 채 어둠이 내린 듯

어둡고 촉촉한 느낌의 또다른 세계.

중앙성소로 올라왔던 길과는 다른 편으로 내려가면서 돌아본 풍경. 여기저기 풀들이 자리를 꿰어차고 앉아

조금씩 사원을 허물고 있었다.

거의 완전히 허물어져내린 전탑 하나. 어디로도 이어지지 못하는 가짜문 하나만 간신히 남아있다.

얼핏 보면 앙코르왓 사원의 분위기와 비슷하다. 알고 보니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원래 바꽁의 중앙성소는 이런

모양이 아니었는데 전쟁으로 파괴되고 나서는 그새 건축된 앙코르왓의 중앙탑 모양을 따서 재건되었다는 얘기.

사원만 바지런히 따라다니며 보다보니, 퍼석퍼석하고 낡은 느낌의 누런 사암색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나 보다.

광택이 번쩍거리는 생생한 샛노란 꽃 한송이를 보니 생명이 느껴진다.

그리고 다시 바라본 바꽁 사원, 혹은 힌두신들의 고향이라는 메루산의 전경. 뭔가 느낌이 달라진 거 같기도.

시바신의 화신이라는 소 한마리, 메루산에 안 오르고 사원에서 돌아나오는 길 뚝방에서 풀을 뜯고 계셨다.

롤루오스 유적군은 롤레이, 쁘리아꼬, 바꽁으로 이어지며 얼추 돌아본 셈이다. 다시 씨엠립 시내로 들어가기 전

아쉬워서 슬쩍 돌아본 주변에서 발견한 캄보디아의 쓰레기통.

그리고 여기도 시바의 화신, 유유히 풀을 뜯고 있는 뽄새가 아늑해 보이기는 하는데, 지천에 깔린 녹색 풀들을

두고도 넌 대체 왜 이리 갈비뼈가 앙상한 거니. 소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영 풀지 못하는 궁금증 하나.




얼마전 이야기한 것처럼 교통사고를 내고, 그 탓인지 이전부터 살짝 뻐근하던 허리가 무지근하게 아파왔다.

하루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싶어서 지난 게 좀체 나아질 기미는 커녕 점점 묵직한 통증이 밀려드는 듯 하여

저번주에 병원에 갔다. 허리가 아프니 정형외과가 있거나, 척추전문 병원 쪽을 찾아야겠지 싶었다. 회사에서

가까운 곳을 검색해서 전화 예약을 하고 진단을 받으러 갔다.


그전부터 좋지는 않던 허리가 충격이 있은 후 조금씩 더 아파오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아픈 곳이 어디인지,

어떻게 아픈지 적절한 단어를 찾아 묘사하고 미리 찍은 엑스레이를 멍하니 쳐다 보며 의사의 판결을 기다렸다.

의사는 별 이야기가 없다. 그냥 내가 일상적인 언어로 묘사한 통증과 아픈 부위에 대해 '있어 보이는' 의학적인

단어를 알려주었다. 그건 '디스크' 같군요, 라고.


이제 병명은 알았으니 조금은 속이 시원하다. 아, 디스크구나. 근데 다시 답답해지는 건 의사선생님이 내려주는

처방이나 치료책이란 게 참 단순하달까, 무신경하달까. 일단 조금 지켜보고 정밀진단을 받던가 하자고 했다.

우선은 물리치료부터 일주일정도 받아보자고. 물리치료란 게 별거 아니다. 의사도 아닌 간호사가 묻는다, 어디

아프세요. '등'이 아프다고 이야기하면 그냥 등에 물리치료기 쑤셔넣어주고 한시간, 끝이다. 전기치료, 초음파

치료, 그리고 핫팩치료로 구분되긴 하지만...사실은 일상어로 보통 '찜질'이나 '안마' 정도로 번역될 것들이다.


그러고 보면 의사 참 쉽다. 어차피 아픈 사람이 알아서 자신이 아픈 게 어디쯤일 거야, 생각하고 종목을 정해

의사를 찾는다. 그러면 의사는 환자가 묘사하는 증상과 부위에 대해서 학술용어나 전문어로 통용되는 '병명'을

가르쳐준다. 예컨대, 걸을 때마다 발바닥에 통증이 있어서 왔어요, 이러면 '족저근막염(足底筋膜厭)'입니다.

풀자면 '발바닥아래근육에염증이있는병'입니다. 허리가 아파요, 이러면 '디스크'입니다. 요게 다다. 그렇지만

그 병명이란 것들이 굉장히 있어보이는 데다가, 실은 병명을 아는 것만으로 환자는 뭔가 커다란 진척이 있다고

느끼는 게 당연한 거기도 하다. 나만 이렇게 아픈 거 아닌가, 이건 치료법도 없고 병명도 모르는 건 아닌가 하는

모종의 불안감을 모든 환자들이란 가질 수 밖에 없을 테니. 그렇지만 사실 치료도 뭐, 적당한 처방과

필요하다면 일상의 '찜질'이나 '운동'이니를 좀더 전문화한 '물리치료', '운동요법' 등을 동원하면 참 쉽다.


좀 시니컬한 건가. 의사들의 진단과 처방이 나름 경험칙에 근거한 점쟁이들의 '연기'와 비슷하다고까지 말하는

건 조금이 아니라 너무 시니컬하게 나가는 거 같지만, 그래도 비슷한 구석이 상당히 있어 보인다. 의사들이

동원한다는 첨단 과학과 장비들, 그건 대부분의 소소한 환자들과는 먼 나라 이야기다. 그냥 말을 듣고 조금

진찰해보고, 엑스레이 정도 보편화된 장비를 동원하려나. 그 정도의 소스를 가지고 진단하고 처방하고, 그건

점쟁이들이 점보러 온 사람들을 진단하고 처방하는 것과 상당히 비슷해 보이는 거다.


굳이 점집을 찾은 사람들이 고민이 있으니까 가겠지. 수많은 병원 중 굳이 이 종목의 병원을 찾은 사람들은 그

관련된 질병이 있으니까 가겠지. 점집을 찾은 사람이 보여주는 외적 행색이나 외모, 분위기가 그 사람의 직장,

고민, 생활환경, 배경 등을 추리케하는 단서가 되겠지. 병원을 찾은 사람이 묘사하는 증상과 부위가 그냥

그 사람의 병명을 확정케 하는 단서가 되겠지. 처방은, 경험칙에 근거한 몇가지 일반론적인 이야기들, 그리고

의사들 역시 경험칙에 주로 근거한 몇가지 진단과 처방전.


뭐, 의사도 환자가 아픈 데가 어딘지 알아야 진료를 할 수 있다는 걸 부정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대단한 질병이

아니라 소소한 것들에 대해서는 너무 많이 환자의 말에만 의존하는 건 아닌지, 장님 코끼리 더듬듯 그저 몇몇

간단한 것들로만 처방해버리는 건 아닌지 싶어서다. 좀더 적극적으로 아픈 부위를 탐색하고 증상을 발견해내는

자세가 필요한 건 아닐까. 넘 방만해 보여서다.



덧댐. 그래서, 그나저나, 내일 당장 큰 행사가 또(!) 있음에도 요새 날마다 한시간씩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이제 "그녀를 보는 순간 등줄기에 전기가 흐르는 듯 했다" 따위 묘사를 보면 생생히 그 감각을 기억할 수 있을

만큼 전기치료도 받고 있고, 초음파며 핫팩치료도 받고 있는데 왜 오히려 조금씩 더 나빠지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드는 건지 원. 행사 마치고 나면 정밀진단을 받아볼 생각이다. 요새 바쁜 이유, 그 와중에 지난 10월에

다녀온 두바이 사진들만 올리는 이유. 아프지 맙시다.




故장자연이 카섹스신과 자살신에 등장한다며 마케팅을 펼쳐 다소 물의를 빚는 영화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그 영화가 이 영화였는 줄은 모르고 봤다. 꽤 긴 러닝타임, 그녀의 카섹스와 그녀의 자살은 흐름을 받치는 꽤나

중요한 포인트였다고 생각했고, 아마 그녀의 분량을 덜어냈다면 영화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겠다 싶었다. 비록

가고 없는 고인이 영화속에서 싱싱한 육체를 흔들며 신음소리를 내뱉고, 욕조 속에서 손목을 그은 채 죽어있다

해도, 그녀는 연기자로서 마지막 필모그래피를 해낸 거 아닐까. 마케팅에 의도적으로 동원한 측면이 있다면

그건 분명히 그녀의 죽음을 팔아 선전하는 거겠지만, 그녀의 자연스럽고 그럴 듯한 연기는 나무랄 데 없었다.


영화는 다소 가지가 많달까, 좀 많이 쳐냈어야 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러닝타임도 길고, 너무 잡다한 상념과

너무 힘이 들어간 상징들이 즐비하다 싶어, 좀더 밀도있게 응집시켰어야 했다 싶은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꽤나 상류의 삶을 영위하는 30대 초반 세친구들이 보이는 현실적인 삶과 더불어, 장혁의 환상과 상상을

이미지화하여 스크린에 쏘아내면서 영화는 좀 종잡을 수 없이 흐르거나, 때로 관객의 실소를 자아내기도 했던
 
거다. 그러다 보니 중간에 견디다 못해 나가버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던 걸 테고.


'펜트하우스 코끼리'. 아마도 '펜트하우스'가 세 친구 그들의 부족할 것 없는 삶, 허영에 찬 삶을 상징한다면,

때로 구름 위에서 네다리를 휘젓고 혹은 벽면에서 3D 영상으로 나타나는 '코끼리'란 녀석은 그들의 환상이자
 
막연한 지향점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기묘한 제목은 그렇게 현실과 환상을 병치시키고 있는 것 아닐까

생각했다. 내용은 크게 두 개의 흐름이다.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상실한 채 조울증에 시달리는 장혁의 뇌까림,

코끼리만 찾으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탄식. 그리고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는 상황에서, 다시

장님 코끼리 만지듯 무언가 막연한 걸 잡고 일어서는 모습. 농도짙은 섹스신과 야하고 야비한 농담들,

그로테스크하고 시니컬한 장면들은 덤이다.


장혁이 어렸을 적 사람이 붐비는 동물원에서 엄마와 했던 약속, 혹시 손을 놓치면 코끼리 우리 앞으로 오라던.

코끼리만 찾으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코끼리 우리도 너무 크고, 주위엔 사람들도 많고, 코끼리란

자식 역시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이리저리 배회하고 있었다며, 인생을 통틀어 가장 두려웠던 기억이라 장혁은

고백하는 장면, 난 여기서 영화가 끝나는 걸까 생각했다. "코끼리만 찾음 되는 건줄 알았는데." 그 말의 울림이

가히 엔딩 수준이었단 말이다. 대학만 가면 되는 건줄 알았는데. 직장만 잡으면 되는 건줄 알았는데. 결혼만

잘하면 되는 건줄 알았는데. 돈만 많이 벌면 되는 건줄 알았는데. 사랑만 하면 되는 건줄 알았는데.


개인적으로는, "내가 나이 삼십 넘어서 이렇게 후지게 살 줄은 몰랐어."라는 대사가 꽤나 와닿았다. 영화 속

인물들은 전부 후지게 살고 있었다. 코끼리 따위는 대마 연기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세상, 펜트하우스의

재력으로도 별 수 없는 거다. '가을을 탄다'라는 표현이 내면의 파르르 떨리는 마음을 가을 한철로 몰아넣고

말아버리듯, '사춘기'라는 표현 역시 심약하고 가파르며 위태로운 내면의 풍경을 특정 나이대의 특징인 양

구별짓고 떠밀어버린다. 사실은 '나이 삼십넘어서'도, 혹은 '평생'(이라 해도 좋을만큼의 시간동안) 한결같이

쭈욱 가을을 타고 사춘기/오춘기에 시달리는 건지도 모른다.


제길, 코끼리만 찾으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코끼리만 찾으면 되는 게임이면 참 쉬울 텐데. 어쨌거나 문득

동물원에 가보고 싶어지게 만든 영화였다.





문둥이왕 테라스에 길게 이어진 건 바로 코끼리 테라스, 여기는 앙코르톰 동쪽 '승리의 문'을 통해 들어올 수

있었던 개선군이 왕에게 승리를 보고하던 곳이라 한다. 코로 연꽃을 휘감아 왕에게 바칠 태세를 갖춘 코끼리

코들이 벽에서 뻗어나왔다.
 
아니, 어쩌면 코끼리들의 육중한 몸으로 벽을 쌓아 왕의 전면에 도열시켜 놓았음을 상징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굉장히 유니크하면서도 재미있는 발상, 그리고 건축물이다.

코끼리 코, 하면 생각나는 건. 근데 돌로 깎였음에도 미끈하게 쭉 뻗은 코끼리 코라기보다는 팔을 스트레칭하는
것 같이 나와버렸다. 아놔.

통일신라시대던가, 이 땅에서 발굴된 막새-기왓장-무늬에도 비슷한 그림을 분명 본 적이 있다. 흔히 요새

'치우천황기'라고 흔드는 데 들어간 그 그림 말이다. 그건 사실 한민족의 고대 인물을 드러내기엔 다소 적젏치

않은 상징일지 모르겠다. 캄보디아에서도, 다른 불교 베이스의 국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이미지인 탓이다.

('치우천황'이란 인물에 대한 악의적 이미지 왜곡이 중국에 의해 이뤄졌고, 그게 아시아 문화권 일반의 악귀,

라거나 악귀를 쫓는 무서운 신, 의 이미지로 변용되었단 점을 감안해도 그렇단 얘기다.)

여기서도 빼놓을 수 없는 매혹적인 저 사자의 뒷태. 완전 잘록한 허리와 풍성한 힙의 조화라니. 사랑스럽다.

뭐랄까, 카메라 광고의 한 장면을 연출하고 싶었는데. 그들이 의식하지 않게 하겠다, 어쩌구 하는 비를

따라가다간 가랭이 찢어지겠다. 두다리를 허공에서 펄럭이며 날고 있는 압사라 여신도 비웃었다.

코끼리 테라스에서 왕이 바라본 풍경은 또 어땠을까, 싶어 휘휘 둘러보았다. 우선 정면.

멀리 보이는 건축물들은 원래 창고 용도로 쓰이다가, 나중에 외국 사신들을 접대하는 일종의 영빈관으로

쓰였을 거라는 게 가이드북의 설명이지만 글쎄. 저런 데 사람이 살기엔 좀 불편하지 않았을까, 커다란 굴뚝

아니면 무슨 화장터 같이 생겼는데.

왼쪽으로 고개를 틀면, 저쪽에 문둥이왕 테라스와, 길게 이어진 코끼리 코가 인상적인 코끼리 테라스.

오른쪽, 문무백관들이 왕의 좌우로 호위하듯 둘러서 있었겠지. 빳빳한 밀랍인형처럼.

관광객들도 눈에 잘 띄지 않는 한산하고 다소 휑한 분위기, 운치를 더하듯 어슬렁대는 검정개 한마리.

가만히 앉아 쉬고 있자니 휘적휘적대며 느릿하던 녀석이 어느새 바로 앞까지 찾아왔다. 심심했던 게냐.

왕이 서 있던/앉아 있던 바로 그 장소. 다소 기울어져 보이는 게 카메라 잡은 이의 농간이었는지 아님 원래

저 지반이 살짝 뒤틀어져 기우뚱해 있던 건지 모르겠다.


왕의 시각에 빙의되어 보자, 이게 바로 왕의 시야.




전란으로 목이 잘려나가 땅에 나뒹굴었을 부처의 머리가 똑바로 서있다.

나무 뿌리에 단단히 걸린다는 다소 과다한 우연의 힘과, 실수없이 끌어올려지는 수백년의 시간의 힘을 빌어.

부처상의 머리 부분에 대고 빈다기 보다는, 난 왠지 그 우연과 시간이 빚어낼 수 있는 경이로움에 질려버려 비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왠지 2000년대 한국의 건축물에서도 자주 쓰이는 붉은벽돌로 지어졌다 해도 그다지 큰 어려움없이 믿을 수 있을

법한 아유타야의 사원들. 그렇지만 약 1300년대에 건설되어 400여년 동안 아유타야 왕조의 수도로 번영했다는

그 단단한 역사적 사실을 떠올려 보면, 저 정교하고 튼실한 벽돌郡이 수백여년을 버티어 왔다는 사실이

경탄스럽다. 더구나 여기는 여름, 우기, 겨울로 계절이 구분된다는 비많고 수풀우거지는 타일랜드인 거다. 인간의

흔적 따위 한 철 비바람이면 물에 씻기고 녹색 덩굴에 씻기기 십상일 텐데.

그런데 이렇게 하늘을 향한 탑..혹은 탑파의 원형을 세밀한 부분까지 보존하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물론 자세히 보면 새들이 남기고 간 얼룩부터 시작해서 군데군데 잠식해나가는 파랗고 강인한 풀떼기가

보이지만. 한 옆에서는 서울서 가로수 정비할 때 쓰는 도구같이 생긴, 끝에 칼을 묶어놓은 장대같은

것으로 관리원들이 식물의 접착을 막고 있었다.

여행의 컨셉은 배낭여행이었다. 휴가를 못받은 동생을 빼고, 엄마랑 아빠랑 나. 여행을 좋아하는 가족인지라,

패키지는 애초 코웃음 한방, 투어는 원칙적으로 안하기로. 일정은 전적으로 내가.

방콕에서 북쪽으로 두시간, 버스를 타고 달리면서 비가 오지는 않을까, 일정을 얼마나한 밀도로 채워야 할까..

(더구나 부모님이랑) 이런저런 생각이 피워올랐지만. 여름, 우기, 겨울, 이렇게 세가지 계절을 가진 태국은 우리가

한나절 내내 걸어다녀도 그닥 덥지않을 만큼 선선한 날씨를 선물했다.

'툭툭'이라는 이름의 탈것은 오토바이를 개조한 엉성한 삼륜차지만, 나름 태국 시내에서나 근처 관광지를 돌때에는

아주 편리한 것 중 하나다. 뭐..두 명이 타기엔 저렇게 다소 힘들어보일 수는 있지만, 정작 부모님 본인들은 괜찮다

하셨다.


인력으로 움직이는 이러한 탈 것에 대해 다소 양가적인 감정을 갖게 된다. 마치 제3세계 빈곤국의 아이들이 커피를

수확하는 노동에 종사한다는 사실에 대해, 가혹한 수준으로 착취받고 있다고 지적할 수도 있지만 반면 그러한

노동의 기회마저 없다면 당장 그 아이들의 생존이 백척간두에 처하고 만다는 엄연한 사실도 동시에 존재하는 거다.

어쩌면 이렇게 뚜렷한 옳고 그름의 지표를 집단적인 차원에서 내릴 수 없는 경우라면, 우선 개인적인 차원에서라도

그 긴장을 해소하려 노력하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진심이 느껴지고 따뜻한 웃음으로, 조심스럽고

존중하는 태도로, 상대와 상대의 일을 존중하고 내게 그 서비스를 베품에 감사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그렇게 우리가 간 곳은 코끼리 탑승장, 사람이 태워주는 것도 민망한 판에 코끼리를 타는 것도 다소 미안했다.

다큐멘터리를 즐겨보는 나로서는, 이런 식으로 사역당하거나 공연장에서 쇼를 하는 코끼리들이 얼마나 고통받고

부려지고 있는지에 대한 이미지가 가득했던 거다.

그렇지만, "코끼리 비스켓"이란 표현이 적절했던 것 같다. 나 한명 그리고 저 아저씨..조종수랄지 운전수랄지 혹은

기수랄지..가 탔다고 해서 코끼리가 움쩍하는 기색도 없었다. 그냥 앉았다가 일어서는 동작, 사뿐하고도 부드러운

리듬을 타고서 지상 삼 미터쯤 위로 불끈 올라섰다.


코끼리의 등짝과 정수리쪽의 가죽은 물에 흠뻑 젖었다가 바싹 말라비틀어진 소가죽같았다. 거칠거칠하면서도

아무런 수분의 느낌없는 부석부석한 촉감. 그리고 완강하게 잡혀있는 깊게 패인 주름들. 동물을 만질 때 느껴지는

체온이나 따스함, 부드러움 등의 느낌은 별로 전해지지 않는 거대한 초식동물.

중간에 아저씨는 코끼리와 모종의 교감을 거쳤는지, 억센 생명력 그 자체인양 뻗어나간 풀잎들이 삼엄한 한 쪽

풀밭에 코끼리를 주차했다. 이내 강력하고도 섬세한 코를 사용해 식사를 시작한 코끼리.


부드럽고도 날렵한 코의 스냅이란. 그리고 단호하면서도 세련된 그 완력이란.

내가 탄 코끼리를 '운전'하신 분의 이름은 KLUAYMAI. 그리고 그 밑에 병기된 일어가 눈에 거슬렸었나보다.

앞뒤로 파도치듯 일렁이는 코끼리 걸음의 리듬을 타고 있었을 한 자존심강한 '한국인'이 굳이 한글로 적어넣었다.

        아이   이'. 코끼리 등에서 느껴지는 리듬감이 고스란히 글자에 남아있었다.
 '클루     마


글쎄..다소 유치하단 생각이 들면서도, 실제로 태국으로 많이 쏟아져들어가는 한국인들의 편의를 생각한다면
 
당연한 처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다만 그렇게 한글로 굳이 적어넣은 행동이 영어와 일어가 병기된 데로부터

촉발해 발끈한 속좁고 치졸한 행동만은 아니기를 바랬다.

왠지 몽환적이었다. 정글 한가운데서 불쑥 튀어나온 고대의 사원들은 어느새 인공의 느낌과 자연의 느낌을 묘하게

뒤섞어 놓은, 인간의 것도 자연의 것도 아닌 느낌이었다.

자연을 굳이 '신'이라 표현한다면, 신과 인간의 경계지대에 놓여있는 듯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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